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월간 <사회운동> 2006년 10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영어본도 자료실 '반미반전'란에 등록되어 있으니 함께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는 반전팀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전쟁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전쟁: 포스트-클라우제비츠적인 변이들 에티엔 발리바르 (2006년 5월 8월) * 번역: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편집자주] 이 글은 에티엔 발리바르가 2006년 5월 8일 미국 에반스톤에 위치한 노스웨스턴 대학의 ‘앨리스 벌린 카플란 인문학 센터’에서 행한 공개강좌의 강연문이다. 전쟁과 폭력 문제에 관한 그의 분석은 이미 『사회운동』에 두 차례 게재되었다. 앞서 실렸던 두 글을 먼저 소개하면, 「평화를 향한 대장정」(사회운동, 2006년 1-2월호)은 1982년에 작성된 것으로 뉴레프트리뷰 출판사가 조직한 심포지엄에 제출된 논문을 편집한 『절멸주의와 냉전』에 담긴 것이다. 1970년대 말 미국과 나토가 유럽에 신형핵무기 배치를 강행하면서 강대국 간의 핵전쟁 위험이 다시금 고조되고,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 반핵평화운동이 다시 분출했다. 발리바르는 이 글에서 동서 핵대결의 ‘세력균형’이란 논리의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서유럽의 각국들이 먼저 핵무기 도입․배치를 중단․폐기하고 나토 동맹체계를 해소하는 ‘일방적 군비축소’와 ‘적극적 중립주의’를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또한 비슷한 시점에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을 비롯해 동유럽에서 민중운동이 확산되는 것에 주목하며, 냉전체제 전반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양 진영의 운동이 수렴점을 찾으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두 번째 글,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사회운동, 2004년 6월호)는 2004년에 출판된 것으로, 앞서의 글이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면 두 번째 글은 냉전이 붕괴된 후의 세계정세를 ‘세계적 폭력’이란 관점에서 조망한다. 이 글은 지금의 세계가 전쟁, 이른바 ‘인종청소’, 경제의 파멸로 인한 기근과 절대빈곤, 대재앙(외견상 자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규모의 살인과 같은 유행병, 가뭄, 홍수, 지진) 등 잔혹한 폭력의 지대를 창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극단적 폭력은 상이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누적효과를 낳고, 결국 세계를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는 ‘초국경’(원한의 경계선)을 생산한다. 나아가 세계적인 시민성을 창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조건으로 인하여 죽음의 지대의 인민은 불필요한 잉여로 간주되고, 외부세계는 예방적 반봉기라는 관점에서 이 지대에서 벌어지는 상호제거 또는 절멸을 조장하거나 이에 개입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전쟁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전쟁: 포스트-클라우제비츠적인 변이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다양한 전쟁이론을 고찰한다. 저자는 전쟁에 관한 클라우제비츠의 대표적인 명제들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의 이론체계에 내재한 난제와 모순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대표적인 명제는 현실을 설명하는 묘사로 해석될 수 있지만, 역으로 군사적 목표가 정치의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처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전투로 실현되는 군사전략의 자율화와 파괴 경향이 억제되지 않는다면 ‘제한전쟁’은 ‘절대전쟁’으로 극단화되고, 정치의 조건 그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왕조전쟁에서 19세기 국민전쟁으로 현실의 전쟁이 전개된 역사는 ‘극단으로의 상승’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개념이 극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군사전략의 근대적 주체였던 국가-인민-군대의 통일체가 해체되면서 폭력의 국가 독점과 민족국가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통합이 점점 더 의문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쟁의 역사는 한 단계 더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대별되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전통을 검토하면서 마오쩌둥의 ‘유격대․지구전’ 이론이 클라우제비츠의 경고를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경유해서) 인식하고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군사전술이란 지향을 실천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마오쩌둥 역시 혁명정당이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문화혁명을 경과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유격대․지구전 이론을 통해 역전된 국가와 인민의 위계관계가 다시 당-국가의 우위로 재역전되는 경향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억압적 국가장치의 재건)과 절대전쟁으로의 진화 경향(정치의 조건에 대한 파괴) 역시 재확립되었다는 것이다.
