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2006-04-14

    자유무역의 함정들 - 아탁 프랑스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 불어 번역본인데 교정을 꼼꼼이 보지 않아서 읽기에 딱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뒷부분의 "발전의 서비스에 대한 실질적 교환을 위하여"라는 절에서 현재의 "자유무역"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원칙들을 눈여겨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자유무역의 함정들 Les pièges la libre-échange * 출처: http://www.france.attac.org/a5473 ‘자유’라는 용어는 매우 긍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최약자는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다양한 개인들의 권리들의 보존과 지구의 보존 같은 공통적 이익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임무들은 오직 집합적으로만 책임져질 수 있다. 경제적 계획이라는 틀에서 ‘자유무역’이라는 용어는 국가들 사이의 교역․교류의 자유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빈번하게 확대된 의미, 즉 인간들의 이동성은 제한된 채 상품과 서비스의 순환을 넘어 화폐적․금융적 메커니즘들을 상기시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자유무역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축들 중 하나다. 여기서 그러한 자유는 사실상 자신의 활동에 대한 모든 장벽의 철회를 강화하려는 국제적 자본의 자유다: 사냥터로서의 지구. 국제적 경쟁은 어떻게 보호되는가? 어떻게 설명되는가? 국제적 경쟁으로부터의 보호의 방법은 수입된 상품들에 적용되는 관세로서 이는 그 가격을 상승시킨다. 만약 문제가 되는 생산물이 그 나라 내에서 유치산업 생산물이라면, 그러한 민족적 활동은 장려된다. 그 상품의 가격은 수입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분명하게 지불된다. 그러한 권리들은 수량제한제 또는 수입허가제에 의해 완성된다. 그 밖에도 수입을 지원하는 절차들이 존재한다: 재정지원 등 우리는 환율에 관한 언급 없이 국제적 경쟁을 설명할 수 없다. 저평가된 화폐는 수출에 유리하고 수입을 억제하며 민족적 생산자들에게 유리하다. 그 결과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기계들과 같은 수입 상품의 가격상승이다. 그러한 불편을 경감하기 위해 때때로 생산물들에 따라 상이한 환율이 활용될 수 있다. 국제적 교역에 국경을 개방하는 것은 다양한 장치들을 후퇴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1980년대 초 이래로 개방되었다: 멕시코가 WTO의 전신이 된 GATT에 가입한 1986년에 가속화된 수입에 대한 권리들의 감축과 허가제의 부분적 제거; 직접투자의 자유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과 함께 이루어진 새로운 규칙들의 정의. 경제와 매우 정치적인 실천들 자유무역과 관련하여 가장 분명한 준거점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추론은 일차 생산물을 공급하는 나라와 산업화된 나라들 사이의 분할을 무시한다. 그것은 불평등을 재생산하며 균등발전을 가로막는다. 세계사는 사실상 자유무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포함외교의 시대 이래로, 그 방법들은 조금 변화했지만 여전히 폭력이 작동하고 있다. 역사학자 폴 베로쉬는 국경의 개방이 언제나 비대칭적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국과 같은 최선진 국가들은 주변의 나라들에서 영국 생산물의 진입과 영국 경제에 필수적인 생산물의 값싼 수입을 부과했다. 그러한 불평등 교환은 세계의 국가들의 양극화를 야기한다. 비교가능한 발전 수준의 나라들 사이의 경쟁은 특정한 동학을 자극할 수 있지만 발전 수준이 매우 불균등한 나라들 사이의 국경의 개방은 멕시코와 미국의 사례에서처럼 저발전 국가에 파괴적 효과를 갖는다. 일반화된 참화 라틴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 경제의 개방은 신자유주의―국경의 개방과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의 비극적 결과를 잘 보여준다. 이 지역은 막대한 량의 부채에 종속되었는데, 이는 1979년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지속불가능하게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의해 팽창되었다. 이 나라들의 축적은 1980년대 초 부채위기와 함께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어떤 종류의 재안정화도 분명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의 경험은 대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문하생으로 제시되는 멕시코의 사례는 좋은 예가 된다. 1980년 이전 6-7%의 성장률은 절반 또는 1/3로 줄어들었고, 불황은 분명해졌고 IMF의 ‘처방’에 의해 강화되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조인은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국경에 근접한 마킬라도라―이 곳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은 열악하다―에서 창출된 고용은 민족적 산업의 파괴를 보충하지 않았다. 농업에서 10년 동안 1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실상 사회에 대한 통제의 확립인 직접투자는 고용을 창출하는 ‘물리적’ 투자로 조금도 흘러들지 않았다. 이제는 95%의 식물성 기름, 30%의 옥수수, 40%의 육류, 50%의 쌀이 수입된다. 미국을 향한 과일 수출이 76% 증가되었지만, 과일 통조림 수입은 300% 증가했다. 2002년에 멕시코 인구의 절반인 약 5000만의 거주자들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악화 경향이 중단되지 않았는데, 특히 8억 5천만 인구의 80%가 거주하고 있는 사하라이남의 나라들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일인당 소득은 지난 20년 동안 10% 감소했다. 불평등은 악화되었다. 아프리카는 부유층이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여기에서 저발전의 특성들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아, 질병(특히 에이즈), 전쟁. 해외 금융지원, 특히 공적인 발전원조는 심각하게 삭감되었다. 중심부 국가들, 특히 유럽 국가들과의 비대칭적 관계들은 발전에 대한 장애가 되었다. 식민지의 유산은 이를 강화했다. 무역개방은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산출했다. 교역조건의 심각한 악화는 수출자원의 감소로 귀결되었다. IMF와 해외자본에 의해 추진된 긴축정책은 경제를 파탄시켰다(임금감소와 실업의 증가). 중국. 중국의 사례는 반증의 사례로 제시되곤 한다. 1979년 이래로 중국은 ...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성장은 변화, 말하자면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부정적 효과를 낳았다. 우리는 중국이 자유주의의 부정적 효과(불평등, 위험, 실업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발전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지역적 경제통합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 특히 교환의 점진적 자유화라는 수단은 유사한 발전수준을 갖는 나라들 사이에서 장벽을 낮추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는 조정에 우호적이고 점진적 조화를 산출하는 국가의 개입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한 ‘지역적 통합’은 매우 이로운 것으로 확인될 수 있다. 더 확대된 시장이 창조되고 더 많은 전문화를 허용한다. 기업들 사이의 경쟁은 증가된 효율성에 기여할 수 있다. 유럽연합. 1970년대까지 유럽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인구의 구매력은 증폭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기도 한 유럽의 형성이 신자유주의적인 새로운 질서로부터 유럽을 보호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신자유주의의 심화를 위한 수단으로 통합의 새로운 단계가 추진되었다. 이는 그 나라와 사회체계들 내에서 일반화된 경쟁을 강화했다. 1986년 조약(단일의정서?)은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순환을 향한 길을 열었다. 1992년 마하스트리히트 조약은 그러한 경향을 강화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중앙은행의 자율성(주로 가격안정, 즉 인플레 억제 활동에 집중), 균형재정. 1999년 유로화 출범이 ‘시장’의 압력에 종속된 세계 내에서, 그리고 아메리카 헤게모니 아래에서 유럽의 자율성을 증가시키지 않았다. 헌법 조약이 실현된다면 이러한 방향에서 새로운 단계가 확립될 것이다. 메르코수르. 1991년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사이에서 체결된 남미남부 공동시장. 그것은 유럽적 구성과 유사한 야심을 가졌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단순한 자유무역지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관세장벽의 삭감은 초민족적 기업들에게 확실히 유리했다. 그 협정은 설립 당시부터 그 나라들에 신자유주의의 수출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더 치명적인 협약들. 다양한 국제협약들이 협상되고 있다. 그 협상들은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이나 쌍무적 협약의 창조를 목표로 한다. 그 협약들은 매우 불균등한 발전수준을 갖는 나라들을 공통으로 통합하고자 한다.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 그러한 기획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 기획이다. 그것은 WTO에 의해 제시된 제안들을 넘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자간투자협정(MAI)의 원리를 재부활한다. 또한 서비스무역에 대한 일반협정과 지적재산권 협정 등도 포함된다. 이는 완전한 경제개방을 지향하는데, 이는 최고의 참화를 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불균등한 발전수준을 갖는 나라들을 통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쌍무협상에 관한 것인데,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가벼운’(light) 자유무역지대라고 부르는 것의 정의가 등장한다. 아메리카 내에서의 쌍무협정. 그 협정들은 상품과 서비스 무역을 범람시킬 것이고, 투자, 공공재, 지적 재산권, 갈등 중재소 같은 문제를 다룰 것이다. 투자의 보호에 관한 조항들은 특히 중요한 문제다. 국가는 심지어 투자가 실현되기 전에도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투자자에게 배상할 책임을 진다. 멕시코 국가에 대한 (유독성 폐기물) Metalclad 협회의 제소에 대해 판결을 내린 중재 재판소는 멕시코 정부가 자국 영토 내에 그 회사의 설립을 거부한 데에 대해 1600만 달러를 배상할 것을 결정했다. 미국과 중앙아메리카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은 지적 재산권을 위한 수단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제네릭 의약품의 제조업자들은 그 생산물의 무해성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조약들은 또한 보건 서비스와 교육 서비스의 사유화의 강력한 중개자다. 칠레의 사례에서 협정은 1990년대에 효력을 보였던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를 금지한다. (아프리카: 생략) 발전의 서비스에 대한 실질적 교환을 위하여 국제적 교환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것은 수단들에 불과하다. 그 수단들은 각각의 상황들에 맞게 민주적으로 정의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목표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현재 작동중인 동역학을 역전시키고, 그 교환들의 조직을 비예속적인 발전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다. 달리 말해, 원격 국가들 사이의 교환은 그것이 필요로 하는 운송의 근거에서 제기되는 생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다른 관점에서 엄격히 필수적인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1. 경제와 사회에 대한 보호는 정부들의 정당한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유치산업 또는 취약 인구의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그리고 안전과 식량주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내부 시장의 우선적 발전은 필수적이다. 그러한 보호주의적 정책들은 균등한 발전을 보장한다. 초-전문화는 위험하며 따라서 경감되어야만 한다. 공적 서비스들은 시장화로부터 보호되는 영역이어야 하며 따라서 국제적 경쟁에 종속될 수 없다. 2. 정부들은 그 자신의 인구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운용할 역량을 되찾아야 한다. ․상업적 흐름을 통제하라. 국제적 교환은 규제되어야 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에 일차적으로 봉사하지 말아야 한다. 이 원리는 WTO 및 IMF와 같은 여타 국제구기의 실질적 기능과 양립불가능하다. ․자본의 운동을 통제하라. 규제 또는 조세가 문제다. 민족적 발전전략은 더 선진적인 국가의 직접투자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귝유기업은 헐값에 매각되지 말아야 한다. 그 나라의 관점에 따라 투자는 탈지방화(de-localization)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그러한 투자는 영속성의 약속과 그 나라의 사회적․재정적 입법에 종속되어야 한다. 국제적 규제조처들은 사회적 덤핑과 헐값에 매각되는 재정적 경쟁을 금지해야 한다. 이 모든 원리는 새로운 투자협정(MAI)의 원리와 대립된다. 3. 이웃 국가들과 유사한 국가들 사이의 지역적 토대에 기초한 교환이 우선적으로 선호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한 국경의 개방은 사회적, 환경적, 재정적 조화를 요구한다. 공동시장의 경험은 이러한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4. 북-남 교환은 새로운 토대 위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기술이전 또는 획득불가능한 자원의 제공을 위해 활용된다. 그러나 남의 국가들을 궁핍화시키는 교역조건의 악화에 대항하기 위해 일차 원자재들의 가격 안정화의 체계가 시급히 구축될 필요가 있다. 환율의 더 큰 더 큰 안정성과 균등성을 보장하는 국제적 화폐체계의 개혁이 시급히 요구된다. 5.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연대가 조직되는 것이 본질적이다. 이는 자유무역협정의 실질적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사회적 ‘덤핑’에 대한 반대. 6. ATTAC은 가장 불쾌한 정책과 실천의 금지를 목표로 하는 행동의 주도권을 형성해야 하며, 기존 투쟁들에 결합해야 한다: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의 불공정한 조처들의 철회를 위해, 투자에 대한 통제를 위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제한하는 조처에 대항해서, 국제적인 사적 부문에 대한 공적 부문의 개방에 대항해서. 7. 미래에는 국제적, 지역적 무역 기구가 세계화에 대한 또 다른 개념화, 즉 생태적, 연대적, 해방적 세계화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화는 WTO와 강대국들에 의한 자유무역의 일반화된 적용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 2006-04-14

    [펌] 무역자유화의 이득? 근거가 불투명하다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무역자유화의 이득? 근거가 불투명하다 [먼슬리 리뷰]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현실 프레시안 : 2006-04-10 오전 11:37:12 노무현 정부가 국내 여론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미국 정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적 평론지인 〈먼슬리 리뷰〉가 최근호에 FTA와 같은 국제협정을 통해 관철되는 신자유주의의 신화와 현실에 관한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끈다. 이 글에서 필자인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미국 루이스앤드클라크 대학 교수(경제학)는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결함이 많다고 비판하고,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만 근거해 경제 및 무역 정책을 수립해 실시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특히 자유무역론자들이 각종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계산해내고 선전하는 데 활용하는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모형'은 정교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산요소의 완전균형과 국내경제의 원활한 구조조정 등 현실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여러 가정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애초부터 자유무역협정 옹호자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게 돼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도 바로 이 모형으로 계산해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등을 한미 FTA의 경제적 이득을 홍보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먼슬리 리뷰Volume 57, Number 11〉에 실린 이 글(Neoliberalism: Myths and Reality)의 번역이며, 세세한 각주는 생략했다.<편집자>

