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동방의 진주라고 불렸다. 1840년 아편전쟁에 승리한 영국은 1842년 난징 조약을 맺어 홍콩을 영국령으로 편입했고, 이후 홍콩은 155년 동안 영국령으로 유럽 자본주의가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대하는 교두보가 되었다. 동방의 진주는 동방의 신천지를 바라보는 유럽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유럽 자본주의가 동아시아와 마주친 상징적 장소이자,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는 중국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화의 상징적 장소로 변신한 홍콩에서 2005년 12월 13일부터 일주일 동안 WTO 각료회의와 이에 반대하는 투쟁이 동시에 열렸다. 이 투쟁에는 한국의 투쟁단을 포함해 WTO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민중들이 참여하였다. WTO 회담은 다보스 포럼과 더불어 세계화를 통한 새로운 지배구도를 형성하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세력의 결집체가 되었다. 1999년 시애틀을 필두로 제노바, 칸쿤으로 이어진 WTO 각료회의는 늘 WTO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발언권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왔다. 저항이 커질수록, 회담 자체의 개최지는 저항을 피해갈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나섰다. 카타르의 도하에 이어 홍콩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린 회의 역시 WTO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이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홍콩의 반WTO 투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동)아시아 속으로 WTO와 신자유주의라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가온 계기였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세계적 연대 내에서 특히 동아시아의 연대가 향후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의 투쟁단이 계속 입국하고, 12월 12일에 기자회견과 13일 시가행진 이후 홍콩의 언론들은 WTO 반대 투쟁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 신문들은 대부분 제1면부터 시작해 많게는 20면에 이르는 지면을 투쟁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도에 할애하였고, 특히 관심은 한국 투쟁단에게 쏠렸다. 많은 홍콩 신문들이 한국투쟁단을 '한농'(한국농민)이라 부르면서 관심을 쏟았다. 12일 오후 회담장 근처 시위지역에서 전농 회원들이 물에 뛰어든 시위와 이어서 벌어진 한국 투쟁단과 홍콩 경찰 사이의 충돌에 대한 보도는 14일 모든 신문의 1면을 뒤덮는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무엇을 주장하는지 보다는 어떤 형태의 투쟁을 전개하는지가 홍콩 언론의 주요관심사였다. 그들은 투쟁을 전개하는 방식과 조직적인 대응들에 대한 소개에서부터 어디에 머물고, 무엇을 먹는지, 휴식 시간에는 어떤 일을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관심사까지 빠뜨리지 않고 보도하였다. 이런 관심은 WTO 각료회담이 끝나고, 1천명 이상이 연행되고 석방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례적이라고 할만한 관심은 홍콩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홍콩 자체적으로 WTO 각료회담을 반대하는 적극적 참여가 크게 조직되지는 않았다. 현지의 투쟁 동력이 주력이 되기보다 한국의 투쟁단이 현지 싸움을 주도해 갔다는 이례성 두드러졌지만, 이 투쟁단의 움직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홍콩의 현실이 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홍콩은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지역이다. 홍콩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서 이른바 남한, 타이완, 싱가포르와 더불어 '네 마리 작은 용'의 발전 신화를 공유한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홍콩은 동아시아와 함께 있었다기보다는 언제나 동아시아 외부에 놓여있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현재로 보더라도 홍콩은 분명 중국이면서도, 중국이 아닌 지역이기도 하다. 홍콩에 투쟁단의 일부가 억류된 이후, 한국에서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닌 홍콩이라는 특성은 여기서도 무엇인가 어색함으로 나타난 바 있다. 1980년대 말 홍콩의 산업구조가 빠른 속도로 개편된 이후, 홍콩의 제조업 비중은 빠르게 줄어들고, 홍콩은 금융 무역 중심지로 빠르게 자기변신 하였다. 1970년대이래 '홍콩의 밤거리'는 동아시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꿈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남아있었지만, 그 밤거리의 이면에는 외부에서 '홍콩의 꿈'을 좇아 이주해 단순조립의 전자와 섬유산업의 번성을 지탱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었다. 산업구조의 빠른 전환 속에서 이들은 어느덧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홍콩 노동운동의 전통이 없었던 바 아니지만, 중국 화남지역과 맞물린 생산의 재배치가 빠르게 진행된 데다가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회귀'되면서 홍콩의 정체성의 변화 또한 빠르게 진행되어 홍콩 사회운동의 방향에도 정향점이 분명히 나타나기 힘들었던 시기가 오래 이어졌다. 마치 홍콩이 무역중개지로만 인식되었던 것처럼, 홍콩에 근거지를 둔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수많은 네트워크들이 있지만 사회운동 차원에서 홍콩은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듯한 존재로만 인식되었다. WTO 반대 투쟁이 벌어지기 직전 홍콩에서 25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 선거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음에도, 그것과 외부를 연결하는 고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한 것은 아니었다. 홍콩은 끊임없이 흘러 다니는 자본 이동의 흐름 속에서 고정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중간역으로만 나타나거나, 아니면 외부와는 무관해 보이는 흐름 속에서 단절된 공간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홍콩 언론이 보여준, 그리고 홍콩 주민들이 보여준 WTO 반대 운동에 대한 상당한 관심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후 필름 느와르를 통해서, 주윤발과 유덕화의 영화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자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넘쳐나지만, 정작 홍콩을 외부로 이어줄 관심사에 시선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 했던 곳이 홍콩이었다. 아마도 홍콩의 중국 회귀 이후, 단일 사안으로서는 최대의 관심사였을 WTO 각료회담에 대한 반대 시위는 홍콩과 세계를 잇는 고리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을 알게 모르게 강요한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까지는 그런 주장들이 없었고 그런 형태의 시위가 없었던 것처럼 새삼스럽게 놀라는 홍콩은 아시아의 고립된 사회들 내에서 이미 서로를 연결하고 있던 사회적 전지구적 문제를 새삼스럽게 재발견하는 놀라움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WTO와 신자유주의 문제가 홍콩의 문제가 별개가 아니라는 것, 정치에 대한 민중의 요구와 그것을 위한 새로운 방식들의 추구가 홍콩 사람들의 삶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 아마 홍콩 사람들이 안게 된 화두였던 것 같다. 시위대가 행진하는 도로가에 나와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연신 찍던 사람들로부터, 시위대에게 박수를 치고 지원 물품을 전해주던 사람들, 그리고 시위대가 연행된 이후 항의에 참석한 사람들까지, 그리고 경찰과의 충돌이후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를 두고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자신의 삶의 공간과 이미 연관되어 있던 전체와의 고리를 새삼 발견하는 사람들의 곤혹스러움이 느껴진다. 물론 그것은 그 거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정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계기일 수도 있다. 