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안 관련 논쟁 현황 9월 21일 언론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김영호 이명순)가 신문법을 포함한 3대 언론개혁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함에 따라 신문법 제정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됐다. 한나라당은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 4일 오전 당내 문광위 소속 의원 9명의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언개련 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한나라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 간에도 의견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등 당내 합의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 예로 한나라당 한 의원은 신문발전기금 조성이 정권의 '신문 길들이기'라며 반대했고, 다른 한 의원은 신문발전기금을 조성해 유통구조 개선사업에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10월 15일 열린우리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체 신문법안을 발표했다. 열우당은 정간법의 이름을 '신문등의기능보장및독자의권익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신문법)'로 명칭을 바꾼 개정안을 냈고, 이와는 별도로 '언론중재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발표 때 완성된 법안은 신문법 하나에 불과했고, 나머지 두 개에 대해서는 법안 자체를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방송법 개정안의 경우 조문작업 자체가 미진하다고 밝혔고, 이날 발표한 신문법안에 대해서도 열우당 내 문광위 의원 중 일부가 "한국 신문의 역사적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의원들의 일방적 주장을 당론으로 발표했다"며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열우당 내 혼선 또한 만만치않게 심각했다. 민주노동당은 별도로 신문사주의 지분 제한을 한층 강화한 형식으로 3개 법안 모두를 독자 발의했다. 여기에 한나라당까지 제·개정안을 낼 경우 11월 국회 문광위 상임위 안에서 언론개혁입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현재 신문법안은 앞의 표에서 표현한 대로 소유지분 분산 시장점유율 상한선 강화 편집권 독립 법제화 신문유통공사 설립 신문발전기금 조성 신문방송 겸영(교차소유) 허용 여부 등을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 언론개혁진영까지 포함해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는 핵심인 지분 분산과 유통공사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쟁점1-사주 소유지분 분산 열우당이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론이라고 밝힌 신문법안은 언개련 입법청원안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란이 예상됐던 신문사주의 소유지분 분산과 신문유통공사 설립은 법안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신문법안은 한국의 신문 산업 황폐화의 근본원인은 그대로 둔 채 결과만 치유하겠다는 발상이다. 한국 신문시장을 불법이 판치는 감당할 수 없는 독과점시장으로 전락시키고, 기사의 신뢰도마저 끝없이 추락시킨 장본인은 족벌신문의 사주들이다. 시장 파괴의 근본원인인 족벌사주의 지분 분산에 대해서는 입 닫고, 대신 족벌사주 전횡의 결과물인 편집권 유린과 독과점만 고치겠다는 발상은 단기 처방일 뿐이다. 이런 단기 처방은 반짝 효과는 내겠지만, 다시 족벌사주의 전횡을 정점으로 하는 시장 혼탁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며칠 전(10월14일)에 한 일간신문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새 사장을 뽑았다고 사고(社告)를 냈는데, 해당 신문의 주주총회는 고모(5%), 큰 삼촌(40%), 작은 삼촌(30%), 막내 삼촌(5%), 장조카(20%)까지 5명이 둘러앉아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끝났다. 단 한 주라도 들고 있는 주주를 다 합쳐야 이들 일가 5명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어떤 주식회사가 주총 열면 100% 가족회의가 되는가. 열우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국 신문시장의 왜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1인 사주의 전횡으로부터 비롯됐다. 열우당이 그토록 없애려고 하는 신문시장의 독과점의 근원은 다름 아닌 1인 사주의 전횡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주의 전횡을 용인한 채 그 결과물인 독과점과 불법 판촉, 편집권 유린을 막으려 한다면 대문을 열어 두고 쪽문을 지키겠다는 짓이다. 원인은 그대로 둔 채 결과만 다잡는 이상한 망치질로는 언론개혁은커녕 족벌신문들의 입지만 키워줄 뿐이다. 어느 신문사에서 지분 100%를 가진 채 국가 정책마저 제멋대로 농락하는 1인 사주를 그대로 둔 채 편집자율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74년 동아투위 이후 족벌신문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유린당한 채 거리로 쫓겨난 수 백 명의 언론인을 해고했던 장본인은 국가권력도, 광고주도, 독과점도 아닌 1인 사주였다. 족벌사주에게 쫓겨난 언론인이 70년대의 과거사가 아니다. 91년에도 그랬고, 2002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편집 자율권을 법으로 명시한다고 한들 사주와 충돌한 언론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쫓겨날 것이다. 따라서 편집 자율권 보장 조항은 사주의 지분 분산과 반드시 연동돼야만 소정의 효과라도 거둘 수 있다. 쟁점2-신문 유통공사 제외 열우당이 정부 차원의 신문 유통공사 설립 대신 유통전문법인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유통전문법인은 한두 푼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현재 언론개혁의 차원에서 추진 중인 공동배달회사 대신 과점신문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유통전문법인을 설립해서 지원해달라면 결국 1년 안에 최소 2∼3개의 유통법인이 만들어져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현재 과점신문 3사는 신문 산업에서 수직적 통합을 거의 완결한 상태다. 다만 교차소유 금지조항 등에 묶여 수평적 통합만 봉쇄된 상태다. 한 예로 중앙일보는 신문의 기획, 취재, 편집, 제작(인쇄), 판매, 독자관리, 시장개척 등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각종 자회사를 건설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인쇄는 A-프린팅, I-프린팅, J-프린팅에서 전담하고, 판매 및 유통은 중앙일보미디어유통이란 회사에서 전담한다. 유통망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판매지국의 수익을 제고시키는 신문전단광고대행회사인 '제일PR'을 두고 있으며, 자회사인 중앙일보정보사업단을 통해 유통과정의 오류를 보정하고, 중앙일보에듀라인을 통해 새 시장개척한다. 결국 정부는 과점신문들이 앞다퉈 신청하는 지원요청에 대해 이중·중복{{) 자율적으로 신문업자들이 조합을 구성해 운영해왔던 프랑스식 신문 공동배급제가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사실을 열우당 문광위 의원들이 알 턱이 없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직후 'NMPP(Nouvelles Messageries de la presse parisienne)', 새로운 빠리 신문 공동 배급회사라는 신문유통회사가 안정적인 공급을 해왔지만 최근 일부 거대신문들이 독자배급망을 기획하는 바람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93년까지 NMPP의 지방 배급을 하청받았던 MLP(Messageries Lyonnaises de Presse)마저 1994년부터 직접 경영을 시작, 95년에는 파리에까지 진출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어 프랑스 정부로서는 중복 지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지원을 해야 할 것이고, 복수의 유통법인 간의 치열한 시장 쟁탈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결과 2∼3년 안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족벌신문들이 출자한 유통법인이 신문시장을 독식해 신문시장의 독과점은 완결적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불법 경품이나 무가지 살포를 도덕적 비난과 함께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유통의 독점은 중소신문들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 놓을 것이다. 열우당 문광위 의원들은 언개련이 왜 정부 차원의 신문유통공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신문유통공사를 정부 돈으로 지원해달라는 것은 적어도 '신문의 유통'과 같은 고도의 공익적 사업은 공적인 정부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유통공사에 대해 '(정부)비판신문 죽이기'라는 소리도 있다. 이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논리다. 언론개혁진영은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정부차원의 유통공사 설립을 요구할 것이다. 현재의 정권이 좋아서 신문유통공사를 설립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열우당은 온전한 신문법 제정에 나서라 한겨레, 조선, 서울신문을 통해 신문사주의 소유 지분 분산을 뺀 열우당의 언론개혁 신문법안이 흘러나온 지난 12일 아침 같은 열우당 이부영 당의장은 관훈 클럽의 초청를 받고 프레스센터에서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분명히 이번 언론개혁법안에 그 내용을 담겠다고 밝혔다. 열우당 내 중앙당과 원내 의원들 간 손발이 안맞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국보법 역시 우왕좌왕하다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아, 많은 국민들에게 당정 분리의 허구성을 또 한번 드러내고 말았었다. 열우당 문광위 의원 12명의 의원들 사이에 충분한 토론도 없었다. 17일 정책위 의원총회에서 확정한다는 밝혀놓고서도 12∼15일 잇따라 4대 개혁법안의 주요 내용을 법 조문의 형태로 발표한 정황도 여전히 열우당이 민주적 정당일 수 없음을 반증한다. 17일 정책위 의총에서 반발하는 의원들의 입을 미리 막기 위해 "'높은 곳'의 뜻은 이거다"는 식으로 미리 발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4대 개혁법안 중 나머지 3개는 몰라도 언론개혁 법안만큼은 한국의 언론시장을 전혀 모르는 의원들이 오로지 정치적 타협의 대상으로만 이 법을 고려했음을 15일 발표를 주도했던 의원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불필요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뺐다"는 대목이 이를 반증한다. 그런다고 불필요한 마찰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족벌신문과 한나라당은 교차소유 허용을 주장하며 지금 있는 정간법마저 개악하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주 소유지분을 뺐다고 한나라당이 송덕비라도 세워 줄 것으로 착각하는 순진한 열우당을 믿었던 국민들은 통탄할 뿐이다. PSSP
