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한강르네상스, 경제문화도시마케팅, 도심균형발전, 디자인 서울. 화려한 수사가 말해 주듯 서울시는 온갖 개발정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북을 비롯한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환경 친화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만든다는 이유로, 서울을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만든다는 이유로 온갖 개발들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개발정책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 4개년 계획으로,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개발정책을 통해 시민의 삶이 더 나아졌는가? 오히려 반대라는 여론이 더욱 짙다. 서울시 곳곳의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가 하면 세입자, 영세가옥주, 영세상공인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형편에 놓여 있다. 멀쩡한 집들을 뉴타운 개발한답시고 무너뜨리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폭등하여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이 더 싼 집을 찾아 서울외곽으로 이사해야 할 처지다. 또한 2010년 디자인 수도 서울을 만든다며 명품거리, 디자인거리 운운하며 서민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한 작은 노점 자리 하나, 가판대 하나 허용치 않고 다 철거해 버리고 있다. 또한 서울 곳곳의 재래시장을 무너뜨리고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가 하면 개발지역에 묶여 재래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형편에 처하게 된다. 또한 매우 열악하지만 최후의 주거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쪽방촌, 비닐하우스촌은 그곳에서 살아온 이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재개발 위기에 놓여 있다. 이처럼 서울시의 개발정책들은 시민들을 이에 적합한 시민과 적합하지 않은 시민들로 구분하고 적합하지 않은 시민들을 서울이라는 공간 자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 개발정책은 가난한 이들을 칼로 도려내듯 쫓아내거나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 과연 서울시는 누구를 위한 맑고 매력 있는 도시 서울을 만들려 하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 4개년 계획으로 진행되는 개발정책이 가동된 지 2년, 꼭 절반이 되는 현재, 서울시 주요 개발정책을 평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개발정책을 이어가다 현재 서울시 개발정책은 이명박 전 시장의 정책을 이어가고 보완한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복원 공사의 사례처럼 도시경쟁력 강화라는 기조로 장소의 상품성을 강화하고 환경, 문화의 가치를 접목하는 개발을 진행했다. 오세훈 시장도 이런 ‘신개발주의’를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경제문화도시 마케팅이나 도시균형발전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들을 살펴보면, 한강르네상스프로젝트는 노들섬을 문화컨벤션으로 개발하겠다며 이명박 전 시장의 오페라하우스계획을 더 확대한다. 그리고 동대문동장을 공원과 디자인콤플렉스로 병행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생태, 문화 코드를 섞어 개발사업에 대한 비판의식 자체를 흐리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개발정책이 가진 문제들을 오세훈 시장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더 가중시킨다. 뉴타운과 재개발 완화의 차이 하지만 최근 오세훈 시장은 자신의 개발정책이 이명박 전 시장과 큰 차이가 있는 양, 현 서울시 사업인 한강르네상스와 대운하 사업 관련성이 문제가 되자 한강르네상스 추진이 우선임을 분명하게 표명했고, 이명박 전 시장 때부터 강하게 추진해오던 뉴타운도 당분간 지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특히 뉴타운 경우 서울시에만 35 곳이 추진 혹은 고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뉴타운사업은 이미 재개발요건과 개발규제 완화, 대형규모의 명품아파트 조성, 사립학교와 병원, 학원 건립에 특혜를 주어 지주들에게 무수한 불로소득을 보장해주었다. 반면 세입자는 턱없이 비싼 임대주택 임대료로 인해 세입자의 84%가 강제 퇴출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추가 뉴타운 지정 없다’는 발언은 총선시기에 뉴타운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내뱉은 기만에 불과하다. 뉴타운이 더 이상 지정되지 않더라도 현재 서울시는 재개발 지정요건자체를 대폭 완화하여 뉴타운 20개를 추가 지정하는 효과에 맞먹는 ‘재개발 완화 조례개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서울시의회에 상정해 놓은 상황이다. 이 안은 7월 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이는 이명박 식 개발정책, 불도저식 개발정책과 다를 수 없으며, 시민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디자인 서울, 무엇을 디자인 하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을 개발정책의 핵심적인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질서한 도시를 강조하며 통합된 디자인을 통해 도시공간을 재구성하고 도시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시장 직속기관으로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두고 앞서 말한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디자인콤플렉스 건설뿐만 아니라 서울의 도시경관, 가로보행 환경, 한강변 경관과 시설물, 거리와 간판 디자인까지 직접 관여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디자인으로 인정받는 도시가 되기 위해 제1회 세계디자인수도 2010-2011을 유치하고, 이를 위해 디자인정보인프라를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서게 될 ‘월드디자인플라자’ 중심으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말하는 디자인은 과연 무엇인가? 인공적인 자연과 고도의 산업화가 어우러 관광상품이 되는 디자인, 세련되고 깔끔한 도시경관,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자주하는 얘기하는 명품도시일 것이다. 명품이라는 말이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칭하는 말로 통용되듯이, 명품도시도 동일한 뜻이다. 한강에 인공섬을 만들고 영세한 한강가판대를 없애고 고급레스토랑을 만든다든지 서민들의 삶의 터전들을 무너뜨려서라도 공원과 분수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 되는 디자인 서울. ‘명품이라는 성격에 노점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에서 서울시가 말하는 ‘명품’, ‘디자인’의 기준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거리를 디자인하다? 서민, 거리에서도 쫓겨나다! 서울시의 경제문화도시마케팅 사업은 거리를 쾌적한 거리,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든다며 거리에 디자인 개념들을 적용하고 있다. 도시경관을 쾌적하고 깔끔하게 조성한다는 것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거리를 정비하고 간판을 새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노점상, 노숙인, 가판대들을 맑고 쾌적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에게 선심성 선물인 양 다양한 정책들을 내어 놓고 있으나 실상은 그들을 도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과거부터 도시의 빈곤계층들에게 자주 취해 왔던 방식이다. 즉 도시환경미화라는 명목으로 도시에 있는 빈곤층들의 삶터, 일터를 더러운 것, 사라져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청소’, ‘싹쓸이’라는 말로 통칭되듯 도시외곽으로 이들을 쫓아낸다. 노점상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노점시범거리와 디자인 거리 2007년 2월 서울시는 일부 노점상을 합법화하는 ‘노점시범거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점특별관리대책’을 발표하였다. 서울시는 노점상을 위한 정책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노점특별관리대책의 목적에도 나오듯이 노점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이 아니라 도시환경미화를 위한 도로환경개선정책이다. 주 내용은 자치구별로 노점시범거리를 한 곳씩 지정하고, 오후 4시부터 장사를 허용하는 시간제를 적용하고, 가판대를 규격화하며, 품목을 제한함으로써 (먹거리 제외) 도시 상품화와 경쟁력에 부합되는 노점상만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노점상 규모를 12,000여 명 정도로 보고 있는데 (이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다. 대한국토계발학회 조사는 1998년 서울시 노점상을 총 187,629 명으로 제시했다), 사업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서울시가 시범가로를 서울 전역에서 실시하면 12,000여 노점 중에 절반 이상은 퇴출될 것”이다. 소수의 노점상만을 노점시범가로에 유치하고 이를 명분으로 나머지 대다수 노점상에 대해서는 ‘전 자치구의 동시다발적 단속’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노점상 단체인 ‘전국노점상총연합’은 이 노점시범거리가 노점상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점상을 분열시켜 결국 노점상 자체를 제거하는 정책으로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한다. 또한 노점시범거리는 난항을 거듭했고, 현재 1년이 지났지만 3개구에서만 운영되고 있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울시는 ‘디자인거리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디자인거리는 거리의 시설물을 통합 개선하고 거리 자체를 디자인 전시장으로 만들어 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25개 자치구마다 하나의 디자인 명품거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며 시범적으로 2008년까지 10개 자치구에 조성할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디자인 거리 역시 기존 노점상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노점상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강남이나 관악구에서는 디자인거리를 명분으로 한 노점상 단속이 본격화되고 있다. 관악구의 경우 지난해부터 디자인거리 조성을 위해 용역을 동원한 폭력적인 노점단속이 진행되었고, 노점상에게 과도한 과태료를 매기고 10여 명의 노점상들에게 90건의 고소고발을 하는 등 치졸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조차 내쫓는 경제문화도시마케팅사업 서울시 개발정책은 도시환경미화라는 이유로 노점상들을 제거하려는 방식과 동일하게 노숙인에 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2007년 초부터 일부 자치구와 노숙인 복지단체 회의를 통해 ‘거리노숙인 밀집지역 주간 상주행위 단속철저’ 방침을 하달하였다. 