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무상의료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공공병원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공공성을 파괴할 영리병원이 현실화되려는 지금,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되면서 영리법인이 세울 수 있고,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영리병원 추진을 시작하고 주도해 온 것은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무상의료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의료비 상승을 주도하는 제약자본, 병원자본, 보험자본을 제어하는 전략이 없는 무상의료 정책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현실화 될 상황에 처하자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두 달 가까이 민주통합당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번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확실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민주통합당의 무상의료 공약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거짓 공약일 뿐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영리병원이 존재하는 한, 무상의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송영길 인천시장 역시 민주통합당과 똑같이 행보하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2008년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하였다. 그러나 송 시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이 후보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리병원 반대 입장을 선언하고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인천 송도에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송도영리병원 설립이 어렵다”는 식으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작년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단회에서 송 시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송도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모든 추진일정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말했으나 이후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영리병원 설립 추진에는 막힘이 없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천시의 하부 조직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뒤에 숨어있지 말고, 법률적 장치가 마련되려는 지금 송도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민주통합당 역시 그간의 무상의료 공약이 입에 발린 거짓 공약이었는지, 조금이라도 반성과 진정성이 있는 약속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대로 영리병원이 추진된다면 민주통합당이야말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6월 12일 사회진보연대
5월 22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노동해방실천연대(이하 해방연대) 회원 4명을 연행하였다. 또 진보넷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는 탄압을 자행했다. 경찰은 해방연대에게 국가보안법 7조 위반, 즉 ‘반국가단체 구성 및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문서 등을 제작·수입·복사·소지’한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자본과 정권의 착취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반민중적 악법을 존속시키고 그것을 악용하는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반동이자 사라져야 할 현대사의 수치다. 경제위기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전세대란을 낳으며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정부는 임기 내내 친기업-반노동자적 길만을 걸어왔다. 또한 이러한 정부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을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활용하여 탄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반전 평화, 민중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악법,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노동해방실천연대 동지들을 즉각 석방하라! 비민주적 반민중적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 2012년 5월 22일 사회진보연대
1. 민주노총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 정치방침을 다시 세우자, 총파업에 나서자 2. 6월, 화물연대 파업 승리로 총노동의 반격을 시작하자!
뼈를 깎는 자기비판으로 정치방침을 새롭게 수립해야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가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논란의 일차적인 책임은 소위 당권파에 있다. 이들은 ‘정치적 압박에 사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부정선거’ 프레임을 ‘부실조사’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총체적 관리부실·부정선거라는 입장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는 진상조사위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 또는 ‘정치공작’으로 규정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지만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당원총투표로 대의기구 결정을 무력화하며 시간을 벌려는 당권파의 출구전략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의 처지처럼 통합진보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에 처해있다. 그러는 사이 민중운동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사진1%] 당권파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민주주의의 기초와 진보의 상식을 저버린 행태에 대해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를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 다 흐린다’는 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많은 부분 당권파의 책임이 걸쳐있긴 하지만 오늘의 사태는 통합진보당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이정희 대표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는 표면적으로 후보자 개인의 출세주의나 특정 정파의 사리사욕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당 내부에서 적절한 검증이나 조정 절차를 갖췄다면 많은 부분 해결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출세주의나 정파적 이해가 반복적으로 출현하고 그 정도가 계속해서 심화하는 역사적·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당직·공직 선거과정에서의 부정 시비는 당권파가 떳떳이 밝히듯이 실로 오래된 관행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현 당권파를 포함하여 과거 민주노동당을 수권했던 범 민족해방 계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만큼 파장이 컸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세팅선거’나 위장 전입, 당비 대납 사건은 정파 갈등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2000년 울산 북구, 2001-2002년 서울 용산, 2003년 경기도 의정부갑, 2004년 광주 북구, 2005년 인천 남구갑 등에서 위장 전입이나 당비 대납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또 2004년 이후 다수를 점한 범 민족해방 계열은 당내 선거에서 1인 다표제를 도입하여 그 안의 정파별 안배를 통해 당직·공직을 독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파 갈등은 결국 2007-2008년 대선 패배에 이은 소수파의 탈당으로 귀결되었다. 통합진보당 노선 자체가 문제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의회주의와 수권정당 노선이 강화된 과정에 병행했다. 원내진출을 계기로 당의 인력 및 재정 배치는 의정지원에 편중되었다. 또 당의 정치이념을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노선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직·공직을 둘러싼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정파 활동의 초점 역시 정당의 이념과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생존의 위기에 처한 정파들이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라는 점에서 모순이 더욱 심화하였다. 이념과 역사를 초월한 정파연합당인 통합진보당 안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야권연대 역시 정책연합보다는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후보를 조정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현재 비당권파는 강기갑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위 체계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권파는 비대위 체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양자가 사태 수습 방안을 둘러싸고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당권파든 비당권파든 사태가 분당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극심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5-6석과 원내 3당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비주류나 새진보통합연대 등 비당권파들은 당권파가 당직·공직에서 한 발 물러나게끔 함으로써 사태를 최대한 원만하고 신속하게 수습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당권파의 패권성과 비민주성을 비난할지언정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 즉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할 때 당권파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한들 그 빈자리를 채울 비당권파에게 쇄신된 진보정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도마뱀 꼬리 자르는 격’으로 당권파에게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간편한 길일 수 있다. 민주노총은 총선방침의 오류를 자기비판해야 한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이번 사태가 진보진영에 끼치는 악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보수언론은 ‘당권파는 부정 없었으면 자청해서 검찰 수사받으라’(조선일보)거나 ‘민주주의 DNA 없는 당권파, 북한 닮았다’(동아일보)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검찰이 개입할 빌미도 주어진 상태다. 여론 악화로 통합진보당 지지율이 빠르게 추락한 것은 물론 이를 지지했던 민중운동의 사기도 크게 저하하고 있다. 당 내부의 논란은 어찌됐든 간에 12일에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일단락되겠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직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론을 묵살하고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 민주노총은 다시 한 번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실 민주노총은 이번 부정경선 논란의 당사자다. 문제로 지적된 현장투표의 상당 부분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다.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집중 투표 정당’으로 정하기 위해 실시한 조합원 ARS 여론조사 역시 부정·부실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 대표가 바로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합원 1명당 3통씩 전화가 오는 과정에서 중복투표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애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다수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가 제외되어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이 표본으로 취합된 결과 여론조사 방식 자체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의문시되었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한 방침을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노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더욱이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며 따라서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이 될 수 없다’는 현장의 문제제기에 따라 소집된 임시대의원대회는 집행부의 대회 무산 의도 속에 성원미달로 또다시 유회되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제투성이 총선방침, 즉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그 통합진보당이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화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총선방침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였다. 뼈를 깎는 반성으로 통합진보당과 결별해야 한다 일단 민주노총은 3일 산별대표자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통합진보당 부실·부정선거,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서 산별 대표자들은 ‘미봉책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같은 날 열린 16개 산별 공동 주최 ‘총선평가 토론회’에서도 여러 산별 대표자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논란과 민주노총 총선방침의 문제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민주노총은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조직적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한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집행부는 아직 총선 평가안을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에 대한 조직 내 이견이 해소되지 못한 속에서 총선을 치러 방침 결정 및 집행에 난항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 역량과 주체 역량이 취약한 상태에서 진보진영 단일화와 야권연대 방침에 기초한 선거방침을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여소야대를 목표로 수립된 총선방침의 오류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평가다. 