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2007-07-19

    정세들: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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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1%] 정세를 다시 사고한다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각각의 시각들에 관해 흥미로운 논평을 한다. 그에 따르면 여기서 "문제는 더 이상 정세를 구조의 생애에서의 짧은 순간이나 혹은 구조의 연속적 단계들 사이의 이행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조라는 현실은 정세들의 예측할 수 없는 연속일 뿐이며, 역으로 정세란 구조의 일정한 배치로 결정될 따름이기 때문이다."1)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발리바르가 가리키는 것은 경제적 토대와 그 주요 모순이 동질적이고 총체적인 구조가 아닌 방식인데, 여기서 부차 모순들이나 국내적 정황들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정치 정세들의 일종으로 고정된다. 이와는 반대로 토대와 상부구조, 또는 국제적·국내적 요소들은 결합하여 복합적인 정세를 이루며 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런 식으로 '정세' 개념은 경제적 심급의 효과가 나타나는 영역을 가리킨다. 발리바르는 정세와 구조가 하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구조들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정세를, 고유한 경향과 모순적인 생산관계 등을 갖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방식으로 특징짓는 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들은 독자적인 실존을 갖지 않으며, 그들이 실존하거나 존속하고 역사적 형상을 얻는 것은 순전히 정세적이다.2) 발리바르는 구조와 정세라는 대립항의 이 같은 폐기를 지나치듯이 언급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 변화는 잠재적 결과를 갖는다. 곧 역사적 '이행'(그리고 더욱 심원하게는, 더 이상 단일한 지속을 갖는 연속적 질서로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 시간)이라는 전통적 문제에서 완전한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3)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입각점의 출현을 얻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총체적이고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구조나 사회구성체를 목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모순들이 관통·심화되며 구조가 역사적 형상을 얻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정세적 과정들을 감지한다. 이 맥락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학생들 발리바르 자신을 포함하여 이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이행이라는 변혁을 연구하는 데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라는 알튀세르적 개념들을 적용하기 위해 기울인 '필사적' 노력들을 언급한다. 그렇게 하면서 사실은 시기구분의 고전적 모형을 따랐으며 구조와 정세의 분할을 포기한다는 "이 모든 것의 진정한 의미를 거의 깨닫지 못했다."4) 이 자기비판의 노선은 알튀세르의 추종자들이 헤겔적 총체성에 입각한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들은 헤겔의 표현적 총체성과 마르크스의 지배소를 갖는 구조(structure in dominance) 사이의 차이점에서 파생되는 이론적 문제들을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했던 것이다. 발리바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알튀세르 자신이 추구했던 역사적 시간에 관한 구상은, 심지어 당시에도, '역사적 이행'에 대한 측정법과 다른 것이었을 수 있다.5) 나라면, 여기서 [대문자] '보편사'(Universal History)와 '다양한 역사들'의 관점들을 구별할 것이다. 정세들은 역사의 어떤 '일반 시간'과도 어울리지 않는데, 왜냐하면 역사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정세는 고유한 시간표에 따라 전개되고 지속한다. 이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특징을 갖는 과정들에서 분명해지는데, 여기서는 모순들이 전위되고 응축되거나, 정세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절합된다. 이하에서는 알튀세르의 '정세적 역사'라는 구상을 간략히 설명함으로써, 이 구상이 정치적 실천을 '정세적 실천'으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납득시킬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피렌체의 서기장'은 탁월한 정치적 실천의 이론가였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발본적인 방식으로" 마키아벨리가 주목했던 것은 '모든 정세의 우발적 사실성(factuality)'이다. 역사를 정세적으로, 정세를 우발적 현실들로 보는 것은 정치적 행위나 개입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논할 수 있게 해 준다. 또는 알튀세르가 「아미엥에서의 주장」(1975,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인가?」로 일부 영역된)7)에 적어 넣었듯이, 역사에 대한 헤겔적 구상은 이론적 궁지에 도달한다. "내가 지나가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헤겔에서 영감을 받은 정치란 아직껏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원 안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디서 원을 움켜쥘 수 있겠는가?"8) 정세적 역사 발리바르의 용어법에서, 정세는 더 이상 '구조들의 세계사'에서 '지방적'이거나 사소할 뿐인 문제가 아니다.9)역사 자체가 이제 '정세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전제적이고 전능한 중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계는 국내적·국제적 정세들에 따라 형성된 '복합적 전체'나 '지배소를 가진 구조'의 일반적 틀 또는 '배치'다. 중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과잉결정하는 매우 강력한 요소들과 지배적인 경향들의 결여는 아니다. 그것은, 정세적 시각에서 볼 때, 진화하는 자본주의가 단순히 '세계 질서'의 '총체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일 뿐이다. 그것은 특정한 추상과 일반성의 수준에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 또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서로 다른 국내적·국제적 정세들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가 거기 존재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묻는 것은, 이른바 자본주의 곧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그리고 모순들 의 서로 다른 시간들과 장소들에서 어떤 종류의 역사적 형상들이나 유형들이 출현하는가 이다. 만일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 유일하고 반복할 수 없는 특성들을 가진 사건들이나 사례들의 복합적 계열들로 이루어진다면, 즉각 절대적 역사의 지평을 떠나 사뭇 정반대의 무대로 떠나려는 유혹이 생겨난다. 현실은 불가해한 혼돈, 헤아릴 수 없는 이유들과 모순들과 연속들이 원인이 되는 순전한 '연접'(連接, conjunctions)들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현실화되는 모순들은 본성상 사건들의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계열들로 판명될 것이며, 여기서는 언급할 만한 지속성을 가진 어떤 구조적 요소들이나 경향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따라서 이 모순들을 유형화하고 식별할 수 있는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알튀세르가 198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사후에 출판된 그의 후기 작업에서 대답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필연성과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 고찰들 역시 나름의 역사가 있다. 이들은 예컨대 알튀세르가 1969년에 쓴 「모순과 과잉결정」 영역본 보론에서 그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엥겔스가 '최종심급'이라는 관념을 활용한 방식에 관해 말하자면 비판적으로 논평했고, 이 논평은 우연(chance)과 필연이라는 쟁점을 다루는 길을 열었다.10) 많은 점에서 알튀세르의 엥겔스 비판은 자세하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11) 특히 중요한 점은, '최종심급'라는 관념뿐만 아니라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개념이, 무엇보다도 우선 이론적 수단이라는 관점이 등장한다. 이를 갖춘다면 어떤 주어진 시간에 놓인 토대와 상부구조의 당면한 역사적 형태들에 대처할 수 있게 되고,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이라는 특징을 갖는 역사적 과정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 형태들이나 사건들은 '불가사의'나 미시적 원인들의 위태로운(hazardous) 혼돈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이른바 혼돈을 모순의 역사적 전개라는 시각에서 이해하고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 '이해'는 역사 철학들에서처럼, 세계에 대한 사변적 설명(관념론 체계의 설계자가 말하는 '이야기')을 가리키지 않는다. 반대로 이해는 사회 형태들에 대한 구체적이지만 이론적인 기초가 있는 분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석은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과정들에 집중하고, 여기서 경제적 요소들('경제적 심급')은 중심적 역할을 하는데 단 이미 다른 요소들로 전위되거나 응축되어 '불순'해지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상태로 그렇게 한다. 이로부터 '최종심급'이란 사회 형태들의 역사적 전개 배후에 있는 보증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신 그것은 하나의 이론적 출발점, 곧 변화하는 사회 형태들 및 관련된 토대-상부구조의 특정한 형태들을, 적어도 일정한 정도까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점으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최종심급'은 상부구조의 정치 형태들과 그 '미세한 사건들'을 넘어서는 경로를 개방한다. 여기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 편으로, 경제적 모순들이 정치 제도 및 실천의 구성체에 미치는 과잉결정적이고 과소결정적인 효과들이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제도와 실천이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의 역사적 형태에 역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다. 현실은 항상 복합적 정세이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결론이 인식론적 공백이고/거나 '경제'가 궁극적 관리자/보증자라는 주장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문제는 복합성을 감출 필요 없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분석에 활용될 수 있다. 이들은 복합적인 것을 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복합적 과정들에서 작동하는 각각의 모든 모순들(그리고 다른 구성적 요소들)을 추적할 수 있고 그 효과들을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 역시 꿈에 관하여 이런 류의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알튀세르는 역사적 사건들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모순에 대한 분석은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분석의 대상이 되는 어떤 모순도 항상 알려지지 않은 '결여된 원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현실은 주체들에게, 분석가와 행위자들에게 투명하지 않고 불분명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과정들이 모든 분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꿈은 신비한 밤의 현상이라거나 "그것은 꿈일 뿐이었어"라는 대사로 족한 낮의 잔여물에 불과한 것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한 편으로, 예컨대 경제의 주요 모순이 주어진 모순에 대해, 과잉결정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라는, 만성적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예견되지 않은 본성의 문제 앞에서 완벽함과 확실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른 한 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심급'이라는 테제가 이 모순 자체에 삽입된 경제적 요소들을 분석가가 조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따라서 '복합성'은 미시적 원인들의 '혼돈'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복합성은 '미시적 원인들'이 나타나는 역사적 형태들의 전개라는 복합적 과정에 속한다. 그러나 이제, 이 과정들이 제공하는 맥락들을 통해, 표현적 총체성 및 그 추상적 도식의 사고에 묶여 있지 않은 이론적 포착을 얻을 수 있다.

    헤겔적 유형의 필연과 헤겔적 본질의 발전이 기각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주관성의, '다원주의'의, 우연성의 이론적 공백 속에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헤겔적 전제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조건하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 공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과정의 전개와 이 전개의 모든 전형적 측면들을 실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이 복합적이고 하나의 지배소를 갖는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12)

    정세적 정치(마키아벨리) 알튀세르의 엥겔스 비판은 그가 1980년대에 우발성에 관해 쓴 작업을 보다 쉽게 평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작업들에서 그는 무엇보다 연접들, 사건들과 정세들의 문제를 논한다. 이 (예비적) 연구들에서, 정세의 '예기치 않음'과 '응고'가 나온다. 비록 정세들이 항상 어느 정도 응고되거나 고정되거나 정돈되어 있더라도, 아주 발본적인 종류의 놀라움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갑작스런 전환들과 함께, 지배적 '상수들'은 의문에 부쳐지거나 부쳐질 수 있다. 두 종류의 필연성. 알튀세르가 그 밖에 무엇을 해 왔든 간에, 그는 또한 변화하는 정세라는 문제에 대처하려 노력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이를 해 냈다. 행동의 기준과 조건을 설정하는 정세 안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이들의 시각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실천의 이론가' 또는 '실천의 철학자'로 그려지는데, 이는 실천의 일반 이론(또는 '실천 철학')을 제시한다기보다는, 그 자신과 그의 작업을 특정한 정세 안에 위치지운다는 의미다. 더욱이 마키아벨리는 행위자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목표에서 시작함으로써 정치적 실천의 문제를 정치적 행위자에게 제시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식으로 이를 해 냈다. 여기서 혹자는, 이로부터 과거나 현재의 역사적 사건들이 법칙 없는(no law-like) 상수들의 지배를 받아 자의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즉, '우발적'과 '자의적'(또는 우연(chance)이나 운(hazard))은 동일한 의미인가? 알튀세르에게서 직접적인 부인이나 긍정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필연적/자의적(그리고 확정적/불확정적)이라는 대립항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필연성을 해석하는 두 가지 종류를 구별한다. 첫 번째 해석은 우연이나 운, 우연성이나 예외가 필연성의 양상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이들은 헤겔주의자들이 주관적인 '중재'일 뿐이라고 쉽사리 비난하는 '규칙에 대한 예외', 또는 안개와 아지랑이와 광택일 수 있다. 알튀세르는 이 노선에 따른 필연성 해석을 호되게 비판한다. 두 번째 해석은 우발적 필연성을 그려낸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필연성들은 우연성의 양상들이다. 주요한 것은 우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연성을 필연성의 양상 또는 필연성의 예외로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으로 사고해야 한다."13)

    필연성에 대한 첫 번째 구상은 현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 에피쿠로스의 응고된 세계 같은 것 은 목적론적이거나 인과적인 법칙의 귀결들임을 함축한다. 두 번째 구상은 사전에 존재하는 이 법칙들, 그리고 그것에 의존하는 모든 인과적이거나 목적론적 설명들과 모형들을 의문에 부친다. 그러나 이 같은 수를 둔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과정이 자의적이며 영원히 신비적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발전이 인과적이거나 목적론적인 발전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들이 이 같은 법칙을 표현하지 않는다- 는 것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해불가능하고 인간 행위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와 관련될 뿐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들은 완전함에 미달한다. 그것들은 불완전한 채 머물지 않을 수 없다. 사건(coincidence)들은 복합적 과정이다. 사건을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들의 연접에 대해 모든 원인들의 계열들을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마주침은 원인들의 여러 계열들의 결과로 나오는 존재들의 계열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14)

    우발성이라는 쟁점은 정치적 행위에 결정적이다. 자신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에게 허락된 철학적 기다림과 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행위자들은 정의상 무엇이 됐든 해야 하며, 모든 입수할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한 최선의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활동가(man of action)- 또는 활동가 집단- 이 행동하는 방식과 그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에 관한 (아무런 위험부담(risk)도 없는) 절대적으로 확고한 지침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활동가가 캘러미티 제인(Calamity Jane) 같은 여성, 서부영화에 나오는 외로운 '우발적'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장에서 '활동가'라는 주제에 관해 논할 때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발성은 행위자들이 오늘을 움켜쥐고 나름의 수를 쓰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개방된 기회들과 호기(그리스어의 카이로스(Kairos))를 의미한다. 분명 기회들은 위험부담을 수반한다.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기준과 조건을 부과하는 하나의 동일한 우발적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활동가는 그/녀가 하는 것 또는 그/녀의 행동이 '선언하는' 것을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상황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현재 상태에서, 그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이며, 그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낼지 또는 그렇지 않을지를 알 수 없다. 또 그는 지나간 일에 기초하여 다가올 일을 예측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어제의 법칙이 내일도 계속 적절하리라는 점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미래란, 주어진 팀이나 선수의 이름이 없고, 사전에 그어진 규정된 공간이나 선이 없으며, 단번에 선포된 정당하거나 부당한 수에 대한 기성(旣成)의 의미가 없이, 각각의 방향에 열려 있는 경기장이다. 군주적 실천 - 우발적 현실. 마키아벨리의 군주 같은 활동가는 자기 사례의 특수성들을 고려해야 하며, 행동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같은 정치적 판단의 학(學)과 기예는 유효한 정치적 행동에 사활적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행동의 우발적 논리를 이해하는 시각을 그의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스스로를 여느 활동가와 구별해 냈다. 비록 마키아벨리가 젊은 외교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책의 저자로서 활동가이긴 했지만, 우리는 그의 작업이 여전히 '충분히 이론적'이라고 말하는 알튀세르에 동의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정세와 그 개별성들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투쟁과 유기적으로 연관되는 앎과 조사의 종류를 예시하는 충분한 이론이 있다.

    "파편들(따라서 마찬가지로 모순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 두자.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이론적 배치는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을 지배하는 고전적 수사학의 습관과 단절한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개작(改作)도 여전히 '이론적인' 것이다. 아마도 사물의 질서는 '변화'해 왔을 것이고, 특수한 정치적 문제의 정식화와 고찰이 대상의 일반적 지식을 대체해 왔을 것이다."15)

    알튀세르는 "거의 주목받지 않은 채 지나갔으며 장차 발전시켜야 할"16) 종별적 논리에 관해 썼다. 그의 마키아벨리 해석,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 앞에 놓이는 이 '우발적 논리'에 따르자면 이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 여기서 '우발적'이라는 형용사는 사건/사례 및 그 과정이 어떤 하나의 일반 법칙이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것이 이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사건/사례는 어떤 일반 법칙이나 이론 하에 포섭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사건/사례의 과정을 일반 법칙이나 이론, 또는 정적인 사회적 유토피아로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의('마초벨리적'(machoveiilan)) 개념들을 빌어 말하자면 각각의 사건은, 느닷없이, '운명의 꼬임으로' '심지어 가장 신중한 사람'에게도 등을 돌릴 수 있는 변화무쌍한 운(Fortuna, 포르투나) 또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의 영향을 받는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렇듯 모든 것은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운동하고 있으며, 예측불가능한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 이런 필연성은 운명의 여신이라는 신화적 개념의 형상에 의해 표상된다."17)

    변덕스럽거나 예기치 않은 운[명]은 각각의 사건에서 일어나는 것에 뜻밖이고 위태로우며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 이유들, 사건들의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예비적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 요소들이 독특하고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건은 유일한 특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사물들은 둘이나 그 이상의 사례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되거나 결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들이 통상 어떤 식으로 행위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지 말할 수 있을지라도, 각각의 종별적 사례에서 그들의 행동들은 다른 사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벌어진다. 사건들이 복합적 정세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사건들은 원인들의 수많은 계열들의 연접들이다. 사건들은 접합 또는 마주침들이다.

