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부 자료 1. 민생위기 극복 연석회의(비상시국회의) 자료집 2. “운동가들의 가슴에, 투쟁하는 민중의 마음에 한국진보연대의 깃발을 세우자!”, 한국진보연대 웹진 6호 인터넷 링크 자료
1. http://www.n-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6&no=22311 "경제비상시국회의, 민생민주국민회의와 관련한 경과 및 고민", 진보신당 게시판
2.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26039.html "진보 개혁 세력 덧셈정치 논쟁 후끈", 한겨레 신문 12월 7일
3.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27152.html "한미FTA, 비정규직 입장 분명해야 정책연대 가능" , 한겨레 신문 12월 12일
최근 이명박 정부가 지배세력의 이익 방어 전략을 극대화한다는 면에서 1% 부자정부, 친재벌 정부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좋았던 시절’을 떠나보낸 이들이 과거 10년간의 정권을 떠올리며 사용하는 표현이라면 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10년의 세월 동안 정부 정책으로 인해 고통에 처한 수많은 이들의 현실과 이에 맞선 반빈곤운동이 그 증거다. 이명박 정부가 실행하는 사회정책의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전 정책들에 밑바탕을 두고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개과정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 - 선별주의의 강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강제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로 알려진 IMF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에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권고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는 한국 복지의 낙후성을 역설한다는 논리에 따라 복지에 있어서 만큼은 ‘위기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본격화해야 하는 위기관리 정부였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관리주의적 성격은 명확했다. 생산적 복지는 급증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대응이라는 일차적 과제, 즉 죽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정책개혁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동시에 정책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복지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계획안은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자활사업 등을 통해 노동 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통합, 고용보험 확대적용, 국민연금 확대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추진되었고,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사회보험화 실현’이라는 구호는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에서 허상임이 드러났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초법은 대량실업과 빈곤 확산 상황에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을 정해 놓고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라도 수급자가 된다는 한국사회 복지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기초법은 전 국민 대비 수급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3% 수준으로 포괄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이는 기초법 제도가 안고 있는 엄격한 수급 조항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 탓이다. 최저생계비를 바닥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서(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점 낮아져 2007년 기준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31.1%까지 떨어졌다.) 포괄범위를 줄이고 그렇게 해서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은 엄격한 부양의무자기준과 재산소득기준으로 거른 후 일을 해서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을 제하고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보충급여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더욱 더 빈곤해질 것, 더욱 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나아갈 것을 강요하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동시에 빈곤층의 일자리 ‘운동’을 자임한 자활사업을 기초법 내로 제도화하면서 조건부수급조항으로 두었는데, 이는 빈곤과 실업을 최소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책으로 기능해왔다. 김대중 정부 말기, 다소 완화된 실업률과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빈곤율이라는 모순적 상황은 당시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효과와 사회정책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에 따른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 계층의 빈곤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의 명분으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구호로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와 ‘사회투자국가론’의 기만성
이 시점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의 문제에 중심을 두었다. 지속 가능한 위기관리를 위한 성장동력의 창출, 김대중 정부 당시에 더욱 심화한 사회적 배제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치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배제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을 재구축하기 위해 NGO와 같은 민간조직들을 동원하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벨트 또는 매개자로 재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참여복지라는 타이틀로 제시되는 ‘참여복지 공동체’, (생산적 복지에 비해 상대적 의미에서의) ‘보편적 복지’의 제공은 노무현 정부에게 별 대안이 없는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고령화 해소’에 역점을 둔 사회정책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추진된 일련의 복지개혁, 빈곤관리 정책들이 대부분 사회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수렴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국가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의 해결을 위한 책임을 가지는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대다수 NGO들이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확대된 형태의 사회통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 하에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투자국가론’를 주창하고 이를 위한 실현과제를 제시하였다.
사회투자국가는 영국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핵심 정책을 생산한 앤서니 기든스가 1998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이는 복지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곤 감축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과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둔 사회정책 개혁 담론이다. 1970~80년대 이르러 누적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배세력은 금융 주도의 경제 재편과 고용신축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였고, 이로 인한 만성적 빈곤이 확산되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를 ‘새로운 위험’으로 규정하고, 1> 여성노동력의 증대와 고용불안정의 증가 2> 여성단독가구의 증가로 인한 빈곤위험 증가, 아동 빈곤 증가 3> 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 4> 공적연금,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을 그 특징적 양상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대응 방향으로 강조된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의 지속과 재정적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담론 개발과 개인적 차원에서 복지수혜자들의 복지의존성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경제가 사회적 번영의 필수적 여건이라고 전제한다. 즉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어야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이러한 투자가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여긴 것이다. 즉, 결과의 평등(소득의 재분배)이 아닌 기회의 평등(사회통합)을 강조하고, 권리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연계시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 담론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 사회투자국가론에 따라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해 이를 예방적 사회정책이라 칭했고, 여성 장애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를 통한 복지의존성 약화를 강조하는 노동연계복지 정책을 본격화했다.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기반을 둔 정책은 여성 및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출산율 제고를 통한 미래의 노동력 확충,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강화를 통한 노동의 질 제고, 사회적 보험 기능 강화를 통한 위험 담지적 혁신활동 제고, 경쟁촉진적/성장친화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역량 제고, 사회통합 및 사회자본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을 지지, 사회투자 중 사회서비스업 활성화 등을 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1)
