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이 부결되다1)
지난 5월 29일 프랑스에서 유럽연합(이하 EU) 헌법 조약의 비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됐고 그 결과 54.9%의 반대표가 나왔다. 사흘 뒤인 6월 1일 네덜란드에서도 61.6%의 반대표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25개 가입국 모두에서 비준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유럽헌법 조약은, 다른 나라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그 미래가 극히 불투명하게 됐다.
국민투표에 관한 사실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자. 우선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각각 70%와 63%라는 전례 없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경우 이는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투표율임과 동시에 1958년 제 5공화국 출범 이래 가장 높은 반대율이다.2) 2002년에 실시된 총선 투표율이 64%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문제가 아닌 유럽연합의, 그것도 '헌법' 문제를 다룬 투표율이 이렇게 높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지식인들이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논쟁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상징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노천카페에서는, 정치에 극히 무관심하다고 치부되었던 청년들이 딱딱한 헌법 조항을 놓고 정치토론을 벌였다. 모든 단체에서 앞 다투어 입장을 제출했으며, 개인 블로그에서 조차 헌법조약에 관한 토론이 흘러넘쳤다. 실로 '말의 폭발'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능동화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투표 결과가 갖는 '국론분열적', 결국 '계급갈등적'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교육 수준으로 볼 때 '낮은' 교육수준 시민들의 71%, '중간' 교육수준 시민들의 64%가 반대표를 던졌고, 반면 '높은' 교육수준의 시민들의 반대표는 52%에 그쳤다. 반면 헤임스떼더(Heemstede)와 블로멘달(Bloemendaal) 같은 부유한 비지(飛地, enclave)의 경우, 찬성표가 각각 57%와 61%로 반대표에 우세를 점했다. 프랑스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의 79%, 실업노동자의 71%, 청년들의 66%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으며, 마르세이유의 가장 가난한 지역과 노르파드칼레(Nord-pas de Calais)의 광산지대에서는 반대율이 각각 78%와 84%에 이르렀다. 월소득 1,500유로3) 이하 가구의 경우 66%가 조약에 반대했다. 반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파리 중심부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구)에서는 찬성률이 66%였다. 월소득 4,500유로 이상 가구에서는 74%가 찬성표를 던졌으며, 네이(Neuilly) 지역의 찬성률은 82.5%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은 스스로를 대중들의 '대표자'로 자임해 온 지배엘리트들의 정당성과 대표성, 결국 그들의 존재 자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우파나 중도파뿐만 아니라, 좌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식적으로 헌법조약 찬성 입장을 보인 노동당 지도부에 반해서, 노동당 성향 유권자 58%가 반대표를 던졌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당의 지도부 자체가 분열을 일으켰으며, 결국 사회당 지지자의 56%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지배엘리트들을 일대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사실 2005년 2월 28일 베르사이유에서 찬성운동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조약 비준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페리 앤더슨이 '감언(甘言)연합'(union sucr e)이라 부른) 찬성 운동 쪽에는 공화국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집권당인 인민운동연합(UMP)과 사회당, 『피가로』, 『렉스프레스』, 『르 몽드』, 『리베라시옹』,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위시한 대다수 언론 그리고 뉴스해설자와 토크쇼 사회자, 영화배우, 축구선수 등의 명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심지어 스페인 총리, 폴란드 대통령, 독일 수상 등이 헌법조약 찬성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를 방문했으며,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헌법조약에 관한 통지서를 발송했다. 또 하버마스나 권터 그라스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식인들이 찬성투표를 하나의 도덕적 의무로 역설하는 기고문을 연일 언론에 게재했다. 이렇듯 거의 모든 미디어와 국가장치가 찬성운동에 동원됐는데도 반대여론이 치솟았다. 다급해진 지배엘리트들은 이때부터 대중들을 비난하고 협박함으로써 대중들의 '대표자'라는 스스로의 정당성의 기초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반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반-터키주의, 반-폴란드주의, 반-유럽주의, 반-지성주의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중들에게 '검은 염소'(black sheep, 암적인 존재), '조련된 원숭이', '뱀'이라는 모욕적 언사조차 서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총리가 아우슈비츠의 유령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가 승리한 것이다!
이는 저 숨 막힐 듯한 신자유주의적 '합의'가 붕괴하고 '갈등'이 다시 전경에 나옴으로써, '정치'가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4)이 같은 상황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할 만 하다. 하지만 지금 시작된 것은 '과정'으로서 정치일 뿐,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지배엘리트들은 아직 미디어와 국가,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물질적 장치를 장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붕괴는 대안세계화운동 뿐만 아니라 르펜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 극우파가 운신할 수 있는 폭 역시 열어 주었다. 실제로 반대투표자의 35%가 반대의 주된 이유로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들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은 여전히 강력한 두 괴물의 위협을 물리치고 '또 다른 유럽'(Another Europe), 나아가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해 내는 힘든 싸움 한 가운데 있고 '승리'의 전조는 아직 희미하기만 하다.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진통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사적 함의를 갖는다. 주지하다시피 (금융)세계화는 무정부적인 과정이기는커녕, 자신의 요구를 정언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동반하고, 이 제도적 장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각종 지역블록이다. 이는 전통적 정치형태의 위기를 초래하고 좌와 우 모두에게 새로운 정치형태에 대한 모색이라는 난문을 안겨준다. 헌법조약안을 둘러싼 갈등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바, (금융)세계화로 인해 정치적 조건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는 모든 대중들에게 유럽의 현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아시아는 그 지정학적 조건상 유럽과는 여러 모로 다른 궤적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일국적 주권을 뛰어넘는 (준)제도적 제약이 구축되면서 개별 국가만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운동들이 커다란 곤경에 몰리게 된다는 점(우리는 이미 WTO 쌀협상과 IMF 구조조정을 통해 이 곤경의 의미를 살로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운동들이 일대 분열을 겪게 된다는 점은 정확히 동일하다.5) 게다가 현재의 유럽통합이 '분단'된 동-서 유럽의 '통일'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며 통일 문제를 우회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 의의는 더욱 각별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EU헌법조약의 출현을 전후한 유럽의 논쟁 및 그 안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6)
유럽연합헌법조약안: 무엇이 쟁점인가?7)
이번 논쟁의 직접적 대상은 EU '헌법'(constitution)8)이다. 이는 즉각 현재 실존하지 않는 정치체를 '구성'(constitution)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쟁점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쟁점의 '형식'은 논쟁의 진행을 크게 규정했다. 무언가를 '기초'짓는 것이 문제로 나선 한에서, 한편으로 과거의 기초에 대한 평가, 다른 편으로 새로운 사회의 기초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헌법안의 내용 자체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이후의 조약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헌법'이라는 형식이 논쟁을 격화시켰음을 방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즉 문제가 된 헌법은 '유럽연합'의 헌법이라는 점, 즉 근대적인 민족국가와 다른 형태의 정치체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조약 논쟁은 지난 수백 년을 지배한 이른바 '근대성'(modernity)이라는 문제가 학계 등 한정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들에게 공적으로 제기된 최초의 계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탈)근대성 논쟁과 대중들의 괴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계기이기도 했는데, 그간 근대성/탈근대성의 이분법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론을 펼치던 대표적 논자들이 이번 투표에서 다름 아닌 대중들에 의해 쓰디쓴 정치적 패배를 맛봤기 때문이다.9)
이렇게 볼 때 이번 헌법조약안 부결 사태는 기존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탈)근대성 논쟁을 상대화하거나, 최소한 '대중운동'이나 '제도' 등의 구체적 현실에 의해 규정되는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힐 것이다. 이는 한국의 논쟁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91년 이후 (탈)근대성 논쟁이 주로 사회주의 청산의 맥락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근대(성)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탈근대(성)에 대한 초자유주의적(libertarian) 예찬이라는 불모의 대당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진보이론의 혁신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지적 장애물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EU 헌법조약 논쟁에 대한 검토가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특권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이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사고에 해방적 효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서는 '인민주권', (유럽적) '동일성', '기본권', '지역적 세계주의'라는 네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쟁점1: '인민주권'10)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유럽통합 기획의 중심은 경제통합이었다. '정치적 유럽'은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거나 다른 실용적 조치를 통해 회피해 왔던 난문이었다. 그렇지만 경제통합이 화폐통합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정치적 통합의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었다. 대내적·대외적으로 통합화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책임성을 갖는 정치적 연합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고 내전 이후 지속적으로 요청되어 왔고, 유럽적 동일성을 형성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으로 제기된 공통의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통합이 필요했다.11)
그런데 유럽을 '정치체' 따라서 하나의 '주권형태'로 사고하는 즉시, 역사적으로 정치체와 관련되었던 문제들과 이론들이 전경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질문은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체의 '정당성'(legitimacy)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근대의 전형적 답변은 '인민주권'이다. 인민으로부터 정당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오게 된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연합'이므로) '유럽의 인민'이란 존재하는가? 유럽은 과연 '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통일성을 갖고 있는가?
이 같은 다소 추상적인 질문은 '권력 조직'(organisation des pouvoirs) 혹은 '권력 분립'이라는 구체적 문제와 연결된다. '인민주권'이란 인민대중들의 민주적 의사가 관철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질문은 유럽통합 기획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 왔고 이번 에 '헌법'이라는 형태로 확립하고자 했던 권력 구조의 비민주성을 갈등적으로 쟁점화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번 헌법조약안이 제시하는 권력의 조직은 부르주아적인 삼권분립에도 훨씬 미달한다. 부르주아 민족국가 안에서 전통적으로 의회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졌던 입법권은 초국가적인 집행위원회(Commission)에 배타적으로 귀속된다. 독점적 발의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집행위원회의 구성은 회원국 정부 간의 협상에 의해 결정될 뿐, 유럽 시민들에게는 유럽연합 행정부의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입법 절차를 이사회 즉 회원국 정부가 장악하는 셈인데,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안이 선출된 대표자들로부터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은 채 법령을 입안한다는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원리로 되돌아갔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전근대성'이나 '봉건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이 유럽의회에 대해 부여하는 권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헌법 알다시피 이 헌법은 '제헌의회'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에 의해 공동-결정의 권력이 부여된 곳에 한해서 입법의 '개정'만을 제안할 수 있고, 그나마도 그 수용 여부는 집행위원회에 달려 있는 이 '자문기관'은, 권력 또는 결정의 심급 앞에서 피통치자들의 불평과 탄원과 진정 따위를 내세우는 앙시엥 레짐 시기 저 유명한 '삼부회'의 기능과 정확히 동일하다. 여기서 우리는 '대표'(representation, 대의) 개념에 역사가 있다는, 따라서 최소한 두 개의 대표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다.12) 이미 다른 원리 왕권신수설 에 의해 구성된 '주권'적 권력 앞에서 '자문'이나 '탄원'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대표, 그리고 주권 자체를 구성하는 실천이자 인민의 대표자를 대중들 스스로 선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서 또 다른 대표 개념 말이다. 이 같은 단절을 생산한 사건은 물론 프랑스 혁명인 바, 현재 헌법조약안을 기초 짓는 원리는 20세기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18세기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 '반혁명'적이다. 테르미도르 반동도 이보다는 진보적이다!
혹자는 부르주아 삼권분립의 나머지 한 축으로서 '사법부'를 통해, 결국 원리로서 '법치주의'를 통해 막강한 행정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별 가망은 없어 보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인민인 한에서, 법적 권력과 정당성의 원천이 인민주권인 한에서다. 그렇지 않은 법치주의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반민주적이었고, 관료주의적·엘리트주의적이었다. 유럽연합의 반민주성은 법치주의 혹은 법에 의한 행정 권력의 제어 예컨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13) 같은 것 에 의해 완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이는 대중들의 역량이 군주와 귀족 간의 갈등에 수동적으로 전유되어 '예속이 자기들의 자유가 되기라도 하듯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18세기 이전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조건 위에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이런 식으로 조건이 변화해 왔음은 객관적 현실이고, 이를 부인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이를 대중들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민주권을 상징적으로까지 완전히 파괴하는 조치를 찬성하라고 어떻게 인민들을 설득한단 말인가?
