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 확산되는 신종플루와 그 특성 지난 5월 2일 국내에서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이에 대한 공포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9월 15일 60대 여성이 국내에서 8번째로 신종플루로 사망했으며, 현재 국내 감염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한편 WHO는 9월 6일 세계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27만 7,607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3,205명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하였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새롭게 발생한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 만큼 초기에는 그 위험성을 알 수 없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나, 점차 그 특성이 밝혀지고 있다. 계절 인플루엔자에 비해 비교적 젊은 층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한다. 국내 환자의 약 70%가 10~30세 범위에 있으며, 60세 이상은 1%에 불과하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인층이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적 및 면역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초재감염수(1명의 지표환자에 의해 감염되는 환자수)는 1.4~1.6으로 계절인플루엔자의 1.3보다 높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국내에서 치명률(감염자 중 사망자 비율)은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약 0.1%로 계산된다. 신종인플루엔자의 잠복기는 계절인플루엔자와 비슷한 1~7일로 추정되며, 발열과 상기도증상(기침, 인후통, 콧물, 호흡곤란)이 주요 증상으로 근육통, 관절통, 피로감, 구토 혹은 설사가 동반될 수 있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에서는 폐렴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며 중증으로 진행할 수 있으나, 감염자의 대부분은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경과를 거치며 회복된다. 따라서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군을 제외하면 확진검사와 항바이러스제 투약은 불필요하며 충분한 휴식과 수분, 영양 섭취가 권장된다. 그러나 신종플루가 계절독감보다 치명률이 비슷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일반 독감에 준하는 치료를 하면 낫는다고 해서 신종플루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기초재감염수나 치명률 모두 지금까지 발생한 신종플루 발생자 및 사망자를 근거로 추산된 것이지 앞으로 신종플루 확산 정도가 더 증가함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염병은 그 전파에 위생과 건강상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빈곤병이라고도 불린다. 전염병의 고위험 군에는 어린아이,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예방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신종플루 진단과 치료과정에 대한 적절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이들 고위험군의 병원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며 신종플루 대책을 위한 1,2,3차 의료기관 연계망도 엉망이다. “건강한 사람이 신종플루를 크게 겁낼 것은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 말을 반복하는 맥락은 한국의 미비한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모순을 덮는 데 있다는 게 문제다. 신종플루 대응을 통해 드러난 민간중심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민간에 의존하여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으나 그나마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남한의 보건의료체계는 신종 전염병을 맞이하여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이 시작될 당시 정부의 대응 방침은 모든 의심환자에 대한 확진 검사와 격리를 통한 대유행의 차단이었다. 이후 대유행으로 들어섰다고 판단되자 정부는 8월 20일부터는 치료거점병원, 거점약국 지정을 통한 환자 관리와 고위험군, 중증 환자에 대한 집중 치료로 대응 방침을 전환했다. 그러나 치료거점병원, 거점약국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민간 의료 기관으로 신종 전염병 환자를 진료할 만한 시설(격리 병실, 음압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하여 진료 현장의 혼란은 심각한 상태였다. 신종 전염병의 유행이라는 국가적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기능해야 할 공공의료기관인 보건소는 대응 체계에서 빠지고 의심 환자가 오면 거점병원으로 보낼 뿐이었다. 일차의료기관 역시 진료 지침의 부재와 정부 대응 기구와의 긴밀한 소통의 부재로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응 체계를 민간의료기관으로 전환하면서 유행 초기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 검사, 항바이러스제와 격리입원치료에 대한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던 것을 항바이러스제를 제외한 확진 검사와 치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비용의 일부를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치료거점병원 지정 당시,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 병원이 치료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했다가 비판적 여론에 밀려 거부의사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공의료체계의 무력함과 허술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격리병동이 없어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서울대병원의 거부 논리에서 더 큰 허술함을 찾을 수 있다. 언제 발생할 지도 모르고 이윤이 낮은 전염병 관리 시설은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 및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에 신종 전염병 환자를 위한 병동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전국적으로도 이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거점병원은 대부분 대형병원이라 면역력이 약한 중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대형 병원이 격리 병동 없이 신종 전염병 환자의 1차 진료를 담당하는 경우 광범위하게 중증 질환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구의 한 거점병원에서 원내감염으로 의심되는 감염사례가 지난 8일과 14일, 2건 발생하였다. 지역사회에 밀접한 보건소에서 1차적으로 무료 검사, 치료를 하고, 중증 환자를 격리 병상이 마련된 2, 3차 병원으로 보내는 체계를 마련했어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정부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공공의료체계의 부재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1차 진료를 민간의료기관에서 담당해 왔기 때문에 보건소에서는 늘어나는 환자를 책임질 수 없었고, 부족한 예산으로 무료 검사, 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민간의료기관과 민중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결국 문제는 체계적이고 공고한 공공의료체계의 부재로 인한 민간/민중으로의 책임 전가이다.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형성될 때부터 지금까지 늘 제기되고 나타났던 문제가 신종 전염병의 출현으로 두드러진 것뿐이다. 1차, 2차, 3차로 연결되는 공공의료체계의 확립을 통한 체계적인 환자관리와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통한 의료 시설, 장비, 인력의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거대 제약기업의 독점 2005년부터 WHO가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을 예측하여 치료제와 백신 확보를 권고하였으나 정부는 오히려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였다. 의료기관들의 혼란에 치료제와 백신 부족설이 가중되어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조장된 면이 크다. 