사회투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투자국가 ‘복지국가’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 이는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핵심 의제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논리다. 오히려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에서 강조되는 ‘새로운 위험’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유연화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불안정성과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 단지 교육훈련을 통해 제조업에 종사하는 반숙련 노동자, 여성, 장애인에게 IT 기술 등을 교육 훈련시키는 것을 통해서는 현재의 사회적인 배제와 불평등은 해소될 수 없으며 성과는 일시적이다. 사회투자전략은 노동시장정책을 통해서 실현되는 근로연계복지가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자활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을 자연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이에 대한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비전2030: 선진복지한국을 위한 비전과 전략’). 이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은 여성 노동력 활용을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성취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정확히 부합했다. 여성 저임금노동자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확대, 노동시장의 성별분리, 시간제 노동확대, 민영화 증대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전 2030뿐만 아니라 새로마지플랜, 새싹플랜, 가족정책기본 계획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가족여성정책의 경우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성별분업구조의 타파와 같은 조치는 크게 미흡한 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빈곤화 경향을 부추기는 시장화 전략이 주를 이룬다. 그 대표 사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이다.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과 가족, 개인책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IMF 이후 양적으로 성장하긴 하였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체제의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 투자 담론의 제기는 결국 ‘시장’을 강화시켜주는, 기존 잔여적 선별적 복지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유연안정성’이란 개념의 도입은 매우 위험한데 이는 불안정노동을 양산할 뿐 아니라, 노동빈곤층이 확산되어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률을 낮추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늘려 선별적 복지정책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보완한다고 강조하지만,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정책에 종속된 방향 하에서 사회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동력 확충, 능동적 세계화,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 위기’ 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 ‘복지의 예방적 접근’이라는 말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아래서 개별 국가의 복지제도가 처한 딜레마를 잘 표현하는 것이다. 즉, 복지제도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전제인 안정적인 노동시장에서의 (완전)고용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며, 현재와 같은 만성적 고실업, 불안정 노동의 확대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투자국가는 정책적 내용의 측면보다도 사회양극화 해소-사회통합 담론으로 대표되는 무수한 담론적 역할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연한 실업, 빈곤 등의 사회위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임금, 고용, 소득의 문제를 상대화하고 근로연계복지식 처방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에 순응하도록 하는 한편, 사후보완 조치들에 대한 국가의 의존을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도록 강제하고 반동적인 사회 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 능동적 복지 비판
이명박 정부는 능동적 복지2)
를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핵심 추진방향으로 1)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 복지 2) 개인별 특성에 맞는 예방 통합 맞춤형 복지 3) 일자리와 균등한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일하는 복지 4) 효율적 전달체계를 통한 국민 체감형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일자리 기회 배려를 위한 능동적 복지 실천계획’. 2008. 보건복지가족부). 이는 기존 생산적 복지 담론과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수요자의 욕구를 경쟁적 시장 내에서의 선택권으로 해석하는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은 복지 분야의 시장형성을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개선, 정비와 시장 규모 형성을 위한 초기 투자로 한정된다. 이는 개인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복지의 기본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복지의 다양한 시장을 보장하고 노동연계복지정책을 확대하여 최소한의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다양한 복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러한 사회정책의 결합은 민중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에 대한 정책은 노동시장의 낮은 임금을 전제로 이루어지는데,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시장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한 당근과 채찍이 사용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급여제한이라는 채찍을 사용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EITC(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당근을 부여한다. 또한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우기 위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저임금 불안정노동)를 독려하기 위한 가사노동과 돌봄에 관한 일정한 국가정책의 확대를 시행하게 된다. 또한 지금은 빈곤하더라도 자식세대를 빈곤하지 않게 하겠다며 아동에 대한 교육투자를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한국 사회복지는 그 기본틀은 유지하되, ‘시장화’, ‘민영화’ 전략과 동시에 ‘노동빈곤층’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 개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내걸고 사회보험 뒤흔들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기본틀까지 와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의 기본틀을 파괴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인 폐해를 정권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필연적인 요소로 전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전망을 공유하고 있는 자유주의-보수우익 정치세력 양자 모두 정도의 차이뿐 민중의 삶의 권리를 보편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보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만성화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 대책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시적인 선전용 정책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 제도와 체제 내에서 기존의 제도를 고수, 강화하라는 요구는 ‘국가’를 탈계급적인 공적 공간으로 오해하는 경우이거나 ‘시장’의 창궐에 대한 도덕적, 사회윤리적 비판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주체’가 어떠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복지 시장화 전략에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 전반에서 민중들이 어떠한 고통에 처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특히 무권리의 상태에 내몰린 저임금 비정규노동자의 상태, 저임금 불안정노동과 가족 돌봄의 책임을 이중적으로 떠맡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빈곤운동의 출발점과 모색
반빈곤운동의 필요성: 주체화와 연대 확장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사회운동은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생성되는 각종 사회정책담론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배세력이 수행하는 빈곤관리정책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각각의 사회정책에 대한 대응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연대의 부재라는 조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실로 반빈곤운동이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을 ‘극복’하고 대안적 가치와 연대를 발견하기 위한 운동의 모색이 필요하다.
2004년 발족한 빈곤사회연대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운동의 공간을 자임하였다.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최옥란열사와 노동사회단체들이 전개한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 이후 “기본생활권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기초법연석회의)라는 연대체가 결성되었다. 기초법연석회의 활동을 기반으로 부문과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빈곤문제의 전반적인 사안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고자 빈곤사회연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에서 2008년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개명)가 발족하였다.3)
빈곤사회연대는 현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사회운동 단체와 전국빈민연합, 노숙인당사자모임, 자립생활센터, 주거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빈민, 지역, 부문 조직 등 39개 단체가 결합되어 있는 연대체로서, 대중적 사업의 기획과 확대와 연대체로서 역할을 확대해오면서 활동가 형성과 대중 조직화를 표방하고 있다. 2007년을 거치면서 반빈곤운동의 기본방향과 관점, 의제를 정리하는 토론과 활동을 통해 빈곤사회연대는 반빈곤운동의 기본 방향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핵심슬로건으로 1>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소득의 확보 2> 성별, 인종, 연령, 장애유무에 따른 위계와 분할을 넘어선 확장된 노동권의 실현 3> 재생산 노동의 사회와, 공공서비스 확보가 포함된 사회서비스 확보라는 과제가 결합된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10대 과제를 중심으로 반빈곤운동의 과제를 제출하였다.4)
현재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빈곤운동은 그 의제와 연대 폭을 넓혀가고 있으나,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빈곤, 복지 정책과 정세적 사안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한 안정적인 정책생산과 활동가들의 토론과 교육에 있어서 발생하는 취약함. 둘째,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고 실리주의에 기반을 둔 실천과 조직화 형태에 머물고 있는 도시빈민대중운동을 재조직화해야 하는 과제. 셋째, 사회운동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의 모호함과 과소대표성. 따라서 반빈곤운동은 연대운동의 틀을 취하며 그 영역과 의제를 넓혀나가는 동시에 핵심 운동조직들이 반빈곤운동의 의제를 흡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도시빈민대중조직의 운동에 개입하여 반빈곤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형성해내는 과정과 반빈곤운동을 실제로 추동할 대중주체, 활동가들의 직접 조직화가 빈곤사회연대 스스로의 과제다.