하지만 권력 조직의 문제는 위에서 살펴 본 삼권분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위의 문제는 약간의 양식을 가진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반면, 이하의 문제는 근대적 사고 안에서는 제기된 적 없는 전인미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지배적 주권형태였던 민족국가와 유럽연합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이번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한 답은 전통적인 주권의 속성들 이번 헌법조약안이 '권한'(competence)이라고 표현한 것 을 유럽적 수준과 민족적 수준 사이에서 '분할'하는 것이다.14)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경제적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헌법안의 제Ⅰ-12조 1항에서는 '배타적 권한'(exclusive competence)이 관철되는 분야 중 하나로 유로를 채택하고 있는 회원국을 위한 통화정책을 들고 있고, 반면 제Ⅰ-12조 2항에서는 '공유 권한'(competence shared)이 적용되는 분야 중 하나로 제3편에 정의된 사회정책을 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선 근대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에서는 분할할 수 없는 일체를 이뤘던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번 헌법안에서는 배타적 권한과 공유 권한으로 분할되어 각각 유럽중앙은행과 회원국에 귀속되고 있다. 또한 흔히 헌법조약 3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하는 경제정책이 이미 1부에서부터 출현한다. 전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런 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주권은 분할될 수 있는가?' 또는 차라리 '분할된 주권은 주권으로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하는 고전적인 난문을 불러들인다. 이는 후자와 결합되어, 경제정책의 문제를 다른 주권적 원리가 결정된 후 추가되는 각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럽연합의 주권 구상에 대한 '환유'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발리바르는 이 같은 현상을 '약한 초국가'(super-Etat faible) 또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고 부른다.15) 이는 두 가지 모순되는 특징을 결합함으로써 극히 반민주적인 효과를 생산한다. 우선 그것이 '초-국가'인 한에서 EU는 각 개별 국가들을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구속하는 주민들의 '일반의지'로부터 상당한 자율성과 집중성을 획득한다. 지배엘리트 편에서 보면 여기에는 이중적인 이점이 있다. 한편으로 개별 국가 인민들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나 극히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편으로 지배엘리트의 자의에 의해 결정된 정책을 개별 국가 인민들 앞에서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국제적 압력/대세로 가장함으로써 정책 관철력을 높이는 한편 정치적 부담/책임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약한' 초국가이다. 즉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이해'들 앞에서 '일반이해'를 강제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권'을 상당히 제약받는다. 실제로 EU와 개별 국가의 관계는 '외교'의 문제로 처리된다. 이는 EU 결정의 수용 여부에 관해서는 각국 정부가 재량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국가 관료들과 지배엘리트들의 재량권을 극대화한다. 이들은 초-국가 제도와 개별 국가의 제도 간의 비공식적 '절합'(articulation)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들 간의 매개를 독점한다. 유럽과 개별 국가 인민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결정들이 테크노크라트들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와 '컨센서스'에 따라 이루어지고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한 재량권 역시 보존된다. 반면 인민들은 이중으로 주권을 박탈당한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개별 국가에서 (말의 강한 의미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주권의 핵심이 '결정권'인 한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편으로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개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앞서 지적한 '약한 초국가'로서 EU의 조건은 설사 유럽적 수준에서 대중들이 어떤 결정을 관철해 낸다고 해도 이를 개별 국가에 강제할 수 없다. 또한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만장일치 제도를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가입국인 25개국을 모두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모든 난관을 뚫고 어떤 결정을 관철시킬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제약이 훨씬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같은 반민주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는데, 이번 헌법조약안에서는 자문기구에 불과한 유럽의회의 확대라는 립서비스 이외의 대부분의 반민주적 조치들을 온존시켰고 심지어 그것을 '입헌화'(constitutionalize)하려 했다. 좌파 중 이번 조약에서 찬성표를 던진 이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민족-이하적인 수준과 민족-이상적인 수준에서 더 민주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전제가 있다.16) 그러나 어떤 수준이 자명하게 민주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어떤 수준은 자명하게 반민주적이라는 식의 접근은 관념적이다. 필요한 것은 역사적 접근인 바,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민족국가가 갖는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민족국가 자체가 선험적으로 민주주의와 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의 대중운동이 민족국가(혹은 차라리 사회-민족 국가)를 주된 투쟁과 변혁의 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민족국가 안에서 경향적으로 입헌화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반경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 시도는 고유한 반동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유럽연합 자체가 그러한 역사적 투쟁과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애시 당초 그런 부분을 박탈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평가를 결여한 채 민족-이하적이거나 민족-이상적인 심급을 관념적으로 특권화한다면, 민족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방어적 투쟁을 사실상 엘리트들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대중들의 반대는 주권자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방어적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런 한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반대가 방어적이라는 사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쟁의 전망으로 설 수 없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 시급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대중들에 의해 기각된 '지금까지의 유럽'도, 그렇다고 지속할 수 없는 민족국가에 대한 방어투쟁도 아닌 또 다른 길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럽 수준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함께, 새로운 주권형태 또는 새로운 유형의 '연방제'라는 극히 까다로운 난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권 개념 및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지 않은 채 실용적으로 분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정치적 상상력을 역설하는 것만도 아닌 실천. 과거 '국가주권' 개념을 '인민주권' 개념으로 전환했던 것처럼, '인민들의 주권' 즉 다(多)-민족적인 주권/대의/통제 문제 을 '발명'해 내는 실천. 지배엘리트들에 의한 초민족적 '매개'의 독점이 아닌 인민들/대중들에 의한 새로운 초민족적 매개의 발명,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공적 영역의 구축.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실천들이다. 이런 실천들이 아래로부터 구성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유럽' 그리고 '유럽의 인민'이란 없을 것이고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그럴 것이다.
쟁점 2: 유럽적 동일성
이번 EU 헌법조약안이 가진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점은 유럽적 동일성, 곧 '유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문제는 유럽의 '경계선'(borderline)17)이라는 구체적 제도, 후보국의 기준이 무엇이고 가입 조건이 어떤 것인지 등의 현실적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이 기준이 자명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헌법조약안이 유럽적 동일성의 구성적 일부로 다시 한 번 확고히 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나토에는 미국과 캐나다라는 非유럽 국가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 EU 회원국인 오스트리아, 사이프러스, 핀란드, 아일랜드, 말타, 스웨덴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또한 나토의 유럽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터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발칸반도는 유럽인가 아닌가? 러시아는 어떤가? 유럽에서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非EU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은? 유럽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그렇고, 유럽이라면 이들이 포함됨으로써 기존의 '유럽성'(Europeanness)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EU가 전통적인 민족국가의 '국경'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불균등하고 다층적인 경계선들을 증식시켜 가면서 통합(과 배제)의 속도를 조절해 가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난점 때문이다.
이 같은 난점은 유럽적 동일성, 그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제도로서 유럽의 경계선이 세계-정치적인 분할에 의해 과잉결정 된다는 점을 볼 때 비로소 사고 가능해진다. 예컨대 1494년 토르데실라스 조약18)에서부터 최소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은 민족국가인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였는 바, 이 국가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그었던 경계선은 민족적인 경계선이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파쇼다와 모로코, 또는 조선의 거문도19) 등으로 연장되고 복제되는 세계적 분할선이었다. 이 같은 유럽의 경계선은 1945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냉전 시기 영국 나아가 유럽의 헤게모니가 붕괴한 시기이기도 한 에 들어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 '진영'에 의해 새롭게 과잉결정 된다. 한편으로 같은 민족국가를 구성했던 독일은 이제 '초-경계선'(super-frontier)에 의해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잠재적 '적국'으로 분할됐고, 다른 편으로 얼마 전까지 최대의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제 서독)은 '자유유럽' 통합의 양두마차로 나서고 동유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재건됐다.
이렇듯 유럽적 동일성 및 경계선은 각 유럽 국가들이 예컨대 종교적, 경제적, 식민주의적, 군사적 분야 등에서 갖는 세계적 이해가 자신들의 내적 문제와 교차하는 방식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여기에는 자연적이라거나 본성적인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럽에서 형성 중인 동일성/경계선을 과잉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는 물론 세계화와 함께 더욱 악화된 형태로 출현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이에 관해 유럽은 두 가지 극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극을 이루는 폭력적 배제 과정은, '안보 경계'(security borders)의 준-군사적 집행을 주된 수단으로 삼고 '정치적 적으로서 이방인'이라는 형상을 재창출한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잠재적으로 절멸적인) 문화 전쟁과 문명의 충돌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향으로 유럽 구성을 추동한다.20) 다른 한 극에 있는 차이의 '시민적' 가공 과정은, 유럽의 교육체계와 문화정책에 관한 매우 어려운 쟁점들을 포함하며, 심지어 유럽의 '동일성'과 '공동체'에 관한 자기-이해에 관한 근본적 난문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는 문화 '전쟁' 종교적이거나 준-종교적인 문화 전쟁을 포함하여 을 중화하고 돌파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작용하여, '통합'(integration)과 '동화'(assimilation)의 난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개방하고 '다-문화적' 유럽이라는 매우 갈등적인 관념에 능동적이고 전진적인 내용을 부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유럽통합과정은 불행히도 전자의 경향을 강화시켜 왔는 바, 이번 헌법조약안 역시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어떤 반경향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두 가지 상징적 사례를 통해 이 같은 경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터키의 EU 가입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터키는 이미 1960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시절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87년에 EC 정회원 가입신청을 냈다. 하지만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완전한 배제도 완전한 통합도 아닌 이 같은 모호한 상태가 반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슬람 문화와 유대-기독교 전통 사이의 '문명적' 갈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EU의 '내부적 배제'라는 얼핏 보기에는 역설적인 정책에 있다. 피상적인 관념과는 달리 EU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자의 흐름을 억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흐름은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터키와 회원국들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여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터키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터키를 EU에 완전히 통합하게 되면 터키 이주노동자들 나아가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다른 非유럽 출신 이주노동자들 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유럽에 있는 이슬람 공동체들이 주장하는 시민권 요구를 거부할 명분 역시 극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터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이주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내동댕이치며, 이로써 이주자들을 항구적인 불안정상태에 위치시키는 EU의 내부적 배제 정책에 있으며, 그런 한에서 비단 터키로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함의를 갖는다.21) 한편 이 같은 정책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공포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거부되고 제거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안정적인'(stable) 인구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양면적 존재로 말이다. 그래야만 이들이 특히 공통의 사회적 투쟁에 가담함으로써 능동적 의미에서의 '시민'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포와 불안정의 정치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권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형태들에 대한 위협은 외부자 뿐만 아니라 내부자들에게까지 확대된다.22)
두 번째 사례는 쉥겐조약이다.23) 쉥겐조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非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조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24) 혹자는 이 같은 조치를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 파악하면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고유한 정치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같은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 의 확대가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생산하는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강조한다.25)
이는 유럽의 '공간 정치적' 형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경계선들이 '전-위'(轉位, dis-place)되거나 '편재'(ubiquitous)하게 된다. 한편으로 경계선들은 유럽 국가들의 영토 안에 있는 다른 '검문소'들에서 복제되는데, 여기서는 불법적인 이방인(alien)과 그/녀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크'에 맞서 군사화 된 경찰작전이 진행된다. 다른 한편으로 실질적 경계선을 경계선 너머로 운반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준-전쟁이 인종주의적 반동 및 바람직하지 않은 연대 운동을 부추김으로써 유럽 사회의 시민적 평화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수용소의 외부화'(externalizing the camps) 및 '폭력의 아웃소싱' 따위의 현상이 발생한다. 난민들과 불법이주자들을 걸러내는 센터들은 더 이상 유럽 회원국의 영토가 아니라, 보조적인 이주 관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합의한 인접 '종속'(client) 국가 우크라이나, 터키, 모로코, 리비아 등 의 영토에 위치한다. 이는 식민주의적 예속관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전(前)-민족적인 제국들의 극히 오래된 '영토화' 유형을 부활시킨다. 더욱이 이는 유럽이 장차 펼칠 법한 '패권 정치'(power politics)의 전형적 측면인 바, 이는 새로운 초-국가의 영토를 넘어 '권력을 투사'할 수 있는 패권의 모델이지만, 실상은 국내 제도와 사회의 역량을 활용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차이와 갈등을 조절하는 것과 관련된 무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경계선'과 '이방인/외국인' 개념의 관계가 전도된다. 외양적으로는 후자가 전자의 전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선의 작업에 의해 이방인/외국인이 구성되거나 '생산'된다. 유럽 시민권 개념이 확립되면서 회원국 출신 외국인과 非회원국 출신('제3국') 외국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제3국' 역시 분열되는데, 예컨대 미국인과 한국인이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경계선의 지위는 이방인/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이국적임"(being foreign)의 의미 자체도 바꾸어 놓는다. 이 범주는 잠재적으로 '분해'되는 바, 왜냐하면 어떤 이는 '동화'(assimilated)되어 덜 이국적인 '이웃'이 되고 다른 이는 '이화'(dissimilated)되어 더 이국적인 존재, 그리하여 '절대적인 이방인' 심지어 '외계인'(alien)이 되는 등, 단일한 법적 의미에서의 '외국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불가피한 결과로, '민족'(national) 또는 결국 '자기' 이라는 범주 자체가 분할되고 세계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내부적 경계선'의 분해적(dissolving) 행동에 종속된다.
