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의사-정부 간 갈등의 구조적 원인 지난 5월 2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구조적으로 공급자에게 불리하다고 문제제기하면서 전격 탈퇴를 선언했다. 의협의 탈퇴는 7월 1일부터 전면 실시되는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뜻이다. 의협은 ‘진료비정액제’라고도 불리는 포괄수가제가 과소진료를 조장하여 결국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를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를 통해 현재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일어나는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97년 시범사업과 2002년 선택 적용을 통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의 질 저하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5월 30일 의협이 불참한 건정심 회의에서 7월 1일부터 포괄수가제를 당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의협과 정부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의사들 내부에서는 포괄수가제에 이어 총액계약제까지 시행된다면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할 때처럼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5월 23일 ‘포괄수가제는 국민을 위한 제도다’라는 사설을 통해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넣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논평을 했다. 또한 건정심에 참여하는 가입자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의협이 이해득실에 급급해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의약분업부터 최근 포괄수가제까지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반대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 포괄수가제는 진정 ‘국민을 위한 제도’인가? 건강보험제도에 국한된 정책개혁이 만드는 갈등과 왜곡 포괄수가제의 목적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억제해서 재정을 안정화하는 것에 있다. 포괄수가제를 통해 공급자에게 의료서비스의 비용에 대해 일정정도 책임을 주어서 과잉의료를 줄이려 한다. 현재의 의료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위주의 왜곡된 공급체계를 공공적 성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없이 정부는 포괄수가제라는 건강보험에 국한되는 수가제도의 도입만으로 의료비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민간병원을 운영하고 재정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의사들은 정책변화에 반발하거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건강보험제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게 된다. 게다가 의사협회가 정부 정책에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정부와 여론이 이러한 행태를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혁의 진정한 쟁점은 가려진다. 정부는 제도의 관철에 집중하면서 공급자 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수가 인상 등의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도는 왜곡되어 그나마 내세웠던 취지마저 상실되기도 한다. 만성질환관리제가 왜곡되었던 과정이 단적인 사례다. 만성질환관리제는 선택의원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추진되었다. 이 제도의 목적은 만성질환 환자가 의원을 선택해서 꾸준히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게 하는 것, 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제도 참여를 높이는 방법으로 정부는 환자관리표를 제출하고 관리 실적 평가를 받은 선택의원들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주고, 환자들에게는 선택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경감시켜주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의협, 그 중에서도 현 노환규 의협 회장이 대표였던 전국의사총연합 등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선택의원제가 신규 개원의의 진입장벽이 될 것이고, 정부가 의사를 통제하는 주치의제로 가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환자가 의원을 선택하는 과정과 의원이 환자관리표를 정부에 제출하는 제도 등은 삭제된 후 만성질환관리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포괄수가제도 현재 같은 갈등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타협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가 주는 교훈 만성질환관리제와 포괄수가제로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은 정부의 정책이 의사와 갈등을 만들고 사회적 쟁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의약분업과 비교해 볼 수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를 통해 정책개혁의 한계가 어떤 갈등과 왜곡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약분업은 광범위한 임의조제, 음성적 약가마진 등 의약품을 둘러싼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과잉처방, 약제비 지출 증가의 구조적 문제인 민간 의료기관의 경쟁과 제약자본의 특허 독점 문제 등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리베이트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의사들의 부도덕성을 공격하고 제도를 합리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추진과정에서 4차에 걸친 의사파업과 같은 의사집단의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의사·약사·정부 간의 타협과정에서 의약분업은 의료수가와 조제수가의 인상, 상품명 처방, 대체 조제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애초의 안과는 상당히 달라진 타협안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타협안의 결과로 인해 의약품 리베이트로 대표되는 음성적 약가마진 통제와 의약품에 대한 보장성 강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시행 이후 오리지널 약 처방의 증가와 의약품 가격 관리 실패로 인해 약제비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민중의 의료비부담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제약자본과 민간의료보험은 더욱 성장했다.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진정 바라보아야 할 쟁점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진정한 쟁점은 바로 의료공급체계의 성격이다.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자본, 제약자본, 민간보험자본의 확대가 바로 의료비 증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는 이론상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행위별 수가제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병의원들은 수익을 위해 다른 방법을 추구할 수 있다. 실제 증상보다 더 심각한 진단명을 기록할 수 있고, 허위 진료건을 청구할 수 있고, 비용대비 이득이 적은 건들은 다른 공급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에서 포괄수가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형병원들로 이뤄진 병원협회가 포괄수가제에 대해 조건부 찬성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병원자본의 입장에서 포괄수가제가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오히려 자본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거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허용 등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영역이 확대될수록 민간의료보험의 시장은 커질 것이다. 물론 포괄수가제가 이러한 결과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의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 없이 포괄수가제만 추진한다면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포괄수가제로 인한 의료비의 감소가 민간의료보험사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서 보험사의 이익 증대로 귀결된다는 비판이다. 이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포괄수가제가 가장 광범위하게 도입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관리의료는 단순한 의료보험의 기능을 넘어 보험회사가 의료과정 자체에 개입하면서 비용절감을 주도한다. 포괄수가제가 민간의료보험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공보험이 없는 미국의 사례를 남한 건강보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포괄수가제라는 제도만으로 의료비를 통제하고,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고, 보건의료체계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보건의료운동진영은 나쁜 의협, 착한 정부라는 이분법 속에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의사들이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든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의 근본적 개혁방안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의사들의 반발과 제도의 왜곡은 항상 발생할 수 있으며 의료비 상승과 무질서한 의료공급체계로 인한 피해는 결국 민중에게 돌아올 것이다. 의료공급체계에서의 공적 투자와 통제가 필요하다. 민중이 아파야 의사와 병원이 이익을 얻는 이윤추구적 보건의료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이 건강한 것이 의사에게도 좋은 보건의료체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박스1%]
