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논란의 본질과 지배세력의 노림수 지난 7월 21일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와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과거 안기부의 도·감청 테이프(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그리고 관련된 두 고위관료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김상희 법무차관의 낙마는 X-파일의 잠재적 폭발력을 가늠케 한다. 초기 검찰의 수사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유무와 X-파일의 유출 경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노회찬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근거로 전·현직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이제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배세력 사이의 진실게임 공방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이 서로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운동진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정세는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모는 남한 사회구조의 모순을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의 원한을 동원하는 문제제기 방식과 억압적 국가기구를 동원하는 사법적 해결방식에 운동진영이 의존하는 것은 현재 지배세력의 정치적인 행동방식과 어떤 차별점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X-파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은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을 사법적 수단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을 지배세력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가 되게 한다. X-파일 공방: 부패한 구세력과 ‘개혁세력’ 간 대결구도의 재현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지배블럭을 형성했던 낡은 구정치인들과 이들과 유착관계로 얽혀있는 세력과 이들을 ‘청산’하겠다는 개혁세력 사이의 대결구도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 대립의 정점에 서있는 세력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남한의 각 부문에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재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익만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총액은 7월말 현재 92조 378억원으로 주식시장에서 무려 1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이 현재 X-파일의 당사자로서 한겨레신문과 MBC, 열린우리당 일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그동안 삼성은 현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현재 삼성과 舊세력의 또 다른 축인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며 X-파일의 공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대결구도는 순식간에 한편으로는 삼성재벌과 한나라당,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세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 민중이 배제된 지배세력 상호간의 분열양상으로 압축되었다.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과 신자유주의가 공명(共鳴)하는 방식 부패하고 낡은 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은 남미 인민주의 세력의 집권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치행태다. 인민주의는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인민의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엘리트와 기득권세력으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공공의 적’을 발명하고 악마화한다(이를 ‘원한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1) 남미 인민주의 정권들은 노무현정권이 보여준 현란한 정치감각의 선례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과 복지확충을 약속하며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축출된 볼리비아의 구티에레즈 정권이나 브라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올랐다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PT당의 룰라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자유무역협정 을 추진하는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변모했고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남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연원은 1960-70년대 재야세력과 야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재야세력은 정권의 반공-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념을 갖추지 못했고 사회운동의 토대를 결여한 채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민중’이라는 모호한 수사에 의존했다. 1971년 대선 패배 뒤 재야세력과 연대했던 DJ는 낙후한 호남지역 대중들의 불만과 원한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했다. 재야세력은 남한사회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결여, 사회운동의 토대 부재로 인민주의 정치의 주요 특징들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민주의 통치스타일은 1997년 외환위기와 IMF-외환위기, DJ의 신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인민주의적으로 관리·봉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구여권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재벌의 ‘족벌경영’ 체제는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DJ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정권교체의 당사자로 기록된다. DJ 집권 시 국난극복의 돌파구로 지배세력이 선택한 것은 '정권 인수위원회'를 활용한 비상 대권, 의회의 무력화,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에 대한 미디어 선동이었다. 또한 조·중·동을 겨냥한 수구언론 세력에 대한 비난과 15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낙선·낙천운동’ 역시 구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을 통해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쟁점을 통해 조직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친일·독재·부패세력으로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구세력을 ‘수구보수’로 정의하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항일·민주화운동·개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우회적으로 정당화한다. 개혁세력은 구래의 제도와 정치집단에 대한 청산작업에서 1980년대 민중의 민주주의운동의 쟁점을 전도하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가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벌해체와 정경유착을 둘러싼 사이비 논쟁이다. 당초 1980년대 정경유착에 대한 고발과 (독점)재벌해체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폭압적인 파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중을 수탈하는 독점자본의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남한 자본주의 구조를 변혁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변혁적 맥락은 사장되고 각각의 쟁점은 중심부 금융시장에서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부정부패 근절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의제로 탈바꿈되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진보’로 포장되어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당시의 ‘재벌해체’는 소액주주(기관투자자, 초국적 자본 등)의 권리 확보와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것으로서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과거의 구습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개혁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을 분리하는 원내정당화와 미디어로 제한된 선거운동으로 나타난다.2) 이러한 ‘개혁’은 정치비용 절감, 정책토론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실상은 정치의 미디어화와 전문가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은 초민족적 자본으로 거듭난(?) 