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교육개방 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1030 범국민대회! WTO·FTA 교육개방협상 중단 !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입법 저지 ! 국립대민영화, 교사대 통폐합, 대학구조조정 저지! 교원구조조정 저지! 입시제도개혁으로 사교육 불평등 해소! 공공성·민주성에 입각한 사립학교법 개정 쟁취! 대학공공성 강화! 공공의 일자리 창출! 완전무상교육 실현! 교사 공무원 노동3권 쟁취! 격동의 하반기교육정세, 교육주체와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돌파할 것이다. 손 지 희 범국민교육연대 정책실장 교육권의 합법적 유린 시대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꾸준히 진행된 신자유주의 교육구조조정. 급기야 완성 시도 라운드로 접어들다. 시장주의세력은 담론화, 정책화를 거쳐 "개방", "분권"을 지렛대 삼아 교육시장화 악법을 쏟아내고 있다. 90%국민의 교육권을 이제 법/제도의 이름으로 유린할 태세다. 김영삼 정부 5.31교육개혁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시장주의자 안병영을 등용했을 때, 노정권의 강한 신자유주의 교육구조조정 드라이브는 예견되었다. 시장화 방책을 요리조리 끼워 넣어 엉터리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놓은 그. '사교육비 경감'라는 방망이로 인권유린의 0교시 수업과 보충, 타율학습을 국가정책으로 둔갑시켜 학교를 학원처럼 만들려 들지를 않나, 국가가 나서서 EBS로 과외공부를 시키지를 않나, 고교평준화 해체와 교원평가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라고 억지를 부리지를 않나.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내놓은 2008입시안 역시 학부모들의 호주머니를 더 털 게 뻔하다. 학벌주의의 근간이자 사회적 생산성에 역행하는 만신창이 대학서열체제를 평준화로 손볼 궁리는커녕, 시장원리를 만병통치약인 양 들이댄 지 오래. 급기야 '대학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국공립대는 민영화, 사립대학은 영리법인화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내놓았다. 이뿐이랴. 정부는 전면 교육개방의 도화선이 될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사립학교법'은 민주적 개정의 요구를 묵살하며 수구-사학자본-시장주의 총 단결로 '개악'마저 시도할 태세다. 한나라당은 KDI출신 이주호 의원 -그는 모든 사안을 '시장화, 유연화' 깔대기로 대체한다-을 앞세워 교육문제의 해법은 "평준화 해체! 민간위탁경영! 국립대 민영화! 교원노동 유연화!"의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조선일보와 합작하여 평준화 해체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는 질타를 아끼지 않는 전경련은 경제개발 패키지에 교육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이 계획하는 "기업도시"는 입시명문 귀족학교인 자립형사립고가 얼마든지 장사를 하도록 배려하고, 외국교육기관을 맘껏 들여오고, 영리법인이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천부인권(天賦人權) 억압시스템 왜곡된 교육현실을 재생산하는 파행 구조 '교실 붕괴', '사교육비 고통', '0교시에서 야간보충, 자율학습',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학생인권의 부재'.'입시위주의 교육', '교육주체 간의 불신' 등 한국교육의 파행과 왜곡은 도를 넘을 상태다. 자원과 노력을 헛되이 흘려버리는 낭비 구조 현행의 교육시스템에 투여되는 돈과 시간, 노력은 실로 엄청나다. 교육비의 경우 국가의 교육재정부담은 GDP 약4%(2001년), 공공부담비율은 32%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지만 민간이 부담하는 사부담공교육비와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이며 이를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재정을 투자하는 캐다다(GDP 8%)보다도 훨씬 많다. 0교시에서 새벽학원까지 학생들의 학습시간도 물론 세계 최장이다. 그렇지만 우리사회의 지식과 학문, 문화적 역량 정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 주범은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주의와 왜곡된 대입경쟁이다. 이로 인해 창조성과 다양한 잠재력 개발, 학문발전은 점점 멀어진다. 온 국민이 이런 기형적 시스템에 매달려있는 상황인 것이다. 대다수를 패배자로 내모는 실패 구조 입시와 취업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투여하지만 소모적 경쟁과정을 통해서 단지 소수만이 승리자가 되는 제도다. 수직적으로 위계 서열화된 학벌체제에서는 최고의 상위에 이른 자만이 만족할 수 있디. 한해 6~70만명의 초등학교 입학생 중 최후에 1% 미만 정도만 만족할 수 있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이들은 패배의식을 내면화 할 수밖에 없다. 대학입학 이후에는 취업전쟁에 매달려야 하는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정규직에 채용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현재 대졸취업 50%미만, 비정규직 60%, 채용규모 IMF 이후 300인 이상 기업 1만 5천 전후). 결국 수십년간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는 목표를 이룰 수 없으며 공부한 것을 써먹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불평등 구조 막대한 사교육비를 동원한 점수 따기 경쟁은 서민들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서는 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 계층에게 유리한 결과를 안겨줄 뿐이다. 노력과 자원의 과잉투자와 실패로 인한 고통과 상실감은 민중에게는 더욱 비참하게 다가온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에서 노동자가 자녀에 투자하는 사교육비 부담은 훨씬 크지만 서울대에 진학할 확률은 고급관리직의 3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소득상위계층 20%와 하위계층 20%의 과외·학원교육비 지출격차는 4.6배이며 해마다 오르는 대학교육비는 이미 보통의 노동자 임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1학기 평균 600만원)에 도달했다. 한 마디로 노동자, 민중은 온 몸을 바쳐 스스로 이 시스템의 언저리가 되고 이 차별 체제를 정당화시켜 주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노동자, 민중은 이런 잘못된 교육시스템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서 사회적 기회 박탈, 삶의 질 하락을 감수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빛좋은 개살구 마냥, 겉보기에 기회는 늘었을지 몰라도 불평등의 골은 깊어졌다. '더 많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을 가야 한다' 강박을 부추기며 유형, 무형의 에너지를 경쟁에 쏟아붓기를 강요하지만 막상 진정한 교육적 실현은 없다. 10년 간의 신자유주의 국가 교육 정책은 '국민의 교육권 실현, 확장'은 뒷전인 채 가진 자들의 입김대로 놀아나며 '교육권 억압, 구별 짓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고도성장이 벽에 부딪치고 계급구조가 굳어지면서 서민들의 똥통학교(?)와 귀족학교를 갈라치는 '불평등 교육체제'의 도입 압력이 전방위로 몰려든다. 한국에서 출구 찾기에 짜증이 난 부유층은 아예 '조기 유학' '미국시민권 획득'을 통하여 버젓이 별개의 트랙을 개설한다. 틈만나면 조중동은 해외 자본에게 공교육을 개방하고 평준화를 깨라는 협박을 일삼는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지만 깊어가는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대학은 민중의 등골을 빼먹는 비싼 등록금으로 장사를 일삼을 뿐, 고학력 실업자들을 양산하는 '취업 대기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총체적인 교육위기, 민중교육권의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더 이상 그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공교육의 틀을 바꾼다. 정부는 학벌주의와 대학서열구조라는 공교육의 주요모순을 외면한 채 국가 책임을 방기하고 '돈 많은' 소비자들의 천국으로 공교육을 사유화하려 한다. '혁신'을 외치면서도 낡고 낡은 수직적 관료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걸핏하면 학원과 학교를 비교하더니 사교육비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묘안은 공교육을 학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눈 뜬 장님이고, 욕심 많은 혹부리영감이며, 자신마저 길을 잃은 양치기소년이다. 더 이상 우리교육의 미래를 정부의 독단과 시장주의자들의 탐욕에 맡겨둘 수 없다. 공공성 강화 진영은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을 벌이며 내공을 키워왔다. 올해는 드디어 '공교육 새판 짜기'란 제목의 민중적 교육 대안을 제출하면서 담론지형에서 자기자리를 만들어냈다. 전교조 10만대오가 앞장서 정부와 대결하면서 교육시장화의 속도를 늦추었고 "WTO개방·시장화 저지, 공공성 강화"의 깃발아래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장주의 세력과 대등하지 못하다. 더 많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책기조를 바꾸어내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당당히 정책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활자화시켜낸 민중의 교육 대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문제가 교육만의, 교육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민중의 문제이다. 노동자, 민중이 '교육정책의 방향과 기조'를 둘러싼 싸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하반기 총 투쟁은 그 분수령이다! 1030 범국민대회, 1031 공공부문 노동자 연대 투쟁 하반기 투쟁은 범국민대회로의 총화라는 사업의 상이 그려진 상황이다.우리는 범국민대회를 민중이 교육권 쟁취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분기점으로 만들 것이다. {{{{투쟁단위 }}{{핵심저지사안 }}{{공세사안 }}{{공동 의제 }}{{전교조 }}{{교원평가, 지방직화 저지 }}{{입시제도 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교원 노동3권 쟁취)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사학청산법, 국립대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민주성에 입각한 사학법 개정 쟁취 입시제도개혁 (교육부안 폐기, 수능폐지·대학서열완화의 범국민적 공동입시안 마련) => 사교육 불평등 해소, 완전무상교육 실현 대학, 교원구조조정 저지하고 공공성에 입각한 대학 및 교원정책 수립의 전기 마련 }}{{공무원노조 }}{{국립대 민영화 저지 산학협동법 저지 }}{{노동3권 쟁취 }}{{교대, 사대 }}{{교사대통폐합 저지 }}{{임용고시 폐지 목적양성체제 수립 (법정정원확보) }}{{대학 (학생/교수노조/대학노조) }}{{대학구조조정 국립대민영화 저지 }}{{청년실업해소, 대학개혁 (사학법 민주적 개정) }}{{문화 }}{{문화예술교육 축소 반대 }}{{교육과정전면개편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 구성 }}{{시민사회단체 }}{{교육정책독점폐기 / 권력분점요구 }}{{기타 }}{{- 비상국민회의를 통한 상층전선형성 }}{{- 민주노동당 : 민중적 교육대안 사회 의제화(민중진영의 입시개혁안 등) / 지역투쟁 조직, 지원(평준화 해체 공세, 외국교육기관 유치 등) }}{{- 노동, 농민 진영의 민중교육권 (무상교육, 교육기회 평등 실현 등) 강력한 요구 제출 조직 등 }} }} 첫째, 순회토론회와 거리선전전을 지역 거점에서 벌이고 교육 부문은 물론 '현 정세를 돌파하는 사회공공성 투쟁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지역에서 만나는 주체들은 반신자유주의 공공성 강화투쟁의 주체로 조직할 것이다. 둘째,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입법 저지와 사립학교법의 개악을 막고 민주적 개정을 쟁취하기 위해 대국회 사업을 전개할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은 교육개방을 국정감사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범국민교육연대 정책단위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 교육상임위원들을 최대한 압박하여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이 저들 멋대로 처리되지 못하도록 일차 저지선을 만들 것이다. 