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G8(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초점에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후변화였다. 이에 따라 회담에 참석한 8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글렌이글스 공동성명도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아프리카'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다.1) 이번 회담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별 진전이 없었고,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탕감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외채탕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과라 할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서 외채탕감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박스1%]
영국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7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G8(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초점에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후변화였다. 이에 따라 회담에 참석한 8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글렌이글스 공동성명도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아프리카'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다.1) 이번 회담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별 진전이 없었고,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들의 외채탕감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과가 있었다는 외채탕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과라 할만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서 외채탕감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외채탕감운동 외채탕감 요구는 1996년 G7 정상회담 이후 사회운동단체들의 시위의 단골메뉴였다. 이번에도 '빈곤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자'(Make Poverty History, MPH)) 조직위 주최 에딘버러 시위에 20만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일부에서는 2002년 제노아 시위보다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외채를 탕감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리라고 정상회담에 압력을 넣기 위해 G8 국가들의 주요 8개 도시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이어가면서 진행한 마라톤 공연 '라이브 에잇'(Live 8)2)에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런던 20만, 미국 필라델피아 100만 등 9개 도시 150만) 혹은 간접적으로(전세계 20-30억명 텔레비전 시청) 참여하였다. 외채탕감운동은 국제 채권자들이 1996년 과중채무빈국(HIPC) 외채탕감 방안을 논의하기로 동의하면서 활성화되는데, 1998년 11월 17일 로마에서 38개국 '쥬빌리 2000' 단체들과 12개 국제조직이 모여 최초의 '쥬빌리 2000' 국제회의를 열었다. 쥬빌리는 성서에서 유래하는데 죄수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주는, 50년마다 돌아오는 '기쁜 해', 즉 희년(禧年)이다. 단어에서 보다시피 이 쥬빌리 2000 운동은 선진국 종교계에서 시작한 시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운동이었다. 1998년 회의에서는 상환불가능한 외채, 원금을 실질적으로 이미 상환한 외채, 부적절하게 기획된 정책과 프로젝트로 인한 외채, 부정한 외채와 독재정권에 의해 발생한 외채를 2000년까지 탕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쥬빌리 2000 운동은 1999년 쾰른 G7 정상회담을 겨냥하여 수만명을 동원하여 시위를 벌였고, 이에 호응하여(?) G7회의에서는 HIPC의 2000억불에 해당하는 외채 중에서 700억불을 탕감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운동 과정에서 외채탕감운동이 쥬빌리 2000(J2)과 쥬빌리 사우쓰(JS)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J2는 북반구 국가들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북반구에서 주도하고 있는 운동인 반면, JS는 남반구 국가의 시민사회에 외채문제를 환기시키고 남쪽 국가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둘째, J2는 외채의 규모를 축소시키려는 목적에서 단기간 진행되는 운동인 반면, JS는 외채를 고질적인 문제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JS는 G7회의에서 결정되고 IMF/세계은행에 의해 승인된 HIPC 외채탕감방안을 거부하고 모든 개도국의 외채 탕감을 옹호한다. 외채탕감의 규모는? 이번 회담에서 탕감하기로 한 외채는 18개국(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베냉 등 14개국, 중남미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국제화폐기금(IMF),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기금에 진 빚 400억불이다. 이들 국가는 1996년에 시작되고 1999년에 수정된 '과중채무빈국 방안'3)에 의해 '종결시점'에 도달한 과중채무빈국이다. 이외에도 '결정시점'에 도달한 카메룬 차드 등 9개국과 라오스 미얀마 수단 등 '결정시점'에 도달하지 않은 11개국도 '종결시점'에 이르면 외채탕감을 받게 되는데 그 규모가 각각 110억 달러와 40억 달러로 합해서 150억 달러가 된다. 이 금액과 400억 달러를 합하면 총 5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정도 규모가 얼마나 미미한 규모인지 각종 통계치와 비교를 해 보기로 하자.4) 첫째, HIPC 38개국 총 외채는 현재 1,670억불이고, 이 중 1,370억불이 공적 기관에 대한 채무다 (550억 달러 이외의 공적 외채는 다른 기관, 예를 들어 아메리카개발은행이나 쌍무적 채권기관에 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들 나라가 550억 달러를 다 탕감 받는다 해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쥬빌리 법5)이 다자기구 외채 100% 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50개국이 지고 있는 외채는 3,830억 달러이다. 이 중 2950억불이 공적 채권기관에 대한 외채이고, IMF와 세계은행에만 진 외채가 820억불이다. 셋째, 영국 원조기관들이 '새천년 발전 목표'(MDGs)를 달성하는 첫 단계로서 외채탕감이 필요하다고 꼽은 62개 저소득 국가들이 지고 있는 외채는 5000억불 이상이고 이들 중 4,460억 달러를 공적 채무기관에 지고 있고,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에게만 지고 있는 빚이 1,400억불이다. 넷째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의 총외채는 2080억불이다. 다섯째, 모든 개도국의 총외채는 2조 4천억달러이다.6) 여섯째, G8 국가들이 매년 군사예산으로 사용하는 규모에 비춰보자. 예를 들어 2004년 미국의 군사예산은 4,000억 달러이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6개국의 군사예산은 1,914억 달러였다. 그런데 외채 탕감은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고 따라서 매년 탕감되는 액수는 불과 10-20억불뿐이다. 그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확연히 드러난다. 참고로 G8 국가들은 남반구 국가들의 쌍무적 다자적 외채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미화 230억달러를 거둬들인다. 결정적으로는 벨기에의 '제3세계 외채탕감위원회'의 다미엔 밀레와 에릭 뚜상에 의하면 이번에 탕감하기로 한 18개국의 400억달러 외채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시장에서는 대폭 할인되어 평가되는데 미국의 방식(92% 할인율 적용)에 의하면 32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점들 이번 G8 외채탕감방안은 그 규모가 매우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외채탕감 조건이다.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HIPC 방안은 외채탕감을 받기 위해서 '결정시점'과 '종결시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각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승인하는 '빈곤경감 전략문서'(PRSP)를 마련해야하고, IMF의 '빈곤경감 및 성장촉진책(PRGF)과 같은 대출협약을 포함해서 여타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협약에 있는 조건들에 순응해야 한다. 이런 PRSP와 PRGF에 담겨있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민영화할 것,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할 것,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 규모를 줄이고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자연자원 수출을 포함하여)을 늘릴 것, 무역과 투자를 차별 없이 자유화할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에 탕감조치를 받았고 앞으로 받을 예정이 38개국은 외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반부 국가들 160개국 중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매우 긴급한 나라들 외채를 탕감한다 하더라도 쓰나미 피해국이나 아이티 같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외채가 탕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중요한 채권기관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개발은행과 아시아 개발은행이 그것들이다. 외채를 탕감 받게 되는 4개 중남미 국가들(볼리비아 가이아나 온두라스 니카라과)은 아메리카 개발은행에 이후 5개년에 걸쳐 약 14억불의 외채원리금 상환을 해야 할 것이다. 라오스는 HIPC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데, 부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심각하게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아시아 개발은행에 외채를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쥬빌리 사우쓰 등 거의 모든 외채탕감운동단체들이 요구해 온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는 무시되었다. 예를 들면 남미 독재국가, 남아공의 인종차별국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의 외채 등이 그것들이다. 글을 맺으며 앞에서 보았다시피 이번 G8 회담에서의 외채탕감은 그 규모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이미 기진맥진하여 외채를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탕감한 것이다. 또한 지난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실패할 때 베넹,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4개국이 문제삼은 면화보조금도 한 원인이 되었는데 이번 외채탕감이 12월 홍콩 WTO 협상을 앞두고 아프리카 빈국들을 입막음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번 외채탕감은 중심부 국가의 이익과 초민족적 자본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편 '라이브 8' 공연 주최측과 거대 비정부기구들이 청원식 운동을 펼치면서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G8 지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않은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지라도, 이에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간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세력 또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안세계화 운동단체 AIDC의 말을 들어보자. "G8 정상회담의 결과는 세계화의 이면인 전쟁과 군사주의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세계화에 인간적인 면모로 채색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포섭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략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G8과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우리 정부들에 대항해 싸우는 동시에 G8과 그들이 지도하는 WTO, 아이엠에프, 세계은행 등의 정당성을 허무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MPH의 지배적인 추진주체는 반세계화 운동, 세계사회포럼, 세계 곳곳의 대중적인 사회운동들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준 이런 전략에 등을 돌렸다. 유명인사들, 업계거물 및 조언자들은 실천, 조직화 및 저항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7)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도국 발전, 성장, 빈곤퇴치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는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이 애초에 외채를 구조적인 문제로 본 바에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통해 남반구 민중에 대한 지배와 공격을 강화하는 세계의 지배세력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의 운동에 이끌리지 말고8) 일국적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통한 변혁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G8 회담 및 이에 대한 대응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1) 원문은 http://www.fco.gov.uk/files/kfile/postg8_gleneagles_communique.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약 20년 전에도 '라이브 에이드'(Live Aid)를 기획했던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 밥 겔도프가 기획한 이 공연에는 엘튼 존, 폴 매카트니, 마돈나, U2 등 유명한 대중가수들과 넬슨 만델라 등이 출연했다. 