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노동정책연구소에서 1월 23일 개최한 "이명박 정권 출범에 따른 08년 운수노동운동의 대응방향" 정세토론회 자료집을 등록합니다. 박하순 공동운영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의 경제전망과 노동자 운동>을 발표하였습니다. 또 윤영삼(운수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의 <이명박 정권의 출범에 따른 운수산업 전망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 박용석(공공운수연맹 사무처장)의 <공공운수부문 노동운동을 둘러싼 2008년 정세 및 노조의 대응방향> 등이 실려 있습니다.
최근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전국연합의 '9월 테제'를 등록합니다. 이 글의 출처는 2001년 9월 전국연합에서 개최한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 자료집으로서, 이후 전국연합 기관지 <민>에 발표된 원고와는 다소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당시 슬로건은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 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였습니다.
2008년 1월 16일(수) 19시,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개최한 '[노동운동포럼 여는토론] 대선이후 정세전망과 노동자운동의 진로' 자료집을 첨부합니다. 소통연대혁신 노동운동포럼 여는토론 자료집 순서 ○ 토론회 진행 순서 / 4 ○ 분임토론 진행 방법 / 5 ○ 발제1. 대선 이후 정세전망과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 / 6 ○ 발제2. 대선 이후 정세전망과 노동운동의 진로 / 45 ○ [덧붙임]1. 대선 평가와 이후 과제 / 55 ○ [덧붙임]2. 17대 대선, 계급투표의 반영 / 61 ○ [덧붙임]3. 민주노동당, 의회주의 결별하고 대중속으로! / 68 ○ [자 료]1. 가칭)노동운동포럼을 제안합니다 / 73 ○ [자 료]2. 노동운동포럼 사업기획(안) / 77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폐해들이 민중들의 삶을 옥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된 대선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방향에 어떤 새로운 돌파구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유권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 보편적 정서였을 만큼, 신자유주의가 조성해 낸 끔찍한 생활의 곤경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았고, 선거의 결과가 적극적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세력간의 경쟁 구도에 대한 혐오의 반사적 결과에 의한 것인지는 결과에 큰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 : 1987~1997년 그런 점에서 이명박 체제의 등장은 대중들의 적극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부정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명박 체제의 등장에서 주목되는 점 중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들의 와해와 재편이라는 특징이다. 이명박 체제를 단순히 보수주의로 규정한다면, 지금까지의 결과와 또 현재 진행되는 지배세력들의 재편구도를 적절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더욱이 올 봄의 총선에서 예상되는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까지 고려하면 상황을 좀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는 냉전시기의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탈냉전적 구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 그 시도는 자유주의적 세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보수주의 또한 일정한 변화를 거쳐 왔다. 자유주의의 변신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주도권은 동시에 민중적 주도권의 제약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87년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유래한 바 있다. ‘19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과 그 한계’가 지난 20년간의 한국 사회의 정치정세를 규정해 왔다고 할 수 있고, 대중운동의 발전의 향배는 이런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1987년 이후 그러한 자유주의의 변신은 이른바 ‘민주화’ 담론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흔히 ‘87년체제’라고 이야기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한 것이었는데, 이런 자유주의는 그럼에도 제도적 토대를 충실히 갖추지 못한 자유주의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대중운동에 대한 코포라티즘적 통제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조건적 한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세계경제의 반주변부로서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코포라티즘이 안정화할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에 취약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의 고조라는 시대적 규정성에서 나오는 구조적 제약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주의의 변신은 한편에서 인민주의적 동원을 통하여 실제로는 대중의 탈정치화와 정치의 호도를 수행하고, 또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자유주의의 취약한 구조는 통치의 유지를 위해 보수주의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보완되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주도성을 상실한 보수주의와 코포라티즘적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자유주의의 연대가 이렇게 형성되었고, 내부적으로 이들 중 어떤 분파의 어떤 세력이 이 결합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외양은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3당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이나, 1997년 DJP 연합을 통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권의 등장과 정치가형 인민주의 그런 점에서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어떤 점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단독집권이라는 외양상의 특징에서 