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분출 중인 사회운동과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좌파’ 정권의 관계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특히 이 논란의 중심에는 본 포럼을 직접 지원하며 미 제국주의에 맞서 역내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단결할 것을 호소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위치했다.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효과적으로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포럼의 마지막 날 행사로 열린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사회운동총회가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당초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의 ‘정당 및 무장조직 배제 원칙’ 논란이 전진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1) 오히려 이러한 쟁점 이동은,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이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정당과 대중운동이 인민주의로 변질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하지만 역으로 ‘운동의 운동’ 또는 ‘공간’으로서 규정된 세계사회포럼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실현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결과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복합적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 자체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기 위한 이론적·정치적 차원 전반의 기획을 요청하기 때문이다.2) 이에 오늘날 차베스-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향후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우선 라틴 아메리카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 조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다음으로, 일종의 지역적·민족적 특수성으로서 제국주의의 지배와 인민주의적 전통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출현과 대응, 변모를 살펴본다. 이 속에서 차베스 정권의 성격 및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의 정치학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이념이 안정적인 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세력은 의회정치 대신 과두제적·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 의존했다. 동시에 사회주의나 급진주의를 표방했던 좌익적 사회운동은 폭압적으로 억압됐다. 그 결과 사회개혁과 하층계급의 사회적·정치적 통합은 권위주의적·위계적 분할과 포섭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빈번하게 출현하는 인민주의는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불안정을 표현한다. 사회경제적 불균등성과 극단적인 불평등은 인민주의의 조건이 되며 정치제도의 취약성은 ‘반정치의 정치’에 기여한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출현과 변모를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동에 대한 지역의 대응양상, 계급구조의 변화와 지배체제의 변동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 전통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도시화와 제한적인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의 뿌리 깊은 유산을 극복하지 못했다.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전통적인 토지귀족의 지배력은 지속되었고 독자적 군대를 보유하고 대사제이자 행정관의 역할을 하는 토지귀족이 지방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국적 차원에서는 대중적 참여를 제한하는 토지귀족의 ‘과두제적’ 의회제가 확립되었고, 국가는 지역 영주들의 연맹체로서 권위적·전제적 성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토지귀족의 자유주의는 민족적 통합이나 민주주의와는 대비되며, 이들은 영지를 중심으로 강력한 연고주의적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 유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쟁-세계시장의 붕괴-1차 상품 수출의 위기에 따라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 등에서 경공업 중심의 초보적 수입대체 산업화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토지귀족의 지배력과 과두제적 픽망ㅔ〉?약화되었다. 또 국내시장, 국가, 도시의 팽창으로 연고주의라는 전통적인 정치적 통제방식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토지귀족은 새로운 부유층을 상류사회의 하층으로 포섭하는 한편, 기존의 정치제도와 정당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의 중산층, 노동자, 빈민을 배제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 인민주의는 대공황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급속히 성장하여,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1940-50년대에 확립된 인민주의 정권은 미국의 ‘발전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되기까지 지속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전략은 ‘자유 세계주의’라는 냉전의 틀 내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데 집중했다. 반면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지역 차원의 냉전 질서가 가시화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는 상대화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관료들은 미국에게 발전원조를 호소했지만 마셜플랜은 구상되지 않았고, 발전의 쇼케이스로 수출지향적 산업화가 지원된 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주로 미국계 법인자본의 직접투자를 위한 우호적 조건 형성이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국내외적인 정치·경제적 권력의 공백과 교착 상황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띤다. 인민주의는 기존의 발전전략과 통치구조에 대한 반대를 중산층, 노동자, 도시빈민들의 요구와 결합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은 새롭게 형성된 국내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계급의 제휴를 형성하고 토지귀족과 타협함으로써 국내산업을 중심으로 한 민족적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특수한 제휴형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중적 동원이 추가되어야 했다. 즉 인민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세력 및 그와 결탁한 토지귀족 세력, 자유무역과 과두제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성장했다. 이들은 제국주의로 변질된 19세기 자유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영향을 받아 열정적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족적 갱생을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민은 노동자·농민·빈민과 같은 계급적 범주를 초월한 유기체적 통일성으로 이상화된 주체였다. 그 결과 인민은 기존의 연고주의에서 배제된 도시 노동자, 프티 부르주아, 농촌 출신 이주자, 학생, 지식인, 사병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인민주의적 동원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는 인격화되고 정치는 인민의 지도자와 적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민주의는 결코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다. 혁명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소유권과 생산관계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으며 토지귀족과 타협했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적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독창적인 정치적·문화적 동원방식을 발전시켰다. 한편 인민주의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확대된 국가기구로 통합했다. 노조는 국가의 권위 하에서 자본가조직과의 기능적 조정을 통해 계급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위계적 질서 내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고정된 지위를 제공하는 코포러티즘 기구로 전락했다. 노동자는 인민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국가에 의해 승인된 틀 내에서 임금교섭과 복지혜택, 인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선거권을 획득했다. 미국 헤게모니의 형성과 군부독재의 폭정 1950년대부터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해외직접투자가 거대하게 이뤄졌고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법인자본과 초민족화된 국내 부르주아지는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이에 기초한 자본축적은 더 이상 인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울러 196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내외의 정치상황도 인민주의의 토대를 해체하는 요소였다. 1955년 반둥회의로 상징되는 비동맹운동의 확산과 1959년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민족적·민중적 발전의 요구가 증가되고 있었다. 인민주의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동자와 농민의 저항도 증가하고 일부에서는 게릴라 무장 투쟁도 출현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시적인 혁명의 고조”는 1940-50년대 인민주의와 비교할 때 새로운 중요한 특징을 반영한다. 첫째, 혁명적 고조는 이전 시기의 민족적 인민주의를 넘어 강력한 급진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했다. 둘째, 이들은 게릴라, 대중봉기, 총파업 등 의회 외부적 투쟁과 연계했다. 셋째, 이들은 이전의 프티 부르주아 선거주의자들과의 연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넷째, 새로운 혁명적 운동이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연안 국가의 강탈적·권위적·자유주의적인 수출지향적 체제와 남아메리카의 인민주의적인 수입대체적 체제에 대해 동시에 도전했다. 다섯째, 혁명주의적 물결의 기원은 각국의 특수성에 기반했지만, 미국의 반봉기 전술에 대한 투쟁과 함께 특히 쿠바혁명에 의해 창안된 수렴점을 공통적인 혁명적 ‘참고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3) 이에 미국은 1961년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및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전술적으로 워싱턴은 다중적 정책을 적용했다. 가령 ‘진보를 위한 동맹’을 통한 개량의 쟁취,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반봉기, 군사쿠데타 등 고도의 군사 전략, 해외 군대 파견과 군사적 원조, 프로그램의 이식 등이 그것이다. 혁명을 제국주의적으로 봉쇄하려는 이러한 노력에서 국내 프티 부르주아 선거 지도자들이 주된 역할을 수행되었다. 그러나 다중적 전술의 시기는 결국 군사적 선택이 우위를 점하며 막을 내리게 된다. 미국의 전술 변경은 혁명적 물결을 봉쇄하는 데 있어 민간 선거 체제와 개량에 대한 워싱턴의 의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워싱턴은 일련의 군사 쿠데타를 후원하는 쪽으로 방향 선회하며 혁명세력의 부상을 제거하고 민족주의적-인민주의적 개량을 역전시켰다. 아울러 ‘혁명적·국제주의적’ 쿠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강화되었고 역내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을 동반하는 반공과 냉전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결국 좌파를 고무할 수 있는 인민주의 정부를 제거하기 위해 군부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군부-반혁명-권위주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아메리카에서 군부의 정치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다만 이 시기의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토지귀족과 보수주의 정당에 권력을 이양한 1930년대와 달리,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사회·경제적 전망 속에서 군사혁명위원회를 통해 장기 집권한다는 차별점이 있다. 또 미국은 군사정부를 관료적 능력과 기술적 역량을 갖춘 현대화의 주도세력으로 간주했다. 이 시기 군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인민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군부는 민족경제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개방하고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진출을 장려했다. 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추진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혜를 철회했다. 임금하락, 장시간노동, 노조탄압, 비공식부문 노동자·빈민에 대한 탄압은 자연스러운 산물이었다. 미국은 군사 독재 시기 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위한 법적·이데올로기적·제도적 기초를 창조했다. 미국의 지배를 위한 정치·경제적 파라미터는 군사 정권이 새로운 대중적 사회-정치적 운동이 부상하는 1980년대 초 쇠퇴할 때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의 제국주의는 단순히 군사적 지배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인민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사회주의 정당, 즉 ‘시장 해법’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정치적으로 추방했다. 제국주의 세력은 대중들이 군사 정권을 위기로 몰아붙일 때 이들이 정치에 복귀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순치하는 한편 이들을 대체할 미래의 선거 정당을 후원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선거주의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복귀가 제국주의적-군사 국가가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파라미터 내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前인민주의, 前사회주의, 前민족주의 선거 엘리트들은 반독재 운동을 해체하고 오히려 선거 정치의 물꼬를 텄다. 군부가 신자유주의의 기초를 닦았다면 민간 선거주의자들은 모든 전략 부문에 대한 집단적인 사유화, 총체적인 탈규제, 영속적인 부채 지불, 부의 유출과 역진 등을 구조화했다. 외채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한편 1980년대에 이르러 수출주도 산업화의 한계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와 달리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제한적이었으며 오히려 역내에서 활동하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또 역내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채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높은 경제적 비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유가상승과 고금리·고달러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외채위기가 발생하고 생산마비, 자본도피, 대중적 소요가 발생했다. 1982-83년 외채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는 만성적 경제위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1985년 ‘베이커 플랜’을 통해 재정긴축을 전제로 외채의 상환시기를 재조정할 것을 제안하고 수출을 통한 외환확보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역자유화를 권고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대중적 불만과 사회적 소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둘러싼 논쟁이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변화와 민주화 운동세력의 분할, ‘책임있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원 등이 모색되었다. 즉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해 군부의 퇴진과 자유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집권이 권고된 것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관리적 관념의 출현을 의미한다. 군사정부에서 이뤄진 경제적 자유화는 정치적 자유화를 필요로 하고 정치적 자유화는 민주화와 동일시되거나 경제적 위기를 관리할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절차와 규칙으로 환원되거나 탈정치화되고 순수한 기술적 문제로 파악된다. 동시에 민주적 민간정부의 책임성이 강조되고 문민화의 구체적 경로로서 군부와 책임있는 야당의 협상이 권장되기에 이른다. 아르헨티나(1983년), 칠레(1990년) 등 군사정부의 퇴진 또는 문민정부로의 ‘협상된 이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4)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대다수 국가들은 외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협상된 이행’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보수정당, 분명한 정치적 전망이 결여된 중도좌파 등 군부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의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문민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통치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의 의미는 자연스레 축소되었다. 기술관료들은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지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경제엘리트와 정치엘리트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편 경제위기는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자들의 이질성을 심화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자율성을 침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가치절하가 이뤄지고, 정치는 부패한 직업정치가와 귀족집단의 이기적인 게임으로 간주되었다. 정치엘리트와 노조 등 기존제도의 수혜자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누적되고 ‘원한의 정치’가 득세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외채위기를 거쳐 금융세계화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군부와 전통적 인민주의 세력은 무능을 노정한다. 기존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함으로써 내적 위기를 경험하고 대중적 토대를 상실했다. 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들도 독자적인 이념을 상실하고 내적 분할을 경험했다. 결국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다(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로,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수엘라의 페레즈).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은 ‘반정치의 정치’를 통해 경제적 위기와 계급적 갈등을 기존의 정치와 정치 엘리트, 정당과 의회제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민족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한다. ‘충격요법’의 과감성은 전통적 인민주의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와 자본가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긴축정책, 부채-주식 전환, 국유기업 사유화, 남미공동시장, 북미자유무역협정 등). 이는 곧 광범위한 실업·빈곤을 야기하고 실질임금 하락,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며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적 조건 석유경제의 형성과 농업의 위기, 도시화 19세기 초 식민 치하 베네수엘라는 광물 자원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코코아, 커피, 설탕, 면화, 담배 등) 여전히 농업이 주된 경제 활동이었고 최소한 70%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다. 하지만 19세기 내내 토지는 독립전쟁(1821-39년)에 참가했던 강자의 수중에서 분할, 점유되었다. 이러한 불공평한 토지 분배에 맞서 독립 후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에세키엘 사모라), 불공평한 토지 분배 구조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그 후 구스만 블랑코와 같은 군부 지도자들은 충직한 부하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는데, 이 점에서 가장 악명 높은 후안 빈센트 고메스와 같은 독재자는 막대한 토지를 개인 소유로 전유했다. 고메스 독재 치하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농업경제에서 천연 자원 개발(특히 석유) 기반 경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국적으로 농업을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고메스 독재가 1935년 막을 내리자, 농업은 전체 노동력의 6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GDP의 단 22%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최대 석유수출국이 되었다. 석유 생산이 점점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경제학자들이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북해 천연가스/원유 발견이 네덜란드 경제에 끼친 효과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야기되었다. ▲석유 수출로 인한 해외 통화 유입 ▲구매력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국산품에 비해 수입 공산품·농산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결과 수입량이 증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품으로 인해 농업 생산 파괴 산업 발전 저해라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5) 1960년에 이르자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단 35%로 급감했다(1990년에는 12%). 이로써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네덜란드 병”의 또 다른 결과는 베네수엘라가 역내에서 유일한 농산물 수입 국가이자 GDP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소인 국가로 전락한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급격한 농업의 쇠락은 도시화가 굉장히 급속히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도시는 수용 가능한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결과 도시 변두리에 거대한 슬럼/바리오가 형성되었고, 농촌 쇠락에 조응하는 슬럼/바리오 규모의 확대는 1960-70년대 석유 수익이 어마어마하게 증대한 결과였다. 1980-90년대 20여 년 동안 석유 수익이 꾸준히 하락하자 국가는 재분배 조치를 통해 빈곤의 충격을 완화할 수 없었고 대신 사회적 소비를 삭감하는 극약처방을 내세웠다. 한편 전반적인 농업의 쇠락 이외에도, 베네수엘라 농민들은 극심한 토지 소유 불평등에 처했다.6) 국가가 보증하는 토지개혁은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가 막을 내리고 1958년 자유 민주주의가 도입된 직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토지개혁법(1960년)에 따라 전국농업연구소가 설립되고 20만 이상의 가구에 국유지가 분배되었는데, 차기 정부는 연구소와 토지개혁 강령을 다시 무시했다. 1970년대 석유 호황기에 “네덜란드 병”이 심화되면서 농산물은 이윤이 남지 않았고, 도시화는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토지개혁 수혜자의 1/3이 탈락했고, 수혜자의 90% 가량이 온전한 토지 소유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필연적으로 토지 소유권의 개혁을 필요로 했다. 즉 토지소유자의 수중이 아닌 국가에서 소농으로 소유권의 이전이 요구된 것이다. 1997년 농업 인구조사에 따르면, 토지분배는 1960년 이전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상황에 머물렀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를 위한 시장이 확대되고(종종 투기 목적으로 토지 매매) ▲대토지소유자들이 농업노동자/소작농을 내쫓는 경향이 증가하고(신기술의 도입 또는 농산물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자 생산을 포기한 결과로, 이는 결국 도시화에 기여), ▲토지소유자들이 점점 개인보다는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계속 진행되었다. 단적으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인구 중 9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1970년 ‘오일 붐’의 결과로서, 그 이후에도 정부는 석유산업에 전적으로 집중했으며 이촌향도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석유로 인한 소득은 대부분 도시의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 투자되었고, 중산층, 백인에게 돌아갔다. 이는 농업 기반을 축소시키고 경제에 대 혼란을 가져왔다(OPEC의 공동 창설자 후안 파블로 알폰소는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라고 표현했다). 푼토피지협약 체계와 경제 위기 푼토피지협약(1958년)으로 건설된 양당 협조 체제에 대한 반대가 볼리바리안 프로젝트의 시초를 구성한다. 대부분 군사 독재 하에 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건전하고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는 제국주의적 시각과 달리 차베스는 이 체제를 사회적으로 배타적이고 부패한 체제로 규정했다. 가령 사회민주적 경향 하에서 기조직된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민주행동당(AD)과 베네수엘라 노총(CTV)의 사례가 그것이었다.8) 푼토피지협약 이후 베네수엘라 지배계급은 중동과 유사한 실책을 저질렀고, 전국민을 석유로 혜택을 받는 자와 고통 받는 자로 양분했다. 국제 유가의 하락과 국제이자율의 상승은 석유 수출 의존적이고 해외 금융 도입 의존적인 국가 경제에 침체를 가져왔다. 특히 1980년대 초 라틴 아메리카 전반의 외채위기로 인한 긴축이 장기화된 결과 많은 국가들에서 자산의 평가절하가 일어났다. 긴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난을 안겨 주는 반면, 유동 자본의 소유자들에게는 그 지역의 자산을 최저 가격에 구매하여 축적과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긴축기간 동안 라틴 아메리카 국가로부터 미국으로의 대규모 자본도피는 그 지역에서 생성된 자본 분파를 고위험의 국내 투자로부터 보호하는데 복무했다. 또한 도피한 자본가들이 자신의 자본을 본국으로 재송환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외채문제는 자산 비용의 하락을 통해 자본가들의 미래의 기회를 확장하기도 했다.9)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페레즈(1988년 당선)는 IMF를 신봉했다(사유화, 공공지출 삭감, 자유화, 탈규제). 경제는 8.6% 수축했고, 빈곤도 급증했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는 인플레이션처럼 지배계급 스스로 해결을 공언했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인구 다수를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빈곤을 심화하고 거대한 빈농들의 도시 이주를 촉진하고 실질임금을 하락시키고 비공식부문 노동자를 팽창시킨 원인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바로 빈민 봉기인 ‘카라카소’였다. 페레즈 집권 3년간 60만의 노동자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농업 노동자, 빈농, 중농의 상당수가 감소했다. 비공식부문 노동자 비율은 1980년 34.5%에서 1999년 53%로 급증한 반면 산업 노동자 비율은 감소했다. 1989년 이후 통신, 항만, 석유, 철강, 항공 등이 사유화되면서 외국자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고용이 감소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이 창궐하고 실질임금이 급락하고 사회적 분할선이 심화되었다.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위기를 동반했고, 부패와 무능은 정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또 연이은 은행 위기로 대량의 자본도피에 직면해야 했다. 통화 가치 저평가는 70.8%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물가 및 환율 통제가 또 다시 부과됐다. 1995년 협상을 통해 또 다시 14억 달러의 IMF 차관이 도입됐지만 이는 더 많은 구조조정, 사유화, 외국인 투자와 함께 유가 하락과 빈곤을 강요하는 것이었다.10) 이것이 바로 1999년 차베스가 승계한 정치적·경제적 상황이었다. 차베스는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전통적인 정치체제에 회의적인 대중들의(56%) 지지를 얻어 1998년 12월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1992년 봉기 실패 및 수감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들에게 제도적 변화를 확신시켰고, 베네수엘라의 난국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회·경제적 변화를 강조했다(차베스는 봉기 실패 이후 군사 쿠데타 대신 제도적 변화 노선을 채택했다). 차베스는 칠레 아옌데 이후 평화적 방식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심도 깊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행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차베스는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군대에 대한 영향력 유지), 제도 영역에서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킨다는 기본 전제 하에 변화를 모색한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11) 차베스의 집권과 반혁명, 그리고 개혁 개혁을 위한 제도적 조건의 창출 반대세력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존 과두제가 여전히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국영석유회사의 경영, 입법·사법 권력 및 지방 정부에서 높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했고, 미디어에 대한 독점적 통제와 경제인 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노총(CTV)의 지지, 고위 장교, 카톨릭과의 연계도 굳건했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중간계급과 군부는 차베스 정권에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이었다. 또 베네수엘라에는 강력한 좌파 정당이 부재했다. ‘제5공화국운동(MVR)’은 현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이지만, 그 속에는 기회주의적 요소가 상당한 정도로 포함되었다.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은 대체로 취약했으며 전통적인 지배 정당들에 의해 조종되는 등 자율성이 심각히 훼손된 상태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차베스는 그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구조로서 군부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제도적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국민투표에 이어 ‘볼리바리안 헌법’이 제정되었다(1999년). 신헌법은 반신자유주의, 참여 민주주의, 협동조합 및 노동자 자주 관리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과 인간주의와 연대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12) 다음 단계는 정부 내 세력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 등을 선출하는 거대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로써 차베스가 국가기구를 장악한 반면 반대세력은 분할되어 국회에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 결과 2001년 12월 토지법, 어업법, 탄화수소법, 소액대출신용법, 협동조합법 등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었다. 