영어로 '8'은 '에잇'인데 '원조'를 뜻하는 'aid(에이드)'와 발음이 유사하다. '라이브 8'은 '라이브 에이드'(원조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4) http://www.jubilieeusa.org/press_room/firststep.pdf와 http://www.jubileesouth.org/upload1/jsstatementforg8.pdf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2005년 3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2005년 정의, 외채탕감 이해, 그리고 형평에 관한 법률'(Justice and Understanding By International Loan Elimination and Equity Act of 2005')이다. 6월 현재 75명의 양당 의원이 발기인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6) 80년대 후반 남미 외채위기 이후 외채조정방안으로 등장한 베이커플랜은 외채를 주식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외채문제 폭발을 지연시켰는데 이로 인해 반주변-주변부의 외채는 주식형태로 많이 바뀐 상태이다(외채-주식 전환). 즉 외채규모는 현재 초민족적 자본의 지배로 인해 반주변-주변부가 처한 문제의 실상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한국 등 반주변부에서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이탈(capital flight)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도래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본문으로 7) http://www.aidc.org.za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이를 위해서는 청원방식의 외채탕감운동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IPC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와 비극의 주된 요인을 구조적 요인, 즉 식민지이전 및 식민지 유산, 미국 주도 세계자본주의의 수익성 및 정당성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실질금리 인상을 통한 개도국과의 국제 화폐자본 유치 경쟁, 제조업 제품 수입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적자 누적, 동아시아 원조 및 역개방정책)으로 보는 세계체계론자 아리기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가 7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영향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세계은행이 지시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을 하기 보다는 디폴트(지불정지)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디폴트는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낳았을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파괴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지오반니 아리기, 〈아프리카의 위기 :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박스1%]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농민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1) 리처드 르원틴2) (번역: 류미경 (정책편집부장)) 우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산업 생산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개별 장인 생산자를 포섭했는지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다른 형태의 생산·교환 조직에 침투하여 결국 이를 변형시켰다는 점을 알고 있다. 종종 이러한 변화의 힘은 매우 강력하여, 적어도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찍 시작되어 19세기 말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의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복원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의료나 연예 등의 전문 분야와 같이 현재까지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개별 장인들을 보면, 이행이 최근까지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예외적인 것으로, 초기 자본주의적 관계의 화석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특별한 재능과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주변적인 분야, 즉 핵심적인 필수품 생산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예외가 된다는 관점은 완전히 틀렸다. 왜냐하면 기초적인 생필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영역, 즉 농업분야에서 이행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과정은 18-19세기의 직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산업 생산에서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다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표면상으로는 농업이 자본에 저항해온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개별 농기업의 수는 1930년대 670만 개에서 72%나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농업생산자의 수는 18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고작 6%의 농가가 농산물의 전체 가치의 60%를 책임지고 있지만, 모든 산출된 가치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10만여 개별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생산의 40%를 책임지고 있으며, 섬유와 같은 차별화된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15%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농장주가 임대하는 농지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소규모 생산자는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소작인이기도 한데, 이들이 경작하고 있는 농지는 [전체 농지의] 55% 정도를 차지한다. 결국 기업농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인식이지만, 20세기 초반부터 부재지주인 경영자에 의해 경작되는 농지의 비중은 1%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에 대한 증거를 고전적인 산업모델에서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철저한 감시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하는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매우 소수의 농장주에 의해 생산력이 점차 집중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물론 농사에서 공장과 유사한 노동과정의 예를 발견할 수 있기는 하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과일과 야채를 수확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공장과 같은 형태의 농사'라는 자본주의적 이행의 증거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농기업은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지 않고, 주로 한두 명의 노동자를 일 년 중 특별한 시기에만 고용한다.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 과정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농작(farming)와 농업-식량 체계(agri-food system)을 구분해야 한다. 농작은 흙, 노동, 기계를 사용하여 종자, 물, 비료, 농약과 같은 투입물(inputs)을 밀, 감자와 같은 1차 생산물로 만들어내고, 농장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물리적인 과정이다. 농작에서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이행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농업생산의 재정적·물리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첫째, 농지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고 농지 부동산 시장이 빈약하고 따라서 농지에 대한 투자가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농지 소유는 자본이 보기에 매력적이지 않다. 두 번째로 대형 농장의 노동 과정은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제가 어렵다. 셋째, 이미 중간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기 힘들다. 넷째, 날씨, 새로운 질병, 해충 등 외적인 자연적 현상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통제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자본 재생산의 순환이 1년을 단위로 하는 식물의 성장주기, 동물의 고정된 재생산주기와 연계되어 있어서 이를 단축시킬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의 중요한 예외를 가축 사육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재생산주기를 단축시키는데 상당한 성공을 이루어낸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보게 될 자본주의적 농작의 발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잘 통제되는 대규모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대형 기업이 농장을 통째로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농업-식량 시스템은 단순히 농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농장 경영을 비롯하여 투입물의 생산, 운송, 판매와 농산물의 운송, 가공, 판매 모두가 포함된다. 농작이 전체 농업생산 고리에서 물리적으로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오히려 투입물의 공급과 생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농업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농작 자체는 현재 농업-식량 시스템 부가가치의 10%를 차지할 뿐이다. 25%는 투입물 거래에서, 나머지 65%는 농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바꾸는 운송, 가공, 판매에서 얻어진다. 20세기 초반, 농장에서의 부가가치는 전체의 40% 정도였고, 대부분의 투입물은 종자, 역축(役畜, draught animal), 사료, 거름, 가족의 노동력 등의 형태로 대부분 농장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입물의 대부분은 화학 종자, 트랙터, 정제/합성 화학 비료, 기계, 노동력 대체품 등의 형태로 구입된다. 그러므로 산업자본은 투입물의 생산과 생산물의 가공을 통해서 농업분야에서 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타의 산업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농기계, 농화학 제품, 종자를 생산하고, 밀가루를 슈퍼마켓 계산대에 놓인 아침식사용 시리얼 한 상자로 바꾸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본에 의해, 그리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통제된다. 그러나 자본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석유를 감자칩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지만, 농작이 200만 소(小)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은 토지와 같이 소유권을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무리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잉여농산물은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고 소비한다. 농업은 여타의 자본주의 생산과는 달리, 생산의 필수적인 과정이 수많은 독립적인 소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봉제를 하는 과정은 소수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염색과 가공하지 않은 천을 다듬는 일은 불가피하게 수십 만의 외부 가내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내생산자들은 재료를 집으로 가져가 가공한 후 다시 공장에 판매한다. 농장 생산자들은 역사적으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과정에서 두 가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농장주는 농작에 관한 물리적 과정에 대해 선택권을 갖는다. 여기에는 어떤 작물·가축을 재배하고 사육할 것인지, 그 양은 얼마로 할지, 어떤 투입물을 사용할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선택은 물론 항상 해당 지역의 기후와 토양의 조건과 농산물 시장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두 번째, 농장주는 전통적으로 투입물 판매자들과 경쟁 관계에 놓였다. 왜냐하면 농장주들이 종자, 농기계, 비료 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자본은 농장주들이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문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최대의 이익을 낳을 수 있도록 투입물을 일괄 구입하도록 하고, 농산물 가격이 구매자들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맞춰야 한다. 구매자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에 어떤 위험요소가 남아있든지 간에, 선택권은 여전히 농장주들에게 있다. 농장주들이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생산과정의 본질과 속도에 대한 결정권과 농산물 시장 판매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들은 생산자와 고립되어 규정되는 고리 속에서 작동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농장주들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화 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토지와 건물의 법적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산수단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이러한 생산수단을 경제적으로 다르게 이용할 방도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화의 핵심은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그 노동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농업에서 이러한 이행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수확 기계의 발명과 2차 세계대전 종전의 시기인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유용성, 비용, 기계화를 통한 노동력의 통제와 같은 문제들이 농업혁신과 관련된 것처럼 언급되었다. 