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가 제작한 소책자 '핵안보정상회의 10문 10답'-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론. 우리는 왜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가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 궁금한 것 10가지 1. 핵안보정상회의란 무엇인가요? 2. 핵안보란 무엇인가요? 3. 핵 테러 예방은 좋은 것 아닌가요? 4.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한 '핵 없는 세상'은 꼭 필요한 것 아닌가요? 5. 핵발전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것 아닌가요? 6. 한국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요? 7. 핵안보정상회의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8. 원자력 인더스트리 서밋은 무엇인가요? 9. 핵발전소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않나요? 10.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주장해야 할까요? 자료 1.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해외 단체, 활동가들의 입장 2. 핵안보 관련 주요 협약 및 문서 함께 합시다!
2012년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심화하고 한반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력이 재편되는 격동의 시기다. 이 글은 민중운동 계획 수립의 기초로서 정세의 객관적 요소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선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위기의 전개 양상을 전망한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대외·통상 전략의 전환과 한미동맹 강화, 북한 체제의 변화를 주축으로 동북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균형을 검토한다. 이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면서 정부의 정책기조와 경제위기 대응을 비판한다. 아울러 정부 여당의 레임덕 이후 정치 지형을 분석하면서 총선·대선의 구도와 쟁점을 파악한다. 끝으로 민중운동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세계 경제의 위기 가능성 증대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장기적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추세다. 중기적 원인은 1970년대의 ‘징후적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금융세계화와 이중적자다. 이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 자본생산성 및 이윤율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대완화’가 발생하지만, 결국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가 이번 금융위기의 단기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7-09년 금융위기는 실물경기의 침체로 파급되면서 성장 및 고용·임금의 후퇴를 낳았다. 금융위기가 은행위기를 거쳐 대불황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취한 통화·재정정책의 결과로 2009-11년에는 세계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주변부에서 발발한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염되면서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핵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미국도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켰지만, 그 후과로 2011년 들어 재정위기 위험이 제기되며 2012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2012년 세계 경제 전망을 위해,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을 차례로 검토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심화·확산 2009-11년 유럽 재정위기는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누증한 결과다. 그 구조적 요인은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으로서 유럽연합(EU)의 태생적 결함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신보수주의적 통화정책에 있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자본수입과 무역적자가 구조화된 주변국(PIIGS)에서 먼저 재정위기가 가시화됐다. 2010년 5월 그리스, 11월 아일랜드, 2011년 4월 포르투갈이 차례로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EU와 각국 정부의 대응은 역내 불균형과 유로 단일통화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해결하는 원인요법이 아니라 구제금융-긴축재정과 같은 대증요법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2011년 6월에 그리스가 다시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7월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우려가 고조됐다. 이에 따라 7월 유로존 정상들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증액 및 역할 확대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방안에 합의했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 그리스 위기가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월에 EU 정상들은 민간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무조정, EFSF 레버리지 확대, 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 등 ‘질서있는 디폴트’ 방안을 추가로 합의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월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며 위기가 고조되자 결국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경제안정화법안 통과 직후 사임했다. 차기 총리로 선임된 마리오 몬티는 재무장관을 겸임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해 들어 내내 경제성장률이 제로 수준에 머물렀던 스페인도 11월 들어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11월 초 프랑스 깐느 G20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방안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남부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현재 은행체계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 등 중심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국과 강한 금융 연계를 맺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위험노출이 커지면서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도 덩달아 강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유럽의 재정위기가 중심부로 전이되고 나아가 유로화와 EU 자체의 위기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ECB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고 유로본드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주요국 간 이견으로 실행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독일은 ECB의 독립성, EU 조약 위배 등을 이유로 ECB의 역할 확대를 반대하는 동시에 재정부담을 이유로 유로본드 도입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ECB의 역할 확대를 찬성하는 반면 유로본드 도입은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12월 초 EU 정상회의에서는 새로운 재정 협약을 도입하고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강화하는 방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일각에서 해석하듯 재정통합의 진전이 아니라 사후적인 재정규율 강화에 불과하다. ECB도 정책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 조치 외에 장기자금공급조작(LTRO) 등 단기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비전통적 조치를 병행 실시했지만, 그러나 또다시 이탈리아 국채금리가 재정위기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7%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향후 유럽 재정위기는 다음과 같은 불안 요인을 안고 있다. 첫째, 역내 3-4위 경제권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우 2012년 중 대규모 국채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현재 EFSF와 IMF의 가용재원을 고려할 때 이들의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둘째,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이미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국가들도 대대적인 긴축에도 불구하고 채무상환 능력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있는 그리스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고, 아일랜드도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셋째, 각국의 정치적 사정으로 새로운 재정협약 체결이 지연되거나 안정화 수단의 실효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상당하다(2월 그리스 총선, 3월 슬로바키아 총선, 4-5월 프랑스 대선, 독일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 등). 넷째, 이런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있다(특히 2012-13년 중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50%를 상회하는데, 이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의 보증에 크게 의존하는 EFSF의 신용등급도 강등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유로존 은행들이 2012년 6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실물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여섯째, 앞으로 발표될 위기 대응책이 미흡할 경우 EU 중심국으로 위기가 전염되면서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재정통합과 같은 근본적 해법이 제시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이상을 종합할 때, 유럽 재정위기는 임시방편을 통해 일시적으로 진정되다가 다시 악화되는 악순환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하거나 심지어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 교역의 1/4, 생산의 1/5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세계경제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재정위기와 은행위기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럽 은행들이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할 경우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 10%, 외국인투자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의 위기가 심화·확산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2007-09년 금융위기에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은행이 파산하고 증시가 붕괴함으로써 경기침체가 대불황으로 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구제금융 및 적자재정정책,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수량완화정책을 구사했다. 하지만 정책 당국의 대응은 인수합병과 겸업화, 즉 금융해방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게다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적 금융뿐만 아니라 공적 금융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즉,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의 결과로 정부 부채가 급증하고 연준 대차대조표가 비정상화된 것이다. 국가의 지불능력이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므로, 만일 공적 금융의 위기, 즉 재정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채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국채가 5조 달러 가량 증가하여 2011년 초 국민소득 대비 국채 비중이 100%에 근접했다. 급기야 2011년 5월 말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법정 한도를 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수량완화 정책이 종료된 2011년 6월 미 정부와 연준은 당초의 예상과 달리 출구전략이 아니라 경기둔화를 공식 발표했다. 2011년 상반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는 동시에 고용과 주택지표가 장기간에 걸쳐 저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었다. 재정위기 우려 속에서 미 의회는 연방정부의 ‘기술적 디폴트’ 시한을 며칠 앞둔 7월 말 국채 상한을 2.4조 달러 증액하고, 대신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2.4조 달러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단순히 국채 상한이 문제가 아니라 재정정책의 지속 불가능성이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재정적자의 대부분을 감축하는 주체가 현 정부가 아니라 차기 정부인 데다가 재정적자를 감축시키기 위해 조세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정지출을 감소시킨다는 문제도 있었다. 2011-12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3%, 2%, 1%, 0%라고 가정하면 국채 비중은 108%, 111%, 113%, 11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8월 세계 금융시장은 폭락을 경험했다. 그러나 연준은 기대와 달리 3차 수량완화정책을 발표하지는 않고 대신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의 원금을 재투자할 것이고 또 대차대조표의 규모와 구성을 적절하게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함으로써 3차 수량완화정책을 어느 정도 암시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초 오바마 대통령은 4,470억 달러의 감세와 재정지출로 구성되는 3차 적자재정 정책, 즉 미국일자리법안(AJA)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재 의회의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1년 하반기 연준은 2011-13년 성장률 및 실업률 전망치를 상반기 예상에 비해 하향조정한 상태다. 실물경기 회복세가 둔화됨에 따라, 특히 장기에 걸쳐 고용상황의 개선이 미흡하고 주택시장 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2012년 미국경제의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2011년 말에 발표된 제조업·고용·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일시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요인들이 다수 존재하여 경기회복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용율과 실업률이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실업자 비중이 사상 최고치에 이르는 등 구조적 실업이 심화하고 있다. 이는 소득과 소비 감소로 이어지면서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주택경기 역시 다소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 속도가 느려 여전히 침체상태에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역의 자산효과를 가져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건설업 고용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1월 미 의회 슈퍼위원회의 긴축재정안 합의 실패에 이어 향후에도 경기부양책 및 재정건전화 방안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또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확산되는 것도 주요한 경기하방 요인이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유럽 위기국에 대한 직접 위험노출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간접 위험노출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위기국의 신용 하락 시 전염이 불가피하다. 2012년 경기침체의 징후가 보다 분명해지면 미국 정부의 3차 적자재정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연준의 정책수단으로서 3차 수량완화정책이 구사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자재정정책과 수량완화정책은 실물경제에 대한 효과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회복 지연과 재정건전성 악화, 그리고 유럽 재정위기와 부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금융연계와 무역연계를 통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이 미칠 것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와 금융연계가 강한 한국 경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 중국 경제도 2011년 성장세가 다소 둔화된 가운데 내외부 위험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최대 수출지역인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와 경기회복세 약화로 수출 증가율이 큰 폭으로 둔화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 둔화, 기업수익성 악화 등으로 기업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비은행권 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은행권의 대출부실이 확산되어 대출축소로 이어질 경우 부동산 시장 추가 하락, 중소기업 자금경색 심화 등 악순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부진 등으로 지방정부의 세입이 줄어들면서 상당수의 지방정부가 재정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이 과도한 수준에 있어 급격한 투자 축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비은행권 부실이 폭발하거나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하거나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잠재적 위험 요인들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일부 요인들이 불거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밀접하게 연관된 각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파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중국은 저임금 기반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 공급사슬에서 최종공급자로 기능하는 한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국외에 투자하는 최종대부자로 기능하면서 과거 세계 경제위기 시 안전판 역할을 담당했는데, 오히려 현재는 중국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의 또 다른 원천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반도 불안정성의 고조 유럽의 위기와 대조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확대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처한 미국에 사활적인 과제다. 