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출간과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더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양자구도 설문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와 미세한 차이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고, 다자구도에서도 박근혜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후보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사실 그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없다. 정치인이 아닌 기업가 출신 교수가,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열렬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런 상황, 즉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안철수 원장이 급부상한 계기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였다. 9월 1일 한 언론매체를 통해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보도되었다. 다음 날 그가 “국회의원과 다르게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발언한 후, 그는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서울시장 선거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욱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은 9월 6일 안철수 원장이 후보직을 양보한 일이었다. 약 50%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던 그는 약 5% 지지율을 얻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안철수 원장은 기존 정치인과 대비되는 진정성, 순수성을 가진 인물로 상징되었다. 공식 선거운동 돌입 후,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직후 안철수 원장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그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상황을 가정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철수 원장의 높은 지지율이 거듭 확인됨에 따라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안철수 현상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특히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을 차지하자,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된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기존 정치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했고 정치인들은 사익 추구에 골몰했기 때문에, 그 실망감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출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왜 하필 그것이 안철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을까? 공정, 공생, 공감 우선 안철수 현상에 앞서 안철수 개인에 주목해보자.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말과 행동은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첫째, 그는 공정한 경쟁을 거쳐 성공한 인물로 그려진다. 안철수는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업체 창립자로, 기업을 그만 두고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거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도전적인 삶을 살았고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은 반칙 없이 이루어진 성공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한국경제를 삼성동물원에 비유한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경제민주화를 지지하고 재벌과 중소기업의 공생을 주장한다. 그는 과거 자신이 개발한 백신 프로그램을 1천만 달러에 사겠다는 외국 보안업체의 제안을 거부하고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또 6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업체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하기도 했다. 그의 과거 행적은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탐욕적 기업가라는 재벌의 이미지와 그를 구분해주며, 공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셋째, 그는 2년 간 27개 지역에서 청춘콘서트를 개최하며 청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했다. 청춘콘서트는 한 번 개최될 때마다 약 1,60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알려졌다. 안철수는 청년층의 고달픈 현실에 귀 기울이고,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를 비판하며 청년층을 위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이제 그는 청년들의 멘토, 나아가 ‘국민멘토’로 불리고 있다. 상식파 안철수의 생각 최근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을 통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복지, 정의, 평화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다. 첫째, 안철수 원장은 광범위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아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의미에서 복지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급한 복지정책으로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아동수당제 등 보육정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민영화 반대 등 의료정책 △고등학교 의무교육, 대학등록금 인하, 무상급식 확대 등 교육정책 △공공임대주책 확충, 세입자 보호 등 주거정책을 꼽는다.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각 정당이 활발히 제출해온 복지정책들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재원마련이 필수적이므로 세입을 늘려야 한다. 안철수 원장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고, 이 외에도 탈세에 대한 처벌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증가, 주식양도차익과세 대상 확대, 파생상품거래세나 토빈세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되,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합리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증세없는 복지확대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등을 수용한 입장이다. 둘째, 안철수 원장은 경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 위에서 성장한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재벌대기업은 편법상속, 일감몰아주기, 골목상권 진출, 부정부패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의 기업생태계를 동물원에 비유하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독점계약과 단가후려치기)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한다. 안철수 원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공정거래법 강화 △정부의 중소기업 집중 지원 정책 △노사관계 개혁 △기업집단법을 통한 재벌규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이 역시 4.11 총선 전후로 각 정당이 제출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정책을 종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원장은 복지와 정의, 즉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평화라고 주장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그는 특히 남북 간 경제협력을 강조한다. 남북 간 경협을 진전시켜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접촉창구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대북정책에 있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시 군량미 전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도 필요한 발언은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또 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대북정책, 동북아균형자론 등을 기본 입장으로 수용하되, 보수세력이 제기해온 ‘퍼주기 논란’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책을 절충한 것이다. 이처럼 복지, 정의, 평화라는 안철수의 생각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은 △경제민주화와 내수론 △사회위기에 대응한 복지정책 △남북 경협과 동북아균형자론 등 그 기본골격을 민주당에서 가져왔다. 다만, 재정건전성, 퍼주기 논란 등 보수세력이나 관료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절충함으로써, 가장 중도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는 스스로 진보도 보수도 아닌 상식파라고 주장한다. 상식파 안철수의 절충적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가령, 그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핵심과제로 제시하는 재벌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원하청 간 이윤분배를 목적으로 할뿐 노동자에 대한 분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수활성화 역시 노동자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수출재벌과 이명박 정부 역시 내수활성화를 지지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내수활성화와 고용창출을 핑계로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복지정책 역시 사회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위기관리적 성격을 가진다. 게다가 재벌 정책이나 저임금과 노동유연화 정책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은 전략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벌을 개혁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안철수의 생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의 전반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세력관계의 변화없이 불가능하다. 말로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가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했고 또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했다는 사실은 안철수가 제안하는 대안의 실현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정치의 불안정성과 정당정치의 변모, 그리고 안철수 안철수 원장에게 단적으로 드러나는 중도 지향성은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중도 지향성은 오랜 기간 꾸준히 강화되어 왔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극우파와는 달리 일자리 창출, 복지 정책 등을 펼친 중도우파였다. 이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중도좌파 또는 중도우파, 나아가 탈이념의 실용주의라고 호명하고 있다. 정당 차원에서도 중도로의 수렴이라고 할만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새누리당은 4.11 총선을 기점으로 복지정책을 대폭 수용하며 ‘좌클릭’을 했고 반대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후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며 ‘우클릭’을 시도했다. 이처럼 탈이념 중도 지향성이 강화되는 경향은 안철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기본적인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그 구조적 원인은 한국정치의 심화되는 위기와 불안정성에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5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이합집산은 이념과 노선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선거 승리를 위한 파벌 간의 갈등과 협상에 따라 좌우되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대권 후보자의 신당 창당, 기존 야당의 통합과 분당, 정당 외부의 참신한 인물 영입을 통한 이미지 쇄신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정당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 정치인을 중심으로 사당화되어 있었고, 그만큼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그림1] 민주화 이후 선거 기점에서의 정당체계의 구성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이후 정치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1997년과 2007년 두 번의 경제위기라는 충격과 장기불황을 경험하는 가운데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는지와 무관하게,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어왔다. 사실상의 정책적 수렴 상황에서 국회는 거수기화 되지만 오히려 정당 간, 정치인 간 이전투구는 더욱 극심해진다. 여전히 정당과 정치인은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지엽적인 쟁점을 크게 확대하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폭로정치가 지배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국회는 민생문제에 무능력하고 무관심한 곳으로 상징되고,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가 더욱 심화된다. 이와 동시에 삼김시대가 종료하면서 노무현 정부 전후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정치가 약화되고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가 크게 확대된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한편,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정당의 핵심적인 생존전략이자 선거전략으로 부상한다. 