농장주들은 트랙터의 도입을 막을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비료, 살충제, 노동절감형 제초제 등의 정제-합성 화학 약품들이 주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품 형태의 투입물도 효용이 크고 노동 절감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되지 못했다. 특히 제초제로 인해 경작용 기계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었다. 살충제는 성공적인 수확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였고, 분사형 호르몬제를 통해 과일이 익는 시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생제로 동물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품과 농장에서 자체 생산된 투입물 간의 경쟁은 전혀 없었다. 자본주의적 투입물의 역할이 점차 늘어간다는 사실은 생산과정의 중심적인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입물은 현실에서 생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계화 및 화학제품의 사용은 생산되는 생물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생산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농업에서 생물은 모든 투입물 사이의 연계 속에 위치하며 모든 생산물 변형의 기초적인 자원이다. 그러나 생물은 죽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생산물은 재생산되어야 한다. 즉, 농산물의 모든 사이클은 농작의 과정을 통해 가치가 부가되는 종자 혹은 씨가축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종자(혹은 씨가축)는 농작에 투입되는 중심적인 투입물이다. 이러한 종자 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통제하는 것은 전체 농산물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다른 투입물에 대한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종자 생산자가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질소비료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짐으로써 농민들이 이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질소 비료는 매우 유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잡종 옥수수와 같은 식물의 번식에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농산물 생산에 대량의 질소 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토마토 수확의 성공적인 기계화는 식물 육종가(育種家)와 기계 설계자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육종가들은 가지가 축 늘어지고 꽃과 열매가 자라는 기간 내내 흠이 나기 쉬운 토마토의 특성을 완전히 바꾸어 짧고, 단단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겨 모든 과실이 거의 동시에 익는 토마토로 만들었다. 생산 과정에서 종자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므로, 종자회사는 잠재적으로 농업에서의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매우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 농장주가 좋은 변종의 씨앗을 심었을 때, 여기서 자라는 식물은 그 변종의 씨앗을 낳게 된다. 종자회사는 농장주에게 공짜의 상품, 씨앗 안에 들어있는 유전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되고, 농장주는 경작을 통해 변종 종자를 반복해서 재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농장주가 다음 해 수확을 위한 종자를 재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해답은 동계번식체(同系繁殖體: 근친교배에 의하여 생긴 개체-역자)-교·잡종(交雜種) 교배법이다. 동계번식체-교·잡종으로 번갈아 교배함으로써 교·잡종 식물을 자라게 하되 재생산되지 않는 종자를 판매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세대의 식물은 진정한 교·잡종이 아니어서 수확량이 줄고 변이하기 쉬우므로, 농장주는 매년 새로운 종자를 종자회사로부터 구입할 수밖에 없다. 변종 옥수수 종자를 판매한 종자회사가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됨에 따라, 이러한 방법은 토마토나 닭과 같은 다른 생물로 확산되었다. 게다가 델칼브, 펑크, 노스럽-킹과 같은 주요한 상업성 종자 및 닭 재배사들은 비록 곧바로 매각, 재조정되긴 했지만, 시바-게이지, 몬산토, 다우와 같은 제약회사 또는 화학제품 회사에 통합되었다. 가장 큰 교·잡종 종자 회사인 파이오니어 하이브리드만은 1997년까지 완고하게 독립적으로 남아있었고, 주식의 20%와 이사회의 두 석은 듀퐁사에 양도되었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종자회사가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 방식으로 종자를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첫째, 이 방식은 콩, 밀 혹은 대형 동물과 같은 많은 주요 작물에는 경제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 둘째,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총수확량을 증가시키는데 성공했을지라도, 많은 중요한 일정한 특징, 예를 들어 특정한 질병 혹은 제초제에 대한 저항력, 혹은 평지의 기름 함유율의 증가 등으로 인해 교·잡종이 더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교배법을 도입해야 했다. 셋째, 어떠한 특징이 작물재배학적으로 중요한 종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작중인 종과 교배할 수 없는 다른 생물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옥수수를 콩의 뿌리를 질소-고정 박테리아에 적합하도록 만듦으로써 가능하게 했듯이, 대기로부터 질소를 고정시키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질소 비료 시장을 축소시켰지만, 질소의 공급을 종자 회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했다. 종자회사와, 이들의 파트너 혹은 소유주가 되는 화학제품회사에 이익이 되는 작물재배학상 종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것이 1970년대에 명백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연료비용의 극적인 변화와 이주 노동력의 공급을 통해 농업에서의 지지부진한 노동 조직 과정이 종식됨으로써, 농업생산에 있어 획기적인 형태의 기계화는 종결되었다. 비료와 농약의 오염효과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고, 농장 노동자들을 유독성 있는 살충제와 제초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의 규제가 발전함에 따라, 화학제품의 사용에 따른 급격한 변화는 제어되었고, 전통적인 투입물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다. 게다가, 이러한 비료와 농약은 매우 높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었고,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예를 들면 1975년 이후에는 비료사용량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1980년쯤 도입되기 시작한 합성비료 역시 사용량이 증가하지 않았다. 투입물 판매자와 생산물 구입자가 농업에서의 소득 중 자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1) 작물재배학상 종의 생물학적 특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거나, 2) 생물학적 체계를 자신이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 늘릴 수 있다. 또한, 투입물과 경작 이후의 생산 분야(구매, 가공, 유통)의 통합력이 높아져 통제력을 집중할 수 있을 때 이 소득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이제] 생명공학(biotechnology)으로 넘어가자. 생명공학과 소유(property)의 통제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용의 목표는 농산물에 대한 자본 통제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명공학 혁신은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개발 시간과 비용은 연구에 대한 자본투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비(非)콩류 식물에도 질소 고정을 도입하는 것은 아그리세투스(Agricetus), 아그리제네티카(Agrigenetica), 바이오테크니카(Biotechnica)를 비롯한 여러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이 10여 년 동안 7천5백만 달러를 들여 연구를 진행한 후,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고 만약 성공한다면 거대한 이익을 남길 것이 확실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보건 및 환경 관련 단체들이 개발에 도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모든 생명공학상의 혁신은 환경, 보건에 대한 위험으로 인해 도전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는 생명공학 프로젝트를 중단하도록 만들었다. 생명공학이 도입되는 원동력은 비료와 농약의 사용에 대한 저항이 투입물 생산자들이 얻는 농업 소득의 비중을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생명기술에 의한 생산물의 소유권과 통제는 농장주가 아니라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상의 혁신으로 얻어진 새로운 변종에 대해 소유권을 유지하려는 기업의 요구는 모순을 낳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농장주는 새로운 변종 종자를 구입할 때 종자에 들어있는 좋은 유전학적 정보를 공짜로 얻게 되고, 육종가는 그 소유권을 잃게 된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을 통한 재산권 보호는 몇몇 생물과 몇몇 작물재배학적 특성에 국한된다. 그리고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 생명공학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육종가들은 중요한 유전정보를 빼앗기고 난 후 어떻게 이익을 얻게 되는가? 법적·생물학적 무기의 결합이 답이 된다. 식물변종보호법을 통해 육종가들은 법적인 권리를 얻게 되었고, 표준 DNA 지문의 사용으로 농산물 자원을 모호하지 않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농장주가 생명기술자로부터 종자를 구입하기를 원한다면 수확으로 얻어진 종자의 다음세대에 대한 재산권을 모두 종자 생산자에게 양도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농장주는 수확을 통해 얻어진 종자를 다른 농장주에게 판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농장에서 이 종자를 심어 다음 해에 수확할 수도 없게 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 종자 혹은 저지방 감자칩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감자 종자를 구입한 농장주들은 이러한 변종을 계속 생산하고 싶다면, 다음 영농철에 몬산토를 찾아가 재계약을 해야 한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이라는, 콩마저도 죽이는 효능 좋은 제초제를 생산한다. '라운드업 레디'라는 콩은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되는데, 라운드업을 아무리 많이 뿌려도 죽지 않고, 밭에 영향을 주지도 않고 잘 자란다.) 이와 같은 계약은 몬산토의 곡물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식물 한 그루, 혹은 종자 하나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조작된 변종의 DNA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특징적인 배열을 갖는데, 이는 다른 변종에 비교할 때 독특하다. 종자생산 기업의 생명공학 실험실에서는 이렇게 분류된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것을 가리켜 "게놈 통제"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상당한 양의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몬산토는 다음과 같은 협박성·회유성 광고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 잡지에 전면으로 실었다. 농장주가 몬산토의 생명공학 종자를 모아두거나 다시 심게 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종자를 얻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다시 말해, 이웃에서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더라도) 그는 곧 해적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자 해적질은 농장주에게 현금 결산 및 법적 비용 등으로 에이커당 수백 달러 정도의 비용을 치르게 한다. 또한 몇 년 동안 경작과 사업 내역에 관한 시찰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야기는 한 장이 더 남아있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은 고작 몇몇 생물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계약 시스템은 이를 유효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협박, 감시, 소송 등을 필요로 한다. 생명공학을 도입함으로써 종자에 대한 소유권과 관련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3월 3일, 종자가 땅에 뿌려져 곡물이 한번 자라고 나면 다시는 발아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자 조작에 대해 특허가 부여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이로써 20세기 초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발명되었을 때 종자생산 자본가들에게 발생한 문제가 모든 곡물에 대해 한방에 해결된 것이다. 발명한 이가 지적하듯, 이 생명공학 기술은 어떤 곡물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전 약간의 보완이 필요하다. 누가 이 특허권의 발명자이자 소유자인가? 바로 면화와 콩 종자의 주도적인 생산자이자, 미국 농업성의 연구기관인 델타 앤 파인 랜드사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기술의 개발이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해치면서 사적인 재산권을 보호하는 뻔뻔한 사례이다. 종자개발자의 재산권을 강화하는 계약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유전공학의 한계를 예측할 수 있다. 