이는 오세훈 시장의 5대 핵심 프로젝트의 하나인 경제문화도시마케팅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거리 노숙인이 서울시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므로 1200만 명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그 후 서울시는 순찰대 운영, 거리급식 근절대책, 쉼터 입소 홍보행사, 시민 설문조사 등 시설입소를 위한 일련의 방안들을 쏟아내었다. 서울시는 상담목표제를 통해 각 노숙인 상담보호센터별로 시설입소 할당량을 배분하여 시설 입소자 ‘숫자’로 실적을 평가하고 있다. 이는 서울시가 상담보호센터를 거리노숙인 청소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동일한 목적으로 무료급식 단체들의 급식행위를 중단시키는 거리급식 근절책을 시행하고 있다. 거리급식으로 인한 문제는 실내급식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예산을 핑계로 노숙인의 밥줄을 끊어 경제문화도시마케팅이라는 돈 줄을 쥐겠다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노숙인 순찰대란 반인권적 용역반을 조직, 운영함으로서 노숙인 복지 예산낭비는 물론 노숙인 인권침해를 조장하고 있다. 이는 노숙인 복지 10년의 역사가 갖춰온 지원체계 자체를 뒤흔든다. 돈이 되는 한강 만들기, 한강르네상스 서울시가 최근 가장 주력하는 개발사업인 한강르네상스는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문화자원인 한강을 친환경적 도시발전전략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서울의 중심으로 재편성하기 위해 한강에 인공섬이나 생태공원을 만들고, 강 주변에 수변타워를 조성하는 개발계획이다. 한강을 생태적,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며 내세운 것이 또다시 거대한 개발정책이라는 것은 안타깝다. 회복과 창조라는 기치로 진행되는 한강르네상스는 친환경, 문화라는 이름을 통해 한강 주변지역들(특히 워터프런트타운(수변타운)이 예정되어 있는 용산, 마곡, 여의도, 난지, 잠실, 행당, 흑석, 당인리)의 대대적인 개발을 촉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주거권 박탈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은 한강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그 지역의 원주민들을 전혀 고려치 않고 철저히 건설자본을 비롯한 대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세련되고 상품성 있는 공간을 위해 현 한강매점 상인들은 한강르네상스 사업 과정에서 민자유치 방식으로 쫓겨나거나 대자본에게 포섭되고 있으며, 이 자리에 편의점, 고급 레스토랑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는 한강매점 상인이 괴물과 싸워 이기지만, 현실에서는 대자본이라는 괴물 앞에 한강매점 상인은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한강르네상스와 맞물려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편입된 서부이촌동 일대 주민들은 심각한 주거권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는 서부이촌동 일대를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성공을 위해 지어진 지 2년에서 7년밖에 되지 않은 아파트를 전면수용 방식으로 철거하여, 한강 나루터를 만들겠다며 이곳 주민들의 주거권을 철저히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한강르네상스라는 오세훈 시장의 치적을 위해 원주민을 철저히 무시하는 개발, 공공의 공간마저 상품화하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개발정책에 맞선 대응과제 이처럼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된 서울시 개발정책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디자인서울, 한강르네상스로 대표되는 개발정책은 도시공간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반면 공공성을 파괴한다. 서울시 개발정책이 다수의 시민을 위한 개발정책이라면 개발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기 내 개발완료를 목표로 삼아선 안 되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개발과정에 적절한 조치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개발정책은 신속성을 위해 서민, 특히 도시빈민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 도시경쟁력을 위한 개발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실상 공공성보다는 상품성에 더 치중하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개발이든지 간에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거나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면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나 권리보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보상들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발이익에만 눈독을 들이는 개발지상주의에서는 이런 절차를 찾아 볼 수 없다. 살고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유령 취급하고, 자신의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식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을 이명박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불도저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이런 불도저식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비효율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전조사가 미흡하다 보니 사업이 쉽게 실패하기도 하고,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이 진행되기보다는 자본의 이익만을 바라보고 새 건물 무너뜨리고 또 새 건물 짓는 비효율적 정책들이 진행된다. 대표적인 예가 멀쩡한 건물들 부수면서 강행되는 뉴타운 개발이며, 동대문 풍물시장을 운영한 지 3년 만에 다시 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강르네상스 사업처럼 도시공간이 자본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도시빈곤층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오세훈 시장의 개발정책은 부동산 폭등으로 개발업자, 투기꾼, 부자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지만 대부분의 시민들, 특히 도시빈곤층에게는 주거권, 생활권, 노동권 자체를 위협한다. 뉴타운과 온갖 개발정책은 대부분의 세입자를 비롯해 원주민, 영세상인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몬다. 또한 경제문화도시마케팅 사업, 디자인서울을 명분으로 노점상, 노숙인을 거리에서조차 쫓아내려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오세훈 시장의 개발정책은 서민으로 지칭되는 대다수 서울시민들의 주거권, 노동권, 생활권들을 박탈하지만 이 개발의 바람은 멈출 줄을 모른다. 개발은 모두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여야 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층, 빈곤층을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의 개발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점상, 노숙인과 같이 사회적 빈곤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도시환경미화의 관점으로 접근하여 문제를 덮는 방식은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다. 빈곤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도시빈곤계층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사회 약자을 비롯해 개발에서 밀려나는 이들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 개발정책의 이름이 화려하고 다양하듯이 그것이 대다수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매우 다양하고 심각하다. 경쟁력 강화, 도시공간의 상품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진행되는 현 개발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공간도, 최후의 생계수단인 노점 자리도, 노동의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사람답게 살 권리의 박탈이다. 이 권리에 대한 요구들을 만들고 조직하는 일이 시급할 것이다. 서울 시민의 주거권, 노동권, 생활권을 지키기 위해 빈민운동과 시민사회운동 단위들의 공동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분명히 각 단위들은 서울시 개발정책 맞서 항의해 왔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개발정책으로 인한 권리침해 상황은 매우 총체적이며, 따라서 총체적인 삶의 권리를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사회운동단체들 간의 적극적인 연대,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다 표적단속과 강제추방, 그 후에는?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었다. 1994년 1월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경실련 강당농성, 1995년 1월 네팔 산업기술연수생 13인의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투쟁 등이 그것들이다. 그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2000년에 이주노동자 투쟁본부가 결성되었고 이는 2001년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로 이어졌다. 2003년 11월에는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단을 구성하여 386일 동안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농성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대거 형성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에 의한, 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으로서 서울경인이주노조가 2005년 4월 건설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투쟁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단속추방이라는, 목숨을 내놓는 것과도 같은 위험을 무릅쓰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제기해야 하고, 나아가 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국경 없는 연대를 통해 전체 노동자의 해방을 앞당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내던져 노조를 결성하고 이를 사수해 왔다. 그 과정에서 표적단속 되고 강제추방 된 이들은 부지기수다. 평등노조이주지부 활동가인 비두,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장 샤말, 이주노조 초대위원장 아느와르, 3대 위원장 까지만, 부위원장 라주, 사무국장 마숨, 3대 보궐 위원장 토르너, 부위원장 소부르 등이 대표적인 이들이다. 