셋째, 본고사를 부활시키고 고교등급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 뻔한 교육부의 입시안을 파탄내고 이를 공세적으로 대학서열화를 완화하는 입시안을 쟁취의 계기로 전환시킬 것이다. 이미 입시안은 사회쟁점으로 부상해 있으며 교육부는 고교등급제 시행 의혹이 사실임을 실토하고 말았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교육부 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세다. 입시제도 개혁은 교육운동의 숙원이다. 입시제도 개혁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로 기왕에 만들어진 교육부 입시안에 대한 반대흐름을 수능폐지, 국공립대 평준화의 방향으로 모아낼 것이다. 10월30일 범국민대회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향한 연대의 대오를 확인하고 이를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보여주는 장이고 선전포고를 하는 장이다. 용두사미 흐지부지 연대를 외치다가 "역시 연대는 중요하지만 어려워"라는 반성이 반복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우리는 모두 "공공부문의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PSSP 지금 범국민교육연대 투쟁기획단은 힘 있는 대회 성사를 위해 1030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지역별 토론회를 조직하고 있다. 10월 12일 조직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10월 12일 서울 지역 "반세계화 교육공공성 강화 토론회" 10월 13일 "노무현 정권 교육차별 정책 규탄과 올바른 입시제도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 10월 14일 경기 지역 "반세계화 교육공공성 강화 토론회" 10월 30일 3시 "WTO교육개방 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대회" 10월 31일 공공부문 노동자 대회
이나라를 재벌의 놀이터로 내줄수는 없다. 건설교통부가 21일 민간복합도시개발 특별법(속칭 기업도시법)안을 내놓았다. 기업 투자촉진과 건설경기 활성화가 법안의 주 목적이다. 법안의 핵심적 내용은 기업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도시를 개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를 위해 기업에게 토지수용권과 출자총액 제한 완화 등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다. 애초 전경련에서 지난 해 제출했던 기업도시 구상보다는 약화되었지만 건교부의 기업도시법안은 심각한 문제를 여럿 지니고 있다. 첫째, 기업에게 특혜를 주면 기업투자가 촉진되리라는 예상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 우리 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것은 소위 '기업환경이 안좋아서'라기 보다는 강화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투기성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자본주의의 금융화는 자본회전율이 떨어지는 산업투자보다는 단기 순이익 창출이 가능한 금융투자로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산업투자보다는 주로 금융투자를 통해 이윤창출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에 대한 특혜가 산업투자와 고용을 확대시킬 수는 없다. 둘째, 기업에게 부여된 특혜가 너무 과도하며, 이대로라면 한국은 재벌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부동산 거래에 있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토지수용권을 민간기업에게 준 점, 출자총액 제한 완화 등 각종 기업관련 규제를 완화, 혹은 해제하도록 한 점, 법인세, 재산세, 소득세 등 각종 세제감면 혜택을 준 점 등은 심각한 문제다. 명분은 투자유치를 통한 고용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이나 그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개발이익에 대한 독점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런 특혜는 과도하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고삐풀린 망아지에게 울타리까지 걷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셋째, 교육, 의료, 문화시설 등 사회 간접시설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이 사회의 공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전경련을 비롯한 기업집단들은 교육, 의료, 문화시설등에 대한 규제를 풀어 경쟁과 이윤의 원리로 이 사회를 재조직화하려 해왔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기업도시 안에서 대부분 들어주고 있다. 이는 교육, 의료, 문화 등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을 심각하게 침식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이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현재 정부와 기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법안은 투자 촉진이란 미명하에 한국을 대기업의 놀이터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기업도시 건설이 이땅 민중에게 가져다 줄 것은 아무도 없다. 이 나라를 대기업에게 통째로 내주려 하고 있는 기업도시 법안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쌀 관세화 협상, 농지법 개정, 추곡수매제 포기등의 정책들은 농업과 농민 생존권을 포기하려는 수순 아닌가? 도하개발의제가 개도국의 이익도 고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수사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난 8월 1일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 이사회에서 기본골격이 타결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살펴보고, 식량주권을 주장하며 투쟁하고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영어원문을 첨부합니다
*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2004년 7-8월호에 실릴 글을 약간 더 수정한 것입 니다. 그래프를 한글 파일에 덧붙이지 못해서, 영어 원문을 아래에 첨부합 니다.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Gerard Dumenil and Dominique Levy, The Economics of U.S. Imperialism at the Turn of the 21st Century. 2004, Cepremap, Modem, Paris. 출처: http://pythie.cepremap.ens.fr/levy/ (2004년 8월 11일 검색)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금관리기본법 개정과 국민연금 기금 활용 주장 지난 7월 18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 임시국회에서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처리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8월중에 통과시키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금관리기본법은 국민연금기금을 비롯한 여타 기금들의 운용에 관련한 법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기금의 주식투자 제한을 철폐하는 것에 있다. 현재 한국에서 운용 중인 연기금의 규모는 57개, 190조원 정도이다. 이 중에서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120조원 정도라고 했을 때,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한국 경제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노리고자 하는 바는 국민연금 기금의 활용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은 현재 규모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35년이면 경상가격으로 1,715조{{) 2000년 불변가격 기준으로 하면 2030년 645조에 달한다. 이 수치는 현행 제도에서, 즉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60%를 유지했을 때의 계산이다. 만약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연금 개정안이 통과되어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15.90%, 소득대체율을 50%까지 낮추게 되면, 수치는 더욱 커져, 2054년 경상가격으로 5,820조가 쌓이게 된다. }}에 달하게 된다. 이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이 일정 액수를 넘어 규모를 획득하게 되면서부터, 정부는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국민연금을 증시 안정화 대책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해왔다. 지금까지는 기금관리기본법에 막혀{{) 현행 기금관리기본법에 규정은 다음과 같다:【 기금관리기본법의 주식투자 금지조항 】 제3조(기금관리·운용의 원칙) ③공공기금의 기금관리주체는 당해 기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다. 다만, 당해 기금의 설치목적과 공익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공공기금의 기금운용계획에 반영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조항에 따라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의 약 9.05%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정부는 2003년 이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개정안의 내용도 이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규모 자체를 크게 늘리지는 못했고, 단지 이미 책정되어있던 주식시장 투자운용금액을 조기 집행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이 취해졌다. 하지만 정부나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100조가 넘는 거대한 자금이 주식시장에 투자되었을 때 가져올 효과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말은 빌리자면,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는 경제 살리기의 출발점"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자금원이 커졌다는 것에서만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남한 경제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심화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의 의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무엇보다 국민연금 기금의 효율적이고, 수익률 있는 운용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일단 적립되고 있는 기금이 있다는 현실에서 보자면, 이 기금은 대부분 자본시장에서 운용될 수밖에 없다.{{) 혹자들은 재정을 적립해서 사회적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화·세계화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저축으로 형성된 거대한 자본의 집합은 사회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게임규칙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게임규칙을 따라 움직인다. 시장은 그들의 안마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한 금융자본의 집합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윤여협, [남한 연금제도 개혁 비판], 월간사회진보연대 통권 30호, 2002년 11월 }} 현재 국민연금 기금이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것도 (자본시장의 일부인)채권이다.