금융시장 개방과 이에 동반하는 국내 제도 개선, 수출재벌 중심의 FTA 추진, 노동유연화, 한미동맹의 현대화 등 지배 양당의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이 사실상 신자유주의로 수렴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만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에 대응하는 것이 지배세력 공통의 과제로 부각된다. 2010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무상급식 논란을 계기로 크게 확대된 각 정당들의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좌클릭’으로 표현되듯 각 정당 복지정책도 일정하게 수렴한다. 여전히 각 정당의 지역적 지지기반은 중요하지만, 점차 중도지향성을 내세운 포괄적 호소가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또한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으로 부상함에 따라 각 정당은 정당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냉소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거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운 선거기법을 도입하며, 정치권 바깥으로부터의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영입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중도층을 겨냥한 선거기법이 본격 도입된 계기는 2002년 16대 대선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최초로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정의로운 세상’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와 같은 선거기법은 각급 선거를 거치며 일반화되고 더욱 발전된다. 기존 정치권 바깥에서 참신한 인물을 찾고자하는 시도도 강화되어 왔다. 역대 대선에서 정주영, 이인제, 이회창, 조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고, 문국현,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까지 정당 바깥의 인물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총선에서도 인물 영입은 계속되어왔고, 재야인사, 학생운동 출신, 법조인, 교수, 언론인, 기업가, 고위관료, 의사, 약사, 건축가, 배우 등이 정당으로 충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정치의 변모는 단기적으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켜왔다. 여전히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없고 이념적계급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휘발성 높은 유동적 중도층의 지지를 아주 잠시 동안 묶어두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여러 선거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의 이념적 지향성과 당원의 요구보다는 당 바깥의 여론조사 결과가 가지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당 바깥의 인물 영입이 당의 생존에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됨에 따라 정당의 존립기반 자체도 매우 취약해진다. 안철수는 이와 같은 불안정한 정치토양에서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 자체가 대중의 불신대상이 되어 정당에 몸담지 않은 전문가출신 비정치인이 미디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들의 인기를 선거에서 압도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게다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기존 정당으로부터의 영입 제의를 거부하고 ‘상식파’로서 제3지대에서 자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유동적 중도층의 관심을 집중시킬 더욱 극적인 야권단일화 선거이벤트로 향해가는 사전 단계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위기의 표현이고, 그 일부다.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타협점으로서 안철수 그러나 정치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떤 인물이 대안으로 등장하는지는 대중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낳았고, 이는 747 공약을 내세운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이명박의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2007년-2009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7% 경제성장 공약은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는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듯 이명박 정부가 불통정부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분향소에서 500만여 명이 조문을 했고, 장의기간 동안 봉하마을에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탄압에 의한 희생이라는 이미지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 결과 17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던 친노계 정치인들이 일거에 정치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무능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온갖 실정은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기 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노무현은 물론이고, 부패한 측근들에 대한 기억도 지워질 수 없었다. 게다가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한 당사자는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따라서 반MB 투쟁이 강화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안이 구 집권세력일수는 없다는 점은 대중적으로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명숙, 유시민, 문재인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안철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인물인 동시에 성공한 경제인이다. 그는 노무현처럼 서민의 친구이면서도 노무현과 달리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또 그는 반칙 없이 성공한 경제인으로, 특권층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며 공정성을 잃어버린 이명박과도 대비된다. 즉, 안철수는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에서 대중들이 찾아낸 화해의 형상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유능한 노무현이자 착한 이명박이다. 이는 안철수 원장이 과거 노무현, 이명박에 투표했던 유동적 중도층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득표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장기적으로는 그 지지기반이 더욱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념적, 계급적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정당 기반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지원 없이는 안철수 원장의 대선대응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여전히 그가 불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심각한 정치적 불안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안철수 지지층의 상당수는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향후 정세에 따라 지지층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다. 게다가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소통이 성장과 고용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날 경우, 대부분의 유동적 중도층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안철수는 정치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합리적 이해조정과 국민과의 소통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NGO 출신 전문가를 각종 국가위원회로 영입하고 노사정협의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을 포섭함으로써 합리적 이해조정의 외양을 갖추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가 청춘콘서트,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큰 인기를 끌었던 점에 착안한 여러 이벤트를 기획하여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특정 정세를 계기로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얻고 동시에 각 정당들로부터의 정치공세에 직면할 때 안철수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세력기반이 취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중요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그는 탄핵국면을 통해 대중에게 대통령 개인에 대한 재신임을 물음으로써 상황을 극적으로 돌파했다. 여론정치가 만들어낸 안철수 대선이 1년 가까이 남아있던 시점부터 이미 여론조사 기관들은 안철수가 지지하는 야권단일후보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 설문조사 등 각종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이중의 불확실성을 가정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기관 별로 결과의 편차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앞 다퉈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안철수 원장 대 박근혜 후보의 양자 구도로 선거의 틀을 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여론정치를 뒷받침하는 여론은 실제 여론이 아니라 여론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먼저, 여론조사가 전제하는 가정들이 사실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 여론조사는 질문에 대한 선호를 즉각적으로 표출하게 함으로서 선택과정에서의 참여와 선택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과정을 누락한다. 실제 상황에서 주장은 세력관계를 반영한 것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는 개인의 단순한 선호를 모아 엄청난 중요성을 담은 결론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확률적 대표성에 기대어 과학성을 보장받고, 이를 근거로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세력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여론조사는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근거이자 도구가 된다. 여론조사 기관과 함께 언론매체는 여론정치를 주도한다. 언론매체는 주어진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히 보도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언론매체는 여론조사의 설계 및 문항구성에 관여하고, 특정한 선거구도에 맞춰 그 결과를 해석함으로써 여론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특정 후보 대세론을 띄우는데 일조하거나, 반대로 그것을 뒤집는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언론매체가 구성한 문제를 정치인들에게 부과하거나, 반대로 정치인들이 구성한 문제를 언론매체가 선별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언론은 대선 3-4년 전부터 차기 대선후보군을 선정하고 선거구도를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후보에 관한 기사량이 증가한다. 선두 후보의 긍정적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미디어가 가공한 여론에 매우 민감해지고, 그 결과 미디어 정치인이 출현한다.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 없이 안철수의 급부상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부터 편향된 이중의 가정, 경쟁적인 여론조사 결과 발표 및 보도를 거쳐 안철수 대 박근혜 양자구도가 기정사실화되어왔다. 또한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언급과 자신의 인생사를 적절히 혼합하면서 여론정치와 상호작용하는 미디어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만약 그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또는 그를 후보로 내세운 야권연대 선거운동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그 정당은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의 성격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은 매스미디어라는 매개와 인물의 상징화를 통해 정치전략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앞서 살펴본 정당정치의 변모, 즉 유동적 중도층으로부터의 득표를 최우선 목표로 선거전문가가 주도하고 중도적이고 포괄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정당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낳은 안철수 지금까지 살펴본 안철수 현상의 원인들은 지난 10년 간 민중운동이 직면한 현실이었고 동시에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전개된 민중운동의 효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지난 10년 간 전개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가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97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선 출마를 계기로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출범 초기 나름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은 점차 축소되어왔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 이후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지원을 획득(세액공제, 득표)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당의 인력과 재정은 노동자운동의 역량 강화를 고려하지 않은 의정지원 활동에 편중되었다. 