[편집자주] 이 글은 지난 8월 14-15일 개최된 사회운동학교의 발표문을 대폭 축약한 것이다. 원문은 8월 31일자로 발간된 노동자운동연구소(준) 이슈리포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동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잠시나마 반등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이던 경제위기는 올해 들어 유럽 재정위기로 그 모순이 파생되면서 더블딥 또는 장기 불황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은 경제위기 아래 2008-09년 세계 각국의 정책대응,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 노동조합의 대응을 평가하면서 한국 노동자운동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한다. 2007-09년 세계 경제위기와 실업 아래에서는 올해 초 발간된 「2010년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 전망」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영향을 개괄해보겠다. 필요할 경우 OECD 고용 통계 월보를 보충한다. OECD 추계에 따르면 2007-09년 경제위기 기간 동안 회원국 실업자가 50% 증가했다. 특히 2008년 3/4분기에서 2010년 1/4분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실업률은 급격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4월 현재 OECD 평균 실업률은 8.7%, 전체 실업자 수는 4억 6천 5백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동년 말 예상 실업률은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수치로, 지난 1973-74년 경제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그림1> 참조). <그림 1> 경기침체 발생 시점 이후 분기별 실업률 궤적 비교 자료: OECD, 2010. 가로축 단위는 분기.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의 충격으로 유럽연합과 유로존의 최근 실업률은 유럽통합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표1> 참조). 예외적으로 실업률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독일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와 같은 위기대책에 힘입은 결과로 분석된다. <표 1> OECD 주요국 2010년 4월 실업률 OECD 회원국 가운데 스페인(19.7%), 슬로박(14.1%), 아일랜드(13.2%), 포르투갈(10.8%), 헝가리(10.4%), 프랑스(10.1%) 등이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4.1%), 일본(5.1%)이 낮은 수준에 속했으며, 한국의 경우 3.7%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미국은 9.9%, 유로존 16개국은 10.1%, 선진7개국(G7)은 8.4%를 기록했다(<그림2> 참조). <그림 2> OECD 회원국 실업률 시기별 비교: 2007년 12월-2010년 3월. 자료: OECD, 2010. 세계 각국의 실업률은 향후에도 최소한 1년 정도 계속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경제위기의 효과가 노동시장에 시차를 두고 발현될뿐더러,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국가수준의 특별위기 지원책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러한 대책이 조만간 종료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보면, 금융·주택시장의 붕괴가 불황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던 나라, 가령 스페인·미국·아일랜드 등에서 실업률이 크게 상승했다. 집단별로 보면, 임시직과 청년층ㆍ저숙련ㆍ이민자 등 취약계층에서 실업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경제위기가 청년실업에 미친 영향이 막대했는데, 2009년 말 기준 OECD 평균 청년실업률은 2007년 말에 비해 5.3% 포인트 증가한 18.8%를 기록했다. 2010-11년 중 청년실업률은 20% 내외가 될 전망이다. 산업별로 보면, 광업·제조업·건설업 등 특정 산업 부문에서 대량 실업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림 3> 주요국의 한계노동자와 불완전노동자를 포함한 확장 실업률 자료: OECD, 2010. UR1: 장기실업자, UR3: 실업자, UR5: 실업자+한계노동자, UR6: 실업자+한계노동자+불완전노동자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끼친 충격은 공식 실업률의 증가로만 설명할 수 없다. 2009년 말 현재 OECD 회원국의 경우, 한계노동자(marginally attached workers)와 불완전노동자(underemployed workers) 수를 합치면 공식 실업률의 두 배를 상회한다(<그림3> 참조). <표 2> 유사실업자의 정의 ㆍ불완전노동자: 경제적 이유로 법정 주당노동시간 이하로 근무한 상용직 노동자 또는 상용직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자 ㆍ한계노동자: 과거 4주 동안 구직을 하지 않았으나,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노동자. ㆍ실망실업자(discouraged workers): 취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현재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로, 한계노동자의 하위 범주. 구직단념자라고도 함. 신흥경제국의 경우, 이번 경제위기의 충격이 국제무역 및 자본이동의 감소를 통해 이전되었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고용률이 감소했다. 노동력의 대부분이 노동시장제도와 사회보장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비공식노동의 비중이 매우 큰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비공식 부문으로 노동력이 유입된 결과 소득이 감소하고 빈곤률이 상승하고 있다. 또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사회정책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빈곤률과 비공식노동 비중이 높기 때문에 사회정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서도 제약이 따르고 있다. 신흥국 경제위기의 효과는 이러한 ‘비공식노동’과 ‘빈곤 함정’으로 인해 더 길게 지속될 전망이다. 2010년 들어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지고 미국도 하반기 들어 다시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어 고용-실업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많은 실업자들이 장기간 실업을 경험하면서 순환적 실업의 급증이 구조적 실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각국은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전례 없이 높아진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는 가운데 고용-실업 난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위기 대응 세계 각국은 대량실업에 직면하여 경기부양책을 통한 고용 유지·창출과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은 대규모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진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고용보조금 지원, 공공부문 고용창출, 실업급여, 기타 사회부조 개정을 통한 실직자의 소득 보조 등 고용을 유지·창출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조업시간단축이나 일시해고(layoff)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늘어났으며, 기술훈련과 구직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고 있다(<표3> 참조). <표 3> 2009년 OECD 회원국 노동정책 자료: OECD, 2009. 이와 함께 각국 정부는 대량실업에 대한 포괄적 대안으로 노동신축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일자리 나누기’란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지킨다는 개념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여 임금 삭감을 수용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 동안 일부 국가에서는 단체협약이나 노사정합의를 통해 사용자나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삭감 분을 분담하기도 했는데, 유럽 국가들의 조업시간 단축제나 부분실업급여제, 일본의 고용조정금조성제가 이와 관련된 정책이다. 최근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교대제 재편, 일시 휴직, 교육휴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한편 일자리 나누기와 유사한 개념으로서 ‘직무분할(job sharing)’ 방법도 있는데, 이는 가령 1일 8시간의 풀타임 일자리를 두 개의 4시간 파트타임 일자리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각국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특별히 ‘일자리 나누기’에 국한하여 그 관행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경우 일시해고와 재고용(recall)이 자유롭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다만 1980년대 이후 임금 동결ㆍ삭감을 통한 고용유지 타협 관행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비해 해고 비용이 높은 독일의 경우, 오래전부터 다양한 노동신축화 제도를 통해 ‘내부적 신축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산업ㆍ기업 특수적 숙련을 증진시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네덜란드 역시 상용직 파트타임을 중심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전반적인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은 가운데, 특히 상용직 파트타임의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해고 대신 잔업시간 조정, 전적 제도 등을 통해 노동시간의 신축성을 확보해왔지만,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의 확대로 방향을 대폭 전환했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독일과 같은 대륙유럽 국가에 비해서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실업보호가 발달하여 일자리 나누기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동결ㆍ반납, 혹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해 청년층을 채용하는 ‘임금 삭감’의 방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일자리 나누기 개념은 불황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양보교섭 개념과 호응하게 된다. 그럼 이제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각국에서 도입된 노동신축화 사례들을 살펴보자. 이번 경제위기에서 독일은 조업시간단축 또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방식으로 고용조정을 실시했다. 1993년 폴크스바겐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이런 방식은 이번 위기 시기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전형성을 띠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노조나 직장협의회와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여 정리해고의 방식의 고용조정 대신 정부의 지원 아래 조업시간단축제와 노동시간계좌제 등의 기제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노동정책을 대량해고와 외주화와 같은 ‘외부적 신축화’에 대비하여 ‘내부적 신축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파견근로자 및 기간종업원에 대한 해고와 신규사원의 내정이 취소되는 등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개정된 노동자파견법 상 제조업체에서 체결된 파견근로계약 대부분이 2009년 중 만료되었는데, 경제위기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파견근로자를 비용부담이 큰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음에 따라 대량 해고로 이어진 것이다(<표4> 참조).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2009년 1월 제1노총(CGIL)을 제외한 나머지 6개 노총들과 1993년 체결된 단체교섭 관련 기본협약을 개정했다. 이번에 체결된 노사정 타협안은 △실질임금의 보존을 위한 새로운 물가지표 도입 △가변급 교섭에 세금·연금의 공제와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 도입 △집권화된 교섭의 경제적·규범적 부분에서 구조조정에 대항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거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예비조항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CGIL은 이 협약이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다며 협약 체결에 반대했다. CGIL은 △부족한 임금인상분을 성과급에 연동해서 인상하던 관행을 폐지함으로써 임금 감소와 격차 확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물가인상률에서 에너지 수입이 제외되어 있으며 △예외조항으로 인해 노동자 보호가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CGIL은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과 단체협약 개혁안을 비판하면서 2009년 4월 총파업과 가두시위(270만 명 참가) 전개했다. <표 4> 일본 주요 대기업의 고용조정 현황 자료: 김명중, 2009. 프랑스에서도 2008년 제1노총(CGT)을 제외한 노사간 협약에 따라 ‘노동시장 현대화 법’이 시행되었다. 본 법안은 해고조건을 완화하고 기업 수요에 대한 노동력의 상시 연계를 위한 개별 서비스 확보를 주축으로 한다. 이중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로계약 합의 파기제도는 노사 당사자의 협의에 의하여 근로계약 해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일단 협의가 확정되면 노동자들은 이에 관하여 다툴 수 없을 뿐더러 협의의 확정 및 법적 효과는 사법적 영역이 아닌 행정적 영역에서 통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사용자와 정부는 지금까지 도입에 실패했던 근로계약 부분에 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을 환영하고 있다. 반면 CGT는 협약이 사용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고 있으며 근로자 보호 사항은 미약하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영국의 경우 2010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보수당-자유당 연정이 기존 노동당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을 보다 강화하면서 경제위기를 빌미로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다. 신축노동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평등법(차별 시정 정책)과 파견노동자 동등대우 원칙을 개정 내지 삭제할 예정이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 폭을 제한하고 향후 수년간 30만-7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 사이에 실업급여 범위 확대, 실업급여기준 완화, 조업시간단축제의 확대와 같은 위기 대응 수단이 종료될 예정이다.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 대책의 경우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도입한 조업시간단축제의 경우 포괄 노동자 범위는 일부 상용직과 무기계약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 일용직을 비롯한 대부분의 비정규직의 경우 조업시간단축제의 적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에도 파견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부분 실업, 또는 조업단축에 대한 임금보전 보조금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또한 조업시간단축제가 임금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없지만, 대체로 생산감소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의 효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경우, 주로 파견직과 같은 비정규직이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의 집중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임금신축성을 높이는 방안이 노사정 협약으로 체결되었다. 프랑스도 합의해지라는 보다 신축적인 해고 방안을 법제화했고, 영국도 기존의 법안을 개악하여 노동신축화를 강화하는 과정이다. 