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기금 금융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의 완성 국민연금에 관한 한 2007년은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만하다. 제도시행이 1988년에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됨으로써, 완전노령연금 수급자가 내년부터 배출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를 경과하며 국민연금 적립기금 200조원 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2003년에 시작되어 4년을 끌어온 국민연금법 개정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끌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준비되어온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작업이 지난 9월 11일 정부안으로 발표,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입법이 예고되고 있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몇 가지 개혁과제가 남겨져 있다. 국민연금 개혁을 발판 삼아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특수직역연금의 개혁이 준비 중이고, 또한 4대 사회보험 징수 일원화를 위한 입법이 추진 중이다. 2003년 연금개혁에 착수하던 당시 정부는 재정안정화,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영체계 개편을 연금개혁의 3대 과제로 제시했다. 4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지난 7월 기초노령연금 도입과 '그대로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는데, 재정안정화, 사각지대가 주요한 명분이었다. 연금개혁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금운영체계 개편 문제가 남아있던 셈이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이 발표되자, 각종 언론들은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과 함께 한국경제가 금융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며 연일 환호성을 쏟아냈다. 이러한 반응만으로도 개편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개편안의 골자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민간투자 전문가로 구성한다는 것인데, 두 말할 나위 없이 그동안 착실히 추진되어온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방안에 적합한 기금운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구상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처럼 이번 정부의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은 완성될 수 있는가?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지배적인 논리 하에서 연금개혁의 완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7월의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재정고갈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연'된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재정추계 당시 2047년 정도로 예측되었던 재정고갈 시한은, 연금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춤으로써 2060년 정도로 지연되었을 뿐이다. 기금운용 체계 개편 문제 역시 표면적으로는 정부냐 민간이냐 따위가 핵심 쟁점인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쟁점은 이러한 재정고갈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에 대한 많은 비판들을 피해갈 수 있는 논리로 정부와 신자유주의자들은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재정고갈 압박을 완화해 갈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주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몇몇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수익률을 1% 높이면, 연간 약 2조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고, 기금 고갈 연도를 4년 정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기금운용 체계의 개편은 국민연금 개혁의 완성이라기보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상시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개혁의 기본 방향은 물론 연금기금의 금융화, 운용수익률의 극대화가 될 것이다. 정부 개편안의 주요 내용 정부는 독립성, 전문성, 책임성, 대표성·투명성, 기금분할의 다섯 가지를 개편의 방향으로 설정한 후1) 다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체계 개편안을 제시하고 있다. 1)현재 비상설, 보건복지부 소속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와 정부로부터 독립, 2)현재 21명(정부 7인, 민간 14인)인 위원회 위원 구성을 7인(모두 민간)으로 개편, 3)위원 추천은 신설되는 기금운용위원추천위원회(정부 5인, 민간 6인)를 통해 함, 4)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의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행하던 기금운용의 집행은 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하여 함, 5)정부의 권한은 위원 및 공사 사장의 임면, 신설되는 '국민연금기금관계장관협의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에 출석·발언, 의견제시하는 것으로 제한. 이번 정부 개편안의 보다 구체적인 실체는 이미 앞서서 차근차근 추진되어온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를 위한 각종 조치들과 함께 바라볼 때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이번 개편안이 기금운용을 어떤 틀에서 할 것인가라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개혁이라면, 그 형식을 규정하는 내용은 이미 마련되어 실행되어 왔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전반의 주식투자를 제한하는 제도적 요인을 제거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연금기금 운용의 기본 방향, 목표와 관련되는 기본 내용을 담고 있는 '국민연금 중장기 기금운용 마스터플랜' 수립하여, 이를 바탕으로 매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안)'을 마련해 왔다. '마스터플랜'은 연금기금의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몇 가지의 포트폴리오 선택지를 비교 검토한 끝에 해외투자, 주식투자, 대체투자의 확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최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연간 목표 수익률을 약 6%로 잡고, 2014년까지 해외투자를 25%로 확대하며, 그 중간단계로 2009에는 해외투자 비중을 11.7%, 주식투자 비중을 10% 내외, 대체투자를 3%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지난 6월 발표된 2008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을 보면, 이러한 정부의 기금운용 구상은 목표가 이미 초과달성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투자는 주식과 채권을 합쳐 약 13.7%, 국내주식 17%, 대체투자 2.9%로 구성되는 목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투자에 활용되는 여유자금은 86조 7,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기금운용위원회의 기능, 그리고 위원들이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은 금융 투자 전문가로서의 면모이다. 최적 자산배분에 대한 판단, 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투자 위험관리 등에 있어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실제 정부 개편안은 운용위원회 위원 자격을 금융 또는 투자 분야에 대한 연구 경력이 5년 이상인 자,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국제금융기구에서 투자업무를 5년 이상 담당한 자, 변호사·공인회계사·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 소지자로 금융·투자 또는 기업 감사업무를 5년 이상 담당한 자, 기타 이에 준하는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바와 같이 금융투자의 불안정성은 상존하는 것이고, 역량 있는 투자전문가들이나, 철저히 계산된 위험 허용범위 따위로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극히 낮은 수준의 투자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연금기금의 천문학적인 규모 상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는 피해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만일 한국의 2008년 투자 액수인 87억 원 규모에서 0.1%의 투자 손실이 일어난다고만 가정해도, 그 피해액수는 1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 되는 것이다. 금융화 비판 관점의 부재가 초래한 자충수 사실 기금운용체계의 정부로부터의 독립 문제는 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온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오랜 숙원과제 중 하나였다.2) 시민단체들의 주요 관심사는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과 이를 통해 기금운용 지배구조의 민주성, 투명성 등을 제고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마치 기금운용의 책임과 권한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개편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시민단체들의 관심사와는 정확히 역행하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의 구상이 사회보험의 기본 도입 취지와 원리를 반영한 노-사-정 협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정부의 이번 개편안은 철저히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 모델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개편안에 대한 비판은 주로 운용위원회와 추천위 구성에 관련된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현행 운용체계는 위원회 위원 21명을 정부 인사(위원장 포함 7인), 가입자 대표 12인(노동자 3인, 사용자 3인, 지역가입자 6인), 관계 전문가(2인)들로 구성하고 있다. 