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채권이냐 주식이냐를 가르고, 채권만 허용하는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다. 현재 기금운용에서 가로막혀있는 분야가 주식시장이기 때문에 주식시장 투자 확대가 논란이 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소위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국민연금 기금의 투자 다변화(해외투자, 벤처투자 등의 대체 투자)를 역설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을 수익률을 높이며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금융 전문가들이 채권, 주식, 해외투자, 벤처 투자, 부동산, 공기업 민영화 프로젝트 등과 같이 수익률에 따라 자율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투자할 수 있게 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는 국민연금 기금을 본격적으로 자본시장에서, 금융 전문가들을 통해 '굴리기'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연금기금과 같이 소액의 갹출금이 모여서 일정한 규모를 가지게 된 기금(국민연금 기금은 이미 충분히 큰 규모다)의 특성 중 하나는 그 기금 자체가 비은행 금융기관의 지위를 획득하며, 유동성 원칙과 수익 극대화의 원칙을 따라 자신의 기금을 더욱 키우기 위한 자체증식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자체가 극심한 '투기 금융'의 주력부대가 된다. 더욱 다양한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 대상을 다변화하는 것은 금융기관이 수익률을 올리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이라고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번 하반기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국민연금법 개정안 중에는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을 금융 전문가들로 채우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국민연금 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와 더불어 금융 전문가들로 하여금 운용을 전담하게 하는 구상이야말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기금(이후에 도입될 퇴직연금의 기금도 포함하여)의 금융화를 촉진할 신호탄이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비롯한 자본시장에서의 전문적인 운용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주식투자 확대를 통해 부담해야 할 리스크(위험)는 굉장히 큰 반면, 주식투자 확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연금재정 안정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현재 재경부 등이 추진하는 대로 급격히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일 뿐이다. }} 이것은 지배계급과 주식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깎는 국민연금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험료 인상과 급여 삭감에 따라 앞으로 천문학적인 기금은 쌓이고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에서 활약하는 국민연금 기금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민중에게 돌아오는 것이 '국민연금 재정이 안정되어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안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면,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이 노리는 것은 단순히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것만은 아니다. 자본시장 발전, 기관투자가 육성, 기업지배구조 개선 며칠 전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누가 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라는 칼럼에서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이뤄왔던 국수주의에 대한 세계화의 승리가 정부의 우둔한 정책 때문에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다뤘다. 내용인즉슨, '외국인들이 한국의 주식시장에 상당부분(시가총액의 약 44%)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은 국채, 주택, 미국채권 등에 투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기관투자가들의 주식투자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려는 외국인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와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관투자가들의 자유로운 투자를 보장하고, '주주 자본주의'의 기반을 닦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자 활동을 늘리는 것이 한국 경제를 보존하며,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것이라는 충고가 주된 내용이다. 실제 이런 주장은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를 '경제 살리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구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열린우리당의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한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연기금 내에 주식투자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이 높은 인력풀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마다 연기금이 부양책으로 동원된다면 부실을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계획이 단순히 증시가 좋지 않을 때 기금을 동원하겠다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국 경제 전반의 체질을 변화시킬 출발점으로 보고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입장이 열린우리당의 계획의 핵심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한나라당도 기금의 주식시장 투자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을 밟아야한다는 것뿐이다. }} 그들 스스로가 말하듯이,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는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고, 기관투자가를 육성하는데 기반이 되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기업경영 감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역할들은 서로 맞물려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획득하며 부상한 집단 중 괄목할만한 것이 바로 기관투자가이다. 금융시장의 탈규제와 자유화, OECD와 세계은행 등이 추진한 연금개혁(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의 확대), 80년대이래 증가한 공공채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증가와 같은 조건들이 기관투자가들의 부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위탁받아 관리,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집중된 화폐자본의 양 또한 80년대 이래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는 곧 기관투자가들의 수중에 엄청난 양의 자금이 집중되어있음을 말해준다. 이들은 보다 높은 투명성, 기업 성과의 국제적 비교 가능성,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며 전지구적 행동반경을 갖는 투자자들이다. 만약 자신들의 요구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시장에서는 언제든 철수할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 관리되는 자본을 투하한 기업의 대주주로서 그들은 금융소유자의 이해를 크게 대변해야 할 압박에 놓인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압력을 경영진에게 행사한다(기업경영감시 활동).{{)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기업경영 감시활동을 벌이는 연금기금으로는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1987년 이후 해마다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회계투명성이 낮은 기업 10개를 '집중감시 목록'에 올린 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경영개혁을 요구한다. }} 이런 활동과정을 통해 추구되는 궁극적인 목표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이고, 이는 곧 기업의 목표 자체가 주식가치를 극대화하는데 맞춰지게 됨을 의미한다. 사실 이 전반의 활동은 그저 주식시장, 자본시장에서 활약하는 금융자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경제 전반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그 영향이 확대된다. 주식가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활동이란 것 자체가 고용을 창출하는 신규투자, 생산 투자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효율성 재고(구조조정, 다운사이징 등으로 나타난다), 금융적 팽창 과정이다. 산업자본의 논리 자체가 금융자본의 그것과 통합되며, 고용과 생산을 파괴하는 금융화는 가속화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 일컫는 과정의 중심부에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이 노동자·민중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효과도 익히 알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런 기관투자가들의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노동자·민중의 소득(임금, 노후소득 등)이라는 점이다. 결국 가계의 저축, 임금의 일부가 적립된 노후보장 기금, 보험금이 활용되어 오늘날 가장 투기적인 기관투자가들의 권력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연금기금의 역할은 막대한데, 실제 그 자체가 자본시장에서 막강한 기관투자가로 활동을 하기도 하고, 연금기금 일부를 또 뮤추얼 펀드와 같은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 위탁함으로써 기관투자가 전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통해 기관투자가 육성을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기금의 주식투자 제한 조치와 같은 법률적인 제한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과정의 발달이 지체되고 있었던 점이 있다. 미국과 같이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주식투자는 주식시장 전체의 50%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시가총액의 15.9%(2002년 말)를 차지하고 있다. 투자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주식시장 투자 자체가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고, 기관투자가들에게 기대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기업경영 감시 활동, 자본시장 발전과 같은 역할은 미비하다. 따라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노리는 효과는 단지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금의 수익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 자본시장 전체 그리고 나아가 한국 경제 전반에 파급될 것이다. 