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권력 투입과 공사 강행을 규탄한다 9월 2일 새벽 5시경,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다. 지난 8월 29일 정부와 해군이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37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낸 ‘공사방해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주지법이 받아들인 후, 제주도에는 서울경찰병력이 추가 파견되어 약 1,100여명의 경찰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화문화제 하루 전인 9월 2일 농성자들이 모여 있는 중덕삼거리를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와 안에 있던 주민들을 밖으로 들어냈다. 그 사이에 해군은 마을과 기지 부지를 차단하는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리고 울타리 설치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활동가와 주민 등 35명을 연행하였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선정과 건설 추진 과정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처음부터 불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1993년 제주 해군기지 신규소요가 제기된 후, 해군은 2002년 후보지역으로 화순항을 선정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2005년 9월 위미로 후보지를 변경 추진하였다. 역시 위미리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던 중 2007년 다시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결정하였다. 2007년 4월, 인구 1,900명 중 불과 87명이 모인 강정마을 비밀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루어졌고, 도지사는 주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해군기지 강정마을 유치결정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7년 8월 마을 임시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주도한 마을이장을 해임하기로 결정하였고, 열흘 후인 8월 20일 공개적으로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주민투표에는 마을주민 725명이 참가해 유효 투표수의 94%인 680명이 유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과 제주도는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기지사업단이 수행한 환경영향평가는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이 보고되지 않은 졸속 부실 조사였다. 그리고 자연환경의 고유한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던 강정마을에서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제주도의회는 절대보전지역 해제 안을 날치기 처리하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강정마을을 군사기지화 하려는 정부와 해군 당국의 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경찰은 지난 8월 24일에 (서귀포시가 이미 불법 공사 시설물이라고 인정한) 기지 건설 장비인 크레인 조립을 막으려던 마을주민들과 활동가 5명을 강제 연행하였고 이중 3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서귀포경찰서장을 경질하고 강호준 제주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신임 경찰서장으로 발령하기도 하였다. 또 26일에는 충북지방경찰청 윤종기 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제주청으로 파견하여 강정마을 사태에 대한 지휘·통제를 강화하였다. 8월 29일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자 경찰청은 강정마을 집회 신고를 원천 불허하였고, 서울경찰병력을 제주도에 추가로 지원하였다. 9월 1일에는 미리 경찰에 출석 의사를 밝히기도 했던 평화운동가들을 연행하였다. 그 다음날인 9월 2일 새벽에는 울타리 설치를 막는 활동가와 주민들을 대거 연행하였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는 불법적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반면, 반대행동에 대한 진압은 강도 높게 폭력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의 해양 주도권 전략에 편입되기 위한 것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근거로 ∆북의 도발 억제 및 전시 해양 우세 확보 ∆제주 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주변국으로부터 보호 ∆기존 기지들의 규모, 수심 등 기동부대 전력 수용 부적합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해상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 해양전략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이다. 9.11 이후 미군은 해양타격, 해양방어, 해양기지화의 3대 해양전략을 담은 ‘해군력 21’ 전략을 발표하였다. 이중 ‘해양기지화’ 전략은 “해양으로부터 공세와 방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주둔국에 제한받지 않고 배치와 철수가 용이한 해양기지를 구축할 방안을 마련”하자는 의미다. 즉 동맹국의 본토나 섬에 고정된 해공군 기지를 두지 않고도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같은 전략 기지에서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를 탑재한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을 핵심전력으로 하는 일정 규모의 기동전단을 세계 각지에 파견함으로써 전 세계의 바다를 해양기지화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방국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군수지원이나 단순한 기항지만을 제공받는다면 얼마든지 연안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미 해군이 한반도 남단에서 기항지만 보장받는다면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을 동원하여 중국을 바다로부터 봉쇄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최근 미국은 중동 문제로 자국의 군사력 운용이 제약을 받게됨에 따라 동맹국의 해군력 동원을 극대화하여 자국 주도의 제해권을 유지하려는 해양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동맹국의 지역적 역할을 높여 미군 전력의 지역적-지구적 역할과 결합하고 상호운용성을 보장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보장하는 것이 이른바 ‘글로벌 해양 파트너십’으로, 한국은 이 개념이 제기된 이래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06년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이후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서 주요 분쟁지역에 탄력적으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지역 및 세계 안보 수요’에 공동 대처하기로 하면서 한미동맹의 지역적-지구적 협력, 특히 해양에서의 협력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이 한국군사시설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제주해군기지는 미군의 기동전단이 사용하는 기항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고 있으며 이미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더 많은 해군기지와 기항지의 확보가 절실한데, 오키나와의 경우 대부분의 기지가 공군기지와 해병대 기지로서 3천 톤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킬 수 없다. 대형 함정 20척 및 15만톤급 크루즈 2척의 동시 계류가 가능한 대규모의 기지로 계획된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미국 해군의 사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 기지에는 이지스함, 핵항공모함, 핵잠수함도 기항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 해군이 표방하는 해양안보론은 미국의 해양패권전략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해양안보’ 혹은 ‘해양수송로 보호’를 내세운 한국 해군의 ‘지역적 역할 강화’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을 상대로 한미합동 해양전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지배력을 끊임없이 강화하려는 미국의 해양전략을 그대로 추종한 결과로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해양의 군사화를 촉진할 위험한 정책이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불법 공사 의혹 이런 와중에 9월 5일, 문화재청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부지에서 발견된 유적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전체 사업대상 지역에 대해 시굴조사를 실시하되, 유구가 확인되지 않거나 조사가 완료된 지역에 대해서는 부분 공사 시행을 승인하였다. 이에 대해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전국대책회의)는 문화재청의 부분 공사 승인 및 시행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유구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밀 발굴조사에서 유구가 확인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전체 발굴조사가 미완료된 상태에서 문화재청이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 부분공사 시행을 승인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군기지 공사 즉각 중단과 문화재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9월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해군기지사업 조사 소위원회가 제주도청을 방문하여 해군기지 건설 관련 현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제주해군기지의 이중 협약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4월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도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체결한 기본협약서의 제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보관하고 있는 기본협약서의 제목과 전문에는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로 되어 있으나 국방부가 보관하고 있는 기본협약서의 제목과 전문에는 ‘제주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로 되어 있다. 공문서 위조 가능성은 물론 민군 복합형 기항지 건설 조건 아래 사업 예산을 승인한 국회의 권고를 위반한 ‘원인 무효’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강정마을회와 전국대책회의는 9월 7일, “제주도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이중 협약서는 전면무효이며, 해군기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부와 해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6일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구럼비 해안에 굴삭기를 투입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 정부와 해군, 경찰의 불법과 폭력에 맞서 평화운동도 굳세게 저항하고 있다. 연행, 구속, 수배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사거리에서는 평화미사와 평화행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강정마을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동참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3일에 이어 다음 달 1일에 다시 한 번 평화문화제가 예정되어 있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자.
반핵아시아포럼 2011 참가기 7월 30일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2011 반핵아시아포럼’이 개막됐다. 올해 반핵아시아포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진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다’라는 주제로 일본의 도쿄, 후쿠시마, 히로시마, 이와이시마 등에서 진행되었다. 반핵아시아포럼은 아시아지역의 반핵운동 연대체로, 1992년 한국 반핵운동 진영의 제안으로 ‘핵 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기치에 따라 아시아 지역의 반핵운동 네트워크로 결성되었다. 현재 일본,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 태국, 호주, 한국 등의 반핵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매년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과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위한 네트워크(NINDJA) 등 아시아의 주요 반핵운동 단체들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반핵아시아포럼은 8월 6일까지 진행되었다. 태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 에너지 프로젝트, 인도네시아의 반핵시민연합, 필리핀의 비핵 바타안운동 네트워크, 인도의 반핵운동전국연합, 대만의 환경보호연맹 등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에너지정의행동, 서울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보건의료단체연합, 사회진보연대 등이 함께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후쿠시마의 현실: 7월 30일 후쿠시마 지역 활동가들과의 토론회 7월 30일, 2011 반핵아시아포럼의 첫날 행사는 후쿠시마 지역의 사람들과 활동가들로부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상황과 경험을 듣는 자리였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사고의 경험을 공유하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제 후쿠시마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후쿠시마 사고 후 지금까지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후쿠시마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는 아직도 진행형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는 사고 발생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지난 8월 2일 도쿄전력은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 사이의 외부 배기관 부근에서 시간당 10Sv(시버트) 이상의 방사선량을 측정했다. 이 정도의 수치는 한 번 노출되면 즉시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어디서 유출이 이루어졌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이 정도의 고농도 방사선량은 방호복을 입은 작업원도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한동안은 조사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사고 지역의 상황이 이러하니 ‘정확한 피해 정도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 내 연료봉이 얼마나 녹아내렸는지, 그것이 격납용기를 뚫고 흘러내려 바닥까지 내려갔는지에 대해 다양한 소문이 무성하다. 