삼성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 미달한다. 현재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동반하지 않는 부분적인 ‘인적 청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청산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직후 민중들이 제기한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와는 반대로,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배세력 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는 활용될 뿐이다. 해방공간(1945-48)에서 민중들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는 일제와 결탁한 대지주·자본가·지식인에 대한 단죄 뿐 아니라 새로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인 발전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극히 정세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혁세력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대한 전폭적 지지나 노동자·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의 한반도 정책과 노동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세력의 과거사 청산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노림수일 뿐이지 않는가? 어떻게 그들이 과거사 청산을 제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X-파일이 공개되고 관련자가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주체로서 민중의 입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대중들의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개혁세력이 승리하더라도 단지 특별법/특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적이고 사법적인 해결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정서적인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의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기관을 경유하며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기관은 현재의 지배-착취구조를 전제한 상태에서 법 논리 내에서의 ‘일탈’을 규제할 뿐이다. 사법적 문제해결은 X-파일이 단지 그 일부분에 불과한 남한사회의 총체적인 위기와 모순에 대한 민중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이야말로 거대한 부정과 기만이다! ‘과거사 청산’,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 등 현재 집권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구상들은 시민운동 진영을 규합하며 이른바 ‘진보’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구상들의 공통점은 과거와 현재의 집권세력을 ‘청산의 대상’과 ‘청산의 주체’로 부당대립시키며 현재 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참여정부 전반기 보고서>의 결론으로 제시된 “정치적 분열과 소모적 정쟁 고착화시키는 지역구도 극복”이나, “적대적 역사에서 비롯된 분열 요인, 과거사 정리로써 해소”한다는 발상에서 현재 남한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역주의’와 ‘과거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는 단지 군사독재정권에게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에 대해 ‘호남소외론’을 제기하면서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과거 야당세력(현 집권세력)의 책임은 면제될 수 있는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배세력이 설정하는 ‘공공의 적’에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수구보수’ 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에서 나타났듯이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대기업 노동자의 특권 양보=전체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하면서, 불황과 위기의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빈곤과 실업, 노동의 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무능력이다. 이번 〈X-파일 공대위〉 결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오히려 민중운동 일부가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사법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에 의존하는 운동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구래의 특권세력과 집단에 대해 지배세력이 조직하는 ‘원한과 분노’를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해 지지·협력하는 것은 큰 오판이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운동진영은 정권의 전략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공명하면서 현존하는 지배세력 사이의 허구적인 구분과 대립구도에 무비판적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쟁점을 은폐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지형을 전변시켜야 한다. ‘개혁’과 ‘진보’라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수사에 사로잡혀 정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겠다는(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발상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실천들과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한 민중운동의 정치적 복권을 전제하지 않은 채 미디어가 유포하는 ‘공공의 적’을 앞장서서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를 ‘재주 부리는 곰’으로 만들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배세력의 가장 큰 비리와 부정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체제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이끌어내는데 일치단결하며 폭력과 기만을 활용한 자본-국가의 ‘합법적’ 결탁이 아닌가? 그들은 최저임금제, 자유무역협정 체결, 구조조정의 강행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중을 수탈해오지 않았던가? 공적자금 조성, 구제금융,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양정책 등 사적 자본과 부유한 계층을 살찌우는 ‘합법적’ 정책을 통해 엄청난 부와 자산을 자본이 향유하게 된 게 아닌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규명하는 방식이 현존하는 착취와 수탈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괴리되고 단지 과거 몇몇 개인들의 부정행위를 들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성과는 민중과 운동진영의 몫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과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인 남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3) 1) 인민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에 대한 반정립이다. 인민주의는 현대적인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정당화할 때 출현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조직한다. 인민주의는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하고 대의제를 통해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권력의 원천인 인민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각각 보수주의·자유주의와 구별된다. 하지만 여기서 인민은 개별적인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조화롭고 동질적인 유기체로서 적에 대한 배제와 공격을 통해 부정적으로 구성되는데 ‘인민의 의지’를 체현하는 것은 카리스마를 지닌 초월적 권력자이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의 수사를 구사하는 인민주의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거부함으로써(정치의 부정)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민족)공동체 내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적 주체의 형성, 현존하는 착취구조의 변혁을 동반함으로서 인민주권을 급진화하는 사회주의와 대립한다. 