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것은 외국인 투자유치 계획입니다. 물론 구체적이지도 않고 이벤트일색입니다. 별것도 아닌 자료를 이렇게 줄줄이 올리려니 참으로 민망하군요.
자본주의 합리성 : '로또는 합리적이다' 제목 : 로또 하는 건 미친 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조합한 경우의 수는 45C6 = 8,145,060, 즉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는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할 확률과 맞먹는다. 그러니 벼락 2번, 교통사고 5번 당하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로또를 해라! Re : 로또 하는 건 합리적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평생동안 수백억, 아니 수십억의 돈을 벌 확률은, 단연코, 814만5천60분의 1보다 낮다. 그러니 수백수십억의 돈을 벌 자신이 있는 사람만 로또를 하지 마라! 어떤 게시판의 이 답변만큼 로또 열풍의 본질을 잘 꿰뚫고 있는 말이 있을까? 수백수십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8145060분의 1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려받은 종자돈 없이 자수성가하여 수백수십억을 벌 가능성은? 어쩌면 자수성가할 가능성도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할 확률보다는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빽도 능력도 없이 평범한 사람이 수백수십억을 벌 가능성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단연코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높지 않다. 따라서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한동안 언론에서는 로또 열풍을 두고 '사행심'이니 '황금만능주의'니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상식적이고 진부한 소리지만, 상식적이고 진부한 소리가 대개 그렇듯이 참으로 옳은 말씀들이기도 하다. 사행심과 황금만능주의, 맞다. 그러나 위의 답변이 보여주듯이, 로또를 사는 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 로또 열풍과 로또 열풍을 다루는 언론의 상식적인 말씀들이 본의 아니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합리적인' 사행심과 황금만능주의, 즉 적나라한 '자본주의 정신'인 것이다. 자본주의 원리 : '돈이 돈을 낳는다' 자본주의(資本主義). 자본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상적인 어법으로 돈을 지칭하고, 주의(主義)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일정한 태도나 방침 또는 주장'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바로 '돈'이 방침으로서 변함없이 지켜지고 주장되는 세계를 뜻한다. 즉, 자본주의 원리란 두말 필요없이 간단하게 '돈에서 더 많은 돈으로(M-M´)일 뿐이다. 가치를 낳는 것이 사실은 인간의 노동임을 강변하기는 어렵다. 실로 어느 시대에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노동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본주의의 특징적인 점은 이 과정이 상품, 특히 일반화된 상품으로서의 돈의 자체적인 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 유명한 물신화 과정이지만, 이때 화폐 물신성의 신비화란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단순한 허위가 아니라 실제로 세계의 메카니즘이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이 가치를 낳는다는 사실이 현실적이려면 자본주의 너머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현실적으로' 돈이 돈을 낳는다. 그리고 물론 금융화는 이 자본주의 원리를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리하여, 잘 알다시피 십억으로 수십억을 만들고 수십억으로 수백억을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수백수십억을 만지기는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하고도 살아남을 딱 그만큼 어려운데, 정의 그대로 그들이 만진 돈은 살기 위해서 소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혹시 약간이라도 남는 것이 있다면, 이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원리를 따라, 돈이 돈을 낳는 곳을 기웃거린다. 이른바 재테크는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남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여서 일평생동안 수백수십억은커녕 수억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주식 시장에서도 큰손이 아닌 개미군단이 이익을 보기란, 낙타를 바늘구멍에 통과시키거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만큼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나 냉장고 속에 들어간 코끼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천재는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돈을 낳을 돈도 없고 재테크에 천재적 재능을 부여받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M-M´를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로또 복권인 셈이다. 주식을 포함한 각종 도박은 베팅한 판돈에 비례하여 만질 수 있는 액수가 결정되는 반면, 로또는 비교적 적은 돈을 가지고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되 돈을 낳을 돈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로또 뿐인 것이다. 그것이 사행심(射倖心)이라면 바로 자본주의 원리가 사행이다. 자본주의 정신 :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 뇌물을 '봉투'라든가 아니면 좀더 시적으로 '한조각 마음(寸志)'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부모님처럼 '돈'이라는 말을 직접 입에 담으면 뭔가 천박한 것처럼 느끼는 전자본주의적 습관을 간직한 사람들은, '인생역전'이라는 노골적인 로또 광고에 당황해 한다. 연전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도 그랬다. 황금만능주의를 부추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 되세요'에 이어 '인생역전'이 대유행어가 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알몸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황금만능주의는 자본주의 정신의 누드다. 그리고 알다시피, 완전한 누드보다는 몇 조각을 가린 포르노가 훨씬 음란하다. 지하철 역 로또 광고판에서 '인생역전'이라는 큰 글씨 밑에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라는 카피를 보는 순간, 나는 통쾌했다. 위선적인 모자이크 처리를 걷어내고 적나라한 알몸을 보는 순간의 쾌감이랄까. 그럼, 누구나 벤츠를 탈 수 있고말고. 벤츠를 타고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하인들을 맘대로 부리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없다. 머리가 좋을 필요도 없고 성실할 필요도 없고 교양이 있을 필요도 없고 성품이 좋을 필요도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돈은, 머리가 좋거나 성실하거나 교양이 풍부하거나 마음이 착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그 알몸을 가려 보려고 노력해왔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은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한 근면과 검약이라고 주장한 이래, 수많은 이데올로그들이 떠들었던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이 많은 사람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거였다. 부자는 현명하거나 성실하거나 아는 것이 많거나 대인관계가 좋거나, 즉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에. 우리가 알다시피 부와 능력은 상관이 없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연구들이 밝혀내고 있듯이, 사실상 자본주의 초기에도 대부분의 부르주아지는 전자본주의적 제도에서부터 돈을 낳을 돈을 물려받은 사람들이었으며 근면과 검약이나 능력으로 자수성가하여 자본가가 된 케이스는 매우 소수였다. 로또를 통해 인생역전,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 근면·검약이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야말로 행운일 뿐인데, 사실은 모든 부자가 그러한 것이다.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는 '벤츠를 타는 놈도 별 거 아니다'라는 것을 까발린다. 벤츠를 타고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하인들을 부리는 부자들은 현명하거나 성실하거나 아는 것이 많거나 착할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특별히 현명하지도 성실하지도 아는 것이 많지도 성품이 좋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서 벤츠를 못탈 이유가 무엇인가. 로또를 맞추든 뭐든 돈만 있으면 말이다. - 이게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의 누드 따라서 로또는 자본주의의 메타포, 또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원리를 깨치고 있고 그 정신을 체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리와 정신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은 항상 극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원리와 정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도록 내던져져 있으나, 그 자본주의 메카니즘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원리와 정신에 따라 8,145,060분의 1의 합리적인 확률을 계산하며 로또를 산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빈둥거리며 로또 숫자를 적는 데만 골몰하는 흑인들의 절망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누드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도 발전하기는 했다. 이제 거추장스런 가리개를 화끈하게 벗어던지고 알몸에 육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PSSP
