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압박 지난 해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후원하고 주요 인사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폐혐의를 제기하며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의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월 5일 “만약 북한이 고립을 택한다면 이는 미국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이다. 북한의 불법행위는 제재를 초래할 것인데, 왜냐하면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한이 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정당화했다. 미국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군사적 안전보장 및 금융·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의 역사 -반공주의에서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의제를 외교정책에 포함시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의 지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 바로 ‘인권’과 대외정책의 연계라는 카드다. 당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소련·중국과의 긴장완화, 즉 데탕트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반발로서 오히려 소련 등과의 관계개선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후자를 주도한 것은 오늘날 네오콘의 선배격인 민주당의 강경한 반공그룹이었다.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소련을 겨냥하여) 이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최혜국 대우와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하는 법안(1974년 ‘잭슨-베닉 수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네오콘 인사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인사들의 열렬한 반공 캠페인이 그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인권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된다. 1976년 출범한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는 인권 외교를 표방하며,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했다. 다만 그 대상은 민주당 내 우파그룹과는 달리 미국의 동맹세력이었던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미국은 1973년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의 조직,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발간으로 인권 외교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 외교는 반공동맹이라는 냉전기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터의 인권 외교가 비록 남한이나 아르헨티나 등 몇몇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했지만, 이러한 갈등이 실질적으로 반공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군사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 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침략행위를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윤색하는 데서 인권은 미국은 전략적 목표와 결부되거나 도구화된다. 네오콘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1996년)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목표가 천명되거니와,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한다. 이러한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행위는 기독교적 사명감이나 도덕적 우월성 등으로 윤색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색채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표방하는 인권 외교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서 1990년대 국제적인 개입/간섭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간섭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즉 개별인권이 궁극적으로는 주권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개별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권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절대적인 불가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개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현안이 발생하고, 국가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난민과 분쟁의 가능성은 안보적 관심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 기존의 (국가)안보에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해결할 것, 또한 무엇보다 사전예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략 역시 큰 틀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국제사회가 세계의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들(NATO, 일본, 남한) 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국가 간 체계와 민족국가의 확립과 붕괴는 필연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제도화되어있던 기존 권리들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축소해나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에서 얼마나 현재 해체되고 있는 민족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효성이 있으며, 혹은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이 안정적인 정치 공동체의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점차 종족 간·종교 간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의 정정(政情)에 비추어본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재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의지형 역시 인권 외교 혹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이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운동진영의 실천과 투쟁을 위치짓는 것이 지극히 난망하거나 지배세력의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노림수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2004년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 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1)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기하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철회되지 않았다.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미국은 일관되게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정권 교체’였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른 의제와 연계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부시 행정부 내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은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NGO)과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주류 인권운동 NGO)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서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2) 그렇지만 그러한 이견은 1970년대 미국의 인권 외교가 냉전기 미국의 전략의 틀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인권 외교에 내포된 미국의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적 해법에 대한 부수적인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네오콘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입장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2005년 3월 의회에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에 드러난 미국의 야심찬 구상을 고려한다면 ‘폭정의 종식’, 즉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한 내적인 정치구도의 변화가 궁극적인 미국의 목표라고 할 수밖에 없다.3)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특히 인권 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해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해서도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등의 NGO 단체들에게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브로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여 ‘북한인권’ 관련 정책에 개입하고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고자 한다. 북한을 “범죄정권”이나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한에서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대북 금융 제재 등이 지속된다면 6자회담 타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분단 질서의 변화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된다.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재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와 다름없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제네바 협정에 규정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의무 등은 상대화된다(당장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벌어지는 포로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을 보라!)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은 “(독재)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내세우는 미국의 구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라크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여 나머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 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즉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과 나아가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조항이 반드시 북미 협상의 전제가 되거나, 북미 간의 모든 현안을 ‘북한인권’과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John Feffer, "To Link or Not to Link: The Human Rights Question in North Korea", December 19, 2005 (www.fpif.org). 본문으로 3)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적으로 분류된 외국국가”에 대해 미국 관할 하의 재산에 대한 동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반대, 해당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매 조치, 미국 기업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불허 등 사실상의 무역 및 금융 제재를 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자료실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inst2&page=7) 본문으로
‘북한인권’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압박 지난 해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후원하고 주요 인사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폐혐의를 제기하며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의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월 5일 “만약 북한이 고립을 택한다면 이는 미국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이다. 북한의 불법행위는 제재를 초래할 것인데, 왜냐하면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한이 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정당화했다. 미국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군사적 안전보장 및 금융·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의 역사 -반공주의에서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의제를 외교정책에 포함시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의 지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 바로 ‘인권’과 대외정책의 연계라는 카드다. 당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소련·중국과의 긴장완화, 즉 데탕트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반발로서 오히려 소련 등과의 관계개선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후자를 주도한 것은 오늘날 네오콘의 선배격인 민주당의 강경한 반공그룹이었다.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소련을 겨냥하여) 이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최혜국 대우와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하는 법안(1974년 ‘잭슨-베닉 수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네오콘 인사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인사들의 열렬한 반공 캠페인이 그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인권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된다. 1976년 출범한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는 인권 외교를 표방하며,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했다. 다만 그 대상은 민주당 내 우파그룹과는 달리 미국의 동맹세력이었던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미국은 1973년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의 조직,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발간으로 인권 외교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 외교는 반공동맹이라는 냉전기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터의 인권 외교가 비록 남한이나 아르헨티나 등 몇몇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했지만, 이러한 갈등이 실질적으로 반공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군사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 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침략행위를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윤색하는 데서 인권은 미국은 전략적 목표와 결부되거나 도구화된다. 네오콘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1996년)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목표가 천명되거니와,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한다. 