본문으로 2) 17대 총선에서 적용된 개정된 선거법은 “선거인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야간연설·연설장소·호별방문·행렬·확성장치의 사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방송광고·신문광고·방송연설·경력방송·대담·토론회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 3)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239호) 권종술 기자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X-파일의 공개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혼란이지만 전체 국민들에게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한다. 삼성의 정경유착, 테이프 공개, 국정원 해체, 불법 도감청 문제 등 이번 엑스파일을 통해 우리는 부도덕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거대언론, 그리고 재벌들의 추악한 치부가 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대중투쟁으로 X-파일을 공개하고 기득권세력을 공격한다는 전략은 과거 기득권 세력의 치부가 현재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X-파일 논란의 본질과 지배세력의 노림수 지난 7월 21일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와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과거 안기부의 도·감청 테이프(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그리고 관련된 두 고위관료인 홍석현 주미대사와 김상희 법무차관의 낙마는 X-파일의 잠재적 폭발력을 가늠케 한다. 초기 검찰의 수사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유무와 X-파일의 유출 경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노회찬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근거로 전·현직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이제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기 그지없는 지배세력 사이의 진실게임 공방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이 서로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운동진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정세는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모는 남한 사회구조의 모순을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의 원한을 동원하는 문제제기 방식과 억압적 국가기구를 동원하는 사법적 해결방식에 운동진영이 의존하는 것은 현재 지배세력의 정치적인 행동방식과 어떤 차별점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X-파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은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을 사법적 수단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을 지배세력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가 되게 한다. X-파일 공방: 부패한 구세력과 ‘개혁세력’ 간 대결구도의 재현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의 지배블럭을 형성했던 낡은 구정치인들과 이들과 유착관계로 얽혀있는 세력과 이들을 ‘청산’하겠다는 개혁세력 사이의 대결구도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번 국면에서 대립의 정점에 서있는 세력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남한의 각 부문에 은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재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익만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총액은 7월말 현재 92조 378억원으로 주식시장에서 무려 1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이 현재 X-파일의 당사자로서 한겨레신문과 MBC, 열린우리당 일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그동안 삼성은 현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현재 삼성과 舊세력의 또 다른 축인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며 X-파일의 공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대결구도는 순식간에 한편으로는 삼성재벌과 한나라당,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세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 민중이 배제된 지배세력 상호간의 분열양상으로 압축되었다.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과 신자유주의가 공명(共鳴)하는 방식 부패하고 낡은 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은 남미 인민주의 세력의 집권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치행태다. 인민주의는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인민의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을 조장하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엘리트와 기득권세력으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공공의 적’을 발명하고 악마화한다(이를 ‘원한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1) 남미 인민주의 정권들은 노무현정권이 보여준 현란한 정치감각의 선례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과 복지확충을 약속하며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축출된 볼리비아의 구티에레즈 정권이나 브라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올랐다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PT당의 룰라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자유무역협정 을 추진하는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변모했고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남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연원은 1960-70년대 재야세력과 야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재야세력은 정권의 반공-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념을 갖추지 못했고 사회운동의 토대를 결여한 채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민중’이라는 모호한 수사에 의존했다. 1971년 대선 패배 뒤 재야세력과 연대했던 DJ는 낙후한 호남지역 대중들의 불만과 원한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했다. 재야세력은 남한사회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결여, 사회운동의 토대 부재로 인민주의 정치의 주요 특징들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민주의 통치스타일은 1997년 외환위기와 IMF-외환위기, DJ의 신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인민주의적으로 관리·봉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구여권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재벌의 ‘족벌경영’ 체제는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DJ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정권교체의 당사자로 기록된다. DJ 집권 시 국난극복의 돌파구로 지배세력이 선택한 것은 '정권 인수위원회'를 활용한 비상 대권, 의회의 무력화,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에 대한 미디어 선동이었다. 또한 조·중·동을 겨냥한 수구언론 세력에 대한 비난과 15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낙선·낙천운동’ 역시 구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을 통해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쟁점을 통해 조직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친일·독재·부패세력으로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구세력을 ‘수구보수’로 정의하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항일·민주화운동·개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집권세력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우회적으로 정당화한다. 개혁세력은 구래의 제도와 정치집단에 대한 청산작업에서 1980년대 민중의 민주주의운동의 쟁점을 전도하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가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벌해체와 정경유착을 둘러싼 사이비 논쟁이다. 