미국으로서는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금융과 함께 이른바 지식기반경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비즈니스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출주도 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로 대두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역내 안보 불안도 미국의 아시아 재관여의 빌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대외 전략의 무게중심을 유럽이나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옮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상태다. 게다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위해 공세적인 아시아 전략을 펼쳐야 할 국내 정치적 요인도 결부되어 있다. 현재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갈등이 조정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인 갈등이 확대되는 형세에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효과로서 이중적자의 확대, 즉 재정적자와 함께 무역적자가 누증하는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최대 무역적자 상대국인 중국에 평가절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현재 위안화는 최소한 20% 평가절하되어 있다. 이로써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실업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달러화는 중국을 비롯한 수출지향국의 통화가 평가절하됨에 따라 10-20% 평가절상되어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경우 대외부채가 대폭 개선되고 국내에서 다량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미국은 2011년 5월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개최하여 위안화 절상을 요구한 데 이어 10월에는 환율조작국 제재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상태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나 자신의 구상에 동의하는 동맹국들의 ‘의지연합’을 활용하여 환율 분쟁 상대국에 대해 보다 강경한 정책을 구사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미중 관계에서 안보 문제 협력을 이유로 환율 문제와 같은 경제적 이슈에서 국익을 희생해서 안 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2011년 10월 한미 FTA 의회 비준을 발판삼아, 11월 연이어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아시아 관여 의지를 적극 드러냈다. APEC에서 일본이 환태평양경제파트너십(TPP) 협상에 참여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이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폐쇄적 지역주의’, 즉 아시아 역내 국가 간에 체결되는 FTA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대신 한미 FTA나 TPP처럼 자신이 관여하는 무역투자 협정을 ‘개방적 지역주의’ 전략을 관철하는 교두보로 사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흥국 금융서비스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 FTA나 TPP와 같은 ‘21세기 무역협정’이 종국적으로 FTAAP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통상 전략은 곧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신 아시아 정책 구상’에서 ‘아시아와 미국은 태평양에 의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묶여있다’면서, 적극적인 개입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구상은 최근 미국이 발표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미국은 ‘대 아시아 수출이 자국 경제의 결정적 활로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재정감축 방안에 따라 국방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1월 EAS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확인했다. 또 미국은 호주에 미군을 장기 배치하기로 함으로써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에 대한 안보 우산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한미동맹의 강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여기에 적극 조응하여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FTAAP 구상의 시발점으로서 한미 FTA가 비준된 것과 함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되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한미 FTA 비준으로 ‘한미동맹은 정치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이 더해져 다원적포괄적 동맹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한다. 군사 안보에서 ‘평화와 안정의 축’과 경제협력에서 ‘번영과 발전의 축’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한미관계가 운영되고 발전하는 새로운 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통상 주도권을 둘러싼 각축전과 금융무역 자유화 물결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국은 한미동맹 기조 하에서 ‘글로벌/역내 파트너십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TPP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이미 FTA를 체결했거나 아니면 협상 중에 있다. 정부는 ‘한국의 경제 자체가 개방을 지향하여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한중 또는 한중일] FTA든 TPP든 그 어느 한 쪽에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그 다음 수순으로 미국이 한국에 TPP 참가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TPP의 기본형으로 기존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 4개국이 체결한 TPP4가 아니라 한미 FTA를 강조한다는 점은 TPP와 한미 FTA가 미국에 별개로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을 방증한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ASEAN과의 FTA를 강화하면서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한중 FTA나 한중일 FTA 체결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TPP에 일본이 참가하는 반면 중국이 불참하는 것을 두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사실 중국이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금융 및 서비스 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하므로, 이는 현재 중국의 경제구조 상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향후 추이를 지켜보면서 한일 FTA 체결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미군 제7사령부로 편제되는 한국사령부는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국 육해공군 전체의 작전을 통제하게 되고, 한국사령부가 위치할 평택은 동북아 허브기지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역내 미군 재편 계획에 따라 향후 미국은 주둔군 비용분담 요구를 강력히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전체 비용 가운데 약 40%가량을 부담하고 있는데, 미국이 조만간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분담비율을 50% 수준으로 높이고 평택기지 이전에 소요되는 자국 부담을 여기서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은 미국의 후원 아래 2012년 3월 서울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할 예정인데, 이것이 미국의 북핵 관리 전략에 조응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미국은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발표하여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개방한 뒤, 북한과 이란을 제외한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여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 미국 오마바 정부는 북한 핵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핵위협 청산을 핵 포기 조건으로 제시하며 2009년 이후 공세의 수위를 계속해서 높였다(광명성2호 발사, 6자회담 불참 및 기존합의 파기, 영변핵발전소 불능화 취소 및 원상복구 방침 발표, 2차 핵실험 등). 그러나 미국은 적극적 개입 대신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정성을 보이거나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선의의 무시’, ‘전략적 인내’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보상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을 약화시켜 자신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무시와 인내가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시켜 도발 수위가 점점 높아지게 되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단계로 불안정성이 고조될 위험도 있었다. 결국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태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공개 이후 미국은 대북정책을 다소 수정했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은 국내 여론과 북한의 추가적 도발을 관리할 목적으로 대화를 재개했다. 이후 6자회담 참가국 간의 대화가 폭넓게 진행됐지만, 북핵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미국과의 핵군축 회담을 상정하는 북한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남한은 남북비핵화회담을 개최하여 천안함, 연평도 문제(군사문제)와 6자회담(비핵화문제) 간의 분리 대응을 추진하고 인도주의적 지원 및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재개 의사를 내비쳤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한 사전 조치에 동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 이행 의지 확인, 핵과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중국은 북핵의 안정적 관리를 기조로 삼으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제재와 일정한 선을 그어왔다. 따라서 2012년에도 남북관계가 부분적으로 개선되거나 6자회담이 재개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상황 변화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일단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순조롭게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고, 상당 기간 동안 내부 정치적 안정화에 주력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인정한 것도 안정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이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므로 북미 관계는 한동안 교착 상태에 머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이 공세적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 한국 경제는 1997-98년 경제위기·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상황에서 금융자유화와 구조조정·평가절하와 같은 수출-재벌 주도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만성적인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는 주요 원인은 생산적 투자의 지표인 자본축적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하락·정체된 것에 있다. 이는 이윤율 하락이라는 기본 요인에 더해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 인수합병(M&A) 중심의 투자행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금융자유화에 따라 신흥시장으로 변모한 한국 경제는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와 국부유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와 같은 문제가 일상화되었다.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로, 성장 유발 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변동성이 커서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외국인 직접투자 기업도 저임금·비정규직 활용에 의존하고 있어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노동력 신축화와 수출-재벌 구조의 강화로 귀결됐다.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급상승하였고 국내 산업구조가 국제적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재벌의 지배력도 급상승했다. 그러나 국외 생산의 확대로 기업 내 교역이 증가하고, 또 부품?소재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소재 및 조립가공 제품을 중심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출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완제품 수출 대기업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하는 반면 원자재와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수출-재벌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소득 및 고용이 호전되지 않는다. 그런데 금융자유화에 따라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평가절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에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 무역흑자나 환율하락(평가절상)이 한국 경제의 생산력·기술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제조업은 2000년대 이후 기술경쟁력보다는 주로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하여 무역흑자를 시현해 왔으며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일례로, 한국은 대중 무역흑자를 대일 무역적자가 상쇄하는 무역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대일 무역적자는 주로 기술경쟁력의 열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첨단 부품·소재 산업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한 반면 중국도 저임금 위주의 가공무역에서 탈피하고 있어, 가격경쟁력 우위에 기초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역대 정부는 FTA 전략을 추진했다.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FTA가 한국 경제의 모순과 위기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한편 수출-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이 낳은 폐해를 감안하여 내외수 균형성장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역대 정부들은 제조업의 성장 및 고용 창출력 저하와 대외의존도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내외수 균형성장 방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여기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란 비즈니스서비스 부문을 특화하는 반면 유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부문을 부차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숙련 지식기반 부문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골드 칼라가 육성되는 것 외에는 고용 창출 효과도 미미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더라도 비즈니스서비스에 종속된 저임금·비정규 노동이 주종을 이룰 뿐이다. 