투쟁단이 묵은 침사추이 주변의 건물들에서 보았듯이 높은 집 값 때문에 열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두세 세대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홍콩섬 남부의 멋진 해안의 별장촌이나 신계(新界)의 수려한 산자락에 세워진 고층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양극화한 사회적 틈새, 그리고 오래 전부터 홍콩의 꿈을 안고 다양한 이웃 나라들에서 흘러든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이르기까지, 이미 홍콩은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신자유주의의 예견자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홍콩이 아시아의 자본과 물류를 연계해 주었듯이 이런 홍콩을 거쳐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외부와 연계시켜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WTO 반대 투쟁이 홍콩에 던져준 화두가 적지 않았다면, 홍콩이라는 공간에서의 싸움과 이 투쟁에 참여한 한국 투쟁단이 한국에 던져주는 함의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그처럼 대규모의 투쟁단이 해외의 투쟁에 참여한 것은 처음일 텐데, 이는 앞으로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국내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세계 전체는 물론이고, 지역적 차원에서도 더불어, 함께 나아가지 않고서는 문제를 문제로서 제기하고 풀어가는 것조차 어렵다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삼 다시 제기한 측면이 있다. 한국의 농업문제가 생존위기에 직면한 농민의 집단적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사회적 위기와 삶의 기반의 피폐화라는 전체구조 차원의 일반적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는 아시아 타 국가의 농민 노동자를 포함해 아시아의 민중들의 문제와도 같은 틀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몇몇 국가의 희생아래 일시적으로 문제를 봉합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정작 해외 참가자들과의 직접 교류는 적었던 것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국제적 교류와 국제주의는 반드시 유려한 외국어를 배경으로 직접적 대면 접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신뢰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 투쟁이 남긴 결과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다.
WTO(세계무역기구)는 1995년 설립된 이래 2005년까지 6차례의 각료회의를 진행하면서 세계 단일시장 건설을 위한 행보를 꾸준히 밟고 있다. WTO는 기존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와 비교할 때 포괄 회원국의 숫자만큼이나(2004년 현재 148개국) 포괄영역과 권한이 크게 확대되었다. 한편으로 서비스, 지적재산권, 농산물 등의 영역이 교역의 대상으로 포함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 간 무역 분쟁,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 규제 등에 대한 판결권 및 그에 입각한 강제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역자유화’, ‘세계화’, ‘개방화’를 부르짖는 WTO체제는 세계 교역증진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을 위시로 한 주요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는 단일 시장 건설을 꾀할 뿐이다. 그러나 몇 차례의 WTO회담결렬을 겪으면서 지배세력은 정치, 경제, 문화적 발전 정도가 각양각색인 국가들이 단일한 거래 원칙을 합의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양자 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역경제블럭 건설 등을 우회하면서 WTO의 토대를 차츰 확보해 가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그 진척이 더딘데도 WTO가 이렇게 지속되는 이유는 한편으로 기존의 위계화한 자본주의 시장질서 안에서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누리는 혜택을 고스란히 세계시장(광범위한 미개척 시장을 포함하는)에 투영시킬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후발국 역시 이를 선진국과의 ‘빅딜’을 통해 세계 시장에 편입될 수 있는 유효한 계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에 가입되어 있고, 칠레·싱가포르·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등과 FTA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미국·일본·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캐나다와 공식협상을 진행 중인데도 WTO 협정에 사활을 걸고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홍콩 각료회의까지 회담의 흐름 WTO 각료회의는 일반이사회 및 이해당사자 간의 다자간 실무협상을 통해 수차례 실질적인 의견조정을 거치는데, 그 협상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회원국들 간의 이견 차와 반세계화 투쟁의 여파로 인해 시애틀 회의를 비롯한 몇 번의 회담이 결렬되었던 선례를 반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루과이 라운드의 뒤를 잇는 새로운 무역방침인 뉴라운드 성립이 처음 결렬된 이후 DDA(도하개발아젠다)선언, DDA의제 확정, 세부원칙 작성 등이 이어졌다. 3차회의까지 별 진전이 없던 회담은 4차 도하회의 당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제3세계 개도국과 최빈국의 불만을 무마하면서 ‘개도국과 최빈국의 개발을 돕는다’는 내용의 DDA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반이사회 및 실무협상 결과 확정된 DDA 핵심의제인 비농산물 관세인하협정(NAMA), 농업협상(농업보조금 축소, 폐지가 핵심), 필수 공공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협정(GATS), 지적재산권협정(TRIPS) 등은 북반구 강대국의 이해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하거나 선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강대국의 이익을 고스란히 담보하는 형태로 개도국과 최빈국에 강제되었다. 마침내 이를 비판하는 제3세계 개도국과 최빈국들이 단결하기 시작하고, 이경해 열사의 죽음으로 전 세계 WTO 반대 운동이 고조되자 5차 칸쿤회의는 결렬되었다. NAMA로 인해 북반구의 공산품이 낮은 관세로 제 3세계 국가들에 유입되어 남반구의 취약한 산업구조를 점유, 파괴하기 시작했고 ‘관세감축’, ‘국내보조금의 실질적인 감축’, ‘수출보조금 철폐’를 원칙으로 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개시된 이후에도, 농업보조금의 대폭 확대를 골자로 하는 농업법 등을 제정한 미국과 EU의 농업지원정책이 유지, 확대되자 개도국들이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G21)’, ‘개도국-최빈국 그룹(G90)’등의 의견 그룹을 형성하여 협상 자체를 결렬시킨 것이다. 그러나 칸쿤 회담 이후 미국과 EU 등은 자국 시장개방을 미끼로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브라질, 인도 등의 나라를 개도국 의견 그룹에서 이탈시켰고 2004년 7월 제네바 일반이사회에서 DDA의제 기본골격이 타결된다. 2005년 홍콩 6차 각료회의는 이렇게 형성된 기본골격에 바탕을 둔 세부원칙협의의 장이었다. 비록 미국과 EU 등의 협상 주도국 간에 논란이 재연되었지만 농업보조금(2013년 까지 수출보조금 폐지), 비농산물 협정(관세가 높을수록 더 많이 감축하며 관세상한선인하 등), 서비스협정(복수의 국가가 개별국가의 서비스 시장 개방요구가능)이 타결되었고, 2008년 DDA발효를 위해 올해 4월내로 세부원칙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이 발표되었다. 홍콩 투쟁 6차 각료회의는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홍콩은 97년 중국에 반환되기까지 영국령으로 통치되었고, 반환 이후에는 1국가 2체제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기본법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의 사회구조는 금융서비스 산업 중심이며 대개의 식료품과 공산품은 수입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얼핏 보면 홍콩은 WTO 협상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농산물 개방 등으로 더 많은 혜택을 입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WTO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서비스 협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금은 의료, 교육, 통신 등의 공공 서비스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WTO 서비스 협상이 진행되면 민영화를 통해 홍콩 민중들이 누리던 공적 서비스는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홍콩은 WTO 자체의 내용보다는 한국 투쟁단으로 대표되는 반세계화 시위대의 ‘과격성’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홍콩 언론들은 협상 내용이나 협상의 영향을 보도하기보다는 한국 투쟁단, 현지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직, 홍콩민중동맹, 비아캄페시나 동남아 투쟁단 등의 참가자들 인터뷰와 하루일상, 동선 스케치 등만을 쏟아냈다. 