세계 주요 노조의 경제위기 대응: 지역ㆍ국가별 유형 이번 절에서는 노동조합의 경제위기 대응 사례를 유럽 노조의 코포러티즘, 미국 노조의 민주당 공조, 남반구 노조의 정치세력화로 유형화하여 살펴보겠다. 우선, 개별 민족국가 수준에서 볼 때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는 정부와 사용자 간에 거시적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는 노조에 대해 고통스러운 개혁과정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대신 노조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형국이다. 기업 수준에서 볼 때, 노사 ‘고통분담’이 제조업 부문에서 특징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유럽에서는 단기 노동시간 조정 조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동관계 입법, 실업 급여, 기업 지원 등에 있어 노사정 3자 합의 기구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유럽에서는 노사정 3자간 논의가 재활성화 됐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과거에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대화’가 제기되었고, 이는 일국 수준에서 노사정협약으로 귀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의 노사정협약은 전형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었다. 최근 경제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이 발견되고 있는데, 경제위기 대응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로 인해 ‘거시대화’는 노동신축화를 주요 의제로 한 3자 협상이 주를 이뤘다. 유럽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특히 일시 해고, 노동시간 단축, ‘부분실업 기금’(프랑스), ‘조업시간단축제’(독일) 등의 조치가 국가별로 다양하게 도입되었다. 이 조치들은 정부 재정지원을 토대로, 노조가 일정한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대신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노사정 타협책이다. 이 조치들은 위기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일 뿐만 아니라 회복 이후를 대비하는 조치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노사 모두의 합의를 원만하게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사간 또는 노사정 협약을 통해 위기에 대응한 사례들을 보면, 대개 위기가 일시적이라는 가정 아래 임시 조치에 합의한 것이 특징이다. 경제위기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이러한 임시 조치는 정부 재정이나 기업의 노동비용, 노동자의 임금 수입 모두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작년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는 대량해고와 임금삭감은 물론 긴축재정으로 인한 저성장-고실업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해고 비용이 높지 않고 노조가 분절화되어 있고 단체교섭이 분권화되어 있는 영국·아일랜드 또는 동유럽에서는 조업단축과 같은 위기 조치들이 주로 기업 차원 단체교섭을 통해 시행되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대선 국면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주된 전략은 오바마의 친노동정책에 대한 지지와 로비였다. 2008년 대선에서 미국노총(AFL-CIO)과 2005년 미국노총으로부터 분리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오바마 당선과 친노동계 인사인 힐다 솔리스(Hilda Solis)의 노동부장관 발탁 등으로 한껏 고무된 노조가 오마바 정부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의 입법화였다. 그러나 현재 노동조합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낙관주의에는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단적으로, 노조의 대정부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노동자자유선택법과 이주제도 개혁은 줄곧 유예되어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자체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이 10%를 상회하고, 금융위기의 충격은 주택문제 등 노동자계급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노조 내부의 분열도 큰 위기 요소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동조합의 대표적 조직인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조직 내분과 부패 스캔들이 노조운동의 정당성을 침식하고 있다. 이는 SEIU의 조직화 중심 전략의 이면에 도사린 실용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 한편 노조는 오바마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여 이들을 조직화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노동조합의 조직률 제고라는 목표에 종속되어 있을 뿐 이주노동자의 주체역량 강화라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끝으로, 북반구 주류 노조운동의 퇴조기에 사회운동 노조주의로 새롭게 주목받은 브라질노총(CUT)과 남아공노총(COSATU)의 최근 경제위기 대응 현황을 살펴보자. 이 두 노조는 남반구 노조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먼저 브라질노총의 경우, 주요 관심사는 2010년 대선 승리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브라질노총을 위시한 노동자운동은 룰라 정부가 수행한 재분배 정책과 노동조합에 호의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사고해왔다. 대선과 별개로 브라질 노동자운동이 2010년에 집중하려 하는 것은 노동조합 교섭의 포괄범위를 확대하고, 작업장 수준에서 현장 활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노동당에 의해 8년째 유지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여전히 보수당이 다수당인 관계로 대부분의 노조 관계법이 예전 수준에서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브라질노총의 상황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모순을 보여준다. 브라질노총의 ‘신노조주의’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브라질노동자당(PT)은 룰라의 대선 도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집권 전략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당은 중간계급을 포괄하는 계급연합 전략을 추구하였고, 노동조합 역시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호응하여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했다. 브라질이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2002년에 다시 경제위기에 직면할 때 노동자당은 경제위기 담론을 발전시켜 변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위기의 심화를 부정하며 사회안정과 현상유지를 추구했다. 그 결과 2002년 집권한 룰라 정부에서 은행 및 기업 국유화와 같은 좌파 고유의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다. 물론 룰라 정부의 우경화는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된 외채 규모, 공공 부채와 재정적자 누적, 무역수지 악화와 산업 기반 훼손과 같은 경제 여건은 노동당 집권의 원인인 동시에 룰라 정부 정책대안의 제약 요소가 되었다. 또는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사회정책과 통화주의적 긴축재정 정책 사이의 모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노총에서는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졌다. 일부 좌파는 브라질노총으로부터 분리해서 별도의 노총을 결성했다. 브라질노총 좌파는 노총이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룰라 정부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이 개량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2005년 타보 음베키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대표하여 대통령이 된 이후 ANC 내에서 심각한 좌우 분파 투쟁이 발생했다. 음베키는 ANC의 좌익 노선을 비판하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아공노총 내부 노선 투쟁 속에서 좌파 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남아공공산당(SACP)과 노총의 공식적 사회 개혁 노선이었던 성장 고용 재분배에 관한 정책(GEAR, Growth, Employment And Redistribution)을 폐지하고 폴로콰네(Polokwane)선언이라 불리는 계급투쟁 기반의 이행 노선으로 좌선회한 상태다. 남아공노총은 현 경제위기를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진단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남아공노총의 이러한 입장은 2007년 극렬한 ANC내 좌우 대결을 겪은 이후 노총 내 좌익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2009년 9월 개최된 남아공노총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이러한 내부 노선 투쟁을 반영하듯이 ANC, SACP, 노총 내 우파를 견제하기 위한 각종 결의들을 제출하고 있다. 가령 국민회의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안들, 노총 내부에서 의회ㆍ노동자회사 등에 파견된 간부들에 대한 소환권과 통제, 부패에 대한 감시 방안들,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한 중간 간부들의 육성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이어 남아공노총은 지난 해 10월 금융 위기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여, “노동자들이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데 비용을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전투력과 조직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남아공 내 경제 정책 및 전 세계 노동조합 운동과의 연대에 보다 정교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제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공노총은 중앙은행(Reserve Bank)의 통화 정책 기조를 인플레이션 관리 최우선에서 고용과 복지 중심 기조로 변경하는 데 성공하였다. 평가와 시사점 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신축적 안전성 최근 경제위기 시기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교섭 대응을 통해 정리해고의 수준을 완화하거나 노동신축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숙련노동력(‘ 인적자본’)을 유지함으로써 경기 호전 시 내부적 신축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자본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서는 △산업 차원의 단체협약을 통해 실시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 △기업 차원의 단체협약으로 확립된 노동시간 계좌제를 통한 조업시간 단축 △그리고 국가 차원의 노동시장 제도를 통한 임금보존 등 다양한 조치가 연결되어 실시되고 있다. 즉 경제위기와 대량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유럽의 노조들은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을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축성’와 ‘안전’의 합성어로서 ‘신축적 안전성’(flexicurity) 개념은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노동의 이동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전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의미한다. 신축적 안전성의 기본 원칙은 유럽연합의 성장 및 고용 전략의 중심적 요소와 같은 맥락에 있다. 또한 신축적 안전성은 높은 수준의 노동력 훈련에 기반을 두고 있고, 사회적 파트너의 역할과 관련하여 고용안전성과 노동시장 분절화 감축과 결합된 신축성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은행, 세계노동기구(ILO)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경제위기와 실업에 대한 해법으로 신축적 안전성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의(job) 안전성보다는 노동자의 고용 또는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의 안전성을 강조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신축적 노동시장을 장려하고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변화에 적응하는 수단, 즉 노동시장에 머무르면서 노동 생애를 진보시킬 수단이 주어졌을 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축적 안전성 모델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조하는 한편 평생 학습과 훈련을 추동하고 구직자 지원, 남녀평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내 기회 균등을 지지한다. 최근 금속노조는 독일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난 고용안정협정을 경제위기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요지는 독일의 고용안정협정이 △기업위기에 대한 노사의 공동인식에 기반하고 노동자의 연대적 실천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일자리안정과 산업입지역량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사의 전략적 타협의 산물이다 △산별교섭체계와 법제도적 보완조치가 병행되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 노사관계의 전통(특히 유럽 통합 과정에서 독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문제도 있을뿐더러 경제위기 아래 고용안정의 대가로 노동신축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 계좌제는 연간 단위의 변형근로제라고 볼 수 있고, 초과근무 수당을 사실상 폐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효과가 서구에 비해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장시간의 잔업ㆍ특근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던 상황에서 잔업ㆍ특근만 줄어도 노동시간 감소율에 비해 임금 감소율이 훨씬 더 클 것이고 노동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노동시장 내에서 ‘이동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자 스스로 기술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대안은 결국 독일식 ‘사회적 파트너십’ 모델로 귀결되는데, 이는 ‘새로운 사회협약’을 통해 단체교섭의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구상과 연결되고 있다. 한편 신축적 안전성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곤 하는 ‘네덜란드 모델’은, 특히 여성노동력 활용을 목표로 파트타임 일자리 확대를 통해 ‘일과 가사의 양립’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맞벌이 부부의 ‘1.5 job’).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양보교섭 이러한 노조운동의 코포러티즘은 20세기 서구 노조주의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다. 유럽 노조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임금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성장기 동안 생산성 증가에 따른 임금 인상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아들였으며, 그 대가로 국가를 매개로 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는 전략을 선택해왔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서 독일 코포러티즘 모델은 강력한 국가주도 산업화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중상주의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불황기 임금정책을 수용하는 노조는 노동자 내핍 강제기구로 전환되어 지속적인 임금억제를 정당화하게 된다. 