    "정세(conjoncture)는 그 자체가 접합(jonction), 연-접(con-jonction)이요, 항상 변화하긴 하지만 응고된 이미 일어난 마주침, 스스로 자신의 무한한 선행원인들을 가리키는, 즉 선행원인들의 무한한 연속에 이 선행원인들의 결과, 예컨대 보르지아(Cesare Borgia)와 같은 어떤 특정한 개인인 이 결과를 돌려보내는 마주침이다."18)

    원인-결과의 추론에 기초한 논리는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 적절치 않은데,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논리를 사용하게 되면 분석 과정에서 원인들에서 결과들로 움직이는 선택지나 그 반대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으로 함축을 통한 추론을 요구하며, 이 같은 추론의 가능성은 인과 관계 및 관련 법칙에 대한 실재적이거나 상상된 지식에 있기 때문이다. 인과적 추론이 정확하려면 추론이 완전하고 체계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건을 다룰 때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건에 관한 추론은 위험하고 불완전하며 가설적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런 류의 '약한 논리'(weak logic)는 마키아벨리에게서 만날 수 있다.

    "모든 플라톤적,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과 반대로 마키아벨리는 원인-결과의 귀결 속에서 사고하지 않고, '만약'(if)과 '그렇다면'(then) 사이의 사실적 계기(繼起, consecution) 속에서 사고한다. (…) 이 경우에 문제는 더 이상 원인(또는 원리, 또는 본질)의 결과로의 귀결이나 논리적 도출이나 논리적 함축이 아니고, 단지 조건들의 계기이다. 여기서 '만약'은, 실제의 조건들이 주어졌다면, 기원적 원인이 없는 이 사실적 정세를 뜻하고, '그렇다면'은 그 결과 정세의 조건들 속에서 관찰할 수 있고 그 조건들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을 지시한다."19)

    게다가

    "『로마사 논고』는 다름 아니라 실제 정세의, 즉 (변)덕(virt )과 운의, 이 매우 특별한 '논리'가 이미 작동하고 있던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조사이다."20)

    알튀세르에 따르면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방식 모두에서, 각각의 사건에 대한 원인, 본질이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사건들은 이것들로부터 파생되고 이것들을 표현하거나 이것들의 지도 아래 발전하는 것으로 사고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목적인(目的因, telos)는 물론 근대적인 논리적·인과적 사고의 의미에서라면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것이 여전히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의 일종이고, 그에 따라 정세의 사건들을 설명하고 이해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 것, 사건들이 그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기초를 모든 본질(Ousia, Essentia, Wesen)의 철학, 즉 이성(Logos, Ratio, Vernunft)의 철학, 따라서 기원 및 목적의 철학(여기서 기원은 이성 또는 최초 질서 속에서의 목적의 예상, 따라서 합리적 질서이든 도덕적, 종교적 또는 미학적 질서이든, 질서의 예상일 뿐이다.)을 근본적으로 기각하는 것 (…), 전체와 모든 질서(Ordre)를 거부하고 분산(데리다라면 자신의 용어로 '산포'(散布, diss mination)라고 할 것이다.)과 무질서의 편을 드는 철학을 위한 이 기각 (…)."21)

    마키아벨리적인 방식으로 행위와 행동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정세에서 감지된 기준과 조건에 따라 사고하는 것에 기초한다. 이것들은 정세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회들과 대안적 행위들의 가능성의 종류를 평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초를 이룬다. 그들 자신의 행위를 분석하는 인간들은 항상적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상태 안에 있다. 그들 행위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사건 분석과 행동 전략이 불안정한 기초 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포함되어 있으며 포함될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불안한 분석은 사건 속에서 예견되고 할 수 있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22)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우발성 활동가가 보유한 지식에 관한 알튀세르의 관점은 우발성과 우연의 해석에 관한 일련의 질문들을 내놓는다. 사건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우발적인가, 아니면 다만 행위자의 무지, '주관적' 우발성의 사례일 뿐인가? 누구의 또는 어떤 시각에서 사건들이 우발적으로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시각에서 그런 것인가? 만일 사건이 모든 관점에서 우발적이라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발성은 사건의 '객관적'인 속성인가, 아니면 아는 주체 혼자서는, 우발적 요소들과 사건의 과정이 단지 지식의 결여에서 유래할 뿐임을 보여줄 만한 포괄적 이론이나 지식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일 뿐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같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통념들은 너무 일반적이다. 마키아벨리와 그의 해석자들이 지적하는 방식대로 이 속성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3의 대안이 출현한다. 우발성은 현실의 주관적 특성일 수도, 객관적 특성일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이렇게 하면 우발성의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지위가 변화하고 동요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3의 선택지의 도움으로 마키아벨리의 우발성이 주관적/객관적이라는 대립항(또는 주체와 대상의 분할)을 적용하기에 상당히 부적합한 관념이라고 간주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일반 이론도 다가오는 연접들을 예견할 수 없다. 이 같은 발견은, 그 자체만으로는 종종 주체들에게 있어 사뭇 분명하게 '놀라움들'이거나 '사건들'인 뜻밖의 우연적 요소들이 주체의 관점에서 그럴 뿐이라는 가정을 논박할 수 없다. 만일 주체가 더 잘 알았다면, 즉 만일 주체가 우연한 사건 안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을 알게 되었다면, 사건들은 주체 편에서의 믿음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수 있을 것이다. 사건들이 우발적이라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주관적 시각에서만 옳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보편적 원리들과 필연성들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은 자신의 편에 객관적 진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종 분석에서, 사건들과 그것들이 취하는 과정이 어떤 본질이나 기원적 전제 또는 목적인 이 사건들이 환원될 수 있는 에 의해 예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알튀세르는 기원적인 원인, 역사 법칙이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역전될 수 있다. 어떻게 기원적 원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주체를 놀라게 하는 것들이 실은 기원적 원인이나 발전 법칙 또는 본질에 의해 초래된 것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이런 주장은, 주장하는 사람이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고 하는 사건이 실은 특정한 판별적인 인과 관계의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로 산출되었음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23) 알튀세르는 사건에 관한 지식이 원인과 결과에 따른 설명에 기초할 수 없다는 관점을 분명히 한다. 대신 이 같은 지식은 항상 우발적 논리와 구별되는 '약한' 추론의 결과다. 분명 어떤 활동가에게 있어서도, 적어도 그가 사건 안에 위치해 있다면, 그의 사건의 과거와 현재와 특히 미래는 (그가 이 점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불분명하다. 만일 그가 그의 사건과 역사의 현재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미래를 예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시, 만일 그가 그 사례의 역사와 그 현재 조건을 완벽하게 안다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아무 것도 그를 놀래키거나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건이 더 이상 본성적으로 우발적 사건이지 않도록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알튀세르의 답변은 어느 정도 긍정적이다. 그는 사건을 아는 것이란 원인들 사건은- 이것의 연접이다- 의 모든 계열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24) 적어도 여기서 알튀세르는 '심지어 원인이 되는 것도 다른 원인의 결과이다'라는 페트로니우스적 진술을 부인하는 데 힘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재구성은 인간에게 불가능하고, 사건이나 정세 안에 있는 활동가에게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또는 지적인 통찰로써 알고 이를 철저히 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전능한 신이 될(또는 신의 계획을 완전히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주체의 입각점에서 우발적인 것은 신적 입각점에서는 비(非)우발적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의 대표자들이 이런 류의 신적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지는 의문인데, 그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언급하고, 만일 이 같은 역사 철학들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시간은 오직 사후(事後)에, 사후적으로(post festum)에 올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발성의 문제는 마키아벨리적 부류의 활동가에 국한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어진 순간에 그가 입수할 수 있는 불충분하고 결여된 지식에 기초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활동가일 뿐이다. 그는 땅거미가 지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그는 '정오의 칠흑' 안에서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발성을 현실의 객관적 특성으로 다룰 필요가 없다. 이는 주체의 상황과 그것이 일으키는 믿음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발적 추론을 가지고 위험부담들과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에 대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제거할 수는 없다. 신의 눈에는 우연이 아닌 것이 활동가의 관점에서는 대부분 사건이 된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이 '주관주의적' 관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할까? 우발성을 혼란스러운 인간들과 결코 당황하지 않는 신의 구별로 이끄는 방식에 만족할까? 여기서 다시 알튀세르의 답변은 예와 아니오 모두이다. 우연은 '정세 안에서의' 앎이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다.25)직분을 다하는 철학자나 전능한 신과는 달리 활동가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유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에 직면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이 이 문제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리키는 까닭은, 다름 아닌 마키아벨리가 특정한 종별적 사건 안에서 행위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자 역시, 현실과 그 법칙을 아는 문제에 이르면, 확실성을 결여한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우연에 좌우되는 상태에 머문다. 그들이 헤겔의 충고에 유의하여 황혼을 기다린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이 늦은 시간에조차, 왜 사건의 과정이 그런 식이었는지를 분명하고 논란의 여지 없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플라톤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은 우선 사회의 본성이나 사물의 본성적 질서와 발전을 정의하는 것에 따라 구축되는 철학 체계를 제공한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이 체계들은 인간들이 '사물 안에서 작동하는 진리'에 기초하여 말할 만한 것에서 멈출 수 있을 만큼 겸손하지 않다. 이 체계들은 비록 존재론적이거나 도덕적인 공준(公準)으로 제시된다 할지라도,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다.26) 『마키아벨리의 고독』에서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가 궁극적으로 격리된 것은 바로 이 상상들을 폐지했기 때문이었다고 쓴다. 그에 따라 그는 그 귀결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고독에 있어서 궁극적인 지점일 것이다. 그가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한 편으로 그가 발본적으로 기각한 도덕적, 종교적, 관념론적인 정치사상의 오랜 전통, 다른 한 편으로 모든 것을 침잠시켰으며 신흥 부르주아지가 자아상을 발견했던 자연법이라는 정치철학의 새로운 전통 사이에 있는 유일하고 불안정한 장소를 점유했다는 사실 말이다."27)

    마키아벨리는 현실을 증명하는 다양한 존재론적, 도덕적, 또는 여타 본질주의적 방식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발본적 기각'을 대표한다.28) 그가 자신의 시대가 아닌 사례를 살펴볼 때조차, 그의 분석은 그 자신이 '사물 안에서 작동하는 진리'라 부른 것에 기초한다. 이것이 등장하는 것은 유명한 『군주론』 15장의 이름난 문단에서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 진리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자는 많은 무자비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몰락을 자초할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29)

    아주 명시적으로 알튀세르는 우발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사실이나 기성 사실(faits accomplies), 그리고 결과들은 원인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원인 없는 결과, (변)덕과 운의 (에피쿠로스적인) 우발적 마주침으로부터, 즉 우연한 기회로부터 태어나는, 우발적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는 결과 말이다. 결과의 철학은 결코 선행원인이나 선행본질의 기성사실로서의 효과의 철학이 아니라, 전혀 반대로 우발적인 것[우발성]의, 즉 그 결과가 사실적 표현인, 그리고 달라질 수도 있었던 주어진 조건들의 주어진 결과인, 그러한 우발적인 것의 철학이다."30)

    이는 원인없음이 알튀세르 생각에 순전한 환상이라는 관념을 가리키지 않는가?(그리고 그는 환상들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보다 알튀세르에게 있어 원인없음은 현실의 객관적 특성이 아닌가? 알튀세르는 우발성이, 기성 사실의 결과란 '우연히' 또는 '순전히 뜻밖에' 즉 자의적인 방식으로 그런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를 언급하면서 그는 '우발적 연접'은 (변)덕과 운세의 호기이거나 연-접(con-join)을 포함한다고 말한다.31) 사건의 조건들, 그 정황들, 그 모든 복합성을 지닌 기준과 요구들은 해야 할 일과 정세가 형성되는 방식의 한 원인이 된다. 결정적인 속성은 '사실적'인 것이다. 라틴어 팍툼(factum, 사실)의 본래 의미는 행위와 사건, 사실과 결과다. 사실적 사건은 수많은 행위들과 사실들의 결과이며, 이로부터 뒤따르는 사건들과 행위들, 사실들의 조건들이 형성된다. 실존하는 사건들과 그 계기에 관해서, 어떤 단일하고 종별적인 본질을 정의할 수 없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절합되어 있는 사실들과 행위들의 헤아릴 수 없는 합의 문제다. 사건의 유효한 요소들은 원인과 결과(그리고 이를 서술하는 일반 법칙)의 동일하고 (선형적인) 인과 연쇄의 일부가 아니다. 그보다 사건은 행동의 조건과 정황들이 뒤얽힌 구조물의 일종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안에서 서로서로 다르게 들러붙는 무수한 원인들과 결과들이 뒤섞인다. 그 결과는 그 탄생을 둘러싼 정황들의 '사실적 표현'이며, 이 정황들의 본성은 사실적이다.32) 알튀세르는 '중심의 부재'를 말한다. 이 관념은 그의 헤겔적 총체성 비판에서 그려지는 '복합적 전체', 그리고 원소들을 관통하는(inter-elementary) 과잉결정들과 과소결정들로 특징지어지는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사례들의 높은 수준의 복합성 때문에, 행복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행운은 일반 법칙을 통한 예감이나 설명을 넘어서는데, 왜냐하면 유일한 연접들은 이전이나 다른 곳에서는 결코 발생한 적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례들(이나 사건들) 또는 한 사례의 서로 다른 순간들 사이에서 상수들을 감지할 수 있다. 이는 주관적 우발성의 수준을 감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일반 이론을 가지고 '상수들'이나 '일반적 경향들'이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식들을 포괄하는 것은 어떤 주어진 사례나 사건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상수들, 규칙들, 지배적이고 비(非)지배적 경향들을 발견함으로써 사례들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따라서 애초에 '사례'(나 '사건')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접들이 독특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도 일반적인 것을 예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사례들이 일반 이론을 (반증하거나 확증하는 식으로) 시험하는 역할을 하는 포퍼(Karl Popper)적인 반증 관념이 사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구상을 이해하는 데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스피노자와 그의 '3종의 지식'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다만, 내가 스피노자에게서 배운 가장 귀중한 것이 '3종의 인식',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사례의 지식의 본성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에 관해 스피노자는 탁월하지만 종종 오해받은 예시를 제시하는데, (그의 『신학정치론』에 실린) 개별 인민의 역사, 개별 유대 역사가 그것이다. 나의 '사례'는 이 질서 중 하나로서, 그 개별성 안에서 인정되고 다뤄진 의학적·역사적·분석적인 모든 '사례들'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개별적 사례가 보편적이라는 점 이는 각 사례에서 반복되는 상수들(따라서 포퍼의 확증가능하거나 반증가능한 법칙들이 아니라)을 제시하며, 개별적 사례들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취급의 도입을 허용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마르크스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으며 장차 발전시켜야 할 이 논리와 다르게 사고하지 않는다."33)