한국 투쟁단에 대한 과도한 폭력성 부각과 정부 차원의 휴교령, 지역폐쇄 명령 등은 홍콩 시민들에게 시위대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였고,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WTO 서비스 협정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투쟁단은 집회, 해상진격투쟁, 몸싸움, 삼보일배, 촛불집회, 집중진격투쟁 등 다양한 실천방식의 전개를 통해 ‘과격집단’의 혐의를 벗고 홍콩시민들의 동조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어느 시점을 경과한 뒤부터 시민들이 보여준 호기심과 애정 어린 시선, 더 나가서는 먹을거리, 옷가지, 인사, 직접참여 등은 한국투쟁단은 물론 WTO반대 투쟁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을 고무시켰다. 거리의 원정투쟁단 활동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됐다는 홍콩시민의 연대의 메시지 등은 원정 투쟁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폭력의 실체 2003년 이경해 열사는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죽음으로 칸쿤 각료회의에 항의했다. 2004년 수많은 농민들이 농업말살정책에서 생존을 찾을 길이 없어 자살을 선택했다. 2005년 11월 쌀 수입 개방 반대를 외쳤던 농민집회에서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수 십 명이 다치고 심지어 농민 두 분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이때 정권과 언론은 한국의 투쟁단을 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교란하는 과격집단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체제가 가하는 폭력에 맞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숭고한 싸움이 이익집단의 어거지로 변화되고 말았다. 홍콩 투쟁단이 삼보일배를 진행할 때 한국 언론은 평화집회를 하고 있다며 추켜세우다, 조금이라도 충돌이 있으면 바로 과격 폭력집단으로 매도해 버린다. 결국 '제도'가 보장하는 평화적 시위만을 정당화한다. 사실 정권과 언론이 의도하는 것은 평화적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가 보장하는 범위 안인가 바깥인가 이다. 오늘날 법·제도는 민중의 저항권을 기본 밑바닥에서부터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가 정해놓은 경계 밖으로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평화적이건 폭력적이건 관계없이 공권력(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민중의 저항권이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농업말살과 그에 따른 생존권 위협은 농민에게 체제가 가하는 구체적인 폭력의 형태다. 이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폭력을 빌미로 ‘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은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콩 경찰은 투쟁대오가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도와 원칙을 들이대며 투쟁대오의 인권을 무시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17일 밤과 18일 새벽 도로를 봉쇄하고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한 점(화장실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수용공간이 충분치 않음에도 무조건 연행하여 홍콩법률이 정한 규정도 지키지 않았던 것(2명 수용 유치장에 21명이 수용된 경우), 시위대가 범법자라는 이유로 경찰관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점(구타, 물리적 억압) 등은 제도를 넘어선 일체의 행위에 대한 체제의 '폭력'이다. 그들이 사실 ‘제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법과 제도를 위반하는 모든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여기서 그대로 드러난다. 고 전용철, 홍덕표 열사 투쟁의 경우에도 그렇다.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 당시, 법과 제도,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이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의 발언은 부여된 ‘폭력’의 권한으로 법과 제도를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는 항변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대책을 강구한다. 최근 그들이 제시하는 평화시위대책이라는 것이 민중의 저항권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제도’와 ‘질서’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것, 이것'만' 지키면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폭력의 진위공방만을 하면서 정작 산 농민을 죽은 농민으로 만든 쌀 시장 개방, 농업 말살 정책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성찰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가며 삶의 가치보다 경쟁이 우선시 되고, 사람목숨보다 이윤이 중요한 세상에서 자본과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반격의 완결성은 더해가고 있다. 거품경제에 기반을 두어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돌입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민중적 대안이 될 수 없다. 법과 제도, 이윤이 놓인 자리에 삶의 권리를 위한 가치들로 대체하는 투쟁이 절실하다. 홍콩시민들과 여러 나라의 투쟁단과의 교류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삼보일배로 보인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망이,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에서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홍콩의 민중이 한국의 민중이 서로의 경험을 환류하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홍콩에서 수많은 농민열사를 앞세운 농민활동가가 울다 웃으며 한 말처럼 말이다. "우리 죽지 말고 살아서 투쟁합시다!" "WTO 끝장내고 신자유주의 박살내자!" 이는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에 나선 민중들이 전 세계 민중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1> “주거는 ___________이다.” 2> “주택은 ___________이다.” 1>의 경우, ‘인간의 필수 권리’ 등의 답변이 자연스럽겠지만 2>의 경우에서 문제가 달라진다. 오랜 세월 ‘집’이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버린 동안,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평생의 노동을 대가로 하기도 했고, 집 없는 이들, 집 잃은 이들의 육체·정신·삶을 통째로 갉아먹는 심각한 인권위협 요소가 되기도 했다. 주택문제는 집 없는 ‘무능한’, ‘게으른’, ‘부끄러운’ 인생들의 문제제기를 틀어막아 온 채 거품경제를 지탱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주택, 주거의 문제가 인간의 삶의 권리임을 천명하기 위한 기획이 요구된다. 한 평도 못되는 쪽방, 그마저 없으면 노숙 지난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빈곤사회연대(준)가 주최하는 겨울빈민현장활동이 진행되었다. 건교부가 법으로 정한 “최저주거기준”(최소면적과 방의 개수, 설비, 주택 구조 등의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에조차 미달되는 가구가 약 330만(전체가구의 34%)에 달한다. (최저주거기준은 1인의 경우, 부엌, 화장실을 포함한 3.6평으로 그야말로 최저주거기준이다. 유엔인권위 등에서 정하는 생활환경, 입지 문제 등은 기준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나마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숙인, 무허가판자촌이나 쪽방 등은 조사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번 겨울 빈활에서는 참가자들이 실제와 비슷한 시설의 쪽방을 직접 제작해 이틀 간 생활하기도 했다. 