지금의 현실과 향후 과제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확대는 금융 소득자에게 거대한 부가 집중한 결과이다. 자본의 금융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 고용의 감소, 비용절감을 위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가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원인이다. 또한 다층적으로 구성된 복지정책들은 빈곤인구에 대한 사후적, 소극적 관리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과 실업에 맞선 사회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특정 ‘현상’이나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확산되고 일상화되는 빈곤에 대항하는 반빈곤운동의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연대가 요구된다. 이는 기존의 정규직 중심(이 자체에 가치판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동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의 기업적 실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혁신과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정, 그리고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관리통제전략 하에 저임금비정규 인력으로 활용되거나 여전히 재생산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여성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노동과 제반 삶의 권리를 능력주의와 논리에 송두리째 박탈당해온 장애인 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등 새로운 사회운동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빈곤을 새롭게 정의하고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에서 찾기 위한 출발점은 우선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는 빈곤을 통계수치 뒤로 감추고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는 지배세력의 빈곤에 대한 규정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빈곤선이자 복지수혜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의 최저생계비이다. 그러나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실제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금액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통해 빈곤선을 끌어올려 빈곤에 대한 인식과 출발점을 전환시켜내야 한다. 또한 그를 통해 부의 편중과 소득 불평등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기본적 요구다.
기본생활권을 사회적 필요에 근거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나이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인간 개개인이 누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에 맞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다.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등 부문영역별로 분리 형성된 운동들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 없다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토론이 어렵다. 물론 각각의 운동 내에서 발생하는 내적 차이에 따른 분할선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폭넓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저항주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과의 결합과 지역운동의 형성이 지금 반빈곤운동에 던져진 과제이다.
올해 빈곤사회연대 등이 추진했던 ‘적정생계비-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을 통해 드러났듯이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 줄 수 없다. 그리고 고착화된 침전층으로 존재하는 빈곤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만연해지는 빈곤문제에 도전하는 출발점은 정부의 빈곤관리정책으로 고통 받는 주체들의 목소리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재생산의 권리)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성찰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 진전을 위한 하나의 유력한 계기일 것이다.
1) 한국에서의 사회투자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동 청소년 정책으로 아동발달계좌, 저소득가정 아동지원, 이주민 2세 포용정책, 방과후 교육활성화 △근로세대정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내실화, 평생학습체제 구축, 이주노동자정책, 학자금 융자제도 활성화, 양성평등에 입각한 모성보호, 예방적 건강서비스 △노인정책으로 장기요양제도 구축, 기초노령연금도입, 고령자직업훈련 및 고용촉진, 공적연금개혁 등이다.본문으로
2)
‘능동적(active) 복지’라는 표현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경제사회발전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존의 복지국가 사회정책이 노동의욕을 저해하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규범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능동적 복지는 공공부조, 실업급여, 상병수당, 조기 퇴직 수당 등의 소득보장정책이 노동의 동기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수동적(passive) 정책이라고 하고 이런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 속에서 제기되었다.
본문으로
3)
출범 당시 빈곤사회연대(준)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첫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둘째, 기초생활보장 취지에 맞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라. 셋째, 주택의 투기화를 막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 주거를 보장하라. 넷째, 영유아 보육의 공공화, 의료급여 본인부담상한제, 노인 무료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라. 다섯째, 세제, 재정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대폭 확대하라.본문으로
4)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 10대 요구>는 다음과 같다. • 기만적인 기초법 개정 반대! 기본생활권 보장하라! • 최저생계비 현실화하고 상대적 빈곤선 즉각 도입하라! • 빈곤층 부담 가중 의료급여 개악 철회하라! •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하라! • 물 산업화, 사유화를 중단하라! 빈곤층에게 물, 전력 등 필수서비스 무상 제공을! • 최저임금 현실화하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 비정규악법 철회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에 대한 폭력적 관리통제정책 철회하라! • 가진 자만을 위한 개발정책 중단하고 주거권 보장을 위한 사회주택정책 실시하라! • 살인적인 고금리 철폐하고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 본문으로
최근 이명박 정부가 지배세력의 이익 방어 전략을 극대화한다는 면에서 1% 부자정부, 친재벌 정부라고 칭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좋았던 시절’을 떠나보낸 이들이 과거 10년간의 정권을 떠올리며 사용하는 표현이라면 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10년의 세월 동안 정부 정책으로 인해 고통에 처한 수많은 이들의 현실과 이에 맞선 반빈곤운동이 그 증거다. 이명박 정부가 실행하는 사회정책의 대부분은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전 정책들에 밑바탕을 두고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개과정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 - 선별주의의 강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강제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로 알려진 IMF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에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권고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는 한국 복지의 낙후성을 역설한다는 논리에 따라 복지에 있어서 만큼은 ‘위기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본격화해야 하는 위기관리 정부였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관리주의적 성격은 명확했다. 생산적 복지는 급증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대응이라는 일차적 과제, 즉 죽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정책개혁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동시에 정책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복지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계획안은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자활사업 등을 통해 노동 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통합, 고용보험 확대적용, 국민연금 확대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추진되었고,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의 사회보험화 실현’이라는 구호는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에서 허상임이 드러났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초법은 대량실업과 빈곤 확산 상황에서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을 정해 놓고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라도 수급자가 된다는 한국사회 복지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기초법은 전 국민 대비 수급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3% 수준으로 포괄적인 공공부조 정책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이는 기초법 제도가 안고 있는 엄격한 수급 조항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 탓이다. 최저생계비를 바닥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서(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점점 낮아져 2007년 기준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31.1%까지 떨어졌다.) 포괄범위를 줄이고 그렇게 해서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은 엄격한 부양의무자기준과 재산소득기준으로 거른 후 일을 해서 근로소득이 발생하면 그만큼을 제하고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보충급여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더욱 더 빈곤해질 것, 더욱 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나아갈 것을 강요하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동시에 빈곤층의 일자리 ‘운동’을 자임한 자활사업을 기초법 내로 제도화하면서 조건부수급조항으로 두었는데, 이는 빈곤과 실업을 최소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복지와 노동을 연계해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책으로 기능해왔다. 김대중 정부 말기, 다소 완화된 실업률과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빈곤율이라는 모순적 상황은 당시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효과와 사회정책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에 따른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 계층의 빈곤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의 명분으로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구호로 내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와 ‘사회투자국가론’의 기만성
이 시점에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의 문제에 중심을 두었다. 지속 가능한 위기관리를 위한 성장동력의 창출, 김대중 정부 당시에 더욱 심화한 사회적 배제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치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배제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을 재구축하기 위해 NGO와 같은 민간조직들을 동원하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벨트 또는 매개자로 재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참여복지라는 타이틀로 제시되는 ‘참여복지 공동체’, (생산적 복지에 비해 상대적 의미에서의) ‘보편적 복지’의 제공은 노무현 정부에게 별 대안이 없는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출산 고령화 해소’에 역점을 둔 사회정책을 펼쳤다.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추진된 일련의 복지개혁, 빈곤관리 정책들이 대부분 사회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수렴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국가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의 해결을 위한 책임을 가지는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대다수 NGO들이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확대된 형태의 사회통합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 하에 노무현 정부는 집권 말기, ‘사회투자국가론’를 주창하고 이를 위한 실현과제를 제시하였다.