- 전시작전통제권환수 논란에 부쳐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놓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비단 정당들뿐만 아니라 사회세력들이 저마다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상당한 혼란을 주고 있지만, 그 본질과 결론은 명확하다. 바로 노무현 정권이 내놓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방안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올해 1월 19일 한미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대해 정부는 공개적으로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았고 이 합의결과를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및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그것이다. 지난 5월 4일 노무현 정부는 전국의 전투경찰을 총동원해, 심지어 군부대마저 투입해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의 거점인 대추초등학교를 강제로 부수고, 수백 명을 연행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해 ‘자주’ 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분명하게도 노무현이 주장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이미 미국은 냉전 이후 변화된 세계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작전통제권을 이양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으로 완성된 해외주둔미군재배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가장 경량화, 유연화, 첨단화된 군대를 갖고 세계 곳곳에서 자유롭게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계획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보유하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 측에 이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지역방위를 포함한 다양한 역할을 하도록 한미동맹을 재편하려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배경은 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대단한 성과인 양 포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보수 세력은 한미동맹이 완전히 해체되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와중에 이른바 진보진영에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둥 애매한 입장을 발표하며, 노무현 정권의 사기극을 돕는 흐름이 있다. 우리는 현재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미국의 계획에 따른 것일 뿐이며, 이에 대한 논란 자체가 노무현 정권이 벌인 사기극의 시작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사진1%] 자주 국방은 민중의 이익이 아니다 이른바 진보적인 척 하는 자들도 심심찮게 ‘자주 국방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 자주국방론은 현 시기 한반도 민중들의 이익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지배계급 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시급히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건 환수시기를 늦춰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건 동일하게 ‘주한미군 수준의 군사정보력과 해ㆍ공군력의 증강’을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자주국방을 하기 위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대신 미국의 최첨단 신식 무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근본적인 전환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주국방론은 민중들의 혈세를 쥐어짜내 한반도에 가공할만한 무기들을 도입하고 비대한 군대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평화를 모색해보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군비 경쟁을 끊임없이 가속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자주국방론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아니라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이며 전쟁준비를 계속 하자는 이야기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길은 더 많은 무기와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와 군대의 수를 감축하여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실질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에서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이 내세우는 자주국방론에 손을 들어 준다면, 자신의 동맹국들이 각 지역에서 자신의 대리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를 기대하는 미국의 요청에 부응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우리가 지금 외쳐야할 것은 최첨단으로 군사화된 ‘자주 국방’이 아니라 한반도의 ‘탈군사화’이다. 미국과 노무현 정권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 과연 누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바로 전 세계에서 마음껏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핵을 포함한 선제공격 카드를 움켜쥐고 있는 미국이다. 또한 이라크에 세계 3위 규모의 전투 병력을 파병하고 더 많은 무기와 더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권이다. 이 둘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에서 함께 전쟁을 하겠다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더 많은 무기를 팔고자 하는 미국과 한반도에 더 많은 무기를 들여와 항시적인 전쟁 위기를 유지하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입장은 공명한다. 동북아시아 미군 부대의 규모와 위치를 재편하고 한미동맹 재편을 통해 한미동맹의 ‘지역 전쟁 동맹화’를 꾀하고 있는 미국과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민중의 적이다. 지배세력의 그 어떠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민중들이 자기 자신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는 길은 단 하나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노무현정권의 새로운 동북아시아 전쟁 기획에 맞서 한반도의 민중들이 한미동맹 해체와 한반도의 탈군사화를 외치는 것이다. 미국의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 전 세계 민중들이 일어서고 있다. 