몬산토 사는 효소에서 유전자변형 박테리아를 사용하여, 젖소가 우유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질대사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BST)을 상업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보통의 소는 스스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소의 몸 속에서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DNA가 그 양을 증가시키도록 변형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상업적인 BGH(상장호르몬)을 구입하고 투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젖소집단(dairy herd)은 항상 중소기업에 의해 자체 재생산되며, 대규모 종자회사에 상응하는 대규모의 상업적 젖소 육종가(dairy herd breeder)는 없다. 둘째, 강제조치가 이루어지기 매우 힘들다. 몬산토의 판매대리인이 어떤 농토 혹은 곡물저장소에서 감자 혹은 종자를 가져오기는 매우 쉽다. "게놈 통제"에 필요한 혈액 혹은 세포 표본을 농민이 소유한 젖소에서 채취하는 것은 상당히 주제 넘은 일이다. 게다가 젖소는 한꺼번에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 해가 지나지 않고서 어느 소가 원래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손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계약, 생명공학, 그리고 농업 통제 만약 생명공학과 지적재산권 보호 계약체계의 유일한 효과가 농업에 필요한 공산품 투입물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혁명적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농민들은 오랜 기간동안 공산품 투입물을 구입해왔다. 농업에서 발생한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농산품 구매자들이 전체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의 농업생산의 수직적 통합으로부터 일어났다. 이러한 수직적 통합은 1) 투입물과 생산품 간의 기술적 연계, 2) 한 기업이 생산품의 독점적 구매자이자 중요한 투입물의 공급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맡는 것, 3) 투입물 및 생산물과 농민을 연결시키는 계약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계약은 생명공학에 선행한다. 농산품 구매자가 시장 유통 역시 담당하게 되면 수직적 통합이 가능해진다. 계약 농업은 통조림용 야채생산 분야에서 일반적이다. 오하이오 주에 있는 토마토 통조림공장은 종자와 비료를 공급하기도 하고, 숙성한 토마토를 채집하기도 한다. 농민들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통조림 제조에 관한 계약이 처음 이루어진 이후 계속 진화해왔다. 생명공학의 주요 역할은 투입물과 생산품의 물질적 연계 속에 있다. 생산 시스템의 효과적인 통합을 보증하기 위해서, 성장하고 있는 생물은 여타의 투입물과 한묶음을 이루기에, 그리고 농업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에 적합하도록, 최종생산물이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필요한 품질을 갖추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몇 가지 목표는 전통적인 재배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지만, 특정한 질병에 대한 저항 혹은 생물 조합에 필요한 질적인 변화와 같은 몇몇 자질은 생명공학적인 조작을 통해서 가장 잘 만들어질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한 복제와 세포배양 기술은 투입되는 생물이 원하는 유전적 자질을 갖춘 채 배가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계약 농업의 본질의 한 예는 이러한 계약 시스템의 보루인 브로일러(고기용 닭) 생산에서 드러난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 닭고기를 주로 공급하는 업체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타이슨 팜(Tyson Farms)이다. 타이슨의 닭고기들은 타이슨 "농장"에서 생산되지 않고, 소농들에 의해 생산된다. 이들은 10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연평균 25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며, 총소득은 6만5천 달러, 실질소득은 1만2천 달러정도이다. 이러한 생산은 타이슨 사(혹은 유사한 다른 지역 기업)와의 4년 계약 하에서 이루어진다. 타이슨사는 병아리, 사료, 혹은 수의학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오직 이 회사만이 공급할 병아리의 유형과 숫자, 빈도를 결정할 수 있다. 이후 타이슨 사는 7주 후 직접 결정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성숙한 닭을 고른다. 닭의 무게를 잴 저울과 이들을 운반할 트럭 역시 타이슨사가 공급한다. 투입물 및 사육에 대한 세부적인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 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생산자(농민)는 타이슨 사가 공급하거나 보증하지 않는 사료, 의약품, 제초제, 살충제, 쥐약, 기타 어떤 품목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게다가, 농민은 타이슨 사의 "브로일러 사육 지침"을 준수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타이슨 사가 정하는 "브로일러 관리 및 기술 자문"의 감독에 따라 "집중 관리"를 받게 된다. 닭 사육 농민은 더 이상 원료를 구입해서 이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변형시키고 이를 시장에 판매하는 독립된 장인이 아니다. 계약 농민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는다. 심지어 원료를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다. 농민은 약간의 생산수단, 즉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과정, 혹은 소외된 생산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농민은 17~18세기의 자본주의 생산의 첫 단계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생산노동자가 된다. 농민이 얻은 것은 조립라인의 기계공만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생산자이자 시장판매자였던 농민이 아무런 선택권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그 지위가 변경된 것은 전국소농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Small Farm)가 1998년 발간한 다음의 보고서에 담긴 권고사항에 반영되어 있다. 의회는 농업공정거래법(Agricultural Fair Practice Act)을 개정하여 농업성이 행정적 구속력과 민사제재 권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육자들이 차별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명공학상의 조작과 계약 농업의 조합은 제3세계 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3세계로부터 수입해오는 생산품은 독특한 특질을 지닌 원료, 예를 들면 커피, 향신료, 식물성 알코올, 식용유 등이다. 게다가 이러한 원료들은 낮은 기술 수준과 많은 노동의 투입을 통해 생산된다.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에서 생산된다. 그 결과로, 말하자면, 필리핀에서 수입해오는 야자기름의 가격과 입수가능성은 불안정하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국내 품종을 유전자 조작함으로써 특수한 작물들을 만들어 수입품을 대체하게 된다. 칼젠사는 비누, 샴푸, 화장품, 식품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수입 야자기름을 대체할 고-라우릭 산-캐놀라(high lauric acid canola) 품종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수 캐놀라 품종은 농촌인구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는 필리핀의 생산품을 대체하며 [미국] 중서부에서 계약을 맺고 생산된다. 그리고 생합성을 통해 카페인이 성공적으로 콩에 이식되었다. 만약 [식물성] 기름 유전자와 커피향을 이식하는데 성공한다면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커피분말용 콩을 판매할 시장을 잃게 될 것이다. 농업이 자본주의 확산의 고전적인 형태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업생산과는 달리, 농업이 자본에 포섭되는 첫 단계는 투입물 산업과 생산물 유통의 활성화이다. 이들은 소규모 기업농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팔고 그들이 생산한 것을 사들임으로서 농업의 잉여를 전유한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작동시키는 전유의 가능성이 침투하면서 일어난다. 농업생산과 연계된 중심적인 원료, 즉 자본주의화에 가장 저항하는 생명체에 집중하면서 생명공학은 자본 진출의 두 단계를 완수하게 된다. 첫 번째는 야생이었던 많은 생물을 포함하여 투입물 생산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동반하여 수직적 통합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의 자본주의적 농업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인데, 왜냐하면 농업생산의 물리적 특성이 불가피하게 토지와 연계되어 생산과정에서 독특한 조직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1) "The Maturing of capitalist agriculture: Farmer as proletarian", Monthly Review, Jul./Aug. Academic Research Library pg. 72 본문으로 2) 리처드 르원틴은 하버드 대 비교동물학 박물관 내 알렉산더 아가시좌 (Alexander Agassiz Chair)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Biology as Ideology,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 Not in Our Genes(공저), The Dialectical Biologist(공저)가 있다. 본문으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농민 자본주의적 농업의 성숙1) 리처드 르원틴2) (번역: 류미경 (정책편집부장)) 우리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산업 생산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개별 장인 생산자를 포섭했는지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다른 형태의 생산·교환 조직에 침투하여 결국 이를 변형시켰다는 점을 알고 있다. 종종 이러한 변화의 힘은 매우 강력하여, 적어도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찍 시작되어 19세기 말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의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복원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의료나 연예 등의 전문 분야와 같이 현재까지도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개별 장인들을 보면, 이행이 최근까지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예외적인 것으로, 초기 자본주의적 관계의 화석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특별한 재능과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주변적인 분야, 즉 핵심적인 필수품 생산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예외가 된다는 관점은 완전히 틀렸다. 왜냐하면 기초적인 생필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영역, 즉 농업분야에서 이행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과정은 18-19세기의 직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산업 생산에서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다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표면상으로는 농업이 자본에 저항해온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개별 농기업의 수는 1930년대 670만 개에서 72%나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농업생산자의 수는 18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고작 6%의 농가가 농산물의 전체 가치의 60%를 책임지고 있지만, 모든 산출된 가치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10만여 개별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생산의 40%를 책임지고 있으며, 섬유와 같은 차별화된 분야에서는 4대 기업이 15% 이상의 가치를 생산한다. 또한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농장주가 임대하는 농지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소규모 생산자는 소유주이면서 동시에 소작인이기도 한데, 이들이 경작하고 있는 농지는 [전체 농지의] 55% 정도를 차지한다. 결국 기업농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인식이지만, 20세기 초반부터 부재지주인 경영자에 의해 경작되는 농지의 비중은 1%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에 대한 증거를 고전적인 산업모델에서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꽉 짜여진 계획에 따라 철저한 감시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하는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매우 소수의 농장주에 의해 생산력이 점차 집중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는 없다. 물론 농사에서 공장과 유사한 노동과정의 예를 발견할 수 있기는 하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과일과 야채를 수확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공장과 같은 형태의 농사'라는 자본주의적 이행의 증거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농기업은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지 않고, 주로 한두 명의 노동자를 일 년 중 특별한 시기에만 고용한다. 농업의 자본주의적 이행 과정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농작(farming)와 농업-식량 체계(agri-food system)을 구분해야 한다. 농작은 흙, 노동, 기계를 사용하여 종자, 물, 비료, 농약과 같은 투입물(inputs)을 밀, 감자와 같은 1차 생산물로 만들어내고, 농장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물리적인 과정이다. 농작에서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이행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농업생산의 재정적·물리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첫째, 농지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고 농지 부동산 시장이 빈약하고 따라서 농지에 대한 투자가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농지 소유는 자본이 보기에 매력적이지 않다. 