  • 2006-04-05

    볼리바리안 혁명과 대안세계화운동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서론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분출 중인 사회운동과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좌파’ 정권의 관계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특히 이 논란의 중심에는 본 포럼을 직접 지원하며 미 제국주의에 맞서 역내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단결할 것을 호소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위치했다.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효과적으로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포럼의 마지막 날 행사로 열린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사회운동총회가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당초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의 ‘정당 및 무장조직 배제 원칙’ 논란이 전진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1) 오히려 이러한 쟁점 이동은,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이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정당과 대중운동이 인민주의로 변질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하지만 역으로 ‘운동의 운동’ 또는 ‘공간’으로서 규정된 세계사회포럼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실현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결과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복합적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 자체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기 위한 이론적·정치적 차원 전반의 기획을 요청하기 때문이다.2) 이에 오늘날 차베스-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향후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우선 라틴 아메리카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 조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다음으로, 일종의 지역적·민족적 특수성으로서 제국주의의 지배와 인민주의적 전통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출현과 대응, 변모를 살펴본다. 이 속에서 차베스 정권의 성격 및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정치학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이념이 안정적인 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세력은 의회정치 대신 과두제적·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 의존했다. 동시에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를 표방했던 좌익적 사회운동은 폭압적으로 억압됐다. 그 결과 사회개혁과 하층계급의 사회적·정치적 통합은 권위주의적·위계적 분할과 포섭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빈번하게 출현하는 인민주의는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불안정을 표현한다. 사회경제적 불균등성과 극단적인 불평등은 인민주의의 조건이 되며 정치제도의 취약성은 ‘반정치의 정치’에 기여한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출현과 변모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동에 대한 지역의 대응양상, 계급구조의 변화와 지배체제의 변동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전통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도시화와 제한적인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의 뿌리 깊은 유산을 극복하지 못했다.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전통적인 토지귀족의 지배력은 지속되었고 독자적 군대를 보유하고 대사제이자 행정관의 역할을 하는 토지귀족이 지방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국적 차원에서는 대중적 참여를 제한하는 토지귀족의 ‘과두제적’ 의회제가 확립되었고, 국가는 지역 영주들의 연맹체로서 권위적·전제적 성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토지귀족의 자유주의는 민족적 통합이나 민주주의와는 대비되며, 이들은 영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연고주의적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 유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쟁-세계시장의 붕괴-1차 상품 수출의 위기에 따라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에서 경공업 중심의 초보적 수입대체 산업화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토지귀족의 지배력과 과두제적 픽망ㅔ〉?약화되었다. 또 국내시장, 국가, 도시의 팽창으로 연고주의라는 전통적인 정치적 통제방식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토지귀족은 새로운 부유층을 상류사회의 하층으로 포섭하는 한편, 기존의 정치제도와 정당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의 중산층, 노동자, 빈민을 배제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 인민주의는 대공황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급속히 성장하여,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1940-50년대에 확립된 인민주의 정권은 미국의 ‘발전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되기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전략은 ‘자유 세계주의’라는 냉전의 틀 내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데 집중했다. 반면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지역 차원의 냉전 질서가 가시화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는 상대화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관료들은 미국에게 발전원조를 호소했지만 마셜플랜은 구상되지 않았고, 발전의 쇼케이스로 수출지향적 산업화가 지원된 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주로 미국계 법인자본의 직접투자를 위한 우호적 조건 형성이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국내외적인 정치·경제적 권력의 공백과 교착 상황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띤다. 인민주의는 기존의 발전전략과 통치구조에 대한 반대를 중산층,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요구와 결합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은 새롭게 형성된 국내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계급의 제휴를 형성하고 토지귀족과 타협함으로써 국내산업을 중심으로 한 민족적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특수한 제휴형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중적 동원이 추가되어야 했다. 즉 인민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세력 및 그와 결탁한 토지귀족 세력, 자유무역과 과두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성장했다. 이들은 제국주의로 변질된 19세기 자유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아 열정적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족적 갱생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민은 노동자·농민·빈민과 같은 계급적 범주를 초월한 유기체적 통일성으로 이상화된 주체였다. 그 결과 인민은 기존의 연고주의에서 배제된 도시 노동자, 프티 부르주아, 농촌 출신 이주자, 학생, 지식인, 사병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인민주의적 동원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는 인격화되고 정치는 인민의 지도자와 적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민주의는 결코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다. 혁명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소유권과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으며 토지귀족과 타협했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적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독창적인 정치적·문화적 동원방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인민주의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확대된 국가기구로 통합했다. 노조는 국가의 권위 하에서 자본가조직과의 기능적 조정을 통해 계급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위계적 질서 내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고정된 지위를 제공하는 코포러티즘 기구로 전락했다. 노동자는 인민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가에 의해 승인된 틀 내에서 임금교섭과 복지혜택, 인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선거권을 획득했다. 미국 헤게모니의 형성과 군부독재의 폭정 195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직접투자가 거대하게 이뤄졌고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법인자본과 초민족화된 국내 부르주아지는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이에 기초한 자본축적은 더 이상 인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울러 196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내외의 정치상황도 인민주의의 토대를 해체하는 요소였다. 1955년 반둥회의로 상징되는 비동맹운동의 확산과 1959년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민족적·민중적 발전의 요구가 증가되고 있었다. 인민주의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도 증가하고 일부에서는 게릴라 무장 투쟁도 출현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시적인 혁명의 고조”는 1940-50년대 인민주의와 비교할 때 새로운 중요한 특징을 반영한다. 첫째, 혁명적 고조는 이전 시기의 민족적 인민주의를 넘어 강력한 급진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했다. 둘째, 이들은 게릴라, 대중봉기, 총파업 등 의회 외부적 투쟁과 연계했다. 셋째, 이들은 이전의 프티 부르주아 선거주의자들과의 연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넷째, 새로운 혁명적 운동이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연안 국가의 강탈적·권위적·자유주의적인 수출지향적 체제와 남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인 수입대체적 체제에 대해 동시에 도전했다. 다섯째, 혁명주의적 물결의 기원은 각국의 특수성에 기반했지만, 미국의 반봉기 전술에 대한 투쟁과 함께 특히 쿠바혁명에 의해 창안된 수렴점을 공통적인 혁명적 ‘참고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3) 이에 미국은 1961년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및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전술적으로 워싱턴은 다중적 정책을 적용했다. 가령 ‘진보를 위한 동맹’을 통한 개량의 쟁취,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반봉기, 군사쿠데타 등 고도의 군사 전략, 해외 군대 파견과 군사적 원조, 프로그램의 이식 등이 그것이다. 혁명을 제국주의적으로 봉쇄하려는 이러한 노력에서 국내 프티 부르주아 선거 지도자들이 주된 역할을 수행되었다. 그러나 다중적 전술의 시기는 결국 군사적 선택이 우위를 점하며 막을 내리게 된다. 미국의 전술 변경은 혁명적 물결을 봉쇄하는 데 있어 민간 선거 체제와 개량에 대한 워싱턴의 의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워싱턴은 일련의 군사 쿠데타를 후원하는 쪽으로 방향 선회하며 혁명세력의 부상을 제거하고 민족주의적-인민주의적 개량을 역전시켰다. 아울러 ‘혁명적·국제주의적’ 쿠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강화되었고 역내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동반하는 반공과 냉전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결국 좌파를 고무할 수 있는 인민주의 정부를 제거하기 위해 군부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군부-반혁명-권위주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아메리카에서 군부의 정치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다만 이 시기의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토지귀족과 보수주의 정당에 권력을 이양한 1930년대와 달리,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사회·경제적 전망 속에서 군사혁명위원회를 통해 장기 집권한다는 차별점이 있다. 또 미국은 군사정부를 관료적 능력과 기술적 역량을 갖춘 현대화의 주도세력으로 간주했다. 이 시기 군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인민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군부는 민족경제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개방하고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진출을 장려했다. 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추진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혜를 철회했다. 임금하락, 장시간노동, 노조탄압, 비공식부문 노동자·빈민에 대한 탄압은 자연스러운 산물이었다. 미국은 군사 독재 시기 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위한 법적·이데올로기적·제도적 기초를 창조했다. 미국의 지배를 위한 정치·경제적 파라미터는 군사 정권이 새로운 대중적 사회-정치적 운동이 부상하는 1980년대 초 쇠퇴할 때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의 제국주의는 단순히 군사적 지배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인민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사회주의 정당, 즉 ‘시장 해법’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정치적으로 추방했다. 제국주의 세력은 대중들이 군사 정권을 위기로 몰아붙일 때 이들이 정치에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치하는 한편 이들을 대체할 미래의 선거 정당을 후원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선거주의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복귀가 제국주의적-군사 국가가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파라미터 내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前인민주의, 前사회주의, 前민족주의 선거 엘리트들은 반독재 운동을 해체하고 오히려 선거 정치의 물꼬를 텄다. 군부가 신자유주의의 기초를 닦았다면 민간 선거주의자들은 모든 전략 부문에 대한 집단적인 사유화, 총체적인 탈규제, 영속적인 부채 지불, 부의 유출과 역진 등을 구조화했다. 외채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한편 1980년대에 이르러 수출주도 산업화의 한계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제한적이었으며 오히려 역내에서 활동하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또 역내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채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높은 경제적 비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유가상승과 고금리·고달러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하고 생산마비, 자본도피, 대중적 소요가 발생했다. 1982-83년 외채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는 만성적 경제위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1985년 ‘베이커 플랜’을 통해 재정긴축을 전제로 외채의 상환시기를 재조정할 것을 제안하고 수출을 통한 외환확보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역자유화를 권고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대중적 불만과 사회적 소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둘러싼 논쟁이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변화와 민주화 운동세력의 분할, ‘책임있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원 등이 모색되었다. 즉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해 군부의 퇴진과 자유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집권이 권고된 것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관리적 관념의 출현을 의미한다. 군사정부에서 이뤄진 경제적 자유화는 정치적 자유화를 필요로 하고 정치적 자유화는 민주화와 동일시되거나 경제적 위기를 관리할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절차와 규칙으로 환원되거나 탈정치화되고 순수한 기술적 문제로 파악된다. 동시에 민주적 민간정부의 책임성이 강조되고 문민화의 구체적 경로로서 군부와 책임있는 야당의 협상이 권장되기에 이른다. 아르헨티나(1983년), 칠레(1990년) 등 군사정부의 퇴진 또는 문민정부로의 ‘협상된 이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4)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대다수 국가들은 외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협상된 이행’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보수정당, 분명한 정치적 전망이 결여된 중도좌파 등 군부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의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문민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통치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의 의미는 자연스레 축소되었다. 기술관료들은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지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경제엘리트와 정치엘리트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편 경제위기는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자들의 이질성을 심화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자율성을 침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가치절하가 이뤄지고, 정치는 부패한 직업정치가와 귀족집단의 이기적인 게임으로 간주되었다. 정치엘리트와 노조 등 기존제도의 수혜자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누적되고 ‘원한의 정치’가 득세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외채위기를 거쳐 금융세계화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군부와 전통적 인민주의 세력은 무능을 노정한다. 기존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함으로써 내적 위기를 경험하고 대중적 토대를 상실했다. 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들도 독자적인 이념을 상실하고 내적 분할을 경험했다. 결국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다(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로,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수엘라의 페레즈).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은 ‘반정치의 정치’를 통해 경제적 위기와 계급적 갈등을 기존의 정치와 정치 엘리트, 정당과 의회제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민족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한다. ‘충격요법’의 과감성은 전통적 인민주의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와 자본가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긴축정책, 부채-주식 전환, 국유기업 사유화, 남미공동시장, 북미자유무역협정 등). 이는 곧 광범위한 실업·빈곤을 야기하고 실질임금 하락,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며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조건 석유경제의 형성과 농업의 위기, 도시화 19세기 초 식민 치하 베네수엘라는 광물 자원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코코아, 커피, 설탕, 면화, 담배 등) 여전히 농업이 주된 경제 활동이었고 최소한 70%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다. 하지만 19세기 내내 토지는 독립전쟁(1821-39년)에 참가했던 강자의 수중에서 분할, 점유되었다. 이러한 불공평한 토지 분배에 맞서 독립 후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에세키엘 사모라), 불공평한 토지 분배 구조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그 후 구스만 블랑코와 같은 군부 지도자들은 충직한 부하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는데, 이 점에서 가장 악명 높은 후안 빈센트 고메스와 같은 독재자는 막대한 토지를 개인 소유로 전유했다. 고메스 독재 치하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농업경제에서 천연 자원 개발(특히 석유) 기반 경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국적으로 농업을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고메스 독재가 1935년 막을 내리자, 농업은 전체 노동력의 6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GDP의 단 22%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최대 석유수출국이 되었다. 석유 생산이 점점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경제학자들이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북해 천연가스/원유 발견이 네덜란드 경제에 끼친 효과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야기되었다. ▲석유 수출로 인한 해외 통화 유입 ▲구매력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국산품에 비해 수입 공산품·농산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결과 수입량이 증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농업 생산 파괴 산업 발전 저해라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5) 1960년에 이르자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단 35%로 급감했다(1990년에는 12%). 이로써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네덜란드 병”의 또 다른 결과는 베네수엘라가 역내에서 유일한 농산물 수입 국가이자 GDP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소인 국가로 전락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급격한 농업의 쇠락은 도시화가 굉장히 급속히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도시는 수용 가능한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결과 도시 변두리에 거대한 슬럼/바리오가 형성되었고, 농촌 쇠락에 조응하는 슬럼/바리오 규모의 확대는 1960-70년대 석유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증대한 결과였다. 1980-90년대 20여 년 동안 석유 수익이 꾸준히 하락하자 국가는 재분배 조치를 통해 빈곤의 충격을 완화할 수 없었고 대신 사회적 소비를 삭감하는 극약처방을 내세웠다. 한편 전반적인 농업의 쇠락 이외에도, 베네수엘라 농민들은 극심한 토지 소유 불평등에 처했다.6) 국가가 보증하는 토지개혁은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가 막을 내리고 1958년 자유 민주주의가 도입된 직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토지개혁법(1960년)에 따라 전국농업연구소가 설립되고 20만 이상의 가구에 국유지가 분배되었는데, 차기 정부는 연구소와 토지개혁 강령을 다시 무시했다. 1970년대 석유 호황기에 “네덜란드 병”이 심화되면서 농산물은 이윤이 남지 않았고, 도시화는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토지개혁 수혜자의 1/3이 탈락했고, 수혜자의 90% 가량이 온전한 토지 소유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필연적으로 토지 소유권의 개혁을 필요로 했다. 즉 토지소유자의 수중이 아닌 국가에서 소농으로 소유권의 이전이 요구된 것이다. 1997년 농업 인구조사에 따르면, 토지분배는 1960년 이전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상황에 머물렀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를 위한 시장이 확대되고(종종 투기 목적으로 토지 매매) ▲대토지소유자들이 농업노동자/소작농을 내쫓는 경향이 증가하고(신기술의 도입 또는 농산물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자 생산을 포기한 결과로, 이는 결국 도시화에 기여), ▲토지소유자들이 점점 개인보다는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계속 진행되었다. 단적으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인구 중 9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1970년 ‘오일 붐’의 결과로서, 그 이후에도 정부는 석유산업에 전적으로 집중했으며 이촌향도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석유로 인한 소득은 대부분 도시의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 투자되었고, 중산층, 백인에게 돌아갔다. 이는 농업 기반을 축소시키고 경제에 대 혼란을 가져왔다(OPEC의 공동 창설자 후안 파블로 알폰소는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라고 표현했다). 푼토피지협약 체계와 경제 위기 푼토피지협약(1958년)으로 건설된 양당 협조 체제에 대한 반대가 볼리바리안 프로젝트의 시초를 구성한다. 대부분 군사 독재 하에 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건전하고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는 제국주의적 시각과 달리 차베스는 이 체제를 사회적으로 배타적이고 부패한 체제로 규정했다. 가령 사회민주적 경향 하에서 기조직된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행동당(AD)과 베네수엘라 노총(CTV)의 사례가 그것이었다.8) 푼토피지협약 이후 베네수엘라 지배계급은 중동과 유사한 실책을 저질렀고, 전국민을 석유로 혜택을 받는 자와 고통 받는 자로 양분했다. 국제 유가의 하락과 국제이자율의 상승은 석유 수출 의존적이고 해외 금융 도입 의존적인 국가 경제에 침체를 가져왔다. 특히 198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전반의 외채위기로 인한 긴축이 장기화된 결과 많은 국가들에서 자산의 평가절하가 일어났다. 긴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난을 안겨 주는 반면, 유동 자본의 소유자들에게는 그 지역의 자산을 최저 가격에 구매하여 축적과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긴축기간 동안 라틴 아메리카 국가로부터 미국으로의 대규모 자본도피는 그 지역에서 생성된 자본 분파를 고위험의 국내 투자로부터 보호하는데 복무했다. 또한 도피한 자본가들이 자신의 자본을 본국으로 재송환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외채문제는 자산 비용의 하락을 통해 자본가들의 미래의 기회를 확장하기도 했다.9)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페레즈(1988년 당선)는 IMF를 신봉했다(사유화, 공공지출 삭감, 자유화, 탈규제). 경제는 8.6% 수축했고, 빈곤도 급증했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는 인플레이션처럼 지배계급 스스로 해결을 공언했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인구 다수를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빈곤을 심화하고 거대한 빈농들의 도시 이주를 촉진하고 실질임금을 하락시키고 비공식부문 노동자를 팽창시킨 원인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바로 빈민 봉기인 ‘카라카소’였다. 페레즈 집권 3년간 60만의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농업 노동자, 빈농, 중농의 상당수가 감소했다. 비공식부문 노동자 비율은 1980년 34.5%에서 1999년 53%로 급증한 반면 산업 노동자 비율은 감소했다. 1989년 이후 통신, 항만, 석유, 철강, 항공 등이 사유화되면서 외국자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고용이 감소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이 창궐하고 실질임금이 급락하고 사회적 분할선이 심화되었다.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를 동반했고, 부패와 무능은 정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또 연이은 은행 위기로 대량의 자본도피에 직면해야 했다. 통화 가치 저평가는 70.8%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물가 및 환율 통제가 또 다시 부과됐다. 1995년 협상을 통해 또 다시 14억 달러의 IMF 차관이 도입됐지만 이는 더 많은 구조조정, 사유화, 외국인 투자와 함께 유가 하락과 빈곤을 강요하는 것이었다.10) 이것이 바로 1999년 차베스가 승계한 정치적·경제적 상황이었다. 차베스는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전통적인 정치체제에 회의적인 대중들의(56%) 지지를 얻어 1998년 12월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1992년 봉기 실패 및 수감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들에게 제도적 변화를 확신시켰고, 베네수엘라의 난국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회·경제적 변화를 강조했다(차베스는 봉기 실패 이후 군사 쿠데타 대신 제도적 변화 노선을 채택했다). 차베스는 칠레 아옌데 이후 평화적 방식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심도 깊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행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차베스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군대에 대한 영향력 유지), 제도 영역에서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킨다는 기본 전제 하에 변화를 모색한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11) 차베스의 집권과 반혁명, 그리고 개혁 개혁을 위한 제도적 조건의 창출 반대세력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존 과두제가 여전히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국영석유회사의 경영, 입법·사법 권력 및 지방 정부에서 높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했고, 미디어에 대한 독점적 통제와 경제인 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노총(CTV)의 지지, 고위 장교, 카톨릭과의 연계도 굳건했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중간계급과 군부는 차베스 정권에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이었다. 또 베네수엘라에는 강력한 좌파 정당이 부재했다. ‘제5공화국운동(MVR)’은 현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이지만, 그 속에는 기회주의적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포함되었다.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은 대체로 취약했으며 전통적인 지배 정당들에 의해 조종되는 등 자율성이 심각히 훼손된 상태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차베스는 그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구조로서 군부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제도적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에 이어 ‘볼리바리안 헌법’이 제정되었다(1999년). 신헌법은 반신자유주의, 참여 민주주의, 협동조합 및 노동자 자주 관리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과 인간주의와 연대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12) 다음 단계는 정부 내 세력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 등을 선출하는 거대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로써 차베스가 국가기구를 장악한 반면 반대세력은 분할되어 국회에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 결과 2001년 12월 토지법, 어업법, 탄화수소법, 소액대출신용법, 협동조합법 등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었다. 또 반대세력의 역공에 대처하기 위해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써클’을 제창, 차베스 지지자들 스스로 10명 내외로 그룹을 지어 헌법에 대해 주변을 교육하고 구체적인 발안을 취하게 했다.13) 아울러 차베스는 핵심산업인 석유부문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했다. 차베스는 석유 국영회사인 PdVSA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해외자산 매각, 생산량 축소를 통해 국제 유가 상승을 유도하고, 각종 세제 개편을 통해 국고에 대한 PdVSA의 재정 기여도를 제고시키고자 했다.14)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는 재정 증대로 귀결됐고, 이는 다시 빈곤 해결을 위한 재분배 정책으로 이어졌다. ‘볼리바르 2000 프로젝트’라는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볼리바리안 스쿨’이라는 교육 정책은 차베스 집권 초기 개혁의 대표적 사례다(<표1>참고). 반대세력의 역공과 지지 세력의 확대 그러나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는 날에 맞춰 반대세력은 거대한 시위를 조직하고 총파업을 시도했다. 이때 루이스 미킬레나 등 ‘기회주의’ 세력은 차베스의 개혁법안에 반대하며 이탈했는데, 그 결과 여권은 의회 과반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불리한 정치 역관계 속에서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의 발발은 베네수엘라 정치사에 일대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이는 점증하던 반대세력의 정치 투쟁의 효과로서 정부와 반대세력 사이에 총격전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군부 지도자들이 차베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차베스를 일시적으로 축출한 뒤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 의장인 카르모나를 임시 대통령으로 옹립한다(2002.4.11). 이들은 워싱턴의 암묵적 동의 하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의 쿠데타는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에 의해 이틀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2002.4.13).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이웃 국가들도 이번 쿠데타를 헌정파괴행위라며 신임 정부를 불신임했다. 2002년 4월 반차베스 쿠데타의 실패는 오히려 군부 내 차베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반대세력을 숙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울러 쿠데타를 배후에서 지원한 미국과 차베스의 관계가 악화되는 계기이자 반대세력을 분할하고 개혁에 미온적/비판적이었던 중간계급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볼리바리안 써클’은 전국적으로 배가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포진할 수 있었다. 또 농·어민 운동 조직이 결성되고, 반대세력의 미디어 보이콧에 맞선 시청자운동, 도시토지위원회, 의사, 교사, 변호사 등 특수 중간계급 단체 등 새로운 조직이 출현했다. 무엇보다도 CTV에 비판적이었던 노조 지도자들이 혁명 과정을 지지하기 위해 독립 노조 세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차베스를 지지하지만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다양한 좌파 정당들은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해외 좌파 세력 및 진보세력에게 잘 이해되지 않거나 높게 평가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이행 과정이 세계적으로 동조 세력을 얻어갔다. 한편 반혁명 쿠데타의 실패와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언제 발발할지 모를 쿠데타에 대비해서 차베스는 지지세력, 특히 군부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나아가 경제인 단체에 더 친화적인 사람을 경제 부문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반대세력에게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격부여법(Qualifying Law) 일부를 수정하고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반대세력들은 이러한 차베스의 행동을 정부가 취약하다는 신호로 간주하고 2002년 말 - 2003년 초 관리자 총파업/사보타지 등 역공세를 다시 취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강력한 지도력과 석유 부문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반대로 반대세력은 두 번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차베스 정부는 1만8천에 이르는 관리자와 상층 노동자를 파면할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석유수출이 마비되는 등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는 근 8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국회경제자문처에 따르면, GDP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석유 부문이 총 3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비석유부문이 12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2003년 10% 가량 수축했다. 재정부 장관 토비아스 노브레가는 2003년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4/4분기 GDP 성장률이 대략 0% 즈음이고 2003년 인플레이션율은 25% 정도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차베스 정권에 대한 맹렬한 반대 상황에서 경제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16) 국민소환투표 승리와 집권 기반의 안정화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결과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 국민소환투표가 시행된 2004년 8월까지, 1년 반 사이에 사회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경제는 10% 이상 성장하고 있었고 국제 유가는 기록적으로 상승했고 이로 얻어진 소득은 사회복지 지출로 환류되었다. 그 사회적 효과는 대단히 두드러졌고 친차베스 조직은 전국적으로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한편 미주국가기구(OAS) 및 ‘미국의 우방국’은 국내 반대세력과 합세하여 차베스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차베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소환투표를 수용하게 된다. 이에 친차베스 세력은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당시 자생적으로 분출된 차베스 지지 시위 과정에서 도시빈민 등 풀뿌리 민중 운동을 조직했다. 특히 2003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시오네스(Misiones, 미션) 프로그램은 빈민에 대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시도하며 지지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00만에 달하는 콜럼비아 출신 이주자들을 귀화시킴으로써 차베스의 지지층 더욱 확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차베스는 국민소환투표(2004.8.15)에서 60%에 달하는 찬성률로 자격을 재확보한다. <표1> 차베스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15) [%=사진1%] 차베스의 국민소환투표 승리는 반대세력에게 3번째 패배이자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 차베스 정부는 국내적·국제적으로 더욱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제 그 누구도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정당성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거대한 대중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대세력에 대한 신뢰는 더욱 추락했고 이들의 분할은 가속화됐다. 이어 2005년 말 총선에서도 차베스 정부 여당이 승리하면서 지지기반은 더욱 공고화되었다(MVR이 의석의 68% 차지). 빈민의 절대다수(90% 이상)가 차베스를 지지했으며, 이는 라티푼디오와 파산 공장의 몰수, 대규모사회간접투자 등을 가속화하는 조처로 나아갈 동력을 의미했다. 또 차베스의 세 번째 집권을 가능케 할 개헌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인 요인 미국의 대 베네수엘라 저강도 분쟁 현재까지 차베스 정권과의 대결 과정에서 미국은 점진주의적·내재적 정치 전략을 거부하고 최단기간에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베네수엘라 내외부의 전략적 연대 대상을 상실하고 말았다.17) 무엇보다 국내 반정부 야당이나 NGO의 세력이 약화된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현재 미국과 반대세력이 차베스 정권에 대한 즉각적인 전복 시도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우선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는 활동가가 많으며 대중적 기초도 튼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익들이 대중을 동원하고 대중운동을 기획할 이슈가 거의 부재하다. 이는 차베스 정권의 복지 프로그램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경제가 성장 중이며 삶의 질도 높아지고 있고 부패가 억제되고 언론, 출판, 집회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적인 기업 협회도 정부와의 계약으로 점점 번영하고 있으며 여당과의 접촉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NGO나 정당들과 달리 위험한 도박에 매달리지 않는다. 현재 반정부 친미 선전을 수행하는 민간 언론사 정도가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18) 따라서 현재 미 정책결정자들은 베네수엘라 국내 사안에 개입하거나 양분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차베스 정부가 민주적 원칙을 고수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는 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오히려 차베스 정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은 더욱 과감한/호전적인 접근법은 양자간 관계를 멀게 하고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 일부 논자들은 미국이 차베스 정부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가령 마약 수출 등 상호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장기 정책 접근법의 경우, 미국은 차베스가 부상하게 된 정황에 착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정책접근법은 비단 베네수엘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업, 범죄, 정치적 부패에 시달리는 여타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19) 결론적으로, 미 국부무는 ‘민주주의’나 ‘인권’ 마약문제를 빌미로 간섭을 지속할 것을 정책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20) 그 구체적 방안은 ①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를 고발하기 위해 OAS, EU,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고 ②인권 및 기타 NGO들이 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결성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③베네수엘라 정부 기관에 대항하여 기조직된 노동자, 독립 미디어, NGO, 종교단체를 조직할 것 등이다. 이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NED, 라틴 아메리카에 반공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 해외홍보처(USIA)에서 지원하는 자금)이 후원하는 SUMATE와 같은 NGO가 암약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21) ‘플랜 콜럼비아’로 대표되는 일련의 군사작전과 함께 내부 반대세력을 후원, 규합하여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의 종합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저강도 분쟁은 항상-이미 전개 중이었고, 이는 베네수엘라의 급진화를 제약하는 잠재 요소다.22) 자본의 초민족화와 미국 주도의 경제통합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대외적 축을 이루는 ALBA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를 넘어 대안적인 지역통합을 추구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구상한 FTAA 협상이 장벽에 부딪치며 정의와 평등, 연대를 원칙으로 대륙의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차베스의 ALBA 제안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그런데 ALBA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경제통합 시도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메르코수르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 Andean Community of Nation)들과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 South American Community of Natio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23) 게다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구상의 핵심은 공동시장을 직접 활용하는 것보다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매개하지 않은 역내 국가들 간의 호혜평등한 교역이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미국의 경제통합으로부터 이탈하기 위해서는 자본도피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외채위기를 기화로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철저히 잠식당한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일상적인 자본유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초민족적 은행으로 저축을 이전시킨 자본가들은 국내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진 반면 국제금융체제의 재생산에 종속되며 사회가 수탈당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자본도피와 경제 성장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났음을 상기할 때, 자본도피는 역내 국가들의 자주적 경제정책 수립 및 내생적 경제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를 통해 차베스 정부가 ‘오일 달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차베스가 석유산업의 대미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며 민족자본 육성과 투자 및 판로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15% 가량이 베네수엘라 산이고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 중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의 정치-외교적 마찰이 급격한 경제적 단절로 이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주체적 조건과 한계 차베스 개혁 노선의 한계 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는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 요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 개혁의 성격을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보도록 하자. 집권 초기, 차베스 정부는 기존의 외채상환을 지속하고 외채지불정지 같은 조치는 없을 것으로 약속했다(단, 재정지출의 30%에 달하는 외채상환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채재협상(만기연장)을 추진하고, 채무주식화 제도를 도입한다는 요지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음). 또 차베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재산, 특권, 부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도 없을 것이라고 반복했다. 게다가 이들 엘리트들이 정부에 대해 세 번의 비합법적인 정부 전복 시도를 하고도 여전히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베스 대통령이 여전히 민관 협력과 사회복지 지출에 기초한 발전 구상에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극심한 계급 갈등을 거치면서도 최소한 정부 수준에서는 소유 관계 또는 계급 관계의 파열이 없었으며, 외국인 채권자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원유 고객들과의 어떠한 관계 단절도 없었다. 정부는 의료제도, 교육, 중소기업, 그리고 토지개혁과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의 자금지출을 증가시키긴 했는데, 이는 외채 상환, 민간 수출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산업자본가에 대한 저리의 융자라는 재정 계획의 틀이라는 제약조건 안에서만 제시된 것이었다.24) 더욱이 국내적·국제적으로 차베스의 업적 중 상당부분이 석유 수입에 의존한 결과라는 점도 분명하다. 석유로부터 얻는 초과수익이 없었다면 거대기업과 빈곤층 사이의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유부문을 제외하면 사적 투자는 고갈 상태이며 예년 수준으로 유가가 견조하게 하락한다면 베네수엘라의 경제 문제는 매우 심각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가 GDP 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보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상태는 당분간 현재의 유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차베스의 집권 기반도 큰 수준에서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26) 또 차베스의 개혁정책 중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는 토지개혁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01년 11월 “농촌으로 돌아가자”라는 프로그램이 토지및농업개발에관한법률에 따라 시행되었는데 이 법의 목표는 ▲토지소유 규모 제한 ▲농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유휴 토지에 대한 과세 ▲국가 소유의 미사용 토지를 소농 가구 또는 협동조합에 분배 ▲사유의 미경작지, 휴경지를 징발, 재분배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1년 토지개혁법은 전 세계 토지개혁의 역사와 비교할 때 그다지 급진적인 것이 아니었다. 본 법은 대토지소유자가 자기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다고 명시했고, 오직 휴경지나 특정 규모 이상 토지의 경우 그 질에 따라 그 일부가 징수될 수 있을 뿐이라고 규정했다. 가장 모순적인 목표는 토지소유자들에게 시장 가격으로 배상한다는 것이었다. 차베스 정부는 국유지 200만 헥타르를 13만 소농 및 협동조합에 분배했지만 사유지는 전혀 징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 프로그램을 국유지에서 라티푼디오로 확장하려고 하자 대토지소유주와 농민 사이에는 긴장이 팽팽하게 형성됐다.27) 2005년 변경된 토지개혁법은 토지소유자가 소유할 수 있는 유휴지 규모를 개정했다.28) 대규모 유휴 부동산을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토지개혁법은 유휴 부동산에 비례해 과세되어야 함을 규정했다. 이 조치는 대토지소유주의 큰 반발을 샀고, 현재까지 이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지불유예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적 회피와 토지 등기부의 부실(취약한 법적 틀거리) ▲총체적인 법의 불비와 불처벌 관행 ▲취약한 농민 조직 ▲빈약한 농촌 지원 구조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석유경제를 다변화하고 농업을 근본적으로 회상하는 현실적 경로의 문제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상 농민이 토지를 불하받고 농업기술을 습득하더라도 농산품을 판매할 경로를 확보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베네수엘라농업협동조합(CVA)을 설립했지만, CVA가 판매를 대행할 것이라는 보증도 없다. 정부가 베네수엘라 농산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품에 대해 국산품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농산품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가격에 판매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경제적 “네덜란드 병”은 베네수엘라 농업이 현재 GDP 5%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이 문제에 관한한 차베스를 포함한 역대 어느 정권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역대 정권들은 고유가 시절, 예산 외의 잉여수입을 사회 간접자본 확충 또는 비석유산업의 성장기반 마련에 투자하지 않고 단순한 빈민구제정책 등에 집행함으로써 유가 하락시 전 산업이 함께 몰락하는 경험을 되풀이한 바 있다. 경제를 다각화하고자 하는 차베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으로부터 얻어지는 거대한 수익이 베네수엘라 통화가치를 고평가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최근 유가 상승(차베스 임기 동안 4배 상승)은 이 문제를 더욱 격화시켰을 따름이다.29) 차베스 지지 세력의 이념적 불균등성 차베스는 자신의 지도력이 위협받을 때에는 저항적이고 급진적인데 그에 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때에는 유화적이고 중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헌정 질서에 대해 군사 쿠데타와 폭력적인 공격을 선동한 반대세력에 대해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단적인 사례다. 현재 차베스 정권 내에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민족주의,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그룹 등이 자유롭게 경합하고 있다.30) 차베스 자신은 ‘개량주의’, 실용주의 및 혁명주의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들 가운데 온건주의적 또는 보수주의적 분파는 정권의 정당성/합법성을 염려하고 실용주의자들은 재정 건전성/규율, 사회 지출 제한, 합동 공사 및 공공-민간 협력 증진 등을 주장한다. 중앙파는 점진적 개혁, 사회 지출 및 분배 증가,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기간 시설 계약 등을 통해 국가 기관 및 선거구 내에서 정치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좌파의 경우 주로 새로운 계급적 지향의 노조, 지역 및 공동체에 기초한 협동조합, 농민 사회운동 및 특히 노동자 자주 관리 기업 및 운동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좌파는 사회화 과정을 심화하고 지방의 생산적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함으로써 실업/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력의 절반을 감소시킬 것을 주장한다. 동시에 이들은 하향식 후보 선정에 반대한다. 차베스는 좌파와 대중운동에 찬성하지만 거시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무시하지도 않고 정치권력을 제도화하려는 중앙파도 존중한다. 차베스는 이 과정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상이한 입장들을 종합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32) 그런데 정당들의 확산은 명확한 정치적 노선에 기초하기보다는 국가 기구 내에서 입지를 점유하고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 구조를 갖추려는 일부 지도자들의 속성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요소는 베네수엘라 구체제의 오랜 관행이자 악습으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1998년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지자, 다수의 정치 그룹들은 다수파가 되기 위해 차베스와 경합했다. 장관직 획득이나 권력 분점에 대한 희망이 좌절되자, 정당들은 야당 진영을 규합했다. 전국적 수준에서 서로 대치하던 정당들이 지역적 수준에서는 제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앞서 루이스 미킬레나가 이탈하거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 분리된 이유 중의 하나다. 두 번째 요인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이 전반적으로 급진화되면서 정당이 더 이상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98년 차베스가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그가 토지개혁, 어업 및 은행 개혁 법안을 제도화했던 2001년만큼 진보적이지 않았다. 한편 차베스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세력의 통합력도 현재로선 미미하다. 단적으로, 2003년 10월 창설된 ‘코만도 아야쿠소’라는 차베스주의 정당들의 선거 연합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에 차베스는 전국 선거 순회단을 제안했고, 10여명의 정치·사회 활동가로 구성된 단위 성원들은 현장과 가가호호를 누비며 차베스 지지 운동을 전개했다. <표2> 베네수엘라 주요 정당 현황31)