그 미국은 지금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떨쳐 일어나 전 세계 반미반전 대안세계화 운동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오늘 새벽을 기해 평택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대한 강제철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평택미군기지확장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결과이며,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더욱 높은 화력과 기동력을 가진 군대를 갖고자 해왔으며, 언제 어디서든 전쟁을 즉각 수행할 수 있는 군대로 미군을 재편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는 이러한 미국의 "진짜 전쟁 기지"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후 이 내용을 제대로 공개조차 하지 않은 채 평택 미군기지확장을 위해 온갖 강압적인 수단과 방법을 써왔다. 특히 올해 5월4일~5일에는 대추리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철거와 대규모 진압군 병력 투입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중들을 구타하고 연행했다. 그리고 평택 팽성땅 주민들에게 협박과 회유, 일상 생활의 규제 등을 통해 한반도를 전쟁기지화하고자 하는 지배계급들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정부는 오늘 또다시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 대한 전면적인 침탈을 시작했다. 국방부는 브리핑을 통해 태연자약하게 "내년 초 부지조성 공사를 위해서는 이번 주 내에 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으며 바로 오늘 새벽 1만 8천여명의 전투경찰 병력과 500여명의 용역철거반원들이 마을로 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을 외곽에서 투쟁을 벌이던 대오 중 20여명이 연행되었고, 대추리 현지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던 평택지킴이 7명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현재 살고 있는 생가 2채를 포함하여 마을 전체가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는 전투경찰들의 군화발 소리와 포크레인의 굉음에 묻혀졌다. "사람이 살고 있다. 강제철거 중단하라"는 평택 주민들의 절규는 노무현의 비열한 미소 속에 가려지고 말았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되어서 그 새벽 시간에 2만에 가까운 병력과 수백의 용역을 동원하여 강제철거를 진행한단 말인가. 미국의 전쟁 놀음을 기꺼이 찬양하고, 스스로 전쟁의 행렬에 "참여"하겠다는 이 "참여정부"는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과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얼마나 만인공노할 일인가. 노무현 정권은 도저히 씻지 못할 죄를 짓고 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일들로 이미 민심이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이번 평택 미군기지확장을 위한 강제철거 역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전민중의 분노를 일깨워줄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중들을 무참히 짓밟은 한국의 지배계급은 영원한 역사의 죄인들로 남을 것이다. 이들의 죄는 전 민중의 단결된 투쟁으로 심판할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에 대한 강제철거를 즉각 중단하라! 연행자를 석방하고 노무현은 사과하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계획을 원천 무효화하라!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파기하라! 미국과 노무현 정권의 한반도 전쟁기지화 계획을 반대한다! 2006년 9월 13일 사회진보연대
군산대책위에서 나온 간략한 자료입니다. 참조하세요 <목차> 1. 직도폭격장 현황 2.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직도이전의 배경과 그 문제점 3.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직도 이전에 대한 각계의 입장 4. 향후 대응방안 기조
9.23 반전행동으로! 자이툰 5진 파병 계획을 철회하라! 2001년 9.11 사태가 발발한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 국제적 공안정국을 형성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 연장선에서 2003년 3월 20일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날 노무현 정권은 이를 지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그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국회는 열흘 만에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켜 주었고 서희·제마부대는 4월 말에 이라크로 떠났다. 그때부터 치면 이제 이라크 파병은 3년 하고도 5개월째에 이른다. 2003년 하반기에 추가파병이 결정되고 2004년 8월 자이툰부대가 떠났다. 해마다 정부는 파병연장을 했고 국회는 거수기계가 되어 야만과 학살에 동조하는 파병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평화나 재건은 국방부 자료에나 존재했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부시의 단골 연설메뉴일 뿐, 이라크는 점점 점령과 전쟁에 신음하는 고통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다시 파병연장을 검토한다고 들고 나왔다. 최근 국방부는 12월에 파병하는 자이툰부대 5진에 대한 선발공고를 냈고 내년 예산에도 주둔비용을 포함시켜 놓았다. 그러나 영국, 호주, 일본, 이탈리아 등 대규모 파병군을 보낸 나라들이 대부분 철군을 하려는 마당에 왜 유독 한국만 ‘미국을 위해’ 파병을 지속하려는가? [%=사진1%] [%=사진2%] 전쟁동맹의 덫 파병연장의 최대 논리는 ‘한미동맹’이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철군은 동맹관계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맹은 미국과 한국의 지배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다수 민중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무현 정권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한반도 정세는 악화되어 왔고,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에 동의하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마저 짓밟으면서 한반도 전쟁기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권이 ‘자주’를 내세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지만 실상은 한미 전쟁동맹을 현대화하고 한국의 군비를 증강하는 반평화적인 조치이다.