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를 어떻게 볼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끝내 쇠고기 고시를 강행하고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두 달여 간 청와대를 에워싼 명박산성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나는 더 이상 너희들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이명박의 선언이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대표는 누구란 말인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정치의 위기이며, 인민주권의 위기인 것이다. 과연 촛불은 무엇이며, 뒤늦게 촛불로 들어가 함께 달려온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숨 막히는 보수압승의 대선-총선 결과를 놓고 조직된 수많은 좌파세력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얼어붙어 있을 때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올라 타오른 촛불의 의미는 무엇인지.가 바로 우리의 첫 번째 고민이라면,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원초적인 당혹감이 두 번째 고민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촛불의 본질에 대해, 이것을 이해하는 상반된 두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대중의 양면성과 역동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두 방식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지 고민해보았다. 또한 통상 대의제 민주주의, 정당정치, 조직운동의 위기와 무력감이라고 진단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기본진단으로부터 촛불을 확대하고 이어가기 위한 ‘조직과 대안’, 즉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념, 조직, 운동의 재건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촛불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중의 양면성과 역동성에 대하여 대중은 12월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고, 4월 총선에서 뉴타운개발을 선택하더니, 5-6월에는 성난 촛불로 돌변하여 광화문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설명방식은 대중의 양면성 혹은 이중성을 중심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대중의 양면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촛불의 정념적(감정적) 성격과 그 한계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이라면, 뒤의 방식은 대중의 앞선 행동에 뒤처져버린 운동조직들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대중의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는 좌파의 대원칙이다. 더군다나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미 촛불은 정세의 중심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대중의 모든 변덕을 합리화하고 좇을 일은 아닐 것이다. 대중에게 높은 점수를 줄 것이냐 낮을 점수를 줄 것이냐를 다투는 것은 난센스다. 모든 운동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로부터 행해져야 하고, 대중은 언제나 양면적이면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대중이 처한 모순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실천적으로 극복해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촛불의 문제는 그 모순이 무엇인가에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광우병이라는 이슈 자체는 다분히 정념적이고 감정적인 이슈라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식품안전이나 검역주권의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분히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사태 초기에, 촛불의 문제제기를 주로 홍보부족으로 인한 국민이해부족, 혹은 왜곡과장보도로 인한 해프닝으로 호도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불타오른 대중의 분노는 단지 광우병 공포라는 인터넷 괴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대중의 분노는 생명안전이라는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유일 방책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요구라는 측면에서 이성적이고 정당한 요구와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은 더 이상 괴담이나 비과학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 시기 촛불을 치켜든 대중의 첫 번째 모순이다. 또한 광우병사태 초기, 촛불을 치켜든 대중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슈 몹(issue mob)’의 외양을 띠었다. 주로 인터넷상의 제안을 통해,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형태의 시위(캠페인)를 벌이는 불특정 군중을 ‘이슈 몹’이라고 한다. 여기서 몹은 다양한 계층의 불특정 군중을 뜻하는 것으로, 직역하자면 ‘이슈군중’ 쯤 된다. 즉 이슈몹은 주로 TV나 인터넷여론에서 제기되는 이슈를 중심으로 번개 형태의 집회를 한다. 예컨대 “몇 월 몇 날 몇 시에 무슨 집회를 하자”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이념이나 조직적 기반에 근거하지 않을뿐더러, 이념과 조직을 터부시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는 미디어 정치의 주요한 한 단면인데, 미디어정치가 제기하는 이슈는 항상 뉴스미디어가 요구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는 당연히 어떤 연속성이나 일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다루는 이슈는 논리적 역사적 학습을 중시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호불호의 문제로 단순화하고, 감정적인 선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어떤 구조적 문제도 특정 개인의 스캔들로 뒤바꾸어 놓는 특성을 가진다. 4월 29일 PD수첩과 인터넷 광우병 괴담으로 촉발된 초기 광우병 집회는 이러한 이슈몹의 양상을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5월의 촛불집회는 분명 “미친소, 너나 먹어라!”는 식의 광우병 공포와 괴담 이슈를 동반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 출발로부터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보편적 요구와 함께 했다. 더욱이 5월 중순 이후로 대중들은 보다 급진적인 직접행동, 일찍이 보지 못했던 창발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중거리시위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등장한 촛불시위대중은 독도문제나 황우석 사태, 디워 논쟁에서 드러난 전형적인 이슈몹과는 다르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보자. 촛불이 대두되기 불과 한 달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투표율은 50%에 미달했으며 투표를 한 이들의 다수는 이명박과 뉴타운을 선택했다. 이것은 분명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변덕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광우병 촛불은 시종일관 경제적 사회적 생존권에 대한 반민주적 위협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라는 대의를 공공연하게 제기해 오고 있다. 즉 자신의 생활과 경제를 망쳤다고 여겨진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발심이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이어진 일이나,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이명박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하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은 동일한 원인의 결과라는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반발과 이명박 심판의 촛불은 동일하게 신자유주의정책의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선택이고, 이는 이념적으로 모순되고 표면적으로 상반되지만 민주주의와 생존권이라는 일관된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표현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2004년 탄핵반대 촛불과 2008년의 촛불은 구별된다.) 이것이 촛불을 든 대중의 두 번째 모순이다. 특히 이러한 대중의 태도의 이면에는 작금의 현실을 적합하게 설명하거나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효과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이념과 정치에 대한 거부가 존재한다. 실제로 이번 촛불집회에서 정당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만큼이나 대중들은 전통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였다. (지도하고 대표하려는 것과 가르치려는 것에 대한 거부.) 그러나 이러한 반응을 대중이 단순히 반정치-반지성적 정념에 빠졌다고 단정 짓고 말아버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현실을 적합하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무력한 낡은 이념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념과 지성을 거부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이념과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라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명박과 노무현을 우파와 좌파로 나누는 기존의 이념에 따라 대중은 우파도 좌파도 싫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자신의 이해와 요구가 위협받는 시점에 이르러 어느 이념가나 급진조직보다 앞서서 급진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지만, 그러한 저항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과정으로 통일되게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조건과 이해관계의 틀 내에서 머무른다. 그런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계급적 단결과 연대로 나아가는 (혹은 그에 미달하는) 과정이야말로 대중정치주체의 형성(과 해체)이요, 노동자계급의 재형성(과 해체) 과정인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념과 조직, 운동의 재건이다 이번 촛불시위에 대한 중간평가와 대안을 토론하는 중에 가장 빈번하고 핵심적으로 제기되는 쟁점들은 ‘중심 없는 강력함’, ‘조직 없는 자발적 시민행동’, ‘(지식인이나 정당 지도의) 권위적 구조 없는 자발적 인터넷 토론과 참여’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쟁점에 관한 토론은 어김없이 ‘어떤 대안과 조직을 남길 것이냐’는 실천적 과제에 대한 토론으로 모아진다. 실제로 이번 촛불시위는 인터넷 토론카페에서 활동 중인 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제안과 참여로 촉발되었다. 더구나 5월 24일 첫 거리진출 이후 등장한 ‘야간 밤샘 거리시위’라는 완강한 투쟁양식 역시 대책위나 조직된 어떤 급진정파의 뜻과도 무관한 대중의 자발적 의지와 역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첫 거리진출이 이루어진 5월 24일 당일은 물론 그 후 며칠 동안 시위대오 내에서는 이후 일정을 고려하여 새벽녘에 접어든 시위를 마무리 지을 것을 제안하는 조직대오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장면들이 속출하였다. 항의의 내용은 주로 “갈 사람은 가고, 이래라저래라 말라.”는 것이었다. ‘밤샘거리시위’ 양상은 그러한 논란의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다. 또 5월말 시위 중에는 종종 깃발 없이 개별적으로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이 전경과의 최선두 몸싸움전선을 도맡는 반면, 뒤늦게 참여하기 시작한 조직대오들은 2선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6월 중순 이후로는 조직대오들의 역할이 현저히 증가한다.) 조직단체대오의 당혹감은 대책위 소속의 온건한 시민단체들이나 몇몇 급진적인 좌파정치단체들이나 매한가지였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의 당혹감인데 아침 해가 뜨는 시점까지 해산하지 않고 대오의 숫자가 줄지 않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찰은 마구잡이로 거리의 시민들 모두를 연행하지 않을 바에야 누가 시위대 대표인지 누구와 어떻게 협의하거나 누구를 선별 타격해야할지 도통 알 수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야말로 난감한 지경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2002년 촛불 시위 때 논란이 되었던 ‘깃발논쟁’과는 또 다른 형태의 ‘다함께’ 논쟁이나 역시 2002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 비폭력 논쟁 등을 경험하였다. (특히 2008년 촛불의 진화된 비폭력논쟁은 단순한 반운동권 정서에 가까운 폭력시위 반대라기보다는 보다 복잡하고 유연한 대중적 전술토론의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여하튼 위에 열거된 복잡다단하고 흥미로운 촛불시위 양상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대한 자세한 평가와 분석은 다른 기회로 넘기고, 그러저러한 경험을 통해 내려진 대체적인 결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촛불은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문제로 시작했으나 그것이 단지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인민주권의 문제라는 것을 직시했고, 신자유주의 5개 의제로 쟁점을 확대했으며, 모든 요구과제들을 이명박 퇴진이라는 정치적 요구로 집약하는 것에 대한 합의를 높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무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운동양식과 주체들이 등장했는데, 기존의 운동들은 그에 뒤처지거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지닌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 안을 뚜렷한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비조직 대중들의 행동과 사고들은 매우 무정부(주의)적인 양상과 흐름으로 표출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안적인 조직, 혹은 통합적 전략과 전술에 대한 요구와 토론이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쇠고기 고시 이후 이명박 퇴진운동이 실질화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러한 토론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다. 이런 저런 토론과 고민들의 결론은 매우 단순한 듯이 보인다.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는 것, 나아가 대안적 민주주의(어떤 정치적 조직 혹은 민주제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고, 어떻게 그러한 과제를 이룰 것이냐와 관련된 쟁점은 복잡하다. 87년 6월 항쟁의 고민은 직선제쟁취라는 중심요구를 경계로 하여, 보수야당(신자유주의 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던가, 그들과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자는 양단간의 정치적 결론으로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뒤이어 터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대안으로 그 성과들이 수렴되었다. 하지만 2008년 촛불항쟁의 고민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여전히 모호하다. 쇠고기 재협상이 중심요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중심에 놓고 어떤 정치적 조직적 대안을 모색하기란 곤란한 일이다. 대중의 인민주권적 자각과 결합된 이명박 정권퇴진 요구가 넓은 동의를 얻고 있지만, 이 또한 진정성 있는 실행전략이냐는 면과 현실적인 정치적 대안 면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내용과 위치에 놓여있다. 또 그렇다고 미선효순 촛불과 달리 이번 촛불의 성과를 손쉽게 민주당이 찬탈해갈 수 있을 듯이 보이지도 않는다. 실제로 민주당의 지지율은 촛불시위 내내 답보중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전국민중연대 해산과 한국진보연대의 정파조직화라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매우 아쉽고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분열이 없었다는 가정을 해보더라도, 촛불국면에서 드러난 민중운동진영의 취약한 대응력이 결정적이고 근본적으로 달랐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지지율 역시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1) 결국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대안이란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별다른 방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실질적이고 전진적인 방향의 연대망들을 복구하는 것에서부터 실천적인 해법을 찾아 나아가는 길뿐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과정에서 엄연하게 확인된 바, 공동의 경험을 통해 실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어떤 선험적 조직화도 대중적으로는 큰 의미 없는 무망한 시도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저 그런 (무슨 좌파, 무슨 연대 이름을 내건 낯선) 단체깃발 하나가 더 늘어나는 의미 이상은 없다. 이미 현실적합성을 잃고 교조화된 관념에 의해 끼워 맞추어진 정치슬로건을 내거는 것만으로 대오의 주목을 받고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순진한 태도다. 정치슬로건은 보다 명확한 투쟁목표와 투쟁형태, 조직형태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현재 국면이 대립되는 투쟁목표를 지닌 세력들 간의 슬로건 논쟁이 정치적 국면을 가름하는 관건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중적으로 제안되고 토론되지 못한 채 외삽되는 구호를 가공하는 데 지나치게 골몰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민발의/소환제의 도입 요구는 인민주권적 요구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제도화시키는 주요한 고리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민발의/소환제는 개헌사안이라는 점에서 현 국면을 전면적인 개헌정국으로 확대시켜내지 못하는 한 현실적인 투쟁요구가 되기는 어렵다.2) 그렇기 때문에 국민발의/소환제라는 제도도입 요구는 이명박정권 퇴진 운동의 확대발전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역으로 국민발의/소환제 요구가 작금의 투쟁을 돌파하고 확대시키는 무기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편 현재 범야권 정당 다수는 거리의 투쟁을 국회 내의 원내 일정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특히 원내로 들어갈 수도 장외 투쟁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민주당은 무기력에 빠져있다. 민주당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민주당 일각은 가축전염예방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또 진보신당에서 5월 말 ‘이명박의 신임과 연계된 쇠고기 재협상 국민투표’안을 제안했다. 