개편안은 독립성의 원칙에 따라 정부 관계자를 모두 배제하고, 민간위원 7인으로만 구성을 하는데, 그 자격요건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또한 추천위원회의 경우 민간에 할당된 6인 중 가입자 대표는 노동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각 1인씩이고, 공익대표가 3인 포함되게 되어 있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이루게 되었지만, 가입자 대표의 참여 및 발언력은 운용위원회, 추천위원회를 통틀어 거의 배제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민단체들의 입장에서 자기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난 사례는 그 전사(前史)가 없지 않다.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연금기금을 빌려다 쓰고 이자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연금기금을 제주머니의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과 이런 파행적인 운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고안이 필요하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고민에 앞서, 1999년 개정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하 공자기금법)의 개정에 반영되어 있다. 정부가 각종 공적기금을 강제적으로 예탁하게 하고, 이를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공자기금법의 개정을 시민단체들이 앞서서 이끌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기모순적인 결과인 이유는 사실 공자기금법에서의 강제 위탁 규정 폐지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일 뿐 아니라,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98년, 세계은행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강제한 요구사항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요구가 있은 직후, 한국 정부는 공자기금법의 개정과 함께 국민연금법 개정3)을 거의 동시에 단행했다. 이를 계기로 연금기금의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는 점차 감소, 중단되고, 금융투자 중심의 기금운용이 실행되어 왔다. 연금기금 운용체계 면에서도 국민연금공단 내에 전문가조직인 기금운용본부를 신설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즈음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의 팽창을 주도한 것은 기관투자자들이었고, 여기서 연기금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세계적으로 공적연금 개혁의 신자유주의적 규범을 만들어 각 국가들의 연금개혁에 개입하면서 연금기금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각종 노력을 강구해왔다. 여기에는 공적연금 제도를 축소, 적립식으로 전환하고 사적연금을 확대하는 등의 연금제도의 측면뿐 아니라, 연금기금 지배구조를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투자자 중심으로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1998년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러한 요구를 강제하기에 매우 호기였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연금개혁이 세계은행이 강제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은 1998년 당시 개혁부터라 할 수 있으며, 이번 개편안 역시 그 시나리오에 따라 조금씩 움직여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연금의 지배구조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논리에 따라 재편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력을 제거하는 동시에, 금융투자의 원리를 이식해 온 것이다. 당시 한국의 운동진영 내에서는 금융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사후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입장이 처한 현재의 상황은 금융화 비판의 관점이 부재한 가운데 초래된 자충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후적인 평가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비판이 정당하며 또한 중요한 이유는 현재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개편안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응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시민단체들은 한결 같이 가입자 대표의 배제와 정부의 영향력이 은폐된 형태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현 체계 내에서도 가입자 단체의 발언력과 영향력이라는 것은 사실상 매우 미비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그 발언력과 영향력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이다.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구성된 <연금제도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10년 간 정부 부처들이 연금기금의 정치적 활용을 시도했으나 과반을 이룬 가입자 대표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이번 안은 기금의 주인인 가입자의 대표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 기금운용의 안정성과 기금운용 정책의 공공성을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참여와 감시 기능은 철저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부의 정치적 활용은 제거의 대상이고, 금융적 활용은 용인 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피한 대안인 것인지, 현재와 같이 이미 기금운용의 기본방향이 수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금운용의 안정성과 공공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왜 연금기금의 금융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가?4) 금융화에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 대안을! 위와 같은 상황은 사회운동 일반이 연금기금 문제에 대해 고민이 빈약함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사회운동 내에서 연금기금의 활용방안에 대한 입장으로는 사회복지, 공공주택 등에 대한 공적투자 형태가 계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 수준에서 제기되어 왔다. 또한 이와 같은 공적투자가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증가할 연금기금 규모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으며, 이 역시 결국 정부 지배구조가 가지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사회책임투자가 연금기금 활용의 대안적인 방안으로 제안되어 왔다.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적립방식의 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여 적립된 기금을 소진시키는 방안이 제안되어 왔는데, 사회진보연대 역시 연기금 금융화 비판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대안을 발전시킬 것을 주장해왔다. 그 동안의 논의는 이러한 입장 사이의 쟁점이 '실현가능성' 여부인듯한 지형을 형성해왔다. 즉, 원칙적으로 적립기금의 해소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기금 해소의 방법적 측면, 그리고 부과방식의 기본 전제인 세대 간 연대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등에서의 대안부재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의, 특히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국민연금법 대응 과정에서의 논의와 현재 정부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입장의 편차들을 보건데, 진정한 쟁점은 단기간 내의 실현가능성 여부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비판, 그리고 금융화 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연금기금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연금개혁을 비판하는 앞선 글들5)에서 연금개혁 문제는 단지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으며, 금융화 비판의 문제의식의 기반 위에서 민중적 관점, 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보장의 원리, 재생산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을 제안했다. 이는 사실상 연금개혁 문제가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만이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현재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약 210조이고, 이는 2005년 한국 경상 GDP의 약 30%에 이르는 규모이며, 2006년 9월 기준으로 국내 상장 주식시가 총액 674조원의 약 30%에 이르는 액수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1997년에 이미 세계적으로 공·사적 연금기금 적립액은 14조 달러로, 세계 GDP 대비 50%, 세계 주식시가 총액의 61%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민주의적 전망을 가지는 운동세력들과 금융화에 상대적으로 덜 적응된 우파들이 서로 상반된 의미에서 '연기금 사회주의'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 역시 연금기금 문제가 단지 제도설계나 운용체계 개편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지금 사회운동 내에 필요한 것은 섣부른 대안이나 단발성 아이디어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반대하는 운동 속에 연금개혁 문제를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연금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확인하고,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한 대중적 토론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금융투자 수익률 제고를 통해 재정안정성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들의 입을 통해 제기될 날이 오는 것도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듯하다. 