지난 1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초국적 자본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제한을 없애겠다는 구상으로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끊임없이 침해하고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만을 더욱 가속화할 경제자유구역법안에 대해 우리는 비판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법안에는 노동기본권 박탈, 기업 조세 감면 조치 이외에도 친환경 규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병원 설립을 허가하는 등의 사업이 포함되어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명목 하에 국내 외국인 병원을 설립하고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본격적인 의료시장 개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규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당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공공의료 30%, 의료보장성 80% 확대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를 언급한 것은 그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선거용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었나.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는커녕, 초국적 의료 자본의 이득을 극대화하고 공공의료의 붕괴를 가져올 제도를 지금 노무현 정부는 추진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허용되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은 고가의 의료비를 지불할 수 있는 내국인에게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영리법인 허용과 함께 추진되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국민이면 모두 건강보험에 당연 가입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던 시스템을 무색케 한다. 능력껏 민간보험에 들고 그에 따라 의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돈 없는 사람들만 건강보험에 들게 될 것이고, 이 건강보험마저 점점 왜소해져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다. 더욱이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금융업의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의 일환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의 대상으로 팔아치우고 경제 ‘부흥(?)'의 일환으로 사고하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한다. 이렇듯 영리병원의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 공공성 파괴를 가져올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노무현 정부는 어떠한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공청회도 단 한차례 밖에 하지 않았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 및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 확충 계획 마련 후 추진 필요”라는 반대의견을 낼 정도로 행정부 내에서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자유구역 개정안은 마련, 통과되었다. 정부는 연 1조원이라는 해외원정 의료비 방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국인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어차피 외국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는 외국자본에게 돌아가고 만다. 이는 의료 상품화를 전면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려는 술수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의료 시장 개방 및 공공성 파괴 기도를 저지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자유구역법 폐기와 의료개방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선도적인 투쟁을 지지하며 의료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즉각 폐지, 철회하라 국민의 건강을 포기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국회는 우리 의료제도의 붕괴를 초래할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거부하라.
<성명>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 재추진 즉각 중단하라. 또다시 왜 테러방지법인가? 열린우리당은 국무총리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 대테러 활동 및 테러 행위에 의한 피해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테러방지법)을 추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김선일 씨 죽음 이후 테러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이 미비함을 언급하며 제정 의지를 밝힌 바 있으나, 역시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난이 일자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또 지금인가. 2001년 911 테러 직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법안 발의하였다. 인권사회단체는 물론 정부치권 내에서도 존재하는 국정원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판에 스스로 꼬리를 내린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재추진 시도되었다가 김선일씨의 죽음이후, 그리고 지금 다시 제정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추진 의지는 미 대선으로 세계인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핑계로 다시금 부활하였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세계화 질서에서 보다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3위 규모의 이라크파병을 지속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에 동참하는 행위는 배제와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된 전세계 인민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동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민중들의 의사를 배반하고 강행한 파병이 불러오는 위험을 테러행위와 테러동조 탓으로 돌리려는 발상이다. 미국이 세계적 금융질서 재편에 따르는 위험을 전세계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자기검열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부여당의 발상에서 테러방지법은 끊임없이 태동하려는 것이다. 민중통제를 정당화하는 정부여당의 기만성을 규탄한다. 정부여당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가 아니라 총리실 산하로 두고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두기로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라며 쟁점 하나는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테러위원회에 국정원장이 각계부처 장관과 함께 참석할 뿐만 아니라, 대테러관련 업무에 있어 국정원이 핵심적 기능을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미 지난달 대북/테러 관련 정보수집체제를 국정원 중심의 정보공동체 추진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테러방지법의 문제는, 국내 외국인, 외국인과 접촉한 사람에 대한 금융거래, 통신 내용 확인 등을 해당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등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민중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제한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반한외국인으로 규정되어 구속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법안으로 명시될 경우 111신고전화 한통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당한 수사와 탄압을 자행하는 인권유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56년간 민중의 사상과 이념을 검열해 숱한 인권유린을 자행해왔던 국가보안법보다도 전면적인 민중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의 추수에 따른 위험을 전인민에 대한 통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여당의 반민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재 국회를 파행으로 이끄는 한나라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 국회를 정상화하고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이 조금 더 개혁적일 수 있도록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방지법과 비정규노동법개악안, 파병연장동의안, 각종 FTA 비준 등 민중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 각종 반민중적 법안들의 수임자가 바로 정부여당인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과연 오늘날의 민중의 적이란 개혁을 발목잡는 한나라당 뿐인가? 