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들여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사막에서 주둔하는 자이툰부대 역시 동맹의 상징일 뿐, 이라크 점령의 보조자로서 주둔하다가 피해 없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 된 100만평의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갈등과 폭력만 증폭시킨 이라크 점령 현재 이라크가 사실상 ‘저강도 내전’ 상태에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한 무장저항은 계속 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저항공격 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부의 충돌이 급격히 커졌다. 지난 7월에만 3천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다. 그러나 흔히 종파 간 폭력사태라고 언급되는 이러한 상황은 다름 아닌 미군의 전쟁과 점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은 점령 초기부터 종파적 분할에 기반하여 정책과 제도를 구사하였으며 이는 이라크 사회에 깊은 갈등을 초래하였다. 세력 간 대립과 반목을 조장한 미군의 점령정책이 급기야 미군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새로운 중동 구상 - 미국의 망상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중동’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이 새로운 중동 정책은 중동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정권이나 정치세력을 붕괴시켜 결국에 친미정권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들을 중동지역에서 완전히 박멸할 것과 정권이 교체된 이라크와 여러 친미국가들, 그리고 앞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여러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항하는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하여 친미국가들을 동원하여 압박전술을 구사하고, 특히 이스라엘을 최신 무기로 무장시켜 예상 가능한 저항들을 사전에 봉쇄 혹은 무력사용을 통해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이스라엘이 미국과 한 몸이 되어 헤즈볼라를 제거하기 위해 레바논 공격에 나섰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 수반된 수많은 민중학살과 사회기반 파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야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아랍민중들을 분노케 했다. 이는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미국의 실패와 함께, 새로운 중동 정책의 불가능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미국은 중동 장악의 최대 걸림돌로 이란을 지목하고 지속적인 압박과 전쟁 위협을 공언해 왔으나 이라크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테러와 전쟁 5년, 안전도 평화도 없다 9.11 이후 미국이 개시한 테러와의 전쟁이 5년째지만 세계 어느 곳도 안전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과 폭력이 세계화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가전략’을 수정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미국 대테러 전략의 궁극적 목적을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자유와 인권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 테러분자의 네트워크에 의한 공격 저지, 불량국가와 테러지원 조직의 대량파괴무기 획득 저지, 불량국가에 의한 테러분자 지원 저지, 테러거점인 국가를 용납하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전략 자체가 미국의 군사주의와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집단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는 한 미국은 전쟁의 악순환으로 세계의 민중을 밀어 넣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세계화는 민중의 안전과 평화를 파괴할 뿐이다. 자이툰 철수와 한미 전쟁동맹 해체를 ! 정의와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 자이툰부대는 이라크 점령군으로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보조하고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정책에 봉사할 뿐이다. 부시 행정부나 노무현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상황을 호전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 힘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민중의 반전평화 운동에서 나온다. 올해에도 또 다시 파병 자동연장을 허가해 줄 수는 없다. 자이툰부대 철수는 미국의 대테러 군사정책과 이라크 점령에 균열을 내고 한미 전쟁동맹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이툰 파병 연장 획책과 더불어 레바논 파병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과의 일체화로 나아가는 노무현 정권에 쐐기를 박는 투쟁을 전개하자. 9.23 반전행동으로 결집하자!
달래가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았습니다. 불룩했던 배가 쏙 들어간 달래를 보고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는데 어디선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저 안 쪽에 주먹만한 강아지 네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달래는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옛 주인이 키우던 개인데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놓고 간 것이지요. 대추리 도두리에는 달래처럼 버려진 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 간 빈집을 고쳐 사는 지킴이들은 남겨진 개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개든 고양이든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달래와 함께 살다보니 애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도 주고, 사람 대하듯 이야기도 하면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새끼를 낳은 뒤 예민해진 달래가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다가도 제가 다가가면 젖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며 꼬리를 치거나 조용해집니다. "고것이 주인이라고 알아보네." 