이명박의 재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 요구가 이명박정권 퇴진의 요구를 실제로 현실화시킬 구체적 방책일 수 있을까. 재협상요구 지지율이 80% 가까이에 이르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도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국민투표요구를 공세적인 요구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객관적 여론이 유리한 국면에서 그것의 실시여부는 물론 실시방식의 결정권이 이명박에게 있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는 의문이다. 더욱이 만에 하나 이명박이 국민투표를 수용한다면 선거법의 제약으로 촛불시위가 전면 중단될 것이다. 현재의 촛불국면이 정부와 정당이 주도하는 국민투표 정국으로 반전된다. 이명박에게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지고 촛불은 자기요구에 따라 스스로 금지되고 해산되어야 한다.3) 국민투표가 이명박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재협상과 퇴진 요구와 다를 바 없지만, 실제로 재협상-신임 투표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촛불을 끄고 저들에게 유리한 경기장을 내주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는 ‘쥐박이 OUT!’으로 표현되는 이명박의 지지율 급락과 정치적 위기를 실제적인 지배계급 전반의 분열과 체제위기로 발전시켜내는 것이다. 그리고 현 시기 그러한 목표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집약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목표와 슬로건이 여전히 현실적으로 모호하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직적 대안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가장 시급하고 주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촛불의 완강한 저항과 보다 창발적이고 다양한 투쟁 형태들의 지속적 시도 속에서 실천적 연대를 복구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는 크게 볼 때 첫째,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광우병대책위를 조직적, 내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화물파업과 7월 파업을 기점으로 뒤늦게 촛불에 결합하기 시작한 노동자 대중운동과의 실질적 결합을 조직해내는 일이다. 사유화반대, 비정규직투쟁대오들의 결합을 강화하고 대정권 투쟁연대의 차원에서 재조직해내는 것이 그 핵심일 것이다.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청와대를 향한 힘 있는 행진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끈질긴 의지를 이어가고자 하는 시위군중의 실천적 고민을 집약하고 일 진전 시키는데 실천적으로 기여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한 조직적 모색을 지속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을 외치는 시위군중과 명박산성을 포위 압박하는 야간거리시위의 한복판에서 대중으로부터 배우고 끊임없이 자신의 조직과 이념을 재형성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자발적인 대중운동 자체는 파도처럼 일어나 거품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촛불 또한 언젠가는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은 다른 무엇보다도 촛불(거리시위)이다. 현재로서는 얼마나 더 완강한 저항으로 버틸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협상이나 이명박 퇴진보다도 촛불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촛불만이 해체되어 버린 연대를 복구하고 재형성하는 토대이고, 대중 조직과 이념을 재건해낼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념과 조직의 부재라는 현실로부터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내하고 그로부터 전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건 이미 촛불은 역사적으로 지울 수 없는 대사건이고, 어떤 식으로든 이후 정세는 촛불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은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정권은 강경진압으로 선회했지만 그것은 이명박의 헤게모니적 통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명박정권은 이후로 오랫동안 촛불로 받은 타격을 온전히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4) 이명박의 탄압은 혹독하고 강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통치력이 그만큼 좁은 운신 폭에 갇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와 고물가에 경기침체의 풍랑을 겪고 있는 미국의 압력이 이명박을 옭죄는 첫 번째 제약일 것이고, 실패한 노무현-NGO 거버넌스(협치)를 대체할 새로운 거버넌스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두 번째 제약일 것이다.5) 물론 그는 그런 식의 대책을 세울 의사 자체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이명박의 뇌리에 촛불을 체제내화하려는 구상 같은 것의 자리조차 없는 듯하다. 그는 한손으로는 폭력으로 촛불을 누르고, 한편으로는 “100g에 900원짜리 쇠고기를 안 사먹고 배길 것이냐”는 식으로 시간을 끌고 뭉개자는 태도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의 분노의 대상은 쇠고기나 광우병 자체가 아니다. 그는 일생동안 일단 일은 일대로 저질러놓고, 반발은 무시하고, 사후에 실적으로 반전을 노린다는 배짱으로 일관했다. 현 정세는 모두가 이런 통치자의 모습에 놀라고 질려버린 형국인 것이다. 그런 마당에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명박이 뒤늦게 재협상을 택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만에 하나 그가 다시 한 번 더 재협상에 준하는 어떤 기만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노한 민심을 속 시원히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났다. 이것이 물대포와 곤봉으로 무장했지만, ‘제2의 6.29’는커녕 식물정권의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이명박의 딜레마다. 이명박의 탄압에 맞서, 촛불의 행진을 하루라도 더 버티고, 한발이라도 더 디뎌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기회에 현실적으로 당장 이명박을 퇴진시킬 수 있겠느냐, 촛불의 제도적 현실적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이명박을 옭아매고 있는 국내외적 제약과 딜레마들이 이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지배계급 내 분열과 체제균열로 확장될 것이냐 여부는 물대포 앞에 흔들리고 있는 촛불이 앞으로 얼마나 더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민주노동당은 이번 촛불시위 과정에서 유일하게 촛불연단에 오를 수 있는 강기갑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고, 독자적인 의원단 당직자 청와대앞 시위농성을 전개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적극적인 활약상에 비해) 당 지지율이 크게 높아지거나, 촛불 거리시위 과정에서 대중적 지지 양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촛불 초기대응에 고전했던 진보신당은, ‘칼라TV’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개입경로를 개발함으로써, 전통적인 정치정당의 모습과 달리 촛불시위에 일주체로 참여하고 봉사하는 정당의 다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어필했다. 또 한편으로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전의원의 전통적인 정당 지도자로서의 역할 역시 촛불시위에서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본문으로 2) 다만 이 사안은 올해 말 내년 초경에 현실일정으로 예상되는 개헌논의에 개입하기 위한 유력한 과제중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이미 단독개헌처리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논의 전반에 대한 정치적 방침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가 우선 고려되어야만 할 것임은 물론이다.본문으로 3) 2004년 2월 부안은 자치적인 주민투표로 원자력 폐기장 선정을 무력화했다. 하지만 자치적인 주민투표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6개월 이상 주민들의 치지한 투쟁과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부안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투쟁의 정당성을 전국적으로 확보하고, 이미 지역 내에서는 압도적이었던 반대 운동의 최종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방책으로 주민투표를 택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안에서의 실패 이후 주민투표를 역으로 이용해 경제적인 급부를 약속하고 지역 간 경쟁을 유도했다. 결국 2005년 11월 경주, 군산, 영덕, 포항에서 진행된 원자력 폐기장 선정 주민투표에서 경주가 압도적인 주민들의 찬성으로 원자력 폐기장 유치를 결정했다. 정부가 주도한 주민투표 와중에 선거법의 제약으로 인해 원자력 폐기장 반대 세력은 실질적인 운동 및 여론 조직화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로써 1986년 영덕 이후 약 20년 간 실패를 거듭했던 원자력 폐기장 건설 시도는 정부의 완승으로 끝났다. (2003년 부안 이전에도 1986년 영덕, 1990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에서 강력한 주민투쟁으로 정부의 선정을 취소시켰다.) 2005년의 주민투표를 통한 원자력 폐기장의 경주 유치 결정은 한국 환경운동과 반핵운동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본문으로 4)이명박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국면전환용 카드는 개헌논의다. 실제로 4월 총선의 결과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국회 내 개헌의결선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정세에서 개헌논의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재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근혜나 정몽준과 같은 한나라당내 차기 주자들과의 정치적 타협에 기초한 재편전략이 아니라면, 이명박에게는 촛불에게 받은 타격을 회복할 수 있는 별다른 방책이 없다. 문제는 개헌과 관련된 논의는 단순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사용하기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폭과 수위의 논란으로 비화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총선결과 한나라당이 개헌의석을 확보하자마자,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일찌감치 119조 2항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 삭제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급속한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통일관련 조항들의 개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고가고 있다. 결국 촛불이 어느 시점까지 버티고, 어떤 형태와 성과로 마무리 되느냐의 문제는 올해 말 내년 초로 예정된 개헌정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5)보수연합, 혹은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하여 부연하자면, 이명박은 6월에 심대평을 총리로 하는 자유선진당과의 연합을 추진한 바 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자유선진당의 현재 규모로는 만족할만한 정치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등과 같은 극우보수단체들과의 협력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양상을 띠기 때문에 이들과의 연합은 촛불시위를 훼방질하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현실집권세력이 거버넌스의 파트너로 삼기에는 부적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극우세력의 좌장격인 조갑제는 최근에 “미국경찰이라면 벌써 총을 쏘았을 것”이라는 둥 “맞서 싸울 의지가 없다면, 이명박은 하야하라!”는 둥의 망언을 일삼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냉각탑 폭파이후 북미관계가 급속히 화해모드로 돌입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인공기를 불태우며 폭력적인 반북친미주의로 일관하는 이들의 행태는 대중적인 설득력과 친화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결국 이명박이 기댈 곳이라고는 한나라당내 소수파 그룹인 박근혜계와의 협력뿐인데, 이는 거버먼트(정부에 의한 통치)의 합리화 효율화의 전략이지 효과적인 위기관리 대응체제로서의 거버넌스(정부-NGO 협치)가 아니다. 본문으로
촛불시위를 어떻게 볼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끝내 쇠고기 고시를 강행하고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두 달여 간 청와대를 에워싼 명박산성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나는 더 이상 너희들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이명박의 선언이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대표는 누구란 말인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정치의 위기이며, 인민주권의 위기인 것이다. 과연 촛불은 무엇이며, 뒤늦게 촛불로 들어가 함께 달려온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숨 막히는 보수압승의 대선-총선 결과를 놓고 조직된 수많은 좌파세력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얼어붙어 있을 때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올라 타오른 촛불의 의미는 무엇인지.가 바로 우리의 첫 번째 고민이라면,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원초적인 당혹감이 두 번째 고민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촛불의 본질에 대해, 이것을 이해하는 상반된 두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대중의 양면성과 역동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두 방식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지 고민해보았다. 또한 통상 대의제 민주주의, 정당정치, 조직운동의 위기와 무력감이라고 진단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기본진단으로부터 촛불을 확대하고 이어가기 위한 ‘조직과 대안’, 즉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념, 조직, 운동의 재건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촛불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중의 양면성과 역동성에 대하여 대중은 12월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고, 4월 총선에서 뉴타운개발을 선택하더니, 5-6월에는 성난 촛불로 돌변하여 광화문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 가지 설명방식은 대중의 양면성 혹은 이중성을 중심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대중의 양면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촛불의 정념적(감정적) 성격과 그 한계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이라면, 뒤의 방식은 대중의 앞선 행동에 뒤처져버린 운동조직들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대중의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는 좌파의 대원칙이다. 더군다나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미 촛불은 정세의 중심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대중의 모든 변덕을 합리화하고 좇을 일은 아닐 것이다. 대중에게 높은 점수를 줄 것이냐 낮을 점수를 줄 것이냐를 다투는 것은 난센스다. 모든 운동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로부터 행해져야 하고, 대중은 언제나 양면적이면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대중이 처한 모순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실천적으로 극복해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촛불의 문제는 그 모순이 무엇인가에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광우병이라는 이슈 자체는 다분히 정념적이고 감정적인 이슈라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식품안전이나 검역주권의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분히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사태 초기에, 촛불의 문제제기를 주로 홍보부족으로 인한 국민이해부족, 혹은 왜곡과장보도로 인한 해프닝으로 호도하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불타오른 대중의 분노는 단지 광우병 공포라는 인터넷 괴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대중의 분노는 생명안전이라는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유일 방책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요구라는 측면에서 이성적이고 정당한 요구와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은 더 이상 괴담이나 비과학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 시기 촛불을 치켜든 대중의 첫 번째 모순이다. 또한 광우병사태 초기, 촛불을 치켜든 대중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슈 몹(issue mob)’의 외양을 띠었다. 주로 인터넷상의 제안을 통해,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형태의 시위(캠페인)를 벌이는 불특정 군중을 ‘이슈 몹’이라고 한다. 여기서 몹은 다양한 계층의 불특정 군중을 뜻하는 것으로, 직역하자면 ‘이슈군중’ 쯤 된다. 즉 이슈몹은 주로 TV나 인터넷여론에서 제기되는 이슈를 중심으로 번개 형태의 집회를 한다. 예컨대 “몇 월 몇 날 몇 시에 무슨 집회를 하자”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이념이나 조직적 기반에 근거하지 않을뿐더러, 이념과 조직을 터부시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는 미디어 정치의 주요한 한 단면인데, 미디어정치가 제기하는 이슈는 항상 뉴스미디어가 요구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는 당연히 어떤 연속성이나 일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다루는 이슈는 논리적 역사적 학습을 중시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호불호의 문제로 단순화하고, 감정적인 선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어떤 구조적 문제도 특정 개인의 스캔들로 뒤바꾸어 놓는 특성을 가진다. 4월 29일 PD수첩과 인터넷 광우병 괴담으로 촉발된 초기 광우병 집회는 이러한 이슈몹의 양상을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5월의 촛불집회는 분명 “미친소, 너나 먹어라!”는 식의 광우병 공포와 괴담 이슈를 동반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 출발로부터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에 대한 보편적 요구와 함께 했다. 