또 반대세력의 역공에 대처하기 위해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써클’을 제창, 차베스 지지자들 스스로 10명 내외로 그룹을 지어 헌법에 대해 주변을 교육하고 구체적인 발안을 취하게 했다.13) 아울러 차베스는 핵심산업인 석유부문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했다. 차베스는 석유 국영회사인 PdVSA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해외자산 매각, 생산량 축소를 통해 국제 유가 상승을 유도하고, 각종 세제 개편을 통해 국고에 대한 PdVSA의 재정 기여도를 제고시키고자 했다.14)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는 재정 증대로 귀결됐고, 이는 다시 빈곤 해결을 위한 재분배 정책으로 이어졌다. ‘볼리바르 2000 프로젝트’라는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볼리바리안 스쿨’이라는 교육 정책은 차베스 집권 초기 개혁의 대표적 사례다(<표1>참고). 반대세력의 역공과 지지 세력의 확대 그러나 49개 개혁법안이 제정되는 날에 맞춰 반대세력은 거대한 시위를 조직하고 총파업을 시도했다. 이때 루이스 미킬레나 등 ‘기회주의’ 세력은 차베스의 개혁법안에 반대하며 이탈했는데, 그 결과 여권은 의회 과반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불리한 정치 역관계 속에서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의 발발은 베네수엘라 정치사에 일대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이는 점증하던 반대세력의 정치 투쟁의 효과로서 정부와 반대세력 사이에 총격전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군부 지도자들이 차베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차베스를 일시적으로 축출한 뒤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 의장인 카르모나를 임시 대통령으로 옹립한다(2002.4.11). 이들은 워싱턴의 암묵적 동의 하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의 쿠데타는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에 의해 이틀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2002.4.13).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이웃 국가들도 이번 쿠데타를 헌정파괴행위라며 신임 정부를 불신임했다. 2002년 4월 반차베스 쿠데타의 실패는 오히려 군부 내 차베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반대세력을 숙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울러 쿠데타를 배후에서 지원한 미국과 차베스의 관계가 악화되는 계기이자 반대세력을 분할하고 개혁에 미온적/비판적이었던 중간계급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볼리바리안 써클’은 전국적으로 배가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포진할 수 있었다. 또 농·어민 운동 조직이 결성되고, 반대세력의 미디어 보이콧에 맞선 시청자운동, 도시토지위원회, 의사, 교사, 변호사 등 특수 중간계급 단체 등 새로운 조직이 출현했다. 무엇보다도 CTV에 비판적이었던 노조 지도자들이 혁명 과정을 지지하기 위해 독립 노조 세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차베스를 지지하지만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다양한 좌파 정당들은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해외 좌파 세력 및 진보세력에게 잘 이해되지 않거나 높게 평가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이행 과정이 세계적으로 동조 세력을 얻어갔다. 한편 반혁명 쿠데타의 실패와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언제 발발할지 모를 쿠데타에 대비해서 차베스는 지지세력, 특히 군부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나아가 경제인 단체에 더 친화적인 사람을 경제 부문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반대세력에게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격부여법(Qualifying Law) 일부를 수정하고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반대세력들은 이러한 차베스의 행동을 정부가 취약하다는 신호로 간주하고 2002년 말 - 2003년 초 관리자 총파업/사보타지 등 역공세를 다시 취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강력한 지도력과 석유 부문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반대로 반대세력은 두 번째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그 결과 차베스 정부는 1만8천에 이르는 관리자와 상층 노동자를 파면할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석유수출이 마비되는 등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는 근 8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국회경제자문처에 따르면, GDP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석유 부문이 총 3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비석유부문이 12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2003년 10% 가량 수축했다. 재정부 장관 토비아스 노브레가는 2003년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4/4분기 GDP 성장률이 대략 0% 즈음이고 2003년 인플레이션율은 25% 정도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차베스 정권에 대한 맹렬한 반대 상황에서 경제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16) 국민소환투표 승리와 집권 기반의 안정화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결과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 국민소환투표가 시행된 2004년 8월까지, 1년 반 사이에 사회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경제는 10% 이상 성장하고 있었고 국제 유가는 기록적으로 상승했고 이로 얻어진 소득은 사회복지 지출로 환류되었다. 그 사회적 효과는 대단히 두드러졌고 친차베스 조직은 전국적으로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한편 미주국가기구(OAS) 및 ‘미국의 우방국’은 국내 반대세력과 합세하여 차베스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차베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소환투표를 수용하게 된다. 이에 친차베스 세력은 쿠데타와 총파업/사보타지 당시 자생적으로 분출된 차베스 지지 시위 과정에서 도시빈민 등 풀뿌리 민중 운동을 조직했다. 특히 2003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시오네스(Misiones, 미션) 프로그램은 빈민에 대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시도하며 지지율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00만에 달하는 콜럼비아 출신 이주자들을 귀화시킴으로써 차베스의 지지층 더욱 확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차베스는 국민소환투표(2004.8.15)에서 60%에 달하는 찬성률로 자격을 재확보한다. <표1> 차베스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15) [%=사진1%] 차베스의 국민소환투표 승리는 반대세력에게 3번째 패배이자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다. 차베스 정부는 국내적·국제적으로 더욱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제 그 누구도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정당성과 차베스를 지지하는 거대한 대중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대세력에 대한 신뢰는 더욱 추락했고 이들의 분할은 가속화됐다. 이어 2005년 말 총선에서도 차베스 정부 여당이 승리하면서 지지기반은 더욱 공고화되었다(MVR이 의석의 68% 차지). 빈민의 절대다수(90% 이상)가 차베스를 지지했으며, 이는 라티푼디오와 파산 공장의 몰수, 대규모사회간접투자 등을 가속화하는 조처로 나아갈 동력을 의미했다. 또 차베스의 세 번째 집권을 가능케 할 개헌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인 요인 미국의 대 베네수엘라 저강도 분쟁 현재까지 차베스 정권과의 대결 과정에서 미국은 점진주의적·내재적 정치 전략을 거부하고 최단기간에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베네수엘라 내외부의 전략적 연대 대상을 상실하고 말았다.17) 무엇보다 국내 반정부 야당이나 NGO의 세력이 약화된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현재 미국과 반대세력이 차베스 정권에 대한 즉각적인 전복 시도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우선 차베스 정권을 지지하는 활동가가 많으며 대중적 기초도 튼튼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익들이 대중을 동원하고 대중운동을 기획할 이슈가 거의 부재하다. 이는 차베스 정권의 복지 프로그램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경제가 성장 중이며 삶의 질도 높아지고 있고 부패가 억제되고 언론, 출판, 집회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적인 기업 협회도 정부와의 계약으로 점점 번영하고 있으며 여당과의 접촉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NGO나 정당들과 달리 위험한 도박에 매달리지 않는다. 현재 반정부 친미 선전을 수행하는 민간 언론사 정도가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뿐이다.18) 따라서 현재 미 정책결정자들은 베네수엘라 국내 사안에 개입하거나 양분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차베스 정부가 민주적 원칙을 고수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는 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오히려 차베스 정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은 더욱 과감한/호전적인 접근법은 양자간 관계를 멀게 하고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또 일부 논자들은 미국이 차베스 정부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가령 마약 수출 등 상호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장기 정책 접근법의 경우, 미국은 차베스가 부상하게 된 정황에 착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정책접근법은 비단 베네수엘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업, 범죄, 정치적 부패에 시달리는 여타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19) 결론적으로, 미 국부무는 ‘민주주의’나 ‘인권’ 마약문제를 빌미로 간섭을 지속할 것을 정책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20) 그 구체적 방안은 ①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침해를 고발하기 위해 OAS, EU,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고 ②인권 및 기타 NGO들이 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지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결성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③베네수엘라 정부 기관에 대항하여 기조직된 노동자, 독립 미디어, NGO, 종교단체를 조직할 것 등이다. 이미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NED, 라틴 아메리카에 반공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 해외홍보처(USIA)에서 지원하는 자금)이 후원하는 SUMATE와 같은 NGO가 암약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21) ‘플랜 콜럼비아’로 대표되는 일련의 군사작전과 함께 내부 반대세력을 후원, 규합하여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의 종합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저강도 분쟁은 항상-이미 전개 중이었고, 이는 베네수엘라의 급진화를 제약하는 잠재 요소다.22) 자본의 초민족화와 미국 주도의 경제통합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프로세스의 대외적 축을 이루는 ALBA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를 넘어 대안적인 지역통합을 추구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구상한 FTAA 협상이 장벽에 부딪치며 정의와 평등, 연대를 원칙으로 대륙의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차베스의 ALBA 제안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그런데 ALBA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경제통합 시도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메르코수르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 Andean Community of Nation)들과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 South American Community of Natio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23) 게다가 미국의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구상의 핵심은 공동시장을 직접 활용하는 것보다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매개하지 않은 역내 국가들 간의 호혜평등한 교역이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미국의 경제통합으로부터 이탈하기 위해서는 자본도피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외채위기를 기화로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철저히 잠식당한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일상적인 자본유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초민족적 은행으로 저축을 이전시킨 자본가들은 국내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진 반면 국제금융체제의 재생산에 종속되며 사회가 수탈당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자본도피와 경제 성장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났음을 상기할 때, 자본도피는 역내 국가들의 자주적 경제정책 수립 및 내생적 경제성장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 강화를 통해 차베스 정부가 ‘오일 달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초민족적 법인자본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차베스가 석유산업의 대미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며 민족자본 육성과 투자 및 판로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15% 가량이 베네수엘라 산이고 베네수엘라가 수출하는 원유 중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의 정치-외교적 마찰이 급격한 경제적 단절로 이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주체적 조건과 한계 차베스 개혁 노선의 한계 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는 차베스의 개혁을 제약하는 구조적·객관적 요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 개혁의 성격을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보도록 하자. 집권 초기, 차베스 정부는 기존의 외채상환을 지속하고 외채지불정지 같은 조치는 없을 것으로 약속했다(단, 재정지출의 30%에 달하는 외채상환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채재협상(만기연장)을 추진하고, 채무주식화 제도를 도입한다는 요지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음). 또 차베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재산, 특권, 부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도 없을 것이라고 반복했다. 게다가 이들 엘리트들이 정부에 대해 세 번의 비합법적인 정부 전복 시도를 하고도 여전히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베스 대통령이 여전히 민관 협력과 사회복지 지출에 기초한 발전 구상에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극심한 계급 갈등을 거치면서도 최소한 정부 수준에서는 소유 관계 또는 계급 관계의 파열이 없었으며, 외국인 채권자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원유 고객들과의 어떠한 관계 단절도 없었다. 정부는 의료제도, 교육, 중소기업, 그리고 토지개혁과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의 자금지출을 증가시키긴 했는데, 이는 외채 상환, 민간 수출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산업자본가에 대한 저리의 융자라는 재정 계획의 틀이라는 제약조건 안에서만 제시된 것이었다.24) 더욱이 국내적·국제적으로 차베스의 업적 중 상당부분이 석유 수입에 의존한 결과라는 점도 분명하다. 석유로부터 얻는 초과수익이 없었다면 거대기업과 빈곤층 사이의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유부문을 제외하면 사적 투자는 고갈 상태이며 예년 수준으로 유가가 견조하게 하락한다면 베네수엘라의 경제 문제는 매우 심각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가 GDP 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보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 상태는 당분간 현재의 유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차베스의 집권 기반도 큰 수준에서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26) 또 차베스의 개혁정책 중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는 토지개혁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01년 11월 “농촌으로 돌아가자”라는 프로그램이 토지및농업개발에관한법률에 따라 시행되었는데 이 법의 목표는 ▲토지소유 규모 제한 ▲농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유휴 토지에 대한 과세 ▲국가 소유의 미사용 토지를 소농 가구 또는 협동조합에 분배 ▲사유의 미경작지, 휴경지를 징발, 재분배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1년 토지개혁법은 전 세계 토지개혁의 역사와 비교할 때 그다지 급진적인 것이 아니었다. 본 법은 대토지소유자가 자기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다고 명시했고, 오직 휴경지나 특정 규모 이상 토지의 경우 그 질에 따라 그 일부가 징수될 수 있을 뿐이라고 규정했다. 가장 모순적인 목표는 토지소유자들에게 시장 가격으로 배상한다는 것이었다. 차베스 정부는 국유지 200만 헥타르를 13만 소농 및 협동조합에 분배했지만 사유지는 전혀 징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개혁 프로그램을 국유지에서 라티푼디오로 확장하려고 하자 대토지소유주와 농민 사이에는 긴장이 팽팽하게 형성됐다.27) 2005년 변경된 토지개혁법은 토지소유자가 소유할 수 있는 유휴지 규모를 개정했다.28) 대규모 유휴 부동산을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토지개혁법은 유휴 부동산에 비례해 과세되어야 함을 규정했다. 이 조치는 대토지소유주의 큰 반발을 샀고, 현재까지 이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지불유예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적 회피와 토지 등기부의 부실(취약한 법적 틀거리) ▲총체적인 법의 불비와 불처벌 관행 ▲취약한 농민 조직 ▲빈약한 농촌 지원 구조 등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석유경제를 다변화하고 농업을 근본적으로 회상하는 현실적 경로의 문제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상 농민이 토지를 불하받고 농업기술을 습득하더라도 농산품을 판매할 경로를 확보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베네수엘라농업협동조합(CVA)을 설립했지만, CVA가 판매를 대행할 것이라는 보증도 없다. 정부가 베네수엘라 농산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품에 대해 국산품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농산품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가격에 판매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경제적 “네덜란드 병”은 베네수엘라 농업이 현재 GDP 5%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이 문제에 관한한 차베스를 포함한 역대 어느 정권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역대 정권들은 고유가 시절, 예산 외의 잉여수입을 사회 간접자본 확충 또는 비석유산업의 성장기반 마련에 투자하지 않고 단순한 빈민구제정책 등에 집행함으로써 유가 하락시 전 산업이 함께 몰락하는 경험을 되풀이한 바 있다. 경제를 다각화하고자 하는 차베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으로부터 얻어지는 거대한 수익이 베네수엘라 통화가치를 고평가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최근 유가 상승(차베스 임기 동안 4배 상승)은 이 문제를 더욱 격화시켰을 따름이다.29) 차베스 지지 세력의 이념적 불균등성 차베스는 자신의 지도력이 위협받을 때에는 저항적이고 급진적인데 그에 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때에는 유화적이고 중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헌정 질서에 대해 군사 쿠데타와 폭력적인 공격을 선동한 반대세력에 대해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단적인 사례다. 현재 차베스 정권 내에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민족주의,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그룹 등이 자유롭게 경합하고 있다.30) 차베스 자신은 ‘개량주의’, 실용주의 및 혁명주의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들 가운데 온건주의적 또는 보수주의적 분파는 정권의 정당성/합법성을 염려하고 실용주의자들은 재정 건전성/규율, 사회 지출 제한, 합동 공사 및 공공-민간 협력 증진 등을 주장한다. 중앙파는 점진적 개혁, 사회 지출 및 분배 증가,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기간 시설 계약 등을 통해 국가 기관 및 선거구 내에서 정치권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좌파의 경우 주로 새로운 계급적 지향의 노조, 지역 및 공동체에 기초한 협동조합, 농민 사회운동 및 특히 노동자 자주 관리 기업 및 운동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좌파는 사회화 과정을 심화하고 지방의 생산적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함으로써 실업/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력의 절반을 감소시킬 것을 주장한다. 동시에 이들은 하향식 후보 선정에 반대한다. 차베스는 좌파와 대중운동에 찬성하지만 거시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무시하지도 않고 정치권력을 제도화하려는 중앙파도 존중한다. 차베스는 이 과정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상이한 입장들을 종합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32) 그런데 정당들의 확산은 명확한 정치적 노선에 기초하기보다는 국가 기구 내에서 입지를 점유하고 요구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 구조를 갖추려는 일부 지도자들의 속성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요소는 베네수엘라 구체제의 오랜 관행이자 악습으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1998년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지자, 다수의 정치 그룹들은 다수파가 되기 위해 차베스와 경합했다. 장관직 획득이나 권력 분점에 대한 희망이 좌절되자, 정당들은 야당 진영을 규합했다. 전국적 수준에서 서로 대치하던 정당들이 지역적 수준에서는 제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앞서 루이스 미킬레나가 이탈하거나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 분리된 이유 중의 하나다. 두 번째 요인은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이 전반적으로 급진화되면서 정당이 더 이상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98년 차베스가 당선될 때만 하더라도 그가 토지개혁, 어업 및 은행 개혁 법안을 제도화했던 2001년만큼 진보적이지 않았다. 한편 차베스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회세력의 통합력도 현재로선 미미하다. 단적으로, 2003년 10월 창설된 ‘코만도 아야쿠소’라는 차베스주의 정당들의 선거 연합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에 차베스는 전국 선거 순회단을 제안했고, 10여명의 정치·사회 활동가로 구성된 단위 성원들은 현장과 가가호호를 누비며 차베스 지지 운동을 전개했다. <표2> 베네수엘라 주요 정당 현황31)
당명 | 주요특징 | 비고 | |
제5공화국운동(MVR) | 제1여당 | 1998년 군부 중심 창당 | |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 | 여권 내 우파 | 2001년 MAS에서 분리 | |
모두를 위한 조국(PPT) | 여권 내 마르크스주의 계열 | 1997년 급진주의에서 분리 | |
민주행동당(AD) | 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 1936년 창당 | |
기독사회당(COPEI) | 구 지배정당, 우익 민주주의 | ||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 | 중도 우파 | 1971년 베네수엘라 공산당(PCV)에서 분리 | |
적기(Bandera Roja) | 좌 | 혁명적 좌파, 무장노선 | 1970년 혁명적 좌파운동(MIR)에서 분리 |
급진주의(La Causa Radical) | 급진주의 | 1971년 MAS 및 PCV 출신 활동가들이 결성 | |
단결(Union) | 구 차베스 지지세력 | 1999년 창당 | |
연대(Solidaridad) | 루이스 미킬레나 주도 | 2001년 창당 | |
혁명사회주의당(PRS) | 전국노조(UNT) 내 트로츠기 그룹 | 2005년 창당 |
구분 | 차베스지지 | 차베스반대 | ||||
선거연합 | 애국의 기둥(Polo Patriotico, 1998) 코만도 아야쿠소(2003) | 민주공조 | ||||
정치적 스펙트럼 | 좌파 | 군부 | 우파 | 좌파 | 중도 | 우파 |
정당 | PPT | MVR | Podemos | 적기 급진주의 단결 연대 | MAS | AD COPEI |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
<번역>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역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이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Venezuela's Answer to "Free Trade": 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 번역하여 소개한다. 전문은 http://pssp.org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 기간동안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을 진척시키겠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계획을 좌절시킨 바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여타의 무역 협상과는 달리 민중의 시급한 요구를 우선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ALBA 구상을 활용하고 있다. ALBA의 실현가능성보다는 그 상징적 힘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ALBA가 ’민중의 연대,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역통합‘을 표방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간 협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필자들은 브라질 사회운동 활동가로, 디에고 아지는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International Social Movement Network) 사무국에서 활동했다.
볼리바르 대안
세계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1)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는 동안, 라틴아메리카 몇 몇 나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도국’ 간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2)은 각 국 사이의 무역을 장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장벽의 제거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ALBA의 핵심은 그 이상이다. ALBA가 내세우는 목표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협력하여 빈곤을 제거하고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으로써 발전의 “사회적” 측면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2004년 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 평의회 의장은 ALBA의 첫 번째 단계로서 의미를 지니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으뜸을 차지하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15,000명의 의사를 파견하여 마을 곳곳에 진료소를 구축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그 대가로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연간 십억 달러라는 싼 값에 석유를 제공한다. 협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에 주변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서로 협력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의 백내장, 여타 안질환 환자들에게 무상 수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쿠바의 병원에서 122,0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자들에게 항공권과 숙소를 무료로 제공했다.3)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2005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텔레수르(TeleSur) 역시 ALBA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정부가 출자하고 브라질 정부는 장비를 제공하여 설립된 텔레수르는 일종의 라틴아메리카판 ‘알- 자지라 방송’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의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CNN과 유니비전이라는 사기업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바, 특별히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둔 정보는 공백상태인데 텔레수르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동시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텔레수르는 궁극적으로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뉴스, 문화, 스포츠, 교육을 각각 다루는 네 개의 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ALBA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재정-금융적 측면에서는 채권국 클럽의 결성, 외채 상환을 위해 지출되어야 할 예산의 50%를 지역 차원의 발전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지역적인 통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판 IMF 구축 등의 계획이 있다. 이미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역 내 문맹퇴치, 보건의료 서비스 강화 및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쓰일 공동 해외 원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의학, 공학 분야에서의 교육적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이 지역 내에서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가축과 싼 값의 석유를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 석유 탐사 및 채취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ALBA가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 걸쳐 실현되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 그리고 시민 사회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에 대항하는 강고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ALBA는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이상을 매력적으로 뒤섞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상호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각 국 민중을 위해 활용하도록 하는 굳건한 원칙이다.