21세기는 여성의 세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급격히 증가했다.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에 따라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구조조정으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 관련 예산이 삭감되어 가계유지 비용이 급증함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부족한 가계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노동자 가족의 전략으로 중요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계급의 생존전략으로써 뿐만 아니라, 경제의 금융화와 서비스화를 특질로 하는 현재의 경제발전 방향 속에서 제기되는 자본의 요구이기도 하다. IT 산업과 금융-서비스 산업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인력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과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동력을 형성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하는 경제 전문가들의 논의에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지식기반-고부가가치 산업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함께 높은 감수성과 창의력을 갖춘 여성인력이 경쟁의 무기가 되며, 전체 경제구조에서 서비스업의 구성비가 높아지는데 발맞추어 '여성 인력'이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부각되고 있다.{{) 21C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성인력활용 선진화 방안(여성개발원/삼성경제연구소, 2001.12.11) }} '여성인력의 전략적 활용'은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출산율의 하락과 이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현상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출산-양육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남한의 합계 출산율(한 명의 여성이 평생동안 출산하는 자녀의 수)은 1.3명으로,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2.1명)에 훨씬 미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를 따르면 2075년에 경제활동 인구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된다.{{)경제활동가능인구(15-64세)변동 전망(김승권, 2002) }} 따라서 현재 노동시장 밖에 있는 여성 노동력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동시에 출산율도 높이는 방안이 적극 모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여성들의 요구라기보다는 노동력 부족 위기에 직면한 자본의 사활적인 과제가 된다. '노동시장에서의 남녀고용 차별 근절', '출산-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이제 더 이상 여성들만의 요구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지니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금융세계화가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서, 양육-출산-보살핌 노동의 제공자로서 여성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그 초점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 양성평등 실현 정책의 개요: '차별 시정을 통한 남녀고용평등실현' ,'참여복지를 통한 보육문제 해결'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그동안 여성업무가 각 부처에서 산재되어 추진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조율해주는 조정기구로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내에 여성정책조정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가 시행할 구체적인 여성정책의 방침은 크게 '차별 시정'과 '고용 촉진 기반 구축'을 통한 남녀고용평등의 실현, 사회복지시스템을 통한 보육 지원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당시 노무현 후보측이 제시한 여성정책과 공약{{) 민주당 여성정책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이는 지난 여성부의 성과와 여성단체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작성되었다. 1. 보육의 공공성 확대 2. 여성 일자리 창출과 취업촉진기반 조성 3. 남녀고용평등 실현 4. 대표성 제고 5. 양성평등한 가족정책 6. 가정과 직장의 양립 지원 강화 7. 폭력예방 및 인권보호 8. 여성의 복지증진 9. 모성보호와 여성건강 10. 양성평등문화 11. 여성과학자 정책 12.여군인력 육성 13. 남북여성교류활성화, 평화·통일·환경·국제협력에서 여성의 참여 확대 14. 여성부역할 제고 }}, 여성부의 2차 여성정책 기본계획, 노동부의 3차 남녀고용평등기본계획,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12대 국정 과제를 종합하면 노무현 정부가 시행할 여성정책의 가닥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고 있는 정책은 직장·가정의 양립체제를 보강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육의 공공성 확대'와 '모성보호 내실화·사회분담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인수위는 최근 보육관련 정책은 '참여복지 실천 5개년 계획'에 맞춰 추진하겠다며, ①장애아와 만 5세아 9만 1000명에 대한 무상보육을 올해부터 전면 실시하고, 0세부터 4세까지의 아동 11만 9000명에 대해 보육료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며 ②2008년까지 영유아 보육 수요를 완전 충족하고, ③영아·휴일·시간제 보육 등 다양한 서비스와 방과 후 보육서비스를 크게 확충하며{{) 지난 3월 6일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부가 발표한 「보육사업활성화방안」에 따르면 보육 서비스의 다양화의 내용은 ① 맞벌이이 부부가 증가하고 노동시간의 탄력성이 높아지는 추세’에 발맞춘, ‘야간’, ‘휴일’, ‘24시간’ 등의 ‘시간연장형 특수보육시설’등 서비스 다양화 ② 부모들이 직접 출자하여 보육시설을 마련하고 이것을 다시 (부모들이 납부하는) 월 보육료로 운영하는 ‘공동육아제도’ 등을 활성화 유도 ③ 민간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에서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보육료 상한 규제 철폐 }} ④아이를 둔 부모가 육아를 위해 일정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제 육아휴직제'를 도입한다는 구제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노동부는 '육아휴직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업주에게 지급되는 육아휴직 장려금(현행 월 20만원)을 현실화하고, 지방노동관서가 중심이 돼 관내 인력파견업체와 기업을 연계시켜 육아휴직 대체근로자 풀이 활용되도록 하며, 육아휴직급여 수혜를 위한 요건을 완화(1년→6개월)한다는 등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편 지난 2000년부터 시행된 모성보호법을 내실화하고 사회분담을 확대하기 위해 엄정한 법 집행과 취업규칙에 명문화, 근로감독 강화{{) ①임산부의 야근 및 휴일 근로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는 엄정한 법 집행, ②산전후 휴가제 등이 취업 규칙에 명문화될 수 있도록 유도③결혼,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한 권고사직 관행이 근절될 수 있도록 근로감독 강화. }}와 함께 임산부의 건강체크를 위한 정기건강검진제와 배우자 출산 때 사용하는 출산간호휴가제 입법화 등을 계획하고 있다. 두번째는 여성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각종 차별 시정 정책과 법 적용의 확대이다. 12대 국정과제에서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동안 이용되어 온 할당제가 시효를 거둘 수 있는 지원책이 뒷받침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①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이 제외된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일부조항(교육, 배치, 승진, 임금, 정년, 해고조항)에 적용을 확대할 것, ②남녀고용평등법 제2조에 간접차별에 대한 세부적인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여 외형상으로 중립적인 기업의 고용관련 기준이나 관행, 면접 절차가 사실상 여성에게 불평등한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 간접차별이 성립될 수 있음을 객관화할 것, ③동일노동은 물론 동일가치노동{{) 현행 법제상의 '동일가치노동'노동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지급 규정으로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에서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여기서동일가치기준은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며, 개별 사업장에 따라 합리적인 임금지급기준을 정함에 있어서는 직무평가에 필요한 직무범위·평가항목·평가방법과 임금산정기준 등에 관하여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고충처리기관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자, 노동조합 또는 