이 같은 불균등하고 복잡한 현실은, 이른바 '제국'(Empire)이라는 탈근대적 시대로 이행하면서 근대에 고유한 모든 '경계'들이 소멸하고, 이런 경향의 일환으로 유럽적인 공간이 구성되면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에 속박되지 않는 한층 지구적이고 호혜적인 관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 입장을 완전히 궁지에 빠뜨린다. 이들의 경우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이 모든(적어도 대부분) 폭력의 원천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민족국가는 인종주의 및 국경 제도라는 야만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주의/경계선 제도가 민족국가와 다른 수준, 즉 민족-이상적이거나 민족-이하적 정치체와 결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또한 유고 내전에서 극히 끔찍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듯, 모든 지역적 분리주의는 강력한 인종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국제주의적 인종주의'는 '범(汎)-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범-아랍주의', 그리고 물론 '대동아공영권' 등에서 볼 수 있듯, 인종주의의 예외적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 형태였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주의를 단순한 '민족주의적 인종주의'가 아니라 '유럽적 인종주의'26) 혹은 발리바르가 최근 도발적으로 제기한 표현을 따르자면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로 분석할 수 있다면, 유럽적 공간의 구축을 통해 이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인종주의의 현재적 양태에 대한 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반동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유럽적 인종주의'와 '유럽적 초-경계선'이라는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지 않으면서, '어쨌든 민족국가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극도의 지적 나태와 무책임에 지나지 않는다. 타락한 민족국가와 그에 못지않게 타락한 현재의 유럽이라는 대당 사이의 거울놀이가 계속되는 동안, 새로운 정치의 맹아는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인민들의 반대 결정은 이 거울놀이를 '중단'시킴으로써 '또 다른 유럽'에 관한 토론과 실천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거부가 생산한 일시적인 정치적 공백이 민족국가로의 퇴행적 고착에 의해 다시 봉쇄되고 이것의 반동성이 (또 다른 반동에 지나지 않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알리바이가 되는 더욱 악화된 거울놀이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대중들 스스로의 힘으로 개방한 정치적 공간을 회피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가 아니라 말의 강한 의미에서 비겁이며, 대중들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재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위험이 분명히(정확히 말하면 아주 강력하게) 존재하는 바, 이 결정을 함께 내리고 이를 지지한 모든 이들에게는 아주 엄중한 '책임'(responsibility), 즉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초래된 결과들 전혀 예기치 않았거나 심지어 도착적인 것들까지를 포함하여 을 인내심을 가지고 치밀하게 인식하고, 이 결과들이 제기하는 새로운 난문들에 효과적으로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형태로 스스로의 실천을 끊임없이 해체/발명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유럽의 미래는 이 같은 '책임의 정치'를 진전시킬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27)
쟁점 3: 기본권28)
이번 헌법조약 논쟁에서 핵심으로 부각됐던 쟁점 중 하나가 2부 기본권 헌장이다. 유럽연합의 민주성 여부를 판단할 때, 헌법조약에서 기본권이 차지하는 위상 및 내용이 주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유럽통합이 과거 민족국가에서 확립됐던 기본권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유럽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개입했겠지만,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헌법조약이 부결된 것을 이런 맥락에서 진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고수한다고 해서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유럽과 민족국가의 대당을 넘어 기본권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과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권의 개념 및 역사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발리바르는 기본권이 인권을 입헌화(constitutionnalisation)한 것, 즉 인권을 시민권의 정의 자체 안에 통합시켜 낸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평등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인권')를 내걸고 투쟁한 해방운동들의 역사적 성과를 근대적 제도 안에 구속력 있는 형태로 설립해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은 인권과 시민권의 역사에서 하나의 종별적 단계를 획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인권은 제도적 기초 따라서 유효한 물질성을 얻게 되고, 시민권은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각 개인들이 자율적 주체로서 정치적 삶에 가담할 수 있게 해 주는, 혹은 단적으로 시민적인 '능력'(capacity)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문제다. 이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별도의 범주로 분리하는 태도와 상반되는데, 왜냐하면 사회권의 보장 없이 자유권이 실현될 수 없고, 자유권을 억압하는 사회권이란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이란 법적 문서에 명시된 형식적 조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조건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시민적 평등과 자유를 재확립하려는 해방운동들이 벌어질 때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이자 이런 운동들에 의해 끊임없이 확장·갱신되어야 하는 투쟁의 쟁점 자체다.
이 같은 기본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는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우선 성평등의 문제를 보자. 과거의 인권선언문들이 성에 기초한 차별을 고발하는 데 그친 반면, 이번 기본권 헌장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을 모든 영역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유럽연합의 목표 중 하나로 언급했다는 점은 분명히 진보다. 하지만 이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에 대항하여 행사할 수 있는 어떤 효력도 갖지 못하는 바, 이 같은 무력함은 이번 기본권 헌장 모두에 걸쳐 있는 전반적 결함이다. 또한 과소대표된 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조치를 명시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녀들에게 정치적이고 직업적인 평등을 부여하기 위해서 교정되어야 하는 남성지배의 현실적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것 역시 결정적인 결함이다. 이러한 이중의 결함 때문에 성평등에 관한 언급이 공문구로 그치거나 심지어 실질적 불평등을 형식적 평등으로 은폐하는 효과가 생겨날 위험이 있다. 이와 함께 여성운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것은 제Ⅰ-52조에 명시된 교회 권위의 인정이다.29) 이는 정교분리라는 근대 국가의 기본 원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겨냥한 교회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권' 특히 '노동권'의 문제를 보자. 노동자운동을 필두로 한 사회운동들은 20세기 유럽에서 투쟁과 갈등을 정치적 기초로 삼는 '갈등적 민주주의'30)라는 독특한 정치형태를 경향적으로 강제했고, 이 안에서 교육, 실업으로부터의 보호(protection), 건강, 그리고 통신수단(moyens correspondants)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제도화해 냈다. 하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은 이 같은 성과를 계승하지 않았고 이른바 '사회적 유럽'의 견지에서 볼 때 퇴보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조항이 들어갔느냐 빠졌느냐 와 같은 다소 지엽적 접근이 아니라, 현재 유럽연합이 20세기 사회운동의 성과와 단절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 같은 단절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권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본적인 문제제기다.
한편 헌법조약안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부인한다. 연합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국 시민, 타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자유권' 문제를 살펴보자. 기본권 헌장은 '정보에 대한 권리'와 교통의 자유를 언급하지만, 그것의 필수적 상응물로서 문화 및 미디어 종종 근대국가의 '제 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독점의 금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들 분야는 사유화되거나 심지어 '사유화된 공공성'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데,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좌지우지하는 이탈리아는 이의 극단적 사례일 것이다. 언론의 자유에 관한 대논쟁 이래 우리는 문화적 제공(offre)의 다원주의가 '공적 영역'의 토대임을 잘 알고 있는 바, 이 같은 결함은 제도의 정당성 결여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상의 문제점으로부터 우리는 헌법조약안이 민주주의와 관련한 어떤 혁신적인 발명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이 '사회적 유럽'이 아니라 '자유(주의) 유럽'으로 가고 있어서 문제라기보다는, 헌법조약안이 확립하고자 하는 '자유' 개념 자체의 모순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헌법안은 평등과 사회적 보호에 대한 일정한 보장을 통합하기에 앞서, 시장경제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에 명시적으로 준거하고 있다. 이 같은 자유주의의 근저에는 역설적이게도 대중들의 자유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 즉 사회권을 포함한 기본권의 확립에 힘입어 시민들의 자율성 및 개인적·집단적인 공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산'된다면, 시장경제가 심각히 교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평등과 자유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가 전혀 아니라, 평등과 자유 중 어느 한쪽을 억압한다면 다른 한쪽 역시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진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자유를 지지하는 평등, 평등을 확대하는 자유 개념에 기초하여 새로운 기본권을 발명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발명은 몇몇 사람들의 관념적 기획이 아니라 구체적 정세 속에서 발견되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에서 대중들과 그/녀들의 편에 선 지식인들의 협력에 의해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이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 자주 망각하는 진실이다.