많은 이주노조 지부장, 간부, 조합원 등도 단속추방 당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표적단속과 강제추방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단속과 추방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단속에서 추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겪는 인격적인 모욕은 물론이거니와 범죄자 취급이나 보호소의 반인권적 환경으로 인한 분노, 한국에서의 생활과 활동을 정리할 최소한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본국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등은 심리상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필자의 눈앞에서 붙잡혀간 토르너 위원장이 분노와 아쉬움으로 보호소 면회실에서 흘리던 눈물, 연행 당하던 당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마냥 전화번호 수첩이 펼쳐져 있고 이런저런 명함이 널려있었던 소부르 부위원장의 쓸쓸한 방을 생각하면 그들의 심사가 어떨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짐을 이리저리 챙기고 통장의 돈을 찾아서 보내주고 안부 전화를 하고 하지만 역시 쓰리고 뼈저리기는 마찬가지다. 하도 강제추방을 당하다보니,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의 이주운동과 연계를 가지며 본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예전부터 있었다. 이미 네팔에서는 샤말과 버즈라 동지가 네팔노총(General Federation of Nepali Trade Union, GEFONT)에서 이주위원회(Migrant Committee)를 만들어 이주노동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두 동지가 BPS(Bikrampur Patriot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공동체 운동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었다. 또 어떤 동지는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했다. 최근에 본국으로 돌아간 동지들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운동 경험을 본국에서의 활동으로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본인들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국 적응과 생계 때문에 활동이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그것이 그 나라와 한국의 노동자운동에 기여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진1%] 국제회의 제안 경과 이주노동자들이 일단 나라로 추방되면 운동의 경험이 단절되고 더 이상의 관계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이주노동자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여러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을 일찍부터 지원하여 그 나라에서 NGO 활동을 하도록 돕는 상황이다. 또한 이주노조로서는 계속되는 국가권력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표적단속과 강제추방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올해 초부터 전 평등노조이주지부 사무국장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안되었고 6월경에 가능한 사람들이 네팔에서 모여서 회의를 가지자는 내용이 이메일과 국제전화 등을 통해서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주노조도 제안을 접하고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런 동지들이 한국에서 활동했을 당시 한국의 노동자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서로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의 중요한 신뢰 및 동지애를 형성했다. 이 신뢰와 동지애는 연대 및 공동 활동의 든든한 바탕을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주노조는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과 체계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조직적으로 묶어내지 못했다. 그러하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서 각 나라의 정세/조건을 확인하고 한국과 송출국 노동운동 사이의 지속적인 소통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하며 추후 공동의 조직사업과 투쟁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회의 제안문-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한 것은 다음과 같다. 각국의 정치상황, 노동 사회 이주운동 상황을 공유하고 활동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고용허가제(EPS) 노동자 교육과 조직, 세계이주민의 날 등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공동활동을 논의한다. 한국 이주노조 탄압 현황을 공유하고 공동의 대응 방향을 논의한다. 송출국에서 이주하는 노동자들의 교육 및 조직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이를 추진 할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조 사이의 소통 및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송출국에서 이주노동자 이슈에 대한 연대체 형성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확인하고 미래 활동의 영감을 키운다. 이러한 목표를 현지에서 참가자들과 다시 한 번 공유하고 2박 3일 간의 회의를 진행하였다. 참고로 회의 주최는 이주노조와 네팔동지회(가칭), 방글라데시동지회(가칭)였고 경북일반노조,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건설노조, 금속노조,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민주노총서울본부, 문화연대,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전교조, 참세상 변정필 동지, 금속노조 김혁 동지 등이 재정후원을 해주었다. 2박 3일의 발걸음 드디어 6월 12일 오후에 회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이번 회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주목하고 있던 네팔노총에서는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여 힘을 실어 주었고, 또 다른 노총인 네팔노조회의(Nepali Trade Union Congress)에서도 부위원장이 참석하였다. 네팔에서는 주요 정당별로 이를 지지하는 노총이 있는데, 지난 4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1당이 된 네팔공산당(마오이스트, CPN-M) 계열로 전네팔노조연맹(All Nepal Federation of Trade Union), 2당이 된 국민의회당(Nepali Congress Party) 계열의 네팔노조회의, 3당이 된 네팔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 CPN-ML. 흔히 UML이라고 함) 계열의 네팔노총이 있다. 네팔노총이 35만 명 규모로 가장 크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 정치 상황은 현재 지난 4월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가 구성되었고 1차 회의에서 왕정폐지를 선언해서 왕이 시민이 되어 왕궁에서 쫓겨난 상태다. 601석의 제헌의회 의석에서 마오이스트가 220여석으로 과반에서 약80석이 모자라는 1당이 되었고, 국민의회당이 40여석, UML이 30여석으로 3당이 되었다. 이 세 당이 권력분점(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놓고 정치협상을 하고 있고 제헌의회에서는 2년의 시한을 두고 헌법 제정 과정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화국으로서 네팔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네팔노총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네팔노총의 사무총장인 비노드 슈레스타(Binod Shrestha)와 네팔노조회의의 부위원장인 라마 포우델(Rama Poudel) 동지가 축사를 해주었다. 참가자로는 방글라데시에서 마숨(이주노조 전 사무국장), 비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소부르(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민뚜(이주노조 전 서울부지부장), 네팔에서 샤말(명동성당농성투쟁단장), 버즈라(평등노조이주지부 전 활동가), 까지만(이주노조 전 위원장), 토르너(이주노조 전 위원장), 라주(이주노조 전 부위원장), 검(이주노조 전 동대문분회장), 바브람(이주노조 전 조합원), 건까시(라주동지 부인), 한국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이주노조 2인, 영상활동가 문성준, 노동넷 이원배, 소냐(평등노조이주지부 전 사무국장) 등이 인사하였다. 개막식의 분위기는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였다. 볼 수 있으리라 생각 못했던 동지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확인하게 되니 반가운 마음과 투쟁의 고락을 같이했던 동지애 등이 충만했다.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매일의 뒤풀이로도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었다.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 결성 회의의 가시적인 성과는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를 결성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방글라데시, 네팔, 한국 사이의 네트워크로 출발하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이주노동자운동에 함께하는 다른 나라에도 확장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본국으로 돌아가든 한국에 있든,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 투쟁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신뢰와 동지애는 연대와 공동활동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 사이의 지리적 거리를 제한으로 여기지 않고 기회로 생각한다. 이주와 이주민 권리의 문제는 한국이나 다른 유입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님이 명확하다. 그것은 네팔과 방글라데시 같은 송출국의 사회적 조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한국 이주노동자운동과 본국으로 돌아간 동지들 사이의 강고한 연대가 이러한 문제들을 국제적 수준에서 제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활동 구조가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제안문- 네트워크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한국 이주노동자운동, 이주노조와 방글라데시, 네팔 등 송출국 동지들 사이의 체계적인 소통 구조를 만든다. 각 국의 정치, 사회, 노동운동 상황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구조를 만든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구조를 만든다. 다른 송출국과 유입국을 포함하도록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또한 실천을 다음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정기적인 소통과 정보공유(이주노조와 전직 평등노조이주지부/이주노조 간부, 관련 단체들을 포함하여)를 위해 온라인 상에 메일링리스트와 블로그를 만든다. 각 나라에서 전직 평등노조 이주지부, 이주노조 멤버들의 모임을 만들고 책임자를 정한다. 정기적인 회합을 가진다. 공동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이주노조와 각 나라 모임이 1년에 한 번씩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이 활동을 위해 방글라데시 동지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이주 연대 네트워크’(Bangladesh Migrant Solidarity Network)를 만들기로 했고,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노동문제에 대해 선전하고 민주노총과 이주노조에 대해 알리겠다고 얘기했다. 