사회투자국가는 영국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핵심 정책을 생산한 앤서니 기든스가 1998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소개한 개념이다. 이는 복지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곤 감축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우익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과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둔 사회정책 개혁 담론이다. 1970~80년대 이르러 누적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배세력은 금융 주도의 경제 재편과 고용신축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였고, 이로 인한 만성적 빈곤이 확산되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이를 ‘새로운 위험’으로 규정하고, 1> 여성노동력의 증대와 고용불안정의 증가 2> 여성단독가구의 증가로 인한 빈곤위험 증가, 아동 빈곤 증가 3> 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 4> 공적연금,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을 그 특징적 양상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대응 방향으로 강조된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의 지속과 재정적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담론 개발과 개인적 차원에서 복지수혜자들의 복지의존성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경제가 사회적 번영의 필수적 여건이라고 전제한다. 즉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어야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이러한 투자가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여긴 것이다. 즉, 결과의 평등(소득의 재분배)이 아닌 기회의 평등(사회통합)을 강조하고, 권리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연계시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 담론의 기반이다. 영국의 경우 사회투자국가론에 따라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해 이를 예방적 사회정책이라 칭했고, 여성 장애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를 통한 복지의존성 약화를 강조하는 노동연계복지 정책을 본격화했다.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기반을 둔 정책은 여성 및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 출산율 제고를 통한 미래의 노동력 확충,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강화를 통한 노동의 질 제고, 사회적 보험 기능 강화를 통한 위험 담지적 혁신활동 제고, 경쟁촉진적/성장친화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역량 제고, 사회통합 및 사회자본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을 지지, 사회투자 중 사회서비스업 활성화 등을 그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1)
사회투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회투자국가 ‘복지국가’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 이는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핵심 의제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논리다. 오히려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에서 강조되는 ‘새로운 위험’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유연화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불안정성과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 단지 교육훈련을 통해 제조업에 종사하는 반숙련 노동자, 여성, 장애인에게 IT 기술 등을 교육 훈련시키는 것을 통해서는 현재의 사회적인 배제와 불평등은 해소될 수 없으며 성과는 일시적이다. 사회투자전략은 노동시장정책을 통해서 실현되는 근로연계복지가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자활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을 자연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이에 대한 강화를 천명하고 있다.(‘비전2030: 선진복지한국을 위한 비전과 전략’). 이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은 여성 노동력 활용을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성취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정확히 부합했다. 여성 저임금노동자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확대, 노동시장의 성별분리, 시간제 노동확대, 민영화 증대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전 2030뿐만 아니라 새로마지플랜, 새싹플랜, 가족정책기본 계획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가족여성정책의 경우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성별분업구조의 타파와 같은 조치는 크게 미흡한 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빈곤화 경향을 부추기는 시장화 전략이 주를 이룬다. 그 대표 사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이다.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과 가족, 개인책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IMF 이후 양적으로 성장하긴 하였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체제의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 투자 담론의 제기는 결국 ‘시장’을 강화시켜주는, 기존 잔여적 선별적 복지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유연안정성’이란 개념의 도입은 매우 위험한데 이는 불안정노동을 양산할 뿐 아니라, 노동빈곤층이 확산되어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률을 낮추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늘려 선별적 복지정책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보완한다고 강조하지만,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정책에 종속된 방향 하에서 사회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동력 확충, 능동적 세계화,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 위기’ 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 ‘복지의 예방적 접근’이라는 말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아래서 개별 국가의 복지제도가 처한 딜레마를 잘 표현하는 것이다. 즉, 복지제도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전제인 안정적인 노동시장에서의 (완전)고용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며, 현재와 같은 만성적 고실업, 불안정 노동의 확대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투자국가는 정책적 내용의 측면보다도 사회양극화 해소-사회통합 담론으로 대표되는 무수한 담론적 역할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연한 실업, 빈곤 등의 사회위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임금, 고용, 소득의 문제를 상대화하고 근로연계복지식 처방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에 순응하도록 하는 한편, 사후보완 조치들에 대한 국가의 의존을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도록 강제하고 반동적인 사회 이데올로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 능동적 복지 비판
이명박 정부는 능동적 복지2)
를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과 함께하는 복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핵심 추진방향으로 1)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 복지 2) 개인별 특성에 맞는 예방 통합 맞춤형 복지 3) 일자리와 균등한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일하는 복지 4) 효율적 전달체계를 통한 국민 체감형 복지를 제시한 바 있다(‘일자리 기회 배려를 위한 능동적 복지 실천계획’. 2008. 보건복지가족부). 이는 기존 생산적 복지 담론과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수요자의 욕구를 경쟁적 시장 내에서의 선택권으로 해석하는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은 복지 분야의 시장형성을 위한 규제완화 등 제도 개선, 정비와 시장 규모 형성을 위한 초기 투자로 한정된다. 이는 개인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복지의 기본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는데,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복지의 다양한 시장을 보장하고 노동연계복지정책을 확대하여 최소한의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다양한 복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러한 사회정책의 결합은 민중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공급에 대한 정책은 노동시장의 낮은 임금을 전제로 이루어지는데, 낮은 임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시장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한 당근과 채찍이 사용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급여제한이라는 채찍을 사용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EITC(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당근을 부여한다. 또한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우기 위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저임금 불안정노동)를 독려하기 위한 가사노동과 돌봄에 관한 일정한 국가정책의 확대를 시행하게 된다. 또한 지금은 빈곤하더라도 자식세대를 빈곤하지 않게 하겠다며 아동에 대한 교육투자를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한국 사회복지는 그 기본틀은 유지하되, ‘시장화’, ‘민영화’ 전략과 동시에 ‘노동빈곤층’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연금 개편,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내걸고 사회보험 뒤흔들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기본틀까지 와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의 기본틀을 파괴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인 폐해를 정권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필연적인 요소로 전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전망을 공유하고 있는 자유주의-보수우익 정치세력 양자 모두 정도의 차이뿐 민중의 삶의 권리를 보편주의와 평등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보장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만성화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 대책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시적인 선전용 정책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 제도와 체제 내에서 기존의 제도를 고수, 강화하라는 요구는 ‘국가’를 탈계급적인 공적 공간으로 오해하는 경우이거나 ‘시장’의 창궐에 대한 도덕적, 사회윤리적 비판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주체’가 어떠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회복지 시장화 전략에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 전반에서 민중들이 어떠한 고통에 처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특히 무권리의 상태에 내몰린 저임금 비정규노동자의 상태, 저임금 불안정노동과 가족 돌봄의 책임을 이중적으로 떠맡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빈곤운동의 출발점과 모색
반빈곤운동의 필요성: 주체화와 연대 확장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사회운동은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생성되는 각종 사회정책담론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배세력이 수행하는 빈곤관리정책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각각의 사회정책에 대한 대응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연대의 부재라는 조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실로 반빈곤운동이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을 ‘극복’하고 대안적 가치와 연대를 발견하기 위한 운동의 모색이 필요하다.
