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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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민을 위협하는 최악의 연쇄살인범(?)은?
1년에 423명의 은평구민이 서초구민보다 더 사망하고 있다
김태훈(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지난 1년간 은평구민을 423명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이 있다. 우리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연쇄살인범에 경악하는 이유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 슬픔이나 동정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1년간 423명의 은평구민을 앗아간 이 범인에게선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범인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건강불평등 문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건강형평성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서초구의 5년 동안 10만명 당 성연령표준화사망률이 1,770인 것에 비해 은평구는 2,242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1년에 423명의 은평구민이 서초구민보다 더 사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친 비유를 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다.
그러나 건강불평등으로 인한 죽음 역시 본인이 느끼지는 못할 수 있지만 억울한 죽음, 피할 수 있었던 죽음으로 학자들은 분류한다. 우리는 개인이 저지르는 극단적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사회구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구조적 문제는 용어도 어렵고, 복잡해서 잘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구조적 문제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은평구도 전국 평균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다. 우리나라 모든 지역을 조사해보면, 대도시에 비해 농어촌, 산간지역의 사망률은 매우 높다. 2006년 통계로 사망률이 가장 높은 H군은 서초구에 비해 사망률이 2배가 높다. 서초구민이 4명이 사망할 때 은평구민은 5명이 사망하고 H군민은 8명이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야를 더욱 넓혀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람들이랑 비교해보면 어떨까. 20세기 동안 선진국,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60세에서 80세로 늘어나는 동안 아프리카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여전히 40세에 머물러 있다.
반대로 시야를 좁혀본다면 은평구 내에서도 건강불평등이 존재한다. 지난해 최초로 시행된 은평구민 건강실태조사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자신의 건강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늘어난다.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고혈압, 우울증 등에 더 많이 걸려있었다. 지역 내에서도, 국가 내에서도, 전 지구적으로도 건강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건강불평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구조적 문제는 사실 일상에서 겪는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생각해보자. 은평구의 50대 경비원 아저씨는 자기가 서초구의 50대 판검사 아저씨보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살고 계시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건강검진을 한 다음에 서초구 아저씨보다 일찍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말해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 글을 읽는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못 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는 발전해왔지만 소득불평등은 심화되고 있고, 사회적 배제라는 측면에서 빈곤은 확대되고 있다. 빈곤은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없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추천하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사먹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이 사는 낡은 집, 반지하방은 습기가 차고, 공기가 탁하다. 빈곤이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못 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로 조금씩 확보할 수 있었던 노동자의 권리가 다시 침해되고 있다. 정부는 투기로 인해 손해를 본 경영자와 투자자는 구제금융으로 도와주지만, 그동안 골병들어가며 일해 온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노동자들은 이러한 해고 걱정 속에서 임금이 낮아도 참고 일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며,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못해서 아프거나, 나이 들어도 도움 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불평등도 한 이유다
건강불평등의 마지막 이유는 의료불평등이다. 제대로 치료를 못 받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여전히 병원비는 비싸다. 이미 대형병원은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보다 이윤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더 고민하는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것을 의료민영화가 진행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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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은 늘어나는데 복지는 늘어나지 않는 것, 돈 가진 투자자만 돈을 벌고 일하는 노동자는 몸만 망가지는 것, 공공 건강보험을 더 좋게 만들지는 않고 민간보험에 가입하라고 홍보하는 것. 신자유주의라고도 불리는 이런 생각들, 법들, 제도들은 사실 ‘돈 없으면 일찍 죽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IMF이후 우리가 그런 제도들, 그런 생각들에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돈 없으면 일찍 죽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오래 살려면 역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건강불평등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변해야 바뀐다. 우리 사회가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우리는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고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건강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그리고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다. 유엔의 인권선언에도, 대한민국의 헌법도 이를 보장하고 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 그 권리 선언의 첫걸음
은평구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시작하고 있는 ‘누구나 건강한 은평구 만들기’ 캠페인은 그러한 권리 선언의 첫걸음이다. 건강보험료 1만원이하 가구의 보험료 대납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 재정을 구청에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가 현실화되는 것을 넘어서 여러 시민의 참여와 아이디어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
기사입력: 2010/04/23 [10:23] 최종편집: ⓒ 은평시민신문 Copyrights ⓒ epnews.net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은평시민신문에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상업 목적의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