토론회 서두에서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이러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고 후 후쿠시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는데, 핵발전소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이 눈에 흡착되어 확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퍼진 방사성 세슘을 검출해 지도를 그리면 사고 지역에서 200km가 넘는 지역에서까지 오염이 확인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지금 핵연료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에 계속 냉각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 계속해서 물을 공급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이 냉각도 아마 10년은 계속해야 할 것’이며, ‘원자로 폐쇄까지는 적어도 30년은 걸릴 것’이라 말했다. 코피를 쏟는 아이들 두 번째로 ‘아이들을 방사능에서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의 나카테 세이치 대표의 발표가 이어졌다. 사고 지역에서 60km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나카테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인 두 아이를 둔 아버지다. 사고 두 달 후인 5월 중순 즈음 큰 아이가 코피를 쏟았을 때에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둘째 아이가 별 이유도 없이 매우 많은 양의 코피를 쏟았다. 과학적으로 후쿠시마 사고와의 연결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코피를 쏟는 아이들의 사례가 많이 보고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 특히 아이들의 건강 피해를 막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그는 후쿠시마 지역 7개 초등학교에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한 활동도 들려주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사고 이후 휴교 상태였던) 학교에서 처음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는데, 운동장 지표면에서는 시간당 10μSv(마이크로시버트), 하수구 인근 지표면에서는 시간당 108.8μSv가 나왔다. 물론 이 방사능 수치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론상 108.8μSv라는 수치가 1년 365일 지속된다면 953mSv(밀리시버트)가 넘는 수치로 연간 허용치인 1mSv를 엄청나게 초과하는 양이다. 나카테 대표는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건강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피난해야 하며, 이들이 오염이 제거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 방식의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발표를 마쳤다. 토양과 소의 오염 순환 오후 세션은 농업 문제 담당 기자인 오노 카즈오키씨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후쿠시마 지역 농민들과 교류해 온 오노씨는 사고 후에 발생한 토양 오염이 어떻게 해당 지역에서 기르는 소의 오염으로 이어졌는지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소의 여물로 쓰이는 볏짚이 고농도 세슘에 오염되었기 때문에 후쿠시마 지역 소들에게 체내피폭(방사성 물질이 생물체 내부에 들어와 쌓이는 피해)이 발생했다고 한다. 올해 소에게 먹이는 볏짚은 작년 쌀을 수확하고 논에 쌓여 있던 것들을 모은 것인데, 사고 직후 방사성 물질이 날아와 짚단에 흡착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체내피폭이 이루어진 소에서 짜낸 우유나 고기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어 또 다른 피해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풀이나 나무껍질과 섞어 발효시켜 퇴비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퇴비는 다른 농가에 공급되어 농지를 풍요롭게 만든다. 그리고 볏짚과 같이 그 농지에서 수확되고 남은 작물이 다시 소에게 공급된다. 오노씨는 이를 두고 ‘소를 중심으로 한 유기물의 물질 순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체내피폭된 소의 배설물은 퇴비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따로 쌓아둘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다른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어른 소를 기준으로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하루에 30kg이 넘는다. 후쿠시마 현의 대형 축산 농가 중에는 500마리의 소를 기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강제된 핵발전소 마지막 발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 살던 오가 아야코씨의 순서였다. 사고 지역에서 불과 5km 지역에서 살고 있던 그녀는 사고 직후 강제피난 조치로 지금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오가씨는 후쿠시마 지역이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었기 때문에 핵발전소를 유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원래 냉해(冷害)가 많이 발생해 한촌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그래서 도시지역으로 일하러 나가는 농민도 많았다. 인구의 과소화 현상이 시작되었고 지역 재정도 상당히 나빠졌다. 그래서 1960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입지 계획이 나오자 선뜻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당시 주민들에게는 ‘황폐한 농촌 지역에 최첨단 기술이 들어오는 꿈같은 일’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녀는 핵발전소를 만들면서 들어온 거액의 정부 지원금으로 처음에는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듯이 보였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금 덕에 다양한 시설을 건설할 수 있었고, 이 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고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자 일자리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다시 떠나갔다. 인구는 늘지 않고 계속 줄어들었으며, 지역 재정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것이 후쿠시마 현만이 아니라 핵발전소를 유치한 지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후쿠시마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야 오전 9시경부터 진행된 토론회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발표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으며, 때로는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참가자들은 일본의 경험과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자신들의 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알리고, 후쿠시마 지역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결의했다. 또한 다음 날인 7월 31일 후쿠시마 시내에서 열리는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 요구 현민 집회’에 참석을 결의하며 첫날 일정을 마쳤다. 후쿠시마의 외침: 7월 31일 후쿠시마 현민 집회 2011 반핵아시아포럼 일정 둘째 날인 7월 31일 오후 1시, 후쿠시마시 마치나카 광장에서 ‘방사능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내라! 핵발전소 없는 후쿠시마를 위한 현민 집회’가 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2천여 명의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집회는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발생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강제 피난의 문제와 식품 안전의 문제, 어린이 안전의 문제 등 심각한 피해 상황을 알리면서, 정부와 도쿄전력의 즉각적인 사태 수습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계속되는 지진 집회는 후쿠시마현 평화포럼 의장 유노카와 마모루씨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유노카와 의장은 ‘오늘도 진도 6의 지진이 발생했고, 2-3일 전에는 큰 비가 내려 피해를 입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집회 당일 새벽, 후쿠시마에서는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여진이, 그 빈도는 줄었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7일부터는 650mm에 달하는 큰 비가 내려 대피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유노카와 의장에 따르면 현재 강제 이주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숫자만 7만 3천 명에 이른다. 그러나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인해 행정력이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상황이라 정확한 숫자나 이주 지역, 실내 대피하고 있는 주민들의 숫자와 상황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후 처음에는 발전소 반경 3km를 피난 구역으로 설정했던 일본 정부는 조금씩 피난 범위를 넓혔고, 현재 반경 30km가 완전 소개 지역이 되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곳으로 이주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고, 헤어져 살고 있는 가족도 많다. 약자에게 더 집중되는 피해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피해는 어린이나 노약자,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집중된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후쿠시마현 평화포럼 대표 다케나카 유이치씨는 ‘28만 명의 어린이에게 대량으로 방사성 물질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금 여름 방학 기간인데, 1학기를 마치고 다른 지역의 학교로 전학 가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이주해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거나, 다른 지역에 친척이 있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다른 곳에 연고가 없어 이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감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고 다케나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또한 핵발전소 사고와 지진, 쓰나미로 인해 생계를 잃은 많은 후쿠시마 현민들이 핵발전소 수습 작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더 이상 농사를 짓게 될 수 없어 자살하는 농민들이 있는데, ‘후쿠시마는 이제 더는 안 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93세의 노인도 있다고 한다.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현실 이후 후쿠시마 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다테 마을에 살고 있다가 현재도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토 켄타씨는 3월 11일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사고 당일 직장에 있던 사토씨는 지진이 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정전이 되어 있었고,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TV나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자동차 라디오를 통해 재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3월 중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고농도 방사능이 대량 누출되었지만 전혀 모르고 살고 있었고, 이다테 마을 주민들이 상당한 피폭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후쿠시마 사람들은 여전히 부족한 정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매일 160km를 통근해야 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근처의 후타바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요시다 히로마사씨가 다음 증언에 나섰다. 요시다씨는 사고 당일 집에 있기 불안해서 가족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 차를 세워두고 밤을 보냈다고 한다. 다음날 요시다씨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당장 피난하라!”고 말했다. 요시다씨가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물으니, “모른다. 우리는 홍보만 하고 있다. 당국에 물어 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현재 후타바군에서 160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나미에마치에 회사가 있는 아내는 출근을 할 수가 없어 결국 직장을 잃었다. 요시다씨는 매일 160km 거리를 통근하고 있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요시다씨의 고통은 본인과 가족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사인 그는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음아파 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한 아이는 그에게 “선생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사고 지역에서 도망치는 것, 정보를 모으는 것,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요시다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무력감 속에서 상처받고 있는 것은 어른들만이 아니다. 사고 직후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힘내라 동일본’이라는 구호가 많이 등장했다. 후쿠시마 시내 곳곳에도 ‘힘내라 일본! 힘내라 후쿠시마!’라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요시다씨는 ‘힘내라고 하지만, 어떻게 힘낼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힘을 내면 복구가 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핵발전소의 피해자는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탈원전이어야 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쳤다. 아픈 딸아이를 지켜보며 마지막 주민 보고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고리야마시에 살고 있는 마츠모토 노리코씨였다.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사고 당일 후쿠시마시에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창피하지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후쿠시마에 핵발전소가 10개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력회사나 정부에서 ‘핵발전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자신의 딸은 코피를 흘리고 복통을 호소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인터넷만 뒤졌다고 한다. 그녀는 결국 중학교 1학년 딸을 도쿄에 있는 여동생 집으로 보냈다. 자신은 친척이 있어 아이를 보낼 수 있었지만, 연고가 없어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어머니들이 많다고 그녀는 말했다. 