보이듯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는데,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우여곡절과 당선 직후의 사정들이 보여주듯이 매우 불안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10년과 달리 노무현 시기의 이례성이 보여주는 것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초래한 한국사회 위기구조의 결과인 동시에 그에 대한 자유주의적 봉합까지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상황적 맥락이었다. ‘민주화’와 ‘개방·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대해 대중들이 그것을 기존의 자본과 국가권력의 체제, 그리고 기성정치권이라 이름되던 세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수동적 표출로 드러낸 것이 2002년의 대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단독 집권한 인민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은 집권시기 초부터 역설적으로 자유주의의 무능력을 전면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5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가지 표지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코포라티즘적인 안정적 통치 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 불안정성이 고조된 것, 둘째는 이 자유주의 세력과 더불어 체제를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NGO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철회된 것, 셋째, 정책 지향성의 상실과 그로부터 각종 부패 스캔들이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민주화’ 담론을 인민주의적으로 전유함에 따라, 대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담론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마치 신자유주의 세력의 독점물인양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만큼 민중적 정치운동의 가능성의 폭은 줄어들었다. 민주주의를 전면화하고 급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발생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진보 세력에게 초래한 심각한 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1%] 이명박정권의 정치 이데올로기 :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 2007년 대선의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가 다시 전문관리체제라는 명목하에, 1990년대와 유사한 세력 결합 구도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보수적 지지기반 위에 일부 자유주의 세력을 포섭하여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라는 구도로, 그간의 돌출적 정책들과 ‘민주화’ 담론의 인민주의의 폐해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새로운 집권세력이 단순한 보수주의 세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 정치적 담론이 1990년대와 동일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화’ 담론적인 인민주의를 포기하고 노골화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더욱 나가게 되는 외양을 띨 것으로 보이며,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서 기존의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첫 번째로 그것은 노무현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민주의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시절의 인민주의가 ‘민주화’ 담론의 독점을 통한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전환의 방향을 띠었다면, 이명박 하에서는 교육, 공무원, 공공 분야에 대한 총공세를 통해서 다른 방식의 원한의 정치를 부각시키며 그를 통해 유예된 부문 없이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완성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미디어와 NGO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인민주의적 정치 대신 억압적인 관리·행정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억압이 가속화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시장 주도성의 강화는 쉽게 예견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걸림돌은 사실상 매우 많이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대중운동의 대응성이 전례없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비적 대응의 필요성 또한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런만큼 대중에 대한 공세적 대응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은 매우 취약하고, 그 어느 때보다 대중운동 자체가 위기적 상황 속에 처해있다. 대중운동의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두드러지게 그것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중연대라는 세 가지 주요 조직들의 위기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세 조직의 위기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고, 동일한 위기의 구조가 세 가지 조직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한 정책대안이라는 구도는 운동세력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지만, 운동조직이 이를 통해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위기가 진보세력의 위기와 맞물린 것은, 진보세력 또한 1987년 정세의 봉합 이후의 상황을 돌파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중연대의 사실상 해체(한국진보연대의 반쪽짜리 출범)는 이런 위기를 잘 보여주는 바가 있는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를 확대하고 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권 정치적 지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전환되어서는 대중운동의 고양을 통한 민중적 정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분할되어 있는 대중들을 통일시키기 위한 중심체로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운동조직과 운동정당의 성격을 강화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고 