2004년 발족한 빈곤사회연대는 그러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운동의 공간을 자임하였다.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최옥란열사와 노동사회단체들이 전개한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 이후 “기본생활권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기초법연석회의)라는 연대체가 결성되었다. 기초법연석회의 활동을 기반으로 부문과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빈곤문제의 전반적인 사안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고자 빈곤사회연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에서 2008년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개명)가 발족하였다.3)
빈곤사회연대는 현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사회운동 단체와 전국빈민연합, 노숙인당사자모임, 자립생활센터, 주거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빈민, 지역, 부문 조직 등 39개 단체가 결합되어 있는 연대체로서, 대중적 사업의 기획과 확대와 연대체로서 역할을 확대해오면서 활동가 형성과 대중 조직화를 표방하고 있다. 2007년을 거치면서 반빈곤운동의 기본방향과 관점, 의제를 정리하는 토론과 활동을 통해 빈곤사회연대는 반빈곤운동의 기본 방향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핵심슬로건으로 1>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소득의 확보 2> 성별, 인종, 연령, 장애유무에 따른 위계와 분할을 넘어선 확장된 노동권의 실현 3> 재생산 노동의 사회와, 공공서비스 확보가 포함된 사회서비스 확보라는 과제가 결합된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10대 과제를 중심으로 반빈곤운동의 과제를 제출하였다.4)
현재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반빈곤운동은 그 의제와 연대 폭을 넓혀가고 있으나,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빈곤, 복지 정책과 정세적 사안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한 안정적인 정책생산과 활동가들의 토론과 교육에 있어서 발생하는 취약함. 둘째, 폐쇄적인 성격이 강하고 실리주의에 기반을 둔 실천과 조직화 형태에 머물고 있는 도시빈민대중운동을 재조직화해야 하는 과제. 셋째, 사회운동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의 모호함과 과소대표성. 따라서 반빈곤운동은 연대운동의 틀을 취하며 그 영역과 의제를 넓혀나가는 동시에 핵심 운동조직들이 반빈곤운동의 의제를 흡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도시빈민대중조직의 운동에 개입하여 반빈곤운동의 정치적 방향을 형성해내는 과정과 반빈곤운동을 실제로 추동할 대중주체, 활동가들의 직접 조직화가 빈곤사회연대 스스로의 과제다.
지금의 현실과 향후 과제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확대는 금융 소득자에게 거대한 부가 집중한 결과이다. 자본의 금융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 고용의 감소, 비용절감을 위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가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원인이다. 또한 다층적으로 구성된 복지정책들은 빈곤인구에 대한 사후적, 소극적 관리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과 실업에 맞선 사회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특정 ‘현상’이나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확산되고 일상화되는 빈곤에 대항하는 반빈곤운동의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연대가 요구된다. 이는 기존의 정규직 중심(이 자체에 가치판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동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의 기업적 실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혁신과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정, 그리고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관리통제전략 하에 저임금비정규 인력으로 활용되거나 여전히 재생산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여성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노동과 제반 삶의 권리를 능력주의와 논리에 송두리째 박탈당해온 장애인 저항주체 형성의 과정 등 새로운 사회운동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말한다.
빈곤을 새롭게 정의하고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에서 찾기 위한 출발점은 우선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는 빈곤을 통계수치 뒤로 감추고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은폐하는 지배세력의 빈곤에 대한 규정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빈곤선이자 복지수혜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의 최저생계비이다. 그러나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실제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금액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통해 빈곤선을 끌어올려 빈곤에 대한 인식과 출발점을 전환시켜내야 한다. 또한 그를 통해 부의 편중과 소득 불평등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하기 위한 기본적 요구다.
기본생활권을 사회적 필요에 근거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적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나이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인간 개개인이 누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에 맞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다.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등 부문영역별로 분리 형성된 운동들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 없다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토론이 어렵다. 물론 각각의 운동 내에서 발생하는 내적 차이에 따른 분할선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폭넓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저항주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과의 결합과 지역운동의 형성이 지금 반빈곤운동에 던져진 과제이다.
올해 빈곤사회연대 등이 추진했던 ‘적정생계비-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을 통해 드러났듯이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대변해 줄 수 없다. 그리고 고착화된 침전층으로 존재하는 빈곤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만연해지는 빈곤문제에 도전하는 출발점은 정부의 빈곤관리정책으로 고통 받는 주체들의 목소리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재생산의 권리)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성찰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 진전을 위한 하나의 유력한 계기일 것이다.
1) 한국에서의 사회투자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동 청소년 정책으로 아동발달계좌, 저소득가정 아동지원, 이주민 2세 포용정책, 방과후 교육활성화 △근로세대정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내실화, 평생학습체제 구축, 이주노동자정책, 학자금 융자제도 활성화, 양성평등에 입각한 모성보호, 예방적 건강서비스 △노인정책으로 장기요양제도 구축, 기초노령연금도입, 고령자직업훈련 및 고용촉진, 공적연금개혁 등이다.본문으로
2)
‘능동적(active) 복지’라는 표현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경제사회발전위원회에서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존의 복지국가 사회정책이 노동의욕을 저해하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규범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능동적 복지는 공공부조, 실업급여, 상병수당, 조기 퇴직 수당 등의 소득보장정책이 노동의 동기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수동적(passive) 정책이라고 하고 이런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 속에서 제기되었다.