더욱이 5월 중순 이후로 대중들은 보다 급진적인 직접행동, 일찍이 보지 못했던 창발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중거리시위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등장한 촛불시위대중은 독도문제나 황우석 사태, 디워 논쟁에서 드러난 전형적인 이슈몹과는 다르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보자. 촛불이 대두되기 불과 한 달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투표율은 50%에 미달했으며 투표를 한 이들의 다수는 이명박과 뉴타운을 선택했다. 이것은 분명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변덕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광우병 촛불은 시종일관 경제적 사회적 생존권에 대한 반민주적 위협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라는 대의를 공공연하게 제기해 오고 있다. 즉 자신의 생활과 경제를 망쳤다고 여겨진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발심이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이어진 일이나,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이명박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하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은 동일한 원인의 결과라는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반발과 이명박 심판의 촛불은 동일하게 신자유주의정책의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선택이고, 이는 이념적으로 모순되고 표면적으로 상반되지만 민주주의와 생존권이라는 일관된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표현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대중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2004년 탄핵반대 촛불과 2008년의 촛불은 구별된다.) 이것이 촛불을 든 대중의 두 번째 모순이다. 특히 이러한 대중의 태도의 이면에는 작금의 현실을 적합하게 설명하거나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효과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이념과 정치에 대한 거부가 존재한다. 실제로 이번 촛불집회에서 정당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만큼이나 대중들은 전통적인 지식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였다. (지도하고 대표하려는 것과 가르치려는 것에 대한 거부.) 그러나 이러한 반응을 대중이 단순히 반정치-반지성적 정념에 빠졌다고 단정 짓고 말아버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현실을 적합하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무력한 낡은 이념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념과 지성을 거부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이념과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라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명박과 노무현을 우파와 좌파로 나누는 기존의 이념에 따라 대중은 우파도 좌파도 싫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자신의 이해와 요구가 위협받는 시점에 이르러 어느 이념가나 급진조직보다 앞서서 급진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지만, 그러한 저항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과정으로 통일되게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조건과 이해관계의 틀 내에서 머무른다. 그런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계급적 단결과 연대로 나아가는 (혹은 그에 미달하는) 과정이야말로 대중정치주체의 형성(과 해체)이요, 노동자계급의 재형성(과 해체) 과정인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념과 조직, 운동의 재건이다 이번 촛불시위에 대한 중간평가와 대안을 토론하는 중에 가장 빈번하고 핵심적으로 제기되는 쟁점들은 ‘중심 없는 강력함’, ‘조직 없는 자발적 시민행동’, ‘(지식인이나 정당 지도의) 권위적 구조 없는 자발적 인터넷 토론과 참여’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쟁점에 관한 토론은 어김없이 ‘어떤 대안과 조직을 남길 것이냐’는 실천적 과제에 대한 토론으로 모아진다. 실제로 이번 촛불시위는 인터넷 토론카페에서 활동 중인 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제안과 참여로 촉발되었다. 더구나 5월 24일 첫 거리진출 이후 등장한 ‘야간 밤샘 거리시위’라는 완강한 투쟁양식 역시 대책위나 조직된 어떤 급진정파의 뜻과도 무관한 대중의 자발적 의지와 역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첫 거리진출이 이루어진 5월 24일 당일은 물론 그 후 며칠 동안 시위대오 내에서는 이후 일정을 고려하여 새벽녘에 접어든 시위를 마무리 지을 것을 제안하는 조직대오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장면들이 속출하였다. 항의의 내용은 주로 “갈 사람은 가고, 이래라저래라 말라.”는 것이었다. ‘밤샘거리시위’ 양상은 그러한 논란의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다. 또 5월말 시위 중에는 종종 깃발 없이 개별적으로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이 전경과의 최선두 몸싸움전선을 도맡는 반면, 뒤늦게 참여하기 시작한 조직대오들은 2선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6월 중순 이후로는 조직대오들의 역할이 현저히 증가한다.) 조직단체대오의 당혹감은 대책위 소속의 온건한 시민단체들이나 몇몇 급진적인 좌파정치단체들이나 매한가지였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의 당혹감인데 아침 해가 뜨는 시점까지 해산하지 않고 대오의 숫자가 줄지 않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찰은 마구잡이로 거리의 시민들 모두를 연행하지 않을 바에야 누가 시위대 대표인지 누구와 어떻게 협의하거나 누구를 선별 타격해야할지 도통 알 수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야말로 난감한 지경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2002년 촛불 시위 때 논란이 되었던 ‘깃발논쟁’과는 또 다른 형태의 ‘다함께’ 논쟁이나 역시 2002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 비폭력 논쟁 등을 경험하였다. (특히 2008년 촛불의 진화된 비폭력논쟁은 단순한 반운동권 정서에 가까운 폭력시위 반대라기보다는 보다 복잡하고 유연한 대중적 전술토론의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여하튼 위에 열거된 복잡다단하고 흥미로운 촛불시위 양상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대한 자세한 평가와 분석은 다른 기회로 넘기고, 그러저러한 경험을 통해 내려진 대체적인 결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촛불은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문제로 시작했으나 그것이 단지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인민주권의 문제라는 것을 직시했고, 신자유주의 5개 의제로 쟁점을 확대했으며, 모든 요구과제들을 이명박 퇴진이라는 정치적 요구로 집약하는 것에 대한 합의를 높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무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운동양식과 주체들이 등장했는데, 기존의 운동들은 그에 뒤처지거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지닌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 안을 뚜렷한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비조직 대중들의 행동과 사고들은 매우 무정부(주의)적인 양상과 흐름으로 표출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안적인 조직, 혹은 통합적 전략과 전술에 대한 요구와 토론이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쇠고기 고시 이후 이명박 퇴진운동이 실질화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러한 토론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다. 이런 저런 토론과 고민들의 결론은 매우 단순한 듯이 보인다.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는 것, 나아가 대안적 민주주의(어떤 정치적 조직 혹은 민주제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고, 어떻게 그러한 과제를 이룰 것이냐와 관련된 쟁점은 복잡하다. 87년 6월 항쟁의 고민은 직선제쟁취라는 중심요구를 경계로 하여, 보수야당(신자유주의 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던가, 그들과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자는 양단간의 정치적 결론으로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뒤이어 터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대안으로 그 성과들이 수렴되었다. 하지만 2008년 촛불항쟁의 고민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여전히 모호하다. 쇠고기 재협상이 중심요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중심에 놓고 어떤 정치적 조직적 대안을 모색하기란 곤란한 일이다. 대중의 인민주권적 자각과 결합된 이명박 정권퇴진 요구가 넓은 동의를 얻고 있지만, 이 또한 진정성 있는 실행전략이냐는 면과 현실적인 정치적 대안 면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내용과 위치에 놓여있다. 또 그렇다고 미선효순 촛불과 달리 이번 촛불의 성과를 손쉽게 민주당이 찬탈해갈 수 있을 듯이 보이지도 않는다. 실제로 민주당의 지지율은 촛불시위 내내 답보중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전국민중연대 해산과 한국진보연대의 정파조직화라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매우 아쉽고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분열이 없었다는 가정을 해보더라도, 촛불국면에서 드러난 민중운동진영의 취약한 대응력이 결정적이고 근본적으로 달랐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지지율 역시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1) 결국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의 대안이란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별다른 방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실질적이고 전진적인 방향의 연대망들을 복구하는 것에서부터 실천적인 해법을 찾아 나아가는 길뿐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과정에서 엄연하게 확인된 바, 공동의 경험을 통해 실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어떤 선험적 조직화도 대중적으로는 큰 의미 없는 무망한 시도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저 그런 (무슨 좌파, 무슨 연대 이름을 내건 낯선) 단체깃발 하나가 더 늘어나는 의미 이상은 없다. 이미 현실적합성을 잃고 교조화된 관념에 의해 끼워 맞추어진 정치슬로건을 내거는 것만으로 대오의 주목을 받고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순진한 태도다. 정치슬로건은 보다 명확한 투쟁목표와 투쟁형태, 조직형태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현재 국면이 대립되는 투쟁목표를 지닌 세력들 간의 슬로건 논쟁이 정치적 국면을 가름하는 관건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중적으로 제안되고 토론되지 못한 채 외삽되는 구호를 가공하는 데 지나치게 골몰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민발의/소환제의 도입 요구는 인민주권적 요구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제도화시키는 주요한 고리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민발의/소환제는 개헌사안이라는 점에서 현 국면을 전면적인 개헌정국으로 확대시켜내지 못하는 한 현실적인 투쟁요구가 되기는 어렵다.2) 그렇기 때문에 국민발의/소환제라는 제도도입 요구는 이명박정권 퇴진 운동의 확대발전의 결과일 수는 있어도, 역으로 국민발의/소환제 요구가 작금의 투쟁을 돌파하고 확대시키는 무기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편 현재 범야권 정당 다수는 거리의 투쟁을 국회 내의 원내 일정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특히 원내로 들어갈 수도 장외 투쟁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민주당은 무기력에 빠져있다. 민주당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민주당 일각은 가축전염예방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또 진보신당에서 5월 말 ‘이명박의 신임과 연계된 쇠고기 재협상 국민투표’안을 제안했다. 이명박의 재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 요구가 이명박정권 퇴진의 요구를 실제로 현실화시킬 구체적 방책일 수 있을까. 재협상요구 지지율이 80% 가까이에 이르고, 이명박에 대한 지지도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국민투표요구를 공세적인 요구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객관적 여론이 유리한 국면에서 그것의 실시여부는 물론 실시방식의 결정권이 이명박에게 있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는 의문이다. 더욱이 만에 하나 이명박이 국민투표를 수용한다면 선거법의 제약으로 촛불시위가 전면 중단될 것이다. 현재의 촛불국면이 정부와 정당이 주도하는 국민투표 정국으로 반전된다. 이명박에게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지고 촛불은 자기요구에 따라 스스로 금지되고 해산되어야 한다.3) 국민투표가 이명박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재협상과 퇴진 요구와 다를 바 없지만, 실제로 재협상-신임 투표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촛불을 끄고 저들에게 유리한 경기장을 내주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는 ‘쥐박이 OUT!’으로 표현되는 이명박의 지지율 급락과 정치적 위기를 실제적인 지배계급 전반의 분열과 체제위기로 발전시켜내는 것이다. 그리고 현 시기 그러한 목표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집약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목표와 슬로건이 여전히 현실적으로 모호하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직적 대안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가장 시급하고 주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촛불의 완강한 저항과 보다 창발적이고 다양한 투쟁 형태들의 지속적 시도 속에서 실천적 연대를 복구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는 크게 볼 때 첫째,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광우병대책위를 조직적, 내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화물파업과 7월 파업을 기점으로 뒤늦게 촛불에 결합하기 시작한 노동자 대중운동과의 실질적 결합을 조직해내는 일이다. 사유화반대, 비정규직투쟁대오들의 결합을 강화하고 대정권 투쟁연대의 차원에서 재조직해내는 것이 그 핵심일 것이다.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청와대를 향한 힘 있는 행진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끈질긴 의지를 이어가고자 하는 시위군중의 실천적 고민을 집약하고 일 진전 시키는데 실천적으로 기여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한 조직적 모색을 지속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을 외치는 시위군중과 명박산성을 포위 압박하는 야간거리시위의 한복판에서 대중으로부터 배우고 끊임없이 자신의 조직과 이념을 재형성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자발적인 대중운동 자체는 파도처럼 일어나 거품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촛불 또한 언젠가는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은 다른 무엇보다도 촛불(거리시위)이다. 현재로서는 얼마나 더 완강한 저항으로 버틸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협상이나 이명박 퇴진보다도 촛불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촛불만이 해체되어 버린 연대를 복구하고 재형성하는 토대이고, 대중 조직과 이념을 재건해낼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념과 조직의 부재라는 현실로부터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내하고 그로부터 전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건 이미 촛불은 역사적으로 지울 수 없는 대사건이고, 어떤 식으로든 이후 정세는 촛불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은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정권은 강경진압으로 선회했지만 그것은 이명박의 헤게모니적 통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명박정권은 이후로 오랫동안 촛불로 받은 타격을 온전히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4) 이명박의 탄압은 혹독하고 강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의 통치력이 그만큼 좁은 운신 폭에 갇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와 고물가에 경기침체의 풍랑을 겪고 있는 미국의 압력이 이명박을 옭죄는 첫 번째 제약일 것이고, 실패한 노무현-NGO 거버넌스(협치)를 대체할 새로운 거버넌스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두 번째 제약일 것이다.5) 물론 그는 그런 식의 대책을 세울 의사 자체가 없어 보인다. 애초에 이명박의 뇌리에 촛불을 체제내화하려는 구상 같은 것의 자리조차 없는 듯하다. 그는 한손으로는 폭력으로 촛불을 누르고, 한편으로는 “100g에 900원짜리 쇠고기를 안 사먹고 배길 것이냐”는 식으로 시간을 끌고 뭉개자는 태도다. 하지만 이제 국민들의 분노의 대상은 쇠고기나 광우병 자체가 아니다. 그는 일생동안 일단 일은 일대로 저질러놓고, 반발은 무시하고, 사후에 실적으로 반전을 노린다는 배짱으로 일관했다. 현 정세는 모두가 이런 통치자의 모습에 놀라고 질려버린 형국인 것이다. 그런 마당에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명박이 뒤늦게 재협상을 택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만에 하나 그가 다시 한 번 더 재협상에 준하는 어떤 기만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노한 민심을 속 시원히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났다. 이것이 물대포와 곤봉으로 무장했지만, ‘제2의 6.29’는커녕 식물정권의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이명박의 딜레마다. 이명박의 탄압에 맞서, 촛불의 행진을 하루라도 더 버티고, 한발이라도 더 디뎌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기회에 현실적으로 당장 이명박을 퇴진시킬 수 있겠느냐, 촛불의 제도적 현실적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이명박을 옭아매고 있는 국내외적 제약과 딜레마들이 이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지배계급 내 분열과 체제균열로 확장될 것이냐 여부는 물대포 앞에 흔들리고 있는 촛불이 앞으로 얼마나 더 완강하게 버틸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민주노동당은 이번 촛불시위 과정에서 유일하게 촛불연단에 오를 수 있는 강기갑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고, 독자적인 의원단 당직자 청와대앞 시위농성을 전개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적극적인 활약상에 비해) 당 지지율이 크게 높아지거나, 촛불 거리시위 과정에서 대중적 지지 양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촛불 초기대응에 고전했던 진보신당은, ‘칼라TV’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개입경로를 개발함으로써, 전통적인 정치정당의 모습과 달리 촛불시위에 일주체로 참여하고 봉사하는 정당의 다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어필했다. 