또한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생활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주노동자 관련 여러 단체들과 연대하겠다고 얘기했다. 네팔 동지들 역시 고용허가제로 들어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겠다고 하였다. 또한 지속적인 연대와 지원 활동을 하고 네팔 국내에서 이주노동자 연대운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네팔노총에서 이주위원회를 각 지역본부에도 두는 계획을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노조에 대한 제언도 많았다. 어렵더라도 직무대행을 선출하자, 웹사이트에 영문판도 만들고 업데이트를 잘 하자, 조합원 확대를 위해 한국노동조합이 있는 이주노동자 사업장을 잘 조직하자, 리더십 교육을 체계적으로 하자 등 애정 어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공동활동에 대해서는 각 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주노조를 알리는 활동을 주로 논의했다. 이주노조 소개 자료와 현재 한국정부의 정책의 문제점 등을 선전물로 만들어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자고 얘기했다. 이미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있었고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 보였다. 물론 그것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과 본국의 노동자운동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국제연대에 대해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각 나라 단체들에게서 서명을 받기로 했고, 우선 이 회의에 참여한 활동가들의 서명을 받았다. 또한 가능한 국제회의에 이주동지들이 직접 참여해서 경험을 발표하고 이주노조 합법화 지지를 호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에는 이주노조와 연계하여 각 나라에서 행사를 추진하기로 했고, 현수막을 교환해서 걸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리고 여수보호소 화재참사가 일어난 2월 11일을 국제적으로 이주노동자 추모의 날로 제안하자는 얘기도 되었다. 그리고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에서 ‘아시아 노동넷’(Asia Labornet) 구축 계획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아시아 각국의 노동운동 뉴스를 자국어와 영어로 올리고 이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각국의 웹마스터를 교육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회의 내용을 14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회의 참가자들과 더불어 네팔노총 간부들, 말레이시아에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대표 등이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였고 회의 선언문을 마숨 동지가 낭독하였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한국에서 촬영해 간 한국 동지들의 영상메시지를 보면서 연대의 인사를 들었고, 투쟁 영상과 ‘필승 연영석 ver 2.0’을 보면서 한국에서의 투쟁 경험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 후 이번 회의에 대한 평가 시간을 간략하게 가졌다. 여러 동지들이 공통적으로 이 회의를 성공적이고 훌륭한 만남이었다고 성과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모임을 예전부터 생각만 했는데 현실로 되어서 좋았고, 이주노조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한 회의를 통해 서로 힘을 얻었고 회의에서 논의한 것을 앞으로 잘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우리가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 만들었다. 한국 이주동지들이 나라에 돌아가면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이주노동자 권리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꿈 있었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많은 일이 남아 있고 열심히 해야 한다. 우리의 결정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지 종이에 써 놓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꼭 고민해야 한다. 지난 3일 너무 좋았고 네팔에서 하나의 매뉴얼이 될 것이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MTU 만들지 못했지만 여러 동지들의 희생으로 MTU 만들었다. 그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MTU에서 현재 활동하는 동지들과 연대 동지들께 매우 감사드린다. 우리의 빚이라고 생각한다. MTU는 합법화될 것이고 세계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는 믿음 갖고 있다.” -샤말 동지 평가 발언- 한편 회의에서 제안된 한국대사관 앞 항의집회가 6월 16일 오전 11시에 네팔 한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되었다. 회의 참가자들을 포함하여 네팔노총 100여 명이 참석하였고 동지들이 발언도 잘하고 한국영사를 만나 항의서한과 선언문을 전달하는 등 힘차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작지만 큰 걸음 이번 회의는 작지만 큰 걸음이었다.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주도적으로 하였던 활동가들이 많이 모였고 실천적인 고민을 나누며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고 결과를 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방글라데시, 한국, 네팔 동지들이 모여서 그 동안의 투쟁과 경험, 아픔 등을 서로 나누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통의 고민을 나누고 동지애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단속추방이 이주노동자운동의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운동의 시작이라는 점을 서로 확인하고 나아가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 회의가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치유의식이지 않았나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단속추방당한 동지들은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분노와 상처와 아쉬움이 있고 계속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국 동지들 역시 저마다 그러한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회의하는 사이사이에, 차를 마시면서, 뒤풀이를 하면서 마음속의 얘기들을 서로 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동안 맺혔던 부분을 정서적으로 어느 정도 푸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국내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5월부터 7월까지 집중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날마다 잡혀가고 있고, 보호소는 잡혀온 이주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며칠 동안 한 지역에 계속 들어가서 그 지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야간에도 단속을 하고 경찰의 검문을 강화하여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래서 단속 과정에서 다치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 한번쯤 산으로 도망가보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거듭되는 표적단속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정부는 앞으로 단속반원을 5백 명 수준으로 늘리고 상시적인 합동단속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상시화된 인간사냥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권력의 폭력이 이주노동자들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주노조 역시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조 인정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6~7월에는 단속추방 반대운동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인정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합법화 캠페인, 지역조직 확대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현재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결합하여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과 이주노조 합법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6월 5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단속반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7월에는 이주공동행동 차원으로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중행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해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추진하고 있고 국제조직들의 지지 입장을 조직하고 있다. 지역에서도 경기이주공대위가 매월 이주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고, 대구경북투쟁대책위원회에서 대구출입국사무소 앞 농성투쟁과 집중집회를 지속하고 있다. 부산경남대책위원회에서도 부산출입국사무소 앞 집회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내부적으로는 각 지역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조직화 계획을 새로이 세우고 추동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한 성과가 현실화되어 현재의 한국 이주노동자운동과 송출국의 노동자운동이 연대를 강화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선언문 2008년 6월 14일, 네팔 카트만두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평등노조이주지부, 명동성당 농성투쟁, 서울경기인천이주노조 활동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운동을 만드는 과정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한국정부의 표적단속으로 인해 강제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전 간부들, 이주노조 현 간부들인 우리들은 표적탄압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6월 12-14일 네팔 카투만두에 모였다. 