그것을 통해 운동을 발전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층적, 지역적 영향력 확대를 수반하는 분명한 사회운동 정당으로의 방향전환이 없는 한 민주노동당 내의 갈등구조 또한 근본적 쇄신의 길을 동반하기는 어렵다고 보이며, 기층조직의 교육·조직·투쟁사업을 통일시키는 지나온 노동자운동 역사 속의 강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조직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선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적 긴박성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확대하고, 특히 지역적·기층적 조직화에 힘쓰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시점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어떻게 볼 것인가 선거 막판까지 갖은 도덕성 시비에 노출된 이명박이 결국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집권 여당은, 지난 1년간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막판 뒤집기’를 노렸으나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했다. ‘BBK 특검법’이 가결된 이상 향후 논란의 소지는 얼마든지 남아있으나, 압도적인 지지율에서 확인되듯이 이제 여론은 차기 정부에 대한 전망과 기대감으로 논점을 신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명박 역시 “담론의 정치에 매몰됐던 프랑스에 실용주의의 물결을 전파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유사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며 대중의 관망심리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을 우익적으로 승계하는 이명박 ‘실용정부’가 이미 고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모순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게다가 최악의 네거티브전과 여론전으로 얼룩진 이번 선거는,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 자체에 대한 환멸을 조장하면서 사상 최저의 투표율로 마무리되었다. 이 같은 사정은,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의 입지 축소와 더불어 ‘낡은 것은 사라졌으되 새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확히 사회 전반의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사진1%] ‘반노무현’과 정권 교체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광범한 민심 이반에 그 일차적 요인이 있다. 한국 경제의 만성적 불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의 불안 속에 노무현 정권 스스로 공언한 개혁 조치들이 허구적 수사로 전락했다. 금융화한 축적 체제 속에서 일부 재벌과 ‘골드 칼라’, 부동산 소유주 등 자산가 계급은 막대한 평가 이익을 누린 반면 대다수 노동자 대중은 재생산의 위기 속에서 처참한 몰락을 경험했다.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의 형성을 통한 ‘사회보장’의 평가절하를 계급 타협의 핵심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물질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무현 특유의 ‘정치가적 인민주의’ 스타일은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대중적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결국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대중적 기반이 근저에서부터 허물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결과는 집권 여당의 몰락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2004년 탄핵 국면에서 펼쳐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이후 집권 여당은 27차례의 재, 보궐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지난 해 5․31 지방선거에서도 완패함으로써 사실상 가사상태에 빠졌다. 2월 노무현 탈당, 3월 주요 계파 이탈, 5월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6월 중도개혁통합신당․민주당 합당, 8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범여권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런데 통합신당은 ‘물리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탈당파, 시민운동, 손학규 그룹 등 이질적 세력을 규합한 대통합 정당이었지만, 집권 여당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범 개혁세력의 ‘화학적’ 결집을 통해 반한나라당 연합의 동인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한 대선용 정당에 불과했다. 그 결과 이들은 완전개방형국민경선제, 문국현․이인제와의 후보 단일화 등 대중 조작적 정치캠페인을 통해 막판 뒤집기를 노렸으나 중과부적일 따름이었다. 이념․노선․정체성을 초월한 범여권의 합종연횡은 어떠한 정치적 명분이나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정치공학’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한 집권 여당은 최후의 도박으로 ‘이명박 특검’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박탈 전력이나 자녀들의 위장전입․위장채용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 무엇보다 선거 막판 ‘BBK 동영상’ 파문 등 후보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결과적으로 득표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은, 정권 교체에 대한 대중적 열망의 크기를 짐작케 한한다. 투표율 분포에서도 확인되듯이, ‘노무현 정권 교체’야말로 이번 대선에서 이념-지역-세대간 대결 구도를 압도하는 핵심 쟁점이었던 셈이다. (여론기관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보수-중도-진보를 묻는 질문에 대해 유권자들은 3:4:3으로 반응했지만, 이명박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했으며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50대(58.5%)와 60대 이상(58.8%)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20대(42.5%)와 30대(40.4%)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한편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상징하듯, 이번 대선에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정당의 정책-이념 대결은 선심성 공약이나 이미지 조작으로 대체됐고, 후보들은 무원칙적인 합종연횡을 일삼았다. 