    포퍼적인 반증의 시각은 역사적, 의학적, 또는 (정신)분석적 사례들(알튀세르 자신의!)에 맞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이론에서 제시된 어떤 이상적 사례의 예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된 일반 이론에 포함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사건들이 이론에서 지시된 법칙들에 따르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는 포퍼적 의미에서라면 이 일반 이론의 반증이거나 예외적 사례를 의미할 것이다. 이는 옳지 않다. 알튀세르가 「모순과 과잉결정」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모든 사례들은 '예외들'이다.34)예시적 사례들이나 여기서 벗어나는 사례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각각의 사례는 특별한 사례이고 어떤 사례도 표준적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튀세르는 인용된 구절에서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을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쓴다. 비슷하게, 그는 이미 자기비판적인 언급에서, 구체적 대상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보편성의 최소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35) 그러나 '보편적'인 것은 보편 이론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는 다만 특정한 상수들이 한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되풀이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만일 사례가 본성적으로 완전히 유일하다면, 그것은 다른 사례들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사례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상, '사례'라는 관념 자체가 공허한 수다가 될 것이다. 사례라고 한다면 적어도 어떤 측면에서 다른 (이전의) 사례들과 유사해야 한다는 점, 특정한 상수들이 한 사례에서 다음 사례로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비록 각각의 사례가, 유대민족의 역사나, 10월 혁명에서 무르익은 러시아 역사에서처럼, 다른 사례들에서 발생하지 않는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특성들을 포함하긴 하지만 말이다.) 사례들을 다루기 위에서 다룬 사고의 흐름을 명료히 하려면, 활동가의 사례를 재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 안에서의 활동가의 행동을 규정하는 본질적 기준과 조건 중에는 행위자에 고유한 (변)덕이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례에 관해 논평하면서, 알튀세르는 (변)덕과 운의 마주침을 말한다.36) (변)덕을 가진 행위자는 행위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황들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운은 행위자들의 삶에 아무튼 외적으로 작용하는 신비한 힘(forza del destino)이 아니다. 행위자의 (변)덕은 적어도 일정한 수준까지는 행위자의 운을 틀지우는 데 일정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점성술에서와는 달리, 인간 세계의 정세는, 마키아벨리의 설명을 따르자면, 내재적이고 현세적이며 세속적이다. 아주 확실하게, 인간 정세는 별도의 체계로서 현세적 삶의 질서에 외적 효과를 행사할지도 모르는 천체(天體)의 '천상적' 성좌(conjuncture, 정세)가 아니다. 이로부터 행동을 취함으로써 행위자가 행동의 정세적 기준과 조건의 한 원인이 되고 이를 틀지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이 시도가 바로 그 기준과 조건이라는 토대 이외에 아무런 다른 토대 위에서도 발생할 수 없지만 말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여기에서 산출된 정세와 운이 신비한 설명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듯이, 마키아벨리의 기획은 오히려 '실제로 작동하는 진리'를 가지고 정세와 운을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들의 신비로움을 벗겨내는 것이다.37) 사태를 조금 연장하면, 원인과 결과가 뒤얽힌 직물 전체가 어떤 보이지 않거나 숨겨진 기원적 원인 또는 원리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입증 너머에 있는 이 같은 믿음은 행동해야 하는 이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즉, 임박한 사건에 대해 우주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시각을 취하는 것은 여기에서 무익하다. 더 나쁜 것은, 그 숙명론적 교리가 수동성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이 교리는 정황들을 분석하고 적절한 수단들을 취할 것을 북돋는 대신 행동의 가능성들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분명, 각각의 사건마다 활동가들이 있다. 누구는 성공하고, 다른 누구는 실패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그 누구의("당신은 영원히 지속하는 공화국을 세울 수 없다") 성공도 보장되거나 영속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활동가는 그것(국가의 지속, cf. 『마키아벨리와 우리』, p. 40)에 관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성공은 '신의 손'에 있거나 '별자리에 쓰여 있거나' '타고난 능력'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못하거나 하는 사실적 가능성과 기회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고 또는 디드로의 숙명론자 자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위대한 책들에 쓰여 있다고 가정해 보라. 활동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물들의 의미를 박탈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행위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나 힘을 망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철학자는, 우주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신학적인 근거에서, 행동을 방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본원적인 원인이나 법칙, 또는 원리의 표현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점성술사는 현세적 정세들이 단지 천체적 성좌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주장은 결코 원리들의 숨겨진 법칙들을 적합하게 서술해 내지 못한다. 그것이 틀림없이 어려운 까닭은, 이 같은 법칙이 사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미세한 사건들조차 망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가의 시각에서, 우주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관점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이는 자신의 시대의 종교에 관해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견해였다. 철학자들의 주장은 아마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겠지만, 이는 그것들이 정의상 입증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아무런 실천적 소용에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38) 이 모두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이원론에 기초한 관점에서 우발성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연의 '객관성'이나 '주관성'에 관해 다투는 것은 악순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생산적인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이 가지고 있는 더 큰 명료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우발성 너머로 감히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활동가의 위치와 시각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적어도 마키아벨리의 문헌에서는 이 불완전한 위치는 (무지 따위를 의미하는) 부정적 범주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행위를 도울 수 있는 인지적이고 동적인 입장이나 시각을 가리킨다. 1) 상상과 유토피아를 비판하고 2) 철학적이거나 우주론적인 체계를 극복하며 3) 행동을 취하기 위한 사실적 기준과 조건, 가능성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주관적/객관적 이분법을 넘어서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운이나 정세는 인간 삶에 외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초월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39)그것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해석적 분할을 기각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우연을 볼 때 인간들은 어떤 외부적 체계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행동으로써 참여하거나 결합하는 사건 또는 정세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첫째, 한 편으로 자연과학자들이 우연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한 편으로 마키아벨리의 우발적 운 사이의 차이가 있다. 둘째, 한 편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또는 기성 사실)을 설명하는 역사가와,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을 미래로 내던지는 활동가 사이의 차이가 있다. 자연과학에서의 운. 자연과학자가 가스 분자들의 운동을 관찰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적어도 연구 대상에 자신의 측정 수단이나 그녀 자신이 미치는 어떤 영향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무언가를 변경하더라도, 분자들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가능한 편차의 원인은 여전히 연구자 가 아닐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비록 완전하게 작동하지 않을지라도, 실험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찬가지로, 우연에 관심을 가진 자연과학자들이 관찰하는 가스 화합물은 그녀에게 있어 유일하고 역사적인 '가스 화합물의 사례'로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한 가스 분자가 어떤 화합물에서 임의로 움직이는 방식에 관한 비역사적이거나 역사외적인 사례로 나타난다. 연구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화합물에서 어떤 종류의 무작위성이 나타나느냐는 연구의 목적에 있어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물론 동일한 화합물의 서로 다른 표본과 각각의 분자 운동을 비교하여 관찰된 무작위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칙을 찾기 위한 것이 요점이 아니라면 말이다.) 활동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활동가는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의 일부이고 일부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건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역사적 사례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미래의 도가니다. 반면, 과학적 실험은 반복가능해야만 한다 즉 다른 과학자들이 다른 시간에 다른 곳에서 그것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들과 달리 활동가는 사건의 과정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화, 적어도 증진시키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사례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가 사건의 과정을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을수록, 그는 그의 정세 안에서 더 잘 행동할 수 있다(비록 이를 위해 가끔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사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는 활동가가 자신의 정황을 분석할 때 우발성을 기각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재치와 기예 안에서 놀라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힘을 다해 '주체적'인 동시에 '객관적'으로 개입하려 노력함으로써 우발성이나 놀라움들을 가장 명확하게 고려한다. 그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과거형인 "무엇을 했는가?"도, 보편적 시간인 "무엇을 할 것인가?"도, 심지어 미래학적인 "무엇을, 일반적으로, 할 것인가?"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지금 여기에서 할 것인가?"라는 개인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정치적' 질문은 마키아벨리에게 중추적이었고, 심지어 그가 과거 사건들의 과정과 당시 내려진 결정들(마찬가지로 많은 모의실험을 포함했던)을 분석(하고 모의실험)할 때조차 그랬다.40) 이제, 우발성을 주관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활동가가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그의 사례와 활동의 사실적 기준과 조건, 정황들을 정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일정한 형태로 한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되풀이되는 상수들을 아는 것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로써 그는 그의 무지를 감축하거나 주관적 임의성의 요소를 줄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는, 자신이 무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들과 예견할 수 없는 결과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점을 안다. 인간이 사건 안에서 작동하거나 그것에 기여하는 요소들 전체를 도표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모든 놀라움들을 그 위험부담과 함께 제거하고 사례를 주권적인 방식으로 통달하는 것, 그러니까 지상의 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건의 원인들은 현세적일 것이지만, 현세성은 복합성의 부재나 통달의 약속을 가리키지 않는다. 활동가는 그 자신의 행동이 사건들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안다. 더욱이 그는 그의 행동이 다른 행위자들의 행위, 그리고 또 사건의 다른 기준과 조건들과 연접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활동가는 사건 속에 개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또한 그 과정에 개입하여 성가신 놀라움들을 피할 수 있고 위험부담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활동가가 이를 달성하는 데 완벽함이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활동가가 인간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우발성에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이는 ⅰ) 특히 그 자신의 사례와 ⅱ) 더 일반적으로 그 수준의 변화의 한 원인이 되는 것 양 쪽에 걸쳐 있다. ⅰ) 활동가는 사건과 정세를 틀지어 '유쾌하지 않은 놀라움'들이 그 자신에게보다는 그의 적수에게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는 사건에 연관된 다른 행위자들보다 더 우수하고 더 능숙하게 우발성을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들 중 하나는 자신의 적수들에게 불운한 걸림돌을 배치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ⅱ) 활동가가 자신의 정세를 틀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또한 사건의 우발성의 수준에 개입할 수 있다. 그는 정세의 기준과 조건을 틀지어 그 사건들이 다른 경우에 그랬을 것처럼 위태롭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우발성의 수준에 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우발성은 이 점에서 분명 주관적 무지와 다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우발성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적으로 객관적'이다. 비록 상상된 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건과 그 안의 활동가가 '객관적으로 비-우발적'일지라도.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 해석에서 우발성이라는 쟁점을 이해하려면, 주관적 이해와 객관적 이해의 분할이 말하자면 상상된 신의 시점에서의 일반적 이분법이나 절대적 용어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발성은 인간의 입각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인간적인 객관적 우발성들과 주관적 우발성들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인간적으로 객관적인 우발성은 어떤 인간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건들에 관련된 것이다(왜냐하면 각각의 이론이, 관련 법칙과 함께, 속이거나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비록 주어진 보장이 없고 잘못된 순서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복합성들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을 높이(고 우발성의 주관적 수준을 감축하)는 동시에 사건들이 그들에게 더 적은 놀라움을 초래하게 틀지음으로써(즉 우발성의 인간적으로 객관적인 수준을 감축함으로써)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능한 신은 이 같은 연구와 변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완전한 존재는 가장 복합적인 상황에서조차 지배적인 법칙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데, 비록 이것들이 인간적 입각점에서 판단할 때 우발성에 대한 통제를 넘어선다 할지라도 그렇다. 역사에서의 운. 역사가들과 달리 활동가의 과거 분석의 특징은 이미 발생했거나 완결된 것(기성 사실)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노력에 있지 않다. 혁명적 지도자 레닌처럼 활동가가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행동 전략을 계획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반드시 현재에서 미래로 기투(企投)된 자신들의 기획의 필요에 봉사해야 한다. 어떤 역사가들은, 역사의 특징이 필연성이 아니라 우발성의 우위라는 알튀세르적 관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연구하는 역사는 여전히 돌이킬 수 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성 사실의 일종이다. 게다가 역사가들은 더 이상 예컨대 민족의 탄생을 사건들의 필연적인 목적론적 계열들의 결과로 신비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연구하는 사건은 (비록 다양한 해석을 허락하긴 하지만) '응고된' 과거의 일부다. 반면 활동가들에게 있어 우발성이 갖는 의미는 피해야 하는 과거와 현재의 위협이자 이용해야 하는 약속이다. 그들 자신의 사건은 모두 미래에 열려 있는 수많은 좋고 나쁜 현재적 가능성들의 경기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활동가가 (변)덕을 갖는 것은 그가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변)덕스러운 것은 자신의 앎과 수단을 가지고 우발성을 통제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보다 더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놀라움들을 예견하고 심지어 다른 보다 덜 (변)덕스러운 행위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해 그것을 조작함으로써 우발적 상황들을 다룰 수 있다. 활동가가 점하는 위치는, 역사가의 위치와 비교할 때, 유혹적인 동시에 두렵다. 역사가들이 부러움을 느끼곤 하는 것은, 활동가의 위치가 사건들의 과정에서 자기발명의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는 알튀세르의 우발적 유물론에서 근본적인데, 예컨대 혁명적 지도자로서 레닌의 모습처럼 정치적 행동의 진정한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데서 그렇다. 1917년 러시아에서 벌어진 사건의 과정에서, 레닌은 분명하게 이야기했지만, 정세의 어떤 것도 볼셰비키가 수행한 혁명적 행동이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보장하지 않았다. 반면, 그들의 성공에 절대적인 장애물도 없었다. 볼셰비키의 성공은 우발적인 가능성, 기회였으며, 이를 이용하려면 상황에 대한 적절한 분석뿐만 아니라 적기(適期)에 이루어지는 행동 역시 필요했다. 활동가의 위치 안에 있는 위협적 측면이란, 그의 운이 영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못 쓰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그의 행동이 그의 계획을 부수고 자신을 망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식으로 결합된다면. 이는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에게 생겼던 일인데, 그는 가능한 최대 수준의 (변)덕스러운 활동가였지만, 결정적 순간에 병에 걸렸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로마냐의 주도권 하에 북부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기회를 잃었다. 알튀세르의 논평은 다음과 같다.

    "마키아벨리는 원자화한 이탈리아에서 이 마주침이 일어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의 뇌리에는 분명히 체자레가 항상 떠나지 않았다. 무에서 시작하여 로마냐 지방에서 공국을 이루었고 율리우스 2세에 거역하여 그를 면직시키기 위해 로마로 진격하던 중 결정적인 시점에서 레반나의 습지에서 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피렌체를 장악한 후 북이탈리아 전체를 통일했을 저 체자레 말이다."41)

    비록 활동가가 사건의 과정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는 사물들이 진행되는 방식을 통제하는 중심이 아니다(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발성은 우여곡절을 일으키며, 현실의 약속들은 새로운 종류의 인간 인물과 개인, 정세와 국가의 탄생을 위한 가능성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알튀세르는 파국의 선택지를 잊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제시된 것은 역사가 스스로를 시작도 목적도 없는 위협과 가능성의 유희로 제시하는 파노라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것, 즉 이들 세계의 인물들, 개인들, 정세들 또는 국가들을 주어진 전제들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고려하고자 하거나 어떤 목적의 잠정적 예상으로 고려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되리라는 것이 아주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잠정적 결과들이 다음과 같은 이중의 이유에서 잠정적 결과들이라는 것, 즉 그것들은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또는 만약 그것들이 상당한 운, 이 형태가 (우연히) 주재하게 된 서로 결합한 요소들에 '지속'의 '기회를 부여하는 상당한 운의 알맞은 토대 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직 하나의 '짧은 마주침'의 효과로서만 일어나리라는 점에서 잠정적 결과들이라는 이 사실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무 속에 있는 것, 무 속에 사는 것이 아니며, 역사의 의미(역사의 기원들에서부터 역사의 종료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초월하는 목적)는 없지만 역사 속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이 의미는 그 자신 역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효한 그리고 유효하게 알맞은 마주침 또는 파국적인 마주침으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42)