이명박 정부 말미 공공부문에 대한 공세가 거세다. 정부 초기 공공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다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주춤하던 이명박 정부는 올해 들어 KTX 분할 민영화를 시도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민간자본이 운임 기습인상을 시도하고 이에 대해 제제를 가하려는 서울시에 소송을 거는 등 공공부문에 대한 국내외 자본의 공세도 거세다. 계속되는 의료민영화 시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 추진의 경과 2006년 이후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끈질기게 추진되었고, 그에 발맞춰 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법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2007년부터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이 시도되어왔다. 수차례에 걸친 법 개정 시도가 민중운동의 반대와 영리병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무산되자 이종철 인천자유구청장은 법 개정이 힘들다면 현행법 하에서 관련규정을 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요건과 허가절차를 규정하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영리병원 설립을 강행하기 위해 여론 수렴이나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우회하여 시행령 개정을 택한 것이다. 시행령이 통과되기 전부터 이미 인천시는 영리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ISIH컨소시엄(지분구조 : 일본 다이와증권 60%, 삼성증권․삼성물산․KT&G 40%)을 사업주체로 선정했고, 병원설립 및 초기 운영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6,000억 원 중 최대 3,000억 원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지원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시행령 개정을 주도한 지식경제부는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에 송도국제병원이 설립될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2012년 말까지 준비를 마치고 2015년 12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민영화의 교두보가 될 송도국제병원 지식경제부는 시행령 개정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수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으로 변질되었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당시에는 외국인이, 외국의 의료인을 고용하여, 외국인을 진료하는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의 설립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내국인 진료가 허용되었고, 국내 자본이 투자하여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국인 의사를 90%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으며, 의사의 90%가 내국인인 의료기관이라고 한다면 경제자유구역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의료기관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있게 법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이 영리병원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에 전체 의료체계에 차지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6개로 전국에 걸쳐 지정되어 있으며 추가로 지정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된다면 결국 영리병원의 전국적 허용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목적으로 외국인 정주여건의 개선과 외국인환자 유치를 들고 있지만 이는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2011년 10월 현재 송도의 인구는 10만 2천 명이며 이 중 외국인은 1,834명에 불과한데, 외국인 진료를 위해서 600병상 규모의 의료기관을 짓는다는 주장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외국인 환자 유치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없다. 송도국제병원이 연간 6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인천지역에서 유치한 외국인 환자의 수가 2,898명에 불과한데 병원 하나 건설해서 6만 명을 추가로 유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고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지금도 영리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기존 의료기관들은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또한 영리병원이 법적으로 보장된 이윤추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체계를 이탈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영리병원의 일반화와 건강보험체계로부터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영리병원-민간의료보험이 중산층 이상의 건강을 보장하고 비영리병원-건강보험이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는 이원화된, 의료 양극화 체계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 부실화와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KTX 분할 민영화 추진 경과 지난해 12월 27일 국토해양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15년 초 개통 예정인 수서~목포, 수서~부산 간 KTX의 운영권을 민간 기업에게 넘기는 안을 공표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10년 업무보고에서는 노선 개통으로 연 2,700억 원의 순이익을 얻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적자를 보전할 계획을 제출하고는, 돌연 입장을 바꾸어 민영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철도노조와 민중운동의 거센 반대로 잠잠해졌던 KTX 민영화 문제는 총선 후 다시 불붙었다. 4월 19일 국토해양부는 수서역 고속철도 운송사업 사업제안서 초안을 발표한 후 다시 여론전을 시작했고, ‘5월이 지나 준비가 부족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추진을 위해 준비하겠다’며 강행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즉각 반대의사를 표명하였고 4월 20일 쟁의행위 총투표를 진행하여 86%의 찬성율로 민영화 시도에 맞설 것을 결의한 상황이다. 노동자 착취와 세금으로 대기업 배불리는 KTX 분할 민영화 정부가 제시하는 KTX 민영화 추진의 목표는 경쟁체제 도입이다. 현재 철도 운영의 많은 문제점이 코레일의 독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민영화를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 달리 철도부문은 민영화가 되더라도 경쟁체제가 되지 않는다. 철도는 표준 기술을 토대로 선로 위를 여러 열차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신호에 따라 운행되므로 민영화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이용객은 자신이 가까운 역에서 제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지금과 같은 소비 패턴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KTX 분할 민영화는 경쟁체제 도입이 아니라 민간 자본에게 철도노선 중 유일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KTX의 운영권을 주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는 특별한 투자 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장기간 보장받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반면, KTX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무궁화호․새마을호․화물열차 및 선료사용료 등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코레일은 신규노선 민영화로 경영 악화가 더욱 심해지고 이는 적자노선 폐지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적자 해결과 운임료 하락, 안전성 증가를 예상한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면 효율성이 증가하여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는 경영 효율화의 실체는 인력을 줄이고 더 많은 업무를 외주화하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철도 운임의 31%를 차지하는 선로사용료를 정부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오로지 인건비 절감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주화와 인력감축은 철도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2011년 연이어 안전사고가 발생하자 구성된 민간안전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경영효율화 논리에 밀린 구조조정으로 인한 유지보수 인력 부족’을 안전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들면서 ‘적정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TX 분할 민영화는 철도 분야의 사유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공기업 지주회사를 통한 철도 민영화 방안은 유보되었지만 단계적인 분할 민영화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시설과 운영의 완전한 분리를 위한 시설유지보수 업무의 외주화가 추진되어 왔으며 여객과 화물, 노선별 운영사업자를 분할하고 민간기업을 진입시키려 해왔다. 그 시작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KTX 분할 민영화인 것이다. KTX 민영화를 막아내지 못하면 다음은 화물,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노선의 민영화가 이어질 것이다. 공동투쟁으로 KTX 민영화 - 영리병원 저지하자. 정부와 자본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자본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부문 사유화에 에 필사적이며, 영리병원 설립과 KTX 분할 민영화는 공공부문 공격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정부와 자본은 공기업 독점 해체, 경영효율화, 해외자본유치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집요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는데 반해 운동진영의 대응은 산발적인 투쟁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도 KTX 투쟁은 철도노조의 개별적 투쟁으로 비춰지고 있고, 송도 영리병원 문제 역시 보건의료운동이나 인천지역의 문제로 한정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과 KTX 민영화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정책인 공공부문 사유화의 두 얼굴이므로 민중운동 전반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그 뿐 아니라 총선 이후 민중운동 진영의 사기저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공부문 민영화에 맞선 연대투쟁이 절실하다.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맞서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및 대안 모색을 위한 공동의 실천을 만들어 나가자. [%=박스1%]