심지어 민주노총 한 주요 간부는 성명 발표 이후에 개최된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에서 당권파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반조직적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민주노총 성명은 산별 대표자들의 비판을 의식하여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집중투표 전술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일 뿐, 집행부 스스로 총선방침 전반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시에 산별 대표자들 역시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이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집행부는 11일 중집에서 총선방침의 오류를 시정하지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선언 이상의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총 중집의 총선평가는 단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엄정히 비판하고 야권연대와 같은 우경화된 실용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방침과 정치방침을 둘러싼 지난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통합진보당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와 불신을 씻고 현장과 지역의 투쟁을 엄호, 확산하면서 흔들림 없이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정치세력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민주노총의 태도에 따라 정치방침을 올바로 수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에 관해 전조직적인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계급이 이념적·조직적으로 정립하여 사회변혁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정치세력화의 기초다.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번 사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지역 노사민정 파트너십의 본질 서울시가 <노사민정협의회 운영활성화 계획>을 제시했다. 서울시 계획의 핵심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한국노총 서울본부와 경총이 참여했다면 여기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상공회의소를 노동자, 사용자 대표로 참가시켜 대표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서울본부 관계자는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가 정부 산하의 노사정위원회와 성격이 다른 만큼, 산하조직의 의견을 수렴해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역 노사민정은 중앙 노사정과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 또는 서울 노사민정은 다른 지역과 다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지역노사민정 파트너십과 박원순 시장의 지역노사정협의회가 일관된 이념과 목표, 구조로 조직된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노사정위원회 지역 노사민정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정부측 논자들은 그것이 “경직적인 국가차원의 노사정간 협의를 개선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역 노사민정 참여가 중앙 노사정위 참여를 향한 매우 유용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참여와 중앙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분리된 문제로 볼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집권기에 노사정위원회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기 위한 틀로 기능했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탈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 집권기인 2004년 이후로 임의 기구였던 노사정대표자회의도 결국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로는 아예 주된 의제에도 오를 수 없었다. 총연맹 차원에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참여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뤄야 한다. 지역 노사민정 파트너십 참여는 개별 지역본부가 판단할 문제를 넘어선다. 민주노총 전체 차원에서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지역 노사민정 파트너십의 활동 방식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에 따르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2010년 8월 현재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6개, 230개 기초자치단체 중 82개 지역에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노사정위원회와 성격이 다르고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는가? 노무현 정부 집권기인 2007년 노사정위원회가 발표한 <지역노사정협의회 설치·운영 매뉴얼>은 정부가 바라보는 노사민정 파트너십의 이상형을 보여준다. 매뉴얼이 제시하는 출발점은 지역 노사정의 스킨십 강화다. ‘지역 노동단체와 사용자단체는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기 쉽기 때문에’ 서로 거리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것은 권고한다. 예를 들어 노사 체육대회나 합숙프로그램을 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노사민정의 정책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것이다. 매뉴얼이 권고하는 교육은 ‘국가경제 개관 및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 ‘국가 차원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역사적 의미’, ‘선진국 사례’와 같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바라보는 경제 현실을 교육하여 노동운동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역적 의제 발굴을 위한 실태 조사다. 예를 들어 지역 중소기업의 역외 이전에 따라 지역경제가 침체하는 문제나 특정 지역 전략사업을 발전시키는 문제를 논의한다. 네 번째는 부문협의회를 구성하는 단계다. 부문협의회가 설치되는 경우는 공공·제조·택시와 같이 특정 업종별 협의회나 고용·인적자원개발 협의회로 크게 나뉠 수 있다. 업종별 협의회는 주로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매뉴얼은 업종별협의회의 경우, 상시적 논의 의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주로는 고용·인적자원 개발 협의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권고한다. 예를 들어 지역의 산업 수요를 조사하여 노동자, 실업자를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사업 모델로 제시한다. 다섯 번째는 지방자치 단체에서 재정 지원을 받거나 산업자원부, 노동부의 중소기업 지원사업 계획이나 산업안전공단의 클린사업장지원사업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사업실행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매뉴얼이 제시하는 지역 노사민정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면 중앙 노사정위원회와 다루는 의제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효과는 동일하다. 국가경쟁력이든 지역경쟁력이든 간에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력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다. 지역 노사민정의 구체 사례 2008년 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은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지역노사민정 파트너십 시범평가를 시행했다. 노사관계 투자예산을 살펴보면 광역 지자체들이 1년에 한 차례 정도 개최되는 노사민정협의회와 노사정 한마당 행사나 노사공동 교육프로그램과 같은 전시성 행사에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돈을 풀었다. 또한 노동시장 투자예산의 경우, 지차체들이 직업훈련과 직업알선 사업에 수십억에서 천억 원대의 돈을 지출했다. 따라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운영되게 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정부 재정지원에 있다. [표] 2008년 지차체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분야 투자예산 (단위: 억) [%=사진1%]* 노사상생협력 우수자치단체 선정 미신청 시도(서울, 대전, 제주) 제외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히는 부천의 사례를 보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본질이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노총이 참여했다.) 1999년 설립된 부천지역 노사정협의회는 이명박 정부 집권기인 2009년 노동부 주관 지역노사민정 협력활성화 사업평가에서 최우수 기초단체로 표창을 받았다. <2007년 노사정 산업평화 공동선언문>은 “노사정 파트너십에 기반한 고용 및 인적자원 개발이 지역발전의 기틀이 된다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지역의 유망기업 유치 분위기 조성 및 노사분규가 없는 선진노사문화 정착을 위하여” “부천지역 훈련 및 인적자원 개발사업과 노사공동훈련 등 근로자 능력개발과 평생학습, 일자리창출, 고용안정에 다같이 노력”하며 “지속적인 자기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전력질주함으로써 선진적 노사관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부천 노사민정은 2000-2005년 업종별협의회(택시, 전기·전자, 공공)를 구성했고, 택시노조 파업, 환경기동반노조 파업, 마을버스노조 파업, 삼양중기노조 파업 등 업종별 분쟁조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노사분쟁조정 기능은 궁극적으로 노동위원회 소관이기 때문에 지역노사정협의회 분쟁조정은 ‘사적 조정’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지역 노사민정의 역할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에 따라 부천 노사민정은 2006-2008년에 고용사업단을 구성하여 주로 노사정 공동의 고용인적자원 개발사업을 펼쳤다. 노사공동직업훈련 사업은 부천노총과 부천상공회의소 공동콘소시엄 형태로 추진되었고(주로는 사내직업훈련.), 지역고용·인적자원개발사업은 8개 유관기관 공동콘소시엄으로 추진되었다(주로는 청년층 기술교육, 중장년층 고용촉진사업). 지역노사정협의회는 중앙 노사정위원회와 다른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걸쳐 일관된 흐름 속에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노사협력’, ‘노사상생’을 전제로, 지역 내 유망기업 유치를 목표로 삼아 협력적 노사관계 수립과 노동자 직업훈련을 핵심 과제로 수행했다. 이는 곧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협력체제’로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핵심 중 핵심이다. 지역노사민정의 논리는 곧 민주노조가 지역 내 유망기업 유치를 어렵게 하며 지역경제에 해를 입힌다는 주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노사협력사업에 관해 보자면, 지자체가 수억, 수십억의 예산을 집행했으나 대체로 체육대회나 한마음 행사 같은 각종 전시성 사업에 집중된다. 이보다 발전된 모델로 간주되는 부천노사정협의회를 보더라도 지역 노동자투쟁과 관련된 조정자 역할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사측이 합의를 뒤집어도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사측이 의지가 없다면 아무런 강제력도 없다.) 설사 조정이 되더라도 이는 사실상 ‘사적 조정’이기 때문에 상층 협의과정에서 투쟁이 변질되거나 부작용이 수반될 가능성도 있다. 지역노사정위 사업은 결국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직업훈련, 직업알선 등)을 노동조합이 대행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과연 고용불안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의문이다. 과연 한국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실업으로 고통 받는 이유가 직업훈련, 직업알선이 부족해서인가? 오래 전부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펼친 서구사회는 실업률 하락을 경험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노조가 정부(산업자원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공단 등등) 사업 일부를 대행하는 게 곧 자기역할의 확장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노사정이 공동 주관하는 사내직업훈련이나 청년층 또는 중장년층 직업훈련이 노동조합 조직화로 연결되는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지방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들러리가 되지는 않을까?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에 참여할 기회는 지역 차원에서 진행되는 산업구조조정에 순응하는 것을 전제로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는 다른가?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는 다른 지역과 무언가 다른가?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 노사민정의 기본 기능도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인적자원개발’, ‘노사관계 안정’, ‘지역경제 발전’, ‘노사민정 협력증진’로 제시되었다. 다른 지역노사민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서울시 노사민정은 분과위원회로 <노사협의회>(신설)와 <일자리협의회>를 둘 것이다. 전자는 노사분규나 비정규직 문제, 노사현안 사항을 다루고 후자는 서울시 일자리창출 정책을 협의하고 고용촉진·직업능력 개발을 논의할 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협의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구조는 업종별 협의회와 고용·인적자원개발 협의회를 양대 축으로 삼는 지역노사민정의 기본구조와 일치한다. 현재 서울본부 집행부는 2011년 박원순 후보와 맺은 정책협약이 일정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책협약에는 서울시 산하기관의 해고자 원직 복직, 서울시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25개 구에 노동복지센터 설립, 서울시 유관노조의 주요 임단협 현안문제 해결, 공공운수노조·연맹, 보건의료노조의 ‘보호자 없는 병원 정책협약’이 포함된다. 