마츠모토씨는 앞으로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며, 끝으로 ‘원전은 필요 없다. 그것만이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후쿠시마의 분노를 들어라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마치나카 광장에서 후쿠시마 역까지 약 1시간가량 행진을 진행했다. ‘방사능 없는 후쿠시마를 돌려내라!’, ‘모든 원전을 없애자!’, ‘어린이의 미래를 지키자!’, ‘모든 피해를 보상하라!’는 구호에 길가의 시민들도 열렬히 호응했다. 후쿠시마 현민 집회는 후쿠시마 현민들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더 이상 그 고통이 지속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 즉 핵발전이 없는 사회를 향한 외침이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 한국의 언론은 침착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적인 재난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성숙한 시민의식의 표본으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TV나 신문의 카메라도, 자원 봉사자도 가 닿지 못한 지역에서 사고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행동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외침은 단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운영 책임사인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과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 모든 이들을 향한 외침이며 질문이다. 핵 없는 사회를 향한 아시아 지역 연대: 8월 1일 반핵아시아포럼 국제회의 다음 날인 8월 1일에는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반핵아시아포럼 2011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제회의에서는 일본과 한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중국 등 총 8개 아시아 국가 100여 명의 반핵 활동가들이 참가해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문제, 핵무기의 문제와 이에 대항하는 투쟁 상황 보고를 진행했다. 후쿠시마 사고, 에너지 정책 전환의 시험대 첫 번째 보고는 주최국 일본의 순서였다. 환경지속사회 연구센터의 타나베 유우씨는 후쿠시마 사고만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넓혀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보아야 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타나베씨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 2030년까지 (전력생산에서) 핵발전 비중을 53%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핵발전 비중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는 이러한 계획을 완전히 무효화시켰다. 향후 국가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일본에서는 현재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고 타나베씨는 설명했다. 참고로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2008년 기준 1%에 불과한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을 2020년까지 20%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재 운행이 중지된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놓고도 커다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총 54기의 원자로 중 39기의 원자로가 정지되어 있고, 15기만이 작동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계획 절전을 시행하고 있는 도쿄에서는 지하철역을 비롯해 곳곳에서 시간대별 전력 공급량 수치를 볼 수 있는데, 필자가 도쿄에 머무르면서 본 수치는 많아 봐야 70%대를 넘지 않았고 대부분 50-60%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건물 자동문 2곳 중 1곳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가동되는 엘리베이터 1-2기를 줄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불편을 느낄 수 없었다. 지하철의 냉방 시스템도 충분히 작동되고 있다고 느낄 만큼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도시의 엄청난 전력 수요와 이를 기반으로 확대되는 핵발전 정책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 도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타나베씨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 문제를 언급했다. 최근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핵발전소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타나베씨는 일본이 핵발전소 수출을 위해 여러 나라와 원자력 협정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베트남과 원자력 관련 협정을 맺고 현지에서 입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본의 히타치와 도시바는 이미 대만에 핵발전소를 수출한 바 있다. 탈핵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 진영의 연대 확장 타나베씨의 발표에 이어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 공동대표가 현재 일본의 운동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 핵발전소 수출 정책을 전환시키기 위해 탈핵운동 진영과 에너지전환 운동 진영이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반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원자력자료정보실과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 그 밖에 여러 운동 단체들이 함께 일본의 에너지 정책 전환, 탈핵을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9월 19일에는 도쿄에서 5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 실천 투쟁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번 반핵아시아포럼에 참여한 분들이 9월 19일에 다시 도쿄에 모여 아시아 지역 연대 투쟁을 상승시켜가자고 호소했다. 내진 설계가 일반 주택만도 못한 핵발전소 두 번째 보고는 대만의 순서였다. 대만 참가자 대표로 발표에 나선 국립타이완대학교의 카오쳉얀 교수는 대만 핵발전소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대만에서 핵발전이 시작된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978년인데 현재 3개의 핵발전소에서 6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고, 또 하나의 핵발전소(원자로 2기)가 건설 중에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자연 재해에 대한 핵발전소의 대비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카오 교수에 따르면 현재 대만의 주택 내진 설계 기준은 0.33g(중력가속도)인데, 제1 핵발전소의 내진 설계는 0.3g에 불과하다. 또한 건설 중인 제4 핵발전소의 쓰나미에 대한 대비는 처오름 12m 수준인데, 내진 설계에 따른 최대 지진인 8.5 진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25m의 쓰나미가 닥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최고의 안전 설비를 자랑하던 핵발전의 안전 신화는 깡그리 무너졌다. 인간의 예상을 초월한 자연재해 앞에서는 그 어떤 대비도 완벽할 수 없으며, 그 후과는 너무나도 엄청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 대만의 핵발전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제대로 구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핵무기와 연결된 핵발전 정책 인도의 상황을 보고한 반핵운동 전국동맹(National Alliance of Anti-Nuclear Movements)의 S.P.우다야쿠마 박사는 핵발전은 결국 핵무기와 연결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도의 역사,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발표를 시작한 우다야쿠마 박사는 인도는 핵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한 에너지가 있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태양광이 남아돌 정도로 더운 나라이며, 삼면이 바라도 둘러싸여 해안선이 무려 7,500km에 달해 파력 발전 등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히말라야 같은 지역에서는 1년 동안 바람이 계속 불어 풍력 발전의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우다야쿠마 박사는 인도가 핵에너지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오로지 핵무기를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파키스탄과의 갈등, 잠재적 위협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대비 등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인도는 핵무기 개발에 매달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이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NPT(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하지도 않은 인도와 원자력협력협정을 맺고 굉장히 많은 기술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했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핵, 그러나 인민을 죽이는 핵 중국 상황에 대해 발표에 나선 태평양 환경(Pacific Environment)의 웬 보씨는 중국의 핵무기 개발 역사에 대한 설명에 주력했다. 1964년 10월 16일, 처음 핵실험을 한 중국은 냉전 시대 제국주의 국가의 공격을 막기 위한 ‘핵 억지력’이라는 미명 하에 중국의 핵무기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핵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핵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지금까지 총 45회의 핵실험(대기권 23회, 지하 22회)을 진행했는데, 그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된 바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웬씨에 따르면 중국은 ‘8023 부대’라는 핵 부대를 창설했다고 한다. 150명 정도로 구성된 이 부대는 핵실험 지역에서의 시료 채취나 실제 핵공격이 진행될 경우에 지상부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와 같은 작전 계획 수립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핵폭발이 주는 건강 피해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고, 그에 대비하는 보호 장구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핵실험 지역에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탱크를 이용했는데,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 탱크 운전이 매우 명예로운 일로 여겨져 서로 자원했다고 한다. 웬씨는 8023 부대에서 퇴역한 군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핵실험 당시 이 부대를 지휘했던 사령관은 62세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현재 8023 부대 퇴역 군인들은 당시의 진상 규명과 건강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 지역 연대로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 마지막으로 공동 성명서 채택을 위한 전체 토론이 진행되었다. 8개 국가의 참가자들은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공통의 인식 마련을 위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공동 성명을 채택한 참석자들은 내년 반핵아시아포럼을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3월 서울에서 진행할 것을 결의하며 이날 국제회의를 마무리했다. 일본은 과연 탈핵의 길을 향해 가는가?: 8월 2일 일본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항의방문 지난 8월 2일 반핵아시아포럼 2011 참가자들은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항의방문을 진행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운영 주체이고, 경제산업성은 일본 핵발전의 추진과 감시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정부부처다. 전날 국제회의를 통해 경제산업성 장관 카이에다 반리와 도쿄전력 사장 니시자와 토시오 앞으로 전달할 요청서를 채택한 100여 명의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먼저 경제산업성으로 향했다. 우리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경제산업성에서는 계장급 이하 젊은 직원들이 항의방문 대오를 맞았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약 15분간 진행된 면담은 항의방문 대오가 전달한 요청서 항목별로 경제산업성의 입장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관리들은 일본 정부가 최대한의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예를 들어 항의방문 대오가 전달한 요청서 3항 ‘사고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사고의 진실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해 주십시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는 사고지에서 수집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방사능 오염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피 문제에 대해서는, ‘제1 핵발전소에서 고농도 방사능이 나와 사람들을 피난시켰다’고 답했다. 정부의 대응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이 직접 후쿠시마에서 보고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핵발전소 수출은 정부의 소관이 아니다 이러한 경제산업성의 무책임한 태도는 핵발전 정책과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서 극에 달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모든 원자로를 폐로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 ‘핵발전소 폐기는 일본 전체의 에너지 정책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라고 답했다. 전체 에너지 정책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식이다.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책임을 민영 기업에게 떠넘기기까지 했다. 