또 한편으로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전의원의 전통적인 정당 지도자로서의 역할 역시 촛불시위에서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본문으로 2) 다만 이 사안은 올해 말 내년 초경에 현실일정으로 예상되는 개헌논의에 개입하기 위한 유력한 과제중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이미 단독개헌처리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논의 전반에 대한 정치적 방침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가 우선 고려되어야만 할 것임은 물론이다.본문으로 3) 2004년 2월 부안은 자치적인 주민투표로 원자력 폐기장 선정을 무력화했다. 하지만 자치적인 주민투표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6개월 이상 주민들의 치지한 투쟁과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부안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투쟁의 정당성을 전국적으로 확보하고, 이미 지역 내에서는 압도적이었던 반대 운동의 최종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방책으로 주민투표를 택했다. 그러나 정부는 부안에서의 실패 이후 주민투표를 역으로 이용해 경제적인 급부를 약속하고 지역 간 경쟁을 유도했다. 결국 2005년 11월 경주, 군산, 영덕, 포항에서 진행된 원자력 폐기장 선정 주민투표에서 경주가 압도적인 주민들의 찬성으로 원자력 폐기장 유치를 결정했다. 정부가 주도한 주민투표 와중에 선거법의 제약으로 인해 원자력 폐기장 반대 세력은 실질적인 운동 및 여론 조직화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로써 1986년 영덕 이후 약 20년 간 실패를 거듭했던 원자력 폐기장 건설 시도는 정부의 완승으로 끝났다. (2003년 부안 이전에도 1986년 영덕, 1990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에서 강력한 주민투쟁으로 정부의 선정을 취소시켰다.) 2005년의 주민투표를 통한 원자력 폐기장의 경주 유치 결정은 한국 환경운동과 반핵운동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본문으로 4)이명박이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국면전환용 카드는 개헌논의다. 실제로 4월 총선의 결과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국회 내 개헌의결선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정세에서 개헌논의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재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근혜나 정몽준과 같은 한나라당내 차기 주자들과의 정치적 타협에 기초한 재편전략이 아니라면, 이명박에게는 촛불에게 받은 타격을 회복할 수 있는 별다른 방책이 없다. 문제는 개헌과 관련된 논의는 단순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사용하기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폭과 수위의 논란으로 비화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총선결과 한나라당이 개헌의석을 확보하자마자,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일찌감치 119조 2항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 삭제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급속한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통일관련 조항들의 개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고가고 있다. 결국 촛불이 어느 시점까지 버티고, 어떤 형태와 성과로 마무리 되느냐의 문제는 올해 말 내년 초로 예정된 개헌정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본문으로 5)보수연합, 혹은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하여 부연하자면, 이명박은 6월에 심대평을 총리로 하는 자유선진당과의 연합을 추진한 바 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자유선진당의 현재 규모로는 만족할만한 정치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뉴라이트 전국연합등과 같은 극우보수단체들과의 협력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양상을 띠기 때문에 이들과의 연합은 촛불시위를 훼방질하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현실집권세력이 거버넌스의 파트너로 삼기에는 부적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극우세력의 좌장격인 조갑제는 최근에 “미국경찰이라면 벌써 총을 쏘았을 것”이라는 둥 “맞서 싸울 의지가 없다면, 이명박은 하야하라!”는 둥의 망언을 일삼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냉각탑 폭파이후 북미관계가 급속히 화해모드로 돌입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인공기를 불태우며 폭력적인 반북친미주의로 일관하는 이들의 행태는 대중적인 설득력과 친화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결국 이명박이 기댈 곳이라고는 한나라당내 소수파 그룹인 박근혜계와의 협력뿐인데, 이는 거버먼트(정부에 의한 통치)의 합리화 효율화의 전략이지 효과적인 위기관리 대응체제로서의 거버넌스(정부-NGO 협치)가 아니다. 본문으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6월 말 현재 배럴당 14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는 유가(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 기준)는 1999년 1월엔 8달러였다. 이라크의 증산과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둔화로 8달러까지 내려갔던 유가는 그 이후 급격히 올라 2000년 9월에 배럴당 35달러가 되었다. 그 이후 2001년 정보기술산업 거품붕괴로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2001년 말에 유가는 다시 하락하였다가 2004년 9월경에는 배럴당 40-50달러까지 상승하였다. 2007년 9월에는 배럴 당 80달러를 넘어섰고 2007년 10월엔 90달러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 2일에는 100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00달러는 한 번 찍어 기록으로 남는 가격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는데 잠시 뒤 유가는 다시 천정부지로 올랐다. 6월 6일엔 하루에 10달러 이상 오르기도 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가격 기준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가가 높았던 1980년 2차 석유위기 당시의 100-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에너지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석유집약도 감소를 고려한 2차 석유위기 당시의 ‘실질실효가격’은 150-160달러가 된다고 한다. 즉 아직은 이 가격에는 못 미친다.) 최근의 유가상승은 가파르기가 그지없고 변동성 역시 매우 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달러기준 유가는 왜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달러가치 하락과 금융투기가 원유가격의 급등의 주된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미국 원유재고량의 감소, 중국 인도 등에서의 원유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의 원유소비 증대 등의 수요 측면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테러리스트’의 송유관 공격, 원유채굴 노동자 파업, 피크오일 도래 등의 공급 측면의 원인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가 급등의 요인들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달러가치 하락 및 금융투기부터. 달러가치 하락을 주된 원인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현재의 원유가 인상은 당연하고 달러가치의 안정화로 원유가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달러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현재 달러기준 유가는 유가상승 정도를 과장하고 있지만 분명히 달러가치 하락 정도보다는 유가상승 정도가 훨씬 더 크다. 즉 유로기준으로도 유가는 매우 많이 올랐다. 금융투기와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자.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국채나, 곡물 원유 등의 상품시장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렸고 이것이 유가를 많이 끌어올린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품이라 할 것인가? 즉 1-2년 안에 유가가 폭락해, 예를 들어 60-70달러, 혹은 50-60달러, 심지어는 30-40달러 수준으로 내려올 것인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유가에 투기가 인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이런 요인의 해소에 의해 원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우리 생각으로는 원유에 투기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원유 생산 및 공급상의 제약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의 고유가가 쉬 해소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수요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중국 인도 등지에서의 수요증대를 살펴보자. 중국은 2002년 이래 매년 원유소비가 8%씩 증가하고 있고 1996년과 2006년 사이 원유소비량은 두 배가 되었다. 중국은 2005년에 자국 원유수요의 반 정도를 수입했다. 인도의 경우 2005년에서 2020년 사이 원유수입이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01년에서 2025년 사이 인도와 중국의 원유소비 증가 몫에서 자동차나 트럭 증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5%라는 예측이다.1) 미국 에너지부의 요청에 따라 2005년에 작성된 허쉬 보고서(Hirsch report)에 따르면 자동차와 트럭은 2006년에 미국 원유소비의 약 68.9%를 차지하고 세계적으로는 55%를 차지한다. 중국의 2008년 자동차 판매량은 약 15-20%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에서 자동차 보유가 본격화되면서 원유수요가 격증하고 있고,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등지로부터의 수요증대가 막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에서의 원유소비 증대도 상당하지만 이들 국가에서의 원유수요를 포함한 세계 원유수요 증가율은 199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연평균 1.76%에 불과하다. 2003-2004년에 가장 높은 3.4%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경제성장률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수요증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최근 몇 년 동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최근 유가상승 원인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요인이 원유 생산 및 공급제약이다.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은 유전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지 않아 잉여생산능력이 별로 없고 세계적으로 원유 생산이 정점을 지났거나 조만간 정점이 도래할 상황(피크오일)을 일컫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에 조그마한 차질을 가지고 올 사건도 즉각 원유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사례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인데 이는 6월 6일 10달러 이상 원유가를 올린 바 있다. 2) 피크오일 이제 피크오일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킹 휴버트가 제시해 1970년대 미국의 원유생산정점 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이 이론은 지금까지는 일부 극단적 비관론자들에게만 수용되다가 최근에는 주류 언론에도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원유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것에 기인하지 않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휴버트의 석유생산곡선은 종모양을 하는데 석유생산은 처음에는 지수적 성장을 하다가, 이후 정점이 있는 로지스틱 성장을 한다. 그리고 정점 이후 초기에는 석유생산이 천천히 감소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에는 지수적으로 감소한다. (그림 1 참조) 우선 비록 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원유생산 정점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유가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의 피크오일 시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이들에 따르면 이미 피크오일 시기가 지났거나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휴버트와 같이 작업했던 디훼이즈(Kenneth S. Deffeyes)는 2005년에,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는 2006년에 이미 피크오일에 도달했다고 하고, ‘피크오일 및 피크개스 연구연합회’(ASPO)의 창시자 캠벨(Colin Campbell)은 올해 6월 자료에서는 올해를 피크오일의 해라고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새로운 자료를 반영하여 피크오일 시기를 변경해가고 있는데 2011, 2010, 2007, 2008년으로 바뀌고 있으나 2010년 전후로 피크오일 시기를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1990년대 중반에 2000년을 피크오일 시기로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사우디 및 중동의 원유생산을 연구한 시몬스(Matthew Simmons)도 대체로 지금시기를 피크오일 시기라 이야기하고 있다.3) 참고로 2005년, 2006년, 2007년의 원유 생산량은 1일 평균 약 8,500만 배럴로 거의 동일하고, 2008년 1/4분기만을 보면 생산량은 2005-2007년에 비해 조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기업 등에서도 “값싼 원유 시기는 지나갔다”며 피크오일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원유매장량에 대한 판단의 차이, 장래 발견될 원유량의 차이, 오일 샌드 등 비전통적인 원유에 대한 판단의 차이 등에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은 각국이 발표하는 매장량, 특히 OPEC 회원국들이 원유생산 쿼터를 많이 할당받기 위해 부풀려온 매장량을 불신하고 대신 생산량, 원유 발견량, 원유채굴량 등에 기초해 피크오일 시기를 산정하고 매장량에 대한 판단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피크오일 이후 원유생산량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도 논란거리이다. 급격히 하강하느냐 고원형태를 보일 것이냐. 별 준비 없이 전자의 사태를 맞이하면 석유문명은 공황, 전쟁 등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고 후자라 할지라도 석유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전자보다는 혼란이나 고통이 덜할 것이라는 것이다. 피크오일 시기의 유가는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 현재 고유가가 금융투기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투기거품 이후에 유가가 폭락해서 수요와 공급요인에 기초한 정상가격(펀더멘털한 요인에 의한 가격?)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런데 고갈가능성이 없고 단지 일시적으로 공급제약이 존재하는 상품에 대한 투기와 고갈 가능성이 있고 생산 정점이 다가왔거나 곧 다가올 석유에 대한 금융투기는 그 성격이 다를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한 수요 둔화, 에너지 절약 운동, 천연가스나 석탄의 교통수단을 위한 연료로의 전환 기술 개발 및 확산, 서아시아(중동)의 정치적 불안의 해소 등의 요인으로 인해 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는 있을 것이다.4)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야기하는 정상가격으로 유가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석유생산정점의 도래가 확실한 상황이라면 “대체에너지(궁극적으로는 태양에너지)에 대한 석유에너지의 경제적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는 유가의 상한선까지 올라 그 가격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5) 정상가격을 넘는 부분은 지대로 수취되면서. 만약 현재 석유의 생산 및 공급제약 상황이 석유생산 정점에 도달했거나 조만간 도달할 상황이라면 현재의 고유가의 문제를 미 의회에서처럼 투기자들을 색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고유가가 가까운 장래에 피크오일의 도래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원유생산 및 공급상의 제약이 어느 정도 뚜렷해 보여,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위기 등이 아니라면 고유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피크오일론자들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여기에 영향을 받아 고유가를 예상하고 있다.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는 원유가가 곧 150달러에 달할 것이라 발표를 했고, 골드만삭스에서는 그 보다 먼저 향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원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보다 극적인 사례로는 CERA(Cambridge Energy Research Associates)가 있다. 2008년의 유가폭등이 있기 전까지 CERA 의장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는 피크오일주창자들을 비판해 왔고, 유가가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을 해서 유명해졌는데, 올해 5월 7일에, 2008년 중 유가가 150달러에 이를 것이고, 이는 공급상의 제약 때문이라고 기존 견해를 뒤집었다. 고유가와 한국경제 고유가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에 또 다른 커다란 위기요인이 될 것이다. 고유가는 최근 화물연대 등 운수종사자들의 파업을 낳았다. 치솟은 경유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 역시 유가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고 이는 곡물가를 상승시키고 있다. 높은 가격의 원유에 대한 대체제로 바이오연료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고 있다. 당연히 곡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고유가는 이렇게 개별 산업에의 영향 이전에 물가나 경상수지 등 거시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고유가가 주요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원유수입액은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합계액를 보면 수입총액의 1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의 15.2%보다 3.6%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참고로 곡물수입액이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1.7%였다).