강아지들을 챙겨 주러 오신 옆집 할머니가 한 말씀하시며 웃으십니다. 강아지 네 마리가 태어난 걸 확인하고 난 후, 저는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우리 집 개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날 저녁 촛불행사에서 1반 뜸 할머니들도 어떻게 아셨는지 "새끼 낳았다메?" 라며 웃으셨고, "강제철거 들어오면 온 동네 강아지들 다 풀어 버리자."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사진1%] 언젠가 이사 간 옛 주인이 찾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저씨 한 분과 그의 딸이 서 있었습니다. 한 눈에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그 딸은 제 눈에 익은, 저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놓고 간 그들의 물건 중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낡은 사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목수였던 그 아저씨가 딸을 위해 손수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민들을 통해 들었고, 그 방에 남겨진 물건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친근하고 반갑게 느껴져야 할 사람들인데 저는 순간 긴장하고 당황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보았을 일이지요. 살고 있는 집의 전 주인과 마주치는 일. 사실 저도 이 옥탑방에 살기 전 다른 집을 고치고 청소하는 중에 집주인이 찾아와 내 눈앞에서 도끼로 창문과 가구를 부수어 버리는 일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일을 겪고 난 후라 그 분들을 본 순간 몸이 굳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자신이 살던 방에서 잠이 덜 깬 채 나오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당장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또 도끼를 들고 달려들면 이번엔 제대로 싸워야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 몇 초가 흐른 후 정신을 차린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들이 이 집을 부수러 온 것도, 나에게 해코지를 하러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한번 보고 싶어서, 몸은 떠났지만 마음만은 남겨두고 온 곳이어서 그렇게 한번 와 본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을 통해 집주인이었던 아저씨가 말을 못하는 분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 간 후에도 부모님들이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꾸 가보고 싶어 하셔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분들은 나에게 잘 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등뒤에 대고 제가 물었습니다. "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달래에 대해 물은 것이었습니다. 내 옥탑방 사진 속의 주인공은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물론 달래의 이름은 달래가 아닐 것입니다. 그 분들이 오랫동안 불렀던 이름이 있었겠지요. 생각해보면 그때 이름을 물어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 그 때 저에게는 개의 이름보다 그저 낯선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 내게 남겨졌다는 사실만이 마음에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이름 모를 개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그 분들을 보냈습니다. 어디 가든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런 달래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고, 달래와 보낸 그 시간동안 처음에는 조금 을씨년스러웠던 내 옥탑방이 이제는 그 어떤 공간보다 아늑하고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주민들과도 가까워지고 함께 농사일하며, 힘들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국방부가 빈집철거를 하겠다고 한 게 벌써 2개월이 지났고, 언제 어느 때 또 포크레인을 끌고 들어올 지 몰라 불안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내 방, 올 여름 찜통 같았던 2층 옥탑방을 철거하러 들어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2%] 대추리에 살겠다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내려온 것이 7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 도착한 첫날 아침,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트랙터가 눈을 치우며 다니던 그 겨울, 대추리에는 쇠망치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사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을 죄다 부수고 떠났고, 떠나간 빈집에 고물상이 들어와 헐어버리는 일들이 날마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떠난 집이니 허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쇠망치로 부숴 놓은 창문과 문짝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쇠망치가 창문을 내리칠 때 마을 주민들의 가슴에도 쇳덩이 하나가 내려앉았겠지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을 보낸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 또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국방부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등 돌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얼굴만 봐도 이웃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혹은, 남겨지면서 감당해야 할 아픔들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국방부와 정부는 주민들의 싸움을 보상금 문제로 호도하고 있지만 도대체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이 망가진 730년 된 대추리의 역사는, 그렇게 우애 좋게 살았던 대추리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 죽을 거라고, 끝까지 지킬 거라고 말씀하시는 대추리 방효태(70)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 사람들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견디지 못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해 '융자를 주지 않냐', '땅 값이 오르지 않았냐' 등의 말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힘든 주민들의 마음을 이용해 회유하고 이간질하려는 야비하고 비열한 정부 관료들의 수작에 치가 떨릴 뿐입니다. 