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하나의 전쟁이라기보다, 국제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전쟁이다.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역이 될 것이다. 경제를 비롯하여 다각도로 막대한 영향이 있겠으나, 북핵 위기를 중심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경제위기, 코로나19,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와 그로 인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 대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구도가 강화되고 북핵 문제에 대한 압박이 감소한 상황을 이용하여 대북제재 회피와 핵 개발 노선 고수라는 이득을 챙기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북한은 2018년 선언한 모라토리엄(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중단)을 파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험 발사했다. 그리고 기술적 준비가 이미 끝난 것으로 알려진 7차 핵실험이 실현되면, 한반도의 상황은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7년과 같은 상황으로 복귀하게 된다.
둘째, 이러한 북한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대만 위기의 부상으로 인해, 북핵 문제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사실상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핵은 우리의 국체”이므로 비핵화 의지는 절대 없다는 북한 정권과 어떻게 ‘비핵화 대화’를 할 것이냐는 2022년 국제정세와 별개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셋째, 북한과 미국의 상황이 이러한 상태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도 운신의 폭이 좁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즉,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가운데 핵 동결, 감축을 협상 의제로 삼는다는 구상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조선반도 비핵화’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노딜’로 입증되었다. 그 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력했고, 그 결과 북한의 핵, 미사일은 한층 더 고도화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따라, ‘일관된 원칙’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조한다. 실제로 북핵 대응에 있어서 미국이나 일본 정부와의 공조를 중시하는 행보다. 그러나 상기한 현황을 보면,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도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넷째,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세계 핵 통제와 북핵 위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점령된 영토를 포기하고 러시아의 이해를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맺도록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근거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핵전쟁에 직면할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때로, ‘악마’와도 타협해야 한다.”(길윤형, 《한겨레》, 2022년 6월 1일)
그러나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핵무장한 상대에게 투항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핵에는 핵’이라는 ‘핵 억지’ 이론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즉, 핵은 재래식 화력으로 막을 수 없으므로, 핵을 막기 위해서 핵을 가져야 한다는 교리에 따라 연쇄적인 핵무장 흐름으로 갈 것이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서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과 점령을 묵과하고 러시아의 사실상의 승리를 인정하는 방향을 종용하는 것은, 북한을 비롯하여 비공식 핵무장을 했거나 시도하는 국가들에 ‘핵이 만능’이라는 신호를 주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는 평화적 비핵화의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 소련 해체로 인해 하루아침에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는 핵 보유를 고수하여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는 대신, 모든 핵무기와 ICBM을 폐기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는 것을 택했다. 그 대신 미국,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국경을 존중하고 무력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에 서명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가 이 침공에서 성과를 거두면 이러한 비핵화 사례를 ‘역사적 실수’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늘어나고, 세계 핵 통제와 비핵화 노력에 돌이킬 수 없이 부정적인 영향을 낳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할 가능성, 이것이 핵전쟁의 포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인 위기다. 그러나 상기했듯 핵무장 국가에 투항하는 것은 오히려 모두가 핵을 더욱 절박하게 보유하려고 하는 상황을 낳는 역설을 불러올 것이다. 핵전쟁 위기에 대한 대응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경고와, 모든 핵무기의 철폐를 요구하는 국제 반핵평화운동의 강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열린 제1차 UN 핵무기금지조약(TPNW) 체약국회의와 제10차 핵무기비확산조약 평가회의에 모인 비핵무장국들과 국제 반핵평화운동은 이러한 원칙을 확고히 했다. 이러한 원칙은 북핵 위기 대응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1. 우크라이나 전쟁 속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러시아의 편을 들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월 26일, 북한은 「미국은 국제평화와 안정의 근간을 허물지 말아야 한다」는 외무성 논평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하면서 일방적인 제재 압박에만 매달려온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그 근원이 있다. 국제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은 나토의 일방적인 확대와 위협으로 하여 유럽의 세력균형이 파괴되고 러시아의 국가안전이 엄중히 위협을 당한 데 있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 우연하지 않다”라며 러시아가 밝힌 개전 근거를 전적으로 옹호하였다. 그 뒤 열린 3월 UN 긴급총회에서 북한은 세계 141개국이 찬성표를 던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단 5개국(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레아. 