이에 따라 스타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화되었다. 민주노총 역시 정치 영역을 민주노동당에 맡겨놓고,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7년 분당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한없이 추락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 속에서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대선에서 반MB 야권연대의 승리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여 신자유주의 구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자 했다. 민주노총도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하여 진보대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진보정당 간의 갈등을 더욱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 속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민중운동 전체가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 실패의 직접적 원인은 의회주의 노선과 연립정부 전략을 밀어붙인 세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타정치인의 배신 또는 권력야욕도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왜 의회주의 노선과 스타정치인의 배신이 그토록 강화되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정치의 변모라는 정세 속에서,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활동가와 핵심지지층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그 운동적 성격을 강화해나가고자 하는 진보정당 모델은 점차 현실의 다른 정당들의 운영방식과 비교할 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은 진보정당 내 잠재적 갈등을 유발한다. 만약 진보 정치인들이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하고자 하고, 더 많은 유동적 중도층 유권자와 접촉하고자 할 경우, 이념적 통일성이 강한 활동가나 평당원과의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소위 대중성과 선명성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사실 어떤 유권자층을 향한 대중성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성공을 상징했던 2004년 총선 사례는 진보정당이 직면한 잠재적 갈등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당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비례)정당투표자들의 특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은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이나 적극적 지지자들의 표에 의해서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조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민주노동당 지지 비율이 높게 나타났지만, 전체 득표에서 조합원과 그 가족의 표가 차지한 비중은 매우 낮았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계층적으로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었고, 이념적으로도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구분되지 않는 유동적 중도층이었다. 이들은 탄핵정국 전후로 정당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었고, 그 실망감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당투표로 반사적으로 표현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성장의 결과 또는 그것을 반영하는 계급투표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내 잠재적 갈등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당원 및 적극적 지지자와 유동적 중도층의 이원적 지지구조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를 점차 강화하게 된 것은, 결국 유동적 중도층을 중심으로 당의 노선과 운영이 변모해갔다는 점을 의미한다. 의회주의와 집권전략을 노선으로 채택한 당내 정치세력이 이 변모를 주도해나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이러한 진보정당의 우경화된 변모를 공식화한 사건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잠재적 갈등 상황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손쉽게 주어진 정치현실에 적응하고자 했던 주체들의 합작품이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립정부 구상을 위해 국민정당화되고자 스스로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한 민주노동당, 유시민 중심의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적 모습을 보여 온 국민참여당, 스타정치인 중심의 통합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 내에 그나마 남아있던 활동가 당원 중심성에 최종적으로 파산선고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원 중심성을 강조하는 구당권파는 보수언론으로부터 구태정치로 공격받고, 신당권파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포괄정당, 선거전문가정당으로 당을 재편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그 동안 진보정당에게 정치를 일임함으로써, 노동자 정치를 새롭게 형성할 주체적 역량이 심각하게 유실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민중운동 주류가 야권연대라는 목적에 종속됨에 따라 민중운동의 이념적·조직적 정체성도 혼란에 빠져있다. 이런 민중운동의 주체적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안철수나 박근혜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현실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안철수 현상의 효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자. 안철수는 공정, 공생, 공감이라는 가치, 그리고 정의, 복지, 평화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은 기존에 제시된 여러 정당의 입장을 절충한 것으로 가장 중도적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안철수의 대안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그 실현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안철수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정치의 불안정성에 따른 정당정치의 변모와 관련된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 형성된 대중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안철수는 하나의 타협점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정치는 안철수를 박근혜의 대항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은 정치의 불안정성이 낳은 효과이자, 그것을 더욱 심화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안철수 지지층의 유동성, 그리고 그의 취약한 정당기반은 향후 안철수의 정치가 정치적 불안에 휩싸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반복되어 온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의 일부로 기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현실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부정할 도리는 없다. 지배 양당과 구분되는 대안세력으로서 민중운동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자신의 전략을 민주노동당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진보정당 운동은 결과적으로 지배 정당들의 변모를 뒤쫓아 가며 몰락했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대안세력으로서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안철수가 급부상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중운동은 2012 대선의 구경꾼으로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대선 이후의 정세에 대비한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을 위해 민중운동 제 세력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1. 총파업 투쟁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단결의 힘을 보여주자 2. SJM 자본의 추악한 탐욕,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3.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쌍용차 문제해결에 즉각 나서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총파업 투쟁이 필요하다 금속노조 단결의 힘을 보여주자 SJM과 만도의 직장폐쇄의 본질 지난 7월 27일, SJM 안산공장과 만도 평택, 문막, 익산 공장에서 자본가들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번 직장폐쇄가 특정 시나리오 아래 기획된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0여 명의 용역들이 당일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사업장에 진입한 것이나, 경찰이 두 눈뜨고 보는 가운데 백주대낮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에서나, 법이 허용한 직장폐쇄의 범위를 넘어 신고절차도 무시하고 휴가 직전에 동시에 전개한 점에서나, 원청의 양해 없이는 부품업체가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는 어려운데 두 회사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기아차의 부품업체라는 점에서나, 다 그렇다. 물론 각기 개별적인 이유도 있다. SJM 오너들은 2010년 SJM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비제조부문 계열사에만 이익을 남겨 그걸 독식하려 했다. 위기감을 느낀 금속노조 SJM지회가 반발하자 SJM 오너들은 이를 진압하려 했다. 2008년 만도기업 경영진으로 복귀한 한라그룹 오너들은 만도기업 재도약을 내세우고, 올해 경영혁신과 원가절감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금속노조가 분명 걸림돌이었다. 오너로서는 노조를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사갈등 유발 → 공격적 직장폐쇄 → 용역투입→ (노노갈등을 활용한) 어용노조 설립 → 민주노조 죽이기’라는 섬뜩한 노조탄압 시나리오가 만도에서 벌써 구체화되고 있다. 직장폐쇄 직후 만도에는 어용노조가 들어섰는데, 이들 어용세력들이 기업별주의를 강조하며 금속노조의 역사를 부정하고 현장을 혼탁하게 하며 금속노조 탈퇴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차 지부를 향한 금속노조 말살 시나리오가 이제는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공격받고 있는 금속노조 총파업 투쟁 전선 금속노조는 총파업전선을 호기롭게 밀어붙여왔다. 하지만 주간연속2교대제, 비정규직 철폐 등 금속노조의 핵심 의제들에 근거해서 15만 금속노동자의 투쟁을 조직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를 위한 완성차 지부의 공동투쟁도 미흡했고 비정규직 철폐,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핵심의제를 쟁취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드높이거나,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의 반격에 대응할 힘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7월 20일 전후로 일부 사업장 지부들과 지회들은 여름휴가, 8월 전후에 임단협을 타결하려고 의견접근 해왔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총파업 투쟁의 성과가 어떻게 귀결될지 의문을 품을 때, 금속노조가 3차 총파업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자본가들이 역공을 취한 것이다. 금속경기지부의 핵심사업장을 뒤흔들고, 금속산별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한 기업지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출현시키는 공세를 전개한 것이다. 금속노조 총파업 투쟁, 단결된 투쟁으로 노조파괴음모 박살내자! 이번 직장폐쇄는 단순히 개별 사업장 차원의 공세가 아니다. 이것은 금속 총파업 전선을 뒤흔들고, 금속노조를 파괴할 요량으로 자본가들이 전개하는 총공세다. 금속노조 전체가 자신의 명운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악덕 용역경비업체, 공격적 직장폐쇄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의 정치적, 경제적 잇속을 뒤흔들 수 있는 투쟁이 필요하다. 방법은 하나다. 3차 총파업 투쟁을 실질적으로 성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교섭을 자제시키고, 전국적 투쟁 응집력을 높여야 한다. 지난 13일과 20일 금속노조 총파업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노조 탄압에 맞서 왜 금속노조가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하는지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총파업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SJM지회 노동자들이 금속노조를 믿고 개별적 현장 복귀없이 단결할 수 있다. SJM 회사에 강력한 타격을 주면서 포악한 직장폐쇄를 응징할 수 있다. 그래야 만도지부 조합원들이 어용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민주노조를 지켜내려는 힘을 다시 모을 수 있다. 그래야 2010년 발레오만도에서부터 시작된 ‘직장폐쇄 → 노조파괴’ 흐름을 막아낼 수 있다. 3차 총파업투쟁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키자! 금속노조의 단결 투쟁으로 직장폐쇄·노조파괴의 음모를 이번에는 반드시 분쇄하자! 2. SJM 자본의 추악한 탐욕,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2010년 SJM은 SJM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세우고 자회사를 새롭게 재편했다. 상장사이며 생산이 주목적인 SJM은 최소수익만 얻어 겨우 생산 활동만 가능하게끔 하고, 비상장 계열사에서는 SJM과의 각종 거래에서 최대의 이득을 남기도록 하여 그룹의 이익을 비상장회사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재편한 것이다. SJM 회장일가의 탐욕 지주회사인 SJM 홀딩스는 거의 모든 수익을 한국칼소닉과 티엔엔 등 비상장 계열사의 배당에 의존한다. 한국칼소닉과 티엔엔은 각종 ‘수상한 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기고 SJM 홀딩스에 막대한 배당금을 나눠준다. SJM 회장 일가는 SJM 홀딩스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배당금 및 임원 급여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2010년에만 34억 원의 수익을 챙겼다. 