주요 키워드 1. 경제자유구역법 : 경제자유구역내 외국의료기관 설립허가 절차가 마련되어, 시행령에서 경제자유구역내 외국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해 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한 시행규칙 제정안을 30일 입법예고함. 2. 광우병 : 4월 25일 미국에서 ‘소 해면뇌상증’이 확인되며 광우병 발생을 공식 공표함. 이에 정부는 미정부에 정보제공요청을 했지만, 수입 중단 등의 조치 없이 30일 만관전문조사단 9명을 미국 현지로 파견함.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못했고, 11일 결과 발표를 통해 미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함. 3. 의사협회 : 5월 1일부터 노환규 회장을 비롯한 37대 대한의사협회 신임 집행부의 임기가 시작됨. 만성질환관리제와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여 대응하기로 한만큼, 그 추이가 주목됨. 4. 일반약 슈퍼판매 :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관련 약사법 개정안이 18대 국회를 통과하여, 이르면 11월부터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 20여 품목을 슈퍼 등에서 팔 수 있음. 이에 약사사회는 망연자실하는 분위기이고, 정부와 제약업계는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음. 5. 기타 : 약가 인하 관련 구조조정(투자행태/인력), 리베이트 제재 강화 법률, 유디치과 관련 판정 등
<2012-3> 2012. 5. 7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 허용의 의미와 쟁점 -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송도국제병원 설립은 중단되어야 한다 김동근 | 보건의료팀 <요 약>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꾸준히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현실화되지 못하자 영리병원 설립을 위해 관련 규정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2012년 4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및 규칙이 제․개정되어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현재 인천시는 ISIH컨소시엄을 재무적투자자로 선정하여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 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은 수차례 개정되며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고, 정부는 외국의료기관을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영리병원이 경제자유구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자유구역은 전국에 걸쳐 지정되어 있으며, 점점 확장되고 있으므로 전국적 허용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정부는 송도국제병원 설립으로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 연간 6만 명의 외국인환자 유치, 3만여 명의 고용창출 등을 들고 있지만 모두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법개정을 피해가고,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에 3,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는 등 추진과정에도 문제가 많다 영리병원 허용은 국민건강에 해악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의료체계의 공공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가 발효되었기 때문에 영리병원 허용으로 인해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 문제와 송도국제병원 설립 여부는 우리 사회에 영리병원이 현실화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이다. 영리병원은 의료민영화의 핵심적 요소이며, 의료공공성의 파괴와 국민건강의 불평등, 의료비의 상승을 불러올 것이므로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보건의료운동의 이념, 역사, 현실 -3 보건의료팀은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밝히기 위한 보건의료팀의 입론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 세미나를 시작으로 2010년부터 교안을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교안의 구성은 크게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역사, 보건의료 분석의 이론,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역사와 과제로 이루어진다.『사회운동』에서는 지난 1~2월호부터 총 4회에 걸쳐 그간 작성한 교안을 축약하여 연재한다(축약되지 않은 교안 원본은 사회진보연대 자료실에 게시함). 이번 호에는 세 번째 파트를 연재한다. 기획연재 1 I.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역사 1. 자본주의의 발전과 19세기 보건의료 2. 법인자본주의 발전과 20세기 보건의료 3. 한국보건의료체계의 역사 :1945년부터 1989년까지 기획연재 2 II. 보건의료 분석의 이론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병의 원인 2. 자본주의적 의료 분석 3. 생태학적 관점 4. 페미니즘적 관점 기획연재 3 III.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역사 1.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대안세계화 운동 2.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시작과 발전 3.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보건의료운동의 한계 기획연재 4 4.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보건의료운동의 모색 5. 보건의료운동의 현 정세와 과제 ------------------------------------------------------------------------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역사 1. 보건의료운동의 시작과 발전 가. 1987년 이전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된다. 이는 민중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1970년대 중반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노동력 재생산을 달성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월성을 과시하는 등 국가와 자본의 경제적·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도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노동자운동의 고양으로 인해 지배계급은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노동·자본 간 역학관계 역시 의료보험제도 도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계급이 의료보험제도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의료보험제도의 시행은 자본의 양보와 타협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노동안전보건제도의 도입 역시 국가·자본의 필요에 따른 시혜적 조치로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며,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산업재해에 노출되었다. 경제개발 시기 노동안전보건정책은 사후적 산재보상 중심이었으며, 산재 예방은 진폐와 난청을 중심으로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집단검진을 통해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했다. 이처럼 1987년 이전에는 건강과 보건의료의 문제는 민중의 요구로 제기되지 못하였고 보건의료운동 역시 서클적 연구와 의료봉사활동 수준에서 머물렀을 뿐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이 재건되기 시작하였고,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대우자동차 파업을 거치며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 및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과의 연대가 강화된다. 급진화 한 노동자운동은 결국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폭발하였으며, 보건의료운동 역시 그 정세를 계기로 실체를 갖추고 발전하게 된다. 나. 보건의료운동의 등장과 분화: 1987년~1995년 1) 보건의료운동의 등장 1987년은 민중운동이 사회적 계급관계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사회 개혁의 중대한 세력으로 등장한 해였다. 당시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보건의료인들은 이러한 대열에 함께 참여하였으며 보건의료 문제를 인식하는데 있어 사회의학적 관점이 점차 중심이 되어갔다. 1980년대 말 보건의료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던 관점은 보건의료운동을 보건의료부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987년~1989년 각종 보건의료단체가 출범하면서 적극적인 실천으로 외화된다.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등 같은 직종의 비교적 단일한 대중을 포괄하는 단체와 <교회 빈민의료협의회>, <기독청년의료인회> 등 의사, 약사, 의료기사, 간호사 등 여러 직종이 모인 단체들이 출범하였다. 또한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주된 과제로 하는 <노동과건강 연구회>,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는 <보건과사회 연구회>가 창립되었다. 당시 보건의료운동의 주요한 실천 형태는 전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한 소수의 실천을 통해 민족민주운동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질병 상담 활동, 1988년 <농어민의료보장대책위원회> 활동, 1990년 문경 진폐증환자 검진, 강경대/이철규 부검참여,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 대책위원회> 활동, ‘산재추방운동, 반핵평화를 위한 보건의료대중단체 공동사업’ 등이었다. 