이에 대한 자구노력으로 노조는 직업훈련을 담당함으로써 숙련을 향상시키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또 높은 조직률과 강력한 중앙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임금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특징지어지는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 역시 재정확대가 아니라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인플레 없는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에 대한 반경향으로 나타난 금융화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기초로 한 자본과 노동의 타협의 물질적 조건 및 제도를 해체하고 그 결과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를 동반해왔다. 산업이윤율의 하락으로 인한 생산의 침체와 금융비용의 증가에 직면하여 경영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을 재배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고임금과 실업의 동시적 원인으로 노동조합의 경직성이 지적되고, 고용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용 및 임금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립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시장의 신축성을 높이고 노동의 이동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부가되었다. 그러나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대체로 고용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양보교섭을 선택했다. 이는 자본축적의 성장기에 인정받았던 노조의 교섭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불황기에 기존 노조의 헤게모니의 물질적 토대가 해체되고 상대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양적ㆍ질적으로 증가하면서, 노조는 더 이상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기존의 제도적 관행을 유지하려는 노조의 노력은 종종 노동자운동 내에서 내핍과 고통분담을 강제하는 역설로 드러났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이질성과 분절화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노총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선임권 규정과 같은 기존의 제도적 안정성을 유지한 가운데 임금과 같은 쟁점에서 일정한 양보를 제공하는 양보교섭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며, 그 결과 조합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도 점차 축소시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교섭력 증대가 관건이 되고, 교섭력 증대의 전제 조건인 조직률 상승이 주요한 목표가 된다. 이는 영미권에서 종종 ‘신노조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조직화 노선으로 수렴되었다. 조직화 노선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노조간 통합, 특히 군소 노조의 흡수를 통한 조직률 증가 전략이다. 이러한 시도는 종종 전국적 규모의 ‘조직화 학교’나 ‘지역 사회 캠페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혁신 없이 조직률 상승이라는 실용적 목표에 종속된 조직화노선은 앞서 SEIU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문제를 파생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단체교섭의 분권화 양상이 뚜렷해졌다. 가령 독일은 전체 단체교섭에서 기업별 협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대폭 증가했고(1990년 27%→2000년 39%), 노조가 없어서 단협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 또는 직장협의회도 없는 기업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사용자단체의 조직률 하락과 병행한다. 또 산별협약에서 기업 수준 노사에 근로조건 결정권의 일부를 위임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1980년대에는 노동시간에 대해, 1990년대에는 임금에 대해 개방 조항이 적용). 이 과정에서 노조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신축성 확대를 교환하고 숙련 향상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 1995년 ‘일자리를 위한 동맹’, 1998년 ‘일자리, 직업훈련, 경쟁력을 위한 동맹’과 같은 사회협약이 그 단적인 사례들이다. 스웨덴의 경우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의 독점적 지위가 축소되고 사무직노총(TCO)-전문직노총(SACO)과의 중앙 단체교섭이 분리되면서 연대임금 정책이 붕괴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유럽 노조의 대응은 대체로 위기와 일정한 조정기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코포러티즘으로 수렴되어 왔다. 특히 유럽통화동맹으로의 이행기인 1990년대 말에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신 사회협약이 체결되면서 국가적 수준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이(혹은 경쟁적 코포라티즘) 확립되었다. 이 사회협약의 특징은 △생산성 증가 이하로 임금 수준을 유지하고, △산업부문에서 기업수준으로 임금협상을 부분적 개방하고, △높은 임금편차를 수용하는 것을 기초로 임금 억제 정책을 노조가 승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노동시장의 신축화와 사회보장 및 조세제도를 친기업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인가 단체교섭의 초민족화인가 유럽 통합 과정에서 유럽 각국이 민족국가 수준에서 임금 억제 정책이 실행 가능했던 것은 대량실업으로 인한 노조의 협상력 저하와 같은 조건 외에도 유럽화폐동맹의 ‘제도화된 화폐주의’가 바닥을 향한 경쟁을 추동했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수준의 사회협약-경쟁적 코포러티즘과 함께 기업 수준에서는 양보협약-경쟁적 기업동맹을 통한 ‘조직화된 분권화’가 일반화되었다. 즉 탈규제화된 금융시장, 강화된 시장경쟁, 대량실업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자본-노동 간(해외이전ㆍ투자재배치ㆍ해고위협), 초민족적법인기업 내부의 본부-자회사 간(생산성ㆍ임금ㆍ노동시간ㆍ작업조직 벤치마킹 강제), 주주-경영진 간(주주가치지향 단기 실적주의) 세력 관계의 변화를 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 차원에서는 초민족적 수준에서 자본의 구조적 우위를 강조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유럽의 ‘상징적 코포러티즘’이 작동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이후 환율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파괴적 효과가 지속되자, 화폐공급과 금융에 대한 탈규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통화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1978년 도입된 유럽화폐제도(EMS)는 회원국간 환율을 고정시킴으로써 환율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했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유럽화폐동맹(EMU)을 위해 제시한 경제정책 수렴기준은 민족국가 화폐주권의 소멸을 의미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기술력과 생산성이 열세인 국가가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유럽화폐동맹이 부과하는 조건 속에서, 노동비용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격이나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한 요소로 간주되었으므로 국가들은 저마다 노동조건의 사회적 덤핑이나 임금덤핑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 산하 각종 기구에서도 경쟁 지향적 단체교섭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이사회(European Council)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ttee)가 기초한 ‘확대경제가이드라인’을 채택했는데, 이는 임금인상을 생산성 성장 이하로 억제하고 지리적·직종별로 임금을 차등화하는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이 임금 억제 정책에서 이탈할 경우 통화수단에 제한을 가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노조들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처했다. 한편으로 유럽의 화폐ㆍ경제적 통합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경쟁을 부과하면서 점점 더 단체교섭의 기초 기능을 침식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상위적 유럽 단체교섭 체계는 가까운 미래에서 출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 무렵, 유럽 노조들은 단체교섭 정책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노조 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단체교섭의 유럽화를 향한 새로운 접근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체교섭의 유럽화에 관한 초기의 이론적·정치적 논쟁은 대부분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의 내용적 빈곤과 법적 완결성의 한계는 노조(사회·노동 표준에 대한 경쟁적 탈규제에 대항한 민족상위적 보호)와 사용자 단체(사회적 규제를 회피하고 국가간 경쟁을 활용한 이점을 누리고자 함)가 근본적으로 유럽의 사회적 대화에 대해 상이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와중에 1990년대 말 유럽금속연맹(EMF)을 비롯한 가맹 조직들의 발의에 따라 유럽노조연맹은 생산의 초민족화가 진전되면서 임금교섭이 더 이상 일국이나 특정 산업부문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유럽차원의 ‘단체교섭 조정’을 새로운 ‘유럽의 노사관계 체계’에 관한 주요 결의사항 중 하나로 채택하였다. 유럽노조연맹은 각국 단체교섭에 대한 권고사항을 담고 있는 단체교섭 조정을 위한 ‘유럽 가이드라인’을 채택, △정규 임금인상은 이윤과 임금 간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총임금 인상에 분배되는 생산성 비율을 최대화하면서 최소한 인플레이션을 초과해야 하며 △생산성 향상 잔여분은 단체협상의 여타 의제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임금이 평행적으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노조연맹은 이 가이드라인이 다음 목표에 부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확대경제정책가이드라인과 유럽중앙은행의 화폐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수준에서 노조들이 임금협상의 일반 지침을 가질 수 있고 ‘거시경제적 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유럽에서 사회적ㆍ임금 덤핑과 임금의 분기를 막을 수 있고, △유럽 내에서도 임금 지불이 쉽게 비교될 수 있는 단일통화지역에서 임금 요구안을 조정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생활조건을 상향 수렴할 수 있다. 이러한 ‘임금 공식’의 활용은, 임금인상이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조로 하여금 유럽 수준에서 임금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은 유럽에서 단체협상 결과에 대한 비교평가를 위한 분명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유럽노조연맹이 ‘사회적 유럽’을 상징적 매개로 하여 노동3권의 초민족화를 추구하는 것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통합의 신자유주의적 본질과 코포러티즘의 잠재적 위험을 차치하더라도, 유럽 차원의 노사관계가 그 목적과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실상 유럽연합은 사회적 파트너로서 어떤 권위 있는 대화당사자(즉 노사정)도 없으므로 최소한의 실체를 가진 정교한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하면 현실과 괴리되면서 거버넌스의 하위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데 유의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노조운동의 이념과 지향 그렇다면 경제위기 시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이념과 지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노동조합은 일차적으로 방어적 조직이다. 즉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서 임금인상·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개선이 노조의 일상적 방어투쟁의 과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의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의 활동이 연대지향적인 방식인가, 아니면 자기중심적 방식인가라는 쟁점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방어투쟁의 특정한 방식은 ‘노조주의’를 통해 표현된다. 노조주의는 특정한 조직형태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이념과 노선을 포함한다. 노조주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동반하지만 ‘정치노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조합 내에서 노동자대중이 어떤 형태로 스스로를 조직하며, 활동가들은 어떠한 지향과 활동방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지침에 가깝다. 따라서 노조주의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조직과 활동 노선을 포함한다. 즉 노조주의는 노동조합 일반에 관한 특정한 이론이나 관념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조주의 내에서 사회운동적인 요소를 추출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대중 내부의 계급적 통일성을 증가시키고, 내적 배제를 제거한다는 기본적 이념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이념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 전체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으로 나타나며, 종종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않는 실업자 운동이나 여타 민중부문과의 연계 전략을 동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이나 양보교섭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자초하는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전미자동자차노조(UAW)는 경제위기가 가시화된 2007년 단체협약에서 기존보다 낮은 임금에 합의했다. 이로써 UAW 가입 노동자 고용에 드는 비용은 미국 내 조업 중인 아시아계 자동차 회사인력의 수준과 동일하거나 적은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 조항이 현 조합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되 현 UAW 조합원의 퇴직에 따른 신규 대체인력 채용 시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UAW는 저비용의 ‘미래 노동계약’을 마련함으로써 현 조합원의 생활수준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기업을 살릴 급부를 제공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일 폴크스바겐의 경우, 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가로 세계 전역의 공장에서 다수의 비정규직이 해고되기도 했다. 2007-09년 세계 금융위기와 최근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의 재정위기가 폭발하면서 노조의 대응은 더욱 방어적으로 경도되는 인상이다. 