돌출적인 개혁과제의 나열로 쟁점을 호도하고 민중들의 정치변화의 열망을 팔아먹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점점 노골화하는 노무현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요구된다. 이러한 투쟁만이 테러예방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통제와 억압, 또다른 악법의 굴레를 내팽개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 즉각 중단하라! 이라크파병군을 즉각 철수하라! 2004. 11. 8.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 정치의 한계와 위기 지배권력 간의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다. 탄핵 사태와 총선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상생의 정치'가 거론되면서 정국이 비교적 안정될 것처럼 예상했던 주류적 견해는 완전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과거사 청산에 관한 여야간의 공방부터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갈등, 국가 정체성 논란, 성장우선론 vs 분배론 등으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양당의 대결 구도는 한반도 남녘이 한국전쟁이후 가장 치열한 이념논쟁에 접어든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지배권력 간의 이념대결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로 인하여 입법부와 사법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까지 비화되더니 이제는 총리와 한나라당의 일개 말싸움으로 국회 일정 파행까지 치달아 정국은 가히 파국이 되었다. 진정 이념의 투사들이요 신념의 강자들이다. 정책/이념/색깔 논쟁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처럼 노무현 정권 등장이후 -입법부의 장악에도 불구하고-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러한 논란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가? 애초에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승인하는데 있어서는 양 당 체제로 나눠져 있는 지배세력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지배권력 간의 헤게모니 다툼은 오늘날의 구조적 위기를 지연시키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신자유주의를 누가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남한 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종속된 상황에서 90년대 이전과 같은 (민족)국민국가 단위의 발전전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정책도 대중의 삶,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이제 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낼 수 없는 지배계급에게 대중의 견고하고 안정적인 지지는 요원한 일이 되었으며 다만 누가 일시적으로 대중을 좀 더 동원하는데 성공하는가라는 문제로 지배 정치가 전화한다. 2002년 겨울 이 게임에서 승리자였던 노무현은 집권 이후에도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중단 없는 개혁과 그를 지탱할 실질적인(관리 가능한) '동원력'을 필요로 했다. 집권 초 노무현이 꾸준히 추진했던 정치개혁이나 '재신임', '탄핵'과 같은 도박도 모두 '동원과 지속'에 무게 중심이 실렸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박은 일시적인 효과를 창출하였고 입법부의 교체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도박은 도박일 뿐이며 환각제는 환각제일 뿐이다.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도 창출할 수 없는 노무현의 카드들은 유통기한이 대단히 짧을 수밖에 없으며 바로 여기서 보수주의의 역공이 가능한 공간이 창출된다. 그러나 보수주의 세력이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적 경제전망을 공유하는 터에 뾰쪽한 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정치는 점점 답이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경제 위기의 진실을 두고 이전과 같은 형태로 통치할 수 없는 지배세력이 상호간의 난타전을 통해서 위기를 호도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질서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하여서 서로간의 아무런 차이도 없는 이들 간의 외형적으로는 대단히 격렬한 정쟁이 치루어 지는 것이다. 즉 종래의 정치는 간데없는 정치의 위기인 것이다. 이제 모든 정책은 동원을 위해서 제시되거나 역설적으로 모든 정책이 개혁으로 포장되기에 이르는 쇼쇼쇼다. 쇼에는 사회 경제적인 영역들의 이슈는 당연히도 철저히 배제되며 외형적으로 안정적인 양당체제간의 허구적이지만 선명한 듯한 차이가 드러나는 의제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이 의제들에는 명쾌한 우선순위조차 없이 정쟁의 도구로서 얼마나 실용성을 띄는가, 얼마나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가로 서열이 정해진다. 소위 4대 개혁 입법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기에 개혁의 성격은 당연히 공허할 뿐이다. 개혁의 내용은 비록 그간 민중의 요구를 불충분하게나마 대변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렇기에 설사 달성된다 하더라도 반공발전주의 국가 노선의 잔재로 인해 지체된 정치-행정-사법구조의 혁신 정도를 목적하는 것일 따름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생결단을 할 태세지만 각각의 이슈들은 놀랍게도 1-2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의제로 교체된다. 이는 이념논쟁이 실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덧붙여 이 정치 쇼에서 필수적으로 출현하는 또 하나의 집단은 NGO와 미디어집단이다. 결국 이 정치 쇼의 유일한 임무는 대중의 분노를 왜곡하여 폭발시키거나 질식시킴으로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정책개혁/의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무정형적이며 이는 정치 자체를 불확실성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행정수도 이전 역시 태생적으로 동원을 위한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애시 당초 지역균형-분권발전이라는 것은 현재의 구조에서 진정 레토릭일 뿐이다. 우선 오늘날의 지역 경제 파탄의 원인을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남한의 지역간 격차는 60년대 군사독재개발 시대 이후 경부선을 축으로 추진된 수출지향의 산업구조(수도권과 영남)와 저곡가 정책이(호남) 맞물려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역 차는 IMF이후 수도권/비수도권 구도로 재구조화되고 있다. 금융, 법률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비스와 통신, 교통이 확보된 초-민족화된 '글로벌 시티'만을 요구하고 있는 금융적 세계질서는 민족국가 내부의 분할을 가져온다. 글로벌 시티가 될 수 없는 모든 (비-수도권) 지역은 특정한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형적 경제구조를 강요당하게 된다. 정권은 지역 분권화, 자치 등을 외치지만 실상으로는 통치를 포기한 것에 진배 없으며 지자체들에게 남은 선택은 지역경제의 사활을 걸고 자 지역에 투자개발을 유치하는 것이다. 투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은 더욱 참혹한데 각종 특구 열풍이나 기업도시 계획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법적, 정책적 규제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미명아래 철폐된다. 게다가 선택된 쇼케이스 지역도 정작 개발 이익이 지역민에게 돌아가기보다는 '서울 사람이 내려와서 서울 사람이 일하고 살며 이익을 챙겨갈 뿐'이기에 지역균형발전과 하등 무관하다. 지역 경제에 돌아가는 것은 강화된 노동조건 하에서 소규모의 고용효과와 식음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부수적인 수익, 그리고 지자체의 일정한 세수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몇 몇 지역이 선택받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쇼 케이스에 불과하며 지역 불균형은 되레 심화될 뿐이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空約은 금융세계화에 종속된 경제체제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구호를 통해 대중의 박탈감, 소외감을 자극하여 충청권에서의 지지로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지 지역균형발전은 애초에 관심사항도 국가의 명운을 건 사업계획도 아니었다. 헌재 판결의 의미: 국가기구의 응집력 부재와 정치의 사법화 금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국가기구간의 응집력 부재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안이며, 지배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근대 이후 형식적인 삼권의 분립과는 별개로 삼부의 역할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재조정되어왔다. (물론 애초에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상이 아니며 오히려 왕과 귀족 인민의 갈등 속에서 귀족을 보호하려던 사고의 산물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조정의 핵심은 대부분 내각제와 대통령제 등으로 드러난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가 일반화된 이후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우위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제 금융세계화에 편입한 개별 국가들의 입법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일정한 제약 하에서만 그 권리가 인정된다. 