중국, 이란은 기권했다) 중 하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월 12일, 러시아의 국경일인 ‘러시아의 날’을 맞아 “푸틴 대통령의 영도 아래 러시아 인민은 나라의 존엄과 안전, 발전권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위업실현에서 부닥치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히 이겨내고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우리 인민은 이에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라는 축전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7월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북한과 단교를 결정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2019년 이래로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해 안보리 차원의 북한 규탄 성명 채택을 막고, 오히려 대북제재 해제를 주장해온 러시아(중국도 마찬가지)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자 투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5월 26일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대한 제재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다. 이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최초로 부결된 사례였다. 북한으로서는 실질적으로 치른 비용 없이 상징적인 러시아 지지 행동만으로 추가 대북제재를 막아내는 막대한 이득을 얻은 셈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심지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시에도, 안보리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추가 제재 결의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확대할 의지까지 비치면서, 이제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수혜국’이 된 셈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8월 9일 러시아 국영통신사 《타스》에 따르면, 도네츠크,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은 재건 사업에 북한 건설 노동자 파견을 요청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수장은 북한 전문가 그룹이 사업 견적을 파악하기 위해 조만간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도 북한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인정 직후, 양질의 부지런한 북한 노동자들은 돈바스 재건에 매우 주요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돈바스 지역은 북한이 소련 시기에 도입해 현재까지 활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철강, 교통, 전력 생산 설비들이 생산된 곳이므로, 북한은 이 지역에서 자국의 생산기반시설 현대화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는 데 큰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7월 러시아의 주요한 전문가 회의체 ‘발다이 클럽’ 토론에서, 러시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싱크탱크 러시아국제문제위원회(RIAC) 부위원장 글레브 이바센초프는 5월 26일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듯 북한 규탄보다 미국과의 대립이 더 중요하며, 일관되게 러시아의 행보를 지지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서방의 대북제재를 무작정 따르지 말고 극동 개발 및 돈바스 재건에 북한 노동자 활용을 재개하는 등의 호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17년 ICBM 발사로 UN의 제재를 받아 공식적인 외화벌이 창구가 막힌 상태다. 그런데 돈바스 지역 재건 사업의 실질적인 주체인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 파견을 요청하면, 북한은 수년 만에 대규모 외화벌이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8월 29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UN 제재로 해외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귀국 조치가 내려지기 전 북한 노동자가 가장 많이 파견된 국가 중 하나가 러시아(약 3만 명)였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30~50% 수준을 받아 사용자 측의 수요가 높다. 통일연구원의 『2021 북한인권백서』도 러시아 내 해외 노동자 중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낮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전망에 대해, UN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해당 지역에 대한 북한 노동자 투입은 2019년 12월 22일까지 모든 UN 가입국이 자국 내 북한 노동자를 귀국시키기로 한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러시아가 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공화국은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아니라 UN에 가입하지 않은 독립국이므로 국제 제재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9월 5일 《뉴욕 타임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6개월 동안 진행한 탓에 무기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최근 수백만 개의 북한 포탄과 로켓을 사들였고 앞으로 다른 북한 무기들도 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6일 브리핑에서,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도 미국 정부가 그러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확인했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로 인해 무기 수입이 막히면서, 러시아의 선택지는 이미 제재로 인해 국제 경제와 유리된 국가들로 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8월 말 이란으로부터 드론 수백 대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북한산 무기 수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무기를 사들이는 것은 과거 러시아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찬성했던,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금지하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핵, 생물, 화학무기를 일컫는다.) 개발 자금줄을 차단하고자 한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위반이다. 《뉴욕 타임스》는 러시아가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를 희망하지만, 중국은 제재를 의식하여 러시아에 군사 장비와 부품을 판매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군사기술에서 앞선 러시아가 북한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극초음속 미사일 등의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8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동맹국에게 첨단 무기와 군사장비를 제공해 안보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북한이 유력한 대상국일 것이다. 바로 전날인 8월 15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광복절 기념 축전을 교환하면서 북러관계 확대를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구 소련)는 북한과 중국 군사기술의 원천으로, 2022년 현재 북한이 실험하는 ICBM, 극초음속 미사일 등의 최신 무기에도 러시아 기술과 부품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는 올해 1월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험, 3월 ICBM 발사 시험 직후에 북한에 관련 기술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되는 러시아 인사들에 제재를 가했다.