이러한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행위는 기독교적 사명감이나 도덕적 우월성 등으로 윤색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색채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표방하는 인권 외교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서 1990년대 국제적인 개입/간섭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간섭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즉 개별인권이 궁극적으로는 주권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개별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권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절대적인 불가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개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현안이 발생하고, 국가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난민과 분쟁의 가능성은 안보적 관심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 기존의 (국가)안보에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해결할 것, 또한 무엇보다 사전예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략 역시 큰 틀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국제사회가 세계의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들(NATO, 일본, 남한) 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국가 간 체계와 민족국가의 확립과 붕괴는 필연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제도화되어있던 기존 권리들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축소해나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에서 얼마나 현재 해체되고 있는 민족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효성이 있으며, 혹은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이 안정적인 정치 공동체의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점차 종족 간·종교 간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의 정정(政情)에 비추어본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재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의지형 역시 인권 외교 혹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이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운동진영의 실천과 투쟁을 위치짓는 것이 지극히 난망하거나 지배세력의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노림수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2004년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 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1)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기하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철회되지 않았다.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미국은 일관되게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정권 교체’였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른 의제와 연계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부시 행정부 내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은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NGO)과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주류 인권운동 NGO)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서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2) 그렇지만 그러한 이견은 1970년대 미국의 인권 외교가 냉전기 미국의 전략의 틀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인권 외교에 내포된 미국의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적 해법에 대한 부수적인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네오콘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입장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2005년 3월 의회에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에 드러난 미국의 야심찬 구상을 고려한다면 ‘폭정의 종식’, 즉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한 내적인 정치구도의 변화가 궁극적인 미국의 목표라고 할 수밖에 없다.3)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특히 인권 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해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해서도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등의 NGO 단체들에게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브로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여 ‘북한인권’ 관련 정책에 개입하고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고자 한다. 북한을 “범죄정권”이나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한에서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대북 금융 제재 등이 지속된다면 6자회담 타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분단 질서의 변화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된다.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재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와 다름없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제네바 협정에 규정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의무 등은 상대화된다(당장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벌어지는 포로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을 보라!)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은 “(독재)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내세우는 미국의 구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라크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여 나머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 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즉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과 나아가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조항이 반드시 북미 협상의 전제가 되거나, 북미 간의 모든 현안을 ‘북한인권’과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John Feffer, "To Link or Not to Link: The Human Rights Question in North Korea", December 19, 2005 (www.fpif.org). 본문으로 3)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적으로 분류된 외국국가”에 대해 미국 관할 하의 재산에 대한 동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반대, 해당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매 조치, 미국 기업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불허 등 사실상의 무역 및 금융 제재를 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자료실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inst2&page=7) 본문으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소요사태의 책임은 국가와 경찰, 그리고 지배계급에게 있다1) 지난 10월 27일, 이슬람 신도들이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의 마지막 날, 주민 중 실업자가 50%에 달하고 어린이의 반수가 유급을 경험하며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불심검문이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파리 방리유(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 한 공터에서 늦게까지 공놀이를 하던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은, 지난 10월 19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이 교외 폭력 행위에 '가차 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이래 경찰 검문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모욕을 피하고 한 달간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울 생각에 우회로를 택한다. 운 나쁘게 경찰과 마주친 소년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그들 중 셋은 근처 송전소 쪽으로 향한다. 이들 중 한 명은 입구 외진 곳에 몸을 숨겼다가 경찰의 발소리를 듣고는 기절하고, 나머지 두 소년 지에드(17)과 바누(15)는 송전소 2.5미터 높이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다. 사고가 발생하자 프랑스 언론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한다. 그러나 사건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분노한 방리유 젊은이들은 차량 23대를 불태우고 상점 등을 공격하면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다. 방리유 소요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고 발생 다음날인 28일 밤, '경찰의 살인적 추격 작전'을 규탄하며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250~3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실탄이 경찰차에 날아들고 여기저기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다음날인 29일, 클리시 수 부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희생자 가족 등 500여 명이 비폭력 침묵시위를 벌이고, 차량 방화는 여전했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은 없는 등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그러나 30일 밤, 뉴스에 방영된 사르코지의 발언으로 상황은 돌변한다. 사르코지는 이날, "경찰은 (감전사한) 소년들을 추격한 바 없다"고 단언하고 도시 테러에 '똘레랑스 제로' 선언을 재확인하며, 경찰력 보강을 위해 공화국보안기동대 17개 중대와 7개 헌병 중대 배치를 명령하면서 "더 이상 순찰의 문제가 아니다… 체포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지난달 25일 또 다른 방리유인 아르장퇴유에서 주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무슬림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한 사르코지의 발언이 30일 밤 저녁뉴스 시간에 수 차례에 걸쳐 방송된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는 소요현장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방리유 주민들을 다시 한 번 쓰레기 취급한다. 같은 시간, 공화국 기동대의 최루탄이 클리시 수 부아의 한 이슬람 사원에 떨어진다. 격분한 신도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경찰은 모스크에 최루탄을 발사한 일이 없다고 발뺌한다. 이처럼 명백한 도발에 분노하며 화염병과 돌을 든 방리유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소규모 그룹을 이룬, 14-20세의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본토 출신 이민자 자녀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늘어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2개 교외 소도시들로 소요가 확산되고, 11월 6~7일 밤은 자동차 1,400대가 방화되고 400명이 체포된다. 파리 근교에 한정됐던 혼란은 디종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까지 번져 226개 마을에서 1,173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며, 심지어 독일과 벨기에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프랑스 소요사태의 모방범죄로 보이는 차량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전 유럽이 긴장한다.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13일째 계속된 11월 9일 프랑스 정부가 본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상사태령을 선포한다. 야간통행금지, 집회와 결사 금지, 영장 없는 단속/체포/체포/언론/출판 통제/거주지 제한 등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항목으로 이루어진 비상사태법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정부가 2-3세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식민지 신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도시들에는 산발적인 소요가 이어지고, 경찰은 에펠탑과 샹 젤리제 대로 등 주요 지점을 위주로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친다. 한편 파리 라탱 구역에서는 좌파 및 노동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열려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을 비판하고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 8일 르파리지앵이 게재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는 야간통금에 찬성한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기관 CSA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의견을 밝히고 각종 강경 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우파성향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는다. 급기야 사르코지는 9일 하원회의에서 "이번 소요사태에 참가했다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프랑스 영토에서 추방하도록 각 도지사들에게 요청했다"고 발표함으로써, (피고인이 동일범죄에 대해 이중으로 형사처벌 받을 위험을 방지하는)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을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전원추방"을 주장하는 극우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우파 정당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는 지난 주 이래 "통금령을 실시하고 군대를 투입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또 일찍이 80년대 중반 '이민자 2백만, 실업자 2백만'이라는 악명 높은 선거구호로 반(反)이민운동을 선도하고 2002년 대선 결선투표 진출로 기염을 토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당수는 9일 AP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대량 유입이 프랑스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던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프랑스 신분증이 있다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다.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은 그들의 원래 나라들로 돌려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의 신입당원 담당 부서는 사태 발생 이후 1천여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힌다. 며칠 동안 침묵하던 시라크 대통령의 첫 발언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빌팽 총리는 11월 8일 오후 하원에 출석해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으며 "우리 통합 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질서와 경찰논리는 모든 사회쟁점과 갈등을 압도하는 절대선의 자리에 등극한다. 시라크는 "공공질서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부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며 인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주 문제' - 사회 위기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주 문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실업, 빈곤, 주거, 사회갈등, 범죄, 교육, 동일성, 보건, 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주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되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을 추방하거나 경찰적·행정적 수단에 따라 관리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주자들은 전간기(戰間期)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태인의 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민족적 나아가 유럽적 동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불순물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말이다.2) 지난 20년 간 프랑스 정부는 이주자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된 비행'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억압적·굴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 쪽으로 점점 더 이끌렸다. 좌우 간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좌우파 간 격렬한 경쟁의 특권적 대상으로 등극했다. 1990년대 후반 미등록 이주자의 거대한 투쟁 앞에서 법과 행정부의 권위를 강압한 것은 다름 아닌 '좌파 총리' 조스팽이었다. 그 이후 좌우 양편에서 '세계화'의 경제적 힘, '범죄적' 이주 네트워크, 경제적 또는 문화적 특수주의, 마지막으로 '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홀린 관념적 지식인과 단체가 뿌리째 흔들고 있는 민족주권 및 '공화국'을 수호하자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해진다. 이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공격 대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주자였다. 이른바 '민족적 공화주의'는 프랑스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사회의 해체와 공공 서비스의 위기 등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교사와 경찰을 포함한 각급 수준의 공무원들이 공화국 수호의 기치 아래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구체적 조치들이 뒤따른다. 