사회진보연대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관련 동향소개와 보다 정선된 입장을 『사회운동』 지면에 담아냄으로써, 이러한 논의가 활성화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1)세계은행은 연금기금 지배구조의 주요 원칙으로 독립성, 책임성·투명성, 명확성, 자율성, 내부통제를 제시하고 있다.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4년 11월, 현애자 의원 대표발의로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 및 상설화, 추천위원회 구성,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 설립 등, 전체적인 틀은 이번 정부 개편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운용위원회(총 21~22인)에 정부인사 참여(3인) 및 가입자대표, 공익대표 참여 확대, 그리고 가입자 대표 참여 비중이 큰(총 7인 중 5인) 추천위원회 구성 등에 있어 정부안과 차이가 있다. 본문으로 3) 국민연금 급여율을 70%에서 60%로 인하하고, 국민연금 급여산식에서 1:0.75로 설계되어 있던 균등부분과 비례부분을 1:1로 조정하여 소득재분배 효과를 낮추는 것, 연금 수급연령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본문으로 4) 연금기금을 활용하여 해외 투기자본으로 부터의 한국 자본시장의 방어, 기업지배구조 개선활동 등을 주장해온 경제개혁센터의 경우, '민간위원 경력연수 요건을 10년 이상으로 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짧다. 한국투자공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국민연금의 민간운용위원의 전문성 요건이 오히려 더 완화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10년으로 늘리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요건이고, 가급적 투자관리(investment management) 전문가들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와 같이 운용위원의 투자 전문성을 보다 높이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본문으로 5)『월간 사회운동』(http://www.movements.or.kr)에 관련된 많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연금기금 금융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의 완성 국민연금에 관한 한 2007년은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만하다. 제도시행이 1988년에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됨으로써, 완전노령연금 수급자가 내년부터 배출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를 경과하며 국민연금 적립기금 200조원 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2003년에 시작되어 4년을 끌어온 국민연금법 개정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끌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준비되어온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작업이 지난 9월 11일 정부안으로 발표,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입법이 예고되고 있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몇 가지 개혁과제가 남겨져 있다. 국민연금 개혁을 발판 삼아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특수직역연금의 개혁이 준비 중이고, 또한 4대 사회보험 징수 일원화를 위한 입법이 추진 중이다. 2003년 연금개혁에 착수하던 당시 정부는 재정안정화,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영체계 개편을 연금개혁의 3대 과제로 제시했다. 4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지난 7월 기초노령연금 도입과 '그대로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는데, 재정안정화, 사각지대가 주요한 명분이었다. 연금개혁의 완성을 위해서는 기금운영체계 개편 문제가 남아있던 셈이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이 발표되자, 각종 언론들은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과 함께 한국경제가 금융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며 연일 환호성을 쏟아냈다. 이러한 반응만으로도 개편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개편안의 골자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민간투자 전문가로 구성한다는 것인데, 두 말할 나위 없이 그동안 착실히 추진되어온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방안에 적합한 기금운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구상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처럼 이번 정부의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은 완성될 수 있는가?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지배적인 논리 하에서 연금개혁의 완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7월의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재정고갈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연'된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재정추계 당시 2047년 정도로 예측되었던 재정고갈 시한은, 연금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춤으로써 2060년 정도로 지연되었을 뿐이다. 기금운용 체계 개편 문제 역시 표면적으로는 정부냐 민간이냐 따위가 핵심 쟁점인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쟁점은 이러한 재정고갈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에 대한 많은 비판들을 피해갈 수 있는 논리로 정부와 신자유주의자들은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재정고갈 압박을 완화해 갈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주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몇몇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수익률을 1% 높이면, 연간 약 2조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고, 기금 고갈 연도를 4년 정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기금운용 체계의 개편은 국민연금 개혁의 완성이라기보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상시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개혁의 기본 방향은 물론 연금기금의 금융화, 운용수익률의 극대화가 될 것이다. 정부 개편안의 주요 내용 정부는 독립성, 전문성, 책임성, 대표성·투명성, 기금분할의 다섯 가지를 개편의 방향으로 설정한 후1) 다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체계 개편안을 제시하고 있다. 1)현재 비상설, 보건복지부 소속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와 정부로부터 독립, 2)현재 21명(정부 7인, 민간 14인)인 위원회 위원 구성을 7인(모두 민간)으로 개편, 3)위원 추천은 신설되는 기금운용위원추천위원회(정부 5인, 민간 6인)를 통해 함, 4)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의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행하던 기금운용의 집행은 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하여 함, 5)정부의 권한은 위원 및 공사 사장의 임면, 신설되는 '국민연금기금관계장관협의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에 출석·발언, 의견제시하는 것으로 제한. 이번 정부 개편안의 보다 구체적인 실체는 이미 앞서서 차근차근 추진되어온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확대를 위한 각종 조치들과 함께 바라볼 때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이번 개편안이 기금운용을 어떤 틀에서 할 것인가라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개혁이라면, 그 형식을 규정하는 내용은 이미 마련되어 실행되어 왔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 전반의 주식투자를 제한하는 제도적 요인을 제거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연금기금 운용의 기본 방향, 목표와 관련되는 기본 내용을 담고 있는 '국민연금 중장기 기금운용 마스터플랜' 수립하여, 이를 바탕으로 매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안)'을 마련해 왔다. '마스터플랜'은 연금기금의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몇 가지의 포트폴리오 선택지를 비교 검토한 끝에 해외투자, 주식투자, 대체투자의 확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최적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연간 목표 수익률을 약 6%로 잡고, 2014년까지 해외투자를 25%로 확대하며, 그 중간단계로 2009에는 해외투자 비중을 11.7%, 주식투자 비중을 10% 내외, 대체투자를 3%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지난 6월 발표된 2008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을 보면, 이러한 정부의 기금운용 구상은 목표가 이미 초과달성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투자는 주식과 채권을 합쳐 약 13.7%, 국내주식 17%, 대체투자 2.9%로 구성되는 목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투자에 활용되는 여유자금은 86조 7,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기금운용위원회의 기능, 그리고 위원들이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은 금융 투자 전문가로서의 면모이다. 