국민연금 폐지 논란의 진실 얼마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던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급속히 퍼졌고, 심지어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촛불시위까지 진행되었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이 커지자 언론은 서로 앞다투어 국민연금을 집중분석하네, 대안을 모색하네 호들갑을 떨며,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을 베껴내며 국민연금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도 국민연금에 대한 반감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국민들의 오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며, 이를 해명하고 몇몇 불합리한 조치들을 개선하겠다는 말로 국민연금 폐지 움직임을 달래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 입법부의 이런 태도는 그들이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니 오히려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연금개혁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번 국민연금 폐지 논란을 국민연금 제도와 원리에 대한 이해 부족, 과도하게 부풀려진 오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명백한 진실이 그 속에 있다. '국민연금반대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사연들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개중에 진실성이 없는 글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고의로 국민연금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부도 전 몇 달씩 체납한 보험료를 고스란히 자신의 책임으로 떠맡은 사람들, 생계에 쪼들려 카드빚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사람들, IMF 이후 실업-반실업 상태에서 국민연금 내기에 벅찬 사람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이런 사실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각종 보험, 적금과 같은 재테크 사업은 고사하고 국민연금조차도 제대로 낼 수 없는 민중들의 삶, 그 자체다. 그 누가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고 싶지 않을까? 그럼에도 수 십 년 후의 노후를 위해 현재의 삶 자체 자체를 담보로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까마득해 보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빈곤 속에서 혹은 죽음의 문턱에 매달려서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작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국민연금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는 기필코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개정안은 보험료를 현행 소득의 9%(직장가입자의 경우)에서 15.90%까지 올리고, 급여는 소득대체율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 사람은 더 많아질 테고, 노후에 보장받을 수 있는 연금조차 깎이게 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계속해서 국민연금은 축소하고, 주식투자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퇴직연금을 도입할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민중의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말이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논하는 연금개혁 논의에서 민중의 온전한 노후소득 보장은 이미 중요한 원칙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이란 적립된 그리고 적립될 기금을 활용하여 금융화를 촉진하는 것, 그에 따르는 위험과 노후보장에 대한 책임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폐지 논란이 불거져 나온 지 두 달 여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동안 각종 언론과 매체에서는 수도 없이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개혁, 새판 짜기를 주장했다. 미봉책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미봉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의 방향이 국민연금의 보장 부분을 축소하고 사적 연금을 확대하는 것, 연금기금을 자본시장에서 활용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해결책이 아니다. 이것은 민중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히려 현재의 빈곤을 노후까지 지속하는 악순환일 뿐이며, 그 책임을 개인에게 넘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연금기금을 주식시장에서 활용하고 그를 통해 금융화를 촉진시키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구조조정 속에서 민중의 삶은 파탄과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빈곤이 심화되고,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노후소득을 위한 저축까지 금융시장에 퍼다 부으며,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더욱 촉진시키는 것에 노동자민중이 동의해야 하는가? 그래서 노동자들의 자금이 오히려 주식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정리해고, 인력감축, 비용절감, 노동강도 강화를 요구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상황을 인정해야 하는가? 그렇게 스스로의 목줄을 옥죄고도 노후의 빈곤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야 하는가? 현재의 삶도 빈곤하지 않고, 노후의 삶도 빈곤하지 않길 바라는 민중의 바램이 논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이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투자 확대를 저지하는 방향성을 포함해야 하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싸움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할 따름이다. PSSP
번역: 임필수 정책국장 1. 서론 21세기초 미국 경제의 상황을 비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력과 정치적, 군사적 우월성은 1970년대 후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2000년 후반 성장률의 갑작스러운 위축, 뒤이은 경기후퇴, 주식시장의 붕괴는 1990년대 후반부에 비해 새롭지만 미국에게 덜 유리한 방향을 시사한다.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 커지면서 - 특히 외채, 가계와 국가의 채무 - 미국이 무적의 지도력을 유지할 능력이 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문제를 매우 단순화한다면, 질문은 이렇다. 2000년대 미국 경제가 강한가 아니면 약한가? 이러한 평가는 미국 제국주의 국제전략의 오만불손함[예를 들어 각국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전]을 검토하기 위해서 결정적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사반세기 이후 미국 권력이 굳건하다는 것을 표현하는가? 동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현 국면은 유럽의 상대적인 퇴보, 일본의 침체, 국제 자본에 대한 개방 이후 주변부 나라들에서 잇따라 재발한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아니면, 그것은[미국의 국제전략의 오만불손함] "순수하게" 경제적인 기초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쇠퇴한 것에 대한 반작용인가? 이러한 불확실성과 서로 다른 해석은 세기의 전환점에 있는 미국 경제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모호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뿌리를 둔다는 게 이 글의 주요 명제다. 1) 어떤 의미에서, 미국 경제의 세계적 지배력은 매우 강력하다.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 비(非)금융 초민족 법인기업의 장악력은 단단하며, 아마도 미국 금융기관의 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클 것이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거대하며 증가하는 소득이 창출되어, 미국 자본의 수익에 기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 제국주의는 실로 매우 상태가 좋다. 2) 문제는 미국 내에서 확실해진 "내부적" [경제] 추세변동과 그것이 대외 불균형에 초래한 결과들에 있다. 세계 경제에 대한 제국적 지배의 지속과 강화는 미국 국내 저축의 부단한 감소 - 증가하는 소비 성향의 표현 - 와 동시에 발생하였다. 이러한 변동은 가장 부유한 계층의 소득과 부가 증가한 것 - 이는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 의 결과였다. 이러한 변동은 미국의 소비가 완전히 상품 수입에 의존하게 될 정도에까지 이르렀고, 외국인의 금융투자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런 외국자본도 역시 수익이 주어져야 하고,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금융]소득을 이끌어 내야 한다. 미국 경제의 이 두 가지 양상, 즉 외국에 대한 지배력과 의존 사이의 인과관계의 방향을 확정하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며, 그 관계는 실로 상호적이다. 그 메커니즘이 어떻든 간에, 21세기 초반 미국 경제가 제국주의의 전통적인 속성인 상품과 자본의 수출을, 그것에 대칭적인 상품과 자본의 수입에 결합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제는 상품과 자본의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크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이후로 제국주의의 진로는 이 시기의 신자유주의의 특징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분리하는 것은 때로는 어려운 일이다. 2절은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와 같이 자본주의의 현재 단계를 분석하는데 유용한 몇 개의 기본적 개념들을 소개한다. 그 뒤에 네 절은 위에서 소묘한 분석을 상세히 다룬다. 3절은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소득을 얻어내는 능력을 설명하며, 미국의 국내 자본 소득이 점점 더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에서 유출되는 소득에 의존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4절은 미국에 대한 외국인투자와 비교한 미국의 해외투자의 주요한 특징들, 즉 투자의 구성과 수익률을 검토한다. 미 제국주의는 이 측면에서 매우 성과가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5절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소득의 흐름(유입과 유출)을 다루며, 미국이 보유한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의 금융자산과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내 금융자산에 대해 다룬다. 이 분석은 미국의 순국제투자가 세계적으로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6절은 이러한 악화가 신자유주의의 "국내적" 경제추이, 특별히 가장 부유한 계층의 점증하는 소비 성향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지난 10년 동안 미국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에서 기본적인 모순[문제점]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따른 것이지,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량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경제학을 다루는 이 연구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 특히 1980년대 초반 이후로 자명해진 과학기술의 변화와 이윤율의 새로운 경향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기본적 특징은 매우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G. Dum nil, D. L vy, 2001, 2004a, 2004b를 보라. }} 2. 