본문으로
3)
출범 당시 빈곤사회연대(준)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첫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둘째, 기초생활보장 취지에 맞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라. 셋째, 주택의 투기화를 막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 주거를 보장하라. 넷째, 영유아 보육의 공공화, 의료급여 본인부담상한제, 노인 무료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라. 다섯째, 세제, 재정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대폭 확대하라.본문으로
4)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 10대 요구>는 다음과 같다. • 기만적인 기초법 개정 반대! 기본생활권 보장하라! • 최저생계비 현실화하고 상대적 빈곤선 즉각 도입하라! • 빈곤층 부담 가중 의료급여 개악 철회하라! •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하라! • 물 산업화, 사유화를 중단하라! 빈곤층에게 물, 전력 등 필수서비스 무상 제공을! • 최저임금 현실화하고 생활임금 보장하라! • 비정규악법 철회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에 대한 폭력적 관리통제정책 철회하라! • 가진 자만을 위한 개발정책 중단하고 주거권 보장을 위한 사회주택정책 실시하라! • 살인적인 고금리 철폐하고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 본문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국제적인 운동의 부상
1997년 IMF 경제위기와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집행자였다. 이전 정권이 체결한 IMF 합의 의향서에 담긴 금융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리해고제 도입, 4대 부문 구조조정과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 도입, 두 단계에 걸친 외환거래 자유화 등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본격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외자 유치만이 한국경제가 살 길”이라며 한국에 투자된 외자의 수익성 극대화와 안전성 보장을 위한 양자간 투자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98년 하반기부터 한미/한일 투자자유화협정(BIT) 협상을 개시했고, 뒤이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했다. 1998년 당시 이러한 BIT나 FTA의 실체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미 BIT와 연계된 스크린쿼터 폐지 문제로 스크린 속 영화배우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출범 직후 <투자자유화협정 및 초국적자본 대응을 위한 대책반>(이하 대책반)을 구성하여 이러한 협정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사회적 영향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대책반은 스크린쿼터처럼 여론을 통해 알려진 문제뿐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이러한 협정에 담겨 있음을 파악했다. 즉 한미 투자자유화협정이 외국기업의 고용승계의무, 현지인 일정비율 고용 의무,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각종 이행의무부과금지, 직간접적 수용시의 국가 보상 의무, 구속적인 분쟁해결절차 등을 무력화하며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해체한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한일 투자자유화협정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외국기업에 대한 교육세 등 목적세 부과 폐지 등과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여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추동하는 핵심적인 기제들에 대한 민중운동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대책반의 이러한 활동은 <투자협정 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이하 민중행동) 결성으로 이어진다. 1999년 6월 사회진보연대는 민주노총, 전농 등 여러 단체들과 함께 OECD 내에서 추진되고 있던 다자간투자협정(MAI) 체결과 WTO 내에서 추진되던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인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행동과 발맞추어 “6·18 국제민중행동, IMF·한미/한일투자협정·밀레니엄라운드 반대 행동의 날”을 개최했다. 이 공동행동의 성과로 결성된 민중행동은 1999년 11월 시애틀 3차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에 대표단을 파견했다.1)
시애틀에서 벌어진 국제적인 투쟁은 빈곤과 불평등을 확산하는 WTO 국제무역체계의 모순을 폭로해냈고, 밀레니엄라운드의 출범을 실질적으로 저지해냄으로써 세기의 끝자락을 뒤흔든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와 동시에 세계 민중들의 직접적인 연대로 국제기구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 세계 사회운동에 심어주었다. 여기에 힘입어 민중행동은 2000년 1월 <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으로 확대 재편되었다. 2)
WTO 3차 각료회의는 결렬되었지만 여러 의제들에 관한 협상은 계속되면서 초민족자본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자간, 양자간 투자자유화협정 및 자유무역협정을 사회운동의 의제로 만들어내고 이에 대한 민중적인 대안을 형성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과 학생, 환경, 여성, 보건의료 등 부문조직을 포함하여 40여개 단체가 국민행동 출범에 함께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무국을 구성하는 것에서부터 국민행동이 출범하고 활동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국민행동은 2000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대응하는 투쟁을 <신자유주의반대, 민중생존권쟁취 민중대회위원회>와 함께 조직했다. 당시 시민단체들이 먼저 ASEM 내의 민간 협의틀인 ‘ASEM 2000 민간포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국민행동과 민중대회위원회는 민간포럼을 통한 의견개진이 아니라 ASEM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역통합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두 연대기구는 ASEM 2000 민간포럼과 대규모 집회를 공동개최하되, 별도의 교육, 선전사업 및 실천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초민족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서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자
김영삼 정부는 재벌중심 세계화의 일환으로 경제협력기구(OECD),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여 이들 기구가 요구하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한국사회를 재편하려고 시도했다. WTO를 탄생시킨 우루과이라운드는 공산품뿐만 아니라 농산물과 서비스도 자유 무역의 대상으로 삼아 각종 무역 장벽 제거를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새로운 의제를 추가해서 초민족 기업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을 공격한다. 1999년 3차 각료회의에서 출범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밀레니엄라운드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무역협상 의제로 포함된 농산물 및 서비스 무역 자유화를 위한 세부적인 원칙을 확정하고 투자자유화를 비롯한 새로운 의제의 협상을 시작하려는 시도였다. 시애틀에서 실패한 후 2년 뒤인 2001년 4차 각료회의를 통해 ‘도하개발의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협상이 개시되었으나, 시애틀을 계기로 한 대안세계화운동의 성장과 WTO의 내부 모순 확대로 인해 아직까지도 교착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같은 지역무역협정, 한미 FTA와 같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무역자유화의 범위와 내용을 확대하려는 시도로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농산물을 무역자유화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결과로 WTO가 출범하자 국내에서는 농산물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폭발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추진되던 WTO 내에서의 새로운 협상이나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양자간 투자자유화협정 및 자유무역협정을 단순히 ‘수입개방 반대’라는 논리로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민행동은 각종 다자간, 양자간 협정으로 인해 국내 시장이 잠식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민족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서 전 세계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국민행동은 WTO 도하개발의제의 농업협정(AoA)이 관세감축과 각종 보조금 폐지를 통해 전 세계 농업 생산 및 무역에 대한 초민족 농기업의 지배력을 확대하며 민중의 식량주권을 파괴한다는 점, 서비스협정(GATS)이 교육, 의료, 물, 에너지에 대한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파괴하며 초민족 금융자본의 활동범위를 넓힌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제약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며 민중의 의약품접근권을 파괴하는 한편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지식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노동기본권을 직접 공격하는 내용(노동쟁의 억제, 무노동무임금 관철, 퇴직금 유연화, 불법노동쟁의 신속조치 등)을 ‘비관세장벽 제거’라는 명목으로 담고 있는 한일 FTA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양자간 협정은 WTO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국민행동은 여러 가지 무역협정에 맞서는 투쟁이 국익보호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으로서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연대투쟁을 중요한 전술로 사고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개된 투쟁이 국민행동이 제기한 위와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만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양자간 FT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각 협정의 체결로 인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피해를 축소하기 위한 대응이 형성되었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 한칠레 FTA는 농산물 수입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 한일 FTA는 자동차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같은 형태로 각각의 협정 체결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전체 사회운동의 공동투쟁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피해 당사자들의 방어투쟁에 그쳤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투쟁은 부문을 넘나드는 사회운동의 연대를 촉발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시장을 지키고 개방의 속도와 일정을 조절하기 위해 피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우선 시행하고 FTA를 신중하게 체결하자고 주장했던 자본의 요구에 묻혀버리곤 했다.4)