뒤늦은 치료제와 백신확보, 그리고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이제 부르는 게 값인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와 백신, 계절 인플루엔자와 폐렴 백신 등을 만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 낭비와 불안 조장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치료제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숫자놀이만 하고 있다. 한편, WHO는 국민의 20~30%에 해당하는 치료제를 확보할 것을 권고하면서도 가난한 나라들이 돈이 없어 약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국가가 강제실시를 결정하면 위기상황에 제약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필요한 만큼의 약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WHO는 이를 권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제실시 주장을 약화시키는 가격인하나 기금마련 등으로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려 한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약을 공급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 초국적 제약자본의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생산/판매 독점에 있음에도 이런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초기에 여행 제한 조치, 경보수준 격상 등을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실행시키지 못하였다. (사스 유행 당시 WHO는 캐나다 토론토 여행 자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루었다.) 설사 강제실시가 이루어지더라도 이제까지 강제실시는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의약품 접근권 운동을 통해 태국, 브라질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약소국에서의 강제실시는 무역보복과 소송분쟁으로 철저히 봉쇄되어왔다. 이처럼 정부가 타미플루 확보를 위해 타미플루를 독점생산하는 로슈만 바라보고 강대국에서는 약을 확보하는 사이 멕시코 같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약을 먹지 못해 죽어나가고 있다. 항바이러스제 판매로 이미 천문학적인 이윤을 남겼음에도 세계적인 대유행 앞에서 지적재산권만을 주장하는 초국적 제약회사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민중의 건강에 위협적이다. 백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각국 연구소에서 균주를 제공받아 백신을 만들지만 백신의 배분과 이윤의 배분 모두 공정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생태 파괴와 거대 축산업이 신종 인플루엔자의 발생에 기능했다면, 미흡한 공공의료체계와 세계적으로 약의 공급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초국적 제약회사, 그와 손잡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와 위험성을 유지,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과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은 민중의 건강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자본에 맞서 민중의 건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지 않으면 백혈병, 에이즈, 신종 인플루엔자, 이후 어떤 질병에 있어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될 것이다.
두 개의 글을 붙인 완성본을 올립니다.
민의련 <의료와 진보> 주제별로 기사 분류한 것입니다. 자료 찾아보실 때 참고하시면 편할 것 같아서요. 보건의료운동의 방향 보건의료운동의 역사와 평가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보건의료제도 개혁방안 병원노동자운동/민주노총 공공의료 의보연대회의/의보통합일원화 의료보험 의약분업 일차의료 한약분쟁 노동안전보건 의약품 접근권 빈민운동 보건의료학생운동 정의련/민의련 활동 계획 및 평가
한글 파일과 ppt파일 두개 입니다. 둘 다 뽑아주세요^^
근본적 대책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기생체의 존재가 발병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질병을 감염성 질병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기생체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정의보다 이 정의를 선호하는데, 발병으로 인한 불편과 죽음은 여러 요인들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좌우되고 기생체는 그 중 단 하나의 요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질병과 기생체를 동일시하는 것은 특정한 감염체와의 접촉의 결과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관심 밖으로 밀어냈다. - 위르외 하일라, 리처드 레빈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멕시코와 미국에서 새로운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가 발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돼지인플루엔자는 양돈업계의 반발로 신종플루라고 명명되었다. 신종플루는 미국, 멕시코를 시작으로 캐나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홍콩 등 전 세계로 확산되어 6월 10일 공식으로 보고된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멕시코와 미국을 비롯한 74개국에서 27,737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 경보 단계를 5단계에서 6단계로 격상하면서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선언했다. 신종플루의 대유행 선언은 1968년 홍콩에서 인플루엔자로 약 100만 명이 숨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6월 22일 기준으로 전 세계 발병자는 52,160명, 사망자는 231명까지 증가했다. 발병자는 미국이 21,449명으로 전체 발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멕시코가 7,624명, 캐나다 5,710명, 칠레 4,315명, 영국 2,506명, 호주 2,436, 아르헨티나 1,010명, 일본 850명, 중국 739명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사망자 수는 멕시코가 113명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미국으로 87명(38%), 캐나다 13명(6%), 아르헨티나 7명(3%), 칠레 4명(2%) 순으로 나타났다. 콜롬비아(2명), 호주,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영국(모두 각각 1명) 이외 지역에서는 아직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5월 23일까지만 해도 10명에 불과하던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 6월 1일 41명, 10일 55명, 16일 75명, 18일 85명에 이어 20일 105명까지 증가했다. 인플루엔자 A는 1968년 홍콩 사태나 이번 신종플루 외에도 지난 100여년간 수차례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세계적으로도 2천만~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H1N1) 대유행, 1957년 조류 인플루엔자 H2N2 대유행, 1968년 H3N2 대유행, 1976년 돼지 독감 발생, 1997년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H5N1 발생 이후에도 2001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2005년 이후로는 유라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2005년에는 조류독감이 한국을 위협한 바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인플루엔자의 발생 현황을 볼 때 이번 신종플루는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인플루엔자 중의 하나다. 한편 신종플루는 치사율은 아직 높지 않지만 치명적인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인플루엔자 유행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57~1996년 사이 40년 동안 14번의 크고 작은 유행이 있었다면 1997~2006년까지는 단 10년 동안 10번의 유행이 발생했다. 각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는 방역 강화, 의약품 공급 등 신종플루에 대한 대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신종플루의 발생과 전파를 둘러싼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에는 침묵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변종이 발생하는 맥락을 알아보고 그것을 촉진하는 조건으로서 생태파괴와 거대축산업, 2)신종플루 감염 시 적절한 치료의 실패로 인한 사망의 조건으로서 빈곤과 공공의료의 붕괴, 3)신종플루 치료제에 대한 접근권 제한의 원인으로서 초국적 제약자본의 지적재산권 등을 다루기로 한다. 