심지어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정부는 수익성 있는 공공부문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여 개방과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때 FTA는 서비스시장 개방을 촉진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또한 최근 이명박 정부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전략으로 제기한 이윤공유제는, 물론 노자 간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윤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지로, 1948년 제헌헌법에서 규정되고 1962년 폐지된 ‘이익균점권’에 미달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기업의 반발과 정부 부처 내의 이견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자유화와 수출-재벌 주도 성장전략,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FTA 전략은 투자활성화와 수출경쟁력을 위해 노동력을 신축화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또 대외 의존을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국민경제를 세계 경제위기의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2007-09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환율 및 주가 변동폭과 실질임금 삭감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중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의 원인을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 정서로 꼽으며 △법인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친 재벌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또 ‘버블 세븐’ 지역을 비롯한 부동산 소유주의 이해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뉴타운 개발’과 같은 공급 확대를 통한 해결이라는 논리로 투기 붐을 다시 자극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서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을 심화하였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집권 5년(2012년 전망치 포함) 경제성장 실적을 단순 평균하면 3.1%에 불과하다. 이는 자신의 공약이었던 7%는 물론이거니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토록 비판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적(각각 5.0%, 4.3%)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둘째, 성장 부진에 따라 고용도 악화되었다. 공식 실업률은 세계적으로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고용률도 크게 낮아져 실업과 비경제활동인구의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잠재실업자군(실망실업자·경계근로자·취업준비자)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잠재실업자와 불완전취업자(부분실업)를 포함하는 확장실업률은 공식실업률의 2-3배에 달하는 8-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 경기변동에 따른 실업자 변동폭은 취업자 변동폭에 비해 현저하게 적게 나타나는데, 이는 일자리 감소시 실직자의 일부만이 공식실업으로 포착되고 다른 일부는 불완전취업 및 잠재실업의 형태로 노동시장에 잠복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동일한 노동력 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이 크게 낮아져 경제위기를 전후로 고용불안이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 취약계층의 고용이 집중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인적으로는 여성과 청년, 일자리별로는 건설업·도소매업·서비스직·단순노무직, 5인 미만 영세소기업, 자영업과 일용직 등에서 취업 감소가 현저했다. 셋째, 명목임금인상률에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인상률도 대폭 악화되었다(2007년 3.0%, 2008년 -8.5%, 2009년 -0.1%, 2010년 3.8%, 2011년 -3.5%). 이명박 정부 임기를 제외하면,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 실질임금인상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IMF 직후인 1998년(-9.3%)이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현 정부 하에서 임금인상이 얼마나 억제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2007년 56.7%에서 2010년 52.5%까지 하락했다. 넷째, 조세 감면, 규제 완화, 개발 확대를 통해 건설 및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발상은 용산 참사와 4대강 개발로 상징되는 거대한 재앙을 낳았다. 투기 수요를 부추겨 주택 매매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전세난을 야기했으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가 반토막난 반면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는 서민용 주거가 대량 멸실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부채로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가계부채 용도는 주택 구입용 50%, 생계 유지용 30%, 사업자금 마련용 20%다). 다섯째, 이명박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와 같은 우파적 교리를 가미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이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정됐다.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며,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친서민 중도 실용 정책’을 2009년 국정운용 기조로 밝혔다. 이어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하자 집권 후반부를 위한 국정철학으로 ‘공정사회’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2011년에는 ‘공생발전’으로 전환하며 부자감세 정책을 일부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민생 악화라는 조건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은 야권의 민생-복지 프레임에 치명적 약점으로 노출되었다. 급기야 2011년 하반기 총대선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며 레임덕이 가시화되었다.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 이렇듯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폐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2012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영향으로 수출이 둔화하고 자본유출입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세계 경제위기로 전통적으로 수출을 주도했던 철강·자동차·조선·기계·석유화학·정보통신 등 주력산업 분야에서 수출이 둔화하고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은 물론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올렸던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도 체감경기가 급랭하고 있다. 조선·철강 업종의 경우 부도·구조조정·감원 가능성이 크고 건설·저축은행 등 취약 업종에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높고 유럽·미국으로부터 유입된 자금규모가 커서 이들 국가의 불안이 계속된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국제유가는 선진국의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수요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중동 산유국의 지정학적 위험으로 공급이 축소되면서 2012년 중에도 2011년에 이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가는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생산과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1997년 구조적 위기 이후 성장률이 하락하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잠재력마저 축소된 상황에서 지난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해지며 장기 성장 추세가 재차 하락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 결과 고용 부진, 실질임금 감소,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노동자 대중의 삶과 직결된 경제지표가 금융위기 이후 현저히 악화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최근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가 급격히 둔화될 경우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였다. 선거를 의식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없을 것이라는 예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 상반기 중 예산을 대부분 집행하고 위기가 가시화될 경우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과 노동신축화 법제화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정책 기조도 ‘일하는 복지와 맞춤형 복지 강화’로 유지되고 있다(참고로, 내년도 복지 증가분 5.6조 원 중 의무지출을 제외한 재량지출 증가 몫은 1조 원인데, 여기서 사실상 복지지출로 보기 어려운 주택 부문 증가분 9천억 원을 제외하면 실제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작동하는 재량지출 증가분은 1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제1차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FTA를 더욱 확대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며 “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국가간 장벽이 희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2011년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 등 대외 부문에서 큰 성과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GDP 대비 교역규모가 100%를 상회하고, 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외부문이 물가 안정, 성장 견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2년 대외 경제정책에 더욱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보다 공세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경제상황 악화 및 고용조정 등에 따른 불안요인에 대처하기 위해 ‘일할 기회의 부족’과 ‘일하는 사람들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청년 일할 기회 늘리기’, ‘내일 희망 일터 만들기’, ‘상생의 일자리 가꾸기’를 3대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고용대책은 실상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일자리 나누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의 노동신축화 정책은 정리해고제와 같은 고용량의 신축화와 파견제·기간제와 같은 고용형태의 신축화를 거쳐, 이제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피를 쓴 시간제를 통해 임금 및 노동시간 신축화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청년실업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 ‘미스매칭 해소’란 대학 구조조정과 생색내기 식 고졸자 취업 확대를 통해 노동력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9월 수립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불합리한 차별해소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추진을 명목으로 업무 재편, 직무·성과 연동 임금체계로의 개편,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정부가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을 막고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진한 시간제 노동의 경우 실상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 가정 양립’과 일자리 창출 시간제법안은 애초 노동시간과 임금을 신축화하여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 위기와 총대선 지형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과 각종 실정·부패로 집권 하반기 레임덕에 빠진 상태다. 민주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전 집권세력은 위기의 책임을 현 정부 여당에게 전가하는 인민주의적 정치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반복,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현재 반한나라당-비민주당을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의 레임덕 대선을 1년 앞둔 2011년 12월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 대 중반으로 하락하고 한나라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정체되어 있다. 2007년 대선에서 2위와 무려 20% 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두고 2008년 총선에서 여유있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부 여당이 불과 3-4년만에 위기에 처한 원인은 무엇인가? 반민주적·억압적 통치 스타일과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명박-한나라당의 ‘747 공약’과 ‘뉴타운 공약’과 같은 장밋빛 경제성장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했다는 사실을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무능하고 불안한’ 진보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민주화’ 담론을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에 후속하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예의 수출-재벌 주도 성장 전략을 더욱 강화하였지만 이는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과 위기를 심화할 뿐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경험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집권당 또는 다수당의 이념·노선과 무관하게 ‘현직의 실패’가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을 사상하고 선거 주기만 고려한다면, 대선 뒤 1년 이내에 실시되는 ‘신혼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고 차기 대선 전 1년 이내에 실시되는 ‘황혼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재편을 단행한 상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의 후과와 선거 개입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가 터지며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한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권을 행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비대위는 정책적으로는 복지 공약을 보강하면서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조직적으로는 외부 인사 영입, 개방형 국민경선제 등의 방안을 도입하여 재창당 수준의 인적 쇄신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확실한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당내 친박계를 제외한 여타 계파의 원심력이 확대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계파 간 이해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내부 분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권력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10% 대 초반을 기록한 것과 비교한다면 현 정부 여당의 경우 핵심 지지층의 결속력이 최소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지도가 2011년 하반기 ‘안철수 돌풍’에 밀려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여전히 다자 구도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반정권 야권연대에 의존하는 이유가 된다. 민주통합당의 반정권 공세 민주당은 12월 (‘혁신과 통합’의 후신인)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으로 재편하였다. 동시에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범야권공조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면 총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구상 하에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주요 정책적 조직적 특징을 검토해보자.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실현(재벌대기업 개혁 등)과 보편적 복지(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주거복지, 일자리복지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본 노선으로 제시했다. 통합 정당 내에 전국노동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하고 ‘당권은 당원에게 있다’는 당원 주권 조항을 삭제한 것도 특기 사항이다. 이러한 노선은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주축으로 하는 ‘뉴민주당 플랜’에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의 요구를 절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민주당이 이전에 비해 진보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이후 복지 논쟁 구도는 누가 더 복지를 잘 공급할 수 있는가라는 전문가주의적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노동 의제를 부각시키며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제시하는 개혁 의제의 폭과 수위는 대단히 협소할 것이다. 2011년 상반기 민주노총이 민주당과의 공동 입법발의와 한국노총 공조를 염두에 두고 꾸린 ‘노동대책 및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위한 야5당-민주노총 회의’에서 민주당은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손댄 부분(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만 다시 약간 손질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민주당에 합류한 한국노총이 최근 ‘파견전임자 임금을 지원받기 위해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한 투쟁 전선의 교란 요소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 사안에서 민주당이 제시하는 방안이란 것도 실상은 노동신축화를 전제한 상황에서 일부 부작용과 문제점을 보완하는 ‘신축적 안전성’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 민주통합당의 출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당의 조직적 특성은 정당 밖 운동조직의 지지와 인적 구성에 의존하는 ‘수평적 조직화’로 특징지어진다. (1987년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그 기원을 두는 이들은, 이후 신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으로 변모하며 14대(1992년), 15대(1996년), 16대(2000년) 총선에서 외부 인사를 각각 63%, 47%, 50% 공천하였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외부 영입 공천 비율은 35%에 불과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68%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관계·학계·법조계 등 전문가집단이었다.) 