대추리가, 도두리가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자꾸자꾸 채워지는 마을이기를 바랬습니다. 파괴되고 무너지는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의 역사가, 땀과 눈물이, 한숨과 웃음이 그대로 지켜지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가끔 큰 집회가 있을 때 와 보는 곳이었던 이 마을에 짐을 싸 들고 올 때 정말 그렇게 온몸으로 그것들을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인간방패라도 되어 철거를 막아내고 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싸움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무능하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노무현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며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짓밟고 마을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외부인을 차단하는 검문검색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주민들은 지난 4년 간 그래왔던 것처럼 힘든 하루 하루를 견디고 또 견디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겨울 볏단을 깔고 대추초등학교 앞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노인정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의 밥을 하며 싸움을 이어온 여성농민들, 때려부수러 온다는데 자꾸자꾸 마을에 원두막을 짓는 대추리 아저씨들…. 그런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 시간들을 너무나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간직할 것입니다. 달래가 낳은 강아지 네 마리는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걸음을 떼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강아지들이 9월이 되고 찬바람이 많이 불면 깡충거리며 뛰어다니겠지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그런 강아지들을 보면서 올 가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올해에도, 내년에도 이 곳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벼랑 끝에서도 질긴 싸움의 끈을 놓지 않는 주민들은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주민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저항하고 이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
[%=사진1%] 장마와 폭염을 뚫고 하중근 열사투쟁이 힘겹게 불씨를 잇고 있다. 그러나 열사투쟁은 우리의 바람만큼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포스코와 정권은 열사가 넘어져서 죽었다는 기만적인 부검결과를 발표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들고, 강경진압 일변도의 파렴치한 작태로 일관하고 있다. 8월 12일 타결되었다고 보도된 건설노조의 단체협상 역시 사측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한다. 이제 열사투쟁의 칼끝을 벼려, 9월 투쟁의 기본방향을 곧추 세울 때다. 도덕적 울분과 단순폭로를 넘어 사회정의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으로 도덕적 울분에 기초한 일점돌파식 단순폭로형 전술은 오늘날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부도덕한 권력의 비밀과 그것을 숨기고 지탱하는 권위적인 폭력의 시대, 그 시절 우리의 투쟁방식은 은폐된 사건을 폭로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어 지배체제의 균열을 가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노무현 정권 역시 군사정권에 뒤지지 않는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여전히 많은 민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스러운 반민중성이 폭로된다고 하여 바로 전민중적이 투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광주의 비밀은 알리는 것만도 힘겨운 일이었고 동시에 그 자체로 충분했지만,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은 더 많이 더 넓게 폭로됨과 동시에 원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면 아무 실효성이 없다. 정권에 대한 일점돌파식 폭로와 타격이 지배체제의 균열을 불러일으켜 (지배체제의) 위기를 가속하는데 맞추어졌던 투쟁전략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인 연대연합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과 단일정치전선 수립을 위한 대정권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좌우가 동시에) 반대하는 정권에 대한, 그것도 모두가 경멸해마지 않는 인격화된 권력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자칫 타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감정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런 투쟁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 연대연합 창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모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것 역시 너무나 상식적이고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도 해고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몰라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 이외의 대안에 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우선 당장 해고되기 전까지라도 바짝 벌어서 대비하자는 개인적 전망이 연대의 전망을 압도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대중의 심성이 죽음에 대해 무뎌지고 이기적으로 변질된 것도 아니다. 