신종플루 발생의 사회생태적 조건: 생태 파괴와 거대 축산업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변종의 발생 인플루엔자는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C는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것이고 B는 매년 상당한 수의 사망자를 낳는 독감이기는 하나 대유행병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플루엔자 A는 매우 위험하다. 인플루엔자 A의 주요 보유 숙주는 오리와 물새류이나 현재 다른 조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횡단해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이번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A H1N1이고 지난 2005년 유행했던 조류독감은 H5N1이었다. HxNy라는 공식은 헤마글루티닌(이하 HA)과 뉴라미니다아제(이하 NA)의 종류에 기초해 분류한 것이다. 인플루엔자A는 구형의 표면 위에 HA과 NA 단백질이 분포되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 침투할 때는 세포막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HA는 인체의 호흡기 점막 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인식하여 결합하면서 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즉 HA는 인체 세포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바이러스가 감염을 일으키려면 인체 세포 내에서 증식을 하고 그 세포를 빠져나와서 다른 세포를 공격해야 하는데 이때 세포에서 나오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NA다. 이번 신종 플루의 치료제로 유명하게 된 타미플루는 항바이러스제로 NA의 역할을 막아서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여 증식을 막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A의 유행이 여러 지역에서 재발하는 이유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재조합(recombination)과 재분류(reassortment)를 통해 끊임없이 변이를 하면서 종간 장벽을 뛰어넘고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형태로 발전해나가기 때문이다. 재조합이나 재분류는 바이러스 A와 바이러스 B가 세포 내로 침입했을 때 두 바이러스가 서로 유전물질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 때 만약 A와 B가 서로 다른 종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면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의 바이러스가 섞인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변이 확률은 높아진다. 이는 개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개체들이 더 밀집해있을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일으키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변이 능력이 뛰어나서 뿐 아니라 변이를 촉진하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종이 접촉하지 않는다면 혹은 개체 수가 많지 않거나 밀집되어 있지 않다면 바이러스의 변이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야생조류의 서식지 파괴, 거대축산업의 발달 등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습지 파괴 인플루엔자의 출현과 확산 과정에 환경 문제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개입한다. 가금류의 고밀도 집적을 가져온 축산업 혁명과 더불어 전 세계적인 습지 파괴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관개농업을 위한 댐을 건설하고 습지의 물을 이용하면서 철새들이 관개 수로와 농지로 모여들게 되며 이곳에서 방목되는 오리들이 야생조류가 배설하는 바이러스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된다. 2006년 4월 유엔 환경계획의 위임을 받은 조류 인플루엔자 과학세미나에 제출된 ‘조류 인플루엔자와 환경’ 연구서는 조류독감 H5N1의 이동경로가 야생조류, 방목되는 가금류, 산업적으로 사육되는 가금류를 연결하는 지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예를 들어 H5N1 나이지리아 발병 사태는 카노강 관개 사업이 진행되던 지역의 기업형 가금류 농장에서 발생했다. 카노강 관개사업은 습지에서 물을 끌어와 거대한 댐과 수로의 네크워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인데 이 관개사업으로 철새들의 서식지인 습지가 파괴되었다. 그 결과 철새들이 관개된 들판을 찾게 되었고 들판의 가금류와 섞이게 되었다. 특히 철새 이동 경로에 있는 집약적 가금류 사육장에서 병원균이 전이될 위험성이 증가하게 된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 멕시코 라글로리아: 거대 축산업의 영향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최초로 발생한 멕시코 베라크루즈주의 라글로리아 지역의 주민들은 신종 플루가 지역에 거대 돼지 축산공장을 두고 있는 스미스필드푸드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스미스필드푸드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돼지 축산 회사로 매년 1,400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며 2,700만 마리를 도살한다.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미국 26개 주와 9개 국에 진출해있으며 스미스필드푸드사의 멕시코 하청업체인 그란하스캐롤사는 베라크루즈주에 72개의 농장을 두고 매년 95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란하스 캐롤의 축산공장은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8.5km 북쪽에 위치해있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이 지역으로 이동해온다. 주민들은 수년 째 공장에서 나오는 돼지 배설물로 인한 악취에 불만을 호소해왔다. 4월 25일 세계보건기구가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을 발표하기 이전인 2월부터 라글로리아 주민 3,000여명 중 500여명이 독감 증세를 호소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매년 찾아오는 일반적인 독감으로 치부했고, 4월에는 마을에 만연한 파리 떼를 죽이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였다. 새로운 돼지 독감의 발생과 확산은 돼지 사육 규모의 확대와 관련이 있다. 2003년 3월 7일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돼지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가 갑자기 폭발한 원인으로 사육 두수의 증가, 돼지들의 원거리 이동, 백신 접종을 지목했다. 1993년 이후 미국의 돼지고기 생산은 대규모로 산업화된 타이슨사의 양계 모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불과 10년 만에 5,000두 이상을 사육하는 공장형 농장에서 기르는 돼지의 비율이 18%에서 53%로 증가했다. 이런 대규모 사육으로 인해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복제를 통해 역병으로 발전할 기회와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또 돼지들의 원거리 수송이 늘어나면서 감염 범위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 대부분의 닭과 칠면조는 1만 5천~5만 마리가 모여있는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되는데 개발도상국에서도 육류가공의 산업화가 진행되어 연 4.3% 비율로 전통적 생산 방식이 산업적 생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 남미, 북아프리카 등의 국가에서 산업적 축산업은 인구밀집지역에 근접하여 위치한다. 인플루엔자 A 유행 가능성은 전통적 방목형 축산보다 거대축산업에서 더 높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표 1) 2004년 태국, 2002년 덴마크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A 유행 사례에서도 전통적 방목형 축산농장에서 검출된 사료에 비해 거대 축산업에서 검출된 사료가 더 높은 전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돼지와 닭 생산 밀집 지역은 지리적으로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돼지와 닭 간의 접촉 가능성을 높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는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공장형 축산공장의 대표적인 형태가 폐쇄동물사육시설(CAFO)이다. CAFO는 1년에 45일 이상 하나의 폐쇄된 공간에 최소 1,000마리 이상의 동물을 사육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CAFO에서는 수천 마리 이상의 동물이 폐쇄된 공간에 집중되어 있어 많은 열과 습기가 발생된다. 열과 습기를 조절하기 위해 사육시설에는 거대한 환풍기가 설치되는데 이로 인해 내부 물질과 먼지 등이 축산 공장 밖으로 방출된다. 방출된 물질들은 공기 중에 며칠 동안 떠다니며 공장으로부터 수 킬로미터까지 퍼질 수 있다. 