입법부는 행정부와 각종 국제기구에 의하여 정해진 입법방향을 선전하고 의결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조작 봉합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뿐이다. 올 봄 정치개혁 논의에서 불거져 나왔던 정책정당, 원내정당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아이콘이다. 한데 이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의 경우 의회 내부의 갈등과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에 사법부의 적극주의가 더해져 충돌을 야기했다.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정책적 논리의 우위가 확보되고 행정부가 스스로 대중을 동원하는 구조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법적 논리가 불안정한 행정부의 논리와 충돌한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적 응집력이 부재한 상황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그러나 단순히 국가기구 내부의 응집력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지배분파간의 갈등/대립에서 누구도 헤게모니를 얻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현상이 상시화 되고 그 종국적인 해결을 법을 통해서 얻는 경향이다. 일상적인 정치세력간의 갈등이나 의견대립 일반이 헌법재판소를 통해서야만 해결되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력 일반이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실패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안정적이었다면 탄핵과 행정수도 문제가 헌법재판소까지 갈 이유는 하등 없었다. 이러한 법치주의의 소환을 후진적인 한국사회의 정상화로 파악해서는 결코 안 된다. 대중의 정치적 대표의 원리로 운영되는 의회의 지위가 하락하고 기술적 관리적 지식으로 무장한 행정부의 우위가 확실한 상황에서 물리적 권위적 힘을 갖는 사법부로 권력의 중심이 최종적으로 이동된다는 것은 민중의 정치적 해결능력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남한의 사법부는 철저한 관료재판으로서 아직까지도 인민의 최소한의 참여(배심제)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철저히 '임명'된 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억압적 국가기구에 불과하거늘 그 위상 강화는 결국 민중에 의한 해법이 봉쇄되고 사법에 의한 위로부터의 심판이 강화되는 것은 폭력적 장면이다. 정치의 위기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력은 구조적 위기를 구원할 수 없고 동시에 기존의 형태로서 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의 불안정한 반민중적 개혁은 지속될 것이며 외적으로 격렬한 상태의 의회 내부의 갈등은 반복될 것이다. 실상 양당의 태생이 근본적으로 모두 보수-반공주의이자 (한민당, 공화당) 친미파일 뿐인데다가 그 차이는 미디어와 NGO 및 지식인 집단을 활용한 스타일의 정치에 의존할 정도로 빈약하다. 의회 내부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피지배계급의 의제를 압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정치의 위기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상시적인 위기에 대응하여 (안정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것은 포기한 채) 우선 이를 지배세력간의 무능/교체를 통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정책의제들의 끊임없는 생산 동원함으로서 대중의 열망을 사안별로 쟁점들을 분할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간의 갈등을 기존의 보수/자유-진보의 낡은 관념으로 인식한다면 대중운동이 사태를 적합하게 해결하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공간은 봉쇄된다. 그렇다면 운동진영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의 위기, 정치의 실종현상이 노무현 정권 이후 반복되어 출현해왔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운동 진영의 대응이 한계적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세에서 기존 '지배정치의 위기'가 드러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노동자 민중운동의 활성화, 급진화라는 '기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한다면 민중운동 진영은 국가기구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신의 의제를 설정하기보다는 선점(합의)당해오며 지배 정치의 위기에 편입되어왔다. 4대 입법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에서 보여지듯이 운동진영이 자신의 과제를 위로부터 부여받거나 혹은 정당을 통한 입법, 직접적인 교섭 등의 형태로 해결하는 경향은 결과적으로 민중운동 역시 현재의 정치의 위기를 폭로하고 드러내기보다는 공명하는 역할, 관리된 변화에 포섭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로는 대중에게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가진 세력으로 각인될 수 없다. 오히려 민중의 심판. 정치 역시 곤란에 빠진 셈인데 이는 기존의 국가내부의 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이 지점을 넘어서지 못했기에 그동안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외적으로는 격렬한 형태로 벌어지고 시기시기 구조적 위기가 폭로된 '열린 정세'를 형성하고도 종국에는 국가기구에 의하여 분할-포섭되어 핵심적인 쟁점들이 부차화 되거나 소멸되는 혹은 기존의 정치에 위탁하여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며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노무현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만약 민중운동 진영이 응집력을 상실한 채 계속 국가기구들과의 갈등/교섭을 통해서 민중의 요구가 가지는 고유의 '보편성'을 포기하고 일부의 '특수성'에 그치는 투쟁에 머무르거나 불확실하게 나열(당)한 요구들만 표출한다면 이는 지배정치의 위기를 심화하는데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배정치 그 자체와 정치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지 지배정치의 틈새를 메워 줄 수 있는 또 다른 (진보)정치가 아니며, 대중운동을 통한 봉기이지 사법/입법을 통한 문제해결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의 운동은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지배세력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형태로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관건은 누구도 대답을 갖지 못한 구조적 위기를 그 자체로 발본적으로 드러내어 대중 스스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형성하는 봉기적 관점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노무현 정권은 정녕 노동자민중을 모두 버리겠단 말인가? 1. 2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파견제와 기간제 근로에 관한 입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미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민, 사회단체에서 개악안이라고 반대해온 법안이 원안에 대한 아무런 수정도 없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말았다. 정부는 이 법안에 대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안이라 하고 있으나 이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만큼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2.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파견제, 기간제 근로 관련법안은 명백한 개악안이다. 파견업종을 전업종으로 확대하고 파견 기간도 3년으로 늘렸다. 기간제 근로의 경우 애매한 제한규정으로 인해 대부분 업종에서 무제한, 무기한으로 기간제 근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법안대로라면 이 나라는 조만간에 비정규직의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조치라고 내놓은 것도 이름만 보호조치일뿐 전혀 실효성이 없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내일의 희망이 없는 비정규직의 양산은 곧 전 사회의 빈곤화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정부는 1400만 노동자를 모조리 빈민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것인가? 또한 이런 법안을 내놓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주장할 자격이나 있는가? 3.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11월 중 국회 상임위를 통해 12월 초에 이번 개악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다. 만약 국회에서도 이번 개악안에 대해 별 고민없이 통과시키려 한다면 국회는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미 제 민중진영은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번 법안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해왔다. 