2. ‘삼중고’ 속 식량위기와 보건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 제재, 코로나19 봉쇄,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에 처해 있는 북한에, 러시아를 통한 외화 유입은 매우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17년부터 지속된 유엔 대북제재와 2020년부터 지속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에 더해, 올해는 봄 가뭄에 여름 수해까지 겹쳐 식량 사정이 심각히 악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봄철 수확량이 연간 수확량의 10%에 불과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미 일부 지역들에서 아사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있어, 제2의 ‘고난의 행군’ 가능성까지 예상된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번 7월, “공화국 행로에서 오늘과 같이 초강도의 비상 국면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원래부터 북한은 고질적인 식량 부족국으로, 매년 식량 부족량이 연평균 80만 톤 안팎으로 추정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이 발간하는 『2021 세계 영양 보고서』는 전체 북한 주민의 영양 부족 비율을 47.6%로, 북한 내 5세 미만 아동 발육 부진 비율은 19.1%로 추산했다. 최근에는 북한 당국도 인정할 만큼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
1990년대 당시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을 버텨낸 것은 ‘장마당’이라 불리는 소규모 시장과 물물거래의 활성화 덕분이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5월부터 북한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북중국경이 다시 막혀 중국산 물자와 식량 유입이 멈춘 탓에 장마당이 마비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북중 국경 봉쇄 해제라는 카드가 중국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3연임을 결정지을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방역 안정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8월 10일 ‘코로나19 종식’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쉽게 국경 봉쇄를 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 국영 통신사 《조선중앙통신》은 ‘종식’ 선언 보름 만에 다시 코로나19 감염 의심자 발생을 알렸다.) 8월 중 북중 간 최대 교역 통로인 신의주-단둥 간 화물 이동이 재개될 것이란 보도가 있었으나, 9월 초 현재까지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해외에 식량 원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져, 누적된 식량난이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8월 말 인도의 민간 경제단체인 국제사업회의소(ICIB)는 트위터와 웹사이트에 북한 외교관들의 사진과 함께 “북한 관료들이 뉴델리의 ICIB 사무실을 찾아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논의를 했다”, “홍수가 농작물 대부분을 파괴한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자 삭제했다. 8월 31일 《미국의 소리》 인터뷰에서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도 “북한은 농민들조차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베트남에도 수개월 전 식량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연구원과 세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 여름의 장마로 곡창지대인 청천강 유역 등의 피해가 상당하여, 통상적으로 여름은 식량 가격이 높은 계절이 아님에도, 식량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주곡인 쌀을 지원 요청한 것은 기본적인 식량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올해에는 ‘코로나19 청정지역’을 내세워 오던 북한에서도 5월부터 대규모 코로나19 감염이 공식화되어, 470만 명 이상, 전체 북한 인구의 18.5% 가량이 유증상자(발열자)로 보고되었다. 북한 당국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례적으로 발열자, 사망자 규모를 계속 상세히 알렸으나, 데이터의 신뢰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일례로, 8월 15일까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유증상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470만 명 중 단 74명이다. 이는 사망률이 약 0.0016%라는 기적적인 수치다. 그러나 미 존스 홉킨스 대학이 지금까지 확인한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낮은 사례는 부탄의 0.035%다. 코로나19 미접종자와 접종완료자의 사망률 차이는 5~10배에 이른다. 그런데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0%인 단 2개국이 바로 아프리카의 독재국가인 에리트레아와 북한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의 백신, 의료, 식량 지원 제안을 거부해왔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와 영양 실태를 고려하면 공식적인 수치는 더욱 신뢰하기 어렵다. 