남녀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업무처리규정에서는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① 기술이라 함은 자격증, 습득된 경험 등 업무수행 능력 또는 솜씨의 객관적 수준 ② 노력이라 함은 업무수행에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힘의 작용 ③ 책임이라 함은 업무에 내재된 의무의 성격˙범위, 사업주가 당해 직무에 의존하는 정도 ④ 작업조건이라 함은 소음, 열, 물리적˙화학적 위험의 정도 등 당해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처하는 작업환경 }}에 대한 남녀 동일임금 적용이 현장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지침을 구체화할 것, ④여성의 고용촉진기반 구축 방안으로 고용안정센터 내에 전담창구를 마련하고 육아와 근로의 병행이 가능한 여성친화적 시간제근로의 풀을 확보하여 구인·구직을 연계할 것 등이 노동부의 남녀고용평등 기본계획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밖에, 양성평등한 가족정책 시행의 계획으로 호주제 폐지 대책기구를 설치하여 현행 호적제도를 조기 폐지하고,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단위로 하는 '가족부'를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성인지적(性認知的) 가족지표 개발하고 이에 근거한 가족정책기본법 제정할 것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 산하에 성매매방지대책기구를 설치하고,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무료 법률구조사업, 현장 상담센터 확충, 자활지원사업 확대 등을 통하여 피해자 보호·사회복귀 지원 종합서비스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한 선출직 할당제 도입과 여성공무원 임용목표제를 도입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이 처한 '이중 노동'의 딜레마 위의 정책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을 전제하면, 호주제 폐지, 보육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노동에 대한 공적 지원의 확대와 같은 약간의 변화를 예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여성이 놓여있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단되어야 한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현재 여성에게 던져진 문제는 '어떻게 노동시장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을 것인가'하는 것을 훨씬 초과한다. '여성인력의 전략적 활용'이 자본의 요구로 적극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고용의 확대'는 더 이상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시장 진출 기회의 확대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련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는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라는 노동인구의 재생산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문제는 '생산과 재생산이 조직되는 구조'로 더욱 확대된다. '상품생산'과 '노동인구의 사회적 재생산'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내에서 여성은 노동시장 외부에서 수행되는 무임금 재생산 노동을 일차적으로 담당하도록 주체화된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출산-양육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노동'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여성정책의 과제는 이런 현실을 드러내준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노동시장에서 정규직보다는 임시직, 파트타임 등의 비정규직 혹은 비공식부문의 직종을 선택하도록 강제된다. 전체 여성 고용 중 이러한 비정규직 혹은 비공식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를 넘는다. 경제의 금융화-서비스화 경향에서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흡수하는 일자리는, 고소득-전문직 종사자들의 활동을 보조하거나 금융귀족들의 레저, 유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른바 하인 노동이다. 보험상품판매원, 방문판매원, 학습지 방문교사 등 이른바 '특수 고용직' 역시 대다수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노동은 노동시장 내에서 숙련을 요하지 않는 부차적인 노동으로 간주되어 낮은 임금이 할당된다.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노동자성조차 증명 받지 못함에 따라, 근로기준법상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함은 물론이고 임금체불, 업무상 재해와 각종 부당노동행위, 인권유린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런 경우,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부족한 가계 소득을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경우가 많아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스스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또한 문제가 된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부차적인 지위를 할당받는 여성들은, 다시 가족으로 돌아오면, 재생산 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관한 협상에 있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는 주로 돈을 벌고 가사를 부수적으로 하고, 누군가는 주로 가사를 책임지고 부수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대체로 좀더 안정적이고 다소나마 높은 임금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생계의 원천으로 삼는 선택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여성들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1차적인 책임으로 인한 노동시장에서 부차적인 지위와, 노동시장에서 낮은 임금으로 인한 가계 소득 구성에 있어서 부차적인 역할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끝없이 악순환되고,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재생산하고, '빈곤의 여성화' 경향을 부추긴다. 여성들의 종속은 이러한 성별 노동분업에 의거하여 지속되고 있다. 또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 현상은 한편으로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싸고 가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급등했음을, 다른 한 편으로는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출산-양육'과 '생계보조자로서 노동시장에 참여'라는 이중적인 역할이 여성 스스로가 감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음을 드러내 보인다. 노무현 정권의 '양성평등 정책'의 본질과 한계 이렇듯,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가족 내에서 여성의 부차적인 지위를 강화하는 성별 노동분업 구조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출생률 저하라는 노동인구 재생산의 위기'라는 배경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성별 노동분업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재생산의 일차적 책임자이자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서 여성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초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차별 시정을 통한 남녀고용 평등의 실현'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목표는 고용 기회에 있어서 평등을 약속할 뿐, 금융화-서비스화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노동 자체를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휴직 제도'와 '서비스의 종류 확대'를 골자로 하는 출산 및 보육의 사회적 지원 체계 역시, 이에 대한 여성의 1차적인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양성평등정책이, 가족 내에서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부차적인 지위를 전제로 하고 있는 한, 개인과 가족의 생존전략은 현재의 성별 노동분업 구조를 재생한 하게 되며, 이 속에서 여성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은 요원하다. 현재 자본주의의 생산과 재생산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공격 없이 단순히 성차별을 문제삼는 것은 노동시장 진출에 있어서, 그리고 재생산 노동을 분담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과 기호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강화시킬 뿐이다.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확대됨에 따라, 그리고 '저출산'이라는 재생산 위기에 직면하여,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을 비롯한 여성들의 의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여성들의 발언의 공간이 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 단체들이 활동은 여성들의 요구를 그 한계가 자명한 '평등'과 '보호'라는 틀 속에 가두고, 이를 실행 가능한 제도로 가다듬어, 정부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저임금과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여성 노동의 일반화와 노동인구 재생산의 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과 호응하여 여성운동을 '운동'이 아닌 '제도화'로 그 급진성을 탈각시키고 점차 화석화되도록 한다. 또한,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은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성들의 요구를 부차화 시키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자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에게 이중의 부담을 부과하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생존전략'에 호응하고 있어 빈곤의 여성화를 중단시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 속에서 여성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자신의 요구를 조직하고 발언할 때에 여성 자신의 요구를 급진화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 이것이 여성 스스로의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다. PSSP