또한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광범위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후 노동법에 대한 개악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이땅의 노동자민중은 거대한 파도로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노동법 개악을 중단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동아시아 제국주의의 현재성 한국에서 ‘식민지’라는 용어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의 상실과 착취, 억압”이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로 여겨졌고, 마땅히 청산되어야 할 과거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가 무엇이고 그것을 청산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청산의 가능성이 점점 사라져질수록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식민지배 청산이 정치적 지평에서 사라기게 되는 과정은 물리적 탄압을 동반하는 철저히 인위적인 결과였다. 1947년 미군정이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의 <민족반역자에 대한 특별법> 인준을 거부했고, 1948년 설립된 반민특위는 ‘국회프락치 사건’을 거치며 경찰에 의해 습격, 해산 당했다. 또한 1961년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세력이 7월 <반공법>을 제정해 모든 사회운동 세력을 제거한 것은 쐐기를 박는 조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역사학계가 일제 강점기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조차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친일세력이 곧 반공세력으로 변신하거나 그들과 결탁한 상황에서 그 시기에 대한 연구 자체가 금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패망과 연합군의 승리, 대한민국의 건국은 식민지배 종식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고, 일본 식민지배의 실상과 그것이 한국사회에 남긴 광범위한 유산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물론 이러한 조건에서 몇몇 선구적인 인사들의 활동을 통해 대표적인 친일파 인사들의 행적에 관한 조사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활동이 현재 친일진상규명법의 모태가 된다.) 하지만 식민지배 청산이라는 문제는 단지 식민지배에 앞장선 친일 인사에 대한 인적 청산에 한정될 수는 없다. 일제에 의해 이식된 사회구조의 모순 전반을 일소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배 청산이라는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도 “인적 청산” 자체가 최고의 목표는 아니었던 듯하다. 북한이 실제로 “민족반역자”로 처형한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대부분 독립운동가를 체포, 고문, 학살한 고등계 형사나 밀정에 국한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친일파의 주요 인물이 이남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재건 과정에서 일제시기 전문지식을 습득한 자들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듯하다. 대신 북한은 탄백(坦白)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할 경우 이를 용서하고 등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현재 친일파 청산에 관한 논란이 여야 정치세력 내부의 쟁점으로 이전된 상황에서, 우리는 식민지배 청산에 관한 더욱 광범위하며 본질적인 문제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일본 제국주의, 일본 파시즘은 왜 등장했나? 식민지배/제국주의라는 팽창주의는 당대 자본주의 중심국가의 동일한 국가적 지향이었다. 멀리 볼 것 없이 동아시아의 경우도 이러한 세력들의 각축장이었다. 영국의 인도와 동남아 여러 국가들에 대한 지배,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 미국의 필리핀 지배 등등. 물론 식민통치 전략과 목표는 서로 상이했다. 이는 세계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식민모국이 처한 조건을 반영한 것이었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태평양전쟁으로 격돌하게 된 미국과 일본을 비교해 보자. 미국은 1898년 쿠바 수역에서 스페인과 전쟁이 발발했을 때, 비밀리에 필리핀 마닐라만에 정박한 스페인 함대를 점령하고 결국 2천만 달러에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매입하여 병합하였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뻗치고 있던 독일이나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미대륙의 양대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필리핀을 “예방점령”하는 계획을 은밀히 실행한 것이었다. 미국이 필리핀에서 팽창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은 미대륙의 서부팽창과 유사했다. 즉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연방정부가 외교적으로 개입하여 점령을 정당화하고, 군사총독을 임명하여 저항을 분쇄하고, 민정으로 이양한 후, 연방으로 편입하는 방식. 그런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필리핀의 “자치화”를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강대국간에는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약소국들에서 위임통치를 실시하여 그 기간 동안 자치주의를 이식하여 독립을 보장한다는 미국의 일반적인 대외전략으로 연장, 확대되었다. 1934년 “타이딩스-맥터프 법안”에 따라 필리핀은 독립을 위한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절차에 돌입하게 되었다. 법안은 필리핀의 독립일정을 정해 10년간의 과도기가 지난 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권리는 완전히 종식된다는 점과 독립국의 정부형태는 공화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선언했다. 그러나 물론 미국이 “시혜적인” 목적으로 실시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연방을 건설하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내부 식민지를 창출하는 과정이었고, 이것이 완료된 시점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자치주의”의 동심원적인 확대가 미국의 안보에 가장 최상책이라는 전략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 자본주의가 영토를 직접 지배하는 것을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즉 “자치주의”의 실현이 미국 기업이나 투자가의 활동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 훨씬 더 효율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먼저 미국의 통치기간 동안 필리핀 내부의 사회경제적, 계급적 구조는 자본주의적 수탈구조로 재편되었다. 미국의 필리핀 투자는 2억-2억 8천만 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대외투자 총액의 3-4%에 불과했고, 2차 대전 이전 필리핀 무역은 미국의 대외무역 총액의 3-4%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필리핀 지배에서 “착취”의 성격을 상대화하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필리핀에서 어떤 지배-착취의 모형을 형성했는가를 파악하는 게 긴요하다. 경제의 중추부가 수출용 환금작물 생산 위주로 재편되었고, 필리핀 소수의 대지주와 함께 미국의 투자가들이 농업생산이나 공장, 광산 사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민들은 여전히 토지에 의존해서 살아야 했지만, 가혹한 착취를 감내해야만 했다. 또한 1934년 이후 필리핀의 “자치화” 과정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만주사변 이후 필리핀의 영구중립화 추진. 2차대전 후 필리핀 군사기지 유지, 대 필리핀 투자에서 “내국인 대우” 요구 등등.) 이러한 미국의 필리핀에서의 “경험”은 2차대전 후 냉전 시기 대외 팽창주의를 실현하는 원형이 되었고, 멀게는 1945년 이후 한국에서나 가깝게는 현재 이라크에서나 공히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팽창주의가 겪은 길은 서로 달랐다. 일본은 1850년대 개항과 1860년대 명치유신을 겪은 후발주자였다. 일본은 “자강론”과 “진출론”이라는 지배전략 차원의 이데올로기를 적절히 배합하여 민족주의/국가주의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북해도와 오키나와를 강점했고, 청일전쟁 후 대만과 조선의 식민화로 대외 팽창주의의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1930년대 만주사변을 거쳐 만주 지역을 점령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 전시동원체제, 천황 중심의 강력한 파시즘/전체주의 체제로 치닫게 되었다. 미국이 연방합중국이라는 거대한 내부식민지를 형성하는 과정에 비추어본다면 북해도와 오키나와 병합은 일본의 북문과 남문이라는 요충지를 획득했다는 것 외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한 것이다. 따라서 “살찐 큰 제물”이 필요했고, 그것은 곧 위기에 처한 구제국 중국이었고 그 발판이 제국의 변방인 조선과 대만이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위대한 일본국민의 해탈과 부활”, “문명화를 위한 정복”이었고, 나아가 대만이나 조선에서 “민족동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구상은 실현되기 매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었다. 식민지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식민지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로 인해 “민족동화”는 먼 훗날의 일로 계속 미뤄지게 되었다. 오히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전황이 악화되자 일본은 전쟁 동원을 위해 ‘민족동화’를 강제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며 커다란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전쟁동원을 위해 “황국신민화” 즉 천황숭배, 애국심, 반-백인종주의 강요, 창씨개명과 함께 식민지에서는 유례가 없는 징병제 실시를 강행한 것이다. 애초 일본은 “의무교육제” 실시 이전에는 징병제 동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인 언어소통 문제 뿐만 아니라, “국민적 통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군인으로 활용하는 것은 여러 위험 요소를 내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황 악화에 따른 군부측의 요구에 따라 서둘러 징병제가 실시된다. 