당초 1980년대 정경유착에 대한 고발과 (독점)재벌해체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폭압적인 파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중을 수탈하는 독점자본의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남한 자본주의 구조를 변혁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변혁적 맥락은 사장되고 각각의 쟁점은 중심부 금융시장에서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부정부패 근절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의제로 탈바꿈되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진보’로 포장되어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당시의 ‘재벌해체’는 소액주주(기관투자자, 초국적 자본 등)의 권리 확보와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것으로서 금융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과거의 구습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개혁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을 분리하는 원내정당화와 미디어로 제한된 선거운동으로 나타난다.2) 이러한 ‘개혁’은 정치비용 절감, 정책토론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실상은 정치의 미디어화와 전문가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은 초민족적 자본으로 거듭난(?) 삼성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 미달한다. 현재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동반하지 않는 부분적인 ‘인적 청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청산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직후 민중들이 제기한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와는 반대로,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배세력 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는 활용될 뿐이다. 해방공간(1945-48)에서 민중들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는 일제와 결탁한 대지주·자본가·지식인에 대한 단죄 뿐 아니라 새로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인 발전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극히 정세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혁세력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대한 전폭적 지지나 노동자·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의 한반도 정책과 노동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세력의 과거사 청산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얄팍한 노림수일 뿐이지 않는가? 어떻게 그들이 과거사 청산을 제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X-파일이 공개되고 관련자가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주체로서 민중의 입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대중들의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개혁세력이 승리하더라도 단지 특별법/특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적이고 사법적인 해결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정서적인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의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기관을 경유하며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국가기관은 현재의 지배-착취구조를 전제한 상태에서 법 논리 내에서의 ‘일탈’을 규제할 뿐이다. 사법적 문제해결은 X-파일이 단지 그 일부분에 불과한 남한사회의 총체적인 위기와 모순에 대한 민중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이야말로 거대한 부정과 기만이다! ‘과거사 청산’,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 등 현재 집권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구상들은 시민운동 진영을 규합하며 이른바 ‘진보’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구상들의 공통점은 과거와 현재의 집권세력을 ‘청산의 대상’과 ‘청산의 주체’로 부당대립시키며 현재 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참여정부 전반기 보고서>의 결론으로 제시된 “정치적 분열과 소모적 정쟁 고착화시키는 지역구도 극복”이나, “적대적 역사에서 비롯된 분열 요인, 과거사 정리로써 해소”한다는 발상에서 현재 남한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역주의’와 ‘과거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는 단지 군사독재정권에게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다. 남한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에 대해 ‘호남소외론’을 제기하면서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과거 야당세력(현 집권세력)의 책임은 면제될 수 있는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배세력이 설정하는 ‘공공의 적’에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수구보수’ 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에서 나타났듯이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대기업 노동자의 특권 양보=전체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하면서, 불황과 위기의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빈곤과 실업, 노동의 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지배세력의 인민주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무능력이다. 이번 〈X-파일 공대위〉 결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오히려 민중운동 일부가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사법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에 의존하는 운동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구래의 특권세력과 집단에 대해 지배세력이 조직하는 ‘원한과 분노’를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해 지지·협력하는 것은 큰 오판이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운동진영은 정권의 전략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공명하면서 현존하는 지배세력 사이의 허구적인 구분과 대립구도에 무비판적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쟁점을 은폐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지형을 전변시켜야 한다. ‘개혁’과 ‘진보’라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수사에 사로잡혀 정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겠다는(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발상과 이로부터 도출되는 실천들과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한 민중운동의 정치적 복권을 전제하지 않은 채 미디어가 유포하는 ‘공공의 적’을 앞장서서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를 ‘재주 부리는 곰’으로 만들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배세력의 가장 큰 비리와 부정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체제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이끌어내는데 일치단결하며 폭력과 기만을 활용한 자본-국가의 ‘합법적’ 결탁이 아닌가? 그들은 최저임금제, 자유무역협정 체결, 구조조정의 강행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중을 수탈해오지 않았던가? 공적자금 조성, 구제금융, 주식시장과 부동산 부양정책 등 사적 자본과 부유한 계층을 살찌우는 ‘합법적’ 정책을 통해 엄청난 부와 자산을 자본이 향유하게 된 게 아닌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규명하는 방식이 현존하는 착취와 수탈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괴리되고 단지 과거 몇몇 개인들의 부정행위를 들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성과는 민중과 운동진영의 몫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과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인 남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3) 1) 인민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하는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에 대한 반정립이다. 인민주의는 현대적인 정치이념이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정당화할 때 출현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조직한다. 인민주의는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을 활용하고 대의제를 통해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권력의 원천인 인민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각각 보수주의·자유주의와 구별된다. 