곤충은 병원균을 축산공장 내외로 전파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2004년 일본 교토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A 유행의 진원지가 된 양계농장 근교에서 채집된 파리에서 당시 유행한 유형의 H5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된 바 있다. 동물 사육의 한 사이클 동안 30,000마리의 파리가 발견되었다. 멕시코 라글로리아 지역에서 주민들이 축산공장으로 인해 파리 떼가 모인다고 불만을 호소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파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옮기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스미스필드푸드사의 그란하스 캐롤 축산공장이 신종플루와 관련이 있다는 라글로리아 주민들의 믿음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CAFO 시설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성을 높일 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 위해를 야기한다. 대규모 축산공장이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 공장식 축산으로 CAFO가 일반화되었는데, 이러한 시설에서 많은 수의 동물을 사육하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토양, 대기, 강으로 배출된다. CAFO 시설로 인한 악취와 대기오염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메탄가스, 동물 항생제의 잔여물질 등으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의 돼지 CAFO 시설이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호흡기 질환을 더 많이 호소했다.(Mirabelli 외, 2006) 돼지 CAFO에 관한 연구는 CAFO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가 공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긴장, 우울, 분노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또 다른 연구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CAFO로 인해 주민들이 두통, 콧물, 목의 통증, 지나친 기침, 설사, 눈의 따가움 등의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함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저하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CAFO 지역주민들이 악취가 심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낮은 집중도를 보였으며 침샘에서 면역글로불린A의 분비가 저하됨을 보고한 바 있다. 즉 호흡기 증상의 호소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저하는 인플루엔자 감염에 더 취약하게 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스캐롤라이나의 CAFO 시설들이 사회경제적 지표가 높은 지역보다 낮은 지역에, 그리고 백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지역보다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인종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밀집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건강 유해 요인들이 빈곤층에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사망자 집중: 만연한 빈곤과 의료서비스의 붕괴 대유행병에 관한 많은 저술은 빈곤과 표준 이하의 주거환경, 불충분한 식사가 전염병의 발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1918년 바이러스의 연구는 도시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 노동계급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현재 미국의 연구자들은 한 해 평균 3만 6,000명에서 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는데 이들 대다수가 노년층, 특히 빈민이다. 인플루엔자 감염은 근본적인 영양실조, 열대병, HIV로 인해 이미 합병증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인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에 상대적으로 훨씬 커다란 충격을 준다. 악명 높은 1918년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연구는 인도의 사례를 통해 빈곤과 전염병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 연구는 1918~1919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사망자를 2,000만~2,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중 60%를 차지하는 1,250만 명이 인도에서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국에 대한 곡물 수출과 전시 징발이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에 영향을 미쳤고 공중보건 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연구는 감염자들에게 즉각적인 의료 지원과 적절한 영양공급만 이루어졌어도 사망자수는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인도에서 사망률은 계급에 따라 크게 달랐는데 봄베이의 하층 카스트 주민들은 인도 내 유럽인이나 부유한 인도인들보다 8배 더 많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두에서 신종플루 감염 현황을 소개한 바 있지만 사망자가 많은 국가 4개의 현황을 다시 보면 멕시코에서 신종플루 발병자에 비해 사망자가 현저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표 2).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이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어떤 생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을 그것이 일어나는 사회적, 제도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멕시코에 집중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멕시코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으로 심화된 양극화와 만연한 빈곤, 거대 슬럼의 형성, 사회복지의 붕괴, 보건의료체계의 영리화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 5일 멕시코에서 유독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주요 원인은 가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멕시코의 감염환자들이 병원비를 아끼려 자가 치료에 의존한 점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국립 의학 및 영양학 연구소의 전염병 전문가 호세 시푸엔테스-오소리오에 따르면 많은 멕시코 국민이 발병 후 3~4일간 자가 치료에 의존하는 바람에 병을 치료할 중요한 시간을 잃었다. 또 멕시코 약국에 저렴한 약이 충분히 있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치료제는 팔지 않았고 판매하더라도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이 구입하기 어려웠다. 신종 플루의 진원지로 알려진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2천만 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2가량이 빈민층에 속한다. 5월 30일까지 확인된 멕시코의 신종 플루 감염환자 397명 가운데 285명, 사망자 26명 중 20명이 멕시코시티 시민이었다. 멕시코의 이러한 상황은 지난 30년간 멕시코에서 일어난 전사회적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멕시코는 1983-1988년에는 안정화, 1989-2000년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전사회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편을 시도했다.(Laurell 외, 2001) 사회지출 삭감을 통해 재정구조를 조정하고 공공사업을 사유화하였으며 경제활동과 노동의 탈규제를 시행하고 중앙은행의 자율화를 인정했다. 1963년부터 1981년까지 77.5%에서 48.5%로 감소하던 빈곤가구 퍼센트는 1981년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6년에는 78%로 다시 196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최저임금은 1982년 32페소에서 1998년 13페소로 감소했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되었던 멕시코의 보건의료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면서 1980년까지 매년 10% 증가하고 1980년대는 매년 5% 증가하던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1990년 72%로 최고점을 이루다가 1995년에는 59%로 하락하였다.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임금비례 정률제로 지불하는 건강보험료 체계에서 건강보험 재정도 자동적으로 축소되었다. 더욱이 건강보험 국고 지원률은 12.5%에서 5%로 축소되었다. 재정축소로 의료기관의 유지는 어려워졌고 의료서비스의 질은 하락했다. 