두 번째로 대형 농장의 노동 과정은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제가 어렵다. 셋째, 이미 중간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기 힘들다. 넷째, 날씨, 새로운 질병, 해충 등 외적인 자연적 현상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통제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자본 재생산의 순환이 1년을 단위로 하는 식물의 성장주기, 동물의 고정된 재생산주기와 연계되어 있어서 이를 단축시킬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의 중요한 예외를 가축 사육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재생산주기를 단축시키는데 상당한 성공을 이루어낸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보게 될 자본주의적 농작의 발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잘 통제되는 대규모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대형 기업이 농장을 통째로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농업-식량 시스템은 단순히 농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농장 경영을 비롯하여 투입물의 생산, 운송, 판매와 농산물의 운송, 가공, 판매 모두가 포함된다. 농작이 전체 농업생산 고리에서 물리적으로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오히려 투입물의 공급과 생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 농업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농작 자체는 현재 농업-식량 시스템 부가가치의 10%를 차지할 뿐이다. 25%는 투입물 거래에서, 나머지 65%는 농산물을 소비 상품으로 바꾸는 운송, 가공, 판매에서 얻어진다. 20세기 초반, 농장에서의 부가가치는 전체의 40% 정도였고, 대부분의 투입물은 종자, 역축(役畜, draught animal), 사료, 거름, 가족의 노동력 등의 형태로 대부분 농장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입물의 대부분은 화학 종자, 트랙터, 정제/합성 화학 비료, 기계, 노동력 대체품 등의 형태로 구입된다. 그러므로 산업자본은 투입물의 생산과 생산물의 가공을 통해서 농업분야에서 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타의 산업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농기계, 농화학 제품, 종자를 생산하고, 밀가루를 슈퍼마켓 계산대에 놓인 아침식사용 시리얼 한 상자로 바꾸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본에 의해, 그리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통제된다. 그러나 자본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석유를 감자칩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지만, 농작이 200만 소(小)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은 토지와 같이 소유권을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무리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잉여농산물은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고 소비한다. 농업은 여타의 자본주의 생산과는 달리, 생산의 필수적인 과정이 수많은 독립적인 소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봉제를 하는 과정은 소수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염색과 가공하지 않은 천을 다듬는 일은 불가피하게 수십 만의 외부 가내생산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가내생산자들은 재료를 집으로 가져가 가공한 후 다시 공장에 판매한다. 농장 생산자들은 역사적으로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과정에서 두 가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농장주는 농작에 관한 물리적 과정에 대해 선택권을 갖는다. 여기에는 어떤 작물·가축을 재배하고 사육할 것인지, 그 양은 얼마로 할지, 어떤 투입물을 사용할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선택은 물론 항상 해당 지역의 기후와 토양의 조건과 농산물 시장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두 번째, 농장주는 전통적으로 투입물 판매자들과 경쟁 관계에 놓였다. 왜냐하면 농장주들이 종자, 농기계, 비료 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자본은 농장주들이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문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최대의 이익을 낳을 수 있도록 투입물을 일괄 구입하도록 하고, 농산물 가격이 구매자들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맞춰야 한다. 구매자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에 어떤 위험요소가 남아있든지 간에, 선택권은 여전히 농장주들에게 있다. 농장주들이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생산과정의 본질과 속도에 대한 결정권과 농산물 시장 판매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들은 생산자와 고립되어 규정되는 고리 속에서 작동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농장주들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화 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토지와 건물의 법적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산수단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이러한 생산수단을 경제적으로 다르게 이용할 방도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화의 핵심은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그 노동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농업에서 이러한 이행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수확 기계의 발명과 2차 세계대전 종전의 시기인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유용성, 비용, 기계화를 통한 노동력의 통제와 같은 문제들이 농업혁신과 관련된 것처럼 언급되었다. 농장주들은 트랙터의 도입을 막을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비료, 살충제, 노동절감형 제초제 등의 정제-합성 화학 약품들이 주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품 형태의 투입물도 효용이 크고 노동 절감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되지 못했다. 특히 제초제로 인해 경작용 기계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었다. 살충제는 성공적인 수확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였고, 분사형 호르몬제를 통해 과일이 익는 시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생제로 동물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품과 농장에서 자체 생산된 투입물 간의 경쟁은 전혀 없었다. 자본주의적 투입물의 역할이 점차 늘어간다는 사실은 생산과정의 중심적인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입물은 현실에서 생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계화 및 화학제품의 사용은 생산되는 생물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생산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농업에서 생물은 모든 투입물 사이의 연계 속에 위치하며 모든 생산물 변형의 기초적인 자원이다. 그러나 생물은 죽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생산물은 재생산되어야 한다. 즉, 농산물의 모든 사이클은 농작의 과정을 통해 가치가 부가되는 종자 혹은 씨가축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종자(혹은 씨가축)는 농작에 투입되는 중심적인 투입물이다. 이러한 종자 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통제하는 것은 전체 농산물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다른 투입물에 대한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종자 생산자가 유일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질소비료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짐으로써 농민들이 이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질소 비료는 매우 유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잡종 옥수수와 같은 식물의 번식에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농산물 생산에 대량의 질소 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토마토 수확의 성공적인 기계화는 식물 육종가(育種家)와 기계 설계자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육종가들은 가지가 축 늘어지고 꽃과 열매가 자라는 기간 내내 흠이 나기 쉬운 토마토의 특성을 완전히 바꾸어 짧고, 단단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겨 모든 과실이 거의 동시에 익는 토마토로 만들었다. 생산 과정에서 종자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므로, 종자회사는 잠재적으로 농업에서의 소득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매우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 농장주가 좋은 변종의 씨앗을 심었을 때, 여기서 자라는 식물은 그 변종의 씨앗을 낳게 된다. 종자회사는 농장주에게 공짜의 상품, 씨앗 안에 들어있는 유전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되고, 농장주는 경작을 통해 변종 종자를 반복해서 재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농장주가 다음 해 수확을 위한 종자를 재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해답은 동계번식체(同系繁殖體: 근친교배에 의하여 생긴 개체-역자)-교·잡종(交雜種) 교배법이다. 동계번식체-교·잡종으로 번갈아 교배함으로써 교·잡종 식물을 자라게 하되 재생산되지 않는 종자를 판매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세대의 식물은 진정한 교·잡종이 아니어서 수확량이 줄고 변이하기 쉬우므로, 농장주는 매년 새로운 종자를 종자회사로부터 구입할 수밖에 없다. 변종 옥수수 종자를 판매한 종자회사가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됨에 따라, 이러한 방법은 토마토나 닭과 같은 다른 생물로 확산되었다. 게다가 델칼브, 펑크, 노스럽-킹과 같은 주요한 상업성 종자 및 닭 재배사들은 비록 곧바로 매각, 재조정되긴 했지만, 시바-게이지, 몬산토, 다우와 같은 제약회사 또는 화학제품 회사에 통합되었다. 가장 큰 교·잡종 종자 회사인 파이오니어 하이브리드만은 1997년까지 완고하게 독립적으로 남아있었고, 주식의 20%와 이사회의 두 석은 듀퐁사에 양도되었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종자회사가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 방식으로 종자를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첫째, 이 방식은 콩, 밀 혹은 대형 동물과 같은 많은 주요 작물에는 경제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 둘째,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총수확량을 증가시키는데 성공했을지라도, 많은 중요한 일정한 특징, 예를 들어 특정한 질병 혹은 제초제에 대한 저항력, 혹은 평지의 기름 함유율의 증가 등으로 인해 교·잡종이 더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교배법을 도입해야 했다. 셋째, 어떠한 특징이 작물재배학적으로 중요한 종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작중인 종과 교배할 수 없는 다른 생물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옥수수를 콩의 뿌리를 질소-고정 박테리아에 적합하도록 만듦으로써 가능하게 했듯이, 대기로부터 질소를 고정시키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질소 비료 시장을 축소시켰지만, 질소의 공급을 종자 회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했다. 종자회사와, 이들의 파트너 혹은 소유주가 되는 화학제품회사에 이익이 되는 작물재배학상 종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농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것이 1970년대에 명백한 한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연료비용의 극적인 변화와 이주 노동력의 공급을 통해 농업에서의 지지부진한 노동 조직 과정이 종식됨으로써, 농업생산에 있어 획기적인 형태의 기계화는 종결되었다. 비료와 농약의 오염효과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고, 농장 노동자들을 유독성 있는 살충제와 제초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의 규제가 발전함에 따라, 화학제품의 사용에 따른 급격한 변화는 제어되었고, 전통적인 투입물의 사용이 꾸준히 증가했다. 게다가, 이러한 비료와 농약은 매우 높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었고,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예를 들면 1975년 이후에는 비료사용량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1980년쯤 도입되기 시작한 합성비료 역시 사용량이 증가하지 않았다. 투입물 판매자와 생산물 구입자가 농업에서의 소득 중 자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1) 작물재배학상 종의 생물학적 특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거나, 2) 생물학적 체계를 자신이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 늘릴 수 있다. 또한, 투입물과 경작 이후의 생산 분야(구매, 가공, 유통)의 통합력이 높아져 통제력을 집중할 수 있을 때 이 소득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이제] 생명공학(biotechnology)으로 넘어가자. 