면담에 참여한 정부 관료는 ‘핵발전소 수출은 정부가 아니라 사기업이 진행하는 것’으로서, ‘정부가 뭐라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나 핵기술의 노하우 전수 문제 등에 대해 수출 대상국과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핵발전소 수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거래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일본이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짧은 면담을 마치고 나온 대오는 경제산업성 앞에서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후쿠시마 현민들을 비롯해 수많은 민중이 미흡한 사고 수습 상황과 재해 지역 구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경제산업성의 태도에 참가자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대만에서 온 참가자는 ‘일본과 대만은 무척 가까운 나라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원한다’면서 경제산업성의 태도를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도시바와 히타치가 대만에 원자로를 수출’한 상황을 지적하며,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이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에서 온 참가자는 ‘후쿠시마 사고로 전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이 세계에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항의방문 대오는 약 30여 분간 경제산업성 앞에서 규탄 발언을 이어간 뒤 도쿄전력으로 향했다. 복구는 로드맵에 따라 반핵 선전물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대오는 도쿄전력에 다다랐다.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던 도쿄전력 본사 건물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고, 경찰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면담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별관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면담장에는 도쿄전력 홍보 담당으로 보이는 3명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면담에 참가한 도쿄전력 직원은 ‘혼란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반핵아시아포럼 여러분의 요청서를 회사로 가져가서 매우 주의 깊게 검토할 것’이라 덧붙였다. 면담 참가자들은 경제산업성에서 동일하게 요청서 문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도쿄전력 측은 2011년 5월 20일 자로 배포된 보도자료를 제시하며, 도쿄전력이 설정한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사고 복구를 위한 로드맵’에 따라 사고 수습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항의방문이 이루어진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 사이에서 치명적 수준의 방사선량(시간당 10Sv; 노출 시 즉사)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세운 로드맵에 따른 수습 절차를 믿으라는 식이었다. 도쿄전력 측은 또한 ‘후쿠시마 지역과 도쿄 지역의 상황에 대해 매일 알리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빨리, 갖고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핵발전소 수출은 중단하겠다 핵발전소 수출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필리핀에서 온 참가자는 도쿄전력이 필리핀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려 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다. 도쿄전력 측은 후쿠시마 사태 수습과 사고 보상을 위해 해외 자본과 인력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후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의 수준과 방식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도쿄전력이 감당해야 할 몫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 수준의 지분 매각이나 해외 자본 철수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도쿄전력이 핵발전소 수출을 시도하고 있던 대상국으로서는 도쿄전력의 이러한 입장이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 차원에서 핵발전소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볼 때 도쿄전력이 아니라 다른 전력회사에 의한 핵발전소 수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향후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은 핵발전소로 이윤을 얻지만, 민중들은 피해를 당한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던 대오와 합류해 면담 내용을 공유하고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인도의 반핵운동 전국동맹의 S.P.우다야쿠마 박사는 ‘핵발전소를 통해 도쿄전력은 이윤을 얻지만, 민중들은 모든 피해를 떠안는다’면서 ‘도쿄전력은 악의 기업’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도쿄전력 측의 핵발전소 수출 철회 이야기로 희망을 얻게 되었다는 필리핀 참가자는 '필리핀의 핵발전소 수출 저지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서 핵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이와이시마, 29년간의 끈질긴 투쟁: 8월 3일 이와이시마 지역 간담회 8월 3일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히로시마 서남쪽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정의 이와이시마로 향했다. 이와이시마는 가미노세키정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섬이다. 이 작은 섬 마을에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처음 나온 것은 1982년이다. 양식을 전혀 하지 않는 전통적인 방식의 어업과 비파 농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작은 마을에 원자로 2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일본에서 제일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세토 내해에 인접한 아름다운 환경을 지닌 섬마을을 지키고자 한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29년 동안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줄기차게 싸워오고 있다. 평화로운 지역의 분할 가미노세키 핵발전소 문제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당시 가미노세키 정장이 정의회에서 기업 유치의 일환으로 핵발전소를 유치하자고, 정의회의 합의가 있으면 건설을 추진하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역 경제가 무너져 정부의 지원금이 절실해 핵발전소를 받아들였던 후쿠시마처럼, 점차 인구가 줄어 지자체 재정이 부족했던 가미노세키 역시 발전소 유치를 통해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작고 평화로운 지역의 분할을 가져왔다. 일부 주민들은 지역 사회의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핵발전소를 수용하는 것 말고 선택지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에서 불과 4km 떨어진 이와이시마의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어업을 포기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금도 거부한 채 매주 월요일마다 29년째 핵발전소 건설 반대 집회를 이어왔다. 온 몸으로 저항하다 20년이 넘는 이와이시마 주민들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2008년 10월, 야마구치현 지사는 핵발전소 건설 준비를 위한 전력회사의 매립권을 승인했다. 전력회사는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 주변 토지를 통제하고 바다에 부표를 설치해 주민들과 선박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건설 예정지 주변에 통나무집을 짓고 전력회사의 매립 작업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올해 매립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자재와 6백여 명의 작업원을 실은 전력회사의 배 20여 척이 새벽 2시에 이와이시마 앞바다로 들어왔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어선과 조그만 보트 30여 척을 동원해 바닷길을 막고 버텼다. 작업선이 들어올 때마다 주민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작은 어선으로 맞섰다. 전국적인 반대서명도 조직했다. 지난 8월 1일 자로 반대서명은 1백만 명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전력회사의 건설 작업은 조금씩 진척되었다. 올해 초에는 굴착 공사가 진행되는 등 매립 직전 상황까지 갔다. 그러던 중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고, 3월 29일 매립 작업은 중단되었다. 야마구치현지사는 향후 전력회사가 매립 허가 요청을 다시 내더라도 결코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끝나지 않은 싸움 그러나 이와이시마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와이시마 주민인 토시야스 시미즈씨는 “향후 3년 정도는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되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 내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고 있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정권의 위기를 겪고 있던 간 총리는 조만간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리가 바뀌거나, 향후 정권이 바뀔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도쿄전력이 아시아 국가들에 핵발전소를 수출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다른 전력회사가 추진할 수 있는 것처럼,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와이시마의 싸움은 끝날 수 없다.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과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8월 6일 함께 가미노세키 핵발전소 건설을 책임지고 있는 전력회사인 ‘중국전력’을 항의방문하면서, 향후에도 이 싸움에 함께 연대할 것을 결의했다. 남겨진 과제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그 어떤 해보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일정으로 구성된 이번 반핵아시아포럼은 8월 6일 중국전력 항의방문과 집회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한국과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 경쟁 등, 이른바 ‘핵 르네상스’ 정책으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던 핵발전 확대의 흐름은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상당부분 진도가 늦춰지게 되었다. 29년 간 주민들의 투쟁에도 핵발전소 건설을 지속하려 했던 가미노세키의 사례나 해외 진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도쿄전력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반핵 운동 진영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도쿄전력이 해외에서 철수하더라도, 혹은 중국전력이 가미노세키에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핵발전 확대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의 기억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희미해져 간다면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재앙의 씨앗은 다시 잉태될 수 있다. 후쿠시마의 상황과 현지 주민들의 외침을 널리 알리고, 그들의 희생을 통해 새로운 재앙의 싹을 제거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3일 뒤 이명박 대통령은 UAE에서 핵발전소 기공식을 진행했다. 또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일본 원전 사고가 생겼다고 해서 (핵발전소가)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인류가 기술면에서 후퇴하는 것”이라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에서 탈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구체적인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이었다. 내년 3월 서울에서 두 번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핵테러리즘의 차단, 핵물질의 안전보장 등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는 물론 직접적으로 핵발전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취약한 핵물질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핵무기 보유국의 절대적 권력을 보존하고, 핵발전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서울의 핵안보정상회의는 결국 탈핵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자리일 수밖에 없다. 이번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내년 반핵아시아포럼을 3월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한국에서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내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세계 정상들과 탈핵의 흐름을 확대하려는 민중들의 격돌의 장이 되어야 한다. 후쿠시마의 분노와 외침이 재난을 당한 일부 사람들의 호소가 아니라 인류가 탈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내년 핵안보정상회의 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핵안보’를 논의하는 정상회의가 아니라, ‘탈핵’을 위한 정상회의, 탈핵의 길을 밝히는 민중회의다.