노무현 신정부의 경제정책의 양축은 상시구조조정시스템(시장)에 기반한 기업(재벌)·금융 구조개혁의 지속과 이른바 [동북아중심국가 건설]로 명명된 한국경제의 새로운 중장기 성장전략의 추진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수년간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함으로써,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진 아메리카식 경제작동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DJ정권 5년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과는 노무현 신정부가 이어받고, 그 스스로 자임하는 정책개혁의 새로운 임무는 한축으로는 시장운영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세계화된 세계시장에 이미 상당정도 최적화된 한국경제를 재편입시키기 위한 중장기적 비전을 구체화하는 실천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말 경제특구법(경제자유구역법으로 개칭) 저지투쟁 과정에서 김대중정권의 [동북아중심국 플랜](이하 동북아플랜)의 반민중적인 일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은 경제자유구역 설치와 시행법통과만으로 그치는 일회성 사업도 김대중정권만의 아이디어성 기획도 아니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이란 기획이 처음으로 이야기되었던 시점은 1995년경 김영삼정부 시절의 4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제출된 때였고, 지난 대선과정에서도 이 계획에 관한한 이회창과 노무현간의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었다. 비록 지난해 11월 경제자유구역법의 국회통과를 막지 못했다하더라도 동북아플랜의 구체적 시행과 그에 따른 갖가지 개혁조치들의 추진은 적어도 노무현정권을 넘어 다음 정권이 등장하게 될 2010년경까지 이어지게 될 전망인 만큼 우리의 투쟁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당장 노무현정권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지난해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이 법의 갖가지 부대 시행령을 마련할 예정이고, 인천시는 올해 1월 중순경에 경제특구 개발 및 자본조달 업체인 미국 게일사(社)와 1단계 사업을 위한 토지공여(160만평) 본계약을 서둘러 체결한 상태이다. 동북아플랜에 대한 비판과 우리의 투쟁은 한국경제의 내일에 대한 비판과 투쟁인 것이며, 현 시기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절점으로서 새롭게 인식되어야하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플랜]의 개요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물류중심지화, 비즈니스거점화, 첨산기술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성이 그것이다. 김대중정권 시절 입안된 계획과 달라진 점은 물류·비즈니스거점화를 이루기위한 중간단계로 우선 국내의 첨단기술산업을 경제자유지역에 끌어들여 본격적인 외자유치를 위한 네트워크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방안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국내 재벌 측에서 제기한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줄이고, 외자에 대한 퍼주기식 인센티브만으로는 실제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북아플랜 전반의 기조나 핵심적인 실행과제들이 수정된 것은 아니다. 노동규제완화, 세금감면, 의료·교육 개방 등 초민족자본(TNC)에 대한 온갖 특혜로 가득한 기존 정부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비즈니스 중심인가 첨단산업·R&D(연구개발)허브 중심인가라는 신·구 정부 간의 논란 역시 인수위 측의 주장이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전략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금감면이나 노동규제완화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덧붙여 국내 IT산업과의 연관성이 고려되어야한다는 현실적인 입장이 부가된 것일 뿐이다. 동북아 플랜의 또 다른 축인 물류중심지화 계획이란 인천공항, 신부산·광양항 확충을 통해 이 지역 및 시설들을 동북아 허브공항 및 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것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대륙과의 연계를 추진한다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부가된다. 경쟁력 있는 국내외 물류 네트워크의 구축과 관세자유지역 지정 및 국제 물류지원센터 설립 등이 추진과제이다. 보다 복잡하고 핵심적인 계획은 비즈니스 거점화 계획이다. 각종의 기업서비스(Corporate Service)와 국제금융 관련 서비스를 갖춘 기업·금융 비즈니스 센터를 건설하여, 초민족자본의 동북아지역 지·본사와 금융기관을 유치한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이를 위한 추진과제는 인천, 신부산, 광양등지를 경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하고, 초민족자본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각종의 경영,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이 일차적이다. 지난해 경제특구법 투쟁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 경영, 생활환경 부분이었다. 그동안 국내법상(으로나마) 보장되 온 노동, 여성, 교육, 환경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기본 인권의 사각지대가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이것의 효과를 타지역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안 자체에는 특구의 전국화에 관한 분명한 언급은 아직 없다. 하지만 특구의 전국화라는 요구는 비단 전경련과 재벌들의 요구가 아니라 동북아플랜이 가지는 자체적인 기본속성이다. 다만, 경제특구 개발에 보다 중점을 둔 계획이 정부안으로 채택된 것은 1997년, 98년경에 이미 (동북아플랜의 전범이 된) [Industrial21], [비즈니스 거점화 전략]등의 계획을 입안, 시행한 바 있는 싱가폴과 홍콩이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인 점을 감안하여 차별화를 위해 단계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때문에 정부안은 1국2체제형 개방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전략과 홍콩, 싱가폴 등지의 거점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의 경제특구개발계획이 가지는 장점이기보다는 치명적인 한계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제특구가 그 배후에 가지는 거대한 내수시장이라는 메리트나 자국의 내수나 산업기반을 완전히 포기한 채 철저히 중국시장을 향한 교두보로 변신한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의 거점화 전략이 가지는 메리트 중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 신정부에게 넘겨진 동북아플랜에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되건 간에 이는 자본 측에게는 지극히 불안정한 생존전략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민중의 생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위협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동북아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1 : 신식민지적 발전기획의 파탄 "동아시아의 중심국을 건설"한다는 레토릭의 화려함에 미혹되지만 않는다면,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플랜은 실상 그처럼 옹색하고 서글픈 심정마저 자아내게 하는 것이 없는 성장전략 아닌 성장전략, 산업정책 아닌 산업정책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동북아플랜은 위기에 빠진 남한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배수진"이라 말하지만, 노무현 신정부의 표현은 "(동북아 플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란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다루어져야한다. 동북아 플랜은 이전시기 한국경제를 지배해온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과 이에 입각한 발전국가의 (좁은 의미에서의)"산업정책"이 시효만료 되었음을 뜻한다. 