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전국농민대회에서 만난 농심(農心)은 한마디로 말해 ‘흉흉’했다. 이날 농민대회는 작년에 이어 대규모로 이어졌는데, 충남에서 1만7천명, 경남에서 1만8천명이 모이는 등 모두 9만 여명이 참가했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이날 농민대회를 통해 한․칠레 FTA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고 농민들 사이에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번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편집실에서는 한․칠레 FTA가 농민들에게 현실적으로 어떻게 체감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기환 정책위원장을 만나서 현재 농촌의 구체적인 상황과 향후 투쟁방향에 대해 물었다. 정부의 한․칠레 FTA 체결 이후 농민의 여론은 정부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농민들은 ‘정부가 농업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칠레 FTA에 대해 일관된 반대를 해왔다. 이에 정부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한․칠레 FTA의 실상이라든가, 이로 인해 한국의 농업에 닥칠 변화가 무엇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현재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독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양국 대통령이(칠레, 한국 대통령) 정부간 협정을 체결하면서 정부가 농업을 살릴 의지가 없음을 알았다. 개방정책에 의해 이미 농업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더 나아가 완전 개방정책을 펼치니까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을 펴고 있구나, 이것이 한․칠레 자유협정이구나’라고 농민들은 느끼고 있다. 이제 방법은 ‘정부불신투쟁’ 밖에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반응이다. 정부불신투쟁은 무엇인가 정부가 농업정책을 세운 후, 농가들에게 이에 따라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시키는 일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부의 정책대로 따를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농민들은 가격폭락으로 더더욱 농업재해에 시달렸고 농가소득은 계속 바닥을 쳤다. 이러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한․칠레 FTA 정부체결에 따른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UR(우르과이 라운드) 이후 전망농업사업이라는 것을 정부가 주장했는데, 사과, 배, 포도와 같은 과수농업과 양계, 양돈과 같은 축산을 권장했다. 그리고 이 때, 농가들이 장목 전환을 많이 했다. 바로 한․칠레 FTA는 정부가 권장했던 사업의 직격탄이다. 특히 과수농가는 더 그렇다. 칠레는 과수농업강국이다. 과수농업분야에서 1, 2위를 다투는 칠레에서는 질 좋은 포도가 특히 많이 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이것은 바로 정부가 권장한 정책에 따라 장목 전환을 한 농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그 피해란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또 축산과 관련해서는 돼지를 키우는 농가도 문제가 된다. 정부가 장기적 관점 없이 임기응변 식으로 농업정책을 세우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이번 농민대회는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농민연대를 통해 조직했다. 농민연대에는 지역에서 농민운동을 하는 9개의 대중조직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업기술자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유기농협회, 전국한우협회가 있다. 이런 조직들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지역대책위를 구성하고 이를 발판으로 11월 19일 농민대회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전농 뿐만이 아니라 많은 조직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농민들의 공분을 뜻한다. 농민대회 이후의 상황은 정부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국회비준 하면서 농가부채해결과 복지법을 연동시켜 처리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농민들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용인해야 농가부채해결과 복지법을 처리해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사항을 맞바꾸기 식으로 처리하려고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실제로 농가부채해결은 과거에 시행되었던 농업정책이 낳은 오류를 고쳐내기 위한 해결과제이지 새로운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니다.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 이후 발생한 농가부채 증가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지 농가부채해결이 앞으로 마련될 정책과 맞바꿀 수 있는 협상의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이 모든 사항을 연동시키지 말고 각각 분리해서 처리하라고 국회를 압박하는 투쟁을 벌이려고 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과 농가부채특별법과 복지법 문제는 분리해서 통과시켜야 한다. 10만의 농민대회 이후 정부측의 반응은 농민여론에 밀려 주춤하고 있다. 전체적인 농민여론 자체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고 있고 정부가 제기했던 농업분야 119조원 투자계획 자체가 현실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국회에서조차 이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측에서 전농과 한총련 외에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는 식으로 악선전을 하고 있는데 현재 농민연대는 한․칠레 FTA관련해서는 일관되게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가 농업에 대한 실천적인 대책을 내오지 않는 한, 이 입장은 일관될 것이다. 현재 정부가 내오는 중장기적 농업정책은 진정으로 농업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이다. 그리고 11월 19일 전에 농업분야 119조원 투자와 관련한 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은 이런 농민들의 분노, 외침을 희석하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농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고 우리 국민들의 식량 수급 목표를 어떻게 세우고, 그에 따른 토지정책이나 가족정책, 인력육성정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이런 큰 프로그램 속에서 그에 따른 예산안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만이 그나마 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 고려도 없는데 119조원이라고 예산책정 한다고 해서 농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농민연대 결성의 배경은 무엇인가 농민연대 이전에 농민단체협의회가 있었다. 농민단체협의회에는 친정부적인 단체부터 유명무실한 단체까지 각종 단체가 모두 모여있다. 이러다 보니까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는 투쟁이나 농업을 살리는 투쟁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지역에 대중조직을 가진 농민단체들끼리 새롭게 농민들의 투쟁과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9개 단체가 모여서 농민연대를 만들게 되었다. 정부측이 개방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속화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농민연대의 입장과 국민들에 대한 선전은 어떻게 농민연대는 정부의 개방정책에 대해 명확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농업개방이 세계적인 대세라고 이야기하지만, 선진농업국 어느 나라도 이를 수용하고 있지 않으며 농업을 포기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선진농업국의 경우,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업을 지원하고 보호하지 이를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우선, 개방농정을 철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식량주권을 확립하고 식량자급률을 높여내야 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 또 하나는 농가소득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이다. 정부가 식량안보차원에서 농업을 육성하고 발전시켜는 계획이 없다면 국민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민들도 농업을 단순히 상품경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농업은 바로 국가의 식량주권과 관련된 문제이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해야하는 문제다. 이런 이유로 농업을 도외시하고 포기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적인 항의가 있어야 한다. 