21세기 전환점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미국 헤게모니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였다. 실로 (국민적, 국제적) 자유 시장이라는 변호론이자 이에 조응하는 국가의 경제문제에 관한 불개입으로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규정한다. 이러한 새로운 단계의 주요한 구성요소 중 일부는 자유시장 특히 국제자유무역의 강요, 기업의 관점에서의 고용과 해고의 자유,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순환과 관련된다. 하지만 이는 넓은 의미에서 국가 개입이 감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틀에서 국가는 그 안에서 지배계급의 권력이 표현되며 그것에 의해 그 권력이 집행되는 제도들의 집합이다. 명시적으로 정부의 일부로 언급되지 않는 제도들 역시 이러한 계급 권력의 행사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이러한 사례다. }} 어떤 점에서, 특히 화폐정책에서 국가기구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모든 나라에서 국가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요하는 주체다.{{)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이러한 과정에 대한 분석은 E. Helleiner, 1994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국제적으로 국제화폐기금(IMF)과 같은 기구들은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요하는 준-국가적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곳에서 노동자와 경영진에게 주주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규율이 부과되었으며, 대부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실질] 이자율이 상승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의 권력과 소득이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후 수십 년 동안 억제된 뒤, 그들의 권력과 소득이 다시 확고하게된 현실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세력배치다. 전후, 소수 부유한 가문으로의 부의 집중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상당히 감소되었다.{{) T. Piketty, E. Saez, 2003; E. Wolff, 1996. }} 1970년대 구조적 위기 동안 이자율은 인플레이션율보다 거의 높지 않았고, 기업의 배당금 지불은 낮았고, 주식시장은 하락하는데, 이는 가장 부유한 자들의 소득과 부를 더욱 침식하였다.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는 이들 계급의 상대적 쇠퇴의 모형을 역전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특히 미국에서 완전한 승리였다. 그 대가는 전 세계의 실업과 비참함이라는 점에서 실로 어마어마했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체계에서, 자본주의적인 소유는 증권(주식, 채권, 증서 등등)의 보유로서 표현되며, 자본가의 권력은 대부분 그들의 금융기관(금융지주회사, 투자회사 등)으로 이전된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지배계급의 지배는 강력하게 금융적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자본주의 소유자의 상층 부문과 그들의 금융기관들을 금융이라고 부른다.{{) G. Dum nil, D. L vy, 2004a (chapter 23)을 보라. }} 이러한 금융은 금융산업과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금융의 권력과 통제력은 모든 경제 부문 즉 비금융부문 뿐만 아니라 금융부문에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의 구별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담고 있지만, 위에서 정의한 금융의 방패 아래에서 그들간의 넓은 경제적 통합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러한 구분은 중심적이지 않다. 우리가 이해하는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단계를 뜻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초기 단계 이래로 항구적인 특징 중의 하나다 (특히 무역 분야에서). 제국주의 자체는 여러 다양한 단계를 거치지만, 제국주의를 규정하는 공통적이며 지속적인 특징은 가장 발전되고 지배하는 국가들이 세계의 덜 발전되고 취약한 지역으로부터 취하는 경제적 이득이다. 제국주의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은 매우 다른 발전 수준에 있는 나라들간의 상업적 경계를 그저 개방하라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경제적 강제와 모든 범주의 직접적인 폭력의 표출이다 - 이 둘을 분리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여러 조합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도, 제국주의는 식민주의처럼 - 식민주의는 제국주의의 한 형태다 - 다른 나라에 대한 노골적인 지배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요소는 지배당하는 나라에서 지배하는 국가의 이익에 유리한 경제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부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수단, 즉 해당 지역 지배계급과의 협력, [비협조적 정부의] 전복, 또는 전쟁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그러한 지배는 특정한 조건에 따라 이른바 "민주주의"나 독재 모두와 양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지배계급의 다양한 분파들은 그들의 내부적 모순을 어느 정도 표출할 수 있으며, 계급 권력은 사회적 타협, 특히 중간 계급과의 사회적 타협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지 않는다. }} 실로 국가는 지배국이나 피지배국에게 모두 결정적이다 [즉, 제국주의는 국가 간 관계를 매개로 주로 관철이 된다]. 제국주의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 집단의 문제다. 이러한 나라들간의 관계의 성격은 제국주의 각 단계들의 중심적 특징을 정의한다. 이러한 나라들은 개별적으로나, 또는 세계의 각 지역들을 통제하는 블록으로서 서로서로 대치할 수 있다. 21세기 초 국제 정세에서, 모든 주요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변부에 대한 관계는 제국주의적이다. 현재 제국주의 나라들간의 경쟁은 여전히 보편적이지만, 전쟁을 통한 노골적인 대결은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중심 특징이 더 이상 아니다.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 중에서 미국의 위치는 헤게모니적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반드시 2층 체계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즉 제국주의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며, 제국주의 나라의 지도자가 다른 제국주의의 구성원을 지배한다. 실제로 완벽한 위계구조가 논란거리인데, 이 위계구조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덜 강력한 나라를 지배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더라도, 별개의 나라와 국가들 사이의 분리는 명백하게 중심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거대 법인기업들이 다양한 나라들에 세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소유와 경영의 측면에서 특정한 하나의 국가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다국적"이라기보다는 "초국적" 법인기업이다. 각 국가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족적 이익의 증진에 몰두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이 그러하다. 각 나라의 "거시경제"는 매우 다른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살펴볼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거시적 제약은 서로 다르며 이는 중요한 차이를 낳고 있다.) 지배 계급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나라에 기반해 있으며, 그들이 세계 도처에 특히 세금 회피처에 그들의 투자자산을 분산시키려고 할 때조차도 그러하다. 전체적으로, 자본주의의 현재 단계의 특징은 자본가 계급들의 소득과 부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과정의 결과로서의 신자유주의며, 또한 세계의 나머지에 대한 지속되는 (또는 증가하는) 압력 때문에 제국주의며, 제국주의 국가들간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 때문에 미국 헤게모니다. 3.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소득의 획득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로부터 얻는 이득은 모든 일련의 메커니즘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에 대한 [미국의] 불변의 압력을 강조할 수 있다. 법인기업에 의한 미국의 해외직접투자(U.S. direct investment, USDIA) 이외에도, 미국의 경제주체들(가계, 법인기업, 연금, 뮤츄얼 펀드)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서 금융투자(정부채권, 회사채, 상업어음 등) 즉 포트폴리오 투자를 보유하고 있다.{{) 미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 BEA)에 따르면, "미국의 해외직접투자는 미국 투자자가 해외기업의 최소 10%의 소유권을 보유했을 때로 정의한다. 직접 투자자는 미국 모회사라고 부르며, 미국이 소유한 해외기업은 해외자회사라고 부른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해외직접투자가 아닌 모든 해외투자를 말하여, 현금 또는 당좌계정 형태의 통화를 제외한 증권, 은행대부, 무역신용, 정기예금 등을 포함한다. }} 다른 한편, 더 간접적인 메커니즘 역시 작동하는데 예컨대 다른 나라로부터의 "두뇌 유출"은 미국의 기술혁신 능력을 자극하고 기술변화의 조건을 개선하고 한다. 이 절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들을 다루며, 일련의 자료들 덕택에 그 영향을 다소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미국 기업의 이윤을 생각해보자. 국민계정체계{{) [역주] 국민경제전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 결과 및 국민경제전체의 자산과 부채 상황을 정리한 회계 기준 및 체계. 1968년 UN이 국제적으로 통일된 국민통계를 작성키 위해 마련했다. 기업의 재무제표에 비견되는 국민계정체계는 생산활동으로 발생한 국민소득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다룬 국민소득통계, 생산과정에서 상품의 투입 ·산출 내역을 분석한 산업연관표, 실물과 금융의 양측면에서 자금의 흐름을 기록한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 등 일정기간의 흐름을 나타낸 플로 계정과 일정 시점에서 국민경제가 갖고 있는 실물 및 금융자산, 부채를 모두 기록한 국민대차대조표 등 5개를 종합 정리한 것이다. }}는 미국의 초민족기업의 해외자회사가 얻은 이윤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이윤은 해외에 유보이윤으로 남을 수도 있으며, 이자나 배당의 형태로 모회사로 이전될 수 있다. 분명히 이런 범주의 이윤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생긴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첫 번째 범주를 해외직접투자로부터의 이윤(해외직접투자 이윤)이라 표시한다. 다른 이윤은 대부분 미국에서의 생산활동에서 얻은 것이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첫째, 이러한 이윤은 낮은 가격의 투입물(특히 원자재)로부터 발생하는 [잉여]이전으로부터 온다.