이 금액은 SJM 한국법인의 영업이익 29억 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해진 내부거래와 자금흐름에 문제제기한 금속노조 SJM 지회는 SJM 회장 일가에게는 눈엣 가시였다. 이것이 직장폐쇄의 첫 번째 동기다. 현대차의 음흉한 계획 SJM의 직장폐쇄로 금속노조의 총파업 전선이 뒤흔들리면 이득을 보는 회사가 또 있다. 바로 교섭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다. 현대기아차는 SJM과의 거래에서 중국 현지공장의 바이백 상품 일부를 용인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고 있다. 또한 직장폐쇄로 납품기일을 못 맞추면 귀책사유가 무조건 부품사 경영진에게 있게 된다. 따라서 완성차기업의 윤허 없이 부품사가 단독으로 직장폐쇄에 돌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손안대고 코푸는 격이기에 SJM 경영진의 책임도 눈감아주고 있다. 이것이 직장폐쇄의 두 번째 동기다. 3.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쌍용차 문제해결에 즉각 나서라! 대중적 투쟁과 사회적 연대의 확대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로 인한 사회적 살인의 스물 두 번째 희생자가 돌아가신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경찰의 숱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지부와 쌍용차 범대위는 대한문 분향소를 사수하면서 정리해고의 문제점을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해고자 복직을 위한 연대를 폭넓게 구축해왔다. 쌍용차 범대위는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를 주장해왔다. 불법적인 회계조작으로 인한 정리해고 과정을 낱낱이 폭로하고 정리해고가 원천무효임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자본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서 해고자 복직을 쟁취하고, 또한 2009년 77파업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과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도 끝까지 묻고자 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외면 쌍용차 문제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의제로 됨에 따라, 뒤늦게나마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30여 명의 의원들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단을 구성했고, 환노위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기 위한 소위원회가 제안되었다. 그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쌍용차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이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환노위에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위를 구성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2009년 쌍용차 투쟁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 책임자인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을 국책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겉으로는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얘기하면서, 스물 두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전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자 정리해고 철폐와 해고자 복직의 걸림돌인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정치적 타격을 가해야 한다. 이미 범대위는 8월 8일부터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 앞에서 72시간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이는 시작이다. 8-9월 정치적 공간에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쌍용차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 실시는 다른 투쟁에도 힘을 줄 것이다. 만도, SJM에서의 용역깡패 투입과 살인적인 폭력행위는 이미 그 전에 유성, 쌍용차 등에서도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투쟁은 공통의 고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타격과 더불어 다시금 대규모 대중투쟁을 성사시켜 쌍용차 투쟁에 승리의 쐐기를 박아야 할 것이다. 폭력적인 노조탄압과 추잡한 자본의 행태를 폭로하고 정리해고 철폐와 해고자 복직, 용역깡패 철폐와 민주노조 사수 투쟁 전선을 정치적으로 확대하자.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강화가 동반되지 않는 정당정치로의 집중은 이미 실패한 미래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는 비단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반의 도덕적, 운동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통합진보당의 출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폭력을 수반한 첨예한 갈등은 두 개의 커다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등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대대적인 이념, 색깔공세를 야기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에게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혹은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의 절박함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후자는 논의와 모색의 수준을 여전히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한편 민주노총 중집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 철회’ 입장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총 주류세력 세력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다수 세력들은 혁신비대위, 즉 비당권파들의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렇다면 우리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이번 사태를 정치이념을 둘러싼 당내 분쟁의 문제로 규정한다. 부정선거와 같은 도덕적 문제는 당권경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주파(즉 당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비당권파 세력 간의 당권 경쟁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자주파를 제거하기 위한 유시민, 심상정 류의 공작설로 이어진다. 둘째는 비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비당권파가 당권파를 제어하고 통진당을 혁신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바라본다. 셋째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실패를 상징한다는 시각으로, 그 동안 노동자를 돈 내고 표 찍는 동원대상으로 취급해온 정치적 대리주의, 국회의원 당선에만 목매는 선거주의/의회주의 등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누적된 문제가 무리한 자기 정파의 국회의원 확보 경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판단한다. 첫 번째 당권파의 주장은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당권파는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무원칙한 통합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세력이다.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위해 자신의 이념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수정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을 저버렸고, 국참당과의 통합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국참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원칙 있는 운동집단인양 공작설을 제기하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당권파는 지배세력과 제도정당정치 시스템을 얕잡아 보고 운동의 가치와 원칙을 가볍게 여겨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입장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여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을 일차 부결시켰다가 이후 통합에 찬성했거나, 통합 이후 현실론을 내세워 통진당을 지지한 세력들(비당권파를 포함해 민주노총의 상층부의 다수 세력)의 태도이다. 비당권파들은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국참당 세력과의 공조를 통해 통진당의 이념과 내용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 ‘애국가’ 논란이나 통진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보고서의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철수 입장 재정립, 재벌해체론 재검토 등의 내용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통진당을 더욱 탈운동화, 자유주의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 번째 입장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향후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과 경로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 상당한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파산 선고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의 결성과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후보 출마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일단 민주노동당의 출범 과정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변혁하겠다는 이념과 전략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민주노총의 1996-1997년 총파업 과정에서 제기된 노동자 국회의원의 필요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을 의회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비판하는 일각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양당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정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초기 당직/공직 겸직 금지를 포함하여 당의 의회주의, 선거중심 정당화를 제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지역과 현장의 투쟁에서 각 지역 당 조직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이 축소된 반면 의회주의적 노선은 강화되어 왔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을 계기로 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 문제,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되어 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로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당의 인력과 재정이 의정지원에 심하게 편중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 민주노동당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신자유주의에 맞선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운동 전략을 방기했던 것이다. 특히 2007년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로 인해 선거주의, 의회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고, 양당에 대한 노동현장의 비판적 여론 또한 확대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2012년 총대선에서의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한 민주노총의 ‘진보대통합’ 계획은 양당의 갈등만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반MB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와 지원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진당 출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통진당 내부의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가 전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비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미 국참당과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향후 당권파-비당권파의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구조, 검찰경찰을 동원한 공안탄압, 조중동을 포함한 지배세력의 색깔공세 속에서 통진당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통진당을 민주당화시킨다고 비판하지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말이 좋아 선거연합이지 온 국민의 지탄거리로 전락한 통진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그들을 지지, 묵인해온 것이 현재의 통진당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썩은 살은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개척해야 한다. 민주노총, 철저한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운동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에서 벗어나 의회주의로 경도된 데에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크다.