피폭 66주년 원수폭금지대회 국제회의 2차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 지난 8월 5일 히로시마 YMCA 국제문화홀에서 160여 명의 반핵평화 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피폭 66주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국제회의’가 진행되었다. 작년 G20 정상회의 기간에 진행된 ‘G20 민중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진영은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은 한국과 일본 정부, 핵산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핵발전소 수출과 핵확산 움직임에 맞서 양국 시민사회 단체의 공동행동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을 통해 양국의 반핵평화운동 진영은 1>핵발전의 문제는 결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으며, 탈핵의 길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2>핵발전의 문제는 핵무기의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3>핵 문제에 있어 각국의 반핵운동과 평화운동은 긴밀히 연결되어야 하며, 그러한 경험은 축적되어야 한다는 등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따라서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이 단기적 이벤트가 아니라 양국의 반핵발전소-반핵평화 운동 간의 지속적인 연대운동으로 이어져야 함을 확인하고, 올해 일본 히로시마에서 두 번째 반핵포럼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을 기점으로 일본에서 전국적 규모로 진행되는 반핵대회(원수폭금지 세계대회 히로시마 대회) 기간 동안 하나의 분과회의 형태로 두 번째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을 진행하게 되었다. 핵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국제회의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실행위원장이자 원수폭금지 일본 국민회의 의장 가와노 류이치씨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나가사키 피폭자인 가와노 위원장은 자신의 피폭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비참한 역사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핵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현재 핵무기는 분명 감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 핵 위협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핵비확산조약(NPT)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실현되지 않았고, 작년 NPT 평가회의에서 이루어진 합의 사항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와노 위원장은 현재 일본은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 일본은 54기의 핵발전소 중 39기가 정지해있다. 단지 15기의 핵발전소만이 가동되고 있지만 일본에 있는 동안 큰 어려움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늘어난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정부와 핵산업계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내년 봄에는 나머지 15기도 정기점검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지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멈춰있는 39기의 핵발전소가 그때까지 재가동되지 않는다면, 일본은 자연스레 핵발전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일본 정부나 핵발전 찬성파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정지된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대체 가능성을 밝히는 것이 현재 일본 반핵운동의 과제라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이어진 원수금 사무국장 후지모토 야스나리씨의 기조연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쿠시마에서 탈핵사회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기조연설에서 후지모토씨는 "후쿠시마 사고로 혹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 우리는 핵과 어떻게 살아갈지 질문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 아래 핵발전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것은 군사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핵발전소의 재가동과 증설 반대, 핵 사이클의 완전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얼마 전부터 시작된 ‘안녕 핵발전소 1000만인 액션’을 소개하면서, 시민사회가 반핵과 탈핵의 큰 흐름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그는 오늘의 국제회의를 계기로 더 강력한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시켜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제1 세션: 후쿠시마 사고를 생각한다 열악한 피난 생활 제1 세션은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상황 보고였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근처인 현 동부 지역은 심각한 오염지역이다. 여기에는 고리야마, 후쿠시마시, 그리고 니이가타 지역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바다 쪽에 있는 후타바마치, 오오쿠마마치, 나라하마치 등은 대부분 완전 소개지역(사고지역 20km 권내)이다. 상황 보고를 한 후쿠시마현 평화포럼 사무국장 하라씨는 완전 소개지역과 계획적 피난 구역(사고지역 20-30km 권내)의 경우 ‘행정기관조차 다 뿔뿔이 흩어져 설치’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피난민의 정확한 상황, 피난 지역,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피난 시설 거주민은 약 7만여 명, 일시 피난소에 약 2만 명, 자체적인 판단을 통해 현 바깥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약 4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피난소는 약 430여 곳이 있는데, 피난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난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보다 광범위한 피난이 필요한데도 하라씨는 현내의 오염 실태에 대해 도쿄전력과 정부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 20km 권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강제피난 되었는데, 이후 확인 결과 이들이 피난한 지역이 훨씬 더 높은 오염도를 보인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난 경로에 따라 방사성 물질의 확산이 이루어져, 현지에서는 "사람들이 달리는 길을 따라 방사능도 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오염실태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으면서 이다테무라와 같은 고오염 지역이 한 달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주민들의 건강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 정부는 사고 후 피난 기준을 연간 20mSv(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했다. 원래 일본 법률에는 연간 1mSv를 허용치로 적시하고 있으니, 기준치를 20배 올린 셈이다. 그러나 원래 법률에 적시된 기준치로 보면 현내 거의 모든 지역이 해당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기준치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하라씨의 설명이다. 피폭자 담당 의사인 후츠 카츠미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 지역에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법률상 4만 Bq(베크렐) 이상의 지역은 ‘방사능 관리구역’이다. 방사능 관리구역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갔던 사람은 1년에 한 번씩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먹을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아직도 1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후쿠시마현 중앙에 위치한 인구 33만 명의 고리야마시는 시간당 1μSv(마이크로시버트) 전후의 방사선량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핫스팟’이라 불리는 고선량의 지역도 존재한다. 법률상 원전 노동자나 의료사업자의 피폭 허용치는 매 시간당 0.6μSv인데, 상당한 지역이 이 수치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기준치를 올린 데에는 또 하나의 추론이 가능하다. 만일 법률 상 기준치를 적용할 경우 배상 대상이 너무 커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기준치가 높아지면, 높아진 기준치 이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는 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교야구 전국대회 예선전을 강행한 데에서 알 수 있듯, 현민들의 건강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지역 경제를 망쳐버린 핵발전소 건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은 ‘후쿠시마의 티벳’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인구가 점차 줄어들었고 지자체의 재정이 매우 어려웠다. 결국 핵발전소 건설 대가로 지급되는 교부금 때문에 손쉽게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건설될 수 있었다. 지역은 언뜻 풍요로워진 것 같았지만, 결국은 호사스런 건물들이 들어오고 그 유지비만 떠안게 되었다고 하라씨는 말했다. 핵발전소와 관련되어 고용이 증가한다고 했지만, 발전소 건설 이후에는 다시 일자리가 사라졌다. 또한 지역에 원래 존재하던 산업의 육성을 뒤떨어지게 하여 핵발전소 이외 산업에서의 취직이 더 어려워졌고 핵발전소에 대한 의존도만 커졌다. 핵발전소가 들어선 후타바정은 다시 재정위기에 빠졌고, 정장이나 직원의 보수까지 깎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줄어든 교부금에 허덕이던 정은 다시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고, 결국 10개의 핵발전소가 집중되게 되었다. 제2 세션: 핵발전소의 해외 수출 문제를 생각한다 핵발전 산업의 시장 재편 제2 세션에서는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 상황에 대해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의 발표가 이어졌다. 반 대표는 핵발전 역시 산업이라는 점에서 시장이 작아짐에 따라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에는 일본 내 11개의 관련 회사가 있었지만, 1990년대 8개로 줄었고 계속 줄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도시바, 히타치, 미츠비시 3사가 협력하면서 핵발전 확대를 추진해왔는데 1970-1980년대 사이에 굉장히 많이 지어졌지만, 1990년대부터 차츰 줄어들어 현재 건설 중인 것은 2기에 불과하다. 국내 수요를 찾을 수 없는 핵발전 제조사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지속되는 핵발전소 수출 정책 반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경제산업성의 핵발전소 수출 정책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도시바와 히타치는 핵발전소 건설 시찰 건으로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다. 이 시찰 후 도시바와 히타치가 리투아니아 핵발전소 건설의 우선적인 교섭권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물론 미국 남텍사스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려던 프로젝트는 미국 쪽의 거부로 백지화되었지만, 그만큼 일본 정부와 핵발전 제조사들은 핵발전을 새롭게 시작하고자하는 개발도상국과 같은 다른 루트를 발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제3 세션: 에너지정책의 전환을 향하여 에너지 수요 9%만 줄이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 일본의 핵발전소는 총 54기 중 15개만이 가동되고 있다. 또한 8월 들어 가시와자키 핵발전소에서 2기가 중지되었고, 점차 가동을 중지시키고 있다. 중지된 핵발전소의 가동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내년 봄에는 모든 핵발전소가 중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 여름에는 핵발전 없는 여름을 맞게 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에 그러한 상황이 오면 9% 정도의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9% 정도의 수요만 줄이면 핵발전 없이도 충분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현재 일본 반핵운동 진영에서는 가동 중단된 핵발전소의 운전 재개를 막는 것이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투자와 정책의 우선순위로 해결할 수 있어 제3 세션 두 번째 발표자는 독일 녹색당 부대표인 베벨 헨씨였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기도 한 그녀는 독일의 탈핵 움직임을 소개했다. 그녀는 독일이 탈핵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후쿠시마 사고가 하나의 분수령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대안에너지 정책과 투자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이후 일찍부터 대안에너지에 집중한 독일은 2000년 들어서 풍력, 바이오매스, 태양열 등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이 크게 증가했다. 2010년에는 전체 에너지 생산의 17%를 이러한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생산된 재생가능에너지를 에너지 기업이 고정된 가격으로 구매해주는 ‘고정가격 보장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것에 투자할 수 있다는, 그리고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독일에서는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에너지 생산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베벨씨는 이러한 법의 틀이 기업이나 농민, 개개인의 시민이 같이 하는 태양열 판, 풍력 터빈,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산업의 발달과 고용창출 효과 베벨씨는 핵발전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핵발전에 대한 환상이 다른 대안적인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투자를 정체시키기도 하고, 고용 창출을 방해하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재생가능 에너지는 독일에서 크게 성장했고, 독일 경제의 주축이 되었다. 작년만 해도 400억 달러를 넘는 금액이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센터에 투자됐다. 전력 생산에서 핵발전 비중이 70%를 넘는 프랑스에서도 핵발전에 대한 투자는 40억 달러에 불과하다. 또한 독일에서는 40만 명의 고용이 재생가능에너지센터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핵발전 관련 고용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그녀는 재생가능에너지 경제를 통해 독일은 점차 고용을 확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핵운동의 과제 국제회의 참가자들은 우리가 탈핵의 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후쿠시마의 현실을 세계 각지에 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지적했다. 후쿠시마 현지민들의 보고와 일본 활동가들의 발언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고 듣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후쿠시마의 상황을 전하면서 "핵과 인류는 공생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점은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지적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일본의 반핵운동이 연대활동을 펼치는 것, 각국의 반핵운동이 연대활동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가 이러한 연대활동을 자연스레 보장하지는 않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는 대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 내의 반핵운동 진영에서도 아직 핵발전소에 대한 입장은 통일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8월 7일에 진행된 ‘피폭 66주년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나가사키 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회의 공동주최 중 한 단체인 핵병기금지평화건설국민회의(핵금회의) 부의장이 개회인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가려는 순간, 객석에서는 수많은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발언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객석에서는 "핵발전 문제는 이야기 안하냐?", "핵발전 찬성하는 거냐?"는 격한 반응들이 나왔다. 