박원순 시장의 행보가 그 이전 한나라당 출신 시장들과 가시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시가 직접적인 노정협의기구 구성을 반대하고 노사민정협의회 내에 서울본부를 참여시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보수세력도 동의하는 노사민정의 기본 이념과 기능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동정책을 구사하겠다, 곧 ‘지역 노사관계안정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맥락에서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지역 노사정 파트너십 민주노총이 대정부 요구안을 수립해 교섭을 요구할 때 정부가 반드시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요구하거나 민주노총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서울시의 경우도 노사민정 파트너십 참여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노사민정 파트너십은 기본성격과 3자 협의구조에 내재하는 제약 때문에 한계가 크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지역 노사정 파트너십 참여 문제를 검토하려면 지역본부 고유의 임무와 활동이 무엇이어야 하냐는 문제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지역본부의 일차적 임무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투쟁을 지역에서 뒷받침하며 지역 내에서 노동자 투쟁을 연결하고 광범위한 사회운동 연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 내 노동조합들의 (전략)조직화 사업을 매개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지역본부가 명실상부하게 지역 노동조합운동의 센터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공세적으로 지방정부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통일적 요구도 수립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행보를 보면 이런 역할을 스스로 방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지역의 노동자 투쟁과 조직화 사업을 매개하고 확장하는 ‘본부’로서의 역할은 최소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본부의 최근 경향을 보면 일반노조를 비롯해 직가입노조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서울본부가 마치 주요 산별노조·연맹들과 분리된, 심지어 다른 노조와 경쟁하는 ‘독자’ 노조처럼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서울본부가 이와 관련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자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 참여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25개 구 노동복지센터 건립 사업을 독려한다’는 것이 결정적 동기의 하나다. 또한 향후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각종 일자리 창출 사업에 관여하겠다는 의지가 큰 것 같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노동복지센터 사업이나 일자리 사업이 얼마나 노조 조직화에 기여할 수 있냐는 것은 심각한 쟁점이다. 또한 지역본부의 중심 임무를 방기한 채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것을 자기 역할의 확장이라고 오해한다면 지역 노조운동에 큰 공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 참여한다면 정부의 직간접적 재정지원이나 노사정 간 유무형의 인적망은 노동조합 상층부에 기회나 이익을 의미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의 재정지원이 지역 노사민정이 굴러가게 하는 궁극적 힘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동기와 목표로 노사민정협의회에 참여한다면, 지역 노동자운동의 요구를 모아내고 이를 지방정부에 강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힘이 오히려 약화될 우려가 크다. 서울지역을 넘어서 노동조합 운동 주체들의 진지한 토론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문제다. [%=박스1%]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분석 투표율 19대 총선 투표율은 54.3%로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투표율 54.5%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18대 총선 투표율 46.1%에 비해 8.2% 포인트 높아진 수치지만, 57.2%를 기록한 지난 16대 총선에 비해서는 2.9% 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역대 총선 중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다. [표1] 최근 선거 투표율 (%) 이번 총선은 2010년 6.2 지방선거와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를 거치며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범야권은 2004년의 높은 투표율이 재현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과 김용민 막말 논란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상호비방전 양상을 띠었고, 그밖에도 각종 폭로전 중심으로 선거가 전개되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조장되어 투표율이 예상보다 저조하게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 [표2] 18대, 19대 총선 세대 별 투표율 (%) [표3] 19대 총선 연령대별 지지율 (%) 한편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투표율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지역 20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64.1%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과는 대체로 SNS, 나꼼수 투표캠페인의 효과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등장한 20대 ‘촛불세대’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당시 서울·수도권 투표율과 비교할 때 30대의 투표율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보다 진보성향이 낮지 않고 SNS 활용도도 높은 3040세대가 20대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SNS가 서울·수도권에 끼친 영향과 지방에 끼친 영향의 차이, 즉 ‘SNS 격차’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지역 이외 지역의 20대 투표율은 여전히 높지 않다. 20대 전국평균 투표율은 45.0%이고, 인천과 경기만 해도 20대 투표율은 각각 38.5%, 34.1%에 그쳤다. 각 정당 별 의석수 [표4] 18대, 19대 총선 정당 별 의석수 [표5] 18대, 19대 총선 시·도별 의석수 새누리당은 원내 1당 지위를 지켜냄은 물론 단독과반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강원을 석권하고, 충청권에서 1당을 차지함으로써 서울에서의 패배를 만회했다. 특히 강원도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최문순 지사가 연이어 당선되었던 지역이라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의외의 결과였다. 충청에서도 새누리당은 17·18대 총선에서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9석을 확보했다. 민주통합당은 원내 1당을 노렸으나, 1당은 고사하고 야권연대 의석을 합쳐도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에 10여석이 부족한 결과를 맞이했다. 강원과 충청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포석이었던 낙동강 벨트 대결에서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서울·경기·인천에서 얻은 65석도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의석수 81석과 비교하면 저조한 수치다.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20석)을 목표했으나 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얻은 10석보다 3석이 늘었지만, 야권연대 효과를 크게 누렸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치다. 또한 2004년 민주노동당(지역2, 정당지지율 13.0%)과 비교하면 지역구 의원이 증가한 반면 정당지지율은 감소했다(지역7, 정당지지율 10.3%). 그리고 수도권과 호남에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반면, 울산·창원 등 전통적인 노동자 밀집 지역의 지지기반을 상실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여소야대 국회 조성이 실패함에 따라 강력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려던 전략도 다소 애매해진 상황이다. 진보신당은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정당지지율도 2%에 이르지 못함에 따라(1.13%) 정당법상 등록이 취소되었다. 진보신당은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향후 제2창당에 나설 예정이다. 정당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새누리당 42.80%, 민주통합당 36.45%, 통합진보당 10.30%, 자유선진당 3.23%, 진보신당 1.13%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한 수치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합한 수치를 비교하면 후자가 소폭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6] 영남, 호남 의석수 [표7] 70% 이상 몰표 지역구 지역주의는 여전히 강고했지만, 영남과 호남에서 70% 대 이상의 몰표는 줄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완화되는 양상을 동시에 보였다. 영남지역 의석(67석)이 호남(30석) 보다 37석이나 많아 여야 간 박빙 상황에서는 새누리당이 30석 차로 승리한다는 통설이 재확인되었다. 노동조합 후보 및 지지후보 당선 현황 [표8] 노동조합 후보 및 노동조합 지지후보 당선 현황 민주노총 후보 및 지지후보 60명 가운데 8명이 당선되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밀집지역이라는 울산과 창원에서 패배한 것은 진보정치가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며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집중투표 결과가 10.3%로 6석에 그쳤다는 점도 애석하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과거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결과로 한국노총 출신 인사 4명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5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었다. 한편, 한국노총 출신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 강서을에서 재선했고, 최봉홍 항운노련 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례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대 총선의 특징 새누리당 압승의 원인은 무엇인가 출발부터 삐걱 거린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 누더기 공천과 말바꾸기 논란 민주통합당이 주도하는 반MB 야권연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안철수 돌풍,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상승세에 있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의 단독 과반, 또는 적어도 민주통합당 제1당 및 야권연대의 과반 의석 확보가 예상되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MB심판론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한미FTA, 4대강, 언론통제, 제주해군기지 등의 현안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한편,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중소상인 보호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은 당 통합 과정에 한국노총을 참여시킴으로써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노동자 대중조직의 기반을 확보했다. 2월 28일 민주통합당은 한국노총과 함께 ‘28대 노동정책 과제’를 발표했고 또 4월 8일에는 민주노총과도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은 형식적이나마 사상 최초로 양대 노총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정당이 되었으며, 노동계가 주장해온 노동의제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친서민·친노동자 이미지를 획득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당내 리더쉽 부재와 누더기 공천으로 인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공천 과정에서 계파간 갈등도 심각했는데, 가령 구 민주당 보수파·호남계의 경우 당권파가 공천을 독식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또한 시민통합당계는 자신들이 푸대접받고 있다며 공천 결과를 친FTA-중도보수 공천이라며 비난했다. 박영선 최고위원은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을 위해 영입한 외부 인사들이 이번 공천에서 모두 낙천”되었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공천이 끝난 뒤에는 이른바 ‘말바꾸기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통합당이 미국 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 위원장이 “한번 체결된 국가간 협정을 무책임하게 폐기 운운하는 정치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통합당은 하루 만에 말을 바꾸어 민주당의 당론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물러섰다. 하지만 한번 기세를 잡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재협상 항목으로 거론한 10개 항목 중에 9개가 노무현 정부 시절 체결된 한미 FTA 본안에서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민주통합당의 대응은 한미 FTA 쟁점을 총선 의제에서 제외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3월 15일 발효를 앞둔 시점에서, 민주통합당 스스로가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이자, 이명박 정부 심판의 최대 과제로 손꼽았던 한미FTA는 정작 민주통합당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에 민주통합당이 참여하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위원장은 한미 FTA와 동일한 논리로 민주통합당의 말바꾸기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도 민주통합당의 대응은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선거 중립 의무를 진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구차한 방어논리 뿐이었다. 2월과 3월 선거 초반을 장식한 이 누더기 공천과 말 바꾸기 논란은 민주통합당의 MB심판 기조의 진정성이 대중적으로 의심받고 이후 민주통합당의 선거 전략이 자기 방어적인 갈지자 행보를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새누리당, 이념적 중도화와 확고한 리더쉽 구축 한나라당은 MB 심판론으로 인해 연초만 하더라도 ‘총선에서 100석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선거를 불과 2달여 남긴 상황에서 당명을 교체하고 박근혜 전대표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당 쇄신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우선 그동안 야당이 독식해온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념·정책적 쇄신을 천명했고, 이른바 ‘친이계 공천학살’이라 불리는 인적쇄신을 단행하여 이명박 정부와의 이미지 차별화에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이 쇄신 과정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당내 권력구도에서 자기 중심의 리더쉽을 확고히 구축했다. 