법적 영역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 중 하나는 '이중위험' 관행의 등장으로, 이주자들에게 법적 형벌과 추방이 함께 집행된다. 이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그 국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니와, 다른 기본권 특히 사회권 등으로 확대된다. 또한 국가행정 전반에 '제도적 인종주의'가 (재)도입되는데, 외국인 특히 남반구에서 온 '검둥이들'의 경우, 경찰신원조사에서 인종에 따른 분류, 강제수용소를 닮은 각종 구금, 강제추방 등 야비한 조치들에 노출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주권이다. 즉 국가가 자임하는 '주권'과 경제정책·집단안보·정보기술 등에 관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무능력이 대비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극히 무력한 이주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권위가 건재하다는 허구를 상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권위적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폭력'과 '치안' 담론의 득세는 정확히 이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다. 이를 시민권의 보편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권리가 열등하고 취약하며 기존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징표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따라서 르펜과 사르코지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주자들은 신분증이 있더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인 특히 '남반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행정 전반의 '제도적 인종주의'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민족 구성원의 시민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의 뿌리로서 식민주의 동화 담론 - 되돌아온 식민주의 유산 위에서 살펴본 현상들은 단적으로 세계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럽통합의 '인종화'와 관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식민주의 유산이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우선 현재 알제리와 같은 과거 (반)식민지 영토 출신 노동자들에게, 나아가 이른바 '남반부' 노동자들 전반에게 적용되는 행정적 조치와 관행은, 프랑스 국가장치 형성의 결정적 시기에 식민지 영토에서 '토착' 인구를 대상으로 집행된 정책을 그 기원으로 한다. 방리유에 대한 도시 정책이 그렇고, 무엇보다 이번에 발동된 비상사태법이 그렇다. 다음으로, 현재 진행되는 노동이주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확립된 경로, 곧 프랑스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미치던 경로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은 기실 제국주의적인 동화 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합과 차별(화)라는 통념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 공/사의 위계와 유비할 수 있는 위계를 이룬다. 이 위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공화주의'라 불리는 프랑스 민족성으로, 여기에 통합되는 정도에 따라 '문화'와 '종족(성)'이 차별적으로 범주화되어, 예컨대 '공화국 시민'과 '이등 시민', 그리고 '불법 이민'이 분할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위계의 목적은 식민지 토착민이 새롭게 해방된 시민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에 대한 물리적·상징적 폭력 및 그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포함한다. 동시에 이처럼 평가절하됐던 집단들이 스스로를 또 다른 보편적 상징으로 주장할 때, 과거 보편적이고 공적인 것을 점유하고 있던 집단들은 혼란과 불안에 시달리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 쪽에 이끌리기 쉽다. 이주자들, 특히 무슬림 이주자들과 관련된 갈등이 특히 격렬해지는 것은, 이 같은 사회통합 담론에 내적인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 식민 유산은 탈식민화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현 정세에서 과거 식민지 '신민'의 자리는 이주자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같은 위계화는 프랑스가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는 공화제 입헌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특히 '사회권'의 경우가 상징적이다. 사회권은 본래 민족적 결속력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라는 두 가지 준거에 기초한 것이었다. 여기서 특정 민족 출신 노동자는 이 두 가지 준거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는 반면, 이주자는 이 두 준거 간의 괴리를 가장 극적으로 체현한다. 민족적 소속이라는 기준을 조정하거나 상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권을 특정 민족적 소속에 따른 권리들의 위계로 변질시킬 것인가 하는, 시민권의 운명을 둘러싼 논쟁이 항상 이주자의 권리와 연관되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그러나 경제적 세계화와 새로운 불평등의 효과 때문에 반동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재식민화는 특히 198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화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세계 및 인류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였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위치는 특정 국가 안에서 그들이 점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위치로 번역되어 할당된다. 이는 각각의 인종이 고유한 문화를 가지는 바, 이를 보호하려면 문화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문화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고립주의, 반-인종주의를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주의적' 신-인종주의와 결합한다. 남반부 출신 시민들은 주로 도시나 교외의 게토에 머물도록 강제되거니와, 이곳에서는 식민지 점령지에서 실행되는 행정조치가 집행되고, 종종 적나라한 경찰 폭력이 지배한다. 행정권력과 사법권력, 정치적 권위와 경찰적 권위는 체계적으로 뒤섞이고, 이는 동등한 존엄성을 갖춘 외국인의 지위라는 환상을 파괴한다. 이처럼 존엄성을 정치적으로 인정받는 공민적 권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은 이 '신민'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자의적 권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소요가 일어나기 전 클리시 수 부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남한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어서, 국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영장 없이 강제단속하고 고무총으로 탄압하며, 수갑과 쇠사슬을 휘감는다. 이렇듯 화려하게 부활한 식민주의의 인종 분할은 보충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우선 경제적 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정치적 면에서 보자면,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간,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 간의 종족적 분할선을 유지함으로써, 이주자들이 전통적인 계급투쟁 형태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초민족화하는 맥락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 분할선을 사이에 두고 분할선 이편에 있는 방어적 대중운동은 현재 위기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런 위기를 무력하게 겪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미움을 분할선 저 편의 이주자들에게 투사한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상상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이 같은 정서가 강력한 한에서 대중들은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가하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분할선 저 편에서 공적 영역에의 접근, 표현의 자유와 투쟁의 가능성을 금지 당하고 게토에 감금되는 이주자들은 개성화와 사회화가 동시에 억압되며,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그런 것처럼 개인적·집단적 자유의 쟁취가 제약된다. 이주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이들의 억압과 배제 곧 '비권리'에 기초한 착취 가능성 및 사회적 다수자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의가 프랑스의 공적 생활을 기초하고 있다. '진실의 순간' 운운에도 불구하고 빌팽 총리의 발언이 비길 데 없이 위선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자들을 끊임없이 불법 상태로 내모는 것이 기존 프랑스의 '사회통합'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주자들의 불법 상태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착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와 동일한 불의에 기초한 모든 국가와 사회에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문제의 전진적 해결은 오직 기존의 '사회통합' 및 '민족적 공화주의'의 도착적 효과를 반성하는 것, 정치의 민주주의적 원리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행정·경찰 원리 결국 식민주의를 변혁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주자의 시민권 확대임과 동시에, 이주자들의 배제라는 불의에 기초한 기존 시민권의 개조인 한에서, 이는 분할선 양 편 모두에서 시민권이 유례 없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주자들의 시민권 문제는 시민권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민권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으로 확대되는 '아파르트헤이트'3) 혹자는 세계화 및 구체적으로 유럽통합이 이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재의 유럽통합은 유럽 수준의 '아파르트헤이트'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이른바 "유럽 시민권"이 유럽에서 거주의 시민권(citizenship of residence)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민족국가의 시민에게만 추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비회원국 시민이나 회원국의 '불법' 이주자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시민권 논의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기본적으로 부인한다. 연합 차원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비(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 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 국 시민, 타 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이와 함께 이주자들 또는 넓은 의미에서 비유럽 이방인들에 대한 차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쉥겐 협약이다. 이 협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비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 협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 이러한 조치는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고유한 정치적 기능을 행사한다. 또한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의 확대는 다름 아닌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생산한다. 즉 사회 전반에서 행정과 경찰, 심지어 전쟁 논리가 정치 논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유럽연합, 특히 중심국들은 이주의 흐름을 지속시키길 원한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이들은 유럽연합 중심국과 주변국, 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못한 유럽의 주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한다. 유럽의 주변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이 빈곤을 피해 중심국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중심 안의 주변', '제 1세계 안의 제 3세계'를 형성한다. 프랑스 방리유보다 이 말에 잘 들어맞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도처의 '경계지대'에 이주자들이 있다. 개별 국가 안에서 '소수자'인 이주자들이 전 유럽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의 '16번째 회원국'이라 불릴 정도의 '다수자'로 등장한다. 각 국가들이 이주자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특히 이번 소요사태를 두고 전 유럽이 확대가능성에 대해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자를 1848년 당시 마르크스가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 '유령', 각 국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위험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오늘날 이주자가 유럽의 새로운 유령으로 돌아온다면, 동시에 이를 쫓기 위한 '신성동맹'과 이 '위험계급'에 대한 살육도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럽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을 막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의 범죄화는 더 큰 불의와 폭력을 부를 뿐이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세계화 속에서 계급 간·지역 간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한편 기존의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발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방어적이고 행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극단적 결과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이렇게 발생한 문제를 행정적·경찰적으로 다루는 '배제에 기반한 관리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정치논리와 이념'을 배제하고 '시장원리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민생정치'와 '사회적 합의·통합'에 주력하자는 담론이 좌/우, 진보/보수 세력을 막론하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프랑스 소요사태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관리주의의 핵심 논리로, 이는 정치를 말의 강한 의미에서 '통치'와 '치안'으로 타락시킨다. 관리주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 즉 계급투쟁과 여타 갈등 형태의 정당성을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가 갈등의 생산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논리는 갈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가운데 합의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갈등과 근본적 차이에 대한 몰인정 및 법질서적 접근, 결국 갈등과 차이의 범죄화는 자신들을 그 상태로 밀어 넣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에게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는 대중들의 격분을 초래한다. 만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공적 해결책도 주어져 있지 않다면, 대중들이 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격분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다.4)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우리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역설적으로 법질서적이고 경찰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흡수된다. 실제로 이번 사르코지의 대응에서 보듯, 경찰논리의 대변자들은 갈등을 범죄화하여 대항폭력을 도발한 후, 그렇게 유발된 대항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느끼는 대중들의 불안에 힘입어, 이른바 '예방폭력'으로서 자신의 폭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시민들의 70% 이상이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하고, 법질서적 접근을 지지하며, 르펜당에 며칠 사이 1000명 이상 가입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계급들이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또한 갈등을 '법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을 때, 우리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반동화의 위험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등장한 대중들의 비참한 조건을 법질서와 경찰논리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은폐하지 않으면서,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응답하면서, '사회통합'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한 기존 사회를 변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안락하지만 불의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야만적이고 경찰적으로 변하는 국가 개입이 일종의 '상수'로서 개입하여, 대중들의 분노 및 폭력의 악순환을 도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과제와 함께 무엇보다 긴급하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악화시키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한 대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의 전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의 구조 자체에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클리시 수 부아의 비극, 우리 사회에서 더 비참하게 고통받고 모욕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이다. [각주] 1) 아래 사건 경과는 주로 박영신,「"우린 당신들의 개가 아니다" '불타는 프랑스' 이유 있었다」,『오마이뉴스』11월 8일자를 주로 참고했다.