이러한 소수의 헌신적 활동은 보건의료인들을 포함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민중운동이 1987년 민주화투쟁을 계기로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농민들의 의료보험 요구와 의료보험통합일원화 운동: 1988년~1989년 1988년 1월 농어촌지역에 의료보험제도가 전면적으로 실시된 후 2월부터 농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의료보험제도는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되는 등 역진적 방식으로 출발한데다 수익자부담 원칙하에 노동자를 분할·통제하기 쉬운 조합주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집단에 따라 분할 운영되는 각 조합의 의료보험 가입자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나 국가의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가입되었던 지역의료보험은 직장의료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과도하게 비싸고 진료권이 제한되는 등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 농민들은 과도한 보험료 부과에 반대하여 의료보험증을 불태우는 등 의료보험제도 자체를 거부하였는데, 자연발생적인 저항운동은 농민단체들과 연계되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1987년 이후 결성되었던 보건의료단체들이 결합하면서 지역보험과 직장보험을 통합하자는 의료보험통합일원화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88년 6월 <전국의료보험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국 40여개 군 단위 의료보험대책위원회와 농민단체, 보건의료단체 등 48개 단체가 결합하였는데, 당시 대책위원회의 주체는 농민, 도시빈민, 진보적 의료관련단체의 의료인들이었다. 이 시기 의료보험통합일원화운동은 보건의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운동이라기보다는 극단적 모순을 보여주던 한국 보건의료에 대한 파편적 투쟁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의료보장쟁취를 둘러싼 민중운동진영의 전국적 조직화와 국민의료보장법안의 구체화를 통해 사회복지제도에 계급적 관점을 관철하는 경향을 드러낸 것이었으며,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고민이 처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졌다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의료보험법안을 둘러싼 각계의 요구는 통합을 골자로 한 국민의료보험법으로 가시화되었고, 1989년 3월 임시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운동에 대한 지배층의 탄압 기조에 따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후 수년간 의료보험통합일원화운동은 중단되었다. 3) 노동조합의 보건의료운동 지역의료보험조합의 노동자들 또한 의료보험통합을 요구하는 핵심적 주체 중 하나였다. 지역의보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조직화와 투쟁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대적 배경이라는 주체적 요인과 지역의료보험의 비민주성, 중첩적 관리통제체제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직장의료보험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라는 문제가 가장 컸다. 지역의보 노동자에게 차별철폐는 곧 통합을 의미했다. 농어촌에서 지역의료보험이 시작된 1988년 거의 모든 군지역조합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였고, 1989년 3월 파업을 통해 국민의료보험법 국회통과 과정에서 대중적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통합은 무산되고, 도시지역 의료보험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인 1989년 5월부터 노조 건설이 이루어져 1989년 9월 도시, 농어촌을 총망라한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진다. 다시 국회에 상정되어진 의료보험통합법의 통과를 요구로 시작된 총파업은 11월 야3당 당사농성 등을 거쳐 12월까지 이어졌으나 국회통과를 이루어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 투쟁을 통해 조직력과 문제의식을 확보한 지역의보노조는 이후 의보연대회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의료보험통합을 이루게 된다. 병원노동조합도 형성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 70개 노동조합이 참여한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가 구성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1988년 93개 노동조합이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을 창립하였고, 병원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의료민주화를 연맹의 주요 과제로 추진했다. 당시 병원노동조합운동은 보건의료 전반에 관한 의제보다는 임금 및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의료영역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의료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였고, 환자의 편익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지만, 전체 보건의료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투쟁에는 형식적으로 결합한 측면이 있었다. 당시 병원노련은 산별노조 전환과 산별교섭 쟁취를 실질적인 목표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보건의료 개혁을 운동의 중요한 축으로 삼기에는 조직적 한계가 있었다. 병원노련의 활동은 1998년 산별노조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4) 민족보건의료운동론과 청년의사 1990년대 초반 보건의료학생운동 일각에서 민족보건의료운동론이 제기되었다. 남한 변혁 운동의 성격을 민족 해방 운동으로 규정하는 민족보건의료운동론은 ‘자주적인 민족 보건의료 체계의 수립을 통한 민중의 건강권 확보’를 기치로 내건다. 이들은 이후 <<청년의사>>라는 신문을 발간하면서 의료계의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한다. 청년의사 그룹은 의료현장을 중심으로 한 보건의료운동을 주창하면서, 의사들을 생산직 노동자로 규정하고 전공의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에서 착취의 개념을 이끌어내며 대형병원 중심의 전공의 조직을 대중운동의 틀로 상정한다. 전문가 중심의 초기 보건의료운동이 가진 한계에 비추어 볼 때 청년의사 그룹의 문제제기는 의미가 있다. 보건의료운동에 기여하기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편향은 활동가로서 대중적 기반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의 축소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활동전선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의사 그룹은 그 대안으로 보건의료인(의사)들의 지위와 처지에 기반한 조합적 운동으로 스스로를 한정지음으로써 사회 전체의 건강 및 보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이후 청년의사 그룹은 변혁적 사회운동으로서 보건의료운동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배제하게 된다. 5) 정책운동으로의 전환 1992년 경 인의협으로 대표되는 의사들은 보건의료운동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상정하였다. 첫째로 전문가중심 조직에서 대중조직으로 전환하는 것, 둘째로 운동의 내용이 의사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노동자계급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의협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정책대안에 의한 운동을 돌파구로 삼았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은 1992년 대선 무렵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인 연대회의>(이하 보건의료연대회의)가 결성되고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라는 정책안이 만들어지면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보건의료단체의 그간 활동성과를 총결산하는 의미가 있었으며, 민중운동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던 것에서 ‘사회 전체의 일부로서의 보건의료’를 개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발전적이었다.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으며, ‘시장 중심의 한국보건의료’라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됨으로써 이후 전개되는 보건의료운동의 담론 형성에 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정책운동의 성과는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이 정책운동으로 제한되면서 운동의 주체 역시 보건의료인으로 제한되었으며, 정책운동의 내용과 전문직종운동이라는 규정 사이에 긴장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당시 보건의료연대회의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향하고 정책 설명회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였는데, 이러한 활동은 민중적 주체 인식이 없고 몰계급적이라는 비판을 외부로부터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직종별 단체 위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과도한 활동이라는 비판을 단체 내부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이는 구소련의 붕괴와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계급적 관점이 운동단체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상황, 그리고 청년의사 그룹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효과인 ‘직종 내의 요구를 수렴해야 한다’는 부담이 증대되었던 상황을 반영한다. 결국 보건의료운동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과거의 전문성 강화로 회귀하거나 구강보건사업, 공동체약국사업 등 직종 내부의 의제로 눈을 돌리는 ‘직종전문운동’으로 양분화된다. 한편 김영삼 정권은 1994년 초 보건의료부분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끝날 즈음 의료보장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의료부문의 전반적 개혁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다. 정부가 보건의료시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냄에 따라 <의료보험통합일원화와 보험적용 확대를 위한 범국민 연대회의>(이하 의보연대회의)가 결성되고 의료보험통합일원화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의보연대회의에는 보건의료단체를 비롯하여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 <도시빈민단체협의회>, <전국연합>,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여성단체연합> 등 총 77개 단체와 6개 지역연대회의가 참여하여 보건의료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한 운동체가 출범하게 되었다. 의보연대회의는 의료보험의 재정과 관리운영을 통합일원화하고,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차등부과하며, 보장성을 높이고, 의료보험과 의료보호를 통합하자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보건의료연대회의의 성과를 실천적으로 계승하는 측면이 있었고, 동시에 보건의료운동 내 정책운동이 직종전문운동에 비해 정치적으로 여전히 우위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시기 이후 현재까지 보건의료운동은 대체로 정책운동, 그 중에서도 의료보험제도라는 단일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를 거치며 형식적 참여에 머물렀던 노동자운동의 참여가 강화되었다. 