    당명 주요특징 비고
    제5공화국운동(MVR)제1여당1998년 군부 중심 창당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여권 내 우파 2001년 MAS에서 분리
    모두를 위한 조국(PPT) 여권 내 마르크스주의 계열 1997년 급진주의에서 분리
    민주행동당(AD)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1936년 창당
    기독사회당(COPEI)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중도 우파 1971년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에서 분리
    적기(Bandera Roja)




    혁명적 좌파, 무장노선 1970년 혁명적 좌파운동(MIR)에서 분리
    급진주의(La Causa Radical) 급진주의1971년 MAS 및 PCV 출신 활동가들이 결성
    단결(Union)구 차베스 지지세력 1999년 창당
    연대(Solidaridad)루이스 미킬레나 주도 2001년 창당
    혁명사회주의당(PRS)전국노조(UNT) 내 트로츠기 그룹 2005년 창당
    <표3> 차베스 지지-반대 주요 정당
    구분
    차베스지지
    차베스반대

    선거연합
    공동전선

    애국의 기둥(Polo Patriotico, 1998)
    코만도 아야쿠소(2003)

    민주공조
    (CD, Coordinadora Democratica)

    정치적 스펙트럼
    좌파
    군부
    우파
    좌파
    중도
    우파
    정당
    PPT
    MVR
    Podemos
    적기
    급진주의
    단결
    연대
    MAS
    AD
    COPEI
    차베스 개인 카리스마에 대한 과도한 의존 따라서 개혁 과정이 차베스 개인의 지도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편향이 발생했다. 우선 비상 국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 발휘가 요구되는 상황적 논리를 들 수 있다.33)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좌익적 정당의 부재와 자율적 사회운동의 경험이 부재한 결과다. 주요 선거 및 국민소환투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대통령 개인이 전국 순회 캠페인을 통해 직접 지지자를 조직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차베스는 복지정책을 장려하고 구호자금을 수집·전달함으로써 대통령 자신의 지지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 이 과정에서 군부가 대통령 개인 및 대통령의 정치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봉사하는 경향이 대두했다. 차베스는 종종 민중과 군대의 관계를 수정해야 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군이 가진 유용한 자원을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플랜 볼리바르 2000의 사례). 차베스의 개혁정책이 기층 민중들을 대열에 동참하도록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민중들은 스스로 전국 순회 선거운동을 조직, 투표를 조직하기보다는 거리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선거구보다는 현장에 근거해서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전국 순회는 가장 중요한 조직적 형태였다. 이들은 조직적인 정당의 지도 없이도 수십만의 지지자를 규합하고 구체적인 정치적 과제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또 차베스는 정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면서 개혁에 대해 국민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분명 대중 동원의 성공이야말로 차베스가 국내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심화하고 대외적으로 반미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 요소였다. 그런데 대중적 사회운동이 성장하고 또 자율성을 획득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한, 개혁이 차베스 개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은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인민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 구조적·객관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개혁이 위기에 처하고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가 사라지면, ‘개혁’은 지도자 자신의 정치적 승리와 경제정책의 근본적 쟁점의 호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정부도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율성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빈민 정책이 주효하면서 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 이외에 농촌에서도 토지개혁의 확장 및 지주들의 민병대에 반대하는 빈농들의 투쟁이 형성되고 있다(인디안 공동체 운동 포함). 이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UNT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변화 흐름이다. 반대세력의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에 즈음하여 일부 노조지도자들이 CTV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전국노조의 결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석유, 공공, 자동차, 고무 등 전략분야의 많은 지도자들은 UNT에 가입해서 현재 전국적으로 약 100만의 조합원을 확보한 상태다. 많은 현장에서 구체제에 반대하는 새로운 노동조합 활동가 네트워크가 조직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정부에 대한 노조의 자율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서도 UNT 일부에서 전개 중인 노동자 통제와 평의회 건설 흐름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34) <상자1>에서 보듯이 사유화 반대 투쟁, 관리자들의 사보타지에 맞선 공장 점거 등을 경험하며 UNT 소속의 많은 노조와 활동가들이 노동자 통제(공동관리/자주관리)나 평의회 운동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국유 기업에서 사기업으로 노동자 통제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주관리, 공동 관리 및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차베스도 생산을 포기하거나 유기된 산업 및 공장을 몰수할 것을 발표하며 산업 발전, 생산 증진을 위해 노동자들이 관리의 일주체가 될 것을 호소했다.35) 자본가들의 자본유출 또는 사보타지로 유기, 폐쇄된 직장을 점거하고 노동자 스스로 생산과 작업을 통제하는 노동자 통제 또는 평의회의 경험은 역사적으로 위기와 이행의 시기에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소유관계의 변형(사유에서 국유 또는 집단적 소유)을 넘어 노동자들의 대중권력,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극복, 민주주의 등의 쟁점을 제기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통제 또는 평의회 운동이 기존 노조운동의 혁신, 노동자운동과 지역운동의 결합,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화를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박스1%] 한편 차베스 정부의 다양한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 거둔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빈민 대중운동이 고양되고 있는가의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온정주의적 방식으로 분배된 복지가 정치적 능동성을 자동적으로 고양하지 않으며 복지정책의 수혜자들은 아래로부터 투쟁하는 것보다 위로부터 시혜를 얻는데 더 익숙해졌기 때문에 수동적일 가능성이 상존한다. 미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기회가 확대되고 도시토지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빈민들의 자기 조직화, 자기 통치의 가능성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베네수엘라 농민 조직이 취약한 이유는 농업 경제의 붕괴에 기인한다. 따라서 차베스 정부의 토지개혁을 급진화할 대중적 세력이 미미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2001년 토지개혁법 시행 후 현재까지 약 130명의 농민이 대토지소유주의 사병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토지분배의 결과로 협동조합이 맹아적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농민 조직의 성장 여부는 향후 농업경제의 회생과 토지개혁의 급진화를 좌우할 변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 여성운동은 차베스 집권 이후 몇 가지 주요 양성 평등 법안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여성적 이슈가 여전히 부차적으로 다뤄지는 문제 ▲여성운동이 제도화되면서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약화되는 문제 ▲1990년대 쟁취한 법률적 성과를 사회운동적으로 확산하는 문제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36) 사회운동들이 자율성을 확산하고 대중적·지역적 토대를 확장하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도시와 농촌, 공장과 지역에서 자주관리 운동, 평의회, 협동조합 등이 출현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지표다. 향후 차베스 정부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보전과 사회경제적 ‘현상유지’를 위한 실용적 방편을 찾는 방향으로 경도될 것인가는 결국 대중적 사회운동의 역량을 어떻게 신장시켜나갈 것인지에 달린 문제라 할 수 있다. 결론 차베스-베네수엘라는 ▲개헌 등을 통해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재분배 정책을 중심으로 제도적·대중적 기반을 다진 집권 초기를 거쳐 ▲쿠데타·총파업/사보타지 등 구 지배세력의 반격에 처한 수세기를 지나 ▲국민소환투표와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대내외적으로 볼리바리안 프로세스가 가속화되는 국면을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베스는 미제국주의에 반대하고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규합한 것이 사실이지만 ‘볼리바리안 혁명’은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많다.37)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확산과 이에 맞선 사회운동의 출현이 항상적인 정치과정이라면, 과거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하는 가운데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하지 않은 채 제한적 코포러티즘을 시도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침식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동원했다. 오늘날 ‘볼리바리안 혁명’이 인민주의적 전통으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유권과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 및 토지개혁의 급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율성이 적극적으로 신장될 때만 가능하며, 따라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자통제, 평의회 운동 및 빈민, 농민,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에 주목할 수 있다. 둘째, 1960-70년대 사회주의적 지향 속에서 급진화된 군사조직, 정당, 노동조합 및 이를 포괄하는 전선체 등은 대개 군부 독재와 미국의 ‘저강도전쟁’으로 압살 당한다. 지금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은 상수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차베스가 시도 중인 군사노선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1960-70년대 좌익적 사회운동이 좌초한 원인을 ‘무장’ 여부에서 찾기보다는 반혁명에 맞설 수 있는 대중적 토대의 문제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쿠바나 칠레의 사례처럼 노동자운동 등 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사회변혁의 전망을 갖추고 그 계획을 물질화시켰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1980년대 평화협상을 거쳐 선거정당으로 전환한 기존 사회운동 세력은 1990년대를 거쳐 선거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게 되었고, 일부는 NGO로 흡수되었다. 이들은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금융기구와 초민족적 법인자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할 것을 주장하며 ‘사회운동의 자율적 요구와 상호조정’을 참조하기보다는 선거승리를 위한 캠페인 기술에 전도되었다. 이에 반해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퍼러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38) 이런 점에서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과 ALBA 제안에 대한 환호는 그 자체로 정당한 반응이지만 일견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향후 세계사회운동이 연대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대안’에 대한 전망과 역량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해 나갈 때만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차베스-베네수엘라가 구조적·객관적 제약을 극복하고 진정한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질문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것이다. 1) 류미경,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 연대를 확장하자! -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으로 본 대안세계화 운동의 과제」, 『월간 사회운동』 통권 62호(2005.3) 참조. 본문으로 2) 대안세계화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에 대해서는 임필수, 「세계화와 세계사회운동 - 대안세계화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월간 사회진보연대』 통권 37호(2003.7-8) 참조. 본문으로 3) James Petras (2004), "The politics of imperialism: Neoliberalism and Class Politics in Latin America", http://www.rebelion.org 본문으로 4) 칠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민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대표적 사례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기민당과 사회당은 피노체트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성과를 인정하고 정치적 타협을 수용, 1990년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간 제휴’ 연정이 성립된다.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기민당과 사회당이 참여한 에일윈 정부는 여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형태로 의회와 정당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지속하게 된다. 본문으로 5) Gregory Wilpert (2005), "Land for People not for Profit in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 본문으로 6) 1937년 당시 토지 소유는 1000ha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대농장에 집중됐다(4.5%가 88.8% 소유). 10ha 이하의 토지를 소유한 소농은 전체 토지 소유자의 57.7%를 차지한 반면 0.7%의 농지만 소유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7) 5% 대지주가 75% 토지를 소유하고, 75%의 소토지소유자가 고작 6%의 토지를 소유했다. 농지의 경우 더욱 심각한데 2%의 인구가 6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휴경지다. 본문으로 8) Richard Lapper (2005), "Venezuela and the Rise of Chavez: A Background Discussion Paper", http://www.cfr.org 본문으로 9) 제임스 페트라스 외, 「라틴 아메리카의 초민족적 자본가와 외채 문제: 계급 분석적 시각」, 다이앤 엘슨 외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페미니즘의 시각』, 공감, 1998 참조. 본문으로 10) C.P. Pandya and Justin Podur (2004), “The Chavez Government's Economic Policies”, ZNet, http://www.zmag.org 본문으로 11) Marta Harnecker (2004), "After the Referendum: Venezuela Faces New Challenges", Mothly Review, Vol. 56, No. 6. 본문으로 12) 그 주요내용은 ▲국호 변경 ▲양성 평등 참여 ▲법치와 정의 ▲인권과 국제조약 준수 ▲여성의 권리 신장 ▲정보의 자유 ▲정당 관련 국고 보조 금지 ▲국민투표 ▲사회·교육·문화·경제적 권리 ▲원주민의 권리 ▲환경권 ▲삼권분립이 아니라 오권분립(입법행정사법에 선거관리위원회, 시민 또는 공공의 권력을 추가) ▲입법부/대통령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 ▲시민불복종 등이다. 신헌법에 관해서는 Gregory Wilpert (2003), "Venezuela's New Constit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3) ‘볼리바리안 써클’에 관해서는 Alvaro Sanchez (2003), "Bolivarian Circles: A Grassroots Movement",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4) 2000년 2월 PdVSA의 중장기 사업계획(2000-2009 Business Plan)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은 ▲국내 민간자본 형성 강조(석유산업에 대한 민간부문 참여 확대) ▲생산구조 개편(가스 및 경중질유 비중을 제고) ▲생산성 및 정유산업 활성화를 위한 수출 경쟁력 제고 ▲화학 및 유화산업 개발 및 생산성 향상 ▲석유정책의 국제적 협력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본문으로 15) C. P. Pandya and Justin Podur, 앞의 글 본문으로 16) 차베스 정부의 빈곤정책과 관련해서는 Gregory Wilpert (2003), "Mission Impossible? - Venezuela's Mission to Fight Poverty",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7) 이에 미국이 거듭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쟁점인데, 이에 대해서 대략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네오콘의 맹동성. 2001-02년, 반테러리즘이 발호하는 가운데 미국은 차베스 정권을 지체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네오콘은 베네수엘라 군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언론 및 기업 엘리트들의 권력을 과신한 것이다. 둘째, 이라크전과 차베스와 OPEC 주도국인 이라크·이란 간 결속으로 불어 닥친 석유위기가 미국의 간섭을 촉진했다. 셋째, 차베스가 FTAA에 반대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ALBA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차베스의 복지정책과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석유 외교가 역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잠식하는 주요 원인이자 ‘좌파의 중심’이라고 간주했을 수 있다. 본문으로 18) James Petras (2005), "The Venezuelan Election: Chavez Wins, Bush Loses (Again)! Now What?", http://www.counterpunch.org 본문으로 19) Mark P. Sullivan (2005), "Venezuela: Political Conditions and U.S. Policy",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for Congress, http://www.state.gov/ 본문으로 20) U.S Department of State Bureau of Public Affairs, "The State of Democracy in Venezuela" (2005.12.1) 참조. 본문으로 21)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반(反)차베스 단체들에 수십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이 중에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베네수엘라노동자연맹(CVW)도 포함돼 있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2002.4.25). 이 신문은 이 자금이 NED에서 제공된 것이라며 지난해 반차베스 단체에 대한 지원액은 전년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87만7천달러(약 11억 4천만원)였다고 밝혔다. NED는 AFL-CIO 산하 대외관계기구인 ‘국제노동연대를 위한 아메리카 센터’에 15만4천3백7십7달러를 지원했는데, 전액이 베네수엘라의 노동권 향상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CTV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 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외관계 외곽조직들에 상당 액수의 자금지원을 했으며 양당은 이들 자금을 차베스 비판세력들의 워싱턴 방문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본문으로 22) 지금도 미국은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접경지대에서 - 이 곳은 서반구 최대의 수자원 보유지역이기도 한데 -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군의 파라과이 주둔을 정당화한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과이 군기지는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매장지로부터 약 200km 떨어진 곳이다. 이 가스전은 미주대륙 전체에서 2번째로 큰 규모다. 미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서반구에서의 차베스의 영향력이 지닌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테러”라는 수사를 즐긴다. 한편 미 플로리다에 본부를 둔 선교단체가 베네수엘라 남부와 브라질 아마존 접경의 고립된 인디오부족 선교를 위해 대규모 시설물을 설치한 데 대해 차베스는 ‘CIA에 의한 침투’라고 규정하고 이들 단체들을 향해 90일 내에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지역에서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 벤자민 당글, 「미군의 파라과이 진주」, 프레시안(2005.10.17) http://www.pressian.com 참조. 본문으로 23) J. F. Hornbeck (2005), "A Free Trade Area or the Americas: Major Policy Issues and Status of Negotiation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for Congress, http://www.state.gov 본문으로 24) James Petras (2004), "President Chavez and the Referendum: Myths and Realities", http://www.rebelion.org (국역: 『월간 사회진보연대』, 통권49호(2004.10)에 수록) 본문으로 25) 국제 원유가격이 폭락할 경우 베네수엘라 경제가 항상 침체와 위기에 봉착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거시경제안정화기금(FIEM) 마저 정부가 소진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위기관리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어 우려스럽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본문으로 26) Richard Lapper, 앞의 글. 본문으로 27) Seth R. Delong (2005), “Chavez’s Agrarian Land Reform: More like Lincoln than Lenin”, The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http://www.coha.org 본문으로 28) 2001년 법에 의하면,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성이 낮은 휴경지의 최대 면적은 5000ha였다. 2005년 토지개혁법은 생산성이 높은 휴경지 토지의 경우 100ha에서 50ha로, 생산성이 낮은 휴경지의 경우 5000ha에서 3000ha로 제한했다. 본문으로 29) Gregory Wilpert (2005), "Land for People not for Profit in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 본문으로 30) 현재 여권을 구성하는 주요 정당은 ‘제5공화국운동(MVR)’ 및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 - 사회 민주주의를 향하여’), ‘조국을 모두에게(PPT)’ 등이다. MVR은 차베스 본인이 1998년 대선을 위해 군부를 중심으로 창건한 정당으로서, 정치적 스펙트럼을 불문하고 우선 차베스 지지자를 규합한 성격을 띤다. 당원 중에는 더러 구체제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내 민주적 장치나 안정적인 평당원 구조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odemos’는 MAS(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에서 기원하며 차베스 지지자 중 합리적인 부위를 자처하는 세력이다. 유럽적 스타일의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Podemos’는 차베스 정부의 우파를 대표한다. PPT는 선거인단 수로는 가장 취약하지만 노동, 교육, 문화 등 다수의 내각을 책임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는 PPT는 ‘급진주의’로부터 분리되었다. PPT는 스스로를 ‘운동중의 운동’으로, 또 노조운동(자율 노조)과 청년운동(‘구국 청년’), 여성운동(마누엘리타 사엔스 운동) 및 지역 공동체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 Edouard Diago (2003), "Venezuela’s political forces", IV 353,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참조. 본문으로 31) James Petras (2005), "The Venezuelan Election: Chavez Wins, Bush Loses (Again)! Now What?", http://www.counterpunch.org 본문으로 32) 베네수엘라의 전반적인 정당 분포와 관련해서는 "Leftist Parties of the World", http://www.broadleft.org 참조. 본문으로 33) 일례로 베네수엘라 의회는 1999년 3월 경제난 극복을 목적으로 차베스 정부가 출범 직후 상정한 일련의 비상경제조치법안(일명 Enabling Law)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6개월간 의회의 추가 승인 없이 ▲금융거래세 도입 및 소득세법 개정 등 세제 개편 ▲국가 행정 조직 개편 ▲비상금융법안 개정과 같은 경제 조치들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1999년 제정된 신헌법은 불신임투표를 포함한 국회해산권, 국가긴급조치 선포권, 내각임명권, 대통령 임기의 연장(5년에서 6년으로) 및 이에 따른 즉각적인 재선 허용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본문으로 34) 베네수엘라 노동자운동에 대해서는 Daina Green and Barry Lipton (2004), "Report on Venezuela's Trade Union Situation", http://www.venezuelananaysis.com 참조. 본문으로 35)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의 자주관리와 평의회 흐름에 대해서는 Marta Harnecker (2005), "Joint Responsibility and Confidence in Venezuela’s Worker Co-Managed Industries", The challenges of congestion: Cadafe and Cadela's experiences, Popular Library, Colection Testimonials Nº2, La Burbuja Editorial, Caracas, April 2005, http://www.venezuelananaysis.com; Bill Burgess (2005), "On the road to a new society: Venezuelan workers debate workers control of industry and government enterprises", http://www.socialistvoice.com; Rafael Rodriguez (2005), “Co-management” in the Alcasa aluminium factory, IV 371,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참조. 본문으로 36) 베네수엘라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Sarah Wagner (2005), "Women and Venezuela’s Bolivarian Revol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37) ‘볼리바리안 혁명’이 페미니즘적 정치, 반인종주의적 정치, 심지어 반자본주의적 정치에 대해서도 성격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Michael Albert (2005), "Venezuela's Path", ZNet, http://www.zmag.org 참조. 본문으로 38)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역사에 대한 개괄로는 James Petras, "Latin America: The Resurgence of the Left," NLR, no. 223, 1997; James Petras and Timothy F. Harding, "Introduction", Latin America Perspective, Issue 114, Vol. 27 No. 5, September 2000, pp.3-10. (국역: 『월간 사회운동』 통권 57호(2005.9)에 수록) 참조. 아울러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사회운동이 선거주의로 전환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는 James Petras, (2004), "Class-based Direct Action versus Populist Electoral Politics", http://www.rebelion.org 참조. 본문으로