외부 인사 공천은 정당의 정체성보다는 당선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후보들의 개별적 인지도나 지지도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다. 정당 외부 전문가들의 참여와 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선거승리와 유권자 전반의 동원에 주력하는 민주당은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또한 인터넷 등의 매체 발달과 더불어 선거과정의 기술적 발전이 촉진되면서 민주당은 선거전문가정당으로 재빨리 변모하였다. 일반적으로 선거전문가정당은 당원 중심의 수직적 연계가 약화되는 대신 광범위한 유권자의 여론에 호소한다. 정당 내부의 지도력보다는 개인적 지도력과 대중적 대표성이 강조된다. 재원조달 방안도 당비보다는 이익집단이나 국가보조금 같은 공공자금에 의한 재정확보가 중요시된다. 이념보다는 개별 이슈나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에 강조점이 놓이고, 조직 내에서도 직업적 전문가들과 이익집단 대표들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에는 정치 토크 콘서트와 인터넷 라디오방송, SNS 등 다양한 신기술과 매체를 통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향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전문가정당으로의 변모는 선거승리에도 유리하지만 선거패배에도 취약하다. 2007년 대선 및 2008년 총선을 각각 1년, 1년 반 앞둔 시점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공히 1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으로 현역 의원을 소속 정당에 잔류하게 할 유인은 정당이 갖는 자원, 즉 정당의 고정 지지층과 선거 시기 정당의 인적·물적 지원이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집권당의 이미지를 탈각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한편 집단으로 탈당하여 중앙당의 지원과 국고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적실정당’(원내교섭단체)을 결성하였다. 그 결과 2007년 열린우리당은 이념·노선의 전환 없이 단순한 조직 전환만 빈번해지는 무수한 이합집산을 반복해야 했다. 이상은 민주통합당의 이념적·조직적 토대가 대단히 부실하고 지지층의 휘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 위기와 안철수 돌풍 민주통합당으로 결집한 이전 집권세력들은 ‘이념·노선·정파를 초월하여 한나라당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다면 민생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식의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 여당의 거듭되는 실정으로 인한 반사 효과와 통합 효과로 인해 민주통합당은 창당 직후 여론조사에서 기존 민주당에 비해 약 10% 포인트 지지율이 상승하며 한나라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들은 2010년 이후 그 위력이 거듭 확인된 야권 단일화 선거기법을 발전시켜 정계개편과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30%) 외에 당원과 일반 시민의 모바일/인터넷 투표(70%)를 반영하고, 총선 공천도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로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지만 최근 지역경기 부진으로 여론이 악화된 부산·경남에서 주요 친노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예정이다. 이들은 부상·경남 지역 총선 승리를 통해 전국정당화와 과반의석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차기 대권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구상이 실패할 경우, ‘안철수 카드’가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현재 양대 정당의 본격적인 선거 체제로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이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 현재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집단은 이른바 2040 세대로서, 이들은 냉전의 유산과 지역주의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만 취업난·가계부채·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세대다. 그런데 ‘안철수 돌풍’은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철수 돌풍’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 정치의 이념적·조직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안철수 원장이 ‘정치의 본질은 행정’이라고 언급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정치 위기의 중요한 증후 중 하나는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이자 집단적 운동으로서 정치가 행정이나 치안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일단 안철수 원장이 단호하게 신당 창당설을 부인함에 따라 총선은 현재 구도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당론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등장할 경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지세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다는 결과가 있다. 또 안철수 돌풍은 위력적인데 반해 기존 지배 정당의 리더십은 대단히 취약해서 과거 3김 ‘보스정치’ 시대와 달리 안철수 원장을 영입할 장악력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정치권 엘리트들도 안철수 돌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가 직접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랬듯이 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민중운동과 총대선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대선 국면을 겨냥한 단기적 구상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모토로 창당한 민주노동당과 ‘노무현의 삶과 참여정부 계승’을 목표로 창당한 국민참여당, ‘비국민참여당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다 끝내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가 이념과 역사의 차이를 무시하고 통합에 합의하였다. 2011년 진행된 진보정당 통합 논의는 군소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생존이라는 목적에서 제기된 측면이 컸기 때문에 대중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이념·노선·전략에 대한 논의가 부차화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 주류세력의 경우,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통해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와 ‘연립정부 참여’를 목표로 설정하면서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였다. 통합진보당은 5대 비전으로 △나라의 주권 확립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 △녹색생태 사회 건설 △한국정치 개혁 등 대단히 절충적이고 모호한 내용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원내교섭단체로 발돋움한 뒤 보수-개혁-진보의 3정립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 지지도가 두 자릿수로 상승했다가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다시 과거 민주노동당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신생정당으로서 당의 홍보 부족과 민주통합당 통합 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여 총선 선거연합에서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애초의 구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도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이 이념·노선을 대폭 우경화하고 민주통합당이 진보적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양당의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지지층이 당선 가능한 정당을 지지할 경우 통합진보당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도 당의 대중적 토대를 확장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수권정당으로서 당의 위상을 제고하고 그 힘에 기초하여 노동조합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자는 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우선 민주노총 주류가 구 민주노동당의 당론에 보조를 맞추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 운동 전반의 무기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확정된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노동 의제 전면화를 위해 과반의석 확보를 제시하고 있다. 현실에서 이는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선거연합이라는 정치적 수단이 민주노총의 투쟁 목표를 희석 또는 변질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기 성과와 실리에 매몰된 선거방침이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이를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정치방침을 역으로 규정하여, 일순간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직간접적 지지를 정당화하는 역설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노총이 설정한 핵심 의제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통합진보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 주류가 총선과 대선에서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연립정부 구성에 몰두할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면적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계급타협 속에서 이러한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침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이념 및 노선의 우경화와 선거정치의 빌미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현 정세에서 통합진보당이 만에 하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이는 그로 표상되는 민중운동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책임을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면 이는 향후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미국식 자유주의(당)-노동자운동 공조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의 건설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이 야권 단일화 프레임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총대선 국면에서 범야권의 일부로 흡수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민중운동의 대응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서 2012년 민중운동의 투쟁 방향을 도출해보자. 첫째, 2012년 세계경제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 고조와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 중국의 경착륙 위험 등으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경제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연계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로서,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갖는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정권 말기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여당이 복지 공약을 강화하고 정부가 감세정책을 일부 철회했지만, 재벌주도 성장 및 노동력 관리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은 중기적으로 재정건전화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과 노동신축화 법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은 긴축경영 기조 속에 임금을 억제하고 고용을 축소하면서 노동자에게 위기 비용을 전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운동은 거시적 수준에서 금융자유화와 노동신축화를 주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전면 비판해야 한다. △한미 FTA를 필두로 하는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 비판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비롯하여 금융거품과 부실을 양산하는 금융자유화 조치 반대 △국가고용전략 2020 이후 제출되고 있는 각종 노동신축화 법제 반대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현행 노조법의 전면 개정 등이 당면 주요 과제다. 둘째, 미국은 경상적자 해소책으로 중국 등 신흥국의 환율유연성 제고와 자국의 서비스산업 수출 주도 정책 전환을 강조하며 한미 FTA 이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G2)를 통해 이해관계가 조정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잠재적인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최근 미국의 ‘태평양 세기’ 구상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수정과 전력 증강으로 귀결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한층 고조된 한반도에서는 북한 체제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당분간 조정 국면을 맞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미의 북핵 포기 전략이 유지되고 2012년 강성대국 원년과 체제 교체를 맞는 북한의 공세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중운동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한다는 점을 명확히 폭로하면서 반전평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 비판 △평택 미군기지,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한 주둔미군 재배치 계획에 대한 비판 △한국의 전력 증강 사업 비판 등이 주요 과제다. 셋째, 고용·임금과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총노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제기하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은 실상 노동시간을 신축화하여 단시간·저임금·비정규 노동을 양산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의 본질을 정확히 비판하면서, 이전부터 금속노조가 주장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야간노동철폐 투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실질임금 하락폭이 컸고 올해 선거라는 정치 일정도 있어서 임금인상 요구 관철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교섭력이 취약한 부문은 경제위기 여파가 커질 경우 여전히 실질임금 삭감이 우려된다. 또 경영난을 이유로 물량이나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총연맹 수준에서는 노동자계급 전반의 사정 악화와 함께 내부 격차의 확대를 감안하여 연대임금 정책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산별연맹 수준에서는 산업적 위계의 정점이자 임금협상의 기준이 되는 주요 완성차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산별교섭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38 여성의날과 연계한 공공운수노조서울경인지부의 대학비정규직 집단교섭, 공단 차원의 전략조직화와 연계한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집단교섭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투쟁으로 부상한 정리해고 이슈를 진전시키고 사내하청·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제위기에 사각지대로 몰리게 될 민중들의 기초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중요하다. 복지 정책의 수혜자로서 정책적 요구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대중 저항 주체 형성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경제위기와 민심이반을 바탕으로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상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야권은 민중운동의 일부를 포섭하는 정당통합과 선거연합을 통해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반한나라당 공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만성적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현직의 실패와 정당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데, 반한나라당-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위기를 반영하는 통합진보당의 등장 및 이들의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제휴 속에서 민중운동 전반의 주류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정세는 향후 대중운동을 재건하여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를 유실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민중운동 좌파는 전선의 유실과 진보정당 및 노동조합의 우경화를 저지하고 향후 민중운동의 발전적 재편을 추동하기 위해 상호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 사회운동의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 주의 깊은 관찰과 연대가 필요하다.