서울역광장 한 켠에 지어진 1.2m X 1.8m 크기의 쪽방은 고작 합판 한 겹이 땅의 냉기와 1월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정도였지만,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이 찾아와 “이 방 분양하는 것이냐”, “얼마나”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쪽방은 영등포나 서울역 등지에 많은데, 공동화장실이 있고, 세면 공간(온수시설은 물론 없다)이 있을까 말까 한데, 한 평도 안 되는 쪽방이 하루에 임대료가 1만원에 달하고 한 달을 계약하면 20만 원 정도라지만, 하루하루 일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장기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는 날은 쪽방에서 잠을 청하고(보통 두세 명) 돈이 없는 날은 한 쪽방에 임대인 모르게 대 여섯 명이 모여 추위만 간신히 피하며 밤새 소주병을 기울이거나, 그나마도 없으면 역사나 지하도에 박스집을 짓게 된다.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쪽방이 고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 달에 드는 이 정도의 돈으로 월세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 싶지만, 문제는 결국 안정적인 수입이다. 비나 추위를 간신히 피하는 쪽방 생활은 결국 정신과 육체를 좀먹는다. 안정적이고 안락한 주거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한, 노숙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피로와 가난은 심화되어갈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정책의 허와 실 빈활 실천단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다가구매입임대주택의 현황을 조사하러 나섰다. 은평, 강서, 마포, 광진 등 서울시에 구청이 매입하여 임대 중인 주택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1989년 영구임대주택보급을 시작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사업이 이루어져왔으나, 공공임대, 국민임대주택 등의 건립은 극히 제한적(2004년 현재 329,507호로 전체 주택재고의 2.5%, 네덜란드의 경우 공영임대주택이 41%, 영국 20%, 프랑스 16% 등이다)이거나 저소득층의 현실에 맞지 않는 높은 임대료 문제가 제기되어온 바 있다. 2001년 9월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임대해 도시저소득층의 주거를 안정화하기 위해 다가구매입임대주택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급대상자들은 15평 기준, 임대보증금 1천1백만~1천3백만 원에 월 임대료 10~11만 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매입 주택은 침수나 1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70%가 넘는다. 매입된 주택의 노후 정도에 따라 3백만~1천만 원 정도의 수리비를 지원하지만 근본적인 건물의 부실을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서울 5개 지역에서 총 503호를 매입해 시범운영하고 있고, 당초 계획(1만 호)을 확대해 2015년까지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5만 호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민간건설회사가 건설한 경우에는 임대주택의 2/3 가량이 부도가 나서 경매를 통해 임차인들이 퇴거당하거나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주택공급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개발지역의 강제철거(용역깡패에 의한 동절기 폭력철거는 여전하다)가 발생한다. 이러한 주택임대사업이 결국은 투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인 한, 그리고 건설경기에 힘입어 거품을 키워온 경제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이러한 악순환이 끊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강남 개발과 투기의 그늘, 포이동 266번지 빈활 실천단은 마지막 날 포이동 266번지 주거실태조사를 진행했다. 포이동 266번지는 1981년도 이후부터 넝마주이, 전쟁고아와 같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정부가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애초에 45명이 이주했으나, 1986년 이후에도 상이용사 등이 계속 유입되어 현재 주민이 104가구에 달한다). 이후 경찰이 상주하면서 주민들을 감시하고 툭 하면 사회정화 차원에서 누명을 씌워 유치장에 끌고 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포이동 사수대책위 조철순 위원장은 가난하지만 절도사건 한 번 일어난 적 없는 마을에서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경찰공권력에 의해 멸시받고 억압받았던 과거를 설명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경찰의 폭력을 피해 땅굴을 만들어 주민들이 몰래 숨어 지낸 날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 포이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마을 앞으로 고지되는 전기·수도요금을 나누어 납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모두 주민등록 등재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1986년경 포이동 200-1번지로 주민등록 등재를 해놓았지만, 1989년 이후 시유지로 선정된 이래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변경해야 했다. 1989년부터 부과되기 시작한 토지변상금이 누적되어 주민들 각각 5,000~6,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타워팰리스를 양재천의 둑 하나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는 강남을 중심으로 일었던 주택, 땅 투기 거품의 이면에 그늘로 존재하는 곳이다. 빈활 실천단은 조를 나눠 포이동 주거실태조사를 벌였다. 마을의 모든 집들은 합판으로 벽을 세우고 플라스틱 덮개와 비닐 등으로 지붕을 세운 형태였다. 마을 곳곳에 몇 몇 가구 별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4인가구가 2.6평 남짓의 단칸방에 생활하고 있는 등 조사한 18가구가 모두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실태조사에 앞서 진행된 주거인권학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과 살 수 있는 집을, 각각의 상황을 가정해 조별로 진행해보았다. 주거의 문제가 누구에게나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임과 동시에, 주택이 재산 소유의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한 안 좋은 추억들이 있는데, 언제나 집은 빈부의 표상이었고, 따라서 작고 누추한 집은 부끄러움의 표현이었다. 주민등록 등재를 요구하고 주거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포이동 주민들의 경우, 그 과정까지의 고통이 너무 컸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이동 주민들은 강남의 섬처럼 존재하는 이곳에 사는 동안 개발 이후 입주하기 시작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멸시와 적대가 자식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집이 늘어서 있는 마을 한편에는 모아온 종이와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작업장이 보였다. 마을회관의 옥상에서 내다보이는 강남아파트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는 이곳이 시유지에서 풀려나고 재개발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다운 주거의 권리를! 현행 국민기초생활법 하에서 빈곤층에게 주거급여가 제공되고 있다. 생계급여 항목에 주거비를 포함시키는 동시에 급여형태로 주거급여를 보장하는데, 1, 2인 가구 기준 33,000원이 지급된다. 이를 일 년 단위로 모아 주거수리형태로(집수리사업단 등의 자활사업을 연계시킨다)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사업이 어떠한 향방으로 귀결될지 단언할 수는 없으나, 상품화 논리 속에 집이 가장 효율적인 투기상품으로 간주되는 풍토는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후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겠다며 수많은 임대아파트 대기자와 무주택자를 기만하고 있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서 부동산을 억제,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을 뿐이다. 