공공의료의 질 하락은 민간의료의 확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1982년 의료서비스분야 GDP 중 민간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2년 48%에서 2001년 58%로 증가했다. 민간병원 병상 수는 1980년대 2배로 증가했다. 1985-1992년 동안 민간의료영역은 확대되었으나 서비스 공급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빈곤의 확산으로 민간의료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민간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민간의료자본은, 시장주의들이 말하듯 가격을 인하해서 수요를 늘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격을 인상해서 부족한 수입을 메꾸려고 하였다. 1985년 민간의료서비스 가격은 빠르게 상승하여 1992년에는 공공의료서비스 가격의 2.5배가 되었다. 이러한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는 멕시코의 신종플루 환자들이 초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상황을 뒷받침한다. 타미플루와 독점제약회사 이종구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장은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인플루엔자 치료제 240만 명분을 인구의 10%인 500만 명분으로 늘려 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4월 29일 국회에서 이 치료제들을 추가로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기준은 인구의 20%로 이는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재 스위스의 로슈사가 독점 생산하는 타미플루가 전 세계적 수요량을 충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허권으로 인한 고비용 때문에 아예 약을 쓸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타미플루의 성분인 오셀타미비르에 대한 미국 특허는 미 캘리포니아의 길리어드사이언스사가 2016년까지 보유하고 있다. 타미플루의 독점 판매권자인 로슈사의 생산시설을 최대한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2015년이 되어야 전 세계 인구의 20%에 투여할 수 있는 약제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제약회사들이 타미플루 생산능력이 있다는 것은 2005년 확인되었지만 로슈가 가진 특허권 때문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허권 때문에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산량의 불평등한 분배도 문제이다. 2004년 9월 H5N1이 베트남에 다시 유행했을 때 베트남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유럽과 캐나다에 남아 있던 약간의 잉여분은 뉴욕과 미국의 다른 지역 보건당국들이 이미 싹쓸이한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12개에 불과했고 여기서 생산되는 양의 95%(2억 6천만 명분)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소비되었다. 어떤 약을 개발하는가도 문제가 되는데 약이 필요한 이들의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매력에 따라서 즉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포천500에 포함되는 10대 제약회사들이 나머지 490개 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냈다. 제약업계는 당뇨병, 고혈압, 천식 등 만성 질병에 필요한 약품이나 비아그라 같은 생활 향상을 위한 약품을 판매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 반면 이익을 적게 내는 백신이나 항생제 같이 실질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제품은 외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백신제품의 수입을 전부 합해도 화이자가 콜레스테롤 저하제 한 제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미치지 못한다. 병원 감염증으로 미국에서 매년 9만 명이 사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백신 개발에 관한 한 미국은 쿠바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전염병과 빈민층의 질병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쿠바는 수막염 B,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및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이 외면하는 기타 주요 감염증들을 치료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을 개발해왔다. 반복되는 발병,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는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조류 및 포유류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조류독감 H5N1이나 신종플루 H1N1을 피해간다 할지라도 곧 또 다른 치명적인 독감 아형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야생 조류의 서식지의 파괴와 거대 기업형 축산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문명을 숙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화되는 빈곤은 전염병에 대한 취약성을 증폭시키며 공공의료의 붕괴와 초국적 제약자본의 금융적 지배는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병원균의 박멸은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기생체와 숙주의 관계 자체가 소멸될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염성 질병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조건에 근본적 변화가 가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인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위협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마이크 데이비스, 『조류독감』, 돌베개, 2008. Laurell, Asa Cristina (2001), Health reform in Mexico: the promotion of inequality,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Vol 31, No.2: 291-321. Mirabelli, M., Wing, S., Marshall, S., and Wilcosky, T. (2006), Race, poverty, and potential exposure of middle-school students to air emissions from confined swine feeding operations,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Vol 114, No.4. Otte,J., Roland-Holst,D., Pfeiffer,D., Soares-Magalhaes,R., Rushton,J., Graham,J., and Silbergeld, E. (2007), Industrial livestock production and global health risks, Pro-Poor Livestock Policy Initiative Research Report.
위협받는 민중의 건강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보건의료 뿐만이 아닌 주거, 생태, 물, 식량과 같은 건강결정요인 전반에 있어서 불형평성을 야기하고 민중의 건강을 위협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묻는 조사에서 ‘건강하다’, ‘매우건강하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소득 수준 최상위 10%인 사람들의 경우 1998년 52%에서 2005년 56.7%로 증가한 반면, 소득수준 최하위 10%의 경우는 34.7%에서 22.8%로 크게 줄었다. 이것은 객관적인 건강 지표의 불평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위 소득계층에 견줘 하위 소득계층의 사망위험은 2.3배 더 높다. 저소득층일수록 암에 더 많이 걸리고, 치사율도 높다. 그러나 저소득층 대비 고소득층의 의료이용량은 1997년에서 2005년 동안 2배에서 4배로 늘어났다. 반면 저소득층은 같은 의료를 이용해도 입원치료, 3차병원을 통한 치료는 더 적다. 저소득층이 더 많이 아프고 더 적게 치료받고 있지만, 경제위기 속에서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노인인구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서 효과적인 사회정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상황이다. 