생명공학과 소유(property)의 통제 생명공학의 상업적 이용의 목표는 농산물에 대한 자본 통제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명공학 혁신은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개발 시간과 비용은 연구에 대한 자본투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비(非)콩류 식물에도 질소 고정을 도입하는 것은 아그리세투스(Agricetus), 아그리제네티카(Agrigenetica), 바이오테크니카(Biotechnica)를 비롯한 여러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이 10여 년 동안 7천5백만 달러를 들여 연구를 진행한 후,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고 만약 성공한다면 거대한 이익을 남길 것이 확실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보건 및 환경 관련 단체들이 개발에 도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모든 생명공학상의 혁신은 환경, 보건에 대한 위험으로 인해 도전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는 생명공학 프로젝트를 중단하도록 만들었다. 생명공학이 도입되는 원동력은 비료와 농약의 사용에 대한 저항이 투입물 생산자들이 얻는 농업 소득의 비중을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생명기술에 의한 생산물의 소유권과 통제는 농장주가 아니라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상의 혁신으로 얻어진 새로운 변종에 대해 소유권을 유지하려는 기업의 요구는 모순을 낳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농장주는 새로운 변종 종자를 구입할 때 종자에 들어있는 좋은 유전학적 정보를 공짜로 얻게 되고, 육종가는 그 소유권을 잃게 된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을 통한 재산권 보호는 몇몇 생물과 몇몇 작물재배학적 특성에 국한된다. 그리고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 생명공학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육종가들은 중요한 유전정보를 빼앗기고 난 후 어떻게 이익을 얻게 되는가? 법적·생물학적 무기의 결합이 답이 된다. 식물변종보호법을 통해 육종가들은 법적인 권리를 얻게 되었고, 표준 DNA 지문의 사용으로 농산물 자원을 모호하지 않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농장주가 생명기술자로부터 종자를 구입하기를 원한다면 수확으로 얻어진 종자의 다음세대에 대한 재산권을 모두 종자 생산자에게 양도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농장주는 수확을 통해 얻어진 종자를 다른 농장주에게 판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농장에서 이 종자를 심어 다음 해에 수확할 수도 없게 된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 종자 혹은 저지방 감자칩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감자 종자를 구입한 농장주들은 이러한 변종을 계속 생산하고 싶다면, 다음 영농철에 몬산토를 찾아가 재계약을 해야 한다. (몬산토는 라운드업이라는, 콩마저도 죽이는 효능 좋은 제초제를 생산한다. '라운드업 레디'라는 콩은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되는데, 라운드업을 아무리 많이 뿌려도 죽지 않고, 밭에 영향을 주지도 않고 잘 자란다.) 이와 같은 계약은 몬산토의 곡물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식물 한 그루, 혹은 종자 하나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조작된 변종의 DNA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특징적인 배열을 갖는데, 이는 다른 변종에 비교할 때 독특하다. 종자생산 기업의 생명공학 실험실에서는 이렇게 분류된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것을 가리켜 "게놈 통제"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상당한 양의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몬산토는 다음과 같은 협박성·회유성 광고를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 잡지에 전면으로 실었다. 농장주가 몬산토의 생명공학 종자를 모아두거나 다시 심게 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종자를 얻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다시 말해, 이웃에서 종자를 훔치거나 다시 심더라도) 그는 곧 해적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자 해적질은 농장주에게 현금 결산 및 법적 비용 등으로 에이커당 수백 달러 정도의 비용을 치르게 한다. 또한 몇 년 동안 경작과 사업 내역에 관한 시찰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관한 이야기는 한 장이 더 남아있다.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은 고작 몇몇 생물체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계약 시스템은 이를 유효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협박, 감시, 소송 등을 필요로 한다. 생명공학을 도입함으로써 종자에 대한 소유권과 관련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3월 3일, 종자가 땅에 뿌려져 곡물이 한번 자라고 나면 다시는 발아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자 조작에 대해 특허가 부여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이로써 20세기 초 동계번식체-교·잡종 교배법이 발명되었을 때 종자생산 자본가들에게 발생한 문제가 모든 곡물에 대해 한방에 해결된 것이다. 발명한 이가 지적하듯, 이 생명공학 기술은 어떤 곡물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전 약간의 보완이 필요하다. 누가 이 특허권의 발명자이자 소유자인가? 바로 면화와 콩 종자의 주도적인 생산자이자, 미국 농업성의 연구기관인 델타 앤 파인 랜드사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기술의 개발이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해치면서 사적인 재산권을 보호하는 뻔뻔한 사례이다. 종자개발자의 재산권을 강화하는 계약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유전공학의 한계를 예측할 수 있다. 몬산토 사는 효소에서 유전자변형 박테리아를 사용하여, 젖소가 우유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질대사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BST)을 상업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보통의 소는 스스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소의 몸 속에서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DNA가 그 양을 증가시키도록 변형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상업적인 BGH(상장호르몬)을 구입하고 투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젖소집단(dairy herd)은 항상 중소기업에 의해 자체 재생산되며, 대규모 종자회사에 상응하는 대규모의 상업적 젖소 육종가(dairy herd breeder)는 없다. 둘째, 강제조치가 이루어지기 매우 힘들다. 몬산토의 판매대리인이 어떤 농토 혹은 곡물저장소에서 감자 혹은 종자를 가져오기는 매우 쉽다. "게놈 통제"에 필요한 혈액 혹은 세포 표본을 농민이 소유한 젖소에서 채취하는 것은 상당히 주제 넘은 일이다. 게다가 젖소는 한꺼번에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 해가 지나지 않고서 어느 소가 원래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손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계약, 생명공학, 그리고 농업 통제 만약 생명공학과 지적재산권 보호 계약체계의 유일한 효과가 농업에 필요한 공산품 투입물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혁명적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농민들은 오랜 기간동안 공산품 투입물을 구입해왔다. 농업에서 발생한 중요한 구조적 변화는 농산품 구매자들이 전체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의 농업생산의 수직적 통합으로부터 일어났다. 이러한 수직적 통합은 1) 투입물과 생산품 간의 기술적 연계, 2) 한 기업이 생산품의 독점적 구매자이자 중요한 투입물의 공급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맡는 것, 3) 투입물 및 생산물과 농민을 연결시키는 계약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계약은 생명공학에 선행한다. 농산품 구매자가 시장 유통 역시 담당하게 되면 수직적 통합이 가능해진다. 계약 농업은 통조림용 야채생산 분야에서 일반적이다. 오하이오 주에 있는 토마토 통조림공장은 종자와 비료를 공급하기도 하고, 숙성한 토마토를 채집하기도 한다. 농민들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통조림 제조에 관한 계약이 처음 이루어진 이후 계속 진화해왔다. 생명공학의 주요 역할은 투입물과 생산품의 물질적 연계 속에 있다. 생산 시스템의 효과적인 통합을 보증하기 위해서, 성장하고 있는 생물은 여타의 투입물과 한묶음을 이루기에, 그리고 농업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에 적합하도록, 최종생산물이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필요한 품질을 갖추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몇 가지 목표는 전통적인 재배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지만, 특정한 질병에 대한 저항 혹은 생물 조합에 필요한 질적인 변화와 같은 몇몇 자질은 생명공학적인 조작을 통해서 가장 잘 만들어질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한 복제와 세포배양 기술은 투입되는 생물이 원하는 유전적 자질을 갖춘 채 배가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계약 농업의 본질의 한 예는 이러한 계약 시스템의 보루인 브로일러(고기용 닭) 생산에서 드러난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 닭고기를 주로 공급하는 업체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타이슨 팜(Tyson Farms)이다. 타이슨의 닭고기들은 타이슨 "농장"에서 생산되지 않고, 소농들에 의해 생산된다. 이들은 10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연평균 25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며, 총소득은 6만5천 달러, 실질소득은 1만2천 달러정도이다. 이러한 생산은 타이슨 사(혹은 유사한 다른 지역 기업)와의 4년 계약 하에서 이루어진다. 타이슨사는 병아리, 사료, 혹은 수의학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오직 이 회사만이 공급할 병아리의 유형과 숫자, 빈도를 결정할 수 있다. 이후 타이슨 사는 7주 후 직접 결정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성숙한 닭을 고른다. 닭의 무게를 잴 저울과 이들을 운반할 트럭 역시 타이슨사가 공급한다. 투입물 및 사육에 대한 세부적인 통제는 전적으로 타이슨 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생산자(농민)는 타이슨 사가 공급하거나 보증하지 않는 사료, 의약품, 제초제, 살충제, 쥐약, 기타 어떤 품목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게다가, 농민은 타이슨 사의 "브로일러 사육 지침"을 준수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타이슨 사가 정하는 "브로일러 관리 및 기술 자문"의 감독에 따라 "집중 관리"를 받게 된다. 닭 사육 농민은 더 이상 원료를 구입해서 이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변형시키고 이를 시장에 판매하는 독립된 장인이 아니다. 계약 농민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는다. 심지어 원료를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다. 농민은 약간의 생산수단, 즉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과정, 혹은 소외된 생산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농민은 17~18세기의 자본주의 생산의 첫 단계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생산노동자가 된다. 농민이 얻은 것은 조립라인의 기계공만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생산자이자 시장판매자였던 농민이 아무런 선택권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그 지위가 변경된 것은 전국소농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Small Farm)가 1998년 발간한 다음의 보고서에 담긴 권고사항에 반영되어 있다. 의회는 농업공정거래법(Agricultural Fair Practice Act)을 개정하여 농업성이 행정적 구속력과 민사제재 권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육자들이 차별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명공학상의 조작과 계약 농업의 조합은 제3세계 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3세계로부터 수입해오는 생산품은 독특한 특질을 지닌 원료, 예를 들면 커피, 향신료, 식물성 알코올, 식용유 등이다. 게다가 이러한 원료들은 낮은 기술 수준과 많은 노동의 투입을 통해 생산된다.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에서 생산된다. 그 결과로, 말하자면, 필리핀에서 수입해오는 야자기름의 가격과 입수가능성은 불안정하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국내 품종을 유전자 조작함으로써 특수한 작물들을 만들어 수입품을 대체하게 된다. 칼젠사는 비누, 샴푸, 화장품, 식품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수입 야자기름을 대체할 고-라우릭 산-캐놀라(high lauric acid canola) 품종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수 캐놀라 품종은 농촌인구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는 필리핀의 생산품을 대체하며 [미국] 중서부에서 계약을 맺고 생산된다. 그리고 생합성을 통해 카페인이 성공적으로 콩에 이식되었다. 만약 [식물성] 기름 유전자와 커피향을 이식하는데 성공한다면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커피분말용 콩을 판매할 시장을 잃게 될 것이다. 농업이 자본주의 확산의 고전적인 형태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업생산과는 달리, 농업이 자본에 포섭되는 첫 단계는 투입물 산업과 생산물 유통의 활성화이다. 이들은 소규모 기업농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팔고 그들이 생산한 것을 사들임으로서 농업의 잉여를 전유한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작동시키는 전유의 가능성이 침투하면서 일어난다. 농업생산과 연계된 중심적인 원료, 즉 자본주의화에 가장 저항하는 생명체에 집중하면서 생명공학은 자본 진출의 두 단계를 완수하게 된다. 첫 번째는 야생이었던 많은 생물을 포함하여 투입물 생산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동반하여 수직적 통합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래의 자본주의적 농업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인데, 왜냐하면 농업생산의 물리적 특성이 불가피하게 토지와 연계되어 생산과정에서 독특한 조직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1) "The Maturing of capitalist agriculture: Farmer as proletarian", Monthly Review, Jul./Aug. Academic Research Library pg. 72 본문으로 2) 리처드 르원틴은 하버드 대 비교동물학 박물관 내 알렉산더 아가시좌 (Alexander Agassiz Chair)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Biology as Ideology,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 Not in Our Genes(공저), The Dialectical Biologist(공저)가 있다. 본문으로