한국 내 백신 미접종자의 오미크론 변이 치명률인 0.6%를 북한의 공식 발열자 수에 단순히 대입해보아도 사망자가 최소 3만 명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제 북한 코로나19 감염자 규모도 공식 발표의 최소 2배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8월 3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9월 제77차 UN총회를 앞두고 발간된 UN 『북한 인권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엄격한 코로나19 통제로 북한 주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탄압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역을 근거로 국경을 폐쇄하고 국가 내 이동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북한 정부가 사상과 정보의 흐름을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인해, 백신을 전혀 접종하지 않은 북한 주민이 코로나19 발생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였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3. 2022년 북한의 위험천만한 행보
그러나 이렇게 식량위기와 인권위기가 가시화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더욱 공세적으로 군사행동에 나서고 있다. 2018년 4월에 제기된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 선언은 올해 3월 ICBM 발사 실험으로 파기되었다. 또한 ICBM·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극초음속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실험이 이어졌는데, 8월 17일까지 올해 총 18차례의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진행될 수 있는 북한의 7차 핵실험 전망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래로 북한의 핵 물질 생산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위성사진을 통해 파악되었다. 핵탄두 투발 수단인 각종 미사일 실험도 계속되었다. 올해 3월 말부터는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정황이 드러났으며, 5월 25일에는 대통령실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다른 장소에서 핵 기폭 장치 작동 시험을 탐지했다고 밝히며, “7차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준비 단계가 임박한 시점”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한미당국을 비롯하여 국제사회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언제라도 가능한 상태로 보고 있다. 9월 2일, 미국의 전략자산인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가 9월 중으로 부산에 입항하는 계획이 보도되었다. 미 핵 항모가 국내에 입항하는 것은 2017년 이후 약 5년 만으로, 핵실험 전망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7차 핵실험의 목표다. 현재 북한의 핵전략은 남한을 타격하기 위한 전술핵무기의 개발이다. 이러한 전략은 작년 1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초로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지시한 데에서 비롯했다. 전술핵무기란 통상적으로 단거리, 저위력 핵무기를 말하는데, 북한이 이를 개발한다는 것은 남한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일 수밖에 없다. 전술핵무기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가 필요하므로, 7차 핵실험은 그러한 기술 수준을 검증하여 핵전략을 실현하려는 목적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북한 정권의 담화들은 자의적인 안보 이해를 바탕으로 선제 핵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대단히 호전적인 핵 태세를 시사한다. 4월 5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전투 무력이 동원되게 된다”고 밝혔는데, 이는 북한 당국이 ‘미국을 겨냥하는 핵’이라는 그간의 주장과 달리 남한을 겨냥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4월 26일 열병식에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계속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이며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4월 30일에는 “모든 위험한 시도와 위협을 선제적으로 철저히 분쇄하고 제압하기 위해 무력의 절대적 우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언했다. 종합하면, 북한은 비단 군사적 상황만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판단한 포괄적인 ‘근본 이익’이나 ‘모든 위험한 시도와 위협’에 대하여 핵 무력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며, 남한도 충분히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는 공식·비공식 핵보유국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공세적인 핵 태세다.