동북아 플랜에서 말하는 [비즈니스 중심국가]란 이상은 더 이상 국민국가 차원의 경제발전을 기획하기 어려워진 남한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한계를 화려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치장한 것으로, 이전시기 김대중정권이 즐겨 사용하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중장기적인 정책전략의 모양새로 손질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정권과 자본은 여전히 '발전'이나 '산업정책'과 같은 용어의 선동적 유용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의 생존전략인 동북아플랜은 이웃나라의(주로 중국) 경제적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해가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이라는 경제관료들의 설명이나, 이에 한술 더 떠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은 단지 장사 잘하고 부자 되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수백년간 중국의 변방으로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의 팔자를 바꾸는 계기”라는 노무현의 로또식 허풍이(민족의 운명 역전) 그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명시적인 경제성장의 조건과 목표, 방향을 확립한 가운데, 특정산업의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국민경제적 발전을 달성해가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과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국가'모델의 시효가 만료되었음은 노무현 정권 자신이 더욱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97년 IMF공황은 저임금과 미국시장의 역개방에 강하게 의지하여 유지되어오던 남한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기획의 최종적 파산이 선언된 계기였다. 그후 국민의 정부 5년은 '환란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가 중장기적 비전의 부재를 대신해온 5년이었다. 이제 5년간의 강요된 희생으로 지친 국민들 앞에 새 정부가 내놓아야할 것은 새로운 비전과 전망일터인데, 노무현정권은 처음 출발부터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명확하고 눈에 띄는 거짓말은 동북아플랜의 초라한 실현가능성과 불투명한 경쟁력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에서 동북아 거점으로!!"라는 신정부의 캐츠프래이즈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한국경제의 중추를 담당해온 수출지향형 산업이 변화한 세계시장에서 미래비전을 상실했음은 명확하다. 그래서 동북아 플랜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 비전과 과제란 대략,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화, 동북아 R&D센터화, IT/BT/NT등의 첨단기술산업 유치, 회계, 법률, 경영컨설팅, 광고업 등 각종 기업서비스업 육성, 동북아 금융중심지화 등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실제로 무언가 국내 산업과 고용에 관련된 발전적 기획에 관련된 과제라고는 보기 어렵고,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를 만든다는 것뿐인데, 이 계획 역시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그 속내란 일본에서 생산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고, 중국에서는 기술력이 아직 부족해 생산하기 어려운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 전략일 뿐, 별것이 없다. 그 외 동북아 R&D센터니, 첨단 산업 유치하는 과제들은 죄다 국외 초민족기업과 자본을 국내 특별자유지구 내에 유치한다는 것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바대로 중국 내 특구나 자유항만형 동북아 도시국가들의 거점화 전략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또 중국 내 특구들이 활성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을 잇는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라는 지리적 이점 역시 크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지못할 것이다. 요는 동북아플랜이라는 틀이 유지되는 한, 그 내에서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란 초민족자본에 대한 더욱더 많은 어거지식 특혜와 보다 철저한 자본위주의 노사환경을 제공하는 길뿐일 텐데, 그 같은 희생이 과연 플랜의 성공을 가져올지 매우 미심쩍을 뿐 아니라 동북아플랜 자체가 지향하고 있는 성장전략이란 것이 과연 국민경제적 차원의 파이를 키워 미래의 분배를 약속하는 체제인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이전시기 신식민주의적인 억압적 발전국가체제에서의 문제점은 '키워진 파이'의 분배가 철저히 국가 산업정책의 비호아래 비대해진 재벌과 특정 발전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된 채 미래의 분배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동북아플랜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래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몇몇 핵심대형기업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보장되고 이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관심사일 뿐 더 이상 국민경제적 발전이란 의제 자체가 기각-포기된다는 점이다. 초민족 자본주의 경영·생활환경을 가꾸기 위한 국가의 경제적, 경찰적 개입역량은 날로 강화되지만, 국민국가의 사회적 성격과 민족적 책임성은 약화 해체되는 것이다. 설령 동북아플랜이 갖은 난점과 내외적 취약성들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하더라도, 그 결과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내 위치한 특정지역의 특정집단(국적을 불문한)의 경제가 성장할 뿐이다. 동북아 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2 : 글로벌 시티 네트워크로의 편입과 내부적 배제 그렇다면 결국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한낱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한 선동문구란 말인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플랜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미빛 청사진들은 확실히 그러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의 성공적 실행을 가정한 미래의 한국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예상해본다면, 동북아플랜이 (그 낮은 성공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북아 플랜이 그리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공적인 미래상은 금융세계화의 중심주체이자 그들의 집약지인 글로벌시티(세계도시, Global City) 네트워크로의 안정적 편입이다. 물론 이것은 남한자본주의가 동북아의 새로운 소제국(小帝國)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바람을 뜻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한 세계경제에서 중심국과 (반)주변국간의 경계는 중심국과 (반)주변국을 가르는 국경이 아니라 중심국 내부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반)주변국의 중심의 내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도시와 농촌, 빈국과 부국 사이에 그어졌던 불평등과 배제의 장막이 도시내부와 노동시장 내부의 계층별 인종적 성적 분할선을 타고, 세계적인 차원의 내부적 배제로 침투되어 심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은 어떤 국민경제적 중심 산업을 지정하고 촉진시키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이 아닌 한에서, 초민족자본의 동북아 지본사를 국내에 마련된 비즈니스 거점지역에 유치함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산업조정정책을 펼 뿐인데, 이때 중요시되는 산업조정의 방향과 결과는 경제의 서비스화와 금융화이다. 이는 국민경제 발전의 중추를 구성할 기간노동력을 구성함으로써 이들에게 미래의 분배를(일반적인 저임금 강요와 고용안정보장) 약속하는 이전의 억압적 발전기획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이미 분절화 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한다. 서비스화 된 경제에서 요구되는 노동시장의 일반화된 모형은 허리부분이 잘록한 '절구통모형'이다.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 초고소득을 보장받는 일부 첨단 IT/금융서비스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과 겉으로 보기에는 첨단정보화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해 보이는 저임금 불안정 직종들로 양극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IT업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작업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단순 반복적이며, 대대수의 금융관련 종사자들의 작업 역시 체계적인 교육에 의해 획득된 고도의 경제적 분석판단 능력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업무는 지극히 특수한 상위계층의 몫일뿐이다. 더구나 이들 하층 저임금 직종들 중 비서, 청소용역 관리자, 금융객장직원 등의 노동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서비스경제의 특성중의 하나인 '전문화 추세'란 바로 철저한 노동불안정화의 핵심양상중 하나인 외주용역화에 따른 파견, 임시직화이다. 더불어 이들 하층 노동자계층에게 요구되고 허용된 전혀 새롭다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는 점차 도시의 외곽에서 '세계도시'로 다시 회귀하게 되는 고소득 자본가들의 사적인 하인노동이다. 세계를 오가며 극한 경쟁의 압력 속에서 불안정하게 활동하는 금융자본이 필요로 하는 단순사무, 관리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한데, 이들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고용형태는 회전율이 높고 고도로 불안정한 자신의 활동만큼이나 신축화 된 고용형태이다. 