징병제 실시 이후 장차 의무교육제나 극히 제한적인 참정권 부여 등을 실시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전쟁 종결과 함께 무산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동아시아는 두 개의 팽창주의가 대결했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영욕이 갈라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동일한 팽창주의 경쟁을 펼쳤으나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에서 파멸적인 전쟁동원과 착취, 심각한 저항운동으로 인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누각의 붕괴로 이어지고 전시경제가 파탄나면서 패퇴한 것이다. 결국, 국내적으로는 거대한 내부식민지를 보유하면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혁신과 ‘고임금 체계’를 통한 노동운동의 포섭으로 무장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민족국가간 체계라는 외피로 기존 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을 포섭한 미국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일본의 팽창주의(식민주의/제국주의)는 다른 경쟁자들의 팽창주의에 비할 때 고유한 특징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다른 경쟁자들과의 대결과정에서 점차 그 형상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팽창주의는 후발주자, 추격자의 팽창주의였고, 그만큼 상쟁하는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패색이 짙어질수록 팽창주의의 야수적인 면모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해 분노를 느낄수록 그러한 팽창주의를 낳은 세계적인 자본주의 경쟁의 시스템과 그 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 팽창주의의 본질을 간파해야 한다. 둘째, 일본 제국주의는 청산되었나? 친일파 청산에 관한 국내에서의 논란이 가열차게 진행되는 와중에 일본에 방문한 노무현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포함해) “양국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내 임기 중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일본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도 “친일진상규명법은 순수 국내문제이지 일본과 선린우호관계를 해치거나 이를 겨냥해 만든 것은 아니다”고 말하였다. 현재 정부, 여당이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일본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국내 친일파 문제는 아직 청산이 안 됐지만 일본과의 문제는 이미 과거에 말끔히 해결되었다는 뜻인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한일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될 당시의 문제를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5.16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가장 기뻐한 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당시 미국 CIA 부장 덜레스가 “나의 재임중 가장 성공한 업적은 박정희 쿠데타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미국은 “미국이 지지하는 정부는 장면 박사의 합법정부뿐”이라는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의 호언장담을 금새 바꾸어버리고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를 승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수반란사건”의 주모자라는 좌익경력을 지닌 박정희 세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케네디 정부를 설득하는 데에는 일본의 공헌이 매우 컸다. 1961년 6월 19일 정상회담에서 이케다 일본수상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말했던 요지를 살펴보면 그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케다는 ‘일본에게 중국문제보다도 한국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일본을 겨냥하는 비수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이 공산화된다면 일본의 안보는 중대한 위협을 받는다’며 한국 내 정치상황에 일본의 발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쿠데타로 성립된 남한의 군사정권은 비록 민주적 정권은 아닐망정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합법정권이며, 반공체제를 견지시키기 위해서도 일본은 경제원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하루속히 국교정상화를 실현시켜야만 한다고 믿는다’며 박정희 세력이야말로 미국과 일본이 바라던 일본의 대한경제원조나 한일국교정상화를 실현할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1962년 미국을 방문한 전수상 요시다는 케네디로부터 “한국에 관해서 경험이 얕은 미국이 실패하지 않도록, 경험이 풍부한 일본이 가능한 미국을 도와주기 바란다”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일본에 돌아와 “일본은 이토 이루부미의 길을 따라 재차 조선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대체로 일본의 관점이라는 안경을 통해 한국을 인식하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무지몽매하여 이미 민족으로서의 명백이 끊어진 조선인을 다시 회상시키는 것이 일본의 사명”이라는 사상을 전파한 니토베의 베스트셀러 ??무사도??를 읽고 감명을 받아 “일본인은 무인정신에 넘쳐 있는데 반해 조선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비겁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이러한 활동이 ‘태프트-가즈라 밀약’(1905년) 체결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당시 미국과 일본의 대한정책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그것이 바로 이른바 ‘역코스’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은 냉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단지 일본이 과거 공업력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서 일본이 필요로 하는 원료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체를 일본의 후배지로 제공해야 한다는 ‘역코스’ 정책을 수립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연이 아닌 것은 그것을 추진하는 일본과 한국의 세력이 과거 만주 출신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박정희 정권의 등장에 환호성을 지른 것을 말할 때 당시 일본 정치의 핵심세력과 박정희의 만주군 인맥간의 과거 “인연”을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이케다에 앞선 전임 수상이며 정치스승 격인 기시 노부스케는 관동군 경력을 지닌 자로 만주국산업부 차장으로서 ‘만주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만주중공업회사’를 설립했고, 도죠 내각 때 상공대신으로 활약해 전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전후 미국이 낙점한 인물로서, 도죠는 처형됐지만 그는 무죄로 석방되어 철저한 친미파로 정치활동을 전개했고 1957년에는 수상에 취임하였다. 그는 수상 취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이러한 노력은 박정희의 등장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1961년 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는 특별손님으로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나구모 장군을 초청해줄 것을 요청에 그에게 절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예의”를 보였다. 이는 과거의 인연을 매개로, 박정희 세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에 대한 감사의 뜻과 미국과 일본이 요구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의 당연한 귀결로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문제를 완전히 논외로 한 채 진행했다.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형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았고, “청구권” 문제만 논의했다. 청구권이란 개념상 쌍방이 득실을 따져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뜻이며, 일본은 자신이 지어준 공장, 철도, 교육 시설 등을 계산해서 받아내야할 자산으로 간주하였다. 다만 이러한 문제에서 일본이 “관대한” 태도를 보여 한국에 독립축하금 격으로 5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 형식을 취하였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미국이 의도했던 것이기도 했다. 미국은 이미 1951년 미일 양국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 한국을 전승국에서 제외하는데 합의했고, 이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어떤 배상의 의무도 없다고 못을 박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식민주의/제국주의 청산은 일본 국내적으로나 대외관계의 측면에서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팽창주의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의도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팽창주의를 자신의 헤게모니 아래로 복속시키면서 그들의 세계전략을 실행하는 하위 파트너로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다. 