8월 19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급기야 “핵은 우리의 국체”라고 선언했다. 이는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한 논평의 일환이었는데, 김여정 부부장은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란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흥정할 게 따로 있는 법”이라며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 협력 같은 물건짝과 바꿔보겠다는 발상을 보니 정말 천진스럽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발언했다. 북한의 ‘선군절’인 8월 25일 《노동신문》도, “우리 조국은 세계적인 군사강국,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섰다”라고 강조했다. 전날인 24일 북한 국영 조선중앙TV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우리 조국을 그 어떤 원수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주체의 군사강국 핵보유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 세우신 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룩하신 업적 중의 업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9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과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에서 정식화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건국절’인 9월 9일을 하루 앞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조선 인민의 크나큰 자랑입니다.”라고 육성으로 밝혔다. 또한, 핵무력 정책 관련 법령을 채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올해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의 관련 발언을 종합하여 핵 태세를 법제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법이 규정한 ‘핵무기의 사용 조건’은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대북 공격, 지도부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또는 비핵 공격, 주요 전략 대상에 대한 치명적 군사적 공격 등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전쟁 장기화를 막고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우 등이다. 이는 즉,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라도 김 위원장 등 지도부가 위험에 처한다면, 핵으로 반격하겠다는 의미다.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라는 말 또한, 외부로부터 실제 공격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곧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북한 당국의 판단만 있으면 선제 핵공격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9월 11일 《노동신문》은 “역사적인 시정연설을 우리 국가 발전의 백승의 지침으로 틀어쥐고 총비서 동지께서 제시하신 전투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는데 모든 것을 지향 복종시켜 나가야 한다”라며 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독려했다.
이상의 동향을 보았을 때,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지향은 비핵화이며, 한미동맹의 위협만 해제된다면 곧바로 그러한 지향으로 나아가리라는 일각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국가정체성과 핵무기를 동일시하는 북한 정권의 행태를 수용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UN 가입국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여 핵무장을 제한하는 현실에서, 북한은 유일무이하게 NPT를 무단탈퇴한 뒤 핵무장을 감행한 국가다. 이러한 국가에 사실상의 공식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NPT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올해 6월 21~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1차 UN 핵무기금지조약(TPNW) 체약국회의에서 66개 체약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빈 선언’은 모든 핵무기의 철폐가 세계 핵 위기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해답이며 핵무기금지조약의 목표임을 확고히 하며, “핵무기의 어떤 사용 또는 사용 위협도 유엔헌장을 포함한 국제법 위반임을 강조한다”, “NPT를 비확산 체제의 초석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훼손할 수 있는 위협과 행동을 유감으로 여긴다”라고 명시했다. 이러한 언급은 9개 공식, 비공식 핵보유국 모두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실제 체약국회의에서의 논의들을 고려하면 선언문에 명시되지만 않았을 뿐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핵 사용을 위협하는 러시아와 7차 핵실험을 앞둔 북한을 겨냥하는 측면이 크다.
8월 1일~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10차 NPT 평가회의 최종 선언문 초안도 “북한이 국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상기하며, 2016년과 2017년 북한이 단행한 핵실험들을 규탄한다. 북한은 어떤 추가 핵실험도 단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북한은 NPT에 따른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없음을 상기하고, NPT와 모든 핵 활동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에 지체 없이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NPT 평가회의는 만장일치제로 결정되는 최종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폐회했다. 선언문 중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의 안전 위기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러시아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 등 79개 NPT 회원국은 8월 19일 북한의 계속되는 핵 관여 활동을 규탄하고, 핵 시설 재정비나 확장을 위한 어떤 관련 활동과 시도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4. 삼중고 속에서도 핵 개발을 고수하는 북한, 대화의 전망이 있는가?
북한의 핵 개발은 북한 주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식량위기와 보건위기 와중에 이뤄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2016~2017년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인한 고강도 대북제재가 낳은 경제위기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식량과 보건 환경 개선에 쓰일 수도 있었을 북한 경제의 너무나 막대한 부분이 군사비로 쓰이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가 6월 발간한 『2022년 세계평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24%를 군사비에 지출해 조사 대상국 163개 가운데 GDP 대비 군사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는 2021년에도 동일했다. 미 국무부의 『2021 세계 군사비 및 무기거래 보고서』도 2019년 북한이 GDP의 14.9%~26.4%(43억 1천만 달러~110억 달러)를 군사비에 지출한 것으로 추정하여, 세계 170개국 중 GDP 대비 군사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다고 평가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1년 연감』에 따르면, 2020년 세계 평균 GDP 대비 군사비 비율은 2.4%로 북한의 1/10에 그친다. (군사비 절대 규모 1위의 미국은 3.7%, 2위의 중국은 1.7%, 한국은 2.8%, 일본은 1.0%, 러시아는 4.3%였다.)