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민주노총이 정치사업을 ‘국회의원 배출’과 ‘정당을 통한 입법사업’에만 국한하면서 조합원들을 돈 내고 표 찍는 수단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학습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노조다운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대중적 투쟁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지다 보니, 진보정당들도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벗어나 원내정당으로 변모해가는 데 있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 지지에 반대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우경화된 집권전략으로 경도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지지, 지원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된 노선에 맞춰 반MB 야권연대를 제1의 총선방침으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야당의 하위파트너로 전락시킨 것이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정치방침’과 함께 별도의 안건으로 토론하기로 했던 ‘총선방침’ 건에 대해 토론하지 못했고, 김영훈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위임하지 않은 ‘총선방침’ 건을 중집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 직후 개최된 중집에서 반대 입장을 가진 중집위원의 항의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조합원 ARS 여론조사를 통해 ‘비례대표 집중투표 정당’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게다가 당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상당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는 참여하지 않은 채, 통진당을 지지하는 ‘조사에 응하고 싶은 산별과 조합원’의 명단을 받아서, 그것도 약 22만 조합원 중 2만 3천여 명이 응답한 결과만으로 조직의 방침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 방침을 결정하여 민주노조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411 총선은 민주노총이 제1의 방침으로 삼았던 야권연대의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제는 실종되었고, 전략지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의 선거구 협상으로 13석을 얻었지만, 곧바로 부정선거 논란과 당내 폭력사태 등으로 전국민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 운동을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 수준에 대한 진단과 평가나, 이념적 수준에서든 조직적 수준에서든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현 주소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관계(혹은 민주노총의 헤게모니) 수준에서, 그리고 분당(혹은 분열)의 제약에 빠진 진보정당 운동과 법제도의 제약에 빠진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는 수준에서 외형적인 진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노총은 ①새롭게 제기되는 대중정당 운동의 상에 걸맞도록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대안적 상에도 걸맞도록) 임금, 고용 문제는 기업단위 노조에 맡기고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산별노조운동을 재편하며, ②(통합)진보정당에 대한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 당원 가입, 현장당원 활동체계 구축, 100억 조성, 지도체계 참여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①의 경우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노동자 계급 내에 분할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별노조총연맹 차원에서 노조운동에 가장 중요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투쟁전략, 노동자의 주체형성 전략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의 경우에도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린 진보정당 운동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전략 없이 조합원을 정당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적극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재건을 위한 구상 없는 조합원 동원 방식은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제2의 정치세력화 방침은 현 시기 정당운동의 목표를 ‘집권’(집권시대 노동운동)으로 상정하고, 당의 집권을 위해 산별노조 운동을 개조하자는 본말이 전도된 구상이다. 현재 진보정당의 우경화는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의 취약함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재건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마저 포기한 당 운동에 대한 의존을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는 노동조합 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운동성을 상실한 사이비 진보정당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당권파에 대한 비난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하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가 선언되어야 한다. ‘조건부지지 철회’라는 모호한 기대를 접고, 그동안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당면한 총파업 전선 구축과 민주노총의 전면적 혁신에 착수해야 하며, ‘민주노조 답게’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다양한 모색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철회’ 입장이 보여주듯이 민주노총 집행부와 산별노조연맹 대표자 다수는 통합진보당의 혁신비대위가 중앙위 결정사항을 관철시키고 일정하게 당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선거에서 구 당권파와 손잡은 강병기 후보가 당선되거나 혹은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제명되지 않고 일정한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 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신승철 전 사무총장, 정용건 민주노총 부위원장,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이 노동포럼을 결성하여 민주노총의 재편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구 당권파를 비판하면서 통합진보당 내부의 혁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의 개조와 혁신 가능성에 회의적이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통합진보당의 출범에 반대하여 직간접적으로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선언운동본부)에 결합했던 세력들의 경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제안하여 결성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제안자모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 그리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전태일 노동대학)이 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주요 세력이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작년 12월부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노동운동 내 중앙파로 알려진 ‘공공현장’ 활동가들과 금속의 ‘현장노동자회’(현노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내부의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 진보신당 일부 당원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제안자모임’은 진보신당 내 일부 그룹,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진보교연)’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은 향후 노동자정당 건설과정에서 진보신당이 함께 해야 하지만, 진보신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현장이 중심이 되고 진보신당은 이러한 흐름을 지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노위’는 그 동안 추진해온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 직접 조직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좌파 현장 활동가들의 주체적 당 건설 논의와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결정했다. ‘사노위’는 통진당 우경화 이후 좌파 현장 활동가들이 당 건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당노선과 세력범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사회주의 정당 노선만이 아니라 반통진당 좌파통합정당 입장의 활동가들까지 참가하는 공동의 토론장이 형성되고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노위’의 현장 재조직화 사업은 ‘노동전선’의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산별 활동가 정치토론 계획과 결합하여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전선’은 당의 노선과 관련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지역과 산업 별 현장정치토론을 진행하고, 이후 9-10월 활동가대회를 개최하여 변혁적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모임을 결의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전선’은 가능한 많은 세력이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노선을 뒤로 하고 세력을 합치자는 식의 ‘좌파통합정당론’을 경계하며 미래지향적이고, 노선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지난 해 부터 “3자 야합당”(통합진보당) 건설에 반대하면서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조해왔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토론 등을 강화해왔다. 지난 6월 1일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사태와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태일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는 발제문을 통해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목표로 변혁적 대중정당’(지향하는 이념은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현 단계 변혁의 과제는 낮은 수준의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으로!), ‘민중투쟁 전선체와 함께 투쟁하는 정당, 사회운동적 정당’, 당 건설 경로로서 ‘진보정치세력들의 통합과 외연확대(이른바 재구성)가 아니라 진보정치운동의 급진화’, 산업별/지역별로 현장으로부터 주체형성을 통한 ‘정치적 투쟁정당’ 건설 등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위의 주요 세력들의 행보와 더불어 정파를 뛰어넘는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 흐름과 각 세력 간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행 기아자동차노조 전 수석부위원장과 김일섭 대우자동차노조 전 위원장, ‘변혁산별’ 및 금속 비정규투쟁본부 활동가 등 금속노조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변혁정치모임)이 제안되어 5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모임을 개최했다. ‘변혁정치모임’은 무너진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현장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초기 금속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가를 제안했으나, 다른 산별까지 참가자를 확대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에는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와 같이 민주노총의 범좌파 세력 현장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은 지역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활동가들이 현장실천과 정치세력화 운동을 새롭게 모색하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만큼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과 정당건설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어, 이후 모임의 전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원심력이 작동할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위 노동자정당 건설 세력들과 변혁정치모임에 참여하는 개별 인사들 간에 상호 협력을 위한 집담회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담회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각 세력들의 공동행보, 즉 공동의 기구 건설 등이 제안되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각 조직의 논의수준, 정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의 경우 통진당 사태 이후의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의 기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나, ‘노동전선’의 경우, 당 건설 관련 내부 조직화 미비와 상층 중심의 조직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 당 노선에 대한 입장 확인의 필요성 등을 근거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의 경우도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하여 ‘변혁정치모임’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당 건설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담회는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틀인 ‘변혁정치모임’을 통한 현장 논의 활성화와 이후 공조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주제를 잡고 공동의 토론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른 한편 진보신당 창준위의 경우 전국위원회를 통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창당 법적 시한인 10월 전 창당을 목표로 하며, 여건이 충분치 않을 경우 형식적인 독자 재창당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관련하여 당 내 일각에서는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9월 