비대위 활동 초기에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계나 비박계 의원 일부가 집단행동 조짐을 보였으나, 박근혜 위원장은 양보없이 이들 동요세력들의 반발을 진압하고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공천탈락자들이 연이어 탈당을 포기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민주통합당과 달리 공천 잡음을 최소화했다. 이와 같은 내부 쇄신의 힘에 기초하여 새누리당은 앞서 살펴본 2월의 말바꾸기 논란으로 민주통합당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이 공세는 4월 선거과정에서도 파상적인 대야 공세로 이어졌다. 4월 공식 선거운동 과정에서 박근혜 선대위원장은 가는 곳마다, “야당은 자신들이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스스로 추진했던 한미FTA도 야당이 되니까 폐기하겠다고 하고, 국가 안보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시작했던 제주해군기지 건설도 중지해야 된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여 여론 주도권을 확보했다. ‘사찰 vs 막말 논란’으로 사실상 전세역전 공식 선거운동 돌입 후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통합당 압승 전망에서 야권의 약간 우세나 박빙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민간인 사찰 카드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의 80% 이상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맞대응함으로써 야권의 승부수를 ‘물 타기’ 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박근혜 선대위원장은 “불법사찰 문제는 특검에 맡겨두고 정치권은 민생을 살리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폭로전 양상의 선거구도에서 합리적 태도를 취함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와도 거리를 두는 노련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뒤집은 최대 이슈는 선거 막판에 터진 나꼼수 ‘김용민 막말 논란’이었다. 김용민 후보가 8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관타나모 미군기지 고문·성추행사건을 비판하는 와중에 당시 미국 국무장관(여성)을 상대로 던진 폭언이 SNS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뒤이어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언론이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고 새누리당은 ‘이런 세력이 다수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동원해 보수세력 결집을 도모했다. 반면 민주통합당과 범야권은 김용민 사퇴론과 옹호론이 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어쨌든 새누리당 재집권은 안 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리더쉽 부재, 전략 실종의 무능함을 보였다. 그 결과 2월 이후 새누리당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선거 판세는 최종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파악된다. 새누리당 승리의 원인: ‘반MB’ 경쟁에서조차 승리 첫째, 김대중-노무현 집권세력의 말 바꾸기가 야권연대 내에서는 통했지만, 대중적으로는 통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 그리고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 야권연대는 그 출발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운동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연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민중운동 다수파는 이들이 과거 정책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정당통합과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강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고, 오로지 득표만을 위한 ‘묻지마 반MB’의 상승세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새누리당은 중도 보수화로 쇄신함으로써 겉으로나마 이명박 정부와의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것은 물론이고, 안보정책도 ‘평화 지향적 균형 외교’와 ‘유연한 대북정책’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과 정책적으로 일정하게 수렴하는 양상을 보였다. 야권은 ‘MB심판 바람몰이’로 박근혜의 새누리당을 공격하고자 했으나, 선거 결과가 말해주듯 이러한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반MB 경쟁에서조차 민주통합당에게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번 총선은 대선 전초전이었다는 점에서 회고적 성격과 동시에 전망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야권연대는 누더기 공천 논란과 말 바꾸기 비판에 직면하고, 김용민 막말 논란에 휩싸이는 등 대안적 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 야권의 진보적 색채를 상징한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노동의제 등도 선거 본선에 돌입한 뒤로는 상당히 주변화되고 오히려 민간인 사찰이라는 지엽적 문제를 전술적으로 강조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중도주의화로 인한 일정한 정책적 수렴 상황에서 대안의 차별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결국, 득표를 위해 말 바꾸기를 반복해온 신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운동 일부가 연합한 ‘묻지마 반MB 야권연대'는 대안세력으로 인정받는 데 실패했다. 또한 반MB의 실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야권연대 만능론이 민중운동에 남긴 깊은 상처 통합진보당 창당과 민중운동의 정체성 상실 2011년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자, 민중운동 내 많은 논란과 갈등이 발생했다. 한미 FTA를 체결하고 비정규직법을 개악했으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만든 국민참여당은 노동자정당도 아니고 진보정당도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3자통합을 이렇다 할 근거와 설득 없이 다수결 논리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이러한 통합과정에서 국민참여당은 ‘재벌해체,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정책은 시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상충하고, 노동정책을 앞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5대 비전으로 △나라의 주권 확립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 △녹색생태 사회 건설 △한국정치 개혁 등 대단히 절충적이고 모호한 내용을 선정했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민주노동당 자신은 물론 이들로 표상되던 민중운동 주류의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즉,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연대의 3자통합은 자유주의 세력과 이념적·조직적으로 분별 정립하려던 진보정당 및 정치세력화 운동의 쇠퇴를 상징하는 극적인 계기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한 통합진보당의 성격은 ‘친노동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문제는 논란과 갈등을 더욱 증폭 3자 통합 이후 민주노총에서 불거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정치방침을 둘러싼 논쟁은 민중운동 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2012년 1월 31일 대의원대회에서 의회권력 교체(여소야대)와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하는 총선방침(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통합진보당은 물론이고 민주통합당과의 전면적 선거연합을 전제하는 안이었고, 따라서 민주노총이 노동유연화와 노조탄압을 일삼아온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3자통합당 배타적 지지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 본부>가 결성되어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안)을 바로잡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1월에 개최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유회되고 이후 개최된 3월 임시대의원대회 역시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총선방침(안)에 입각하여 지역에서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하고, 통합진보당으로 비례후보 투표를 집중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지지함으로써 선거 공간에서 노동 의제를 전면화한다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노동 의제는 역으로 야권연대에 종속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끊임없이 희석되고 변질되었다. 예를 들어, 파견노동에 대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3월 10일 합의된 <범야권공동정책합의문>에서 ‘불법파견 금지’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이는 파견법 폐지가 아니라 파견법의 부분적 개정 입장을 가진 민주통합당의 입장이 반영된 대신, 민주노총의 파견법 폐지 입장을 수용한 통합진보당의 입장은 변질된 것이다. 이 외에도 양당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 FTA의 반대’로 합의하는 등 민중운동의 요구는 야권연대의 틀 속에서 통합진보당에 의해 자체 검열되거나 야권연대 과정에서 희석되었다.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된 ‘여소야대’ 실패와 통합진보당의 조촐한 성과 숱한 논란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 다수파는 선거만 이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야권연대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내에서 제기된 비판적 의견들은 묵살되었고, 한미 FTA 폐기 촛불집회도 야권연대를 촉구하고 응원하는 장으로 변질되었다. 나아가 민주노총은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는 활동은 주변으로 밀어두고 여소야대 국회를 전제로 상층 정책협약과 선거지원에만 주력했다. 모든 것을 걸었지만 여소야대는 실패했고 통합진보당도 13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가 적지 않은 잡음이 있는 상황에서도 수도권에선 단일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줬다”며 “야권연대를 향한 민심이 확인된 선거”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 ‘황혼 선거’가 일반적으로 야당에게 유리한 점을 고려한다면, 어떤 면에서도 이번 선거결과를 야권연대를 향한 민심이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서울·수도권에서 야권연대는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성과와 비교할 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야권연대를 하지 않았던 2004년 민주노동당과 비교해보아도, 이번 총선 결과는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심상정, 노회찬 후보에게는 승리일 수는 있어도) 통합진보당에게 승리적인 결과가 아니다. 총 의석은 3석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정당 지지율은 2.7% 감소했다. 특히, 국민참여당과의 무리한 합당과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으로 인한 민중운동의 분열과 정체성 상실이라는 비용을 고려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민중운동 투쟁동력의 유실 특히 중요하게 평가하고 그 대책을 수립해야할 점은 이번 선거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만이 아니라 이미 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긴 준비과정을 동반했고, 이 와중에 민중운동의 투쟁동력이 크게 유실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 투쟁,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여소야대만 달성되면 이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될 것처럼 주장되었고, 정작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통한 역량 증진과 단결 확대의 과제는 항상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민주노총은 1월 31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8월말 총파업을 결의했고, 금속노조와 철도노조는 19대 국회가 처음 열리는 6월에 맞춰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투쟁 계획들이 실은 여소야대가 성사될 것을 대전제로 수립된 계획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장외 투쟁을 동원하면, 6월 2일 개회하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에서 야당들이 비정규직법, 노조법, 최저임금법, 파견법 등 노동관련 법과 제도의 개정을 시도하고, 이 기세를 몰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로 노동악법 개폐 투쟁을 최종 승리로 이끌어간다는 구상이었다. 여소야대 국회 구성이 실패한 현 시점에서, 이대로라면 8월 투쟁은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 없이 진행되고 모든 과제는 또다시 대선 승리(?) 이후로 떠넘겨질 위험이 있다. 야권연대와 좌파결집 사이에서 어느 전략도 분명하게 선택하지 못한 진보신당 진보신당은 10대 핵심정책으로 탈핵, 탈삼성, 탈비정규직, 탈학벌, 탈FTA,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나누기, 부자증세와 불로소득 중과세, 모든 국민에게 집을, 보편복지 실현, 토건사업 재발 방지 등을 제시했다. 특히 진보신당은 “다른 당이 간판을 바꿀 때, 진보신당은 삶을 바꿉니다”라는 슬로건에서 보이듯이,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과도 차별화를 꾀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된 이후에는 비례후보 1번 김순자 후보의 진정성과 헌신성이 부각되었고, 비정규직 거리 투쟁 유세가 주목받았다. 봉준호 등 유명 인사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선거 이전부터 조직적으로 기획한 정책전략의 결과가 아니었다. 노동자 1만 명으로부터 정당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3월 28일부터 시작된 노동자 선거대책본부 사업 역시 매우 뒤늦게 기획된 것이었다. 특히 진보신당은 좌파정당을 표방하면서 야권연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비판의 실제 내용은 양당 간 연대가 진보신당을 소외시켰다는 점에 집중했다. 계급적인 관점에서의 야권연대 비판이 아니라 배제당한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양당연대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진보신당은 야권연대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수립하지 못한 채 지역별로 개별 대응했다. 