하지만 여기서 인민은 개별적인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조화롭고 동질적인 유기체로서 적에 대한 배제와 공격을 통해 부정적으로 구성되는데 ‘인민의 의지’를 체현하는 것은 카리스마를 지닌 초월적 권력자이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의 수사를 구사하는 인민주의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거부함으로써(정치의 부정)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민족)공동체 내에서 계급투쟁과 혁명적 주체의 형성, 현존하는 착취구조의 변혁을 동반함으로서 인민주권을 급진화하는 사회주의와 대립한다. 본문으로 2) 17대 총선에서 적용된 개정된 선거법은 “선거인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야간연설·연설장소·호별방문·행렬·확성장치의 사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방송광고·신문광고·방송연설·경력방송·대담·토론회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대체한다. 본문으로 3)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239호) 권종술 기자의 글은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는 “X-파일의 공개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혼란이지만 전체 국민들에게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한다. 삼성의 정경유착, 테이프 공개, 국정원 해체, 불법 도감청 문제 등 이번 엑스파일을 통해 우리는 부도덕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거대언론, 그리고 재벌들의 추악한 치부가 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대중투쟁으로 X-파일을 공개하고 기득권세력을 공격한다는 전략은 과거 기득권 세력의 치부가 현재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남미 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1) 제임스 페트라스·티모시 F. 하딩 *번역: 윤 여 협(회원)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지배는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와 다른 한편으로 혁명적 좌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강조하는 분석은 동반한다. 많은 필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지배와 ‘세계화’는 급진적 좌파를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었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에트 시대 공산주의의 붕괴, 1980년대 게릴라운동의 소멸, 수많은 좌파운동 조직들의 자유민주적 정치운동으로의 전환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분석은 유효성이 없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는 이전 좌파운동의 형태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자율적이고 새로운 혁명적 좌파가 부활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여기서 새로운 혁명적 좌파와 이전의 좌파를 구별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실체를 부여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우리는 분석을 위해 남미 좌파의 세 번의 물결을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물결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운동이며,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운동이다. 세 번째 물결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운동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좌파운동은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와 미국의 저강도전쟁으로 인해 광범위하게 압살 당했고 일부는 체제에 흡수되었다. 당시 칠레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극단적 자유주의 체제의 하위 파트너이다.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운동>(MAS) 지도자인 테오도로 페트코프는 국제화폐기금(IMF)이 권장하는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였고, 볼리비아의 <혁명적 좌파운동>(MIR)은 전임 우익 독재자인 휴고 반제르와 동맹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마약자본이 돈 세탁을 하는 데 깊이 연루되어있다. 이 세대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 활동가의 기준이 되는 운동성을 상실하였고, 그 구성원들은 새로운 대중봉기를 진압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좌파운동의 두 번째 물결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엘살바도르의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FMLN), 브라질 <노동자당>(PT), 과테말라의 <혁명적민족연합>(UNRG)이 주도한 운동으로서 중앙아메리카와 브라질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시장과 선거정치의 요구에 부합하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핵심 지도자들은 우익 차모로(Chamorro) 체제와 동맹을 맺고 민중의 저항을 압살했으며, 멕시코의 전임 대통령인 카를로스 살리나스와 연계를 맺고 과거 조직의 지도자들이 공직기간 동안 획득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들은 기껏해야 선거주의적 전망을 갖는 개혁주의자들이다. 1999년 대통령선거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후보자는 어떠한 구조개혁(남미에서 구조개혁의 문제는 원래 부패하고 매판적인 사회경제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좌파가 제기했음 - 역자)에도 반대하는 자본주의 현대화 강령을 제안하였다. 과테말라의 UNRG는 조직을 서둘러 합법화하고 몇 개의 국회의석을 획득하기 위해 선거정당을 조직하였으며, 소농의 사회적 요구와 인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하였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개혁프로그램과 대중 지지기반을 보유했지만 “재분배적” 접근을 옹호하는 급진적 사회경제적 요구들을 사실상 방기하였다. 멕시코의 <민주혁명당>(PRD)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널리 수용하였고, 1980년 이전 공식정당들의 부르주아 인민주의 연합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1980년대의 혁명주의자들은 1990년대에 선거 개혁주의자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과거 혁명주의 그룹들은 상파울로 포럼의 다수를 구성하는 다른 선거 야당 그룹들과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느슨한 연합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거 혁명주의자들과 선거연합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악영향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주장을 하였지만 부의 토대와 이를 지탱하는 국제적 금융연계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하지 않고 있다. 정당들과 [선거]연합들 중 그 누구도 사회주의적 대안을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그들은 자본주의 위기와 수탈의 효과를 완화하는 규제 메커니즘으로서 국가를 재도입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남미 좌파의 두 번째 물결이 지닌 기본적인 약점은 토지 보유와 자본 소유관계에 대한 급진적 변혁의 요구, 은행 및 대외무역 통제에 대한 요구를 버리면서 우익과 타협하려는 경향이다. 그들은 무력한 의회 내 반대 세력으로서 기능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혹평과 비난으로 그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점차 대중적 토대로부터 분리되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보수적 모습을 드러내면서 두 번째 남미 좌파는 선거 캠페인과 떨어진 대중투쟁에 개입할 수 없거나 이를 내켜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민주혁명당>의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가 멕시코시티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 후 집권을 통해 그에게 투표한 중요한 지지세력들에게 혼란을 주고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 브라질 <노동자당>이 집권한 포르투 알레그레 시 정부는 예산배정 우위를 공식화하면서 기층의 농민에 기초하여 효과적인 도시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써 사회적 기반을 성공적으로 강화하고 확장하였다. 남미 좌파의 세 번째 물결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결과와 기존 중도 좌파 선거정당과 선거연합체들의 무능력·무책임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어났다.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세 번째 물결은 선거기간 전후를 경과하는 동안에도 선거정치보다 직접행동을 우위에 두는 운동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토지, 공공건물, 공장, 관청을 점거하면서 자율적인 자기통치를 위한 권력중심을 세워냈다. 