현존하는 라틴아메리카 내 통합을 위한 시도
남미공동체(CSN-Comunidad Sudamericana de Naciones)는 남아메리카의 지역통합을 제도화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시도이다. 2004년 12월 페루의 꾸스꼬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남미 공동체에는 남미 대륙의 12개국 모두가 참여하게 된다.
남미 공동체를 둘러싼 담론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남미공동시장(Mercosur) 혹은 안데스 공동체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창립 당시의 자료를 살펴보면, 회원국 공통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으며, ALBA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제시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는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미공동체의 공식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경제적인 발전이 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단순한 무역의 탈규제화를 넘어서는 통합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이 협정이 내세우는 목표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남미공동체의 창립 문서에는 이 계획이 정부 간에 이루어지는 통합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각 국 민중의 연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중요한 관심 사항, 예를 들어 외채 거부 및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정 체결 반대 등의 주제는 통합과 관련된 공식문서에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풀뿌리에서” 조직되는 통합이라는 담론은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꾸스꼬 선언문이 표방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 남미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국 정부가 FTAA, 혹은 미국과의 양자간 FTA 체결 논의에서 보건의료, 교육, 식량안보, 생태 보호 등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민중의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남미공동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 계획이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법률적 기초가 되는 원칙을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민족적 투자자들이 전 대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자본과 상품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인 틀일 뿐, 이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계획이다.
이렇듯 남미공동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그리고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역할을 하는 통합 계획이라고 보기 힘들다. 남미공동체 계획과 ALBA 사이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남미공동체는 기껏해야 현재의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료주의라는 장애물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지만, ALBA는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바꿔내고 진정한 국제적 협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좌파 혹은 중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 내 여러 협상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미국은 협상에 성공하기 위한 다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과 양자간 FTA를 공세적으로 체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칠레와의 양자간 FTA를 체결했고,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협상)4)을 타결했으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와는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미국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여전히 남미공동시장(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이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완성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가적인 양자간 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남미공동시장은 각 회원국이 볼리비아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한다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는 1996년에 발효되었다. 이후 2002년에는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공동체 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역내, 그리고 역외의 제3국과의 무역에서 비용절감 및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외적 통합을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한다.”라고 그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 협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역협정이며 각 국 간 통합을 심화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협정은 관세 철폐와 비용 절감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상호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에 체결되어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중요한 흐름으로 언급할 수 있다. 미국이 포함된 FTA 협상은 정치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WTO, 그리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통해 미국이 추구하려는 자유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더불어, 최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서 미국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수출국인 양 국이] 농업분야에서 기대했던 이익이 만족스러울 만큼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농장 및 농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려는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은 미국 농산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남미공동시장과 유럽연합 간에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 협상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역시 라틴아메리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상이 될 리 만무하다.
최근까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일어난 대중적인 저항은 이렇듯 다양하고 광범위한 FTA 협상을 실질적으로 저지시켜낼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저항은 협정 체결로 인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한편 협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ALBA에 대한 대중의 참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제안과 ALBA의 중요한 차이 중 한 가지는 ALBA를 구상하고 창설하는 전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폭넓은 무역협상이며, 소수의 NGO만이 이 협상과정에 ‘참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ALBA는 “민중”의 참여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ALBA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의 각 국 정부의 제안 및 통합 협정과 조율을 이루는 가운데 대중조직이 ALBA 구성을 발의하도록 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자료”의 형태로 제출되었다. 이 자료는 “현재 ALBA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ALBA는 각종 세미나, 총회 등을 통한 대중의 폭넓은 참여의 결과물로서 건설되어야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ALBA 제안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간 협정을 통해 그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다시 말해, ALBA를 둘러싼 담론과 ALBA를 건설하는 실제 과정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다. ALBA의 공식적인 제안서에는 ALBA의 건설이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ALBA의 실체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정부의 수반이 서명한 정부 간 협정인 셈이다. 쿠바-베네수엘라 협정은 “베네수엘라 민중은 의료, 교육, 스포츠 훈련 분야의 원조 수당을 받게 되며 쿠바 민중은 석유 등의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ALBA의 공식 제안서는 계획 및 실행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중적 참여를 위한 틀(지방 차원의 참여예산제), 투명성 제고를 위한 세 가지 메커니즘(국민총투표, 예산 공표,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그리고 제도적인 정치 계급(시장, 국회의원)을 겨냥한 세 가지 제안 등이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Volivarian Peolpe's Congress)가 제출한 제안서 중 “민중 주도의 참여 민주주의(Protagonist and Paticipatory Demogracy)"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1. 지방 차원에서 참여 예산제의 시행
2.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네트워크의 구축
3. 라틴아메리카 의회(브라질 상파울로에 본부를 둠) 강화 및 직선제 도입
4.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의원 네트워크의 구축
5. 모든 선출된 대표에 대한 소환투표 청원의 이행
6. 예산 및 선출된 대표의 소득 공개
7.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발의 및 대중적 의견수렴 기제의 촉진
사회운동- 중요한 지지 세력이 되어가다
라틴아메리카 내 사회운동 및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ALBA에 대한 인식은 아직 특별하게 높은 편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명한 제안도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ALBA에 대한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이 주제가 점점 주목을 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ALBA 구상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주요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ALBA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러 그룹들이 성명서를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ALBA를 “민중으로부터” 건설하겠다는 제안 안에는 이 문서를 작성한 이들이 특정한 사회운동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토지, 식량주권, 토지 개혁”에 관한 항에는 ALBA가 “Nuestra America(우리의 아메리카)라는 단일한 농촌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그 핵이 될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CLOC)을 지지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학”에 관한 항에서는 ALBA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학생 조직(OCLAE)를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대학생들의 연대체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ALB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최근의 성명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두 가지 중요한 회합(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 캄페시나 라틴아메리카 4차 총회와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최종선언문이다. 2005년 10월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캄페시나 총회에는 25개국의 88개 소농, 원주민 조직의 대표 178명이 참석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자유무역, WTO 규범,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강요하는 경제 지배 구조에 대해 항구적인 대응을 조직할 것이다. 우리는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지지하며 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중략)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통해 촉진된 농촌지역의 정의를 위한 제안 및 토지 개혁을 지지한다.
가장 최근에 제출된 것으로는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에서 열린 사회운동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을 들 수 있다.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는 2005년 미주지역 정상회의에 대항하여 열렸는데, 이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진전을 이루고자 했으나 강력한 대중 투쟁에 부딪쳐 실패했다. 사회운동 총회에 참가한 여러 원주민 조직,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 통합 과정을 지지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며 다소 소극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듯 모호한 지지 표명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사이의 협정을 제외하면 ALBA 구상이 사실상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의 구상 및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장기적인 정치 과정, 그리고 차베스를 둘러싼 향후 몇 년 간의 세력 관계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ALBA는 라틴아메리카 내 핵심적인 사회운동의 다양한 토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차베스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 및 부시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열린 민중정상회의에 참가한 사회운동 및 정치조직과 나란히 섰다.
ALBA를 제도화하려는 제안들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가 제출한 문서에는 ALBA 제안을 19개의 독자적인 의제로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5) 문서는 각각의 의제에 대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역, 금융, 이주, 노동, 환경에 대한 새로운 협정과 규제를 마련할 것과, 새로운 기구, 네트워크, 위원회, 회사, 기금, 은행, 캠페인, 법인, 대학 및 이러한 기관들의 연합을 세워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라는 지역 산하에 놓이게 될 준-독립적인 기관의 주인은 볼리바르 대안에 관료주의적인 성격을 더하게 될 숨은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무역, 자유화된 기업을 추구하는 협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달리, ALBA는 단순한 협정의 체결 혹은 법률을 넘어서는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ALBA는 제안된 19개 항목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현존하는 국가 구조에 밀착된 복합적인 기관들을 형성해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 구상에는 위에서 언급한 관료적인 구조와 별도로 라틴아메리카 내 몇몇 공기업을 확대하거나 신설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다. 페트로 수르(PetroSur, 최근 형성된 석유 국영기업들의 연합),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에너지회사(지역 내 국영기업 연합), 가스수르(GasSur, 천연가스의 탐사 및 판매를 위한 공동 국영기업),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항공(LALC), 남미 보험회사, 남미공동은행(“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
<번역>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역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이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Venezuela's Answer to "Free Trade": 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 번역하여 소개한다. 전문은 http://pssp.org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 기간동안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을 진척시키겠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계획을 좌절시킨 바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여타의 무역 협상과는 달리 민중의 시급한 요구를 우선시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이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ALBA 구상을 활용하고 있다. ALBA의 실현가능성보다는 그 상징적 힘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ALBA가 ’민중의 연대,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지역통합‘을 표방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간 협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내용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필자들은 브라질 사회운동 활동가로, 디에고 아지는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International Social Movement Network) 사무국에서 활동했다.
볼리바르 대안
세계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1)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는 동안, 라틴아메리카 몇 몇 나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해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개도국’ 간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2)은 각 국 사이의 무역을 장려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장벽의 제거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ALBA의 핵심은 그 이상이다. ALBA가 내세우는 목표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협력하여 빈곤을 제거하고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으로써 발전의 “사회적” 측면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2004년 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 평의회 의장은 ALBA의 첫 번째 단계로서 의미를 지니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으뜸을 차지하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15,000명의 의사를 파견하여 마을 곳곳에 진료소를 구축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그 대가로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연간 십억 달러라는 싼 값에 석유를 제공한다. 협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에 주변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쿠바는 서로 협력하여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의 백내장, 여타 안질환 환자들에게 무상 수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쿠바의 병원에서 122,0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자들에게 항공권과 숙소를 무료로 제공했다.3)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2005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텔레수르(TeleSur) 역시 ALBA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정부가 출자하고 브라질 정부는 장비를 제공하여 설립된 텔레수르는 일종의 라틴아메리카판 ‘알- 자지라 방송’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의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CNN과 유니비전이라는 사기업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바, 특별히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둔 정보는 공백상태인데 텔레수르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동시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텔레수르는 궁극적으로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뉴스, 문화, 스포츠, 교육을 각각 다루는 네 개의 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ALBA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재정-금융적 측면에서는 채권국 클럽의 결성, 외채 상환을 위해 지출되어야 할 예산의 50%를 지역 차원의 발전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지역적인 통화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판 IMF 구축 등의 계획이 있다. 이미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지역 내 문맹퇴치, 보건의료 서비스 강화 및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쓰일 공동 해외 원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의학, 공학 분야에서의 교육적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이 지역 내에서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가축과 싼 값의 석유를 서로 교환하기로 했다. 석유 탐사 및 채취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ALBA가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 걸쳐 실현되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 그리고 시민 사회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모델에 대항하는 강고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ALBA는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이상을 매력적으로 뒤섞어 놓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각 국이 상호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각 국 민중을 위해 활용하도록 하는 굳건한 원칙이다.
현존하는 라틴아메리카 내 통합을 위한 시도
남미공동체(CSN-Comunidad Sudamericana de Naciones)는 남아메리카의 지역통합을 제도화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시도이다. 2004년 12월 페루의 꾸스꼬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남미 공동체에는 남미 대륙의 12개국 모두가 참여하게 된다.
남미 공동체를 둘러싼 담론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남미공동시장(Mercosur) 혹은 안데스 공동체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창립 당시의 자료를 살펴보면, 회원국 공통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으며, ALBA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가 제시한 라틴아메리카 통합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는 문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미공동체의 공식 문서를 살펴보더라도, 경제적인 발전이 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단순한 무역의 탈규제화를 넘어서는 통합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이 협정이 내세우는 목표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남미공동체의 창립 문서에는 이 계획이 정부 간에 이루어지는 통합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각 국 민중의 연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중요한 관심 사항, 예를 들어 외채 거부 및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정 체결 반대 등의 주제는 통합과 관련된 공식문서에서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풀뿌리에서” 조직되는 통합이라는 담론은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꾸스꼬 선언문이 표방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 남미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각 국 정부가 FTAA, 혹은 미국과의 양자간 FTA 체결 논의에서 보건의료, 교육, 식량안보, 생태 보호 등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민중의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남미공동체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 계획이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법률적 기초가 되는 원칙을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민족적 투자자들이 전 대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자본과 상품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인 틀일 뿐, 이미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계획이다.
이렇듯 남미공동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그리고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역할을 하는 통합 계획이라고 보기 힘들다. 남미공동체 계획과 ALBA 사이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남미공동체는 기껏해야 현재의 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료주의라는 장애물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지만, ALBA는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바꿔내고 진정한 국제적 협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좌파 혹은 중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 내 여러 협상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미국은 협상에 성공하기 위한 다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과 양자간 FTA를 공세적으로 체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칠레와의 양자간 FTA를 체결했고,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협상)4)을 타결했으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와는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미국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여전히 남미공동시장(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이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완성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가적인 양자간 협정은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남미공동시장은 각 회원국이 볼리비아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한다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는 1996년에 발효되었다. 이후 2002년에는 남미공동시장과 안데스공동체 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역내, 그리고 역외의 제3국과의 무역에서 비용절감 및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외적 통합을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한다.”라고 그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 협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역협정이며 각 국 간 통합을 심화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협정은 관세 철폐와 비용 절감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상호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에 체결되어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중요한 흐름으로 언급할 수 있다. 미국이 포함된 FTA 협상은 정치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WTO, 그리고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통해 미국이 추구하려는 자유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더불어, 최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서 미국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농산물 수출국인 양 국이] 농업분야에서 기대했던 이익이 만족스러울 만큼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농장 및 농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려는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은 미국 농산물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남미공동시장과 유럽연합 간에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 협상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역시 라틴아메리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상이 될 리 만무하다.
최근까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일어난 대중적인 저항은 이렇듯 다양하고 광범위한 FTA 협상을 실질적으로 저지시켜낼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이러한 저항은 협정 체결로 인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한편 협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ALBA에 대한 대중의 참여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제안과 ALBA의 중요한 차이 중 한 가지는 ALBA를 구상하고 창설하는 전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는 폭넓은 무역협상이며, 소수의 NGO만이 이 협상과정에 ‘참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ALBA는 “민중”의 참여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참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ALBA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의 각 국 정부의 제안 및 통합 협정과 조율을 이루는 가운데 대중조직이 ALBA 구성을 발의하도록 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자료”의 형태로 제출되었다. 이 자료는 “현재 ALBA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ALBA는 각종 세미나, 총회 등을 통한 대중의 폭넓은 참여의 결과물로서 건설되어야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ALBA 제안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간 협정을 통해 그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다시 말해, ALBA를 둘러싼 담론과 ALBA를 건설하는 실제 과정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다. ALBA의 공식적인 제안서에는 ALBA의 건설이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드러나는 ALBA의 실체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 정부의 수반이 서명한 정부 간 협정인 셈이다. 쿠바-베네수엘라 협정은 “베네수엘라 민중은 의료, 교육, 스포츠 훈련 분야의 원조 수당을 받게 되며 쿠바 민중은 석유 등의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ALBA의 공식 제안서는 계획 및 실행 과정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중적 참여를 위한 틀(지방 차원의 참여예산제), 투명성 제고를 위한 세 가지 메커니즘(국민총투표, 예산 공표,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그리고 제도적인 정치 계급(시장, 국회의원)을 겨냥한 세 가지 제안 등이 그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Volivarian Peolpe's Congress)가 제출한 제안서 중 “민중 주도의 참여 민주주의(Protagonist and Paticipatory Demogracy)"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1. 지방 차원에서 참여 예산제의 시행
2.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지방자치단체장 네트워크의 구축
3. 라틴아메리카 의회(브라질 상파울로에 본부를 둠) 강화 및 직선제 도입
4.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의원 네트워크의 구축
5. 모든 선출된 대표에 대한 소환투표 청원의 이행
6. 예산 및 선출된 대표의 소득 공개
7. 의견수렴을 위한 일반투표 발의 및 대중적 의견수렴 기제의 촉진
사회운동- 중요한 지지 세력이 되어가다
라틴아메리카 내 사회운동 및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ALBA에 대한 인식은 아직 특별하게 높은 편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분석한 자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명한 제안도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ALBA에 대한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이 주제가 점점 주목을 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ALBA 구상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주요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ALBA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러 그룹들이 성명서를 통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ALBA를 “민중으로부터” 건설하겠다는 제안 안에는 이 문서를 작성한 이들이 특정한 사회운동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토지, 식량주권, 토지 개혁”에 관한 항에는 ALBA가 “Nuestra America(우리의 아메리카)라는 단일한 농촌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그 핵이 될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CLOC)을 지지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학”에 관한 항에서는 ALBA가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학생 조직(OCLAE)를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지역 대학생들의 연대체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ALB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최근의 성명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두 가지 중요한 회합(과테말라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 캄페시나 라틴아메리카 4차 총회와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최종선언문이다. 2005년 10월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농촌 조직 연합/비아캄페시나 총회에는 25개국의 88개 소농, 원주민 조직의 대표 178명이 참석했다. 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자유무역, WTO 규범,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강요하는 경제 지배 구조에 대해 항구적인 대응을 조직할 것이다. 우리는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지지하며 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중략)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통해 촉진된 농촌지역의 정의를 위한 제안 및 토지 개혁을 지지한다.
가장 최근에 제출된 것으로는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에서 열린 사회운동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을 들 수 있다. 3회 아메리카 민중정상회의는 2005년 미주지역 정상회의에 대항하여 열렸는데, 이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에 진전을 이루고자 했으나 강력한 대중 투쟁에 부딪쳐 실패했다. 사회운동 총회에 참가한 여러 원주민 조직,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 통합 과정을 지지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며 다소 소극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듯 모호한 지지 표명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 사이의 협정을 제외하면 ALBA 구상이 사실상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들은 ALBA의 구상 및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장기적인 정치 과정, 그리고 차베스를 둘러싼 향후 몇 년 간의 세력 관계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ALBA는 라틴아메리카 내 핵심적인 사회운동의 다양한 토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마르 델 플라타에서 차베스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 및 부시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열린 민중정상회의에 참가한 사회운동 및 정치조직과 나란히 섰다.
ALBA를 제도화하려는 제안들
볼리바리안 민중 의회가 제출한 문서에는 ALBA 제안을 19개의 독자적인 의제로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5) 문서는 각각의 의제에 대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역, 금융, 이주, 노동, 환경에 대한 새로운 협정과 규제를 마련할 것과, 새로운 기구, 네트워크, 위원회, 회사, 기금, 은행, 캠페인, 법인, 대학 및 이러한 기관들의 연합을 세워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라는 지역 산하에 놓이게 될 준-독립적인 기관의 주인은 볼리바르 대안에 관료주의적인 성격을 더하게 될 숨은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유무역, 자유화된 기업을 추구하는 협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달리, ALBA는 단순한 협정의 체결 혹은 법률을 넘어서는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ALBA는 제안된 19개 항목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현존하는 국가 구조에 밀착된 복합적인 기관들을 형성해낼 것을 제안하고 있다.