원칙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다 놓친 형국이다. 실제로 거의 유일하게 지역구 당선을 기대했던 거제의 야권단일화 역시 통합진보당 측이 불복하면서 전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거제에서는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3당 단일화가 성사되어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가 선출되었으나, 인접지역인 창원에서는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의 도의원사퇴 문제로 인해 단일화 논의가 파행을 빚었다. 진보신당 김창근 후보는 박훈 무소속 후보와 별도로 후보단일화 경선을 치르고,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는 민주통합당과 경선을 치러 단일화 했다. 이후 통합진보당은 단일화 합의에도 불구하고 김한주 진보신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고, 창원에서는 선거막판까지 중립을 지키던 권영길 의원이 나서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했다. 전국적 야권 후보 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진보신당은 민중운동의 정체성과 야권연대에 대한 계급적 비판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좀 더 원칙적이고 통일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총선 종료 후 스스로 밝혔듯 진보신당의 “실질적인 재창당은 진보좌파세력의 규합을 통해” 추진할 계획이었다면 이 전략을 보다 분명히 한 선거 전략이 필요했다. 민주노총과 노동자운동의 존재감 상실 민주통합당의 총선승리와 노동공약 실현를 위해 협력할 것을 서약한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상층중심의 정책협약을 통해 노동의제를 전면화하는데 주력했다. 민주노총은 ‘10대 우선 입법 과제’와 ‘10대 요구 78대 과제’를 제시하고 3월 6일에는 통합진보당과, 3월 16일에는 진보신당과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양당은 ‘10대 우선 입법 과제’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이후에도 ‘10대 요구 78대 과제’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동일한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총선 직전인 4월 8일, 민주통합당과도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민주노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을 뿐더러, 정책협약의 형식과 내용도 놀라웠다. (통합진보당, 진보신당과 체결한 정책협약과는 달리) 협약은 민주통합당이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의 노동정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협약서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민주통합당이 제19대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중략)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입각한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와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 공공부문 노사관계 자율성 강화와 고용친화적 공공부문 개혁,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 등 노동 공약과 일자리 창출 정책의 실현을 위해 적극 협력한다”고 서약한다. 또한 “제19대 국회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원내 제1당 의석 확보 및 교섭단체 구성 등 안정적인 의회 내 절대다수 의석 확보를 담보하는 총선 승리를 위해 적극 협력”한다며,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이번 정책협약은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맞서 투쟁해온 민주노총이 최초로 이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노동자운동의 우경화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노동의제 실종 정책협약을 제외하면 민주노총은 총선에서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야권연대에 매우 적극적으로 결합했지만, 정책협약을 맺은 야당들의 득표를 위해 자기 조합원을 동원해주는 역할을 넘지 못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으며, 이 외에도 유성기업, 한일병원 등 노동자투쟁은 지속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러한 현안들을 정치 쟁점화하고, 투쟁 주체를 결집·확대해내는 활동을 해내지도 못했다. 정책협약을 맺은 정당들 역시 폭로전 양상의 선거구도에 갇혀 있었고, 노동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정책 전략도 부재했다. 결국 노동관련 여러 공약정책이 제출되었고 노동운동 출신 당선자들도 적지 않게 나왔지만, 정작 이번 선거과정에서 노동의제는 실종되었다. 한편 총선시기 민중운동 좌파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99%의 희망광장>(희망광장)에 결합하여, 노동자 대중투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2011년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낸 희망버스와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를 계승하는 기획이었다. 이를 통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켜, 총선 이후 본격적인 의제로 다뤄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전반적인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제·울산·창원 노동벨트에서의 패배 노동자운동의 기반이 상대적으로 튼튼하다고 여겨진 울산북구, 거제, 창원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낙선의 직접적 원인은 대체로 노동자운동 내부의 선거방침에 대한 이견으로 인한 표 분산으로 설명되고 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강행되고, 민주노총 역시 야권연대 후보에 대한 지지방침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노동자운동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예를 들어 울산북구 유권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지부의 상황을 보면,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힘있는 공동행동 지침으로 작용하기는커녕 역으로 민주노총 선거방침이 ‘무원칙한 야권연대’라는 현장의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 1월 김광식, 박유기, 윤성근, 이상욱 등 전직 현대차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현대차지부 전현직 임원, 간부, 대의원 239명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전현직 간부 45명이 “민주노동당이 노동탄압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합쳐 급조한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또 선거 운동 기간에는 현대자동차 현장 활동가들을 비롯한 울산지역 노동활동가 1,0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투표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와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대중적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데 급급했다. 여기에 더해, 앞서 지적했듯 야당의 ‘말 바꾸기’논란이 현장노동자의 비웃음을 자초했던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투쟁한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민주노총과 민주통합당의 정책연합이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방침은 납득하기 어렵고, 적어도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할만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 울산지역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은 34.7%, 진보신당은 6.2%를 얻었으나, 이번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6.3%, 진보신당 2.0%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한국노총, MB 지지 정책연대에서 민주통합당과 연합으로 한국노총은 2007년 이명박 후보를 정책연대 대상으로 공식 선정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통해 4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2009, 2010년 노동법 개악을 거치며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됨에 따라, 한국노총은 2011년 2월 24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했다. 이후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이는 그 이전의 정책연대보다 높은 수준의 결합이었다. 그 결과 민주통합당 내에는 노동계 지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또한 2월 27일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과 함께 ‘28대 노동정책 과제’를 발표함으로써 정책적 측면에서도 노동계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노총은 단기적으로 2008년 보다 높은 수준의 성과를 달성하고자 했다. 한국노총은 장기적으로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어 연립정부를 구성한 이후, 노동·국가·자본의 새로운 사회적 대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 이정식 사무처장 등이 공개적으로 밝힌 계획은 다음과 같다. 우선, ‘노동존중 복지사회’를 기치로 하는 2013년 체제의 핵심으로 노사 간의 중앙교섭체계 및 노사정간의 사회적 대화체계를 구축한다. 둘째, 한해 5조6천억 원 규모의 고용보험을 경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법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이를 노사협력적인 네덜란드식 노사 모델의 물질적 토대로 삼는다. 셋째, 민주통합당과의 통합과정에서 만든 전국노동위원회를 기반으로 원내 친노동 그룹을 조직한다. 넷째, 당면 과제인 노동관계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여, 한국노총 각급조직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기대감을 충족시켜 정치적 동원력을 높여낸다. 다섯째, 비정규직, 도시빈민, 청년학생의 요구를 반영하는 지역단위 연대조직체를 만들어 전국노동위원회를 실질적으로 강화한다. 여섯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통합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 한국노총은 이번 총선에서 5명이 당선됨으로써 단기적 목표는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나, 총선에서 여소야대에 실패함에 따라 장기 전략적 방향성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내에는 여전히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적지 않은 계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기존 전략이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한명숙 전 대표는 민주노총 이석행 전 위원장과 1,000여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의 민주통합당 가입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민주통합당의 노동부문이 한국노총 주도로 구성되는 것을 견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한명숙 대표 사퇴 후 민주통합당 내에서 노동부문 대표성에 대해 어떤 논의가 진행될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폭로 무기로 활용된 성폭력 문제 누가 덜 부도덕한가 이번 총선에서 정당 간 자극적인 정치폭로의 수단으로 성폭력 문제가 적극 활용되었다. 무엇보다 김용민(서울노원갑) 후보가 2004년 경 인터넷 성인방송에서 한 성폭력적 발언이 큰 물의를 빚었다. 이에 4월 5일 새누리당 여성 비례대표 후보들은 “국회의원으로 여성, 교육 정책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김용민 후보의 즉각 사퇴와 한명숙 대표의 사죄를 요구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포항남울릉)가 제수 성폭행 의혹에 휩싸이자, 4월 9일 민주통합당은 “이 일이 사실이라면 막말 정도가 아니라 막장후보를 공천”한 것이라고 대응했다. 개표 결과 김형태 후보가 당선되자 17일 민주통합당 여성 당선자 24명은 김 당선자의 사퇴와 새누리당의 즉각적인 출당조치를 촉구했으며, 결국 18일 김형태 후보는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 외에도 장기승 자유선진당 도의원의 이명수 후보 지지유세 발언을 비롯, 강용석, 정몽준, 정우택, 한광원, 석호익, 최연희 후보의 과거 행동과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성상납, 원치않는 신체접촉, 성적 대상화, 성적수치심 유발 등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들이었다. [표9] 19대 총선 반여성ㆍ반인권 전력이 있는 후보 보수세력에게는 결집의 계기, 야권연대에는 갈등과 논란의 계기 개표결과만 놓고 볼 때, 이와 같은 논란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새누리당이다.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김용민 막말 논란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야권연대는 이로 인해 외부로부터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입었으며, 또한 내부적으로도 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김용민 막말 논란이 불거지자, 야권연대 내에서는 김용민 옹호론이 부상했다. 이정희, 노회찬, 손학규, 조국 등 주요 야권인사들은 김용민의 반성과 변화가능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는 4월 3일 공동성명을 내고 김용민 후보의 발언은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발언”이라며 “민주통합당과 김용민 후보는 이 사태에 대해 유권자들 앞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인 6일 여연은 “김 후보를 전략공천한 민주통합당에 분노한다”며 “성평등과 여성인권의 가치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에 양보할 수 있는 하위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추가로 발표했다. 결국 성폭력이라는 이슈가 보수세력에게는 도덕성이라는 단일 잣대를 통해 결집의 계기로 드러난 반면, 소위 민주진보 세력에게는 갈등과 논란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과 논란은 반성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치논리에 의해 무마되면서 오히려 내부 비판자들을 압박하고 제어하는 양상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성폭력 사건 처리과정에서 줄곧 문제가 되었던 조직보위 논리가, 이번 총선에서는 진영 논리로 확대된 것 같다. 주류 여성운동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주류 여성운동계가 결과적으로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김용민 후보의 반여성적 발언을 비판하는 여성운동계 주요 인사들조차 나꼼수가 반MB 정서에 기여한 긍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당과의 파트너십 속에 국가기구 참여를 통해 법 제도 개선에 주력해온 성 주류화 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도 드러나 민중운동 입장에서 심각했던 문제는 통합진보당의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비례후보 공천 건이다. 