공동의 미래전망이 무너짐으로써 일상화한 폭력이 출현하게 된 현실에서, 언제 나도 저런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개인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자조적인 비웃음을 이겨내고 연대를 통한 집단적 대응방식으로 나가는 길은 그리 간단치 않은 여정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울분에만 의존하는 선전, 운동 방식은 투쟁의 대중적 확산과 참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개혁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노동 불안정화라는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세 형태의 공격은 각기 다른 양상의 폭력과 불평등을 양산해낸다. 물론 다종 다기한 신자유주의공세의 파괴적 효과들은 하나의 연관 속에서 전개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은 정책개혁을 추진하는 지배집단의 머릿속에서나 명확하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공격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이처럼 비극적이고 천인공로할 사건들은 말 그대로 개개의 우발적인 사건 사고일 뿐이다. 지난해 전용철 열사를 가격한 날선 방패는 부산 아펙(APEC) 정상회의 사수를 위해 동원된 병력의 무기였고,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내리친 방패와 소화기는 한미FTA를 방어하기 위해 동원된 무기였다. 이번 사건은 보수언론이 이름 지은 이른바 ‘포항건설노조사태’가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사회적 배제와 노동기본권박탈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해설해야한다. 더 나아가 또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건의 마무리는 사태해결의 맥락과 유족보상의 수준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확보와 사회정의회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간의 대안적 연대 연합의 확대만이 진정한 해결방책임을 실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포항에서 전국으로, 건설노조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투쟁으로 더욱이 이번 하중근 열사투쟁은 지난해 전용철 열사투쟁에 비해서도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전용철 열사투쟁이 투쟁초기부터 쌀개방철회/정권규탄이라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중심점을 분명히 했던 것과 달리, 하중근 열사투쟁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쟁취투쟁이기 이전에 건설노동자 그것도 포항지역 포스코건설노동자들의 투쟁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의 외면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두 세 차례 열린 포항집중집회와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의 헌신적 투쟁을 서울을 비롯한 여타 지역의 투쟁계획이 뒷받침 못해주고 있다는 현실은 이런 상황을 고착화하는 더 큰 장애요소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각 지역별 현장선전과 소실천에서 하중근 열사투쟁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이라는 주장을 확산해야 한다. 하중근 열사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무시된 상황의 필연적 귀결이며,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의 차원에서 하중근 열사 투쟁이 전국화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절실한 과제다. 9월 FTA 3차 협상, 비정규노동악법, 노사로드맵 저지투쟁, 평택과 포항을 결합해야만 한다 열사를 살해한 1077, 1078 부대가 5월 4일 평택 대추 초등학교 철거 작전 부대였다는 사실은 전용철 열사를 때려죽인 이종우기동단장이 평택 과잉진압의 현장책임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평택에서는 이제 곧 강제철거가 자행될 예정이며, 9월에는 기만적인 FTA 3차 협상이 미국에서 진행될 것이고, 정기국회에서는 그동안 미뤄져 왔던 비정규노동악법과 노사관계법 개악이 처리될 예정이다. 이 모든 사안들이 하나의 신자유주의 공세에서 비롯하는 다른 형태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사실 확인과 당위적인 주장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나눠져 전개되고 있는 평택과 포항투쟁, 노동악법투쟁과 포항투쟁이 결합되기는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들 투쟁들 간의 실천적인 결합을 모색하지 않는 한 다른 활로는 없다. 이제까지 이를 결합하려는 시도들은 각각의 투쟁의 요구를 공동으로 내거는 수준과 일정을 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내딛고자 한다면, 이 때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공동과제를 합의하고 형성해내는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사안들의 기획 집행자인 노무현정권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이 전선의 중심에 서야 한다. 물론, 노무현 정권퇴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퇴진슬로건을 내건다고 우리투쟁의 난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각의 투쟁과 사회운동들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방식의 연대 또한 투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방향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정치적 공동과제를 중심에 놓고, 각각의 투쟁 사안들이 이에 대한 공동투쟁의 합력을 드높일 수 있게끔 자신의 투쟁 국면을 바꿔내고, 또 이 같은 흐름이 신자유주의라는 반동적 공세를 강화하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끔 투쟁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이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당면과제다. 하중근 열사투쟁이 평택강제철거 저지투쟁의 정치적 기운을 북돋을 수 있도록 지지·연대하며, FTA 투쟁과 노동악법투쟁이 하중근 열사투쟁의 전망을 확보하는 것. 다시 말해, 실제적인 정치적 과제를 중심에 놓는 공동투쟁 태세를 확보하는 일, 그럼으로써 고립과 정체상황에 직면한 개개 투쟁전선의 기운을 북돋우어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공세적 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