이들 금융자본과의 한두 번의 거래로 거액의 서비스료를 받는 경영컨설턴트나 국제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무실에서 단순 사무나 여타의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임시고용직 노동자들 역시 한두 번의 거래로 고용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변화 양극화 현상은 폐쇄적인 고용부문으로의 접근에 어려움이 많은 이민노동자나 고용의 안정성에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를 두는 젊은 독신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의 급속한 증가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금융세계화의 본거지인 뉴욕이나 도쿄, 런던과 같은 대표적인 '세계도시'들에서 기존 중산층의 몰락으로 인한 표준화된 대량소비체계의 해체로 나타나 신축화 된 소량주문상품소비체계를 일반화시킴으로써, 도시의 블록을 기준으로 동일품목의 상품들이 초고가 상품소비시장과 초저가 시장으로 분리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가장 발달된 도시의 중심에 가장 가난하고 철저히 배제된 자들의 게토화 된 공동체가 존재하고, 그 담장너머엔 삶의 어떤 제약도 부과 받지 않은 한없이 자유로운 자들의 마천루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 경제발전의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었다는 설명과는 달리, 금융세계화의 진행에 따른 현실의 경제활동의 국내적 국제적 분산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강화된 지역적 집중양상과 배제의 논리를 보인다. 물론 노무현신정부의 설명은 IT기술혁명과 세계화의 성과에 입각한 동북아플랜을 통해 비로소 지역균형발전의 길이 열렸다는 식이다. 물론 정보통신산업에 관한 원론적인 설명에 따르자면 그 같은 지역적 불균형이 발생할리는 만무하다. 기업서비스 산업은 철저하게 첨단 IT기술에 기반 해 있기 때문에 주요대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고비용과 과밀를 피하여 입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각종의 기업서비스들이 반드시 소비자 즉 기업에 공간적으로 근접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초민족화 된 대규모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업서비스는 그들의 고객만큼이나 초민족적이고 거대화된 전문기업들에 의해 제공되며, 각각의 영역에 따라 전문화되어있는 만큼 여타의 유관관련 업체들과의 상호근접성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처럼 전문화 대형화된 서비스산업의 전문인력 들인 국제법률가나 회계사, 전문프로그래머들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각종의 위락시설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저지가나 저임금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소적 제약을 뛰어넘어 분산된 경제활동들에 대한 세계적 관리·통제기능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금융세계화된 세계경제는 날로 세계경제 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도의 기업서비스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를 필요로 하며, 세계도시들은 각각의 국민경제의 중심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경제에 속한 자신들만의 (세계적이고 지역적인)네트워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 된 세계도시는 언제나 어느 한 국민국가의 주권에 의해 건설되고 그 안에 위치하면서, 그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무한한 갈라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역간 균형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태는 도시 농촌간의 지역적 격차에서 도시 간의 격차 확대로, 다시 무엇보다도 도시속의 도시들 간의 내부적 격차의 확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세계적 지역적 도시적 규모에서 세계화에 따른 주변화과정은 과거 우리가 중심부라 여겨지던 핵심에서 이루어지며, 주변부화 과정이 심화될수록 중심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그 역의 과정 역시) '도시속의 도시'가 또 '시민 중의 시민'이 서로의 곁에서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떤 세계경제도 국가적 영토를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어떤 국민경제도 더 이상 하나의 국민경제가 아니라는 명제는 전적으로 옳고 되새길만한 말이다. 노무현정부는 이 같은 실상을 덮어둔 채 "동북아 플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면서 이를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까지 그 장단에 맞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그 같은 정치적 레토릭이 오늘의 한국경제와 민중생존을 오늘에 이르게 한 남한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와 반민중성을 치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글픔을 느끼는 여유보다는 추상같은 역사적 분노를 키워갈 뿐이다. PSSP
정부의 오래된 숙원사업 - 핵폐기장 건설 86∼89년 영덕·영월·울진, 90년 안면도, 91∼92년 청하, 93∼94년 장안·울진, 94∼95년 굴업도... 지난 십여년간 정부는 끈질기게 핵폐기장 건설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번번히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핵운동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월 4일 핵폐기장 후보지 4군데(영광, 울진, 영덕, 고창)를 전격 발표하였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탄 졸속적인 후보지 발표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핵폐기장 건설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처리 한계에 직면한 핵폐기물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는 어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건 지금 당장 핵폐기장 건설에 돌입해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이다. 왜냐하면 지금 착공에 들어가 완공될 때까지, 배출될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행해진 '자율유치' 과정에서도 드러나 듯 다급해진 정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을 정해놓고 사업자인 한수원(주) 직원을 파견하여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유치위원에 급여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금품을 살포하여 거짓 찬성서명을 받아서 자율유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2002년 6월말까지 290차례에 걸쳐 12,270명의 지역주민을 관광시키는데 10억 원이 넘는 돈을 사용하는 등 핵폐기장 후보지 추진을 위해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2,476억 원을 사용했다. 지난 15년간 핵폐기장 유치에 실패한 찬핵론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에 대해서 결말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이러한 핵폐기장 건설은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계획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5, 6호기 (각각 1,000MW) 이외에 7, 8, 9, 10호기(각각 1,400MW)가 작년 5월 지정고시 되었으며, 2015년까지 18개를 더 짓는다는 구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탈핵화의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과 정말 대조적이다. 독일 의회는 2001년 12월 향후 20년 안에 독일 내 19개 원자력 발전소 전부를 폐쇄할 것을 규정한 원전폐쇄 법안을 승인했다. 또한 한전이 '원자력선진국'이라고 홍보하던 프랑스조차 최근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지난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빌미로 2010년까지 총 20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던 일본조차도 지난 10년 동안 연이은 대형사고를 겪은 후 국민여론의 반대로 더 이상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찬핵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왜 이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초기 건설비용은 물론이고 사후 처리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위험비용에 따른 외부손실을 따졌을 때 경제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한 원전이나 핵폐기물 처리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보관 기간과 안정성의 문제, 그리고 크고 작은 원전사고 둥은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인 탈핵의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대규모 원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에너지 부족이라는 이유가 주된 논리인데,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메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라는 것이다. 두 가지 갈등 이는 결국 앞으로 펼쳐질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는 핵산업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쟁점이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정부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을 주장할 것이고 그래서 핵폐기장 건설이 필수라고 선전할 것이다. 