정진후 전 위원장은 성폭력 사건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수준을 낮춰 크게 논란을 빚은 당사자다. 이에 대해 피해자 지지모임을 비롯해서 당 내외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이정희 대표는 정진후 후보를 2차 가해 “은폐자로 보기에는 너무 확대시키는 것”이라며 공천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고, 결국 비례 4번을 배정받은 정진후 후보는 당선되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운동사회 내 성폭력 예방교육과 규약 제정의 동인이 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은 통합진보당과 정진후 후보 측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게다가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 관련 조직에서도 일정한 묵인이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이는 반성폭력 운동이 정당과 대중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가해자 처리와 반성폭력 예방교육만으로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노동현장, 가족 등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들에 대한 일상적인 토론, 여성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대중운동적 기획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의 운동 기획이 필요했다. 일상적, 이념적, 대중운동적 기획을 통해 형성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이 표방하는 여성이라는 가치는 정치 논리에 의해 가볍게 무시될 수 있을 정도로 그 기반이 부실한 것이었다. 회의주의와 냉소적 대응을 넘어서기 위한 장기적 전망 토론이 필요 그 결과 예상되는 전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폭력과 관련된 상호 정치공세가 진행되면서 진보든 보수든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한 극에는 진보진영도 다를 바 없다며 남성중심적인 문화 및 제도 등을 사후 합리화하는 보수적 태도가 있을 수 있고, 다른 한 극에는 기존 운동주체들의 민중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주의적 태도가 있을 수 있다. “낙선자의 근신은 끝났다! 국민욕쟁이 행동개시!”라며 나꼼수에 복귀한 김용민의 태도는 양극으로의 분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야권연대 내 나꼼수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고 민주통합당은 나꼼수를 계속 안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폭력 이슈가 도덕성이라는 단일 잣대를 가진 보수세력의 결집에 용이하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진보진영 내 조직보위 논리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예방교육이나 공천 심사기준 개선 등의 부분적 조치들이 이루어지겠지만, 향후 정당이나 각급 대중조직 내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은폐, 축소 등이 야기될 수 있다. 셋째, 성폭력 문제가 가십거리로 부각된 반면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문화, 관행, 제도와 구조적 문제들은 논의의 장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진보신당 김순자 후보의 활동을 제외하면, 총선을 경과하면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여성 비정규직, 보육 등 여성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인 여성권·노동권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과 마찬가지로, 주류 여성운동의 역할은 정당과의 정책협약으로 제한되고 일단락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의 이념적 주체적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민 막말 논란과 통합진보당의 정진후 공천에 대한 냉소적 평가를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적인 운동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이 필요하다. 이는 민중운동이 지금까지 주류 여성운동과 유사한 법제도 개선과 조직 내 반성폭력 운동 양자를 중심으로 여성의제를 다뤄온 한계에 대한 공동의 평가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노동자 운동의 주체적 성장과 강화를 도모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운동 혁신을 추동해나가야 한다. 여론정치가 지배하는 선거, 그리고 정당의 변모 정당정치의 위기와 나꼼수, 안철수 현상 안철수 현상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당’자체가 대중의 불신대상이 되어, 정당에 몸담지 않은 전문가 출신 비정치인이 미디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들의 인기를 선거에서 압도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2011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9%로 나타나, 경찰과 함께 최하위를 차지했다. 국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를 표현하고, 새로운 인물과 외부영입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안철수 원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이 “어느 진영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기존 한국 정당정치의 두 가지 패러다임인 지역주의와 진보-보수(혹은 자본-노동)의 대립과 구분을 넘어서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그의 정치기획은 기존의 낡은 지역주의를 바꾼다는 개혁적인 측면을 지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싹도 틔워보기 전에 위기에 빠진 진보적 노동자정치의 발전가능성을 봉쇄하는 중도세력 집권을 위한 포괄적(catch-all) 선거전략만을 강화할 위험이 매우 크다. 또한 정당정치의 위기는 정당과 의회에 대한 실망과 혐오뿐만 아니라, ‘현직의 위기’로 드러난다. 2012년 나꼼수의 ‘가카’ 신드롬이 있다면, 2007년에는 ‘놈현’ 신드롬이 있었다. 놈현 신드롬이 단순히 보수화 현상이 아니었듯이, 가카 신드롬 역시 진보적 사회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1997년 IMF와 2007년 세계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충격과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이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민중들에게 내핍만을 강요해왔다. 그 결과 국가기관과 대의기구가 민주적 정당성을 잃고, 모든 현직 대통령이 위기에 빠지는 ‘현직의 위기’가 일반화되어 왔다. 이는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의 정권교체 상황에서도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나꼼수 현상은 이처럼 반정치적 정서가 발흥하는 현재의 정치위기 상황을 반영한다. 나꼼수는 대부분의 정치 의제를 부패비리 사안(BBK, DDOS, 불법사찰) 중심으로 접근한다. 모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악마화된 정적과 이에 맞선 자기 진영의 정치게임 전략을 통해 해석하고 개입한다. 선거 막판에 터진 ‘막말 논란’이나 이전 비키니 시위 논쟁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들은 일관되게 모든 쟁점을 ‘가카와 우리편’이 벌이는 선거 전략게임 상의 ‘진영논리’로 접근한다. 나아가 한미 FTA마저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를 구분하여, 반신자유주의 정치의제가 아닌 반MB 정치의제로 다룬다. 반면 기존의 정치이념이나 계급적 사회운동들은 대중화에 실패한 구좌파적이거나, 철지난 ‘꼰대정신’으로 치부된다. 또 그들은 자유주의적 급진성을 종종 욕설과 남성 중심적인 마초문화와 혼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꼼수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정치참여와 투표참여를 호소하지만, 그들이 호소하는 정치는 정작 활력을 잃은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들을 재활성화하는 과제와는 전혀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다. 수동적인 투표 참여 유권자운동이나 야권연대에 종속된 노동자운동의 우경적인 해체와 같은 부정적인 경향이 확산될 뿐이다.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단일화와 정당의 변모 이번 총선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현상은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이다. 여론(輿論)이란 다수 대중의 의견이다. 대중의 의견을 묻고, 그에 기반을 두고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여론정치’는 단순히 다수 대중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론정치’는 ‘여론’을 생산하는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생산물이다. 여론정치는 설문조사 기업에 의해 기획된 대중의 수동적 답변을 가공하여 여론조사 기법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매개로 여론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수 대중이 주체도 아니고 그들을 위한 정치도 아니다. 또 여론정치는 특정 인물에 대한 인기투표 형식으로 진행된다. 장기적 정책방향과 이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실시될 때도 있지만 이는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깊이 있는 숙고, 주체의 성장과 변화를 동반하는 지속적 참여나 사회운동은 인물에 대한 선호조사 과정에 반영되지 않으며 오히려 배제된다. 이에 따라 정치인들이 ‘나는 가수다’와 같이 인기투표에 따라 하루아침에 흥하고 망하는 불안정한 모습이 더욱 강화된다. 이처럼 변화된 지형에 적응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정치이념이나 계급적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에 헌신하기 보다는, 언론매체에 노출되는 것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인기투표 형 정치구도에서 개인의 감동적 스토리텔링, 기존 정치의 형식적 틀 파괴와 같은 부분들이 각광을 받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디어활동이 정치 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로 격상된다. 그리고 정당 내부 조직에서도 여론조사와 여론형성 기능이 전략적 지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해진다. 지지층의 휘발성이 높기 때문에 정당은 대중의 선호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성을 높이거나 대중선호를 조작하기 위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가 대표적이다. 민주통합당도 비슷한 성격의 싱크탱크와 계파별 정치기획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당 내부조직의 기능변화는 민중운동과 진보정당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민중운동의 정책 단위가 해온 역할은 대중운동의 정치적 이해와 요구를 총화하여, 투쟁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내진출 이후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의 정책 단위들을 대중의 선호에 따른 정당의 반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왔다. 즉 국회의원들의 의정지원이 일상적인 중심 정책업무가 되고, 선거시기에만 존재했던 공약개발, 여론조사 정책대응과 같은 선거정책 역할이 상시적인 정책기구의 몫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참여나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의 후보선출과 단일화 과정에서 개방형 경선제가 일반화된다. 노무현을 정치스타로 만든 2002년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는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야권후보 단일화 방식으로도 차용된바 있다. 하지만 대선과 달리 지역별 후보가 많은 총선에서 개방형 경선은 쉽지 않다. 예상컨대 이번 대선과정에서 민주당 외부에서 안철수와 야당 후보들 간의 개방형 경선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개방형 경선제는 비당원 국민들과의 ‘열린 소통’을 시도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포장되지만, 역으로 정당의 이념적·계급적·대중적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게다가 후보자 개인 중심의 미디어정치와 여론조작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경선과정의 개방이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늘날 정당정치 개혁의 쟁점은 낡은 정당정치를 그대로 고수할 것이냐 바꿀 것이냐는 것이 아니다. 쟁점은 ‘닫힌 정당’을 어떻게 개방할 것이며, 어떤 목적으로 정당개혁을 단행할 것이냐이다. 무턱대고 새로운 것만을 강조한다고 정당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리 없다. 특히 더 많은 표몰이만을 위한 당 개혁은 인민주의로 흐를 뿐이다. 노동자 민중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정당의 개방은 대중적 인기(표몰이)를 향한 개방이 아니라 계급적 사회운동을 향한 개방이어야 하고, 정당정치 개혁의 방향은 노동자 대중을 사회운동의 주체로 세우는데 봉사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향후 전망 MB 심판의 실패와 대선정국의 조기개막 민주통합당은 선명야당 대여공세에 나서면서도 중도주의화되는 이중적 태도를 띨 것 MB 심판이 실패했다는 총선 자체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총선으로 형성된 대결 구도가 대선 경쟁의 출발선으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을 달성하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것은 박근혜의 승리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대선정국의 조기개막에 따른 각 진영별 정치적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 선거직후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가 사퇴하고, 문성근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대표 경선 차점자라는 이유로 대표 권한대행을 승계한 문대표가 민주통합당의 내적 지도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민주통합당은 6월 임시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대여 공세에 힘을 싣겠지만, 다수의석을 빼앗긴 상황에서 선거 시기에 호언장담했던 각종 이명박 비리·불법행위 청문회나 특검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민주통합당이 믿을 곳이라곤 당 외부의 안철수 원장 밖에 없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벌이는 개방형 경선을 통한 야권 단일화 바람몰이 이벤트에 승부를 걸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은 대선 출마와 관련한 공개적인 확답을 여전히 미루고 있다. 