최적 자산배분에 대한 판단, 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투자 위험관리 등에 있어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실제 정부 개편안은 운용위원회 위원 자격을 금융 또는 투자 분야에 대한 연구 경력이 5년 이상인 자,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국제금융기구에서 투자업무를 5년 이상 담당한 자, 변호사·공인회계사·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 소지자로 금융·투자 또는 기업 감사업무를 5년 이상 담당한 자, 기타 이에 준하는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바와 같이 금융투자의 불안정성은 상존하는 것이고, 역량 있는 투자전문가들이나, 철저히 계산된 위험 허용범위 따위로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극히 낮은 수준의 투자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연금기금의 천문학적인 규모 상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는 피해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만일 한국의 2008년 투자 액수인 87억 원 규모에서 0.1%의 투자 손실이 일어난다고만 가정해도, 그 피해액수는 1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 되는 것이다. 금융화 비판 관점의 부재가 초래한 자충수 사실 기금운용체계의 정부로부터의 독립 문제는 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온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오랜 숙원과제 중 하나였다.2) 시민단체들의 주요 관심사는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과 이를 통해 기금운용 지배구조의 민주성, 투명성 등을 제고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마치 기금운용의 책임과 권한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개편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시민단체들의 관심사와는 정확히 역행하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의 구상이 사회보험의 기본 도입 취지와 원리를 반영한 노-사-정 협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정부의 이번 개편안은 철저히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 모델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개편안에 대한 비판은 주로 운용위원회와 추천위 구성에 관련된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현행 운용체계는 위원회 위원 21명을 정부 인사(위원장 포함 7인), 가입자 대표 12인(노동자 3인, 사용자 3인, 지역가입자 6인), 관계 전문가(2인)들로 구성하고 있다. 개편안은 독립성의 원칙에 따라 정부 관계자를 모두 배제하고, 민간위원 7인으로만 구성을 하는데, 그 자격요건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또한 추천위원회의 경우 민간에 할당된 6인 중 가입자 대표는 노동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각 1인씩이고, 공익대표가 3인 포함되게 되어 있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이루게 되었지만, 가입자 대표의 참여 및 발언력은 운용위원회, 추천위원회를 통틀어 거의 배제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민단체들의 입장에서 자기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난 사례는 그 전사(前史)가 없지 않다.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연금기금을 빌려다 쓰고 이자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연금기금을 제주머니의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과 이런 파행적인 운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고안이 필요하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고민에 앞서, 1999년 개정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하 공자기금법)의 개정에 반영되어 있다. 정부가 각종 공적기금을 강제적으로 예탁하게 하고, 이를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공자기금법의 개정을 시민단체들이 앞서서 이끌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기모순적인 결과인 이유는 사실 공자기금법에서의 강제 위탁 규정 폐지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일 뿐 아니라,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98년, 세계은행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강제한 요구사항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요구가 있은 직후, 한국 정부는 공자기금법의 개정과 함께 국민연금법 개정3)을 거의 동시에 단행했다. 이를 계기로 연금기금의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는 점차 감소, 중단되고, 금융투자 중심의 기금운용이 실행되어 왔다. 연금기금 운용체계 면에서도 국민연금공단 내에 전문가조직인 기금운용본부를 신설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즈음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의 팽창을 주도한 것은 기관투자자들이었고, 여기서 연기금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세계적으로 공적연금 개혁의 신자유주의적 규범을 만들어 각 국가들의 연금개혁에 개입하면서 연금기금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각종 노력을 강구해왔다. 여기에는 공적연금 제도를 축소, 적립식으로 전환하고 사적연금을 확대하는 등의 연금제도의 측면뿐 아니라, 연금기금 지배구조를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투자자 중심으로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1998년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러한 요구를 강제하기에 매우 호기였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연금개혁이 세계은행이 강제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은 1998년 당시 개혁부터라 할 수 있으며, 이번 개편안 역시 그 시나리오에 따라 조금씩 움직여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연금의 지배구조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논리에 따라 재편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력을 제거하는 동시에, 금융투자의 원리를 이식해 온 것이다. 당시 한국의 운동진영 내에서는 금융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사후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입장이 처한 현재의 상황은 금융화 비판의 관점이 부재한 가운데 초래된 자충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후적인 평가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비판이 정당하며 또한 중요한 이유는 현재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개편안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응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시민단체들은 한결 같이 가입자 대표의 배제와 정부의 영향력이 은폐된 형태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현 체계 내에서도 가입자 단체의 발언력과 영향력이라는 것은 사실상 매우 미비하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그 발언력과 영향력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이다. 참여연대를 주축으로 구성된 <연금제도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10년 간 정부 부처들이 연금기금의 정치적 활용을 시도했으나 과반을 이룬 가입자 대표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이번 안은 기금의 주인인 가입자의 대표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 기금운용의 안정성과 기금운용 정책의 공공성을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참여와 감시 기능은 철저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부의 정치적 활용은 제거의 대상이고, 금융적 활용은 용인 가능한 것인지, 혹은 불가피한 대안인 것인지, 현재와 같이 이미 기금운용의 기본방향이 수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금운용의 안정성과 공공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왜 연금기금의 금융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가?4) 금융화에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 대안을! 위와 같은 상황은 사회운동 일반이 연금기금 문제에 대해 고민이 빈약함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사회운동 내에서 연금기금의 활용방안에 대한 입장으로는 사회복지, 공공주택 등에 대한 공적투자 형태가 계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 수준에서 제기되어 왔다. 또한 이와 같은 공적투자가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증가할 연금기금 규모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으며, 이 역시 결국 정부 지배구조가 가지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사회책임투자가 연금기금 활용의 대안적인 방안으로 제안되어 왔다.