지방적 세계주의(cosmopolitanism)31)
마지막으로 위에서 열거된 문제들과 겹치면서도 나름의 차원을 갖는 쟁점이 하나 있다. 현재의 세계적 갈등 안에서 유럽(연합)의 위치, 그리고 유럽(연합)이 수행해야 하는 국제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며, 이는 이번 헌법안 찬성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에 관한 요구가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9. 11 테러 직후,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된 시점부터였다. 이들이 유럽을 호출하는 이유는 각각 다른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라는 이름을 통해 '서양'이라는 이름을 분할함과 동시에 유럽적 전통을 매개로 미국을 교정하고자 하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 점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주목하면서 이른바 '문명들의 충돌'에서 중재자가 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을 기초 짓는 논리는 결국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거나 '중재'(mediation, 매개)의 논리다. 여기서 전자는 궁극적으로 군사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경우 왜 유럽이 특권화 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독일이나 러시아, 프랑스나 중국, 멕시코나 일본처럼 미국의 군사력/국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중간 수준의 역량을 지닌 다양한 국가들이 견제와 균형을 수행하는 데 훨씬 더 현실적이고 유효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라크전 직전 미국을 잠시나마 제어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위와 같은 중간 수준 국가들의 정세적 수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 이들은 대개 유럽이 힘과 도덕성/정당성의 결합을 체현하고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환상, 또는 자신의 욕망을 유럽에 투사(project)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의 유럽은 미국을 제어할 수 있는 힘도 없거니와 '도덕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유럽은 '유럽 요새'의 구축, 배제를 통한 동일성의 구성,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의 창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보편주의를 거의 상실했다. 반면 후자의 논리는 좀 더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유하게 유럽적인 중재, 즉 미국과 다른 중재가 존재하는지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극히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전(前)유고연방, 팔레스타인, 체첸, 그리고 알제리 등 유럽 및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에서 EU는 자신의 무력함과 수동성만을 드러냈을 뿐이며, 많은 경우 NATO의 군사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유럽이 공동의 외교·안보전략을 세운다고 하나, 이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그러나 그 역량 면에서 훨씬 취약한) 군사주의 및 그를 정당화해주는 외피로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32) 게다가 이는 유럽통합에 필요한 동일성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혹자는 이 같은 유럽의 현실적 무력함이야말로 헌법조약안을 통과시켜야 할 다급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첫째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헌법조약안을 일단 통과시켜 유럽적인 공간을 구축해 내고 나면 그 이후의 정치지형은 현재보다 훨씬 유리하게 바뀔 거라는 것, 둘째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한 '주체'가 설 때에만 비로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근거가 없어 보인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헌법조약안 Ⅰ-41조에서 EU 공동 안보방위 정책이 NATO의 노선과 일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더구나 이 정책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럽이사회의 만장일치를 통과해야 하는 바, 설사 NATO에 반하는 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미국에 동조하는 단 하나의 국가 여기에는 영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주체가 확립되어야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역전시켜 정치적 행동을 통해 주체를 생산해 낸다는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철학적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 문제인데, 왜냐하면 어쨌든 개별 민족국가들로 이루어진 EU가 (확고한 동일성을 갖는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차별성과 불균등성 나아가 갈등을 인정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통해 이 같은 차별성을 정세적으로 조정해 가는 것 이외에 다른 현실적 길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같은 실천과 행동을 아래로부터 만들어가는 가운데 '또 다른 유럽'의 상을 물질화하는 것이지, 위로부터 허구적 동일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 없이 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적 명제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 그리고 어떤 '또 다른 유럽'인가?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 '문명의 충돌'과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유럽의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특히 지난 세기에 현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경향적으로) 기여한 세 가지 역사적 교훈을 지적한다. 첫째는 '비극의 교훈'이다. 1·2차 세계대전 및 당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유럽에서의 내전'으로 겪으면서, 유럽은 '절대적 승리'나 '적'에 대한 최종적 진압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이 같은 '최종적' 해결책33)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더 큰 파괴 및 자기-파괴의 조건을 창출할 뿐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이는 오늘날 미국 특히 네오콘이 주장하는 '테러(리스트)와의 끝없는 전쟁'과 관련하여 일종의 '데자뷔'를 연상시킬 정도의 현재성을 갖는다. 둘째는 '타자성(otherness)의 교훈'이다. 유럽의 식민주의 경험은 '타자성'이 항상 '동일성'의 필수적 구성요소라는 점, 따라서 타자를 악화시키거나 배제하려 들면 동일성 역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고 타자에 활력을 주는 가운데 이를 '환대'하면 동일성의 역량 역시 증대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는 타자성에 대한 배제를 통해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문명의 충돌' 식 시도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바,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기획은 이 같은 교훈을 망각한 채 자기-파괴의 실천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갈등적 민주주의'를 독창적으로 가공해 낸 것과 관련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을 포함한 갈등들 단순한 다원성이 아니라 을 정치 및 제도로부터 배제하고 범죄화하기보다는 이를 집합적인 정치적 역량으로 전환시켜 내려는 시도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사회권을 비롯한 기본권의 확립은 바로 이 같은 정치적 토대에서만 가능한 바, 우리가 앞서 현재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비판한 것은 이들이 정치적 토대와 기본권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진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 조치의 부재를 후자를 통해 가리려 들기 때문이었다. 이 '갈등적 민주주의'의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이른바 '정교분리'다.34) 종교전쟁에서 절정에 달한 종교 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종교적 소속이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측면을 인정하는 동시에, '국교' 등의 형태를 띠는 종교와 정치의 일치를 지양하고 종교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매개적 공간으로 정치적·공적 공간을 구축한다는 독특한 기획이 출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종교적 공존의 전제로서 각 개인들이 '민족적 동일성'이라는 규범적 정상성 혹은 세속화된 '국가종교' 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배제를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적 동일성이 약화되고 다시 종교적 동일성의 규정력이 강화되어 '문명의 충돌'이 운위되는 이때, 문제는 '갈등적 민주주의'의 20세기적 형태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혁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정치와 민족의 분리'로 한층 심화시켜 내면서, 오늘날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는 '다-문화주의'를 갈등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핵심적 기획의 일부로 재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하나의 경향일 뿐, 그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반경향과 도착의 가능성이 따라붙어왔고 현재의 경우 이 같은 반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교훈은 오늘날 세계가 처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바, 오직 이 같은 교훈을 되찾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정세에 개입하는 유럽만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반복하고 현재의 미국을 모방하는 거대 '열강'(power)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유형의 역량(power)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만이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하고 지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럽'이다.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지정학과 관련하여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마치겠다. 첫 번째는 지정학에서의 '반-전략주의적'(Anti-Strategic) 정책의 전면화다. 여기서 핵심은 세계적인 지정학적 전략, 특히 오늘날에는 '문명의 충돌'이나 '대테러전' 등에 입각하여 지역적(local, 국지적) 분쟁 잘 알려진 예만 들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나 이라크전 에 접근하는 방식을 역전시켜, 지역적 프로세스(process)의 세계적 프로세스에 대한 우위를 확립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적 갈등을 세계적 갈등으로 '과잉결정'시키는 것이 전자의 해결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는 평가가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적인 개입이나 세계화라는 조건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세계화는 분쟁 당사자들에게 (세계-정치를 강제하려는 패권국이 아니라) 그 자체 책임을 갖는 입회인들(observers)이나 중재자들, 또 증인들을 분쟁에 참여시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다자주의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을 열어내지 않고 미국과 같은 패권주의적 지정학을 모방한다면 유럽적인 중재란 어떠한 종별적 가치도 갖지 않는 또 다른 추악한 제국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축소된 '단층선'(fault line), 유로-지중해적 집합(Euro-Mediterranean)이라는 기획이다. 발리바르는 만일 유럽이 현재의 세계적 분쟁 해결에 있어서 어떤 정세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 오직 이 기획의 맥락에 서는 한에서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계속 언급했다시피 현재 미국 중심의 세계정치는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을 만들어내고 그 외부로 갈등을 투사함으로써 내부('서양')의 동질성과 활력 '적'에 맞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을 생산해 낸다는 슈미트적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 점에 있어 특권적 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슬람 문명' 또는 변형된 '동양'이다. 이 같은 전략은 현재 세계의 평화에 가장 심대한 해악을 미치는 원인인 바, 이 같은 전략을 교란시키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평화와 민주주의(냉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억압되었는지를 기억하자!)에 있어 관건적인 요소가 된다. 발리바르는 유럽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권적인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유럽 스스로의 동일성을 변화시켜야 하는 바, 유럽은 '기독교' 내지 '서양' 문명이라는 동일성을 상대화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유로-지중해적 집합' 또는 아예 '경계지대로서 유럽'(Europe as Borderland)으로 생산해 내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럽의 세 가지 역사적 교훈에 따라 유럽 스스로를 개조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작업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금 전면에 떠오르는 것이 터키 문제다. 만일 유럽이 터키 문제를 '또 다른 유럽'을 생산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로 삼고, 같은 얘기지만 중심-주변/동양-서양/기독교-이슬람/민족-민족 등의 대당을 해체하는 특권적 대상으로 껴안는다면 '또 다른 유럽'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럽은 분열과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분열과 갈등을 외면한 채 낡고 반동적인 '유럽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어 유럽을 형성하려 한다면 '또 다른 유럽'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세계'의 도래 역시 심각하게 제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이여, '다시 한 번 노력하라!'(encore un effort!)
나가며
이상에서 우리는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하나 간단치 않은 쟁점이지만, 또한 어느 하나 회피할 수도 없는 쟁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유럽 대중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제기한 거대한 도전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전 세계의 민중운동은 유럽헌법조약을 둘러싸고 제기된 쟁점들 특히 '정치 자체를 재발명하는 정치'라는 난문 주위를 회전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은 금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근대 전체에 관련된 근본적인 위기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비관주의를 악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정치적 사고 안에 새겨 넣기 위해서,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생산해낸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고와 실천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3저 호황과 '문민화',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든 모색을 주변화해 버린 우리. 그러나 '또 다른 세계'를 외치는 전 세계 인민들의 막을 수 없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다시 정치를 시작하라고 호소한다. 이 목소리에 귀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답하기 위해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우리 자신을 '해체'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1) 아래 나오는 국민투표 진행상황 및 통계는 주로 Susan Watkins, "Continental Tremors", New Left Review 33, May June 2005 및 Bernard Cassen, "Attac Against the Treaty", 같은 책을 참고했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경과에 대해서는 Anne-C cile Robert, "Why France said Non", Le Monde diplomatique, June 2005(http://mondediplo.com/2005/06/02frenchno)를 참고하고,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 중 중요 부분의 번역본은 『자율평론』13호 특집 2 "유럽헌법 찬/반 논쟁에 대하여"를 보라. 이 자리를 빌어 유럽의 논쟁을 신속히 소개해 주신 양창렬님께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2) 지난 1972년 4월 23일 68%의 프랑스인이 영국의 유럽공동체(EC)가입에 찬성한 바 있고, 1992년 9월 20일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51.05%라는 아슬아슬한 찬성표로 통과됐다. 본문으로
3) 유로 환율은 2005년 7월 6일 현재 1,250원 정도이므로 이는 원화로 환산하면 1,875,000원 정도다. 참고로 2004년 현재 프랑스 최저임금은 시간당 7.61유로다.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35시간임을 감안할 때 한 달 기준 최저임금은 1065.4 유로 정도다. 본문으로
4) 이같은 견해는 Jean Baudrillard, "Holy Europe", 같은 책 및 Slavoj Zizek, "The constitution is dead. Long live proper politics", The Guardian, Saturday June 4, 2005에서 잘 나타난다. 본문으로
5) 물론 프랑스와 달리 반미민족주의를 자신의 기치로 삼을 수 있는 보수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남한의 고립주의적(아우타르키적) 발전의 불가능성이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남한에서 반미민족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유한 반동적·고립주의적 대중운동이 크게 일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80년대를 거치면서 (반미민족주의를 좌익적으로 전유한) 대중운동 자체가, 친미주의(혹은 전향자들의 요설을 빌자면 '등미주의')로 전향하는 분파, 반미민족주의를 유지하지만 스스로를 고립주의와 분명히 구별 지을 수 있는 대안적 노선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축소되거나 수동화 되어 어떤 경우에는 전향한 친미주의에게 견인되거나 다른 경우에는 급진화 된 반미투쟁을 벌이는 등 끊임없이 동요하는 분파, 그리고 반미민족주의를 금융세계화 및 군사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로 전화하려는 급진적 분파 등으로 분열됨으로써 대중운동의 역량이 크게 축소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좀더 가깝다. 본문으로
6)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가 국내에서 별로 다뤄진 바 없고, 또 이것이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벌어진 논쟁이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에 대한 언어적 제약은 몇 배로 증가합니다. 아래 글은 이같은 한계 안에서 쓰여졌고, 대단히 한정된 참고문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제안 정도로 이 글을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으로
7) 이하의 텀 구성이나 내용은 주로 E. Balibar, "Sur la <
사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이 부결되다1)
지난 5월 29일 프랑스에서 유럽연합(이하 EU) 헌법 조약의 비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됐고 그 결과 54.9%의 반대표가 나왔다. 사흘 뒤인 6월 1일 네덜란드에서도 61.6%의 반대표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25개 가입국 모두에서 비준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유럽헌법 조약은, 다른 나라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그 미래가 극히 불투명하게 됐다.