6)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등장 노동안전보건운동 역시 1987년 민주노조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출발하였다. 1988년 수은중독으로 인한 문송면 군의 사망과 이황화탄소중독으로 인한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산재, 직업병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별적 보상중심의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노동조합 내 안전보건부서 신설과 사업장 차원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건설 요구가 이어졌다. 또한 1989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투쟁을 거치면서, 산재추방운동에서 노동조합 교육 및 지원이 주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1989년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이루어졌고, 안전보건에 대한 참여권이 일부 보장되는 등의 성과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예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없이 단지 물량적인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한계를 보였다. 한편, 1990년대 들어서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노동조합이 그 주체가 되어갔다. 대부분 노동조합에 산업안전부서가 설치되었으며, 활동의 범위도 사후처리에만 매달리던 것에서 벗어나 산재피해자의 복지와 산재 예방을 위한 활동으로 확대되어갔다. 1995년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노동조합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산재추방운동은 노동조합 지원과 산재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개발활동으로 범위가 축소되었다. 7) 보건의료정치운동 1987년 국면에 보건의료운동에 막 입문한 좌파들은 민족보건의료운동론이 제기되었을 당시 이를 비판하며 민중적 보건의료운동론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민족보건의료운동론이 이론적 허점과 과거 운동에 대한 평가 절하, 의사 외 부문에 대한 무지, 이데올로기적 우편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였고, 대중 운동과 변혁 운동의 통일로서 보건의료운동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이후 좌파는 뚜렷한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운동을 중심으로 결집하게 된다. 이들은 1980년대 보건의료운동의 성과를 집단 이기주의 운동으로 전락시키려는 청년의사 그룹을 비판하고, 보건의료연대회의 활동이 보여주고 있던 탈계급주의라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보건의료정치운동을 제창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대선 투쟁을 경과하면서 결성된 <민중의료협의회>(이하 민의협)의 논의 과정을 거쳐 <보건의료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의료인 연대>(이하 정의련)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민의협과 정의련의 출범은 보건의료운동의 내용을 전체 사회변혁의 전략·전술의 문제와 연관시켜 구체적으로 논의한 새로운 경향의 보건의료운동이 출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정의련은 전체 운동과 결합하면서 보건의료 문제를 계급적 정치투쟁으로 조직해내는 것을 보건의료운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하였다. 정의련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전체 운동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당시 <민중정치연합>(이하 민정련)과 조직적인 관계를 설정한다. 이후 민정련의 해체에 뒤이은 정의련 일부 운동가들의 이탈과 분리를 통하여 <민중의료연합>(이하 민의련)이 출범하게 되었다. 민의련은 보건의료운동의 전략으로 보건의료의 공공화 및 사회화를 채택하고, 보건의료정치운동을 활동의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1994년 의보연대회의 활동을 통하여 많은 민중 단체가 보건의료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그 참여는 참관의 수준이었다. 이는 전체 민중운동의 통합적 과제의 일환으로 보건의료운동이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운동이 주도하는 운동적 모형이 유지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이 당시 정책운동은 보건의료 개혁의 방향을 서구 복지국가 모델 혹은 케인즈주의 모델로 설정하기 시작하였다. 민의련의 출범은 보건의료를 전체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는 초창기 보건의료운동의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보건의료운동을 변혁운동의 일부분으로 사고하는 발전적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994년 당시 정의련은 김영삼 정부의 의료부문 개혁 시도를 의료시장 개방화를 예비하는 사적시장 강화로 규정하고, 의보연대회의가 의료보험체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과 의료보험통합안의 보험료부과방식이 분배의 형평성에 미달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정의련은 의료보험통합안을 넘어서는 대안으로 단기적으로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하여 지역사회의 노동자·민중의 주민자치조직을 주체로 세워야 함을 제시하였고, 장기적으로는 의료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인 참여와 분배의 형평성이 달성되어야 함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정의련의 의료개혁방안은 원칙적으로는 의보연대회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었으나 실제 정책으로 도입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거나 상세하지는 못하였다. 2.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대안세계화운동 1997년 이후의 남한 보건의료운동에 대한 평가는 현 정세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특징과 모순을 분석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변모해온 보건의료체계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입각해서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와 이에 맞서는 보건의료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본 장에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따른 보건의료의 변화와 이에 맞선 민중의 저항을 살펴본다. 가. 보건의료의 금융화 의료비용의 지속적인 상승은 경제위기와 결합하면서 ‘보건의료의 위기’로 가시화되었다. 비효율성이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공적 의료서비스는 사적 의료자본에 의해 대체되는 동시에 사적 의료자본의 금융적 변모가 시작된다. 제약·병원 등 사적 의료자본은 세계적 차원의 인수·합병과 직접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하며, 보험자본과 같은 금융자본의 영향도 증대된다. 이른바 ‘보건의료의 금융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보건의료의 금융화는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된다. 의료자본이 금융화의 추구로 축적전략을 변경하는 경로와 보험자본과 같이 외부에서 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금융자본이 보건의료에 직접 개입하는 경로이다. 전자는 초민족적 제약자본, 후자는 관리의료가 대표한다. 그리고 대중보건의료의 금융화는 세계무역기구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를 매개로 가속화된다. 나. 초민족적 의료자본의 금융화: 제약자본 서구의 보건의료는 19세기 후반부터 식민보건정책과 의료선교를 통해 주변부로 확산되면서 식민지 주민을 서구적 생활양식에 적응시켜 보건의료의 잠재적 구매자로 변화시킨다. 그 결과 탈식민화 이후에도 서구의 의료기술과 제도는 제3세계 국가들의 기본모델로 채택된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서구의 의료기술과 행위는 병원, 제약회사, 의료장비, 원격의료·재택치료 등과 같은 기타 의료서비스 부문으로 분화되는 동시에 초민족적 의료자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는 얼마간 불균등하게 진행된다. 공급자가 직접 소비지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병원의 초민족화는 민족국가의 제도적·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제한되는 반면 제약·의료서비스자본은 성공적으로 초민족화를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제약 산업은 치료의학혁명과 분자생물학 및 유전공학의 기술혁명을 경험하면서 1970년대까지 꾸준히 성장한다. 제약자본은 대학연구소를 지원하고 생명공학전문기업과 제휴함으로써 이들의 연구·개발 성과를 상업화한다. 이러한 경로의 신약 개발은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 비용이 투자되는 대신 특허권에 기초하여 일정 기간 동안 독점이윤율이 보장된다. 제약자본은 20년 이상 보장받은 특허기간 동안 의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이윤을 최대화한다. 특허기간이 만료된 제네릭(복제약)은 연구·개발비가 낮은 대신 가격 경쟁이 심해서 이윤율이 낮다. 따라서 특허약은 초민족자본이 지배하고 제네릭은 주로 민족자본이 담당하는데, 대중보건의료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제네릭 시장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한다. 제네릭 시장의 확대와 함께, 정부의 의약품 가격통제와 제네릭 생산 장려를 통한 경쟁유발은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초민족적 제약자본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초민족적 제약자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직접투자와 인수·합병으로 대응하면서 금융화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이것은 생산과 판매에 의한 이윤 획득이 아니라 시장지배력을 확보하여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금융적 이익을 대표한다. 다. 금융자본과 보건의료: 관리의료 성장기동안 보건의료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보험 자본은 이제 보건의료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면서 이 부문을 자본집중의 계기로 활용한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발전되어 세계로 수출되는 ‘관리의료’다. 