한국 사회운동과 국제 연대
1998년 다자간투자협정(MAI) 저지투쟁, 19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참여를 발판으로 결성된 국민행동은 전 세계 민중의 보편적 권리 옹호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연대를 중요한 전술로 사고하고 실행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FTA 체결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국민행동은 일본의 ‘이의 있음! 한일투자협정 긴급캠페인’과 함께 서울과 도쿄에서 공동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공동 대응의 태세를 갖췄다. 양국 정부가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공동 성명서를 작성하고 각 국에서 항의행동을 전개했다. 2004년 11월 도쿄에서 6차 협상이 열렸을 당시에는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 국민행동에 소속된 여러 단체들이 ‘한일 FTA 저지 동경 원정투쟁단’을 구성하여 도쿄 현지에서 투쟁을 벌였다. 일본에서는 전노협, 평화포럼, 아탁 저팬 등이 ‘11월 일한 FTA 저지 공동행동 실행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에 함께했다. 양국 민중은 한일 FTA가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선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가 되어 투쟁했다.5)
2003년 WTO 5차 각료회의 당시에도 국민행동은 전국민중연대와 함께 투쟁단을 구성하여 멕시코 칸쿤으로 떠났다. 그 해 1월 3차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각 국의 사회운동들은 칸쿤 5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을 중요한 공동행동으로 정했다. 칸쿤에서 한국 투쟁단은 특유의 창의력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현지의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 세계 농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WTO가 농민을 죽인다”는 그의 외침은 여전히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한국 투쟁단은 칸쿤 시내 한 복판에서 천막농성을 전개하면서 회담장 밖에서의 투쟁을 이끄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애틀에 이어 칸쿤에서도 WTO 각료회의는 결렬되었다.6)
칸쿤과 도쿄에서의 투쟁은 홍콩으로 이어졌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에서는 한국의 농민들을 비롯한 아시아 사회운동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시애틀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시작된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를 계기로 아시아 사회운동들이 활발한 교류와 연대활동을 펼친 결과였다. 아시아 사회운동들은 여러 차례 ‘아시아 사회운동 총회’를 개최하여 각국 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서로 공유했고, 각 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자유무역협정이 민중들에게 어떤 효과를 낳을 것인지 함께 분석했다. 국민행동은 총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장관 회의에 맞서 조직된 아시아 민중/사회운동 회의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의에 대한 대응으로 개최된 ‘APEC 반대 국제민중회의’는 WTO 홍콩 6차 각료회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아시아 사회운동들이 앞장설 것을 결의하는 장이 되었다.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에 모인 이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한국 투쟁단은 회담장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세계 민중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술을 선도적으로 구사했다. 한국 투쟁단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하룻밤에 천 명 이상이 연행되고 그 중 13명이 기소되어 3개월이 넘도록 재판을 받았다. 이는 홍콩 현지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홍콩투쟁 직전 노무현 정권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한 전용철 농민열사에서부터 초민족 농기업의 횡포로 삶의 터전을 잃고 자살을 택하는 인도의 농민들, 제약자본이 내세우는 특허권으로 인해 값싼 약을 먹을 수 없는 민중들에 이르는 세계 민중들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홍콩에 모인 이들을 최루탄과 방패로 막아선 홍콩 정부와 경찰의 행태는 WTO가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임을 충분히 드러냈다.7)
한미 FTA 반대투쟁: 국익인가 노동자 민중의 권리인가
2006년 6월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 협상은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가 ‘개방과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제2의 장기성장 전략’이라며 협정 체결을 강행했다. 노무현 정부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중대한 사안을 두고 민중들은 아무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철저히 배제하면서 초민족자본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좇자 민중들의 불만은 높아져갔다. 2006년 초 국민행동은 그동안 선도적으로 제기해 온 의제들이 다양한 대중조직으로 확산되었다고 판단하여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민주노총, 전농 등의 대중조직들이 한국진보연대를 건설하여 연대사업을 한국진보연대로 집중할 것을 염두에 두고 국민행동 운영에 힘을 쏟지 않았던 상황 탓이기도 하다. 국민행동 해소와 함께 참가단체들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를 건설하는데 참여한다. 범국본에는 300여개의 단체들이 참여했으며, 산하에 15개의 부문별 공대위가 구성되었다. 한미 FTA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특정 부문의 피해에 관한 문제를 초과하여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에 관한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미 FTA 협상 개시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FTA 반대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 관한 범국본 참가단체들의 입장은 통일적이지 않았다. 가장 부각된 쟁점은 한미 FTA가 끼칠 피해의 정도였다. 이런 차원에서 농축수산업과 서비스 분야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정부는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보호조치를 답으로 제시했다. 더불어 한미 FTA 협상이 추진되어 온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FTA 체결 절차에 관한 대통령 훈령에 명시된 공청회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발의한 ‘통상협정 체결 절차에 관한 법’ 제정을 범국본의 주요 요구로 삼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범국본에 참가하여 한미 FTA 반대투쟁이 피해산업 보호나 협정 체결절차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쳐서는 안 되고,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권리를 담보로 한 재벌중심의 세계화에 맞서는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또한 노동자운동, 농민운동이 한미 FTA 반대투쟁을 계기로 국제적인 대안세계화운동과 함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는 전혀 다른 민중의 대안을 형성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FTA 체결이 불러올 경제적 손익을 예측하는 것을 넘는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했는데, 단행본 『한미 FTA, 이미 실패한 미래』(2006. 도서출판 사회운동)를 발간하는 한편 여러 매체를 통해 한미 FTA를 계급적 관점에서 비판하고자 했다. FTA의 목표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고, 이는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국내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생존전략일 따름이며, 오히려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 대가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범국본은 한국과 미국을 번갈아가며 양국 정부가 협상을 진행할 때마다 대규모 집회와 원정투쟁을 벌였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반대’를 내 건 모든 집회를 불허했지만 세 차례나 민중총궐기를 성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는 2007년 4월 협상을 타결했다. 그 후 운동진영 일각에서는 ‘협상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 어느 편의 요구가 더 많이 관철되었나’,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어느 편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것인가’를 따져볼 때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이 예상되므로 한미 FTA의 경제적 실익은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를 분리하여 ‘한미 FTA의 졸속타결’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내 일부와 제휴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더라도 협상을 타결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이익이다’라고 주장하며 한미 FTA 반대 운동을 ‘후퇴세력’으로 몰아세웠다. 2007년 6월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은 이러한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로 주춤하게 된 한미 FTA 반대운동을 다시금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였으나 이를 끝으로 FTA에 대한 전 사회적인 관심과 대응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촛불집회