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 중 사건 경과를 가장 세심하게 다루고 있고 특히 소요사태에서 프랑스 지배계급의 도발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거의 유일하게 분석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박영신 기자에게 감사 드린다. 한편 아래 대부분의 분석은 E. Balibar, Droit de cit or Apartheid?,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를 참고했다. 이와 함께 참고할 만한 분석은 엄한진,「프랑스 이민자 사회의 봉기, 그 원인은?」,『인권하루소식』제 2935호(05.11.12), 손영우,「도시 소요와 기로에 선 프랑스 신자유주의」,『프로메테우스』11월 21일자를 보라.본문으로 2) E. Balibar, Racism and Crisis, Race, Nation, Class, Verso 1991, 219-220pp.본문으로 3)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은 강국,「유럽헌법조약부결과 정치이념논쟁」,『사회운동』2005년 7/8월호를 보라. 본문으로 4) 지난 번『사회화와 노동』287호에서 필자는 이번 사태가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주소 없는' 폭력"으로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근거 없는 부적합한 평가였다. 손영우의 글에서 인용된 소요참가자들의 TV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이 방화의 대상으로 삼은 곳은 보험을 통해 일정 정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불평등한 공공서비스의 대표 격인 대중교통, 다른 지역에 비해 빈약한 투자로 인해 시설이 낡은 학교, 체육관을 비롯한 관공서, 낙후된 지역에 세워 많은 세금혜택을 챙기면서도 이 동네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인색했던 대기업 상점 등으로, 분명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손영우, 앞의 글 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소요사태의 책임은 국가와 경찰, 그리고 지배계급에게 있다1) 지난 10월 27일, 이슬람 신도들이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의 마지막 날, 주민 중 실업자가 50%에 달하고 어린이의 반수가 유급을 경험하며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불심검문이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파리 방리유(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 한 공터에서 늦게까지 공놀이를 하던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은, 지난 10월 19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이 교외 폭력 행위에 '가차 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이래 경찰 검문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모욕을 피하고 한 달간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울 생각에 우회로를 택한다. 운 나쁘게 경찰과 마주친 소년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그들 중 셋은 근처 송전소 쪽으로 향한다. 이들 중 한 명은 입구 외진 곳에 몸을 숨겼다가 경찰의 발소리를 듣고는 기절하고, 나머지 두 소년 지에드(17)과 바누(15)는 송전소 2.5미터 높이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다. 사고가 발생하자 프랑스 언론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한다. 그러나 사건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분노한 방리유 젊은이들은 차량 23대를 불태우고 상점 등을 공격하면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다. 방리유 소요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고 발생 다음날인 28일 밤, '경찰의 살인적 추격 작전'을 규탄하며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250~3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실탄이 경찰차에 날아들고 여기저기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다음날인 29일, 클리시 수 부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희생자 가족 등 500여 명이 비폭력 침묵시위를 벌이고, 차량 방화는 여전했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은 없는 등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그러나 30일 밤, 뉴스에 방영된 사르코지의 발언으로 상황은 돌변한다. 사르코지는 이날, "경찰은 (감전사한) 소년들을 추격한 바 없다"고 단언하고 도시 테러에 '똘레랑스 제로' 선언을 재확인하며, 경찰력 보강을 위해 공화국보안기동대 17개 중대와 7개 헌병 중대 배치를 명령하면서 "더 이상 순찰의 문제가 아니다… 체포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지난달 25일 또 다른 방리유인 아르장퇴유에서 주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무슬림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한 사르코지의 발언이 30일 밤 저녁뉴스 시간에 수 차례에 걸쳐 방송된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는 소요현장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방리유 주민들을 다시 한 번 쓰레기 취급한다. 같은 시간, 공화국 기동대의 최루탄이 클리시 수 부아의 한 이슬람 사원에 떨어진다. 격분한 신도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경찰은 모스크에 최루탄을 발사한 일이 없다고 발뺌한다. 이처럼 명백한 도발에 분노하며 화염병과 돌을 든 방리유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소규모 그룹을 이룬, 14-20세의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본토 출신 이민자 자녀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늘어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2개 교외 소도시들로 소요가 확산되고, 11월 6~7일 밤은 자동차 1,400대가 방화되고 400명이 체포된다. 파리 근교에 한정됐던 혼란은 디종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까지 번져 226개 마을에서 1,173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며, 심지어 독일과 벨기에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프랑스 소요사태의 모방범죄로 보이는 차량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전 유럽이 긴장한다.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13일째 계속된 11월 9일 프랑스 정부가 본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상사태령을 선포한다. 야간통행금지, 집회와 결사 금지, 영장 없는 단속/체포/체포/언론/출판 통제/거주지 제한 등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항목으로 이루어진 비상사태법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정부가 2-3세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식민지 신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도시들에는 산발적인 소요가 이어지고, 경찰은 에펠탑과 샹 젤리제 대로 등 주요 지점을 위주로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친다. 한편 파리 라탱 구역에서는 좌파 및 노동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열려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을 비판하고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 8일 르파리지앵이 게재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는 야간통금에 찬성한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기관 CSA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의견을 밝히고 각종 강경 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우파성향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는다. 급기야 사르코지는 9일 하원회의에서 "이번 소요사태에 참가했다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프랑스 영토에서 추방하도록 각 도지사들에게 요청했다"고 발표함으로써, (피고인이 동일범죄에 대해 이중으로 형사처벌 받을 위험을 방지하는)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을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전원추방"을 주장하는 극우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우파 정당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는 지난 주 이래 "통금령을 실시하고 군대를 투입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또 일찍이 80년대 중반 '이민자 2백만, 실업자 2백만'이라는 악명 높은 선거구호로 반(反)이민운동을 선도하고 2002년 대선 결선투표 진출로 기염을 토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당수는 9일 AP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대량 유입이 프랑스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던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프랑스 신분증이 있다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다.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은 그들의 원래 나라들로 돌려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의 신입당원 담당 부서는 사태 발생 이후 1천여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힌다. 며칠 동안 침묵하던 시라크 대통령의 첫 발언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빌팽 총리는 11월 8일 오후 하원에 출석해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으며 "우리 통합 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질서와 경찰논리는 모든 사회쟁점과 갈등을 압도하는 절대선의 자리에 등극한다. 시라크는 "공공질서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부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며 인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주 문제' - 사회 위기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주 문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실업, 빈곤, 주거, 사회갈등, 범죄, 교육, 동일성, 보건, 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주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되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을 추방하거나 경찰적·행정적 수단에 따라 관리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주자들은 전간기(戰間期)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태인의 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민족적 나아가 유럽적 동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불순물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말이다.2) 지난 20년 간 프랑스 정부는 이주자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된 비행'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억압적·굴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 쪽으로 점점 더 이끌렸다. 좌우 간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좌우파 간 격렬한 경쟁의 특권적 대상으로 등극했다. 1990년대 후반 미등록 이주자의 거대한 투쟁 앞에서 법과 행정부의 권위를 강압한 것은 다름 아닌 '좌파 총리' 조스팽이었다. 그 이후 좌우 양편에서 '세계화'의 경제적 힘, '범죄적' 이주 네트워크, 경제적 또는 문화적 특수주의, 마지막으로 '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홀린 관념적 지식인과 단체가 뿌리째 흔들고 있는 민족주권 및 '공화국'을 수호하자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해진다. 이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공격 대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주자였다. 이른바 '민족적 공화주의'는 프랑스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사회의 해체와 공공 서비스의 위기 등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교사와 경찰을 포함한 각급 수준의 공무원들이 공화국 수호의 기치 아래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구체적 조치들이 뒤따른다. 법적 영역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 중 하나는 '이중위험' 관행의 등장으로, 이주자들에게 법적 형벌과 추방이 함께 집행된다. 이는 시민들의 기본권이 그 국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니와, 다른 기본권 특히 사회권 등으로 확대된다. 또한 국가행정 전반에 '제도적 인종주의'가 (재)도입되는데, 외국인 특히 남반구에서 온 '검둥이들'의 경우, 경찰신원조사에서 인종에 따른 분류, 강제수용소를 닮은 각종 구금, 강제추방 등 야비한 조치들에 노출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주권이다. 즉 국가가 자임하는 '주권'과 경제정책·집단안보·정보기술 등에 관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무능력이 대비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극히 무력한 이주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권위가 건재하다는 허구를 상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권위적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폭력'과 '치안' 담론의 득세는 정확히 이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다. 이를 시민권의 보편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권리가 열등하고 취약하며 기존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징표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따라서 르펜과 사르코지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주자들은 신분증이 있더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인 특히 '남반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행정 전반의 '제도적 인종주의'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민족 구성원의 시민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의 뿌리로서 식민주의 동화 담론 - 되돌아온 식민주의 유산 위에서 살펴본 현상들은 단적으로 세계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럽통합의 '인종화'와 관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식민주의 유산이 새로운 맥락에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우선 현재 알제리와 같은 과거 (반)식민지 영토 출신 노동자들에게, 나아가 이른바 '남반부' 노동자들 전반에게 적용되는 행정적 조치와 관행은, 프랑스 국가장치 형성의 결정적 시기에 식민지 영토에서 '토착' 인구를 대상으로 집행된 정책을 그 기원으로 한다. 방리유에 대한 도시 정책이 그렇고, 무엇보다 이번에 발동된 비상사태법이 그렇다. 다음으로, 현재 진행되는 노동이주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확립된 경로, 곧 프랑스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미치던 경로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은 기실 제국주의적인 동화 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합과 차별(화)라는 통념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 공/사의 위계와 유비할 수 있는 위계를 이룬다. 이 위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공화주의'라 불리는 프랑스 민족성으로, 여기에 통합되는 정도에 따라 '문화'와 '종족(성)'이 차별적으로 범주화되어, 예컨대 '공화국 시민'과 '이등 시민', 그리고 '불법 이민'이 분할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위계의 목적은 식민지 토착민이 새롭게 해방된 시민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에 대한 물리적·상징적 폭력 및 그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포함한다. 