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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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은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15일 결국 172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를 정리해고 근거로 이야기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발표 직전에 현금배당을 결정하는 등 여유만만한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2009년에 4천6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2010년 3/4분기까지 1천8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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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노동조합과 지역시민사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 조선소를 폐쇄하고 필리핀의 저임금 지역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기 위한 사전조치다. 사측은 영도 조선소에 물량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같은 기간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는 서른 척이 넘는 선박 건조를 계획하고 있다. 사측이 의도적으로 수빅 조선소로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는 뜻이다.
필리핀 수빅 공장, “꿈을 안고 들어가 시체가 되어 나오는 곳”
그렇다면 한진중공업의 물량 몰아주기로 필리핀의 노동자들은 좀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인근 지역에서도 유명한 저임금 고강도 노동 착취 사업장이다. 한 수빅 지역 노동 단체의 표현에 따르면 수빅 조선소는 “꿈을 가지고 들어가 시체로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한진중공업 수빅 조선소는 2006년 필리핀 정부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건설이 시작되어 2007년 12월 1단계 완공, 2009년 4월 2단계 완공을 마쳤다. 현재 2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약 4만 5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계획이다. 수빅 자유경제구역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조선소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직접투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외양과 달리 수빅 조선소의 노동조건은 필리핀 내에서도 최악으로 꼽힌다. 필리핀의 한 노동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빅 조선소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최장 3개월까지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이 기간에는 하루 3달러의 임금만 지급된다. 그리고 이 훈련 기간을 거치면 약 6개월 가까이 수습 기간을 추가로 또 거치는데 이 수습 기간에 관리자의 눈에 들어야 정식 채용이 된다. 수습 기간에 시급은 0.6달러(약 7백원)에 불과하다.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정식 채용이 된다고 해도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40여개에 달하는 하청 업체에 고용이 되는데, 우리의 불법 파견과 비슷하다. 필리핀 노동법에서도 금지하는 불법 파견인데, 한진중공업은 자유무역구역에서의 특권적 지위를 활용해 불법적 작태를 지금도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다.
임금 착복도 존재한다. 한진중공업은 철야 맞교대 조의 교대 시간 간격 조정을 통해 30분 이상의 추가 근로를 의무화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가 근로 수당을 지불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지불되지 않는 임금이 연 830만 달러(약 100억 원)에 이른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수빅 조선소 노동자들 대부분은 출퇴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6~8명이 기숙사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노동안전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약 5천 건의 안전 사고가 공식 보고되었고, 2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열악한 위생 조건으로 인해 321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조선소에는 반상근을 하는 의료진 한 명이 있을 뿐이며 가까운 병원은 27Km 밖에 위치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노조 탄압은 더욱 가관이다. 2009년에는 노조 지도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노동 안전 협약을 근거로 노조 간부들 60여명을 안전 협약 위반으로 해고하기도 했다. 최악의 노동 조건은 방치한 체 정작 노동 안전 협약을 노조 간부들의 해고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영도 조선소와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모두 한진중공업 자본으로부터 노동 착취와 노조 탄압에 힘겨워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자본은 영도 조선소 물량을 줄여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그 물량이 이동하는 필리핀 수빅에서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연대 투쟁으로 공장 철수를 막아낸 노동조합들
이러한 자본 이동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무기는 역시 국제적 단결과 공동 투쟁뿐이다.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을 통해 공장 폐쇄를 막아낸 사례는 많지 않지만 꾸준하게 보고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는 브라질 계 철강 자본인 발레가 2009~2010년 캐나다의 광산을 폐쇄하려 했을 때 보여준 국제적 공동 투쟁이다. 캐나다 노동조합은 1년이 넘는 기간 단결된 파업투쟁을 벌였고, 본사가 있는 브라질의 철강 노조가 캐나다 공장 폐쇄 문제 해결을 임단협 요구에 함께 넣어 파업을 조직했다. 캐나다 광산의 대체지로 선정된 호주 인근에서는 호주 철강 노동자들이 연대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발레 자본은 2010년 말 이러한 국제적 노동자 연대 투쟁에 두 손을 들었다. 발레 자본은 캐나다 광산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투쟁 역시 국제적 연대에서 해법을 찾아봐야 한다. 한국과 필리핀의 노동자들은 물량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한진중공업 자본으로부터 노동 착취와 노조 탄압을 당하는 같은 노동자들이다. 한국에서는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 조건 개선을 내걸고,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서는 한국의 정리해고 철회를 내걸고 공동 투쟁을 벌인다면 한진중공업 자본도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