이렇듯 협상 초기 형성되었던 한미 FTA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여론은 분야별 이해득실, 국익 논란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체결 후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가 2008년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재개하기로 결정한 후, 이른바 ‘촛불 국면’이 개시된다. 한국진보연대와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의 발의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결성되고 1800여개 단체가 참여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한미 FTA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제시했고, 노무현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2006년 9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고기에 한하여 수입을 재개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정부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에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획득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약속을 이어받아 한미 FTA가 양국 의회에서 조속히 비준되도록 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재개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생태와 민중의 건강에 대한 위협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자유화’라는 미명하에 이를 누구도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현재의 국제 무역체계의 본질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재개의 발단이자 이를 매듭짓도록 추동했던 한미 FTA는 촛불의 의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물론 범국본 역시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고 난 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전면에 내세워 한미 FTA 반대 여론을 재형성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재벌중심의 세계화 비판과 대안세계화 운동의 관점에서 발전되어야 할 한미 FTA 반대운동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단일 이슈 운동으로 환원할 우려가 있는 이와 같은 전술을 경계했다. 또한 광우병의 위험을 강조하는 방식 역시 사태에 대한 과학적 인식보다는 선정성에 기대어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광우병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던 중 2008년 5월부터 대중적인 투쟁이 전개되고 쇠고기 수입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대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대책회의가 결성되고 난 후에는 한미 쇠고기 협상이 WTO나 FTA를 통해 추진되는 신자유주의적 투자와 무역 자유화의 일단이며, 이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은 신자유주의 반대/대안세계화 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운동진영 내에서 확산하기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다.8)
자본의 위기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단결과 연대로
2008년 정기국회 개원과 함께 한미 FTA 국회비준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지만 사회운동은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참가단체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그리고 대책회의에 참가했던 네티즌 단체 등은 민생민주 국민회의(준)을 결성하여 폭넓은 ‘반이명박 전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민회의 결성 과정에서 민주당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었는데, 민주당이 직접 참가하지는 않지만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공조하고 여기에 시민사회 세력이 가세하는 식의 행보는 계속 되고 있다. 한미 FTA를 미국발 금융위기의 확산과 연관해서 다시금 이슈화하면서 범국본을 재가동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큰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많은 단체들은 피해산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후 미국 내 비준 진척 상황에 따라 천천히 비준하자고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이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지연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WTO와 각종 FTA를 통해 초민족자본의 이해가 배타적으로 관철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완성하려는 시도에 대해 국민행동을 결성하여 그 실체를 선도적으로 폭로하고 운동의 의제로 만들려던 노력, 그리고 전국민중연대와 함께 민중운동 진영 내에서의 공동투쟁을 형성하려는 노력, 나아가 국제적인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를 꾀하려던 노력의 성과가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또다시 ‘한미 FTA 국회비준 지연’이라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한다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기회는 한 없이 미뤄지고 말 것이다. 올해 초부터 세계 곳곳에서 경험한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그리고 그 영향과 범위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는 지배세력이 한미 FTA를 통해 완성하려던 금융화된 세계경제로의 편입,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파국적 결과를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대한 민중적인 대안을 형성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단결과 연대 강화, 민중운동 공동 투쟁의 복원이라는 과제를 방기하고 말 것인가? 정세는 우리에게 엄중하게 묻고 있다.
1)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결렬 및 국제 연대 시위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 주최 워크샵 발제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창근, 「시애틀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http://antiwto.jinbo.net/jsboard/read.php?table=kopa&no=51) 본문으로
2) <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은 2003년 초 <자유무역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투자자유화 조치만을 담은 투자협정보다는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 철폐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자유무역협정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본문으로
3)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정종권, 「아셈투쟁 평가, 일보전진 그러나 이보후퇴」,『월간 사회진보연대』 2000년 11월호.본문으로
4)
FTA 반대투쟁 평가의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오. 류미경, 「대안세계화운동과 한미 FTA 반대투쟁」,『한미FTA, 이미 실패한 미래』, 도서출판 사회운동.본문으로
5)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류미경, 「한일 FTA 6차 협상 저지 동경 원정투쟁 3일간의 이야기」,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5년 1-2월호.
본문으로
6)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두 글을 참조하시오. 류미경, 「WTO 5차 각료회의 무산, 어떻게 볼 것인가? 」,『월간 사회진보연대』(2003년 11월호);『한국민중칸쿤투쟁단 평가 보고대회 자료집』 (http://antiwto.jinbo.net/jsboard/read.php?table=kopa&no=578)본문으로
7) WTO 6차 각료회의에 대한 한국민중투쟁단의 입장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한국민중홍콩투쟁단 투쟁해설서』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856&page)본문으로
8)
자세한 내용은 다음 소책자를 참조하시오. 사회진보연대,『광우병, 한미FTA, 민중의 식량주권』.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1584&page=8)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