  • 2006-04-05

    볼리바리안 혁명과 대안세계화운동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서론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분출 중인 사회운동과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좌파’ 정권의 관계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특히 이 논란의 중심에는 본 포럼을 직접 지원하며 미 제국주의에 맞서 역내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단결할 것을 호소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위치했다.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효과적으로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포럼의 마지막 날 행사로 열린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사회운동총회가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당초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의 ‘정당 및 무장조직 배제 원칙’ 논란이 전진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1) 오히려 이러한 쟁점 이동은,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이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정당과 대중운동이 인민주의로 변질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하지만 역으로 ‘운동의 운동’ 또는 ‘공간’으로서 규정된 세계사회포럼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실현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결과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복합적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 자체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기 위한 이론적·정치적 차원 전반의 기획을 요청하기 때문이다.2) 이에 오늘날 차베스-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향후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우선 라틴 아메리카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 조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다음으로, 일종의 지역적·민족적 특수성으로서 제국주의의 지배와 인민주의적 전통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출현과 대응, 변모를 살펴본다. 이 속에서 차베스 정권의 성격 및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정치학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이념이 안정적인 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세력은 의회정치 대신 과두제적·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 의존했다. 동시에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를 표방했던 좌익적 사회운동은 폭압적으로 억압됐다. 그 결과 사회개혁과 하층계급의 사회적·정치적 통합은 권위주의적·위계적 분할과 포섭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빈번하게 출현하는 인민주의는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불안정을 표현한다. 사회경제적 불균등성과 극단적인 불평등은 인민주의의 조건이 되며 정치제도의 취약성은 ‘반정치의 정치’에 기여한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출현과 변모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동에 대한 지역의 대응양상, 계급구조의 변화와 지배체제의 변동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전통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도시화와 제한적인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의 뿌리 깊은 유산을 극복하지 못했다.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전통적인 토지귀족의 지배력은 지속되었고 독자적 군대를 보유하고 대사제이자 행정관의 역할을 하는 토지귀족이 지방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국적 차원에서는 대중적 참여를 제한하는 토지귀족의 ‘과두제적’ 의회제가 확립되었고, 국가는 지역 영주들의 연맹체로서 권위적·전제적 성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토지귀족의 자유주의는 민족적 통합이나 민주주의와는 대비되며, 이들은 영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연고주의적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 유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쟁-세계시장의 붕괴-1차 상품 수출의 위기에 따라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에서 경공업 중심의 초보적 수입대체 산업화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토지귀족의 지배력과 과두제적 픽망ㅔ〉?약화되었다. 또 국내시장, 국가, 도시의 팽창으로 연고주의라는 전통적인 정치적 통제방식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토지귀족은 새로운 부유층을 상류사회의 하층으로 포섭하는 한편, 기존의 정치제도와 정당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의 중산층, 노동자, 빈민을 배제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 인민주의는 대공황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급속히 성장하여,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1940-50년대에 확립된 인민주의 정권은 미국의 ‘발전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되기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전략은 ‘자유 세계주의’라는 냉전의 틀 내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데 집중했다. 반면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지역 차원의 냉전 질서가 가시화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는 상대화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관료들은 미국에게 발전원조를 호소했지만 마셜플랜은 구상되지 않았고, 발전의 쇼케이스로 수출지향적 산업화가 지원된 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주로 미국계 법인자본의 직접투자를 위한 우호적 조건 형성이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국내외적인 정치·경제적 권력의 공백과 교착 상황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띤다. 인민주의는 기존의 발전전략과 통치구조에 대한 반대를 중산층,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요구와 결합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은 새롭게 형성된 국내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계급의 제휴를 형성하고 토지귀족과 타협함으로써 국내산업을 중심으로 한 민족적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특수한 제휴형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중적 동원이 추가되어야 했다. 즉 인민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세력 및 그와 결탁한 토지귀족 세력, 자유무역과 과두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성장했다. 이들은 제국주의로 변질된 19세기 자유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아 열정적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족적 갱생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민은 노동자·농민·빈민과 같은 계급적 범주를 초월한 유기체적 통일성으로 이상화된 주체였다. 그 결과 인민은 기존의 연고주의에서 배제된 도시 노동자, 프티 부르주아, 농촌 출신 이주자, 학생, 지식인, 사병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인민주의적 동원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는 인격화되고 정치는 인민의 지도자와 적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민주의는 결코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다. 혁명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소유권과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으며 토지귀족과 타협했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적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독창적인 정치적·문화적 동원방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인민주의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확대된 국가기구로 통합했다. 노조는 국가의 권위 하에서 자본가조직과의 기능적 조정을 통해 계급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위계적 질서 내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고정된 지위를 제공하는 코포러티즘 기구로 전락했다. 노동자는 인민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가에 의해 승인된 틀 내에서 임금교섭과 복지혜택, 인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선거권을 획득했다. 미국 헤게모니의 형성과 군부독재의 폭정 195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직접투자가 거대하게 이뤄졌고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법인자본과 초민족화된 국내 부르주아지는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이에 기초한 자본축적은 더 이상 인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울러 196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내외의 정치상황도 인민주의의 토대를 해체하는 요소였다. 1955년 반둥회의로 상징되는 비동맹운동의 확산과 1959년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민족적·민중적 발전의 요구가 증가되고 있었다. 인민주의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도 증가하고 일부에서는 게릴라 무장 투쟁도 출현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시적인 혁명의 고조”는 1940-50년대 인민주의와 비교할 때 새로운 중요한 특징을 반영한다. 첫째, 혁명적 고조는 이전 시기의 민족적 인민주의를 넘어 강력한 급진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했다. 둘째, 이들은 게릴라, 대중봉기, 총파업 등 의회 외부적 투쟁과 연계했다. 셋째, 이들은 이전의 프티 부르주아 선거주의자들과의 연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넷째, 새로운 혁명적 운동이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연안 국가의 강탈적·권위적·자유주의적인 수출지향적 체제와 남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인 수입대체적 체제에 대해 동시에 도전했다. 다섯째, 혁명주의적 물결의 기원은 각국의 특수성에 기반했지만, 미국의 반봉기 전술에 대한 투쟁과 함께 특히 쿠바혁명에 의해 창안된 수렴점을 공통적인 혁명적 ‘참고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3) 이에 미국은 1961년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및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전술적으로 워싱턴은 다중적 정책을 적용했다. 가령 ‘진보를 위한 동맹’을 통한 개량의 쟁취,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반봉기, 군사쿠데타 등 고도의 군사 전략, 해외 군대 파견과 군사적 원조, 프로그램의 이식 등이 그것이다. 혁명을 제국주의적으로 봉쇄하려는 이러한 노력에서 국내 프티 부르주아 선거 지도자들이 주된 역할을 수행되었다. 그러나 다중적 전술의 시기는 결국 군사적 선택이 우위를 점하며 막을 내리게 된다. 미국의 전술 변경은 혁명적 물결을 봉쇄하는 데 있어 민간 선거 체제와 개량에 대한 워싱턴의 의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워싱턴은 일련의 군사 쿠데타를 후원하는 쪽으로 방향 선회하며 혁명세력의 부상을 제거하고 민족주의적-인민주의적 개량을 역전시켰다. 아울러 ‘혁명적·국제주의적’ 쿠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강화되었고 역내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동반하는 반공과 냉전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결국 좌파를 고무할 수 있는 인민주의 정부를 제거하기 위해 군부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군부-반혁명-권위주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아메리카에서 군부의 정치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다만 이 시기의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토지귀족과 보수주의 정당에 권력을 이양한 1930년대와 달리,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사회·경제적 전망 속에서 군사혁명위원회를 통해 장기 집권한다는 차별점이 있다. 또 미국은 군사정부를 관료적 능력과 기술적 역량을 갖춘 현대화의 주도세력으로 간주했다. 이 시기 군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인민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군부는 민족경제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개방하고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진출을 장려했다. 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추진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혜를 철회했다. 임금하락, 장시간노동, 노조탄압, 비공식부문 노동자·빈민에 대한 탄압은 자연스러운 산물이었다. 미국은 군사 독재 시기 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위한 법적·이데올로기적·제도적 기초를 창조했다. 미국의 지배를 위한 정치·경제적 파라미터는 군사 정권이 새로운 대중적 사회-정치적 운동이 부상하는 1980년대 초 쇠퇴할 때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의 제국주의는 단순히 군사적 지배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인민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사회주의 정당, 즉 ‘시장 해법’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정치적으로 추방했다. 제국주의 세력은 대중들이 군사 정권을 위기로 몰아붙일 때 이들이 정치에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치하는 한편 이들을 대체할 미래의 선거 정당을 후원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선거주의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복귀가 제국주의적-군사 국가가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파라미터 내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前인민주의, 前사회주의, 前민족주의 선거 엘리트들은 반독재 운동을 해체하고 오히려 선거 정치의 물꼬를 텄다. 군부가 신자유주의의 기초를 닦았다면 민간 선거주의자들은 모든 전략 부문에 대한 집단적인 사유화, 총체적인 탈규제, 영속적인 부채 지불, 부의 유출과 역진 등을 구조화했다. 외채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한편 1980년대에 이르러 수출주도 산업화의 한계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제한적이었으며 오히려 역내에서 활동하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또 역내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채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높은 경제적 비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유가상승과 고금리·고달러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하고 생산마비, 자본도피, 대중적 소요가 발생했다. 1982-83년 외채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는 만성적 경제위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1985년 ‘베이커 플랜’을 통해 재정긴축을 전제로 외채의 상환시기를 재조정할 것을 제안하고 수출을 통한 외환확보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역자유화를 권고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대중적 불만과 사회적 소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둘러싼 논쟁이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변화와 민주화 운동세력의 분할, ‘책임있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원 등이 모색되었다. 즉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해 군부의 퇴진과 자유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집권이 권고된 것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관리적 관념의 출현을 의미한다. 군사정부에서 이뤄진 경제적 자유화는 정치적 자유화를 필요로 하고 정치적 자유화는 민주화와 동일시되거나 경제적 위기를 관리할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절차와 규칙으로 환원되거나 탈정치화되고 순수한 기술적 문제로 파악된다. 동시에 민주적 민간정부의 책임성이 강조되고 문민화의 구체적 경로로서 군부와 책임있는 야당의 협상이 권장되기에 이른다. 아르헨티나(1983년), 칠레(1990년) 등 군사정부의 퇴진 또는 문민정부로의 ‘협상된 이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4)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대다수 국가들은 외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협상된 이행’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보수정당, 분명한 정치적 전망이 결여된 중도좌파 등 군부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의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문민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통치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의 의미는 자연스레 축소되었다. 기술관료들은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지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경제엘리트와 정치엘리트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편 경제위기는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자들의 이질성을 심화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자율성을 침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가치절하가 이뤄지고, 정치는 부패한 직업정치가와 귀족집단의 이기적인 게임으로 간주되었다. 정치엘리트와 노조 등 기존제도의 수혜자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누적되고 ‘원한의 정치’가 득세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외채위기를 거쳐 금융세계화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군부와 전통적 인민주의 세력은 무능을 노정한다. 기존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함으로써 내적 위기를 경험하고 대중적 토대를 상실했다. 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들도 독자적인 이념을 상실하고 내적 분할을 경험했다. 결국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다(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로,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수엘라의 페레즈).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은 ‘반정치의 정치’를 통해 경제적 위기와 계급적 갈등을 기존의 정치와 정치 엘리트, 정당과 의회제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민족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한다. ‘충격요법’의 과감성은 전통적 인민주의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와 자본가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긴축정책, 부채-주식 전환, 국유기업 사유화, 남미공동시장, 북미자유무역협정 등). 이는 곧 광범위한 실업·빈곤을 야기하고 실질임금 하락,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며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조건 석유경제의 형성과 농업의 위기, 도시화 19세기 초 식민 치하 베네수엘라는 광물 자원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코코아, 커피, 설탕, 면화, 담배 등) 여전히 농업이 주된 경제 활동이었고 최소한 70%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다. 하지만 19세기 내내 토지는 독립전쟁(1821-39년)에 참가했던 강자의 수중에서 분할, 점유되었다. 이러한 불공평한 토지 분배에 맞서 독립 후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에세키엘 사모라), 불공평한 토지 분배 구조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그 후 구스만 블랑코와 같은 군부 지도자들은 충직한 부하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는데, 이 점에서 가장 악명 높은 후안 빈센트 고메스와 같은 독재자는 막대한 토지를 개인 소유로 전유했다. 고메스 독재 치하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농업경제에서 천연 자원 개발(특히 석유) 기반 경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국적으로 농업을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고메스 독재가 1935년 막을 내리자, 농업은 전체 노동력의 6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GDP의 단 22%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최대 석유수출국이 되었다. 석유 생산이 점점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경제학자들이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북해 천연가스/원유 발견이 네덜란드 경제에 끼친 효과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야기되었다. ▲석유 수출로 인한 해외 통화 유입 ▲구매력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국산품에 비해 수입 공산품·농산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결과 수입량이 증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농업 생산 파괴 산업 발전 저해라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5) 1960년에 이르자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단 35%로 급감했다(1990년에는 12%). 이로써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네덜란드 병”의 또 다른 결과는 베네수엘라가 역내에서 유일한 농산물 수입 국가이자 GDP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소인 국가로 전락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급격한 농업의 쇠락은 도시화가 굉장히 급속히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도시는 수용 가능한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결과 도시 변두리에 거대한 슬럼/바리오가 형성되었고, 농촌 쇠락에 조응하는 슬럼/바리오 규모의 확대는 1960-70년대 석유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증대한 결과였다. 1980-90년대 20여 년 동안 석유 수익이 꾸준히 하락하자 국가는 재분배 조치를 통해 빈곤의 충격을 완화할 수 없었고 대신 사회적 소비를 삭감하는 극약처방을 내세웠다. 한편 전반적인 농업의 쇠락 이외에도, 베네수엘라 농민들은 극심한 토지 소유 불평등에 처했다.6) 국가가 보증하는 토지개혁은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가 막을 내리고 1958년 자유 민주주의가 도입된 직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토지개혁법(1960년)에 따라 전국농업연구소가 설립되고 20만 이상의 가구에 국유지가 분배되었는데, 차기 정부는 연구소와 토지개혁 강령을 다시 무시했다. 1970년대 석유 호황기에 “네덜란드 병”이 심화되면서 농산물은 이윤이 남지 않았고, 도시화는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토지개혁 수혜자의 1/3이 탈락했고, 수혜자의 90% 가량이 온전한 토지 소유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필연적으로 토지 소유권의 개혁을 필요로 했다. 즉 토지소유자의 수중이 아닌 국가에서 소농으로 소유권의 이전이 요구된 것이다. 1997년 농업 인구조사에 따르면, 토지분배는 1960년 이전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상황에 머물렀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를 위한 시장이 확대되고(종종 투기 목적으로 토지 매매) ▲대토지소유자들이 농업노동자/소작농을 내쫓는 경향이 증가하고(신기술의 도입 또는 농산물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자 생산을 포기한 결과로, 이는 결국 도시화에 기여), ▲토지소유자들이 점점 개인보다는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계속 진행되었다. 단적으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인구 중 9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1970년 ‘오일 붐’의 결과로서, 그 이후에도 정부는 석유산업에 전적으로 집중했으며 이촌향도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석유로 인한 소득은 대부분 도시의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 투자되었고, 중산층, 백인에게 돌아갔다. 이는 농업 기반을 축소시키고 경제에 대 혼란을 가져왔다(OPEC의 공동 창설자 후안 파블로 알폰소는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라고 표현했다). 푼토피지협약 체계와 경제 위기 푼토피지협약(1958년)으로 건설된 양당 협조 체제에 대한 반대가 볼리바리안 프로젝트의 시초를 구성한다. 대부분 군사 독재 하에 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건전하고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는 제국주의적 시각과 달리 차베스는 이 체제를 사회적으로 배타적이고 부패한 체제로 규정했다. 가령 사회민주적 경향 하에서 기조직된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행동당(AD)과 베네수엘라 노총(CTV)의 사례가 그것이었다.8) 푼토피지협약 이후 베네수엘라 지배계급은 중동과 유사한 실책을 저질렀고, 전국민을 석유로 혜택을 받는 자와 고통 받는 자로 양분했다. 국제 유가의 하락과 국제이자율의 상승은 석유 수출 의존적이고 해외 금융 도입 의존적인 국가 경제에 침체를 가져왔다. 특히 198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전반의 외채위기로 인한 긴축이 장기화된 결과 많은 국가들에서 자산의 평가절하가 일어났다. 긴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난을 안겨 주는 반면, 유동 자본의 소유자들에게는 그 지역의 자산을 최저 가격에 구매하여 축적과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긴축기간 동안 라틴 아메리카 국가로부터 미국으로의 대규모 자본도피는 그 지역에서 생성된 자본 분파를 고위험의 국내 투자로부터 보호하는데 복무했다. 또한 도피한 자본가들이 자신의 자본을 본국으로 재송환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외채문제는 자산 비용의 하락을 통해 자본가들의 미래의 기회를 확장하기도 했다.9)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페레즈(1988년 당선)는 IMF를 신봉했다(사유화, 공공지출 삭감, 자유화, 탈규제). 경제는 8.6% 수축했고, 빈곤도 급증했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는 인플레이션처럼 지배계급 스스로 해결을 공언했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인구 다수를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빈곤을 심화하고 거대한 빈농들의 도시 이주를 촉진하고 실질임금을 하락시키고 비공식부문 노동자를 팽창시킨 원인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바로 빈민 봉기인 ‘카라카소’였다. 페레즈 집권 3년간 60만의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농업 노동자, 빈농, 중농의 상당수가 감소했다. 비공식부문 노동자 비율은 1980년 34.5%에서 1999년 53%로 급증한 반면 산업 노동자 비율은 감소했다. 1989년 이후 통신, 항만, 석유, 철강, 항공 등이 사유화되면서 외국자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고용이 감소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이 창궐하고 실질임금이 급락하고 사회적 분할선이 심화되었다.