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원유수입액이 약 170억 달러, 2008년 원유수입액이 약 270억 달러여서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약 100억 달러의 추가부담이 있었다. 이 대부분이 가격상승으로 인한 추가부담이었다. 4월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68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면 이는 자칫 초민족적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낳고, 이는 다시 환율위기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어서 이것만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아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기자본이나 단기외채의 존재가 적은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로도 쉬 환율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대외채권 및 채무와 주식투자 및 직접투자를 망라한 대외투자와 외국인투자 잔액의 차이를 표시하는 순국제투자의 마이너스 규모는 최근년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고유가는, 특히 이것이 피크오일에서 기인한다면, 이런 단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 이전에라도 석유에 기댄 산업 및 소비생활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유가가 150달러에 다다르면 비상체제를 가동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서 경제성장 또는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식품안전이나 국가의 주권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의회비준을 서둘러 끝내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한 항의로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결국 파쇼적 탄압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고유가를 빌미로 에너지파시즘체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경제와 산업의 생태적 전환과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 민중적 대안의 관철이 절실해지고 있는 순간이다. 1) http://en.wikipedia.org/wiki/Oil_price_increases_of_2004-2006(2008년 6월 30일 검색)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2)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만으로는 이란의 원유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 변수도 금융투기와 연결이 되어 있다. 장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가능성, 만일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원유생산 감소분 등이 예측되어 원유 선물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현물시장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다. 관련해서 중동의 정치적 불안 해소와 이로 인한 유가 하락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원유 잉여생산능력이 줄어들고 원유 생산 및 공급제약이 뚜렷하다면, 세계 원유의 4분의 1 정도를 소비하는 미국이 세계 원유 매장량의 65% 정도를 점하고 있는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4.6% 정도인 것에 비춰보면 미국의 원유소비량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광대한 국토와 자동차 소유의 일반화가 주원인이라 하겠다.) 이란 등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중동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당연히 중동불안 해소로 인한 유가하락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본문으로 3)시몬스는 체니 부시 등과 가까운 인사라고 알려져 있다. 피크오일론자 중에 석유업계와 가까운 이런 사람이 존재하면서 피크오일론이 고유가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본문으로 4) 두 에너지원 모두 석유처럼 고갈가능성이 있는 에너지원이다. 천연가스의 고갈 시기는 석유보다 10-20년 후로 예측이 되고 있지만 최근 천연가스는 압축가스 상태(CNG)나 액체로 가공(DME)해 교통수단 연로로 쓰이고 있어 천연가스의 고갈 시기는 석유 고갈 시기에 근접해 갈 가능성이 높다. 석탄의 경우 논자에 따라 생산정점시기가 매우 다르나 석유나 천연가스보다는 가채년수가 훨씬 긴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석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어서 그 이용이 계속 확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본문으로 5) 윤소영,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공감, 2001 중 「금융세계화와 석유위기」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6월 말 현재 배럴당 14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는 유가(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 기준)는 1999년 1월엔 8달러였다. 이라크의 증산과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둔화로 8달러까지 내려갔던 유가는 그 이후 급격히 올라 2000년 9월에 배럴당 35달러가 되었다. 그 이후 2001년 정보기술산업 거품붕괴로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2001년 말에 유가는 다시 하락하였다가 2004년 9월경에는 배럴당 40-50달러까지 상승하였다. 2007년 9월에는 배럴 당 80달러를 넘어섰고 2007년 10월엔 90달러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 2일에는 100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00달러는 한 번 찍어 기록으로 남는 가격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는데 잠시 뒤 유가는 다시 천정부지로 올랐다. 6월 6일엔 하루에 10달러 이상 오르기도 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가격 기준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가가 높았던 1980년 2차 석유위기 당시의 100-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에너지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석유집약도 감소를 고려한 2차 석유위기 당시의 ‘실질실효가격’은 150-160달러가 된다고 한다. 즉 아직은 이 가격에는 못 미친다.) 최근의 유가상승은 가파르기가 그지없고 변동성 역시 매우 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달러기준 유가는 왜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달러가치 하락과 금융투기가 원유가격의 급등의 주된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미국 원유재고량의 감소, 중국 인도 등에서의 원유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의 원유소비 증대 등의 수요 측면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테러리스트’의 송유관 공격, 원유채굴 노동자 파업, 피크오일 도래 등의 공급 측면의 원인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유가 급등의 요인들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달러가치 하락 및 금융투기부터. 달러가치 하락을 주된 원인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현재의 원유가 인상은 당연하고 달러가치의 안정화로 원유가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달러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현재 달러기준 유가는 유가상승 정도를 과장하고 있지만 분명히 달러가치 하락 정도보다는 유가상승 정도가 훨씬 더 크다. 즉 유로기준으로도 유가는 매우 많이 올랐다. 금융투기와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자.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국채나, 곡물 원유 등의 상품시장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렸고 이것이 유가를 많이 끌어올린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품이라 할 것인가? 즉 1-2년 안에 유가가 폭락해, 예를 들어 60-70달러, 혹은 50-60달러, 심지어는 30-40달러 수준으로 내려올 것인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유가에 투기가 인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이런 요인의 해소에 의해 원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우리 생각으로는 원유에 투기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원유 생산 및 공급상의 제약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의 고유가가 쉬 해소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수요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중국 인도 등지에서의 수요증대를 살펴보자. 중국은 2002년 이래 매년 원유소비가 8%씩 증가하고 있고 1996년과 2006년 사이 원유소비량은 두 배가 되었다. 중국은 2005년에 자국 원유수요의 반 정도를 수입했다. 인도의 경우 2005년에서 2020년 사이 원유수입이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01년에서 2025년 사이 인도와 중국의 원유소비 증가 몫에서 자동차나 트럭 증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5%라는 예측이다.1) 미국 에너지부의 요청에 따라 2005년에 작성된 허쉬 보고서(Hirsch report)에 따르면 자동차와 트럭은 2006년에 미국 원유소비의 약 68.9%를 차지하고 세계적으로는 55%를 차지한다. 중국의 2008년 자동차 판매량은 약 15-20%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에서 자동차 보유가 본격화되면서 원유수요가 격증하고 있고,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등지로부터의 수요증대가 막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에서의 원유소비 증대도 상당하지만 이들 국가에서의 원유수요를 포함한 세계 원유수요 증가율은 199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연평균 1.76%에 불과하다. 2003-2004년에 가장 높은 3.4%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경제성장률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수요증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최근 몇 년 동안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최근 유가상승 원인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요인이 원유 생산 및 공급제약이다.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은 유전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지 않아 잉여생산능력이 별로 없고 세계적으로 원유 생산이 정점을 지났거나 조만간 정점이 도래할 상황(피크오일)을 일컫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에 조그마한 차질을 가지고 올 사건도 즉각 원유가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의 사례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인데 이는 6월 6일 10달러 이상 원유가를 올린 바 있다. 2) 피크오일 이제 피크오일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킹 휴버트가 제시해 1970년대 미국의 원유생산정점 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이 이론은 지금까지는 일부 극단적 비관론자들에게만 수용되다가 최근에는 주류 언론에도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원유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것에 기인하지 않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휴버트의 석유생산곡선은 종모양을 하는데 석유생산은 처음에는 지수적 성장을 하다가, 이후 정점이 있는 로지스틱 성장을 한다. 그리고 정점 이후 초기에는 석유생산이 천천히 감소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에는 지수적으로 감소한다. (그림 1 참조) 우선 비록 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원유생산 정점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유가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의 피크오일 시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이들에 따르면 이미 피크오일 시기가 지났거나 곧 도래한다는 것이다. 휴버트와 같이 작업했던 디훼이즈(Kenneth S. Deffeyes)는 2005년에,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는 2006년에 이미 피크오일에 도달했다고 하고, ‘피크오일 및 피크개스 연구연합회’(ASPO)의 창시자 캠벨(Colin Campbell)은 올해 6월 자료에서는 올해를 피크오일의 해라고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새로운 자료를 반영하여 피크오일 시기를 변경해가고 있는데 2011, 2010, 2007, 2008년으로 바뀌고 있으나 2010년 전후로 피크오일 시기를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1990년대 중반에 2000년을 피크오일 시기로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사우디 및 중동의 원유생산을 연구한 시몬스(Matthew Simmons)도 대체로 지금시기를 피크오일 시기라 이야기하고 있다.3) 참고로 2005년, 2006년, 2007년의 원유 생산량은 1일 평균 약 8,500만 배럴로 거의 동일하고, 2008년 1/4분기만을 보면 생산량은 2005-2007년에 비해 조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기업 등에서도 “값싼 원유 시기는 지나갔다”며 피크오일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원유매장량에 대한 판단의 차이, 장래 발견될 원유량의 차이, 오일 샌드 등 비전통적인 원유에 대한 판단의 차이 등에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은 각국이 발표하는 매장량, 특히 OPEC 회원국들이 원유생산 쿼터를 많이 할당받기 위해 부풀려온 매장량을 불신하고 대신 생산량, 원유 발견량, 원유채굴량 등에 기초해 피크오일 시기를 산정하고 매장량에 대한 판단도 독자적으로 진행한다. 피크오일 이후 원유생산량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도 논란거리이다. 급격히 하강하느냐 고원형태를 보일 것이냐. 별 준비 없이 전자의 사태를 맞이하면 석유문명은 공황, 전쟁 등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고 후자라 할지라도 석유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전자보다는 혼란이나 고통이 덜할 것이라는 것이다. 피크오일 시기의 유가는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 현재 고유가가 금융투기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투기거품 이후에 유가가 폭락해서 수요와 공급요인에 기초한 정상가격(펀더멘털한 요인에 의한 가격?)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런데 고갈가능성이 없고 단지 일시적으로 공급제약이 존재하는 상품에 대한 투기와 고갈 가능성이 있고 생산 정점이 다가왔거나 곧 다가올 석유에 대한 금융투기는 그 성격이 다를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한 수요 둔화, 에너지 절약 운동, 천연가스나 석탄의 교통수단을 위한 연료로의 전환 기술 개발 및 확산, 서아시아(중동)의 정치적 불안의 해소 등의 요인으로 인해 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는 있을 것이다.4)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야기하는 정상가격으로 유가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석유생산정점의 도래가 확실한 상황이라면 “대체에너지(궁극적으로는 태양에너지)에 대한 석유에너지의 경제적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는 유가의 상한선까지 올라 그 가격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5) 정상가격을 넘는 부분은 지대로 수취되면서. 만약 현재 석유의 생산 및 공급제약 상황이 석유생산 정점에 도달했거나 조만간 도달할 상황이라면 현재의 고유가의 문제를 미 의회에서처럼 투기자들을 색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고유가가 가까운 장래에 피크오일의 도래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원유생산 및 공급상의 제약이 어느 정도 뚜렷해 보여,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위기 등이 아니라면 고유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피크오일론자들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여기에 영향을 받아 고유가를 예상하고 있다.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는 원유가가 곧 150달러에 달할 것이라 발표를 했고, 골드만삭스에서는 그 보다 먼저 향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원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보다 극적인 사례로는 CERA(Cambridge Energy Research Associates)가 있다. 2008년의 유가폭등이 있기 전까지 CERA 의장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는 피크오일주창자들을 비판해 왔고, 유가가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을 해서 유명해졌는데, 올해 5월 7일에, 2008년 중 유가가 150달러에 이를 것이고, 이는 공급상의 제약 때문이라고 기존 견해를 뒤집었다. 고유가와 한국경제 고유가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에 또 다른 커다란 위기요인이 될 것이다. 고유가는 최근 화물연대 등 운수종사자들의 파업을 낳았다. 치솟은 경유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곡물가격 상승 역시 유가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고 이는 곡물가를 상승시키고 있다. 높은 가격의 원유에 대한 대체제로 바이오연료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고 있다. 당연히 곡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고유가는 이렇게 개별 산업에의 영향 이전에 물가나 경상수지 등 거시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고유가가 주요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원유수입액은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합계액를 보면 수입총액의 1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의 15.2%보다 3.6%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참고로 곡물수입액이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1.7%였다).