동시에 이처럼 평가절하됐던 집단들이 스스로를 또 다른 보편적 상징으로 주장할 때, 과거 보편적이고 공적인 것을 점유하고 있던 집단들은 혼란과 불안에 시달리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어적 폭력 쪽에 이끌리기 쉽다. 이주자들, 특히 무슬림 이주자들과 관련된 갈등이 특히 격렬해지는 것은, 이 같은 사회통합 담론에 내적인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 식민 유산은 탈식민화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현 정세에서 과거 식민지 '신민'의 자리는 이주자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같은 위계화는 프랑스가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는 공화제 입헌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특히 '사회권'의 경우가 상징적이다. 사회권은 본래 민족적 결속력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라는 두 가지 준거에 기초한 것이었다. 여기서 특정 민족 출신 노동자는 이 두 가지 준거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는 반면, 이주자는 이 두 준거 간의 괴리를 가장 극적으로 체현한다. 민족적 소속이라는 기준을 조정하거나 상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민권을 특정 민족적 소속에 따른 권리들의 위계로 변질시킬 것인가 하는, 시민권의 운명을 둘러싼 논쟁이 항상 이주자의 권리와 연관되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그러나 경제적 세계화와 새로운 불평등의 효과 때문에 반동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재식민화는 특히 198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화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세계 및 인류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였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위치는 특정 국가 안에서 그들이 점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위치로 번역되어 할당된다. 이는 각각의 인종이 고유한 문화를 가지는 바, 이를 보호하려면 문화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문화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고립주의, 반-인종주의를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주의적' 신-인종주의와 결합한다. 남반부 출신 시민들은 주로 도시나 교외의 게토에 머물도록 강제되거니와, 이곳에서는 식민지 점령지에서 실행되는 행정조치가 집행되고, 종종 적나라한 경찰 폭력이 지배한다. 행정권력과 사법권력, 정치적 권위와 경찰적 권위는 체계적으로 뒤섞이고, 이는 동등한 존엄성을 갖춘 외국인의 지위라는 환상을 파괴한다. 이처럼 존엄성을 정치적으로 인정받는 공민적 권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은 이 '신민'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자의적 권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소요가 일어나기 전 클리시 수 부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남한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어서, 국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영장 없이 강제단속하고 고무총으로 탄압하며, 수갑과 쇠사슬을 휘감는다. 이렇듯 화려하게 부활한 식민주의의 인종 분할은 보충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우선 경제적 면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정치적 면에서 보자면,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간,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 간의 종족적 분할선을 유지함으로써, 이주자들이 전통적인 계급투쟁 형태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초민족화하는 맥락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 분할선을 사이에 두고 분할선 이편에 있는 방어적 대중운동은 현재 위기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런 위기를 무력하게 겪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미움을 분할선 저 편의 이주자들에게 투사한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상상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이 같은 정서가 강력한 한에서 대중들은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가하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분할선 저 편에서 공적 영역에의 접근, 표현의 자유와 투쟁의 가능성을 금지 당하고 게토에 감금되는 이주자들은 개성화와 사회화가 동시에 억압되며,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그런 것처럼 개인적·집단적 자유의 쟁취가 제약된다. 이주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이들의 억압과 배제 곧 '비권리'에 기초한 착취 가능성 및 사회적 다수자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의가 프랑스의 공적 생활을 기초하고 있다. '진실의 순간' 운운에도 불구하고 빌팽 총리의 발언이 비길 데 없이 위선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자들을 끊임없이 불법 상태로 내모는 것이 기존 프랑스의 '사회통합'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주자들의 불법 상태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착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와 동일한 불의에 기초한 모든 국가와 사회에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문제의 전진적 해결은 오직 기존의 '사회통합' 및 '민족적 공화주의'의 도착적 효과를 반성하는 것, 정치의 민주주의적 원리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행정·경찰 원리 결국 식민주의를 변혁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주자의 시민권 확대임과 동시에, 이주자들의 배제라는 불의에 기초한 기존 시민권의 개조인 한에서, 이는 분할선 양 편 모두에서 시민권이 유례 없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주자들의 시민권 문제는 시민권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시민권의 기회인 것이다. 유럽으로 확대되는 '아파르트헤이트'3) 혹자는 세계화 및 구체적으로 유럽통합이 이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현재의 유럽통합은 유럽 수준의 '아파르트헤이트'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이른바 "유럽 시민권"이 유럽에서 거주의 시민권(citizenship of residence)을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민족국가의 시민에게만 추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비회원국 시민이나 회원국의 '불법' 이주자들을 다시 한 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시민권 논의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기본적으로 부인한다. 연합 차원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비(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 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 국 시민, 타 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이와 함께 이주자들 또는 넓은 의미에서 비유럽 이방인들에 대한 차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쉥겐 협약이다. 이 협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비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 협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 이러한 조치는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고유한 정치적 기능을 행사한다. 또한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의 확대는 다름 아닌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생산한다. 즉 사회 전반에서 행정과 경찰, 심지어 전쟁 논리가 정치 논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유럽연합, 특히 중심국들은 이주의 흐름을 지속시키길 원한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이들은 유럽연합 중심국과 주변국, 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못한 유럽의 주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한다. 유럽의 주변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이 빈곤을 피해 중심국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중심 안의 주변', '제 1세계 안의 제 3세계'를 형성한다. 프랑스 방리유보다 이 말에 잘 들어맞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도처의 '경계지대'에 이주자들이 있다. 개별 국가 안에서 '소수자'인 이주자들이 전 유럽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의 '16번째 회원국'이라 불릴 정도의 '다수자'로 등장한다. 각 국가들이 이주자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특히 이번 소요사태를 두고 전 유럽이 확대가능성에 대해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자를 1848년 당시 마르크스가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 '유령', 각 국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위험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오늘날 이주자가 유럽의 새로운 유령으로 돌아온다면, 동시에 이를 쫓기 위한 '신성동맹'과 이 '위험계급'에 대한 살육도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럽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을 막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의 범죄화는 더 큰 불의와 폭력을 부를 뿐이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세계화 속에서 계급 간·지역 간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한편 기존의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발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방어적이고 행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극단적 결과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이렇게 발생한 문제를 행정적·경찰적으로 다루는 '배제에 기반한 관리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정치논리와 이념'을 배제하고 '시장원리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민생정치'와 '사회적 합의·통합'에 주력하자는 담론이 좌/우, 진보/보수 세력을 막론하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프랑스 소요사태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관리주의의 핵심 논리로, 이는 정치를 말의 강한 의미에서 '통치'와 '치안'으로 타락시킨다. 관리주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 즉 계급투쟁과 여타 갈등 형태의 정당성을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가 갈등의 생산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논리는 갈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가운데 합의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갈등과 근본적 차이에 대한 몰인정 및 법질서적 접근, 결국 갈등과 차이의 범죄화는 자신들을 그 상태로 밀어 넣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에게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는 대중들의 격분을 초래한다. 만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공적 해결책도 주어져 있지 않다면, 대중들이 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격분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다.4)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우리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역설적으로 법질서적이고 경찰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흡수된다. 실제로 이번 사르코지의 대응에서 보듯, 경찰논리의 대변자들은 갈등을 범죄화하여 대항폭력을 도발한 후, 그렇게 유발된 대항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느끼는 대중들의 불안에 힘입어, 이른바 '예방폭력'으로서 자신의 폭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시민들의 70% 이상이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하고, 법질서적 접근을 지지하며, 르펜당에 며칠 사이 1000명 이상 가입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계급들이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또한 갈등을 '법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을 때, 우리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반동화의 위험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등장한 대중들의 비참한 조건을 법질서와 경찰논리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은폐하지 않으면서,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응답하면서, '사회통합'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한 기존 사회를 변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안락하지만 불의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야만적이고 경찰적으로 변하는 국가 개입이 일종의 '상수'로서 개입하여, 대중들의 분노 및 폭력의 악순환을 도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과제와 함께 무엇보다 긴급하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악화시키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한 대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의 전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의 구조 자체에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클리시 수 부아의 비극, 우리 사회에서 더 비참하게 고통받고 모욕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이다. [각주] 1) 아래 사건 경과는 주로 박영신,「"우린 당신들의 개가 아니다" '불타는 프랑스' 이유 있었다」,『오마이뉴스』11월 8일자를 주로 참고했다.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 중 사건 경과를 가장 세심하게 다루고 있고 특히 소요사태에서 프랑스 지배계급의 도발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거의 유일하게 분석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박영신 기자에게 감사 드린다. 한편 아래 대부분의 분석은 E. Balibar, Droit de cit or Apartheid?,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를 참고했다. 이와 함께 참고할 만한 분석은 엄한진,「프랑스 이민자 사회의 봉기, 그 원인은?」,『인권하루소식』제 2935호(05.11.12), 손영우,「도시 소요와 기로에 선 프랑스 신자유주의」,『프로메테우스』11월 21일자를 보라.본문으로 2) E. Balibar, Racism and Crisis, Race, Nation, Class, Verso 1991, 219-220pp.본문으로 3)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분석은 강국,「유럽헌법조약부결과 정치이념논쟁」,『사회운동』2005년 7/8월호를 보라. 본문으로 4) 지난 번『사회화와 노동』287호에서 필자는 이번 사태가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주소 없는' 폭력"으로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근거 없는 부적합한 평가였다. 손영우의 글에서 인용된 소요참가자들의 TV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이 방화의 대상으로 삼은 곳은 보험을 통해 일정 정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불평등한 공공서비스의 대표 격인 대중교통, 다른 지역에 비해 빈약한 투자로 인해 시설이 낡은 학교, 체육관을 비롯한 관공서, 낙후된 지역에 세워 많은 세금혜택을 챙기면서도 이 동네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인색했던 대기업 상점 등으로, 분명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손영우, 앞의 글 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들어가며: 정상이 되어 버린 비상사태 클리시 수 부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전역의 방리유로 번져 나간 소요 사태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지난 17일 프랑스 경찰은 소요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었으며, 프랑스 전역이 정상적인 (치안) 상황을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지배자들은 이렇게 하나의 국면 혹은 시퀀스가 끝났다고 선언하려 애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정상이란 말인가? 70% 이상의 국민이 비상사태의 선언 및 그것의 연장에 찬성하면서 '비상사태는 정상적인 것이야'라고 말하는 가운데, 정상적으로 된 것은 오히려 비상사태가 아니던가? 