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적립방식의 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여 적립된 기금을 소진시키는 방안이 제안되어 왔는데, 사회진보연대 역시 연기금 금융화 비판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대안을 발전시킬 것을 주장해왔다. 그 동안의 논의는 이러한 입장 사이의 쟁점이 '실현가능성' 여부인듯한 지형을 형성해왔다. 즉, 원칙적으로 적립기금의 해소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기금 해소의 방법적 측면, 그리고 부과방식의 기본 전제인 세대 간 연대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등에서의 대안부재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의, 특히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국민연금법 대응 과정에서의 논의와 현재 정부 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입장의 편차들을 보건데, 진정한 쟁점은 단기간 내의 실현가능성 여부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비판, 그리고 금융화 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연금기금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연금개혁을 비판하는 앞선 글들5)에서 연금개혁 문제는 단지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으며, 금융화 비판의 문제의식의 기반 위에서 민중적 관점, 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보장의 원리, 재생산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을 제안했다. 이는 사실상 연금개혁 문제가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만이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었다. 현재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약 210조이고, 이는 2005년 한국 경상 GDP의 약 30%에 이르는 규모이며, 2006년 9월 기준으로 국내 상장 주식시가 총액 674조원의 약 30%에 이르는 액수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1997년에 이미 세계적으로 공·사적 연금기금 적립액은 14조 달러로, 세계 GDP 대비 50%, 세계 주식시가 총액의 61%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민주의적 전망을 가지는 운동세력들과 금융화에 상대적으로 덜 적응된 우파들이 서로 상반된 의미에서 '연기금 사회주의'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 역시 연금기금 문제가 단지 제도설계나 운용체계 개편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지금 사회운동 내에 필요한 것은 섣부른 대안이나 단발성 아이디어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반대하는 운동 속에 연금개혁 문제를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연금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확인하고, 대안을 발전시키기 위한 대중적 토론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금융투자 수익률 제고를 통해 재정안정성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들의 입을 통해 제기될 날이 오는 것도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듯하다. 사회진보연대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관련 동향소개와 보다 정선된 입장을 『사회운동』 지면에 담아냄으로써, 이러한 논의가 활성화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1)세계은행은 연금기금 지배구조의 주요 원칙으로 독립성, 책임성·투명성, 명확성, 자율성, 내부통제를 제시하고 있다.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4년 11월, 현애자 의원 대표발의로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 및 상설화, 추천위원회 구성,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 설립 등, 전체적인 틀은 이번 정부 개편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운용위원회(총 21~22인)에 정부인사 참여(3인) 및 가입자대표, 공익대표 참여 확대, 그리고 가입자 대표 참여 비중이 큰(총 7인 중 5인) 추천위원회 구성 등에 있어 정부안과 차이가 있다. 본문으로 3) 국민연금 급여율을 70%에서 60%로 인하하고, 국민연금 급여산식에서 1:0.75로 설계되어 있던 균등부분과 비례부분을 1:1로 조정하여 소득재분배 효과를 낮추는 것, 연금 수급연령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본문으로 4) 연금기금을 활용하여 해외 투기자본으로 부터의 한국 자본시장의 방어, 기업지배구조 개선활동 등을 주장해온 경제개혁센터의 경우, '민간위원 경력연수 요건을 10년 이상으로 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짧다. 한국투자공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국민연금의 민간운용위원의 전문성 요건이 오히려 더 완화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10년으로 늘리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요건이고, 가급적 투자관리(investment management) 전문가들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와 같이 운용위원의 투자 전문성을 보다 높이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본문으로 5)『월간 사회운동』(http://www.movements.or.kr)에 관련된 많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으로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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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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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민족통일에서 경제통합으로? 햇볕정책을 주창한 김대중 정부는 '통일' 담론을 '경제통합' 담론으로 변형했다. 김대중 정부는 평화공존과 경제통합을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하고 장기적인 경제통합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남북 무역자유화로서, 북한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 생산기지(가공무역형 수출기지)로 전환하여 남한 경제의 하위 파트너로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부는 한ㆍ미 역할 분담론과 정경분리 정책을 제시했다. 즉 군사안보 대응은 미국이 주도하고 남한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를 주도하며, 정치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한 기업의 대북한 교역 및 투자를 장려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구상은 남측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장을 분명하게 지지했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평화공존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외피를 통하여 '2국가 1체제'와 같이 사실상 (흡수)통일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방안이 북한의 붕괴에 따른 단시간 내의 흡수통일이 수반하는 '불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절약한다며 보수 층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했다. 남한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연합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정부의 전략은 본질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확장판이다. 한반도 핵 위기와 동북아시아 평화와 같은 의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정책적 의지와 6자 회담의 틀이 규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어느 정도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경제협력과 대북 지원이다. 이러한 조건은 남북 경제 공동체 건설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8ㆍ15 경축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경축사에는 중대한 강조점의 변화가 있다. 노무현 축사는 경제협력이 "남쪽에게는 투자의 기회, 북쪽에는 경제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더 이상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남한 기업에게도 '비즈니스'로서 상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파트너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경협 20년 남북교역이 시작된 첫 번째 계기는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이 발표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ㆍ7 선언)이었다.1) 선언은 6개항의 실천 방향을 제시했는데, 남북교역에 관해서는 "남북 간 교역의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 간 교역을 민족내부교역으로 간주한다."(3항), "남북 모든 동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비군사적 물자에 대해 우리 우방들이 북한과 교역을 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4항)고 명시했다.2) 같은 해 10월 <남북물자교류에 대한 기본 지침서>가 발표되면서, 남북 간의 '시범적' 성격의 교역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이 제정되면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물자교류와 위탁가공교역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남북교역 규모는 부침이 있었으나 1991년 1억 달러 수준에서 1999년 3억 달러 수준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후 정부 주도의 남북경협이 본격화되었다. 