농성단을 비롯한 향후 투쟁계획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정기국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때 우리가 요구하는 4대 입법과제를 중심으로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한․칠레 FTA와 농가부채해결, 복지법을 맞바꾸려는 정부의 의도를 막아내기 위해 국회압박투쟁을 진행하고 있고 지역에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국회의원 설득작업을 비롯한 군청, 지구당 항의방문 등과 12월 6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한․칠레 FTA 국회비준저지와 농가부채해결, 쌀수입 반대, WTO반대를 외치면서 시군 단위의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에게 연대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농업투쟁은 단순한 농민들의 투쟁을 뛰어넘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지배에 맞서는 투쟁이다. 농업개방을 통해 선진국들이 제 3세계 국가의 농업을 파괴하면서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고 있다. 결국 이는 식량종속을 낳게 되는데 이것은 다국적 기업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략을 대행하는 것인 WTO라는 기구다. 그래서 현재 농민투쟁은 식량주권을 지키고 우리 농업을 살리는 투쟁이면서 신자유주의적 흐름들을 차단하는 투쟁이다. 그리고 농민들의 생존권투쟁일 뿐만 아니라 민정농업 사수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는 투쟁이다. 이런 의미에서 농민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농 정책위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PSSP
카드사 부실채권 처리방안에 부쳐 공익광고협의회의 존재 말소 선고 풍경 TV를 켰다. 멀끔하게 생긴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린 듯 싶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다." "2차도 내가 쏠게." "우와, 괜찮겠어?" '하하하,'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괜찮아."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발이 정체불명의 하얀 액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둘 다 계산해 주세요." 다음 장면에서 그는 또다시 카드를 꺼내 든다. 아마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나 보다. 그는 다시 한 번 '괜찮다'는 말을 되뇌지만, 그의 발은 전보다 더 깊이 수렁에 빠져들어 간다. 그는 아직 그 흔한 자가용 한 대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자가용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이 60%를 넘는 상황에서 자가용은 이제 이동의 편리함 뿐 아니라 자신의 누추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도 구매할 필요가 있는 상품인데. “남들 눈치가 있지…” 아내의 불만도 이해가 된다. ‘그래, 좋다. 다시 한번 카드로.’ 끈적거리는 액체는 이제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차 오른다. 찢겨진 지갑.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지갑은 비어 있고 어느새 목까지 차 오른 하얀 액체가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을 인식하고는 그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게 뭐야? 여보, 여보.” 그의 부인은 벌써 익사했는지 대답이 없다. 대신 한국방송공사 공익광고협의회의 음산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전해온다.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 무서운 세상이다. 셰익스피어에 의해 여러 세대에 걸쳐 두고두고 욕을 먹는 희대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도 꿔간 돈 안 갚은 사람의 살점 몇 근을 떼어낼 뿐이었는데, 요즘 세상에는 백주 대낮 공영방송에서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인간존재 말소의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죽을래, 갚을래? 일찍이 근대인의 존재 조건을 평생에 걸쳐 되물었던 수많은 철학자들조차 한국방송공사 공익광고협의회의 철학적 공갈에 기겁할 일이다. 2003년 9월, 한국방송공사의 존재론에 따르면, 335만 명의 사람들이 신용불량의 이유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림형제의 원작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귀할멈의 집으로 유인된 아이들이 사라져가듯, 경제활동인구 7명 중 1명이 신용카드 시장에서 ‘실종’되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들 신용불량자들의 고통이 곧바로 전이되는 가족 구성원까지 고려한다면 존재 말소의 위기에 처한 인구는 최소 600만 명에서 최대 1천만 명에 이를 것이다. 그들은 진정 사라졌던가 2003년 9월 29일,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국회 정무위에서 정부의 연체율 10%기준 적기시정 조치가 어떻게 은행들의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지를 보여 연체율에 상관없는 현금대출활동의 자유를 옹호하려다 금융자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의된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우를 범했다. ‘신용이 사라진 이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엄씨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카드는 지난해 9월,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모씨에게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46만원과 350만원을 현금서비스로 대출해 주었다. 수감 중인 김씨가 교도소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혹은 두부나 사먹으려고 담 넘어와 대출 받고 들어간 게 아니라, 우리카드가 본의의 동의 없이 임의로 대출을 한 것이다. 더욱이 우리카드는 지난 해 10월 사망했음을 확인한 김모씨에게도 두 달 후 3백 만원의 돈을 대환대출 해주었다. 그 결과 2003년 9월, 사망한 지 1년이 된 前부산남구문현동의 김모씨는 염라대왕 앞에서 총 633만 5원의 채무내용을 신고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신용은 소진됐지만, 죽음조차도 채무의 부담과 실존의 고민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과중한 부채부담을 더 이상 짊어지지 못해 커다란 몸집의 사내에게 끌려간 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들은 단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이미 떠난 사람들은 이곳의 광고를 듣지 못한다. 이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는 현실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사라지지 마라, 사라지지 마라’라는 주술이다. 광고는 살아남은 자들이 품는 ‘상실(喪失)’의 공포를 자극하여 이들을 더욱 강하게 얽어매려는, 문턱의 끝자락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부과되는 높은 수준의 연체이자율을 정당화하려는 거짓 선전임이 밝혀졌다. 연체의 지하감옥에서 성으로 끌려간 이들은 따뜻한 물과 향유로 씻겨졌고, 깨끗한 새 옷을 지급받았다. 이를 위해 사용된 한 가지 기법이 ‘대환대출’이었다. 대환대출은 원칙상 추가적인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연체자로 하여금 현금서비스를 받게 하여 장부상에서 연체대금을 신규대출로 바꾸는 것으로, 대외적으로는 상환기간 연장과 분할상환을 통해 신용불량자의 회생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도입되었다. 대환대출 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연체율 수치를 낮추기 위해 선택된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카드사도 운용자금의 전부를 자기자본으로 충당할 순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와야 한다. 이를 위해 카드사들은 회사채(카드채)와, 기업어음(CP), 자산담보부증권(ABS) 등을 발행한 후, 이를 투신사와 은행, 보험회사 및 증권회사 등에게 매도함으로써 필요한 돈을 획득한다. 계약에 따라 만기일에는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지만 카드사의 신용에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만기일을 경신함으로써 실제적인 지불을 피할 때도 많다. 2002년 말 우리나라의 9개 전업카드사가 발행한 카드채의 규모는 대략 89조원으로, 그 중 카드채가 30조, CP가 20조, ABS가 28조를 차지하고 있었다. 카드사들이 신용평점을 기준으로 고객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드사들의 채권자들도 카드사의 신용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마련한다. 카드사의 신용상태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준이 자산구성의 건전함이다. 이는 부채가 어느 정도냐, (위험 가중)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어느 정도이냐를 뜻한다. 그리고 자산구성이 건전하다는 것은 자산운용의 원천으로 부채보다 자기자본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므로 만약의 사태 시 카드사가 돈을 떼먹을 확률이 적다는 것을 말한다. 2002년 중반 3.8%에 불과했던 카드연체율은 2003년 들어 8%, 9%, 1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카드사들이 연체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연체채권의 증가가 자산구성을 부실하게 만들어 채권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관행상 보통 6개월 이상 연체채권은 회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장부에서 손실처리되기 때문에 연체율의 증가는 직접적인 손실 뿐 아니라 당기 순이익의 감소를 야기했다. 