국민투표에 관한 사실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자. 우선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각각 70%와 63%라는 전례 없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경우 이는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투표율임과 동시에 1958년 제 5공화국 출범 이래 가장 높은 반대율이다.2) 2002년에 실시된 총선 투표율이 64%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문제가 아닌 유럽연합의, 그것도 '헌법' 문제를 다룬 투표율이 이렇게 높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지식인들이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논쟁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상징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노천카페에서는, 정치에 극히 무관심하다고 치부되었던 청년들이 딱딱한 헌법 조항을 놓고 정치토론을 벌였다. 모든 단체에서 앞 다투어 입장을 제출했으며, 개인 블로그에서 조차 헌법조약에 관한 토론이 흘러넘쳤다. 실로 '말의 폭발'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능동화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투표 결과가 갖는 '국론분열적', 결국 '계급갈등적' 성격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교육 수준으로 볼 때 '낮은' 교육수준 시민들의 71%, '중간' 교육수준 시민들의 64%가 반대표를 던졌고, 반면 '높은' 교육수준의 시민들의 반대표는 52%에 그쳤다. 반면 헤임스떼더(Heemstede)와 블로멘달(Bloemendaal) 같은 부유한 비지(飛地, enclave)의 경우, 찬성표가 각각 57%와 61%로 반대표에 우세를 점했다. 프랑스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의 79%, 실업노동자의 71%, 청년들의 66%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으며, 마르세이유의 가장 가난한 지역과 노르파드칼레(Nord-pas de Calais)의 광산지대에서는 반대율이 각각 78%와 84%에 이르렀다. 월소득 1,500유로3) 이하 가구의 경우 66%가 조약에 반대했다. 반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파리 중심부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구)에서는 찬성률이 66%였다. 월소득 4,500유로 이상 가구에서는 74%가 찬성표를 던졌으며, 네이(Neuilly) 지역의 찬성률은 82.5%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은 스스로를 대중들의 '대표자'로 자임해 온 지배엘리트들의 정당성과 대표성, 결국 그들의 존재 자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우파나 중도파뿐만 아니라, 좌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식적으로 헌법조약 찬성 입장을 보인 노동당 지도부에 반해서, 노동당 성향 유권자 58%가 반대표를 던졌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당의 지도부 자체가 분열을 일으켰으며, 결국 사회당 지지자의 56%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지배엘리트들을 일대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사실 2005년 2월 28일 베르사이유에서 찬성운동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조약 비준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페리 앤더슨이 '감언(甘言)연합'(union sucr e)이라 부른) 찬성 운동 쪽에는 공화국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집권당인 인민운동연합(UMP)과 사회당, 『피가로』, 『렉스프레스』, 『르 몽드』, 『리베라시옹』,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위시한 대다수 언론 그리고 뉴스해설자와 토크쇼 사회자, 영화배우, 축구선수 등의 명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심지어 스페인 총리, 폴란드 대통령, 독일 수상 등이 헌법조약 찬성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를 방문했으며,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헌법조약에 관한 통지서를 발송했다. 또 하버마스나 권터 그라스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식인들이 찬성투표를 하나의 도덕적 의무로 역설하는 기고문을 연일 언론에 게재했다. 이렇듯 거의 모든 미디어와 국가장치가 찬성운동에 동원됐는데도 반대여론이 치솟았다. 다급해진 지배엘리트들은 이때부터 대중들을 비난하고 협박함으로써 대중들의 '대표자'라는 스스로의 정당성의 기초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반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반-터키주의, 반-폴란드주의, 반-유럽주의, 반-지성주의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중들에게 '검은 염소'(black sheep, 암적인 존재), '조련된 원숭이', '뱀'이라는 모욕적 언사조차 서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총리가 아우슈비츠의 유령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가 승리한 것이다!
이는 저 숨 막힐 듯한 신자유주의적 '합의'가 붕괴하고 '갈등'이 다시 전경에 나옴으로써, '정치'가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4)이 같은 상황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할 만 하다. 하지만 지금 시작된 것은 '과정'으로서 정치일 뿐,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지배엘리트들은 아직 미디어와 국가,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물질적 장치를 장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붕괴는 대안세계화운동 뿐만 아니라 르펜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 극우파가 운신할 수 있는 폭 역시 열어 주었다. 실제로 반대투표자의 35%가 반대의 주된 이유로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들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은 여전히 강력한 두 괴물의 위협을 물리치고 '또 다른 유럽'(Another Europe), 나아가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해 내는 힘든 싸움 한 가운데 있고 '승리'의 전조는 아직 희미하기만 하다.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진통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사적 함의를 갖는다. 주지하다시피 (금융)세계화는 무정부적인 과정이기는커녕, 자신의 요구를 정언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동반하고, 이 제도적 장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각종 지역블록이다. 이는 전통적 정치형태의 위기를 초래하고 좌와 우 모두에게 새로운 정치형태에 대한 모색이라는 난문을 안겨준다. 헌법조약안을 둘러싼 갈등은 바로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바, (금융)세계화로 인해 정치적 조건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는 모든 대중들에게 유럽의 현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물론 아시아는 그 지정학적 조건상 유럽과는 여러 모로 다른 궤적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일국적 주권을 뛰어넘는 (준)제도적 제약이 구축되면서 개별 국가만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운동들이 커다란 곤경에 몰리게 된다는 점(우리는 이미 WTO 쌀협상과 IMF 구조조정을 통해 이 곤경의 의미를 살로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운동들이 일대 분열을 겪게 된다는 점은 정확히 동일하다.5) 게다가 현재의 유럽통합이 '분단'된 동-서 유럽의 '통일'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며 통일 문제를 우회할 수 없는 우리에게 그 의의는 더욱 각별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EU헌법조약의 출현을 전후한 유럽의 논쟁 및 그 안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6)
유럽연합헌법조약안: 무엇이 쟁점인가?7)
이번 논쟁의 직접적 대상은 EU '헌법'(constitution)8)이다. 이는 즉각 현재 실존하지 않는 정치체를 '구성'(constitution)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쟁점을 불러들인다. 이 같은 쟁점의 '형식'은 논쟁의 진행을 크게 규정했다. 무언가를 '기초'짓는 것이 문제로 나선 한에서, 한편으로 과거의 기초에 대한 평가, 다른 편으로 새로운 사회의 기초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헌법안의 내용 자체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이후의 조약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논의가 격렬했던 것은 '헌법'이라는 형식이 논쟁을 격화시켰음을 방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즉 문제가 된 헌법은 '유럽연합'의 헌법이라는 점, 즉 근대적인 민족국가와 다른 형태의 정치체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조약 논쟁은 지난 수백 년을 지배한 이른바 '근대성'(modernity)이라는 문제가 학계 등 한정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들에게 공적으로 제기된 최초의 계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탈)근대성 논쟁과 대중들의 괴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계기이기도 했는데, 그간 근대성/탈근대성의 이분법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론을 펼치던 대표적 논자들이 이번 투표에서 다름 아닌 대중들에 의해 쓰디쓴 정치적 패배를 맛봤기 때문이다.9)
이렇게 볼 때 이번 헌법조약안 부결 사태는 기존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탈)근대성 논쟁을 상대화하거나, 최소한 '대중운동'이나 '제도' 등의 구체적 현실에 의해 규정되는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힐 것이다. 이는 한국의 논쟁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91년 이후 (탈)근대성 논쟁이 주로 사회주의 청산의 맥락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근대(성)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탈근대(성)에 대한 초자유주의적(libertarian) 예찬이라는 불모의 대당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진보이론의 혁신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지적 장애물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EU 헌법조약 논쟁에 대한 검토가 (탈)근대성 논쟁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특권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이는 말의 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사고에 해방적 효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서는 '인민주권', (유럽적) '동일성', '기본권', '지역적 세계주의'라는 네 가지 쟁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쟁점1: '인민주권'10)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유럽통합 기획의 중심은 경제통합이었다. '정치적 유럽'은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거나 다른 실용적 조치를 통해 회피해 왔던 난문이었다. 그렇지만 경제통합이 화폐통합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정치적 통합의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었다. 대내적·대외적으로 통합화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책임성을 갖는 정치적 연합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고 내전 이후 지속적으로 요청되어 왔고, 유럽적 동일성을 형성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으로 제기된 공통의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통합이 필요했다.11)
그런데 유럽을 '정치체' 따라서 하나의 '주권형태'로 사고하는 즉시, 역사적으로 정치체와 관련되었던 문제들과 이론들이 전경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질문은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체의 '정당성'(legitimacy)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근대의 전형적 답변은 '인민주권'이다. 인민으로부터 정당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오게 된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연합'이므로) '유럽의 인민'이란 존재하는가? 유럽은 과연 '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통일성을 갖고 있는가?
이 같은 다소 추상적인 질문은 '권력 조직'(organisation des pouvoirs) 혹은 '권력 분립'이라는 구체적 문제와 연결된다. '인민주권'이란 인민대중들의 민주적 의사가 관철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질문은 유럽통합 기획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 왔고 이번 에 '헌법'이라는 형태로 확립하고자 했던 권력 구조의 비민주성을 갈등적으로 쟁점화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번 헌법조약안이 제시하는 권력의 조직은 부르주아적인 삼권분립에도 훨씬 미달한다. 부르주아 민족국가 안에서 전통적으로 의회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졌던 입법권은 초국가적인 집행위원회(Commission)에 배타적으로 귀속된다. 독점적 발의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집행위원회의 구성은 회원국 정부 간의 협상에 의해 결정될 뿐, 유럽 시민들에게는 유럽연합 행정부의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다. 결국 대부분의 입법 절차를 이사회 즉 회원국 정부가 장악하는 셈인데,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안이 선출된 대표자들로부터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은 채 법령을 입안한다는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원리로 되돌아갔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전근대성'이나 '봉건성'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의 헌법조약이 유럽의회에 대해 부여하는 권한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헌법 알다시피 이 헌법은 '제헌의회'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에 의해 공동-결정의 권력이 부여된 곳에 한해서 입법의 '개정'만을 제안할 수 있고, 그나마도 그 수용 여부는 집행위원회에 달려 있는 이 '자문기관'은, 권력 또는 결정의 심급 앞에서 피통치자들의 불평과 탄원과 진정 따위를 내세우는 앙시엥 레짐 시기 저 유명한 '삼부회'의 기능과 정확히 동일하다. 여기서 우리는 '대표'(representation, 대의) 개념에 역사가 있다는, 따라서 최소한 두 개의 대표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다.12) 이미 다른 원리 왕권신수설 에 의해 구성된 '주권'적 권력 앞에서 '자문'이나 '탄원'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대표, 그리고 주권 자체를 구성하는 실천이자 인민의 대표자를 대중들 스스로 선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서 또 다른 대표 개념 말이다. 이 같은 단절을 생산한 사건은 물론 프랑스 혁명인 바, 현재 헌법조약안을 기초 짓는 원리는 20세기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18세기적인 의미에서 봤을 때 '반혁명'적이다. 테르미도르 반동도 이보다는 진보적이다!
혹자는 부르주아 삼권분립의 나머지 한 축으로서 '사법부'를 통해, 결국 원리로서 '법치주의'를 통해 막강한 행정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별 가망은 없어 보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을 만드는 입법자가 인민인 한에서, 법적 권력과 정당성의 원천이 인민주권인 한에서다. 그렇지 않은 법치주의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반민주적이었고, 관료주의적·엘리트주의적이었다. 유럽연합의 반민주성은 법치주의 혹은 법에 의한 행정 권력의 제어 예컨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13) 같은 것 에 의해 완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이는 대중들의 역량이 군주와 귀족 간의 갈등에 수동적으로 전유되어 '예속이 자기들의 자유가 되기라도 하듯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18세기 이전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조건 위에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이런 식으로 조건이 변화해 왔음은 객관적 현실이고, 이를 부인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이를 대중들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민주권을 상징적으로까지 완전히 파괴하는 조치를 찬성하라고 어떻게 인민들을 설득한단 말인가?