만약 정부의 정책이 빈곤층에게 제대로 된 주택보급을 실시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주거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8·31대책은 집권세력의 재집권 전략의 일환으로서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빈활 중 진행된 주거인권학교에서 우리가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한 퍼즐을 맞추었다. ‘내가 원하는 집’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권리를 기반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집이 없는 경우, 쪽방 생활을 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 그 권리들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갈대, 나무, 벽돌로 집을 지었다는 돼지 삼형제 우화는 그들이 가진 재산과 그들이 행하는 노동의 형태를 담고 있지 않았다. 누군들 벽돌로 된 단단한 집을 지을 생각이 왜 없겠는가. 벽돌을 구할 돈과 시간이 없는 800만 절대빈곤층, 집 없는 절반의 인구가 느끼는 박탈감을 여전히 능력의 결여, 게으름의 소치로 치부할 것인가. 자신의 집을 가진 이들은 50.7%(건교부 통계) 정도라고 한다. 절반의 집 없는 이들의 수치심과 패배감, 안락한 쉴 공간이 없는 이들의 비참한 가난의 굴레는 집을 소유하기 위한 끝없는 경주를 통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노숙인들과 포이동 주민들의 자기 존재와 권리의 천명은 옹호되어야 하며 인간다운 주거권 실현을 위한 투쟁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1. 시작하며 참여정부에 들어 지금까지 약 20여 차례 이상의 부동산대책이 발표되었고 지난 8 ․ 31 부동산대책은 지금까지의 발표보다 부동산투기 근절과 집값 안정에 있어 좀 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투기수요억제를 위한 세제강화정책은 기본적인 방향에서 타당성이 있으나, 개발이익 환수장치 미비, 부분별한 공급확대, 분양가 규제를 통한 집값 안정 등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05년 정기국회에서 8 ․ 31종합부동산대책 후속 14개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며 입법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의 강남권을 중심으로 하는 투기세력과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진영에서는 ‘세금폭탄’을 운운하며 헌법소원 제기 등 강력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위 1%가 전체 사유지의 51.5%, 5%가 82.7%를 소유하고 있다는 정부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토지소유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어 토지소유편중 현상을 완화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부대책은 문제가 발생하면 대책을 내어놓는 뒷북치기 형식을 반복하는 근시안적인 접근방식을 취해오면서 오히려 ‘강남불패’의 신화에 힘을 실어 주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정부 정책입안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고민하며 대책을 마련하였다고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사회적 권리로서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에서 주택 및 토지정책이 입안되지 못하기 때문에 임시방편의 대책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집을 ‘삶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국민들의 인식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토지 및 주택의 투기를 통하여 보통사람들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돈을 단 한 번의 기회에 불로소득으로 챙기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몸 하나 누울 자리가 없어 거리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하는 노숙인이 존재하는 극심한 양극화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뒷면에는 무주택서민들과 저소득층 사람들의 서러움과 눈물, 그리고 허망함이 감추어져 있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2. ‘주거권’의 개념 ‘주거권’은 실정법상에 명시된 용어는 아니다. 헌법은 물론 개별법령에도 ‘주거권’이라는 용어는 쓰이고 있지 않다. ‘주거권’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집중으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 무주택자가 증가하고 도시재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도시영세민의 주거대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을 배경으로, 1980년대부터 철거민단체가 결성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주거권’을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주거는 인간 삶의 보금자리이고,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의 근거지이며,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주거’의 확보가 필요불가피하다. ‘적절한 주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제2차 유엔인간정주회의(Habitt Ⅱ)의 하비타트 의제에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하비타트 의제에서 ‘적절한 주거’란 적절한 사생활 보호, 적절한 공간, 물리적 접근성, 적절한 안정성, 점유의 안정성, 구조적인 안정성과 내구성, 적절한 조명․ 난방․ 환기, 물 공급과 위생 및 쓰레기 처리 시설과 같은 적절한 기반시설, 바람직한 환경의 질과 건강에 관련된 요소들, 일자리와 기본적인 편의시설에서 인접한 적절한 입지 등을 의미함과 아울러, 이 모든 것이 부담할 만한 적절한 지출을 통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하비타트 의제 para 58) ‘주거권’에 대한 개념은 하비타트 의제의 ‘적절한 주거’에 관한 권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적절한 주거’가 단순히 주거공간의 확보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의 질, 주거환경, 경제적 부담의 적정여부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고 있으므로, ‘주거권’ 또한 단순히 주택의 공급을 요구하는 권리에 그치는 것이 이니라, 더 나아가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한국도시연구소, 『주거기본법제정을 위한 연구』,1998). 3. ‘주거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현실 한국사회에서는 ‘주거가 권리’라는 인식은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수준의 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이, 참정권이나 신체적 자유와 같은 권리처럼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거는 ‘삶의 자리’이고 생명과 가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토대이다. 주거 보장 없이 인간은 더 이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고, 다른 모든 권리의 실현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기본적인 수준의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이를 보장하는 것은 사회의 책무이다. 그래서 인권보장이 잘된 국가와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는 주거를 보편적인 권리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의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과열투기 현상이 전반적인 집값 상승을 부추기며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그 동안 집 값 및 토지 값 상승 과 전․월세 값 폭등의 현상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되었고, 특히 이번의 사태는 IMF경제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건설경기 부양책 및 부동산경기 활성화 등의 주택정책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발표된 정부의 대책은 부동산투기 근절과 집값 상승을 잠재우지 못하였다. 이유는 근본적인 정책수립과 문제해결이 ‘주거권’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 정권을 거쳐 오는 과정에서 수립되었던 정부의 주택정책을 살펴보면, 주택이 국가운영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공공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민간주택시장 체제를 통한 중 ․ 대형 위주의 주택공급에 치중하며 일반서민들과 저소득층을 포괄하는 다양한 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형주택 및 공공임대주택건설의 정부 역할은 미비하였다. 