당기 순이익이 감소한다는 건 운용 가능한 자기자금이 줄어준다는 것이므로, 이 또한 카드사 채권자들의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채권자들의 우려가 증대될수록 조달금리는 상승된다. 혹 채권자들이 “못 믿겠다, 내 돈 내놔라”라며 몰려들지 모를 일이다. 당장 4월과 6월 사이에 만기가 도래하는 투신권 보유 카드채만 해도 10조 4천억 원 수준이었다. 압박이 카드사의 숨통을 조여 왔다. 게다가 정부가 예고한 대로 6월말 연체율이 10%를 넘어, 적기 시정조치를 받게 되고 채권자들의 우려가 마지노선을 넘어설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달을 수 있었다. ‘당신’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신용을 잃은 카드사 자신의 존재가 말소될 위험이 있었다. 어떻게든 연체율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 방법이 있나? 저이들도 소득이 없어 그러는 것을. ‘사라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오히려 제발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기운 좀 차려보라고, 숨을 몰아쉬는 환자 앞에서 엎드려 빌어야 할 판이었다. 신용이 계급이고 관계인데, 그들이 사라지면 나는 어떡하라고? 이런 상황에서 대환대출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연체자들을 새 단장만 시킴으로써 위기를 탈출할 수 있게 할 묘약처럼 보였다. 임종에 임박한 노쇠한 환자에게 백일잔치용 꼬까옷을 입힌 후 잔치를 벌여라! 이별이 곧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고 삶은 윤회하므로 사망신고서 대신 출생 신고서를 작성하라! 카드사들은 재빨리 연체채권을 대환대출로 변경해 생존의 위기를 넘기고자 시도하였다. 수많은 연체자들이 신규고객으로 거듭 태어났고, 2002년 9월말 4조 7천억 수준이던 대환대출 규모가 올해 3월말에는 10조 6천억, 6월말에는 13조 6천억, 7월말에는 14조 7천억 원 수준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금감원). 연체율 증가세가 둔화되었고, 6월말, 모든 카드사들이 연체율 기준 적기시정조치를 피할 수 있었다. 대환대출은 현금대출 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독당국의 규제도 피할 수 있었다. 카드사와 금융당국의 요란법석에 환자들이 임종 와중 잠시 눈을 떴다. 꼬까옷에 금반지 끼고 백일잔치에 나선 이 노쇠한 신생아는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는 대신 힘들게 숨을 몰아쉬더니 “밥은 없수? 하다 못해 국수 한 그릇이라도”라고 묻는다. 하지만 잔치음식은 준비된 게 없다. 출생신고용 사진촬영을 마친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산소마스크를 썼다. 깨어난 현실은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경제는 여전히 침체를 거듭하는 가운데 소득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규대출에 대해서도 여전히 22-24%의 고금리가 부과되었다 (민주노동당). 아니, 연체금을 대환대출로 전환할 시에는 기존의 원금과 이자를 합한 원리금 모두가 원금으로 발행되기 때문에 조건은 오히려 전보다 안 좋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즉 연리 24%에 현금서비스로 100만원을 대출받은 후 1년을 연체하면 원리금이 133만원 정도가 되는데, 이를 대환대출로 전환하면 100만원에 대한 이자가 아니라 130만원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체 전 현금서비스를 이용할 때와 달리 대환대출 시에는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대환대출을 위한 가족 간 보증으로 파산이 가족전체로 확산되는 수가 급속히 늘었다. 신용불량자가 한 보증을 어떻게 신용할 수 있겠냐만 카드사들은 가족 간 보증에 난색을 표하는 연체자들에게 상호간 맞보증을 서게 했고,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남의 빚마저 떠 않게 되는 사례들도 적잖이 발생했다. 대환대출은 결국 개인채무자의 단기적 부담을 장기적 부담으로 전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악성부채만 키울 뿐이었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자금의 회수기간이 길어져 자산항목(대출)과 부채항목(카드채)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 만기불일치의 문제와, 그로 인한, 유동성 부족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작년 말 24.7%이던 카드사의 대환대출 연체율은 올 상반기 카드사들이 대환대출 규모를 크게 늘리면서 일시적으로 10%대까지 떨어졌지만, 6월에는 다시 26.7%까지 치솟았다. 일부 카드사의 경우 대환대출 연체율이 8월말에는 무려 53.2%에 이르렀다. (머니투데이 10월 23자). 대환대출이 연체될 경우 보증인으로 나섰던 최소 2명 이상이 동시에 부실로 빠져들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은 이상의 수치 갑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아사(餓死) 직전의 남의 언 발에 오줌을 누려 했던 카드사들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났다. 개인파산제도와 신용회복제도 2003년 10월 19일 금융감독원은 적기시정조치에서 연체율 10%기준 조항을 제외시켰다.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바, 기존의 1개월 이상 연체채권 비율에 대한 규제는 아무런 실효가 없기 때문이다. 대환대출 연체율까지 포함한 실질 연체율이 중요했다. 카드사들이 대환대출 규모를 급속히 늘린 이후 1개월 이상 연체채권 비율의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카드사 실질 연체율은 지난 1월말 13.7%에서 8월말 27.3%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무언가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수많은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관계부처 회의도 계속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몇 가지 안들이 제출되기 시작했다. 파산해서 죽어도 못 갚겠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안락사를 허용하자, 사라지게 내버려두자! <개인파산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카드사의 입장에서는 일어나 기운만 차리면 자기 빚부터 갚아 줄 거 같은 이들의 산소마스크를 뗄 수 없었다. 돈도, 소득기반도 없이 누워있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는 대다수의 신용불량자도, 파산이 곧 사형집행을 의미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나 좀 제발 죽여달라고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前부산남구문현동의 김모씨의 경우처럼 육신이 땅에 묻혀도 채무부담이 지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죽음인 파산이 채무부담을 해소시켜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올 상반기 파산 선고자에 대한 서울지법의 면책비율은 54.3%이었지만 인천지법이나 춘천지법 등 5개 지법의 경우에는 면책비율이 0%를 기록했다. 여타의 다른 모든 사회적 삶은 부정당한 채 오직 카드 빚을 갚는 존재로 살아갈, 21세기 형 노예의 삶을 살게 될 확률이 절반도 넘었다. 특정 기간 내에 연체금을 상환하면 원리금의 일부를 감면해 주는 등 카드사들이 자체적으로 <신용구제 프로그램>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역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바닥에서 웅크리고 있는 물밑의 물고기들아, 원리금의 일정부분을 깎아주는 미끼를 던지니 이를 물어라!” 수십만 가구에 카드사의 우편물(DM)이 발송되었다. 이는 물고기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신발을 벗으며 잠깐을 고민한 물고기들은 이를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계속된 소득감소와 장기간의 과중 부채부담에 시달려온 자기들로서는 미끼를 물래야 물 수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섬에서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카드사의 입장에서야 자기 빚만 상환 받으면 그만인지라 이런 조치에 “혜택”이란 수식까지 붙이겠지만, 이를 물기 위해선 또다시 남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연체자, 신용불량자에게 이는 회복이 아니라 채권자만 바꾸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 대상도 대부분 채무관계가 자사에만 국한된 1,000만원 미만의 소액대출자로 국한되어 있었다. 해당자는 전체 신용불량자 335만 명의 24%, 81만 명에 불과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4-6월 2달 동안 자체신용불량자 5만 2천명을 대상으로 원리금 감면 40%, 분할상환기간 5년 등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신용불량자 구제에 나섰지만 지원자가 300명에 그쳐 (경향신문 10월 2일자) 엄청난 금액의 인건비와 우편 발송료만 날렸다. ‘별 다른 효과 없음’은 2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3억 원 미만의 금액을 빚진 231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회복지원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신용회복복지위원회는 최고 원리금의 33%까지 감면해준다고 선전하였으나 위원회가 생긴 작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신청자 수는 2만 9,417명, 그 중에서도 실제로 채무재조정을 받게 된 이는 1만 773명으로 전체 대비 0.47%에 불과했다. 지난 8월 발표된 <신용불량자 특성에 따른 3단계 회복방안>에서 정부는 채무상환 ‘의지’와 ‘능력’이 있는 자의 경우 조속한 신용회복을 돕겠다고 했다. 모든 경제활동을 제약 당하는 식물인간 상태의 신용불량자 중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의지’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신용이 불량하다는 것은 돈을 꿔 가고 안 갚는다는 것,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돈이 거짓말을 시키지 어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나. 