이들은 2세대 운동의 권위주의적이고 제한적인 선거정치의 외부를 조직함으로서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에 기초한 즉각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 남미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은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파라과이의 <전국농민연맹>,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코카재배농민을 가리킴 - 역주)소농연맹>, 에콰도르의 <전국노동자농민연합>(FENOC),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아르헨티나의 반체제지역 노동조합·시민운동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물결은 기존 중도좌파와 선거야당들과는 구별되는 몇몇 사회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정치운동들은 소작농들, 인디안들, 소농민들, 무토지농업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농촌에 기원을 둔다. 에릭 홉스봄과 같은 관찰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농촌 노동력의 상대적 쇠퇴가 정치적 구성요소로서 소농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그들은 새로운 사회정치적 운동에서 가장 중심에 있다. 오늘날 소농과 농업 노동자운동의 지도자들은 과거 운동의 지도자들과는 매우 상이하다. 그들은 훨씬 단련되었고, 국제주의자이며, 도시의 정치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운동을 조직할 수 있다. 그들은 국제회의들에 참가하고 전국적 논쟁에 개입하며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도시의 운동들, 노동조합, 선거정당들과 협상한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과 응집력은 운동 지도자들의 지도력과 직접행동의 정치가 지닌 역동적 매력과 농촌에서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수단들의 극단적 약탈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일단 남미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은 정치방식에서 중도좌파 선거연합과 다르다. 즉 결과에 반응하는 대신 새로운 운동은 “(정치적) 현실을 야기하고 있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은 미경작된 거대한 토지를 점거하고, 사파티스타는 일당지배 국가(멕시코에서 <제도혁명당>(PRI)의 70여 년에 걸친 장기집권을 가리킴 - 역자)의 과도한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여 자기-통치의 공동체를 조직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는 중앙체제와 독립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연계망을 세웠으며.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민족해방군>(ELN)는 콜롬비아 지역의 40%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소농-인디오 운동은 대통령 압달라 부카람을 부패 책임을 물어 퇴임시키고, 후임 대통령이 IMF 자유시장 의제를 실행하려는 시도를 저지하였다. 오늘날 사회정치운동들은 거시적 사회경제 구조를 변혁하는 투쟁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대중 계급들의 직접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들을 제출하고 있다. 무능한 소수자로서 전통적 중도좌파 선거 정치인들은 영원히 새로운 선거만 기다리는 반면 인민계급 다수의 지지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다. 소수의 중간계급 전문가들이 계획을 세우고 수직적 결정구조를 통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결정하는 1980년대 게릴라운동 방식과는 달리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대중 총회, 협의회, 기층 성원에 대한 책임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산디니스타-FMLN-UNRG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와의] 평화협정에 대한 거부이며, 과거 게릴라조직 지도자들과 중간계급 간부들이 선거를 통한 지위상승을 노리며 인민계급의 즉각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선거주의로 이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과거의 전달 모형(대중운동은 정당의 지침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관이라는 관념 - 역자)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정당에 대해 독립적이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운동들 간에 동맹을 맺으며, 선거정당들을 지지할 수 있으나(MST는 종종 진보적인 PT당 후보를 지지한다), 그 결정은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적 투쟁을 제한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정치적 운동의 수많은 지도자들 나이는 대부분 20세에서 35세 사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로서 종파적인 이데올로기 갈등과 이전 [운동]세대를 향한 충성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은 민족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들의 국제적 연계는 자유로운 연합과 교환,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 외부의 ‘혁명 중앙’으로부터 ‘계시’는 없다. 구성원 다수는 인민계급 출신이며(외부 전문가들이 아니다) 스스로 단련되었다.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은 ‘전위’가 아니라 ‘운동의 재원’으로서 참여한다. 사회정치운동들은 부문적 개혁을 넘어서서 민족적 변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의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지역으로부터 전국적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점차 그들은 토지소유 관계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국가 전체와 엘리트 계급 내 지지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수많은 농촌 기반 운동들은 민족적 강령과 전략을 정식화하였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일당 국가와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판을 정교하게 수행하고, 소농과 인디오들의 자율적 공동체와 지역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족-민중 전략을 포함하는 탈집중화된 대안을 정식화하였다. MST는 새로운 ‘브라질 프로젝트’를 정식화하고 주요 도시의 빈민가에 거주하는 민중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였다.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는 지역 기반의 정당인 ‘인민주권 총회’를 결성하여 지역선거를 휩쓸면서 의회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활기찬 강령을 공식화하였다. 많은 필자와 분석가들은 낮은 임금과 어떠한 사회급여도 없이 노동자들이 고용된 거대한 ‘비공식 부문’의 성장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그들은 비공식 부문의 성장은 지위가 하락하는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계급투쟁보다 개인적인 해결책을 추구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다른 관찰자들은 점증하는 권위주의적 지배 스타일을 언급한다. 이러한 지배 스타일은 행정부가 명령을 통해 지배하며, 자신의 재선출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을 교체하려고 입법부를 조종하며, ‘자유시장’ 정책을 추구하여 유권자와 의회를 주변화한다. 이런 통치 스타일의 함의는 선거 공약을 배반하더라도 사기 당한 유권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동적 농촌운동들은 강령, 전략, 투쟁을 조정하는 <라틴아메리카 농촌조직 대회>(CLOC)에 가입해 있다. 그 안에서 젠더 평등은 더욱 발전하고 있으며, 40퍼센트 이상의 대표들이 여성이다. 실제로 종족성, 젠더, 그리고 계급적 사안은 농촌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이 수행하는 선도적인 역할과 결합된다.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족적인 정치프로젝트와 제휴해야 한다고 명확히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직접적인 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는 정치운동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체제로 포섭될 것이라고 깨닫고 있다. [좌파의 세 번째] 세대의 창의력은 열린 민주주의 구조를 통해 제도적 또는 제도를 넘어서는 ‘정치’를 직접적 사회행동과 결합하는 능력이다. 오늘날 [남미 운동이 극복해야 할] 가장 거대한 도전은 농촌에서 형성된 기존 투쟁의 영역을 넘어서 도시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유사한 운동들과 동맹과 연합을 맺는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농촌지역들은 체제에 포섭되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기폭제로서 성공적 사례가 되었다. 저항으로부터 정치로, 지역으로부터 전국적 행동으로, 부문적 개혁으로부터 민족-민중적 혁명으로 나아가는 운동은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라틴아메리카 남부 원뿔지대(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 역자)에서 군사독재가 뿌린 민중의 피로부터 출현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금융기구의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기꾼들과 다를 바 없는) 집행관들과 현임 대통령들에 의해 유지·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통령 궁에서 쓰이지 않는다. 좌파운동은 치아파스 산맥으로부터 브라질 대농장으로, 파라과이 분지로부터 볼리비아 차파레 계곡에 이르기까지 반격을 가하고 있다. 1) James Petras and Timothy F. Harding, "Introduction", Latin America Perspective, Issue 114, Vol. 27 No. 5, September 2000, pp.3-10. 본문으로