사고, 소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시청자들의 '두려움 혹은 공포'라는 '정서의 모방', 비상사태 선언, 그것에 대한 인정. 이번 사건은 9.11 사태에서 우리가 경험한 '이미지화된 (공포) 정치' 메커니즘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포 정치 및 자발적 예속 혹은 복종 논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가? 내무부 장관 사르코지의 '쓰레기' 운운하는 발언들 및 클리시 수 부아에서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두 소년의 죽음, 그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은 방리유의 저조한 생활수준 및 대규모 청년 실업 문제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일 뿐, 이번 사건의 원인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 혹은 이민자들의 반란쯤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분명히 프랑스 국적을 가진 자들 - 우리는 아마도 그들을 반은 프랑스인(fran ais)이고 반은 외국인( trangers)인 fran trangers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1) - 이 '무장경찰-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정부의 폭력, 백인 프랑스인들의 미묘한 인종차별 규정, 계속되는 사회 보장 예산 삭감 및 대규모 청년 실업이라는 장기적인 불안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비록 그네들이 어떠한 정치적인 모토도 내세우지 않고 제도화된 시위 문화를 보여주지 못한 듯이 보이더라도, 어떠한 주모자도 없이 순식간에 우발적으로 확산되는 폭력적 소요의 형태를 띠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봉기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는 이 짤막한 글에서 방리유 청소년들이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까발리고 싶어했던 프랑스의 비가시적인 차별들의 원인을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성찰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는 방리유 혹은 씨떼의 공간-정치적 작동 원리를 살펴보고, 그 경계에서 발명해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씨떼의 권리'의 가능성에 대해 말할 것이다.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는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 그리고 강화된 불심검문 및 경찰(폭)력에 의해 긴장된 삶을 살고 있는 방리유 거주자들에게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빚을 지게 되었다. 방리유 그리고 씨떼: 포함적 배제의 논리 프랑스에서는 도시 외곽지역을 방리유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히 방리유에서도 대규모 HLM(서민임대주택) 단지들을 씨떼(cit )라고 부른다. 일단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정치철학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은 현 사건의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는 '장소'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방리유(Banlieue)라는 단어는 ban과 lieue의 합성어이다. 옛 게르만어에서, ban이라는 단어는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는 동시에, '주권자의 명령 및 휘장'을 뜻하는 단어였다. 옛 프랑스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ban이란 proclamation, 즉 포고령인 동시에, 역사적으론 추방을 의미했다.2) 그리고 lieue란 거리의 단위로서, 4km에 해당한다. 따라서 방리유란 'ban의 법이 실행되는 도시 주변 4km 내의 공간'을 의미한다. 물론 오늘날 4km라는 규정은 더 확장되었으며, 법의 실행 역시 아감벤의 말을 빌자면 포함적 배제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따른다. 우리는 이 단어의 정의 자체 내에서 도시와 그 주변의 배치 문제, 그리고 그 공간을 구획·배치하는 원리로서의 법 혹은 포고령의 문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는 주권이 실행되는 패러다임의 한 형태인 방리유의 면모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방리유는 어떤 역할을 해 왔던 것인가? 그것은 도심지(중심으로서의 도시)의 외곽이자 하위도시 역할을 해 왔다. 방리유는 단순히 교외지가 아니라 '외곽'이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도심지를 보호하는 성곽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죽음 앞에 선 인간』에서 필립 아리에스는 도시의 경계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이것은 전시에 성벽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밝혔다.3) 바로 이런 지역에 거주하는 방리유 사람들은 평시나 전시에 도시를 방어하는 보호막 역할을 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네들은 유령(!)들과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하위'인가? 방리유 거주자들은 도시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이자 하부, 기층 노동자였다. 방리유라는 공간은 각종 공장과 작업장, 도살장, 벼룩시장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프랑스 방리유의 근간을 이룬 19세기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러한 미묘한 위상학으로부터 파생되는 병리학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로부터 대중들의/에 대한 공포를 말했듯이, 우리는 방리유 거주자들의/에 대한 공포를 말할 수 있다. 방리유 거주자들은 언제나 도심지로부터 파견된 경찰력에 의해 위협을 받는 반면, 도시민들에게 그들은 일종의 유령이었으며, 낮과 밤에 '출몰하는 자들'이었다. 낮에는 노동을 하러 출몰하고(그네들은 '죽은' 노동을 하기 때문에 유령이다), 밤에는 (실제의 여부를 떠나서) 잠재적으로나마, 일종의 도적으로서 출몰했던 것이다.4) 씨떼라는 단어 역시 다의적이다. 첫째,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polis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번역어이다. 그런데 폴리스는 좁은 의미의 '도시'를 지칭하는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도시-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도시-국가(polis)는 원래 정치적, 종교적, 상징적 중심으로서의 도시(polis)와 생산 및 거주지로서의 대지(ch ra)를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도시-국가와 도시가 모두 polis로 명명되는 가운데, 도시가 곧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논리가 발견된다. 둘째, 씨떼는 영어의 city와 마찬가지로 도시만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적인 도시-국가 체계가 국가(Etat) 대 도시(ville)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뤄진 것이다. 셋째, 1848년부터 노동자 계급의 가족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 단지를 cit ouvri re라는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고, 오늘날 방리유의 공영 주택 단지에 대해서도 프랑스에서는 씨떼라고 부른다. 씨떼라는 단어에 함축된 역사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씨떼의 전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1) 도시-국가 = 도시 [사적인 영역(oikos)을 사회적으로 포함하나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공공 영역(polis)], 2) 국가 對 도시 [공공 영역 대 사적 영역의 이분법적 구분], 3) 국가+도시 對 씨떼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불가능과 유기된 주변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 정부의 대응, 씨떼를 마치 국가 안의 (내부적 적으로서의) 국가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전쟁 및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 속에서 우리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단지(씨떼)가 도시-국가(씨떼)로 상승 혹은 중첩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재현 혹은 대표로부터는 배제되어 있지만, 국가, 정치, 법의 메커니즘으로부터는 늘 통제 가능한 거리 내에 위치하는 동시에 버려지는 곳으로서의 방리유 혹은 씨떼는 평상시에는 '무이거나 공백'이지만, 국가의 통제력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에는 '충만한 적'으로 둔갑하게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역으로 반란과 봉기는 이러한 내부의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인종주의? 이러한 공간 분할 및 (위로부터 규정된) 국가 안의 국가 구도는 철저히 프랑스인 대 외국인, 이민자, 무슬림의 대립 구도에 기초하고 있다. 무슬림 = 잠재적 테러라는 손쉬운 등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채, 이미지를 통해서만 이번 사건을 경험하는 시청자들은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그리 놀라지 않는다. "쟤들은 원래 저러니까"라는 낙인에 대한 재인(再認)만이 존재할 뿐. 그러나 이번 소요 사태의 주체는 서두에서도 지적했듯이 엄연히 프랑스 국적을 가진 혹은 가질 청소년들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간극이 존재한다. 비록 '법적인' 차원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적인 차원에서는 그네들의 시민'권'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법의 힘'의 아포리아뿐 아니라 '권리의 힘'의 아포리아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이다. 법적인 차원에서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명목적일 뿐,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권리는 그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한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방리유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몫소리'를 요구하고 외친 것뿐이다. 그렇다면 방리유 청소년들 나아가 이주민들(특히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들)의 시민권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에 대해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라고 답해야 한다. 발리바르는 『민주주의의 경계들』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주장하는 주요 테제는 인종주의의 제도적 구조이다. 모든 인종주의가 공식화된 국가적 인종주의는 아니지만, 그것은 제도들의 구조에, 이 제도들과 개인 및 대중의 의식적, 무의식적 관계에 정박해 있다. 따라서 제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평등한 형태와 불평등한 메커니즘 사이의 모순, 시민(권)(citoyennet )과 주체화[복종](sujetion)의 모순이 결정적으로 된다."5) 덧붙여 그는 '민주주의'의 경계들에 대해 그곳은 민주주의가 정지하는 지점이자, 그 지점 너머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곳이라고 규정한 뒤, 바로 그 경계야말로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곳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가운데 새로운 공간이 발견되는 곳이자 정치가 발명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방리유는 분명 발리바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경계라 불릴 만 하다.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 뿐 아니라 '공화국'이라는 관념 자체를 의문에 부쳐야 한다. 발리바르와 오질비 등이 11월 16일자 『뤼마니떼』에 기고한 기사는 "공화국의 목을 쳐라!"라는 선언으로 끝을 맺고 있다.6) 왜 '공화국'이 문제인가? 오늘날 프랑스의 민족주의, 제도화된 인종주의가 바로 '공화국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두건) 착용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문제제기였다. 이는 여성 차별 반대라는 페미니즘적 외양을 동원함으로써 이뤄졌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히잡 착용이 프랑스의 정교분리주의 교육 정신에 위배된다는 '공화국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Res publica, 공적인 일을 일컫기도 하는 이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의지가 아닌 보편적인 이익과 의지에 입각한 통치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보편이 도대체 무엇인가?7)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0조에 따르면, "누구도 그의 의견이 법률에 의하여 정해진 공공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그의 의견이 비록 종교상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스카프 착용이 그리도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것이었던가? 오히려 그 배후에는 '수용 가능하고, 동화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들어있지 않은가? 발리바르가 폭로하듯이 유럽의 백인 이민자들은 쉽게 동화되지만, 북아프리카의 흑인, 아랍 이민자들의 문화는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동화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후자가 전자와 달리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동등한 문화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또 다른 예는 비상사태. 68혁명 시기에도 선언되지 않았던 '비상사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은 단순히 '비상사태'가 소위 포스트 911, 미국의 애국자법(Patriot Act) 이후 유행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한 행동에는 프랑스인들 내부의 분란과 프랑스인 대 외국인의 그것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전제되는 것이며, '그들'이 우리 '공화국'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적과 동지의 구별이 함축되어 있다. 아감벤은 희생물이 될 수 없으나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에 대해 말한 바 있으나,8) 이런 형상은 고대 그리스에도 이미 존재했다. 도시-국가에 반하는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벌을 atimia라고 했는데, 이런 죄인(atimos)은 법정, 재판, 의회에 참석할 권리는 물론 그곳에서 말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종교도 금지되며, 모든 시민권을 상실한다. 무엇보다 이들을 때려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씨떼의 신이나 법은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도시 내의 이방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바,9) 우리는 현재 씨떼 거주자들 속에서 이 형상을 재발견할 수 있다. 공화국은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씨떼에 소속된다는 것, 즉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하나의 가정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동일화 과정을 수반한다. 오늘날 프랑스의 이주민 통합 정책의 실패를 비판하는 자들 중 일부는 프랑스가 사실상의 두 시민권을 인정한 것을 비판하며 더 강도 높은 공화국 이념에 입각한 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화국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는 가장 많은 이질성을 인정하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독특성을 거세하면서 동화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고정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이 구성되어 가는 이질성의 공존이 사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변화 작금의 방리유 지역 청소년들의 대규모 실업 현상은 그곳의 열악한 교육 환경, 빈번한 유급 및 문맹, 대학 입시에서의 차별 - 프랑스의 그랑제꼴들에서 아랍 출신자나 방리유 출신자들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 취업시 서류 전형에서부터 배제되는 상황들에서 그 표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만 주목하는 현재 프랑스 내 좌우의 토론들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내놓은 청소년 실업 대책은 이전 16세부터로 되어있던 직업 교육을 14세부터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회당의 일부 의원들이나 방리유의 교사들은 이 안을 방리유 뿐 아니라 전 학교로 확장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16세까지의 고등 의무 교육 기한을 14세까지 낮추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판단을 하기도 이른 나이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만드는 현대판 산업혁명 식 인력 동원을 통해 이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인가? 일부 의원들은 서류전형 시 이름을 기입하지 않고 직원을 채용하도록 강제하자고 말한다. 이른바 익명 이력서. 그러나 어차피 면접 때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은밀한 차별이 이뤄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나마 자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기피해온, 쿼터제를 아랍 출신자들에게도 적용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차별 정책(discrimination positive)을 써야 한다는 공동체주의적 대안들이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국 현재의 시장 경쟁 논리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나마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보겠다는 궁여지책들에 그치기 쉽다. 