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2010-11년 유럽 긴축반대 운동, 2011년 상반기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 2011년 하반기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등 경제위기에 맞서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한동안 추동력을 상실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위기에 맞서 국제적 수준에서 민중적 대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북한 체제의 안정성, 북중 관계의 변화, 동아시아의 권력 재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어린 지도자’, ‘준비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마치 당장에라도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듯 호들갑을 떨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기 벌어졌던 이른바 ‘조문파동’을 의식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지만 결국 조문을 제한했고, 북한은 강력한 어조로 이를 비난했다. 애초 북한의 우라늄 농축문제와 식량 지원의 ‘빅딜’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왔던 북미대화는 중단되었고, 언제 재개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약 17년간 북한을 직접 통치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것은 1974년 2월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약 20년간의 권력 이양의 준비기간을 거친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 권력을 승계하게 된 김정은이 공식적인 승계과정에 돌입한 것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5월 무렵 심장 수술을 받았고, 2008년 8월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계자 선정과 후계체계 확립에 속도를 내왔다. 12월에만 9차례 공식 시찰을 다닐 정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왕성하게 활동한 것에는 후계체계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김정은 체제 이양기는 2008년 이후 아무리 속도를 냈다고 하더라도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이양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기간이다. 더구나 후계자 지명 이전부터 당 선전위원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김정은은 해외 유학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이 지닌 이러한 취약점은 북한을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2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는 북한체제의 권력 이양과 이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대응 방식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북중 관계의 변화,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이라는 3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분석하고자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북한 체제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 이양은 일반적인 관측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애초 김일성 주석의 사망 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년 상을 치렀던 것처럼 김정은 역시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권력 재편을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2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앙추도대회에서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하는 새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우리의 전도에는 계승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김정은을 ‘최고 영도자’, ‘영도의 중심’ 등으로 표현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이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북한 체제의 권력 공백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맡고 있던 당내 직위는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장 겸 정치국원, 당 비서국 내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 부장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일 위원장이 당의 모든 요직을 겸직하고 있던 상황이다. 당의 의사결정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도로 집중되었고, 변칙적인 당 운영이 일상화되었다. 김정은이 이러한 김정일 위원장의 역할을 하루아침에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원만한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상당 기간 기존 정책을 유지하면서 북한 지배 세력 내에서 일정하게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북한이 2012년 1월 1일 발표한 새해 공동사설은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로동신문>(당보)과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동맹 기관지)의 새해 공동사설은 “김정은 동지는 곧 김정일 동지”라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 정책을 … 관철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설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라며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선군정치가 유지될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의 정권 담당자들은 당분간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막고 안정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린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체제 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한 대응과 재편에 대한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서 ‘북한 급변사태’의 시나리오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표 1] 북한 신년 공동사설 주요 내용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과 국가의 운영이 상당히 변칙적으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성정(性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요직을 독점한 채 일관되게 북한 체제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일인 체제’의 특성을 의미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부재 속에서 북한은 당장의 안정화는 가능할지라도, 향후 체제의 방향을 둘러싼 논의에서 심각한 정책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신년 사설은 식량문제 해결을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로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원조는 물론이거니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구나 어린 후계자가 자신의 지도체제를 시작하는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아 북한이 선포한 ‘강성대국의 해’다. 북한 민중의 삶이 다소나마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체제의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외관계가 핵심적인 열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대외관계, 직접적으로는 개혁개방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하며, 이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의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6자회담 북한 체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군사적 대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주시하고,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새로운 정권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접촉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고집해왔으나, 이는 2012년 미국의 대선을 겨냥한 국내용 제스처에 가깝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가 있기 하루 전(실제 사망한 다음날)까지 식량지원과 핵 협상 재개 문제를 두고 북한과 접촉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 관계는 얼마간 접촉이 유지되더라도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핵 프로그램을 핵심적인 쟁점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북한이 당장에 획기적인 결단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북한 체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내적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에서 중국의 인정과 후원은 필수적이다. 갑작스런 권력의 공백, UN 결의안 1874호로 인한 전략 물자 부족, 식량 공급 감소 등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후진타오 주석이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31일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와 관련 북한에 축전을 보내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전통적 중-조 친선협조 관계가 강화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인정하고 향후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이 단지 ‘혈맹’이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중국의 대외 정책에 입각한 전략적 선택이다. 중국은 북한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한편, 중국의 지역 개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 최근 우칸 지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중국이 처한 곤란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중국 남부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마을의 토지를 부동산 회사에 불법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데 분노한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주민들은 지난 12월 12일 당과 정부, 공안 관계자들을 모두 추방하고 마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등 4개월간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 당국은 우칸촌이 해방구가 된지 열흘만인 21일 주민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했다. 중국이 대단히 억압적인 체제임을 감안할 때 우칸 지역 민중봉기의 성공은 더 이상 통제와 탄압만으로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급격한 개혁개방과 이로 인한 빈부 격차와 지역 격차, SNS의 확대로 상징되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비판적 여론 형성은 더 이상 중국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안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낙후된 동북 3성의 개발,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 등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중국에 중요한 존재가 되어 왔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0년 북한과 중국의 무역 총액은 총 34억6천5백만 달러다. 2010년 한중 교역액인 2,071억 달러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지만, 2009년에 비해 29%나 증가해 그 증가율이 어마어마하다. 또한 중국의 대북 자원개발 투자는 급증하고 있다. 석탄 수요가 2030년에는 지금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에너지와 자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북한이 2010년에 중국에 수출한 광물 자원은 8억6239만 달러어치에 이르며, 2009년에 비해 석탄과 철광석의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표 2] 북한의 대중국 무연탄 및 철 수출 현황 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통화철강그룹은 무산광산에 약 70억 위안을 투자하여 50년 동안의 채굴권을 확보했으며, 중국 최대 광물자원 수입회사인 우쾅집단도 고열탄 매장지인 용등탄광의 50년 채굴권을 획득했다. 혜산청년광산은 중국과 합작회사 형태로 전환하여 대주주인 중국의 완샹그룹이 25년간 구리광산을 독점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만포의 아연광산, 회령의 금광도 중국 기업들이 합작투자 형식으로 개발권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은 증가하는 에너지와 자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외환수요가 높다는 점과 유일한 파트너가 중국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투자는 매우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중국이 북한에 적용한 수입단가는 다른 국가들과의 거대 단가보다 훨씬 낮다. 2008년 석탄 거래의 경우를 보면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톤당 192달러에 구매한 반면, 북한으로부터는 절반도 안 되는 77달러에 구매했다. 2010년 철광석의 거래를 보아도 중국은 다른 나라로부터는 톤당 평균 130달러를 주고 구매했지만, 북한에는 평균 111달러만 쳐주었다. 또한 중국은 북한에서 자원을 싸게 수입하지만, 연료를 북한에 수출할 경우 다른 나라보다 10%정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쉽게 말해 중국이 북한에 지원하는 물품의 비용이 포함된 형태로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차별적인 광물 자원 독점과 단가 후려치기가 북한에도 편할 리는 없다. 그러나 현재 중국을 대체할 대안이 부재하며,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중국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강화된 북중 관계는 남한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대북정책에 상당부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모두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에 기대어 얼마간 버틸 수 있다면, 남한이나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그 실효성을 잃게 된다. 더구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남한이나 미국에서 급격한 정책 변화도, 취약한 리더십과 군부의 반발 가능성으로 인해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도 당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동안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대화의 진척은 어려울 것이며, 6자회담의 모멘텀 역시 상당부분 침식될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와 대미외교 올인 지난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5일 간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방문했다. 이때 펜타곤의 작전상황실인 탱크룸에서 리온 파네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등 미군 최고 수뇌부 12명이 총출동하여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여 한반도의 안보정세에 관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냉전 시기에도 없었던 이러한 이벤트는 한미 군사동맹이 얼마나 강고해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총 13조7천억 원대의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차세대전투기 F-X 3차 사업과 대형공격헬기 사업,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1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의 전체 해외 무기 수출액(461억 달러)의 30%에 근접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번 무기 계약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대응하고 있다. 