말로 시한을 정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그 동안의 진보신당 활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부재한 것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정당 추진 흐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보신당이 일관된 의지를 갖고 지지, 지원해야 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어디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번 통진당의 부정선거, 당내 폭력사태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그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조만간 불어닥칠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변혁적인 정치세력 결집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의 주요 정파들이 대부분이 통진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당 건설을 추진하는 세력들 간의 역사적인 상호 불신, 당의 성격과 노선, 추진 경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뚜렷한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 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는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대리주의, 의회주의와 선거주의에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답게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현장 활동(학습과 투쟁, 정치적 실천)을 소홀히 하고, 노조를 진보정당운동의 동원부대로 전락시킨 것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민주노총이 투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굳건히 하지 않을 때, 진보정당은 노조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당의 우경적 노선전환과 원내 정당화 경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는 분별 정립하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투쟁력과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동자정당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하고, ‘계급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 평등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운동’과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계급동맹의 실현을 위한 전선운동’을 포함하는 운동 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중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강화시키는 계획 없이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으로부터 출발해야 따라서 현재와 같은 노동운동 주요 정파의 정당 건설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민주노조 혁신/재건을 위한 활동의 상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상반기부터 진행된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 활동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당 건설에 대한 선언운동본부 내부에 이견이 부각되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전국지역 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공동활동,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각 정파의 주요 관심사가 모두 당 건설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현재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어느 정파도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공동실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건설 논의가 중심이 되면서 구체적인 현장, 지역의 공동실천 논의는 상대화되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가 당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에 대한 이견으로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공동 논의와 실천조차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통진당 사태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의 진보정당, 노동자정당 운동에 대한 실망과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견지하는 노동자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교훈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조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노동자정당 건설 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지역, 현장의 운동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중심으로 역량을 배치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역량은 그 만큼 취약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건설이 민주노총의 활동을 강화시키지 못했듯이 노동자정당 건설이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 세력들이 현재의 지역과 현장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당 건설로 역량을 집중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의 활동력을 더욱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에서의 지속적인 패배,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혁신의 지체,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 복수노조/타임오프를 필두로 한 제도적 개악과 노조 탄압 공세 속에서 현장은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 이후 2기(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단병호이홍우 집행부)를 제외하면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코포러티즘) 노선이 집행부를 주도해왔다. 이들의 노선은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파 혹은 범좌파 세력들 또한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일관된 정치적 실천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온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 최근 민주노총 다수 정파인 전국회의의 ‘집권시대 노동운동’ 노선은 노동조합을 통합진보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수단으로 사고하며, 2012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부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향후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지지를 둘러싼 갈등, 민주노총 내 정파별 조직화 경쟁, 산별노조의 무기력으로 인한 조직이탈 흐름(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국민연금지부를 포함한 6개 노조의 통합추진위 결성), 민주노총 직선제 과정에서 예상되는 선거부정 사태 등으로 인해 내부적 갈등의 격화와 정권/자본의 외부적 탄압이 겹쳐져 급격하게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위기국면을 대비하면서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전국회의와 같은 우경화된 노선에 비판적인 민주적변혁적 세력들이 전국적-지역적 차원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활동과 공동논의, 나아가 전국적인 활동가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 조직 따라서 노동운동 내부의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의 혁신과 재건을 중심적인 논의과제로 하여 지역과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을 확대해야 하며,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은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지역과 현장의 공동 실천을 기본으로 하면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의 전략 논의 ▲2012년말 민주노총 선거(직선제 예정) 공동대응 ▲2012년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중심으로 공동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재건을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노선, 활동방향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요 과제에 관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진단과 사회변혁을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민주노총-산별노조연맹 투쟁의 혁신, 생존권 보장과 사회변혁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그 실현을 위한 투쟁 전략,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전략, 현장 활동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민주노조 조직혁신 방안, 노조 민주주의의 강화와 투쟁기풍/조직문화의 혁신, 자주적인 재정확보와 재정 배분의 혁신방안,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평가와 새로운 전략,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조합원 교육/소모임 활동의 강화와 지역, 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지역, 현장 활동 강화를 위한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등. 둘째, 2012년 말 민주노총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가 부정선거 사태로 치달을 경우 민주노총의 심각한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직선제 실시 준비상태 등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며, 직선제가 실시될 경우 변화된 선거제도를 고려한 구체적인 선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어떤 세력이 운영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또 다시 진보정당운동(그것도 사이비 진보정당인 통진당)에 종속된 노조운동 노선,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 노선이 민주노총의 집행부를 운영할 경우, 향후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은 더욱 무기력해질 것이다. 셋째, 2012년 12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지도부 선거 결과 및 향후 당권 경쟁의 결과 등 일부 변수가 있더라도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선대로라면 대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노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을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지지부대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대선방침은 최소한 이러한 민주노총의 무원칙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을 저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답게 민주노총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대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여론화하고 대선 후보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선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대선에서 독자후보 전술 등은 변혁적 정치세력들의 논의와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를 거쳐 가능성을 검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정당 건설은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와 공동실천,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변혁적 정치세력 간의 논의의 성과를 교류하고, 주객관적인 역량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당 건설 추진경로를 밟아야 한다.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사회운동적인 노동자정당은 노선의 선명함과 주체들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조 운동, 대중운동의 역량과 투쟁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조급하게 노동자정당을 추진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거나, 통진당처럼 자유주의화/우경화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 2차 총선의 의미와 전망 6월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이 긴축찬성 우파 신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시리자를 비롯한 긴축반대 좌파를 ‘인민주의’로 매도하며 이들이 집권할 경우 당장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가 발생할 것처럼 공포를 자극한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와 우파의 공조가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1당 신민주당의 주도로 3당 사회당, 6당 민주좌파당이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이 신정부는 조만간 트로이카와 긴축안 재협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 정부들과 자본가들은 신민주당의 승리에 일단 안도감을 표하며 그리스 불안이 다소 진정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연 신민주당 연정은 그리스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리자의 한계와 기회는 무엇인가. 유럽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지고 있는 재정위기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유럽의 좌파는 구제금융-긴축재정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안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나. 