아마도 당분간은 민주통합당에 합류하거나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포럼 형태의 비정당조직과 지식인 싱크탱크를 조직하여 독자적인 대선대응을 해나가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대선행보는 6~7월 경 이후로 점쳐진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건 그가 대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새로운 정치실험’이라고 밝힌 바를 실행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러한 정치기획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거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아이젠하워는 민주당의 지지와 공화당의 지지를 동시에 받으면서 출마 직전까지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진영논리 대신 사회통합을 중시했다. 결국 공화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정치 경험이 없는 군인출신의 인기 비정치인이었다. 특히 안철수는 미국 대선 사상 최초로 TV를 통한 미디어선거로 이미지 선거를 강조한 선거 전략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런데 안철수 원장은 진보·개혁적 이념성향이 아니라 중도보수 실용주의적 성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강한 대선 경쟁력을 지니는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진보적인 대안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잠식하는 중도주의적 득표력을 강하게 보유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반MB가 아니라 ‘착한MB’다. 총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이 대선을 앞두고 사활을 건 대여공세에 나서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중도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게다가 차기 민주통합당의 당권을 장악할 것으로 보이는 이해찬, 문재인, 김진표, 정세균 등은 친노, 친재벌, 친FTA 성격을 가진다. 또한 제1당을 놓친 민주통합당은 오히려 개혁입법의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가볍게 운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선명 야당의 이미지로 반새누리당 진영을 결집시키기 위해 한미 FTA 폐기나 노동법 개정 문제와 관련된 대여 공세를 큰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선명 야당으로서의 대여 공세가 대선을 앞둔 세 결집용 정치 공세 수준을 넘게 될 경우 발생할 보수역풍을 회피하려는 양면적인 태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거대한 블랙홀로 변한 대선과 야권연대의 수렁 야권연대의 결속력 강화, 통합진보당의 깊어지는 환상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바, 올 대선은 초박빙 승부가 예상된다. 더하여 총선 실패로 대선 승리에 대한 강박은 더 커졌다. 모든 것이 대선 승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이 양보한 계급적 원칙에 상응할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제공할 온정적 지도력이 없다. 당 외부의 후보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흡사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패권주의로 선거 지지 입장은 유지하되, 선본인력은 철수하는 이상한 형국이 연출된 바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이번 선거결과를 여전히 야권연대 전략의 성과로 평가하고, 민주통합당의 패배를 야권연대에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한 결과라고 규정짓고 있다. 게다가 이번 총선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개혁입법과 한미 FTA 재협상 등의 과제들은 또다시 모두 새누리당의 책임으로 돌려버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총선은 패배했지만, 야권연대의 결속력은 재강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전인수식 평가와 야권연대를 재정당화하는 상황논리는 통합진보당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민주통합당을 견인해나간다는 착각의 수렁으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대선에서의 야권연대는 총선과는 다른 차원의 선거연합을 의미한다. 주고받을 후보자리가 300석이나 있는 총선과 달리 대선은 후보가 한자리뿐이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선거연합을 한다는 것은 차기정권의 권력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차기정부의 국가 정책이념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다는 의미다. 민중운동 다수가 우경화하는 가운데 계급정치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 통합진보당은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을 돌파했다는 점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는 변곡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노동의제 실종, 영남노동벨트 패배, 민주노총의 야권연대지지 동원부대화라는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면, 이는 ‘계급적’ 대중정당에서 ‘국민적’ 대중정당으로의 부정적 변곡점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야권연대에서 통합진보당의 상대적 영향력이 커진 상황은 역으로 통합진보당의 우경화, 자유주의정당화를 더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에 불거진 ‘경기동부’ 논란도 당내 민주화와 80년대식 정파조직의 반성과 개혁으로 흐르기보다는, 정치인 중심의 공개 정파화로 변질, 순화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신당은 이후 ‘진보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 ‘새로운 노동중심 대중적 진보정당 제안자 모임’ 등과 함께 재창당 절차를 밟아 대선에 대응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당지지율 2%에 못 미치는 총선 결과에 따라, 기존 전략에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한편,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는 좌파들의 공동투쟁과 사회주의 정당 건설 방침을 재확인하였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변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흐름도 존재한다. 야권연대에서 연립정부로, 민중운동 생사의 갈림길 노동자운동 강화와 연립정부 수립론 간의 모순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자신감 회복, 사기진작이야말로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무원칙적 연합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야권연대를 옹호했던 마지막 논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자운동의 사기가 진작되었는지를 확인할 방법과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노동자운동의 사기 진작이 임금인상, 고용안정과 같이 노동자들이 얻는 구체적인 이익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효과가 불분명하더라도 정치적인 상징으로 이용될 수 있는 사례들이 하이라이트를 받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노동자(운동) 출신 국회의원의 당선이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당명에서 노동을 삭제했고, 영남노동벨트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했으며, 민주노총 출신 비례대표는 정진후 전 전교조 전위원장이 유일했다. 더 중요하게는 지난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8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노동자운동 출신 국회의원 당선이 큰 상징성을 띈다고 하더라도 실제 국회의원 몇 명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편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야권단일화 이후 서울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원인과 결과를 정반대로 해석하여 야권연대를 사후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 서울시 비정규직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투쟁해온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이 거둔 성과의 일부가 반영된 결과이지, 결코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다.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 역시 대학생들의 폭발적인 반값등록금 운동의 힘이 반영된 결과다. 더 이상 친노동자적인 후보들이 친자본가적인 후보들에게 이기는 것이 노동자운동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노동자운동의 원칙과 핵심역량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데 급급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의 선거결과와 막연한 진영논리에 기반을 둔 정치적 동원을 넘어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이익을 증진시키고 이를 통해 계급적 단결에 이바지하기 위한 숙고와 대중운동적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공직선거를 통한 성과들은 노동자운동의 사기진작과 정치적 자신감 증진에 기여하기보다는 노동자운동의 우경화와 분열을 촉진하는 역효과를 불러오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상 최초로 진행된 민주노총과 민주통합당 간 정책협약은 사실상 일방적 지지 선언이라는 점에서 뼈아픈 반성을 필요로 하다. 총선에서 야권연대 전략이 일회적인 후보단일화 전술의 형태라면, 연립정부 수립은 장기적인 전략적 기획으로서 더 큰 위험성을 가진다. 민중운동 다수파의 총선방침을 비판해 온 좌파운동은 이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에 대해 자칫 도덕적 비난에 그칠 수 있는 논리를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 시대인식에 기초한 대안운동 전망을 중심에 놓고, 구체적인 연립정부의 상과 정책합의를 비판해야 한다. 지난 통합진보당 건설과정이나 민주노총의 총선방침 결정과정에서, 대중적인 반론을 조직하고 실질적으로 이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원인은 여기에 있다. 하반기, 노동자운동의 정치적·이념적 활로를 도모해야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 지도부는 다시 한 번 모든 사안을 대선승리와 정권교체로 몰고 갈 것이다. 여소야대가 실패한 현 상황에서 여름 노동법 개정 투쟁은 지난 겨울 야권연대를 위한 동원의 공간으로 변질된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커졌다. 정권교체와 이를 위한 야권연대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논리가 또 다시 반복될 것이고,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민주통합당의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 민중운동의 정체성 상실,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우경화를 막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중운동의 다수가 정권교체의 전망, 심지어 스스로 연립정부의 주체가 되는 2013년 체제의 환상에 빠져들 때, 민중운동의 투쟁동력을 유지·강화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노동자운동 주체들의 정치적 이념적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하반기 투쟁전선의 복구다. 이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와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 5월 금속노조의 임단투와 KTX 민영화 저지투쟁, 6월 이후 노동시간단축 제도 개선 투쟁, 8월 민주노총 노동법 개정 투쟁, 하반기로 예상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투쟁 등이 전개될 것이다. 각각의 투쟁이 정권교체를 위한 대선 세몰이 동원용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아래로부터의 노동자투쟁의 동력을 강화하고 전국적 투쟁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투쟁에 대한 헌신적 결합을 넘어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공동 기획력을 높여내야 한다. 이러한 힘이 야권연대를 압도할 수 있다면 대중운동의 우경화와 분열이 아니라, 거꾸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의 균열, 통합진보당 내부의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민중운동 좌파는 야권연대-연립정부 노선을 실질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민중운동 좌파는 통합진보당의 탄생으로 그 동안 진행되어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실패했다는 것에는 의견을 함께하고 있지만, 향후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해서는 결코 작지 않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실 각 세력이 제안하고 있는 전망이 즉각 현실화되기 어려운 조건에서, 지역과 현장으로부터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활로를 찾기 위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2012년 하반기 투쟁과 대선 국면에서의 공동대응은 노동자 민중이 더 이상 당선 가능한 야권후보의 수동적인 지지부대로 전락하지 않고, 진보정당으로 한정되지 않는 민주노조 역량 강화와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재조직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세계 경제위기 시대에 노동자 민중 스스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을 복구하는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설 수 있는 정치전선을 구축함으로써 2013년 이후 대안적 운동지형을 형성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피터 메이어, 『정당과 정당체계의 변화: 접근과 해석』(도서출판 오름, 2011)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 과반을 넘는 결과를 만들었다. 안철수 교수는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아닌 제3의 세력 규합을 통한 대선 출마 가능성을 높이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왜 선거를 통한 정당체계의 전면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왜 박근혜의 대항마로 지지받는 안철수는 기성 정당과 다른 길을 가려하고,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선거를 하라는 주장을 하고, 그러한 행보가 일정한 지지를 받는 것일까. 정당, 정당체계의 변화와 생존의 문제는 비교정치학의 주제 중 하나다. 비교정치학은 세계 각국의 정치 현상들을 어떤 방식으로 비교 분석할 것인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연구한다. 『정당과 정당체계의 변화: 접근과 해석』(도서출판 오름, 2011)은 ‘카르텔 정당론’을 제기한 아일랜드의 비교정치학자 피터 메이어의 기존 연구들을 정리한 책이다. 1997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었는데 2011년 말에야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1, 2부에서 비교정치학의 주요 개념, 이론과 쟁점들을 검토하며 자신의 입장을 전개한다. 