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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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2차 TV토론 쟁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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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0일, 경제·노동·복지를 주제로 한 대선후보 2차 토론은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를 토론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토론 이후 마치 스포츠 관전평처럼 ‘누가 잘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분분했으나, 각 토론 쟁점에 대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벌의 ‘나홀로 성장’에 대비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저임금 일자리 문제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가지만, 후보들이 토론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후보들의 정책에 반영되었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대선 이후 민중운동의 과제를 고민해보자.
민생문제, 책임 떠넘기기 식 공방만 오고가
경제 분야 토론은 주로 민생위기의 책임에 대한 공방, 경제민주화 방안의 차이를 둘러싼 논쟁이 중심을 이뤘다. 문재인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민생 실패의 책임을 묻자, 박근혜 후보는 참여정부 때 주택가격, 등록금이 급등한 것을 지적하는 식으로 반박을 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책임 떠넘기기 식의 토론이 오갔다.
현재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경로에 접어든 것은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한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반영해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수출-재벌 중심의 성장전략, 금융자유화라는 경제 전략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왔다. 이는 한국경제의 성장·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국부유출 및 자본도피 경향을 강화했고, 재벌과 국민 경제의 괴리를 확대시켰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는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서로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최종 비준한 것은 두 정부의 경제 정책이 사실상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박근혜, 문재인은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근본적 성찰 없이 경제민주화라는 말 잔치를 벌일 뿐이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 것은 재벌개혁 문제였다. 박근혜 후보는 2007년 자신의 공약이었던 줄푸세가 현재의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박 캠프 내에서 경제민주화를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위원장마저 비판한 친 기업적 정책인 감세와 규제완화를 마치 저소득층의 민생을 위한 정책인양 포장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하며 다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돌아간 박근혜의 친재벌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토론이었다.
문재인 후보는 자신과 박근혜 후보가 어떤 정책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했다. 문재인의 재벌개혁 정책도 박근혜의 그것과 미미한 차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할 것이냐, 기존순환출자도 해소할 것이냐의 논쟁이 골목상권을 지키고, 중소기업을 살리고, 노동자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문 후보는 “재벌은 응당 개혁돼야 하지만, 재벌이 갖고 있는 경쟁력까지 해쳐선 안 된다”며 “제가 생각하는 재벌개혁의 목표는 재벌이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짚지 않은 재벌 문제의 핵심은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를 통해 형성된 수직적 하청계열화 구조다. 재벌은 후려치기라고 불리는 중소기업 간 부등가교환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재벌체제의 변화란 곧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과 이를 지지하는 노동유연화의 전반적 변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후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재벌개혁론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재벌개혁, 재벌해체론은 진보적 대안이 아니다
한편, 재벌개혁론은 재벌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를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튼튼한 중소기업, 중견기업을 육성하자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중소기업, 중견기업의 성장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의 향상과 직결되진 않는다. 현대자동차의 부품사인 SJM,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에서 벌어진 노골적 민주노조 파괴공작은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심해서 벌인 만행이었다.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 안에서 재벌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차는 2000년대 들어 적시서열 방식의 생산을 확대해왔고, 강한 부품사 노조는 이러한 생산방식에 있어 방해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현대차 입장에서는 생산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하청 기업의 안정적 노무관리가 필수적이었다. 부품사 자본의 이해도 여기에 일치했다. 유성기업은 내부거래 확대 속에 유성기업의 부를 비상장계열사로 더 이전하려는 오너의 계획에 노조가 걸림돌이었고, SJM은 2세 경영권 상속을 위해 공격적으로 기존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내몰았다.
재벌해체론도 이를 간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라그룹, 대우그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재벌해체 자체가 노동자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룹에서 빠져 초국적기업 혹은 사모펀드, 또는 국내 중견기업에게 인수된 경우에 해당 기업 노동자들은 극도의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역시 심각한 불안 상태에 놓였다. 그런 점에서 재벌개혁론 내부에서 노동자를 위한 선택지를 찾기란 어려워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기만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말잔치가 다시 한 번 드러난 쟁점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하여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서 벤처창업 활성화와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도입, 중장년층에게는 재취업교육과 고용정보제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고용문제의 핵심이 창업기회의 부족이나 교육과 정보의 부족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는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일자리 창출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재벌 대기업의 책임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삼성·현대차 등 5대 재벌그룹은 2007년 대비 2011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76%, 매출액 79.5%, 당기순이익은 50% 늘었으나 종업원 수는 4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중 현대차그룹은 자산총액이 110.5%, 당기순이익은 202.6% 급증했음에도 고용증가율은 가장 낮은 18.4%에 불과했다. 퇴사를 고려한 순고용은 더욱 심각해, 5대 재벌의 4년간 순고용은 7만6000명으로 연평균 5%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수치만 보더라도 기업이 최소한의 고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잔업, 특근을 늘리면서 고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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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없었다
박근혜 후보는 또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대표시정제도와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시정제도는 근로자 대표나 노조가 당사자를 대신해서 회사에 차별문제를 시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이며,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는 회사가 차별을 반복할 경우에는 손해액 10배를 금전으로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과연 이런 대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정희 후보의 반박대로 한국의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1.9%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바로 용역업체의 계약해지 형태로 해고가 된다. 또한 몇 년 동안 노동조합을 유지해왔던 곳도,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시행 이후 용역회사와 원청의 사주 하에 만들어진 어용노조에 대항해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몇 년 동안 대화해왔던 노동조합도 없애지 못해 안달인 상황에서 대표시정제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도 마찬가지다. 현재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차는 2012년에 13억원이 넘는 이행강제금을 물고도 아직까지 단 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계산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보다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2012년에도 SJM, 유성기업 등 많은 회사들이 노조파괴 컨설팅회사나 용역업체에 많은 돈을 치르면서까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행태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전체적인 이익을 계산했을 때 금전으로 보상하는 것이 이익이라면, 회사는 얼마든지 돈을 치르면서도 정규직화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현행 법률 상으로는 파견법에서 다루는 노동자의 근로제공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사내하도급계약에 포함하는 사내하도급법을 언급했다. 이처럼 파견법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을 도급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려는 이유는, 불법파견이라고 판정된 노동형태를 합법도급화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서, 오히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재벌기업을 옹호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 모든 것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노사정협의를 핵심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사정 협의는 민주노총이 참여하든 불참하든 간에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 노동유연화라는 정부와 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도구였다. 노사정 협의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경제위기 고통을 전가할 명분으로 활용되어 왔다.
지금처럼 노동자운동 내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주류를 형성하고, 민주노총의 정치적·조직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향후 노사정 협의기구는 커다란 유혹이 되기 쉽다. 그러나 노사정 협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위험하다. 노동자운동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밝혀진 노사정 협의기구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계급대립이 격화 될 때 민주통합당의 위선과 기만, 내부 모순이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자
이번 TV토론을 통해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재벌을 옹호하고, 사내하도급법과 같은 노동악법을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은 스스로 표현한 대로 재벌경쟁력을 중요하게 사고하며 이를 전제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를 추구한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금 정권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를 둘러싼 한 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두 후보의 입장과 정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2013년은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녹록치 않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고 그 대안을 실행할 주체들인 민중 스스로의 힘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부에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