한국국방연구원의 ‘북한 미사일 발사비용 추계’를 보면, 북한은 2022년 들어 6월 5일까지 총 17회(방사포 제외)에 걸쳐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33발을 발사했다. 국방연구원은 이에 든 재료비만 2억 800만~3억 2500만 달러(약 2600억~4061억 원)에, 기타 비용과 인건비를 합치면 총 4억~6억5000만 달러(5000억~8125억 원)가 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북한 전체 인구에 접종하기 충분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며, 식량을 구매한다면 평양의 가격 기준으로 쌀 51만~84만 톤을 살 수 있어, 북한의 연간 식량 부족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8월 11일 평양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이 나라 수백만 부모들에게 끝끝내 고통을 들씌운 주범이 바로 남쪽에 사는 귀축 같은 너절한 것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식, 혈육을 잃을까 봐 가슴 조이며 불안 속에 몸부림 쳤느냐”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이 코로나19를 “과학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자랑해 온 것과 달리 실제로는 주민들의 고통이 매우 컸으며 이러한 민심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방역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거나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외부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기보다는, 이전까지 언급이 없던 ‘대북전단 코로나19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이날 김 부부장은 남한에서 날아온 대북전단이 북한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유입했으며, 이를 의도한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체로 전문가들은 확산 시기와 추이를 보았을 때, 북한 당국이 ‘노 마스크’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4월의 행사들이 코로나19 감염의 전국적 확산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한다. 4월 당시 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15일), 인민혁명군 결성 90주년(25일)의 체육대회, 예술축전, 열병식 등 각종 행사에 주민 수백만 명, 전국 각지의 72개 군부대에서 온 병력 2만 명이 동원되었다. 코로나19 감염자 발생을 처음으로 인정한 5월 12일 직후의 흐름을 보면 평양의 유증상자가 13개 직할시 및 도 가운데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5월 14일 기준 북한 전체 유증상자의 38.2%)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와 같이 코로나19 확산의 책임까지 남한에 돌리고 있는 북한 당국은, 체제가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인도적 지원, 보건, 자연재해 대응 등을 매개로 한 남북대화조차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코로나19 확산과 식량난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은 윤석열 정부의 지원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협력이나 환경, 보건을 매개로 한 문재인 정부의 다양한 남북대화 제안에 대해 소위 “비본질적 문제”를 앞세워서 대화 재개를 할 수는 없다며 비난하는 대남기조를 취해왔다. 올해와 같이 심각한 식량위기, 보건위기 상황에서도 남북대화를 일절 거부하는 것은, 지난해 1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선언한 ‘정면돌파전’ 전략이 배경일 것이다. 즉, 북한 정권은 비핵화 논의와 결부된 대화를 택하기보다는, 핵무력 강화를 추진하기 위해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한 고통을 버티며 ‘사회주의 자급자족 경제’ 노선에 따라 ‘자력갱생’으로 상당 기간 살아갈 것을 택했다. 이 때문에 사상 초유의 보건 위기에서도 남북대화 재개나 남한의 지원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북한은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인 해금강 호텔, 아난티 골프장 리조트 단지와 이산가족면회소를 철거했다. 2019년 10월 김정은 위원장의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라”라는 지시에 따른 철거 사업이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방역을 근거로 중단되어 있었는데, 올해 재개한 것이다. 이 역시 남북경제협력을 매개로 한 남한의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표시로 보인다.