우리는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지난 2박 3일 동안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송출국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의했고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한국 그리고 나아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활동을 위해 ‘국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 IMWSN)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 우리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교육과 훈련 활동을 할 것이다. - 우리는 이주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해서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과 같은 국제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방글라데시, 그 외 다른 나라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평등노조이주지부와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모임을 조직할 것이다. - 우리는 네팔 GEFONT 이주위원회를 지지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이주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직화를 지원할 것이다. - 우리는 비자 상태 여부에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주노조의 상징적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주노조의 합법화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할 것이다. - 우리는 한국정부에 우리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각 나라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정부의 탄압에 의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거에 함께 했던 운동의 경험을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강화의 기회로 만들고 송출국과 유입국 운동 간의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조의 투쟁에 대해 본국과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한국정부가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단적인 목소리를 높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동지애를 새롭게 하였고 새로운 국제적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네트워크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나라와 세계에서 노동자의 권리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주노조에 대한 표적단속과 탄압을 중단하라! - 단속추방 중단하고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하라! -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라!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 참가자 일동
G8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G8 행동 네트워크 및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이 발표한 2종의 성명서입니다. * <홋카이도 정상회의를 G8의 마지막으로>, 7월 8일 국제 연대행동의날 참가자 선언문 * < G8 기후 선언은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G8 기후 성명에 관한 논평
G8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G8 행동 네트워크 및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이 발표한 2종의 성명서입니다.
* <홋카이도 정상회의를 G8의 마지막으로>, 7월 8일 국제 연대행동의날 참가자 선언문
* < G8 기후 선언은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G8 기후 성명에 관한 논평
[2008.6.27. 기관지 사회운동 원고] 6자회담 2단계 합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선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 1.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와 2단계 조치 2.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북한-시리아 핵 협력에 관한 미국 측 주장의 의문점 3.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과 검증 방안 4. 북한 핵무기와 3단계 조치 5.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6. 6자회담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선 <결론>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과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적성국교역법 대상 지정 해제를 계기로 북미 양자간 대회나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북한이 경제회생을 도모하길 바라는 ‘소박한’ 기대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미국이 10.3 합의 이후 북한의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이나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을 유포하는 행태는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거짓으로 확산시켰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미국 언론은 9.11 이후 군사외교 ‘전문가’의 입을 빌어 각종 의혹을 분명한 증거 제시도 없이 마구 대중에게 쏟아 내고 있다. 이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중은 객관적 판단보다는 언론이 흘리는 각종 의혹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그처럼 강한 확신을 거듭 주장하면서도 분명한 근거 제출의 의무를 고의로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과 이에 대한 미국의 실질적 승인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강대국의 초법적 행위라는 사실은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둘째, 6자회담 합의가 북한의 비핵화 달성에 유익한 경로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틀 자체가 동아시아의 진정한 핵 폐기에는 아무런 구실도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북한 핵 신고서 검증을 둘러싼 가장 중대한 쟁점의 하나는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이 북한이 신고한 것처럼 35kg이냐, 아니면 미국의 추정치의 최대치인 60kg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 25kg의 격차를 둘러싼 검증 문제는 향후 6자회담 합의의 사활적 쟁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시야를 돌려본다면, 현재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약 45톤에 이른다. 추정치의 최대 격차 25kg의 1800배에 이르는 플루토늄을 일본은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미국, 러시아, 중국은 핵보유국이며, 일본은 잠재적 핵보유국인 셈이며, 한국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서 핵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플루토늄 재처리시설 확보를 장기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세계평화의 척도로 연결시키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완화를 북한의 체제 전환과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조정을 받는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미국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원조 제공시 미국식 시장경제체제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로 인해 원조를 받는 나라들은 금융자유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 압력에 굴복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금융재난을 면치 못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미 세계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 석유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심각한 위기 국면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고, 북한 경제의 대안적 모델로 언급되던 베트남은 물가폭등, 부동산 거품 심화, 상품수지 적자, 주가 폭락으로 인해 외국자본의 이탈과 IMF 구제금융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북한의 체제전환으로 인한 민중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나 세계경제의 심각한 위기의 직격탄이라는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지난 2008년 6월 1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제출된 안건 중 5호 안건인 <6-7월 투쟁계획의 건> 자료입니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본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하네요.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고유가, 피크오일과 MB노믹스의 무능 석유가격 추세와 석유가격 급등의 원인 유가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1999년 1월, 이라크의 증산으로 인한 공급 증대와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둔화가 겹쳐 유가는 배럴당 8달러에 머물렀다(미 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 그러나 그 이후 유가는 급격히 올라 2000년 9월 배럴당 35달러가 되었다. 2001년 정보기술 산업 거품붕괴로 미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2001년 말에 유가는 다시 하락하였다가 2004년 9월경에는 배럴당 4-50달러까지 상승하였다. 2007년 9월에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같은 해 10월에는 90달러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 2일에는 100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00달러는 일시적인 정점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다. 하지만 6월 17일 현재 130달러를 넘고 있고, 최고치를 기록한 6월 6일에는 139.89달러를 기록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가격 기준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가가 높았던 2차 석유 위기 당시인 1980년의 100-11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에너지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석유 집약도 감소를 고려한 2차 석유위기 당시의 ‘실질 실효 가격’은 150-160달러가 된다고 한다. 