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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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뉴딜' 정책과 연기금 활용 구상의 문제점
정지영(정책부장)
한 때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을 정도로 격했던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 순간 슬며시 잦아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11월 초, 정부가 발표한 '경기활성화를 위한 종합투자계획(일명 한국형 뉴딜)'이 그 발단이다. 한국형 뉴딜은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경제 성장률 하락에 직면해 정부가 카드로 꺼내든 정책이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인데, 그 재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이 언급되었다. 한국형 뉴딜 정책이 발표되자,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정책이 과연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크지 않은가, 연금기금을 동원하는 것이 연금의 재정안정화에 도움이 되는가 등의 문제들이다. 이 글에서는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 정책이 정부가 추진해 온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는 어떤 연관을 가지는가를 주되게 밝히고자 한다.
한국형 뉴딜, 대안 없는 정부의 고육지책
한국형 뉴딜이라는 경기활성화 정책이 발표된 배경은 당연히도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어려움이다. 지표상으로 봤을 때도, 각종 경제연구소들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 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률을 5%대 이하로 잡고 있다. 물론 체감되는 경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만 했다. 즉, 정부가 재정 부실화의 가능성과 연금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정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카드는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실효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는 몇몇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IMF 구조조정 이래로 일관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인 노동의 유연화는 심각한 빈곤의 문제를 낳으면서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개방정책은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다. 따라서 정부가 내놓는 몇몇 경기부양책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당연히도 실효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한국형 뉴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이런 정책을 내놓으면서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현재의 위기를 정책상의 문제로 환원하면서, 좀 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좀 더 유연화 된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좀 더 예산을 풀면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식의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문제의 핵심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두고 말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의 기막힘
국민연금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먼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효성도 의심되고 자신들의 위기를 가리기 위한 정책을 위해 국민연금의 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뻔뻔스러움을 지적해야겠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추진해온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과 연계를 시켜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정부는 그 동안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과 수익성을 문제 삼으면서,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는 삭감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야 어떻게 되던,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현재의 빈곤함에 국민연금 보험료가 더욱 부담스럽던 간에 무조건 기금을 쌓아둬야 한다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해결이 불가능한 위기를 떠받치기 위해 연금을 끌어다 쓰겠다는 발상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명확해지는 것 하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사고하는 시각이라는 것이 국민들이 노후를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주식, 부동산 등 어디든 필요한 곳에 끌어 쓸 수 있는 눈 먼 돈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 건전한 투자?
국민연금 기금을 사회간접자본의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식시장 투자보다는 낫다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 한국형 뉴딜 정책이 그 동안 진행되어온 연금개혁의 방향과 배치되는 무엇은 아니다. 오히려 연금개혁 방향에 충실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를 위해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소위 '뉴딜 3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적립될 기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과정이다. 기금관리기본법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 및 부동산 투자를 비롯하여 투자처를 확대하기 위한 법이다. 민간투자법은 민간투자 대상을 학교시설, 공공청사, 임대주택 등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정책이 건설경기 부양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간접자본을 중심으로 계획이 수립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것이 이후에 낳을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연금의 기금은 천문학적 액수로 적립되는 것이고,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이 돈이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위기를 관리하거나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버팀목으로 어디에든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뿐만 아니라 민간투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기간시설 혹은 공공시설을 민영화하는 과정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국민연금의 투자처가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건전한 투자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이 주식, 부동산, 각종 펀드, 해외투자, 민영화 사업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연금기금이 금융세계화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연금기금이 주식시장에만 투자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국민연금기금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난이 있지만,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단순히 결정 주체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거액을 쌓아두고 다양한 투자의 길을 열어두는 조치들이 취해졌을 때, 아무리 독립적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을 내린다하더라도 투자처는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국민의 삶과 노후야 어떻게 되든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을 쌓아두는 것, 그리고 더 많이 쌓으려는 것이다.
연금은 민중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
한국형 뉴딜로 인해 다시 불거진 국민연금 문제, 하지만 지금의 논란은 정말 원칙도 기본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연금이 민중의 삶을 거덜 내는데 일조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연금이 왜 필요한가? 국민연금 문제의 원칙은 이야기했듯이, 민중의 삶이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민중의 삶이 날이 갈수록 밑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배세력은 민중의 노후를 위한 저축까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활용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이 땅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내기에도 버겁고, 이 빈곤이 노후까지 연장되는 마당에 국민연금의 급여는 축소하고, 보험료는 올리는 작태를 보인다. 게다가 이 기금을 자신들이 저질러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미봉책으로, 그리고 앞으로 더욱 이를 활성화시키는데 활용하고 있다.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지금 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책 그 자체라고, 이를 유지하는데 민중의 노후소득을 활용하지 말라고 주장해야 한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