ALBA 구상에는 위에서 언급한 관료적인 구조와 별도로 라틴아메리카 내 몇몇 공기업을 확대하거나 신설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다. 페트로 수르(PetroSur, 최근 형성된 석유 국영기업들의 연합),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에너지회사(지역 내 국영기업 연합), 가스수르(GasSur, 천연가스의 탐사 및 판매를 위한 공동 국영기업),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항공(LALC), 남미 보험회사, 남미공동은행(“
1997년 외환위기는 곧 IMF 구제금융협약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금융, 노동, 공공, 기업의 4대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쉼 없이 진행되었고, 민중들은 충격적인 위기 속에 금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사회 전반의 위기 비용은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지만 애초의 약속과 달리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꾸준한 시행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보를 이룬 것처럼 보였고,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부문의 주가 상승과 수출확대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와 외환은행 매각으로 3년 만에 차익 4조 5천억이라는 최고‘대박’을 터뜨린 론스타의 사례는 폭발적인 주가상승을 통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이윤을 노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화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이 대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초민족적 자본의 소위 ‘먹튀’전략은 투기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켜왔다. 현재까지의 논의는 한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기치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보호를 위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 상황은 한국경제의 성장이 착시일 뿐이고,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결국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을 기반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력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기업의 M&A 양상과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초민족적 투기자본의 비중은 질적, 양적 증가를 거듭해왔다. 초기 구조조정은 기업 매각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했다. FDI는 1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가 구축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04년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금융권 매각으로 다시 증가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충격 이후 외국자본의 유치는 이유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통한 한국경제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초민족적 자본이 뛰어들어 이윤을 얻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는 수많은 M&A로 이어졌다. 소버린의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소버린은 2003년 SK지분의 매입과 함께 경영진 전면교체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소버린의 주장은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들은 2005년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1조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같은 방식으로 헤르메스도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입과 이후 전량매각으로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이외에도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 BIH, JP모건, 인투루브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민족적 자본들은 유상감자나 고배당과 같은 한국경제에 투자한 자본보다 훨씬 많은 부를 해외로 이전해 갔다.1) 지속적인 M&A과정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한국 경제 내의 지분율은 기하급수로 증가해왔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경제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SC제일은행(100%외국인 지분), 외환은행(74%), 한국씨티은행(99.9%) 등의 금융권 일부는 사실상 외국인 자본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국민은행(85.25), 신한지주(64.3%), 하나은행(76.4%)도 외국인 자본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적으로 외국자본의 은행점유율은 2005년 6월 일반은행을 기준으로 29.9%, 국내은행을 기준으로 21.5%에 달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POSCO, 현대차 등의 경우에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 한국전력, SK텔레콤, KT 등도 주식취득 한도에 근접할 정도의 외국인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의 증가는 곧 초민족적 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의 점진적인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와 외자유치를 앞세운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 과정은 한국경제 전반의 취약성, 종속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M&A 메커니즘 초민족적 자본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적대적 M&A이다. 현재 한국 내 외국인 투자는 직접투자가 점점 줄고, 단기성 투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중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산업부문의 설비에 투자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인수합병형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2) 초민족적 자본의 M&A 역시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형태지만 M&A 메커니즘은 자본의 투자를 통해서 설비투자나 고용창출을 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초민족적 자본의 M&A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자산가치가 큰 기업을 우선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 부동산과 같은 보유자산이 많거나 우량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M&A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을 헐값으로 기업을 인수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조합의 저항이 극심할 경우에는 곧장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법인을 청산하는 식으로 차익을 노리고, 구조조정이 성공해서 실적이 이전보다 호전되면 그 후, 고가매각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익을 얻어간 대표적인 예는 론스타(외환은행), JP 모건(만도)의 경우다. 초민족적 자본의 목표는 오직 주가의 상승에 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윤획득에 대한 위협요소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업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방식으로 M&A가 진행된다. 또 다른 방식은 먼저 지분을 매입하고 M&A 실시를 선언하면서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이를 통해 차익을 실현한다. 대표적인 예는 소버린(SK), 헤르메스(삼성물산)다.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M&A 시도도 이런 절차를 밟아갈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경영권 확보는 주가를 통한 차익 실현의 발판일 뿐이다. 여기서도 주가 상승을 위한 구조조정과 알짜 자산의 매각은 꼭 필요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이고 빠르게 차익을 얻기 위해 경영권을 위협할 뿐이다. 이런 M&A의 과정은 한국경제 자체의 토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경제전반에서의 자금의 흐름, 이윤획득의 가능성을 지향으로 삼는다. 곧 현재 한국의 주가폭등과 수출확대는 금융투기 속에서 형성된 거품이 대다수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종속성이 심화되고 국내외 충격에 취약해진다. M&A를 둘러싼 논쟁의 한계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자본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의 해외유출과 산업투자의 침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들은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이 어떤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가에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1> 주주자본주의를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먼저 주주자본주의를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주주자본주의는 주주가치를 기업경영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핵심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적대적 M&A는 경쟁을 통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식가치를 증대시키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메커니즘이다. 만약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보면 경영자들을 나태하고 방만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소위 미꾸라지 속에 메기를 풀어놓아야 미꾸라지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3) 한국사회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이 1970년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70년대 위기 이전에 자본의 전략은 기업 수익을 유보하고 기업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은 지속적인 산업발전과 낮은 실업률, 상대적 고임금을 통해 수익과 고용의 안정적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70년대 위기는 이윤율의 저하 속에서 유보 및 재투자 전략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를 주인으로, 경영진을 대리인으로 가정하는 주주자본주의가 강조되었다. 기관투자자의 등장과 뮤추얼펀드, 연기금, 생명보험과 같은 기관의 등장,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의 금융화는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의 개시로 주주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유보-재투자 전략의 폐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특히 노동력에 대한)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상시적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에 대한 통제로서 인수합병이 중시되었고, 이윤을 중심 논리로 사업과 업무들의 폐기처분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스톡옵션과 같은 경영진의 고임금 전략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주주와 최고 경영진이 이익을 챙긴다. 주주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주주나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객, 공급, 유통 모든 면에서 부유함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주주와 경영진의 이득은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 자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인구를 낮은 임금과 소득에 머무르게 하는 경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의 측면은 임금뿐만 아니라 주식보유에 있어서 상당한 불평등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가구의 상위 0.5%는 공모된 기업주식의 37%를 소유하지만 80%의 가구는 2% 이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가치에 입각한 주식의 높은 수익률 강조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고,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이 부를 영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2> 국내자본을 지키기 위한 경영권 방어 다른 한편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여기서 M&A시도는 기업들을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도록 강제하고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해악으로 평가된다. 특히 FDI와 투기성 자본을 구분하면서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방안의 마련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4)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이들은 투자 자본/투기 자본, 국내자본/외국자본의 구분을 논의의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이런 구분은 실효성이 없다. 먼저 투자 자본/투기 자본의 구분의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70년대 위기를 거치면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이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이는 자본이 이윤을 얻는 방식이 금융부문을 매개로 하는 과정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곧 특정한 기업에 자본이 직접투자로 주어지거나, 투기를 목적으로 주어지거나 이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각 기업의 자본금은 곧 주식시장에서 자사의 주식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 이윤은 산업부문에 재투자되기보다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자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을 운용하는 데 사용된다. FDI나 그린필드(직접투자 중 생산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는 자체로 투기(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바라보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다리면서 자금을 대는 것)와 목적 면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FDI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비율을 구분해 따지기도 힘든 수준이고, 이러한 자본의 흐름은 이미 오직 주식시장에서의 이윤만을 쫓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자본/외국자본이라는 구분도 무의미한 것이다. 국내의 자본(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재벌)들 역시 금융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국계 자본과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초민족화와 글로벌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자본이 외국자본처럼 시세차익과 같은 주식시장, 금융에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택하지 않고 국내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한 투자 확대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구하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표방하는 국내자본들은 어떠한 민족적/민중적 이해와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기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 비판이 결여된 초민족적 자본에 관한 논쟁은 허구다 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의 본격적 진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초민족적 자본이라는 행위자가 생산부문보다는 금융부문을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해답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행은 결국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매력적인 시장으로 한국경제 전반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국 금융부문에서의 지속적인 투기를 통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위기를 심화해왔다. 또한 금융을 통해 부를 얻어간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다른 지역, 계급, 인종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뽑아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배제와 불평등,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삶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면서 금융세계화에 기생하고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민족적 해결책을 부르짖는 것(이는 국내자본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는 최고위 경영진의 이득을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이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그 상황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압축성장’과 과도한 투자로 망쳐놓은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의 올바른 실현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포함한 설비 투자 등으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와 그 측근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외환위기-현재의 장기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종속성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 초민족적 자본의 전횡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횡포를 공공연하게 보장하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그 어떤 입장도 민중의 삶의 위기와 경제,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삶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바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있는 것이다. 1)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는 서울증권을 상대로 액면가(2500원)대비 60%인 주당 1500원의 고배당으로 267억 원을 회수했고, 1999년 이후 투자자금의 80%를 회수했다. BIH는 브릿지 증권을 상대로 70%의 고배당으로 200억 원을 회수하고, 02년 3차례 유상감자로 600억 원 회수, 04년 유상감자로 1125억 원을 회수했다. 또, JP모건은 만도기계를 대상으로 246억 원의 투자로 1710억 원을 회수해갔으며 인투루브는 OB맥주를 대상으로 유상감자로 1600억 원을 회수해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5년 주식배당액은 2004년보다 50%증가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외국인들이 3조 6천억 원의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실현했다. 본문으로 2)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사례에 대한 보고 건수는 2002년 810건에서 2005년 2513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이중 24% 정도가 단순투자가 아니라 회사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으로 3) 이런 입장을 피력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참여연대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KT&G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십중팔구 주가는 오른다. 주가 상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가 효율성 증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자본의 공격이 없었더라도, 그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국민적 이익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었을까? 글쎄다… KT&G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회사정관에 좋은 말을 써놓았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부감시 뿐만 아니라 외부견제도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번 사태는 KT&G 경영진으로 하여금 외부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결국 효율성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4)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대책은 다음과 같다. 1.황금주; 1주 만으로 합병 등 중요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형성해 적대적 M&A의 원천 봉쇄 2.포이즌 필; 적대적 M&A 위협이 있을 경우 대주주가 시세보다 싼 값에 신주를 발행해 인수, 우호적 제 3자에게 배정해 자기 지분을 늘리는 제도 3.황금 낙하산; 적대적 M&A로 해직된 이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게해서 공격자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제도 4.의무공개매수제도; 적대적 M&A를 위해 시장에서 공개 매수할 때 반드시 특정비율 이상을 사들이도록 해서 인수부담을 크게 하는 제도 5.주식상호보유제도; 비슷한 입장의 기업끼리 상대방 기업 주식을 보유, 위협이 생길 때 백기사로 나서는 것. 최근 KT&G에 대한 M&A시도 이후 많은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본문으로
1997년 외환위기는 곧 IMF 구제금융협약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금융, 노동, 공공, 기업의 4대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쉼 없이 진행되었고, 민중들은 충격적인 위기 속에 금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국 사회 전반의 위기 비용은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지만 애초의 약속과 달리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며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꾸준한 시행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 확보를 이룬 것처럼 보였고,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부문의 주가 상승과 수출확대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가 외환위기 직후보다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와 외환은행 매각으로 3년 만에 차익 4조 5천억이라는 최고‘대박’을 터뜨린 론스타의 사례는 폭발적인 주가상승을 통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이윤을 노리는 초민족적 자본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화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이 대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초민족적 자본의 소위 ‘먹튀’전략은 투기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켜왔다. 현재까지의 논의는 한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기치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보호를 위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 상황은 한국경제의 성장이 착시일 뿐이고,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결국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을 기반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력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기업의 M&A 양상과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초민족적 투기자본의 비중은 질적, 양적 증가를 거듭해왔다. 초기 구조조정은 기업 매각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했다. FDI는 1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가 구축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2004년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금융권 매각으로 다시 증가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충격 이후 외국자본의 유치는 이유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통한 한국경제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은 초민족적 자본이 뛰어들어 이윤을 얻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이는 수많은 M&A로 이어졌다. 소버린의 SK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소버린은 2003년 SK지분의 매입과 함께 경영진 전면교체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소버린의 주장은 주주총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들은 2005년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매각하면서 1조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같은 방식으로 헤르메스도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입과 이후 전량매각으로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이외에도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 BIH, JP모건, 인투루브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민족적 자본들은 유상감자나 고배당과 같은 한국경제에 투자한 자본보다 훨씬 많은 부를 해외로 이전해 갔다.1) 지속적인 M&A과정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한국 경제 내의 지분율은 기하급수로 증가해왔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경제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SC제일은행(100%외국인 지분), 외환은행(74%), 한국씨티은행(99.9%) 등의 금융권 일부는 사실상 외국인 자본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국민은행(85.25), 신한지주(64.3%), 하나은행(76.4%)도 외국인 자본비율이 매우 높다. 전체적으로 외국자본의 은행점유율은 2005년 6월 일반은행을 기준으로 29.9%, 국내은행을 기준으로 21.5%에 달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삼성전자, POSCO, 현대차 등의 경우에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 한국전력, SK텔레콤, KT 등도 주식취득 한도에 근접할 정도의 외국인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의 증가는 곧 초민족적 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의 점진적인 강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와 외자유치를 앞세운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 과정은 한국경제 전반의 취약성, 종속성을 구조화하고 있다. 초민족적 자본의 M&A 메커니즘 초민족적 자본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적대적 M&A이다. 현재 한국 내 외국인 투자는 직접투자가 점점 줄고, 단기성 투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중 직접투자라 하더라도 산업부문의 설비에 투자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인수합병형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2) 초민족적 자본의 M&A 역시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형태지만 M&A 메커니즘은 자본의 투자를 통해서 설비투자나 고용창출을 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초민족적 자본의 M&A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자산가치가 큰 기업을 우선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 부동산과 같은 보유자산이 많거나 우량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M&A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기업들을 헐값으로 기업을 인수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조합의 저항이 극심할 경우에는 곧장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법인을 청산하는 식으로 차익을 노리고, 구조조정이 성공해서 실적이 이전보다 호전되면 그 후, 고가매각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차익을 얻어간 대표적인 예는 론스타(외환은행), JP 모건(만도)의 경우다. 초민족적 자본의 목표는 오직 주가의 상승에 있을 뿐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윤획득에 대한 위협요소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업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방식으로 M&A가 진행된다. 또 다른 방식은 먼저 지분을 매입하고 M&A 실시를 선언하면서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이를 통해 차익을 실현한다. 대표적인 예는 소버린(SK), 헤르메스(삼성물산)다. 칼 아이칸의 KT&G에 대한 M&A 시도도 이런 절차를 밟아갈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경영권 확보는 주가를 통한 차익 실현의 발판일 뿐이다. 여기서도 주가 상승을 위한 구조조정과 알짜 자산의 매각은 꼭 필요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이고 빠르게 차익을 얻기 위해 경영권을 위협할 뿐이다. 이런 M&A의 과정은 한국경제 자체의 토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경제전반에서의 자금의 흐름, 이윤획득의 가능성을 지향으로 삼는다. 곧 현재 한국의 주가폭등과 수출확대는 금융투기 속에서 형성된 거품이 대다수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종속성이 심화되고 국내외 충격에 취약해진다. M&A를 둘러싼 논쟁의 한계 한국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자본의 공격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의 해외유출과 산업투자의 침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들은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이 어떤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가에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1> 주주자본주의를 위한 글로벌 스탠다드 먼저 주주자본주의를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주주자본주의는 주주가치를 기업경영의 핵심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핵심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적대적 M&A는 경쟁을 통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식가치를 증대시키는 자본주의의 긍정적 메커니즘이다. 만약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보면 경영자들을 나태하고 방만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소위 미꾸라지 속에 메기를 풀어놓아야 미꾸라지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3) 한국사회에서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이 1970년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70년대 위기 이전에 자본의 전략은 기업 수익을 유보하고 기업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은 지속적인 산업발전과 낮은 실업률, 상대적 고임금을 통해 수익과 고용의 안정적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70년대 위기는 이윤율의 저하 속에서 유보 및 재투자 전략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를 주인으로, 경영진을 대리인으로 가정하는 주주자본주의가 강조되었다. 기관투자자의 등장과 뮤추얼펀드, 연기금, 생명보험과 같은 기관의 등장,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의 금융화는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의 개시로 주주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유보-재투자 전략의 폐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특히 노동력에 대한)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상시적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에 대한 통제로서 인수합병이 중시되었고, 이윤을 중심 논리로 사업과 업무들의 폐기처분이 이루어졌다. 이와 동시에 스톡옵션과 같은 경영진의 고임금 전략이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주주와 최고 경영진이 이익을 챙긴다. 주주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주주나 경영진뿐만 아니라 노동자, 고객, 공급, 유통 모든 면에서 부유함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주주와 경영진의 이득은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 자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인구를 낮은 임금과 소득에 머무르게 하는 경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의 측면은 임금뿐만 아니라 주식보유에 있어서 상당한 불평등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가구의 상위 0.5%는 공모된 기업주식의 37%를 소유하지만 80%의 가구는 2% 이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주가치에 입각한 주식의 높은 수익률 강조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고,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지배계급이 부를 영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2> 국내자본을 지키기 위한 경영권 방어 다른 한편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여기서 M&A시도는 기업들을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도록 강제하고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해악으로 평가된다. 특히 FDI와 투기성 자본을 구분하면서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방안의 마련과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4)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이들은 투자 자본/투기 자본, 국내자본/외국자본의 구분을 논의의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이런 구분은 실효성이 없다. 먼저 투자 자본/투기 자본의 구분의 문제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70년대 위기를 거치면서 유보와 재투자 전략이 다운사이징과 배당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이는 자본이 이윤을 얻는 방식이 금융부문을 매개로 하는 과정으로 집중됨을 의미한다. 곧 특정한 기업에 자본이 직접투자로 주어지거나, 투기를 목적으로 주어지거나 이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각 기업의 자본금은 곧 주식시장에서 자사의 주식이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 이윤은 산업부문에 재투자되기보다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자사의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을 운용하는 데 사용된다. FDI나 그린필드(직접투자 중 생산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는 자체로 투기(불안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바라보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다리면서 자금을 대는 것)와 목적 면에서 차이가 없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FDI와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비율을 구분해 따지기도 힘든 수준이고, 이러한 자본의 흐름은 이미 오직 주식시장에서의 이윤만을 쫓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자본/외국자본이라는 구분도 무의미한 것이다. 국내의 자본(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재벌)들 역시 금융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국계 자본과 마찬가지로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초민족화와 글로벌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자본이 외국자본처럼 시세차익과 같은 주식시장, 금융에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택하지 않고 국내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한 투자 확대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환상에 불구하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표방하는 국내자본들은 어떠한 민족적/민중적 이해와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기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퇴출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세계화 비판이 결여된 초민족적 자본에 관한 논쟁은 허구다 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금융세계화의 본격적 진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초민족적 자본이라는 행위자가 생산부문보다는 금융부문을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해답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행은 결국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매력적인 시장으로 한국경제 전반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국 금융부문에서의 지속적인 투기를 통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위기를 심화해왔다. 