{{) 이러한 혜택의 일부는 소비자에게도 끼쳐,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품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 둘째, 국내에 있는 미국 기업 역시 다른 나라에서의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현금의 이자나 배당을 얻는다. 앞서와 같이 세계의 나머지에서 생긴 이러한 이윤 부분을 구별하는 것은 불행히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윤 범주를 비-해외직접투자 이윤 또는 국내 이윤(NIPA{{) 경제분석국의 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s (국민 소득 및 생산 계정) }}의 분류법이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국내와 해외에서 얻은 이윤의 혼합물이다. 그림1) 해외직접투자 이윤/국내이윤, 세계나머지로부터의 총자본소득/국내이윤 (%) 세계나머지로부터의 총자본소득/국내이윤: (직선) 해외직접투자 이윤/국내이윤: (점선) 분모인 국내이윤은 미국 기업의 세금공제 후 이윤에서 해외투자를 통해 얻은 이윤을 제외한 것이다. 분자는 각각 해외직접투자 이윤(미국 초민족기업의 자회사가 얻은 이윤)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자본소득이다. 자본소득은 미국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의 투자로 얻은 모든 범주의 투자에서 얻는 총소득이다.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미 경제분석국 BEA) 참고로 2000년을 예를 든다면, 미국의 해외직접투자 이윤의 상대적 규모는 매우 놀랍다. 그것은 국내 이윤의 53%였다. 즉 다른 이윤의 절반이며, 이는 미국 기업이 이윤을 얻는 데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얻는 소득의 범주가 극적으로 중요함을 보여준다. 국내 이윤의 일부가 해외에서 얻은 이윤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제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이윤 획득의 영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림 1은 1952년 이후 국내 이윤에 대한 미국의 해외직접투자 이윤의 비율의 윤곽을 보여준다. 그림은 2차 세계대전 후 꾸준한 상승을 나타낸다. 이러한 상승은 점진적인 세계화를 반영하며, 1980년대 초반 이후에 급격한 변화가 발견되지 않는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신자유주의의 출현으로 가속화되지 않았고, 우리가 뒤에서 주장할 것처럼 오히려 반대다.{{) [역주] 뒤메닐은 여기서 세계화를 주로 "생산의 세계화"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금융적 세계화를 진정한 세계화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금융적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이후 급격히 진전되었다. }} 이제 모든 경로로 세계의 나머지로부터 얻는 금융소득 흐름의 합계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흐름은 모든 미국의 해외직접투자 이윤과 기업뿐만 아니라 가계나 기금과 같은 다른 경제주체들이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얻은 모든 소득을 포함한다. 국내 이윤에 대한 총자본소득의 비율은 2000년에 100%였다. 이는 훨씬 더 놀라우며, 미국에서 자본의 보상이 해외로부터의 소득 흐름에 얼마나 의존하는가를 나타낸다. 이러한 비율의 역사적 윤곽은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림 1은 1948년 이후 국내 이윤에 대한 총자본소득의 비율의 변화를 보여준다. 10%에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1978년 45%에 달하고, 신자유주의 20여 년 동안 급격히 상승하여 80% 정도의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이윤은 경기순환에 따라 변동한다. (미국에서 경제활동이 강력할 때 국내 이윤은 급격히 상승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이윤의 수치들을 어느 정도 조정하여 평활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림 1의 변수에서의 변동들은 이자율의 변동을 반영한다. 2000년의 100%는 가장 높이 도달한 퍼센티지였다. }}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1979년 이자율 상승이 이러한 증가의 주요한 원인이었고, 더 많은 배당소득이 이를 점차 보충하였다. 신자유주의는 해외로부터의 금융소득의 흐름을 어마어마하게 증대시켰으며,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 제국주의의 중심 특징이다. 4. 헤게모니의 유형 미국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관계는 분명히 상호적이다. 미국의 경제주체들 역시 해외 투자자에게 금융소득을 지불한다. 그런데 이는 미국으로의 금융소득 흐름의 유지와 증가의 중요성을 증대시킬 뿐이다. 이는 특히 유럽과 일본과 같은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우에 그러하다. 이번 절에서의 조사 대상은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해외투자[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의 투자] 중 구체적인 일부 측면, 즉 이들 나라들의 미국에서의 투자로 제한한다. 이 조사의 목적은 미국 이외 나라가 미국에 한 투자와 미국이 해외에 한 투자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미국에게 유리한 강력한 비대칭성이 명백히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앞 절에서 다룬 것처럼 외국으로부터 소득의 거대한 흐름을 벌어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 위치를 표현한다. 미국과 다른 나라의 첫 번째 차이는 다른 금융 투자에 대한 직접투자 비율이다. 이 비율은 미국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보다 두드러지게 큰데, 각각 50%와 20%다 (1952-2002년 기간 동안의 평균).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대규모 해외직접투자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나라였다. 두 번째 차이는 투자 수익률과 관련된다. 미국은 어떤 종류의 해외투자이건 간에 외국인이 미국에 투자할 때보다 훨씬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획득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가 제3의 나라에 투자해서 얻는 수익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림 2)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의 수익률, 외국인의 미국 내 투자자산의 수익률 (%)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 (직선) 외국인의 미국 내 투자자산: (점선) 변수들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채의 가치저하를 고려하여 수정되었다.{{) 직접투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 출처: 국제수지 계정 International Transactions Accounts (미 경제분석국 BEA);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BEA); 자금 흐름 Flow of Fund (미국 중앙은행 Federal Reserve) 그림 2는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과 외국인의 미국 내 투자자산의 실질수익률(real apparent rates of return)을 보여준다. "실질수익률"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채의 가치저하를 고려하여 수정한, 투자자산의 저량(stocks)에 대한 소득의 비율을 뜻한다. 다음의 내용을 주목하자. 1)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의 수익률을 살펴보자. 첫 번째 주목할 것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채의 가치저하를 고려하여 수정한 실질수익률은 상당하며, 전 기간 동안 평균 약 7.8%였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1980년대 초에서의 급상승이다. 두 소시기, 즉 1980년대의 이전과 이후의 평균 수익률은 각각 6.2%와 9.3%다. 2) 유사한 계단식 유형이 미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수익률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비록 1990년대 동안 이 수익률은 좀 더 감소하였지만. 하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두 수익률 사이의 차이다. 여전히 두 소시기의 수익률이 구분되는데, 수익률은 각각 1.8%와 4.5%이다(위 미국의 6.2%와 9.3%와 비교해 보라). 이는 미국보다 평균 4.7% 낮은 것이다. 3) 두 수익률 사이의 차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하지 않았고, 미국 헤게모니에서 불변의 특징처럼 보인다는 것을 주목하라. 반대로 1980년을 전후한 두 수익률 모두의 상승은 신자유주의 20여 년의 특징, 즉 높은 실질이자율과 배당 소득과 일치한다. 수익률 분석에서 그림 2의 주요 두 구성 요소인 직접 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를 구별하는 것은 흥미롭다. 여기에도 미국 경제와 외국 사이의 관계에 강력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1) 미국과 외국의 포트폴리오 투자의 수익률(역시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채의 가치저하를 조정한 후의 수익률)은 신자유주의 이전 시기, 1960-80년 동안 에는 매우 낮아서 미국과 외국의 평균 수익률은 각각 1.5%와 0.9%였다. 양자는 (1981-85년 동안 평균) 9.7%와 6.1%로 갑자기 상승했다. 그러나 이 범주의 투자 수익률은 점차 감소했다. 물론 미국의 감소폭이 더 적었다. 1981-2002년 동안 둘 사이의 수익률의 평균적 차이는 약 4.4%에 달한다. 2) 신자유주의에 앞서서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수익률은 (1960-80년 동안 평균) 9.9%에 달했다. 같은 기간 동안 외국인의 미국내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in U.S, FDIUS) 수익률은 그보다 낮아서 6.9%였다. 외국인의 미국내 직접투자 수익률이 1980년 이후 (2002년까지) 평균 2.8%로 붕괴했지만,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수익률은 유지되었다. (1981-2002년까지 평균) 격차는 6.4%였다.{{) R.J. Mataloni, 2000. 이 논문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볼 수 있다. "외국이 소유한 미국 기업에 관한 장기적 문제는 그 기업의 수익률이 왜 미국 기업보다 항상 낮냐는 것이다. 경제분석국(BEA)과 다른 이들의 이전 연구는 이 문제를 조사하였다." }} 미국은 자본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 수출되고 동시에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체계의 중심에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중심적 특징은 마르크스의 용어법에 따르면 미 제국주의가 대체로 대부업자와 대립하며,{{) 마르크스는 주식소유자를 종종 대부자와 함께 취급했다. }} 다른 나라의 자본 소유자를 대신하여 국제적인 "기능 자본가"(active capitalist)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제국주의 단계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의 중요성의 정도를 측정해 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 이와 대칭적으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자본가는 상당 정도로 미국 경제와 관련하여 대부자본가로서 행동한다. 다른 나라의 경제주체들은 그들의 투자자산을 민족적 위험이나 제약으로부터 보호하길 원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자본가의 이러한 동기가 드러나는 전형적인 실례는 산유국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부유층이 미국의 증권을 보유하거나, 외국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를 위해 미국 재무성 증권에 투자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대부자본 나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위험이 없고 유동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로 보상된다. 5. 