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원유수입액이 약 170억 달러, 2008년 원유수입액이 약 270억 달러여서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약 100억 달러의 추가부담이 있었다. 이 대부분이 가격상승으로 인한 추가부담이었다. 4월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68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유가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면 이는 자칫 초민족적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낳고, 이는 다시 환율위기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어서 이것만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아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기자본이나 단기외채의 존재가 적은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로도 쉬 환율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대외채권 및 채무와 주식투자 및 직접투자를 망라한 대외투자와 외국인투자 잔액의 차이를 표시하는 순국제투자의 마이너스 규모는 최근년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고유가는, 특히 이것이 피크오일에서 기인한다면, 이런 단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 이전에라도 석유에 기댄 산업 및 소비생활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유가가 150달러에 다다르면 비상체제를 가동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서 경제성장 또는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식품안전이나 국가의 주권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의회비준을 서둘러 끝내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한 항의로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결국 파쇼적 탄압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고유가를 빌미로 에너지파시즘체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경제와 산업의 생태적 전환과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 민중적 대안의 관철이 절실해지고 있는 순간이다. 1) http://en.wikipedia.org/wiki/Oil_price_increases_of_2004-2006(2008년 6월 30일 검색)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2)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만으로는 이란의 원유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 변수도 금융투기와 연결이 되어 있다. 장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가능성, 만일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원유생산 감소분 등이 예측되어 원유 선물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현물시장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다. 관련해서 중동의 정치적 불안 해소와 이로 인한 유가 하락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원유 잉여생산능력이 줄어들고 원유 생산 및 공급제약이 뚜렷하다면, 세계 원유의 4분의 1 정도를 소비하는 미국이 세계 원유 매장량의 65% 정도를 점하고 있는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4.6% 정도인 것에 비춰보면 미국의 원유소비량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광대한 국토와 자동차 소유의 일반화가 주원인이라 하겠다.) 이란 등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중동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당연히 중동불안 해소로 인한 유가하락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본문으로 3)시몬스는 체니 부시 등과 가까운 인사라고 알려져 있다. 피크오일론자 중에 석유업계와 가까운 이런 사람이 존재하면서 피크오일론이 고유가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본문으로 4) 두 에너지원 모두 석유처럼 고갈가능성이 있는 에너지원이다. 천연가스의 고갈 시기는 석유보다 10-20년 후로 예측이 되고 있지만 최근 천연가스는 압축가스 상태(CNG)나 액체로 가공(DME)해 교통수단 연로로 쓰이고 있어 천연가스의 고갈 시기는 석유 고갈 시기에 근접해 갈 가능성이 높다. 석탄의 경우 논자에 따라 생산정점시기가 매우 다르나 석유나 천연가스보다는 가채년수가 훨씬 긴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석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어서 그 이용이 계속 확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본문으로 5) 윤소영,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공감, 2001 중 「금융세계화와 석유위기」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의료 민영화 안 하겠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서명이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 보건의료의 현실을 풍자한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도 큰 관심을 끌며 공동체 상영으로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광우병 문제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교육 자율화에 이어 의료민영화 반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압박에 부담이 되었는지 이명박 정부는 4월 29일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5월 20일에는 의료보험 민영화도 검토한 바도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의료민영화의 다른 이름인 의료 선진화를 내걸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안도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대표되는 의료민영화로 미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제주특별자치도 당국은 의료관광을 명분으로 제주도에 전면적인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을 계획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이미 허용된 제주도 내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자유화조치를 확대하여 국내 영리병원까지 허용하고 이들 영리병원에게 여러 특혜를 주는 조치가 포함되었다. 특혜 중 하나는 영리병원 마음대로 건강보험을 질병별로 선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여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다. 즉 제주도의 완전한 의료민영화다. 이 일은 제주도도 문제지만 전국적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극히 중대한 문제다. 정부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을 동일한 성격의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 지역 외에 올해 4월 군산 새만금 지역, 경기충남 서해안 지역, 대구경북지역이 추가되 사실상 전국에 걸쳐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료민영화 시도는 사실상 전국적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폐지, 영리병원 허용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의료민영화가 전국에 전면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와 마찬가지로 의료민영화를 말로는 안 하겠다고 하면서 밀실에서 야금야금 자신의 의도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의료의 현실 <식코>를 보면 미국 의료의 끔찍한 현실이 생생히 전달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또는 조세 기반의 국가건강서비스)이 없는 미국은 4인 가족의 평균 의료보험료가 월 100만원이며, 15일 독감입원비가 4,500만원이며, 병원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연간 200만 명인 나라다. 미국인의 16%에 해당하는 4천 7백만 명이 아무런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약 2천만 명은 급여가 불충분한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1억 8백만 명은 치과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15.3%를 차지해 OECD 국가 중 최저 6%인 한국은 물론, OECD 평균인 9%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미국은 OECD 30개 국가 중 기대수명 23위, 영아사망률 7위로 미국인의 건강 수준은 매우 나쁜 편이다. (둘 다 한국보다 더 떨어진다.) 미국의 현실이 이러한데 미국 민중들의 불만이 어떻게 관리될 수 있을까? 폭동이라도 일어나야 하지 않나? 미국도 공공병원, 지역보건센터, 비영리병원의 자선진료, 응급실 진료 등으로 보험 미적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갖추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메디케어로, 저소득층에게는 메디케이드로 정부가 최소한의 의료보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료보험제도는 잔여주의적 접근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건강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불평등은 극심하다. 그렇다면 한국 보건의료의 현실은 어떠한가? 1) 한국 의료비의 개인부담률은 38%로 OECD 평균 20%의 약 두 배다. 국민의료 중 공적재원의 비중은 53%로 OECD 평균 72.5%에 크게 못 미친다. 개인부담률(또는 본인부담률)은 보험금을 내고도 진료를 받을 때 총 진료비의 일부를 환자가 직접 지불하는 금액의 비율이다. 즉 진료 시 환자가 병원이나 약국에 직접 납부하는 돈의 비율이다. 우리는 보험료를 내고도 의료비의 40%를 병원에 직접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고액중증질환에 걸리거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환자와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한다. 유럽은 연 30-50만원 수준이고 대만도 연 160만원 이상 의료비는 정부가 책임을 진다. 한국도 6개월간 200만원 이상에 대해서는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국민건강보험 급여항목에만 적용된다. 고액중증환자들은 특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액검사와 약, 병실료 차액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따라서 고액중증환자들의 개인부담률은 60%수준까지 올라가는데 이 중에서 20-30% 수준인 급여항목에 대한 법정본인 부담금에 대해서만 상한제가 인정되기 때문에 나머지 비급여 부분은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한다. 민간의료보험 확대가 가져올 우울한 미래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병에 걸렸을 때를 걱정하여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암보험이니 다보장보험이니 하는 것들이다. 97년 1조원에 불과하던 민간의료보험이 이제는 8-10조원으로 불어나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30-40%에 이른다. 민간의료보험의 보험수입료는 1997년 생명보험사 총 보험수입료 중 3.1%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17%로 증가하여 연평균 45%씩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계 보험자본이 대거 진출하여 경쟁이 심화되고, 전체 가구의 60%이상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시장이 포화되었다. 따라서 보험자본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인이 부담하는 치료비를 대상으로 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은 암이면 얼마, 골절이면 얼마 하는 식으로 해당 질병의 발병 여부에 따라 실제 치료비용과 관계없이 일정금액을 지급한다. 반면에 실손형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되지 않는 개인부담금의 전부나 일부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사실 의료산업화와 실손형 보험 허용은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추진 의지를 더 강하게 표명하며 노골화한 것이다. 지난 5월 4일 삼성생명은 업계 최초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개인대상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인가를 받았다. 교보생명, 대한생명 등도 상품심사 중이다. 민간의료보험 확대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분명해보이기 때문에 아직 제도가 완전하지 않지만 시험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개인부담금을 돌려받는 실손형 보험은 보험료 외에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없거나 작기 때문에 과도한 의료이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보험자본도 의료지출이 늘어날 경우 자신의 이윤이 감소하기 때문에 과도한 의료비용 지출을 제어할 심사기준 등 갖은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개인병력과 건강정보가 중요하다. 지금 보험자본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개인 질병정보를 사기업인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도와 규제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병원, 요양기관 등)를 그대로 두고 실손형 보험이 확대되면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이 늘어 재정적자 규모를 키울 것이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크고, 정부가 민간의료보험의 몫을 적극적으로 확대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는 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절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불만족스러운 국민건강보험에 돈을 더 내기보다 개인적으로 민간의료보험을 선택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악화되고,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유인이 사라진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액-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낮은 보장성과 높은 개인부담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시나리오는 국민건강보험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민건강보험의 실질적 기능이 축소됨에 따라 이중형(병렬형)이나 대체형(경쟁형) 의료보험제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민간의료보험의 유형을 보충형, 이중형, 대체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적의료보장의 본인부담금이나 비급여에 대한 민간의료보험만 허용되는 것이 ‘보충형’이다. 공적의료보장 제도가 있으나 공적의료보장의 급여항목도 민간의료보험을 판매하는 경우가 ‘이중형’이다. 공적의료보장과 민간의료보험이 경쟁하고 선택 가입할 수 있는 것은 ‘대체형’이다.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은 비급여 이외의 항목도 보장하나,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에 강제가입되는 당연지정제 때문에 이중형이 아니라 보충형에 가깝다. 보험자본은 병원과의 독자적인 계약과 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한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우려된다. 인수위는 “국민건강보험은 향후 치료 가능한 질병의 의료비용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그 외의 비용을 담당할 민간 재원을 발굴해 보완적 관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은 기초적인 질병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민간보험을 확대하겠다는 안으로 당연지정제까지 폐지해 이중형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일단 국민건강보험 중심의 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의 이해가 개입한다면,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중 선택가입하는 대체형(경쟁형) 의료보험제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보험자본뿐만 아니라 금융자본 전체가 계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의료보험 민영화와 다르고, 의료보험 민영화 계획이 없다는 정부의 발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편 이명박 정부 일각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네덜란드형 의료보험제도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정부는 일단 내부적으로 네덜란드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여론의 변화나 정부 내 부처 간 역관계 변화에 따라 이후에 변형된 형태로 재등장할지도 모른다. 네덜란드는 삼중(3층)의 다소 독특한 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먼저 1층은 모든 네덜란드 거주민이 가입하는 ‘특별의료비지출제도’로 중증질환, 만성질환,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2층은 전 국민에게 의료보장을 제공하는데, 일정 소득선 이하의 국민들은 공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마지막으로 3층은 2층의 의료보험을 보충하는 민간의료보험이다. 2006년에 2층 부문이 소득에 따라 공적의료보험과 민간을 구분하던 장벽을 없애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공적의료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이 경쟁하도록 변했지만 기본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네덜란드형 의료보험제도는 국가의 관리를 통해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 운영은 민간에게 맡긴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특히 취약한 중증질환과 장기요양은 국가가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1층), 민간의료보험도 국가가 철저히 규제하고 관리한다. 또 민간보험도 비영리법인이 상당히 존재하며 정부가 강력히 통제하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을 네덜란드 식으로 바꾸자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체계를 다보험자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으로 근본적인 변화이다. 특히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부재하고 병원 등 요양기관의 90% 이상이 민영화된 상황에서 이러한 방향은 그나마 한국 보건의료의 제어판인 국민건강보험과 당연지정제를 무너뜨릴 것이다. 