신체적으로 취약한 노인인구의 특성상 보건의료와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대책 없이 요양비용을 개인, 가족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민중의 고통은 대를 이어가며 가중될 것이고 불형평성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2009년 신종 플루의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태파괴와 신종 감염병의 출현도 국경을 넘어 민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비는 2006년 현재 GDP 대비 6.4%로 OECD 국가 평균인 8.9%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하지만 의료비 증가율은 1992년에서 2003년까지 6.9%로서 2-3%정도인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약제비가 매우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약제비 증가율은 연평균 14.7%로서 OECD 평균의 2.1배에 달한다. 2003년 보건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28.8%로 OECD 평균인 17.8%보다 높은 수준이다. 김창엽 등에 따르면 현재의 의료비 지출 결정 요인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2020년경부터 노령화와 함께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해 2050년경에는 GDP 대비 20-30%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비는 증가하고 있지만 보건의료서비스의 질과 안전에 대한 민중의 불신과 불만은 여전하다.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이라는 자본주의 보건의료체계의 보편적 특징에다가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과잉 민간공급구조와 행위별 수가제로 이뤄짐으로써 병원의 영리추구 경향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다. 인력이 부족한 응급실, 짧은 외래시간과 같이 환자들은 안심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은 고도의 집중과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부족한 인력으로 환자들의 고충을 처리해야하는 현실 속에서 높은 노동강도에 직면하게 된다. 환자들은 이러한 병원 환경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는 불신,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불필요한 시술을 권할지도 모른다는 불신을 가지게 된다. 불만은 더욱 광범위하다. 기본적인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병원 공간이나, 권위적인 진료 속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불만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재정부담과 공급체계의 문제는 ‘3분 진료’, ‘건강보험 재정 파탄’ 같은 보건의료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오래전에 폐기된 대책이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이명박 정부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지난 10년 간 진행되어온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이는 의료민영화가 지향하는 모델인 미국의 의료제도가 이미 민중 건강의 파탄이라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사회보장 효과를 이미 국민들이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은 총체적 관점에서 의료민영화와 동일선 상에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역할을 하면서 보건의료운동진영 내에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주체를 형성하게 했다. 그러나 심화되는 양극화와 미약한 사회보장제도 속에서 앞에서 지적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에 대한 적합한 대안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자본과 정부의 의료민영화 시도 역시 계속될 것이다. 대안의 모색은 현재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모순과 그것이 형성되어 온 사회적 과정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역사와 신자유주의적 재편 대중보건의료로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형성 현대 보건의료의 역사는 인류가 직면한 주요 질병의 역사와 자본주의 축적양식의 역사에 조응한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도 20세기 확립된 대중보건의료체계의 한 형태다. 20세기 미국 헤게모니와 법인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질병의 양상도 변하면서 암, 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비감염성, 만성 질병이 주요 질병이 되었다. 20세기 초반 현대의학은 생의학 모형을 확립하면서 치료의학을 발전시켰다. 이에 맞춰 미국에서는 의학교육을 표준화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지식과 교육의 체계화는 의료의 전문직화와 대학을 중심으로 한 병원의 성장을 가져왔다. 이와 함께 간호전문직이 성장하면서 병원이 빈민구호시설이 아닌 진단과 치료의 기능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간병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병원이 급성외래환자 진료에 치중하면서 그 규모가 팽창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늘어나는 의료비를 대공황시기의 중산층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국에서는 사적보험에 의한 제3자 지불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중산층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에게까지 병원이용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공황 시기 노동자계급의 보건의료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급진적 노동자운동을 통제하는 구실이 되었다. 이렇게 보험제도를 매개로 병원이용을 대중화하고 병원을 보편적인 의료기관으로 확립하는 대중보건의료가 형성되었다. 남한의 대중보건의료 역시 반주변부 국가로서의 특수성과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의학을 배제하고 서양의학에 기초하여 의학교육과 의료제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위생경찰처럼 일제는 식민지 통치정책의 일환으로 국가주도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에 의해 미국식 의료제도가 그대로 이식된다. 미국식 전문의제도가 도입되고 치료중심, 민간주도의 보건의료체계가 확립된다. 1950~60년대에는 발전주의 정책 속에서 민중의 건강문제는 과소평가되면서 재정 확충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공립 병원 확충이 이뤄지지 않고 의사들은 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대도시에 집중되며 수가도 매우 높아 가난한 민중들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를 시작했다. 이들은 전체인구의 8.6%로서 당시 안정적 소득이 있는 가장 혜택 받은 계층이었다. 이러한 역진적 의료보장제도로서의 출발은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의 획득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중보건의료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후 추가적 확충개혁조치들이 있으면서 1989년에 전 국민이 모두 보험 대상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보험제도가 도입된 1977년 이후 의료수요는 급속히 늘어났지만 정부는 공적 재원을 통해 공적 인프라를 늘리는 대신 민간 중심의 의료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력 공급 문제에 있어서도 체계적 계획보다는 의과대학을 신설하여 공급량을 늘리는 것에 주력했다.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는 이로 인해 더욱 확대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의원에서 민간 병원으로 성장의 중심이 바뀌게 되었다. 민간부문 병상수 구성비는 1949년 24.9%에서 1975년 53.7%, 2006년 82.6%로 성장하게 된다. 실질임금의 확대와 의료보험으로 인해 입원 욕구가 유효수요가 되었고 병상 확충을 정부가 지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와 전국민 건강보험을 통한 공적 의료재정체계가 결합된 한국의 대중보건의료체계가 확립되었다. 대중보건의료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대중보건의료의 특징은 계속되는 성장과 비효율성이다. 병원은 계속 확대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많아지고 의료비도 증가하는데 정작 건강에 대한 만족도는 향상되지 않는 것이다. 비용상승과 건강 증진의 괴리라는 대중보건의료의 위기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를 반영한다. 20세기 비감염성 질병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생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대중보건의료의 개인적, 치료적 접근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질병이 의학 외적 요인으로 발생했다고 해서 의료가 유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료는 증상의 완화, 고통의 경감을 도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질병을 발생시킨 사회경제적 원인을 은폐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이를 의료의 이중적 기능이라고 한다. 