특히 노조의 대응이 개별 기업이나 민족국가 수준에서 고착되면서 세계화ㆍ지역화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을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념적 전망의 소실과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노조의 이념적·조직적 혁신 전략이 역시 아직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0년 들어 발발한 남부유럽 재정위기는 해당 국가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과 함께 유럽 각국의 긴축재정으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 나아가 유럽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로 인한 세계적 금융위기 가능성을 동시에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2007-09년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한 번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단기간 안에 경기침체가 재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윤율 궤도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가 재발하면서 경제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설령 경기가 일정하게 회복된다 하더라더 ‘고용 없는 성장’이 되리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민중적 대안의 모색이 노조운동의 부활에서 결정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이념 속에서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민족국가적 전략과 세계적 전략 사이의 가교를 놓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금융위기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국제적 대응 속에서 노조는 초민족적 수준의 노동의 대표이자 사회ㆍ정치적 행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밖에 중국 노동자들의 최근 투쟁 사례서 보듯이 초민족적법인기업에 대한 각국 노조의 공동 대응과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로 요청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다 지난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디트로이트주 미시간에서 개최된 2차 미국사회포럼(USSF)에 노동조합 간부, 비정부기구(NGO) 간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모였다. 포럼 행사는 참가자 수가 대략 1만 8천 명에 달할 만큼 상당히 큰 규모로 치러졌다. 5일간 열린 포럼에서는 1,062개의 워크숍과 50개의 ‘민중운동 회의’가 개최되었고 그밖에도 다양한 총회, 집회와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졌다. 실업에서부터 주택압류, 이라크·아프간 전쟁, 이주자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포럼을 마친 뒤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 모두 미국사회포럼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사회포럼의 규모는 최근 경제위기에서 노동자를 향한 공격에 대해 좌파들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결과다. 부시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상당한 불만과 일부의 저항을 촉발했지만 (긴급경제안정화법으로 알려진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금융기관 구제 조치는 오바마 정부에 들어와서도 지속되었다) 이것이 전국적 운동으로 유지되지는 못했다. 일부 좌파 진영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가 2009년 2월 입법한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 정책 패키지(미국경제회복및재투자법)는 다른 조치들과 함께 거의 16%에 달할 수도 있었던 실업률을 낮추고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업률은 2010년 1-2월 9.5%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고, 특히 흑인과 라틴계의 실업률은 백인에 비해 훨씬 더 높다. 불완전 취업노동자 숫자를 더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주택소유권을 박탈당했고 주택압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주정부가 교육 보건 서비스나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한 공공서비스의 예산을 삭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물론 이러한 서비스노동에 의지하는 많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은 이번 경제위기 시기 동안 소득, 고용, 생활기준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악화되었고 향후에도 개선이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특히 유색인은 노동자계급 비율이 백인에 비해 더 높다), 자본의 위기 전가에 반대하고 고용 유지와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강력하고 통일적인 운동을 누구든지 기대하거나 최소한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투쟁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런 운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글은 노동조합과 여타 좌파 세력의 경제위기 대응을 살피면서 이것이 통일적이고 변혁적인 저항으로 통합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평가한다. 노동조합의 대응 2008년 12월 5일 전국 단위로 조직된 소규모 독립노조인 미국전기라디오기계노동자연합(UE)에 소속된 약 200명에 달하는 라틴계 이주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합원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Republic Windows and Doors) 공장 점거에 돌입했다. 불과 며칠 전 회사가 공장이 폐쇄될 것이고 근로계약에 명시된 해고수당이나 각종 수당도 없이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노동자들에게 느닷없이 통지한 것이다. 경영자들은 아메리카은행(BoA)이 회사의 추가적인 신용대출을 거절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 거대 은행은 최근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 투쟁은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하려는 사용자와 금융자본의 의도에 맞서 전투적이고 공세적인 저항을 펼침으로써 미국 좌파는 물론 일반인에게 짧은 시간 동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국 각지의 유색인 노동자 단체들이 연대투쟁을 조직해서 아메리카은행 지점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공장점거와 대중적 지지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오바마 대통령마저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언급을 할 정도였다. 투쟁을 통해 결국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은행과 회사의 2차 신용기관인 제이피모건체이스마저 UE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점거 6일째, UE는 사측으로 하여금 체불 임금과 수당, 그리고 두 달 치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175만 달러의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좌파들은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전투적 대응, 특히 유색인과 이주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잠시나마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사용자들은 재빨리 고용을 삭감하고 단체협정을 무력화했다.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투쟁과 달리, 주요 노조의 일반적인 태도는 양보 형태를 띠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조치를 실행하자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체결한 일련의 협정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제너럴모터스(GM) 및 크라이슬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기로 했던 그 협정은 2009년 중반 만료되었는데,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퇴직자의 건강보험 기금으로 당초 약속한 현금을 공여하는 대신 회사 주식을 공여함으로써 노조들은 신탁기금을 통해 그 책임을 부담해야 했다. 그밖에도 전미자동차노조는 해고된 이후 실업수당이 소진된 노동자들에게 원래 급여의 약 85%를 제공하는 “일자리 은행”의 폐지를 포함하여, 향후 6년간 파업 금지나 초과수당 삭감과 같은 양보안에 대거 합의했다.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도 해고와 수당 삭감이 자행됐지만, 이에 대한 저항은 극히 미미했다. 예를 들어 2009년 봄, 뉴욕시 공공노조는 4억 달러에 달하는 건강보험 수당 삭감에 합의했고, 이는 55만여 명의 노동자와 퇴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조는 희망퇴직자에게 현금으로 수당을 제공하는 대가로 7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없애기로 뉴욕주와 합의했다. 주지사 아놀드 슈워츠제네거가 캘리포니아주의 노동자들에게 2009-2010년 2년간 월별로 2-3일씩 무급휴직을 강요했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노조들의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민주당과 의 긴밀한 연계에서 연유한다. 미국노총(AFL-CIO)과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공히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약한 뒤(비록 미국노총은 예비선거가 끝난 뒤에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지만) 재정을 후원하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양대 노총의 오바마 선거운동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주당과의 공조가 낳은 결과다. 이러한 노조-민주당 공조는 “뽑아만 주신다면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후보자 개인에게 매료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러 친노동정책 입법을 취하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노동법 개혁, 특히 노동자자유선택법(EFCA)을 입법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 소속 노조들은 오바마가 당선되면 EFCA가 통과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미조직 노동자를 신규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7년 의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인 이 법안이 가까운 시일 내에 통과될 것 같지는 않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자동차 산업 사용자들과 대대적인 양보협약을 체결한 데에는 일반적으로 민주당과의 공조, 특히 오바마 정부와의 친밀한 관계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바마가 자동차 산업 구제조치 과정에서 이러한 양보협약을 강력히 밀어붙였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 정부와의 관계는 경제위기 시기에 노조가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의제를 선별적으로 지지하면서 의회 통과를 위해 로비를 하거나 때로는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경우, 보건의료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들어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최근 물러난 SEIU 전 위원장 앤디 스턴은 모든 미국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논쟁적인 조항을 쟁취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미국노총 역시 민주당의 의제를 바탕으로 강령을 기초했다. 오바마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노총은 △학교 도로 에너지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추가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주정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실업자 수당을 확대하고 △지방은행에 대해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메디케이드(65세 미만의 저소득자, 장애인 의료 보조 제도)와 교사들의 봉급을 지원할 수 있도록 주정부에 260억 달러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의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8월 5일과 10일 각각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다.) 이와 같은 의안은 대체로 노조들이 조합원들로 하여금 의원들을 압박하도록 장려하거나 노조 지도부 스스로 로비를 함으로써 법제화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미국 노조 지도부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거나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또한 경제위기가 노동자에게 가한 타격을 다소간 완화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 체제를 영속화하는 것 이상의 해법을 제시하는 데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노조 지도부는 공공연히 실업과 저임금의 책임을 신흥경제국, 특히 중국에 돌리며 이들을 계속해서 비난할뿐더러,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라는 관점에서 사고하기보다는 미국 노동자의 이해를 강조하곤 한다. 단적으로 최근 8월 4-5일 개최된 미국노총 집행위원회 회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집행위에서 노조 지도부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조치로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① ‘바이 아메리카 프로그램’의 확대 ② 국가 제조업 전략 수립 ③ 환율 조작 중단을 위한 강력한 조치 ④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한 관세 정책 등이 그것이다. 역사적 기원: 코포러티즘적 합의와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노동자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경제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미국 노조들의 상황은 비단 현 지도부의 노선이나 전략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멀게는 1900년대 초 미국노동조합연맹(AFL) 위원장을 역임한 새뮤얼 곰퍼스와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 그린이 ‘빵과 버터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를 발전시켰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실리적 노조주의는 AFL에 속한 고숙련·정주·백인 조합원들의 협소한 이해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계급투쟁을 등한시했다. AFL 초기 지도부들은 정치적 행동을 노동자계급의 동원이라는 의미보다는 로비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들이 대표한 실리적 노조주의 경향은 전간기 동안 강력한 노동탄압과 몇 차례의 파업 실패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대불황 시기 동안 노동자운동은 코포러티즘과 전투성이라는 두 개의 경향을 모두 드러냈다. 1929년 경제위기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AFL은 친노조 공약과 케인즈주의 정책에 희망을 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 로저벨트를 지지했다. 전국산업부흥법(NIRA, 1933년)의 7(a)조항과 전국노사관계법(와그너법, 1935년)과 같은 로저벨트 정부 초기에 통과된 노동개혁 법안은 단체교섭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불공정 노사 관행을 규제할 목적으로 전국노사관계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노조 조직화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올 기회를 제공했다. 1934년에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주도하는 몇 개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고조됐다. 그러나 여전히 AFL 지도부는 숙련노동자에 기반을 둔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숙련 기반 조직화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노총 내 좌파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들은 저숙련 노동자를 포함하는 산별 조직화를 추진했다. 이 세력들은 결국 1935년 산별노동조합회의(CIO)를 결성하고 산별 조직화를 통해 여성 및 흑인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다. 좌파들의 적극적인 조직화 노력과 더불어 AFL과 CIO 사이의 경쟁은 노동자운동의 급성장을 가져왔다. 로저벨트는 노동자들의 힘이 강력해진 것에 놀란 나머지 파업이 벌어지면 일방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을 들면서 노조 지도부들의 코포러티즘적 성향을 고무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CIO는 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노조 상층 간부들은 전시 ‘무파업 맹세’를 약속하는 대가로 정부 정책을 협의하는 자리에 참가하곤 했다. 