하지만 권력 조직의 문제는 위에서 살펴 본 삼권분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위의 문제는 약간의 양식을 가진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반면, 이하의 문제는 근대적 사고 안에서는 제기된 적 없는 전인미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지배적 주권형태였던 민족국가와 유럽연합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이번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한 답은 전통적인 주권의 속성들 이번 헌법조약안이 '권한'(competence)이라고 표현한 것 을 유럽적 수준과 민족적 수준 사이에서 '분할'하는 것이다.14)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경제적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헌법안의 제Ⅰ-12조 1항에서는 '배타적 권한'(exclusive competence)이 관철되는 분야 중 하나로 유로를 채택하고 있는 회원국을 위한 통화정책을 들고 있고, 반면 제Ⅰ-12조 2항에서는 '공유 권한'(competence shared)이 적용되는 분야 중 하나로 제3편에 정의된 사회정책을 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선 근대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에서는 분할할 수 없는 일체를 이뤘던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번 헌법안에서는 배타적 권한과 공유 권한으로 분할되어 각각 유럽중앙은행과 회원국에 귀속되고 있다. 또한 흔히 헌법조약 3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하는 경제정책이 이미 1부에서부터 출현한다. 전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통화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런 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주권은 분할될 수 있는가?' 또는 차라리 '분할된 주권은 주권으로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하는 고전적인 난문을 불러들인다. 이는 후자와 결합되어, 경제정책의 문제를 다른 주권적 원리가 결정된 후 추가되는 각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럽연합의 주권 구상에 대한 '환유'로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발리바르는 이 같은 현상을 '약한 초국가'(super-Etat faible) 또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고 부른다.15) 이는 두 가지 모순되는 특징을 결합함으로써 극히 반민주적인 효과를 생산한다. 우선 그것이 '초-국가'인 한에서 EU는 각 개별 국가들을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구속하는 주민들의 '일반의지'로부터 상당한 자율성과 집중성을 획득한다. 지배엘리트 편에서 보면 여기에는 이중적인 이점이 있다. 한편으로 개별 국가 인민들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나 극히 자유롭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편으로 지배엘리트의 자의에 의해 결정된 정책을 개별 국가 인민들 앞에서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국제적 압력/대세로 가장함으로써 정책 관철력을 높이는 한편 정치적 부담/책임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약한' 초국가이다. 즉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이해'들 앞에서 '일반이해'를 강제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권'을 상당히 제약받는다. 실제로 EU와 개별 국가의 관계는 '외교'의 문제로 처리된다. 이는 EU 결정의 수용 여부에 관해서는 각국 정부가 재량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국가 관료들과 지배엘리트들의 재량권을 극대화한다. 이들은 초-국가 제도와 개별 국가의 제도 간의 비공식적 '절합'(articulation)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들 간의 매개를 독점한다. 유럽과 개별 국가 인민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결정들이 테크노크라트들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와 '컨센서스'에 따라 이루어지고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한 재량권 역시 보존된다. 반면 인민들은 이중으로 주권을 박탈당한다. 한편으로 그/녀들은 개별 국가에서 (말의 강한 의미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주권의 핵심이 '결정권'인 한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편으로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개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앞서 지적한 '약한 초국가'로서 EU의 조건은 설사 유럽적 수준에서 대중들이 어떤 결정을 관철해 낸다고 해도 이를 개별 국가에 강제할 수 없다. 또한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만장일치 제도를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가입국인 25개국을 모두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모든 난관을 뚫고 어떤 결정을 관철시킬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제약이 훨씬 더 강화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같은 반민주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는데, 이번 헌법조약안에서는 자문기구에 불과한 유럽의회의 확대라는 립서비스 이외의 대부분의 반민주적 조치들을 온존시켰고 심지어 그것을 '입헌화'(constitutionalize)하려 했다. 좌파 중 이번 조약에서 찬성표를 던진 이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민족-이하적인 수준과 민족-이상적인 수준에서 더 민주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전제가 있다.16) 그러나 어떤 수준이 자명하게 민주적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어떤 수준은 자명하게 반민주적이라는 식의 접근은 관념적이다. 필요한 것은 역사적 접근인 바,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민족국가가 갖는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민족국가 자체가 선험적으로 민주주의와 친화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의 대중운동이 민족국가(혹은 차라리 사회-민족 국가)를 주된 투쟁과 변혁의 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민족국가 안에서 경향적으로 입헌화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반경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 시도는 고유한 반동성을 갖는데, 왜냐하면 유럽연합 자체가 그러한 역사적 투쟁과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애시 당초 그런 부분을 박탈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평가를 결여한 채 민족-이하적이거나 민족-이상적인 심급을 관념적으로 특권화한다면, 민족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방어적 투쟁을 사실상 엘리트들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대중들의 반대는 주권자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방어적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런 한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반대가 방어적이라는 사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쟁의 전망으로 설 수 없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 시급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대중들에 의해 기각된 '지금까지의 유럽'도, 그렇다고 지속할 수 없는 민족국가에 대한 방어투쟁도 아닌 또 다른 길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유럽 수준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함께, 새로운 주권형태 또는 새로운 유형의 '연방제'라는 극히 까다로운 난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주권 개념 및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지 않은 채 실용적으로 분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정치적 상상력을 역설하는 것만도 아닌 실천. 과거 '국가주권' 개념을 '인민주권' 개념으로 전환했던 것처럼, '인민들의 주권' 즉 다(多)-민족적인 주권/대의/통제 문제 을 '발명'해 내는 실천. 지배엘리트들에 의한 초민족적 '매개'의 독점이 아닌 인민들/대중들에 의한 새로운 초민족적 매개의 발명,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공적 영역의 구축.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실천들이다. 이런 실천들이 아래로부터 구성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유럽' 그리고 '유럽의 인민'이란 없을 것이고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그럴 것이다.
쟁점 2: 유럽적 동일성
이번 EU 헌법조약안이 가진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점은 유럽적 동일성, 곧 '유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문제는 유럽의 '경계선'(borderline)17)이라는 구체적 제도, 후보국의 기준이 무엇이고 가입 조건이 어떤 것인지 등의 현실적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이 기준이 자명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헌법조약안이 유럽적 동일성의 구성적 일부로 다시 한 번 확고히 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나토에는 미국과 캐나다라는 非유럽 국가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 EU 회원국인 오스트리아, 사이프러스, 핀란드, 아일랜드, 말타, 스웨덴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또한 나토의 유럽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터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발칸반도는 유럽인가 아닌가? 러시아는 어떤가? 유럽에서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非EU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은? 유럽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그렇고, 유럽이라면 이들이 포함됨으로써 기존의 '유럽성'(Europeanness)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EU가 전통적인 민족국가의 '국경'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불균등하고 다층적인 경계선들을 증식시켜 가면서 통합(과 배제)의 속도를 조절해 가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난점 때문이다.
이 같은 난점은 유럽적 동일성, 그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제도로서 유럽의 경계선이 세계-정치적인 분할에 의해 과잉결정 된다는 점을 볼 때 비로소 사고 가능해진다. 예컨대 1494년 토르데실라스 조약18)에서부터 최소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은 민족국가인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였는 바, 이 국가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그었던 경계선은 민족적인 경계선이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파쇼다와 모로코, 또는 조선의 거문도19) 등으로 연장되고 복제되는 세계적 분할선이었다. 이 같은 유럽의 경계선은 1945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냉전 시기 영국 나아가 유럽의 헤게모니가 붕괴한 시기이기도 한 에 들어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 '진영'에 의해 새롭게 과잉결정 된다. 한편으로 같은 민족국가를 구성했던 독일은 이제 '초-경계선'(super-frontier)에 의해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잠재적 '적국'으로 분할됐고, 다른 편으로 얼마 전까지 최대의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제 서독)은 '자유유럽' 통합의 양두마차로 나서고 동유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재건됐다.
이렇듯 유럽적 동일성 및 경계선은 각 유럽 국가들이 예컨대 종교적, 경제적, 식민주의적, 군사적 분야 등에서 갖는 세계적 이해가 자신들의 내적 문제와 교차하는 방식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여기에는 자연적이라거나 본성적인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럽에서 형성 중인 동일성/경계선을 과잉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는 물론 세계화와 함께 더욱 악화된 형태로 출현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이에 관해 유럽은 두 가지 극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극을 이루는 폭력적 배제 과정은, '안보 경계'(security borders)의 준-군사적 집행을 주된 수단으로 삼고 '정치적 적으로서 이방인'이라는 형상을 재창출한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적대를 (잠재적으로 절멸적인) 문화 전쟁과 문명의 충돌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향으로 유럽 구성을 추동한다.20) 다른 한 극에 있는 차이의 '시민적' 가공 과정은, 유럽의 교육체계와 문화정책에 관한 매우 어려운 쟁점들을 포함하며, 심지어 유럽의 '동일성'과 '공동체'에 관한 자기-이해에 관한 근본적 난문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는 문화 '전쟁' 종교적이거나 준-종교적인 문화 전쟁을 포함하여 을 중화하고 돌파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작용하여, '통합'(integration)과 '동화'(assimilation)의 난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개방하고 '다-문화적' 유럽이라는 매우 갈등적인 관념에 능동적이고 전진적인 내용을 부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유럽통합과정은 불행히도 전자의 경향을 강화시켜 왔는 바, 이번 헌법조약안 역시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어떤 반경향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두 가지 상징적 사례를 통해 이 같은 경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터키의 EU 가입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터키는 이미 1960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시절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87년에 EC 정회원 가입신청을 냈다. 하지만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완전한 배제도 완전한 통합도 아닌 이 같은 모호한 상태가 반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슬람 문화와 유대-기독교 전통 사이의 '문명적' 갈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EU의 '내부적 배제'라는 얼핏 보기에는 역설적인 정책에 있다. 피상적인 관념과는 달리 EU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자의 흐름을 억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흐름은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터키와 회원국들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여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터키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터키를 EU에 완전히 통합하게 되면 터키 이주노동자들 나아가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다른 非유럽 출신 이주노동자들 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유럽에 있는 이슬람 공동체들이 주장하는 시민권 요구를 거부할 명분 역시 극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터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이주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내동댕이치며, 이로써 이주자들을 항구적인 불안정상태에 위치시키는 EU의 내부적 배제 정책에 있으며, 그런 한에서 비단 터키로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함의를 갖는다.21) 한편 이 같은 정책이 효과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공포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거부되고 제거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안정적인'(stable) 인구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양면적 존재로 말이다. 그래야만 이들이 특히 공통의 사회적 투쟁에 가담함으로써 능동적 의미에서의 '시민'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포와 불안정의 정치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권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형태들에 대한 위협은 외부자 뿐만 아니라 내부자들에게까지 확대된다.22)
두 번째 사례는 쉥겐조약이다.23) 쉥겐조약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EU의 '역내국경'에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역내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EU 시민으로서의 종별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유럽통합과정에 관한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얼핏 보면 전혀 나무랄 것 없고 혁신적인 듯한 이 조치의 이면은 非유럽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쉥겐조약은 탈냉전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밀려드는 이민, 난민신청자 나아가 이주자들을 이른바 '유럽요새'에 대한 새로운 위협요소로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국경'에서의 검색, 비자정책의 획일화, 난민정책에서의 공조 및 경찰과 사법부문에서 초국가적 협력 등 폭력적인 통제와 진압을 처방한다.24) 혹자는 이 같은 조치를 일종의 새로운 '전쟁' 모델로 파악하면서, 지역적인 폭력과 공공연한 전쟁의 세계인 동시에 '노마드적'인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세계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고유한 정치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같은 전쟁 모델 또는 전쟁 형태로의 경찰 의 확대가 '유럽인들' 자신에 대해 생산하는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법적 귀결을 강조한다.25)
이는 유럽의 '공간 정치적' 형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경계선들이 '전-위'(轉位, dis-place)되거나 '편재'(ubiquitous)하게 된다. 한편으로 경계선들은 유럽 국가들의 영토 안에 있는 다른 '검문소'들에서 복제되는데, 여기서는 불법적인 이방인(alien)과 그/녀들을 지원하는 '네트워크'에 맞서 군사화 된 경찰작전이 진행된다. 다른 한편으로 실질적 경계선을 경계선 너머로 운반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준-전쟁이 인종주의적 반동 및 바람직하지 않은 연대 운동을 부추김으로써 유럽 사회의 시민적 평화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수용소의 외부화'(externalizing the camps) 및 '폭력의 아웃소싱' 따위의 현상이 발생한다. 난민들과 불법이주자들을 걸러내는 센터들은 더 이상 유럽 회원국의 영토가 아니라, 보조적인 이주 관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합의한 인접 '종속'(client) 국가 우크라이나, 터키, 모로코, 리비아 등 의 영토에 위치한다. 이는 식민주의적 예속관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전(前)-민족적인 제국들의 극히 오래된 '영토화' 유형을 부활시킨다. 더욱이 이는 유럽이 장차 펼칠 법한 '패권 정치'(power politics)의 전형적 측면인 바, 이는 새로운 초-국가의 영토를 넘어 '권력을 투사'할 수 있는 패권의 모델이지만, 실상은 국내 제도와 사회의 역량을 활용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차이와 갈등을 조절하는 것과 관련된 무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경계선'과 '이방인/외국인' 개념의 관계가 전도된다. 외양적으로는 후자가 전자의 전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선의 작업에 의해 이방인/외국인이 구성되거나 '생산'된다. 유럽 시민권 개념이 확립되면서 회원국 출신 외국인과 非회원국 출신('제3국') 외국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제3국' 역시 분열되는데, 예컨대 미국인과 한국인이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경계선의 지위는 이방인/외국인의 조건뿐만 아니라 "이국적임"(being foreign)의 의미 자체도 바꾸어 놓는다. 이 범주는 잠재적으로 '분해'되는 바, 왜냐하면 어떤 이는 '동화'(assimilated)되어 덜 이국적인 '이웃'이 되고 다른 이는 '이화'(dissimilated)되어 더 이국적인 존재, 그리하여 '절대적인 이방인' 심지어 '외계인'(alien)이 되는 등, 단일한 법적 의미에서의 '외국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불가피한 결과로, '민족'(national) 또는 결국 '자기' 이라는 범주 자체가 분할되고 세계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내부적 경계선'의 분해적(dissolving) 행동에 종속된다.