유용한 기능을 통해 통제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대중보건의료는 원인을 은폐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더 많은 질병을 발생시키고 증상 완화를 위한 의료 요구를 더욱 증가시킴으로써 모순의 확대를 야기한다. 대중보건의료의 위기는 보건의료가 자본축적의 영역이 될수록 더욱 심화된다. 보건의료가 개입하는 영역이 확대되면서 사회의 의료화 현상이 나타나지만 정작 불건강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한 대증적 치료에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 병원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특히 강하다. 민간 중심의 공급체계와 정부의 책임 방기로 인해 의료인력과 시설의 공급이 불균등해져 농어촌에는 의료시설이 부족한 반면, 대도시에서는 과잉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나타났다. 시장원리를 기본으로 한 행위별 수가제를 통해서는 이러한 경쟁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수가의 양을 통제하고, 심사를 통해 급여를 보상하면서 병원의 의료행위를 통제하려는 노력은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검증되지 않은 비급여 의료행위의 확대를 가져오고, 이것은 다시 민중의 부담 증가와 건강의 위협을 낳는다. 공급체계에 있어 현저히 낮은 공공병원 비중과 의료전달체계의 미확립, 행위별 수가제와 광범위한 비급여는 지역사회의 평판에 더 신경을 쓰는 외국의 비영리 민간 병원과 달리 한국의 병원으로 하여금 이윤추구에 매달리게 만들었고 재벌기업의 병원산업 진출과 시장점유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상을 만들었다. 1989년 현대아산병원이 설립되고 1994년 삼성의료원이 설립되면서 한국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는 더 심화된다. 3차 의료기관 간의 병상 수 증가와 고가장비 구입 경쟁이 격화되고, 이 과정에서 3차 기관의 역할이 아닌 경증외래환자들에 대한 고가진료와 서비스 과잉 제공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한다.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1990년 진료권역별 병상수 상한제 폐지와 병상 신증설 절차 완화, 1998년 진료권역 폐지 등 이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의료비는 증가하게 되었고 의료전달체계는 와해되었으며, 의료 시설의 지역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재벌기업의 병원산업 진출은 비록 비영리법인이라는 제도적 통제를 받고 있으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일환으로서 ‘보건의료의 금융화’의 맹아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말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진행되었듯이 대중보건의료의 위기에 대해서도 공적 의료서비스의 비효율성을 그 원인으로 보면서 공적 보건의료영역의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약자본과 병원자본은 직접투자와 인수합병을 통해 자본을 집적하여 시장지배력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윤축적전략의 금융적 변모를 시도했다. 공급자가 소비지역으로 직접 진출할 수밖에 없는 병원자본의 경우 민족국가의 제도적, 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초민족화가 얼마정도 제한되나 제약자본은 성공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를 통해 특허권과 독점권을 보장받아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보험자본의 변화, 성장도 금융화의 또 다른 측면이다. 보건의료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보험자본은 이제 보건의료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면서 이를 자본 집중의 계기로 활용한다. 미국의 ‘관리의료’가 대표적 사례다. 보험과 병원이 통합된 형태로 형성된 관리의료조직이 환자가 이용하는 의료서비스를 통제하게 된다. 보험회사는 의료과정 자체에 개입하면서 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동시에, 양질의 의료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다. 이러한 비용절감을 통해 민중의 건강은 과소평가되고 금융자본의 이윤은 극대화된다. 금융자본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삼성생명의 내부전략보고서는 삼성병원을 중심으로 1차, 2차 병원과 협력병원체계를 구축하고 삼성생명, 삼성화재와 계약을 통해 완전히 사적 지배가 가능한 대중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려는 목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보건의료체계 역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시작한다. 대형 병원의 확대와 함께 제도 역시 재정비된다. 의료보험재정통합과 의약분업이 그 예다. 1988년 농민들의 보험료 납부 거부 투쟁에서 출발한 의료보험통합추진운동은 형식적으로는 직장보험과 지역보험의 재정, 운영통합이라는 제도적 변화를 요구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로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총체적 사회관계의 변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지역보험의 불안정성과 취약한 보장성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역보험과 직장보험으로 나뉘어져있던 당시 보험체계에서 지역보험의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했고 그로 인해 보장성이 낮았으며 국고의 보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도시노동자를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재정이 여유로운 직장보험이 지역보험과 통합된다면 지역보험 가입자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한편 보험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1988년부터 민중운동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의료보험 통합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결정이 되고 각 보험조합은 순차적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통합과정에서 지역보험 가입자 보험료의 50%를 국고로 지원하고, 심사평가제도를 통해 공급체계 통제 기제도 확보하며, 건강보험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예방 및 건강증진 사업에도 기금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운동진영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업의 효율성, 국고 부담의 감소를 개혁 근거로 내세우며 의료보험통합을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용도로 활용하였다. 게다가 여전히 공급체계는 민간 중심적이었으므로 병원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화, 고급화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이러한 추세를 재벌 병원들이 주도하면서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이른바 ‘빅4병원’이 건강보험재정에서 지급 받은 ‘건강보험급여’는 의약분업 다음 해인 2001년 4천 68억 원에서 2006년에는 9천 685억 원으로 5년 만에 2.4배로 늘어났다. 약 10%정도인 연평균 진료비 증가율의 두 배가 넘는다. 43개 종합전문요양기관, 즉 대형 종합병원의 건강보험급여 가운데 4개 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년 만에 25.3%에서 31.3%로 늘어나 ‘빅4’ 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화, 고급화를 위한 종합병원의 투자 경쟁은 의료민영화의 핵심적 쟁점 중 하나인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의료채권 도입의 동기가 되고 있다. 의약분업을 추진한 근거는 약물 오남용 감소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과 약물 사용 감소를 통한 약제비 절감이었다. 당시에 주로 비판받은 문제는 약제비가 정부고시가상환제로 보상되는 상황에서 고시가보다 저가로 거래를 하면서 획득하게 되는 제약회사의 음성적 약가마진과 이를 분배하기 위해 의사, 약사에게 주는 리베이트였다. 고시가상환제란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정해 놓고, 실제 의료기관이 정해진 가격 이하로 의약품을 구매하더라도 고시된 가격만큼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약제비를 개별실거래가상환제로 바꿨다. 개별실거래가상환제는 개별 의료기관의 실제 구입가격을 취합해 실구매가격만큼만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이 경우 의료기관이 저가약품을 사용할 동기는 사라지고 의사들이 보다 검증됐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더 비싼 초국적 제약기업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게 된다. 