    그러나 역사의 의미는, 인간의 삶에서 발생하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거나 야기하는 이 사건들 안에서만 은폐된다. 예컨대 민족 국가의 탄생은 역사의 절대적 의미(Meaning)를 표현하는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우발성 안에서, 사건들의 복합적이고 우연적인 계열들이며, 표현된 절대적 의미 따위로 사후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역사란, 역사의 연속적 단계들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열려 있으며,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에게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으로, 그리고 미래에 열려 있고 그 개방성 때문에 불분명한 지평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1)Etienne Balibar, Structural Causality, Overdetermination, and Antagonism. In Postmodern Marxism and the Future of Marxism.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p. 115. Edited by Antonio Callari and David F. Ruccio. Wesleyan University Press, Hanover and London 1996.본문으로 2) 위의 책.본문으로 3) 위의 책.본문으로 4) 위의 책.본문으로 5) 위의 책.본문으로 6) Louis Althusser, L'avenir dure longtemps, p. 213. dition tablie et pr sent e par Oliver Corpet et Yann Moulier Boutang. STOCK/IMEC, Paris 1992.[국역: 돌베개, 1993]본문으로 7)Louis Althusser, Is it Simple to be a Marxist in Philosophy? In Essays in Self-Criticism, pp. 165~207. Transl. Graham Lock, New Left Books, London 1976.[국역: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본문으로 8)위의 책, 182.본문으로 9)Balibar, 위의 책, 115.본문으로 10) Louis Althusser, Contradiction and Overdetermination. In For Marx, pp. 117~128. Transl. Ben Brewster. New Left Books, London 1977.[국역: 백의, 1997, pp. 137~151]본문으로 11)나의 책 Niccol Machiavelli ja aleatorinen materialismi. 특히 이 주제를 자세히 다루는 10장을 보라.본문으로 12)Louis Althusser, For Marx, p. 215.[국역: p. 257]본문으로 13) Louis Althusser,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In 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1, p. 566. Textes r unis et pr sent s par Fran ois Matheron. STOCK/IMEC, Paris 1994.[국역: 루이 알튀세르, 서관모·백승욱 편역, 「마주침의 유물론」, 『철학과 맑스주의 - 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 새길, 1996, p. 79]본문으로 14) 위의 책, 566.[국역: p. 78]본문으로 15) Louis Althusser, Machiavel et nous. In 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2, p. 58. Textes r unis et pr sent s par Fran ois Matheron. STOCK/IMEC, Paris 1995. / Louis Althusser, Machiavelli and Us, p. 16. Transl. Gregory Elliott. Verso, London - New York, 1999.[국역: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p. 59]본문으로 16)L'avenir dure longtemps, p. 234 / The Future Lasts a Long Time, p. 242. Transl. Richard Veasey. Chatto & Windus, London 1993. 본문으로 17)Machiavelli and Us, p. 80.[국역: 71]본문으로 18)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65~566.[국역: p. 78]본문으로 19)Louis Althusser,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In Lignes, 18, janvier 1993, p. 99.[국역: 루이 알튀세르,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철학과 맑스주의』, p. 179]본문으로 20)위의 책, pp. 100~101.[국역: p. 181] virt 를 '(변)덕'이라고 옮긴 이유에 관해서는, 월간 『사회운동』 71호(2007. 1/2) 「책 속의 책」 각주 33을 보라.본문으로 21)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61.[국역: p. 70]본문으로 22)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99본문으로 23)위의 책.본문으로 24)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65~6.본문으로 25) 예컨대 Machiavel et nous, p. 59.본문으로 26)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99~101;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46.본문으로 27) Louis Althusser, Solitude de Machiavel, p. 34. Futur ant rieur, Ⅰ, 1990 / Machiavelli's Solitude, p. 124. Transl. Ben Brewster. In Machiavelli and Us [국역: 루이 알튀세르, 「부록: 마키아벨리의 고독」, 『마키아벨리의 가면』, p. 208]본문으로 28)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p. 99~100.본문으로 29)Il principe, ⅩⅤ.[국역: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옮김, 『군주론』, 까치, 1994, pp. 106~107]본문으로 30) 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5.[국역: pp. 186~187]본문으로 31)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p. 100~1;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45.본문으로 32)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5.본문으로 33)L'avenir dure longtemps, pp. 233~234; cf. 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52 and Essays in Self-Criticism, p. 136.본문으로 34)For Marx, p. 104.본문으로 35)Essays in Self-Criticism, p. 112, note 8.본문으로 36)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p. 100; cf. Machiavel et nous, p. 80 and p. 126.본문으로 37) Machiavel et nous, p. 80본문으로 38) David Hume, Enquirie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nd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p. 103. Edited L.A. Selby-Bihgge. Third edition. Clarendon Press, Oxford 1977.본문으로 39)이 쟁점은 위에서 언급한 나의 책 5.2 & 5.3절에서 다루어진다.본문으로 40)Machiavel et nous, p. 59.본문으로 41)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p. 544~545.[국역: p. 44]본문으로 42)Le courant souterrain du mat rialisme de la rencontre, p. 567.[국역: pp. 79~80]본문으로

  • 2007-06-22

    박래군, 새로운 사회운동,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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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서-박래군] 새로운 사회운동, 가능합니다 결코 기다려주는 법이 없는 게 시간입니다. 어느새 6월,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들도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주의의 요구도, 최소한 권력교체의 요구도 내걸지 않은 채 한 판 축제판이 끝났습니다. 87년 헌법이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정치적 담합으로 귀결되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요구는 철저히 배제한 채 탄생한 것처럼 항쟁 20년을 기념하는 일도 그런 구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저는 군사독재자의 자리에 신자유주의 독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거리를 달리던 투사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는 이때, 그들이 주도하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한미FTA 체결은 내줄 거 다 내주고도, 더 내줄 것이 있다는 미국의 요구에 끌려 재협상으로 가고 있고, 7월부터 시작되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거리로 내몰리거나 알량한 일자리라도 유지하려고 자존심을 팔아버려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아직도 항쟁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무기력하게 저들의 기념행사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6월은 투쟁일정들이 빽빽합니다. 한 투쟁사안 끝내고 나면, 다른 사안으로 빨리 넘어가야 합니다. 회의는 많은데, 언제 회원들과 공유하고, 투쟁을 준비할까 걱정이 앞섭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중요한 투쟁 일정들이죠. 정신없이 달력투쟁을 하다가 또 한달 후딱 지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무언가 뚜렷한 전환점 하나는 만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 너나없이 힘들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면 일의 성과도 남고, 대중도 남고, 조직은 강화되어야 하는데, 투쟁의 작은 성과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의 기록만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1년 내내 투쟁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미FTA 협상 저지하지 못했고,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하지 못했고, 비정규직법의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기본권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제국주의의 패권적인 침략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고, 공권력을 앞세운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세어졌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투쟁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매일 회의며, 투쟁이며, 술자리며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운동하다 병난다고 산재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고용보장이 되는 것도 아닌데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 진출한 진보세력도 아닌 정치인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기도 하고, 운동진영 내에서 발생한 이러저러한 비도덕적인 일들로 인해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 힘들게 활동하는 우리들의 충정은 아랑곳없이 비난의 화살을 받기가 일쑤입니다. 저는 올해 초 제안서를 돌렸습니다.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제목의 꽤나 긴 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동감을 해주었고, 또 다른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포럼의 집행위원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습니다. 한국진보연대(준)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운동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라느니, 좌파 블록을 만드는 것 아니냐하는 오해도 받고 있습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합의회의를 통해 진보운동의 과제를 만들어 보자는 게 말은 좋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니냐는 말에는, 운동 구력이 그래도 20년이 넘는 사람을 그렇게 순진하게만 보아준다는 것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말들이 많다는 것은 그래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가장 나쁜 점은 아무런 관심도, 의욕도 없는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걱정스러운 일은 이런저런 오해가 아니라 우리는 차이를 강조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그 차이로 인해서 의도부터 의심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이유로 삼는 것입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다르지만 같은 지점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가능한 연대부터 찾아내는 것, 그리하여 차이가 결국은 운동의 풍성함으로 발전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민중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운동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새로운 운동을 만들 수는 없나요? 작은 운동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운동들을 엮어보자는 것, 그래서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야별로 자생적으로 커왔고, 운동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단위들, 그리고 지역마다에 뿌리내린 자치운동체들이 서로 운동을 점검해주고, 상호침투해주는 그런 운동은 가능합니다. 각자의 전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단위들, 그러기에 지침이나 방침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진보운동의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운동, 집회판이라면 중앙무대에 얼굴마담 하는 몇몇 연설가가 정치 선동하는 게 아니라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주체가 되는 그런 집회, 그렇게만 된다면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으로 전체 진보운동의 기풍을 새롭게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만나면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관계, 소통을 통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 열어놓자는 생각입니다. 포럼에 들어와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만 갖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논의한 것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안으로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그리는 원칙은 수정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적인 조직표 대신에 둥근 원으로 조직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깃발이 아니라 작은 깃발들이 꿰매어져서 큰 깃발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의제별 워크숍을 준비하는 기획단들이 들어 있고, 사회운동대토론회와 사회운동총회를 준비하는 기획단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집행위원회와 위원장, 사무국이 있을 뿐입니다. 단체나 모임만이 아니라 다른 진보의 세계의 꿈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런저런 진보운동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생각입니다. 재원도 어디 돈 많은 재단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개인들로 조직위원을 만들고, 그 개인들의 참여로 한푼 두푼 모아서 재정도 만들고자 합니다. 이제 운동의 분화가 아니라 총체적인 현실에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강력한 중앙이 있고,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비슷한 입장의 단체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충분한 운동, 실천에서는 제도화된 운동양식, 관성에 찌든 운동방식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존중하는 운동, 운동권만의 친목대회가 아니라 대중들과 호흡하는 운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진보운동의 위기는 진보운동에 진력하는 활동가들이, 그리고 현장의 대중들이 함께 극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만들고자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합니다. 한 번의 회의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그런 포럼이고자 합니다. 8월말 3박 4일로 열리는 우리의 포럼에 동원되고, 조직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모여 열띤 토론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제안합니다. 우리의 포럼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협소한 기존의 운동틀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들의 논의로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봅시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가능하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2007-06-11