반핵단체들은 대체에너지를 통한 대안 모색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핵폐기장 건설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핵발전을 둘러싼 이 세 주체들 간의 갈등의 결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관철 여부를 판가름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선명한 대립이 그대로 드러나기보다는 '지역개발'과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非산유국의 대안'이라는 왜곡된 쟁점을 가지고 드러난다. 첫 번째 갈등 : 지역개발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에도 드러난 바 지역개발논리가 항상 작용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의 경우를 보아도 영덕과 울진(경상북도 동해안 접경 지역), 고창과 영광(전라남북도 접경지역)을 선정하여 지역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역개발 약속과 경제적 보상은 몇 년째 지역경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는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당근이다. 현재 정부는 3000여 억 원의 지역지원금을 주겠다며 핵폐기장 유치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장이라는 것이 워낙 혐오시설이라 다른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던 지역의 현실을 보아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것은 원전건설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부대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전건설이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했다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생산물은 그 지역의 이름으로 팔리기보다 모호한 이름을 걸거나. 다른 주변지역의 이름을 걸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현실만이 명백할 뿐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이나 여러 혐오시설물의 건립과정에서도 보여지듯, 시설물과 거주지의 거리에 따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코앞에 맞닿은 경우는 이주가능한 엄청난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약간 거리가 떨어진 경우는 보상금이 그리 높지도 않다. 그리고 아예 좀 멀리 떨어진 경우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지역주민의 이러한 의식지형을 최대한 악용하려 할 것이다. 경쟁과 차등 대우를 통해서 틀림없이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쉽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두 번째 갈등 :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에너지 정책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은 그 자체로도 위험 시설에 대한 안정성 여부를 걸고 싸우는 생존권 싸움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핵발전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핵발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처리 곤란한 핵폐기물은 계속 발생할 것이며, 핵폐기물의 처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발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종착지는 에너지 정책 일반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이다. 현재 전력 생산의 30-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고 있으며, 50-60%를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화력발전의 경우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탈핵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전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숨은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화력발전의 매각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화력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장되어 가는 핵산업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의도도 짙게 깔려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로 2015년까지 대규모 원전사업을 진행할 경우 유럽 선진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의 1.5배나 되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결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만은 아닌 것이다. 이는 친환경적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절약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 핵발전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여 화력보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를 간단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친환경적 대체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력확보'이라는 논리까지 첨가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원전사업 추진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핵발전 정책 일반을 철회시키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핵산업을 수십년 먼저 시작한 서구의 예를 보아도 핵발전의 최후가 비극적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에게 다소 때이른 경고처럼 비춰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또한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찬핵론자들은 이미 한 수를 두었다. 비록 시대착오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연대를 아직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에 대한 대응으로 범국민대책위와 지역대책위가 구성되었다. 정당,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연구소, 지역주민단체 등이 모인 폭넓은 연대기구가 구성된 것이다. 단체간 성향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사활이 걸린 당면 핵폐기장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한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핵폐기장 건설의 가부의 문제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은 핵에너지 정책중단을 전면적으로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할 때, 지금까지 환경단체들의 외로운 목소리나 해당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로 닫혀 있었던 핵폐기장의 문제가 에너지 정책 일반의 문제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국민대책위는 이에 대한 투쟁과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갈 주체로 발전할 것이다. 분명 정권은 시간을 끌면서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의제로 이 문제가 설정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기만적인 깜짝쇼를 여러 번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지난 정권의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또한 핵에너지의 문제가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에 불과하며 진행 중에 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드리마일'과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것인가?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값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PSSP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엘리트들의 배타적인 사교모임인 '다보스 포럼'에 맞서 민중 중심의 대안적 전망을 모색하는 세계 인민들의 연대의 장으로 2001년 1월에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은 올해로 3회를 맞게 되었다.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3회 사회포럼은 놀라울 만큼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올해 세계사회포럼에는 156개국 717개 조직의 대표단 2만763명을 포함하여 10만여 명이라는 거대한 인원이 참석했다. 전체 회의, 세미나, 패널토론 등 공식 프로그램도 대폭 확대되었고, 이외에도 포럼기간동안 참가자들이 다양하게 조직한 워크샵이 1.286개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2회에 걸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사회포럼(2002.11, 이탈리아 피렌체) 아시아사회포럼(2003.1, 인도 하이데라바드), 등 '지역별 사회포럼'과 정세적으로 중요한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주제별 사회포럼'('개발도상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2002. 아르헨티나, '팬-아마존사회포럼')등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 곳곳의 더 많은 사회운동들에게 더욱 풍부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볼 것은 양적인 성장만이 아니다. 