자연재해 대응과 피해 최소화에 있어서도, 한국 정부와의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 기상수문국이 6월 28일 접경지역 일대에 폭우 및 홍수 주의경보를 발령하자, 통일부는 댐 방류 시 남측에 사전 통지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으며,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로 북상하는 상황에서 재차 촉구하였다. 이는 북한이 사전 통지 없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을 방류하여 연천, 파주 등 임진강 인근 지역에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과거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황강댐 무단 방류로 야영객 6명이 숨졌고, 2020년 8월에는 주민 천여 명이 긴급 대비하고 주택 71가구가 침수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통일부의 요청을 무시하고 6월부터 태풍 ‘힌남노’ 국면에까지 지속적으로 사전 통보 없이 황강댐을 방류해왔다.
북한은 ‘근본적 위협 해소’와 대북제재 해제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남한이 아닌 미국과의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주선으로 성사되었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이러한 기조가 더욱 확고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8차 당대회에서 수립한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 과업’(극초음속 무기 개발, 전술핵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등으로 추정)을 추진할 필요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양안갈등이 부각되는 국제정세,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올해 안에는 북미대화 또한 본격적으로 재개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긴장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7차 핵실험 전망에 대한 한미일 당국의 입장은 ‘당근’을 주는 전략이 아니다. 9월 1일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진행된 한미일 안보수장 회담 결과에 관해, 김성한 안보실장은 한미일 3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에는 절대 안이한 대응이 있어선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 했으며, 핵실험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방향으로 협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 여섯 차례 핵실험 때와 차원이 다른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
5. 북한 핵무장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절실하다
1980년대부터 북한을 연구해 온 북한학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는, 올해 4월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의 미래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바꿨다”란 글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설명했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미중 경쟁이 강화되는 데에 따라,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 ICBM 실험에 대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동의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그런 시대는 확실히 지나갔다. (상기했듯, 이 칼럼이 발표되고 약 한 달 뒤인 5월 26일,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ICBM 발사 시험에 대한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거부했다.) 근본적으로는 중국도 국경을 마주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나, 중국은 앞으로의 정세에서는 북한의 핵을 통제하는 것보다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경제 원조를 통해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면, 북한 정권은 생존을 위해 경제 개혁과 같은 자구책을 강구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김정은 정권 초기에 있었던 일부 개혁 시도는 대부분이 축소되거나 이전으로 돌아갔다. (란코프 교수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UN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북한 정권을 돕는 상황이라면, 북한 정권은 경제 개선을 위한 북미대화, 남북대화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한에도 새로운 대남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시사했을 수 있다. 예상보다 거센 우크라이나의 항전으로 인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원래 러시아의 목표는 침공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탈나치화’(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정치에 대한 통제권 확보)와 영토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장기적으로 직접 점령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정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구가 두 배 가량 많고 경제가 훨씬 더 발전한(통계청 추산 2020년 북한 GDP는 남한의 1/56으로, 남한의 1980년 수준에 못 미친다) 남한을 제대로 흡수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간혹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리 없다는 주장에도 이러한 사실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나리오는 북한 정권이 보았을 때 남한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법한 현실적 시나리오다. 북한은 미국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가능성이 있는 단 세 국가(중국, 러시아, 북한) 중 하나이며, 대남용 전술핵무기도 개발하고 있다. 즉, 러시아가 핵 위협을 통해 서방의 직접적 개입을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 것처럼, 북한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 위협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 상태에서 전술핵을 앞세워 남한의 재래식 화력을 제압하고, 남한의 비무장화와 남한 정치에 대한 통제권, 경제적 이권을 요구할 수 있다. 