그는 고국 아일랜드에서부터 서유럽 전반으로 관측 범위를 넓혀가면서, ‘정당의 위기’ 담론이 팽배했던 1970년대를 경과하면서 오히려 오래된 정당이 역설적으로 생존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카르텔 정당론을 포함한 정당의 동학, 정당 조직의 변모과정, 그로 인해 형성되는 정당체계의 특징을 분석한다. 이러한 메이어의 분석은 공간적·시간적 차이로 인해 현재 우리 현실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선을 앞둔 우리의 정당 정치 현실에 일정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의 논지를 따라 정당의 역설적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정당의 변모 양상 및 정당체계의 특징을 살피겠다. 정당의 변화와 지속 피터 메이어는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정당 현상에 있어서 지속적인 것, 오래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정당과 정당체계가 주어진 환경에 맞춰 ‘동결’하는 방식, 즉 기성정당들이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고 나아가 상황을 통제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표인 것이다. 지금 서유럽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유동적 선거 결과를 보이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선거 유동성이 통상적 정치 패턴의 종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일시적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 이는 부차적인 논의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수준에서 변화가 나타났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현상이 공존한다. 일반화된 이데올로기적 경향(정체성)과 일반화된 정치적 배열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서유럽 정당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역사적으로 정립된 다양한 정체성과는 차이가 있다. 가령 정당 정체성이 특이하다고 평가받는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분리주의나 종교관련 정책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산업사회 이전 시대의 균열구조에서 탄생했던 서유럽의 정당들은 초기의 쟁점이 일정 정도 해결되면서 정당의 역할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수립했다. 이제 정책 경쟁의 중심은 경제 정책이다. 흔히 정부의 경제 규제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정당들의 좌우 대립은 정책 경쟁 패턴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독일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 사이의 대립과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 사이의 대립은 분명히 태생적 차이가 있으나, 두 나라의 유권자들에게 제시되는 정책 경쟁은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좌우 기준의 흡입력이 ‘신정치’라 불렸던 생태주의나 여성권 등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집합적 선거 결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령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선거 결과 추이를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좌파블록(노동당, 공산당, 평화사회당, DS70)에 대한 전반적 지지는 오랫동안 놀랄만한 안정성을 나타내는데 반해 블록 내부에서는 상당한 유동성을 보인다. 선거 유동성이 ‘이데올로기의 위기’, ‘계급의 위기’와 무관한 ‘정당의 위기’라는 것이 이러한 현상에서 도출되는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리더십 요인, 구체적 정책 요인, 조직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치는데, 메이어는 이 중 조직 요인에 초점을 맞춘다. 조직 요인에 있어서 위기의 원인은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조직적 연결고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당의 변화 단계와 카르텔 정당의 등장 정당의 조직적 연계가 약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이어는 대중정당 모델을 정당의 표준으로 설정하고,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당을 분류, 이해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신 그는 대중정당을 계속되는 과정 속의 하나의 단계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당과 국가 간의 공생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는 경향을 파악하면서 그는 이것을 카르텔정당이라는 새로운 정당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메이어는 정당의 진화과정을 4단계로 요약한다. 이 과정에서 키르크하이머의 포괄정당론, 파네비앙코의 선거전문가 정당론의 논의를 수용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카르텔 정당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단계는 간부정당이다. 간부정당이란 19세기 후반, 선거권이 제한되어 있을 때 분화되지 않은 국가와 시민사회에 모두 발을 걸친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 지역 안의 자본가, 소자본가들을 조직해 의회 내에서 이익을 추구했으므로 특별한 조직적 편제 없이 개인적 연결망을 통해 소통했다. 두 번째 단계는 대중정당이다.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거대해진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분화가 생겨난다. 대중정당은 이렇게 분리된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교가 된다. 또한 노동자와 같이 참정권이 없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발언권을 얻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조직적 당원제도와 정형화된 구조와 모임을 가지고 등장해서 결국 국가 지배구조를 점령했다. 대중정당은 지지자와 당원의 수에 의존하고, 또 개인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당원에게서 소액의 당비를 받는다. 대중정당의 정치적 기반은 정부가 아니라 원외정당이라 불리게 되는 외부 조직에 있었으므로 정치적 의제에 대한 강한 행동력은 간부정당보다 더욱 강한 결속력과 규율을 따르게 되었다. 정당은 자신이 대표하는 사회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표출하는 공론장이 되었다. 규율은 실질적, 경험적 특징일 뿐 아니라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 대중정당은 기존 간부정당을 위협했다. 대중정당 모델이 보편화되면서 간부정당이 대표할 수 있는 남겨진 사회 구성원은 농민, 기업가 등 명백히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원외 조직이 주도권을 갖는 것은 이미 정부 내 기반을 잡은 세력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개인 기부액, 정부 재산을 취할 수 있어서 재정적 의존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유권자를 동원할 필요는 있으므로 형식적으로 대중정당과 비슷한 조직을 만드는 경향을 보였다. 대중조직의 매개체로서의 원내정당의 역할이 강조되기보다는 원내정당의 지지자로서의 대중조직의 역할이 강조됐다. 이처럼 우파 정당이 새로운 ‘포괄’ 모델을 적용하는 동시에 좌파 역시 대중정당의 성공으로 인해 오히려 대중정당의 기반을 잠식당하게 된다. 복지의 확대와 같은 내부 단결의 매개였던 정책 목표가 실현되면서 단결의 필요성이 오히려 약화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자들은 정부 안에서 과거의 적들과 타협하는 한편, 계속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포괄적으로 지지기반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정당들은 20세기 중반부터 포괄정당이라는 세 번째 형태로 수렴하였다. 시민사회와의 연계가 약해진 정당은 국가의 브로커 같은 존재, 정부기관 내의 정치국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당원의 사회적 동질성을 강조하고 한정된 지지자를 동원, 유지하는 전략 대신 개별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원으로 받아들인다. 정당 간 이념적, 정책적 구분은 모호해진다.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핵심 지지자를 주된 표적으로 의사소통하던 과거와 달리 전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선거전에서의 즉각적 승리를 노리는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여기서 메이어는 중재자로서의 정당 모델을 통해서 정당이 시민사회나 국가의 이익이 아닌, 정당 자신의 독자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익을 위해 유권자를 모으는 것 뿐 아니라 국가를 조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조종할 수 있는 정당들은 국가 재정원조를 준비하고 제도화했다. 국고보조금은 1970년대 이후 큰 폭으로 늘었다. 국고보조금은 정당 활동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를 나타낸다. 이제 정당은 준국가기관이 되었다. 이러한 전략의 위험은 선거에서 패배해 국가에서 배제될 경우 과거와 달리 자원마저 사라져 정당의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 조건은 모든 정당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이다. 선거 승자와 패자 간의 물질적 격차가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정당이 국가 기구 안에 일정부분 들어와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경우 재야 정당 역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카르텔 정당으로의 변화는 국가 별로 균질적이지 않다. 정당 간 협조의 전통과 정당에 대한 정부 지원이 풍부하고, 공직 임용에 대한 정당의 특권이 있는 선진국에서 잘 나타난다. 선거 경쟁의 양상도 변해간다. 개인적 접촉에 의지하던 간부정당에서 선거 운동은 큰 필요가 없었으나 대중정당은 노동집약적 구조로 당비와 기부를 통해 독자적 의사소통 채널을 개발했다. 포괄정당은 비당파적 의사소통 연결망에 접속하기 위해 자본집약적으로 경쟁하면서 선전 담당자와 매체 전문가를 고용한다. 선거전문가 정당화 되는 것이다. 카르텔 정당은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화되어 국가의 보조금과 각종 특권에 크게 의지하게 되었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사례를 보면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는 원내정당 직원이 중앙당 직원 수에 비해 3~4배의 증가 속도를 보인다. 중앙당 역시 공공 장려금을 제도화하거나 직원들을 임시적으로라도 관료로 채용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자원에 의해 성장했다. 카르텔 정당에 대한 도전 메이어는 카르텔 정당이 엘리트주의적 자유주의나 변화되는 민주주의 모델과 조응하는 측면을 밝힌다. 민주주의란 대중의 개입이 아니라 대중의 기호를 엘리트들이 조율해 가는 것이 되고, 정당은 전문가의 연합이 된다. 민주주의는 사회 변화보다 사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도구가 되며, 시민사회가 국가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변한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인 1990년대, 정당의 쇠퇴 현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참여적이고 자주관리적인 민주주의로 향하는 긍정적 변화로 간주했던 입장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 기구로서 정당의 역할은 축소되었으나 국가기구, 공직자로서 정당의 기능은 강화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우선 정당 쇠퇴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에 대한 환멸, 둘째, 정당과 일체감을 느끼는 투표자 비율의 감소, 셋째, 유럽 정당의 상대적인 당원 감소. 이러한 대표 기구로서 정당의 쇠퇴는 목적을 가진 행위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약화시켰다. 메이어는 1983년부터 10년간 유럽의 주요 좌파 정당과 중도우파 정당의 이념 격차가 줄었다는 연구결과와 무차별 야합 양상이 심해졌다는 각국의 정당 연구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쇠퇴는 국가기구로서의 기능은 쇠퇴하지 않은 부분적 위기이다. 혹은 역설적 위기, 정당의 새로운 독자적 적응 방법을 만들고 성장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가 국가기구로서의 정당 기능의 강화, 즉 카르텔 정당이다. 그러나 카르텔 정당이 정당 간 경쟁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경쟁이 최소화될수록 유권자들의 불만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이것은 앞서 말한 대표 기구로서의 쇠퇴를 확대시키는 순환을 만든다.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은 카르텔의 테두리 밖에서 도전이 일어나는 여건을 형성하게 된다. 신생 정당은 기존 정치의 틀을 깨자는 주장을 바탕으로 지지를 호소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신생 정당은 기존 체계에 편입되거나 이것이 좌절될 경우 더욱 급진적 불만세력을 만들게 된다. 메이어는 특히 카르텔 정당이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웨덴의 신민주주의당처럼 서유럽에서 금기시되는 비민주적 가치와 외국인 혐오사상을 가지는 극우정당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또한 카르텔 정당의 모습은 프랑스 구체제에서 귀족 계급을 몰락시킨 대중과의 무관계성과 공공적 특권 간 불균형의 맹아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카르텔 정당론의 한계와 의의 2011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9%로 경찰과 함께 최하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불신하던 18대 국회를 구성했던 기성정당들은 다시 원내정당이 된 반면 신생정당들은 대다수 정당지지율 2%를 넘지 못하고 정당법에 따라 해산했다. 피터 메이어의 카르텔 정당론은 대중의 정당,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기성 정당의 지속의 공존이라는 역설적 현상을 정당 조직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국의 정당은 독일 사민당처럼 대중정당적 기반으로부터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카르텔 정당이라는 개념이 분석틀로 사용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정당들이 카르텔 정당과 유사한 외형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1965년 정치자금법이 제정되면서 국회의원 비율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이 정당에 간접적으로 제공되었고, 1980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에는 국고보조금이 정당에 직접 지급되었다. 한국의 정당들은 국가에 의존적인 형태로 발전해왔던 것이다. 카르텔 정당론을 비롯해서 포괄정당론이나 선거전문가 정당론 등 서구에서 정형화된 유형으로 한국 정당 정치를 곧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타나는 정치 불신 및 정당 위기 현상은 이에 선행하는 서구의 정당정치 위기에 관한 연구를 돌아보게 만든다. 피터 메이어의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결코 작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