남미 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1) 제임스 페트라스·티모시 F. 하딩 *번역: 윤 여 협(회원)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지배는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증가와 다른 한편으로 혁명적 좌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강조하는 분석은 동반한다. 많은 필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지배와 ‘세계화’는 급진적 좌파를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었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에트 시대 공산주의의 붕괴, 1980년대 게릴라운동의 소멸, 수많은 좌파운동 조직들의 자유민주적 정치운동으로의 전환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분석은 유효성이 없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는 이전 좌파운동의 형태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자율적이고 새로운 혁명적 좌파가 부활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여기서 새로운 혁명적 좌파와 이전의 좌파를 구별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실체를 부여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우리는 분석을 위해 남미 좌파의 세 번의 물결을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물결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운동이며, 두 번째 물결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운동이다. 세 번째 물결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운동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좌파운동은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와 미국의 저강도전쟁으로 인해 광범위하게 압살 당했고 일부는 체제에 흡수되었다. 당시 칠레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극단적 자유주의 체제의 하위 파트너이다.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운동>(MAS) 지도자인 테오도로 페트코프는 국제화폐기금(IMF)이 권장하는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였고, 볼리비아의 <혁명적 좌파운동>(MIR)은 전임 우익 독재자인 휴고 반제르와 동맹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마약자본이 돈 세탁을 하는 데 깊이 연루되어있다. 이 세대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 활동가의 기준이 되는 운동성을 상실하였고, 그 구성원들은 새로운 대중봉기를 진압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좌파운동의 두 번째 물결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엘살바도르의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FMLN), 브라질 <노동자당>(PT), 과테말라의 <혁명적민족연합>(UNRG)이 주도한 운동으로서 중앙아메리카와 브라질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시장과 선거정치의 요구에 부합하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핵심 지도자들은 우익 차모로(Chamorro) 체제와 동맹을 맺고 민중의 저항을 압살했으며, 멕시코의 전임 대통령인 카를로스 살리나스와 연계를 맺고 과거 조직의 지도자들이 공직기간 동안 획득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 이들은 기껏해야 선거주의적 전망을 갖는 개혁주의자들이다. 1999년 대통령선거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후보자는 어떠한 구조개혁(남미에서 구조개혁의 문제는 원래 부패하고 매판적인 사회경제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좌파가 제기했음 - 역자)에도 반대하는 자본주의 현대화 강령을 제안하였다. 과테말라의 UNRG는 조직을 서둘러 합법화하고 몇 개의 국회의석을 획득하기 위해 선거정당을 조직하였으며, 소농의 사회적 요구와 인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하였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은 개혁프로그램과 대중 지지기반을 보유했지만 “재분배적” 접근을 옹호하는 급진적 사회경제적 요구들을 사실상 방기하였다. 멕시코의 <민주혁명당>(PRD)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널리 수용하였고, 1980년 이전 공식정당들의 부르주아 인민주의 연합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1980년대의 혁명주의자들은 1990년대에 선거 개혁주의자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과거 혁명주의 그룹들은 상파울로 포럼의 다수를 구성하는 다른 선거 야당 그룹들과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느슨한 연합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거 혁명주의자들과 선거연합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악영향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주장을 하였지만 부의 토대와 이를 지탱하는 국제적 금융연계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하지 않고 있다. 정당들과 [선거]연합들 중 그 누구도 사회주의적 대안을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그들은 자본주의 위기와 수탈의 효과를 완화하는 규제 메커니즘으로서 국가를 재도입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남미 좌파의 두 번째 물결이 지닌 기본적인 약점은 토지 보유와 자본 소유관계에 대한 급진적 변혁의 요구, 은행 및 대외무역 통제에 대한 요구를 버리면서 우익과 타협하려는 경향이다. 그들은 무력한 의회 내 반대 세력으로서 기능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혹평과 비난으로 그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점차 대중적 토대로부터 분리되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보수적 모습을 드러내면서 두 번째 남미 좌파는 선거 캠페인과 떨어진 대중투쟁에 개입할 수 없거나 이를 내켜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민주혁명당>의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가 멕시코시티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 후 집권을 통해 그에게 투표한 중요한 지지세력들에게 혼란을 주고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 브라질 <노동자당>이 집권한 포르투 알레그레 시 정부는 예산배정 우위를 공식화하면서 기층의 농민에 기초하여 효과적인 도시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함으로써 사회적 기반을 성공적으로 강화하고 확장하였다. 남미 좌파의 세 번째 물결은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결과와 기존 중도 좌파 선거정당과 선거연합체들의 무능력·무책임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어났다.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세 번째 물결은 선거기간 전후를 경과하는 동안에도 선거정치보다 직접행동을 우위에 두는 운동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토지, 공공건물, 공장, 관청을 점거하면서 자율적인 자기통치를 위한 권력중심을 세워냈다. 이들은 2세대 운동의 권위주의적이고 제한적인 선거정치의 외부를 조직함으로서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에 기초한 즉각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 남미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은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파라과이의 <전국농민연맹>,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코카재배농민을 가리킴 - 역주)소농연맹>, 에콰도르의 <전국노동자농민연합>(FENOC),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아르헨티나의 반체제지역 노동조합·시민운동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물결은 기존 중도좌파와 선거야당들과는 구별되는 몇몇 사회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정치운동들은 소작농들, 인디안들, 소농민들, 무토지농업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농촌에 기원을 둔다. 