    [smf]1차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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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07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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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모델,두 가지 유산 [%=박스1%]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두 가지 모델, 두 가지 유산1) Ⅰ 오래 전, 집 근처 지하철을 타려고 ‘씨떼 위니베르시떼’(Cite Universitaire)2)역에 가다가, 미국 재단(la Fondation des Etats-Unis) 맞은 편 몽수리 공원 가에 있던 토마스 페인(Tom Paine) 동상 앞을 지나쳤다. 계몽주의의 세계시민주의를 강의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이 동상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는 내가 잘 아는 영어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었다. “토마스 페인. 영국에서 출생하고 미 국적을 선택했으며 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음. 세계의 시민.”(Thomas Paine. Born Englishman. American by choice. French by decree. Citizen of the World.))3) 이제 동상은 더 이상 그 곳에 있지 않다. 도로 공사를 틈타 동상을 치웠는데, 필시 시 당국이 동상 보수에 진력이 나서였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반제국주의 활동가들이 동상에 빨간 칠을 했는데, 그들은 필시 톰 페인이 누군지 몰랐거나 미국의 여느 민족 영웅쯤으로 보았을 것이다. 평소 다니는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사라진 비문을 마음 속으로 읊조리면서, 거기서 유토피아 종말의 상징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4) 하지만 정확히 어떤 ‘유토피아’가 문제였는가? 그리고 오늘날 유토피아가 폐기된다고 믿을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인가?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관념은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들 각각은 우리 시대의 담론에 모두 나타난다. 첫 번째 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가 결국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이 세계 안에서 모든 특수한 문화적·역사적 공동체들과 모든 개인들이 사실상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계시민적’인 것은 경제, 통신과 문화, 환경, 집단 안보 등의 분야에서 인류 전체에 공통적인 이익의 영역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더 이상 그것은 유토피아의 범주, 즉 꿈의 범주는 아닐지라도 상상과 이상 투사(投射, projection)의 범주인 유토피아의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현실의 범주인데, 설사 이 현실이 갈등적이고, 통일시키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분할시킨다 해도 그렇다. cosmopolis(세계국가), cosmopoliticos(세계정치가), cosmopolites(세계시민) 등 일련의 그리스 용어들 속에 있는 ‘정치’(politique)라는 관념은 ‘시민권의 구성’(politeia)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관련되었는데, 오늘날 시민권의 한계는 전(全)세계의 한계와 일치할 것이고, 이러한 일치는 이익과 갈등이 공적 논쟁과 의식에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함축하며, 이를 위한 제도와 언어는, 개인들이 국가와 관용어의 경계들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문제의 ‘세계적 차원을 느끼는 법’(feeling global)5)을 배움에 따라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처럼 ‘새로운 집단적 시민권자의 출현’(emergence of a new collective constituency)6)을 말하거나, (‘반(反)세계화’(No-Global) 운동이 자신의 이름과 모순되게 그렇게 하듯이) 전 세계의 권력 분포와 경제 정책을 다시 문제 삼는 사회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운동과 관(貫)민족적(transnationaux) 교통 네트워크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관찰하면서, 심지어 낡은 특수주의적 ‘영토의 시민권’과 대립하는 ‘네트워크의 시민권’이 될 새로운 유형의 시민권의 탄생을 환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명’은 아니라고 해도) 이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폭력적 형태, 심지어 테러적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든다고 정확히 반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폭력적 형태는 세계 정치의 실현을 규정짓는 형태들 중 하나일 뿐이며, 세계 정치가 역사적인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적대와 권력 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적대들이 더 이상 민족이나 제국, 또는 ‘진영’의 경계에 한정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냉전’의 종말은 이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표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표상의 극단에서, 그 자체 지극히 양가적인 ‘세계 시민사회’라는 관념과 경쟁하는 ‘세계 내전’이라는 관념이 면모를 드러낸다. 세계적 거대도시(Megalopolis)7)의 출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토피아와 모순을 빚는다. 유토피아의 이론들을 현실들로 (이상적 모델을 정치적 실천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의 통일성이라는 전제 자체를 폭발시킴으로써 말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날 ‘유일무이한 세계’ 속에서 부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개인들이 더 이상 타자들의 행위의 효과, 특히 그 파괴적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탐욕스러운 세계는 특수주의와 ‘부족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세계화는, 조절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지구적”(globale) 또는 “관민족적” 공통 제도들 및 언어들의 진보적 구성으로 이어지기는커녕, [그보다 앞서] 홉스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완화하는 문화적·정치적 틀, 권력과 주권의 체계를 파괴할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것은 따라서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합리성의 핵심이 아니라 그 허무주의적 이면(裏面), 지구적인 디스토피아(dys-topie)일 것이다. 관민족적이고 탈영토적인 연대의 형성 자체는 이런 의미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국제적 테러리즘’을 기존 권력에 대한 발본적 도전의 새로운 형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지양이 ‘다문화주의’의 촉진보다는 탈지역화된(delocalises) 공동체주의적 적대의 일반화에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8) 이러한 상태에서 ‘세계주의의 붕괴’와 ‘민족주의의 소생’9)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는데,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현대 정치이론의 어떤 조류 전체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편주의의 추가가 방도가 아니라(보편주의는 그 비현실주의 자체가 거부의 반작용을 증폭시킬 뿐이며 사실상 제국주의와 동의어를 이룬다), 경제적 세계화를 지역적이고 지정학적인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즉 (“문명들”로 재명명된) 종교 전통의 세계들(univers)과 일치하며, 인구 이동을 제한하고, 하나의 유일한 국가의 정치-군사적 권력에 중심을 둔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설명한다.10) 세계시민주의의 이상들이 현실의 시련에 맞부딪히는 ‘세계화된’ 세계가 사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계 중 하나이며, 즉시 예측할 수 있는 끝도 없는 세계라는 점은, 오늘날 ‘세계의 시민권’이라는 관념에 관한 모든 논쟁을 둘러싸는 깊은 곤란의 뿌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세계적 시민권과 세계화를 내세우는 담론들의 정치적 다의성에서도 곤란이 생겨난다.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탄생하여 (뭄바이[Mumbai]로 재명명된 봄베이[Bombay]에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회합을 성공적으로 막 개최한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라는 용어에서 ‘대안세계화’라는 용어로 옮겨가면서 이러한 곤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전통 속에서 길러진 지식인들 다수가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세계시민주의가 본성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과 지배적인 경제 세력의 편보다는 전 세계의 민중 세력(또는 ‘다중들’)―그들의 이익이 최종분석에서 제국주의와 기성 권력, 특권세력들의 ‘체계’나 ‘제국’에 대항하여 수렴할―의 편일 것이라는 점은 확실치 않다. 실은 그 반대가 아니냐고 자문할 수조차 있다. 현대화를 추진하는 자본주의와 ‘엘리트’들은 ‘빈자들’, 보다 일반적으로는 ‘피지배’ 대중들보다 오늘날 지적으로 훨씬 개방적이고, 민족적 특수주의를 훨씬 더 기꺼이 지양할 채비가 되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로부터 유럽과 다른 곳에서, (르펜(Le Pen), 하이데(Haider) 등) ‘인민주의’의 발전, 민족주의적이고 ‘토착민주의적’(nativistes)인 이데올로기들의 저항이 생겨나며, 새로운 세계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고 이러한 위협에 반응하여 ‘침입자들’과 ‘조국 없는’ 자들에 대한 외국인혐오증적 배제를 증가시킬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사회 계층들에게 이들 이데올로기가 행사하는 유혹이 생겨난다. 주지하듯이 (프랑스와 다른 곳의 새로운 ‘주권주의’(souverainisme)에서처럼) 지식인들 역시 이 같은 경향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새로운가? 사실 적어도 18세기 이래 부르주아 ‘세계시민주의’와 심지어 ‘국제주의’가 민중적인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만큼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하게 존재해 왔을 뿐만 아니라(후술하겠지만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맑스가 증명한 것의 의미였는데, 그것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부르주아들이 자본 축적의 유일한 세계적 과정 한 가운데서 민족적 적대를 넘어 이미 단결했던 것처럼, 이라고 말한다.), 세계시민주의의 담론이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구성요소였다는 점을, 특히 제국주의가 ‘야만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민족들을 정복을 통해 ‘문명화’하고 ‘근대화’하는 힘으로 스스로를 제시했을 때 그랬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세계시민주의는 특히 식민지 국가들의 반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나 민족해방운동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복무했다. 그리고 세계시민주의는 영토적 지배와 정복에 기초한 ‘옛’ 식민 제국주의가 신제국주의로 ‘교대’되는 것을 보장했는데, 신제국주의는 금융적 지배와 상업적 헤게모니, (미주국가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등을 통한 미국의 사례가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처럼) ‘집단적 방어’의 조직으로 이어진 ‘인도주의적’ 개입과 중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개인주의적 모델의 메시아적 팽창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간의, 또는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특수주의와 보편주의 간의 관계라는 질문을 단순 대립보다 훨씬 복잡한 항들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는 또한, 세계시민주의라는 개념이 아직 의미가 있다면, 오늘날 ‘세계시민주의’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 이 경우 그 담지자와 양상들은 무엇이며, 그 실천적 목표들은 무엇인지 새로이 자문하게 만든다.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항들 사이에서]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구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포함적’ 세계시민주의와 ‘배제적’ 세계시민주의11), 새로운 세계적 자본가 계급이 채택하고 대량으로 확산시킨 문화를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상적’ 세계시민주의와 ‘운동들의 운동’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 ― 세계화에 의한 탈식민화와 냉전의 종식 이래 생겨난 질서(또는 무질서…)에 대한 대안들이 이 운동으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 , 그 발전이 (교통과 권력과 심지어 폭력의) ‘네트워크’의 새로운 사회성을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새로운 세계적 공적 영역의 기획에 형태를 주는 경향이 있는 제도적 세계시민주의, 그리고 보편주의적 전통을 연장하고 예시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차이들의 소거불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인류 문화를 독특성들의 상호인정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세계시민주의, 기타 등등. Ⅱ 오늘날 철학과 정치에 공통적인 지평을 형성하는 이러한 상이한 딜레마들의 지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나는 칸트와 맑스의 이름으로 상징되며, 민족 국가 제도와 완전히 동연적인 시민권의 한계를 ‘지양’하는 두 가지 가능한 모델에 조응하는, 특별히 근대적인 철학적 유산에서 재출발하고 싶다. 세계시민주의적 이념―칸트가 이렇게 불렀고, 그는 이것을 ‘이성의 이념’의 원형으로 곧 그것에 따라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인류에 의해 달성된 진보를 실천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원형으로 만들었다―은 항상 본질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그 자체로 갈등의 쟁점이었다12). 이 갈등은 맑스가 말했듯이 ‘대중들에 의한 전유’를 통해, 그것을 ‘물질적 힘’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가로지른다. 이 갈등은 현재의 정세에서 세계시민적 유산을 되찾고 방어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담론들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가시적이다(본질적인 무언가를 맑스에게 빚지고 있긴 하지만, 칸트적인 세계시민주의의 재활성화 쪽을 좀 더 향하는 데리다(Jacques Derrida)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하거나, ‘평화’나 ‘공론성’(公論性)과 같은 칸트적 문제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면서, 맑스적인 정식화들의 유산을 일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네그리(Antonio Negri)와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칸트와 맑스의 철학을 간략하게 재검토하면서 우리는 앞서 세계시민주의의 ‘유토피아적’ 변이들이라고 불렀던 것에 특징적인 일정한 제한들을 강조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칸트적 입장에 전형적인 것은 평화라는 문제, 법/권리(droit)와 국가 간의 관계라는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초라는 문제들의 밀접한 연관이다. 이 주제들은 특히 유명한 소책자 『영구평화론』13)(1795)에서 설명되지만, 사실 역사 철학과 법 철학에 관한 칸트적인 반성 전체에 걸쳐 있으며, 비판적 절단(‘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전후, 그리고 특히 프랑스 혁명이라는 결정적인 정치적 대사건의 전후에 걸쳐 있다. 칸트는 이 사건의 최초 국면을 증언하는데, 이 시기의 특징은 부르주아 공화주의와 인민독재 간의 동요, 또 ‘인권’의 이름을 내건 방어전쟁에서 정복전쟁으로의 이행이다.14) 네 가지 중대한 주제를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세계시민적 권리’(문자 그대로 세계의 시민의 권리, Weltburgertum)를 향한 인류 진보의 ‘동력’을 구성하는 것의 표상 속에서, 칸트는 (이성의 우위 아래 인식과 도덕성을 결합시키는) 문화의 전개와 (프랑스어 표현의 고전 용법에서처럼 매우 일반적인 통념으로서, 상업적 활동들을 포함하지만, 또한 관념들과 저작들, 개인들의 이동들에 걸쳐 있는 모든 형태의 교통을 포함하는) 교류(Verkehr)의 전개를 밀접하게 결합시킨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도시 및 제국의 세계와 결합되어 있는 지혜라는 고대적 이상이,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출현 덕분에, 오늘날 역사 속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둘째, 칸트는 ‘세계시민적 시민권’을 평화와 결합시키는데, 전자는 후자의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평화는 ‘실질적’ 평화이며, 이는 적대 행위의 중단, 심지어 조약으로 비준된 중단과도 구별되어야 한다(적대행위의 중단은 세력 관계들이 변화되거나, 또는 변화가 상상될 수 있길 기다리는 것으로, 이것은 전쟁을 재개하도록 국가를 유도해 그들의 이익에 맞도록 선행하는 규칙을 바꾸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해 ‘자연상태에 있는’ 개인들처럼 행동하는 국가들이 처해 있는 외재적 관계에 본래적인 ‘세력 균형’을 바꿀 것을 기도하게 한다.). 칸트의 평화는 따라서 실체적이거나 영속적이다. 그것은 사실상 ‘공화주의’ 정치 체제의 본래적인 요청에 상응하는데, 이 정치 체제는 힘이 아니라 에 기초하지만, 국가들의 본성을 변혁하는 대가로 초민족적(supra-national) 수준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칸트는 이러한 변혁이 갈등과 법의 변증법(또는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으로부터 경향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변증법에 따르면 갈등은 장기적으로 (반사회적인 사회성이라는) 자신의 대립물을 낳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인류의 도덕적 목적지를 전제하는, 그리고 또한 목적이 단순한 법의 영역을 초월한다고 가정하는 메타정치적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계시민적 시민권’ 및 그와 분리할 수 없는 평화적 질서(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의 시민’이 장차 존재하게 되는 것은 시민적 평화가 국가들의 내적 질서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공론성’의 요구에 따르는 모든 정치 영역에 관여할 때라고 말하는 것으로 돌아온다.)의 제도적 실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칸트가 (오늘날 평화와 국제 질서, 집단 안보에 관한 논쟁에서 다시 나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관념들 사이에서 진화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기에 그는 세계 국가(또는 국가들의 세계적 ‘연방’)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사고하고자 했는데, 세계 국가는 사법적 질서뿐만 아니라 이 질서를 존중하도록 만들 책임을 지는 초민족적 권력이나 권위를 말한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1784)에 나오는 이러한 관념은 인류의 교육 과정이 자신의 모순들의 ‘해결’에 의해 종결되는 것을 표시한다. 이 관념은 혁명적 격변에 앞서, 유럽의 민족 열강들 사이에서 벌어진 왕조적·제국적 전쟁들과 동시대적이다. 두 번째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그것이 구 체제 국가들의 동맹과 대결을 개시한 이후로, 여기서 프랑스 혁명은 처음에는 방어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그 후 공공의 안녕과 국민 총동원에 기초한 ‘인민 전쟁’의 발명 덕분에 공세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 때 칸트는 초민족적 국가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주권을 초과하는 일정 수의 ‘기본권’을 포함하는 사법적 규범들의 보편적 체계라는 관념으로 이것을 대체한다. 특히 ‘환대’에 대한 권리, 즉 ‘외국’ 영토로의 개인의 이동과 정착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다. 여기서 도덕적 변혁이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국가들은 개인들의 ‘세계시민적 권리’를 존중하거나 설립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이 변혁을 감수해야만(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스스로에게 부과해야만) 한다(국가들이나 ‘개별 민족들’을 묶는 국제적 권리와는 달리, 세계시민적 권리는 개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가들에 부과되어야만 한다.). 이 관념은 그런데 반정립적인 해석들에 열려 있다. ‘세계 시민’이 그 담지자인 보편적 질서가 더 이상 국가나 주권의 모델이 아니라, (옛날 스토아주의의 현자들의 공동체처럼)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원동력을 갖는 공동체의 모델에 기초하여 사고되는 이상, 이 질서는 사법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종교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할 수 있다(국가를 넘어가는 제도라는 불가사의한 가능성을 특징짓기 위해 이 질서가 사법적 모델들과 종교적 모델들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환적인 방식으로 진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포스트민족적이고 포스트식민적인 갈등들에 관한 현재적 논쟁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 같은 칸트적 표상에 대해, 즉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맑스적 관념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 관념은 1848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선포됐고(“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국제노동자협회의 규약(1864)에서 다시 채택됐으며, (극단적으로 다양한 운명과 함께) 국제적인 사회주의(나중에는 공산주의) 운동의 조직과 활동 안에서 실행된 바로 그것이다.15) 칸트적 사고가 세계시민적 권리와 ‘부르주아’ 공화주의를 결합시키면서 군주제적 원리와 민주주의적 원리에 대해 동등하게 거리를 두는 데 반해, 맑스적인 국제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세계시민적 관념을 새로운 혁명적 ‘보편’ 계급으로 이송할 것을 제안한다. 그 계급의 특수 이익은 (역사에서 이제껏 모든 ‘혁명적’ 계급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유리하게 새로운 지배 형태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지배 일반을 종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치의 발본적 민주화와 분리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전위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모든 전통적 소속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환상’ 즉 이런저런 민족적, 종교적, 언어적… 공동체의 단일성과 우월성에 대한 집단적 믿음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국제주의를 유산자 계급의 사회적 지배 및 국가 체계에 대한 비판과 결합시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목할 만한 결과를 포함한다. 