신용은 곧 돈이고 계급이다. 문제는 ‘능력’이고, 노동자의 지불능력은 그의 임금수준일지니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른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실질임금을 하락을 유도하면서 노동자가 그 외에도 뭔가를 갖고 있기를 바라는 정부의 공상이 가히 가공할 지경이다. 부실채권 유동화 카드사 부실 문제가 시시각각 심각성을 더해가면서 제 2의 금융위기가 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언론들이 나서서 다투고 있던 지난 4월 말,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과 대학교수, 민간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위시한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신용카드산업과 회사채의 문제점>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재경부의 정책담당자는 카드채 시장의 불안과 관련,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표하면서도 “그러나 시장회복이 안될 경우의 대처방안에 대해선 현재까지 판단이 안 서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깊은 고심 속에 많은 논의가 오갔다. 그로부터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날의 많은 이야기 중 다음의 주장이 재경부 담당자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은 듯 보인다. “카드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용회복지원이 가능한 카드연체자는 개인워크아웃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부실 카드채는 신탁방식으로 자산유동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 세 개를 단 동네 양아치에게 100만원을 빚을 진 포장마차 주인이 구조조정과 실질소득감소라는 사건을 당해 의식불명의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가족들도 자리를 뜬 늦은 새벽, 포장마차 주인의 침대머리맡에는 수심에 잠긴 양아치가 서 있다. 100만원을 다 날리자니 너무 아깝다. 안 그래도 자기도 돈을 빌려쓴 지라 하루하루 독촉이 장난이 아니다. 뜬눈으로 밤을 샌 양아치가 다음날 아침 동네 큰손에게 전화를 건다. “형님, 괜찮은 물건 하나 나왔는데 보실라우?” 여관방에서 짬뽕을 먹고 있던 큰손이 시큰둥하게 되묻는다. “뭔데?” 양아치는 자기도 급전이 필요해, 아쉽지만, 100만 원짜리 채무각서를 단돈 9만원에 넘기겠다고 한다. ‘풋’ 귀가 번쩍 트이며 입에선 짬뽕면발이 튀어나온다. “그래? 살아날 확률은?” “의사말로는 반반이라던데요.”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양아치에게 전후 설명을 들은 큰손은 룸싸롱 주인과 나이트 클럽 사장 등 동네 형님들을 모셔놓고 얼마간 이자를 주겠다며 자금을 댈 것을 요청한다. 덧붙여 의사의 소견서를 보여주며 담보로 양아치에게 받은 100만 원짜리 각서를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동네 형님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투자인지라 선뜻 돈을 빌려준다. 이렇게 해서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포장마차 주인이 ‘괜찮은 물건’으로 둔갑하여 거래와 거래 사이를 오가며 자금을 유통시키고 이자를 낳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포장마차 주인의 침대 옆에는, 그가 눈을 뜰 경우 채무액 중 일부를 나눠 갖기로 약속된 또 다른 양아치 하나가 앉아서 목탁을 두드린다. “영감, 제발 눈 좀 떠보슈.” 옴마니밤메홈. 현재 부실채권 처리방안 중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고, 심지어 원리금의 50% 가량 감면해주는 혜택을 준다고 선전되고 있는 자산유동화 방식에 의한 부실채권처리의 로드맵도 형식적으로는 이상의 스토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림 2]는 자산유동화방식에 의한 부실채권처리방식을 정리해서 그려 본 것이다. 카드사는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6개월 이상 연체채권을 대손상각처리 후 부실채권 투자전문펀드에게 원리금의 9-12%에 해당하는 저가로 매각한다. 부실채권 투자펀드는 이를 담보로 자산담보부증권(ABS)를 발행해 채권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자산담보부증권 발행을 전문으로 하는 자산유동화 전문회사가 증권발행에 필요한 실제적인 업무를 대행하고, 산업은행이 부채상환을 보증함으로써 신용위험을 크게 낮춘다. 부실채권 투자펀드는 이렇게 매입한 연체채권들을 신용정보회사 등의 자산관리회사(채권추심기업)에 위탁해 채무재조정과 채권추심을 의뢰한다.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 본사를 둔 부실채권 투기전문 펀드로,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어 일반인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외로운 별’ 론스타(Lone Star)는 올해 상반기 삼성, 우리, 외한카드로부터 총 2조 6천억 원의 부실채권을 8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했다. 살로먼스미스바니(現 시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도 국민카드로부터 부실채권 7천 4백억 원 어치를 77%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했다. 이처럼 올해 상반기에만 외국계 부실채권 전문 투기펀드가 매입한 연체채권 규모는 대략 4조원에 달한다.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은 일본계 대금업자들이 매입자금을 제공했다. 한 편에선 국부가 유출된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자산유동화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켜 조금씩 트이기 시작한 카드사들의 숨통을 더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자산관리공사(KAMCO)가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자산관리공사는 지난 3월과 6월, 세 차례에 걸쳐 삼성, LG, 외환카드로부터 총 3조 1천억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하지만 아직도 물량은 넘쳐났다. 카드사들은 붙잡고 있으면 뭔가 돈이 될 거 같은데 자금사정상 연체채권들을 부득이하게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게 불만이었다. 2003년 10월, 산업은행과 LG 투자증권은 우리 손으로 부실채권 인수전담 특별목적회사(SPC)를 설립해 부실채권들을 모은 후 부실채권담보부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연체채권을 공동으로 추심하자는 <다중채무자 공동추심 프로그램>을 제안하였고, 10개 카드사들이 거기에 붙었다. 규모는 대상인원 80만명에 5조 2천억원 수준으로 확정되었다. 자산유동화 시장이 활성화되고 부실채권들이 쏟아져 나오자 채권추심회사(자산관리회사)들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지난 한해 동안 국내 신용정보회사 26개 사의 총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23.4%가 증가했다 (6천 4백억 원). 올해는 그 규모가 더욱 늘어 1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용정보업은 경기를 안타는 업종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물량은 많아지지만 회수율이 떨어지는 반면, 반대로 경기가 좋으면 물량이 줄지만 회수율은 높아진다 (한국경제신문 10월 3일자).” 양손에 연체채권들을 움켜쥐고 신용정보협의 전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외국계 금융자본들이 국내 신용정보업 시장으로 재빨리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한신용정보회사의 지분 49%가 론스타 펀드에 매각됐다. GE캐피털은 지난 7월, 서울보증보험, 삼성캐피탈 등과 함께, 채권추심업을 전문으로 하는 SG 신용정보회사의 설립을 금감원에 신고했다. 도이치 은행도 A&D신용정보의 지분 35%를 사들였다. 신용이 소진돼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전보다 더 분주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물로 때가 씻기고 온 몸에 향유를 바른 이 ‘괜찮은 물건’들이 각각의 계기마다 이자를 발생시키며 성의 거실로 모여든 금융자본들의 존재를 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준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한동안은 그저 죽지만 않고 버텨주면 된다. 오히려 일어나 촌스럽게 움직일 경우 고상한 연회를 망칠 수도 있다. 어차피 수익은 여기 모이신 이 신사분들이 사체(死體)가 일어나 걸을 수 있냐 없냐를 놓고 진지하게 내놓는 감정(鑑定)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신용회복. 신용구제. 갱생. 수식은 또다시 채무자를 향해 있지만 현실은 이 번에도 그와 전혀 무관하게 돌아간다. 100만원을 빚진 사람이 1년을 연체할 경우 원리금은 133만원. 이를 다시 원금으로 잡고 33%를 감액하더라도 채무자는 여전히 100만원을 빚지게 된다. 카드사는 빚을 제 때에 꼬박꼬박 상환하고 있는 나머지 고객들에게 자기 불안의 무게를 분담할 것을 요구하고, 연체채권을 매각해 추가적으로 손실의 일부를 충당한다. 부실채권 투자회사는 133만원의 연체채권을 13만원에 매입한 후 ABS를 발행한다. ABS를 매입함으로써 연체채권 매입자금을 제공한 이들은 높은 수준의 이자 수입을 챙긴다. 신용정보회사는 채권추심전 착수금으로 얼마를 받고 식물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염불이 통할 경우 후불로 얼마를 더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의 중간에 위치한 부실채권 투자회사는 100명의 채권자 중 20명만 눈을 떠도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해피엔딩? 자산유동화 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카드사 부실문제 처리방식은 97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경제 구조조정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였다. 이어 부실기업의 회사채를 유통시키기 위한 자산담보부증권 시장이 형성되었고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들(CRC, CRV)을 주축으로 한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이 모두는 기업의 매도조건을 개선함으로써 되팔 때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금융자본의 이해가 관철된 결과들이다. 개인 무담보 채권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유동화 시장의 활성화도 이상의 과정에서 늘어난 부실채권을 담보로 노동자 계급에게 남은 마지막 파이의 흔적까지 뜯어먹고자 하는, 회사채 자산유동화 시장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상시적 위기관리 시스템일 뿐이다. 신용관계가 계급관계인 상황에서 계급적 역학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의 소득기반이 보전되지 않는 한 신용회복도 갱생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이미 파국적인 상황이 한동안 더 이상 악화되지도 그렇다고 개선되지도 않은 채 지속될 뿐이다. PSSP