즉 아직은 이 가격에는 못 미친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그 가파르기가 그지없고 변동성 또한 매우 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 기준 유가는 왜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달러 가치 하락 및 금융 투기, 중국, 인도 등에서의 원유 수요 증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의 원유 소비 증대 등이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유가 변동 이유로는 나이지리아 등지에서의 테러리스트의 송유관 공격, 원유 채굴 노동자 파업, 미국 원유 재고량의 감소,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설 등이 얘기되기도 한다. 우선 달러 가치 하락부터 보자. 달러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현재 달러 기준 유가는 유가 상승 정도를 과장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즉 유로 기준으로 유가는 그렇게까지 오르지 않았다.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 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국채나 곡물 원유 등의 상품에 갈 곳 없는 자금이 몰릴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곡물 등 다른 상품 시장의 거품은 꺼지는데 원유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는 점에서 원유 시장과 다른 상품 시장 사이에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중국, 인도 등지에서의 수요 증대 또한 막대하지만 이들 국가에서의 원유수요를 포함한 세계 원유 수요 증가율은 199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연평균 1.76%에 불과하다. 2003-2004년에 가장 높은 3.4%를 기록하였다. 문제는 이런 정도의 수요 증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공급이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급 확대의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유가상승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이다. 사실 투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투기 거품 이후에 유가가 폭락해서 '정상 가격'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석유는 근본적으로 고갈 가능성이 있는 자원이다. 만약 원유 생산량의 정점이 도래했거나 곧 도래한다면 문제가 다르다. 석유는 단기적으로 비슷한 가격의 대체제가 나타나기 힘든 자원이다. 이런 자원에 대한 투기와 고갈 가능성이 없고 일시적으로 공급 제약이 존재하는 상품에 대한 투기와는 성질이 다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의 문제는 금융 투기를 제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사진1%] 피크오일(원유 생산 정점)이 도래했는가? 원유 생산 및 공급 제약은 일부 유전들이 생산 정점을 지나 생산량이 줄고 있고 일부 유전의 경우 투자가 진행되지 않아 잉여생산능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에 조그마한 차질을 가지고 올 사건도 즉각 원유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뜨거운 쟁점은 원유 생산 정점이 이미 도래했거나 곧 도래할 것이라는 ‘피크오일’론이다. 킹 휴버트가 제시해 1970년대 미국의 원유 생산 정점 시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해 유명해진 이 이론은 지금까지는 일부 극단적 비관론자들에게만 수용되다가 최근에는 주류 언론에도 자주 소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원유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것에 기인하지 않는가라는 논의가 활발하다. 비록 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원유 생산 정점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유가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의 피크오일 시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이미 피크오일 시기가 지났거나 곧 도래한다. 휴버트와 같이 작업했던 디훼이즈(Kenneth S. Deffeyes)는 2005년에, 독일의 에너지워치그룹(EWG)는 2006년에 이미 피크오일에 도달했다고 하고, ‘피크오일 및 피크가스 연구연합회’(ASPO)의 창시자 캠벨(Colin Campbell)은 올해 6월에 발표한 자료에서 2008년을 피크오일의 해라고 예측하고 있다(캠벨은 새로운 자료를 반영하여 피크오일 시기를 변경해가고 있는데 2011, 2010, 2007, 2008로 바뀌고 있으나 2010년 전후로 피크오일 시기를 예측하고 있다. 캠벨은 1990년대 중반에 2000년을 피크오일 시기로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사우디 및 중동의 원유생산을 연구한 시몬스(Matthew Simmons)도 대체로 지금 시기를 피크오일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2005년, 2006년, 2007년의 원유 생산량은 1일 평균 약 8,500만 배럴로 거의 동일하고, 2008년 1/4분기만을 보면 생산량은 2005-2007년에 비해 조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거대 석유기업 등에서도 “값싼 원유 시기는 지나갔다”며 피크오일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원유 매장량에 대한 판단의 차이, 앞으로 발견될 원유량의 차이, 오일 샌드 등 비전통적인 원유에 대한 판단의 차이 등에 있다. 피크오일 주창자들은 각국이 발표하는 매장량, 특히 OPEC 회원국들이 원유 생산 쿼터를 많이 할당받기 위해 부풀려온 매장량을 불신하고 대신 생산량, 원유 발견량, 원유 채굴량 등에 기초해 독자적으로 매장량을 판단하고 피크오일 시기를 산정한다. 피크오일 이후 원유 생산량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도 논란거리이다. 급격히 하강하느냐 고원 형태를 보일 것이냐가 문제다. 별 준비 없이 전자의 사태를 맞이하면 석유 문명은 공황, 전쟁 등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후자라 할지라도 석유문명의 전환은 불가피하고 그래도 전자보다는 혼란이나 고통이 덜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의 고유가가 가까운 장래에 피크오일의 도래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원유 생산 및 공급의 제약이 어느 정도 뚜렷해 보여,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위기가 아니라면 고유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피크오일 지지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이러한 예측에 영향을 받아 고유가를 예상하고 있다.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에서는 원유가가 곧 150달러에 달할 것이라 발표를 했고, 골드만 삭스는 그 보다 먼저 향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원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보다 극적인 사례로는 CERA(Cambridge Energy Research Associates)가 있다. 2008년의 유가폭등이 있기 전까지 CERA 의장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은 피크오일 주창자들을 비판해 왔고, 유가가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5월 7일에 2008년 중 유가가 150달러에 이를 것이고, 이는 공급 제약 때문이라고 기존 견해를 뒤집었다. 고유가와 한국 경제 고유가는 한국 경제에 커다란 부담이다. 당장 화물연대 등 운수 종사자들의 파업을 낳고 있다. 치솟은 경유 가격에 비해 운송료가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항공업계와 자동차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곡물 가격 상승 또한 유가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화학비료 생산, 기계영농에 원유가 필수적이고 이는 곡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높은 가격의 원유에 대한 대체제로 바이오연료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양의 곡물이 쓰이고 있다. 고유가는 이렇게 개별 산업에의 영향 이전에 물가나 경상수지 등 거시 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의 물가 상승은 고유가가 주요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원유 수입액은 올해 1월에서 4월까지의 합계액를 보면 수입총액의 18.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동기의 15.2%보다 3.6%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참고로 곡물수입액이 총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1.7%였다). 2007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원유수입액이 약 170억 달러인 반면 2008년 원유수입액은 약 270억 달러로, 올해 4월까지만 전년 대비 약 100억 달러의 추가부담이 있었다. 이 대부분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추가 부담이었다. 4월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68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유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면 이는 자칫 초민족적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낳고 이는 환율 위기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정도의 경상수지 적자만으로 이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아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기자본이나 단기 외채의 존재로 인해 적은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로도 쉽게 환율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국제투자수지 마이너스 규모는 최근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고유가는, 특히 이것이 피크오일에서 기인한다면, 이런 단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보다 중장기적으로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석유에 기댄 산업 및 소비생활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의 고유가로 인한 문제를 전부 이명박에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명박을 비롯한 지배세력이 이런 문제에 올바로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특히 금융세계화된 현실에서 국제적 환율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석유 가격의 급변은 그 자체로 경제에 큰 위기 요소다. 우리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이 경제성장 또는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주권이나 안전, 생명, 건강, 민주주의, 노동권 등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들이 경제위기, 생태위기나 문명의 전환 등에 대한 그 어떠한 개념이나 대책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진보정당의 선거정치와 지역대중운동의 현실 4.9 총선으로 노무현과 386 판본의 ‘진보’가 보여준 무능력과 기만은 최종적인 심판을 받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152석 대 한나라당의 121석의 비율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153석 대 통합민주당 81석으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의석수로 승리자와 패배자를 나누는 것만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가 50%선을 돌파했다.