원수금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핵금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단위들 중 전력회사 노동조합, 핵발전 관련 노동조합들이 있기 때문에 핵금회의는 아직까지 핵발전소 자체에 대한 반대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력회사나 핵발전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 생존권 문제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운동 진영 내에서조차 탈핵의 흐름을 키워가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사례가 전체 사회운동과 결합하지 못하는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세계 각지의 반핵운동은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답해야 할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제주해군기지 공사 강행, 주민 불법 연행 정부와 경찰을 규탄한다 24일 제주해군기지 공사 재개를 막으려던 강정마을 주민 5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시공업체가 250톤짜리 불법 크레인을 조립했는데, 이를 막으려던 마을주민들과 활동가들을 강제 연행한 것이다. 서귀포시청 관계자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던 시민들을 막무가내로 연행한 것은 해군기지 건설이 불법적이고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경찰 스스로가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석 달 전에 공사현장으로 들어온 250톤 크레인에 대해 서귀포시는 이미 불법 공사 시설물이라고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해군기지 예정 부지에는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제주도의회는 지난 3월 절대보존지역 해제 취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군기지사업단이 수행한 환경영향평가 역시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이 보고되지 않은 부실한 조사임이 드러났다. 정부가 앞장서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서귀포시는 방조하며 경찰은 비호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군기지 건설이 마을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전설명회나 공청회도 없이 강정마을 주민 1900여명 중 87명 만이 모여 유치결정이 이루어졌으며, 지속적이고 폭넓은 반대의사 표명에 대해서도 묵살과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주민들은 반대행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기획 연행’이라고 주장했다. 공사가 재개되면서 국방부 출입 기자단이 공사현장에 들어오고, 일시적 항의행동을 하는 주민들을 일사천리로 연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해군기지사업단 내에는 사복경찰이 수십 명 배치되어 있었고, 주민들이 항의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나와 연행했다. 9월 3일 제주로 향하는 평화의 비행기가 예정되는 등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문제가 점차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해야 할 경찰이 권력의 수족이 되어 불법을 자행하는 현실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경찰은 연행자를 석방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파기하고 강동균 마을회장과 주민 김종환, 평화운동가 김동원 씨 3명에 대해 ‘업무방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한 강제연행 과정에서 경찰차량을 저지한 문정현 신부도 연행했다. 뿐만 아니라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서귀포경찰서장을 경질하고 강호준 제주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신임 경찰서장으로 발령했다. 앞으로 평화를 위한 주민들의 실천에 더욱더 심한 폭력으로 대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해군기지 공사 강행과 연행자들에 대한 구속수사 방침은 사태를 더욱 더 악화시킬 뿐이다. 탄압이 심해질수록 평화를 원하는 민중의 저항은 더욱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식을 벗어난 경찰의 도발을 강력 규탄하며 다음을 요구한다. - 경찰은 불법적으로 연행한 마을주민들과 활동가를 즉각 석방하라! -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즉각 처벌하라! -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토론을 위해 번역한 것입니다. * <사회운동> 2006년 10월호에 실린 <전쟁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전쟁: 포스트-클라우제비츠적인 변이들>(에티엔 발리바르)도 참조할 수 있습니다.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60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tienne Balibar, ‘Marxism and War’, “Radical Philosophy”, March/April 2010. 마르크스주의와 전쟁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목차> 내전으로서 계급투쟁: 정치적인 것의 새로운 개념 전쟁과 자본주의 전쟁과 혁명 윤리, 정치, 인간학
2회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에 주목한다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세계 여러 나라가 핵발전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사고 전부터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을 ‘핵발전소 없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했다. G8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간 총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2020년대까지 가능한 빨리 자연에너지(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현재 약 9%)로 끌어올리도록 대담한 기술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5일 스위스는 2034년까지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향후 10년 내 기존의 핵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지난 6월 12, 13일 핵발전 부활을 위해 이탈리아 정부가 실시한 국민투표에서는 유권자의 약 94% 반대표를 던졌다. 2014년부터 4기의 신형 원자로를 건설하고, 핵발전의 비중을 25%까지 높이겠다던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제 핵발전은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재생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강고한 찬핵여론 이러한 상황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달라진 여론의 추이를 반영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5월 26일 일본, 미국, 프랑스, 러시아, 한국, 독일, 중국 7개국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찬성이 다수를 차지했고, 한국과 중국은 비슷하며, 독일과 러시아, 일본에서는 반대가 다수를 차지했다. 일본은 사고 후 처음으로 반대 여론이 찬성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반핵의 비율이 사고 전 27%에서 사고 후 45%로 크게 증가했지만, 찬핵의 비율은 49%에서 45%로 소폭 감소했을 뿐이다. 한 반핵운동가는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반대로 돌아선 결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한국의 찬핵 이데올로기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강고한 한국의 찬핵 이데올로기는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방문해 “일본에 원전 사고가 생겼다면서 (원전이) 안 되겠다고 하는 건 후퇴하는 것”, “(원전 포기는) 인류가 기술 면에서 후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핵발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은 인류의 기술을 후퇴시키고 있는 셈이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증폭된 반핵 여론에 밀려 정책 전환을 하고 있는 나라들을 비웃으며 이명박 정부는 핵발전 확대 정책을 굳건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의 찬핵 논리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국책연구소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흥미로운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일본의 원전사고 발생 이후 주요국의 원전 정책 방향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이후 여러 나라의 핵발전소 정책 변화를 짚어보며 그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로 인해 핵에 대한 경각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존의 원자력 정책을 계속 추진할 전망이다. 모든 국가들은 원전에 대한 관리 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신규 건설 시 보다 강화된 안전기준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나 핵발전소의 가동 중단과 폐쇄 같은 조치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 둘째, 대부분의 핵발전 국가들은 전력의 대량공급원으로서 핵발전 비중이 매우 크다. 이와 더불어 경제적 효율성이나 환경에 대한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대안에너지원을 발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기존의 핵발전 확대정책을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 셋째,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주요 발전자원은 정세가 불안한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 안정성과 가격 변동이 심하다. 수력과 풍력,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는 기후 의존적이며 대규모의 안정적인 공급이 어렵다. 하지만 핵발전의 경우 재료인 우라늄이 지구상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고 발전원가가 낮아 안정성이 확보될 경우 가장 유력한 발전원이다. 넷째, 위와 같은 이유로 일본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비중은 당분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기존 핵발전소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핵발전이 전력 공급원으로서 비중이 크고, 여타 화석연료와는 달리 매장량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안정성만 확보된다면 가장 유력한 발전원이라는 말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로 핵발전의 안정성을 언급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기존의 찬핵 논리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류의 삶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고 다른 현실적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이 불가결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핵발전의 비중이 크다? 에너지원으로서 핵발전의 비중은 나라마다 다르다. 보고서에 제시된 나라들 중 핵발전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프랑스인데, 전체 발전량의 75%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는 34.1%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력 생산에 대한 통계임을 유의해야 한다. 핵발전은 모두 전력 생산에 사용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에너지 중에서 전력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2009년 한국의 최종 에너지 소비를 보면,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8.6%에 불과하다([표 2]). 그리고 이 전력을 생산하는 것 중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4.1%다([표 3]). 2009년 한국의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에 불과하다. 이는 지구적 수준에서 봐도 그렇다.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이고, 핵발전은 전 세계 전기 생산의 15%를 차지한다. 따라서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핵발전은 2.4%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몇몇 국가들의 전력 생산에서 핵발전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 차원에서 보면 핵발전의 비중은 대단히 작다. 핵발전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핵발전소 운영에서 온실가스가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핵발전을 통한 전기 생산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핵발전은 과대하고 복잡한 산업 기반 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핵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의 전체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우라늄의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는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해 충당된다. 그린피스는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 「에너지기술전망 2010(Energy Technology Perspective 2010)」에 제시된 에너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자료는 전 세계 핵발전 능력이 2050년까지 4배 증가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하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통해 감소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 비율은 고작 4%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증가를 위해서는 새로운 원자로가 1,400기 필요하기 때문에 2050년까지 거의 10일마다 하나씩 새 원자로가 건설되어야 한다. 이에 들어갈 비용은 현 시세로 미화 10조 달러를 초과한다. 또한 핵발전소는 빨리 지어질 수 없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피크에 도달하게 될 단기간 내에 파국적인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그 어떠한 변화도 창출해낼 수 없다. 핵발전소의 평균 건설 기간은 1970년대 중반 66개월이었지만, 현재 116개월이다. 만약 핵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대폭 증설된다고 해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유용한 에너지는 사용 후에 결국 폐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이 에너지는 결국 열의 형태를 띠게 된다. 핵발전으로 지구 내 에너지의 증가가 지속되었을 때 지구의 기온 평형이 깨져 기후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핵발전소는 방사성 물질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온실가스 일부를 줄이기 위해 방사성 물질 배출을 대폭 늘리는 것은 인류에게 ‘구원’이 아니라 ‘재앙’일 따름이다.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우라늄은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에너지 자원의 이용 예상기간은 석유가 40년, 천연가스가 60년, 석탄이 230년이며, 우라늄은 3,600년이다. 