미국의 '네오콘'을 통해 본 남한 '뉴라이트 운동'의 전망 정 희 찬 | 정책편집부장 1. 뉴라이트운동의 등장 :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있다."1)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연재기사를 기획하면서 자유주의연대와 뉴라이트를 표방한 여러 단체들이 세력화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연대(2004년 11월 2일), 교과서포럼(2005년 1월 25일), 뉴라이트싱크넷(3월 24일), 시사웹진 뉴라이트(4월 1일)는 출범 즉시 각종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과거 '주사파' 출신 인사나 김진홍 목사 등 보수적 기독교단체를 이끌고 있는 종교계 인사가 주축이 된 이들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386'이라 부른다 (여기서 '486'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올드 레프트'나 '올드 라이트'와 차별적인 자신들이 혼란과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칭 '건강한 보수'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 '신보수'의 주장은 자유주의연대이나 뉴라이트싱크넷의 창립선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①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냉전과 공산화의 위험, 빈곤을 극복하여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정착에도 성공했다. ② 현 집권세력의 위험한 '자학사관': 현 집권세력은 건국과 산업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절차적 수준이 아니라 과거 반체제세력이 주장하는 민중민주주의와 유사한 참여민주주의로 대체하려고 한다. 이들은 또한 민족공조와 노조를 앞세워 각각 한미동맹과 기업을 대체하려고 한다. ③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反시장주의적이고 대중선동형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現집권세력에게 전적으로 있다: 외국자본과 거대노조가 득세하고 분배와 균형의 추구는 성장둔화와 빈곤의 증가를 초래했다. 민족공조는 최악의 인권유린국가로서 핵무장을 시도하는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회권력과 행정권력 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마저 이들이 장악하여 서로 권력투쟁을 일삼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이념, 세대, 지역 간 갈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④뉴라이트운동은 기득권에 안주하며 부패한 낡은 보수와 단절하고, 민주화세력의 위험한 민족주의적 민중주의가 아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무장하고 세계화, 정보화, 자유화의 대세에 발맞추어 선진한국으로의 질적 도약을 위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상이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의 주장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해 여름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한나라당 부설기관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박세일 의원이 발제한 <나라의 선진화와 당의 진로>라는 제목의 문서에 기반하고 있다.3) 이 문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정부의 주축을 이루는 민주화 세력을 겨냥하여) 1980년대 "친북 반체제적인 반독재투쟁의 잔재인 '반시장, 반자유' 세력과의 대결을 통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김대중 정권과 이를 철저하게 계승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반시장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이들의 주장이 어떤 이론체계에 근거하여 출현했다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현 집권세력에게 전가함으로써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은 지난 30년 동안 남한 지배계급의 지주였던 '반공-발전주의'를 해체하고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분파를 보수야당-자유주의 세력으로 대체하였다. 게다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연거푸 패한 결과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존 지배계급 분파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된 것이었으리라. 1997년 대선을 통해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수평적 정권교체'의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IMF 서울 지부장'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월스트리트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금융시장을 부양하려는 그의 경제정책은 2000년 절정에 달한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불가피하게 측근들과 여당 정치인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로 귀결되었다. 재임 중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예는 빛이 바랬고 남한 자본주의의 동요는 정권에 대한 불안정한 지지율로 직결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충실한 후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정의 결과 등장한 빈곤과 청년실업, 불안정노동이라는 쟁점을 '참여 복지'라는 허울좋은 수식어로 은폐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강화하면서 한국경제의 구원자로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신화를 유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장미빛 환상이 잿빛 현실로 드러난 현실에서 현 집권세력에 대한 지배계급 내 보수적 분파들의 선전·선동은 나날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뉴라이트'는 바로 이러한 지배계급 내에서의 동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 '뉴라이트'에 비견할 수 있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출현과 함께 반동적이고 공격적인 보수주의가 출현했다. 비록 양자 사이의 시차는 존재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한국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있고 나아가 '뉴라이트' 운동의 향후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2. 미국의 네오콘(Neo-con) : 미국의 쇠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급진주의에 대한 반동 (1) 1970년대 급진주의 도전에 대항한 공격적 보수주의의 반동 '뉴라이트운동'의 원조 격인 이른바 네오콘이 등장한 미국 역시 1970년대 경제불황과 베트남전 패배, 급진주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 등 진보주의 운동의 성장에 대한 보수주의 반동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투쟁과 흑인민권운동이 성장하며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또한 유럽의 급진학생운동(68운동), 혁명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시도했던 중남미의 좌파(쿠바와 칠레, 니카라과), 수에즈운하를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되찾은 이집트의 나세르가 제창한 중동의 아랍민족주의와 제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주의' 등은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서 이른바 '파웰 메모'4)로 유명한 일화는 바로 각종 형태의 자유주의·진보주의를 미국 내부의 적으로 지목하고 이들과 대결해야 한다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보수주의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파웰은 공산주의자, 뉴레프트를 비롯한 혁명주의자들이 대학과 언론계, 문화예술계에 침투하여 미국의 정치와 경제체제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기업은 대학의 보수적 학생을 양성하고 진보적 교수를 보수적 교수로 대체해야하고 TV프로그램, 책, 팜플랫 등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진보'에 맞서 보수주의를 재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해리티지 재단, 건전한 경제를 위한 시민운동 등 보수적 단체들이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기존의 민주당이 지원하는 자유주의 연구소들과 경쟁했다. 특히` 1차·3차 산업에 집중된 개인기업자본과 동맹을 맺어 막대한 정치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자본가 집단의 요구를 표출했다. 이러한 요구는 조세삭감, 노동신축화, 군비증강 등 레이거노믹스로 수용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보수주의 흐름은 낙태, 동성애, 포르노, 마약, 청소년 범죄 등 미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 복음주의적 기독교 집단 - 미국 기독교세력은 1940년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는 세속의 정치·사회적 이슈와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들이 강조했던 전통적 가치관은 급진주의와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에 의해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 이 주장하는 헌법의 남녀동등권 반대, 동성애권 반대, 낙태 반대 등 쟁점을 이동하며 이른바 단일 이슈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등으로 추락한 전통적인 보수주의 진영은 전열을 재정비했고 결국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2) 신보수주의(네오콘)의 출현: 급진주의와 (뉴딜)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 또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동시에 오늘날 네오콘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신보수주의자들이 점차 공화당을 지지하며 외교안보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들의 기원은 1940년대 <파티전 리뷰>(Partisan Review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부 트로츠키주의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소련의 동유럽 점령을 반대하며 적극적인 반공(反共)을 주장했는데 이들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루즈벨트의 뉴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이념을 지지했다. 이들이 공격적인 보수주의로 전향하게 되는 계기는 1960년대 베트남전을 비판하며 성장한 급진주의의 등장이었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SDS)이 결성되고 신좌파운동이 출현하며 몇몇 대학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학생시위가 확산되었다 (1964년 버클리대학, 1968년 콜롬비아대학). 이때 '네오콘'의 원조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 등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급진주의에 무기력한 민주당의 자유주의에 실망하여 점차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또한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 아래에서 추진된 '가난과의 전쟁'(War on Poverty)과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등의 복지 프로그램은 이들이 보기에 빈민의 자활을 돕는 것이 아니라 복지에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미혼모를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가족의 해체로 귀결된 전형적인 실패작이었다. 네오콘의 논리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와 차별의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케 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이 발전하여 새로운 부가 창출될 수도 있고,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차별을 시정하는 강력한 反차별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차라리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탐욕과 이기심이며, 정직, 근면, 책임감, 융통성, 친절, 타인의 필요와 이해에 대한 관심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5) 게다가 이들은 1970년대 미국의 급진주의에 대한 반동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복음주의 및 기존 보수주의의 주장과 결합하는데, 앞서 낙태나 동성애에 대한 반대, 전통적 가족의 수호라는 점에서 일치할 뿐 아니라 외교안보정책에서도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동맹의식도 공통적이다. 결국 미국식 선거제도의 악명을 높였던 2000년 대선에서 네오콘 세력은 복음주의 기독교 집단과 본격적인 유대관계를 구축했다. 게다가 네오콘들은 비인격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유지상주의적인 대중문화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적 가치관과 문화를 방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들의 주장은 경제적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서 유대-기독교의 가르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유대-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도덕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속 종교'인 좌파 유토피아주의와 경쟁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경택, 2005). 