이러한 합의는 꽤나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전후 자본과 노동 사이에 산업평화가 도래했다. 산업평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냉전정책, 즉 반공주의와 해외침략을 신봉하는 조건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으로 통합되었다. 1947년에 미국 의회는 태프트-하틀리가 발의한 전국노사관계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태프트-하틀리법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노조의 전술에 심각한 제약을 부과하면서 노조 지도부들에게 더 이상 공산당을 가입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연방정부에 파업중단 명령권을 부여했다. CIO는 서약 강요에 저항하다가 1949년 이에 굴복, 1949-50년 11개의 좌파 성향 노조를 축출했다. 이후에도 5개의 노조가 추가로 CIO를 탈퇴했다. 좌파를 효과적으로 숙청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일소하는 데 성공한 결과 실리주의적이고 코포러티즘적인 노조주의 헤게모니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전미자동차노조와 GM 사이에 체결된 ‘디트로이트 협정’이었다. 이 협정에서 노조는 생활임금 인상, 사용자의 건강보험 보장, 연금안을 수용하는 대가로 파업권과 현장통제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나머지 자동차 산업에서도 기준으로 작용했다. 그후 CIO는 1955년 AFL과 재통합했고, 미국노총(AFL-CIO)은 공산주의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이 심각하게 침식됨으로써 노동자운동이 실질적으로 파괴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곧 자신이 선택한 ‘위험한 동침’의 결과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노조는 냉전정책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안전한” 세계(즉 해외 자본투자)를 만드는 데 조력했지만, 이러한 ‘충성’에 대한 보상은 보잘 것이 없었다. 오히려 1970년대 초반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한 지배계급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탈산업화·금융화를 통해 미국 경제 중에서도 노조로 조직된 핵심 부문을 탈노조화하고 중공업을 남반구로 이전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은 노동현장 인구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노조로 조직화된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는 일자리로 쫓겨났고, 여성ㆍ이주ㆍ비정규ㆍ서비스부문 노동자들이 다수 증가했다. 조직된 조합원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 집단을 조직할 전략마저 부재한 나머지, 노동조합원 숫자가 급락했다. 1950년대 중반 약 35%에 달하던 노조 조직률은 2009년 현재 12.3%로 추락했고, 민간부문에서는 고작 7.2%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는 처음에는 미국노총 내에서 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도입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노총의 분리, 더 정확히 말하면 ‘분열’을 촉발했다. 1995년 선출된 존 스위니 신임 지도부는 조직화 모델을 채택했다. 친노동 법제화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민주당을 강력히 지지하긴 했지만, 스위니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서 서비스의 제공이나 분규 처리수단에 의존하는 대신 동원을 선호했다. 그는 또한 미조직 부문의 조직화를 장려하고 지역사회 단체들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스위니의 조직화 모델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를 규정하거나 노동조합 운동의 코포러티즘적 태도와 기능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게다가 스위니는 가맹 노조들로부터 전방위적인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일부 노조는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중앙 지도부를 지나친 간섭주의라고 몰아붙이기도 했고, 일부 노조는 높은 액수의 민주당 지지 의무기금에 피로를 호소하기도 했으며, 탈산업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서비스부문에 기반을 둔 일부 노조는 보다 공세적으로 신규 조합원 조직화를 수행할 자유를 원하기도 했다. 뒤의 두 가지 입장을 보인 노조들은 결국 2005년 미국노총을 탈퇴하여 승리혁신동맹을 결성했다. 승리혁신동맹은 스위니가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유사한 강령을 표방했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의 분리는 미국노총의 취약함의 반영이자 단결의 토대가 되어야 할 계급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의 반영으로서, 노조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 승리혁신동맹의 강령은 민주당에 대한 독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자계급의 정당한 정치적 행동의 발로라기보다는 민주당과의 공조에 대한 일종의 균형추로서 공화당의 환심을 사려는 것으로 종종 드러나곤 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정치적 요구는 일반적으로 미국노총의 거울상에 불과했다. 승리혁신동맹의 중추 세력인 북미서비스노조(SEIU)가 신규 부문에서 거둔 조직화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와 (정치적 내용이 결여된 맹목적인 ‘조직 몸집 불리기’에 다름 아닌) 일방적인 하향식 조직화 방식, 그리고 유나이트히어와 같은 다른 노조의 내부 분쟁에 대한 개입 등으로 인해 크나 큰 비난에 처해왔다. 2008년 앤디 스턴 위원장은 유나이트히어의 위원장 브루스 레이너가 히어 부문과 갈등을 겪자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레이너 진영에 속한 10만여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지역지부들은 2009년 3월 유나이트히어를 탈퇴하여 SEIU로 상급단체를 변경, 워커즈유나이티드(Workers United)를 결성했다. 워커즈유나이티드와 유나이트히어는 최근까지 쌍방간 부패와 실정의 책임을 묻는 18개월에 걸친 지난한 법적 분쟁을 벌였다. 미국노총-승리혁신동맹, 유나이트히어-워커즈유나이트 간의 분리는 공히 운동의 역량을 소진시켰다. 또한 이러한 노조의 분리는 노동자운동 내 개별 부문들이 각기 이전에 누려온 협소한 이해에 몰두하는 무능력을 표상한다. 요컨대, 스위니의 개혁 노력과 SEIU가 시도한 조직화 전략은 전후 노자 간 ‘대타협’에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지속적인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적(계급적) 방향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내부 분파 갈등은 상당 부분 이러한 결점의 결과인 셈이다. 미국사회포럼 참가 세력들의 현황 이상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보면 양대 노총과 그 가맹노조들이 최근 경제위기에 맞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는 유의미한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는 노조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노총, 유나이트히어, SEIU와 기타 노조에 소속된 간부들이 미국사회포럼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들은 포럼을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운동을 건설할 호기로 활용하려는 어떠한 통일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고 행동 제안을 결의할 ‘노동조합 간부회의(Labor Caucus)’가 계획되었지만 이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번 포럼에서는 각 노조가 여타 세력과 함께 공동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인 기구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사회포럼에 노조만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노조는 미국 사회운동 전반을 대표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미국 노동자운동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노조 이외의 몇몇 운동 세력들은 미국사회포럼에 적극 참여한 것은 물론, 포럼 전후 프로세스를 통해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주자 권리> 아마도 포럼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이주자 권리 운동일 것이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지역 노동자센터, 지역사회 단체에서부터 거대 NG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은 항상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대개 노조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주자 권리 부문은 애리조나 주가 이주자단속법 SB1070을 채택함으로써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이 법안은 정식 비자가 없이 애리조나 주에 체류 중인 이주자에게 범죄 혐의를 씌우고, 경찰관이 미등록이주자로 의심되는 모든 이들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SB1070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났고, 연방정부도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이 법안은 시행을 하루 앞둔 7월 28일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주자 권리 운동은 SB1070에 반대하는 투쟁 외에도 1,200만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자의 합법화 프로그램을 포함한 포괄적인 이주관련법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슈는 포럼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이뤄진 주제였다. 이주자 공동체의 주체화를 목표로 하는 조직화 전략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미국노총과 승리혁신동맹은 서면 상으로는 포괄적인 이주개혁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입장 역시 이주자에 대한 감시·통제와 더불어 사업장에서 고용 허가 인증을 통과한 이주자만 입국을 허용할 것, 그리고 멕시코 국경의 경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이주자 조직화에 초점을 맞춘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은 투쟁의 주체로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목표를 병행하고 있지 않다. 비노조 이주자 권리 운동에 동참하는 많은 세력들의 경우, 이주자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계급 일반에 대한 공격 사이의 연관을 분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일부 이주자 단체가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주가 이뤄지는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해는 투쟁방향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향후 노조와 이주자 권리 운동 세력 사이의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양자가 서로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반전운동>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약화되긴 했어도 반전운동 역시 포럼의 주요 참가 세력 중 하나였다. 다양한 반전 활동가들은 경제위기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범죄 사이의 연관 고리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전비가 아닌 일자리와 공공서비스를!”(Move the Money)이라는 제목의 캠페인에 대해 논의했다. 보스턴 지역의 단체들이 최초로 발의한 이 캠페인은 일자리를 위한 재원 확충과 공공서비스를 요구하면서, 미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역별 투쟁을 연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역에서 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별 캠페인이 잘 실행된다면 향후 국방예산에 사용되는 돈을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비록 캠페인 규모가 아직 충분히 커지지는 않았지만, 캠페인 조직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전단체인 평화행동(Peace Action)과 함께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여타 부문으로도 연계망을 확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 다른 범주와 겹치긴 하지만, 포럼의 또 다른 주요 참가 세력은 필자가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단체라고 부르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 부문에는 전국가사노동자동맹, 노동자공동체전략센터(로스앤젤레스), 아시아공동체조직(CAAAV, 뉴욕), 고용권쟁취민중조직(POWER, 샌프란시스코)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러한 단체들 중 다수는 그 기원을 1960-70년대 민권운동 및 유색인운동에 두고 있으며, 대체로 이들은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인종주의와 보수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노조를 주요 고려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가 어떻게 교착하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20-30년 전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비노조 조직화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가사노동자를 노동자 범주에 넣고 고급주택 위주의 재개발로 인한 유색인들의 강제 퇴거 문제나 공공운송 이용권과 같은 이슈에 주목하면서 노동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이주자와 유색인 노동자들을 조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이러한 운동단체들은 전통적인 노조들과 관계를 맺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다. 5년 전 이 단체들 중 많은 단체들이 선도적으로 나서서 60여 개가 넘는 각종 지방ㆍ지역ㆍ전국 단위 단체들의 전국적 연합체인 풀뿌리세계정의(Grassroots Global Justice)를 결성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빈민ㆍ노동자계급 공동체 속에서 기층 조직화 전략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빈곤, 분쟁,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세계 정치ㆍ경제 세력” 비판을 토대로 국제적인 “변혁적 사회정의 운동”을 건설한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2007년에 개최된 1차 미국사회포럼과 이번 포럼을 조직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9년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풀뿌리세계정의는 비아캄페시나(농민의길), 세계여성행진, 남반구사회동맹과 같은 국제적 반(대안)세계화 운동 세력들과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 운동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아마도 풀뿌리세계정의의 참가단체들이 정치적 관점이 꼭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로 지역별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동원을 위한 통일적인 강령을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규모 면에서나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나 노동조합에 상응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포럼에 참가한 또 다른 비노조 단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세계정의 참가 단체 중 하나인 일자리와정의(Jobs with Justice)라는 전국 단위 단체가 그것이다. 일자리와정의는 더욱 광범위한 경제ㆍ사회 정의라는 맥락에서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1987년에 결성된 단체다. 일자리와정의는 노조와 지역사회 단체들 간의 연대를 실질적으로 증진하려고 노력하고, 활동가들 역시 노조의 조직화 캠페인이나 노동현장 투쟁에 직접 지지ㆍ연대한다는 점에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많은 단체들과 구별된다. 