3대 경협사업이라고 불리는 철도ㆍ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 사업, 금강산 관광 사업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식량, 비료를 비롯한 대북 지원이 본격 추진되었다. 현재 남북경협 사업은 대체로 상업성 거래와 비상업성 거래로 분류된다. 상업성 거래는 교역(일반교역, 위탁가공교역)과 좁은 의미의 경제협력사업(개성공단, 금강산, 기타 민간)으로 나뉘고, 비상업성 거래는 대북 지원(민간, 정부)과 사회문화협력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류법에 비추어 볼 때, 지난 10년 간 남북경협의 전체 규모는 96년 2.4억 달러에서 2006년 13.5억 달러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상업성 거래(교역+경제협력사업)는 2.5억 달러에서 9.3억 달러로 3.7배 증가한 반면, 대북 지원은 0.16억 달러에서 4.2억 달러로 26배나 증가했다. 현재 남북경협은 북한 대외무역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남북경협을 제외한다면 북한이 경제계획을 수립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이 북한에 지원하는 연간 50톤 규모의 쌀은 북한의 쌀 생산량의 25%에 이르며, 북한의 외부 식량 도입량(약 103만 톤)의 49%에 달한다. 또한 연간 20~30만 톤 규모의 비료 지원이 북한의 농업 증산에 미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10억 달러 수준의 상업성 거래는 남한의 수출액 규모가 3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을 주도하는 세력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은 적지만, 남한 경제의 현실적, 잠재적 위협이 되는 '북한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남한 경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재의 대북 경협사업이 임가공 사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서 남북 분업구조 창출 효과가 아직은 미약하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경협 사업이 실질적인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남북 경제통합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남한은 북한의 제조업 부문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개성공단 사업과 2006년 북한과 체결한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 방안을 주목하고 있다. 남한의 대북 경협 전략 1) 개성공단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255명 북 측 노동자로 시작했으나 2007년 5월 현재 32개 사 1만 5천 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다. 개성공단의 생산액과 수출액도 꾸준히 증가하여 2007년 1/4분기 생산액이 3,560만 달러에 이르며(1년 사이에 2.8배 증가), 수출액이 838만 달러에 이른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두고, 개성공단 제품이 특례원산지 규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3)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의 확대가 북한에게 '비즈니스'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고, 실제로 북한 내에서 개성공단을 정점으로 분업관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도 있으리라 믿고 있다. 2)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 또한 2006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합의한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 따르면, 남측은 8,000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은 그 중 3%를 아연과 마그네시아크링커로 상환하며, 나머지는 연 이자율 1%,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개발협력 방안에 대해 남과 북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경공업 원부자재를 남한으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구매한 것이므로, 품목이나 사용방식은 북한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현재 주로 요구하는 품목은 섬유, 신발, 비누 등이다). 반면 남한은 제공되는 원부자재의 효율적인 활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남한이 고려하고 있는 것은 개발협력 방안을 확장하여 북한의 경공업 분야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북한의 수출산업화 지원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① 원부자재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 남측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설비를 제공하거나 소규모 신규투자를 통해 설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임가공 사업을 확대한다. ② 특히 섬유, 의류산업의 기반을 확충하여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노동력 공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평양ㆍ남포 지역에 집약적인 생산지대를 창설한다. ③ 사업 초기부터 가능한 한 남북한 합작ㆍ합영을 실행하고, 북한 내 다른 기업과의 생산적 연계를 모색하여, 남한의 기술과 경영기법 등을 실제로 전파한다. 또한 인력훈련부터 해외마케팅 지원까지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한다. 현재 일각에서는 남북 간의 도로ㆍ철도 연결을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자거나,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석유 포함?)을 개발하여 한반도 번영을 꾀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추진되는 사업은 이와 거리가 멀다. 현재 북한의 전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 전력 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국제적인 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일단은 남한이 보기에 '비즈니스'로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교통망, 전력망 등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지하자원 개발이 경제성이 있으려면, 해당 지역의 전력, 철도, 항만 등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 조건에서는 상업적 타당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일단은 북한의 임가공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지원에 나서고 있다. 3)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 역시 이러한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대북 반출품 제약, 수출시장 제약이 크게 완화되어서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공산이 높은데, 이럴 경우 남북 간의 무관세 거래에 대해 WTO 회원국의 제소가 빈발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 간의 무관세 거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 CEPA가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1국 내 2개 독립관세구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서, 중국 내륙과 홍콩의 CEPA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다.4) 삼성경제연구소는 CEPA를 통해 남북경제통합의 첫 번째 단계로 진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장기적인 시나리오는 ‘자유로운 물자이동(자유무역단계) → 대외무역정책 및 대내경제정책의 상호조율(제도통합단계) → 화폐단일화(화폐통합단계) → 인적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인적통합단계)’이다. 특히 CEPA 잠정협정 10년 동안 북한경제구조를 재편하여 북한을 수출지향형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라고 제시한다. 4) 대북 경제지원 또한 대북 경제지원의 성격도 앞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식량난 이후 대북 지원은 주로 인도적 지원 또는 긴급 지원(식량, 의약품 등 구호물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빈곤에서 탈피할 수 없고, 오히려 원조 의존적 체질을 정착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해당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을 돕는 '개발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5) 그런데 긴급지원의 경우는 지원 물품이 취약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모니터링이 이뤄진다면 (북한은 이러한 모니터링 활동에도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개발지원의 절차와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IMF와 세계은행 등이 요구하는 이행조건은 해당국이 특정한 정책과 제도의 채택을 강제하는 '정책 조건'과 개발사업의 추진절차와 방식을 규정하는 '프로세스 조건'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개발지원이 중단되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개발 지원이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느냐의 문제는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향한 정책적 의지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북 개발지원이 시작된다면, 이는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세련된 대북 정책으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의 해체와 딜레마 북한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개혁ㆍ개방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였다. 1984년에는 '8ㆍ3 인민소비품 창조운동'을 개시하여 각 기업과 가정 별로 계획경제 영역 바깥에서 부업생산을 장려했다 (1989년에 장려 조치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 또한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주로 조총련계 기업들을 중심으로 외자를 유치했다(그러나 이 당시의 사업은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1991년에는 라진ㆍ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했고, 1992년 4월 개정 헌법에서는 외국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기업 합영과 합작을 장려한다는 구절을 삽입했고, 곧 신무역체계도 도입하였다. 