네오콘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와 결합하면서 보수주의의 현대화, 이론화(?)에 조력하고 있다. 네오콘이 민주당 지지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후반 카터 행정부의 이른바 '인권외교'였다. 네오콘은 카터 행정부가 제3세계 권위주의 정권을 압박하는 '인권외교'를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라는 큰 위협을 앞에 두고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동맹국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레이건의 공화당 대선 캠프에 합류한다.6)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엘리엇 에이브럼스나 리처드 펄 등 신보수주의자들이 중용되었으며 대외적으로도 1970년대 데탕트와 단절하고 군비확장('스타워즈' 계획)과 동시에 강경하고 적극적인 對소련 압박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리한 군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소련이 1985년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고, 1980년대 말 동유럽 국가들이 몰락하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레이건 행정부 하에서 절정기를 구가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반공이라는 대외명분 자체가 소멸함에 따라 오히려 입지가 약해지고 내부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손봉권, 2005).7) 9·11 테러사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신보수주의자들이 '네오콘'이라는 별칭으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 밖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반대로 미국은 이제 도처에서 보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3) 9·11 이후 신보수주의의 보편화, 신자유주의의 신보수주의적 수렴? 탈냉전 이후 신보수주자들은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공화당보다는 인권보호와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클린턴의 '대담한 주장'에 마음이 이끌리기도 했다. 냉전구도의 소멸 이후 소말리아 사태와 보스니아에서의 인종청소를 목격하며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가치를 부정하거나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세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위해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상윤, 2005). 네오콘의 일부세력은 공화당의 강경 매파그룹(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과 연합하여 1996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를 결성하고 9·11테러를 통해 명실상부한 미국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PNAC를 결성한 세력들은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해외개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와는 달리 강한 정부와 군사력의 증강을 지지한다. 이들은 불량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여 중동분쟁 해결과 체제전환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우익 윌슨파')와 미국의 개입과 군사적 강경노선을 유지하되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또 다른 위협세력을 제거해야 한다고('잭슨적 일방주의자') 주장한다. 미국의 자본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두 곳을 공격한 9·11 테러는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네오콘만이 유일하게 뚜렷한 전망을 지니고 있고 진정으로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짜내려 노력하는 세력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2000년 대선이 주로 사회·경제적 쟁점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이루어졌음에 반해, 2004년 대선은 외교안보 정책이 단연 압도적으로 여타의 쟁점을 압도했다. 미국 민주당은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비판했으나 이는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엽적인 문제제기일 뿐이었다. 오히려 민주당과 공화당은 국토안보의 핵심의제로서 대테러전쟁의 수행, 대테러전쟁의 핵심의제로서 핵확산 방지, 이를 위한 (핵)선제공격 불사라는 점에서 서로 수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적 협력을 추구하는 다자주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방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자적 일방주의', 혹은 '다자주의의 융단장갑 속에서의 일방주의 철권'이 존재할 뿐이다 (백승욱, 2005). 이처럼 국제주의 보수파로서 네오콘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주장은 공화당과 민주당 뿐 아니라 평범한 미국 시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며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세계를 '구원'하려는 이들의 전략은 군비증강을 위한 무리한 재정적자와 (세계 최강이지만)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미약한 군사력으로 인해 실패할 공산이 크다 (토드, 2003). 이들의 시도는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먼 무한전쟁을 야기할 뿐이다. 3. 신자유주의 속에서 신보수주의의 수렴과 신자유주의의 '반동적' 전환 미국에서 네오콘의 주장이 큰 틀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새로운 수렴을 구성하는 데 강력한 구심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단지 뉴라이트라는 집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뉴라이트가 등장한 후 지배계급의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미국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신자유주의는 금융적 팽창을 거듭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민주당마저 전쟁과 테러에 대해 오히려 공화당의 무능을 질책하며 대테러전쟁의 중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신보수주의 의제는 공화당이나 한나라당만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미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미 그들이 주장하는 질서자유주의, 상생의 자유주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참여정부의 국정목표인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성찰적 민주주의, 토론민주주의와 대동소이하고, 법치주의는 '원칙과 신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임혁백, 2004). 네오콘이 주도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태도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으로 드러났던 바, 뉴라이트가 제시하는 한미동맹 강화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들의 호전적인 민주화 운동 역시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진입을 유도하려는 노무현정권의 대북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주장이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른바 시장경제에 대한 뉴라이트의 주문은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자유화·개방화로 인해 이미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초국적 투자자들이 내세우는 '시장의 법칙'에 맡겨놓았던 'IMF 지부장'과 그의 후계자에게 오히려 반가운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즉, 보수주의를 앞세우며 호전적으로 현 집권세력을 공격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김대중 정권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과 차별적인 이념적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돗자리를 깔아주고 있다. 뉴라이트의 출현은 단지 '보수꼴통'의 출현이 아니라 앞으로 현재의 집권세력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의 우경화·보수화를 촉진하는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8) 뉴라이트가 단지 현 집권세력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다고 얕잡아 볼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가 지배세력의 보수화와 우경화를 촉진하며 현존하는 체계의 위기를 여성과 노동자에게 전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지배계급의 시도가 민중의 저항과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한에서는 앞으로 필연적으로 훨씬 야만적인 정세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뉴라이트 비판이 '무기의 비판'이 되려면 바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의 형성, 대안적인 주체형성의 과제가 따라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자료※ 마상윤(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 - 탈냉전부터 이라크 전쟁까지」;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백승욱(2005), 「미국 신보수파 주도 아래의 새로운 세계질서」;백승욱 편저,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헤게모니의 역사』, 그린비 손봉권(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1930년대에서 레이건 행정부 시기까지」;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오경택(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정치이념의 구성과 주장」;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이삼성(1993),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 민족주의』, 한길사 임혁백(2004), 「한국의 뉴라이트 배경과 전망」;『관훈저널』2004년 겨울호 엠마뉘엘 토드(2003), 주경철 옮김, 『제국의 몰락』, 까치 1) 〈자유주의연대 창립선언문〉(2004.11.24)에 나온 말이다.본문으로 2) 자유주의연대(www.486.or.kr)의 홈페이지나 시사웹진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의 홈페이지에는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는 이들 '신보수주의자'들의 각종 칼럼과 토론회 자료가 등록되어 있다.본문으로 3) 임혁백(2004)는 '뉴라이트'운동을 한나라당의 '선진화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으로 해석한다.본문으로 4) 파웰 메모는 변호사인 루이스 파웰(Lewis Powell)이 1971년 8월23일 당시 미상공회의소 의장 스나이더(Eugene B. Snyder)에게로 보낸 "미국의 자유기업제도에 대한 공격"이란 제목의 메모를 가리키는 것인데 2개월 후 파웰은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다.본문으로 5) 이들은 또한 빈곤의 문제 역시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기대치도 상승해서 심화된 것으로 인식될 뿐이며, 과거의 시점에 비해서는 오히려 현재의 최극빈층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서는 몇 배나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은 빈곤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현대 빈곤문제를 고대 노예의 삶과 비교하라는 의미인가?본문으로 6)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란 이중적이었고 집권 초기에 한정되었다. 카터가 무기수출을 규제하고 국방예산을 감축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지역 안보에 대한 책임을 친미 동맹국이 부담하게 하는 것으로서 동맹국들이 추구했던 자주국방은 사실상 미제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카터 행정부가 권위주의/독재국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취한 조치는 '성명외교'에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이란과 니카라과에서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반미 혁명정권이 세워지자 '인권외교'는 카터 행정부 말기인 1979-80년 사이에 CIA의 해외공작을 통한 공작외교와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이삼성, 1993: 82-90).본문으로 7)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되고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했을 때 신보수주의 진영은 여전히 소련의 박멸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예전의 고립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양분되었다.본문으로 8) 일례로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FN)의 르펜이라는 극우파가 결선에 올라 프랑스인들을 경악에 빠트린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적 수사를 늘어놓은 르펜에 대항하여 프랑스 시민들은 우파의 시라크를 당선시켰지만 그는 르펜의 인종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탄압을 강화하였고 중도-좌파(?) 정당인 프랑스사회당 역시 날로 악화되는 치안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며 사실상 인종주의적 의제에서 수렴되어가고 있다. 즉 극우파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기존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비난받지만 정작 그들이 주장한 배제의 논리와 가치체계는 이미 모든 경쟁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