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를 동반했고, 부패와 무능은 정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또 연이은 은행 위기로 대량의 자본도피에 직면해야 했다. 통화 가치 저평가는 70.8%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물가 및 환율 통제가 또 다시 부과됐다. 1995년 협상을 통해 또 다시 14억 달러의 IMF 차관이 도입됐지만 이는 더 많은 구조조정, 사유화, 외국인 투자와 함께 유가 하락과 빈곤을 강요하는 것이었다.10) 이것이 바로 1999년 차베스가 승계한 정치적·경제적 상황이었다. 차베스는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전통적인 정치체제에 회의적인 대중들의(56%) 지지를 얻어 1998년 12월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1992년 봉기 실패 및 수감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들에게 제도적 변화를 확신시켰고, 베네수엘라의 난국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회·경제적 변화를 강조했다(차베스는 봉기 실패 이후 군사 쿠데타 대신 제도적 변화 노선을 채택했다). 차베스는 칠레 아옌데 이후 평화적 방식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심도 깊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행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차베스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군대에 대한 영향력 유지), 제도 영역에서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킨다는 기본 전제 하에 변화를 모색한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11) 차베스의 집권과 반혁명, 그리고 개혁 개혁을 위한 제도적 조건의 창출 반대세력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존 과두제가 여전히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국영석유회사의 경영, 입법·사법 권력 및 지방 정부에서 높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했고, 미디어에 대한 독점적 통제와 경제인 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노총(CTV)의 지지, 고위 장교, 카톨릭과의 연계도 굳건했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중간계급과 군부는 차베스 정권에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이었다. 또 베네수엘라에는 강력한 좌파 정당이 부재했다. ‘제5공화국운동(MVR)’은 현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이지만, 그 속에는 기회주의적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포함되었다.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은 대체로 취약했으며 전통적인 지배 정당들에 의해 조종되는 등 자율성이 심각히 훼손된 상태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차베스는 그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구조로서 군부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제도적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에 이어 ‘볼리바리안 헌법’이 제정되었다(1999년). 신헌법은 반신자유주의, 참여 민주주의, 협동조합 및 노동자 자주 관리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과 인간주의와 연대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12) 다음 단계는 정부 내 세력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 등을 선출하는 거대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로써 차베스가 국가기구를 장악한 반면 반대세력은 분할되어 국회에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 결과 2001년 12월 토지법, 어업법, 탄화수소법, 소액대출신용법, 협동조합법 등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었다. 또 반대세력의 역공에 대처하기 위해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써클’을 제창, 차베스 지지자들 스스로 10명 내외로 그룹을 지어 헌법에 대해 주변을 교육하고 구체적인 발안을 취하게 했다.13) 아울러 차베스는 핵심산업인 석유부문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했다. 차베스는 석유 국영회사인 PdVSA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해외자산 매각, 생산량 축소를 통해 국제 유가 상승을 유도하고, 각종 세제 개편을 통해 국고에 대한 PdVSA의 재정 기여도를 제고시키고자 했다.14)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는 재정 증대로 귀결됐고, 이는 다시 빈곤 해결을 위한 재분배 정책으로 이어졌다. ‘볼리바르 2000 프로젝트’라는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볼리바리안 스쿨’이라는 교육 정책은 차베스 집권 초기 개혁의 대표적 사례다(<표1>참고). 반대세력의 역공과 지지 세력의 확대 그러나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는 날에 맞춰 반대세력은 거대한 시위를 조직하고 총파업을 시도했다. 이때 루이스 미킬레나 등 ‘기회주의’ 세력은 차베스의 개혁법안에 반대하며 이탈했는데, 그 결과 여권은 의회 과반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불리한 정치 역관계 속에서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의 발발은 베네수엘라 정치사에 일대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이는 점증하던 반대세력의 정치 투쟁의 효과로서 정부와 반대세력 사이에 총격전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군부 지도자들이 차베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차베스를 일시적으로 축출한 뒤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 의장인 카르모나를 임시 대통령으로 옹립한다(2002.4.11). 이들은 워싱턴의 암묵적 동의 하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의 쿠데타는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에 의해 이틀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2002.4.13).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이웃 국가들도 이번 쿠데타를 헌정파괴행위라며 신임 정부를 불신임했다. 2002년 4월 반차베스 쿠데타의 실패는 오히려 군부 내 차베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반대세력을 숙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울러 쿠데타를 배후에서 지원한 미국과 차베스의 관계가 악화되는 계기이자 반대세력을 분할하고 개혁에 미온적/비판적이었던 중간계급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볼리바리안 써클’은 전국적으로 배가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포진할 수 있었다. 또 농·어민 운동 조직이 결성되고, 반대세력의 미디어 보이콧에 맞선 시청자운동, 도시토지위원회, 의사, 교사, 변호사 등 특수 중간계급 단체 등 새로운 조직이 출현했다. 무엇보다도 CTV에 비판적이었던 노조 지도자들이 혁명 과정을 지지하기 위해 독립 노조 세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차베스를 지지하지만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다양한 좌파 정당들은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해외 좌파 세력 및 진보세력에게 잘 이해되지 않거나 높게 평가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이행 과정이 세계적으로 동조 세력을 얻어갔다. 한편 반혁명 쿠데타의 실패와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언제 발발할지 모를 쿠데타에 대비해서 차베스는 지지세력, 특히 군부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나아가 경제인 단체에 더 친화적인 사람을 경제 부문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반대세력에게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격부여법(Qualifying Law) 일부를 수정하고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반대세력들은 이러한 차베스의 행동을 정부가 취약하다는 신호로 간주하고 2002년 말 - 2003년 초 관리자 총파업/사보타지 등 역공세를 다시 취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강력한 지도력과 석유 부문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반대로 반대세력은 두 번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차베스 정부는 1만8천에 이르는 관리자와 상층 노동자를 파면할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석유수출이 마비되는 등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는 근 8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국회경제자문처에 따르면, GDP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석유 부문이 총 3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비석유부문이 12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2003년 10% 가량 수축했다. 재정부 장관 토비아스 노브레가는 2003년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4/4분기 GDP 성장률이 대략 0% 즈음이고 2003년 인플레이션율은 25% 정도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차베스 정권에 대한 맹렬한 반대 상황에서 경제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16) 국민소환투표 승리와 집권 기반의 안정화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결과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 국민소환투표가 시행된 2004년 8월까지, 1년 반 사이에 사회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경제는 10% 이상 성장하고 있었고 국제 유가는 기록적으로 상승했고 이로 얻어진 소득은 사회복지 지출로 환류되었다. 그 사회적 효과는 대단히 두드러졌고 친차베스 조직은 전국적으로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한편 미주국가기구(OAS) 및 ‘미국의 우방국’은 국내 반대세력과 합세하여 차베스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차베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소환투표를 수용하게 된다. 이에 친차베스 세력은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당시 자생적으로 분출된 차베스 지지 시위 과정에서 도시빈민 등 풀뿌리 민중 운동을 조직했다. 특히 2003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시오네스(Misiones, 미션) 프로그램은 빈민에 대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시도하며 지지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00만에 달하는 콜럼비아 출신 이주자들을 귀화시킴으로써 차베스의 지지층 더욱 확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차베스는 국민소환투표(2004.8.15)에서 60%에 달하는 찬성률로 자격을 재확보한다. <표1> 차베스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15) [%=사진1%] 차베스의 국민소환투표 승리는 반대세력에게 3번째 패배이자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 차베스 정부는 국내적·국제적으로 더욱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제 그 누구도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정당성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거대한 대중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대세력에 대한 신뢰는 더욱 추락했고 이들의 분할은 가속화됐다. 이어 2005년 말 총선에서도 차베스 정부 여당이 승리하면서 지지기반은 더욱 공고화되었다(MVR이 의석의 68% 차지). 빈민의 절대다수(90% 이상)가 차베스를 지지했으며, 이는 라티푼디오와 파산 공장의 몰수, 대규모사회간접투자 등을 가속화하는 조처로 나아갈 동력을 의미했다. 또 차베스의 세 번째 집권을 가능케 할 개헌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인 요인 미국의 대 베네수엘라 저강도 분쟁 현재까지 차베스 정권과의 대결 과정에서 미국은 점진주의적·내재적 정치 전략을 거부하고 최단기간에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베네수엘라 내외부의 전략적 연대 대상을 상실하고 말았다.17) 무엇보다 국내 반정부 야당이나 NGO의 세력이 약화된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현재 미국과 반대세력이 차베스 정권에 대한 즉각적인 전복 시도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우선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는 활동가가 많으며 대중적 기초도 튼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익들이 대중을 동원하고 대중운동을 기획할 이슈가 거의 부재하다. 이는 차베스 정권의 복지 프로그램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경제가 성장 중이며 삶의 질도 높아지고 있고 부패가 억제되고 언론, 출판, 집회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적인 기업 협회도 정부와의 계약으로 점점 번영하고 있으며 여당과의 접촉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NGO나 정당들과 달리 위험한 도박에 매달리지 않는다. 현재 반정부 친미 선전을 수행하는 민간 언론사 정도가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18) 따라서 현재 미 정책결정자들은 베네수엘라 국내 사안에 개입하거나 양분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차베스 정부가 민주적 원칙을 고수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는 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오히려 차베스 정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은 더욱 과감한/호전적인 접근법은 양자간 관계를 멀게 하고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 일부 논자들은 미국이 차베스 정부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가령 마약 수출 등 상호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장기 정책 접근법의 경우, 미국은 차베스가 부상하게 된 정황에 착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정책접근법은 비단 베네수엘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업, 범죄, 정치적 부패에 시달리는 여타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19) 결론적으로, 미 국부무는 ‘민주주의’나 ‘인권’ 마약문제를 빌미로 간섭을 지속할 것을 정책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20) 그 구체적 방안은 ①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를 고발하기 위해 OAS, EU,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고 ②인권 및 기타 NGO들이 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결성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③베네수엘라 정부 기관에 대항하여 기조직된 노동자, 독립 미디어, NGO, 종교단체를 조직할 것 등이다. 이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NED, 라틴 아메리카에 반공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 해외홍보처(USIA)에서 지원하는 자금)이 후원하는 SUMATE와 같은 NGO가 암약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21) ‘플랜 콜럼비아’로 대표되는 일련의 군사작전과 함께 내부 반대세력을 후원, 규합하여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의 종합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저강도 분쟁은 항상-이미 전개 중이었고, 이는 베네수엘라의 급진화를 제약하는 잠재 요소다.22) 자본의 초민족화와 미국 주도의 경제통합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대외적 축을 이루는 ALBA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를 넘어 대안적인 지역통합을 추구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구상한 FTAA 협상이 장벽에 부딪치며 정의와 평등, 연대를 원칙으로 대륙의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차베스의 ALBA 제안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그런데 ALBA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경제통합 시도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메르코수르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 Andean Community of Nation)들과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 South American Community of Natio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23) 게다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구상의 핵심은 공동시장을 직접 활용하는 것보다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매개하지 않은 역내 국가들 간의 호혜평등한 교역이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미국의 경제통합으로부터 이탈하기 위해서는 자본도피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외채위기를 기화로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철저히 잠식당한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일상적인 자본유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초민족적 은행으로 저축을 이전시킨 자본가들은 국내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진 반면 국제금융체제의 재생산에 종속되며 사회가 수탈당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자본도피와 경제 성장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났음을 상기할 때, 자본도피는 역내 국가들의 자주적 경제정책 수립 및 내생적 경제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를 통해 차베스 정부가 ‘오일 달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차베스가 석유산업의 대미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며 민족자본 육성과 투자 및 판로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15% 가량이 베네수엘라 산이고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 중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의 정치-외교적 마찰이 급격한 경제적 단절로 이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주체적 조건과 한계 차베스 개혁 노선의 한계 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는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 요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 개혁의 성격을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보도록 하자. 집권 초기, 차베스 정부는 기존의 외채상환을 지속하고 외채지불정지 같은 조치는 없을 것으로 약속했다(단, 재정지출의 30%에 달하는 외채상환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채재협상(만기연장)을 추진하고, 채무주식화 제도를 도입한다는 요지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음). 또 차베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재산, 특권, 부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도 없을 것이라고 반복했다. 게다가 이들 엘리트들이 정부에 대해 세 번의 비합법적인 정부 전복 시도를 하고도 여전히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베스 대통령이 여전히 민관 협력과 사회복지 지출에 기초한 발전 구상에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극심한 계급 갈등을 거치면서도 최소한 정부 수준에서는 소유 관계 또는 계급 관계의 파열이 없었으며, 외국인 채권자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원유 고객들과의 어떠한 관계 단절도 없었다. 정부는 의료제도, 교육, 중소기업, 그리고 토지개혁과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의 자금지출을 증가시키긴 했는데, 이는 외채 상환, 민간 수출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산업자본가에 대한 저리의 융자라는 재정 계획의 틀이라는 제약조건 안에서만 제시된 것이었다.24) 더욱이 국내적·국제적으로 차베스의 업적 중 상당부분이 석유 수입에 의존한 결과라는 점도 분명하다. 석유로부터 얻는 초과수익이 없었다면 거대기업과 빈곤층 사이의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유부문을 제외하면 사적 투자는 고갈 상태이며 예년 수준으로 유가가 견조하게 하락한다면 베네수엘라의 경제 문제는 매우 심각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가 GDP 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보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상태는 당분간 현재의 유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차베스의 집권 기반도 큰 수준에서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26) 또 차베스의 개혁정책 중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는 토지개혁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01년 11월 “농촌으로 돌아가자”라는 프로그램이 토지및농업개발에관한법률에 따라 시행되었는데 이 법의 목표는 ▲토지소유 규모 제한 ▲농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유휴 토지에 대한 과세 ▲국가 소유의 미사용 토지를 소농 가구 또는 협동조합에 분배 ▲사유의 미경작지, 휴경지를 징발, 재분배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1년 토지개혁법은 전 세계 토지개혁의 역사와 비교할 때 그다지 급진적인 것이 아니었다. 본 법은 대토지소유자가 자기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다고 명시했고, 오직 휴경지나 특정 규모 이상 토지의 경우 그 질에 따라 그 일부가 징수될 수 있을 뿐이라고 규정했다. 가장 모순적인 목표는 토지소유자들에게 시장 가격으로 배상한다는 것이었다. 차베스 정부는 국유지 200만 헥타르를 13만 소농 및 협동조합에 분배했지만 사유지는 전혀 징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 프로그램을 국유지에서 라티푼디오로 확장하려고 하자 대토지소유주와 농민 사이에는 긴장이 팽팽하게 형성됐다.27) 2005년 변경된 토지개혁법은 토지소유자가 소유할 수 있는 유휴지 규모를 개정했다.28) 대규모 유휴 부동산을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토지개혁법은 유휴 부동산에 비례해 과세되어야 함을 규정했다. 이 조치는 대토지소유주의 큰 반발을 샀고, 현재까지 이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지불유예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적 회피와 토지 등기부의 부실(취약한 법적 틀거리) ▲총체적인 법의 불비와 불처벌 관행 ▲취약한 농민 조직 ▲빈약한 농촌 지원 구조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석유경제를 다변화하고 농업을 근본적으로 회상하는 현실적 경로의 문제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상 농민이 토지를 불하받고 농업기술을 습득하더라도 농산품을 판매할 경로를 확보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베네수엘라농업협동조합(CVA)을 설립했지만, CVA가 판매를 대행할 것이라는 보증도 없다. 정부가 베네수엘라 농산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품에 대해 국산품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농산품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가격에 판매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경제적 “네덜란드 병”은 베네수엘라 농업이 현재 GDP 5%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이 문제에 관한한 차베스를 포함한 역대 어느 정권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역대 정권들은 고유가 시절, 예산 외의 잉여수입을 사회 간접자본 확충 또는 비석유산업의 성장기반 마련에 투자하지 않고 단순한 빈민구제정책 등에 집행함으로써 유가 하락시 전 산업이 함께 몰락하는 경험을 되풀이한 바 있다. 경제를 다각화하고자 하는 차베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으로부터 얻어지는 거대한 수익이 베네수엘라 통화가치를 고평가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최근 유가 상승(차베스 임기 동안 4배 상승)은 이 문제를 더욱 격화시켰을 따름이다.29) 차베스 지지 세력의 이념적 불균등성 차베스는 자신의 지도력이 위협받을 때에는 저항적이고 급진적인데 그에 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때에는 유화적이고 중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헌정 질서에 대해 군사 쿠데타와 폭력적인 공격을 선동한 반대세력에 대해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단적인 사례다. 현재 차베스 정권 내에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민족주의,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그룹 등이 자유롭게 경합하고 있다.30) 차베스 자신은 ‘개량주의’, 실용주의 및 혁명주의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들 가운데 온건주의적 또는 보수주의적 분파는 정권의 정당성/합법성을 염려하고 실용주의자들은 재정 건전성/규율, 사회 지출 제한, 합동 공사 및 공공-민간 협력 증진 등을 주장한다. 중앙파는 점진적 개혁, 사회 지출 및 분배 증가,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기간 시설 계약 등을 통해 국가 기관 및 선거구 내에서 정치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좌파의 경우 주로 새로운 계급적 지향의 노조, 지역 및 공동체에 기초한 협동조합, 농민 사회운동 및 특히 노동자 자주 관리 기업 및 운동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좌파는 사회화 과정을 심화하고 지방의 생산적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함으로써 실업/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력의 절반을 감소시킬 것을 주장한다. 동시에 이들은 하향식 후보 선정에 반대한다. 차베스는 좌파와 대중운동에 찬성하지만 거시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무시하지도 않고 정치권력을 제도화하려는 중앙파도 존중한다. 차베스는 이 과정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상이한 입장들을 종합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32) 그런데 정당들의 확산은 명확한 정치적 노선에 기초하기보다는 국가 기구 내에서 입지를 점유하고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 구조를 갖추려는 일부 지도자들의 속성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요소는 베네수엘라 구체제의 오랜 관행이자 악습으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1998년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지자, 다수의 정치 그룹들은 다수파가 되기 위해 차베스와 경합했다. 장관직 획득이나 권력 분점에 대한 희망이 좌절되자, 정당들은 야당 진영을 규합했다. 전국적 수준에서 서로 대치하던 정당들이 지역적 수준에서는 제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앞서 루이스 미킬레나가 이탈하거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 분리된 이유 중의 하나다. 두 번째 요인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이 전반적으로 급진화되면서 정당이 더 이상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98년 차베스가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그가 토지개혁, 어업 및 은행 개혁 법안을 제도화했던 2001년만큼 진보적이지 않았다. 한편 차베스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세력의 통합력도 현재로선 미미하다. 단적으로, 2003년 10월 창설된 ‘코만도 아야쿠소’라는 차베스주의 정당들의 선거 연합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에 차베스는 전국 선거 순회단을 제안했고, 10여명의 정치·사회 활동가로 구성된 단위 성원들은 현장과 가가호호를 누비며 차베스 지지 운동을 전개했다. <표2> 베네수엘라 주요 정당 현황31)