왜냐하면 현재의 위기는 비단 프랑스만의 위기가 아니라 포스트-포드주의 하의 유연화된 고용 시장이 가져온 자본주의 전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씨떼 청소년들이 인터뷰에서 요구한 바람은 한결 같았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남들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가족을 꾸리고 싶다." 이들이 그네들의 주거 공간인 씨떼 내에서 자기 파괴적인 봉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빼앗겨야 했던 장래에 대한 요구와 평범한 삶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오늘날 평범한 것은 오히려 드물고 어렵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요구가 그네들만의 것일까?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강화되는 노동 강도 및 조기 퇴직을 비롯한 일자리의 위협은 모든 노동자가 직면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봉기에 대해 어떤 연대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프랑스의 노조는 그네들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포드주의-복지국가 형태 내에서 제도화된 노동 운동은 '국익 우선'(pr f rence nationale) - 이는 동시에 국민 선호를 의미한다 - 을 얻어내는 대신 '시민권=국적'을 공고히 해 주었던 것이다. 도시와 방리유의 구분은 교환 가치와 사용 가치의 구분과 유비적이다. 기간의 노동 운동은 노동자들이 생산을 하는 한에서 공적인 일의 물적 토대 형성에 기여하며 그런 한에서 정치적인 몫소리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논리에 근거했다. 그러나 오늘날 방리유에 있던 공장들의 해외 이전 등으로 인해 사용 가치의 원천으로서의 방리유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탈중심화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현재의 자본의 흐름은 오히려 대도시의 재현성을 높이는 다국적화로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지식 기반 경제 혹은 비물질 노동의 경향적 우위는 도시의 교환 가치가 보다 생산적이라고 자처하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상대적으로 방리유는 그 몫소리를 더욱 상실하고 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갈수록 중심화되어가는 도시 중심의 발전 논리에 맞서 도시의 위상도를 줄이는 탈중심화 및 국지적인 망건설을 통해 독점적 교환 체계를 민주적으로 확장하는 것이자, 갈수록 감소되는 전통적인 일자리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강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는 기존의 교환 가치냐 사용 가치 혹은 노동 가치냐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존재 가치' - 기하학적 평등론에서 산술적 평등론으로, 훌륭함(aret )의 논리에서 평등(isonomia)의 논리로의 전화 - 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 방식은 '사회 보장 임금'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야 한다. 나가며: 씨떼의 권리 사람들은 시민권(droit de cit )에 대해 말해왔다. 우리는 앞에서 cit 라는 개념의 이중성 및 그것의 재현 논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적어도 그런 규정 하에서 보자면, 시민권이란 공적 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함축하며, 그것의 적용 방식은 도심지를 경계 쪽으로 좀 더 확장하는 것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씨떼의 권리(droit des cit s)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시민권이 갖는 재현 논리에 포섭되지 않으며, 씨떼들 사이의 이질적인 독특성을 간직한 채 공통된 것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불화의 힘을 간직한 민주주의든, 네그리의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역량이든, 발리바르가 말하는 '프랙탈'적인 구조를 갖는 비-전체적인 경계(fronti re non-enti re)든 그들은 공통되게 국가자본주의의 일괴암적 주권성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는가이다. 물론 공리(公理)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자들'의 정치 참여에의 권리이자, 그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존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나 발명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각주] 1) 국민과 외국인의 중첩 혹은 구분 불가능은 이번 사태와 같이 위로부터 부과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국민적 동일성(정체성)을 비판하는 한 방법, 즉 불가능한 동일화 전략이 되기도 한다. 발리바르가 "알제리, 프랑스 : 하나 혹은 두 국민?"에서 말한 "무슬림적인 프랑스인(Fran ais musulman)", "프랑스적인 무슬림(musulman fran ais)", 랑시에르가 언급하는 1968년의 슬로건, "우리는 모두 독일인 유태인이다" 같은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Etienne Balibar, Droit de cit : Culture et politique en d mocratie, Paris, ditions de l'Aube, 1998, p. 81과 Jacques Ranci re, Aux bords du politique, Paris, La Fabrique, 1998 : Gallimard, 2004, p. 120 참조.본문으로 2) 죠르지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예외의 관계가 추방의 관계이며, 추방당했던 자는 단순히 법의 바깥에 놓이는 것(법과 무관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유기된 것이라고 말한다. Giorgio Agamben, Homo Sacer : le pouvoir souverain et la vie nue, Paris, Seuil, p. 36-37 참조.본문으로 3) 필립 아리에스 지음, 유선자 옮김,『죽음 앞에 선 인간』, 서울, 동문선, 1997.본문으로 4) 물론 프랑스에서 방리유는 이중적이다. 파리를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의 방리유는 오히려 부자들이 도시로부터 거리를 취하면서 부촌을 형성하고 있고, 문제가 되고 있는 방리유는 대부분의 경우 동쪽과 북쪽의 방리유들이다. 따라서 방리유라는 단어를 일의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본문으로 5) Etienne Balibar, "avant-propos", Les fronti res de la d mocratie, Paris, La D couverte, 1992, p. 11.본문으로 6) Etienne Balibar et al., "Casse-cou la R publique!", L'Humanit , 16 novembre 2005. 본문으로 7) 프랑스 정부가 말하는 '보편'은 가톨릭 십자가 착용도 안 되니, 히잡도 안 된다(ni ... ni ...)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내용 없는 순수 형식으로서의 부정적 보편성이 아닌, 동시에 ... 이고 ... 이다를 요구해야 한다( la fois ...et ...). 물론 바디우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대립시키면서, 특수성을 부정하는 부정적 보편성을 독특성을 드러내는 계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부정적 보편성을 봉기적 보편성의 형식으로 사유하는 것은 부정적 변증법을 전유하는 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부정적 보편성이냐 독특성들의 긍정적 연접(conjonction) 혹은 불가능한 동일화냐 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두자.본문으로 8) Giorgio Agamben, 앞의 책, p. 81이하.본문으로 9) Fustel de Coulanges, La cit antique. tude sur le culte, le droit, les institutions de la Gr ce et de Rome, Paris, 1864 : Flammarion, 1984, p. 232. 영예를 박탈당한 자를 의미하는 atimos에는 여러 등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아테네에 계속 머무는 그들이 공적인 장소로부터 배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Claude Moss , Politique et soci t en Gr ce ancienne : Le "mod le ath nien", Paris, Aubier : Champs-Flammarion, 1995, p. 23-24.본문으로
들어가며: 정상이 되어 버린 비상사태 클리시 수 부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전역의 방리유로 번져 나간 소요 사태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지난 17일 프랑스 경찰은 소요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었으며, 프랑스 전역이 정상적인 (치안) 상황을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지배자들은 이렇게 하나의 국면 혹은 시퀀스가 끝났다고 선언하려 애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정상이란 말인가? 70% 이상의 국민이 비상사태의 선언 및 그것의 연장에 찬성하면서 '비상사태는 정상적인 것이야'라고 말하는 가운데, 정상적으로 된 것은 오히려 비상사태가 아니던가? 사고, 소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시청자들의 '두려움 혹은 공포'라는 '정서의 모방', 비상사태 선언, 그것에 대한 인정. 이번 사건은 9.11 사태에서 우리가 경험한 '이미지화된 (공포) 정치' 메커니즘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포 정치 및 자발적 예속 혹은 복종 논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가? 내무부 장관 사르코지의 '쓰레기' 운운하는 발언들 및 클리시 수 부아에서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두 소년의 죽음, 그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은 방리유의 저조한 생활수준 및 대규모 청년 실업 문제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일 뿐, 이번 사건의 원인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 혹은 이민자들의 반란쯤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분명히 프랑스 국적을 가진 자들 - 우리는 아마도 그들을 반은 프랑스인(fran ais)이고 반은 외국인( trangers)인 fran trangers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1) - 이 '무장경찰-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정부의 폭력, 백인 프랑스인들의 미묘한 인종차별 규정, 계속되는 사회 보장 예산 삭감 및 대규모 청년 실업이라는 장기적인 불안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비록 그네들이 어떠한 정치적인 모토도 내세우지 않고 제도화된 시위 문화를 보여주지 못한 듯이 보이더라도, 어떠한 주모자도 없이 순식간에 우발적으로 확산되는 폭력적 소요의 형태를 띠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봉기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는 이 짤막한 글에서 방리유 청소년들이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까발리고 싶어했던 프랑스의 비가시적인 차별들의 원인을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성찰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는 방리유 혹은 씨떼의 공간-정치적 작동 원리를 살펴보고, 그 경계에서 발명해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씨떼의 권리'의 가능성에 대해 말할 것이다.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는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 그리고 강화된 불심검문 및 경찰(폭)력에 의해 긴장된 삶을 살고 있는 방리유 거주자들에게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빚을 지게 되었다. 방리유 그리고 씨떼: 포함적 배제의 논리 프랑스에서는 도시 외곽지역을 방리유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히 방리유에서도 대규모 HLM(서민임대주택) 단지들을 씨떼(cit )라고 부른다. 일단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정치철학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은 현 사건의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는 '장소'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방리유(Banlieue)라는 단어는 ban과 lieue의 합성어이다. 옛 게르만어에서, ban이라는 단어는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는 동시에, '주권자의 명령 및 휘장'을 뜻하는 단어였다. 옛 프랑스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ban이란 proclamation, 즉 포고령인 동시에, 역사적으론 추방을 의미했다.2) 그리고 lieue란 거리의 단위로서, 4km에 해당한다. 따라서 방리유란 'ban의 법이 실행되는 도시 주변 4km 내의 공간'을 의미한다. 물론 오늘날 4km라는 규정은 더 확장되었으며, 법의 실행 역시 아감벤의 말을 빌자면 포함적 배제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따른다. 우리는 이 단어의 정의 자체 내에서 도시와 그 주변의 배치 문제, 그리고 그 공간을 구획·배치하는 원리로서의 법 혹은 포고령의 문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는 주권이 실행되는 패러다임의 한 형태인 방리유의 면모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방리유는 어떤 역할을 해 왔던 것인가? 그것은 도심지(중심으로서의 도시)의 외곽이자 하위도시 역할을 해 왔다. 방리유는 단순히 교외지가 아니라 '외곽'이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도심지를 보호하는 성곽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죽음 앞에 선 인간』에서 필립 아리에스는 도시의 경계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이것은 전시에 성벽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밝혔다.3) 바로 이런 지역에 거주하는 방리유 사람들은 평시나 전시에 도시를 방어하는 보호막 역할을 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네들은 유령(!)들과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하위'인가? 방리유 거주자들은 도시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이자 하부, 기층 노동자였다. 방리유라는 공간은 각종 공장과 작업장, 도살장, 벼룩시장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현재 프랑스 방리유의 근간을 이룬 19세기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러한 미묘한 위상학으로부터 파생되는 병리학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로부터 대중들의/에 대한 공포를 말했듯이, 우리는 방리유 거주자들의/에 대한 공포를 말할 수 있다. 방리유 거주자들은 언제나 도심지로부터 파견된 경찰력에 의해 위협을 받는 반면, 도시민들에게 그들은 일종의 유령이었으며, 낮과 밤에 '출몰하는 자들'이었다. 낮에는 노동을 하러 출몰하고(그네들은 '죽은' 노동을 하기 때문에 유령이다), 밤에는 (실제의 여부를 떠나서) 잠재적으로나마, 일종의 도적으로서 출몰했던 것이다.4) 씨떼라는 단어 역시 다의적이다. 첫째,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polis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번역어이다. 그런데 폴리스는 좁은 의미의 '도시'를 지칭하는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도시-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도시-국가(polis)는 원래 정치적, 종교적, 상징적 중심으로서의 도시(polis)와 생산 및 거주지로서의 대지(ch ra)를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도시-국가와 도시가 모두 polis로 명명되는 가운데, 도시가 곧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논리가 발견된다. 둘째, 씨떼는 영어의 city와 마찬가지로 도시만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적인 도시-국가 체계가 국가(Etat) 대 도시(ville)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뤄진 것이다. 셋째, 1848년부터 노동자 계급의 가족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 단지를 cit ouvri re라는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고, 오늘날 방리유의 공영 주택 단지에 대해서도 프랑스에서는 씨떼라고 부른다. 씨떼라는 단어에 함축된 역사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씨떼의 전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1) 도시-국가 = 도시 [사적인 영역(oikos)을 사회적으로 포함하나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공공 영역(polis)], 2) 국가 對 도시 [공공 영역 대 사적 영역의 이분법적 구분], 3) 국가+도시 對 씨떼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불가능과 유기된 주변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 정부의 대응, 씨떼를 마치 국가 안의 (내부적 적으로서의) 국가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전쟁 및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 속에서 우리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단지(씨떼)가 도시-국가(씨떼)로 상승 혹은 중첩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재현 혹은 대표로부터는 배제되어 있지만, 국가, 정치, 법의 메커니즘으로부터는 늘 통제 가능한 거리 내에 위치하는 동시에 버려지는 곳으로서의 방리유 혹은 씨떼는 평상시에는 '무이거나 공백'이지만, 국가의 통제력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시기에는 '충만한 적'으로 둔갑하게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역으로 반란과 봉기는 이러한 내부의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인종주의? 