또 ‘경마 저널리즘’, ‘승자편승 효과’, ‘침묵의 나선 효과’와 같이 미디어와 여론기관이 민심을 조작하는 민주주의 파괴행위가 버젓이 행해졌다. 또 ‘BBK 특검’에서처럼 사법 권력이 최종심에서 정치를 대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이처럼 인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사법 기관이 최종 심판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인민주권의 심각한 축소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사법기관에 위임, 의존한다는 것은 대중 정치의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경제 대통령’ 이명박 이명박-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무능하고 불안한’ 진보․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민주화’ 담론을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우파적 교리에 ‘성공한 CEO’로서 후보 개인의 표상을 십분 활용하는 이미지 전략이 부가됐다. 또 자신에 덧씌워진 수구-보수적 이미지를 탈피하여 ‘대북 정책’과 같은 ‘이념’적 요소를 상대화하는 한편 ‘경제 성장’이라는 ‘실리’적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중도우파적 색채를 강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명박-한나라당은 전통적 지지층인 대자본가나 부동산 소유주 등 부유 계급의 ‘계급투표’ 성향을 고무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권 여당으로부터 이탈한 지지층을 폭넓게 규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명박-한나라당의 ‘실용주의’ 노선 전환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수렴에 따라 기존의 좌우파가 중도로 변신한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우선 이명박-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동안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정서를 투자 저해 요인으로 지적하며 이들은 △법인세율 20%로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친 재벌 정책을 노골화했다. 대기업 노조를 집단 이기주의 세력으로 호도하며 하층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동원하거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철밥통’으로 매도하면서 일부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정책도 여전했다(참고로, 이상의 친 재벌 정책은 임기 후반 투자부진과 불황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노무현 정권이 취한 ‘재벌개혁’ 과제와 거의 흡사하다). 또 이명박-한나라당은 ‘버블 세븐’ 지역을 비롯한 부동산 소유주의 이해에 적극 부합했다.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부동산 정책은 과표(공시지가/실거래가) 현실화와 보유세 강화, 그리고 실거래가 등록과 부동산거래 투명화로 요약되는데, 이명박-한나라당은 이와 같은 조치를 ‘조세폭탄’으로 낙인찍으며 때 아닌 감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공급 확대와 같은 시장 기제를 통한 해결이라는 논리로 다시금 투기 붐을 자극했다. 여기에 더해 ‘대운하 건설’ 공약은 노무현의 ‘행정 수도 이전’ 공약이 그러했듯, 그 실현 여부를 떠나 국토 개발을 통한 내륙 부동산 가격 상승과 대규모 건설 투자를 통한 고용 촉진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386 세대’의 이명박 지지 현상도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수도권․고학력 집단일수록 표 쏠림 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들은 세대적으로 ‘3저 호황’과 같은 물질적 성장을 체현했으며, 계급․계층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벤처-금융-문화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미국식 생활양식이나 소비문화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 노무현에 대한 이들의 지지는, ‘민주화 운동’과 같은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는 동질적 세대라는 측면을 넘어 다분히 실리적인 측면을 갖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이자 사회의 중추 집단으로 성장한 이들은 현재 가족 및 교육의 해체, 부동산 폭등과 같은 사회적 위기를 몸소 경험하며 갈등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세력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실업․반(半)실업 상태에 내몰린 20대와 30대 청년 세대가 2002년에 비해 이명박-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던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명박 ‘실용정부’의 위험 그러나 ‘향후 10년 간 5%대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고를 굳이 환기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실용정부’가 약속한 ‘747 경제’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 이하에서 고정되는 만성적 불황 상태, 이윤이 투자로 직결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부의 해외 유출이 구조화됨으로써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는 문제가 추가로 발생했다. 무엇보다 자산소유 계층으로의 소득집중 경향이 강화되면서 부의 역진과 소득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차기 정부의 임기는 미국 발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이명박-한나라당이 공언했던 장밋빛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만큼 노동자 대중에 대한 수탈과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한ㆍ미 FTA, 한ㆍEU FTA가 지체 없이 추진될 것이고, 공공부문(전력ㆍ가스ㆍ수도ㆍ철도 등) 사유화, 각종 연금 개악 등이 신 정부의 정책개혁 목록이 될 것이다. 이들 정책은 농촌ㆍ농업의 붕괴, 금융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것이며, 공공부문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저해할 것이고 노동권을 후퇴시킬 것이다. 또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 역시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도 시인했다시피, 오늘날 부동산 가격 폭등은 IT-벤처 거품, 신용카드 거품에 이어 투기적 호황을 동반하는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다(노무현 정부가 치적으로 자랑하는 ‘경기회복’ 역시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투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적 팽창을 가리킬 따름이다).