    당명 주요특징 비고
    제5공화국운동(MVR)제1여당1998년 군부 중심 창당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여권 내 우파 2001년 MAS에서 분리
    모두를 위한 조국(PPT) 여권 내 마르크스주의 계열 1997년 급진주의에서 분리
    민주행동당(AD)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1936년 창당
    기독사회당(COPEI)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중도 우파 1971년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에서 분리
    적기(Bandera Roja)




    혁명적 좌파, 무장노선 1970년 혁명적 좌파운동(MIR)에서 분리
    급진주의(La Causa Radical) 급진주의1971년 MAS 및 PCV 출신 활동가들이 결성
    단결(Union)구 차베스 지지세력 1999년 창당
    연대(Solidaridad)루이스 미킬레나 주도 2001년 창당
    혁명사회주의당(PRS)전국노조(UNT) 내 트로츠기 그룹 2005년 창당
    <표3> 차베스 지지-반대 주요 정당
    구분
    차베스지지
    차베스반대

    선거연합
    공동전선

    애국의 기둥(Polo Patriotico, 1998)
    코만도 아야쿠소(2003)

    민주공조
    (CD, Coordinadora Democratica)

    정치적 스펙트럼
    좌파
    군부
    우파
    좌파
    중도
    우파
    정당
    PPT
    MVR
    Podemos
    적기
    급진주의
    단결
    연대
    MAS
    AD
    COPEI
    차베스 개인 카리스마에 대한 과도한 의존 따라서 개혁 과정이 차베스 개인의 지도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편향이 발생했다. 우선 비상 국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 발휘가 요구되는 상황적 논리를 들 수 있다.33)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좌익적 정당의 부재와 자율적 사회운동의 경험이 부재한 결과다. 주요 선거 및 국민소환투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대통령 개인이 전국 순회 캠페인을 통해 직접 지지자를 조직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차베스는 복지정책을 장려하고 구호자금을 수집·전달함으로써 대통령 자신의 지지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 이 과정에서 군부가 대통령 개인 및 대통령의 정치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봉사하는 경향이 대두했다. 차베스는 종종 민중과 군대의 관계를 수정해야 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군이 가진 유용한 자원을 활용할 것을 주장했다(플랜 볼리바르 2000의 사례). 차베스의 개혁정책이 기층 민중들을 대열에 동참하도록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민중들은 스스로 전국 순회 선거운동을 조직, 투표를 조직하기보다는 거리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선거구보다는 현장에 근거해서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전국 순회는 가장 중요한 조직적 형태였다. 이들은 조직적인 정당의 지도 없이도 수십만의 지지자를 규합하고 구체적인 정치적 과제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또 차베스는 정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면서 개혁에 대해 국민과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분명 대중 동원의 성공이야말로 차베스가 국내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심화하고 대외적으로 반미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 요소였다. 그런데 대중적 사회운동이 성장하고 또 자율성을 획득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한, 개혁이 차베스 개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은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인민주의의 위험을 환기한다. 구조적·객관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개혁이 위기에 처하고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가 사라지면, ‘개혁’은 지도자 자신의 정치적 승리와 경제정책의 근본적 쟁점의 호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정부도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율성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빈민 정책이 주효하면서 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 이외에 농촌에서도 토지개혁의 확장 및 지주들의 민병대에 반대하는 빈농들의 투쟁이 형성되고 있다(인디안 공동체 운동 포함). 이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UNT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변화 흐름이다. 반대세력의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에 즈음하여 일부 노조지도자들이 CTV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전국노조의 결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석유, 공공, 자동차, 고무 등 전략분야의 많은 지도자들은 UNT에 가입해서 현재 전국적으로 약 100만의 조합원을 확보한 상태다. 많은 현장에서 구체제에 반대하는 새로운 노동조합 활동가 네트워크가 조직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정부에 대한 노조의 자율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서도 UNT 일부에서 전개 중인 노동자 통제와 평의회 건설 흐름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34) <상자1>에서 보듯이 사유화 반대 투쟁, 관리자들의 사보타지에 맞선 공장 점거 등을 경험하며 UNT 소속의 많은 노조와 활동가들이 노동자 통제(공동관리/자주관리)나 평의회 운동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국유 기업에서 사기업으로 노동자 통제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주관리, 공동 관리 및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차베스도 생산을 포기하거나 유기된 산업 및 공장을 몰수할 것을 발표하며 산업 발전, 생산 증진을 위해 노동자들이 관리의 일주체가 될 것을 호소했다.35) 자본가들의 자본유출 또는 사보타지로 유기, 폐쇄된 직장을 점거하고 노동자 스스로 생산과 작업을 통제하는 노동자 통제 또는 평의회의 경험은 역사적으로 위기와 이행의 시기에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소유관계의 변형(사유에서 국유 또는 집단적 소유)을 넘어 노동자들의 대중권력,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극복, 민주주의 등의 쟁점을 제기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통제 또는 평의회 운동이 기존 노조운동의 혁신, 노동자운동과 지역운동의 결합,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화를 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박스1%] 한편 차베스 정부의 다양한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 거둔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빈민 대중운동이 고양되고 있는가의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온정주의적 방식으로 분배된 복지가 정치적 능동성을 자동적으로 고양하지 않으며 복지정책의 수혜자들은 아래로부터 투쟁하는 것보다 위로부터 시혜를 얻는데 더 익숙해졌기 때문에 수동적일 가능성이 상존한다. 미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기회가 확대되고 도시토지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빈민들의 자기 조직화, 자기 통치의 가능성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베네수엘라 농민 조직이 취약한 이유는 농업 경제의 붕괴에 기인한다. 따라서 차베스 정부의 토지개혁을 급진화할 대중적 세력이 미미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2001년 토지개혁법 시행 후 현재까지 약 130명의 농민이 대토지소유주의 사병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토지분배의 결과로 협동조합이 맹아적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농민 조직의 성장 여부는 향후 농업경제의 회생과 토지개혁의 급진화를 좌우할 변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 여성운동은 차베스 집권 이후 몇 가지 주요 양성 평등 법안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서 ▲여성적 이슈가 여전히 부차적으로 다뤄지는 문제 ▲여성운동이 제도화되면서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약화되는 문제 ▲1990년대 쟁취한 법률적 성과를 사회운동적으로 확산하는 문제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36) 사회운동들이 자율성을 확산하고 대중적·지역적 토대를 확장하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도시와 농촌, 공장과 지역에서 자주관리 운동, 평의회, 협동조합 등이 출현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지표다. 향후 차베스 정부가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보전과 사회경제적 ‘현상유지’를 위한 실용적 방편을 찾는 방향으로 경도될 것인가는 결국 대중적 사회운동의 역량을 어떻게 신장시켜나갈 것인지에 달린 문제라 할 수 있다. 결론 차베스-베네수엘라는 ▲개헌 등을 통해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재분배 정책을 중심으로 제도적·대중적 기반을 다진 집권 초기를 거쳐 ▲쿠데타·총파업/사보타지 등 구 지배세력의 반격에 처한 수세기를 지나 ▲국민소환투표와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대내외적으로 볼리바리안 프로세스가 가속화되는 국면을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베스는 미제국주의에 반대하고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규합한 것이 사실이지만 ‘볼리바리안 혁명’은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많다.37)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확산과 이에 맞선 사회운동의 출현이 항상적인 정치과정이라면, 과거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하는 가운데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하지 않은 채 제한적 코포러티즘을 시도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침식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동원했다. 오늘날 ‘볼리바리안 혁명’이 인민주의적 전통으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유권과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 및 토지개혁의 급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대중적 사회운동의 자율성이 적극적으로 신장될 때만 가능하며, 따라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자통제, 평의회 운동 및 빈민, 농민,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에 주목할 수 있다. 둘째, 1960-70년대 사회주의적 지향 속에서 급진화된 군사조직, 정당, 노동조합 및 이를 포괄하는 전선체 등은 대개 군부 독재와 미국의 ‘저강도전쟁’으로 압살 당한다. 지금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은 상수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차베스가 시도 중인 군사노선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1960-70년대 좌익적 사회운동이 좌초한 원인을 ‘무장’ 여부에서 찾기보다는 반혁명에 맞설 수 있는 대중적 토대의 문제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쿠바나 칠레의 사례처럼 노동자운동 등 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사회변혁의 전망을 갖추고 그 계획을 물질화시켰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1980년대 평화협상을 거쳐 선거정당으로 전환한 기존 사회운동 세력은 1990년대를 거쳐 선거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게 되었고, 일부는 NGO로 흡수되었다. 이들은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금융기구와 초민족적 법인자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할 것을 주장하며 ‘사회운동의 자율적 요구와 상호조정’을 참조하기보다는 선거승리를 위한 캠페인 기술에 전도되었다. 이에 반해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퍼러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38) 이런 점에서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과 ALBA 제안에 대한 환호는 그 자체로 정당한 반응이지만 일견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향후 세계사회운동이 연대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대안’에 대한 전망과 역량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해 나갈 때만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차베스-베네수엘라가 구조적·객관적 제약을 극복하고 진정한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질문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것이다. 1) 류미경,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 연대를 확장하자! -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으로 본 대안세계화 운동의 과제」, 『월간 사회운동』 통권 62호(2005.3) 참조. 본문으로 2) 대안세계화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에 대해서는 임필수, 「세계화와 세계사회운동 - 대안세계화 운동과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월간 사회진보연대』 통권 37호(2003.7-8) 참조. 본문으로 3) James Petras (2004), "The politics of imperialism: Neoliberalism and Class Politics in Latin America", http://www.rebelion.org 본문으로 4) 칠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민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대표적 사례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기민당과 사회당은 피노체트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성과를 인정하고 정치적 타협을 수용, 1990년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간 제휴’ 연정이 성립된다.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기민당과 사회당이 참여한 에일윈 정부는 여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형태로 의회와 정당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지속하게 된다. 본문으로 5) Gregory Wilpert (2005), "Land for People not for Profit in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 본문으로 6) 1937년 당시 토지 소유는 1000ha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대농장에 집중됐다(4.5%가 88.8% 소유). 10ha 이하의 토지를 소유한 소농은 전체 토지 소유자의 57.7%를 차지한 반면 0.7%의 농지만 소유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7) 5% 대지주가 75% 토지를 소유하고, 75%의 소토지소유자가 고작 6%의 토지를 소유했다. 농지의 경우 더욱 심각한데 2%의 인구가 6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이 휴경지다. 본문으로 8) Richard Lapper (2005), "Venezuela and the Rise of Chavez: A Background Discussion Paper", http://www.cfr.org 본문으로 9) 제임스 페트라스 외, 「라틴 아메리카의 초민족적 자본가와 외채 문제: 계급 분석적 시각」, 다이앤 엘슨 외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페미니즘의 시각』, 공감, 1998 참조. 본문으로 10) C.P. Pandya and Justin Podur (2004), “The Chavez Government's Economic Policies”, ZNet, http://www.zmag.org 본문으로 11) Marta Harnecker (2004), "After the Referendum: Venezuela Faces New Challenges", Mothly Review, Vol. 56, No. 6. 본문으로 12) 그 주요내용은 ▲국호 변경 ▲양성 평등 참여 ▲법치와 정의 ▲인권과 국제조약 준수 ▲여성의 권리 신장 ▲정보의 자유 ▲정당 관련 국고 보조 금지 ▲국민투표 ▲사회·교육·문화·경제적 권리 ▲원주민의 권리 ▲환경권 ▲삼권분립이 아니라 오권분립(입법행정사법에 선거관리위원회, 시민 또는 공공의 권력을 추가) ▲입법부/대통령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 ▲시민불복종 등이다. 신헌법에 관해서는 Gregory Wilpert (2003), "Venezuela's New Constit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3) ‘볼리바리안 써클’에 관해서는 Alvaro Sanchez (2003), "Bolivarian Circles: A Grassroots Movement",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4) 2000년 2월 PdVSA의 중장기 사업계획(2000-2009 Business Plan)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은 ▲국내 민간자본 형성 강조(석유산업에 대한 민간부문 참여 확대) ▲생산구조 개편(가스 및 경중질유 비중을 제고) ▲생산성 및 정유산업 활성화를 위한 수출 경쟁력 제고 ▲화학 및 유화산업 개발 및 생산성 향상 ▲석유정책의 국제적 협력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본문으로 15) C. P. Pandya and Justin Podur, 앞의 글 본문으로 16) 차베스 정부의 빈곤정책과 관련해서는 Gregory Wilpert (2003), "Mission Impossible? - Venezuela's Mission to Fight Poverty",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17) 이에 미국이 거듭되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쟁점인데, 이에 대해서 대략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네오콘의 맹동성. 2001-02년, 반테러리즘이 발호하는 가운데 미국은 차베스 정권을 지체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네오콘은 베네수엘라 군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언론 및 기업 엘리트들의 권력을 과신한 것이다. 둘째, 이라크전과 차베스와 OPEC 주도국인 이라크·이란 간 결속으로 불어 닥친 석유위기가 미국의 간섭을 촉진했다. 셋째, 차베스가 FTAA에 반대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ALBA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차베스의 복지정책과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석유 외교가 역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잠식하는 주요 원인이자 ‘좌파의 중심’이라고 간주했을 수 있다. 본문으로 18) James Petras (2005), "The Venezuelan Election: Chavez Wins, Bush Loses (Again)! Now What?", http://www.counterpunch.org 본문으로 19) Mark P. Sullivan (2005), "Venezuela: Political Conditions and U.S. Policy",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for Congress, http://www.state.gov/ 본문으로 20) U.S Department of State Bureau of Public Affairs, "The State of Democracy in Venezuela" (2005.12.1) 참조. 본문으로 21)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반(反)차베스 단체들에 수십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이 중에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베네수엘라노동자연맹(CVW)도 포함돼 있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2002.4.25). 이 신문은 이 자금이 NED에서 제공된 것이라며 지난해 반차베스 단체에 대한 지원액은 전년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87만7천달러(약 11억 4천만원)였다고 밝혔다. NED는 AFL-CIO 산하 대외관계기구인 ‘국제노동연대를 위한 아메리카 센터’에 15만4천3백7십7달러를 지원했는데, 전액이 베네수엘라의 노동권 향상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CTV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 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외관계 외곽조직들에 상당 액수의 자금지원을 했으며 양당은 이들 자금을 차베스 비판세력들의 워싱턴 방문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본문으로 22) 지금도 미국은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접경지대에서 - 이 곳은 서반구 최대의 수자원 보유지역이기도 한데 -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군의 파라과이 주둔을 정당화한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과이 군기지는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매장지로부터 약 200km 떨어진 곳이다. 이 가스전은 미주대륙 전체에서 2번째로 큰 규모다. 미국의 대다수 주류 언론들은 서반구에서의 차베스의 영향력이 지닌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테러”라는 수사를 즐긴다. 한편 미 플로리다에 본부를 둔 선교단체가 베네수엘라 남부와 브라질 아마존 접경의 고립된 인디오부족 선교를 위해 대규모 시설물을 설치한 데 대해 차베스는 ‘CIA에 의한 침투’라고 규정하고 이들 단체들을 향해 90일 내에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지역에서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 벤자민 당글, 「미군의 파라과이 진주」, 프레시안(2005.10.17) http://www.pressian.com 참조. 본문으로 23) J. F. Hornbeck (2005), "A Free Trade Area or the Americas: Major Policy Issues and Status of Negotiation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for Congress, http://www.state.gov 본문으로 24) James Petras (2004), "President Chavez and the Referendum: Myths and Realities", http://www.rebelion.org (국역: 『월간 사회진보연대』, 통권49호(2004.10)에 수록) 본문으로 25) 국제 원유가격이 폭락할 경우 베네수엘라 경제가 항상 침체와 위기에 봉착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거시경제안정화기금(FIEM) 마저 정부가 소진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위기관리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어 우려스럽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본문으로 26) Richard Lapper, 앞의 글. 본문으로 27) Seth R. Delong (2005), “Chavez’s Agrarian Land Reform: More like Lincoln than Lenin”, The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http://www.coha.org 본문으로 28) 2001년 법에 의하면,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성이 낮은 휴경지의 최대 면적은 5000ha였다. 2005년 토지개혁법은 생산성이 높은 휴경지 토지의 경우 100ha에서 50ha로, 생산성이 낮은 휴경지의 경우 5000ha에서 3000ha로 제한했다. 본문으로 29) Gregory Wilpert (2005), "Land for People not for Profit in Venezuela", http://www.venezuelanalysis.com 본문으로 30) 현재 여권을 구성하는 주요 정당은 ‘제5공화국운동(MVR)’ 및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 - 사회 민주주의를 향하여’), ‘조국을 모두에게(PPT)’ 등이다. MVR은 차베스 본인이 1998년 대선을 위해 군부를 중심으로 창건한 정당으로서, 정치적 스펙트럼을 불문하고 우선 차베스 지지자를 규합한 성격을 띤다. 당원 중에는 더러 구체제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내 민주적 장치나 안정적인 평당원 구조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odemos’는 MAS(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에서 기원하며 차베스 지지자 중 합리적인 부위를 자처하는 세력이다. 유럽적 스타일의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에서 유래하는 ‘Podemos’는 차베스 정부의 우파를 대표한다. PPT는 선거인단 수로는 가장 취약하지만 노동, 교육, 문화 등 다수의 내각을 책임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는 PPT는 ‘급진주의’로부터 분리되었다. PPT는 스스로를 ‘운동중의 운동’으로, 또 노조운동(자율 노조)과 청년운동(‘구국 청년’), 여성운동(마누엘리타 사엔스 운동) 및 지역 공동체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상 Edouard Diago (2003), "Venezuela’s political forces", IV 353,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참조. 본문으로 31) James Petras (2005), "The Venezuelan Election: Chavez Wins, Bush Loses (Again)! Now What?", http://www.counterpunch.org 본문으로 32) 베네수엘라의 전반적인 정당 분포와 관련해서는 "Leftist Parties of the World", http://www.broadleft.org 참조. 본문으로 33) 일례로 베네수엘라 의회는 1999년 3월 경제난 극복을 목적으로 차베스 정부가 출범 직후 상정한 일련의 비상경제조치법안(일명 Enabling Law)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6개월간 의회의 추가 승인 없이 ▲금융거래세 도입 및 소득세법 개정 등 세제 개편 ▲국가 행정 조직 개편 ▲비상금융법안 개정과 같은 경제 조치들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1999년 제정된 신헌법은 불신임투표를 포함한 국회해산권, 국가긴급조치 선포권, 내각임명권, 대통령 임기의 연장(5년에서 6년으로) 및 이에 따른 즉각적인 재선 허용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본문으로 34) 베네수엘라 노동자운동에 대해서는 Daina Green and Barry Lipton (2004), "Report on Venezuela's Trade Union Situation", http://www.venezuelananaysis.com 참조. 본문으로 35)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의 자주관리와 평의회 흐름에 대해서는 Marta Harnecker (2005), "Joint Responsibility and Confidence in Venezuela’s Worker Co-Managed Industries", The challenges of congestion: Cadafe and Cadela's experiences, Popular Library, Colection Testimonials Nº2, La Burbuja Editorial, Caracas, April 2005, http://www.venezuelananaysis.com; Bill Burgess (2005), "On the road to a new society: Venezuelan workers debate workers control of industry and government enterprises", http://www.socialistvoice.com; Rafael Rodriguez (2005), “Co-management” in the Alcasa aluminium factory, IV 371,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 참조. 본문으로 36) 베네수엘라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Sarah Wagner (2005), "Women and Venezuela’s Bolivarian Revolution", http://www.venezuelanalysis.com 참조. 본문으로 37) ‘볼리바리안 혁명’이 페미니즘적 정치, 반인종주의적 정치, 심지어 반자본주의적 정치에 대해서도 성격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Michael Albert (2005), "Venezuela's Path", ZNet, http://www.zmag.org 참조. 본문으로 38)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역사에 대한 개괄로는 James Petras, "Latin America: The Resurgence of the Left," NLR, no. 223, 1997; James Petras and Timothy F. Harding, "Introduction", Latin America Perspective, Issue 114, Vol. 27 No. 5, September 2000, pp.3-10. (국역: 『월간 사회운동』 통권 57호(2005.9)에 수록) 참조. 아울러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사회운동이 선거주의로 전환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는 James Petras, (2004), "Class-based Direct Action versus Populist Electoral Politics", http://www.rebelion.org 참조. 본문으로