연기금대응팀에서 투쟁 자료집을 냈습니다. 자료집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기금 금융화 저지 투쟁 자료집 - 국민연금 개악, 기업연금 도입 반대 투쟁을 위하여 2003. 10. 2 보건복지민중연대 사회진보연대 순 서 용어해설 ------------------------------------------------------ 2 총론 - 신자유주의 연금개악을 막아내자 ----------- 5 1부 - 세계적 수준에서 진행되는 연금개혁 비판 - 8 2부 - 국민연금 개악의 문제점과 대응방향 ------- 16 3부 - 기업연금의 문제점과 대응방향 --------------- 33 4부 - 각 제도별 대응방향 ------------------------------
7.21 "우리는 왜 반WTO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가?" 워크샵에서 쓰였던 파워포인트 자료입니다. -WTO의 역사와 현재, -도하개발의제의 내용, -우리의 입장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육용 자료집,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각 단위에서 교육용 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연기금 대응팀이 7월 15일 진행한 워크샵 자료입니다. 총 5부로 되어있습니다. 자료 내용 총론 - 신자유주의 연금개악을 막아내자! 1부 - 세계적 수준에서의 연금개혁 비판 2부 - 기업연금 도입을 저지하자 3부 - 국민연금 개악안 비판 4부 - 향후 대응방향 아직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어제의 워크샵에서 전체적인 통일성이 좀 더 높아져야 하고, 연금개혁에 대한 비판이 좀 더 명확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보완할 계획입니다. 일단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경제자유구역법 시행이 이제 한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난 5월 19일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으며, 청와대 국정 과제 토론회 등을 거쳐 예정대로 7월 1일부터 경제자유구역법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만약 이대로 경제자유구역이 시행될 경우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어떤 해악을 가져올 지, 근본적으로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지적된 바 있다.(편집자주-월간 사회진보연대 4월호 정세초점) 특히 이번에 입법 예고된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안은 경제자유구역법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행령안이 정하고 있는 국제공항, 항만의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우선 지정 대상 지역으로 되어 있는 인천, 부산, 광양뿐 만 아니라 마산, 울산, 군산·장항, 평택 등도 대상 지역이 될 수 있다. 또한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대상의 확대, 단체행동권 제약, 장애인·고령자 의무 고용기피 등 경제자유구역법안에 명시된 노동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조항을 수정할 만한 어떤 내용도 시행령안에 담겨져 있지 않다. 이런 점을 살펴볼 때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을 강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중진영과 시민 사회단체의 끈질긴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경제자유구역을 폐기하거나 혹은 법 시행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과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투쟁현황과 계획 작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반대 투쟁 이후 현재까지 경제자유구역 반대 투쟁은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부산, 경기 지역 등에서는 올해 초 지역 범대위가 구성되고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투쟁은 전국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활발하지도 못했다. 또한 7월 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에 다시 구성된 경제자유구역 폐기 범대위와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계기로 투쟁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 지역에 한정되어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었지만 경제자유구역 폐기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려 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될 투쟁의 계획을 대강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기간 투쟁 평가와 이후 투쟁 방향 ○ 경제자유구역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법 제정이 됐고, 시행령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 폐기를 내놓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이라는 총체적인 전망하에서 채택된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도입의 마지막 수순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을 막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끈질기게 벌여왔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성과를 일정하게 확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생리휴가·주휴 무급화, 월차 휴가 폐지 등 주 5일 근무제의 쟁점과 맞물려 있고,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의료 및 교육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이후 WTO에 맞선 투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목표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로 맞춰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관점을 명확히 하자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관점이 있다. 첫번째, 경제자유구역은 현정부가 외자유치를 통해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외자유치는 궁극적으로 한국 민중의 삶을 피폐화 할 것이며, 초국적 자본과 미국 등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전세계 경제에서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외자유치는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 동안 외자 유치가 일국 내에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제약하고 봉쇄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외자유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자유구역법의 시행의 효과가 마치 특정한 지역을 한정하여 시행했기 때문에 외자유치의 효과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는 식의 비판이 가능한데,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두번째, 경제자유구역이 국내 기업에 비해 외국 기업에 지나친 특혜를 주어 역차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의 역공에 매우 취약하다. 이런 지적은 기본적으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협력 대상으로 국내 자본을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 또한, 기업 주식의 10%이상만 가지면 외국기업으로 인정되는 현행 법 체계 아래에서, 역차별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 기업도 주식의 10%를 외국인에게 매각한 후 경제자유구역 안에 들어와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반박에 무력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행 법 제도에서 국내 기업 역시 외국인 기업과 똑같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각종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 전국적 투쟁, 노동계급의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 그 동안의 투쟁은 앞서 지적했듯이 전국적이지도 못했고, 경제자유구역과 관련 있는 분야의 대중들과 함께 하는 투쟁이 되지도 못했다. 