이 같은 불균등하고 복잡한 현실은, 이른바 '제국'(Empire)이라는 탈근대적 시대로 이행하면서 근대에 고유한 모든 '경계'들이 소멸하고, 이런 경향의 일환으로 유럽적인 공간이 구성되면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에 속박되지 않는 한층 지구적이고 호혜적인 관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식의 낙관적 입장을 완전히 궁지에 빠뜨린다. 이들의 경우 민족국가의 동일성/경계선이 모든(적어도 대부분) 폭력의 원천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민족국가는 인종주의 및 국경 제도라는 야만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주의/경계선 제도가 민족국가와 다른 수준, 즉 민족-이상적이거나 민족-이하적 정치체와 결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또한 유고 내전에서 극히 끔찍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듯, 모든 지역적 분리주의는 강력한 인종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국제주의적 인종주의'는 '범(汎)-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범-아랍주의', 그리고 물론 '대동아공영권' 등에서 볼 수 있듯, 인종주의의 예외적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 형태였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주의를 단순한 '민족주의적 인종주의'가 아니라 '유럽적 인종주의'26) 혹은 발리바르가 최근 도발적으로 제기한 표현을 따르자면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로 분석할 수 있다면, 유럽적 공간의 구축을 통해 이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인종주의의 현재적 양태에 대한 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반동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유럽적 인종주의'와 '유럽적 초-경계선'이라는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지 않으면서, '어쨌든 민족국가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극도의 지적 나태와 무책임에 지나지 않는다. 타락한 민족국가와 그에 못지않게 타락한 현재의 유럽이라는 대당 사이의 거울놀이가 계속되는 동안, 새로운 정치의 맹아는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인민들의 반대 결정은 이 거울놀이를 '중단'시킴으로써 '또 다른 유럽'에 관한 토론과 실천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개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거부가 생산한 일시적인 정치적 공백이 민족국가로의 퇴행적 고착에 의해 다시 봉쇄되고 이것의 반동성이 (또 다른 반동에 지나지 않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알리바이가 되는 더욱 악화된 거울놀이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대중들 스스로의 힘으로 개방한 정치적 공간을 회피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가 아니라 말의 강한 의미에서 비겁이며, 대중들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재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위험이 분명히(정확히 말하면 아주 강력하게) 존재하는 바, 이 결정을 함께 내리고 이를 지지한 모든 이들에게는 아주 엄중한 '책임'(responsibility), 즉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초래된 결과들 전혀 예기치 않았거나 심지어 도착적인 것들까지를 포함하여 을 인내심을 가지고 치밀하게 인식하고, 이 결과들이 제기하는 새로운 난문들에 효과적으로 응답(response)할 수 있는 형태로 스스로의 실천을 끊임없이 해체/발명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유럽의 미래는 이 같은 '책임의 정치'를 진전시킬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27)
쟁점 3: 기본권28)
이번 헌법조약 논쟁에서 핵심으로 부각됐던 쟁점 중 하나가 2부 기본권 헌장이다. 유럽연합의 민주성 여부를 판단할 때, 헌법조약에서 기본권이 차지하는 위상 및 내용이 주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유럽통합이 과거 민족국가에서 확립됐던 기본권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유럽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개입했겠지만, 이번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헌법조약이 부결된 것을 이런 맥락에서 진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고수한다고 해서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유럽과 민족국가의 대당을 넘어 기본권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과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권의 개념 및 역사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발리바르는 기본권이 인권을 입헌화(constitutionnalisation)한 것, 즉 인권을 시민권의 정의 자체 안에 통합시켜 낸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평등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인권')를 내걸고 투쟁한 해방운동들의 역사적 성과를 근대적 제도 안에 구속력 있는 형태로 설립해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은 인권과 시민권의 역사에서 하나의 종별적 단계를 획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인권은 제도적 기초 따라서 유효한 물질성을 얻게 되고, 시민권은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각 개인들이 자율적 주체로서 정치적 삶에 가담할 수 있게 해 주는, 혹은 단적으로 시민적인 '능력'(capacity)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문제다. 이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별도의 범주로 분리하는 태도와 상반되는데, 왜냐하면 사회권의 보장 없이 자유권이 실현될 수 없고, 자유권을 억압하는 사회권이란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본권이란 법적 문서에 명시된 형식적 조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조건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시민적 평등과 자유를 재확립하려는 해방운동들이 벌어질 때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거점이자 이런 운동들에 의해 끊임없이 확장·갱신되어야 하는 투쟁의 쟁점 자체다.
이 같은 기본적 관점에 입각해 우리는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우선 성평등의 문제를 보자. 과거의 인권선언문들이 성에 기초한 차별을 고발하는 데 그친 반면, 이번 기본권 헌장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을 모든 영역에서 확립되어야 하는 유럽연합의 목표 중 하나로 언급했다는 점은 분명히 진보다. 하지만 이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에 대항하여 행사할 수 있는 어떤 효력도 갖지 못하는 바, 이 같은 무력함은 이번 기본권 헌장 모두에 걸쳐 있는 전반적 결함이다. 또한 과소대표된 성에 대한 적극적 평등조치를 명시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녀들에게 정치적이고 직업적인 평등을 부여하기 위해서 교정되어야 하는 남성지배의 현실적 상황을 묘사하지 않는 것 역시 결정적인 결함이다. 이러한 이중의 결함 때문에 성평등에 관한 언급이 공문구로 그치거나 심지어 실질적 불평등을 형식적 평등으로 은폐하는 효과가 생겨날 위험이 있다. 이와 함께 여성운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것은 제Ⅰ-52조에 명시된 교회 권위의 인정이다.29) 이는 정교분리라는 근대 국가의 기본 원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겨냥한 교회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권' 특히 '노동권'의 문제를 보자. 노동자운동을 필두로 한 사회운동들은 20세기 유럽에서 투쟁과 갈등을 정치적 기초로 삼는 '갈등적 민주주의'30)라는 독특한 정치형태를 경향적으로 강제했고, 이 안에서 교육, 실업으로부터의 보호(protection), 건강, 그리고 통신수단(moyens correspondants)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제도화해 냈다. 하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은 이 같은 성과를 계승하지 않았고 이른바 '사회적 유럽'의 견지에서 볼 때 퇴보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조항이 들어갔느냐 빠졌느냐 와 같은 다소 지엽적 접근이 아니라, 현재 유럽연합이 20세기 사회운동의 성과와 단절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 같은 단절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권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본적인 문제제기다.
한편 헌법조약안은 이방인 곧 공동체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권리를 부인한다. 연합의 시민권이 도입되면서 이민자들의 공민권(귀화 외국인으로서의 권리, denizenship)이 발전하는 것은 봉쇄됐다. 유럽 시민권은 유럽연합 내의 한 시민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바로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반면, 非유럽인들에게는 심지어 이들이 유럽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이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회원국의 상이한 이민정책은 이들의 유럽시민권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과거의 개별국 시민과 외국인으로 양분되던 시대에서 개별국 시민, 타유럽 시민 그리고 외국인으로 삼분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의 위상이 악화되었다. 이는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또는 거주자(residents)의 일부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배제된 영역에서는 경찰이 정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자유권' 문제를 살펴보자. 기본권 헌장은 '정보에 대한 권리'와 교통의 자유를 언급하지만, 그것의 필수적 상응물로서 문화 및 미디어 종종 근대국가의 '제 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독점의 금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들 분야는 사유화되거나 심지어 '사유화된 공공성'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데, 언론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좌지우지하는 이탈리아는 이의 극단적 사례일 것이다. 언론의 자유에 관한 대논쟁 이래 우리는 문화적 제공(offre)의 다원주의가 '공적 영역'의 토대임을 잘 알고 있는 바, 이 같은 결함은 제도의 정당성 결여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상의 문제점으로부터 우리는 헌법조약안이 민주주의와 관련한 어떤 혁신적인 발명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이 '사회적 유럽'이 아니라 '자유(주의) 유럽'으로 가고 있어서 문제라기보다는, 헌법조약안이 확립하고자 하는 '자유' 개념 자체의 모순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헌법안은 평등과 사회적 보호에 대한 일정한 보장을 통합하기에 앞서, 시장경제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에 명시적으로 준거하고 있다. 이 같은 자유주의의 근저에는 역설적이게도 대중들의 자유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 즉 사회권을 포함한 기본권의 확립에 힘입어 시민들의 자율성 및 개인적·집단적인 공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산'된다면, 시장경제가 심각히 교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평등과 자유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가 전혀 아니라, 평등과 자유 중 어느 한쪽을 억압한다면 다른 한쪽 역시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진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자유를 지지하는 평등, 평등을 확대하는 자유 개념에 기초하여 새로운 기본권을 발명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발명은 몇몇 사람들의 관념적 기획이 아니라 구체적 정세 속에서 발견되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에서 대중들과 그/녀들의 편에 선 지식인들의 협력에 의해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번 헌법조약안이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 자주 망각하는 진실이다.