또한 금융을 통해 부를 얻어간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다른 지역, 계급, 인종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뽑아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배제와 불평등,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삶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면서 금융세계화에 기생하고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거나, 민족적 해결책을 부르짖는 것(이는 국내자본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는 최고위 경영진의 이득을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이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들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상정하고 그 상황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압축성장’과 과도한 투자로 망쳐놓은 한국경제를 주주자본주의의 올바른 실현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포함한 설비 투자 등으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와 그 측근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외환위기-현재의 장기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종속성을 심화하는 과정이었다. 초민족적 자본의 전횡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횡포를 공공연하게 보장하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그 어떤 입장도 민중의 삶의 위기와 경제,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다.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삶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바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있는 것이다. 1) 퀸텀 인터내셔널 펀드는 서울증권을 상대로 액면가(2500원)대비 60%인 주당 1500원의 고배당으로 267억 원을 회수했고, 1999년 이후 투자자금의 80%를 회수했다. BIH는 브릿지 증권을 상대로 70%의 고배당으로 200억 원을 회수하고, 02년 3차례 유상감자로 600억 원 회수, 04년 유상감자로 1125억 원을 회수했다. 또, JP모건은 만도기계를 대상으로 246억 원의 투자로 1710억 원을 회수해갔으며 인투루브는 OB맥주를 대상으로 유상감자로 1600억 원을 회수해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고, 2005년 주식배당액은 2004년보다 50%증가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외국인들이 3조 6천억 원의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실현했다. 본문으로 2)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사례에 대한 보고 건수는 2002년 810건에서 2005년 2513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고, 이중 24% 정도가 단순투자가 아니라 회사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문으로 3) 이런 입장을 피력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참여연대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KT&G 사태에 대한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경영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십중팔구 주가는 오른다. 주가 상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외부 견제가 효율성 증진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자본의 공격이 없었더라도, 그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국민적 이익이 자동적으로 실현되었을까? 글쎄다… KT&G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회사정관에 좋은 말을 써놓았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부감시 뿐만 아니라 외부견제도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번 사태는 KT&G 경영진으로 하여금 외부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함으로써 결국 효율성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4)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 대책은 다음과 같다. 1.황금주; 1주 만으로 합병 등 중요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형성해 적대적 M&A의 원천 봉쇄 2.포이즌 필; 적대적 M&A 위협이 있을 경우 대주주가 시세보다 싼 값에 신주를 발행해 인수, 우호적 제 3자에게 배정해 자기 지분을 늘리는 제도 3.황금 낙하산; 적대적 M&A로 해직된 이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게해서 공격자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제도 4.의무공개매수제도; 적대적 M&A를 위해 시장에서 공개 매수할 때 반드시 특정비율 이상을 사들이도록 해서 인수부담을 크게 하는 제도 5.주식상호보유제도; 비슷한 입장의 기업끼리 상대방 기업 주식을 보유, 위협이 생길 때 백기사로 나서는 것. 최근 KT&G에 대한 M&A시도 이후 많은 기업들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본문으로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다종다양한 학문 속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드물게 찾을 수 있지만,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복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로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개념과 관점을 동원하여 경제학을 보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은 비주류 경제학이라는 좀 더 넓은 범위로 마르크스적인 것이 포괄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들은 사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비평(판)적 경제학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경제 또는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는 어떤 마땅한 참고서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라르 뒤메닐1)의 이론적 작업은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그는 경제학 내에서 이론적으로도 또한 경험적으로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이나 여타 다른 종류의 이른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경제학을 접하고, 경제학적 토론에 나서게 될 때 부딪히는 최초의 어려움은 경제학이 전개하고 있는 그 자체로 엄밀한 논리적 치밀성이다. 그 논리의 가정과 결론이 어떤 것이건 간에 경제학적 논리과정은 다른 사회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논리적 엄밀성을 지닌다. 경제학자들 자신조차 그 같은 엄밀성에 질려버릴 정도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그랬지만,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바로 그 엄밀한 논리적 완결성 속에 작업을 해나가야 하고, 그 작업에 필요한 논리적 도구들을 끊임없이 증식하여 나가야만 한다. 제라르 뒤메닐과 그의 오랜 동료인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그러한 엄밀한 작업이 마르크스 이후에도 계속되어야하고 또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대중들의) 관심에 비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 매우 적다. 이른바 ‘신해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작업의 일부와 최근 작업인 현대 미국 자본주의 분석과 그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비판’을 몇몇 연구자들이 간간히 소개했을 뿐이다. 이는 상당히 불충분한 것인데, 이런 소개 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들의 작업 전체를 포괄하여 전달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자도 찾아볼 수가 없고, 설사 소개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수용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2) 뒤메닐과 레비 스스로 몇몇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 작업의 범위란 경제학의 모든 영역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뒤메닐과 레비도 알고 있는지, 그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론적인 작업을 포괄하여 대중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한『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3)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된 『자본의 반격(이하 반격)』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전개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곳곳에서 그들이 지속해온 오랜 작업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미약하나마 그들의 작업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마르크스 경제학 재구성에 대한 전반적 개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을 특징짓는 전반적인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선 ‘불균형 미시경제학’(microeconomie de desequlibre)이라는 이름 하에서 경쟁과 경기순환을 포괄하는 일반적 불균형 모형(modele de desequlibre general)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흔히 주류 경제학에서 성립된 ‘일반 균형’에서의 그것과 같다. 각각의 변수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인데, 생산은 수요의 함수이고, 수요는 소득으로부터 유도된다는 것이다. 부분(partiel)과는 대립되는 의미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균형 모형에서 자본의 배분은 수익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자본가는 이 모형 내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설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다루던 균형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균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분석이 강조된다. 어떤 (구조적) 매개변수와 반응계수의 영향 하에서 균형이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한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본가들의 불균형에 반응하는 행위 이외에 자본가들에게 주어지는 은행 대부까지 고려된다. 이러한 모형으로부터 네 가지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단기(short-term)의 경우, 자본스톡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장기(long-term)에서는 그와는 달리 자본스톡이 조정된다. 단기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관찰된 불균형은 가동률(capacity utilization rates)과 가격의 조정을 야기한다. 만약 가격이 단기에 경직적이고, 심지어는 고정되어 있다면 기업은 수량조정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인 동학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장기변수들의 조정도 일어나는데 단기적 가동률 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신호에 따라 장기적 변수인 가동률에 의존하는 가격이 조정된다. 장기적 균형은 일시적인 (단기) 균형들의 연속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비례’(proportion)와 ‘차원’(dimension)의 구분이다. 비례는 변수들의 상대적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은 상대 가격, 상대적인 산출, 상대적인 자본스톡의 값 등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차원은 ‘거시경제’와 동의어로서 총생산 수준을 의미한다. 단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short-term)는 주어진 자본스톡 안에서 가격과 산출량이 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long-term)는 자본스톡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수익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부문 간 자본이동을 말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생산가격’의 문제다. 이를테면 어떤 한 부문에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자본스톡이 존재한다고 보자. 최초의 자본가는 수량조정에 의해 이에 반응하여 낮은 가동률을 유지한다. 이윤율은 이러한 낮은 가동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윤율은 장기에서 자본 배분의 지표가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의 이동이 발생한다. 단기에서 차원(dimension in short-term)은 대체로 거시경제학의 주요 문제가 된다. 경기순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장기적 차원은 축적의 동학과 연관된다. 앞선 네 측면, 즉 비례와 차원과 연관된 장기와 단기적 측면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비례의 안정성’과 ‘차원의 불안정성’이다.4) 뒤메닐과 레비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강점은 바로 비례를 관리하는 능력, 자본을 배분하고 산출을 조정하며 상대가격을 정정하는 데 있다. 반면 이러한 경제의 약점은 주기적인 과열과 침체로의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누적적 과정(processus culuatifs)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비례와 차원의 안정성은 또한 일종의 상충관계를 갖게 된다. 만약 수요가 어떤 시점에서 감소하였다면, 재고가 상승하고, 이러한 수요의 축소에 영향 받은 기업은 그들의 생산능력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기업의 반응은 개별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바로 비례(의 안정성)와 연관된다. 이러한 개별적 기업의 반응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몇몇 기업의 이러한 행동은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가들 각각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초의 반응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요 축소는 더 낮은 수요로 이끌린다. 여기서 화폐와 신용의 존재는 모호한 측면을 갖으며, 동시에 그것은 일반적 불균형 모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주요 결정소이다.5) 자본주의 경제의 (최)장기(very long-term)에서 동학은 역시 마르크스가 분석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관련이 있다. 뒤메닐과 레비는 이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논쟁과 관련된 논의는 국내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다.6) 그들에 따르면 ‘이윤율의 저하’는 ‘기술’과 ‘임금결정’에 의해 설명된다. 즉, 기술변화와 분배의 장기적인 동학이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하는 핵심 부분이라는 것이다. 분배, 특히 실질임금의 (장기적) 변화에 관련한 논의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기술변화에 관해 집중해보자. 경제학에서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이라는 재화 자체의 특수한 성격에 주목하는 폴 로머의 이론이나,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는 루카스의 이론 등이 대표하는 새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이 그러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 모두 마찬가지로 경제의 장기동학, 또는 경제성장의 엔진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이다. 특히 ‘기술’에 관해서는 경제학에서 어떤 제대로 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대표 격이 경제성장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솔로 모형이다. 기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외생적인 요소로 묘사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은 경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생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또는 진보)를 경제 내적인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마르크스경제학 이외의 이른바 ‘비주류 경제학’(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대표되는)에서는 관점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기술변화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칼도-버둔’(Kaldor-verdoon)의 법칙이다. ‘칼도-버둔’의 법칙은 아담 스미스이론의 현대적 개역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요의 확대가 분업의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일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술변화를 묘사한다.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여러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및 모형)을 줄기차게 연구해왔는데,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60년대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으로 이어지는 ‘유발된 기술변화’(induced technical change)에 대한 설명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술변화 양식으로 묘사한 ‘편향적 기술변화’7)를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이기 때문이었다. 샤와 데자이는 1981년,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과 굳윈의 성장순환 모형을 종합하여 자본축적과 기술변화 모형을 구성8)하였으며, 덩컨 폴리는 2003년에 샤와 데자이가 구성한 것과 동일한 모형9)을 다시 소개하게 된다. 특히, 샤와 데자이는 이러한 모형 구성을 통해 자본가가 임금몫의 변동이라는 상황에서 기술변화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임금몫의 변동을 통해 이윤몫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는 자본가는 기술선택을 통해서(만약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의 매우 광범위하다면) 이러한 변동성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 이윤몫과 그에 따른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10) 뒤메닐과 레비가 발전시킨 기술변화 모형은 훨씬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 모형을 ‘고전파-마르크스적인 스토캐스틱(stochastic)한 진화적 기술변화 모형’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모형을 통해 기술선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기술진보를 설명한다.11) 또한 앞서 설명한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에 의해 이른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를 보충하는 설명으로 나온 것에 비해, 스토캐스틱 모형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생산함수와 같은 일종의 기술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은 매기마다의 확률변수(스토캐스틱)로 표현되고, 자본가가 선택하게 되는 기술집합은 균등분포(uniform distribution)을 갖는다. 즉, 어떤 기술이라도 그것이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은 모두 같다. 기술진보가 국소적(local)으로 발생한다면, 편향적 기술진보를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아도 ‘(기술) 혁신의 곤란’(diffculte d'innover)12)이 부과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편향적 기술진보가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형태의 기술진보 양상은 앞서 밝힌 실질임금의 장기적인 궤도와 관련되어 이윤율의 저하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 궤도는 동학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의 반격』읽기 우리는 지금까지 뒤메닐과 레비가 거의 20년 넘게 발전시켜 온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 내용들은 이번에 번역된 『반격』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사실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난해하고 전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뒤메닐과 레비는 그것들이 본문에서 소화되기 어려울 경우에는 박스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반격』을 읽는 독자들이 박스 속에서 들어있는 내용들만이라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면, 그들의 신자유주의 비판 배후에 있는 경제이론적 기초를 부족하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번역된 책을 입수하면, 제일 처음 역자(들)의 후기를 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한 저자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고 싶은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런 방식의 독서는 필자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고, 때때로 이런 독서가 책의 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것은 역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역자후기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번역에 아무리 흠잡을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번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필자는 이번에 번역된 『반격』을 반쯤 읽다가 덮어버렸는데, 그것은 사실 이미 번역되기 전에 영어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주로 그 책 끝에 덧붙여진 역자후기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이 역자들의 이전 작업을 대충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대단히 당혹스럽고, 이런 식의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서평이 오히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역자들은 자신들의 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 속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해 명확한 메커니즘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뒤메닐과 레비의 이윤율 저하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인 기술변수와 분배변수의 동학에서 발생한다. 역자들의 말처럼 그들의 분석이 ‘사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뒤메닐과 레비의 전체 이론적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는(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윤율의 경험적 추정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할 경우 발생하는 오독이다. 물론 역자들이 이윤율의 저하를 제도들의 변화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총괄하는 어떤 틀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한 오독에 근거한다. 역자들은 뒤메닐과 레비가 이윤율의 저하를 ‘경제’ 변수와 관련시키고, 제도만을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구조적 위기와 계급투쟁의 관계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계급투쟁에 대한 역자들의 모호한 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그들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계급관계 그 자체로 설명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존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역자들의 관점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가깝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계급투쟁은 단순한 사건, 또는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생산관계의 조건이자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설명은 충실하다. 사실 뒤메닐과 레비는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기술진보와 관련된 관리계급의 출현과 계급관계 또는 생산관계의 변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윤극대화 노동’(profit maximization labor)이라고 불리는 관리계급의 노동이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R&D과정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13) 다시 말해 뒤메닐과 레비는 역자들의 관점에서처럼 제도의 형성과 기술변화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에 대한 반작용과 관련하여 이른바 생산관계 변용의 조건이자 결과로서의 계급투쟁을 설명한다. 이는 『반격』의 전반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이 책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비판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조건들 필자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중에 『반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이는 매우 환영할만한 결과이며, 한국어 번역과 관련해서도 몇 군데를 제외하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재구성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다만 역자후기를 접하는 이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적 상황,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경제학 비판’의 관점은 현재적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건, 또는 개념적인 측면에서건 말이다. 뒤메닐은 경제학 비판의 역사 속의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에 개입하면서, 경제학 비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전거들을 마련해왔다. 뒤메닐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재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제학 비판의 역사에 대한 학습은 물론이고, 그의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논의 또한 절실하다. 1) 우리에게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동작업으로 주로 알려진 뒤메닐은 1970년대에는 주로 독자적인 저작들을 발표해왔으며(이 때 발표한 주요저작들에서 대부분의 핵심적인 입장들이 모두 수립된다. 후에 이루어지는 레비와의 작업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정교화 및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레비의 공동작업은 80년대에 이르러 시작된다. 레비와의 작업은 그의 작업에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른바 고전파 장기이론과 연관된 생산가격 분석과 경기순환을 통합하는 작업,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한 경험적 추정과 이론적 기반의 재구성(기술변화와 임금이론에 관련한)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최근에 뒤메닐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로 『금융의 세계화』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도미니크 플리옹과 저술 및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도미니크 플리옹은 역시 ATTAC 학술 위원회 소속으로 최근에 마르크스-케인즈-슘페터를 종합하는 관점에서 미국의 90년대 신경제를 분석한 Le nouvea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화폐와 금융 메커니즘에 대한 교과서인 La monnaie et ses mecanismes, Quartrieme editions, La decouverte, 2004은 해당분야에 대한 적절한 참고서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또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들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현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차이와 공통점에 관해서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 뭄바이에서는 프랑스 ATTAC의 대표 격으로 유럽통합과정과 연관된 자유무역과 금융통합의 문제를 다루는 논문, 세계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정성(insecurite sociale)를 지적하는 논문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2) 이것은 언어적 장벽과 기술적 장벽, 두 가지 차원에서 기인한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상당한 난이도의 수학적 기술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3) G. Dumenil & D. Levy, E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 이에 상응하는 짤막한 논문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성」,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2003년 저작이 번역되기 전까지는 이 논문을 통해 그들 작업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2003년 책은 필자에 의해 곧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본문으로 4) 경기순환에 대한 분석은 단기에서 비례, 장기에서 비례, 그리고 단기에서 차원에 대한 단일한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기에서 차원은 바로 축적의 동학을 다루는 것으로 굳윈의 모형이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5) 여기서 금융부문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거시적 측면에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모호한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뒤메닐과 레비의 일반적 불균형 모형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자본순환(capital circuit) 모형에서 발생하는 비선형(nonlinear)동학을 연구하는 폴리의 작업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 모형에서도 금융부문은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주요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불안정성의 결정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Liquidity-Profit Rate Cycle in a Capitalist Economy",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vol. 8, 1987, pp. 363-76과 "Stabilization Policy in a Nonlinear Business Cycle Model", Competition, Instability, and Nolinear Cycle, ed. W. Semmler, Springer-Verlag를 참고하라.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폴리의 모형만이 비선형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메닐과 레비의 모형에서 또한 경기순환을 분석하는 데 있어 비선형 항(nonlinear term)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영속적인 불안정성 또는 안정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불안정성과 안정성의 공존과 순환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선형 항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본문으로 6) 이 논쟁에 대해서는 『반격』의 역자 서문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더 자세한 논의는 김숙경, 「마르크스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2001, 공감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이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을 참조할 수 있는데, 단순히 설명을 하자면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노동에 비해 자본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기술변화의 경로를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8) A. Shah & M. Desai, "Growth Cycles with Induced Technical Change", The Economic Journal, Vol. 91, No. 364, 1981. 본문으로 9) D. K. Foley, Unholy Trinity: Capital, Labor and Land in New Economy. Routledge, 2003. 본문으로 10) 이러한 과정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해로드 중립적인 기술변화(Harrod neutral technical change)이다. 여기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것은 소득의 분배몫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변화 유형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지 않고 일정하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균제상태(steady state)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기술변화 유형이다. 본문으로 11) 경제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내생적 기술변화’는 주류경제학의 새성장이론에서도 설명되기는 한다. 그래서 이들을 ‘내생적 성장론자’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찰스 존스 등에 의해 내생적 성장론자들의 기술변화 이론이 비판받게 되는데, 그것을 존스의 비판(Jones's critique)이라 부른다. 존스의 비판은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제기하는 연구방정식(research equation)이 특정한 파라미터 값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내생적 기술진보에 대한 설명이 인구규모효과에 의해 설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에 대한 설명은 수년 내에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리라 예견하는 것으로 현실과 어울릴 수 없다. 존스의 비판을 통해 주류 경제학 내에서는 솔로의 모형이 다시 복귀한다. 본문으로 12) 여기서 말하는 ‘혁신의 곤란’이란 노동생산성과 자본(에 대한) 생산성을 동시 증가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기술진보의 궤적이 로지스틱하게 표현된다고 하면(이는 기술의 진화형태에 달려있다) 초기의 패러다임의 이동에 따른 기술진보는 빠르게 발전하는 양상을 갖다가 변곡점을 지나 초기에 빠른 성장을 가져온 패러다임 자체가 소모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3) 이에 관련해서는 G. Dumenil & D. Levy, "Production and Management: Marx's Dual Theory of Labor", www.jourdan.ens.fr/~levy와 "The Economic Function of Managerial and Clerical Personnel: A Historical Perspective", Bureaucracy: Three Paradigms, ed. Neil Garstion, 1993을 참조. 본문으로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는 다종다양한 학문 속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드물게 찾을 수 있지만,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복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학계 내에서 자신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로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개념과 관점을 동원하여 경제학을 보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들은 비주류 경제학이라는 좀 더 넓은 범위로 마르크스적인 것이 포괄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들은 사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비평(판)적 경제학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경제 또는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는 어떤 마땅한 참고서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라르 뒤메닐1)의 이론적 작업은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그는 경제학 내에서 이론적으로도 또한 경험적으로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이나 여타 다른 종류의 이른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경제학을 접하고, 경제학적 토론에 나서게 될 때 부딪히는 최초의 어려움은 경제학이 전개하고 있는 그 자체로 엄밀한 논리적 치밀성이다. 