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대개 정치의 ‘휘발성’은 선거과정을 거치며 지지자들이 반대자로 돌아서고, 반대자들이 지지자로 돌아서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곧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가 쉽게 변한다는 뜻이다. 정당의 특정한 이념노선에 대한 유권자의 안정적인 지지 성향이 해체되거나, 정당들 간의 이념노선의 차이가 소멸한다면 이러한 휘발성이 당연히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낮은 투표율, 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시소놀이와 같은 정당지지율의 급등과 급락과 같은 현상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정치의 휘발성, 곧 불안정성이 지극히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예외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지역적 불균형, 기존 계급구성의 해체와 변화)을 반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반복될 개연성이 높다. 반면 민중운동이 인민주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대중운동의 토대가 극히 취약하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양상의 민중운동의 정치적 분할은 새로운 운동경로를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운동 ‘자원’을 나누기 위한 경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인민주의 정치토양, 민중운동의 경쟁과 축소재생산의 위기는 우리에게 정말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선거기법의 두 가지 전술 세계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은 새로운 ‘선거기법’의 창출에서도 단연 첨단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의 선거책략, 여론조작수법은 선거캠프에 모이는 한국의 엘리트들 즉 정치학자, 여론조사전문가, 다종다양한 기술관료 들을 통해 한국 정치에 직수입된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에서 대별되는 두 가지 선거기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2년 공화당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클린턴의 선거기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삼각형 만들기’다. 즉 삼각형 위의 정점에서 아래 밑변의 양 꼭지점(좌우)의 장점만 뽑아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인해 전통적인 정당(특히 민주당) 지지층이 해체되었고, 이는 레이건-부시의 격앙된 신보수주의의 장기집권에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을 향해, 극우-극좌를 배제하는 새로운 중도주의를 통해 안정된 정치 환경과 경제성장을 약속함으로써 불가능해 보였던 선거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제3의 길’이라는 담론을 누구보다도 먼저 제시했던 클린턴이 실제로 새로운 정책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창조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말이고, 이러한 말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었다. 클린턴은 모든 일에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기법을 개발했다. 이는 그가 여론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에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선택한 정책 프로그램을 여론조사결과에 부합하도록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제 이러한 여론조작술은 미국정치에서 일반화되었다. 하나의 정책적 개념이 여론주도집단에게 잘 ‘판매’되지 않는다면 정책변화 없이도 다른 용어를 채택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사유화’나 ‘핵무기 사용권’이 인기가 없으면 ‘개인계정’이나 ‘헌법적 선택권’이란 말을 쓰면 만사형통이다. 최근 부시는 부유층의 ‘상속세’나 ‘세금삭감’ 대신에 ‘사망세’나 ‘세금구제’라는 말로 정책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이것이 요즘 언론에서 부쩍 자주 언급하는 이른바 ‘정치의 프레임’이다.) 보통 정치학자들은 여론이 투입물이고 정책이 산출물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 정치과정에서는 그 정반대가 진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허구적인 중도주의가 전부는 아니었다. 2004년 총선에서 부시의 공화당이 보여준 격렬한 선거기법은 ‘탈동원화와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전통적인 선거 전략은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온건하게 제시해서 부동층의 환심을 사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러한 외부적 확대보다는 내부적 자기강화를 선택했다. 대다수의 대중이 특정 정당에 대한 안정적 지지층이 아닌 것이 현실인 마당에야 공화당을 지지할 가망성이 높은 특정집단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더욱 명료한, 즉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전달하고(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등), 나머지 집단에서 대해서는 탈동원화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비방광고(네거티브 캠페인)나 추문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혐오를 확산시켜서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일반적으로 억제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선호할 것 같은 집단의 투표 참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법들은 현실 선거에서 종종 혼합되어 나타나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이를 상황과 필요에 따라 활용하므로 지속적인 진동이 나타난다. (현재 미국대선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자는 모두 허구적 중도주의로 다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자 모두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클린턴 식의 정치기법뿐만 아니라, 공화당 식의 탈동원화/네거티브 전략 역시 강력한 여론조작기법을 동원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기층에서 충원되는 선거운동원이 아니라, 정치조작전문가들이나 기술관료 지배가 강화된다. 하지만 허구적 중도주의든 극단적 대결주의든 대중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조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즉 대통령이나 의회 여당이 바뀐다고 사회경제적 위기가 극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가가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위기와 여론조작 정치의 심화 속에서 정당의 대중적 토대는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럴수록 더욱 더 강력한 여론조작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이 성립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부르주아 정당들이 보이는 강점과 그 이면의 결정적 약점이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점점 더 사상누각을 쌓고 있다. 한국 인민주의 정치의 승리자와 패배자 한국의 한나라당, 통합민주당은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과 정치경제적 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분명히 다르지만 여러 측면에서 유비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미국화’로 인하여 유비는 그 이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특징적인 선거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특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통합민주당의 전신인 노무현/열린우리당이 ‘좌파적’ 탈동원화/네거티브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면, 현재 이명박/한나라당이 ‘우파적’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거 노무현/열린우리당이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과거사 문제나 주택교육 정책 등을 계기로 일종의 ‘문화전쟁’(이념논쟁)을 시도함으로써 386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한나라당 지지층을 ‘기득권=보수=강남’이라는 도식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해서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억제하고자 했다. 반면 한국사회에서 대량빈곤이 오히려 확대되면서 노정권의 인기가 하락하자 주류언론은 노정권이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국력을 낭비 한다’는 함포사격을 가했고, 노정권은 거대한 역풍에 직면했다. 성공한 경영인이 이미지로 무장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한나라당이 ‘우파적’ 중도주의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대선에서 이명박의 승리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를 계기로 모든 언론은 앞 다투어 소모적인 이념갈등은 종말을 고했고, 이제야말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중도 실용주의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은 1960년대 한일회담 반대투쟁 경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으나 역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의 중도 실용주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꼭지점으로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된다.) 이제 한국사회 부르주아 정단간의 경쟁에서는 정책이 중요한 변수가 아니고 정당간의 이념적 거리가 사실상 무의미하며, 이미지와 여론 조작과 같은 인민주의 정치행태가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휘발성이 강한 대중조작적 선거기법에 더욱 의존하고 있고, 그들 역시 사상누각을 쌓고 있다. 누가 승리자인지, 패배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정치위기와 뉴타운의 폭발력 현재 각종 선거결과나 일상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번 선거결과 50% 이하로 떨어진 투표율은 너무나 명백한 증거다. 