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전국적으로 평균 40% 이상 상승한 것은 ‘행정 수도 이전’에 이어 “국토균형발전”을 이유로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 현 정부 정책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기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부동산 규제를 풀고 경기부양책을 시행한 것이 2000년 이후 저금리와 과잉유동성과 맞물리면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 붐으로 연결된 결과다. 따라서 조세 감면과 개발 확대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이명박-한나라당의 발상은 거대한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그밖에 노무현 ‘좌파’ 정부의 정책을 역전하는 상징적인 조치들과 함께 주택․교육․의료비 소득공제 확대나 유류세 인하와 같은 ‘인기 영합적’ 감세 정책이 제시되겠지만, 이는 노동자 대중에게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격’에 불과할 것이다. 또 이명박-한나라당은 ‘양극화 해소’ 정책, 교육 평준화 정책, ‘생산적 복지’ 등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인민주의적 편가르기’로 비판하면서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의 도입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현재 주어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토대를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사회운동의 상황 그렇다면, 이에 맞서야 할 사회운동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선에서 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은 물론 2002년 대선 득표율에도 미달하는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며 지도부 사퇴와 ‘분당론’ 등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단지 후보 개인의 대중적 인기나 선거 전술의 적합성 여부로 환원될 수 없으며, 민주노동당 내 갈등 역시 특정 정파의 책임으로 해소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발 딛고 있는 제반 대중운동이 지난 10여 년간 거듭된 패배의 후과로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에 빠져 있고 이것이 다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기왕의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과 같은 허울에 발목을 잡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대안적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범여권의 일부로 자리매김 되며 동반 몰락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가령, 민주노동당은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의 외연 확장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 한국 미래구상>이나 <새진보연대> 심지어 한국노총과 같은 기회주의 세력들과의 연합에 골몰했다. 급기야 중간층을 포섭한다는 명목으로 “체제에 대한 똘레랑스”, “민주노동당은 반 기업정당이 아니다” 운운하며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기도 했다. 또 ‘BBK 특검’ 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한국진보연대는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범여권과 공조하여 일제히 반부패-반이명박 캠페인에 가담하는 우를 범했다. (이와 관련하여 잠시 시민운동 진영의 대선 대응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올해 초 개혁적 지식인·시민운동·전문가집단이 모여 ‘반한나라당․비열린우리당, 범개혁세력 통합’을 기치로 창립한 <창조 한국 미래구상>의 경우 우여곡절을 거쳐 다수가 현재의 통합신당으로 합세하는 한편 당초 통합신당을 반대해온 일부 진영이 이탈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국진보연대는 대선 막판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거짓 선거와 민주정치 위기 극복을 위한 전국 시민사회단체 비상 대책회의>를 구성하여, 향후 총선까지 반이명박 연합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 ‘햇볕정책’이나 ‘재벌개혁’에 대한 미망과 함께 ‘비판적 지지’라는 구래의 관념이 투영된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시민운동․민중운동을 막론한 사회운동 전반이 자신의 이념적․조직적 자율성을 상당 부분 침식당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국가의 행정 작용에 깊숙이 '개입’하는 동시에 그 핵심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정책개혁의 매개자 역할을 자임했다. 또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들도 김대중-노무현의 허구적 코포러티즘을 수용하면서 계급대중을 분할하는 효과를 낳았다. 민주노동당 역시 ‘원내 협상력 강화’와 ‘정책적 대안’이라는 함정에 빠져 대중운동의 주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연합을 창출하려는 모색보다는 개혁세력의 헤게모니에 편승하면서 그 좌익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마치 사회운동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사회운동은 현재의 정치 지형 속에서 자신의 이념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거나 대중적 활로를 개척하지 못한 채, 보수세력의 집권이 현실화되자 또 다시 ‘반 한나라당-진보․개혁 세력의 동반성장’과 같은 구태의연한 전망으로 흡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은 변화하는 사태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가로막으며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전망 창출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아울러 IMF 이후 간신히 유지되어온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투쟁 전선을 이완시키며 사회운동 전반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FTA 반대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 한미동맹 해체와 반기지 투쟁, 이주노동자 투쟁 등의 사례에서 누차 확인된 것처럼, 오늘 우리 운동에 긴요한 것은 허구적 개혁주의와 타협하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반대파가 아니다.