란코프 교수는 “이것이 높은 확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불가능’에서 ‘비교적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는 큰 변화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이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며 매우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할 것이고, 점점 더 위험해질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마무리한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경제 개혁과 대화의 문을 닫을 가능성도, 남한에 대한 군사적 모험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게 평가할 가능성도 더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이 “우리의 국체인 핵”에 대해 비핵화 대화를 할 의사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나 북한 비핵화와 경제적 지원의 맞교환을 주장하는 한미 당국의 대북정책은 현실적으로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운동의 주류는, 남북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미 당국 탓인 것처럼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민주노총은 “상대측이 수용하고 논의 테이블에 앉을 필요성을 고려하고 판단[하고 있는가?] 상대방인 ‘북’이 이를 수용하리라 보는가? 북의 핵개발, 핵능력 보유에 대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지 않고 나아가 이의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안에 대한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담대한 제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논평했다(“윤석열 대통령은 ‘담대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2022년 8월 16일).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 논평에 나오지 않지만, 북한의 핵 개발에 어떠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한미 당국이 이를 먼저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 북한이 논의 테이블에조차 앉지 않는 것도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진보연대의 8월 16일 「주간 민생정치동향」 또한,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성과 없이 끝난 비핵 개방 3000과 유사한 내용”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가시적 목표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핵 동결을 협상) 구상을 수용하면서까지 다양한 남북협력 정책을 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나아가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은 곧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운동 일각의 주장처럼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 자체를 사실상 포기하면, 남한의 핵무장으로 북핵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산정책연구원은 9월 6일 발간한 이슈브리프 「북핵 대비 확장억제와 우리의 역할」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할 수 있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정부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미국의 전술핵무기 수십 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라고 주장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2022년 8월호에 실린 「‘담대한 구상’과 북한의 반응」에서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음을 직시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처능력을 갖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핵 대 핵으로, 남북간 균형이 맞아야 북한도 남북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란코프 교수는 작년 11월 칼럼 “논리적이나 불가능한 꿈, 남핵”(《매일경제》, 2021년 11월 3일)에서는 남한의 자체 핵무장(남핵)은 여러 국가의 추가 핵무장 물꼬를 터 전후 국제질서와 NPT 체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기에,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허용할 가능성이 0이라고 썼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나온 최근 칼럼(“워싱턴에서 사라진 북한”, 《매일경제》, 2022년 8월 31일)에는, 올해 처음으로 워싱턴 조야에서 남핵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썼다. 최근 남한 엘리트층 사이에서 핵 개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생긴 것을, 미국에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사회운동의 지향을 폐기하는 것이 되며, 북핵에 상응하는 남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핵무기금지조약 체약국회의와 NPT 평가회의 논의를 소개했듯, 국제사회는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를 규탄하고 북한의 핵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는 모든 핵무기의 철폐라는 목표에 따른 당연한 입장이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한때 상상도 할 수 없던 핵 분쟁이 이제 가능성의 영역으로” 돌아왔기에 “핵무기가 우리를 없애기 전에 우리가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6월 21일 제1차 핵무기금지조약 체약국회의 발언)는 절박함에서 나온 대응이다.
우리 사회운동은 어떠한가? 2022년 현재에도 한국 사회운동에서는 북한의 ICBM 발사 실험 규탄이나 핵 실험 추진 중단 촉구는커녕, 북한의 핵 개발 전략이 한반도와 세계에 초래하는 위험에 대한 인식 자체도 찾아보기 어렵다. 2022년 민주노총 8.15전국노동자대회는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의 장’을 자임했다. 그런데 8.15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표된 개회사를 보면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하고 북한이 다시 핵 개발 노선으로 나아간 2019년 이래로, 한국 사회에서 핵무장 지지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아산정책연구원,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2010~2020년 아산연례조사』, 2021년 9월 13일. 2020년 남한의 독자 핵무기 개발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역대 최고인 69.3%로 나타났으며,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하는 응답은 남북, 북미정상회담 전인 2017년 대비 13.2% 감소했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연일 보도되고 7차 핵실험이 초읽기에 들어간 2022년에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는 ‘평화통일운동’이 과연 이러한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고, ‘남핵’이라는 또 다른 위험한 주장을 비판할 수 있는 대중적 평화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올해 한국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불법적 침공이 명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 제국주의라는 진영논리에 빠져 우크라이나 민중의 항전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와 연대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우리 자신, 한반도 민중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이러한 실패를 반복해야만 하는가? 북한 핵무장을 반대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