국가의료보험이 발전하지 못한 미국에서 의료비지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관리의료가 효과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사적 보험이 의료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관리의료는 하나의 조직에 보험·전달·지급기능이 통합된 선불제도이며, 관리의료조직이 환자가 이용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식적 통제를 수행한다. 이는 공급자선택제한(문지기주치의제도), 사례관리, 이용도심사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공급자선택제한이란 피보험자가 관리의료조직이 고용한 의사나 여기에 가입한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경우에만 보험적용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치의는 과잉의료를 방지하고 2차 의료에 대한 보험회사의 지출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례관리란 잦은 입원경력이나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사례관리자를 배치시켜 병의 악화를 막거나 자가 치료 및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이용도심사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적절성 여부를 보험회사가 판단하는 것이다. 특정 치료가 과잉의료행위로 판정되면 보험료 지급을 거부한다. 관리의료는 단순한 의료보험의 기능을 넘어 보험회사가 의료과정에 개입하면서 비용절감을 주도한다. 병원과 개업의는 관리의료조직에 가입하지 않으면 다른 병원과의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보험자본의 의료비용 절감 압력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건의료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종속된다. 뿐만 아니라 관리의료는 보건의료 부문이 급격하게 영리화·상업화되는 길을 열어놓았다. 대형 상업보험회사들이 관리의료에 참여함으로써 보건의료의 영리부문에서뿐만 아니라 비영리부문에서도 이윤추구·인수합병·경영다각화를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인기업이 성장하여 보건의료산업의 관련 분야를 포괄적으로 결합하는 이른바 ‘의산복합체(medical-industrial complex)’가 출현했다. 미국 내 관리의료조직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고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보험 자본은 관리의료를 수출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 지역의 보건의료체제를 관리의료의 형태로 재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관리의료와 의산복합체의 출현은, 보험을 매개로 병원을 보편적인 의료 기관으로 확립했던 대중보건의료가 보험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라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리의료와 의산복합체는 지속적 비용 상승에 따른 보건의료의 위기에 대한 금융적 해법이다. 라. 국제기구와 보건의료의 금융화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세계적 무역 질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함으로써 초민족적 의료자본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세계무역기구는 보건의료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협정을 주도하는데 서비스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S)과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그것이다. 서비스무역에관한일반협정의 핵심 내용은 보건의료서비스를 포함한 공적 서비스를 상품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자유무역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은 지식에 대한 소유권을 기반으로 초민족적 의료자본에게 최소 20년간 독점이윤을 보장한다.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외채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 개입하여 차관조건과 채무지불협상을 지렛대로 삼아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강제한다. 또한 채무국의 공적 서비스를 사유화하고 연금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채무국의 보건의료부문을 초민족적 의료자본을 위한 시장으로 변모시킨다. 이들이 주도하는 다자간협정체제가 주변부 국가의 저항을 받자,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쌍무협정체제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두 당사국 사이의 협정으로 주변부 국가의 보건의료부문은 초민족적 의료자본에 더욱 개방·종속된다. 강제실시권과 같은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의 예외 조항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특허기간도 2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플러스(TRIPs+)가 대표적이다. 마. 보건의료의 금융화의 영향 공적으로 관리되던 보건의료부문이 사유화를 통해 초민족적 자본에게 종속되면서 수요자의 지불 능력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이 차별화되어 건강불평등이 확산된다. 초민족적 제약자본은 의약품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지적재산권을 무기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기 때문에 보건의료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 접근을 차단한다. 뿐만 아니라 제약자본은 수익성이 높은 미국·유럽·일본 시장의 수요에만 맞추어 약품을 개발하기 때문에 저개발국의 고유한 질병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술개발을 하지 않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한다. 서비스무역에관한일반협정은 공적 의료서비스의 사유화를 진행시키는 동시에 세계적 수준에서 보건의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서비스부문의 무역자유화에서 주변부 국가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인력 유출의 형태로 나타나 주변부 국가의 건강상태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초민족적 제약자본의 이윤추구전략과 무역협정의 체결이 세계적 수준에서의 불평등으로 귀결된다면, 관리의료의 확산은 민족적 수준에서의 공공성의 약화와 불평등을 야기한다.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한 관리의료는 피보험자에 대한 사용자분담금의 도입을 요구하는데, 이는 보험가입을 제한하는 장벽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을 공적병원으로 집중시킨다. 또한 심각한 환자는 공적 부문으로 묶어두는 대신, 비교적 건강한 환자만을 유인하는 경향이 있다. 바. 대안세계화 운동 1990년대 들어 건강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비판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자기결정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형성된다. 2000년 75개국에서 1400여명이 참석한 1차 민중건강총회(People’s Health Assembly)는 보건의료에 대한 세계화의 영향, 건강권 등 폭넓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건강을 위한 세계행진(Global March for Health)을 진행한다. 또한 알마아타 선언의 이념을 현실화할 것을 요구하는 민중건강헌장(People’s Charter For Health)을 채택한다. 1차 민중건강총회의 준비·개최 과정을 통해서 민중건강운동(People’s Health Movement)이라는 국제연대체가 조직된다. 민중건강운동은 세계사회포럼에서 <건강을 위한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on Health)>을 개최하면서 보건의료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연대를 추구하는 동시에 보건의료운동이 대안세계화운동의 부문운동임을 선언한다. 민중건강운동은 건강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보편적 1차 보건의료를 주장한 알마아타 선언의 이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권 개념을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하는 동시에 민중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변화를 함축하는 것으로 발전시킨다. 즉 민중은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구성하는 동시에 건강에 대한 권리를 실현시켜야 하며, 이러한 요구는 인간 생활의 기본조건과 항상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형태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마아타 선언의 슬로건은 민중건강운동에 의해 ‘바로 지금, 만인에게 건강을’이라는 요구로 확장된다. 민중건강운동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건강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비판, 건강에 관한 생태적 관점이라는 세 가지 핵심적 의제를 주장한다. 이 세 가지 의제의 실현을 위해 민중건강운동은 민중의 시민교육을 강조한다. 이들은 건강문제에 대해 지역사회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고양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보건의료의 위기의 관련성을 민중이 스스로 인식할 것을 목표로 지역사회에 기초한 다양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처럼 민중건강운동은 보건의료운동에 대한 대안적인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운동은 대안세계화운동과 결합하면서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세계보건의료운동을 제안한다. 그리고 보건의료에 대한 민중의 자기결정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적 보건의료 자체를 건강권의 원리에 따라 변혁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변혁을 전제하는 것이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대안세계화운동의 구호가 핵심적 내용으로 등장한 2차 세계사회포럼의 선언문은 바로 이러한 전망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3.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보건의료운동의 한계 가. 신자유주의 개혁과 민중운동 1990년대 후반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개혁’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자본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관철에 총력을 기울였다.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이 1997년 초까지 지속되었지만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민중운동의 요구는 수세적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합의를 담은 사회협약을 조인하기에 이른다. 