또한 중 ․ 장기적인 계획아래 체계적이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책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한 정책결정으로 혼란을 가중시켜왔다. 이러한 정책 수단은 주택을 재산의 증식수단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국민들의 의식을 부추기는 우를 범하며, 오히려 혼란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어 왔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평균적인 국민소득증가에 비례하여 집 값 상승이 월등하게 높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주택정책의 실패는,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다양한 소득계층의 주택수요에 부흥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사상유래 없는 집 값 상승을 유발하였고, 서민층을 포함한 빈곤층의 주택문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IMF경제위기 이후 대량해고 및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소득의 감소로 인하여, 주거수준의 하향조정과 함께 주거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며, 자기수준에 맞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주택보급률이 2003년 현재 100%를 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민을 비롯한 저소득층의 주거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택 재고가 턱 없이 부족하여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향후 경기하락이나 IMF와 같은 경제위기가 또 다시 닥쳐온다면 주택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발전하여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시점에서 주택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며, ‘주거권’을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자리매김 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고민과 지혜가 모여야 한다. IMF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고 판단된다. 우리에게 가져다준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소수의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중산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언제라도 극빈층(빈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또한 이러한 위기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시급한 실업, 복지문제를 비롯하여 환경, 교육, 교통, 의료 등의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의 개선을 위하여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단위의 운동영역에서 다양한 노력과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이 창출되어 실업의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으로 복지의 혜택이 확산되며, 또한 환경, 교육, 교통, 의료 등의 시스템이 발전하여 다소 삶의 질이 높아진다 해도, 가장 기본적인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삶의 질 개선에 한계가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집’의 문제, 즉 주거의 안정이 필수적이며, ‘인간다운 삶의 질’ 그 중심에는 ‘주거권’이 있다는 것이다. 4. 개선되어야 할 과제 1)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① 주거권의 사회적 인식 확산 현재 우리나라는 ‘주거권’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공감대를 확신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그 동안 시민사회영역은 국가가 자의적으로 권리를 해석하고 제약하는 것을 막아왔고, 국가가 권리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도록 요구하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주거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하여 저항하고 주거권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다양한 차원에서 압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주거권’이 사회적인 권리로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였다. 이는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주거에 대한 권리의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주거권’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거권’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여론형성에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들도 ‘주거권’이 보편적인 사회적 권리로 확산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수립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②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및 국민의식 함양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과 더불어 주택(집)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집을 삶의 자리로 보지 않고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도덕적인 해이를 변화시켜야 한다. 토지는 재생산이 불가능한 재화로서 모든 국민이 함께 누려야 할 한정된 자원이다. 또한 토지 위에서 생산되는 주택은 상품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원으로서의 기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토지 및 부동산 공개념의 이념에 따른 제도보완, 투기근절을 위한 강력하고 다양한 정책수립이 시급하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한 견제, 감시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운동성 강화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며, 사회지도층의 1가구 1주택 갖기 캠페인 등을 통하여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한 국민들의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한 모범적인 실천 등 시민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요구된다. 2) 주택정책의 측면에서 2003년 참여정부의 출범이후 정부의 주택정책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주택법개정을 통한 최저주거기준 법제화, 국민임대주택건설의 확대, 장기저리주택금융정책의 도입(모기지론), 주거복지과 신설 등 기존의 주택건설 공급위주의 정책에서 주거복지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의지와 수단 간의 불일치 현상으로 인해 아직 주택정책이 공급위주정책에서 주거복지정책으로 완전한 방향전환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① 주거기본법 제정 현행 주택법의 한계를 뛰어 넘는 주택정책의 기본이념,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주택정책에 대한 책임과 의무, 저소득층의 구체적인 지원방안,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해소 방안, 임차인보호, 강제철거 금지 등을 포괄하며 주거에 대한 권리(주거권)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주거기본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② 최저주거기준의 실현 현재 정부는 최저주거기준이 법제화 되었지만 미달가구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2004년에 발표된 주택건설종합계획에서 추상적으로 향후 5년 안에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현재 약 34%, 330만 가구)를 약15%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최저주거기준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숙자 및 쪽방거주자, 비닐하우스 촌, 지하셋방, 공공임대주택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나, 이 부분의 접근 방법 및 해결을 위한 정책조차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과 단계별 접근 전략 수립이 시급하며, 최악의 주거 빈곤 가구에 대한 정책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숙인에 대해서는 우선 자립이 가능한 사람부터 공공임대주택에 입주가 가능하도록 하고, 다양한 주거서비스를 통하여 근본적인 노숙인 발생을 예방하고 해소시켜나가야 한다. 