즉 네덜란드 제도를 응용하는 어떤 형태의 변화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본에 종속되는 우리의 건강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든, 네덜란드형이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민중의 보편적 건강권이 파괴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따라 보건의료도 금융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금융자본이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국민건강보험의 도입을 찬성하지만 번번이 제도 개혁에 실패하는 이유는 막강한 보험자본의 힘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보건조직(HMO) 방식의 관리의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90년대 클린턴의 의료개혁이 실패한 후) 의료비지출의 급격한 증가에 대한 대안으로 확산되었다. 관리의료는 하나의 조직에 보험-전달-지급을 통합하는데 이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민간보험(금융자본)이다. 민간보험은 비용절감, 즉 이윤확대를 최우선의 과제로 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의료과정에 개입해 비용절감을 주도하고 비용부담은 병원에게 전가한다. 병원과 의사는 보험회사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보험자본의 의료비절감 압력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의 보건의료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종속되었다. 또 미국 내 관리의료조직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자 미국의 보험자본은 관리의료를 수출했다.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초민족자본은 현지의 보험자본을 인수하거나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그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정부와 협정을 통해 그 지역의 의료체제에 개입했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협정은 보건의료서비스를 포함하는 공적 서비스를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적용했다. 따라서 보건의료서비스의 사유화와 탈규제를 강화하고 자본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게 되었다. 물론 협정 내 보건의료에 관한 일부 예외조항이 있으나 모호하고 협소하다. 논란이 생겼을 때는 세계무역기구 내 배심원들이 판단하는데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보건의료서비스에 보험자본이 진출하자 이용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서비스가 차별화되면서 건강불평등이 확산된다. 예외적으로 한국은 1980년대 말 이후 경제성장과 보건의료운동의 성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보건의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이 진행되었다. 현대아산병원(1989년 설립), 삼성의료원(1994년 설립) 등 재벌의 병원업 진출이 1990년대 본격화되었다. 재벌의 대형병원 설립은 한국의 병원운영을 뒤흔들었다. 유치 환자에 따라 의사의 임금이 차등지급되고, 서비스 정신이 강조되고, 상시 평가를 강요하는 등 노동과정 통제가 강화되었다. 병원 필수시설 중 급식, 시설관리, 구급차부터 외주화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또 고급병상과 고가의료장비로 의료서비스의 차등화를 추구하고, 병상확보 경쟁으로 급여시설(1-2-3차 병원) 사이의 분업이 완전히 망가졌다. 2007~8년에만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이 병상을 각각 1,000개씩 늘렸다. 중소병원이나 지역대형병원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고, 이화여대 동대문 병원이 문을 닫아야 될 정도다. IMF 이후에는 국립의료원과 공공병원이 대거 민영화되어 공공병원이 8%, 병상 기준으로는 15%가 안 된다. 미국 33%는 물론 OECD 평균 75%와 큰 차이다. 이제 정부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도 허용하려고 하고 있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민간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30-40%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으며, 이제 자신의 새로운 몫을 위해 한국의 의료보험제도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고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험자본과 정부의 변명이다. 하지만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보험자본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보험자본 입장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막는 것이 이윤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길이다. 보건의료의 문제가 곧바로 자본의 이해와 연결되는 것이다. 실손형 보험이 확대된다면 지금도 의료산업화 논리로 정부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힘이 더 강화될 것이다. 국내 1위의 보험자본인 삼성생명이 밝힌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에 따르면 실손형은 “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이다. 그 최종목표는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다. 즉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보험자본의 목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2007년 2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의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의료산업화의 과제로 ①영리병원 허용, ②당연지정제 폐지, ③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는 올해 3월 10일 기획재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경제운용계획”의 의료서비스규제완화와 일치한다. 즉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는 재벌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그 첨병인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 길은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을 망가뜨리고, 의료의 시장화를 부추겨 건강하게 살 민중의 권리를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권을 자본 측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이명박 정부의 결탁은 조만간 추진될 공기업 사유화 공세에서 더 분명해 질 것이다. 여기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운동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의료민영화를 막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보론] 적정모델의 재등장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적 보건의료 개혁에 맞서는 운동의 태세를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에 대중의 반발이 상당하다. 하지만 운동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직 합의된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식코 보기”나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 외에 구체적인 운동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이어야 하나? 지난 4월 25일 “이명박 정부 공공부문 사유화에 대한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정태인 씨는 ‘6만원 내기 운동’을 제안했다. 국민들이 1인당 약 6만 원씩 내는 민간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료로 내면 무상의료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험회사와 대형병원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정부가 못 받아들일 텐데 그러면 왜 못 받느냐는 식으로 문제제기하고, 실제 6만원 씩 모으는 방법도 가능하고, 건강보험 100%를 보장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대형병원과의 결탁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자리에서 오건호 씨는 정태인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악화에 맞서야하지만 대안 설정 의제가 중요하다. 우리 노동자가 보험료를 더 내자고 하는 화두를 전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2000년 시민운동 진영에서 주장하던 국민건강보험을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개혁해야한다는 ‘적정모형’의 새로운 판본으로 보인다(무상의료 판 적정모형). 적정모형은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저부담-저급여-저수가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국민건강보험 설계가 국민의 건강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낳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담-급여-수가 세 측면이 상호 악영향을 끼치면서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적정한 부담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기업과 노동자가 보험료를 50대 50 부담하는 한국은 예외적인 사례다. 기업부담 몫은 일본 56.4%, 프랑스 65.3%, 대만 60%다. 또 대만은 정부가 10%를 부담해 노동자가 실제 30%만 부담한다. 수치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보건의료의 문제는 보험제도나 보험료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요양기관(병원, 보건소, 장기요양 시설) 등 의료전달체계가 시장에 장악되어 왜곡되어 있고 병원자본, 제약자본, 보험자본의 이해가 과대 대표되고 있다. 여기에 의사, 약사 등 직능집단의 이해관계와 행위별수가제도 등 의료행위를 왜곡하는 각종 문제가 복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관계가 있다. 따라서 자본과 이명박 정부도 영리병원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한 묶음으로 다루었으며, 이것을 실현할 세부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여론에 떠밀려 당연지정제 폐지를 부인했지만, 근본적인 사회관계의 변화가 없으면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의료 시장화를 추구하는 정책방향을 고수할 것이다. 다만 때를 기다려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방법을 찾을 뿐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구조화된 현실에서 보험료 중 노동자의 몫을 자발적으로 인상하는 운동으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무상의료를 달성하자는 것이 가능할까. 국민들은 이미 보험료를 조금 더 낸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합리한 보건의료 관행, 병원과 제약회사, 의사, 약사들의 결탁,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경험한 것이다.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발하는 국민들은 이미 6만원 더 낸다고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 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하는지에 대한 상이 다르다. 보건의료나 사회복지는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 사회의 여러 부문의 하나가 아니다. 그 영역이 독자적이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이루는 방법이 좋은 정책설계, 여론과 미디어 활용, 선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문제는 현실의 계급관계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상층의 합의나 좋은 정책선전이 아니라 계급관계의 변화일 것이다. 1)한국 보건의료의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보험뿐만 아니라 언급해야할 주제들이 많다. 의원, 병원이나 보건소 등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문제, 지적재산권과 약가산정 등 제약자본의 문제, 의료 인력과 장기요양이나 노인과 관련된 사회서비스의 문제 등이 추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질병을 파악하는 생의학 모델의 한계와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하는 새로운 (생태적) 질병의 문제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을 주로 다룬다. 본문으로
의료 민영화 안 하겠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서명이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 보건의료의 현실을 풍자한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도 큰 관심을 끌며 공동체 상영으로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광우병 문제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교육 자율화에 이어 의료민영화 반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압박에 부담이 되었는지 이명박 정부는 4월 29일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5월 20일에는 의료보험 민영화도 검토한 바도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의료민영화의 다른 이름인 의료 선진화를 내걸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안도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대표되는 의료민영화로 미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제주특별자치도 당국은 의료관광을 명분으로 제주도에 전면적인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을 계획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이미 허용된 제주도 내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자유화조치를 확대하여 국내 영리병원까지 허용하고 이들 영리병원에게 여러 특혜를 주는 조치가 포함되었다. 특혜 중 하나는 영리병원 마음대로 건강보험을 질병별로 선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여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다. 즉 제주도의 완전한 의료민영화다. 이 일은 제주도도 문제지만 전국적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극히 중대한 문제다. 정부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을 동일한 성격의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 지역 외에 올해 4월 군산 새만금 지역, 경기충남 서해안 지역, 대구경북지역이 추가되 사실상 전국에 걸쳐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료민영화 시도는 사실상 전국적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폐지, 영리병원 허용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의료민영화가 전국에 전면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와 마찬가지로 의료민영화를 말로는 안 하겠다고 하면서 밀실에서 야금야금 자신의 의도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의료의 현실 <식코>를 보면 미국 의료의 끔찍한 현실이 생생히 전달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또는 조세 기반의 국가건강서비스)이 없는 미국은 4인 가족의 평균 의료보험료가 월 100만원이며, 15일 독감입원비가 4,500만원이며, 병원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연간 200만 명인 나라다. 미국인의 16%에 해당하는 4천 7백만 명이 아무런 의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약 2천만 명은 급여가 불충분한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1억 8백만 명은 치과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15.3%를 차지해 OECD 국가 중 최저 6%인 한국은 물론, OECD 평균인 9%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미국은 OECD 30개 국가 중 기대수명 23위, 영아사망률 7위로 미국인의 건강 수준은 매우 나쁜 편이다. (둘 다 한국보다 더 떨어진다.) 미국의 현실이 이러한데 미국 민중들의 불만이 어떻게 관리될 수 있을까? 폭동이라도 일어나야 하지 않나? 미국도 공공병원, 지역보건센터, 비영리병원의 자선진료, 응급실 진료 등으로 보험 미적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갖추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메디케어로, 저소득층에게는 메디케이드로 정부가 최소한의 의료보장을 제공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료보험제도는 잔여주의적 접근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건강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불평등은 극심하다. 그렇다면 한국 보건의료의 현실은 어떠한가? 1) 한국 의료비의 개인부담률은 38%로 OECD 평균 20%의 약 두 배다. 국민의료 중 공적재원의 비중은 53%로 OECD 평균 72.5%에 크게 못 미친다. 개인부담률(또는 본인부담률)은 보험금을 내고도 진료를 받을 때 총 진료비의 일부를 환자가 직접 지불하는 금액의 비율이다. 즉 진료 시 환자가 병원이나 약국에 직접 납부하는 돈의 비율이다. 우리는 보험료를 내고도 의료비의 40%를 병원에 직접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고액중증질환에 걸리거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환자와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한다. 유럽은 연 30-50만원 수준이고 대만도 연 160만원 이상 의료비는 정부가 책임을 진다. 한국도 6개월간 200만원 이상에 대해서는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국민건강보험 급여항목에만 적용된다. 고액중증환자들은 특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액검사와 약, 병실료 차액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따라서 고액중증환자들의 개인부담률은 60%수준까지 올라가는데 이 중에서 20-30% 수준인 급여항목에 대한 법정본인 부담금에 대해서만 상한제가 인정되기 때문에 나머지 비급여 부분은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한다. 민간의료보험 확대가 가져올 우울한 미래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병에 걸렸을 때를 걱정하여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암보험이니 다보장보험이니 하는 것들이다. 97년 1조원에 불과하던 민간의료보험이 이제는 8-10조원으로 불어나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30-40%에 이른다. 민간의료보험의 보험수입료는 1997년 생명보험사 총 보험수입료 중 3.1%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17%로 증가하여 연평균 45%씩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계 보험자본이 대거 진출하여 경쟁이 심화되고, 전체 가구의 60%이상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시장이 포화되었다. 따라서 보험자본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인이 부담하는 치료비를 대상으로 하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은 암이면 얼마, 골절이면 얼마 하는 식으로 해당 질병의 발병 여부에 따라 실제 치료비용과 관계없이 일정금액을 지급한다. 반면에 실손형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되지 않는 개인부담금의 전부나 일부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사실 의료산업화와 실손형 보험 허용은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추진 의지를 더 강하게 표명하며 노골화한 것이다. 