노무현정부와 여당이 일본에게 할 말은 없다라고 한 것은 박정희 정권 이후로 구조화된 한미일 관계를 그대로 승인,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식민주의/제국주의의 현재성 물론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공통된 것이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그것을 인정하거나 나아가 배상에 임한 제국주의 국가가 있었던가? 어차피 그들의 주도로 짜여진 국제법 체계는 과거 군사적 강점과 병합을 포함하는 식민지배를 불법화할 수 있는 요소가 없고, 어떤 강제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국제법으로나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맺은 외교조약으로나 일본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문제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기간을 장기적인 교전상태로 규정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만행들을 “전쟁범죄”로 규정하여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과 배상의무를 묻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예컨대 1990년대에 들어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개인적 보상·배상과 국가책임을 일본 정부에게 묻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반해 오히려 과거 식민 지배를 경험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민중의 고통은 한없이 연장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과거 식민주의의 고통(인간의 노예화와 인신매매, 자연자원의 착취)과 그 연장선상에 산업적, 금융적 착취(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직접투자, 외채와 부패스캔들을 통한 이중적 착취)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제3세계에서는 외채탕감과 각 나라에서 과거 식민모국의 자본과 결택해 부정부패로 축재한 지배세력들의 재산환수, 공적개발원조 확대 등과 강제적인 구조조정과 일방적인 무역개방 압력 중단 등의 민중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지만, 현재 G-7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은 이를 완전히 묵살하고 있다. 결국 20세기를 거쳐 미국의 공식적인 세계전략인 “민족자결주의”는 실현되었지만, 식민주의/제국주의 지배의 고통은 더욱 강하게 제3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로 연장되고 있는 식민주의/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한국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식민주의/제국주의 문제는 박정희 이후 한국의 신흥공업국으로의 부상이라는 화려한 성과로 인해 그야말로 “과거사”로 치부되고 있다. 지배세력들은 국교수립 후 일본이 베푼 유무형의 경제원조가 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되었고, 더 따져보면 일본이 식민지 시기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산계획을 통해 농업을 근대화하고 근대적 공업을 이식하였으므로 이러한 경제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거다). 그리고 이는 박정희는 어두운 개인사를 지녔지만, 그것을 경제기적으로 승화시킨 지도자로서의 면모는 인정해야 하며, 박정희의 국가적인 경제개발계획이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이는 현재 분배 정의를 개선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친일인사 청산이나 박정희 정권과 그 이후 군사정권에서의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에 의한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으나, 박정희 정권 이후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금과옥조로서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게 현재 정부와 주류적인 정치세력들의 견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박정희 정권의 등장 이후의 한국사를 정당화하는 지배세력의 논리는 우리의 인식과 가장 첨예하게 갈리지는 대목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냉전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발전주의”라는 당근을 제공했다. 특히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지배구조와 재벌체제를 유지하며, 일본의 보호무역은 용인하면서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의 초국적기업이 직접적으로 진출하기보다는 일본의 억압적 국가와 재벌체제가 동거해 나가는 것을 용인했다. 일본의 배후지로 통합된 한국에서도 이러한 정책이 적용되었다. 한국은 냉전의 쇼케이스라는 다른 제3세계와 비교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발전주의의 예외적인 “수혜자”가 되었고, 발전주의의 성공을 선전하는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지속가능한 것인가? 1990년대 동아시아를 휩쓴 외채·금융위기는 동아시아의 고도성장 시대가 막을 내렸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른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를 통해, 이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통화와 금융전쟁을 수행하여 이 지역에서 국내 경제와 정치를 변화시키는 전략을 수행했다. 냉전 시기 정치-군사적 논리는 약화되고 초국적 법인기업의 금융적 팽창이 우선적인 목표로 전환되었다. 한국사회는 과거 발전주의의 시험무대가 되었던 것처럼, 미국 주도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구조조정 전략의 가장 선도적인 시험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식민주의/제국주의라는 문제는 반공발전주의의 성공이라는 신화 속에서 굳이 다시 꺼내볼 필요가 없는 과거사로 간주하려는 지배세력의 노력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미래를 지배하는 현재적인 문제다. 그리고 그들이 그 사실을 부정할수록, 그들 자신이 제국주의 세력과 긴밀히 결탁되어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친일파 청산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온 민중과 사회운동의 요구지만, 식민지배/제국주의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이유다. PSSP
1. 감시와 통제, 차별과 폭력의 데이터베이스 우리나라의 현행 국가신분등록제도는 호적제도와 주민등록제도를 양 축으로 하고 있다. 호적제도는 일제시대 때 식민지 통치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고,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군사정권 때 국민 감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두 제도 모두 인권의 암흑기에 권력의 노골적인 대민 통제 전략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제도의 결합으로 유례없이 강력한 감시 통제 시스템이 완성된다.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공고해진 현재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전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감시 통제 시스템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인구의 동태를 파악하여 행정사무의 편리를 추구”한다는 주민등록법의 목적에는 슬그머니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한다는 말이 추가되었지만, 몇 마디 말로 감시 통제 시스템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음달 정기국회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심의될 예정이며 이것이 통과된다면 곧바로 호적법 개정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민주노동당에서는 주민등록법 개정안과 개인정보보호법안을 제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법안들이 입법화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이번 계기는 분명 대안적인 신분등록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2. 주민등록제도의 개선방안 21. 주민등록업무의 전권은 지방자치단체로 이전되어야 한다. 현재의 주민등록법은 제1조 목적에서 “주민”의 생활편익과 이와 관련한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한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체계에 있어서는 주민이 아닌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무의 관장은 지방정부가 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사무의 지도 감독은 행정자치부장관에게 맡김으로써 지방정부의 역할은 주민정보의 수집과 기록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방정부의 주민직접대면행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뿐만 아니라 주민행정업무가 원격으로 지도 감독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주민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어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2. 필요이상의 개인정보가 수집되어서는 안 된다. 현행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주민이 행정기관에 등록할 정보는 불과 십여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행령에 따라서 실제로 수집, 보관되어 있는 개인정보는 백여 가지가 넘는다. 필요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감시는 시작된다. 따라서 주민에게서 수집하는 정보는 주민등록법에서 정한 내용으로 한정하고, 부득이한 경우 법률과 지방정부의 조례에 그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하며 규정에 없는 항목의 수집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23.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정보는 정보주체의 통제 하에 수집, 보관, 이용되어야 한다. 