또한 쪽방은 공공이 이를 매입하여 개인의 사생활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주거환경으로 개선하여 노숙인 및 주거 빈곤 상태에 있는 저소득층이 활용하는 공공시설로 개선되어야 한다. 비닐하우스의 경우 전기, 상하수도, 화장실 등 주거환경의 개선과 주소지 부여가 시급하며, 중장기적으로는 비닐하우스 촌 자체를 해소하는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비닐하우스 촌 거주자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의 우선 부여, 임대료보조금 지급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하셋방의 경우, 근본적으로 지하공간의 건축을 금지하는 제도 개선과 환경개선을 위한 지원, 공공임대주택 우선 입주 등의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③ 각종 개발 정책 제도 개선 도시․주거환경정비사업, 택지개발사업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개발정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부동산투기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은 재건축사업, 개발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재개발, 공공이 개입하여 개발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은 개발계획 단계부터 주민참여가 한정되어 있어 개발주체의 입맛대로 추진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또한 세입자 대책도 미흡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원주민의 재 입주율이 극히 저조하여 주거빈곤층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토지수용절차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며 주민들의 반발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개발사업의 본질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주거와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계획단계부터 개발대상 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개발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주민들의 주체성과 공공성이 강화되어 개발이익 보다는 ‘정주개념’의 올바른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순환식 개발을 통하여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책도 수립되어야 한다. ④ 공공임대주택 정책 개선 현재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계획에 의한 공급이 추진되고 있지만, 다양한 평형의 공급, 소득수준에 따른 임대료체계의 정비, 임차인의 권한 강화 및 적극적인 관리참여, 주민자치활동의 법적 권리 보장 등을 개선하기 위한 임대주택법의 체계정비 및 제도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 ․ 장기적으로는 영구임대, 50년 장기임대, 국민임대, 5년 민간임대 등으로 분류되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법률체계를 정비하여 하나의 제도로 일원화해야 한다. 이는 공공임대주택이 갖는 의미가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주택의 성격으로, 공급과 배분에서 형평성과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각 유형에 따라 적용하는 법적 규정도 다르고, 대상도 틀려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건설, 공급, 배분, 관리, 임대료체계 등이 하나의 법률체계에서 운영되며,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하여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성을 담보하는 서구사회의 사회주택 개념의 ‘공공주택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⑤ 임대료보조 제도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생계급여 중에 일부분으로 편입되어 있으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주거급여제도를 분리,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주거복지서비스의 순수한 기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중앙정부의 재정 투자 확충의 어려운 현실과 실질적으로 주거비부담의 상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차상위계층을 비롯한 저소득층의 주거복지향상에 유효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⑥ 주택금융제도 활성화 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설립되고 장기저리주택금융제도(모기지론)가 실시되고 있으나, 주택금융시스템 및 인프라 구축 등 사전준비가 미흡하고 또한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것 등이 많은 우려를 낳게 한다. 장기저리주택금융제도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확대하는 장점은 있으나, 대상이 소득 6-7분위 이상 중산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의 한계로 인하여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주택자금대출 이자율 인하와 원리금에 대한 소득공제, 계층별로 필요한 주택자금이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주택금융체계와 현행 국민주택기금 운용을 개편하는 주택금융공급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주택구입이 가능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시장소외계층으로 구분하는 접근이 필요하고 시장소외계층의 경우 ‘정부보증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모기지론 시장은 아니지만 민간영역의 주택시장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없는 영세서민을 위한 ‘영세민 전세자금대출’금액을 확대하여 주거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⑦ 주택정책의 지방분권화 우리나라 주택행정체계는 조직과 예산 측면에서 중앙정부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주택은 물리적 특성상 지역적 사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주택시장은 원래 지역시장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위주의 계획은 실제 지방의 주택소요 및 사정에 무관한 정책이 펼쳐지고 중앙과 지방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 예로 국민임대주택 건설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으로 건설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방정부 주택정책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위주의 정책에서 지방이 주택정책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해야하는 과감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지자체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개선, 조직적, 인적 자원의 배양이 강력히 요구된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의 실현도 지자체가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된다. ⑧ 비영리주택활동 활성화 주택분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그리고 시장의 역할 이외에도 제3영역을 통한 문제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민간영역의 비영리주택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어 주택정책 사각계층의 문제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비영리주택활동의 범위는 주택의 공급, 관리, 수리이며 근본목표는 주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립과 연대감을 통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토록 하는 것이며, 건물에 대한 지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영리주택활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주거관련 운동단체들의 활동 뿐 아니라 공공부문의 지원과 전략적인 계획이 필수적이다. 