일자리와정의는 리퍼블릭윈도우즈앤드도어즈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고, 현재는 미국 전역의 하얏트 호텔에서 임금동결 중단과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유나이트히어의 장기 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와정의 각 지부들은 포럼에서 다수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자신들이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캠페인을 홍보하기도 하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이주자의 권리 투쟁과 기존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일자리와정의는 노동조합들과 함께 포럼 둘째 날 “은행이 아니라 일자리에 돈을”이라는 슬로건 하에 ‘노동자 행진과 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더 많은 장애물: 개별주의, 오바마, 풀뿌리 우파 불충분하긴 하지만 미국사회포럼을 개관하면서 미국 사회운동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동시에 운동의 역량이 다양한 이슈로 나눠져 있고, 상이한 부문 간에 각자의 이슈에 선행하는 공통 과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도 살펴볼 수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의 코포러티즘적 노선에 비견할 만한 이러한 ‘개별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고 냉전 시기 공산주의를 억압했던 미국 역사의 유산에 다름 아니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미국에는 진보적 계급 분석이 부재했는데, 이는 미국의 해외전쟁과 국내 인종주의에 대응해서 1960-70년대에 출현한 운동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동안 진행된 투쟁은 대부분 마르크스주의를 멀리 하면서 종종 단일 이슈에 집중하거나, 또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재분배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유색인ㆍ여성ㆍ성소수자 등 특수한 하위주체(subaltern) 집단의 대표성을 강조하곤 했다. 이 시기 또는 그 이후에 출현한 유색인 운동 내 일부 세력들의 경우 인종적 억압에 대한 분석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결하려고 노력하였고, 또 어떤 집단들은 여성 억압과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을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지만, 운동의 분열상은 지속되었다. 계급 분석의 결여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에 의해서 강화되기도 했는데, 반지성주의는 1960년대 구좌파의 교조주의와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억압적 본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이래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 운동의 통일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요인들이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비단 노조뿐만 아니라 좌파 일반이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강력한 투쟁을 펼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모종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망에서 비롯된 문제로서, 오바마가 사상 초유의 흑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다. 공화당원과 티파티운동이 조직한 풀뿌리 우파들이 오바마를 악의적이고 때로는 인종주의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들은 오바마를 비판하는 데 훨씬 조심스러워하고 있고, 이로 인해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가 오바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대안을 제출하는 데 실패하는 와중에, 경기침체기에 터져나온 대중적 불만으로부터 티파티운동이 발전하여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티파티운동 동조자들이 건강보험 개혁이나 정부 지출에 반대하는 몇 차례 집회를 개최하여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반면, 미국사회포럼과 같은 행사는 어떠한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언론이 차별적으로 반응한 것은 티파티운동이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는 단일한 이념으로 무장한 반면, 좌파의 경우 이러한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일부 연유한다. 각 지역 수준 또는 개별 이슈별로 중요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좌파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통일적 대응을 건설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결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나 개인이 혼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몇 가지 평가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좌파 세력들이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고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노동탄압 및 냉전의 유산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유산이라 함은 미국 노동조합들의 코포러티즘적 노선과 신사회운동이 표방한 개별주의 그리고 좌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및 이론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감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노조와 비노조 반인종주의·유색인 노동자계급, 그리고 지역사회 단체들 사이가 긴밀해지고 상호 협력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스위니 지도부 시절 미국노총이 이를 처음 시도한 바 있고, SEIU는 이러한 방식을 특정 조직화 캠페인에서 채택했다. 일자리와정의 역시 이러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으며 노조 조직화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매우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풀뿌리세계정의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과 같은 집단들이 노조와 교류하고, 비전통적인 부문에서 기층 조직화를 위한 집단적 전략을 논의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군사세계화가 개별 억압과 연결되는 맥락과 인종주의ㆍ가부장주의ㆍ이성애주의가 자본주의와 상호 연관되는 맥락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끝으로, 일자리와 공공서비스 등 노동권 투쟁은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과 반전운동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는 이주자의 권리 쟁취 투쟁이나 반전운동이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고 전국적 규모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이 정부의 재정 지출이나 경제위기 시 노동자 통제 방식과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상의 논의에서 확인하였듯이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실행되고 있다. 강력하고 통일적인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을 배가하는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노동조합 내부와 비노조 노동자계급 좌파 내부에서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실현할 구체적 방법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11월 11-12일에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패권과 경제ㆍ금융질서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G20을 규탄하는 운동 역시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G20에 대해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입장부터 몇몇 분야에서는 비판적인 개입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 G20이 세계 경제위기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등장했다는 점, 한국을 포함하여 개도국이 포함되었다는 점, 몇 가지 개혁조치를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는 G20이 세계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패권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변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대안세계화를 주장하는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G20과 관련된 두 가지 쟁점을 검토하고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제안한다. G20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표성, 정당성, 민주주의의 결여 G20에는 대표성, 정당성, 민주주의가 없다. 경제규모를 중심으로 선택된 20개국이 전 세계 190여 국가를 대표할 수 없고, 신자유주의의 교리를 강요해서 현재의 위기를 발생시킨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정당성이 없고, 회의 참가가 봉쇄되어 있고 내용과 진행절차도 철저히 비공개라는 점에서 민주적이지 않다. 2008년 하반기 경제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미국과 유럽의 패권국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여 G20 정상회의를 열었다. 지금까지 4차례 열린 회의를 통해서 G20은 스스로 세계경제에 관한 최고 기구로 규정했고, 경제뿐만 아니라 발전, 빈곤, 환경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국제패권에 관한 중심적인 논의기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G8과 마찬가지로 G20에는 아무런 국제법적인 지위가 없다. 왜 20개국인지에 관한 기준도 없다. G7에 경제규모와 지정학적인 고려에 따라 12개 신흥개도국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이루어진 조정의 결과였고 최종 승인은 G7이 했다. 누가 7개국에, 20개국에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나? 경제규모가 참가 여부와 발언력을 뒷받침한다는 측면에서 G20은 기업의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구성 원리와 같다.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개도국이 포함되었으나 각 지역 경제의 강자들로서 대부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질서의 옹호자들이다. G20에 배제된 170여 개국의 입장은 대변될 길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주빌리사우스, 아탁 등 115개 국가 900여 개 사회운동단체가 서명한 <국제금융체계 개혁을 위한 ‘세계정상회의’ 성명>은 현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G20이 아니라 민주적인 참여와 토론이 보장되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www.choike.org/bw2/ 참고.) 이들은 세계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 G20이 아니라 유엔이 주최하는 국제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안한 유엔의 회의는 ①세계 모든 정부가 참여하고, ②시민사회, 시민조직, 사회운동의 대표자가 참여하고, ③현재 위기로 큰 영향을 받는 지역들이 협의하기 위한 분명한 시간표와 절차를 마련하고, ④포괄적인 범위로 모든 문제와 기구들을 다루고, ⑤투명성이 보장되어 제안서와 결과 문서의 초고가 공개되고 토론될 수 있어야 한다. 유엔 역시 역사적ㆍ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수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이 성명서에 서명한 까닭은 G20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리핀의 대안세계화운동가 월든 벨로는 “누가 그들에게 위기를 해결할 권한을 부여했나?”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G20 반대 투쟁의 전제라고 강조한다. 한국을 포함한 일부 개도국이 G20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실체도 의심스러운 배타적인 국가적 이해관계보다는 세계 민중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보편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운동에 있어서 국제주의가 다시 제기되는 지점이다. 현재의 위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G20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틀은 제국주의의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전을 이루었고 현 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이 있는 북반구보다는 남반구 민중의 권리를 대폭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변화가 아니라 관리, 행동이 아니라 말 G20은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고 모였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정책 조율의 차원으로 다루고 있다. 정작 중요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 금융자본의 권력문제, 전 세계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위기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공분의 대상이었던 IMF의 권력을 강화시켜 기술관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손대지 못하고 있다. 결국 G20이 목표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침해받지 않는 정도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폐지할 생각도, 금융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들 의지도 없다. 현재 존재하는 체제의 원만한 관리와 패권유지가 G20이 공유하고 있는 목표다. G20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사르코지와 같은 각국 정상이나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마저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위기가 훨씬 더 깊고 넓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1970년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었다. 금융화를 통해서 실물부문의 수익성 문제를 우회하고자 했던 자본의 전략이 주식, 채권,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다가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거품으로 금융적 축적을 이어갈 방법이 분명하지 않고, 그렇다고 실물부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는 지난 수십 년과는 달리 장기적인 저성장과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곤, 기후변화, 에너지, 농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 위기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질서와 단절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다. 하지만 G20은 행동이 아니라 말로 이러한 문제를 감추고 자신을 멋지게 포장한다. 2009년 하반기부터 경제위기가 한풀 꺾이는 것처럼 보이자 G20은 고용, 발전, 환경 등 다양한 문제를 언급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는 주목을 받는 국제회의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각국 정상들은 자신들의 친목과 단합을 뽐내고, 언론을 상대로 멋진 말을 늘어놓고 좋은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약속은 휴짓조각이 된다. G8이 대표적인 사례다. G8이 신자유주의 추진기구로 비판을 받자 그들은 외채탕감이나 개발원조와 같은 문제도 주요한 의제로 다룬다고 선전했다. 