'Um outro mundo poss vel(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으로 표상되는 이 거대한 흐름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극복될 수 없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속에서 스스로 삶의 대안을 모색해가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는 장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분출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상호 적합한 연대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모색해가고 있다. 3회 사회포럼의 개요- 무엇이 논의되었나? 2001년 9.11 사태이후 '대 태러전쟁'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 각 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계획과 북한 핵의혹을 둘러싼 한반도에 대한 전쟁위협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장기적 불황과 이에 따라 민중의 삶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사회운동 세력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포럼의 시작과 끝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반대, 식량 주권을 훼손하고 의료, 전력, 수자원 등 공공 서비스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WTO 도하개발의제와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전 세계 민중의 삶의 위기를 초래하는 외채시스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이루어졌다. 특히, 그 동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반전시위의 기운은 개·폐막 행진으로 이어져, 참석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처해있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등의 기를 흔들며 각 국 민중들과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4일간 진행된 크고 작은 회의들은 짧게는 2003년 한해, 길게는 향후 몇 년간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24·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세계 사회운동 대회(World Social Movements Assembly)'에서는 오는 2월 15일 30여 개의 주요도시에 동시다발로 '반전평화 국제 행동' 개최할 것을 결의했으며, 3·8 여성의 날에는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G8 정상회의(6월, 프랑스 에비앙), WTO 5차 각료회의(9월, 멕시코 칸쿤), IMF/세계은행 연차총회(9월, 미국 워싱턴), FTAA 전미 정상회의(10월, 미국 마이애미)를 계기로 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로 했다. 더불어 국제소농조직(Via-campesina)의 '국제농민대회', 주빌리사우스(Jubilee South- 남반구 외채거부 캠페인 네트워크)의 '외채의 부당성에 관한 회의', [우리의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연합(Our World Is Not For Sale-WTO 도하개발의제 반대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전략회의, '세계 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의 워크샵'등에서는 이러한 행동 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세계 정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각 국에서 혹은 지역별로 이루어진 투쟁들을 보고하였으며, 향후 몇 년간의 계획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는 국가 붕괴와 경제파산을 경험한 남미의 참석자들은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채시스템으로 지적하며, 이는 IMF와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조정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채무국들의 지불 거부를 통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외채 지불거부가 민중들의 삶에 아무런 악영향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으며,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올해 새롭게 취임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초국적 곡물기업에 의해 토지에 대한 권리와 종자 및 비료 사용에 대한 결정권 등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각 국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미자유무역지대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음이 보고되었고, 이러한 투쟁을 오는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5차 각료회의 반대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 제기되었다. 2001년 출범한 WTO DDA 협상이 식량, 물, 교육, 의료, 에너지 등의 공공서비스를 상품화함으로써 민중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HIV/AIDS등 심각한 전염병으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민중들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과 여성들의 건강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파괴하고 있음이 증언되었으며, 특히 이를 추동하는 농업협상과 서비스협상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더불어 현재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에 항의하는 반미시위가, 미국의 군사주의적 전략을 반대하는 국제연대 투쟁으로 급진화 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부시정부의 북한 핵의혹을 빌미로 한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한국 참가단의 호소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분출과 연대의 조건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브라질의 CUT(노동조합총연맹), MST(무토지농민운동), ATTAC(금융거래과세운동)등 8개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조직으로 구성된 '브라질 조직위원회(Brazilian Organizing Committee)'와 100여개의 조직으로 구성된 '국제평의회(Internatioal Committee-자세한 목록은 http://www.forumsocialmundial.org.br 참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브라질 조직위원회의 역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2002년에 2차례 진행된 국제평의회 회의에서는 그 역할을 국제평의회로 옮겨올 것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점차 대륙별 사회포럼과 지역별 네트워크들이 활발하게 조직되고 있고 그 규모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러한 기구들의 역할은 개최 장소를 결정하고 이에 따른 각종 실무사항을 점검하는 정도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합의해 가는 과정은 이들 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운동들간의 수평적인 논의와 교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미 사회운동들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미국과 인접하여 끊임없는 군사적, 정치적 위협과 반복되는 국가 경제의 파산 상태를 경험하며 폭발적인 민중들의 투쟁이 분출하고 있는 남미는 최근 브라질, 에콰도르 등 잇단 좌파정권의 등장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극한의 생존의 위협이라는 상황을 맞이한 실업노동자, 무토지 농민,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교육훈련 하며 삶의 터전을 공동으로 형성해 가는 방식의 운동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들은 '다양한 운동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라는 논점을 제출하며 세계사회포럼의 규모와 내용이 풍부해지는데 많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좌파정당들의 제도화와, 타협을 통한 기득권의 방어로 일관하고 있는 노조운동들을 목도하면서 스스로를 '정당이나 노조에 독립적인 사회운동들'로 표상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노조운동과 사회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논점이 긴요한 논의과제로 제기되도록 하였다. 포럼의 참석자들은 작게는 몇몇 토론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할당된 2개의 마이크를 번갈아 가동하며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운동이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며 연대의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사회포럼은 수많은 사회운동들 간의 다양한 논쟁과 경험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의 긍정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각 국의 투쟁을 강화하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이행의 조건을 제시해 줄 것인지는 단언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한의 민중운동이 전 세계의 민중들과의 수평적인 연대의 장에 뛰어들기 위해 스스로 어떤 조건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