  • 2006-04-05

    "자유무역"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응답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 <번역>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역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이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Venezuela's Answer to "Free Trade": 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 번역하여 소개한다. 전문은 http://pssp.org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 기간동안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을 진척시키겠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계획을 좌절시킨 바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여타의 무역 협상과는 달리 민중의 시급한 요구를 우선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ALBA 구상을 활용하고 있다. ALBA의 실현가능성보다는 그 상징적 힘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ALBA가 ’민중의 연대,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역통합‘을 표방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간 협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필자들은 브라질 사회운동 활동가로, 디에고 아지는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International Social Movement Network) 사무국에서 활동했다. 볼리바르 대안 세계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1)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는 동안, 라틴아메리카 몇 몇 나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도국’ 간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2)은 각 국 사이의 무역을 장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장벽의 제거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ALBA의 핵심은 그 이상이다. ALBA가 내세우는 목표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협력하여 빈곤을 제거하고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으로써 발전의 “사회적” 측면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2004년 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 평의회 의장은 ALBA의 첫 번째 단계로서 의미를 지니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으뜸을 차지하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15,000명의 의사를 파견하여 마을 곳곳에 진료소를 구축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그 대가로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연간 십억 달러라는 싼 값에 석유를 제공한다. 협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에 주변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서로 협력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의 백내장, 여타 안질환 환자들에게 무상 수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쿠바의 병원에서 122,0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자들에게 항공권과 숙소를 무료로 제공했다.3)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2005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텔레수르(TeleSur) 역시 ALBA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정부가 출자하고 브라질 정부는 장비를 제공하여 설립된 텔레수르는 일종의 라틴아메리카판 ‘알- 자지라 방송’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의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CNN과 유니비전이라는 사기업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바, 특별히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둔 정보는 공백상태인데 텔레수르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동시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텔레수르는 궁극적으로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뉴스, 문화, 스포츠, 교육을 각각 다루는 네 개의 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ALBA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재정-금융적 측면에서는 채권국 클럽의 결성, 외채 상환을 위해 지출되어야 할 예산의 50%를 지역 차원의 발전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지역적인 통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판 IMF 구축 등의 계획이 있다. 이미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역 내 문맹퇴치, 보건의료 서비스 강화 및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쓰일 공동 해외 원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의학, 공학 분야에서의 교육적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이 지역 내에서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가축과 싼 값의 석유를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 석유 탐사 및 채취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ALBA가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 걸쳐 실현되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 그리고 시민 사회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에 대항하는 강고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ALBA는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이상을 매력적으로 뒤섞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상호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각 국 민중을 위해 활용하도록 하는 굳건한 원칙이다. 현존하는 라틴아메리카 내 통합을 위한 시도 남미공동체(CSN-Comunidad Sudamericana de Naciones)는 남아메리카의 지역통합을 제도화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시도이다. 2004년 12월 페루의 꾸스꼬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남미 공동체에는 남미 대륙의 12개국 모두가 참여하게 된다. 남미 공동체를 둘러싼 담론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남미공동시장(Mercosur) 혹은 안데스 공동체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창립 당시의 자료를 살펴보면, 회원국 공통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으며, ALBA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제시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는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미공동체의 공식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경제적인 발전이 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단순한 무역의 탈규제화를 넘어서는 통합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이 협정이 내세우는 목표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남미공동체의 창립 문서에는 이 계획이 정부 간에 이루어지는 통합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각 국 민중의 연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중요한 관심 사항, 예를 들어 외채 거부 및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정 체결 반대 등의 주제는 통합과 관련된 공식문서에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풀뿌리에서” 조직되는 통합이라는 담론은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꾸스꼬 선언문이 표방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 남미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국 정부가 FTAA, 혹은 미국과의 양자간 FTA 체결 논의에서 보건의료, 교육, 식량안보, 생태 보호 등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민중의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남미공동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 계획이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법률적 기초가 되는 원칙을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민족적 투자자들이 전 대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자본과 상품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인 틀일 뿐, 이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계획이다. 이렇듯 남미공동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그리고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역할을 하는 통합 계획이라고 보기 힘들다. 남미공동체 계획과 ALBA 사이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남미공동체는 기껏해야 현재의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료주의라는 장애물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지만, ALBA는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바꿔내고 진정한 국제적 협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좌파 혹은 중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 내 여러 협상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미국은 협상에 성공하기 위한 다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과 양자간 FTA를 공세적으로 체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칠레와의 양자간 FTA를 체결했고,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협상)4)을 타결했으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와는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미국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여전히 남미공동시장(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이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완성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가적인 양자간 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남미공동시장은 각 회원국이 볼리비아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한다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는 1996년에 발효되었다. 이후 2002년에는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공동체 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역내, 그리고 역외의 제3국과의 무역에서 비용절감 및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외적 통합을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한다.”라고 그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 협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역협정이며 각 국 간 통합을 심화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협정은 관세 철폐와 비용 절감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상호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에 체결되어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중요한 흐름으로 언급할 수 있다. 미국이 포함된 FTA 협상은 정치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WTO, 그리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통해 미국이 추구하려는 자유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더불어, 최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서 미국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수출국인 양 국이] 농업분야에서 기대했던 이익이 만족스러울 만큼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농장 및 농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려는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은 미국 농산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남미공동시장과 유럽연합 간에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 협상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역시 라틴아메리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상이 될 리 만무하다. 최근까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일어난 대중적인 저항은 이렇듯 다양하고 광범위한 FTA 협상을 실질적으로 저지시켜낼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저항은 협정 체결로 인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한편 협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ALBA에 대한 대중의 참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제안과 ALBA의 중요한 차이 중 한 가지는 ALBA를 구상하고 창설하는 전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폭넓은 무역협상이며, 소수의 NGO만이 이 협상과정에 ‘참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ALBA는 “민중”의 참여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ALBA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의 각 국 정부의 제안 및 통합 협정과 조율을 이루는 가운데 대중조직이 ALBA 구성을 발의하도록 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자료”의 형태로 제출되었다. 이 자료는 “현재 ALBA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ALBA는 각종 세미나, 총회 등을 통한 대중의 폭넓은 참여의 결과물로서 건설되어야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ALBA 제안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간 협정을 통해 그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다시 말해, ALBA를 둘러싼 담론과 ALBA를 건설하는 실제 과정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다. ALBA의 공식적인 제안서에는 ALBA의 건설이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ALBA의 실체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정부의 수반이 서명한 정부 간 협정인 셈이다. 쿠바-베네수엘라 협정은 “베네수엘라 민중은 의료, 교육, 스포츠 훈련 분야의 원조 수당을 받게 되며 쿠바 민중은 석유 등의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ALBA의 공식 제안서는 계획 및 실행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중적 참여를 위한 틀(지방 차원의 참여예산제), 투명성 제고를 위한 세 가지 메커니즘(국민총투표, 예산 공표,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그리고 제도적인 정치 계급(시장, 국회의원)을 겨냥한 세 가지 제안 등이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Volivarian Peolpe's Congress)가 제출한 제안서 중 “민중 주도의 참여 민주주의(Protagonist and Paticipatory Demogracy)"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1. 지방 차원에서 참여 예산제의 시행 2.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네트워크의 구축 3. 라틴아메리카 의회(브라질 상파울로에 본부를 둠) 강화 및 직선제 도입 4.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의원 네트워크의 구축 5. 모든 선출된 대표에 대한 소환투표 청원의 이행 6. 예산 및 선출된 대표의 소득 공개 7.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발의 및 대중적 의견수렴 기제의 촉진 사회운동- 중요한 지지 세력이 되어가다 라틴아메리카 내 사회운동 및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ALBA에 대한 인식은 아직 특별하게 높은 편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명한 제안도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ALBA에 대한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이 주제가 점점 주목을 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ALBA 구상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주요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ALBA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러 그룹들이 성명서를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ALBA를 “민중으로부터” 건설하겠다는 제안 안에는 이 문서를 작성한 이들이 특정한 사회운동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토지, 식량주권, 토지 개혁”에 관한 항에는 ALBA가 “Nuestra America(우리의 아메리카)라는 단일한 농촌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그 핵이 될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CLOC)을 지지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학”에 관한 항에서는 ALBA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학생 조직(OCLAE)를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대학생들의 연대체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ALB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최근의 성명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두 가지 중요한 회합(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 캄페시나 라틴아메리카 4차 총회와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최종선언문이다. 2005년 10월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캄페시나 총회에는 25개국의 88개 소농, 원주민 조직의 대표 178명이 참석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자유무역, WTO 규범,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강요하는 경제 지배 구조에 대해 항구적인 대응을 조직할 것이다. 우리는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지지하며 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중략)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통해 촉진된 농촌지역의 정의를 위한 제안 및 토지 개혁을 지지한다. 가장 최근에 제출된 것으로는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에서 열린 사회운동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을 들 수 있다.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는 2005년 미주지역 정상회의에 대항하여 열렸는데, 이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진전을 이루고자 했으나 강력한 대중 투쟁에 부딪쳐 실패했다. 사회운동 총회에 참가한 여러 원주민 조직,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 통합 과정을 지지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며 다소 소극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듯 모호한 지지 표명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사이의 협정을 제외하면 ALBA 구상이 사실상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의 구상 및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장기적인 정치 과정, 그리고 차베스를 둘러싼 향후 몇 년 간의 세력 관계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ALBA는 라틴아메리카 내 핵심적인 사회운동의 다양한 토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차베스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 및 부시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열린 민중정상회의에 참가한 사회운동 및 정치조직과 나란히 섰다. ALBA를 제도화하려는 제안들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가 제출한 문서에는 ALBA 제안을 19개의 독자적인 의제로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5) 문서는 각각의 의제에 대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역, 금융, 이주, 노동, 환경에 대한 새로운 협정과 규제를 마련할 것과, 새로운 기구, 네트워크, 위원회, 회사, 기금, 은행, 캠페인, 법인, 대학 및 이러한 기관들의 연합을 세워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라는 지역 산하에 놓이게 될 준-독립적인 기관의 주인은 볼리바르 대안에 관료주의적인 성격을 더하게 될 숨은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무역, 자유화된 기업을 추구하는 협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달리, ALBA는 단순한 협정의 체결 혹은 법률을 넘어서는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ALBA는 제안된 19개 항목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현존하는 국가 구조에 밀착된 복합적인 기관들을 형성해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 구상에는 위에서 언급한 관료적인 구조와 별도로 라틴아메리카 내 몇몇 공기업을 확대하거나 신설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다. 페트로 수르(PetroSur, 최근 형성된 석유 국영기업들의 연합),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에너지회사(지역 내 국영기업 연합), 가스수르(GasSur, 천연가스의 탐사 및 판매를 위한 공동 국영기업),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항공(LALC), 남미 보험회사, 남미공동은행(“(우리의 아메리카)”라는 신용카드 발급), 남미 위성 텔레비전 방송사(텔레수르),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라디오 네트워크, 라틴아메리카 통신회사 등이 이러한 제안에 포함된다. 결론 ALBA 구상의 세부적인 사항들에서 한 발 물러나서 보면, 이 제안이 여러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11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LBA는 구체적인 대안을 구성하는 과정에 사회운동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 반대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ALBA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동시에, ALBA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쿠바와의 연대 행동을 공식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돕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다(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또한 ALBA는 백악관과의 긴장 관계, 그리고 국제 무역협상에서 차베스 대통령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효과는 ALBA의 실효성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가지는 상징적인 힘에 기인한 것이다. ALBA를 통해서 차베스 대통령은 자유무역에 초점을 둔 지역 통합이라는 미국식 모델에 맞서는 굳건한 대안을 제시하는 이 지역 내 유일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ALBA의 건설은 급속하게, 그리고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상황에 따라 진전 혹은 후퇴, 패배를 겪게 될 것이다. 선거 정치, 국제적인 정치 지형, 미국의 압력, 혹은 대통령 한 사람의 이념 변화 등이 ALBA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할 요소가 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그램은 정치적 과정, 생산 구조, 그리고 통합과정에 참여하는 국가 내부, 뿐만 아니라 지역, 혹은 전 세계적인 세력의 상호 관계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민중 그리고 정치인들은 지난 20년 동안 대륙 전체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선스에 지쳐있다. 선거에 출마한 보수적인 후보조차도 신자유주의 반대 입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멕시코에서 2006년에 진행될 대선에서 NAFTA협정을 채결한 장본인이자 71년간의 독재를 유지해왔던 제도혁명당의 후보로 나서는 로베르토 마드라소는 “신자유주의적 전망은 수명을 다했고, 실패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 세계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동맹을 결성하는 일이다.”라며 “반신자유주의” 강령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패배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재집권을 위한 최후의 카드로 꺼내든 수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 대선에서는 좌파, 중도파, 우파 세 후보 모두가 각기 다른 내용의 “탄화수소의 국유화”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는 지난 450년에 걸친 은, 금, 주석, 석유, 가스, 코카에 이르는 자원 수탈의 역사를 뒤집을 만한 것이다. 처음에는 스페인, 그 다음에는 미국, 그리고 현재는 초국적기업이 이를 수탈해가며 매년 어마어마한 액수의 소득을 챙겨가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 민중 대부분은 빈곤이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LBA와 같은 제안의 중요성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민주의적 지도자들은 민중이 처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는 노력 없이 자국의 부를 은밀히 자루에 담으면서 가까스로 대중을 사로잡고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내세운 수사(rhetoric)에 불과한 공약들을 지키도록 만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지도자로서의 차베스의 미래, 그리고 ALBA의 미래를 주목해야 한다. 1) “탈규제화된 국제무역”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본문으로 2) ALBA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Alternativa Bolivariana para la Americas) 머릿글자이면서 ‘새벽’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3) 베네수엘라-쿠바 간 협정문은 http://www.mltoday.com/Pages/NLiberation/Cuba-VenePact.html에서 영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퍼블릭 시티즌>이 발간한 세계 무역 감시(2005)에 따르면,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는 미국과 중미 5개국(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및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 체결한 협정이다. 2004년 5월 28일에 서명이 이루어졌고, 2005년 7월 27일 한 밤중에 미 의회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217대 215) 비준되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도 비준을 거쳤으며, 코스타리카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비준을 앞두고 있다. 중미자유무역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라는 조각 퍼즐의 한 조각이며 실패한 신자유주의적 NAFTA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한 NAFTA는 노동 ․환경 기준에 대한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겼으며, 핵심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유화와 탈규제화를 촉진했다. 본문으로 5) 1. 석유와 에너지 2. 통신과 교통 3. 군사 4. 외채 5. 경제와 금융 6. 경공업 및 기초 산업 7. 자연자원 8. 토지, 식량주권, 토지개혁 9. 교육 10. 대학 11. 과학 기술 발전 12. 매스미디어 13. 의료 14. 젠더 15. 이주-정체성(Identity) 16. 주거 17. 민중주도의 참여 민주주의 18. 원주민운동 19. 노동자운동 본문으로

  • 2006-04-05

    "자유무역"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응답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 <번역>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역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이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Venezuela's Answer to "Free Trade": 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 번역하여 소개한다. 전문은 http://pssp.org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 기간동안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을 진척시키겠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계획을 좌절시킨 바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여타의 무역 협상과는 달리 민중의 시급한 요구를 우선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ALBA 구상을 활용하고 있다. ALBA의 실현가능성보다는 그 상징적 힘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ALBA가 ’민중의 연대,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역통합‘을 표방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간 협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필자들은 브라질 사회운동 활동가로, 디에고 아지는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International Social Movement Network) 사무국에서 활동했다. 볼리바르 대안 세계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1)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는 동안, 라틴아메리카 몇 몇 나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도국’ 간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2)은 각 국 사이의 무역을 장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장벽의 제거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ALBA의 핵심은 그 이상이다. ALBA가 내세우는 목표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협력하여 빈곤을 제거하고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으로써 발전의 “사회적” 측면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2004년 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 평의회 의장은 ALBA의 첫 번째 단계로서 의미를 지니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으뜸을 차지하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15,000명의 의사를 파견하여 마을 곳곳에 진료소를 구축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그 대가로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연간 십억 달러라는 싼 값에 석유를 제공한다. 협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에 주변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서로 협력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의 백내장, 여타 안질환 환자들에게 무상 수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쿠바의 병원에서 122,0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자들에게 항공권과 숙소를 무료로 제공했다.3)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2005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텔레수르(TeleSur) 역시 ALBA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정부가 출자하고 브라질 정부는 장비를 제공하여 설립된 텔레수르는 일종의 라틴아메리카판 ‘알- 자지라 방송’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의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CNN과 유니비전이라는 사기업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바, 특별히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둔 정보는 공백상태인데 텔레수르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동시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텔레수르는 궁극적으로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뉴스, 문화, 스포츠, 교육을 각각 다루는 네 개의 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ALBA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재정-금융적 측면에서는 채권국 클럽의 결성, 외채 상환을 위해 지출되어야 할 예산의 50%를 지역 차원의 발전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지역적인 통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판 IMF 구축 등의 계획이 있다. 이미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역 내 문맹퇴치, 보건의료 서비스 강화 및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쓰일 공동 해외 원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의학, 공학 분야에서의 교육적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이 지역 내에서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가축과 싼 값의 석유를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 석유 탐사 및 채취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ALBA가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 걸쳐 실현되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 그리고 시민 사회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에 대항하는 강고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ALBA는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이상을 매력적으로 뒤섞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상호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각 국 민중을 위해 활용하도록 하는 굳건한 원칙이다. 현존하는 라틴아메리카 내 통합을 위한 시도 남미공동체(CSN-Comunidad Sudamericana de Naciones)는 남아메리카의 지역통합을 제도화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시도이다. 2004년 12월 페루의 꾸스꼬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남미 공동체에는 남미 대륙의 12개국 모두가 참여하게 된다. 남미 공동체를 둘러싼 담론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남미공동시장(Mercosur) 혹은 안데스 공동체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창립 당시의 자료를 살펴보면, 회원국 공통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으며, ALBA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제시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는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미공동체의 공식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경제적인 발전이 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단순한 무역의 탈규제화를 넘어서는 통합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이 협정이 내세우는 목표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남미공동체의 창립 문서에는 이 계획이 정부 간에 이루어지는 통합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각 국 민중의 연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중요한 관심 사항, 예를 들어 외채 거부 및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정 체결 반대 등의 주제는 통합과 관련된 공식문서에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풀뿌리에서” 조직되는 통합이라는 담론은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꾸스꼬 선언문이 표방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 남미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국 정부가 FTAA, 혹은 미국과의 양자간 FTA 체결 논의에서 보건의료, 교육, 식량안보, 생태 보호 등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민중의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남미공동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 계획이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법률적 기초가 되는 원칙을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민족적 투자자들이 전 대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자본과 상품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인 틀일 뿐, 이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계획이다. 이렇듯 남미공동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그리고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역할을 하는 통합 계획이라고 보기 힘들다. 남미공동체 계획과 ALBA 사이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남미공동체는 기껏해야 현재의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료주의라는 장애물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지만, ALBA는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바꿔내고 진정한 국제적 협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좌파 혹은 중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 내 여러 협상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미국은 협상에 성공하기 위한 다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과 양자간 FTA를 공세적으로 체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칠레와의 양자간 FTA를 체결했고,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협상)4)을 타결했으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와는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미국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여전히 남미공동시장(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이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완성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가적인 양자간 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남미공동시장은 각 회원국이 볼리비아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한다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는 1996년에 발효되었다. 이후 2002년에는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공동체 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역내, 그리고 역외의 제3국과의 무역에서 비용절감 및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외적 통합을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한다.”라고 그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 협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역협정이며 각 국 간 통합을 심화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협정은 관세 철폐와 비용 절감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상호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에 체결되어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중요한 흐름으로 언급할 수 있다. 미국이 포함된 FTA 협상은 정치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WTO, 그리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통해 미국이 추구하려는 자유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더불어, 최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서 미국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수출국인 양 국이] 농업분야에서 기대했던 이익이 만족스러울 만큼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농장 및 농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려는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은 미국 농산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남미공동시장과 유럽연합 간에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 협상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역시 라틴아메리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상이 될 리 만무하다. 최근까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일어난 대중적인 저항은 이렇듯 다양하고 광범위한 FTA 협상을 실질적으로 저지시켜낼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저항은 협정 체결로 인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한편 협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ALBA에 대한 대중의 참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제안과 ALBA의 중요한 차이 중 한 가지는 ALBA를 구상하고 창설하는 전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폭넓은 무역협상이며, 소수의 NGO만이 이 협상과정에 ‘참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ALBA는 “민중”의 참여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ALBA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의 각 국 정부의 제안 및 통합 협정과 조율을 이루는 가운데 대중조직이 ALBA 구성을 발의하도록 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자료”의 형태로 제출되었다. 이 자료는 “현재 ALBA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ALBA는 각종 세미나, 총회 등을 통한 대중의 폭넓은 참여의 결과물로서 건설되어야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ALBA 제안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간 협정을 통해 그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다시 말해, ALBA를 둘러싼 담론과 ALBA를 건설하는 실제 과정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다. ALBA의 공식적인 제안서에는 ALBA의 건설이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ALBA의 실체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정부의 수반이 서명한 정부 간 협정인 셈이다. 쿠바-베네수엘라 협정은 “베네수엘라 민중은 의료, 교육, 스포츠 훈련 분야의 원조 수당을 받게 되며 쿠바 민중은 석유 등의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ALBA의 공식 제안서는 계획 및 실행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중적 참여를 위한 틀(지방 차원의 참여예산제), 투명성 제고를 위한 세 가지 메커니즘(국민총투표, 예산 공표,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그리고 제도적인 정치 계급(시장, 국회의원)을 겨냥한 세 가지 제안 등이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Volivarian Peolpe's Congress)가 제출한 제안서 중 “민중 주도의 참여 민주주의(Protagonist and Paticipatory Demogracy)"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1. 지방 차원에서 참여 예산제의 시행 2.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네트워크의 구축 3. 라틴아메리카 의회(브라질 상파울로에 본부를 둠) 강화 및 직선제 도입 4.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의원 네트워크의 구축 5. 모든 선출된 대표에 대한 소환투표 청원의 이행 6. 예산 및 선출된 대표의 소득 공개 7.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발의 및 대중적 의견수렴 기제의 촉진 사회운동- 중요한 지지 세력이 되어가다 라틴아메리카 내 사회운동 및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ALBA에 대한 인식은 아직 특별하게 높은 편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명한 제안도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ALBA에 대한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이 주제가 점점 주목을 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ALBA 구상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주요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ALBA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러 그룹들이 성명서를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ALBA를 “민중으로부터” 건설하겠다는 제안 안에는 이 문서를 작성한 이들이 특정한 사회운동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토지, 식량주권, 토지 개혁”에 관한 항에는 ALBA가 “Nuestra America(우리의 아메리카)라는 단일한 농촌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그 핵이 될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CLOC)을 지지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학”에 관한 항에서는 ALBA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학생 조직(OCLAE)를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대학생들의 연대체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ALB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최근의 성명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두 가지 중요한 회합(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 캄페시나 라틴아메리카 4차 총회와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최종선언문이다. 2005년 10월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캄페시나 총회에는 25개국의 88개 소농, 원주민 조직의 대표 178명이 참석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자유무역, WTO 규범,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강요하는 경제 지배 구조에 대해 항구적인 대응을 조직할 것이다. 우리는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지지하며 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중략)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통해 촉진된 농촌지역의 정의를 위한 제안 및 토지 개혁을 지지한다. 가장 최근에 제출된 것으로는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에서 열린 사회운동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을 들 수 있다.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는 2005년 미주지역 정상회의에 대항하여 열렸는데, 이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진전을 이루고자 했으나 강력한 대중 투쟁에 부딪쳐 실패했다. 사회운동 총회에 참가한 여러 원주민 조직,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 통합 과정을 지지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며 다소 소극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듯 모호한 지지 표명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사이의 협정을 제외하면 ALBA 구상이 사실상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의 구상 및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장기적인 정치 과정, 그리고 차베스를 둘러싼 향후 몇 년 간의 세력 관계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ALBA는 라틴아메리카 내 핵심적인 사회운동의 다양한 토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차베스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 및 부시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열린 민중정상회의에 참가한 사회운동 및 정치조직과 나란히 섰다. ALBA를 제도화하려는 제안들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가 제출한 문서에는 ALBA 제안을 19개의 독자적인 의제로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5) 문서는 각각의 의제에 대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역, 금융, 이주, 노동, 환경에 대한 새로운 협정과 규제를 마련할 것과, 새로운 기구, 네트워크, 위원회, 회사, 기금, 은행, 캠페인, 법인, 대학 및 이러한 기관들의 연합을 세워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라는 지역 산하에 놓이게 될 준-독립적인 기관의 주인은 볼리바르 대안에 관료주의적인 성격을 더하게 될 숨은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무역, 자유화된 기업을 추구하는 협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달리, ALBA는 단순한 협정의 체결 혹은 법률을 넘어서는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ALBA는 제안된 19개 항목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현존하는 국가 구조에 밀착된 복합적인 기관들을 형성해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 구상에는 위에서 언급한 관료적인 구조와 별도로 라틴아메리카 내 몇몇 공기업을 확대하거나 신설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다. 페트로 수르(PetroSur, 최근 형성된 석유 국영기업들의 연합),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에너지회사(지역 내 국영기업 연합), 가스수르(GasSur, 천연가스의 탐사 및 판매를 위한 공동 국영기업),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항공(LALC), 남미 보험회사, 남미공동은행(“(우리의 아메리카)”라는 신용카드 발급), 남미 위성 텔레비전 방송사(텔레수르),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라디오 네트워크, 라틴아메리카 통신회사 등이 이러한 제안에 포함된다. 결론 ALBA 구상의 세부적인 사항들에서 한 발 물러나서 보면, 이 제안이 여러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11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LBA는 구체적인 대안을 구성하는 과정에 사회운동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 반대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ALBA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동시에, ALBA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쿠바와의 연대 행동을 공식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돕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다(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또한 ALBA는 백악관과의 긴장 관계, 그리고 국제 무역협상에서 차베스 대통령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효과는 ALBA의 실효성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가지는 상징적인 힘에 기인한 것이다. ALBA를 통해서 차베스 대통령은 자유무역에 초점을 둔 지역 통합이라는 미국식 모델에 맞서는 굳건한 대안을 제시하는 이 지역 내 유일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ALBA의 건설은 급속하게, 그리고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상황에 따라 진전 혹은 후퇴, 패배를 겪게 될 것이다. 선거 정치, 국제적인 정치 지형, 미국의 압력, 혹은 대통령 한 사람의 이념 변화 등이 ALBA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할 요소가 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그램은 정치적 과정, 생산 구조, 그리고 통합과정에 참여하는 국가 내부, 뿐만 아니라 지역, 혹은 전 세계적인 세력의 상호 관계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민중 그리고 정치인들은 지난 20년 동안 대륙 전체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선스에 지쳐있다. 선거에 출마한 보수적인 후보조차도 신자유주의 반대 입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멕시코에서 2006년에 진행될 대선에서 NAFTA협정을 채결한 장본인이자 71년간의 독재를 유지해왔던 제도혁명당의 후보로 나서는 로베르토 마드라소는 “신자유주의적 전망은 수명을 다했고, 실패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 세계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동맹을 결성하는 일이다.”라며 “반신자유주의” 강령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패배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재집권을 위한 최후의 카드로 꺼내든 수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 대선에서는 좌파, 중도파, 우파 세 후보 모두가 각기 다른 내용의 “탄화수소의 국유화”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는 지난 450년에 걸친 은, 금, 주석, 석유, 가스, 코카에 이르는 자원 수탈의 역사를 뒤집을 만한 것이다. 처음에는 스페인, 그 다음에는 미국, 그리고 현재는 초국적기업이 이를 수탈해가며 매년 어마어마한 액수의 소득을 챙겨가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 민중 대부분은 빈곤이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LBA와 같은 제안의 중요성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민주의적 지도자들은 민중이 처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안을 제시하려는 노력 없이 자국의 부를 은밀히 자루에 담으면서 가까스로 대중을 사로잡고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내세운 수사(rhetoric)에 불과한 공약들을 지키도록 만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지도자로서의 차베스의 미래, 그리고 ALBA의 미래를 주목해야 한다. 1) “탈규제화된 국제무역”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본문으로 2) ALBA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Alternativa Bolivariana para la Americas) 머릿글자이면서 ‘새벽’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3) 베네수엘라-쿠바 간 협정문은 http://www.mltoday.com/Pages/NLiberation/Cuba-VenePact.html에서 영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퍼블릭 시티즌>이 발간한 세계 무역 감시(2005)에 따르면,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는 미국과 중미 5개국(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및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 체결한 협정이다. 2004년 5월 28일에 서명이 이루어졌고, 2005년 7월 27일 한 밤중에 미 의회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217대 215) 비준되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도 비준을 거쳤으며, 코스타리카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비준을 앞두고 있다. 중미자유무역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라는 조각 퍼즐의 한 조각이며 실패한 신자유주의적 NAFTA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한 NAFTA는 노동 ․환경 기준에 대한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겼으며, 핵심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유화와 탈규제화를 촉진했다. 본문으로 5) 1. 석유와 에너지 2. 통신과 교통 3. 군사 4. 외채 5. 경제와 금융 6. 경공업 및 기초 산업 7. 자연자원 8. 토지, 식량주권, 토지개혁 9. 교육 10. 대학 11. 과학 기술 발전 12. 매스미디어 13. 의료 14. 젠더 15. 이주-정체성(Identity) 16. 주거 17. 민중주도의 참여 민주주의 18. 원주민운동 19. 노동자운동 본문으로