그러나 우라늄의 경우에는 ‘재처리 시’라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재처리는 사용한 핵연료를 다시 발전의 원료로 쓰도록 가공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 재처리를 고려하지 않고 우라늄 매장량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경우에는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대략 60-80년 정도로 얘기된다. 따라서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더불어 양질의 우라늄 광석은 제한적이다. 농도가 낮은 저등급 우라늄을 사용하면 제련과 농축에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하고, 따라서 다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재처리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는 경제성이 떨어지며, 안전하지도 않다는 게 중론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연료로 사용하는 고속로가 실용화된다고 하더라도, 재처리 과정에서 단 1%의 플루토늄을 제외하고는 별로 쓸모없는 우라늄과 기타 방사성 물질들이 남는다. 2006년 4월에 진행된 일본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의 시험 가동에서는 가동 개시 12일 만에 방사능 누출이 발견되어 재처리 시설의 높은 위험성이 드러났다.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은 애초 2006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18번이나 연기되어 2012년 10월에나 완공될 예정이고, 건설비용도 애초 7,000억 엔의 3배인 2조 1,930억 엔(약 29조 7천억 원)으로 늘어났다. 또한 재처리 과정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일부 재활용한다 하더라도 중저준위 핵폐기물의 부피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게 된다. 핵발전소의 안전만 확보하면 된다? <한겨레> 4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원전은 큰 지진이나 지진해일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내용의 일본 교과서 부교재가 수정될 계획이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지극히 복잡한 핵발전소 시설에서 사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설계자인 오구라 시로씨는 지난 3월 16일 도쿄의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설계 당시 지진해일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서방의 정부들과 핵 산업계는 소련 정부의 사고 은폐 시도와 함께 체르노빌 핵발전소 자체의 문제를 대형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격납 용기와 같이 방사능의 유출을 막아줄 수 있는 차폐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차폐시설도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수소폭발과 압력제어장치 폭발로 인해 격납용기가 파손되었고 방사능 유출은 막을 수 없었다. 또한 추가적인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서 격납 용기에 구멍을 내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증기를 끊임없이 배출해야 했다. 다중 차폐시설은 더 이상 원자력 안전 신화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이는 단지 사고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핵발전을 하고 남은 폐연료봉인 고준위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핵폐기물을 방사능 수치가 통제 가능한 수치로 떨어질 때까지 콘크리트 벽 안에 격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플루토늄-239의 경우 반감기만 2만 4천 년에 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10번은 거쳐야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위험 상태’가 된다. 이에 비한다면 콘크리트 차단벽의 수명은 순식간에 불과하다. 핵발전은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후쿠시마 사태는 핵발전의 문제가 결코 개별 국가의 정책으로 이해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정부와 핵 산업계가 선전하는 것처럼 한국의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지진 위험성이 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핵사고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 여러 나라들이 피해를 입고, 사고 발생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 나라들이 보유한 핵발전소의 안전이 취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 주변은 수많은 핵발전소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많은 핵발전소들의 건설 중이거나 준비 중에 있다. 2008년 5월 대지진이 발생했던 중국의 쓰촨성에서는 2010년 말 현재 8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될 계획이다. 그러나 중국 지진대망 보도에 따르면 쓰촨성에서는 대지진 이후에만도 총 86,403회의 크고 작은 여진이 발생했다. 이중 6.0-6.9 규모의 지진이 8차례, 5.0-5.9 규모의 지진이 40차례나 된다. 또한 쓰촨성 지진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지진 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한달 동안에만 쓰촨성에서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10차례나 발생했다. 후쿠시마 사태 초기, 편서풍의 영향으로 한국은 방사성 물질의 피해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때부터 중국의 사고 위험성이 지적되었다. 광둥성, 저장성 등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중국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편서풍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피해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했다. 또한 5중의 방호벽을 자랑하던 핵발전의 안전 신화는 그저 신화에 불과했음도 드러났다. 완벽한 안전장치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수많은 사고 원인을 일일이 통제하기도 불가능하다. 정부와 핵 산업계가 주장하는 한국의 지진 위험성이 극히 낮다는 말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일본과 중국의 자연재해 위험성이 상존한다. 개별 국가가 아무리 핵발전소의 안전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재해를 통제할 수 없는 한, 인류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적극적인 국제연대의 흐름,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 핵발전의 문제는 결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으며,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탈핵의 길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반핵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세계의 사회운동들과 긴밀한 연대를 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한동안 침체되었던 반핵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다시 불붙고 있음을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확인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후쿠시마 사태 직후 6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네카베스트하임 핵발전소 주위에 45km의 인간 사슬 만들기를 하는 등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6월 11일 일본 도쿄에서는 세 곳에서 대규모의 집회가 벌어졌고, 밤에는 신주쿠역 앞에서 2만 명이 모여 투쟁을 전개하는 등 전국적인 반핵 투쟁이 벌어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의 연대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성과를 교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의 경험과 성과는 꾸준하게 축적되어야 한다. 또한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불붙고 있는 핵발전소 반대의 흐름은 반드시 핵무기 문제와 결합되어야 한다. 핵발전소와 핵무기의 문제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면 운동 진영의 대응 역시 통합적이어야 한다. 1985년 영광핵발전소 건설 중단 투쟁, 1990년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 1994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 등 강력했던 한국의 반핵운동은 애초 생존권의 문제와 더불어 한반도 비핵지대화라는 전망을 함께 갖고 있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단순히 핵무기의 배치 여부를 넘어 주한 미군과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문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한반도 변혁 전망을 포괄하는 쟁점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전술 핵무기 철수와 반핵운동의 침체 속에서 사회 변혁 전망은 유실되었고, 한국의 반핵운동은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반대를 중심으로 한 환경시민운동 진영의 것으로 축소되었다. 핵무기 문제는 반전운동 진영 일부에서만 그 명맥이 유지되었으나, 그나마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가 불거지자 그 성격에 대한 논란 속에 사회운동의 적극적인 사고와 대응은 억압되었다.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핵발전의 문제가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핵발전의 문제가 결코 핵무기와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투쟁을 확장해야 한다. 지난 몇 년 간 환경운동 진영과 반전평화운동 진영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교류하며 상호 침투와 결합을 모색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2010년 ‘G20 민중회의’ 기간에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이하 반핵포럼)이 진행되었다. 반핵포럼은 한국과 일본 정부, 핵산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핵발전소 수출과 핵확산 움직임에 맞서 양국 시민사회 단체의 공동행동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진행되었다.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경쟁구도, 일본의 핵연료 재처리 공장 문제,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 추진 문제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진행하고 있는 핵발전 르네상스 문제, PSI 등 미국의 핵전략에 적극적으로 조응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문제 등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에 한일 양국의 반핵평화 단체들이 공감했다. 참가단체들은 단기적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반핵발전소-반핵평화 운동 간의 연대운동을 결의했으며, 그 성과로 반핵포럼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반핵포럼이 올해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다.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을 기점으로 일본에서 전국적 규모로 진행되는 반핵대회(원수폭금지 세계대회) 기간 동안 일본 반핵 운동과의 교류, 국제회의, 집회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일시민사회 반핵포럼의 의제 핵발전 르네상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 확대 의지는 확고하다. 이명박 정부의 소위 ‘핵발전 르네상스’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화하고 핵발전 비중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으로, 현재 전력 생산의 30%대를 차지하는 핵발전 비중을 6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핵발전 확대에 목을 매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핵/전력 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총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1.7%씩 증가할 것으로 가정하고, 이에 대비한 에너지 공급 계획을 마련한다. 수요관리를 통해 증가율을 1.2%로 낮추는 것이 목표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2030년의 에너지수요는 2006년 대비 32% 증가할 것으로 계측된다. 에너지 수요에는 당연히 전력 수요도 포함된다. 따라서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발전설비 증가, 즉 핵발전 확대가 필요하게 된다. 다음으로 핵발전소 수출을 통한 경제적 성과 쌓기라고 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핵발전소 수출 체결 시 계약금액이 400억 달러라고 선전했다가 금세 200억 달러, 다시 186억 달러로 규모가 작아졌고, 공사비용 중 110억 달러 정도를 한국의 수출입은행을 통해 빌려 주기로 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한국은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이 없어 일본의 도시바와 같은 회사에 외주를 줘야하고, 따라서 경제적 효과는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UAE에 건설되는 핵발전소의 폐기물까지 한국이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수출동력’ 운운하면서 경제적 치적을 부풀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과 핵연료 재처리 1973년 발효되어 2014년에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은 핵발전 연료의 이용에 관해 한국과 미국이 맺은 협정으로, 한국이 핵분열성 물질이나 기술을 유입하거나 유출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그동안 한국의 우파들은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한국도 핵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소리 높여왔다. 한국 정부 역시 협정 개정에 적극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핵발전소 수출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협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국이 핵발전소를 수출하려면 미국의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 또 수출 대상국에서 핵분열성 물질과 기술의 유출을 막으려면 대상국 또한 미국과 비슷한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따라서 협정 개정을 통해 이러한 수출 장애요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핵연료 재처리 문제에 있다. 현재 협정이 금지하고 있는 핵연료 재처리를 가능하도록 협정을 고치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계획이다. 사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문제는 핵산업계의 사활적인 문제다.