지난 5월 4일 삼성생명은 업계 최초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개인대상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인가를 받았다. 교보생명, 대한생명 등도 상품심사 중이다. 민간의료보험 확대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분명해보이기 때문에 아직 제도가 완전하지 않지만 시험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개인부담금을 돌려받는 실손형 보험은 보험료 외에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없거나 작기 때문에 과도한 의료이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보험자본도 의료지출이 늘어날 경우 자신의 이윤이 감소하기 때문에 과도한 의료비용 지출을 제어할 심사기준 등 갖은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개인병력과 건강정보가 중요하다. 지금 보험자본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개인 질병정보를 사기업인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도와 규제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병원, 요양기관 등)를 그대로 두고 실손형 보험이 확대되면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이 늘어 재정적자 규모를 키울 것이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크고, 정부가 민간의료보험의 몫을 적극적으로 확대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는 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절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불만족스러운 국민건강보험에 돈을 더 내기보다 개인적으로 민간의료보험을 선택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악화되고,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유인이 사라진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액-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낮은 보장성과 높은 개인부담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시나리오는 국민건강보험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민건강보험의 실질적 기능이 축소됨에 따라 이중형(병렬형)이나 대체형(경쟁형) 의료보험제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민간의료보험의 유형을 보충형, 이중형, 대체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적의료보장의 본인부담금이나 비급여에 대한 민간의료보험만 허용되는 것이 ‘보충형’이다. 공적의료보장 제도가 있으나 공적의료보장의 급여항목도 민간의료보험을 판매하는 경우가 ‘이중형’이다. 공적의료보장과 민간의료보험이 경쟁하고 선택 가입할 수 있는 것은 ‘대체형’이다.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은 비급여 이외의 항목도 보장하나,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에 강제가입되는 당연지정제 때문에 이중형이 아니라 보충형에 가깝다. 보험자본은 병원과의 독자적인 계약과 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지정제 폐지를 요구한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우려된다. 인수위는 “국민건강보험은 향후 치료 가능한 질병의 의료비용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그 외의 비용을 담당할 민간 재원을 발굴해 보완적 관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은 기초적인 질병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민간보험을 확대하겠다는 안으로 당연지정제까지 폐지해 이중형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일단 국민건강보험 중심의 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의 이해가 개입한다면,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중 선택가입하는 대체형(경쟁형) 의료보험제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보험자본뿐만 아니라 금융자본 전체가 계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의료보험 민영화와 다르고, 의료보험 민영화 계획이 없다는 정부의 발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편 이명박 정부 일각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네덜란드형 의료보험제도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정부는 일단 내부적으로 네덜란드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여론의 변화나 정부 내 부처 간 역관계 변화에 따라 이후에 변형된 형태로 재등장할지도 모른다. 네덜란드는 삼중(3층)의 다소 독특한 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먼저 1층은 모든 네덜란드 거주민이 가입하는 ‘특별의료비지출제도’로 중증질환, 만성질환,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2층은 전 국민에게 의료보장을 제공하는데, 일정 소득선 이하의 국민들은 공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 마지막으로 3층은 2층의 의료보험을 보충하는 민간의료보험이다. 2006년에 2층 부문이 소득에 따라 공적의료보험과 민간을 구분하던 장벽을 없애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공적의료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이 경쟁하도록 변했지만 기본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네덜란드형 의료보험제도는 국가의 관리를 통해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 운영은 민간에게 맡긴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특히 취약한 중증질환과 장기요양은 국가가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1층), 민간의료보험도 국가가 철저히 규제하고 관리한다. 또 민간보험도 비영리법인이 상당히 존재하며 정부가 강력히 통제하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을 네덜란드 식으로 바꾸자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체계를 다보험자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으로 근본적인 변화이다. 특히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부재하고 병원 등 요양기관의 90% 이상이 민영화된 상황에서 이러한 방향은 그나마 한국 보건의료의 제어판인 국민건강보험과 당연지정제를 무너뜨릴 것이다. 즉 네덜란드 제도를 응용하는 어떤 형태의 변화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본에 종속되는 우리의 건강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든, 네덜란드형이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민중의 보편적 건강권이 파괴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따라 보건의료도 금융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금융자본이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국민건강보험의 도입을 찬성하지만 번번이 제도 개혁에 실패하는 이유는 막강한 보험자본의 힘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보건조직(HMO) 방식의 관리의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90년대 클린턴의 의료개혁이 실패한 후) 의료비지출의 급격한 증가에 대한 대안으로 확산되었다. 관리의료는 하나의 조직에 보험-전달-지급을 통합하는데 이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민간보험(금융자본)이다. 민간보험은 비용절감, 즉 이윤확대를 최우선의 과제로 하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의료과정에 개입해 비용절감을 주도하고 비용부담은 병원에게 전가한다. 병원과 의사는 보험회사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보험자본의 의료비절감 압력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의 보건의료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종속되었다. 또 미국 내 관리의료조직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자 미국의 보험자본은 관리의료를 수출했다.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초민족자본은 현지의 보험자본을 인수하거나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그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정부와 협정을 통해 그 지역의 의료체제에 개입했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협정은 보건의료서비스를 포함하는 공적 서비스를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적용했다. 따라서 보건의료서비스의 사유화와 탈규제를 강화하고 자본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게 되었다. 물론 협정 내 보건의료에 관한 일부 예외조항이 있으나 모호하고 협소하다. 논란이 생겼을 때는 세계무역기구 내 배심원들이 판단하는데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보건의료서비스에 보험자본이 진출하자 이용자의 지불능력에 따라 서비스가 차별화되면서 건강불평등이 확산된다. 예외적으로 한국은 1980년대 말 이후 경제성장과 보건의료운동의 성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보건의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이 진행되었다. 현대아산병원(1989년 설립), 삼성의료원(1994년 설립) 등 재벌의 병원업 진출이 1990년대 본격화되었다. 재벌의 대형병원 설립은 한국의 병원운영을 뒤흔들었다. 유치 환자에 따라 의사의 임금이 차등지급되고, 서비스 정신이 강조되고, 상시 평가를 강요하는 등 노동과정 통제가 강화되었다. 병원 필수시설 중 급식, 시설관리, 구급차부터 외주화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또 고급병상과 고가의료장비로 의료서비스의 차등화를 추구하고, 병상확보 경쟁으로 급여시설(1-2-3차 병원) 사이의 분업이 완전히 망가졌다. 2007~8년에만 삼성의료원, 현대아산병원이 병상을 각각 1,000개씩 늘렸다. 중소병원이나 지역대형병원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고, 이화여대 동대문 병원이 문을 닫아야 될 정도다. IMF 이후에는 국립의료원과 공공병원이 대거 민영화되어 공공병원이 8%, 병상 기준으로는 15%가 안 된다. 미국 33%는 물론 OECD 평균 75%와 큰 차이다. 이제 정부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도 허용하려고 하고 있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민간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30-40%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으며, 이제 자신의 새로운 몫을 위해 한국의 의료보험제도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고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험자본과 정부의 변명이다. 하지만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보험자본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상충된다. 보험자본 입장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막는 것이 이윤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길이다. 보건의료의 문제가 곧바로 자본의 이해와 연결되는 것이다. 실손형 보험이 확대된다면 지금도 의료산업화 논리로 정부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힘이 더 강화될 것이다. 국내 1위의 보험자본인 삼성생명이 밝힌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에 따르면 실손형은 “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이다. 그 최종목표는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다. 즉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보험자본의 목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2007년 2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의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의료산업화의 과제로 ①영리병원 허용, ②당연지정제 폐지, ③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는 올해 3월 10일 기획재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경제운용계획”의 의료서비스규제완화와 일치한다. 즉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는 재벌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그 첨병인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 길은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을 망가뜨리고, 의료의 시장화를 부추겨 건강하게 살 민중의 권리를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권을 자본 측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이명박 정부의 결탁은 조만간 추진될 공기업 사유화 공세에서 더 분명해 질 것이다. 여기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운동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의료민영화를 막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보론] 적정모델의 재등장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적 보건의료 개혁에 맞서는 운동의 태세를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에 대중의 반발이 상당하다. 하지만 운동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직 합의된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식코 보기”나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 외에 구체적인 운동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이어야 하나? 지난 4월 25일 “이명박 정부 공공부문 사유화에 대한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정태인 씨는 ‘6만원 내기 운동’을 제안했다. 국민들이 1인당 약 6만 원씩 내는 민간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료로 내면 무상의료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험회사와 대형병원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정부가 못 받아들일 텐데 그러면 왜 못 받느냐는 식으로 문제제기하고, 실제 6만원 씩 모으는 방법도 가능하고, 건강보험 100%를 보장하라는 압박을 가하면서 대형병원과의 결탁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자리에서 오건호 씨는 정태인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악화에 맞서야하지만 대안 설정 의제가 중요하다. 우리 노동자가 보험료를 더 내자고 하는 화두를 전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2000년 시민운동 진영에서 주장하던 국민건강보험을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개혁해야한다는 ‘적정모형’의 새로운 판본으로 보인다(무상의료 판 적정모형). 적정모형은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저부담-저급여-저수가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국민건강보험 설계가 국민의 건강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낳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담-급여-수가 세 측면이 상호 악영향을 끼치면서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적정한 부담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기업과 노동자가 보험료를 50대 50 부담하는 한국은 예외적인 사례다. 기업부담 몫은 일본 56.4%, 프랑스 65.3%, 대만 60%다. 또 대만은 정부가 10%를 부담해 노동자가 실제 30%만 부담한다. 수치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보건의료의 문제는 보험제도나 보험료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요양기관(병원, 보건소, 장기요양 시설) 등 의료전달체계가 시장에 장악되어 왜곡되어 있고 병원자본, 제약자본, 보험자본의 이해가 과대 대표되고 있다. 여기에 의사, 약사 등 직능집단의 이해관계와 행위별수가제도 등 의료행위를 왜곡하는 각종 문제가 복합되어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관계가 있다. 따라서 자본과 이명박 정부도 영리병원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한 묶음으로 다루었으며, 이것을 실현할 세부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여론에 떠밀려 당연지정제 폐지를 부인했지만, 근본적인 사회관계의 변화가 없으면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의료 시장화를 추구하는 정책방향을 고수할 것이다. 다만 때를 기다려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방법을 찾을 뿐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구조화된 현실에서 보험료 중 노동자의 몫을 자발적으로 인상하는 운동으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무상의료를 달성하자는 것이 가능할까. 국민들은 이미 보험료를 조금 더 낸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합리한 보건의료 관행, 병원과 제약회사, 의사, 약사들의 결탁,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경험한 것이다.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발하는 국민들은 이미 6만원 더 낸다고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 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하는지에 대한 상이 다르다. 보건의료나 사회복지는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 사회의 여러 부문의 하나가 아니다. 그 영역이 독자적이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이루는 방법이 좋은 정책설계, 여론과 미디어 활용, 선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문제는 현실의 계급관계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상층의 합의나 좋은 정책선전이 아니라 계급관계의 변화일 것이다. 1)한국 보건의료의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보험뿐만 아니라 언급해야할 주제들이 많다. 의원, 병원이나 보건소 등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문제, 지적재산권과 약가산정 등 제약자본의 문제, 의료 인력과 장기요양이나 노인과 관련된 사회서비스의 문제 등이 추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질병을 파악하는 생의학 모델의 한계와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하는 새로운 (생태적) 질병의 문제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을 주로 다룬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