그리스 2차 총선 결과의 의미 [%=사진2%][표] 그리스 총선 결과. 출처: Parties and Elections in Europe 6월 17일 총선에서 시리자는 신민당에 근소한 차이로 패해 2당이 되었다. 시리자의 당선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이지만, 이것이 시리자의 영향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자는 5월 1차 총선과 비교할 때 득표율이 10% 가량 상승하며 71석을 얻어 제1 야당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층, 중장년층, 그리고 주로 노동자 거주지에서 득표율이 크게 상승하며 이러한 인구계층에서 명백한 1당이 되었다. 시리자가 앞으로 중대한 정치세력으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또한 치프라스 대표는 시리자가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연정을 구성할 신민주당과 민주좌파당, 그리고 2010년 집권 정당 시절 긴축정책 조건을 받아들이고 추진한 사회당까지 모두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축반대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확실한 성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5월 총선에서 긴축반대를 선언한 정당이 60% 가량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긴축반대 세력의 득표율은 45%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는 보수 세력의 악선전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외 주류 언론이 구제금융-긴축재정의 부정은 유로존의 강제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압도적인 담론을 형성했고, 이러한 지형에서 많은 그리스 국민들은 위협을 느껴 시리자를 찍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시리자의 메시지는 많은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차 총선 이후에 시리자는 ‘긴축정책의 철폐나 대폭 수정 입장을 취해도 유로존 잔류가 가능할 것이며 정권 교체라는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서 대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변화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유권자가 이러한 주장에서 희망을 느꼈던 반면 또 다른 많은 유권자들이 설득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 좌파의 한계와 기회 선거연합체인 시리자에 참여하는 급진 좌파 세력들은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가 거둔 분명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시리자가 보인 한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트로이카와 자본가들의 공격이 거셀 것이며 그리스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을 시리자가 분명히 인식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과 현장 수준에서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교육하며 투표를 조직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리자는 선거 시기에 트로이카와의 갈등을 축소하려고 애썼고, 지역과 현장 수준이 아니라 매스컴을 주요한 활동 무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사진1%] 시리자가 총선에서 1당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러한 활동을 펼칠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1당이라는 위치가 시리자의 행보에 많은 제약을 가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사실 신민주당·사회당·민주좌파당 연정의 앞길은 매우 어두워 보인다. 유럽연합 기구의 주요 인사들 내에서 구제금융 조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독일이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정부가 긴축정책을 집행하려고 한다면 대대적인 반발과 투쟁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연정이 올해 안에 무너질 것을 전망하는 언론이나 학자가 적지 않다. 시리자가 1당이 되었다 하더라도, 트로이카의 압박 속에서 완화된 긴축정책을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었다면 시리자의 정당성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크게 상실됐을 것이다. 차라리 2당의 위치에서 보다 확고한 노선을 수립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지원하면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를 벌이며 세력을 강화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시리자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총선 직후에 치프라스의 몇 가지 발언을 통해 시리자의 계획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치프라스는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책임있는 야당’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또는 당분간 투쟁을 동원하는 것보다 긴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최하층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조직화와 투쟁 중심의 활동보다는 의회 중심의 전략을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세에서 의회 안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시리자는 ‘약한 긴축’(austerity light), 즉 긴축 정책을 일부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중의 권리와 생존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위기대책과 전망 신민주당이 주도하는 그리스 신정부는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긴축정책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신민주당은 향후 지급될 구제금융에 대한 금리 인하와 상환 기간 연장,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한 추가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자력으로 채무를 상환하기 어려운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에 빠진데다가 올해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더욱 악화하여 예정대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과도한 긴축에 대한 그리스 민중의 반발을 감안하면,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지원조건 일부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일 메르켈 총리나 라가르드 IMF 총재 등 트로이카의 주요 인사들은 구제금융국의 ‘도덕적 해이’를 빌미로 재협상 요구에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그리스 신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부 조건이 완화된 새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트로이카의 강력한 압력으로 그 내용은 현재의 긴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잔류와 구제금융 지원을 대가로 그리스 민중들은 다시 한 번 처절한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개혁’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제금융이 현재 그리스의 위기를 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스페인의 전면적인 구제금융 신청 예상, 유럽 은행들의 자본확충 시한(6월 30일) 만료 및 신용등급 조정 예상 등으로 유럽의 위기는 ‘시계 제로’ 상황에 처해 있다. 6월 18-19일 개최된 주요20개국정상회의(G20)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공조 방안을 논의했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며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은 6월 21-22일 EU 재무장관회의, 28-29일 EU 정상회의에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유럽금융안정화기금(EFSF) 및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과 같은 위기관리기구의 역할 강화 ▲‘유일한 방화벽’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융 안정 기능 수행 ▲재정규율 강화를 요체로 하는 신재정협약을 보완하기 위한 성장협약의 체결 ▲유로본드 발행 ▲유럽채무상환협약 체결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과도적 대책으로서 금융동맹(banking union) 결성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들은 유로존의 구조적 제약 및 회원국간 정치적·경제적 이질성으로 인해 실행가능성이 낮다.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단기간 내 합의되기 어려울뿐더러, 근본적 해법이 부재한 가운데 일부 개선 조치가 도입되더라도 그 실효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신정부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재정위기 극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또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위기가 파급되면서 유럽의 위기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서 대안 세력을 형성해야 지금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긴축정책과 트로이카의 독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유럽 통합에 대한 대안을 현실화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이 공포를 극복하여 현재 체제가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이미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되고 있다. 가령 그리스 노동자들은 점점 전투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의 노동조합, 정당, 사회운동단체들은 국제회의(Joint Social Meeting)를 개최하여 긴축에 반대하는 유럽 차원의 투쟁을 조직할 방안과 민중적 부채 감사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대안들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또 대안 세력들이 충분이 성장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의 2년간의 투쟁을 보면 분명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시리자는 이러한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을 자처하며 의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유럽 차원의 대안 논의에 적극 동참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 좌파들은 유럽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과 모순을 폭로하면서 대중 교육과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할 때 그리스와 유럽 민중들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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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은 무상의료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공공병원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공공성을 파괴할 영리병원이 현실화되려는 지금,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되면서 영리법인이 세울 수 있고,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영리병원 추진을 시작하고 주도해 온 것은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무상의료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의료비 상승을 주도하는 제약자본, 병원자본, 보험자본을 제어하는 전략이 없는 무상의료 정책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현실화 될 상황에 처하자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두 달 가까이 민주통합당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번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확실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민주통합당의 무상의료 공약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거짓 공약일 뿐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영리병원이 존재하는 한, 무상의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송영길 인천시장 역시 민주통합당과 똑같이 행보하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2008년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하였다. 그러나 송 시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이 후보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리병원 반대 입장을 선언하고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인천 송도에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송도영리병원 설립이 어렵다”는 식으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작년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단회에서 송 시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송도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모든 추진일정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말했으나 이후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영리병원 설립 추진에는 막힘이 없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천시의 하부 조직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뒤에 숨어있지 말고, 법률적 장치가 마련되려는 지금 송도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민주통합당 역시 그간의 무상의료 공약이 입에 발린 거짓 공약이었는지, 조금이라도 반성과 진정성이 있는 약속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대로 영리병원이 추진된다면 민주통합당이야말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6월 12일 사회진보연대