그 논리의 가정과 결론이 어떤 것이건 간에 경제학적 논리과정은 다른 사회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논리적 엄밀성을 지닌다. 경제학자들 자신조차 그 같은 엄밀성에 질려버릴 정도이다. 마르크스 자신이 그랬지만, 경제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바로 그 엄밀한 논리적 완결성 속에 작업을 해나가야 하고, 그 작업에 필요한 논리적 도구들을 끊임없이 증식하여 나가야만 한다. 제라르 뒤메닐과 그의 오랜 동료인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그러한 엄밀한 작업이 마르크스 이후에도 계속되어야하고 또한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작업은 (대중들의) 관심에 비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 매우 적다. 이른바 ‘신해석’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작업의 일부와 최근 작업인 현대 미국 자본주의 분석과 그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비판’을 몇몇 연구자들이 간간히 소개했을 뿐이다. 이는 상당히 불충분한 것인데, 이런 소개 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들의 작업 전체를 포괄하여 전달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자도 찾아볼 수가 없고, 설사 소개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수용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2) 뒤메닐과 레비 스스로 몇몇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 작업의 범위란 경제학의 모든 영역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뒤메닐과 레비도 알고 있는지, 그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론적인 작업을 포괄하여 대중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한『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3)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된 『자본의 반격(이하 반격)』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전개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곳곳에서 그들이 지속해온 오랜 작업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이 책을 꼼꼼히 읽어나간다면 미약하나마 그들의 작업에 한 발짝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마르크스 경제학 재구성에 대한 전반적 개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을 특징짓는 전반적인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선 ‘불균형 미시경제학’(microeconomie de desequlibre)이라는 이름 하에서 경쟁과 경기순환을 포괄하는 일반적 불균형 모형(modele de desequlibre general)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흔히 주류 경제학에서 성립된 ‘일반 균형’에서의 그것과 같다. 각각의 변수들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인데, 생산은 수요의 함수이고, 수요는 소득으로부터 유도된다는 것이다. 부분(partiel)과는 대립되는 의미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균형 모형에서 자본의 배분은 수익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자본가는 이 모형 내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사이에서 생산량과 가격을 설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다루던 균형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균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분석이 강조된다. 어떤 (구조적) 매개변수와 반응계수의 영향 하에서 균형이 안정적이거나 불안정한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본가들의 불균형에 반응하는 행위 이외에 자본가들에게 주어지는 은행 대부까지 고려된다. 이러한 모형으로부터 네 가지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단기(short-term)의 경우, 자본스톡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장기(long-term)에서는 그와는 달리 자본스톡이 조정된다. 단기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관찰된 불균형은 가동률(capacity utilization rates)과 가격의 조정을 야기한다. 만약 가격이 단기에 경직적이고, 심지어는 고정되어 있다면 기업은 수량조정을 통해 단기적으로 발견한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인 동학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장기변수들의 조정도 일어나는데 단기적 가동률 조정에 의해 발생하는 신호에 따라 장기적 변수인 가동률에 의존하는 가격이 조정된다. 장기적 균형은 일시적인 (단기) 균형들의 연속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비례’(proportion)와 ‘차원’(dimension)의 구분이다. 비례는 변수들의 상대적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은 상대 가격, 상대적인 산출, 상대적인 자본스톡의 값 등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차원은 ‘거시경제’와 동의어로서 총생산 수준을 의미한다. 단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short-term)는 주어진 자본스톡 안에서 가격과 산출량이 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에서 비례(proportion in long-term)는 자본스톡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수익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부문 간 자본이동을 말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생산가격’의 문제다. 이를테면 어떤 한 부문에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자본스톡이 존재한다고 보자. 최초의 자본가는 수량조정에 의해 이에 반응하여 낮은 가동률을 유지한다. 이윤율은 이러한 낮은 가동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윤율은 장기에서 자본 배분의 지표가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의 이동이 발생한다. 단기에서 차원(dimension in short-term)은 대체로 거시경제학의 주요 문제가 된다. 경기순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장기적 차원은 축적의 동학과 연관된다. 앞선 네 측면, 즉 비례와 차원과 연관된 장기와 단기적 측면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비례의 안정성’과 ‘차원의 불안정성’이다.4) 뒤메닐과 레비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강점은 바로 비례를 관리하는 능력, 자본을 배분하고 산출을 조정하며 상대가격을 정정하는 데 있다. 반면 이러한 경제의 약점은 주기적인 과열과 침체로의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누적적 과정(processus culuatifs)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비례와 차원의 안정성은 또한 일종의 상충관계를 갖게 된다. 만약 수요가 어떤 시점에서 감소하였다면, 재고가 상승하고, 이러한 수요의 축소에 영향 받은 기업은 그들의 생산능력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기업의 반응은 개별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바로 비례(의 안정성)와 연관된다. 이러한 개별적 기업의 반응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몇몇 기업의 이러한 행동은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가들 각각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초의 반응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수요 축소는 더 낮은 수요로 이끌린다. 여기서 화폐와 신용의 존재는 모호한 측면을 갖으며, 동시에 그것은 일반적 불균형 모형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주요 결정소이다.5) 자본주의 경제의 (최)장기(very long-term)에서 동학은 역시 마르크스가 분석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관련이 있다. 뒤메닐과 레비는 이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 논쟁과 관련된 논의는 국내에도 일부 소개되어 있다.6) 그들에 따르면 ‘이윤율의 저하’는 ‘기술’과 ‘임금결정’에 의해 설명된다. 즉, 기술변화와 분배의 장기적인 동학이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하는 핵심 부분이라는 것이다. 분배, 특히 실질임금의 (장기적) 변화에 관련한 논의는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기술변화에 관해 집중해보자. 경제학에서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술이라는 재화 자체의 특수한 성격에 주목하는 폴 로머의 이론이나,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는 루카스의 이론 등이 대표하는 새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이 그러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 모두 마찬가지로 경제의 장기동학, 또는 경제성장의 엔진은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이다. 특히 ‘기술’에 관해서는 경제학에서 어떤 제대로 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대표 격이 경제성장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솔로 모형이다. 기술이라는 것은 이러한 외생적인 요소로 묘사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은 경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생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또는 진보)를 경제 내적인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마르크스경제학 이외의 이른바 ‘비주류 경제학’(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대표되는)에서는 관점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기술변화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칼도-버둔’(Kaldor-verdoon)의 법칙이다. ‘칼도-버둔’의 법칙은 아담 스미스이론의 현대적 개역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요의 확대가 분업의 확대를 가져옴으로써 일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술변화를 묘사한다.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여러 기술변화에 대한 이론(및 모형)을 줄기차게 연구해왔는데,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60년대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으로 이어지는 ‘유발된 기술변화’(induced technical change)에 대한 설명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적인 기술변화 양식으로 묘사한 ‘편향적 기술변화’7)를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이기 때문이었다. 샤와 데자이는 1981년,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과 굳윈의 성장순환 모형을 종합하여 자본축적과 기술변화 모형을 구성8)하였으며, 덩컨 폴리는 2003년에 샤와 데자이가 구성한 것과 동일한 모형9)을 다시 소개하게 된다. 특히, 샤와 데자이는 이러한 모형 구성을 통해 자본가가 임금몫의 변동이라는 상황에서 기술변화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임금몫의 변동을 통해 이윤몫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는 자본가는 기술선택을 통해서(만약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의 매우 광범위하다면) 이러한 변동성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 이윤몫과 그에 따른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10) 뒤메닐과 레비가 발전시킨 기술변화 모형은 훨씬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 모형을 ‘고전파-마르크스적인 스토캐스틱(stochastic)한 진화적 기술변화 모형’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모형을 통해 기술선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기술진보를 설명한다.11) 또한 앞서 설명한 ‘유발된 기술변화’ 모형이 케네디-바이제커-사무엘슨에 의해 이른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를 보충하는 설명으로 나온 것에 비해, 스토캐스틱 모형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생산함수와 같은 일종의 기술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은 매기마다의 확률변수(스토캐스틱)로 표현되고, 자본가가 선택하게 되는 기술집합은 균등분포(uniform distribution)을 갖는다. 즉, 어떤 기술이라도 그것이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은 모두 같다. 기술진보가 국소적(local)으로 발생한다면, 편향적 기술진보를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아도 ‘(기술) 혁신의 곤란’(diffculte d'innover)12)이 부과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편향적 기술진보가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형태의 기술진보 양상은 앞서 밝힌 실질임금의 장기적인 궤도와 관련되어 이윤율의 저하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이윤율의 저하 궤도는 동학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데,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의 반격』읽기 우리는 지금까지 뒤메닐과 레비가 거의 20년 넘게 발전시켜 온 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 내용들은 이번에 번역된 『반격』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앞서 정리한 내용들은 사실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난해하고 전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뒤메닐과 레비는 그것들이 본문에서 소화되기 어려울 경우에는 박스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반격』을 읽는 독자들이 박스 속에서 들어있는 내용들만이라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면, 그들의 신자유주의 비판 배후에 있는 경제이론적 기초를 부족하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번역된 책을 입수하면, 제일 처음 역자(들)의 후기를 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번역한 저자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고 싶은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런 방식의 독서는 필자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고, 때때로 이런 독서가 책의 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것은 역자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역자후기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번역에 아무리 흠잡을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번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필자는 이번에 번역된 『반격』을 반쯤 읽다가 덮어버렸는데, 그것은 사실 이미 번역되기 전에 영어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주로 그 책 끝에 덧붙여진 역자후기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이 역자들의 이전 작업을 대충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대단히 당혹스럽고, 이런 식의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럽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서평이 오히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역자들은 자신들의 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 속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해 명확한 메커니즘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뒤메닐과 레비의 이윤율 저하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인 기술변수와 분배변수의 동학에서 발생한다. 역자들의 말처럼 그들의 분석이 ‘사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뒤메닐과 레비의 전체 이론적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는(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윤율의 경험적 추정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할 경우 발생하는 오독이다. 물론 역자들이 이윤율의 저하를 제도들의 변화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총괄하는 어떤 틀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한 오독에 근거한다. 역자들은 뒤메닐과 레비가 이윤율의 저하를 ‘경제’ 변수와 관련시키고, 제도만을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결국 구조적 위기와 계급투쟁의 관계를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계급투쟁에 대한 역자들의 모호한 정의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그들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계급관계 그 자체로 설명될 수 있는 계급투쟁의 존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역자들의 관점은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과 가깝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계급투쟁은 단순한 사건, 또는 역사적 계기로서의 계급투쟁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생산관계의 조건이자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뒤메닐과 레비의 설명은 충실하다. 사실 뒤메닐과 레비는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기술진보와 관련된 관리계급의 출현과 계급관계 또는 생산관계의 변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윤극대화 노동’(profit maximization labor)이라고 불리는 관리계급의 노동이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R&D과정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13) 다시 말해 뒤메닐과 레비는 역자들의 관점에서처럼 제도의 형성과 기술변화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에 대한 반작용과 관련하여 이른바 생산관계 변용의 조건이자 결과로서의 계급투쟁을 설명한다. 이는 『반격』의 전반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이 책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 비판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조건들 필자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중에 『반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이는 매우 환영할만한 결과이며, 한국어 번역과 관련해서도 몇 군데를 제외하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재구성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다만 역자후기를 접하는 이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적 상황, 특히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경제학 비판’의 관점은 현재적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건, 또는 개념적인 측면에서건 말이다. 뒤메닐은 경제학 비판의 역사 속의 가장 논쟁적인 쟁점들에 개입하면서, 경제학 비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전거들을 마련해왔다. 뒤메닐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재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경제학 비판의 역사에 대한 학습은 물론이고, 그의 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논의 또한 절실하다. 1) 우리에게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동작업으로 주로 알려진 뒤메닐은 1970년대에는 주로 독자적인 저작들을 발표해왔으며(이 때 발표한 주요저작들에서 대부분의 핵심적인 입장들이 모두 수립된다. 후에 이루어지는 레비와의 작업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정교화 및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레비의 공동작업은 80년대에 이르러 시작된다. 레비와의 작업은 그의 작업에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른바 고전파 장기이론과 연관된 생산가격 분석과 경기순환을 통합하는 작업,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한 경험적 추정과 이론적 기반의 재구성(기술변화와 임금이론에 관련한)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최근에 뒤메닐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로 『금융의 세계화』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도미니크 플리옹과 저술 및 강의활동을 하고 있다. 도미니크 플리옹은 역시 ATTAC 학술 위원회 소속으로 최근에 마르크스-케인즈-슘페터를 종합하는 관점에서 미국의 90년대 신경제를 분석한 Le nouvea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화폐와 금융 메커니즘에 대한 교과서인 La monnaie et ses mecanismes, Quartrieme editions, La decouverte, 2004은 해당분야에 대한 적절한 참고서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또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들은 ATTAC 학술 위원회에서 현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한 케인즈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차이와 공통점에 관해서 강의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 뭄바이에서는 프랑스 ATTAC의 대표 격으로 유럽통합과정과 연관된 자유무역과 금융통합의 문제를 다루는 논문, 세계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정성(insecurite sociale)를 지적하는 논문등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2) 이것은 언어적 장벽과 기술적 장벽, 두 가지 차원에서 기인한다. 뒤메닐과 레비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상당한 난이도의 수학적 기술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3) G. Dumenil & D. Levy, Economie marxiste du capitalisme, La decouverte, 2003. 이에 상응하는 짤막한 논문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성」,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으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2003년 저작이 번역되기 전까지는 이 논문을 통해 그들 작업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의 2003년 책은 필자에 의해 곧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본문으로 4) 경기순환에 대한 분석은 단기에서 비례, 장기에서 비례, 그리고 단기에서 차원에 대한 단일한 모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기에서 차원은 바로 축적의 동학을 다루는 것으로 굳윈의 모형이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5) 여기서 금융부문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거시적 측면에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모호한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뒤메닐과 레비의 일반적 불균형 모형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자본순환(capital circuit) 모형에서 발생하는 비선형(nonlinear)동학을 연구하는 폴리의 작업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 모형에서도 금융부문은 (거시)경제적 안정성의 주요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불안정성의 결정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Liquidity-Profit Rate Cycle in a Capitalist Economy",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vol. 8, 1987, pp. 363-76과 "Stabilization Policy in a Nonlinear Business Cycle Model", Competition, Instability, and Nolinear Cycle, ed. W. Semmler, Springer-Verlag를 참고하라.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폴리의 모형만이 비선형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메닐과 레비의 모형에서 또한 경기순환을 분석하는 데 있어 비선형 항(nonlinear term)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영속적인 불안정성 또는 안정성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불안정성과 안정성의 공존과 순환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선형 항이 존재하여야만 한다. 본문으로 6) 이 논쟁에 대해서는 『반격』의 역자 서문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더 자세한 논의는 김숙경, 「마르크스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2001, 공감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이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을 참조할 수 있는데, 단순히 설명을 하자면 자본주의 경제가 점점 노동에 비해 자본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기술변화의 경로를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8) A. Shah & M. Desai, "Growth Cycles with Induced Technical Change", The Economic Journal, Vol. 91, No. 364, 1981. 본문으로 9) D. K. Foley, Unholy Trinity: Capital, Labor and Land in New Economy. Routledge, 2003. 본문으로 10) 이러한 과정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해로드 중립적인 기술변화(Harrod neutral technical change)이다. 여기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것은 소득의 분배몫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변화 유형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지 않고 일정하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균제상태(steady state)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기술변화 유형이다. 본문으로 11) 경제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내생적 기술변화’는 주류경제학의 새성장이론에서도 설명되기는 한다. 그래서 이들을 ‘내생적 성장론자’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찰스 존스 등에 의해 내생적 성장론자들의 기술변화 이론이 비판받게 되는데, 그것을 존스의 비판(Jones's critique)이라 부른다. 존스의 비판은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제기하는 연구방정식(research equation)이 특정한 파라미터 값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내생적 기술진보에 대한 설명이 인구규모효과에 의해 설명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생적 성장에 대한 설명은 수년 내에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리라 예견하는 것으로 현실과 어울릴 수 없다. 존스의 비판을 통해 주류 경제학 내에서는 솔로의 모형이 다시 복귀한다. 본문으로 12) 여기서 말하는 ‘혁신의 곤란’이란 노동생산성과 자본(에 대한) 생산성을 동시 증가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기술진보의 궤적이 로지스틱하게 표현된다고 하면(이는 기술의 진화형태에 달려있다) 초기의 패러다임의 이동에 따른 기술진보는 빠르게 발전하는 양상을 갖다가 변곡점을 지나 초기에 빠른 성장을 가져온 패러다임 자체가 소모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3) 이에 관련해서는 G. Dumenil & D. Levy, "Production and Management: Marx's Dual Theory of Labor", www.jourdan.ens.fr/~levy와 "The Economic Function of Managerial and Clerical Personnel: A Historical Perspective", Bureaucracy: Three Paradigms, ed. Neil Garstion, 1993을 참조. 본문으로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맞서는 2006년 사회운동의 투쟁과제 [%=박스1%] 사회자 : 한국 사회 빈곤인구가 70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빈곤은 주어진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를 ‘사회 양극화’로 인식하고 2006년 해결해야 할 주력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방안에 대해 진단하고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확산에 맞선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결과인 빈곤 심화를 사회 양극화로 볼 수 있는가? 유의선; 빈곤의 심각성은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진숙 : 빈곤의 심화 양상을 사회 양극화의 틀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다 조동진 : 부동산, 금융 등 자산 격차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1%] 유의선 : 빈곤의 원인과 양상의 핵심으로 신빈곤,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의 빈곤은 열심히 일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일을 더 해도 소득은 일정하거나 더 줄어들고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기되는 빈곤의 심각성은 인구 수 대비 빈곤인구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빈곤이 구조화되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금융시장의 문제로서 신용불량의 문제나 가계부채의 문제가 드러나고 특징적으로 여성의 빈곤화 문제,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의 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빈곤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드러나고 하나의 구조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자 : 일하는 빈곤층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현재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라 비정규직이 비율상으로도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화두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에 관해 배기남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기남 : 87년 이전에는 특별한 계층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모두가 가난해서 국가적 수준의 ‘잘살아보세’를 외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87년 이후, 가깝게는 노태우 정권의 반동기를 거치고 나서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기업별 노조체제가 관철되면서부터 그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같이 일하던 사람 사이에서도 정규직은 잘 살고 비정규직은 상대적으로 못사는 양상이 주변에서 눈에 보이게 된 것이죠. 임금도 두세 배 차이가 나고, 생활수준도 누구는 자가용을 몰고 누구는 잘해야 중고차 몰고 다니고 하는 이런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새로운 빈곤개념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동자들 내부를 봤을 때도 조직되지 않은 영세사업장 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합니다. 80년대 중반에 현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포드주의적 시스템에 의해 노동집약 산업인 전자, 섬유 등이 산업의 중심이었는데 이것이 도산하거나 외국으로 이전되면서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새로운 빈곤층이 등장하기도 했죠. 어쩌면 이 빈 공간을 60만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동진 : 지역적 상황을 본다면 대도시의 문제점 중 하나가 거주지에 따라 격차가 심화된다는 점입니다. 외국의 경우도 양극화문제가 심화되면서 계층 간 분리현상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고착화, 심화되면 이중도시화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강남-북 간 불균형을 소득, 금융, 부동산의 구체적인 항목별로 살펴보면 소득격차도 심하지만 결정적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부동산과 금융자산입니다. 빈곤문제와 양극화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양극화 관련 논의에서는 주로 소득 불균형 관련한 문제를 불평등으로 제기하는데 그보다는 부동산, 금융 등의 자산 격차로 인해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근로빈곤의 양상이 지금 현재의 빈곤 문제를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빈곤은 소득에 비해서 소비지출규모가 맞지 않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서울의 생계비 문제를 살펴보면 생계비 지수가 세계 2~5위 안에 들만큼 높다고 합니다. 최근 5년 동안 근로소득이 20% 올랐다면 주거비와 직결된 부동산 가격은 70%가 증가하였습니다. 주거비용 등을 중심으로 생계비 부담이 굉장히 많이 오른 거죠. 정부에서 사회적 일자리, 사회서비스 확대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대부분 민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생계비가 더 상승하게 됩니다. 이것이 빈곤화를 가속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소득격차와 생계비 부담의 증가를 함께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2%] 이진숙 : 세 분 모두 각각 다른 각도에서 빈곤에 접근하는 맥락을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빈곤 인구 자체가 증가했고 여성빈곤, 노인빈곤, 노동빈곤 인구의 증가 등 빈곤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진 상황이라는 것은 운동사회나 정부에서도 대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떤 틀을 통해 어떻게 개념화, 분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 양극화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말자고 하고 싶습니다. 양극화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먼저, 현실을 묘사하기에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극소수 고소득자를 제외한 다수가 빈민이고 또 다양한 층위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념화의 틀과 연관 지어서 사고해보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소득이 양극화되는 배경이 무엇인가를 분석할 때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어있고 산업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방식의 단계적 분석틀을 사용하고 있으며, 대응방안 역시 그런 맥락에서 도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할 경우 근본적 원인을 보지 못하게 될 뿐더러 은폐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 저희의 기본 입장입니다. 소득격차나 산업양극화 등은 모두 금융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죠. 이렇게 보면 사회 양극화는 올바른 묘사 또는 개념화가 아닙니다. 양극화는 사회적 배제라는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장기실업, 가족 해체 등으로 인해 빈곤이 확대되면서 프랑스를 선두로 하여 유럽의 국가들이 이를 사회적 배제라는 말로 개념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양극화라는 개념은 주로 대도시 지역에서의 이와 같은 양상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쓰이는데, 중산층이 붕괴되고 소득분배구조가 극단적으로 이분화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에 유럽 고유의 문제라 할 수 있는 이민자 문제, 지역 간 격차 등이 결합되어 도시 자체가 이중화된다는 식으로 분석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기존의 복지체제나 사회적 결속을 지탱해 주던 계급연대의 해체가 지목되고, 그에 따라 국가 중심의 사회통합 정책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즉 양극화, 사회적 배제 등의 개념화는 빈곤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필연적으로 계급적 관점을 희석화 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사회통합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걸맞은 복지개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측면을 고려해봤을 때, 빈곤의 심화 양상을 사회 양극화의 틀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기남 :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분할지배입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보통신혁명이 진행되면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네트워크 생산 시스템, 하층계열화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심한 부분이 건설이나 섬유산업입니다. 