이는, 경제자유구역 우선 지정 대상지역을 제외하고는 투쟁의 필요성이 분명히 인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쟁의 내용이 광범위하여 오히려 투쟁에 나설 대중적 주체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국적 투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될 시기라는 사실이 모든 운동진영 사이에 동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을 전국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주노총이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요구안 중 하나로 결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또한, 「WTO교육개방·시장화 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 교육구조개혁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발족하고 이를 통한 교육부문에서의 경제자유구역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경제자유구역법폐기 및 의료시장개방 저지 공동대책위」가 발족하면서 보건의료 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가능해졌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이다. ○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투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앞서 밝힌 대로 민주노총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올해 투쟁의 3대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노동자 대중들에게 주5일 근무제나 임단협 문제처럼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인식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것인지를 대중적으로 선전·선동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다른 투쟁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는 문제이다. 이를 통해서 전국적 투쟁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이번에 제시한 3대 요구사항 중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사회적 논의가 수없이 되어 왔던 사안이고 노동자 계급의 전국적 투쟁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에 비해 수월한 사안이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의 문제를 주5일 근무제나 비정규직 문제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 투쟁이 노동조건의 후퇴가 없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진행되더라도 만약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현재까지 정부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생리휴가·주휴일 무급화, 월차휴가 축소 등의 문제는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된다면 노동 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 쟁취 투쟁은 이미 상당부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이 시행되어 파견허용업무와 허용기간이 확대된다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곧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 비정규직 문제 등의 투쟁은 경제자유구역에 의해 더욱 영향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이유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주 5일 근무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경제자유구역이 도입될 경우 영향을 받게 될 교육, 의료 분야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현재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러한 각각의 투쟁이 잘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투쟁이 조율되고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7월 법 시행 이전에 각 단위의 투쟁이 집중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육·의료 분야에 대한 문제제기는 민중들이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의료 분야에 있어서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끊임없는 반대투쟁은 계속해서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넷째, 이후 투쟁의 흐름 속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의 위상과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리잡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 특히 이후 계속될 자유무역협정과 WTO반대 투쟁 그리고 현재 계획하고 있는 11월 민중총궐기 투쟁,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낼 신자유주의 폐기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매우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 지역별 대응이 중요하다. 경제자유구역 폐기 투쟁은 명백히 전국적 사안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각 지역별로 쟁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차원에서의 독자적인 대응논리 개발과 투쟁이 필요하다. 지역적 투쟁과 전국적 투쟁은 상호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자유구역법을 폐기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앙에서는 총론적 투쟁을 통해 다른 투쟁과의 관계 설정을 적절히 해주면서 전체 일정을 진행시키되, 지역에서는 지역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타격지점을 세밀화 하여 투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천의 경우 송도신도시 개발과 관련하여 게일사와 인천시가 맺은 계약 내용이 공개 되지 않은 것 등이 현안이 될 수 있는데, 이렇듯 경제자유구역이 '대세'라고 인식되는 현재 지역의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 등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적 투쟁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및 지정 반대 투쟁)이 자칫 각 지역에서 자기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논리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 배척 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현재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관련하여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며, 지자체에 대한 공세적 문제제기를 통해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투쟁의 주체들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마치며 경제 자유구역을 둘러싸고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은 정부의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 경제자유구역 등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민중운동진영의 대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이점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경제자유구역 투쟁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 마련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없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제자유구역 말고 다른 정책이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다.'는 식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경제자유구역, 동북아 중심 국가 등에 대해서 한정해서만 말하자면, 위와 같은 논리보다는 예를 들어, 동북아 지역 민중이 공동으로 생산된 가치를 향유할 근본적 방안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경제중심국가나 또는 다른 발전 전략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한국경제만이 발전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주변의 다른 나라 민중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식의 결론은 운동가라면 피해야 할 내용이다. 세계 경제 체제 안에서 동북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있고, 동북아 지역에 일정한 물동량 유입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다면,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가나 혹은 '허브'로서 기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배타적인 경제적 지위를 차지할 것을 노리지 말고, 동북아 민중이 공동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공동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쪽으로 고민을 돌려야 한다. 서로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세금 감면 등으로 출혈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들어오는 물류, 금융 등에 대한 공동의 통제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근본적으로는 동북아 민중이 생산하는 가치를 공동으로 향유할 방안, 그 속에서 적절한 역할 분담 정도는 용인하는 그런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SSP