5월 22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노동해방실천연대(이하 해방연대) 회원 4명을 연행하였다. 또 진보넷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는 탄압을 자행했다. 경찰은 해방연대에게 국가보안법 7조 위반, 즉 ‘반국가단체 구성 및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문서 등을 제작·수입·복사·소지’한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자본과 정권의 착취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반민중적 악법을 존속시키고 그것을 악용하는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반동이자 사라져야 할 현대사의 수치다. 경제위기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전세대란을 낳으며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정부는 임기 내내 친기업-반노동자적 길만을 걸어왔다. 또한 이러한 정부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을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활용하여 탄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반전 평화, 민중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악법,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노동해방실천연대 동지들을 즉각 석방하라! 비민주적 반민중적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 2012년 5월 22일 사회진보연대
1. 민주노총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 정치방침을 다시 세우자, 총파업에 나서자 2. 6월, 화물연대 파업 승리로 총노동의 반격을 시작하자!
뼈를 깎는 자기비판으로 정치방침을 새롭게 수립해야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가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논란의 일차적인 책임은 소위 당권파에 있다. 이들은 ‘정치적 압박에 사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부정선거’ 프레임을 ‘부실조사’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총체적 관리부실·부정선거라는 입장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는 진상조사위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 또는 ‘정치공작’으로 규정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지만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당원총투표로 대의기구 결정을 무력화하며 시간을 벌려는 당권파의 출구전략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의 처지처럼 통합진보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에 처해있다. 그러는 사이 민중운동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사진1%] 당권파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민주주의의 기초와 진보의 상식을 저버린 행태에 대해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를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 다 흐린다’는 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많은 부분 당권파의 책임이 걸쳐있긴 하지만 오늘의 사태는 통합진보당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이정희 대표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는 표면적으로 후보자 개인의 출세주의나 특정 정파의 사리사욕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당 내부에서 적절한 검증이나 조정 절차를 갖췄다면 많은 부분 해결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출세주의나 정파적 이해가 반복적으로 출현하고 그 정도가 계속해서 심화하는 역사적·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당직·공직 선거과정에서의 부정 시비는 당권파가 떳떳이 밝히듯이 실로 오래된 관행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현 당권파를 포함하여 과거 민주노동당을 수권했던 범 민족해방 계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만큼 파장이 컸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세팅선거’나 위장 전입, 당비 대납 사건은 정파 갈등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2000년 울산 북구, 2001-2002년 서울 용산, 2003년 경기도 의정부갑, 2004년 광주 북구, 2005년 인천 남구갑 등에서 위장 전입이나 당비 대납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또 2004년 이후 다수를 점한 범 민족해방 계열은 당내 선거에서 1인 다표제를 도입하여 그 안의 정파별 안배를 통해 당직·공직을 독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파 갈등은 결국 2007-2008년 대선 패배에 이은 소수파의 탈당으로 귀결되었다. 통합진보당 노선 자체가 문제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의회주의와 수권정당 노선이 강화된 과정에 병행했다. 원내진출을 계기로 당의 인력 및 재정 배치는 의정지원에 편중되었다. 또 당의 정치이념을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노선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직·공직을 둘러싼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정파 활동의 초점 역시 정당의 이념과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생존의 위기에 처한 정파들이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라는 점에서 모순이 더욱 심화하였다. 이념과 역사를 초월한 정파연합당인 통합진보당 안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야권연대 역시 정책연합보다는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후보를 조정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현재 비당권파는 강기갑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위 체계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권파는 비대위 체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양자가 사태 수습 방안을 둘러싸고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당권파든 비당권파든 사태가 분당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극심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5-6석과 원내 3당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비주류나 새진보통합연대 등 비당권파들은 당권파가 당직·공직에서 한 발 물러나게끔 함으로써 사태를 최대한 원만하고 신속하게 수습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당권파의 패권성과 비민주성을 비난할지언정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 즉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할 때 당권파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한들 그 빈자리를 채울 비당권파에게 쇄신된 진보정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도마뱀 꼬리 자르는 격’으로 당권파에게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간편한 길일 수 있다. 민주노총은 총선방침의 오류를 자기비판해야 한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이번 사태가 진보진영에 끼치는 악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보수언론은 ‘당권파는 부정 없었으면 자청해서 검찰 수사받으라’(조선일보)거나 ‘민주주의 DNA 없는 당권파, 북한 닮았다’(동아일보)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검찰이 개입할 빌미도 주어진 상태다. 여론 악화로 통합진보당 지지율이 빠르게 추락한 것은 물론 이를 지지했던 민중운동의 사기도 크게 저하하고 있다. 당 내부의 논란은 어찌됐든 간에 12일에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일단락되겠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직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론을 묵살하고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 민주노총은 다시 한 번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실 민주노총은 이번 부정경선 논란의 당사자다. 문제로 지적된 현장투표의 상당 부분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다.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집중 투표 정당’으로 정하기 위해 실시한 조합원 ARS 여론조사 역시 부정·부실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 대표가 바로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합원 1명당 3통씩 전화가 오는 과정에서 중복투표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애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다수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가 제외되어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이 표본으로 취합된 결과 여론조사 방식 자체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의문시되었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한 방침을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노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더욱이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며 따라서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이 될 수 없다’는 현장의 문제제기에 따라 소집된 임시대의원대회는 집행부의 대회 무산 의도 속에 성원미달로 또다시 유회되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제투성이 총선방침, 즉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그 통합진보당이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화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총선방침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였다. 뼈를 깎는 반성으로 통합진보당과 결별해야 한다 일단 민주노총은 3일 산별대표자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통합진보당 부실·부정선거,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서 산별 대표자들은 ‘미봉책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같은 날 열린 16개 산별 공동 주최 ‘총선평가 토론회’에서도 여러 산별 대표자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논란과 민주노총 총선방침의 문제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민주노총은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조직적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한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집행부는 아직 총선 평가안을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에 대한 조직 내 이견이 해소되지 못한 속에서 총선을 치러 방침 결정 및 집행에 난항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 역량과 주체 역량이 취약한 상태에서 진보진영 단일화와 야권연대 방침에 기초한 선거방침을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여소야대를 목표로 수립된 총선방침의 오류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평가다. 심지어 민주노총 한 주요 간부는 성명 발표 이후에 개최된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에서 당권파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반조직적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민주노총 성명은 산별 대표자들의 비판을 의식하여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집중투표 전술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일 뿐, 집행부 스스로 총선방침 전반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시에 산별 대표자들 역시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이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집행부는 11일 중집에서 총선방침의 오류를 시정하지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선언 이상의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총 중집의 총선평가는 단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엄정히 비판하고 야권연대와 같은 우경화된 실용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방침과 정치방침을 둘러싼 지난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통합진보당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와 불신을 씻고 현장과 지역의 투쟁을 엄호, 확산하면서 흔들림 없이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정치세력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민주노총의 태도에 따라 정치방침을 올바로 수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에 관해 전조직적인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계급이 이념적·조직적으로 정립하여 사회변혁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정치세력화의 기초다.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번 사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