그러나 3차 7개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은 1993년부터 향후 2~3년 간을 '사회주의 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고, '무역, 농업, 경공업 제일주의'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개혁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퇴화, 해체하는 경향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북한은 1990-98년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고, 1995년부터 북한의 국가예산이 그 이전에 비해 1/2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6년 1월 '고난의 행군 정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거 북한이 제시한 공식통계에 비추어 볼 때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붕괴 사태가 발생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성장회계'는 극히 과장된 것이고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라는 게 최근의 분석 결과다. 공식통계에 따른 분석은 북한이 성장률이 하락하는 '데드-크로스'를 경험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며, 최근에는 이미 1960년 초반 이를 겪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6) 따라서 북한경제의 위기는 갑작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누적된 효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북한의 계획경제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북한의 중앙, 도, 지방이 관리하는 기업소들이 차례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공장가동률이 대략 20~30% 정도로 추정된다.7)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합법, 반합법, 불법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시장 경제적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계획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공산품은 대다수가 중국산이고, 이른바 '보따리 장사꾼'이 기관이나 회사로부터 상품을 인수하여 전국의 매대로 유통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품유통이 경제회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상품유통을 통해 약간의 부를 축적한 자들이 공장을 인수, 운영하여 자본축적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일(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전환?)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로 북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규모 수해 사태는 북한의 경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다. 현재 북한은 전 국토가 민둥산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은 2/3이 산이며, 산림황폐화는 수자원 관리의 위기와 수해로 직결된다. 그렇지만 북한은 경제 정체와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5대 자연개조 사업의 하나로서 1976년부터 가능한 모든 산을 옥수수 밭으로 개간하기 위한 '다락밭' 조성 사업을 펼쳤다. 또한 취사와 난방을 위한 산림자원 채취가 급증하고 불법 화전인 뙈기 농사가 성행했다. 외화벌이를 위한 원목수출도 급증하여 북한의 원목수출은 1990년 14,000㎥에서, 1997년 410,000㎥으로 수십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토사유실과 침적에 따른 하수면 상승을 동반했고, 결국 반복적인 홍수 피해를 유발했다. 이러한 대혼란의 와중인 2002년에 북한은 '7ㆍ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발표했다 (기업자율권 확대, 독립채산제 강화, 가격ㆍ임금 체계의 현실화). 2003년 3월에는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하여 합법적으로 취득 가능한 품목을 식량, 소비재 공산품으로 확대했다. 이러한 북한의 개혁 조치는 자생적인 시장지향적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목표는 비공식 부문을 축소하고 공식 부문을 정상화하여 경제적 통제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병존이 불가피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시장경제 방식의 활동을 적절히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 당국도 7ㆍ1 조치를 발표할 때 '실리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전파하면서 "이제는 국가가 생활을 다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일한 만큼 버는 것이다.", "낡은 경험에 사로잡히지 말고 사업방법을 대담하게 개선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7ㆍ1 경제개선 조치가 발표된 후에도 공장가동률이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의류, 신발, 비누 등 최소한의 소비재 경공업에 필요한 원자재마저 남한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또한 농업 부문은 금번 수해로 추가적인 식량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잦은 수해와 농업기반의 유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개혁이 반드시 경제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68년 헝가리의 '신경제 메커니즘'이나 1985~87년 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현재 북한이 추진한 개혁조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구사했지만 경제회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기존 메커니즘과 새로운 메커니즘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소득격차 확대와 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한 대중소요가 나타나기도 했다 ('개혁 후 붕괴 시나리오'). 바로 여기에 북한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의 대외의존과 경제개혁의 상관성 남북경협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전이 매우 더딘 편이다. 그러나 경제협력 사업은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남한의 기업에게도 비즈니스로서의 상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자본주의적 비즈니스 논리를 이해하고, 일방적인 지원을 바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남한의 경제력 규모와 국제적 관심도를 고려할 때 북한을 좀 더 폭넓은 개혁,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의 다양한 기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국제경제기구(WTO, IMF 등)에 가입해야 하며, 국제경제 규범과 정책에 맞추어 내부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들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렇다. '북한은 정치적 안정과 인민의 경제적 피폐 상황을 맞바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개혁ㆍ개방으로 북한 경제를 되살리고 인민의 생활상을 개선할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국제통화기금(IMF)과 동유럽 경제의 관계를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경제위기가 닥친 1980년대 초반부터 IMF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 말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는 IMF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8) 당시 IMF의 압력 하에 추진된 개혁은 ① 가격자유화, 임금자유화, 무역자유화, 기업경영 자율화 ② 거시경제적 안정화 ③ 국가기업의 사유화 ④ 시장경제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구의 확립 등이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이 직접 체험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출된 1989년의 워싱턴 컨센서스와도 동일하다. 세계경제개혁을 주도하는 자들은 저개발 국가든, 기존 사회주의 국가든, 아니면 선진국이든 간에 각 국에게 적합한 특수한 경제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단 하나의 경제정책(신자유주의!)이 있다는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경제적 생산의 감소,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증가, 계층 간 경제적 격차의 확대라는 파괴적인 효과를 낳은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9) 워싱턴 컨센서스와 IMF 경제개혁의 입안자들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일시적 혼란일 뿐이고, 이러한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오면 건전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주장이 사실이냐는 문제는 세계의 민중운동이 세계적 불평등성의 증대와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백하다. 