유명의류업체의 경우 제조업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업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IMF 이후 변화된 자본 축적 과정에서 고용수준이 더욱 낮아진 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결과로서 주택문제와 같은 여러 양적 지표들이 나타나는 것이죠. 사회자 :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빈곤층의 지속적인 양산과 일상적 관리가 심화된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조동진 국장님이 생계비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듯이, 노동빈곤의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현재 빈곤의 절대치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진3%] 조동진 : 대응 전략과 연결되는 문제인데요, 생계비 지수가 높다는 것은 소득 대비 생계비 부담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유화 저지 투쟁을 전개해왔지만 이미 사유화된 영역이 워낙 많습니다. 특히 보육 부문을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에서는 비영리 기관을 포함한 공공보육이 80%에서 많게는 100%까지 보장됩니다. 한국의 경우 5% 대까지 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진 다음, 정부는 민간에 집중 융자를 해줌으로써 보육 인프라를 공급하게 하면서 민간에 보육을 맡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공공성 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미 시장화된 것을 공공화하자는 이야기도 포함됩니다. 한편에서는 지금 민간자본유치사업(BTL) 방식을 통한 사회적 서비스 확대도 사회화라고 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서비스가 증가하더라도 이것이 모두 민간 자본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유의선 : 지금 정부 추계로 빈곤인구가 700만이라고 합니다. 이는 최상위 계층까지를 포함한 것으로 최저생계비 120% 기준입니다. 2006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가 1인가구가 40만 천원이고 4인가구가 117만원이니까, 1인가구면 50만원 이하, 4인가구면 130만원 수준을 빈곤계층이라고 일컫는 것이죠. 이러한 사람들이 700만 명이라는 말입니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 중에서는 최저임금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빈곤계층에 속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죠. 가구원 중 노동인구가 적다면 그럴 수도 있는데 비정규직이 저임금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 수준을 약간 넘어서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비정규직 인구가 엄청 많이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곧 빈곤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이러한 현상을 일부 고소득자에 비한 상대적 빈곤감이라고만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양극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가를 논의하려면, 지금 절대빈곤의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빈곤은 절대빈곤의 문제뿐만 아니라 빈곤화가 지속되는 구조와 과정이 문제인 것이고 지역 간, 산업 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빈곤 문제의 양상과 원인이 복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채 양극화라는 담론에 묻혀가는 데 대해서는 고민이 듭니다. 이진숙 : 특정 용어는 제기되는 맥락과 해결방향에 있어서의 계획까지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양극화가 아니더라도 ‘신빈곤’ 등 개념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신빈곤이라는 표현은 연구자들과 NGO들이 자주 쓰는 표현인 것 같아요. 사회적 배제라는 용어는 소득이 절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에 대해 표면적으로 빈곤을 진단하던 과거의 방식과 다르게 실제로 달라진 빈곤의 양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고 이들이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인식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는 최소한의 긍정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인 맥락과 탈계급적인 해결방향이 내포되어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의선 : 사회 양극화라는 말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분석틀을 담아낼 수 있는 확장된 빈곤의 문제를 포괄할 논의 틀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숙인, 장애인 등의 문제, 노동의 문제, 지역 간 격차 등 모두가 처한 빈곤화를 공통적으로 분석할 틀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배기남 : 저는 교육할 때 1-3-6 체제라는 말을 즐겨 쓰는 데, 한국사회에는 세대를 걸쳐 부를 축적하는 국가나 기업의 권력집단으로 형성된 귀족계급이 10%, 전문기술을 가진 소위 신 중산층 및 구 중산층,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고 있는 대학출신 기술직들이 30%를 이루고, 나머지가 대다수 노동자 및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단순기능직 노동자라도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 간의 격차가 엄청나게 큽니다. 이전에는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했는데,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정부는 양극화를 설명하면서 소득 격차 뿐 아니라 기업 내,직종 별, 업종 별, 산업간 양극화로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노동자운동과의 합의주의를 강화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정부여당의 양극화 해소 담론과 구별되는 우리의 틀을 통해 빈곤의 원인을 분석하는 일입니다. 사회 양극화 해소가 화두인 정부의 사회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동진 : 지역 간 불균형에 현상적으로 접근하면 자본 투하를 통해 열악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자는 결론에 빠지는 위험성이 있다 유의선: 복지정책이 노동연계를 강화하는 경향이 문제다 배기남 : 정부의 대책은 빈곤층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진숙 :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 담론을 통해 사회통합과 시민운동의 동원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자 : 현재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양극화해소 정책들에 대해 논의해보았으면 합니다. 핵심비판지점과 핵심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요. 정부에서는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몇 가지를 일단 발표해놓고 결국 구체적인 과제들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일단, 일자리 창출이 핵심적 과제이고 근로소득보전세제 도입이나 자활, 사회적 일자리의 확충 등이 중심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대응방안이 또한 중요하게 사고되면서 노인복지 확대, 여성인력활용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펼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 정부가 양극화 해소 방안에 대해 내놓은 정책 전반에 대한 입장을 확인해보았으면 합니다. 조동진 : 정부에서 주장하는 근로연계복지 강화 방안이나 사회 서비스 확대 과정에 대한 민간 참여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아까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지방선거 공약으로 공공부문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일자리라는 말을 대체할 다른 표현을 고민 중입니다. 지금의 사회적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현재 이야기하는 사회적 일자리도 조금 더 오래갈 수 있다는 차이 말고는 저임금의 일자리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양적 개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실제로 어떠한 일자리인지에 대한 논의가 누락됩니다. 결국 저임금 비정규직이 늘면서 오히려 빈곤의 심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또한 사회서비스에 민간이 참여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사회서비스가 민간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더 심화하자는 취지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보육을 사회가 책임지자’고 하면서 BTL방식을 취하는 문제들이 그렇죠.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계발확대나 자활근로사업 등은 결과적으로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밀어 넣고 보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서울시 저소득층 실태조사를 보면 당사자들은 직업훈련을 원하지 않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자료를 보더라도 그 직업훈련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빈곤해결의 근본 방안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합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한 정부 입장도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이 많은데, 일부 부양의무조건 완화 같은 것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생계비 관련 빈곤선 문제에 있어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 격차가 워낙 너무 큽니다. 관련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생계비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전제로 빈곤선을 잡는다면 서울만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15~10% 정도는 나올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런데 실제 수급 자격을 얻게 되는 사람은 2%도 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일부 자격요건 완화가 핵심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것이죠. 더 조목조목 따지자면 대부분의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역시 실효성이 없는 대책에 불과합니다. 한편에서는 대형 할인점 등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도 없이 어떤 실효성이 있겠냐는 것이죠. 기업도시나 국가균형발전시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 북 이야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논리입니다. 소득별 계층별로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함으로써 드러나는 현상을 현상적으로만 접근해서 지역 간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이것을 강남․ 북 문제 즉, 지역 간 격차로 치환하여 열악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자는 방식의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죠. 예를 들면 자본 투하를 하면 된다는 논리인데, 이런 방식에 따라 뉴타운 등 열악한 지역의 개발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계층 간, 계급 간 격차보다는 지역적 격차 등이 언론 차원에서나 사회적으로도 부각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보도자료 앞에 ‘강남․ 북’만 붙이면 언론에 보도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던데요. 지역별 집중도의 차이가 지역문제로 발전하는 점에 대해서 정책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논의가 언론이 설정하는 방식대로 의제를 따라가는 측면이 많아 핵심에서 빗겨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지적하셨는데 양극화 담론 관련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고 대책이 중산층 중심으로 마련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국민연금 보완에 관련해서도 갑자기 역 모기지론 1)이야기가 나와 버리면서 결국은 주택 등의 일정한 자산을 가진 계층을 보호해서 중산층이 빈곤화되는 것을 막자는 방식으로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역 모기지론은 금융을 중심으로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만들자는 대표적인 주장인데 특히 주택 문제와 관련 소득 불평등이 극심한 대한민국에서는 금융세계화 비판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의선 : 제가 보기에 양극화 해소 정책의 핵심적인 우려지점은 복지부문이 아닌 것을 복지대책이라 일컫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일자리나 자활사업,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나 보육정책 등의 목표가 경제활동 인구 확대 등 일자리 창출의 방향성 하에 이야기되면서 그대로 복지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지정책이 노동연계를 강화하는 경향이 문제입니다. 더 이상 한국사회에 노동유인효과는 필요 없다고 봅니다. 누구든 일을 하고자 하는데 사실 그 일자리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적절한 일자리가 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복지와 노동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일자리가 사실은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입니다. 그나마 시행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개정과정에서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제외시킬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 아니라 어떤 일자리인지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죠. 즉 이러한 노동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주요한 과제로 상정되어야 합니다. 또, 자활 사업이라는 것이 일정한 사회구조적 기능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노동시장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임금수준이 최저임금보단 높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 안정적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었는데 재정경제부 차원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표방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안정적 일자리를 요구할 것인가가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EITC 방안이 발표될 당시에 좀 무리가 있었음에도 빈곤사회연대에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낮추는 효과를 낳고 오히려 노동능력자들의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문제제기하였습니다. 일자리 창출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빈곤의 문제, 이 안에서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최저임금제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동진 국장님이 제기한 공공복지 서비스 확대 등이 이와 함께 요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논의가 빠진 채 이야기되는 일자리 창출은 오히려 노동빈곤을 강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 정책을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핵심인 경제활동인구의 확보라는 측면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듭니다. 사회 서비스 확대 과정의 공공성 확보가 사회적 배제를 낳는 구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정부의 정책들은 그런 문제점 해결로 나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중산층을 두텁게 한다지만 실제로 그러한 실효성도 없으며 절대빈곤층의 빈곤탈출과는 무관한 논의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4%] 사회자 : 정부가 양극화 담론을 제기하면서 우려지점으로 내세우는 것이 투자 부진으로 인한 고용감소입니다. 이는 성장잠재력을 마련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재의 고용구조를 분석해볼 때 정부의 이러한 인식이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배기남 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기남 : 현재 무역수준이 세계 12위인 한국에서 개개인이 갖는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자발적 실업문제도 일정하게 있다고는 봅니다. 단순기능직․ 단순노무직 같은 경우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틀거리가 없고 여전히 한국 노동자운동이 기업복지의 틀에서 벗어나있지 못한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대책은 빈곤층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지방노동청의 실업자 교육훈련 기관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선정되는 업종은 미용, 요리, 재봉기술, 심지어는 점성술과 같은 것이었고, 이러한 자영 서비스업을 주로 교육․ 훈련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취업률로 이어지는 비율이 20%를 넘지 않았습니다. 단순기능직을 순수하게 교육시켜 빈곤의 문제나 저임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는 실질적인 문제가 있죠. 사교육비를 비롯한 교육비 전반에 대해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비 지원체계에 대한 초보적 수준의 논의조차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택문제 역시 저소득층이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진숙 :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가 함께 제시되고 있는데 최근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세 가지 방향 정도로 정리해서 말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근로연계복지라는 이름 하에 사회복지정책들이 여러 가지 시행될 것이라는 점, 또 하나는 기초생활보장 관련된 것인데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제도들을 일정하게 확대하거나 보완하는 방향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도시계획과 맞물린 국가균형발전 등의 수사를 활용한 다양한 발전계획의 맥락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방향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상호 결합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IMF 이후 불안정노동층이 급격히 증가한 후 운동사회 안에서 1-2차 구조조정에 대해 진단하면서 2차 구조조정의 경우 법제를 완비하는 형태로 가면서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와 유비해보면 현재 빈곤관련 정부 대응이 2차의 상태에 온 것 아니냐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다양한 빈곤 정책이 쏟아져 나왔고, 현재는 앞서 말한 세 가지 방향성이 법․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틀이 향후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근로연계복지의 경우 많은 분들이 분석하듯이 불안정노동의 증가와 연계하지 않고선 해명할 수 없는 맥락이 있습니다. 최근 ‘골간 노동력화’라는 개념이 등장할 만큼 불안정 노동이 정상적인 고용형태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밑으로 한 층 정도가 더 생긴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업예비군 층을 사회적 일자리, 저임금 공공서비스 등 상시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불안정노동 밑에 한 층을 더 두는 형태, 이를 제도적으로 만드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재의 절대 빈곤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일정한 확대는 불가피할 것 같지만 조동진 국장님의 말씀대로 정부의 정책으로는 효과가 매우 미비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어떤 비판과 대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있어, 대응방식이 외형상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방향성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기준을 완화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수혜를 더 받는 숫자가 1%에도 미치지 않는 굉장히 적은 수치입니다. 이런 것을 왜 하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고 생색내기 하지 말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죠. 참여연대 같은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한 단체인데, 실제로 돈도 별로 안 드는데 왜 못하냐는 방식으로 접근하더라구요. 어떤 식으로 비판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유의선 : 한나라당조차도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데는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일자리창출 정책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해요. 다만 복지부문 확대를 더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거죠.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해서 예를 들면 한나라당은 그 많은 돈을 써서 이 정도밖에 해결 못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노동능력자는 아예 떼어내어 버리자, 노동무능력자만 보장하자고 하는 정도의 견해차가 있을 따름이죠. 비단 참여정부의 기조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은 큰 틀에서 노동시장을 최대한 유연화하고 최소한의 복지를 갖추는 것은 대략적으로 합의하는 방향인 것 같은데, 사회 양극화 담론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핵심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조세를 통한 이슈파이팅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이슈를 선점해왔던 노무현정권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죠. 지금 양극화 해소 관련해서 감세냐 증세냐 라는 그들만의 논쟁이 있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양극화 대책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생색내기 방식보다는 정계개편까지 바라보면서 이후 대선까지의 우위 선점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 조세 논란 관련해서는 정부가 양극화해소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가 언론 학계 등에서 증세냐 감세냐를 두고 논란을 벌였지요. 그러다가 재경부 입단속 문제까지 얘기되면서 지방 선거 이후로 미뤄졌습니다. 지금 조세개혁 논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문제도 제기했잖아요. 일부 언론에서는 부유세를 걷는 것 말고 어떤 구체적 대책이 있느냐는 비판도 있던데요. 현재 양극화해소 재원조달을 위한 조세개혁 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조동진 : 굳이 양극화를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조세체계가 워낙 기본적인 문제가 많고 누진성도 굉장히 많이 떨어지고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등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과세가 안 되고 있어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부유세라는 세목 하나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이나 금융 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라든지 전반적 조세체계 개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연히 앞으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포괄적 의미의 사회 공공성, 주거 등을 포함한 부분에 있어 기본적인 재원마련 방안과 맞물려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진전이 안 되고 있어 당 내에서도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갑자기 노무현정부에서 조세개혁 문제를 양극화 해소 방향으로 들고 나왔지요. 지역에서 재산세 감면 문제 등도 쟁점인데 재산세가 감면되면 고가의 중대형 주택이나 주상복합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보통의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해당이 안 되고 집을 소유한 사람들 가운데서 연관되어있는 재산세가 10만원 미만이어서 감면을 못 받거나 받아봤자 평균 3천 원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이것밖에 안되는데도 이것이 대중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조․ 중․ 동 등 언론에서 떠들어댄 효과이기도 합니다. 워낙 허약한 복지체제와 서비스체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나간 다음에 돌아올 것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어쨌든 당장은 내 주머니에서는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한 거죠. 이런 조건 속에서 정부가 조세개혁을 말하다가 얻어맞은 건데 이런 맥락을 떠나서 구체적 방안을 봐도 고소득, 자영업자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근로소득자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조세개혁 차원에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함정이 있다고 봅니다. 위험한 측면이 있는 거죠. 아까 이야기한 대로 노동시장 내에서 양극화, 그리고 소득자 중에서도 근로소득자 비 근로소득자 간의 양극화를 말하면서, 양극화라고 했을 때 어떤 부위를 칠 것인가가 불확실했고 그러한 쟁점이 조세개혁논란에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부유세 프로젝트의 핵심은 부동산이나 금융에 대한 과세 강화가 취지였는데 지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조세개혁론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양극화라고 했을 때 각자가 일정부분 부담을 해서 이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모두의 책임이 되어버리니까 결과적으로 누가 원인 제공자인가 하는 문제가 굉장히 불분명해지는 거죠. 보수언론도 근로자가 봉이냐고 계속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조세개혁론은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평가를 해봐야 합니다. 이진숙 : 노무현정부는 실제 추진의지 유무와 무관하게 조세개혁에 대한 말만 던져놓고 효과를 챙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얼핏 흘린 말을 가지고 언론에서 보도하고 시민단체에서 분석하는 대리전 양상으로 가는 거죠. 증세냐 감세냐 하는 논쟁구도는 전통적인 것인데,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이것과 다소 상이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선거 시기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감세를 주장하고 민주당은 증세를 말하는데 집권하고 나면 결국 흐지부지되는 양상이 반복됩니다. 한국의 경우 워낙 양극화 담론이 많이 형성되어서 한나라당도 노골적으로 고소득층이나 법인들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감세를 주장하진 않잖아요. 뭉뚱그려서 투자에 굉장히 위험하다고만 말하죠. 열린우리당 같은 경우에도 구체적인 방향성을 언급하지 못하는데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사회복지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고 빈곤층이 너무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모두가 합심해서 증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참여연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OECD 평균 수준에 비해 전 국민 조세부담률이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실제로 증세를 할 계획이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현재까지의 구도는 정부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간다는 생각입니다.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뿐만 아니라 많은 운동진영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NGO를 동원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조세 논란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진5%] 배기남 : 부동산에서 세금을 강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사용자에게 책임이 전가됩니다. 부동산 관련 소유권을 전혀 건드릴 생각이 없는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한 운동진영의 정면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유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문제제기가 필요합니다. 민주노동당에서 1가구 1주택을 선언을 했던데 전혀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더군요. 이러한 것들을 정말 운동으로 조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소득관계를 누진적으로 역 재분배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 그럼에도 돈을 더 잘 버는 자에게 과세율이 높이는 것이 부유세겠지요. 문제의 접근 수순이 뒤바뀐 것 같습니다. 유의선 : 양극화 해소 재원 조달 방안으로서의 증세냐 감세냐 하는 논쟁은 허구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세수 확대로 양극화 해소를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자활 같은 경우 조건부 수급자를 취업시키는 기업에 고용장려금을 주는 형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양극화 해소 방안이나 빈곤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책이 마련되고 미약한 복지재정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빈곤사회연대가 타워팰리스 앞에서 발족할 때 한 얘기이지만 용산 주상복합단지를 분양하는 데 하루만에 8조원이 모였다고 하고 얼마 전에 롯데백화점이 마트 확장하려고 주식을 모으면서 하루만에 20조원의 돈이 모였다는데, 이 돈이 다 부자들의 돈인가 하면 아니라는 거죠.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빚내서 투자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먹고 사는 것은 어떻게든 해결되는데 빈곤을 탈출하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은 부동산, 주식밖에 없다는 거죠. 주식은 불안정하니까 안정적 부동산에 투기가 집중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들을 깨고 분배구조의 형평성을 만들지 않고서 재분배 중심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적이라는 겁니다. 이미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는데 부를 환수해 다시 나누는 것으로만 사고되면 구조적 문제를 우회하고 그러한 구조의 양산에 대해 결국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올해 주거권운동 관련한 요구들이 가장 높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주거 빈활의 성과이기도 한데, 단순히 무주택 서민이나 지하셋방이나 쪽방 비닐하우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전월세 거주 서민들까지 광범위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여러 비판지점과 우려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죠. 현재 정부정책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거나 일정한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진행중인 상황에서 핵심적으로 주의 깊게 봐야할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눠봅시다. 이진숙 :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사회진보연대가 결성반대의 입장을 피력했던 양극화해소 국민연대의 워크샵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요. 초창기 단계의 회의였는데 노동, 여성 등 각 부문이 자신의 숙원사업을 들고 나오는 것을 취합하는 형태였습니다. 그 때 부문의 요구가 아닌 형태로 제기된 유일한 문제가 참여연대가 제기한 조세개혁문제와 부동산문제였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작년에 워낙 논란이 많이 되었던 것이었잖아요. 그런데 자산소득 격차가 심각한 문제인데, 부동산 문제를 건드린다고 해서 해결되는가 하는 점과,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을 잡겠다고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전통적으로 전철연 등의 빈곤운동을 해오던 단위들이 제기해온 주거권 개념과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면 빈곤이 고착화되는 원인이 무엇인지와도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NGO의 경우 자산소득 격차 해소를 부동산문제를 통해 제기하려는 방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의 문제, 금융자산이 팽창되는 문제를 봐야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한국에서는 땅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오래된 관념 때문에 부자들을 공격한다든가 가난한 사람들 위로해주는 차원에서 부동산 문제가 효과적인 기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그렇게 활용되는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가, 그리고 운동진영이 주장을 해야 되는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많이 듭니다. 주도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제시할 때는 말씀하신 것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부동산을 말했을 때는 토지공개념이나 이렇게 부자가 많다고 활용되는 측면이 많은 것 같거든요. 배기남 : 자산이라는 개념에는 실사용이 아니고 재테크라는 개념이 포함되는데 주택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통계를 보면 3주택 이상 소유자가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이 제일 높습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우리가 진보적인 요구를 할 때 1가구 1주택을 실현하자는 기치 속에 2주택 이상 소유자에게 담보대출을 회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빚을 1억 쯤 져본 사람은 정말 급한 상황을 많이 겪었을 텐데 담보가치가 조금만 하락해도 은행은 바로 회수하려고 하거든요. 이렇게 해서 주택가격의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건물은 마모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물과 토지를 분리해서 생각해보면 핵심 문제는 토지에 대한 소유관계입니다. 실제로 소유관계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벌여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대중의 절실한 요구가 무엇인지, 체제 변혁적 요소가 있는지, 조직화하기에 유용한지 고려해봐야 하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주택문제가 교육이나 의료보다 훨씬 더 대중적 설득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노동연계복지의 강화, 사회적 일자리 사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표현되는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유의선: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은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를 수익형 지향으로 규정하는 한편 전체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진숙 : 사회적 일자리는 결국 비정규직보다 낮은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사회자 : EITC 도입, 자활이나 사회적 일자리 확대로 표현되는 노동연계복지 강화라는 양상에 대해 어떤 측면을 핵심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현재 빈곤층의 일자리, 노동에 관한 요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자활이나 사회적 일자리 관련해서 간단하게 언급이 되었는데 자활 노조도 있고 자활 후견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의 여러 고민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가 산업재편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의 일환으로 긍정성이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의선 국장님이 그 부분의 쟁점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의선 : 이전에는 자활사업이 사회적 일자리의 일부였다면 이제는 이미 자활사업 참여자가 12만이고 사회적 일자리까지 더하면 18만 명 수준인 데다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까 언급했지만 양적 확대에 대한 목표는 있는데 일자리의 질적 향상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적 일자리 혹은 사회적 기업이라고 이야기되면서 정부가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2~3년 안에 시장형으로 나아가게끔 한다는 점입니다. 최저임금으로 고정된 일자리들의 내용이 주로 간병이나 집수리, 활동보조서비스 등 사회적 서비스의 확대가 요구되면서 노동시장 내에서 필요로 하는 일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공의 일자리인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수익형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아 전체 노동시장의 임금을 하향화시키고 있는 측면이 지적되어야 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보면 정부가 지원하는 일자리는 무기한 기간제로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활이나 사회적일자리로 늘어난 일자리들은 무기한 기간제가 되는 것이죠. 