군사력 증강은 언제나 상대방의 수준을 압도하거나 상회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위협은 실제보다 과장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연평도 사태 이후 주민 생활의 안정이 아니라 군사력을 증강하고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데 연평도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의 ‘재관여’를 주문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 미국이 나서 중국을 견제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도발에 가까운 발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파병 정책을 펼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왔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가가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기 때문에 ‘참관’에 머물겠다던 한국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말을 바꿔 정식 참가하는 한편, 부산 앞바다에서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 함선까지 불러들여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를 빌미로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동해와 서해에 진입하는 군사훈련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한 전략동맹은 냉전적 의미의 군사동맹으로의 회귀와 심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전략동맹의 대상은 오로지 미국이며, 한국의 대외 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대북 정책의 유연성도,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완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핵안보정상회의 이러한 흐름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는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2010년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의제는 ‘핵안보’(Nuclear Security)다. 기존의 핵문제가 핵 군축, 핵 기술 통제, 핵의 평화적 이용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핵안보정상회의는 여기에 핵 테러의 문제를 추가한다. 때문에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대처와 예방, 그리고 핵물질과 핵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한다. 핵 테러를 예방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반확산’ 정책이 강조된다. 핵관련 기술이나 물품의 수출입 통제 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비확산’ 정책을 넘어, PSI와 같이 무력 사용을 동반한 반확산 정책이 국제적인 틀을 확보해가고 있다. 애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핵군축, 비확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 핵안보정상회의는 체계를 갖춘 국제기구도 아니고, 앞으로 회의가 지속될지 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워싱턴 회의 때 47개국 정상과 3개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인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안보분야의 실질적인 세계 최대 회의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회의는 50여 개국 정상들과 IAEA, EU, UN등의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일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상황이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 그 자체가 정상회의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의제인 PSI에 대해 휴전협정 위반과 주권 침해라는 이유를 들어 극렬하게 반발해왔다. 군사조치를 전제로 한 공격적인 통제 정책은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PSI나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에 참가하면서 미국의 반확산 정책, 군사 정책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은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핵발전 확대, 핵발전소 수출 증대를 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에 우리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2012년, 동북아시아의 재편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2012년은 여러 나라의 정권교체 시기다. 동아시아만 보아도 3월에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가 있으며, 중국은 10월 중에 새 국가주석을 선임한다. 4월에 총선과 12월에 대선을 치르는 한국,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과 1월에 총통 선거를 치르는 대만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동북아시아의 정권 재편기라 부를 만한 시기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최근 치러진 하원의원 부정 선거 문제로 푸틴과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극렬한 반발이 표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바 있으며,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이나 군사력 증강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10년간 약 7,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군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1년 국방예산 630억 달러 중 약 150억 달러를 무기 구매에 할당할 정도로 적극적인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과 함께 육해공군을 총동원하는 합동 군사훈련 ‘평화미션 2011’을 진행할 정도로 중국과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응하는 등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10월에 중국 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를 열어 새 국가주석을 뽑을 예정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부주석을 맡고 있는 시진핑이 차기 국가주석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 동남 연안지방인 저장성 당서기 출신인 시진핑은 200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6위)에 선출되었고,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에, 2010년에는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중국 체제의 3대 포스트라고 할 수 있는 당과 국가, 군의 요직을 두루 겸직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칸 지역 민중봉기와 같이 지역 격차,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최근 중국의 중요한 과제지만, 시진핑은 분배 문제와 함께 성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의 중국이 어떠한 대외 정책을 취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군사력 증강의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2011년 국방예산은 6,010억 위안(약 102조6천억 원)에 달하며, 2001년부터 국방예산의 평균 증가율이 15%에 이를 정도로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첫 항공모함을 진수하여 8월에 시험항해를 진행한 바 있으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20의 개발을 본격화했다. 명실상부 G2로 성장한 중국은 일본이나 베트남과 영토분쟁을 진행하며 지역 강자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작년 9월 간 나오토 총리가 물러나고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일본의 총리 임기는 평균 1년 정도로 향후 어떠한 상황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후쿠시마 사고의 해결과 경제적 부흥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어 애초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잠수함 전력 증강 계획 등이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평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하면서 민주당 내 극우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노다 총리는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표 3] 아시아의 군비 경쟁 2012년 평화운동의 과제 2012년이 동북아시아의 정권 교체기라는 것은 우리에게 다음의 것들을 시사한다. 첫째로 2012년에 각국 대외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권 말기에 급격한 정책 변화를 추동할 만한 정치력이 부재하거니와 차기 선거를 의식해 전통적인 지지층 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제스처도 이러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나온다면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함께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대북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는 천암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래 6자회담의 (전제조건인) 비핵화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엄격하게 연계하지는 않았었다”며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책임을 면해준다는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파탄난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이전 정권의 대외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각국의 상황에서 한동안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 북한의 상황에서 한국이나 미국과의 정치적 빅딜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둘째, 정권 말기 각국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지금 시기의 반전평화운동이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고립과 압박,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 이것이 초래하는 군사력 증강의 레이스’가 아니라, 진정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길을 대중적으로 밝혀가야 한다. 셋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의 길은 6자회담의 재개나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민통 진영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공개와 연평도 사건으로 파탄나고, 2011년 들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협상이 본격화되었고, 2012년에는 일정한 결실을 맺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 섞인 관측과는 달리 미국은 북미대화를 진전시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월 5일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3차 북미대화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특별히 대답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관계 진전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대북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빌미로 북미 직접 협상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북미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한 6자회담의 재개는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6자회담 프로세스는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면서 중단되었고, 북한이 그동안 부인해오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공개했기에 기존의 신고는 무의미해졌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국이 굳건히 버텨준다면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6자회담에 나서야할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정치적 실적을 포장하기 위해 대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다른 참가국들에서 특별히 6자회담 재개의 동인을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기존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스스로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운동 진영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한미동맹 올인 정책이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라고 믿는 듯하다. 때문에 결론은 반MB 전선의 확대를 통한 정권 교체이고, 정권 교체를 통해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 즉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상징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봉쇄와 대결 정책에 비해 상대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한 축으로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축으로는 북한 봉쇄를 예비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00대 중심과제에서 한반도 군축이 아니라 확고한 한미 안보협력 유지를 강조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북 선제공격을 포함한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이 강행되어, 미군 육해공 군사허브의 중심이자 전진기지가 마련되었다. 햇볕정책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표방했다. 즉 북한과의 정치 문제와는 별도로 경제적 협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정치문제와 군사문제의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는 가운데 그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에서의 경제협력을 남한 정부가 담당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종속되게 되었다. 한미 FTA 추진이 그러하듯 한미 전쟁동맹의 강화는 ‘MB만의 문제’가 아니며, 햇볕정책이 민중운동이 지향해야할 무엇도 아니다. 이를 통해 평화운동 진영이 고민해야 할 2012년의 과제를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연평도 사태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공격적인 군사훈련은 그 자체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군사적 긴장 고조와 뒤이은 군사력 증강, 이를 빌미로 한 적대 정책의 강화와 군사적 충돌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은 한반도의 미래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며 민중들의 삶을 위협할 뿐이다. 보수 강경 세력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 집단이라면 그들의 눈앞에서 총칼을 휘두르는 것이 결코 평화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3월에 예정된 키리졸브 훈련을 비롯해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행해지는 다양한 군사훈련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제기하면서 단호하게 비판하자. 둘째, 2012년 권력 재편의 시기 속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이 군축과 안보 프레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반전평화의 문제는 결코 노동자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한반도의 전쟁 위협은 지배세력의 거짓 선동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은 반복되어 왔으며, 한미 군사동맹과 대북 적대정책, 군사력 증강을 통해 우발적인 충돌마저도 큰 참화로 비화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왔다. 안보문제는 지배세력이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요구와 목소리를 짓밟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연평도 사태처럼 실질적으로 민중의 생명을 위협한다.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의 구축과 그 궤를 함께 해야 한다. 평화운동의 지향은 맹목적인 반MB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종속되는 햇볕정책도 아니다. 한미 군사동맹의 문제, 군사력 증강의 문제, 위협적인 군사훈련의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반전평화의 흐름을 노동자민중운동이 주도하자. 셋째, 핵안보정상회의를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 없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핵 물질의 통제, 핵 테러에 대비한 군사 조치는 결국 핵무기 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새로운 틀거리에 다름 아니다. 더불어 각국 정부와 핵 산업계는 핵발전소 사고를 테러와 연결 지어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강하게 일고 있는 세계적인 탈핵 여론을 거슬러 핵발전소 안전과 확대, PSI 같이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공격적인 정책들을 정당화하려 한다. 핵안보정상회의가 그 자체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핵 기술과 무기의 확대를 꾀한다는 점을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연행 동지 석방하고 해군기지 건설 중단하라 경찰이 평화를 호소하는 동지들을 연행했다. 제주 강정마을 공사장에서 ‘동북아 군사 긴장 초래하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노동해방선봉대원 4명을 강제 연행한 것이다. 평화 요구에 폭력으로 화답하는 경찰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경찰은 이를 취재하던 기자도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권 말기 민중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가로막는 데 혈안이 된 것인가. 해군의 강점에 맞서는 힘든 싸움 속에서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굳건히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며 올레길을 지나는 관광객들을 만나 서명을 받고, 공사가 진행되면 몸을 던져 막고, 영상으로 투쟁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일 저녁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경찰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폭력으로는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막을 수 없다. 