현재 남북 경제협력 사업은 1단계로 북한을 남한 경제의 '후배지'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북한경제의 통합 과정을 통해 세계경제체제로의 편입을 유도하겠다는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남한의 여러 기관들은 이러한 전망이 북한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점점 더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바뀌고 있고, 남한과 국제경제기구의 지원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경제의 해체와 퇴화냐, 신자유주의 개혁이냐는 질문은 서로 다른 모습의 재앙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1)1988년은 3월 29일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유세장에서 김중기 후보가 6ㆍ10남북청년학생회담을 제안하고, 4월 4일 김일성 대학 학생위원회가 동의한다는 답신을 보내오면서 남북 청년학생 교류가 사회적 현안으로 부상하고, 통일운동이 급격히 확산되던 때였다. 노태우 정부의 7ㆍ7 선언은 이러한 저변의 흐름에 대한 일종의 대응책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의 7ㆍ7 선언은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은 아니었고, 1970년 대 이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변화를 반영했다. 임필수,「미완의 교차승인 10년, 미완의 논쟁 10년」, 『사회진보연대』, 2000년 8월호. 본문으로 2) 나머지 4개항은 다음과 같다. ① 정치인ㆍ경제인ㆍ언론인ㆍ문화예술인ㆍ체육인ㆍ학자 및 학생 등 남북동포간의 상호교류를 적극 추진하며, 해외동포들이 자유로이 남북을 왕래하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② 남북적십자회담이 타결되기 이전이라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이산가족들간에 생사ㆍ 주소 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등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주선ㆍ지원한다. ⑤ 남북 간의 소모적인 경쟁ㆍ대결 외교를 지양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발전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하며, 또한 남북대표가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나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할 것을 희망한다. ⑥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이 미국ㆍ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한국도 소련ㆍ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것 등이다.본문으로 3) 한국 정부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초기부터 개성공단 제품의 특례원산지 문제를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ing zone) 인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양국의 최종 타결 내용을 요약하면, 양국 대표로 구성되는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에서 수립한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북한 내 특정 지역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되면, 그 지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은 한국 산으로 표기되며 한국 산과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된다. 여기서 일정한 기준이란 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전', ② 역외가공지역이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 ③ 역외가공지역이 일반적인 환경기준, 노동기준, 임금 관행, 영업과 경영관행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이다. 위원회는 한ㆍ미 FTA 협정이 발효된 후 1주년 기념일에 회합하여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근거는 ① 비핵화의 '달성'이 아니라 '진전'이라고 표현되었다는 점, ② 일반적인 환경, 노동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할 때 '현지[개성] 경제와 그 밖의 다른 곳[북한 내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상황과 관련 국제규범을 적절하게 참고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ILO 기준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북한의 특수한 조건을 고려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개성공단 지역이 이미 다른 북한 지역에 비해 노동조건이 최상이고 앞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본문으로 4) 삼성경제연구소는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남북관계 역시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 관계'(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이므로 국가 간 협정(agreement)이 아니라 약정(arrangement) 형식으로 체결이 가능하며, 이는 '교류협력에 관한 부속합의서'(2002년)와 '4대 경협합의서' 등을 대폭 보완하고, 각종 경제협력 합의서를 통합함으로써 실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상품교역에 대해서는 무관세거래 원칙을 재천명하고, 남북 간 상품교역에 관해 원칙적으로 제한을 폐지하며, 국제전략물자통제체제 상의 대북 제재의 완화를 선도한다. ② 서비스교역에 관해서는 북한이 긴급히 필요로 하는 에너지, 물류, 의류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서비스 시장을 개방한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건설 사업에 대해 우선 혜택을 부여한다. ③ 무역/투자 편리화에 관해서는 기존의 4대 경협합의서와 원산지규정합의서를 부속 문서로 채택한다. 본문으로 5) 통상 긴급 지원은 식량, 의약품 등 구호물자 지원을 뜻하나, 개발 지원은 해당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을 돕는 지원을 뜻한다. 또한 개발지원에는 무상 지원뿐만 아니라 장기저리차관과 같은 대출도 포함된다 (물론 장기저리가 아니더라도 차관을 구하기 힘든 국가에 차관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지원의 성격을 지닐 때가 있다). 또한 개발지원을 제공하는 주체에는 특정 정부(양자간 지원)나 국제기구(다자간 지원)뿐만 아니라 NGO, 민간기업도 포함된다. 현재 국제 공적개발지원(ODA)의 추세와 부문별 비중을 보면 사회적 인프라와 행정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의 비중이 경제적 인프라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 사회 분야에는 교육, 보건의료, 인구, 수자원 공급, 위생 등이 포함되며, 행정 분야는 행적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뜻한다. 이는 아무리 좋은 경제인프라와 생산시설이 갖춰지더라도 '인적 자원'의 상태가 나쁘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며, 행정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면 투자가 낭비로 전환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편 경제적 인프라에는 교통, 통신, 에너지 등이다. 이외에도 생산 분야 즉 농업, 광업, 제조업에 대한 지원도 이뤄진다. (생산 분야에 대한 개발지원은 농업 부문 투자를 중시하는데, 이는 개발지원 대상국이 대체로 농업국가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pp. 27~29, 공감, 2002. 대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북한의 주체사상/개인숭배에 대해서는 경악을 표시했지만 북한의 경제건설 성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었다(안드레아스 크라체크 외,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본 북한사회』, 중원문화, 1990). 그러나 이는 북한 경제에 대한 부족한 정보와 단편적인 경험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분명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본문으로 7)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6년 북한의 철강, 시멘트, 비료 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각각 18.3%, 46.1%, 11.8%로 추정된다. (차문석, 홍빈, 『현 시기 북한의 경제운영 실태에 관한 연구』, 진보정치연구소, 2007). 중요한 군수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나, 특정 시간대에 전력과 에너지를 공급하여 생산이 이뤄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월 ○일~○일까지 전력을 공급하고 그 시일에 맞춰서 생산을 감행하는 방식). 본문으로 8) 북한은 1971년 서방 각 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하고 대 서방 무역 확대를 추진했지만, 1977년 이후 외채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대 서방 경제교류를 중단했다. 그 결과 1978년 2차 7개년 계획에서는 '주체 경제', '자력갱생 원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합영법 제정은 대외 경제관계 없이 생산성 증가나 국민경제 향상이 어렵다는 북한의 인식을 반영한다. 본문으로 9) 사회주의 개혁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마도 유고 내전일 것이다. 미셀 초스도프스키의 「유고연방의 해체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신식민지화」(『빈곤의 세계화』, 당대, 1998)는 유고의 경제개혁에 대한 IMF의 개입이 어떻게 유고 내전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상세히 추적한다. 1990년 1월, IMF의 잠정조정안(SBA)과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차관(SALⅡ) 아래에서 유고의 일괄 경제개혁조치가 개시되었다. 외채를 갚기 위해서 연방세입의 재조정이 요구되었고, 예산삭감은 공화국 정부와 자치주로 전달되어야 할 지불금을 중지시켰고, 이는 분리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