지방적 세계주의(cosmopolitanism)31)
마지막으로 위에서 열거된 문제들과 겹치면서도 나름의 차원을 갖는 쟁점이 하나 있다. 현재의 세계적 갈등 안에서 유럽(연합)의 위치, 그리고 유럽(연합)이 수행해야 하는 국제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며, 이는 이번 헌법안 찬성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에 관한 요구가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9. 11 테러 직후,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된 시점부터였다. 이들이 유럽을 호출하는 이유는 각각 다른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라는 이름을 통해 '서양'이라는 이름을 분할함과 동시에 유럽적 전통을 매개로 미국을 교정하고자 하며, 어떤 경우에는 유럽이 점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주목하면서 이른바 '문명들의 충돌'에서 중재자가 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을 기초 짓는 논리는 결국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거나 '중재'(mediation, 매개)의 논리다. 여기서 전자는 궁극적으로 군사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경우 왜 유럽이 특권화 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독일이나 러시아, 프랑스나 중국, 멕시코나 일본처럼 미국의 군사력/국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중간 수준의 역량을 지닌 다양한 국가들이 견제와 균형을 수행하는 데 훨씬 더 현실적이고 유효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라크전 직전 미국을 잠시나마 제어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위와 같은 중간 수준 국가들의 정세적 수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 이들은 대개 유럽이 힘과 도덕성/정당성의 결합을 체현하고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환상, 또는 자신의 욕망을 유럽에 투사(project)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의 유럽은 미국을 제어할 수 있는 힘도 없거니와 '도덕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유럽은 '유럽 요새'의 구축, 배제를 통한 동일성의 구성,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의 창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보편주의를 거의 상실했다. 반면 후자의 논리는 좀 더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유하게 유럽적인 중재, 즉 미국과 다른 중재가 존재하는지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극히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전(前)유고연방, 팔레스타인, 체첸, 그리고 알제리 등 유럽 및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에서 EU는 자신의 무력함과 수동성만을 드러냈을 뿐이며, 많은 경우 NATO의 군사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유럽이 공동의 외교·안보전략을 세운다고 하나, 이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그러나 그 역량 면에서 훨씬 취약한) 군사주의 및 그를 정당화해주는 외피로서 '인도주의적 개입'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32) 게다가 이는 유럽통합에 필요한 동일성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혹자는 이 같은 유럽의 현실적 무력함이야말로 헌법조약안을 통과시켜야 할 다급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첫째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헌법조약안을 일단 통과시켜 유럽적인 공간을 구축해 내고 나면 그 이후의 정치지형은 현재보다 훨씬 유리하게 바뀔 거라는 것, 둘째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한 '주체'가 설 때에만 비로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근거가 없어 보인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헌법조약안 Ⅰ-41조에서 EU 공동 안보방위 정책이 NATO의 노선과 일치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더구나 이 정책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유럽이사회의 만장일치를 통과해야 하는 바, 설사 NATO에 반하는 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미국에 동조하는 단 하나의 국가 여기에는 영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주체가 확립되어야만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역전시켜 정치적 행동을 통해 주체를 생산해 낸다는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철학적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 문제인데, 왜냐하면 어쨌든 개별 민족국가들로 이루어진 EU가 (확고한 동일성을 갖는다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차별성과 불균등성 나아가 갈등을 인정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통해 이 같은 차별성을 정세적으로 조정해 가는 것 이외에 다른 현실적 길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같은 실천과 행동을 아래로부터 만들어가는 가운데 '또 다른 유럽'의 상을 물질화하는 것이지, 위로부터 허구적 동일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 없이 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적 명제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 그리고 어떤 '또 다른 유럽'인가?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 '문명의 충돌'과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유럽의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특히 지난 세기에 현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경향적으로) 기여한 세 가지 역사적 교훈을 지적한다. 첫째는 '비극의 교훈'이다. 1·2차 세계대전 및 당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유럽에서의 내전'으로 겪으면서, 유럽은 '절대적 승리'나 '적'에 대한 최종적 진압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이 같은 '최종적' 해결책33)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더 큰 파괴 및 자기-파괴의 조건을 창출할 뿐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이는 오늘날 미국 특히 네오콘이 주장하는 '테러(리스트)와의 끝없는 전쟁'과 관련하여 일종의 '데자뷔'를 연상시킬 정도의 현재성을 갖는다. 둘째는 '타자성(otherness)의 교훈'이다. 유럽의 식민주의 경험은 '타자성'이 항상 '동일성'의 필수적 구성요소라는 점, 따라서 타자를 악화시키거나 배제하려 들면 동일성 역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고 타자에 활력을 주는 가운데 이를 '환대'하면 동일성의 역량 역시 증대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는 타자성에 대한 배제를 통해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문명의 충돌' 식 시도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바,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럽통합기획은 이 같은 교훈을 망각한 채 자기-파괴의 실천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갈등적 민주주의'를 독창적으로 가공해 낸 것과 관련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을 포함한 갈등들 단순한 다원성이 아니라 을 정치 및 제도로부터 배제하고 범죄화하기보다는 이를 집합적인 정치적 역량으로 전환시켜 내려는 시도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사회권을 비롯한 기본권의 확립은 바로 이 같은 정치적 토대에서만 가능한 바, 우리가 앞서 현재 헌법조약안의 기본권 헌장을 비판한 것은 이들이 정치적 토대와 기본권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진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 조치의 부재를 후자를 통해 가리려 들기 때문이었다. 이 '갈등적 민주주의'의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이른바 '정교분리'다.34) 종교전쟁에서 절정에 달한 종교 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종교적 소속이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측면을 인정하는 동시에, '국교' 등의 형태를 띠는 종교와 정치의 일치를 지양하고 종교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매개적 공간으로 정치적·공적 공간을 구축한다는 독특한 기획이 출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종교적 공존의 전제로서 각 개인들이 '민족적 동일성'이라는 규범적 정상성 혹은 세속화된 '국가종교' 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배제를 겪어야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민족적 동일성이 약화되고 다시 종교적 동일성의 규정력이 강화되어 '문명의 충돌'이 운위되는 이때, 문제는 '갈등적 민주주의'의 20세기적 형태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혁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정치와 민족의 분리'로 한층 심화시켜 내면서, 오늘날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는 '다-문화주의'를 갈등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핵심적 기획의 일부로 재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하나의 경향일 뿐, 그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반경향과 도착의 가능성이 따라붙어왔고 현재의 경우 이 같은 반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교훈은 오늘날 세계가 처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바, 오직 이 같은 교훈을 되찾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정세에 개입하는 유럽만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반복하고 현재의 미국을 모방하는 거대 '열강'(power)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유형의 역량(power)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만이 오늘날 유일하게 가능하고 지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럽'이다.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지정학과 관련하여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마치겠다. 첫 번째는 지정학에서의 '반-전략주의적'(Anti-Strategic) 정책의 전면화다. 여기서 핵심은 세계적인 지정학적 전략, 특히 오늘날에는 '문명의 충돌'이나 '대테러전' 등에 입각하여 지역적(local, 국지적) 분쟁 잘 알려진 예만 들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나 이라크전 에 접근하는 방식을 역전시켜, 지역적 프로세스(process)의 세계적 프로세스에 대한 우위를 확립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적 갈등을 세계적 갈등으로 '과잉결정'시키는 것이 전자의 해결을 더욱 악화시켜 왔다는 평가가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적인 개입이나 세계화라는 조건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세계화는 분쟁 당사자들에게 (세계-정치를 강제하려는 패권국이 아니라) 그 자체 책임을 갖는 입회인들(observers)이나 중재자들, 또 증인들을 분쟁에 참여시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다자주의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을 열어내지 않고 미국과 같은 패권주의적 지정학을 모방한다면 유럽적인 중재란 어떠한 종별적 가치도 갖지 않는 또 다른 추악한 제국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축소된 '단층선'(fault line), 유로-지중해적 집합(Euro-Mediterranean)이라는 기획이다. 발리바르는 만일 유럽이 현재의 세계적 분쟁 해결에 있어서 어떤 정세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 오직 이 기획의 맥락에 서는 한에서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계속 언급했다시피 현재 미국 중심의 세계정치는 냉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단층선'을 만들어내고 그 외부로 갈등을 투사함으로써 내부('서양')의 동질성과 활력 '적'에 맞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을 생산해 낸다는 슈미트적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 점에 있어 특권적 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슬람 문명' 또는 변형된 '동양'이다. 이 같은 전략은 현재 세계의 평화에 가장 심대한 해악을 미치는 원인인 바, 이 같은 전략을 교란시키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평화와 민주주의(냉전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억압되었는지를 기억하자!)에 있어 관건적인 요소가 된다. 발리바르는 유럽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권적인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유럽 스스로의 동일성을 변화시켜야 하는 바, 유럽은 '기독교' 내지 '서양' 문명이라는 동일성을 상대화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유로-지중해적 집합' 또는 아예 '경계지대로서 유럽'(Europe as Borderland)으로 생산해 내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럽의 세 가지 역사적 교훈에 따라 유럽 스스로를 개조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작업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금 전면에 떠오르는 것이 터키 문제다. 만일 유럽이 터키 문제를 '또 다른 유럽'을 생산하기 위한 결정적 계기로 삼고, 같은 얘기지만 중심-주변/동양-서양/기독교-이슬람/민족-민족 등의 대당을 해체하는 특권적 대상으로 껴안는다면 '또 다른 유럽'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럽은 분열과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분열과 갈등을 외면한 채 낡고 반동적인 '유럽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어 유럽을 형성하려 한다면 '또 다른 유럽'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세계'의 도래 역시 심각하게 제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이여, '다시 한 번 노력하라!'(encore un effort!)
나가며
이상에서 우리는 유럽연합헌법조약안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하나 간단치 않은 쟁점이지만, 또한 어느 하나 회피할 수도 없는 쟁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유럽 대중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제기한 거대한 도전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전 세계의 민중운동은 유럽헌법조약을 둘러싸고 제기된 쟁점들 특히 '정치 자체를 재발명하는 정치'라는 난문 주위를 회전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은 금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근대 전체에 관련된 근본적인 위기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비관주의를 악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정치적 사고 안에 새겨 넣기 위해서,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를 생산해낸다는 의미에서의 '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고와 실천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3저 호황과 '문민화',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든 모색을 주변화해 버린 우리. 그러나 '또 다른 세계'를 외치는 전 세계 인민들의 막을 수 없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다시 정치를 시작하라고 호소한다. 이 목소리에 귀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답하기 위해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우리 자신을 '해체'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1) 아래 나오는 국민투표 진행상황 및 통계는 주로 Susan Watkins, "Continental Tremors", New Left Review 33, May June 2005 및 Bernard Cassen, "Attac Against the Treaty", 같은 책을 참고했다. 이와 함께 전반적인 경과에 대해서는 Anne-C cile Robert, "Why France said Non", Le Monde diplomatique, June 2005(http://mondediplo.com/2005/06/02frenchno)를 참고하고,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 중 중요 부분의 번역본은 『자율평론』13호 특집 2 "유럽헌법 찬/반 논쟁에 대하여"를 보라. 이 자리를 빌어 유럽의 논쟁을 신속히 소개해 주신 양창렬님께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2) 지난 1972년 4월 23일 68%의 프랑스인이 영국의 유럽공동체(EC)가입에 찬성한 바 있고, 1992년 9월 20일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51.05%라는 아슬아슬한 찬성표로 통과됐다. 본문으로
3) 유로 환율은 2005년 7월 6일 현재 1,250원 정도이므로 이는 원화로 환산하면 1,875,000원 정도다. 참고로 2004년 현재 프랑스 최저임금은 시간당 7.61유로다.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35시간임을 감안할 때 한 달 기준 최저임금은 1065.4 유로 정도다. 본문으로
4) 이같은 견해는 Jean Baudrillard, "Holy Europe", 같은 책 및 Slavoj Zizek, "The constitution is dead. Long live proper politics", The Guardian, Saturday June 4, 2005에서 잘 나타난다. 본문으로
5) 물론 프랑스와 달리 반미민족주의를 자신의 기치로 삼을 수 있는 보수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남한의 고립주의적(아우타르키적) 발전의 불가능성이 대중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남한에서 반미민족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유한 반동적·고립주의적 대중운동이 크게 일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80년대를 거치면서 (반미민족주의를 좌익적으로 전유한) 대중운동 자체가, 친미주의(혹은 전향자들의 요설을 빌자면 '등미주의')로 전향하는 분파, 반미민족주의를 유지하지만 스스로를 고립주의와 분명히 구별 지을 수 있는 대안적 노선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축소되거나 수동화 되어 어떤 경우에는 전향한 친미주의에게 견인되거나 다른 경우에는 급진화 된 반미투쟁을 벌이는 등 끊임없이 동요하는 분파, 그리고 반미민족주의를 금융세계화 및 군사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로 전화하려는 급진적 분파 등으로 분열됨으로써 대중운동의 역량이 크게 축소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 좀더 가깝다. 본문으로
6)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가 국내에서 별로 다뤄진 바 없고, 또 이것이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벌어진 논쟁이기 때문에 참고할 자료에 대한 언어적 제약은 몇 배로 증가합니다. 아래 글은 이같은 한계 안에서 쓰여졌고, 대단히 한정된 참고문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제안 정도로 이 글을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으로
7) 이하의 텀 구성이나 내용은 주로 E. Balibar, "Sur 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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