또한 2003년 노동시간단축과 장시간에 걸친 변형근로제 도입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노동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민주노총은 공언했던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진다. 이는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 전반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벌어진 결과이다. 김대중 정권이 주도적으로 구성한 노사정위원회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해서 노동조합에게는 실질적인 이익 없이 사회적 대화 파트너라는 형식적 지위만을 부여하는 허구적 코퍼러티즘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대응책 수립, 핵심적으로는 노동조합의 대안적 이념과 활동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시급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을 위해 NGO의 역할에 주목했다. 많은 시민단체는 기업구조조정, 부패감시와 정칙개혁, 협력적 노사관계와 ‘생산적 복지’의 수립 등 다방면에서 정부와의 상호협력을 모색하며 조응했다. 시민운동의 포섭과 함께 노동자운동은 ‘실리주의·조합주의’ 노선을 채택하며 민중운동은 위기를 맞게 된다. 나.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의료보험통합일원화, 의약분업, 공공부문 구조조정 김대중 정부의 특성은 보건의료부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한국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본격화된다. 새정치국민회의 정책기획단은 보건의료 개혁의 원칙을 ‘민주적 시장 경제’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보건의료에서 무질서한 경쟁을 질서 있는 경쟁’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보건의료체계가 시장질서에 따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개입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대중보건의료의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에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기 보건의료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제고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추진되었는데, 의료보험통합일원화로 대표되는 의료보험 관리운영 조직의 개편, 의약품 실거래가 제도, 병원경영 투명성 제고, 의약분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동시에 김대중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공공병원 민영화 추진과 인원감축,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비용절감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나갔다. 한편 대선 공약이었던 ‘보건복지예산 확충’은 전체 정부예산 중에서 보건의료부문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정권 중 최하위인 0.29%를 기록함으로써 유명무실화되었으며, 보충적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여 건강보험의 공백을 시장화 정책으로 해결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1) 의료보험통합일원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보건의료부문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가시적 변화는 의료보험통합일원화였다.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2000년 통합의료보험체계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출범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의보연대회의는 성명서, 토론회, 선전전 등의 방식으로 통합의료보험 관철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였다. 또한 의보연대회의를 계승한 건강연대는 직장의료보험노동조합과 한국노총이 주축이 되어 전개하였던 의료보험통합 반대운동을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고, 적립금 운용의 공공성이 강화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은 보건의료운동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국고지원을 명시하고, 공급체계 통제를 위한 심사평가제도, 예방 및 건강증진 사업에도 기금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운동진영의 구체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의 비합리성은 어차피 정부 입장에서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합리화에서 더 나아가 의료보험통합을 ‘추가적인 재원조달 없이 의료보험관리운영조직의 내적 효율화’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였다. 1988년 농민들의 보험료 납부 거부 투쟁에서 출발한 의료보험통합추진운동은 단순히 합리적인 제도를 얻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의료보장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서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대중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업의 효율성, 국고 부담의 감소를 개혁 근거로 내세우며 의료보험통합일원화를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용도로 활용하였으며, 이로 인해 통합 일원화 논의 또한 사회보험의 본질적 의미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왜곡되었다. 2) 의약분업 1996년 김영삼 정권은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그 개혁 정책의 하나로 의약분업 실시방침을 정하였으나 의사회와 약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외환위기 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보건의료의 구조적 개혁과 확충을 요구하였고, 김대중 정부는 이를 계기로 의약분업을 단행하였다. 정부는 약물 오남용 감소를 통한 국민건강증진과 약물 사용 감소를 통한 약제비 절감을 근거로 의약분업을 추진하였다. 정책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운동진영과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진영은 김대중 정부의 의약분업 추진 초기부터 완료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의약분업추진협의회에의 참여, 시민대책위를 통한 활동 등 의약분업안의 마련과 중재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약가차액조사결과 발표, 음성적 약가마진의 문제 등을 폭로하며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의사와 약사 집단을 압박하는 등 의약분업을 추진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의약분업은 보건의료체계, 특히 광범위한 임의조제와 음성적인 약가마진 등으로 대표되는 의약품 유통구조의 무질서함을 합리화하는 제도로서 언젠가는 시행되었어야 할 정책이다. 그러나 합리적 제도로서 의약분업이 그 자체로 민중의 건강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제도가 어떠한 맥락과 의도에서 추진되는가 하는 점이다. 의약분업을 통해 정권이 의도한 것은 ‘보건의료 질서의 효율화’를 통해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여 정부 재정부담을 축소하고, 비효율적 제도와 구조의 효율화를 통해 시장질서의 전면화를 예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더 긴급한 과제였던 의약품 유통구조의 단일화와 의약품에 대한 보험재정 지원의 확대, 나아가 국가의 재정지원 증가를 통한 본인부담의 경감과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세에서 의료계의 반발이 격화되자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의사정원의 감축과 특권적 지위 보장을 제시하는 등 국민건강과 관련된 원칙부터 폐기한 정부의 행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보건의료운동은 김대중 정권 하 보건의료 개혁의 양면성을 인식하고 의약분업 논의를 의료보험제도의 전면적 개편과 민간중심의 자유방임적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전화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의약분업 시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보건의료운동진영은 의약분업의 개혁성을 과대평가하고 의약분업의 실시 자체를 운동의 원칙으로 사고하는 오류를 범했다. 결국 의약분업은 이후 보건의료체계의 개혁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계기가 되지 못하였으며, 약제비 폭등과 과도한 수가 인상으로 인한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는 노동자·민중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었다. 의약분업과 개별실거래가상환제는 의도와 반대로 약제비 폭등을 불러왔다. 의약분업의 최대 승자는 제약자본, 그 중에서도 초국적 제약자본이었다. 리베이트 등 음성적 마진을 얻을 수 있었던 제네릭 의약품 처방이 줄어들고 대신 마케팅으로 환자들에게 잘 알려진 오리지널 의약품 처방이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연합조직을 만들어 적극적인 로비와 압력을 행사하면서 의약품 관련 정책에 개입했으며 의약분업도 그러한 요구 중 하나였다. 또한 그들은 의약분업의 과정에서 고가 수입의약품의 보험 등재를 요구했고 약가 결정에 있어서 연구개발가치의 인정과 투자비용의 회수가 가능한 가격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면서 선진국 수준과 동일한 약가기준을 요구하는 A-7 가격결정제를 도입시켜 폭리에 가까운 약가를 관철시켰다. 실제로 의약분업과 개별실거래가상환제의 도입 이후 초국적 제약기업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초국적 제약기업의 의약품시장 점유율은 1999년 9.6%에서 2000년 22.7%로 1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3)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병원노동자운동 1998년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 결성 직후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은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보건의료 개혁 방침을 전면화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추진함에 따라 국공립병원과 지방공사의료원 등 보건의료노조의 핵심 단위들에서 직접적으로 고용안정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기되었던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은 단순히 고용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공공의료의 역할과 위상 등 보건의료체계의 대안이라는 쟁점을 제기한다는 측면에서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던 것이다. 