의약분업은 결과적으로 약품 남용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초국적 제약기업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연합조직을 만들어 적극적인 로비와 압력을 행사하면서 의약품 관련 정책에 개입했다. 의약분업도 그러한 요구 중 하나였다. 그들은 또한 고가 수입의약품의 보험 등재를 요구했고 약가 결정에 있어서 연구개발가치의 인정과 투자비용의 회수가 가능한 가격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면서 선진국 수준과 동일한 약가기준을 요구하는 A-7가격결정제를 도입시켜 폭리에 가까운 약가를 관철시켰다. 한편 비공식적 수입인 리베이트가 줄어든 만큼 의약계의 수입보전을 위해 수가가 인상되었다. 이러한 의약분업의 결과는 초국적 제약기업의 비약적 성장과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추가적 재정분담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그 부담을 민중에 전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병원자본과 제약자본의 성장이 낭비적인 의료공급체계를 통해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한다면 민간보험자본의 성장은 건강보험을 통한 보건의료체계의 공적 통제기능 자체를 침식한다. 한국의 민간의료보험자본은 1996년부터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5년 동안 재원이 4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6년에는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이 허용되었다. 실손형 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해주지 않는 본인부담금에 대해 보상해주는 보험이다.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 가입자가 증가하게 될수록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결국 민간 보험에 가입하기 힘든 저소득층의 보장성을 약화시켜 건강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또한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은 정액보상방식과 달리 환자에게 의료서비스가 얼마나 제공되는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실손형 의료보험은 개인의 질병정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병원의 의료행위에 개입하는 등 의료공급체계의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보건의료운동의 과제 개혁의 성격과 운동진영의 대응방안에 대해 많은 논쟁을 야기한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과정은 한국 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맞서기 위한 보건의료운동의 방향이 어떠해야하는지 보여준다. 개혁에 참여했던 보건의료운동진영은 의료재정체계의 확대를 통해 의료 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확대하고,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공적 통제를 확대하여 적은 비용으로 국민의 건강을 확보하는 거시적 효율성도 달성하려 했으나 이것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보건의료운동이 착목하고 대응하지 못한 두 가지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민족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의료공급체계를 왜곡하는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이고 둘째는 노동 불안정화, 규제 완화, 빈곤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건강 자체의 확대다. 결국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 기간 동안 민중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획기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은 새로운 대안을 통해 의료민영화 논쟁의 국면을 바꾸고자 시도하고 있다. 제안 내용은 한국 의료체계의 개혁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험료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 과정에서 민중이 헤게모니를 확보해 민간보험 가입 동기를 제어할 만큼 높은 수준의 보장성과 포괄수가제, 지역별 병상 총량제, 주치의 제도 등 공급체계의 개혁을 쟁취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정책의 시장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이러한 요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고 국민의 보편적 건강을 위해 재정을 확충할 의지가 없는 정부의 성격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은폐시킬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지출비중은 2006년 55.7%로서 OECD평균인 73%에 미달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지출비중의 확대에 있어 개별 보험자가 아닌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재원으로서 건강보험의 양적 확대는 분명 의료공급체계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긴 하지만 의료공급체계의 구조변화와 동반되지 않을 경우 매우 한계적일 수 있다. 지금의 의료공급체계에서는 공적재원이 오히려 대형병원과 민간보험, 그리고 초국적 제약기업의 이윤을 늘려주는 데 집중되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들이 이윤 추구에 몰두하고 민간보험이 활성화되며 초국적 제약기업이 특허권으로 독점을 유지하며 폭리를 취하는 상태에서는 건강보험에 투입한 공적재원이 자본을 키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공적재원의 지원을 받으며 몸집을 불린 병원, 보험, 제약 자본들은 계속 어떻게든 노동자민중을 위해 존재하는 건강보험과 보건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앞서 밝힌 의료보험통합운동이 대응하지 못했던 맹점들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결국 현실적으로 병원자본의 이윤추구를 억제하지 않고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요구가 부분적인 정책 변화로 수렴될 경우 보건의료체계의 이윤추구적 경향은 제어되지 못하고 민중의 부담만 가중될 위험도 있다.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을 가로막는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가 고착될 수밖에 없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이윤추구성이 문제다. 의료제도의 모순은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좌우하는 ‘구조적 본질’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체계가 맞게 된 위기의 ‘현상적 표현’이다. 보험자, 공급자,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보건의료제도란 허상에 불과하다. 보건의료체계에서 자본과 민중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자본은 보건의료체계를 이윤창출의 영역으로 구축하려 하고 민중은 보편적 권리로서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을 예로 들면 자본은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건강보험에는 어떠한 비용부담도 하지 않으려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이윤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윤추구의 흐름이 제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입안하려는 보험업법 개악, 의료채권법, 제주도특별자치도법 등이다.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은 영리법인 도입, 민간보험 활성화와 같은 이윤추구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미 충분히 시장적인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모순도 드러낸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는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이 건강을 둘러싼 계급적 대립을 명확히 드러내며 민중의 불만을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운동이다. 심화되고 있는 건강불형평성에 관한 연구가 보여주듯 건강에 대한 민중의 불만은 드러나지 않고 조직되지 않았을 뿐 이미 만연해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가중될 민중의 고통을 폭로하고, 이러한 고통을 전가하는 자본과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만 신자유주의를 저지하고 민중의 단결을 통해 대안 구성해 나갈 운동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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