이러한 행동은 G8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행된 것은 얼마 없고 대부분은 말 잔치로 끝났다. G20도 마찬가지다. G20은 노동권, 환경, 발전에 관한 모호한 공약을 내놓지만 알맹이는 없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하던 것을 좀 더 잘하겠다는 말뿐이다. 새천년개발목표(MDG) 달성에 힘을 쓰겠다,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화석연료보다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펴겠다,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노동권을 존중하겠다 등등. 그런데 각국에서는 이런 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진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G20은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노조법을 개악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금융규제에 합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금산분리 완화 등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일은 비단 한국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통제의 요구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보다 강력한 규제와 세금 부과 G20은 첫 회의부터 금융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G20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한층 강력한 금융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이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10월에 발표된 아탁(금융과세연합)의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 금융위기와 민주적 대안에 관한 성명서>에 이러한 주장이 잘 드러나 있다. 아탁은 네 가지 요구를 제기한다. 첫째, 민주적인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금융자본의 권력을 해체하고 실물부문과 사회적 필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셋째, 경제위기로 인한 비용을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지불해야 한다. 넷째, 금융 시스템의 핵심 부분을 개혁하기 위해서 금융통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G20에서 실제 추진되고 있는 금융규제 개혁은 네 번째 요구 중의 일부분인데, 그 정도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G20의 의제에 초점을 맞추고 각 금융규제를 강화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경우에는 투자 중인 자산의 세부내역과 차입금 규모가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금융상품에 관한 포괄주의 규제를 열거주의 규제로 개혁함으로써 모든 개별 신금융상품에 대한 공적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투기자본의 천국인 조세도피처나 역외금융센터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등의 요구들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모든 금융거래에 금융거래세(일명 로빈후드세)를 부과하자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거래세는 주식, 채권, 외환거래 등 모든 금융거래에 0.001~0.05%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운동이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던 토빈세를 모든 금융시장으로 확장시킨 아이디어다. 모든 상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대해서 과세가 이루어진다는 원칙이 금융부문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금융거래에 세금이 부과되면 단기적인 금융거래의 규모가 상당한 정도로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금융거래세로 인해 조달되는 막대한 재원의 일정부분을 기후변화 대응, 빈곤국의 발전 등에 할당하자고 주장하면서 이를 로빈후드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변화를 추동할 힘 다양한 금융통제의 요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아탁에서 제안한 네 가지 개혁 요구에 비추어 본다면 다수의 금융통제 요구안이 가장 미시적인 부분인 금융규제 정책 도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G20을 대체하는 새로운 논의 틀 구성, 금융자본의 권력 통제를 위한 근원적 정책 전환, 위기 비용에 대한 책임 부과라는 나머지 과제는 상대화되어 있다. 이 중 하나인 금융자본의 권력 통제를 위한 근원적 정책 전환에는 금융거래세 도입, 거대 금융복합기업 금지, 공기업과 연금 민영화 금지, 분배정책의 전환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었을 때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사회운동단체는 G20이라는 틀에 효과적으로 개입한다는 목적에서, 처음에 제기된 전체적인 변화라는 과제를 상대화하고 G20에서 제기되는 개혁 정책을 좀 더 급진화하거나 금융거래세와 같은 한두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한 이슈파이팅 및 로비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금융정책 개혁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금융자본의 권력을 제어할 수 없다. 각국의 입장이 다르고 금융자본의 권력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정과정에서 정책왜곡이 발생한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는 G20이 스스로 변화를 추진할 리가 없다.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인 평가와 이에 대한 반성에 근거를 둔 포괄적인 방향 전환이 없이는 하나의 정책을 온전히 시행할 수 없다. 따라서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은 스스로의 목표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은 새로운 대중운동의 구성으로 사회변화를 꾀했던 대안세계화운동의 구상에 미달한다. 우리가 금융통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그 자체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쟁점을 매개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대안세계를 향한 운동의 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면적인 금융통제의 요구를 대안세계화 운동의 맥락 하에서 파악해야 한다. G20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당면한 G20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기에서는 민중운동 내의 과제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첫째, G20 투쟁은 무엇보다 우리가 맞고 있는 경제위기와 복합적인 사회적 위기의 현실을 폭로하고 교육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G20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는 이유, G20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라는 관념이 힘을 얻는 이유는 현재의 위기를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일련의 정책 조합으로 사고하고, 이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그러하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정책과 새로운 기술과 탄소거래의 문제로 간주할 때,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새천년개발목표 달성의 문제로 간주할 때 그러한 사고와 실천은 체계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점에서 G20을 계기로 현재의 정세와 관련된 교육과 토론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추구하고, 어떠한 운동을 건설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둘째, G20의 실체에 대한 폭로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각 부문별 과제와 요구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투쟁의 대상은 정확하게 G20과 관련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동원하고 선전하는 것도 바로 G20과 한국의 발전 전망을 결부시키는 데 있다. G20이 망가진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하는 기구라는 점, 진정한 변화를 회피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점, G20에서 한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개도국 입장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지하는 데 있다는 점이 폭로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을 제정하는 등 각종 제도와 엄포를 동원해서 강력한 탄압으로 대중적인 집회를 봉쇄할 것이기 때문에 조직된 대중운동단체의 결의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제에 관해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해야 한다. 셋째, 대안세계화 담론과 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2000년대 대안세계화운동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과 토론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위기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이러한 주장이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G20 투쟁과정에서 대안세계화의 문제의식을 다시 운동의 과제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왜 한미 FTA를 꺼내 들었나 2010년 6월 30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인 3주년이었다. 2006년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통해 한미 FTA 협상 의지를 천명하고 6월에 1차 협상을 시작하여 불과 1년여가 지난 2007년 6월 30일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협정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모두 비준동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국회비준 절차를 진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특히 2008년 12월 18일에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본회의에 단독상정하려 하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실력 저지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한미 FTA 이행을 위해 필요한 국내법 개정 사항을 의회에 통보하고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 FTA의 파급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밟은 것 외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 6월에 들어 갑작스러워 보이는 변화가 발생했다. 2010년 6월 26일 G20 정상회의 중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기에 합의한 직후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한미 FTA와 관련해 새로운 논의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보도가 나오자마자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새로운 논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은 재협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며 “미 의회를 통과하기 위한 부분을 실무적으로 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표현만 바꾼 재협상이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갑자기 한미 FTA가 급진전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을 수정하는 재협상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누차 밝혔다. 따라서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늦추는 대가로 한미 FTA를 다시 협상 테이블에 놓는 빅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반면 오바마 정부가 한미 FTA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당시에 과거에 자신이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반대표를 던졌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했던 적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라는 카드를 집어 들었는가? 여기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미국 경제의 불균형 재심화라는 경제적 조건과 최근 국제쟁점으로 떠오르는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작용했다. 미국경제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불균형 심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대비연율)이 2010년 1/4분기 3.7%에서 2/4분기 2.4%로 하락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대불황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거의 10%에 육박하고 이에 따라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에도 주택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 소득세와 판매세에 의존하는 지방정부의 세입이 감소해 지방정부의 재정난도 악화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 버냉키 의장은 7월 21일 “미국경제가 비정상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면서 경제상황을 경고했고 8월에는 추가적인통화완화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불균형 해소는 계속 난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유로화 약세가 세계경제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0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로화의 급격한 하락으로 유로존 국가가 앞으로 몇 년간 최소한 연간 3,000억 달러의 흑자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유럽 국가가 엄격한 재정정책을 구사함으로써 국내 수요를 억제하면서 유로화의 추가 하락이라는 느슨한 통화정책을 계속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 타임즈>도 유로존 국가들이 결국 경기침체를 수출하는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6년의 8,000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또한 미국경제의 불균형 해소라는 문제에서 가장 큰 쟁점인 중국 위완화의 평가절상 문제도 미국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이 10% 평가절상되면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연간 1,700~2,500억 달러 감축되고 미국의 경상수지도 연간 220억~630억 달러 개선될 것이라면서 위완화 환율조정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5년간 위안화가 그 어느 통화보다도 많이 절상되었고 미국의 무역수지적자는 위안화 환율과는 관련이 없으며 위안화 저평가라는 문제는 미국 국내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다시 심화된다면 미국 달러와 자산에 대한 시장의 공격이라는 위험을 강화시킬 수 있고, 해외자본의 미국 유입은 다시금 금융위기라는 씨앗을 뿌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실업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적자 상승은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따라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오바마 정부가 통상정책에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7월 7일 오바마 대통령은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수출위원회를 조직하면서 향후 5년 내로 수출을 5배 이상 증가시키겠다는 ‘그랜드 플랜’을 제시했다. 