민중들의 더욱 큰 분노를 막을 수 없다. 노동해방선봉대는 강정마을 투쟁을 지켜내고 제주 군사기지 저지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제주 강정마을에서 자행된 경찰의 반민중적 반민주적 행태를 다시 한 번 강력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연행 동지 석방하고 경찰 병력 철수하라 - 동북아 군사 긴장 초래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즉각 중단하라 - 노동자가 앞장서서 해군기지 막아내자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제주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 오영덕 공동대표를 만나다 강정이 뜨겁다. 정부가 2007년 6월 제주 해군기지를 서귀포 강정마을 해안에 건설하기로 결정한 후 4년이 넘도록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발해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밤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천주교 신부들의 공사 강행 저지를 위한 연좌농성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평화미사를 비롯해 종교단체들의 종교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한진 중공업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희망버스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희망 비행기’로 확대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강정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10월 6일 해군은 강정마을 해안의 구럼비 바위에서 여섯 차례 시험 발파를 진행했고, 발파에 항의하던 활동가들을 모두 연행했다. 다음 날에는 발파 지역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구럼비 바위는 전문가들이 제주도에 ‘문화재 가지정’을 요청할 정도로 민속학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2009년 12월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이 제주도의회에서 통과되었지만, 2011년 3월 도의회가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 등의 취소를 의결한 상태라 구럼비는 다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대한 폭력적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이후 올 8월까지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134명이 공무집행방해, 공용물손상, 집시법 위반 등으로 사법 처리되었고, 이 중 4명은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총 73명의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주거침입, 폭행,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되었다. 10월 초에는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까지 헤엄쳐 가 기도를 하던 종교인을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바다 한 가운데서 세 차례에 걸쳐 20-30초간 물속에 빠뜨리고 오리발을 빼앗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올레 7코스’ 길목을 가로막은 흉물스런 철제 담장 앞에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 해군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매일같이 주민들과 활동가들, 심지어는 신부님들까지 연행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10월 초 강정을 찾아 제주 군사기지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이하 군사기지 범대위) 오영덕 공동대표를 만났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오영덕 대표는 제주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단체로서 사업 처음부터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했기에 이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앞바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천연기념물 442호인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붉은발 말똥게’의 대규모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개발 특별법 상 ‘절대 보전지역’으로 선정된 곳이기 때문에 건축물의 건축, 시설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공유수면의 매립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진행된 사전환경성 검토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자 환경부는 관계행정기관과 찬반 양측에서 각각 추천한 조사기관, 주민대표, 전문가 등의 협으로 2009년 2월 9일부터 2월 25일까지 공통생태계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해군본부에 추가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해군본부는 반대 측에서 추천한 조사기관을 통해 2009년 6월 추가 조사를 실시했고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부 주관으로 수행된 공동생태계 조사에서 연산호 분포 사실이 확인되어 전문가들은 계절별 조사가 필요하며 다양한 어류가 출현하는 7-9월에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군은 6월에만 추가조사를 진행한 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또 사전 환경영향평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빠졌다. 제주도는 보완평가서 작성에서 붉은발 말똥게 서식을 반영하여 대책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근래에도 ‘제주새뱅이’ 등 멸종위기 후보종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만큼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진행된 것이다. 제주도에는 군사기지 필요없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도 문제지만, 제주에 군사기지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환경단체 활동가로서의 입장을 넘어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 절차 문제와 함께 제주도에 건설되는 군사기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군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1>국가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도발 억제와 해양영토 보호 등 해군 함정의 활동 보장, 2>국가경제와 전략적 측면에서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3>해군 작전 측면에서 제주 남방해역 보호와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함정의 군수 지원 등 세 가지다. 그러나 북한과 가장 거리가 먼 제주도에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해군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해군기지 위치 선정의 원칙인 지리적 인접성과 배치된다. 또한 해상교통로 확보와 해저자원 확보는 해군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무력으로 해상교역로와 자원을 독점하는 ‘대항해시대’가 아니다. 해군은 말라카 해협 등의 해적 활동을 근거로 들지만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안정화와 함께 이 지역 해적 발생 빈도는 이미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말라카 해협에서 발생한 해적 문제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에 있는 한국 해군이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해적이 아니라면 해상교통로와 해저자원 문제는 외교와 정치의 영역이지 무력의 영역이 아니다. 이를 빌미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킨다면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막 나가는 해군 해군은 공사 강행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SSU는 살인 행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고, 작은 보트를 이용해 해상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를 물대포를 쏘아 바다에 빠뜨리는 등 민간인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문화재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문화재청장이 유선으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해군은 현장 견학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이러한 흐름이 ‘해군 측의 조바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올 초 만해도 (해군기지 건설이) 완전히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해군이 공사를 추진해왔다. 그러다가 이 얘기(강정 해군기지 건설)가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한진중공업 문제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구럼비 바위를 부수고, 폭파하고, 도로를 내는 것이 사실 이미 다 예정되었던 것인데, 외부로 점차 알려지면서 해군이 당황하고 있다. 해군이 나름의 돌파 작전을 쓰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들 힘이 미약했다면 외부로 알려지지도 않고,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일들이 하나하나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현재 상황은 안타깝지만 큰 그림을 보자면 나쁘지 않은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해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행동이 오히려 강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기하려던 싸움, 그러나 매일같이 지속되는 해군과 경찰의 폭력과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과 고소고발. 정말 힘든 상황에서 오영덕 대표는 오히려 이후 투쟁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이 투쟁을 진행해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물었다. “사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거의 포기한 상태로, 물 건너 간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지난 2001년이다. 제주도 전체로 보자면 꼬박 10년을 끌어 온 사업이고, 강정마을만도 5년째 지역 사회를 휘젓고 있는 문제다. 오랜 세월을 지지부진하게 흘러오면서 제주도민들도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해군이 구럼비 바위에 담장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지역 언론조차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지가 아니었다. 1993년 말 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전략기지 신규소요가 결정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제주해군기지 후보지가 검토되었다. 당시 후보지는 화북항, 성산일출봉 근해, 신양리, 화순황, 형제도지역, 모슬포 등으로 강정마을은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 후보지로 선정된 화순은 2002년 제주도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해군은 2005년 위미지역으로 후보지를 변경했다. 그러다 위미에서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해군은 추가 후보지를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 강정이 포함되었다. 더 이상 다른 곳을 찾을 수 없는 해군과 정부는 ‘민군 관광미항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들먹이며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지속된 도민 사회의 혼란 때문에 생긴 피로도, 막대한 지원금이 들어온다는 기대감은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찬성 주민들을 이용한 지속적인 유치 강행 작전, 화순이나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할 때와는 다른 도내 여론,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는 투쟁은 점차 고립되고 활력을 잃어 갔다. “그러다가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될 즈음에 평화 운동가들이 내려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반전이 되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화되자 평화 활동가들이 하나둘씩 강정 마을로 모여들었다. 단순히 여행을 하다 구럼비 바위에 반해 강정마을에 눌러 앉아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강정마을 100일 순례’를 진행하고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에서 100배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강정마을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했다. 오영덕 대표는 이들이 비록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저는 그게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굉장히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와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가 깨지는 것에 자기 마음이 깨지는 것처럼 아파했다. 이런 분위기가 투쟁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정말로 진정성 있는 싸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이 주변을 감동시키고 투쟁을 확산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정으로, 강정으로 그렇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진행되는 공사를 막지 않으면 구럼비 바위를 비롯한 강정마을과 주변 생태계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 지역은 현재 해군의 공사금지가처분 신청에 묶여 있다. 강동균 마을 회장 등 개인 37명과 5개 단체를 적시하여 위반 시 행위 1회당 200만원 씩의 벌금을 물게 된다. 농성장이 설치된 철제 담장 너머에서는 해군이 감시탑과 감시견, 365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세워 감시하고 있다.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해 싸워나갈 것이며, 중간에 좌절하거나 꺾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현장만이 아니라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적인 여론 형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되어야 한다. 사회의 많은 분들이 강정 마을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정치적인 해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희망 버스가 희망 비행기로 옮아가고, 여론의 관심이 강정마을에까지 미치자 정부와 해군은 비행기를 빌려준 항공사를 압박해 비행기 전세를 못하게 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처럼 주민들을 고립시키고 여론 확산을 차단해 투쟁을 고사시키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이러한 방식에 우리는 어떠한 해답을 갖고 있나. 오영덕 대표는 강정마을에 들어와 농성장을 지키고, 자신의 몸을 차 바퀴에 내던지며 공사 차량을 저지한 평화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이 싸움을 지속하게 만든 밑거름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평화 활동가들이 벌인 활동들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면, 이 투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정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공사를 빨리 중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더불어 현재 공사현장 철제 담장을 넘어가고 버티는 투쟁도 분명 필요하다.” 국책사업이 파괴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서귀포신문이 2009년 9월 2일부터 11일까지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적대감, 우울, 불안, 강박 등 정신적인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75.5%를 차지했으며, 주민 10명 중 4-5명이 정신 건강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 주민의 43.9%나 되어 제주도민의 자살 충동 평균치인 8.1%에 비해 5.4배나 높게 나왔다. 신문은 “이같이 집단적인 피해 양상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분석했다. [표 1]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정신적 피해 [표 2] 강정마을 주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자살 충동의 이유 대규모 국책사업이 시행되는 곳에서는 대부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위험 시설을 비롯해 군사기지와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해당 지역의 찬반 갈등을 심각하게 불러일으킨다. 사업이 실시되는 지역의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몇 십 년을 이어온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고, 찬반으로 갈려 반목하면서 생긴 상처는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는 경제적 보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도 제주도민이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은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순하고, 마을에 대한 애착이 크다. 5년 동안 싸우면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지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주민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다.” 위의 실태조사 결과에서 보듯 5년 동안의 갈등으로 정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마을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 있다고 오영덕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강정마을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계속하고 있다. 