첫째, ‘국제주의’가 된 세계시민주의는 더 이상 역사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향이나 규제적 이념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권력 체계에 맞선 실제적 투쟁의 구호가 되는데, (다수자) 계급의 현재 상황과 물질적 이익에 뿌리박고 의식과 조직으로 구성되는 그 구호는 경계선들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의문시한다. 이 같은 실천적 투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팽창의 모순 자체 속에 단단히 묶여 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화와 세계화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지배와 주권의 구조들과 충돌한다. 이 투쟁이 기성 구조의 방어와 영속적으로 대결해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제주의는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평화주의가 아니다. 국제주의는 아주 정확하게 ‘투쟁’을, 자본주의가 전쟁을 영속화하고 활용하는 형태에 대립시킨다(유명한 경구에 나오는 것처럼, “큰 구름이 뇌우를 몰고 다니듯, 자본주의는 자신 안에 전쟁을 품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를 이루는 제국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때, 이율배반적인 정식화로까지 밀어붙여질 것이다. 레닌과 제2 인터내셔널의 좌익 반대파는 민족적 사회주의 정당이 지도적 부르주아지들을 추종하고, 1914년 ‘위대한 애국 전쟁’의 ‘신성 동맹’을 수용하는 것에 대응하여 “제국주의 전쟁의 혁명적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구호를 내지를 것이고, 이 구호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사회주의 운동 조직이 맞이하는 새로운 국면의 거점이 될 것이다. 다른 편에서 ‘민족적’ 사회주의 운동들은 전쟁을 ‘무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부분적으로 칸트적 전망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또한 미국적 진보주의에서도 영감을 받은) 집단적 안보와 국제 법 조직의 창설을 지지해야 한다는 확신을 전쟁의 살인적인 경험에서 이끌어낼 것이다. 국제연맹, 켈로그-브리앙 조약, 그 후에는 국제연합(UN)이 그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스스로를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평화 추구의 상관물이 아니라 투쟁의 실천으로 제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또한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가 전환된다. 시민권 관념은 국제주의에서 빠져 있지 않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실천적 지평 위에, 신분이 아니라 ‘활동’으로서 재정초된다. 국제주의는 사실상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전투적 집단들을 형성하는 개인들의 사회화 양식으로 나타난다(이 집단들은 온갖 종류의 조직 양태에 따라 사고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당 장치들은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 그 집단들의 자발성을 통제하고 중립화하려고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는 하나의 역설을 포함한다. 이 관계는 집단적인 시민적(civique) 활동을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로 만들면서도 이 활동을 ‘[공산주의로의] 이행기 속에’ 기입하며, 심지어 극한에서는 (지배적 민족주의에 대한 ‘전복’이나 ‘저항’의 문화라는) 집단적인 시민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고유한 조건들을 폐지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16) 이 특징들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유산이 갖는 양가성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편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현실 사회주의’(또는 당과 국가의 공산주의)가 가장 신속하게 파묻고, 20세기 역사에 걸쳐 가장 철저하게 왜곡시킨 맑스주의 전통의 측면인데, 현실 사회주의는 국제주의를 헤게모니적, 심지어 그 자체 (하위적인 방식의) 제국주의적 민족 정치에 봉사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 관념의 명예를 극도로 실추시켰다. 다른 한 편에서 이 관념은 공산주의의 비극적 경험 후에도 경향적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저항 운동들의 실천 안에서 해방의 희망을 품게 한다(데리다는 이것을 ‘맑스의 유령들’이라고 불렀고,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결합시켰다.).17) Ⅲ 나는 이제 아주 간략하게 ‘세계시민적 시민권’의 칸트적 모델과 맑스적 모델의 한계들을 환기시키려 하는데, (세계화의 갈등들이라는) 현재적 정세는 이 한계들을 다소 뚜렷하게 재출현시킨다. 이들 제한 각각은 따라서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 선재하는 해법 없이 ― 다시 취해야 하는 열린 문제들의 집합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나는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은) 세 가지 문제들을 고려하고자 한다. 첫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자유주의적’이다. 이는 이 견해들이 시민사회와 그 자생적 발전에 특권을 준다는 의미에서인데, 이 점은 (칸트)과 정치적 실천(맑스)에 결정적 중요성이 부여될 때조차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은 제도라는 용어이다. 칸트와 맑스의 관념들 자체는 공적 인격이나 행위와 사적 인격이나 행위 사이의 ‘로마’법적 대립에서 유래하고, 민족 국가의 발전이 일반화한 시민사회와 정치 공동체 사이의 전통적 구별을 (칸트처럼) 지양하거나, (맑스처럼) 문제삼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의 제도가 국가 외부에서, 국가적 제도로서가 아닌 방식으로 인식되고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미결 상태로 덮어 둔다. 둘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역사에 대한 ‘유럽중심적’ 전망과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의 보편주의는 따라서 근원적으로 모순적이다. 이 때 주의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특히 이론적 ‘유럽중심주의’를 제국주의 전제의 반복으로 단순하게 동일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중심, 양극성, 그리고 동질적 질서의 표상과 분리할 수 없는 ‘세계’(monde)라는 통념을 ‘플래닛’(planete)라는 통념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18)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19). 나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Nous, citoyens d'Europe?)에서 정치 공동체들은 우연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헤르만 판 휜스테른(Herman van Gunsteren)의 테제를 논하는 것을 계기로 이 착상을 다시 취한 바 있다(모든 정치 공동체들은 그의 용어법에서는 운명 공동체들(communities of fate)인데, 이는 자연적이거나 숙명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내던져진’ 서로 다른 출신지의 개인들과 집단들을 결합시킨다.). 문제는 유일무이한 문명이라는 특성, 따라서 유일무이한 보편주의의 정식화와 유일무이한 진보의 시각에 ‘중심을 둔’ 세계사라는 관념을 지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 자체는 충분치 않다. (세계의 통일이나 세계 경계들의 상대화로 나타나는) 세계의 세계화가 또한 (칸트가 문화에, 맑스가 자본주의에 부여한) 전진적 동질화를 함축한다는 관념을 문제 삼아야만 한다. 결국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서의 교통은 어제의 세계에서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차이들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정반대로 더욱 가시적이 되고 이 때문에 더 갈등적이 된다.20) 셋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세속적’이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와 정치의 ‘세속화’라는 사회학적인(그리고 더 근원적으로는 인간학적인) 전제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합리주의의 아주 특수한 형태를 이룬다. 이는 우선 부정적으로는 그것이 ― 고전적인 사회학과 역사 철학의 모든 전통처럼 ― 문명의 진보를 세계의 ‘세속화’ 또는 ‘탈주술화’(desenchantement)로의 불가항력적인 경향으로 여긴다는 것(지나치는 김에 말해 두자면, 이것은 베버(Max Weber)의 관념이 전혀 아니었다.)을 의미한다. 이 경향은 반드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치의 정교분리적 제도의 가능성, ‘교회와 국가의 분리’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사적’ 영역 속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칸트에게 거기서 문제는 종교를 그것의 고유한 ‘한계’ 내로 환원하는, 즉 종교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주는, 이성의 진보의 어떤 귀결이다. 맑스에게 문제는 세계와 인간의 이상적 표상들을 ‘모독하고’, 그에 상응하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들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발전의 어떤 귀결이다(다른 곳에서 맑스가, ‘상품의 물신주의’와 정치의 관념론을 다루면서, 근대 사회의 사회적 관계들이 그 자체로 ‘신학적’ 표상들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는 칸트와 맑스가 공히 계몽의 전통에 따라 정치를 반성의 ‘비판적’ 판단과 숙고된 행동의 결합으로 상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주체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식’하거나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이 상황을 ‘문제화’하는 가능성이 나올 것이다. 칸트와 맑스에게 공히 세계―인간의 변혁적 행동이 ‘세계화’되는―는 점점 더 ‘투명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는 ‘동일성들’이라는 질문을 실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중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또는 이는 다시 현대 세계가 ‘성전’(聖戰)의 진지가 된다는 관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귀착되는데, 그러한 진지 속에서 신학적 정념들은 ― 이것들은 적을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이며, 결국 ‘신의 적’이나 절대적인 적, 악의 체현으로 표상하는 것과 연관된다 ― 신학적 ‘근본주의’, ‘신의 보복’을 통해서든, 뵈겔린(Eric Herman Wilhelm Voegelin)적 의미에서 ‘세속적 종교’의 출현을 통해서든, 총력전에 자신을 맡길 방도를 찾아낸다. ― 그리고 국제 질서에 관한 슈미트(Carl Schmitt)의 테제들에 반드시 동조하지 않더라도 ‘인권의 종교’나 ‘인도주의적 종교’가 신학적 정념들 중 하나가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왜냐하면 20세기 동안 우리는 실로 19세기를 특징지었던 ‘새로운 종교들’, 즉 인종의 종교나 신-이교도(neo-paienne)의 종교뿐만 아니라, 인류의 종교나 신(新)-기독교, 실증주의의 종교의 정초라는 기획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칸트와 맑스의 문헌들과의 엄밀한 토론 속에서 종교적 형태들과 경제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베버가 제기한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심화시키는 정치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다시 취해야 한다. 이해할 테지만, 완전히 예비적인 지위를 갖는 이 같은 일반적 언급들은,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와 맑스적 국제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전통의 강점들과 그 한계들을 이중적으로 환기함으로써 양자의 전제들을 완전히 탈안정화하고 그 효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정세 속에서 이들의 정치적 실현의 내용과 조건들을 재사고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는다. 1)이 발표문은 「세계의 시민권: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제목 하에 미국 뉴저지 럿거스(Rutgers) 대학 현대 문화 비판 분석 센터(Center for the Critical Analysis of Contemporary Culture)에서 2004년 3월 24일 개최된 강연의 1부를 수정한 것이다.본문으로 2)[역주] 파리 14구 몽수리 공원과 파리 외곽의 경계에 위치한 국제 대학기숙사촌. 미국과 중국,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등 세계 36개국 기숙사가 모여 있다.본문으로 3)‘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다’는 표현은 국민공회의 법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당시 국민공회는 프랑스 혁명에 참여하러 온 토마스 페인, 아나르카르씨스 클로츠(Anarcharsis Cloots), 그리고 몇몇 다른 ‘외국인들’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수여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미국 혁명의 뒤를 이은 인류 해방의 거대한 과정의 새로운 단계를 보았고, 특히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와 같은 적수에 맞서 혁명을 웅변적으로 옹호했다. cf. Thomas Paine, Rights of Ma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Henry Collins, Penguin Books 1969.[국역: 필맥, 2004]본문으로 4)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파냐 식민지 독립의 영웅이며 불로뉴쉬르메르에서 사망한 호세 데 산 마르틴(Jose de San Martin)의 쌍둥이 동상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 산 도밍고(오늘날의 아이티) 노예 해방의 지도자이자 수장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연쇄적 자유 봉기에서 세 번째로 꼽을 만한 인물인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의 경우, 프랑스 정부도 시장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본문으로 5)Cf. Bruce Robbins, Feeling Global, Internationalism in Distress,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9.본문으로 6)E. Said, Orientalism, New Paperback Edition, Vintage Books 1979, p. ⅩⅩⅧ.[국역: 교보문고, 2007]본문으로 7)특히 오스왈드 스펭글러(Oswald Spengler)가 사용한 스토아주의적 기원의 표현.본문으로 8)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특히 탈영토화된 ‘상상적 공동체’(‘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의 재구성에 관심을 가졌다. (cf. The Spectre of Comparison. Naionalism, Southeast Asia and the World, Verso 1998.) 이 같은 문제설정을 유럽의 현대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적용시킨 것을 보려면 Esther Benbassa, La Republique face a ses minorites: les Juifs hier, les Musulmans aujourd'hui, Mille et Une Nuits (A. Fayard), Paris 2004.본문으로 9)John Ralston Saul, The Collapse of Globalism and the Rebirth of Nationalism, Harper's Magazine, March 2004.본문으로 10)(이제는 유명해진 그의 저작 『문명의 충돌』에서 전개된) 헌팅턴의 모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1940년대에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교화한 공영권(Grossraume) 이론에서 영감을 얻는데, 이 이론은 (‘신(新)먼로주의’라는) 독일의 유럽-지중해 헤게모니 요구를 정당화하고, 그가 전통적인 민족 국가 체계의 위기로 보는 집단안보협약(국제연맹, 국제연합)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다. Cf. E. Balibar, Le Choc des civilisations et Carl Schmitt: une coincidence?, in L'Europe, l'Amerique, La Guerre. Reflexions sur la mediation europeenne, Editions La Decouverte, Paris, 2003.본문으로 11)Cf. Amanda Anderson, Cosmopolitanism, Universalism, and the Divided Legacies of Moderntiy, in Bruce Robbins and Pheng Cheah (eds), Cosmopolitics. Thinking and Feeling beyond the Nati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8, p. 265~289.본문으로 12)이는 세계시민적 이념의 고대적 기원인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이미 적용되었다. cf. Giuseppe Giliberti, Cosmopolis. Politica e diritto nella tradizione cinico-stoica, European Commission (D.G. Education and Culture), Rete Tematica, Una filosofia per l'Europa, Pesaro 2002, 그리고 Etienne Tassin의 위대한 최근작 Un monde commun. Pour une cosmopolitique des conflits, Ed. du Seuil 2003.본문으로 13)칸트의 소책자 제목은 가공할 언어 유희를 내포하는데, 왜냐하면 ‘영구 평화’나 ‘영면’(永眠)은 일상어에서 묘지의 문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평 중에서 특히 오트프리트 회페(Otfried Hoffe) 편, Immanuel Kant, Zum ewigen Frieden, Klassiker Auslegen, Akademie Verlag, 1995.본문으로 14)1790년 5월 22일, 혁명으로 생겨난 국민의회는 세계 평화를 장엄하게 선언했고 모든 정복 전쟁을 부인했다. cf. J. Godechot, La grande nation. L'expansion revolutionnaire de la France dans le monde de 1789 a 1799, 2e ed. Paris: Aubier, 2004 et Fl.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evolution, 1789, 1795, 1802,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2.본문으로 15)칸트적 테제들(이 테제 자체는, 유럽 공법 체계(Jus Publicum Europaeum) 틀 안에 있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설립된 권력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영구 평화’에 관해 고전 시대에 벌어진 거대한 논쟁에서 유래한 것이다.)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창설자인 맑스와 엥엘스의 정식화 사이에 다른 기획이 삽입되는데, 특히 생시몽(Saint-Simon)의 기획이 그것이다(이는 낡은 국가들과 군국주의 제국들의 신성동맹에 대항하여 ‘산업’ 발전의 틀 안에서 민족들을 연합시키는 유럽합중국이다.).본문으로 16)중요한 점은 맑스에게 있어 국제주의는 공산주의(즉 목적의 지배의 맑스적 판본)이 아니라, 공산주의로의 ‘이행’ 또는 공산주의로 인도하는 정치 투쟁이라는 점이다(다른 의미에서는, ‘공산주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확히 무한한 과정, 현행적 정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사실들을 접근시키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a)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총체성의 단계에 도달한 생산력’의 ‘세계시민적’이거나 차라리 ‘세계경제적’ 구조를 서술했는데, 이는 생산력의 집단적 ‘재전유’에 의해 공산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 1847년 『공산주의자 선언』이 바꾸게 되는 것은 바로 정치적 계기의 삽입인데, 이는 국제주의를 이 ‘재전유’의 조건으로 만들어낸다(『선언』에서 소유 변혁을 실현하는 임무를 민족적 틀 내에서의 ‘민주주의의 쟁취’에 맡기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가 획득된 다음 특정한 특수 이익을 방어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구성적이거나 봉기적 요소가 국제주의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b) 『정치경제학 비판』과 『자본』은 보편적 상품 공화국 안에서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발견한다.본문으로 17)J. Derrida, Spectres de Marx. L'etat de la dette, le travail de deuil et la nouvelle Internationale, Galilee 1993.본문으로 18)Imperative zur Neuerfindung des Planeten/Imperatives to Re-Imagine the Planet, Edition Passagen, Frankfurt am Main 1999. [역주] 여기서 스피박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세계를 ‘지구’(地球, globe)의 이미지, 즉 분명한 중심을 갖는 동심원적 위계 구조로 보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 ― 이 맥락에서는 ‘지구화’(globalization)라고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즉 중심의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을 (반)주변들로 확산시키고, 이로써 (반)주변들을 한층 더 종속시키거나 내부적으로 배제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근저에도 깔려 있거니와, 'planet'이라는 신조어는 이 같은 지구적 표상과의 분명한 대비를 통해 세계 안의 복합성과 불균등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planet'을 ‘지구’라고 번역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행성’이라고 새기는 것도 저자의 진의를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적당한 대안을 떠올리지 못해 여기서는 부득이하게 'planet'을 ‘플래닛’로 번역하고 원어를 병기한다.본문으로 19)Against Rac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에서 폴 길로이(Paul Gilroy)의 경우, 세계시민적 관념과 세계의 ‘인종학적’ 표상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으며, 칸트가 문화 발전의 시각에서 ‘인종’의 지리학적 분배의 ‘목적론적’ 의미작용을 정의하는 방식이 그 증거라는 주장을 제시한다. 칸트에게서 인종 개념이라는 질문에 관해서는 이제부터 Raphael Lagier, Les races humaines selon Kant, PUF 2004의 연구를 읽을 수 있다.본문으로 1)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는 이런 식의 비판을 얼마간 완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변이들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제2 인터내셔널, 그 후에는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전통에서는 ‘동방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인정함으로써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거대한 질문은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편주의적 사명을 통합하는 유럽 외적 대항모델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반둥의 ‘비동맹’ 운동 이래의 ‘제3 세계주의’가 제기한 문제로, 이들은 두 ‘진영’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들로 세계를 나누는 것을 다시 한 번 문제삼으려 했고, 그 흔적은 오늘날 ‘대안세계화’ 운동 안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본문으로