병원노동조합의 위기는 한편으로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서 보건의료 개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기관이 본질적으로 이윤추구라는 목표를 추구해서는 안되며, 공공의료기관 개혁의 방향이 구조조정이 아니라 대중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함을 제기하지 못했다. 대신 불공정한 이사장 선임과 이로 인한 무책임 경영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구조조정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하였는데 이는 효율적인 경영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대체로 그 의도가 관철되었으며 보건의료노조는 고용안정을 조건으로 노동조건의 후퇴 및 비정규직화를 수용하게 된다.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의 의미와 과제 2012년 4월 17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요건과 허가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당초 이번 건은 경제자유구역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었으나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운동의 반대로 통과가 힘들어지자 시행령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의료정책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여론 수렴이나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관료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주도한 지식경제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2002년부터 추진해온 외국의료기관 설립이 본격화될 것이며, 인천 경제자유구역(송도)에 600병상 규모로 세워질 송도국제병원이 그 시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리병원 설립 문제는 인천시의 주요한 논란거리 중 하나였는데, 송영길 인천시장은 그간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해왔으나 지역사회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는 형편이다. 시장이 지역 민심을 의식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자 지경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은 인천을 방문하여 빠른 결단을 내릴 것을 재촉했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인천을 배제하고 다른 지역에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은 정말 외국인을 진료하기 위한 것일까? 시행령 개정이라는 변칙적 수단까지 동원하며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경부는 그 효과로 외국인 정주여건의 개선과 의료관광 활성화를 들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이 목적이라는 입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2011년 10월 현재 송도의 인구는 10만 2천명이며 이 중 외국인은 1,834명이다. 600병상 규모의 외국인 대상 의료기관이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현재도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또한 외국인진료를 위한 의료센터(인하대 국제진료센터)가 마련되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들의 의료접근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의료관광 활성화 또한 마찬가지다. 연간 6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얼핏 살펴봐도 6만 명이라는 수치는 비현실적인데,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인천지역에서 유치한 외국인 환자의 수가 2,898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외국인을 진료할 병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내 거주 외국인 진료와 외국인 환자 유치는 현행 시스템 하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실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진료가 정말 문제라면 질 높은 의료시스템을 마련하고 언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될 일이다. 환자 입장에서 볼 때 외국의료기관의 유일한 차별점으로 규정된 것은 외국면허 소지 의사를 10% 이상 배치하도록 한 것인데, 외국면허 소지와 외국인들에 대한 질 높은 의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설립의 진짜 목적은 영리병원의 전국적 허용이다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법의 개정 과정을 살펴보자.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당시에는 외국인이 외국의 의료인을 고용하여 외국인을 진료하는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의 설립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내국인 진료가 허용되었고 국내 자본이 투자하여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으며(외국인투자비율 50%가 최소요건) 내국인 의사를 90%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애초의 취지는 유명무실해졌다.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으며, 의사의 90%가 내국인인 의료기관이라고 한다면 경제자유구역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의료기관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있게 만드는 법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경부는 외국인 정주환경 조성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일 뿐이므로 영리병원 문제와는 무관하며,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에 전체 의료체계에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6개로 전국에 걸쳐 지정되어 있으며 추가로 지정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이처럼 광범위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된다면 결국 전국적 허용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이 불러올 연쇄효과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법인의 목적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므로 당연히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환자에게 돌아간다. 또한 진료의 일차적 목적이 이윤창출이므로 의료의 질이 저하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많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심지어 영리병원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보건산업진흥원에 발주한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 연구에서도, 영리병원은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의료인력 편중으로 중소병원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외국인 진료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막상 영리병원이 현실화되고 나면 내국인을 주로 진료하는 고급화된 병원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어서 실제로 외국인을 진료하는 것도 아닌데 외국인투자비율 50%, 외국면허 소지 의사 10% 등의 규정은 과도하다는 현실론을 근거로 설립요건이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자유구역이 이미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영리병원이 확산되면 전체 의료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영리병원의 전면적 허용에 대한 요구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체계를 통해 통제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법적으로 보장된 영리병원의 이윤추구를 건강보험이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할 경우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의 일반화와 건강보험체계로부터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영리병원-민간의료보험이 중산층 이상의 건강을 보장하고 비영리병원-건강보험이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는 이원화된 체계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건강보험의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다. 의료민영화, 의료 이용의 불평등, 건강보험의 부실화 등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될 때 이미 보건의료운동 진영에서는 영리병원 허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당시 정부는 이를 허무맹랑한 억측이라고 단정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려했던 가능성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한미 FTA가 발효되었기 때문에 영리병원 설립 후에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해도 이를 되돌리는 것은 투자자국가제소(ISD)의 대상이 된다.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막기 위한 투쟁이 절실하다 현재 상황에서는 송도에 영리병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경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로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명시하고 있다. 송도국제병원을 설립․운영하기 위한 컨소시엄이 이미 구성되었으며(ISIH 컨소시엄: 다이와증권캐피털마켓 60%, 삼성증권·삼성물산·KT&G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음), 인천시는 지난 3월 ISIH 컨소시엄을 우선투자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인천경제청은 올해 말까지 사업계획 수립과 운영기관 선정을 끝내고 2015년 12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송도국제병원 설립은 결코 병원 하나를 짓는 문제로 가볍게 볼 수 없다.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문제는 우리 사회에 영리병원이 현실화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의료비 상승과 건강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킬 영리병원 설립을 반드시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