일례로 찬성 측 주민 한 명은 자신의 가게 옥상에 올라가 해군의 폭력적 탄압 모습을 찍은 반대 측 활동가를 고소하기도 했다. 오영덕 대표와의 인터뷰 하루 전에 만난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가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나건, 반대쪽으로 결론이 나건, 지금 이렇게 갈라져있는 주민들의 관계를 다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를 되살려 앞으로의 삶을 같이 꾸려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찬성하는 측이 고소고발을 많이 해도 우리는 고소고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운동, 강정에서 꽃피다 끝으로 오영덕 대표에게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저는 활동가들에게 말한 만한 자격은 없는데, 이런 운동을 하면서 외부 활동가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생명평화결사나 개척자들 같은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에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들이 찬성 측과 반대 측을 가리지 않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전국의 평화 활동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투쟁을 펼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포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그 밑으로 들어가서 눕는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큰 자극이 되었다.” “제주 지역에서 기존에 해왔던 행태대로만 운동을 해왔던 입장에서는 운동이 시대에 맞게 변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나 영상을 활용하는 힘,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힘, 자신의 몸을 던지는 적극적인 투쟁. 이것들을 다 품어 안아 보듬어주는 것이 또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넉넉함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다양한 형태의 운동들의 장점들이 발현이 되어서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운동이라는 게 살면서 머리 속의 고정된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서 창조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현이 된다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군의 강점에 맞서는 힘든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굳건하게 싸워가고 있는 강정 사람들. 강정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도 농성장을 지키며 올레길을 지나는 관광객들을 만나 서명을 받고, 공사가 진행되면 몸을 던져 막고, 영상으로 투쟁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일 저녁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오영덕 대표가 ‘변화’라고 언급한 영상과 인터넷, 몸을 던지는 투쟁은 어쩌면 그리 새로운 요소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소들이 투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강정마을의 투쟁을 살아나게 한 더욱 중요한 요소는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가며 함께 대중투쟁을 일구어 온 주민과 활동가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강정마을 투쟁을 지켜내고, 제주 군사기지 저지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때다.
미군 성폭행 범죄자를 엄정히 처벌하고, 불평등한 SOFA협정 개정하라! 주한미군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9월 24일 새벽 제2사단 소속 미군이 동두천 시내의 고시텔에 들어가 10대 여학생을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했으며, 그 일주일 전인 9월 17일에는 미8군 소속 군인이 마포구의 고시텔에 들어가 자고있던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도 드러났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주한미군의 악질 범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미국 측에서는 사건에 대해 해당 군부대의 명의로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한달 동안 야간 통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이는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한달 동안 한시적으로 취해지는 금지조치가 빈발하는 범죄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휴일에는 새벽 3시부터 2시간 동안이 통행금지 시간이라고 하는데, 범죄를 막는데 전혀 실효성이 없음이 자명하다. 게다가 이태원, 홍익대 등지의 상인들에 따르면 통행금지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지켜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통금에 대한 고지만 할 뿐 단속이나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군 범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구속수사와 원칙적인 법 집행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두 명의 피의자 모두 범행 후 부대 복귀하여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미군 범죄가 발생할 경우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소 시점까지 신병을 주한미군에 인도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이것은 개별 사건들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미군 범죄자들에 대해서 미군이 신병을 인도해감에 따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국의 법에 따라 처벌하지 못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왔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함께 주한미군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주한미군에게 주둔군으로서 특권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SOFA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 - 성폭행을 저지른 주한미군을 즉각 구속, 처벌하라! -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군에 의해 발생한 성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라! - 불평등한 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 2011년 10월 11일 사회진보연대
정부의 공권력 투입과 공사 강행을 규탄한다 9월 2일 새벽 5시경,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다. 지난 8월 29일 정부와 해군이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37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낸 ‘공사방해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주지법이 받아들인 후, 제주도에는 서울경찰병력이 추가 파견되어 약 1,100여명의 경찰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화문화제 하루 전인 9월 2일 농성자들이 모여 있는 중덕삼거리를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와 안에 있던 주민들을 밖으로 들어냈다. 그 사이에 해군은 마을과 기지 부지를 차단하는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리고 울타리 설치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활동가와 주민 등 35명을 연행하였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선정과 건설 추진 과정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처음부터 불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1993년 제주 해군기지 신규소요가 제기된 후, 해군은 2002년 후보지역으로 화순항을 선정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2005년 9월 위미로 후보지를 변경 추진하였다. 역시 위미리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던 중 2007년 다시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결정하였다. 2007년 4월, 인구 1,900명 중 불과 87명이 모인 강정마을 비밀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루어졌고, 도지사는 주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해군기지 강정마을 유치결정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7년 8월 마을 임시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한 마을이장을 해임하기로 결정하였고, 열흘 후인 8월 20일 공개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주민투표에는 마을주민 725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과 제주도는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기지사업단이 수행한 환경영향평가는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이 보고되지 않은 졸속 부실 조사였다. 그리고 자연환경의 고유한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던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제주도의회는 절대보전지역 해제 안을 날치기 처리하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강정마을을 군사기지화 하려는 정부와 해군 당국의 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경찰은 지난 8월 24일에 (서귀포시가 이미 불법 공사 시설물이라고 인정한) 기지 건설 장비인 크레인 조립을 막으려던 마을주민들과 활동가 5명을 강제 연행하였고 이중 3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서귀포경찰서장을 경질하고 강호준 제주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신임 경찰서장으로 발령하기도 하였다. 또 26일에는 충북지방경찰청 윤종기 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제주청으로 파견하여 강정마을 사태에 대한 지휘·통제를 강화하였다. 8월 29일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자 경찰청은 강정마을 집회 신고를 원천 불허하였고, 서울경찰병력을 제주도에 추가로 지원하였다. 9월 1일에는 미리 경찰에 출석 의사를 밝히기도 했던 평화운동가들을 연행하였다. 그 다음날인 9월 2일 새벽에는 울타리 설치를 막는 활동가와 주민들을 대거 연행하였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는 불법적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반면, 반대행동에 대한 진압은 강도 높게 폭력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의 해양 주도권 전략에 편입되기 위한 것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근거로 ∆북의 도발 억제 및 전시 해양 우세 확보 ∆제주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주변국으로부터 보호 ∆기존 기지들의 규모, 수심 등 기동부대 전력 수용 부적합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해상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 해양전략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이다. 9.11 이후 미군은 해양타격, 해양방어, 해양기지화의 3대 해양전략을 담은 ‘해군력 21’ 전략을 발표하였다. 이중 ‘해양기지화’ 전략은 “해양으로부터 공세와 방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주둔국에 제한받지 않고 배치와 철수가 용이한 해양기지를 구축할 방안을 마련”하자는 의미다. 즉 동맹국의 본토나 섬에 고정된 해공군 기지를 두지 않고도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같은 전략 기지에서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를 탑재한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을 핵심전력으로 하는 일정 규모의 기동전단을 세계 각지에 파견함으로써 전 세계의 바다를 해양기지화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방국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군수지원이나 단순한 기항지만을 제공받는다면 얼마든지 연안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미 해군이 한반도 남단에서 기항지만 보장받는다면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을 동원하여 중국을 바다로부터 봉쇄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최근 미국은 중동 문제로 자국의 군사력 운용이 제약을 받게됨에 따라 동맹국의 해군력 동원을 극대화하여 자국 주도의 제해권을 유지하려는 해양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동맹국의 지역적 역할을 높여 미군 전력의 지역적-지구적 역할과 결합하고 상호운용성을 보장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보장하는 것이 이른바 ‘글로벌 해양 파트너십’으로, 한국은 이 개념이 제기된 이래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06년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이후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서 주요 분쟁지역에 탄력적으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지역 및 세계 안보 수요’에 공동 대처하기로 하면서 한미동맹의 지역적-지구적 협력, 특히 해양에서의 협력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이 한국군사시설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제주해군기지는 미군의 기동전단이 사용하는 기항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고 있으며 이미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더 많은 해군기지와 기항지의 확보가 절실한데, 오키나와의 경우 대부분의 기지가 공군기지와 해병대 기지로서 3천 톤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킬 수 없다. 대형 함정 20척 및 15만톤급 크루즈 2척의 동시 계류가 가능한 대규모의 기지로 계획된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미국 해군의 사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 기지에는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도 기항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 해군이 표방하는 해양안보론은 미국의 해양패권전략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해양안보’ 혹은 ‘해양수송로 보호’를 내세운 한국 해군의 ‘지역적 역할 강화’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을 상대로 한미합동 해양전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지배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려는 미국의 해양전략을 그대로 추종한 결과로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해양의 군사화를 촉진할 위험한 정책이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불법 공사 의혹 이런 와중에 9월 5일, 문화재청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부지에서 발견된 유적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전체 사업대상 지역에 대해 시굴조사를 실시하되, 유구가 확인되지 않거나 조사가 완료된 지역에 대해서는 부분 공사 시행을 승인하였다. 이에 대해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전국대책회의)는 문화재청의 부분 공사 승인 및 시행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유구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밀 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전체 발굴조사가 미완료된 상태에서 문화재청이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 부분공사 시행을 승인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군기지 공사 즉각 중단과 문화재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9월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해군기지사업 조사 소위원회가 제주도청을 방문하여 해군기지 건설 관련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제주해군기지의 이중 협약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4월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체결한 기본협약서의 제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보관하고 있는 기본협약서의 제목과 전문에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로 되어 있으나 국방부가 보관하고 있는 기본협약서의 제목과 전문에는 ‘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로 되어 있다. 공문서 위조 가능성은 물론 민군 복합형 기항지 건설 조건 아래 사업 예산을 승인한 국회의 권고를 위반한 ‘원인 무효’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강정마을회와 전국대책회의는 9월 7일, “제주도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이중 협약서는 전면무효이며, 해군기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부와 해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6일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구럼비 해안에 굴삭기를 투입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 정부와 해군, 경찰의 불법과 폭력에 맞서 평화운동도 굳세게 저항하고 있다. 연행, 구속, 수배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사거리에서는 평화미사와 평화행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정마을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동참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3일에 이어 다음 달 1일에 다시 한 번 평화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