신용카드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정체의 과정 2000년에서 2002년까지 삼 년 동안 신용카드사들은 매년 수 조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신용카드사들이 이처럼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장규모의 급속한 팽창이 있었다. 업계평균 20.5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율도 한 몫을 했다. 신용제공과 고금리 상환의 순환이 이제 막 가동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는 채무자들이 금리를 지급할 여력이 있었다. 그런데 2002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높은 수수료율이 이번에는 시장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기 시작했다. 시장의 급속한 팽창은 카드사간 영업경쟁을 심화시켰고 과다한 출혈경쟁은 신용카드사의 수익구조를 크게 위협했던 것이다. 신용카드 시장의 팽창은 수많은 사람들을 신용의 사슬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차입과 고금리 상환의 악순환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금리는 점점 더 불어갔다. 그 결과 경제전체적으로 민간부채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2002년 말 가계 당 신용잔액은 2,915만원 수준으로까지 늘어났고, 이러한 부채규모는 GDP 대비 70퍼센트에 달하는 것이었다. 신용불량자의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연체율은 1개월 이상 연체를 기준으로 2001년 말 3.8퍼센트에서 2002년 말에는 8.8 퍼센트로 급증했다. 카드사들은 언제까지고 얌전히 금리를 상납할 줄 알았던 이들이 너무나 불량스럽게도 신용사회의 신용을 어기며 채무의 불이행을 선언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2002년 5월 정부는 신용카드사 종합대책을 통해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비중을 50퍼센트로 제한했고 카드 수수료율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연체율을 낮춰 카드사의 동반부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기대와는 완전히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돌려막기식 까드깡에 매달려 왔던 이들은 현금대출 서비스 비중이 제한되자 거짓신용의 끈을 놓치고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카드 수수료율의 인하도 그들의 경영상태만 급속히 악화시켰다. 2003년 1월 연체율은 11.2퍼센트까지 치솟았다. 같은 달 9개 주요 신용카드사들은 4천 1백억 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카드사들의 주식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카드사들의 주인들은 이제 카드사들의 신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SK 회계부정 사건으로 채권시장의 분위기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카드사들은 이전시기 자금조달과정에서 막대한 분량의 카드채를 발행했었고(2003년 3월 20일을 기준으로 총 89조원), 그 중의 상당수는 투신사의 단기금융펀드(MMF)에 편입되어 있었다 (25.5조원). 투신사들이 카드사의 신용을 믿지 못하고 채권회수에 나설 경우 카드업계의 붕괴를 넘어 금융산업 전반이 무너질 위험이 존재했다. 지난 3월 17일, 4월 3일 두 번의 금융정책협의회를 거쳐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다시 나섰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 조치가 카드사들을 규제하고 경쟁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조치는 위기에 처한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사색이 짙어 가는 카드사들을 구원하기 위해 5조 원 가량의 브리지론을 긴급 수혈해 4월과 6월 사이에 만기가 도래하는 투신권 보유 카드 채 10.4조 원 중 50퍼센트 가량을 즉각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나머지 50퍼센트에 대해서는 투신사더러 만기를 연장하라고 요구했다. 카드사들의 재활을 위한 방안으론 현금대출 서비스의 제한시한을 1년 더 연장했고 카드 수수료율을 다시 카드사들의 자율에 맡겼으며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평균 3-5퍼센트 인상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은행연합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에도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수는 11퍼센트가 증가했다. 카드사들의 주가는 여전히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3월 26일 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신용카드사들의 부실문제는 여전히 남한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금융규율에 의한 가계대출로의 중심이동 국내에서 신용카드가 처음 선보인 때는 신세계 백화점과 미도파 백화점, 롯데 백화점 등의 유통업체들이 고정고객의 확보와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자체 카드를 발행한 지난 1969년이었다. 그 후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신용카드와 코리안 익스프레스 등의 본격적인 신용카드 회사들이 출현했고 1980년대 초에는 은행들이 카드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LG와 삼성이 카드업에 진출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까지도 신용카드 시장의 성장규모는 극히 미미한 것이다. 그러던 신용카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가 된 것은 1999년 이후 제출된 정부의 신용카드시장 규제완화․활성화 조치방안이었다. 97년의 위기 이후 정부가 신용카드 시장을 활성화한 이유로는 우선 세수확충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신용카드의 사용을 활성화해 법인과 자영업자들의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합리적인 과세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실제로 재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의 활성화 덕분에 2001년 한 해 동안 약 3조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었다). 더욱이 카드를 이용한 물품결제의 활성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융자본이 실물부문에게 요구하는 기업회계처리의 투명성도 높일 것으로 보였다. 덧붙여 그 당시 OECD 등이 한국정부에게 내수 진작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한 한 방안으로도 카드사용의 활성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9월과 2000년 9월 두 번에 걸쳐 정부는 이러한 정책목표를 담은 신용카드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상의 이유만으로 신용카드 시장의 급속한 팽창 원인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명은 대체로 소비와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신용시장도 함께 팽창했다는 결론으로 끝나게 되는데 근래에 신용시장의 급속한 팽창을 이끌었던 것은 그것이 가지는 지급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현금서비스 기능, 즉 열악한 처지에 처한 사람을 대상으로 현대판 샤일록들이 벌이는 고리대 놀음이었기 때문이다. 현금서비스 이용금액은 2000년 200퍼센트, 2001년 84퍼센트, 2002년 33퍼센트를 기록하면서 신용카드 이용내역 중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나타냈다. 전체 신용카드 이용금액 중 현금서비스 이용금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8년 51퍼센트에서 2002년 58퍼센트 수준으로 증가했다. 현금서비스는 가계대출의 한 형태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남한 사회에 새로운 금융규율이 자리 잡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새로운 금융규율은 기업들로 하여금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고, 이는 그들의 자금조달방식을 은행대출 등의 외부자금(대출금은 기업의 장부에서 부채항목에 기재된다) 위주에서 주식발행을 통한 내부자금(주식은 장부상 자기자본항목에 기재된다) 위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금융규율은 금융기관들에도 적용됐다. 그에 따라 금융기관도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위해 100퍼센트의 위험가중치가 부여되는 기업대출보다 아무런 위험가중치가 부과되지 않는 가계대출을 선호하게 되었다. 더욱이 초기의 구조조정 과정이 기업매각과 인수․합병을 통해 실물부문의 과잉자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가계대출은 수익성 차원에서도 더욱 안정적인 투자처였다. 여기에 자산담보부증권(ABS) 등 자산유동화시장의 성장도 신용카드 시장의 급속한 팽창을 도왔다. 