해외유출의 복수 앞의 두절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이미지는 외국으로부터 소득을 획득할 수 있는 커다란 능력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미국에 투자할 때, 그들은 덜 효율적인 투자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절은 위에서 다룬 투자[직접투자] 수익이 아니라, 외국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금융소득 흐름의 총합과 그 역의 경우를 검토한다. 그리고 투자자산의 양을 검토한다. 이 분석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점차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림3) 미국이 얻은 소득(유입) /국내순생산, 미국이 지불한 소득(유출)/국내순생산 (%) 세계 다른 국가들로부터 미국이 얻은 소득: ( {{ }} ) 세계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이 지불한 소득: ( {{ }} ) 미국이 얻은 순 소득: ( {{ }} ) 순 소득의 양의 부호는 미국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게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이 소득을 얻었음을 뜻한다.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 미 경제분석국 BEA) 그림 1은 이미 미국 기업의 국내 이윤과 해외로부터의 총 금융소득 유입을 비교함으로써, 그 유입량의 규모와 그것이 신자유주의에서 급격히 상승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림 3은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제는 이 금융소득 유입액이 미국의 전체 생산(국내순생산, National Domestic Product;NDP)과 비교되고 있다. 이는 그림1보다 덜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윤은 국내 총생산의 단지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0년에 국내 세후 법인기업 이윤은 미국 법인기업의 순생산의 7.1%였다. 그리고 미국 법인기업의 순생산은 미국 국내순생산의 단지 61.6%다. }} 또한 그림 3은 또한 국내순생산에서 차지하는 유출액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시기는 3시기로 세분할 수 있다. 1946-1972년 동안 두 비율은 매우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유입은 0.5% 이하에서 1972년 1.3%로 상승했고, 유출은 0.6%로 상승했다. 이러한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1973-79년은 중간 시기로 나타나는데, 유입은 2.7%로 급격히 상승했고, 유출은 단지 1.5%만 상승했다. 그 결과 격차는 더 커졌다. 하지만, 이러한 유입의 증대는 다음 20여 년 동안의 높은 수치에 비하면 왜소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의 20여 년 동안(1980-2002), 1979년 이자율의 갑작스러운 상승 이후 국내순생산 대비 유입의 퍼센티지는 3% 이상의 고원지대까지 급상승했고, 그 주변에서 변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림 1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유출은 세 번째 시기에 고원지대로 묘사할 수 없고, 오히려 지속적인 성장의 시기로 묘사될 수 있다. 금융소득의 유출은 계속해서 상승했고, 점차 국내순생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최대로 2000년에 4.0%에 달했다). 그림 3의 세 번째 선은 유입과 유출 사이의 격차, 즉 미국으로의 순유입을 나타낸다. 이러한 순유입은 1973-80년 동안 상승했다. 분명히도 그 이후 새로운 전개방향은 이러한 1980년의 상승 추세의 중단이다. 그 이후 하강 추세가 명백해졌고 1.3%에서 0%로 또는 2002년 이후부터는 심지어 음의 값으로 떨어졌다. 2002년 이후로, 어떤 분기에는 미국이 외국인에게 얻은 것보다 외국인에게 더 많은 소득을 지불했다! 그림4)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서 미국의 투자자산/국내순생산, 미국에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투자자산/국내순생산 (%)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 ( {{ }} ) 외국의 미국 내 투자자산: ( {{ }} ) 순 외국의 투자자산: ( {{ }} ) 순 외국의 투자자산의 양의 값은 외국인이 미국에서 보유한 재산이 미국이 다른 나라에 보유한 재산보다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BEA); 자금 흐름 Flow of Fund (미국 중앙은행 Federal Reserve){{)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잡다한 부채의 여타항목의 통계치들은 조정하였다. }} 이러한 감소는 미국 경제의 대외 순국제투자의 명백한 악화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 그림 4는 미국의 경제주체들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서 보유한 총 투자자산 저량을 국내순생산 대비 비율로 보여준다. 1952-79년 동안 이러한 투자자산은 국내순생산의 약 10%였다. 그 후 이 수치는 1990년대 후반까지 18% 주변에서 변동하였다. 1995년에서 2002년 사이 이 비율은 18%에서 약 30%로 치솟았는데, 이는 해외금융투자의 새로운 물결의 신호를 나타낸다. 두 번째 곡선은 외국의 미국 내 투자자산의 변화를 보여준다. 1952년 이는 국내순생산의 5%에 달했으나, 미국이 보유한 재산보다 적었다. 하지만 이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1985년 두 개의 퍼센티지는 20%였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의 20여 년 동안 이 수치는 점차 증가하여 2003년에는 70%에 달했다. 두 수치의 차이, 즉 미국에 대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순 투자자산 저량 역시 그림 4에서 볼 수 있다. 이 순 투자자산 저량은 1985년까지 음의 값이었는데, 이는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이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자산보다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순 국제투자는 악화되었다. 2003년 초반 이 수치는 36%에 달했다. 비록 이 투자자산에 주식과 같은 다른 요소의 투자자산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 20여 년 동안 그러한 심각한 악화는 미국의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부채의 증가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그림 4의 총투자자산 저량에서 외국인의 미국 내 직접투자와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저량(그림 5)을 가려내는 것은 흥미롭다.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 직접투자는 총투자자산의 제한된 일부만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림 5와 4의 수직축 눈금들이 뚜렷이 구별된다). 외국인의 미국 내 직접투자와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전반적 추세는 명백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확대는 (불변가치로 측정한) 절대액수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순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측면에서도 1980년대 초반에 상당히 감속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에 관해서는 세계화를 가속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감속시켰다. 반대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1972년 이후 미국 내 직접투자를 상당히 증대시켰다, 그리고 그 두 액수는 1980년대 말에 실제로 같아졌다. 결국 1952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국내순생산의 11%까지 증가했던 미국의 순 해외직접투자 저량은 그림 5의 세 번째 선이 보여주듯이 갑자기 하락하여 1990년이래 이 하락한 수준에서 다소 고정되어 있다. 직접투자에 관한 외국의 따라잡기는 4절에서 설명한 수익의 하락과 병행하였다. 그 결과로 미국이 해외투자에서 벌어들인 소득은 [외국인에 의한] 미국 내 투자에 대한 대가로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게 지불한 소득보다 계속해서 더 컸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4 또는 5배였다). 이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이지, 신자유주의의 특별한 성격이 아니다. 그림5) 미국의 해외직접투자/국내순생산, 외국인의 미국내 직접투자/국내순생산 (%) 미국의 해외 직접투자: ( {{ }} ) 외국의 미국 내 직접투자: ( {{ }} ) 외국의 미국 내 순 직접투자: ( {{ }} )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BEA); 자금 흐름 Flow of Fund (미국 중앙은행 Federal Reserve) 그림 3과 그림 4의 비교는 세계적으로 모든 종류의 투자에 관해 외국의 금융소득의 순 흐름은 2002년 음수가 아니라 "단지" 0이었던 반면,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순 국제투자 저량은 두드러진 음의 값이라는 점을 밝혀준다. 이는 그림 2에서 보여진 것처럼 미국 투자자산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의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관측들은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의 중심적 메커니즘을 지적한다.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소득을 획득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 미국의 순 국제투자의 악화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즉 미국의 순 국제투자가 예를 들어 계속해서 0이었다면, 미국과 외국이 금융투자로 얻는 수익률의 차이 때문에,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획득하는 소득은 어마어마했을 것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 이는 국내순생산에 대비한 미국과 외국의 경제주체들 모두의 투자자산의 증대를 의미한다 - 에 의해 극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본의 순 수입국이 되었다. 여기에서 금융투자 수익률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만약 미국이 외국인에게 동일한 수익률로 지불했다면, 세계의 다른 국가들을 향한 금융소득의 순 흐름은 미국의 2003년 세금 공제 후 국내 이윤 총량과 거의 같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전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6. 신자유주의-신제국주의와 소비의 흥청거림 이번 절은 미국의 순국제투자가 점진적으로 악화된 원인과 외국인투자가 미국의 소비와 축적에 끼친 영향을 검토한다. 그림6) 순저축/국내순생산, 순고정자본투자/국내순생산 (%): 미국 경제 전체 순저축률: ( {{ }} ) 순고정자본투자율: ( {{ }} ) 고정자본투자는 국내 기업의 투자다 (사적, 국내, 고정, 비주거용 투자). 소비는 국내 소득에서 모든 다른 지출을 뺀 것이다.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경제분석국 BEA); 자금 흐름 Flow of Fund (미국 중앙은행 Federal Reserve) 그림 6은 미국 경제 전체의 저축률의 윤곽을 보여준다. 이 비율의 분자인 저축은 총 수입에서, 모든 기업에서의 고정자본투자(사적부문의 국내 고정자본 투자 중 비주거용 투자)이외의 모든 상품과 재화에 대한 지출을 뺀 부분을 말한다. 분모는 순 국내생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가 시작되려 할 때까지 저축률은 평균 약 4.5%(1952-1979) 정도에서 오르내렸음을 볼 수 있다. 그 후 1% 가량으로 갑자기 하락했고, 경기후퇴 동안에는 그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미국경제가 신자유주의 시기에 철저하고 갑작스럽게 변태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림 6은 고정투자율도 보여준다. 