그것은 대중의 수동적 태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소극적인 저항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지배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지율의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극히 낮은 투표율의 이면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의 현실적 변화를 보여주는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이 나타났다. 영호남은 여전히 강력한 지역주의의 보루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성격은 크게 바뀌고 있다. 한때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를 각각 보수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로 분류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현재는 공통점이 더 많다. 즉 수도권의 거대도시화와 부의 집중에 대비된 상대적인 지역적 소외감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영남지역에서 박근혜의 무시무시한 괴력이 다시금 발휘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대중들에게 뚜렷한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나타난 박근혜 지지는 박근혜가 새로운 발전주의의 전망의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전통 반공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퇴행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생명력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영호남에서 뚜렷이 나타난 투표율 하락의 의미도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점증은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의 심화와 더불어 도시 내부의 변화와 조응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번 총선을 두고 이른바 ‘아파트계층’이 서울지역의 투표결과를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선거구별로 아파트 밀집도가 높고, 특히 최근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일수록 한나라당 지지도가 비례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미 강남, 송파, 서초지역이 한나라당의 초강세 우세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다가 강북지역과 신도시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서울과 수도권 남부가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계층’은 몇 개의 피라미드층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직 고소득자(전통적인 전문직과 신흥 골드칼라), 거액의 은행융자를 끼고 주택을 구입한 중하층 화이트칼라층, 연립주택이나 빌라 소유자 등. 피라미드의 상층부는 좀 더 높은 부동산 투자 수익을 기대하면서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나 세금인하를 적극 지지하면서 상대적인 여유를 누릴 것이다. 거액의 융자를 갚아야 하는 아파트소유자들은 주택가격이나 시장금리가 가계의 생사가 걸린 필사적인 문제일 것이다. 연립이나 다가구 주택 소유자들은 뉴타운이 추진되면 ‘지분 쪼개기’를 통해 큰 소득을 얻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 처지의 차이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박을 꿈꾸며 위를 보고 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부동산 투기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현재 서울의 자가 주택 소유자는 55% 수준이다.) 게다가 뉴타운정책으로 실제로는 아무런 이득을 볼 것이 없는 일부 무주택자들마저도 막연한 지역개발 욕구에 따라 뉴타운 공약에 편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의 대중심리가 금융화와 이에 조응하는 부동산투기에 포섭되면서 집단적 투기 심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안정적 지지층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투기를 보장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층일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정성의 토양으로 기능할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자영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자영업주가 600만 명에 이르며, 무급가족종사자가 15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35%이며, 이러한 수치는 미국의 7.6%, 대만의 28.4%보다 훨씬 높다.) 특히 이중에서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실업반실업의 확산 와중에서 자가고용이나 가족무급노동에 의존하는 영세자영업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예컨대 현재 대형 프렌차이즈의 소규모 지점 사장은 일종의 자가고용 노동자가 되고 있다.), 이들이 체감경기에 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안정적인 정당지지 성향을 지니기보다는 선거 시기 부동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도시의 노동자와 빈민은 아파트와 뉴타운개발 과정에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들이 실제로 도시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대형아파트 주변의 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 파편화된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은 생존과 생활의 불안정성 때문에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조직되거나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따라서 도시개발의 가장 큰 수혜층만이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나머지는 정치적으로 배제된다. 진보신당의 어느 후보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3월 <강남구 공동주택 입주자 협의회>란 단체가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각 당 지역구 후보자들을 불러놓고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공약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이들의 응집력이 노동자와 도시빈민(실업자)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노정권의 기만과 실패는 진보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상실케 함으로써 노동자와 도시빈민을 더욱 위축시켰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의 심화, 도시의 재편과 같은 변화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민중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노동의 불안정, 대량빈곤과 실업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적, 대중적 활동이 극히 미비하다. 지역운동단체라고는 민주노총 지역조직이나 농민회, 진보정당, NGO 성향의 시민단체가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진보정당들의 경우도 민주노총 기반으로부터 선거자금 모금이나 운동원 조직에도 허덕이며, 일상적인 지역 대중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운동적 역량이 지극히 취약하다. 이러한 조건은 오히려 정당들이 대중운동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기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의존에 머물게 한다. 진보정당의 선거정치와 지역대중운동 진보정당에서 선거를 전후한 시점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쟁점은 대개 선거기법, 전략에 집중된다. 앞의 구분 틀을 따르자면 ‘중도파로의 이동을 통한 외적 확대’냐, 아니면 ‘핵심지지층의 동원을 위한 자기강화’냐. 그리고 현실의 선거정치에 종속된 진보정당들은 전자의 선택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정당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여론접촉면이 확대되고, 여론조작 정치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의회 장악도를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핵심지지층의 동원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거나, 역시 선거기법 상의 문제로 접근된다. 정당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지지층’의 형성을 위한 대중적 조직망의 구축은 오히려 더 많은 돈과 사람이 필요한 비효율적 활동으로 간주되기가 쉽다. 또는 정당역량의 취약성 때문에 합리화된다. 따라서 선거를 중심에 두느냐 대중운동(사회운동)을 중심에 두느냐는 정당의 성격을 규정하는 현실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5개 의석을 바탕으로, 의원단 역량, 정책역량, 대중조직역량 들에서 기존에 비해 크게 위축되기는 하겠으나 지난 시기 의회활동과 유사한 활동 패턴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진보대연합을 다시 추진하면서 시민운동 조직, 인사들의 영입을 통해 중도로 이동을 모색 중이다. (이미 지난 시기 권영길 선본은 이러한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괴리된 원내활동이나 언론대응이 동일한 방식의 활동을 채택하는 지배정당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가망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진보신당은 기존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들을 포괄하는 정당의 재창당과 지역정당조직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진보신당에 동참했던 일부의 경향은 민주노동당에 ‘남겨두고 온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이를 다시 챙기려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나누기’ 위한 대립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게다가 현재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의 사례를 보면 정파적 대립과 분할구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한국진보연대 구축과정은 이러한 경향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존재 그 자체가 분열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 정당운동의 분할구도가 가속화되면서 지역운동 수준의 분할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예견되는 ‘복수노조’ 시대라는 객관적 요인이 이러한 분할에서 어떤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들이 이러한 분할을 더욱 악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진보신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대립과정에서 기층에서의 실질적인 운동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금융화와 지역개발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공간으로서 노동조합운동과 대중운동을 지역적, 전국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