이러한 공간 분할 및 (위로부터 규정된) 국가 안의 국가 구도는 철저히 프랑스인 대 외국인, 이민자, 무슬림의 대립 구도에 기초하고 있다. 무슬림 = 잠재적 테러라는 손쉬운 등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채, 이미지를 통해서만 이번 사건을 경험하는 시청자들은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그리 놀라지 않는다. "쟤들은 원래 저러니까"라는 낙인에 대한 재인(再認)만이 존재할 뿐. 그러나 이번 소요 사태의 주체는 서두에서도 지적했듯이 엄연히 프랑스 국적을 가진 혹은 가질 청소년들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간극이 존재한다. 비록 '법적인' 차원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적인 차원에서는 그네들의 시민'권'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법의 힘'의 아포리아뿐 아니라 '권리의 힘'의 아포리아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이다. 법적인 차원에서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명목적일 뿐,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권리는 그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한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방리유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몫소리'를 요구하고 외친 것뿐이다. 그렇다면 방리유 청소년들 나아가 이주민들(특히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들)의 시민권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에 대해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라고 답해야 한다. 발리바르는 『민주주의의 경계들』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주장하는 주요 테제는 인종주의의 제도적 구조이다. 모든 인종주의가 공식화된 국가적 인종주의는 아니지만, 그것은 제도들의 구조에, 이 제도들과 개인 및 대중의 의식적, 무의식적 관계에 정박해 있다. 따라서 제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평등한 형태와 불평등한 메커니즘 사이의 모순, 시민(권)(citoyennet )과 주체화[복종](sujetion)의 모순이 결정적으로 된다."5) 덧붙여 그는 '민주주의'의 경계들에 대해 그곳은 민주주의가 정지하는 지점이자, 그 지점 너머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곳이라고 규정한 뒤, 바로 그 경계야말로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곳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가운데 새로운 공간이 발견되는 곳이자 정치가 발명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방리유는 분명 발리바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경계라 불릴 만 하다.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 뿐 아니라 '공화국'이라는 관념 자체를 의문에 부쳐야 한다. 발리바르와 오질비 등이 11월 16일자 『뤼마니떼』에 기고한 기사는 "공화국의 목을 쳐라!"라는 선언으로 끝을 맺고 있다.6) 왜 '공화국'이 문제인가? 오늘날 프랑스의 민족주의, 제도화된 인종주의가 바로 '공화국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두건) 착용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문제제기였다. 이는 여성 차별 반대라는 페미니즘적 외양을 동원함으로써 이뤄졌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히잡 착용이 프랑스의 정교분리주의 교육 정신에 위배된다는 '공화국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Res publica, 공적인 일을 일컫기도 하는 이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의지가 아닌 보편적인 이익과 의지에 입각한 통치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보편이 도대체 무엇인가?7)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0조에 따르면, "누구도 그의 의견이 법률에 의하여 정해진 공공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그의 의견이 비록 종교상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스카프 착용이 그리도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것이었던가? 오히려 그 배후에는 '수용 가능하고, 동화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들어있지 않은가? 발리바르가 폭로하듯이 유럽의 백인 이민자들은 쉽게 동화되지만, 북아프리카의 흑인, 아랍 이민자들의 문화는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동화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후자가 전자와 달리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동등한 문화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또 다른 예는 비상사태. 68혁명 시기에도 선언되지 않았던 '비상사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은 단순히 '비상사태'가 소위 포스트 911, 미국의 애국자법(Patriot Act) 이후 유행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한 행동에는 프랑스인들 내부의 분란과 프랑스인 대 외국인의 그것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전제되는 것이며, '그들'이 우리 '공화국'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적과 동지의 구별이 함축되어 있다. 아감벤은 희생물이 될 수 없으나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에 대해 말한 바 있으나,8) 이런 형상은 고대 그리스에도 이미 존재했다. 도시-국가에 반하는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벌을 atimia라고 했는데, 이런 죄인(atimos)은 법정, 재판, 의회에 참석할 권리는 물론 그곳에서 말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종교도 금지되며, 모든 시민권을 상실한다. 무엇보다 이들을 때려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씨떼의 신이나 법은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도시 내의 이방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바,9) 우리는 현재 씨떼 거주자들 속에서 이 형상을 재발견할 수 있다. 공화국은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씨떼에 소속된다는 것, 즉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하나의 가정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동일화 과정을 수반한다. 오늘날 프랑스의 이주민 통합 정책의 실패를 비판하는 자들 중 일부는 프랑스가 사실상의 두 시민권을 인정한 것을 비판하며 더 강도 높은 공화국 이념에 입각한 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화국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는 가장 많은 이질성을 인정하는 체제를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독특성을 거세하면서 동화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고정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이 구성되어 가는 이질성의 공존이 사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변화 작금의 방리유 지역 청소년들의 대규모 실업 현상은 그곳의 열악한 교육 환경, 빈번한 유급 및 문맹, 대학 입시에서의 차별 - 프랑스의 그랑제꼴들에서 아랍 출신자나 방리유 출신자들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 취업시 서류 전형에서부터 배제되는 상황들에서 그 표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만 주목하는 현재 프랑스 내 좌우의 토론들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내놓은 청소년 실업 대책은 이전 16세부터로 되어있던 직업 교육을 14세부터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회당의 일부 의원들이나 방리유의 교사들은 이 안을 방리유 뿐 아니라 전 학교로 확장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16세까지의 고등 의무 교육 기한을 14세까지 낮추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판단을 하기도 이른 나이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만드는 현대판 산업혁명 식 인력 동원을 통해 이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인가? 일부 의원들은 서류전형 시 이름을 기입하지 않고 직원을 채용하도록 강제하자고 말한다. 이른바 익명 이력서. 그러나 어차피 면접 때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은밀한 차별이 이뤄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나마 자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기피해온, 쿼터제를 아랍 출신자들에게도 적용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차별 정책(discrimination positive)을 써야 한다는 공동체주의적 대안들이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국 현재의 시장 경쟁 논리는 그대로 유지한 채 그나마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보겠다는 궁여지책들에 그치기 쉽다. 왜냐하면 현재의 위기는 비단 프랑스만의 위기가 아니라 포스트-포드주의 하의 유연화된 고용 시장이 가져온 자본주의 전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씨떼 청소년들이 인터뷰에서 요구한 바람은 한결 같았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남들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가족을 꾸리고 싶다." 이들이 그네들의 주거 공간인 씨떼 내에서 자기 파괴적인 봉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빼앗겨야 했던 장래에 대한 요구와 평범한 삶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오늘날 평범한 것은 오히려 드물고 어렵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요구가 그네들만의 것일까?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강화되는 노동 강도 및 조기 퇴직을 비롯한 일자리의 위협은 모든 노동자가 직면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봉기에 대해 어떤 연대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프랑스의 노조는 그네들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포드주의-복지국가 형태 내에서 제도화된 노동 운동은 '국익 우선'(pr f rence nationale) - 이는 동시에 국민 선호를 의미한다 - 을 얻어내는 대신 '시민권=국적'을 공고히 해 주었던 것이다. 도시와 방리유의 구분은 교환 가치와 사용 가치의 구분과 유비적이다. 기간의 노동 운동은 노동자들이 생산을 하는 한에서 공적인 일의 물적 토대 형성에 기여하며 그런 한에서 정치적인 몫소리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논리에 근거했다. 그러나 오늘날 방리유에 있던 공장들의 해외 이전 등으로 인해 사용 가치의 원천으로서의 방리유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탈중심화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현재의 자본의 흐름은 오히려 대도시의 재현성을 높이는 다국적화로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지식 기반 경제 혹은 비물질 노동의 경향적 우위는 도시의 교환 가치가 보다 생산적이라고 자처하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상대적으로 방리유는 그 몫소리를 더욱 상실하고 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갈수록 중심화되어가는 도시 중심의 발전 논리에 맞서 도시의 위상도를 줄이는 탈중심화 및 국지적인 망건설을 통해 독점적 교환 체계를 민주적으로 확장하는 것이자, 갈수록 감소되는 전통적인 일자리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강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는 기존의 교환 가치냐 사용 가치 혹은 노동 가치냐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존재 가치' - 기하학적 평등론에서 산술적 평등론으로, 훌륭함(aret )의 논리에서 평등(isonomia)의 논리로의 전화 - 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 방식은 '사회 보장 임금'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야 한다. 나가며: 씨떼의 권리 사람들은 시민권(droit de cit )에 대해 말해왔다. 우리는 앞에서 cit 라는 개념의 이중성 및 그것의 재현 논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적어도 그런 규정 하에서 보자면, 시민권이란 공적 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함축하며, 그것의 적용 방식은 도심지를 경계 쪽으로 좀 더 확장하는 것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씨떼의 권리(droit des cit s)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시민권이 갖는 재현 논리에 포섭되지 않으며, 씨떼들 사이의 이질적인 독특성을 간직한 채 공통된 것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불화의 힘을 간직한 민주주의든, 네그리의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역량이든, 발리바르가 말하는 '프랙탈'적인 구조를 갖는 비-전체적인 경계(fronti re non-enti re)든 그들은 공통되게 국가자본주의의 일괴암적 주권성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는가이다. 물론 공리(公理)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자들'의 정치 참여에의 권리이자, 그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존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나 발명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각주] 1) 국민과 외국인의 중첩 혹은 구분 불가능은 이번 사태와 같이 위로부터 부과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국민적 동일성(정체성)을 비판하는 한 방법, 즉 불가능한 동일화 전략이 되기도 한다. 발리바르가 "알제리, 프랑스 : 하나 혹은 두 국민?"에서 말한 "무슬림적인 프랑스인(Fran ais musulman)", "프랑스적인 무슬림(musulman fran ais)", 랑시에르가 언급하는 1968년의 슬로건, "우리는 모두 독일인 유태인이다" 같은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Etienne Balibar, Droit de cit : Culture et politique en d mocratie, Paris, ditions de l'Aube, 1998, p. 81과 Jacques Ranci re, Aux bords du politique, Paris, La Fabrique, 1998 : Gallimard, 2004, p. 120 참조.본문으로 2) 죠르지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예외의 관계가 추방의 관계이며, 추방당했던 자는 단순히 법의 바깥에 놓이는 것(법과 무관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유기된 것이라고 말한다. Giorgio Agamben, Homo Sacer : le pouvoir souverain et la vie nue, Paris, Seuil, p. 36-37 참조.본문으로 3) 필립 아리에스 지음, 유선자 옮김,『죽음 앞에 선 인간』, 서울, 동문선, 1997.본문으로 4) 물론 프랑스에서 방리유는 이중적이다. 파리를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의 방리유는 오히려 부자들이 도시로부터 거리를 취하면서 부촌을 형성하고 있고, 문제가 되고 있는 방리유는 대부분의 경우 동쪽과 북쪽의 방리유들이다. 따라서 방리유라는 단어를 일의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본문으로 5) Etienne Balibar, "avant-propos", Les fronti res de la d mocratie, Paris, La D couverte, 1992, p. 11.본문으로 6) Etienne Balibar et al., "Casse-cou la R publique!", L'Humanit , 16 novembre 2005. 본문으로 7) 프랑스 정부가 말하는 '보편'은 가톨릭 십자가 착용도 안 되니, 히잡도 안 된다(ni ... ni ...)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내용 없는 순수 형식으로서의 부정적 보편성이 아닌, 동시에 ... 이고 ... 이다를 요구해야 한다( la fois ...et ...). 물론 바디우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대립시키면서, 특수성을 부정하는 부정적 보편성을 독특성을 드러내는 계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부정적 보편성을 봉기적 보편성의 형식으로 사유하는 것은 부정적 변증법을 전유하는 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부정적 보편성이냐 독특성들의 긍정적 연접(conjonction) 혹은 불가능한 동일화냐 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두자.본문으로 8) Giorgio Agamben, 앞의 책, p. 81이하.본문으로 9) Fustel de Coulanges, La cit antique. tude sur le culte, le droit, les institutions de la Gr ce et de Rome, Paris, 1864 : Flammarion, 1984, p. 232. 영예를 박탈당한 자를 의미하는 atimos에는 여러 등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아테네에 계속 머무는 그들이 공적인 장소로부터 배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Claude Moss , Politique et soci t en Gr ce ancienne : Le "mod le ath nien", Paris, Aubier : Champs-Flammarion, 1995, p. 23-24.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