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단호한 세력으로서 이념적․조직적 독자성을 견결히 갖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선 당면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FTA 반대 투쟁 대오를 재구축하면서 장차 산별-복수노조 시대 노동자운동 재편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또 민주노동당 쇄신 논의 흐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총선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계기에서 공동의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 내의 논란이 비단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당의 정치노선이나 일상 활동을 둘러싸고 한동안 누적되어온 견해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기왕에 열린 논쟁이 당내 세력 간 갈등의 수준에서 봉합되지 않도록 발본적인 수준에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전망에 대해 논의를 가져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운동ㆍ농민운동ㆍ빈민운동ㆍ여성운동을 내부적으로 혁신하려는 여러 흐름들, 또 반전ㆍ반빈곤 운동이나 평화ㆍ인권ㆍ생태운동 등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 흐름들이 전국적ㆍ지역적으로 소통ㆍ연대할 수 있는 틀거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21일 열린 정세토론회 자료입니다
대선이 한창이다. 한동안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BBK는 검찰 발표로 한 국면을 지나긴 했지만 한동안 불씨로 남을 듯하다. 그 뒤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개혁주의 세력, 그리고 ‘떡찰’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사법 권력 역시 자유롭지 못한 삼성 비리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입을 모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만, ‘1/10 대선자금’ 때문에 노무현은 ‘노란돼지’로 애써 만든 청렴한 이미지를 취임 초부터 구겨야 했고, 부정부패 척결을 자신의 정치적 존재 가치 자체로 내세우던 ‘착한 자본가’ 문국현 역시 탈세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렇듯 금융세계화 시대, 부정부패는 진화하는 한편 일상화되는 중이다. ‘펀드매니저’의 자문에 따라 ‘재테크’ 기업의 하나인 ‘절세’를 한 것이라는 문국현의 항변은, 금융화의 진전에 따라 ‘정상적’ 경제활동과 ‘비정상적’ 부정부패의 경계라는 부르주아적 기준 자체가 해체되고 있을뿐더러, 새로운 ‘성장동력’ 중 하나로 지목되는 각종 ‘생산자 서비스’가 이 해체를 지적·조직적으로 조장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재벌을 비난하고 중소기업을 노래하지만, 한 위대한 열사의 동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자신의 ‘비정규직 두 딸’, 그들 앞으로 돌려놓은 주식이 다름 아닌 대재벌 포스코와 삼성 주식이었다는 사실은, 재벌 중심의 금융세계화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개혁주의자들의 한계를 웅변한다. 이명박이 BBK에 얽히게 된 것은, 재기를 위한 새로운 성공 신화를 만드는 데 금융이라는 최첨단 비즈니스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거기서 벌어진 주가조작은 이제 금융세계화 시대 부정부패의 대표적 형태가 되었다. ‘세계 속의 일류 기업’ 삼성은 비자금을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켰고, 청와대와 검찰, 정당 등 국가 권력의 핵심을 떡 주무르듯 했다. 세계적 금융시장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금융 이익을 증대시킬 뿐만이 아니다. 이와 상관적으로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정치적 통제력을 (예컨대 FTA에서 보듯) 체계적으로 무력화하고, 통제받지 않는 지배계급 안에서 각종 유착과 부정부패를 일반화함으로써, 정치를 파괴한다. 수많은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것은, 한편으로 지배계급 중 누구도 자신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차피 다 똑같다고 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민중운동이 금융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세계화의 전망을 아직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10년간 정권을 잡아 우리들의 삶을 파괴한 개혁주의 세력은 어떻게든 ‘심판’해야겠고, 아직 대안적인 정치적 전망이 열리지 않은 가운데 어차피 이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정권을 교체할 수 있고 IMF 10년 이후 어느덧 이 사회의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 상으로 자리 잡은 ‘능력 있는 CEO’를 지지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중들의 비극이다.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일으키는 대선을 이번 호 특집으로 담았다. 더 일찍, 더 풍부한 고민과 입장을 담았어야 했는데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아 죄송함을 느낀다. 특히 이번 호는 예정에 없이 11·12월 합본호로 나오게 되었다. 책이 오지 않아 애태우셨을 독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의 진전을 위한 고민과 발언, 토론의 태세를 다시 한 번 다잡겠다는 것을 독자들께 약속드린다. 87년 민주항쟁은 군사독재라는 역사의 한 국면을 중단시켰고, 자유주의자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치적 전망을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그러나 91년으로 상징되는 민중운동의 역사적 패배 이후, 민주화는 결국 ‘자유화’ 기획의 헤게모니에 종속되었다. 대중들이 민중운동을 개혁주의의 일부로 여기는 것, 개혁주의의 몰락이 민중운동의 기회가 아니라 동반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 같은 역사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자유주의자들이 시작한 ‘정치적·형식적 민주화’를 ‘경제적·실질적 민주화’로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 더 많은 민주주의의 전망과 실체를 대중들과 함께 발명하고 재건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정치를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자본주의 착취의 현재적 형태로서 금융세계화라면, 다른 정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치 중 하나로 자본주의 지양의 현재적 형태로 대안세계화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과의 대결 없이는 다른 정치를 시작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로두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