우리 현실에서 비영리주택공급 및 관리의 우선 대상자는 노숙자와 쪽방, 비닐하우스 등의 비정상주거가구이지만, 향후 중장기적으로는 대안적인 점유 형태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NGO(지역운동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조합운동도 가능하다고 본다. ⑨ 국민주거실태조사 및 주택통계체계 개편 주택정책이 기존의 공급위주에서 주거복지향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국민주거실태조사와 주택통계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다. 주택정책 지표가 과거의 주택보급률에서 최저주거기준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국내인구주택관련 전수조사(인구주택총조사, 센서스)로서는 주거실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책지표로 활용하여 국민주거복지향상을 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별도의 주거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주거복지향상을 통해 주거복지가 달성되는가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계획하기 위해서는 공급, 배분, 전달, 구매, 소비 등의 전 과정이 주택정책의 체계에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통하여 거시경제 및 주택의 공급, 수요 상황을 고려한 통계지표를 선정할 수 있다. 5. 마무리 하며 ‘주거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인권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다운 삶의 질’의 향상은 ‘주거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처럼 ‘삶의 자리’, 즉 주거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는 때도 없는 것 같다. 근래에 들어 ‘주거권’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주거권’이 포괄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의 개념이 우리나라 전체사회에 일반화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아직도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주거권’에 대한 중요한 의미와 개념을 전체사회에 확산시키고, 더 나아가 제도화로 정착시켜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정부,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국민)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집’을 재산증식의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의식부터 변화되어야 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각자 나름대로 자손을 번성케 하며, 또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휴식의 공간으로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지금도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회적인 권리로서의 ‘주거권’이 보편화되어 있지 못하고 상품으로서의 기능이 우선시되며 ‘인권’의 몰락을 스스로 자초한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심’ 때문이 아닐까!!! [참고 문헌] 한국도시연구소,『주거기본법제정을 위한 연구』, 1998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리 드러날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의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진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 증가가 수출 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자산규모를 더욱 확대하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 원인인 부유층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대미투자를 감소시켜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통해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활용하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초민족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보장하는 수단이다.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 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 통화 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 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가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또한 부시정부는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마저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국제기구와 국가주권의 메커니즘을 위반하는 일방주의적 개입도 충분히 정당하다는 접근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이른바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법안은 국무부 담당 하에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할 계획이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나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 따라서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외국자본의 높은 배당 성향과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문제가 되었다(외국자본이 챙긴 배당액 규모는 1998년 5억 달러에서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 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거나,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대응했다. 그런데 최근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여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전환한 386세대, ‘개혁적’ 지식인과 기술관료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탈계급연합’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따라서 노무현정부와 세계 곳곳에서 만개한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의 공통점은 지지층의 휘발성이 매우 강하며, 따라서 지지율이 급상승과 급락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하고, 이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내각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집권 핵심층은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명의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 이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종속적 수단으로 전환된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다소간의 증세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적 공격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공문구에 그칠 때가 많지만, 민중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필연적인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한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화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지난 1월 25일 전국민주주의학생연대(가) 조직위 총회에서 진행된 빈곤팀 강연문 입니다. [사회운동] 7,8월 호 특집 '빈곤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을 재구성하고 최근 노무현정부의 사회양극화 및 저출산, 고령화 관련 입장에 대한 초벌적인 비판, 그리고 빈곤철폐운동에 대한 약평과 쟁점을 정리하는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