복지부가 이미 조건부 수급자에 대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법으로 명시했는데 법은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노동부에서 지침을 그렇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거나 일부 지자체별로만 적용되고 고용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활노조에서는 자활사업 참여자나 사회적 일자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동조합 결성, 노동자성 인정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여기에서부터 일자리 안정성 확보를 해야 한다는 고민이 한축으로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활이나 사회적 일자리가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모두 민간 위탁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민간 위탁된 단체들 간의 협의체나 연합체가 결성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위탁받기 위한 민간부문에서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활동보조서비스가 늘어나고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민간단위에서 아웅다웅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현상적으로 드는 고민은 저임금의 확대, 이것이 시장에서 갖는 의미 측면에서, 또 운동적 기능의 측면에서 지금은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점을 발견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사회적일자리 없애고 자활사업 하지 말자고 하기는 힘들어요. 이것이 나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당장 중단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제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남습니다. 사회자 : 세계화 국면에서 노동구조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을 해왔었는데 사실은 자본 축적의 방식이 고용 파괴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가 주장하듯이 지금의 사회가 절대적 고용감소에 직면했는가, 정말 일자리가 없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실업률은 줄고 있다는 거죠. 워낙에 필요한 서비스산업을 사회적 일자리라는 형태로 탈바꿈시켜서 임금을 낮추는가 하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밑으로 또 다른 층위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을 고민할 때 노동구조의 변화에 걸맞는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이라고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 기존의 비정규직 철폐투쟁보다 더욱더 심화된 고민이 한축으로 있어야 하겠고,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일자리정책이 양극화해소 방안과 맞물려 이야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의견을 더 들어봤으면 합니다. 유의선 : 지금 시급하고 핵심적인 문제는 일자리창출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자리 나누기의 구체적 의미를 IMF 직후의 일자리 나누기와 비교해서 더 설명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말하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고 말하든 물러설 수 없는 요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이고 튼튼한 일자리의 실제 형태는 무엇이냐, 요구가 무엇인지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배기남 : 그동안 단순하고 즉자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비정규직 철폐였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봐도 노동시간을 연장해서라도 잔업특근을 더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산별노조관련 금속의 정책담당자에게 제조 금속 노동자들의 전국적 단결을 위한 공동투쟁과제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8시간의 임금기준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접근하고 연장근로만 줄이기만 해도 현대자동차 조합원이나 계열사 하청노동자,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과도 충분히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하더랍니다. 현재 한국의 노동구조가 내부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판을 짜면서 임금격차를 둬 분절화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나누기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해소라는 측면에서 일자리 창출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5일제를 못 박고 하루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데 성장하는 큰 대기업에서는 노동시간을 더 연장하는 방식으로 왜곡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진숙 : 경제위기 이후, 실업이 심각해지고 난 후 몇 십 만개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정부 선언을 빼면 일자리 나누기 명목으로 추진했던 것이 노동유연화와 주5일제였습니다. 주5일제가 실시되고 노동유연화는 말할 것도 없이 확대되었는데 사실 고용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없습니다. 사회적 일자리 문제는 사회진보연대 빈곤팀 논의에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정부의 양극화 대책 방향성이 명확히 드러났는데 사회적 일자리는 결국 비정규직보다 낮은 산업예비군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기능한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다른 쟁점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IMF 이후 사회적 일자리를 만든 것이 사실은 운동진영인데요, 자활센터 등이 그 예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사회적 일자리 참여자에게는 사용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사회적 일자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하기에 앞서 그 동안 5~6년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또 하나는 민주노동당에서 말한 것과 맞물리는데 현재의 빈곤 문제가 소득자체의 저하 문제뿐만 아니라 생계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사회공공성을 보장하는 것이 생계비 부담이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 차원에서는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료나 교육의 사회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현재적으로는 사회적 일자리를 확대하는 현재 정부정책과 만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적 일자리 대부분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사업의 명분도 그러합니다. 그 밖에도 성별분업을 고착화하는 문제도 있는 겁니다. 가정에서 하는 것을 사회 나가서 또 하는 거지요. 여러 쟁점을 함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의선 : 정부가 사회 양극화 해결의 핵심으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일자리를 말하면서 이것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방식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NGO들이 이야기하는 민간에서 바라는 안정성의 담보 및 적정한 임금이라는 주장과 맞물리고 있는 거죠. 오히려 사회적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는 전체 민중적 통제가 가능한 형태, 그 책임이 분명히 국가적 차원에 있는 형태 속에서 각 영역의 공공성이 보장되었을 때 가능할텐데, 현재 정부정책이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저임금이 업종과 무관하게 사회적 일자리의 임금 가이드라인이 되는 것이고 최저생계비가 자활사업의 임금수준을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맞물려가고 있는 구조나 관계들이 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공공성 강화의 쟁점과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조동진 : 이전의 노동조합 투쟁과 사회공공성 제기가 괴리되는 측면이 있다. 결국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화를 막는 핵심 방안이 무엇인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이진숙 : 사회공공성 확대라는 과제가 올바르게 제기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들과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의선 : 담론과 언명의 차이는 실천방식의 차이를 포함한다. 함께 할 수 있는 공동행동과 연대를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배기남 : 민주노총은 대중의 절실한 요구를 담고, 체제변혁의 고리가 될 수 있고, 조직화의 유용성이 있는 측면에서 사회공공성에 접근해야 한다 사회자 : 사회공공성 강화나 공공부문의 확대 등이 이야기될 수 있겠는데, 사회공공성위원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방향성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고 쟁점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배기남 :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의료보험 보장을 80%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어적으로는 영리법인화 반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어디부터 실시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저소득층 무상의료, 취학 전 어린이 예방접종 무료화, 산전산후 진찰 무료, 65세 이상 노인 틀니 급여화 등이 기본적인 주장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1995년도 민주노총 창립 시, 핵심슬로건이 산별건설, 사회개혁투쟁, 정치세력화였습니다. 당시에도 기업별 노조의 체계를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기업별 임금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균열이 나타났으며 노동자계층의 위계화가 드러나기 시작했지요. 1997년 대선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제기되었는데 당시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었습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자운동을 하자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사회개혁투쟁의 요구는 각 연맹의 직업적 연관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2006년 메이데이 때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하자고 했는데 내부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확산되지 못하고 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경우 보건의료노조와 전교조만의 오래된 주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지금은 열린우리당의 개혁드라이브 때문에 핵심적으로 제기되었던 각 연맹의 주장이 집권당의 정책에 수렴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포괄한 전체적 진보진영의 요구를 그들이 수렴해가면서 성과가 모호해졌고 초점을 새롭게 설정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거죠. 새로운 단계의 초점은 좀 더 포괄적이고 계급적 성격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사회자 : 현재 사회공공성 쟁취라는 슬로건이 핵심 화두가 되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동진 :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포함한 사회공공성의 폭넓은 맥락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기간산업의 사유화 저지 투쟁을 해왔었는데, 이는 사실 단지 반대적 의미에서 시장화되어 있는 부분들을 다시 공공영역으로 가져오고 공공성을 높여내자는 것이었지요. 민주노동당에서도 무상의료를 이야기할 때 의료전달체계 내에서 공공기관을 대폭 늘리자는 방향을 함께 얘기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무상의료만 이야기되어왔습니다. 우리가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의료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면, 정부에서는 암과 같은 보다 대중적인 쟁점을 제기하면서 시스템 전체를 포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을 건드리는 식입니다. 핵심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할 때도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시장으로부터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윤의 논리를 감축시키고 전반적으로 생계비를 낮추는 효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자운동이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사회공공성 투쟁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면 심각한 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해왔던 노동자운동의 임금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 했을 때, 생활임금의 논리로 사회공공성이 강화되면 생계비 절감효과가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임금 상승의 효과를 갖는다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별노조 차원에서 벌여온 임금투쟁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것으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평가가 필요합니다.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 문제에 대해서 노동자운동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던 것까지 포괄되어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급작스럽게 문제를 뛰어넘은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이야기가 이 두 쟁점이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하는 논의로까지도 가는데요.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제기는 무엇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화를 막기 위한 핵심은 무엇인지가 고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상교육을 이야기해도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죠. 각각의 영역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해야 합니다. 소유와 운영의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요새 무상이라는 말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본질적인 측면이 간과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자 : 앞서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 등이나 공공성 강화에 있어 한계가 지적되기도 합니다. 공공성 강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병행되어야 할 과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의선 : 빈곤의 문제가 경제적 결핍으로 등치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권리의 측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빈곤계층, 민중들에게 사회적 권리로서 주거, 교육, 교통 등이 제기되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도 최저임금의 문제, 노동유연화 등을 가지고 자기과제를 중심으로 사회공공성 강화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숙 : 사회 공공성 쟁취 투쟁 과정에서 공공성이 제기되어왔던 맥락이 있는 것입니다.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 논쟁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노동자대중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편적인 과제들을 수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사회공공성 강화로 수렴되는 데 비판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존의 노동자운동이 해왔던 긍정적 효과들이 탈각되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노동자운동의 이념적 노선과 결합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금인상과 같은 경제적인 투쟁들은 호황기라는 조건에서 어느 정도 가능한 투쟁들이었는데 그것이 어려운 조건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현실적인 측면에서만 보아도 노동자운동이 쇠락했다는 것은 경제적이고 방어적 투쟁을 할 수 있는 역량마저 취약한 상황을 말할 텐데,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표현되는 사회공공성에 대한 일반적 요구들은 이전의 투쟁에 비해 더 많은 역량이 필요한 투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노총의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사회공공성을 요구하는 투쟁은 그 투쟁의 본래적 의미를 매우 편의적으로 제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의 기본적이고 긍정적인 역할들을 후퇴시키는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공공성 확대라는 과제가 올바르게 제기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들과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서 구체적인 고민이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현재 운동사회 내에 권리의 담론으로서 사회공공성이나 사회권 등의 유사하면서 다소 차이가 있는 다양한 논의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담론들의 기본 취지, 즉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보다 보편적인 형태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은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으로서의 권리일 테고, 이것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어야 다음 논의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 같이 보편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기하는 것은 정부에서 주도하는 사회적 배제나 양극화 담론에 맞서는 것이기도 한데, 정부는 복지수급의 자격을 규정하는 형태로 시민권과 배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담론을 넘어서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제기해야 하고 그것이 어떻게 구성 가능한 지를 더욱 활발히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조동진 : 사회공공성 투쟁이 기본권 쟁취 투쟁과 함께 가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의료나 교육의 무상화에 집중되기보다는 어떤 것이 우리가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인가를 밝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역별로 제기되어왔는데 보편적으로 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교통공공성을 이야기 할 때 그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까지 포함하면서 같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공공성은 소유와 운영의 공적 통제를 일컫는 것이므로 그 내용이 풍부화 되기 위해서는 일단 각 부문에서 나오고 있는 요구들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노동조합에서는 사회공공성이 사회적 임금이라는 효과를 낳고 결과적으로 생계비 규모를 낮출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노동을 바꾸는 투쟁에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확장되기 보다는, 중간 내용 없이 갑자기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기 전에 그 과정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지가 불분명합니다. 노동조합이 그동안 해왔던 노동을 바꾸는 투쟁과 지금 하고자 하는 사회공공성 투쟁과의 결합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유의선 : 이미 다양한 운동과 조직에서 사회공공성에 대한 서로 다른 담론과 언명을 하고 있습니다. 담론이나 언명 자체를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차이는 실천양태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빈곤사회연대 내에서는 사회적 일자리나 최저임금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노동부문의 쟁점’라는 인식이 강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빈곤운동진영은 소위 ‘노동부문의 쟁점’과 중첩되지 않는 사안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최저생계비, 주거권, 금융피해자 파산문제 등을 고유한 자신의 과제로 삼게 되는 것이죠. 이는 사회운동 내에서 비주류화되었던 부문들이 주류 노동자운동에 대해 괴리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위 부문운동에서 노동자운동에 과도하게 거리를 두거나 사회운동이 노동자운동이 선차적 과제라고 사고하게 되는 양 측면이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기남 : 민주노총 초기에 주장했던 사회개혁이라는 표현이 자본주의 틀 내에서 일정한 개혁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적 입장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사회주의를 그냥 주장하자니 좀 어색하고 그 결과 시장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성이라는 의제가 나온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노동자는 생활인이고, 노동자 개개인은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고자 노동조합을 이루고 있죠.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저임금 투쟁은 활동가 수준의 투쟁이 되고 맙니다. 노조운동의 대중적 차원에서 연대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노총이 대중의 절실한 요구이자, 체제변혁의 고리가 될 수 있고, 조직화하기에 유용하다는 측면에서 사회공공성에 접근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들여야 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무상이라는 말이 의료에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데 교육은 꼭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죠. 학벌의 문제, 사교육 시장의 문제 등 구조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않고 교육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절실한 문제를 찾는 것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주거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임금의 30~40%를 주택을 구입하는 데 씁니다. 주택 및 부동산에 대한 전면적인 제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올해는 기업별노조의 체제를 극복하는 것과 관련, 해석과 의미부여가 다양하지만 이미 공론화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쟁이라도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살아나갈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6년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대응하는 연대투쟁의 활성화 방안과 의제는 무엇인가? 유의선 : 기존의 기초생활보장법, 최저임금제도 등의 쟁점을 더욱 확장해서 새로운 빈곤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배기남 : 주택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자본축적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변혁적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숙 : 양극화 혹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전 국민적 위기로 규정하면서 정책을 제기하는 정부 논리와 명확히 단절해야 하고 비판해야 한다 조동진 : 신개발주의와 지역균형발전론에 대한 정책적 비판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투쟁과 어떻게 연대하여 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사회자 : 다방면에 걸쳐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과제나 요구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정부의 양극화 해소방안, 노동연계복지, 사회적 일자리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정책의 문제점도 지적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2006년의 핵심 요구와 투쟁과제를 논의해보았으면 합니다. 유의선 : 노동연계복지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 창출이 아닌 노동빈곤의 문제를 전면화해야 합니다. 올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최저임금제도 등의 쟁점을 더욱 확장해서 새로운 빈곤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로 제기되는 것은 주거권입니다. 빈곤사회연대에서는 극빈층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해왔었는데, 올해는 쪽방 철거에 대한 대응, 다가구 매입임대주택 문제 등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제기까지 주거권 운동을 더욱 사회적이고 대중적으로 벌여보고자 합니다. 또한 금융피해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자 합니다. 신용불량의 문제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화시켜내야 할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고 올해는 구체적인 활동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연대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 다른 부문에 있어서도 함께 투쟁 가능한 내용을 만들기 위해 워크샵을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노동정책에 있어서 함께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공공성 역시 마찬가지죠.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과제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전유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우리만의 또다른 과제를 모색하게 되고 연대의 계기가 형성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폭넓은 연대가 필요합니다. 또한 시민권의 문제에 있어서 고민이 됩니다. ‘시민=세금을 내는 자’라는 인식 속에서 시민권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 시민권에 대한 개념과 이를 통한 논의의 확장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배기남 : 민주노총은 여러 부문계층의 다양한 요구를 운동으로 기획할 때, 대중적 가능성과 축적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조직화의 가능성이 있는 방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지난 수년간 반복되어온 수세적 국면을 지나오면서 현재 남아있는 활동가들이 조직을 추스르기조차 벅찬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안 찾기 자체를 힘겨워하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인 정책계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주택문제를 중요하게 사고하고 있습니다. 주택문제는 단순히 집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자본축적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변혁적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가구 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한 주택담보 대출을 회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금융권의 대출 관행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혀 혜택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왔는데 이것의 변화를 추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동진 : 당장은 지방선거를 고리로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일단 무상의료부터 적극적인 운동을 시작하였고, 지역별로 보육관련 운동도 진행 중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회공공성을 주요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역시 고민되는 지점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민주노동당만의 정책의제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당사자들과의 연대운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한계로 인해 더욱 큰 운동을 만들고 있지 못합니다. 앞에서 시민권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저 역시 시민권 혹은 기본권 차원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이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사회공공성 투쟁은 지방선거를 통해 더욱 잘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정부 논리에 말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지역 차원에서는 신개발주의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고 선거 때는 특히 개발공약이 판을 치는데, 이에 맞서 도시계획을 어떻게 민중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주거권의 문제도 시장선거 등을 통해 주되게 제기할 계획입니다. ‘1가구 1주택’이라는 정책은 주택의 소유불평등 문제를 주로 제기되는 것인데,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소유자와 세입자의 점유권의 문제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자체 수준에서 ‘1가구 1주택’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담론 수준에서 이야기되는 것과 별개로 강제철거 금지를 뛰어넘어 점유권을 권리로 확보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개발권의 공유화 등으로 담론화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정책적인 것을 뛰어넘어 선거 전후로 구체적으로 당사자들의 투쟁과 어떻게 연대하여 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잘못하면 4년마다 선거주기에 맞춘 정책이슈로만 한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빈곤문제까지 포함하여 같이 투쟁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역시 고민 중입니다. 사회공공성 확보가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생계비의 규모를 낮추는 성과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임금문제에서 해결되어야 할 고유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문제는 함께 또 별개의 과제로 논의되고 제기되어야 할 듯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관련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육을 말하다 보면 성인 중심으로 되어 애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관념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출산장려정책과 비슷해지는 문제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역시 보육문제의 어떻게 제기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정부의 정책과 다른 차별성을 갖고자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하는데 보육의 공공인프라를 확보해도 여성의 가정에서의 혹은 직장에서의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저출산 문제가 워낙 사회적 쟁점이 되다보니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에 관한 논의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진숙 : 그동안 사회 양극화 담론은 말만 무성하다가 최근 들어 저출산․ 고령화 대책기구 발족 등 정책실현과정에 들어선 상황입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부각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운동진영에서도 대응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운동사회 내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수련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운동진영이 너무 무력하게 손 놓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회원들의 제기가 많았습니다. 타당한 제기라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내용과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현 정부는 양극화 혹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전 국민적 위기로 규정하면서 협박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과는 명확히 단절해야 하고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적인 방안을 구성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NGO를 비롯한 상당수의 운동단체들이 저출산- 고령화 대책기구에 참여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가 생깁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을 제도적으로 흡수해 나가면서 위기를 관리하는 노무현 정부의 경향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사회운동의 자율성과 방향성이 상당히 훼손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한 운동사회 내 인식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얼마 후 있을 지방선거가 이러한 문제들을 운동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위험한 시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단위에서는 각 지역에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며, 양극화나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독자적 입장을 제출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모두들 알다시피 출산율이라는 것은 자본의 필요노동력의 수준이나 형태에 따라 언제나 ‘상대적’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라는 것은 결국 성장잠재력을 말하면서 장기적으로 산업예비군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것입니다. 노동시장 관리전략, 즉 저임금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는 것이죠. 또한 저출산 문제가 왜곡된 형태로 사회화되면서 여성들이 취약한 위치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갈수록 출산을 강요당하고 저임금 노동시장에 노출되게 될 것입니다. 여성에게 여러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면서 가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공세도 이미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위기, 합의를 명목으로 이와 같은 저출산 대책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오히려 시민으로서 여성의 권리는 무엇인가를 논의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대응에 있어 대안적인 정책을 계발해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구도에서 정책 중심의 대응은 때로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맹점이 있기도 하고 정부정책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나 싶습니다. 각종의 위기 담론을 등에 업고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빈곤이나 비정규직 문제, 직장과 가사라는 여성들의 이중부담 해소 등에 있어 당장은 요긴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대중의 생존이나 사회운동의 진로를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위험으로 이끌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정리자 주]모기지론(Mortgage Loan)은 부동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역(逆) 모기지론(reverse mortgage loan)은, 고령층 인구가 많은 미국·캐나다 같은 국가에서 도입된 바 있는 노인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빌려 쓰는 제도다. 2월 16일 재경부가 발표한 ‘역모기지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6억 원(공시가격 기준) 이하 주택을 한 채 가진 노인 부부가 역모기지 대출을 평생 동안 매월 연금 식으로 받으려면 부부 모두 만 65세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대출자격이 까다롭고 지방과 주택 값이 낮은 지역의 노인들이 세금감면혜택에서 제외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노후보장을 개인이 소유한 집을 담보로 받도록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방안이 중산층의 보호라는 측면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과, 이러한 담보대출 등 금융자본의 유동성을 확장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서 계획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