카드사들은 이제 자기 수중의 내부자금 뿐 아니라 기존에 발행된 대출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추가대출을 위한 자금을 외부로부터 손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대출이 채권을 낳고 채권이 다시 대출을 낳는 신용팽창의 흐름이 채권시장의 활성화로 물꼬를 튼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소매금융 수요증대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 이후 신용카드 시장의 수요측면에서 발생한 구조적 변화이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노동조건을 크게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대규모의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노동자들은 생계수준의 저하를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소매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주도의 금융산업 구조조정과정을 통해 중소규모의 자금대출을 주 업무로 삼았던 기존의 지방은행들과 일반시중은행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되었고,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담당 은행들도 거의 절반 정도가 퇴출되거나 활동 폭이 크게 위축되었다. 다소나마 공적인 통제를 받았던 소매금융기관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와 사금융이 대신했다. 그 손길이 이끄는 길이 구원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조차 힘들었던 실업자들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투기열풍, 그리고 거기에 편승함으로써 나의 미래가 오늘과 같진 않을 거라는 절망적인 도취도 신용카드를 이용한 현금대출의 부담을 크게 마비시켰다. 로버트 매닝이 그의 저서 『신용카드 제국』에서 미국 신용카드 시장의 성장과정을 분석하면서 말했듯이, 신용카드산업은 억압적인 노동시스템과 사회적 소비관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지탱하는 불안정한 장치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신용카드사들이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의 영업범위를 구조조정으로 실직자로 몰린 노동자, 대학생, 은퇴한 노인 등의 저소득층과 심지어 파산한 개인들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로버트 폴린(R. Pollin)은 사람들이 차입을 하는 이유가 소득계층에 따라 상이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소득순위 하위 40퍼센트의 사람들은 소득의 정체 또는 하락에 따른 소비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절박한 차입(또는 벌충하기 위한 차입)”을 하는 반면, 상위 20퍼센트의 사람들은 투자 및 투기 또는 부의 과시를 위해 차입을 한다. 버쏘우드와 켐슨(Berthoud & Kempson)은 영국 신용시장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가계 예산에서 신용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가난한 가계들은 대체로 금융적 곤경을 완화하기 위해 신용을 이용한다. 좀더 살 만한 계층은 자신들의 소비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용을 끌어다 쓴다. 양쪽 다 그들 몫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신용을 쓰는 것이다. 한쪽은 가난을 경감시키기 위해, 다른 한쪽은 그들의 번영을 증대시키기 위해 신용을 사용한다.” 신용이용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신용카드사들은 각각의 고객층을 달리 대했다. 그들은 수수료율이 매우 낮고 여타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발급해 우수고객유치에 주력하는 한편,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 부으며 이들 극소수 자산가 계급의 생활방식과 소비패턴을 선전하여 경제구조조정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더욱더 불안정해져 가는 중산층들의 소비심리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끝으로 신용카드사들은 노동조건이 불안정화로 차입이 절박한 이들에게는 과중한 채무의 짐을 떠 안겼다. 2003년 현재 현금서비스 수수료는 최저 11.9퍼센트부터 최고 23.6퍼센트에 이르는 등 그 폭이 매우 넓다. 더욱이 각 신용카드 사업자의 기간별 카드금리 조정 내역을 살펴보면 카드수수료율의 최저치는 그나마 시장금리의 변동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임에 반해 절박한 차입자들에게 부과되는 카드수수료율의 최고치는 거의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요컨대 소득별로 신용카드 서비스 이용부담은 비대칭적이었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지급한 고금리를 통해 부유한 금융자산가들이 더욱더 많은 부를 자신의 수중에 집중시켜갔다. 카드로 카드를 막는 빚놀이가 전개되고 카드사들이 이를 통해 영업을 확장해 나간 결과, 더그 헨우드의 표현처럼, 부채는 밑으로 가라앉았고 부는 위로 올라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03년 보고서에 의하면 OECD의 기준에 따라 소득계층을 중간 값의 150퍼센트 이상을 상류층, 50퍼센트 이하를 빈곤층, 그 중간에 위치한 이들을 중산층으로 분류할 때 1997년 남한사회에서 상류층과 중산층, 빈곤층은 각각 21.8퍼센트, 68.5퍼센트, 9.7퍼센트를 차지했다. 2001년 상류층은 22.7퍼센트로 1997년에 비해 0.9퍼센트 정도가 증가한 반면, 중산층은 65.3퍼센트로 3.2퍼센트가 감소했고, 빈곤층은 12.0퍼센트로 2.3퍼센트가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중간층 중 상류층으로 흡수된 이들은 극히 드문 반면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경제전체에서 대다수 국민은 순채무자에 속하는 반면, 순채권자의 비율은 매우 작은 수치에 불과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부가 위로 올라갔고 밑에는 이제 지독한 부채만이 남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축적방식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부를 끌어올려 집중시키는 두레박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물에 물이 마르면 더 이상 올라올 수 있는 것도 없고 밑에 남은 이들이나 위에 있는 이들이나 연쇄적인 갈증에 허덕이는 파국만이 전개될 뿐이다.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파괴는 파국만을 부를 뿐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런 가치를 생산할 수 없는 금융자본이 실물부문에 기생(寄生)해 살아가고 따라서 그의 사활이 실물부문에 긴박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정세를 막론한 진실이지만, 금융자본의 구체적인 활동방식과 한계의 실내용은 정세에 따라 변화한다. 실물부문에 투자자금을 댈 때 그들은 이윤의 크기가 커질 거라 믿으며 그 중 일부를 분배받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기존의 실물부문에서 이윤창출의 전망이 난망할 경우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르며 이윤이 실현되기만을 느긋이 기다리기보다는 기생의 대상을 재빠르게 변경하면서 부유(浮游)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내일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특히 실물부문에서 파이(pie)의 성장이 정체될 경우 그들은 크기가 정해진 크기의 파이 중 좀더 많은 몫을 자신의 수준에 ‘집중’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파생상품의 거래와 각국의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 주식시장의 부양을 통한 막대한 자본이득의 수취.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경제의 구조조정을 통한 실물부문 과잉자본의 파괴가 수반된다. 이상의 이야기는 금융자유화와 금융세계화를 전후한 금융자본의 일반적인 활동방식에 대한 서술이다. 그런데 97년의 위기 이후 경제의 구조조정이 빠르게 전개되고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 불안정해지면서 금융자유화 시대 금융자본 활동방식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가계부채의 누적, 그리고 거기서 주어지는 이자를 통해 금융자본이, 비단 과잉 누적된 실물자본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파괴하면서 금융적 부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의 이러한 전략은 미래 이윤의 일부를 얻기 위해 생산을 증대시키는 노정에 참여하는 것도,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고 크기가 고정되어 버린 총 자본 내의 파이 중 좀더 많은 몫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한 노력도 아니다. 이는 소매금융이라는 촉수를 통해 이전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지급된 노동의 생산물을 사후적으로 환수하려는 금융적 집중의 파국적 형태일 뿐이다. 이는 실질임금의 하락과 노동의 불안정화가 계속됨으로써 노동계급이 기본적인 생계유지의 상당부분을 소매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생산과정에서의 착취를 넘어 재생산과정에서도 그들 소득의 일부를 이자의 형태로 수탈하려는 이중의 착취전략이다. 이자지급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부의 상향 재분배는 노동자들을 더욱더 헤어 나오기 힘든 채무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그리고 늪에 빠져 가는 그들로부터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뽑아내려고 촉수를 빼내지 않는 금융자본의 탐욕스런 기생성은 금융자본 그들 또한 연쇄부실의 늪으로 함께 몰아넣고 있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