이 고정투자율은 신자유주의 20여 년 동안 저축률보다는 덜 감소하긴 하였지만, 1952-79년 동안은 평균 4.1%에서 그 이후에는 평균 3.5%로 되어 그 감소가 적지는 않다. 저축과 투자의 차이는 경상수지와 같으며, 미국의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순국제투자의 변화량과 같다. 이것들은 회계 항등식들이다.{{) 여기서 GDP(국내총생산)는 미국[국경 내]의 총생산의 가치액이다. 그것은 소비, 실물 투자, 수출을 더한 것에서 수입을 뺀 것이다. GNP(국민총생산)는 GDP에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소득의 순 흐름을 더한 것으로, 곧 총소득이다. GNP = 소비 + 실물 투자 (고정자본투자 + 재고 변동) + 수출 - 수입 + 외국으로부터의 소득 -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 그리고 저축은 총소득과 소비의 차이다. 따라서, 저축 = GNP - 소비 = 실물 투자 + 수출 - 수입 + 외국으로부터의 소득 -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 따라서 (원조와 같은 일방적인 이전을 사상한다면) 다음과 같은 식을 얻을 수 있다. 저축 = 실물 투자 + 경상수지. }} 그림 7) 저축률/국내순생산 (%): 가계와 정부 가계: ( {{ }} ) 정부: ( {{ }} ) 정부에게 저축은 재정수지와 동일하다. 출처: 국민소득 및 생산 계정 NIPA(경제분석국 BEA) 저축률의 감소는 가계와 정부의 행동이 결합된 효과다. 그림 7은 가계와 정부의 저축률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앞과 뒤의 20여 년 동안 날카로운 변화를 볼 수 있다. 1952-82년 동안 가계의 저축률은 6%에서 8%로 성장했다. 그 후, 2000년대 초반 약 2%로 감소했다.{{) 가계 그 자체와 (비법인 분문에서의) 자영업자의 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가계와 비법인기업 부문을 함께 고려할 때 비슷한 윤곽[저축률의 감소]을 관찰할 수 있다. }} 세계대전 이후로 정부의 저축은 거의 예외 없이 음의 값(적자)을 유지했다. 하지만 1980년대 전반부 동안 적자는 엄청나게 증가하여 국내순생산의 6%에 달했다. 이는 그림 6에서 보인 1980년대 초반 저축률의 감소를 설명한다. 이러한 적자는 실질 이자율의 상승, 대규모 군비증가 (레이건의 "스타워즈"), 세율의 축소, 낮은 성장 (약한 세입) 등이 결합한 효과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후반부 활황 동안 극적으로 역전되어, 경기후퇴 전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가계의 저축률의 지속적인 감소는 수수께끼다. 연방준비이사회의 연구는 소득 상위 20% 그룹 가계만의 저축 성향이 감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D. Maki, M. Palumbo, 2001. }}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득이 가장 증가한 그룹이 더 많이 지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출의 수요는 실제 소비와 특히 주택구입을 위한 것이었다. 가계의 가장 부유한 계층의 소비 성향의 증가는 미국 저축률의 감소와 이에 상응하는 대외 적자의 주요하며 지속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의 지배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소비의 흥청거림은 불가능했거나 또는 미국의 낮은 축적율과 달러 하락에 따라 미국 경제의 상대적인 쇠퇴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특별한 거시경제적 상황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미국경제를 제약하지 않는다. 외국인은 미국 국제 수지의 불균형이 증가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달러 지불을 받아들이고, 미국 경제에 투자할 달러를 보유한다. 달러의 환율은 2002년 초반까지 변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달러는 실제로는 다른 나라 통화에 대해 상승하고 있었다.) 커다란 수요가 수입을 자극하고, 국내 공급능력에 압력을 가해 [공급능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감소하였다. 미국의 화폐정책은 너무 엄격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유럽에의 상황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점이다. 외국인이 달러를 통한 지불을 계속 받아들인다고 가정한다 해도, 이러한 추세의 영속화를 허용하는 메커니즘 - 외국인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서 이끌어낸 달러구매력을 미국에 투자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 - 은 장기적으로 볼 때 역시 모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외국인의 투자에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이긴 하지만). 따라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 금융소득의 유출이 야기되는데, 이는 미국의 자본 소유자들의 전체 소득이 점차 감소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례적으로 높은 소비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다. 결론 앞 절에서 설명한 메커니즘은 신자유주의 시대 미국 제국주의의 장기적 과정에서의 모순을 설명한다. 거대한 자본소득 (세계의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유입을 통해 커졌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화폐정책 * 부유계급의 소비 증대 * 경상수지 적자 증대 * 외채 증가 * 외국으로의 거대한 소득 유출 * 국내 자본소득의 감소 만약 이러한 고리가 무한정 연장된다면, 이는 점차 미국 자본가 계급의 소득과 부를 빼앗을 것이며, 이는 저축하지 않는 계급에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결과다. 미국의 권력은 분명히 침식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자본주의의 미래일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새로운 궤적의 정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위의 고리에서 문제는 신자유주의이지, 상처입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미국 제국주의적 역량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이 때문에, 우리는 미국 경제와 사회가 더욱 눈부신 발전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국면, 즉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단계 또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는 구분되는 현상이며, 제국주의는 실로 신자유주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은 케인즈주의 타협이라고 부르는 시기 동안에도 이미 제국주의였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에서 발견되어야 할 중심적 요소는 분명하게도 부유한 가계의 지출감소, 국내 시장을 향한 수요의 방향전환, 국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보다 큰 축적률이다. 이러한 경로를 설정하는 것은 확실히 가능하다. 비록 그것이 다음과 같이 동시에 추구되어야 할 복수의 모순적인 목표 때문에 도달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1) 기업 내에 이윤을 유보하는 것은 부유한 가계의 소득을 줄이고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그것은 더 낮은 이자율과 더 적은 배당금 지불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유형의 자본주의 복원이라는 근본적인 신자유주의적 목표와 모순된다. 2) 달러 하락은 국제수지 적자를 정정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이는 미국의 금융적 지배와 효율적인 제국주의 권력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미국의 능력과 모순된다. 무역 장벽은 또 하나의 도구지만, 외국이 보복할 게 명백하기 때문에 세계적 지배의 유형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궤적을 향한 변화에서 거시경제[정책]은 항상 제약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가계소비의 자극은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 경기후퇴나 더 극적인 위기를 회피하는 - 중심 요소다. 바로 여기가 [소비감소로 인한] 경제위기와 연관을 맺는 곳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계속해서 유예되고 있는 파국의 시작이라기보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항상적인 위협과 방해물의 의미를 갖는다. 결과는 국내적, 국제적 정치세력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자본소득의 흐름, 특히 연금 기금을 통해 이득을 얻는 중산층 이상 계급들과의 "신자유주의 타협"이 깨질 수 있으며, 이는 대체로 민중들에 대한 억압을 증대시킬 것이다. 이런 경우 신자유주의에서 지배계급이 역사적으로 노력해온 목표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적" 지배와는 점점 더 거리가 먼 방식에 의해서만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신자유주의로부터 절연한 근본적인 변화를 수행할 수 없다면 그러할 것이며, 이것은 "투쟁"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도 유사한 대결이 진행 중인데, 그 속에서, 민중들과 [주변부] 정부들의 저항들이 - 여전히 다소 온건하지만 -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증대시키려는 [미국의] 기도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요소다.{{) 우리는 과학기술과 이윤율의 새로운 경향과 같은 다른 메커니즘은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본 연구의 지평을 넘어서지만, 중요한 요소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이윤율이 상승하는 경향이 지속될 것인가 또는 중단될 것인가는 결정적인 문제다. }} 참조 Bernanke B.s., Blinder A., 1992, "The Federal Funds Rate and the Channels of Monetary Transmission",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82, num. 4, pp. 901-921. Dum nil G., L vy D., 2001, "Costs and Benefits of Neoliberalism. A class analysis",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Vol. 8, num. 4, pp. 578-607. Dum nil G., L vy D., 2004a, Capital Resurgent. Roots of the Neoliberal Revolu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Boston Dum nil G., L vy D., 2004b, "Neoliberal Dynamics: A New Phase?", Forthcoming in XXX.. Helleiner E., 1994, States and the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 From Bretton Woods to the 1990s, Cornell University Press, Ithaca, London. Lenin V.I., 1916,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Foreign Language Press, 1973, Peking. Maki D., Palumbo M., 2001, Disentangling the Wealth Effect: A Cohort Analysis of the Household Saving in the 1990s, Federal Reserve, Washington. Mataloni R.J., 2000, An Examination of the Low Rates of Return of Foreign-Owned U.S. Companies, Survey of Current Business, March. Piketty T., Saez E., 2003, "Inequality in The, 1913-1918",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CXVⅢ, num 1, pp. 1-39. Wolff E., 1996, Top Heavy, The New Press, New York.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