에릭 홉스봄과 같은 관찰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농촌 노동력의 상대적 쇠퇴가 정치적 구성요소로서 소농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그들은 새로운 사회정치적 운동에서 가장 중심에 있다. 오늘날 소농과 농업 노동자운동의 지도자들은 과거 운동의 지도자들과는 매우 상이하다. 그들은 훨씬 단련되었고, 국제주의자이며, 도시의 정치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운동을 조직할 수 있다. 그들은 국제회의들에 참가하고 전국적 논쟁에 개입하며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도시의 운동들, 노동조합, 선거정당들과 협상한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과 응집력은 운동 지도자들의 지도력과 직접행동의 정치가 지닌 역동적 매력과 농촌에서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수단들의 극단적 약탈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일단 남미좌파운동의 세 번째 물결은 정치방식에서 중도좌파 선거연합과 다르다. 즉 결과에 반응하는 대신 새로운 운동은 “(정치적) 현실을 야기하고 있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은 미경작된 거대한 토지를 점거하고, 사파티스타는 일당지배 국가(멕시코에서 <제도혁명당>(PRI)의 70여 년에 걸친 장기집권을 가리킴 - 역자)의 과도한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여 자기-통치의 공동체를 조직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는 중앙체제와 독립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연계망을 세웠으며.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민족해방군>(ELN)는 콜롬비아 지역의 40%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소농-인디오 운동은 대통령 압달라 부카람을 부패 책임을 물어 퇴임시키고, 후임 대통령이 IMF 자유시장 의제를 실행하려는 시도를 저지하였다. 오늘날 사회정치운동들은 거시적 사회경제 구조를 변혁하는 투쟁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대중 계급들의 직접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들을 제출하고 있다. 무능한 소수자로서 전통적 중도좌파 선거 정치인들은 영원히 새로운 선거만 기다리는 반면 인민계급 다수의 지지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다. 소수의 중간계급 전문가들이 계획을 세우고 수직적 결정구조를 통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결정하는 1980년대 게릴라운동 방식과는 달리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대중 총회, 협의회, 기층 성원에 대한 책임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산디니스타-FMLN-UNRG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와의] 평화협정에 대한 거부이며, 과거 게릴라조직 지도자들과 중간계급 간부들이 선거를 통한 지위상승을 노리며 인민계급의 즉각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선거주의로 이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은 과거의 전달 모형(대중운동은 정당의 지침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관이라는 관념 - 역자)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정당에 대해 독립적이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운동들 간에 동맹을 맺으며, 선거정당들을 지지할 수 있으나(MST는 종종 진보적인 PT당 후보를 지지한다), 그 결정은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적 투쟁을 제한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정치적 운동의 수많은 지도자들 나이는 대부분 20세에서 35세 사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로서 종파적인 이데올로기 갈등과 이전 [운동]세대를 향한 충성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은 민족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들의 국제적 연계는 자유로운 연합과 교환,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 외부의 ‘혁명 중앙’으로부터 ‘계시’는 없다. 구성원 다수는 인민계급 출신이며(외부 전문가들이 아니다) 스스로 단련되었다.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은 ‘전위’가 아니라 ‘운동의 재원’으로서 참여한다. 사회정치운동들은 부문적 개혁을 넘어서서 민족적 변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의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지역으로부터 전국적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점차 그들은 토지소유 관계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국가 전체와 엘리트 계급 내 지지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수많은 농촌 기반 운동들은 민족적 강령과 전략을 정식화하였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일당 국가와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판을 정교하게 수행하고, 소농과 인디오들의 자율적 공동체와 지역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민족-민중 전략을 포함하는 탈집중화된 대안을 정식화하였다. MST는 새로운 ‘브라질 프로젝트’를 정식화하고 주요 도시의 빈민가에 거주하는 민중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였다.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는 지역 기반의 정당인 ‘인민주권 총회’를 결성하여 지역선거를 휩쓸면서 의회에서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활기찬 강령을 공식화하였다. 많은 필자와 분석가들은 낮은 임금과 어떠한 사회급여도 없이 노동자들이 고용된 거대한 ‘비공식 부문’의 성장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그들은 비공식 부문의 성장은 지위가 하락하는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계급투쟁보다 개인적인 해결책을 추구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다른 관찰자들은 점증하는 권위주의적 지배 스타일을 언급한다. 이러한 지배 스타일은 행정부가 명령을 통해 지배하며, 자신의 재선출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을 교체하려고 입법부를 조종하며, ‘자유시장’ 정책을 추구하여 유권자와 의회를 주변화한다. 이런 통치 스타일의 함의는 선거 공약을 배반하더라도 사기 당한 유권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동적 농촌운동들은 강령, 전략, 투쟁을 조정하는 <라틴아메리카 농촌조직 대회>(CLOC)에 가입해 있다. 그 안에서 젠더 평등은 더욱 발전하고 있으며, 40퍼센트 이상의 대표들이 여성이다. 실제로 종족성, 젠더, 그리고 계급적 사안은 농촌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이 수행하는 선도적인 역할과 결합된다.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족적인 정치프로젝트와 제휴해야 한다고 명확히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직접적인 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는 정치운동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체제로 포섭될 것이라고 깨닫고 있다. [좌파의 세 번째] 세대의 창의력은 열린 민주주의 구조를 통해 제도적 또는 제도를 넘어서는 ‘정치’를 직접적 사회행동과 결합하는 능력이다. 오늘날 [남미 운동이 극복해야 할] 가장 거대한 도전은 농촌에서 형성된 기존 투쟁의 영역을 넘어서 도시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유사한 운동들과 동맹과 연합을 맺는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농촌지역들은 체제에 포섭되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기폭제로서 성공적 사례가 되었다. 저항으로부터 정치로, 지역으로부터 전국적 행동으로, 부문적 개혁으로부터 민족-민중적 혁명으로 나아가는 운동은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라틴아메리카 남부 원뿔지대(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 역자)에서 군사독재가 뿌린 민중의 피로부터 출현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금융기구의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기꾼들과 다를 바 없는) 집행관들과 현임 대통령들에 의해 유지·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통령 궁에서 쓰이지 않는다. 좌파운동은 치아파스 산맥으로부터 브라질 대농장으로, 파라과이 분지로부터 볼리비아 차파레 계곡에 이르기까지 반격을 가하고 있다. 1) James Petras and Timothy F. Harding, "Introduction", Latin America Perspective, Issue 114, Vol. 27 No. 5, September 2000, pp.3-1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