  • 2007-06-07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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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모델,두 가지 유산 [%=박스1%]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 :두 가지 모델, 두 가지 유산1) Ⅰ 오래 전, 집 근처 지하철을 타려고 ‘씨떼 위니베르시떼’(Cite Universitaire)2)역에 가다가, 미국 재단(la Fondation des Etats-Unis) 맞은 편 몽수리 공원 가에 있던 토마스 페인(Tom Paine) 동상 앞을 지나쳤다. 계몽주의의 세계시민주의를 강의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이 동상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는 내가 잘 아는 영어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었다. “토마스 페인. 영국에서 출생하고 미 국적을 선택했으며 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음. 세계의 시민.”(Thomas Paine. Born Englishman. American by choice. French by decree. Citizen of the World.))3) 이제 동상은 더 이상 그 곳에 있지 않다. 도로 공사를 틈타 동상을 치웠는데, 필시 시 당국이 동상 보수에 진력이 나서였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반제국주의 활동가들이 동상에 빨간 칠을 했는데, 그들은 필시 톰 페인이 누군지 몰랐거나 미국의 여느 민족 영웅쯤으로 보았을 것이다. 평소 다니는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사라진 비문을 마음 속으로 읊조리면서, 거기서 유토피아 종말의 상징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4) 하지만 정확히 어떤 ‘유토피아’가 문제였는가? 그리고 오늘날 유토피아가 폐기된다고 믿을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인가?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관념은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들 각각은 우리 시대의 담론에 모두 나타난다. 첫 번째 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가 결국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이 세계 안에서 모든 특수한 문화적·역사적 공동체들과 모든 개인들이 사실상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계시민적’인 것은 경제, 통신과 문화, 환경, 집단 안보 등의 분야에서 인류 전체에 공통적인 이익의 영역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더 이상 그것은 유토피아의 범주, 즉 꿈의 범주는 아닐지라도 상상과 이상 투사(投射, projection)의 범주인 유토피아의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현실의 범주인데, 설사 이 현실이 갈등적이고, 통일시키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분할시킨다 해도 그렇다. cosmopolis(세계국가), cosmopoliticos(세계정치가), cosmopolites(세계시민) 등 일련의 그리스 용어들 속에 있는 ‘정치’(politique)라는 관념은 ‘시민권의 구성’(politeia)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관련되었는데, 오늘날 시민권의 한계는 전(全)세계의 한계와 일치할 것이고, 이러한 일치는 이익과 갈등이 공적 논쟁과 의식에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함축하며, 이를 위한 제도와 언어는, 개인들이 국가와 관용어의 경계들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문제의 ‘세계적 차원을 느끼는 법’(feeling global)5)을 배움에 따라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처럼 ‘새로운 집단적 시민권자의 출현’(emergence of a new collective constituency)6)을 말하거나, (‘반(反)세계화’(No-Global) 운동이 자신의 이름과 모순되게 그렇게 하듯이) 전 세계의 권력 분포와 경제 정책을 다시 문제 삼는 사회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운동과 관(貫)민족적(transnationaux) 교통 네트워크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관찰하면서, 심지어 낡은 특수주의적 ‘영토의 시민권’과 대립하는 ‘네트워크의 시민권’이 될 새로운 유형의 시민권의 탄생을 환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명’은 아니라고 해도) 이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폭력적 형태, 심지어 테러적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을 든다고 정확히 반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폭력적 형태는 세계 정치의 실현을 규정짓는 형태들 중 하나일 뿐이며, 세계 정치가 역사적인 모든 정치와 마찬가지로 적대와 권력 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적대들이 더 이상 민족이나 제국, 또는 ‘진영’의 경계에 한정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냉전’의 종말은 이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표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표상의 극단에서, 그 자체 지극히 양가적인 ‘세계 시민사회’라는 관념과 경쟁하는 ‘세계 내전’이라는 관념이 면모를 드러낸다. 세계적 거대도시(Megalopolis)7)의 출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토피아와 모순을 빚는다. 유토피아의 이론들을 현실들로 (이상적 모델을 정치적 실천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의 통일성이라는 전제 자체를 폭발시킴으로써 말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날 ‘유일무이한 세계’ 속에서 부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개인들이 더 이상 타자들의 행위의 효과, 특히 그 파괴적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탐욕스러운 세계는 특수주의와 ‘부족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세계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세계화는, 조절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지구적”(globale) 또는 “관민족적” 공통 제도들 및 언어들의 진보적 구성으로 이어지기는커녕, [그보다 앞서] 홉스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완화하는 문화적·정치적 틀, 권력과 주권의 체계를 파괴할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것은 따라서 세계시민적 유토피아의 합리성의 핵심이 아니라 그 허무주의적 이면(裏面), 지구적인 디스토피아(dys-topie)일 것이다. 관민족적이고 탈영토적인 연대의 형성 자체는 이런 의미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국제적 테러리즘’을 기존 권력에 대한 발본적 도전의 새로운 형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지양이 ‘다문화주의’의 촉진보다는 탈지역화된(delocalises) 공동체주의적 적대의 일반화에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8) 이러한 상태에서 ‘세계주의의 붕괴’와 ‘민족주의의 소생’9)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랄 필요는 없는데,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현대 정치이론의 어떤 조류 전체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편주의의 추가가 방도가 아니라(보편주의는 그 비현실주의 자체가 거부의 반작용을 증폭시킬 뿐이며 사실상 제국주의와 동의어를 이룬다), 경제적 세계화를 지역적이고 지정학적인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즉 (“문명들”로 재명명된) 종교 전통의 세계들(univers)과 일치하며, 인구 이동을 제한하고, 하나의 유일한 국가의 정치-군사적 권력에 중심을 둔 거대 집합들의 분할된 체계와 결합하는 것이 방도라고 설명한다.10) 세계시민주의의 이상들이 현실의 시련에 맞부딪히는 ‘세계화된’ 세계가 사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계 중 하나이며, 즉시 예측할 수 있는 끝도 없는 세계라는 점은, 오늘날 ‘세계의 시민권’이라는 관념에 관한 모든 논쟁을 둘러싸는 깊은 곤란의 뿌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세계적 시민권과 세계화를 내세우는 담론들의 정치적 다의성에서도 곤란이 생겨난다.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탄생하여 (뭄바이[Mumbai]로 재명명된 봄베이[Bombay]에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회합을 성공적으로 막 개최한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라는 용어에서 ‘대안세계화’라는 용어로 옮겨가면서 이러한 곤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전통 속에서 길러진 지식인들 다수가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세계시민주의가 본성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과 지배적인 경제 세력의 편보다는 전 세계의 민중 세력(또는 ‘다중들’)―그들의 이익이 최종분석에서 제국주의와 기성 권력, 특권세력들의 ‘체계’나 ‘제국’에 대항하여 수렴할―의 편일 것이라는 점은 확실치 않다. 실은 그 반대가 아니냐고 자문할 수조차 있다. 현대화를 추진하는 자본주의와 ‘엘리트’들은 ‘빈자들’, 보다 일반적으로는 ‘피지배’ 대중들보다 오늘날 지적으로 훨씬 개방적이고, 민족적 특수주의를 훨씬 더 기꺼이 지양할 채비가 되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로부터 유럽과 다른 곳에서, (르펜(Le Pen), 하이데(Haider) 등) ‘인민주의’의 발전, 민족주의적이고 ‘토착민주의적’(nativistes)인 이데올로기들의 저항이 생겨나며, 새로운 세계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고 이러한 위협에 반응하여 ‘침입자들’과 ‘조국 없는’ 자들에 대한 외국인혐오증적 배제를 증가시킬 것을 국가에 요구하는 사회 계층들에게 이들 이데올로기가 행사하는 유혹이 생겨난다. 주지하듯이 (프랑스와 다른 곳의 새로운 ‘주권주의’(souverainisme)에서처럼) 지식인들 역시 이 같은 경향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새로운가? 사실 적어도 18세기 이래 부르주아 ‘세계시민주의’와 심지어 ‘국제주의’가 민중적인 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만큼 그리고 그보다 더 강하게 존재해 왔을 뿐만 아니라(후술하겠지만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맑스가 증명한 것의 의미였는데, 그것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부르주아들이 자본 축적의 유일한 세계적 과정 한 가운데서 민족적 적대를 넘어 이미 단결했던 것처럼, 이라고 말한다.), 세계시민주의의 담론이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구성요소였다는 점을, 특히 제국주의가 ‘야만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민족들을 정복을 통해 ‘문명화’하고 ‘근대화’하는 힘으로 스스로를 제시했을 때 그랬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세계시민주의는 특히 식민지 국가들의 반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나 민족해방운동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복무했다. 그리고 세계시민주의는 영토적 지배와 정복에 기초한 ‘옛’ 식민 제국주의가 신제국주의로 ‘교대’되는 것을 보장했는데, 신제국주의는 금융적 지배와 상업적 헤게모니, (미주국가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등을 통한 미국의 사례가 예나 지금이나 그런 것처럼) ‘집단적 방어’의 조직으로 이어진 ‘인도주의적’ 개입과 중재, 정치적 민주주의의 개인주의적 모델의 메시아적 팽창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간의, 또는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특수주의와 보편주의 간의 관계라는 질문을 단순 대립보다 훨씬 복잡한 항들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는 또한, 세계시민주의라는 개념이 아직 의미가 있다면, 오늘날 ‘세계시민주의’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 이 경우 그 담지자와 양상들은 무엇이며, 그 실천적 목표들은 무엇인지 새로이 자문하게 만든다.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항들 사이에서]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구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포함적’ 세계시민주의와 ‘배제적’ 세계시민주의11), 새로운 세계적 자본가 계급이 채택하고 대량으로 확산시킨 문화를 수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상적’ 세계시민주의와 ‘운동들의 운동’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 ― 세계화에 의한 탈식민화와 냉전의 종식 이래 생겨난 질서(또는 무질서…)에 대한 대안들이 이 운동으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 , 그 발전이 (교통과 권력과 심지어 폭력의) ‘네트워크’의 새로운 사회성을 표현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새로운 세계적 공적 영역의 기획에 형태를 주는 경향이 있는 제도적 세계시민주의, 그리고 보편주의적 전통을 연장하고 예시하는 세계시민주의와 차이들의 소거불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인류 문화를 독특성들의 상호인정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세계시민주의, 기타 등등. Ⅱ 오늘날 철학과 정치에 공통적인 지평을 형성하는 이러한 상이한 딜레마들의 지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나는 칸트와 맑스의 이름으로 상징되며, 민족 국가 제도와 완전히 동연적인 시민권의 한계를 ‘지양’하는 두 가지 가능한 모델에 조응하는, 특별히 근대적인 철학적 유산에서 재출발하고 싶다. 세계시민주의적 이념―칸트가 이렇게 불렀고, 그는 이것을 ‘이성의 이념’의 원형으로 곧 그것에 따라 사람들이 역사 안에서 인류에 의해 달성된 진보를 실천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원형으로 만들었다―은 항상 본질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그 자체로 갈등의 쟁점이었다12). 이 갈등은 맑스가 말했듯이 ‘대중들에 의한 전유’를 통해, 그것을 ‘물질적 힘’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가로지른다. 이 갈등은 현재의 정세에서 세계시민적 유산을 되찾고 방어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담론들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가시적이다(본질적인 무언가를 맑스에게 빚지고 있긴 하지만, 칸트적인 세계시민주의의 재활성화 쪽을 좀 더 향하는 데리다(Jacques Derrida)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하거나, ‘평화’나 ‘공론성’(公論性)과 같은 칸트적 문제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면서, 맑스적인 정식화들의 유산을 일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네그리(Antonio Negri)와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저작만큼이나 서로 상이한 저작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칸트와 맑스의 철학을 간략하게 재검토하면서 우리는 앞서 세계시민주의의 ‘유토피아적’ 변이들이라고 불렀던 것에 특징적인 일정한 제한들을 강조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칸트적 입장에 전형적인 것은 평화라는 문제, 법/권리(droit)와 국가 간의 관계라는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초라는 문제들의 밀접한 연관이다. 이 주제들은 특히 유명한 소책자 『영구평화론』13)(1795)에서 설명되지만, 사실 역사 철학과 법 철학에 관한 칸트적인 반성 전체에 걸쳐 있으며, 비판적 절단(‘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전후, 그리고 특히 프랑스 혁명이라는 결정적인 정치적 대사건의 전후에 걸쳐 있다. 칸트는 이 사건의 최초 국면을 증언하는데, 이 시기의 특징은 부르주아 공화주의와 인민독재 간의 동요, 또 ‘인권’의 이름을 내건 방어전쟁에서 정복전쟁으로의 이행이다.14) 네 가지 중대한 주제를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세계시민적 권리’(문자 그대로 세계의 시민의 권리, Weltburgertum)를 향한 인류 진보의 ‘동력’을 구성하는 것의 표상 속에서, 칸트는 (이성의 우위 아래 인식과 도덕성을 결합시키는) 문화의 전개와 (프랑스어 표현의 고전 용법에서처럼 매우 일반적인 통념으로서, 상업적 활동들을 포함하지만, 또한 관념들과 저작들, 개인들의 이동들에 걸쳐 있는 모든 형태의 교통을 포함하는) 교류(Verkehr)의 전개를 밀접하게 결합시킨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도시 및 제국의 세계와 결합되어 있는 지혜라는 고대적 이상이,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출현 덕분에, 오늘날 역사 속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둘째, 칸트는 ‘세계시민적 시민권’을 평화와 결합시키는데, 전자는 후자의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평화는 ‘실질적’ 평화이며, 이는 적대 행위의 중단, 심지어 조약으로 비준된 중단과도 구별되어야 한다(적대행위의 중단은 세력 관계들이 변화되거나, 또는 변화가 상상될 수 있길 기다리는 것으로, 이것은 전쟁을 재개하도록 국가를 유도해 그들의 이익에 맞도록 선행하는 규칙을 바꾸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해 ‘자연상태에 있는’ 개인들처럼 행동하는 국가들이 처해 있는 외재적 관계에 본래적인 ‘세력 균형’을 바꿀 것을 기도하게 한다.). 칸트의 평화는 따라서 실체적이거나 영속적이다. 그것은 사실상 ‘공화주의’ 정치 체제의 본래적인 요청에 상응하는데, 이 정치 체제는 힘이 아니라 에 기초하지만, 국가들의 본성을 변혁하는 대가로 초민족적(supra-national) 수준에서만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칸트는 이러한 변혁이 갈등과 법의 변증법(또는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으로부터 경향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변증법에 따르면 갈등은 장기적으로 (반사회적인 사회성이라는) 자신의 대립물을 낳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인류의 도덕적 목적지를 전제하는, 그리고 또한 목적이 단순한 법의 영역을 초월한다고 가정하는 메타정치적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계시민적 시민권’ 및 그와 분리할 수 없는 평화적 질서(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의 시민’이 장차 존재하게 되는 것은 시민적 평화가 국가들의 내적 질서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공론성’의 요구에 따르는 모든 정치 영역에 관여할 때라고 말하는 것으로 돌아온다.)의 제도적 실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칸트가 (오늘날 평화와 국제 질서, 집단 안보에 관한 논쟁에서 다시 나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관념들 사이에서 진화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기에 그는 세계 국가(또는 국가들의 세계적 ‘연방’)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사고하고자 했는데, 세계 국가는 사법적 질서뿐만 아니라 이 질서를 존중하도록 만들 책임을 지는 초민족적 권력이나 권위를 말한다.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1784)에 나오는 이러한 관념은 인류의 교육 과정이 자신의 모순들의 ‘해결’에 의해 종결되는 것을 표시한다. 이 관념은 혁명적 격변에 앞서, 유럽의 민족 열강들 사이에서 벌어진 왕조적·제국적 전쟁들과 동시대적이다. 두 번째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그것이 구 체제 국가들의 동맹과 대결을 개시한 이후로, 여기서 프랑스 혁명은 처음에는 방어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그 후 공공의 안녕과 국민 총동원에 기초한 ‘인민 전쟁’의 발명 덕분에 공세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 때 칸트는 초민족적 국가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주권을 초과하는 일정 수의 ‘기본권’을 포함하는 사법적 규범들의 보편적 체계라는 관념으로 이것을 대체한다. 특히 ‘환대’에 대한 권리, 즉 ‘외국’ 영토로의 개인의 이동과 정착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다. 여기서 도덕적 변혁이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국가들은 개인들의 ‘세계시민적 권리’를 존중하거나 설립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이 변혁을 감수해야만(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스스로에게 부과해야만) 한다(국가들이나 ‘개별 민족들’을 묶는 국제적 권리와는 달리, 세계시민적 권리는 개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가들에 부과되어야만 한다.). 이 관념은 그런데 반정립적인 해석들에 열려 있다. ‘세계 시민’이 그 담지자인 보편적 질서가 더 이상 국가나 주권의 모델이 아니라, (옛날 스토아주의의 현자들의 공동체처럼)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원동력을 갖는 공동체의 모델에 기초하여 사고되는 이상, 이 질서는 사법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종교적 모델들에서 영감을 받든지 할 수 있다(국가를 넘어가는 제도라는 불가사의한 가능성을 특징짓기 위해 이 질서가 사법적 모델들과 종교적 모델들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환적인 방식으로 진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포스트민족적이고 포스트식민적인 갈등들에 관한 현재적 논쟁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 같은 칸트적 표상에 대해, 즉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맑스적 관념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 관념은 1848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선포됐고(“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국제노동자협회의 규약(1864)에서 다시 채택됐으며, (극단적으로 다양한 운명과 함께) 국제적인 사회주의(나중에는 공산주의) 운동의 조직과 활동 안에서 실행된 바로 그것이다.15) 칸트적 사고가 세계시민적 권리와 ‘부르주아’ 공화주의를 결합시키면서 군주제적 원리와 민주주의적 원리에 대해 동등하게 거리를 두는 데 반해, 맑스적인 국제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세계시민적 관념을 새로운 혁명적 ‘보편’ 계급으로 이송할 것을 제안한다. 그 계급의 특수 이익은 (역사에서 이제껏 모든 ‘혁명적’ 계급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유리하게 새로운 지배 형태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지배 일반을 종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치의 발본적 민주화와 분리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전위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모든 전통적 소속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환상’ 즉 이런저런 민족적, 종교적, 언어적… 공동체의 단일성과 우월성에 대한 집단적 믿음에서 풀려난 생산자 대중)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국제주의를 유산자 계급의 사회적 지배 및 국가 체계에 대한 비판과 결합시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목할 만한 결과를 포함한다. 