주민등록제도는 100여가지가 넘는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민정보를 열람하고 이에 대한 정정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았거나 법률의 근거 없이 수집된 자신의 정보를 삭제, 반환, 폐기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또한 주민등록정보의 유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도 책임당사자인 행정자치부 장관의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어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24. 주민등록번호, 지문날인, 주민등록증 강제발급 등 반인권적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는 전국민에게 강제부여되며, 평생동안 변동되지 않을뿐더러 공공기관과 민간영역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신분확인용으로 활용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강력한 식별번호다. 또한 만 17세 이상 모든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 강제 날인 제도는 전국민을 범죄인으로 간주하는 극악한 인권침해이다. 역시 만 17세 이상의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하는 주민등록증은 그 과도한 신원증명능력으로 인하여 사회활동을 위해서 상시 소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신분증이 되었다. 주민등록번호는 선택적으로 부여받고 변경할 수 있는 무의미한 일련번호로 대체되어야 하며, 그 사용처를 법률로서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지문날인제도는 두말할 것없이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주민등록증은 지방정부의 필요에 따라 발급여부를 결정하되 주민이 자율적으로 필요에 따라 발급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호적제도의 대안, 목적별신분등록제 31. 가족의 개념 삭제, 성씨 선택의 자유 보장 현재 정부가 제출한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은 ①호주 개념의 삭제, ②가(家) 개념의 이성애적 핵가족 개념으로의 전환 ③부성강제조항에서 부성원칙조항으로 전환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나라당 마저 호주제 폐지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국회에서는 민법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의 범위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으며,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해야할 일은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지원이 무엇인지, 또한 수적으로 소수이지만 비혈연공동체나 동성애자의 가족, 장애인 독립 가구 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한편 열린우리당 이경숙의원은 100여명의 국회의원의 동의를 받고 가족 개념의 삭제와 성씨 선택의 자유를 내용으로 하는 독자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노동당과 여러 여성단체는 이경숙의원의 취지에는 대체로 동의하나, 실제 제출될 안을 보고 독자적인 행동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32. 목적별신분등록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진보진영의 일관된 주장에 비해서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한 논의는 현재까지 거의 이뤄진 바가 없다. 그동안 호적부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이른바 가족부와 개인별신분등록부가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현행 호적제도가 가진 문제점은 이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부는 호주의 개념은 삭제하였으나 대신 기준인을 둠으로써 현실적으로 성인 남성이 가족을 대표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이름만 바뀐 호주제에 불과하다. 조대현 판사가 제시한 바 있던 개인별신분등록부 역시 문제는 마찬가지다. 개인의 신분등록표에 배우자, 부모, 자녀의 정보를 담고 있어서 실제 내용상으로는 가족부와 다를 바 없이 이성애적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둘 다 과다한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공시제도로 인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전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최근에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는 호적제도의 대안으로서 목적별 공부안을 제시한 바 있다. 목적별 공부안은 첫째 여성에 대한 차별 반대, 둘째 프라이버시권의 보장, 셋째 가족형태별 차별에 대한 반대를 기본 취지로 한다. 목적별 공부안은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개인별신분등록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기존의 다른 안이 모두 선택하고 있던 인적편재 방식을 버리고 목적별 편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출생, 사망, 국적 증명을 위한 신분등록부와 혼인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혼인등록부를 구분하고, 신분의 변동 이력과 현재의 신분 상태를 구분하기 위해 별도의 신분변동부와 혼인변동부를 둔다. 그리고 각 공부는 하나의 검색번호로는 동시에 검색되지 않으며, 서로간의 연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프라이버시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다. 또한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호적제도와 주민등록제도의 연동과 신분공시제도를 제한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보다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목적별신분등록제는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4.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 진정 운동 주민등록번호는 주민등록제도와 호적제도를 연결하는 번호로서, 국가신분등록제의 근간이다. 게다가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기록되어 데이터베이스화되는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각각의 데이터베이스를 간단히 연동시킬 수 있는 고유식별자의 역할을 한다. 인터넷에서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정보와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정보가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정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의 위험성은 이미 충분히 지나치다. 그중에서도 주민등록번호의 성별표기는 더욱 직접적인 차별과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41.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의 성적 정체성을 단순히 생물학적 기준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관념을 고착화한다. 성적 정체성은 생물학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서 변화하거나 형성될 수 있다. 사람들이 제각기 다양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 존재하며, 개인은 자신이 성적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뒷번호 성별표기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 존재함을 부정하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출생과 동시에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42. 개인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프라이버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성적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부여할 목적이 아니라면, 개인의 성적 정체성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관리할 이유가 없다. 불분명한 목적으로 필요 이상의 정보를 그것도 강제로 수집한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감시이다. 더군다나 이를 민간부문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에 명시함으로써 정보주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성적 정체성이 공개된다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이다. 43. 국가신분등록제도의 반인권적 차별적 요소가 제거되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성별표기의 숫자 부여 방식은 그 자체로 성차별적 관념을 강화하고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민등록번호의 숫자 부여가 남성이 상위순번, 여성이 하위순번으로 배정된 것은 남성이 먼저, 여성이 다음이라는 성차별적 인습의 반영임과 동시에 성역할의 고정을 유발한다. 이러한 취지하에 제기된 ‘주민등록번호 성별구분 폐지를 위한 만인 집단 진정 운동’은 주민등록번호의 반인권성을 알려내기 위해 국가인권위에 집단진정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분등록제도 중에서도 주민등록번호, 그 중에서도 뒷번호 첫째자리. 그리고 그다지 속시원하지 않은 진정이라는 방식. 작은 부분에 불과하고 다소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이것은 국가신분등록제도에 대한 전면전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앞으로 있을 더 크고 중요한 싸움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가신분등록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만인집단진정운동 홈페이지 : www.finger.or.kr/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