즉 수출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지적되는 실업과 민간소비 부진을 극복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의 격화 가능성 오바마 정부의 입장 변화에는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한미동맹에 어떤 작은 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대방은 북한이라기보다는 중국을 뜻할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의 격화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주요 정치외교 사안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해양지배권을 둘러싼 군사경쟁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태도 발생했다. 중국은 2009년 3월 8일 남중국해 하이난 섬 부근 공해상에서 중국 해군 함정 5척을 동원하여 미국의 정보수집 함정 임페커블호의 항해를 방해하며 상당 시간 대치를 했다. 미국은 민간 함정에 대한 공격이라며 거세게 항의를 했고, 중국은 임페커블호가 사실상 간첩선으로 중국에 대한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곳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속하는 곳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미국은 어느 나라 선박이라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국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남중국해가 한국과 일본의 유조선이 중동으로부터 원유를 수송하는 주요 루트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해상패권을 둘러싼 갈등의 화약고가 될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3월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전과 관련된 핵심이해 사안’이라고 미국 정부에 공식통보했다. 그러나 2010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은 아시아 공해상에서의 항해의 자유라는 국가적 이해’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고, 시사군도와 난사군도 영토분쟁을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미중 경쟁은 동아시아 국가 간 외교구도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0년 5월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소장 구안 요우페이는 ‘미국이 전략적 동맹을 이용해 중국을 포위해 견제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라오스, 파키스탄,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적극적인 외교를 벌이면서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 주변국과 협력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전형적인 대중국 봉쇄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중국이 대북 압박이나 제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미국 보수파 중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역할을 재평가해야 한다거나 대중국 정책에 변화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나쁜 경찰, 중국이 좋은 경찰’을 맡는 그림이 연출되면서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새로운 대안처럼 보이는 효과를 향유하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동아시아 문제에 관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새로운 외교구도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6자회담을 폐기하고 미국-남한-일본 3국 동맹을 전면화하자는 제안이 있다. 여기에 호주, 유럽연합, 러시아를 묶어 ‘의지연합’을 형성하여 중국의 안보와 동북아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중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중국을 자극해야 한다,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나 남북 양자 평화협정을 중재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최근 미국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가입을 신청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상당히 다양한 지역협력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 국가는 이를 두고 동상이몽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꿈은 무엇일까. 클린턴 국무장관은 ‘EAS가 정치안보협의체로 발전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즉 지역의 정치안보는 EAS로, 경제협력과 자유무역은 APEC을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서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건재한 위력을 발휘해야 하며 APEC을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한미 FTA가 유력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 한미 FTA의 미래 한미 FTA 조인 후 부시 정부는 법률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협정을 분석하도록 의뢰했다. 분석에 따르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완전히 이행되면 미국의 수출이 연간 100-110억 달러 증가할 것이다(금융서비스, 보험, 항공운송서비스, 통신, 농업부문). 하지만 한미 FTA는 특히 미국의 자동차 생산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지연되었다. 최근 한미 FTA 재협상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처럼 소형 트럭과 스포츠용다목적차량(SUV)에 대한 25%의 관세를 매년 2.5%씩 10년 동안 제거한다는 합의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 재협상에서 이 문제가 한국이나 미국에게 정말로 사활적 쟁점인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그 분야에서 25%라는 높은 관세는 미국 대 프랑스, 서독의 무역분쟁 과정에서 보복조치로 부과된 예외적으로 높은 관세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앞으로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와 유가상승으로 인해 이러한 유형의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한국에서 수출을 위한 투자 인센티브가 높지 않을 것이며 만약 수요가 상승하더라도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는 미국 조립공장에서 미국 노동자를 고용하여 그 부문의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또한 한국 자동차시장의 비관세장벽을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도 있으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수출을 제외하면 미국이 디트로이트나 오하이오처럼 미국 영토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여 해외로 수출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GM대우의 사례처럼 대부분 해외 자회사를 통해 자동차가 생산, 판매된다.) 또한 연구소는 미국 육류 수출업자가 느끼는 현재 수준의 개방도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자동차, 쇠고기 재협상 문제는 실익도 그리 크지 않거나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수준에서 해결하면 될 뿐이고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이 미국에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주장이다. 결국 재협상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자동차, 육류에 대한 개방수준은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미 FTA의 진정한 쟁점은? 한미 FTA는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가 진입한 장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자본의 선택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이라는 형태로 국내고정자본 투자가 감소하고, 초민족 자본의 경제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이른바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산업공동화’, ‘초민족자본 지배’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재벌의 해외투자, 재벌과 은행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강화라는 이중적 양상이 동시에 등장했다.) 곧 한국은 장기침체에 돌입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라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야만 했다. 기존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의 핵심은 노동신축화와 원화 평가절하를 통한 대미수출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신흥경제국과 동일한 방식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기존의 경제전략을 보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였다. 하지만 한미 FTA가 그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나? 불행히도 그것은 심각한 결함을 내장한다. 한미 FTA는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를 가속화함으로써 평가절상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상수지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는 미국의 입장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다시 확대되고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황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이자 미국의 사활적 국익이 걸릴 동아시아 지역을 자유무역지대로 묶기 위한 경제전략이자 군사안보전략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수출확대 전략이 최소한 단기간에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것처럼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 또한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는 한국 자본의 발전전략이 첨예한 경쟁 속에서 위기에 처하자 선택한 카드다. 그러나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심화시킬 결함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니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일종의 비상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선택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해안을 넘지 못할 듯하다.
<요 약> -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동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함. OECD 추계에 따르면 2007년 말부터 2010년 초까지 회원국 실업자가 50% 증가. 2010년 4월 현재 OECD 평균 실업률은 8.7%, 전체 실업자 수는 4억6천5백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동년 말 예상 실업률은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수치. - 대량실업에 직면한 세계 각국은 고용보조금 지원, 공공부문 고용창출, 실업급여, 기타 사회부조 개정을 통한 실직자의 소득 보조 등 고용을 유지·창출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있음. 또 조업시간단축이나 일시해고(layoff)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늘어났으며, 기술훈련과 구직 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실행하고 있음. - 이와 함께 각국 정부는 노동신축화를 위한 각종 정책과 법·제도를 도입하고 있음. 독일은 대량해고 대신 조업시간단축제와 같은 노동시간신축화 방안을 도입함. 일본의 경우, 주로 파견직과 같은 비정규직이 경제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의 집중적인 희생양이 되고 있음. 이탈리아의 경우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임금신축성을 높이는 방안이 노사정 협약으로 체결되었음. 프랑스도 합의해지라는 보다 신축적인 해고 방안을 법제화했고, 영국도 기존의 법안을 개악하여 노동신축화를 강화하는 과정임. - 세계 노동조합의 경제위기 대응 사례를 유럽 노조의 코포러티즘, 미국 노조의 민주당 공조, 남반구 노조의 정치세력화로 유형화하여 살펴봄. · 유럽 노조들은 노사정 협정 또는 노사 협약을 통해 노조가 일정한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대신 정부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코포러티즘을 채택. 노조들은 실업률 증가라는 사회적 비용을 회피하고, 인적자원(장기 고용 숙련 노동자)을 보존하고, 기업의 내부적 신축화라는 목표를 수용. · 미국의 노조들은 오바마의 친노동정책에 대한 지지와 로비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 미국노총(AFL-CIO)과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은 오바마 정부에게 노동자자유선택법(Emplolyment Free Choice Act, EFCA)의 입법과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기대하고 있음. · 북반구 주류 노조운동의 퇴조기에 사회운동 노조주의로 새롭게 주목받은 브라질노총(CUT)과 남아공노총(COSATU)의 최근 경제위기 대응은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음. 브라질노총이 룰라정부의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지하면서 2010년 대선 승리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남아공노총은 좌파 주도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급진적 대안 건설을 주장하고 있음. - 결론적으로, 이 글은 세계 노동조합의 대응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며 한국 노동자운동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함. △실업에 대한 차악의 대안으로서 신축적 안전성 비판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양보교섭의 문제점 비판 △경쟁력 강화를 위한 코포러티즘 비판. 이러한 비판 속에서 노동자 국제주의와 계급적 단결이라는 관점에서 세계 경제위기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방향을 제시함.
안녕하세요. 노동자운동연구소입니다. 6월 이슈 리포트로 한국전자산업현황과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을 만들었습니다. 전자산업 노동자 문제는 최근 대만계 전자업체인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13명의 노동자가 자살하며 세계적 이슈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삼성 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구로 반월 시화 구미 등 전자 산업 밀집 공단의 노동 조건도 심각한 상황인데, 노동자 수로만 보면 자동차 중공업 등의 금속 노동자보다도 많지만, 자본의 필사적인 노동탄압으로 산업 내 노동권 문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는 한국 노동자 운동에게 매우 중요한 해결 과제입니다. 특히 제조업 산별 노조로 발전하고자 하는 금속노조의 경우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전자 산업 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우회하고는 양적 질적 발전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 보고서에서는 한국 전자 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 노동자운동이 전자 산업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과제를 알아봅니다. 주요 내용 - 전자산업의 생산 방식 - 한국 전자 산업의 노동자 - 전자산업 노동자 조직화 방안
세계경제 국가채무의 부도사례가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 주는 시사점 세계정세 한미 FTA 한국경제 민선5기 지방재정 건전화 5대과제 한국정세 지자체 지방재정 위기(성남시 채무지급유예) 박근혜표 복지 노동 총연맹 – 민주노총, 7월 투쟁사업 계획 수립 – 타임오프제 분쇄 및 노동탄압 분쇄 산별연맹(노조) 투쟁 계획 – 민주노총 부위원장 실업급여 부정수급 관련 여성 <여성과 금융위기>(실비아 월비)_본문 주요내용 요약과 노조페미니즘 팀 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