첫째, ‘국제주의’가 된 세계시민주의는 더 이상 역사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향이나 규제적 이념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권력 체계에 맞선 실제적 투쟁의 구호가 되는데, (다수자) 계급의 현재 상황과 물질적 이익에 뿌리박고 의식과 조직으로 구성되는 그 구호는 경계선들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의문시한다. 이 같은 실천적 투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팽창의 모순 자체 속에 단단히 묶여 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화와 세계화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지배와 주권의 구조들과 충돌한다. 이 투쟁이 기성 구조의 방어와 영속적으로 대결해야만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제주의는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평화주의가 아니다. 국제주의는 아주 정확하게 ‘투쟁’을, 자본주의가 전쟁을 영속화하고 활용하는 형태에 대립시킨다(유명한 경구에 나오는 것처럼, “큰 구름이 뇌우를 몰고 다니듯, 자본주의는 자신 안에 전쟁을 품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를 이루는 제국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때, 이율배반적인 정식화로까지 밀어붙여질 것이다. 레닌과 제2 인터내셔널의 좌익 반대파는 민족적 사회주의 정당이 지도적 부르주아지들을 추종하고, 1914년 ‘위대한 애국 전쟁’의 ‘신성 동맹’을 수용하는 것에 대응하여 “제국주의 전쟁의 혁명적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구호를 내지를 것이고, 이 구호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사회주의 운동 조직이 맞이하는 새로운 국면의 거점이 될 것이다. 다른 편에서 ‘민족적’ 사회주의 운동들은 전쟁을 ‘무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부분적으로 칸트적 전망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또한 미국적 진보주의에서도 영감을 받은) 집단적 안보와 국제 법 조직의 창설을 지지해야 한다는 확신을 전쟁의 살인적인 경험에서 이끌어낼 것이다. 국제연맹, 켈로그-브리앙 조약, 그 후에는 국제연합(UN)이 그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스스로를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평화 추구의 상관물이 아니라 투쟁의 실천으로 제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또한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가 전환된다. 시민권 관념은 국제주의에서 빠져 있지 않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실천적 지평 위에, 신분이 아니라 ‘활동’으로서 재정초된다. 국제주의는 사실상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전투적 집단들을 형성하는 개인들의 사회화 양식으로 나타난다(이 집단들은 온갖 종류의 조직 양태에 따라 사고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당 장치들은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 그 집단들의 자발성을 통제하고 중립화하려고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시민권과 국제주의의 관계는 하나의 역설을 포함한다. 이 관계는 집단적인 시민적(civique) 활동을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로 만들면서도 이 활동을 ‘[공산주의로의] 이행기 속에’ 기입하며, 심지어 극한에서는 (지배적 민족주의에 대한 ‘전복’이나 ‘저항’의 문화라는) 집단적인 시민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고유한 조건들을 폐지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16) 이 특징들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유산이 갖는 양가성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편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현실 사회주의’(또는 당과 국가의 공산주의)가 가장 신속하게 파묻고, 20세기 역사에 걸쳐 가장 철저하게 왜곡시킨 맑스주의 전통의 측면인데, 현실 사회주의는 국제주의를 헤게모니적, 심지어 그 자체 (하위적인 방식의) 제국주의적 민족 정치에 봉사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 관념의 명예를 극도로 실추시켰다. 다른 한 편에서 이 관념은 공산주의의 비극적 경험 후에도 경향적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저항 운동들의 실천 안에서 해방의 희망을 품게 한다(데리다는 이것을 ‘맑스의 유령들’이라고 불렀고,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관념과 명시적으로 결합시켰다.).17) Ⅲ 나는 이제 아주 간략하게 ‘세계시민적 시민권’의 칸트적 모델과 맑스적 모델의 한계들을 환기시키려 하는데, (세계화의 갈등들이라는) 현재적 정세는 이 한계들을 다소 뚜렷하게 재출현시킨다. 이들 제한 각각은 따라서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 선재하는 해법 없이 ― 다시 취해야 하는 열린 문제들의 집합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나는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은) 세 가지 문제들을 고려하고자 한다. 첫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자유주의적’이다. 이는 이 견해들이 시민사회와 그 자생적 발전에 특권을 준다는 의미에서인데, 이 점은 (칸트)과 정치적 실천(맑스)에 결정적 중요성이 부여될 때조차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은 제도라는 용어이다. 칸트와 맑스의 관념들 자체는 공적 인격이나 행위와 사적 인격이나 행위 사이의 ‘로마’법적 대립에서 유래하고, 민족 국가의 발전이 일반화한 시민사회와 정치 공동체 사이의 전통적 구별을 (칸트처럼) 지양하거나, (맑스처럼) 문제삼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의 제도가 국가 외부에서, 국가적 제도로서가 아닌 방식으로 인식되고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미결 상태로 덮어 둔다. 둘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역사에 대한 ‘유럽중심적’ 전망과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의 보편주의는 따라서 근원적으로 모순적이다. 이 때 주의 깊은 논의가 필요한데, 특히 이론적 ‘유럽중심주의’를 제국주의 전제의 반복으로 단순하게 동일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중심, 양극성, 그리고 동질적 질서의 표상과 분리할 수 없는 ‘세계’(monde)라는 통념을 ‘플래닛’(planete)라는 통념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18)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19). 나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Nous, citoyens d'Europe?)에서 정치 공동체들은 우연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헤르만 판 휜스테른(Herman van Gunsteren)의 테제를 논하는 것을 계기로 이 착상을 다시 취한 바 있다(모든 정치 공동체들은 그의 용어법에서는 운명 공동체들(communities of fate)인데, 이는 자연적이거나 숙명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내던져진’ 서로 다른 출신지의 개인들과 집단들을 결합시킨다.). 문제는 유일무이한 문명이라는 특성, 따라서 유일무이한 보편주의의 정식화와 유일무이한 진보의 시각에 ‘중심을 둔’ 세계사라는 관념을 지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 자체는 충분치 않다. (세계의 통일이나 세계 경계들의 상대화로 나타나는) 세계의 세계화가 또한 (칸트가 문화에, 맑스가 자본주의에 부여한) 전진적 동질화를 함축한다는 관념을 문제 삼아야만 한다. 결국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서의 교통은 어제의 세계에서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차이들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정반대로 더욱 가시적이 되고 이 때문에 더 갈등적이 된다.20) 셋째, 칸트적인 관념과 맑스적인 관념은 근원적으로 ‘세속적’이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와 정치의 ‘세속화’라는 사회학적인(그리고 더 근원적으로는 인간학적인) 전제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합리주의의 아주 특수한 형태를 이룬다. 이는 우선 부정적으로는 그것이 ― 고전적인 사회학과 역사 철학의 모든 전통처럼 ― 문명의 진보를 세계의 ‘세속화’ 또는 ‘탈주술화’(desenchantement)로의 불가항력적인 경향으로 여긴다는 것(지나치는 김에 말해 두자면, 이것은 베버(Max Weber)의 관념이 전혀 아니었다.)을 의미한다. 이 경향은 반드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치의 정교분리적 제도의 가능성, ‘교회와 국가의 분리’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신앙과 믿음을 ‘사적’ 영역 속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칸트에게 거기서 문제는 종교를 그것의 고유한 ‘한계’ 내로 환원하는, 즉 종교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주는, 이성의 진보의 어떤 귀결이다. 맑스에게 문제는 세계와 인간의 이상적 표상들을 ‘모독하고’, 그에 상응하는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들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발전의 어떤 귀결이다(다른 곳에서 맑스가, ‘상품의 물신주의’와 정치의 관념론을 다루면서, 근대 사회의 사회적 관계들이 그 자체로 ‘신학적’ 표상들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는 칸트와 맑스가 공히 계몽의 전통에 따라 정치를 반성의 ‘비판적’ 판단과 숙고된 행동의 결합으로 상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주체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식’하거나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이 상황을 ‘문제화’하는 가능성이 나올 것이다. 칸트와 맑스에게 공히 세계―인간의 변혁적 행동이 ‘세계화’되는―는 점점 더 ‘투명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는 ‘동일성들’이라는 질문을 실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중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또는 이는 다시 현대 세계가 ‘성전’(聖戰)의 진지가 된다는 관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귀착되는데, 그러한 진지 속에서 신학적 정념들은 ― 이것들은 적을 경쟁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적이며, 결국 ‘신의 적’이나 절대적인 적, 악의 체현으로 표상하는 것과 연관된다 ― 신학적 ‘근본주의’, ‘신의 보복’을 통해서든, 뵈겔린(Eric Herman Wilhelm Voegelin)적 의미에서 ‘세속적 종교’의 출현을 통해서든, 총력전에 자신을 맡길 방도를 찾아낸다. ― 그리고 국제 질서에 관한 슈미트(Carl Schmitt)의 테제들에 반드시 동조하지 않더라도 ‘인권의 종교’나 ‘인도주의적 종교’가 신학적 정념들 중 하나가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왜냐하면 20세기 동안 우리는 실로 19세기를 특징지었던 ‘새로운 종교들’, 즉 인종의 종교나 신-이교도(neo-paienne)의 종교뿐만 아니라, 인류의 종교나 신(新)-기독교, 실증주의의 종교의 정초라는 기획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칸트와 맑스의 문헌들과의 엄밀한 토론 속에서 종교적 형태들과 경제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베버가 제기한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심화시키는 정치의 ‘탈주술화’라는 질문을 다시 취해야 한다. 이해할 테지만, 완전히 예비적인 지위를 갖는 이 같은 일반적 언급들은,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와 맑스적 국제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전통의 강점들과 그 한계들을 이중적으로 환기함으로써 양자의 전제들을 완전히 탈안정화하고 그 효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정세 속에서 이들의 정치적 실현의 내용과 조건들을 재사고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목적도 갖지 않는다. 1)이 발표문은 「세계의 시민권: 유토피아의 종말?」이라는 제목 하에 미국 뉴저지 럿거스(Rutgers) 대학 현대 문화 비판 분석 센터(Center for the Critical Analysis of Contemporary Culture)에서 2004년 3월 24일 개최된 강연의 1부를 수정한 것이다.본문으로 2)[역주] 파리 14구 몽수리 공원과 파리 외곽의 경계에 위치한 국제 대학기숙사촌. 미국과 중국,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등 세계 36개국 기숙사가 모여 있다.본문으로 3)‘프랑스인으로 선포되었다’는 표현은 국민공회의 법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당시 국민공회는 프랑스 혁명에 참여하러 온 토마스 페인, 아나르카르씨스 클로츠(Anarcharsis Cloots), 그리고 몇몇 다른 ‘외국인들’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수여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미국 혁명의 뒤를 이은 인류 해방의 거대한 과정의 새로운 단계를 보았고, 특히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와 같은 적수에 맞서 혁명을 웅변적으로 옹호했다. cf. Thomas Paine, Rights of Ma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Henry Collins, Penguin Books 1969.[국역: 필맥, 2004]본문으로 4)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파냐 식민지 독립의 영웅이며 불로뉴쉬르메르에서 사망한 호세 데 산 마르틴(Jose de San Martin)의 쌍둥이 동상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 산 도밍고(오늘날의 아이티) 노예 해방의 지도자이자 수장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연쇄적 자유 봉기에서 세 번째로 꼽을 만한 인물인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의 경우, 프랑스 정부도 시장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본문으로 5)Cf. Bruce Robbins, Feeling Global, Internationalism in Distress,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9.본문으로 6)E. Said, Orientalism, New Paperback Edition, Vintage Books 1979, p. ⅩⅩⅧ.[국역: 교보문고, 2007]본문으로 7)특히 오스왈드 스펭글러(Oswald Spengler)가 사용한 스토아주의적 기원의 표현.본문으로 8)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특히 탈영토화된 ‘상상적 공동체’(‘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의 재구성에 관심을 가졌다. (cf. The Spectre of Comparison. Naionalism, Southeast Asia and the World, Verso 1998.) 이 같은 문제설정을 유럽의 현대적 인종주의의 발전에 적용시킨 것을 보려면 Esther Benbassa, La Republique face a ses minorites: les Juifs hier, les Musulmans aujourd'hui, Mille et Une Nuits (A. Fayard), Paris 2004.본문으로 9)John Ralston Saul, The Collapse of Globalism and the Rebirth of Nationalism, Harper's Magazine, March 2004.본문으로 10)(이제는 유명해진 그의 저작 『문명의 충돌』에서 전개된) 헌팅턴의 모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1940년대에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교화한 공영권(Grossraume) 이론에서 영감을 얻는데, 이 이론은 (‘신(新)먼로주의’라는) 독일의 유럽-지중해 헤게모니 요구를 정당화하고, 그가 전통적인 민족 국가 체계의 위기로 보는 집단안보협약(국제연맹, 국제연합)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다. Cf. E. Balibar, Le Choc des civilisations et Carl Schmitt: une coincidence?, in L'Europe, l'Amerique, La Guerre. Reflexions sur la mediation europeenne, Editions La Decouverte, Paris, 2003.본문으로 11)Cf. Amanda Anderson, Cosmopolitanism, Universalism, and the Divided Legacies of Moderntiy, in Bruce Robbins and Pheng Cheah (eds), Cosmopolitics. Thinking and Feeling beyond the Nati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8, p. 265~289.본문으로 12)이는 세계시민적 이념의 고대적 기원인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이미 적용되었다. cf. Giuseppe Giliberti, Cosmopolis. Politica e diritto nella tradizione cinico-stoica, European Commission (D.G. Education and Culture), Rete Tematica, Una filosofia per l'Europa, Pesaro 2002, 그리고 Etienne Tassin의 위대한 최근작 Un monde commun. Pour une cosmopolitique des conflits, Ed. du Seuil 2003.본문으로 13)칸트의 소책자 제목은 가공할 언어 유희를 내포하는데, 왜냐하면 ‘영구 평화’나 ‘영면’(永眠)은 일상어에서 묘지의 문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평 중에서 특히 오트프리트 회페(Otfried Hoffe) 편, Immanuel Kant, Zum ewigen Frieden, Klassiker Auslegen, Akademie Verlag, 1995.본문으로 14)1790년 5월 22일, 혁명으로 생겨난 국민의회는 세계 평화를 장엄하게 선언했고 모든 정복 전쟁을 부인했다. cf. J. Godechot, La grande nation. L'expansion revolutionnaire de la France dans le monde de 1789 a 1799, 2e ed. Paris: Aubier, 2004 et Fl. Gauthier, Triomphe et mort du droit naturel en Revolution, 1789, 1795, 1802,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2.본문으로 15)칸트적 테제들(이 테제 자체는, 유럽 공법 체계(Jus Publicum Europaeum) 틀 안에 있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설립된 권력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영구 평화’에 관해 고전 시대에 벌어진 거대한 논쟁에서 유래한 것이다.)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창설자인 맑스와 엥엘스의 정식화 사이에 다른 기획이 삽입되는데, 특히 생시몽(Saint-Simon)의 기획이 그것이다(이는 낡은 국가들과 군국주의 제국들의 신성동맹에 대항하여 ‘산업’ 발전의 틀 안에서 민족들을 연합시키는 유럽합중국이다.).본문으로 16)중요한 점은 맑스에게 있어 국제주의는 공산주의(즉 목적의 지배의 맑스적 판본)이 아니라, 공산주의로의 ‘이행’ 또는 공산주의로 인도하는 정치 투쟁이라는 점이다(다른 의미에서는, ‘공산주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확히 무한한 과정, 현행적 정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사실들을 접근시키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a)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총체성의 단계에 도달한 생산력’의 ‘세계시민적’이거나 차라리 ‘세계경제적’ 구조를 서술했는데, 이는 생산력의 집단적 ‘재전유’에 의해 공산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 1847년 『공산주의자 선언』이 바꾸게 되는 것은 바로 정치적 계기의 삽입인데, 이는 국제주의를 이 ‘재전유’의 조건으로 만들어낸다(『선언』에서 소유 변혁을 실현하는 임무를 민족적 틀 내에서의 ‘민주주의의 쟁취’에 맡기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가 획득된 다음 특정한 특수 이익을 방어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구성적이거나 봉기적 요소가 국제주의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b) 『정치경제학 비판』과 『자본』은 보편적 상품 공화국 안에서 (칸트적) ‘세계시민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발견한다.본문으로 17)J. Derrida, Spectres de Marx. L'etat de la dette, le travail de deuil et la nouvelle Internationale, Galilee 1993.본문으로 18)Imperative zur Neuerfindung des Planeten/Imperatives to Re-Imagine the Planet, Edition Passagen, Frankfurt am Main 1999. [역주] 여기서 스피박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세계를 ‘지구’(地球, globe)의 이미지, 즉 분명한 중심을 갖는 동심원적 위계 구조로 보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세계화 ― 이 맥락에서는 ‘지구화’(globalization)라고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즉 중심의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을 (반)주변들로 확산시키고, 이로써 (반)주변들을 한층 더 종속시키거나 내부적으로 배제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근저에도 깔려 있거니와, 'planet'이라는 신조어는 이 같은 지구적 표상과의 분명한 대비를 통해 세계 안의 복합성과 불균등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planet'을 ‘지구’라고 번역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행성’이라고 새기는 것도 저자의 진의를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적당한 대안을 떠올리지 못해 여기서는 부득이하게 'planet'을 ‘플래닛’로 번역하고 원어를 병기한다.본문으로 19)Against Rac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에서 폴 길로이(Paul Gilroy)의 경우, 세계시민적 관념과 세계의 ‘인종학적’ 표상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있으며, 칸트가 문화 발전의 시각에서 ‘인종’의 지리학적 분배의 ‘목적론적’ 의미작용을 정의하는 방식이 그 증거라는 주장을 제시한다. 칸트에게서 인종 개념이라는 질문에 관해서는 이제부터 Raphael Lagier, Les races humaines selon Kant, PUF 2004의 연구를 읽을 수 있다.본문으로 1)세계시민주의와 국제주의는 이런 식의 비판을 얼마간 완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변이들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제2 인터내셔널, 그 후에는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전통에서는 ‘동방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인정함으로써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거대한 질문은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편주의적 사명을 통합하는 유럽 외적 대항모델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반둥의 ‘비동맹’ 운동 이래의 ‘제3 세계주의’가 제기한 문제로, 이들은 두 ‘진영’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들로 세계를 나누는 것을 다시 한 번 문제삼으려 했고, 그 흔적은 오늘날 ‘대안세계화’ 운동 안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