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자료를 살펴보았듯이 재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핵발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우라늄의 부존량은 극히 한정적이다. 따라서 핵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핵연료의 재처리가 필수적이다. 또한 한국만 하더라도 2006년 말 기준으로 7,960톤의 사용후핵연료, 즉 폐연료봉이 핵발전소 안에 보관되어 있다. 폐연료봉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어떤 나라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격리 보관할 뿐이다. 따라서 핵발전을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더라도 폐연료봉의 처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핵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건식 제련법(파이로 프로세싱)의 경우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순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습식 제련법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식 제련법은 2010년 현재 개발 단계의 기술에 불과하며, 실제로 검증된 사례가 없다. 또한 건식 제련법을 통해서도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미국에서조차 난색을 표하고 있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2012년 3월 서울에서 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0년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의 핵 정책, 즉 압도적인 핵 우위 정책의 고수와 NPT 체제의 유지, 핵 테러리즘의 차단을 위한 물리적 수단 강구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회의였다. 핵안보정상회의가 보여준 것은 애초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 없는 세계’의 구상이 아니라 ‘핵 테러 없는 세계’를 위한 세계 각국의 협조와 대응 요구였고, 이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로 대표되는 적극적 반확산 정책의 국제적 수용과 확산이었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과 한국 정부의 적극적 편입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커다란 축이 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핵 정책을 적극 지지하며 PSI 참여, 한국형 MD 추진을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제기해야 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반확산 정책은 결코 탈핵의 길이 아니라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임을 폭로해야 한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시민과학자로 살다』를 읽고 올해 3월 일본 대지진 후 한국에 처음 비가 내릴 때 사람들은 심각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방사능을 해독시켜준다는 요오드가 함유된 약품이 약국에서 동나고 사람들은 비를 한 방울이라도 피하기 위해 우비와 우산으로 무장을 했다. 그러나 두어 달이 지나 간간히 가랑비가 내리는 때 우산 없이 종종걸음을 걷는 이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이는 것을 보면 방사능위험은 일상 속에서 묻혀가고 있는 듯 하다. 방사능이 오지 말라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과 함께 말이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이 된 무분별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분노는 어디로 가고, 어째서 그때의 공포와 분노를 오히려 한때의 호들갑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원자력발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근본적 결함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과거의 ‘원자력은 관리만 잘 하면 안전하고 좋은 에너지원’이라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원자력발전 지지의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 문제 인식이라는 토대 없는 분노는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기 쉬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호들갑’을 떨 수 있으며 그 호들갑이 근본적 문제 해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때 지식인, 전문가들을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포함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심도 있는 전공공부가 필요하기에 일반인의 접근성이 낮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은 거대자본과 정부의 시각에 따라 발전되고 실현되고 있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녹색평론사, 2011)은 일본의 반핵운동가로 살아온 다카기 진자부로가 원자력발전 신화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책이다. 원자력발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원자력발전의 장점에 대해 그는 만들어진 신화적 믿음이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각각 신화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먼저 이번 일본 대지진 사고로 완전히 무너진 안전신화를 살펴보면 애초에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 수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1975년에 발표한 에서는 원자로에 거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대체로 매우 낮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 라스뭇센 교수 등은 거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양키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보다도 낮다”고 했다. 이 말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보증수표처럼 쓰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년에 한 번 꼴로 대사고가 있었다. 원자로의 거대사고는 ‘당첨이냐 아니냐’라는 복권식 확률로 계산될 수 없다. 일본에서도 몇 번의 원자로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기술적으로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다중방호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이는 큰 폭발이 있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원자력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일본정부는 몬쥬 사고 이후에 원자력 안전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몬쥬 사고의 조사심의를 통해서 일반사회가 말하는 ‘안심’이라는 것과 기술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안전’이라는 것, 두 가지 ‘안전’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으며 … 원자력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과 원자력 사업자도 ‘안전’뿐만 아니라 ‘안심’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진정한 안전을 달성하려면 비전문가라도 납득할 수 있는 ‘안심’이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안전백서 발표 1년 이후 JCO 사고에서 더 이상 일본정부는 원자력의 기술적 안전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몬쥬 사고 이후 원전이 집중되어 있는 현 지사들이 내각총리대신에게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등 원자력 안전의 불신이 점차 퍼져나가고 더 이상 원자력사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신화를 알아보자. ‘원자력은 관리만 잘 하면 청정한 대체에너지’ 라는 신화다. 그러나 이 신화 역시 허구적이다. 대체에너지는 석유위기와 환경오염에 대응하여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원자력은 과연 대체에너지가 될 수 있는가? 먼저 원자력이 대체에너지로 등장한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석유위기는 원자력발전의 타당성을 위한 카드로 쓰였다. 실제 석유위기가 있었으나 그 대안이 원자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자력은 일본의 1차 에너지 공급량에서 13%밖에 차지하지 않는다(석유 53%, 석탄 17%). 그리고 원자력은 전력 형태로만 사용될 수 있어 석유에 비해 융통성이 매우 떨어진다. ‘청정’에 있어서도 원전 증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온난화 방지를 위해 화력발전에서 원자력발전으로 전환하자고 하는 것은 에너지 전환 부문인 발전부문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전환 부문 자체가 실은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10% 이하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발전에서 원자력 비율이 50% 가까이 된다 해도 그것으로는 전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형인 이 사회를 크게 전환시킬 수 없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오늘의 사회가 석유의존형 사회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은 운수부문에서 증가하기에 원전을 늘리는 것보다 자가용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것이 더 큰 이산화탄소 억제효과를 낳는다.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라는 위험요인에 못지않은 방사능으로 또 다른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원전에서 1킬로와트시(1kW/h) 발전하는 데 약 10만 베크렐의 방사능이 나온다. 큰 사고로 여겨지지 않는 일상적인 노동자 피폭만 보아도 원자력발전이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불어 ‘태양이 아닌 원자로부터 얻어내는 무한한 에너지’라는 신화 또한 그 실상을 살펴보면, 일단 원자력발전의 원료가 되는 천연 우라늄은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다. 또한 한번 사용된 뒤 발생하는 플루토늄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나 그 시도의 하나인 고속증식로 몬쥬 실험로는 사고를 일으키고 이제 그 기술은 사장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원자력발전이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게 되었는가? 원자력에너지의 상업적 이용은 미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 배경이다.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아이젠하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정치적인 선언을 했다. 핵의 군사적 이용이나 수평적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 미국 또는 미·소가 함께 주체가 되어 다른 국가들이 원자력에 대한 상업적 이용으로 눈을 돌리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산업적 필연성이 없었던 원자력 이용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사업의 타당성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신화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책에서는 이 외에도 ‘원자력 발전은 경제적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지역발전에 기여한다’, ‘원자력의 평화이용은 가능하다’라는 여러 신화들을 파헤치고 있다. 한국은 원자력발전 6위국이다. 작은 나라에 21개의 원자로가 있다. 2005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 지역 선정으로 지역 간 갈등이 극에 치달았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방폐장을 건설 중인 경주는 불안전한 지반임이 밝혀지고 있다. 이렇듯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신화들로 인해,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라는 선전문구로 인해, 원자력발전은 필요하다는 여론을 잃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원자로 폭발사고를 옆에서 보아도 한국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발전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도 유효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시스템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원자력 안전의 허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도 원자력발전의 다중방호시스템을 설명할라치면 원자로의 구조를 이야기해야 하고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에 외면하게 된다. ‘전문적’인 이야기를 ‘시민’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군축이나 환경 등 시민이 관심을 갖는 분야를 ‘시민과학’이라고 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운동하는 이가 바로 시민과학자이다. 『시민과학자로 살다』(녹색평론사, 2011)는 다카기 진자부로의 자서전이다. 됴쿄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그가 어떻게 대학조교수라는 엘리트 지식인의 길에서 나와 시민과학자로 살게 되었는지, 시민과학자의 삶은 어떠하였는지를 이야기한다.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내용들에 대한 지식과 동시에 시민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다카기 진자부로와 같은 ‘시민 과학자’의 노력이 대중의 분노와 불안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인 행동으로 바꾸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지식인, 전문가가 운동에 발을 들이면 곧 ‘학문연구냐 직접적인 행동이냐’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자서전에는 시계와 쇠망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과학자와 전문가는 정밀기계인 시계로, 대중행동의 주민운동은 쇠망치로 비유하며 시계를 쇠망치 대신으로 쓰다가는 시계만 망가뜨리게 되고 결국 시계도 쇠망치도 안 된다는 비판을 듣는다. 시계와 쇠망치로 이분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계냐, 쇠망치냐는 고민은 운동을 하는 지식인, 전문가가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다. 다카기는 “적어도 쇠망치가 될 수 있는 시계가 되고 싶습니다. 시계가 망가지더라도 최소한 쇠못의 역할만이라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더불어 절대로 ‘망가진 시계’가 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일본 반핵운동의 1세대인 다카기 진자부로는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로 양쪽 모두를 삶 속에서 실천한 인물이다. 원자력발전의 신화를 깨부수고 싶은 이들, 파편화된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고단한 이들에게 다카기 진자부로의 두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