  • 2006-04-05

    투기 자본의 행태는 금융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다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1997년 외환위기는 곧 IMF 구제금융협약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금융, 노동, 공공, 기업의 4대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쉼 없이 진행되었고, 민중들은 충격적인 위기 속에 금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사회 전반의 위기 비용은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지만 애초의 약속과 달리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꾸준한 시행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보를 이룬 것처럼 보였고,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부문의 주가 상승과 수출확대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와 외환은행 매각으로 3년 만에 차익 4조 5천억이라는 최고‘대박’을 터뜨린 론스타의 사례는 폭발적인 주가상승을 통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이윤을 노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화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이 대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초민족적 자본의 소위 ‘먹튀’전략은 투기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켜왔다. 현재까지의 논의는 한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기치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보호를 위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 상황은 한국경제의 성장이 착시일 뿐이고,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결국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을 기반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력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기업의 M&A 양상과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초민족적 투기자본의 비중은 질적, 양적 증가를 거듭해왔다. 초기 구조조정은 기업 매각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했다. FDI는 1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가 구축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04년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금융권 매각으로 다시 증가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충격 이후 외국자본의 유치는 이유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통한 한국경제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초민족적 자본이 뛰어들어 이윤을 얻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는 수많은 M&A로 이어졌다. 소버린의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소버린은 2003년 SK지분의 매입과 함께 경영진 전면교체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소버린의 주장은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들은 2005년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1조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같은 방식으로 헤르메스도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입과 이후 전량매각으로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이외에도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 BIH, JP모건, 인투루브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민족적 자본들은 유상감자나 고배당과 같은 한국경제에 투자한 자본보다 훨씬 많은 부를 해외로 이전해 갔다.1) 지속적인 M&A과정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한국 경제 내의 지분율은 기하급수로 증가해왔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경제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SC제일은행(100%외국인 지분), 외환은행(74%), 한국씨티은행(99.9%) 등의 금융권 일부는 사실상 외국인 자본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국민은행(85.25), 신한지주(64.3%), 하나은행(76.4%)도 외국인 자본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적으로 외국자본의 은행점유율은 2005년 6월 일반은행을 기준으로 29.9%, 국내은행을 기준으로 21.5%에 달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POSCO, 현대차 등의 경우에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 한국전력, SK텔레콤, KT 등도 주식취득 한도에 근접할 정도의 외국인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의 증가는 곧 초민족적 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의 점진적인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와 외자유치를 앞세운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 과정은 한국경제 전반의 취약성, 종속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M&A 메커니즘 초민족적 자본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적대적 M&A이다. 현재 한국 내 외국인 투자는 직접투자가 점점 줄고, 단기성 투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중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산업부문의 설비에 투자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인수합병형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2) 초민족적 자본의 M&A 역시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형태지만 M&A 메커니즘은 자본의 투자를 통해서 설비투자나 고용창출을 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초민족적 자본의 M&A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자산가치가 큰 기업을 우선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 부동산과 같은 보유자산이 많거나 우량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M&A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을 헐값으로 기업을 인수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조합의 저항이 극심할 경우에는 곧장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법인을 청산하는 식으로 차익을 노리고, 구조조정이 성공해서 실적이 이전보다 호전되면 그 후, 고가매각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익을 얻어간 대표적인 예는 론스타(외환은행), JP 모건(만도)의 경우다. 초민족적 자본의 목표는 오직 주가의 상승에 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윤획득에 대한 위협요소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업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방식으로 M&A가 진행된다. 또 다른 방식은 먼저 지분을 매입하고 M&A 실시를 선언하면서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이를 통해 차익을 실현한다. 대표적인 예는 소버린(SK), 헤르메스(삼성물산)다.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M&A 시도도 이런 절차를 밟아갈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경영권 확보는 주가를 통한 차익 실현의 발판일 뿐이다. 여기서도 주가 상승을 위한 구조조정과 알짜 자산의 매각은 꼭 필요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이고 빠르게 차익을 얻기 위해 경영권을 위협할 뿐이다. 이런 M&A의 과정은 한국경제 자체의 토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경제전반에서의 자금의 흐름, 이윤획득의 가능성을 지향으로 삼는다. 곧 현재 한국의 주가폭등과 수출확대는 금융투기 속에서 형성된 거품이 대다수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종속성이 심화되고 국내외 충격에 취약해진다. M&A를 둘러싼 논쟁의 한계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자본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의 해외유출과 산업투자의 침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들은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이 어떤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가에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1> 주주자본주의를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먼저 주주자본주의를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주주자본주의는 주주가치를 기업경영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핵심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적대적 M&A는 경쟁을 통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식가치를 증대시키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메커니즘이다. 만약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보면 경영자들을 나태하고 방만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소위 미꾸라지 속에 메기를 풀어놓아야 미꾸라지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3) 한국사회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이 1970년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70년대 위기 이전에 자본의 전략은 기업 수익을 유보하고 기업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은 지속적인 산업발전과 낮은 실업률, 상대적 고임금을 통해 수익과 고용의 안정적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70년대 위기는 이윤율의 저하 속에서 유보 및 재투자 전략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를 주인으로, 경영진을 대리인으로 가정하는 주주자본주의가 강조되었다. 기관투자자의 등장과 뮤추얼펀드, 연기금, 생명보험과 같은 기관의 등장,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의 금융화는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의 개시로 주주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유보-재투자 전략의 폐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특히 노동력에 대한)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상시적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에 대한 통제로서 인수합병이 중시되었고, 이윤을 중심 논리로 사업과 업무들의 폐기처분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스톡옵션과 같은 경영진의 고임금 전략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주주와 최고 경영진이 이익을 챙긴다. 주주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주주나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객, 공급, 유통 모든 면에서 부유함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주주와 경영진의 이득은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 자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인구를 낮은 임금과 소득에 머무르게 하는 경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의 측면은 임금뿐만 아니라 주식보유에 있어서 상당한 불평등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가구의 상위 0.5%는 공모된 기업주식의 37%를 소유하지만 80%의 가구는 2% 이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가치에 입각한 주식의 높은 수익률 강조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고,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이 부를 영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2> 국내자본을 지키기 위한 경영권 방어 다른 한편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여기서 M&A시도는 기업들을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도록 강제하고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해악으로 평가된다. 특히 FDI와 투기성 자본을 구분하면서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방안의 마련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4)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이들은 투자 자본/투기 자본, 국내자본/외국자본의 구분을 논의의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이런 구분은 실효성이 없다. 먼저 투자 자본/투기 자본의 구분의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70년대 위기를 거치면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이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이는 자본이 이윤을 얻는 방식이 금융부문을 매개로 하는 과정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곧 특정한 기업에 자본이 직접투자로 주어지거나, 투기를 목적으로 주어지거나 이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각 기업의 자본금은 곧 주식시장에서 자사의 주식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 이윤은 산업부문에 재투자되기보다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자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을 운용하는 데 사용된다. FDI나 그린필드(직접투자 중 생산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는 자체로 투기(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바라보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다리면서 자금을 대는 것)와 목적 면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FDI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비율을 구분해 따지기도 힘든 수준이고, 이러한 자본의 흐름은 이미 오직 주식시장에서의 이윤만을 쫓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자본/외국자본이라는 구분도 무의미한 것이다. 국내의 자본(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재벌)들 역시 금융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국계 자본과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초민족화와 글로벌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자본이 외국자본처럼 시세차익과 같은 주식시장, 금융에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택하지 않고 국내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한 투자 확대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구하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표방하는 국내자본들은 어떠한 민족적/민중적 이해와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기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 비판이 결여된 초민족적 자본에 관한 논쟁은 허구다 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의 본격적 진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초민족적 자본이라는 행위자가 생산부문보다는 금융부문을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해답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행은 결국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매력적인 시장으로 한국경제 전반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국 금융부문에서의 지속적인 투기를 통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위기를 심화해왔다. 또한 금융을 통해 부를 얻어간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다른 지역, 계급, 인종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뽑아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배제와 불평등,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삶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면서 금융세계화에 기생하고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민족적 해결책을 부르짖는 것(이는 국내자본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는 최고위 경영진의 이득을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이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그 상황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압축성장’과 과도한 투자로 망쳐놓은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의 올바른 실현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포함한 설비 투자 등으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와 그 측근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외환위기-현재의 장기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종속성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 초민족적 자본의 전횡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횡포를 공공연하게 보장하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그 어떤 입장도 민중의 삶의 위기와 경제,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삶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바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있는 것이다. 1)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는 서울증권을 상대로 액면가(2500원)대비 60%인 주당 1500원의 고배당으로 267억 원을 회수했고, 1999년 이후 투자자금의 80%를 회수했다. BIH는 브릿지 증권을 상대로 70%의 고배당으로 200억 원을 회수하고, 02년 3차례 유상감자로 600억 원 회수, 04년 유상감자로 1125억 원을 회수했다. 또, JP모건은 만도기계를 대상으로 246억 원의 투자로 1710억 원을 회수해갔으며 인투루브는 OB맥주를 대상으로 유상감자로 1600억 원을 회수해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5년 주식배당액은 2004년보다 50%증가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외국인들이 3조 6천억 원의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실현했다. 본문으로 2)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사례에 대한 보고 건수는 2002년 810건에서 2005년 2513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이중 24% 정도가 단순투자가 아니라 회사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으로 3) 이런 입장을 피력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참여연대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KT&G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십중팔구 주가는 오른다. 주가 상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가 효율성 증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자본의 공격이 없었더라도, 그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국민적 이익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었을까? 글쎄다… KT&G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회사정관에 좋은 말을 써놓았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부감시 뿐만 아니라 외부견제도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번 사태는 KT&G 경영진으로 하여금 외부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결국 효율성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4)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대책은 다음과 같다. 1.황금주; 1주 만으로 합병 등 중요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형성해 적대적 M&A의 원천 봉쇄 2.포이즌 필; 적대적 M&A 위협이 있을 경우 대주주가 시세보다 싼 값에 신주를 발행해 인수, 우호적 제 3자에게 배정해 자기 지분을 늘리는 제도 3.황금 낙하산; 적대적 M&A로 해직된 이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게해서 공격자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제도 4.의무공개매수제도; 적대적 M&A를 위해 시장에서 공개 매수할 때 반드시 특정비율 이상을 사들이도록 해서 인수부담을 크게 하는 제도 5.주식상호보유제도; 비슷한 입장의 기업끼리 상대방 기업 주식을 보유, 위협이 생길 때 백기사로 나서는 것. 최근 KT&G에 대한 M&A시도 이후 많은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본문으로

  • 2006-04-05

    투기 자본의 행태는 금융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다

    요약문이 있습니다.
    요약보기
    바로가기

    1997년 외환위기는 곧 IMF 구제금융협약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금융, 노동, 공공, 기업의 4대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쉼 없이 진행되었고, 민중들은 충격적인 위기 속에 금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사회 전반의 위기 비용은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지만 애초의 약속과 달리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꾸준한 시행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보를 이룬 것처럼 보였고,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부문의 주가 상승과 수출확대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와 외환은행 매각으로 3년 만에 차익 4조 5천억이라는 최고‘대박’을 터뜨린 론스타의 사례는 폭발적인 주가상승을 통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이윤을 노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화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이 대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초민족적 자본의 소위 ‘먹튀’전략은 투기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켜왔다. 현재까지의 논의는 한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기치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보호를 위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 상황은 한국경제의 성장이 착시일 뿐이고,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결국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을 기반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력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기업의 M&A 양상과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초민족적 투기자본의 비중은 질적, 양적 증가를 거듭해왔다. 초기 구조조정은 기업 매각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했다. FDI는 1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가 구축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04년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금융권 매각으로 다시 증가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충격 이후 외국자본의 유치는 이유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통한 한국경제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초민족적 자본이 뛰어들어 이윤을 얻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는 수많은 M&A로 이어졌다. 소버린의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소버린은 2003년 SK지분의 매입과 함께 경영진 전면교체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소버린의 주장은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들은 2005년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1조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같은 방식으로 헤르메스도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입과 이후 전량매각으로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이외에도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 BIH, JP모건, 인투루브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민족적 자본들은 유상감자나 고배당과 같은 한국경제에 투자한 자본보다 훨씬 많은 부를 해외로 이전해 갔다.1) 지속적인 M&A과정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한국 경제 내의 지분율은 기하급수로 증가해왔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경제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SC제일은행(100%외국인 지분), 외환은행(74%), 한국씨티은행(99.9%) 등의 금융권 일부는 사실상 외국인 자본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국민은행(85.25), 신한지주(64.3%), 하나은행(76.4%)도 외국인 자본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적으로 외국자본의 은행점유율은 2005년 6월 일반은행을 기준으로 29.9%, 국내은행을 기준으로 21.5%에 달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POSCO, 현대차 등의 경우에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 한국전력, SK텔레콤, KT 등도 주식취득 한도에 근접할 정도의 외국인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의 증가는 곧 초민족적 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의 점진적인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와 외자유치를 앞세운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 과정은 한국경제 전반의 취약성, 종속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M&A 메커니즘 초민족적 자본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적대적 M&A이다. 현재 한국 내 외국인 투자는 직접투자가 점점 줄고, 단기성 투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중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산업부문의 설비에 투자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인수합병형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2) 초민족적 자본의 M&A 역시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형태지만 M&A 메커니즘은 자본의 투자를 통해서 설비투자나 고용창출을 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초민족적 자본의 M&A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자산가치가 큰 기업을 우선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 부동산과 같은 보유자산이 많거나 우량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M&A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을 헐값으로 기업을 인수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조합의 저항이 극심할 경우에는 곧장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법인을 청산하는 식으로 차익을 노리고, 구조조정이 성공해서 실적이 이전보다 호전되면 그 후, 고가매각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익을 얻어간 대표적인 예는 론스타(외환은행), JP 모건(만도)의 경우다. 초민족적 자본의 목표는 오직 주가의 상승에 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윤획득에 대한 위협요소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업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방식으로 M&A가 진행된다. 또 다른 방식은 먼저 지분을 매입하고 M&A 실시를 선언하면서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이를 통해 차익을 실현한다. 대표적인 예는 소버린(SK), 헤르메스(삼성물산)다.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M&A 시도도 이런 절차를 밟아갈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경영권 확보는 주가를 통한 차익 실현의 발판일 뿐이다. 여기서도 주가 상승을 위한 구조조정과 알짜 자산의 매각은 꼭 필요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이고 빠르게 차익을 얻기 위해 경영권을 위협할 뿐이다. 이런 M&A의 과정은 한국경제 자체의 토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경제전반에서의 자금의 흐름, 이윤획득의 가능성을 지향으로 삼는다. 곧 현재 한국의 주가폭등과 수출확대는 금융투기 속에서 형성된 거품이 대다수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종속성이 심화되고 국내외 충격에 취약해진다. M&A를 둘러싼 논쟁의 한계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자본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의 해외유출과 산업투자의 침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들은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이 어떤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가에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1> 주주자본주의를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먼저 주주자본주의를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주주자본주의는 주주가치를 기업경영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핵심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적대적 M&A는 경쟁을 통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식가치를 증대시키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메커니즘이다. 만약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보면 경영자들을 나태하고 방만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소위 미꾸라지 속에 메기를 풀어놓아야 미꾸라지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3) 한국사회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이 1970년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70년대 위기 이전에 자본의 전략은 기업 수익을 유보하고 기업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은 지속적인 산업발전과 낮은 실업률, 상대적 고임금을 통해 수익과 고용의 안정적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70년대 위기는 이윤율의 저하 속에서 유보 및 재투자 전략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를 주인으로, 경영진을 대리인으로 가정하는 주주자본주의가 강조되었다. 기관투자자의 등장과 뮤추얼펀드, 연기금, 생명보험과 같은 기관의 등장,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의 금융화는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의 개시로 주주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유보-재투자 전략의 폐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특히 노동력에 대한)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상시적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에 대한 통제로서 인수합병이 중시되었고, 이윤을 중심 논리로 사업과 업무들의 폐기처분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스톡옵션과 같은 경영진의 고임금 전략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주주와 최고 경영진이 이익을 챙긴다. 주주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주주나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객, 공급, 유통 모든 면에서 부유함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주주와 경영진의 이득은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 자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인구를 낮은 임금과 소득에 머무르게 하는 경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의 측면은 임금뿐만 아니라 주식보유에 있어서 상당한 불평등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가구의 상위 0.5%는 공모된 기업주식의 37%를 소유하지만 80%의 가구는 2% 이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가치에 입각한 주식의 높은 수익률 강조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고,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이 부를 영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2> 국내자본을 지키기 위한 경영권 방어 다른 한편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여기서 M&A시도는 기업들을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도록 강제하고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해악으로 평가된다. 특히 FDI와 투기성 자본을 구분하면서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방안의 마련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4)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이들은 투자 자본/투기 자본, 국내자본/외국자본의 구분을 논의의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이런 구분은 실효성이 없다. 먼저 투자 자본/투기 자본의 구분의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70년대 위기를 거치면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이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이는 자본이 이윤을 얻는 방식이 금융부문을 매개로 하는 과정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곧 특정한 기업에 자본이 직접투자로 주어지거나, 투기를 목적으로 주어지거나 이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각 기업의 자본금은 곧 주식시장에서 자사의 주식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 이윤은 산업부문에 재투자되기보다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자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을 운용하는 데 사용된다. FDI나 그린필드(직접투자 중 생산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는 자체로 투기(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바라보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다리면서 자금을 대는 것)와 목적 면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FDI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비율을 구분해 따지기도 힘든 수준이고, 이러한 자본의 흐름은 이미 오직 주식시장에서의 이윤만을 쫓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자본/외국자본이라는 구분도 무의미한 것이다. 국내의 자본(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재벌)들 역시 금융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국계 자본과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초민족화와 글로벌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자본이 외국자본처럼 시세차익과 같은 주식시장, 금융에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택하지 않고 국내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한 투자 확대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구하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표방하는 국내자본들은 어떠한 민족적/민중적 이해와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기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 비판이 결여된 초민족적 자본에 관한 논쟁은 허구다 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의 본격적 진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초민족적 자본이라는 행위자가 생산부문보다는 금융부문을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해답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행은 결국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매력적인 시장으로 한국경제 전반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국 금융부문에서의 지속적인 투기를 통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위기를 심화해왔다. 또한 금융을 통해 부를 얻어간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다른 지역, 계급, 인종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뽑아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배제와 불평등,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삶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면서 금융세계화에 기생하고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민족적 해결책을 부르짖는 것(이는 국내자본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는 최고위 경영진의 이득을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이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그 상황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압축성장’과 과도한 투자로 망쳐놓은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의 올바른 실현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포함한 설비 투자 등으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와 그 측근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외환위기-현재의 장기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종속성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 초민족적 자본의 전횡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횡포를 공공연하게 보장하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그 어떤 입장도 민중의 삶의 위기와 경제,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삶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바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있는 것이다. 1)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는 서울증권을 상대로 액면가(2500원)대비 60%인 주당 1500원의 고배당으로 267억 원을 회수했고, 1999년 이후 투자자금의 80%를 회수했다. BIH는 브릿지 증권을 상대로 70%의 고배당으로 200억 원을 회수하고, 02년 3차례 유상감자로 600억 원 회수, 04년 유상감자로 1125억 원을 회수했다. 또, JP모건은 만도기계를 대상으로 246억 원의 투자로 1710억 원을 회수해갔으며 인투루브는 OB맥주를 대상으로 유상감자로 1600억 원을 회수해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5년 주식배당액은 2004년보다 50%증가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외국인들이 3조 6천억 원의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실현했다. 본문으로 2)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사례에 대한 보고 건수는 2002년 810건에서 2005년 2513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이중 24% 정도가 단순투자가 아니라 회사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으로 3) 이런 입장을 피력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참여연대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KT&G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십중팔구 주가는 오른다. 주가 상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가 효율성 증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자본의 공격이 없었더라도, 그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국민적 이익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었을까? 글쎄다… KT&G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회사정관에 좋은 말을 써놓았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부감시 뿐만 아니라 외부견제도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번 사태는 KT&G 경영진으로 하여금 외부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결국 효율성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4)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대책은 다음과 같다. 1.황금주; 1주 만으로 합병 등 중요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형성해 적대적 M&A의 원천 봉쇄 2.포이즌 필; 적대적 M&A 위협이 있을 경우 대주주가 시세보다 싼 값에 신주를 발행해 인수, 우호적 제 3자에게 배정해 자기 지분을 늘리는 제도 3.황금 낙하산; 적대적 M&A로 해직된 이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게해서 공격자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제도 4.의무공개매수제도; 적대적 M&A를 위해 시장에서 공개 매수할 때 반드시 특정비율 이상을 사들이도록 해서 인수부담을 크게 하는 제도 5.주식상호보유제도; 비슷한 입장의 기업끼리 상대방 기업 주식을 보유, 위협이 생길 때 백기사로 나서는 것. 최근 KT&G에 대한 M&A시도 이후 많은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