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신정부의 경제정책의 양축은 상시구조조정시스템(시장)에 기반한 기업(재벌)·금융 구조개혁의 지속과 이른바 [동북아중심국가 건설]로 명명된 한국경제의 새로운 중장기 성장전략의 추진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수년간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함으로써,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진 아메리카식 경제작동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DJ정권 5년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성과는 노무현 신정부가 이어받고, 그 스스로 자임하는 정책개혁의 새로운 임무는 한축으로는 시장운영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세계화된 세계시장에 이미 상당정도 최적화된 한국경제를 재편입시키기 위한 중장기적 비전을 구체화하는 실천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말 경제특구법(경제자유구역법으로 개칭) 저지투쟁 과정에서 김대중정권의 [동북아중심국 플랜](이하 동북아플랜)의 반민중적인 일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은 경제자유구역 설치와 시행법통과만으로 그치는 일회성 사업도 김대중정권만의 아이디어성 기획도 아니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이란 기획이 처음으로 이야기되었던 시점은 1995년경 김영삼정부 시절의 4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제출된 때였고, 지난 대선과정에서도 이 계획에 관한한 이회창과 노무현간의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었다. 비록 지난해 11월 경제자유구역법의 국회통과를 막지 못했다하더라도 동북아플랜의 구체적 시행과 그에 따른 갖가지 개혁조치들의 추진은 적어도 노무현정권을 넘어 다음 정권이 등장하게 될 2010년경까지 이어지게 될 전망인 만큼 우리의 투쟁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당장 노무현정권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지난해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이 법의 갖가지 부대 시행령을 마련할 예정이고, 인천시는 올해 1월 중순경에 경제특구 개발 및 자본조달 업체인 미국 게일사(社)와 1단계 사업을 위한 토지공여(160만평) 본계약을 서둘러 체결한 상태이다. 동북아플랜에 대한 비판과 우리의 투쟁은 한국경제의 내일에 대한 비판과 투쟁인 것이며, 현 시기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절점으로서 새롭게 인식되어야하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플랜]의 개요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물류중심지화, 비즈니스거점화, 첨산기술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성이 그것이다. 김대중정권 시절 입안된 계획과 달라진 점은 물류·비즈니스거점화를 이루기위한 중간단계로 우선 국내의 첨단기술산업을 경제자유지역에 끌어들여 본격적인 외자유치를 위한 네트워크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방안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국내 재벌 측에서 제기한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줄이고, 외자에 대한 퍼주기식 인센티브만으로는 실제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북아플랜 전반의 기조나 핵심적인 실행과제들이 수정된 것은 아니다. 노동규제완화, 세금감면, 의료·교육 개방 등 초민족자본(TNC)에 대한 온갖 특혜로 가득한 기존 정부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비즈니스 중심인가 첨단산업·R&D(연구개발)허브 중심인가라는 신·구 정부 간의 논란 역시 인수위 측의 주장이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금융·비즈니스 거점화 전략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금감면이나 노동규제완화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덧붙여 국내 IT산업과의 연관성이 고려되어야한다는 현실적인 입장이 부가된 것일 뿐이다. 동북아 플랜의 또 다른 축인 물류중심지화 계획이란 인천공항, 신부산·광양항 확충을 통해 이 지역 및 시설들을 동북아 허브공항 및 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것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유라시아대륙과의 연계를 추진한다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부가된다. 경쟁력 있는 국내외 물류 네트워크의 구축과 관세자유지역 지정 및 국제 물류지원센터 설립 등이 추진과제이다. 보다 복잡하고 핵심적인 계획은 비즈니스 거점화 계획이다. 각종의 기업서비스(Corporate Service)와 국제금융 관련 서비스를 갖춘 기업·금융 비즈니스 센터를 건설하여, 초민족자본의 동북아지역 지·본사와 금융기관을 유치한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이를 위한 추진과제는 인천, 신부산, 광양등지를 경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하고, 초민족자본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각종의 경영,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이 일차적이다. 지난해 경제특구법 투쟁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 경영, 생활환경 부분이었다. 그동안 국내법상(으로나마) 보장되 온 노동, 여성, 교육, 환경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기본 인권의 사각지대가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이것의 효과를 타지역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안 자체에는 특구의 전국화에 관한 분명한 언급은 아직 없다. 하지만 특구의 전국화라는 요구는 비단 전경련과 재벌들의 요구가 아니라 동북아플랜이 가지는 자체적인 기본속성이다. 다만, 경제특구 개발에 보다 중점을 둔 계획이 정부안으로 채택된 것은 1997년, 98년경에 이미 (동북아플랜의 전범이 된) [Industrial21], [비즈니스 거점화 전략]등의 계획을 입안, 시행한 바 있는 싱가폴과 홍콩이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인 점을 감안하여 차별화를 위해 단계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때문에 정부안은 1국2체제형 개방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전략과 홍콩, 싱가폴 등지의 거점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부의 경제특구개발계획이 가지는 장점이기보다는 치명적인 한계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제특구가 그 배후에 가지는 거대한 내수시장이라는 메리트나 자국의 내수나 산업기반을 완전히 포기한 채 철저히 중국시장을 향한 교두보로 변신한 도시형 자유항만국가의 거점화 전략이 가지는 메리트 중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노무현 신정부에게 넘겨진 동북아플랜에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되건 간에 이는 자본 측에게는 지극히 불안정한 생존전략일 수는 있어도, 노동자민중의 생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위협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동북아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1 : 신식민지적 발전기획의 파탄 "동아시아의 중심국을 건설"한다는 레토릭의 화려함에 미혹되지만 않는다면,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플랜은 실상 그처럼 옹색하고 서글픈 심정마저 자아내게 하는 것이 없는 성장전략 아닌 성장전략, 산업정책 아닌 산업정책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동북아플랜은 위기에 빠진 남한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배수진"이라 말하지만, 노무현 신정부의 표현은 "(동북아 플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란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다루어져야한다. 동북아 플랜은 이전시기 한국경제를 지배해온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과 이에 입각한 발전국가의 (좁은 의미에서의)"산업정책"이 시효만료 되었음을 뜻한다. 동북아 플랜에서 말하는 [비즈니스 중심국가]란 이상은 더 이상 국민국가 차원의 경제발전을 기획하기 어려워진 남한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한계를 화려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치장한 것으로, 이전시기 김대중정권이 즐겨 사용하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중장기적인 정책전략의 모양새로 손질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정권과 자본은 여전히 '발전'이나 '산업정책'과 같은 용어의 선동적 유용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의 생존전략인 동북아플랜은 이웃나라의(주로 중국) 경제적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해가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이라는 경제관료들의 설명이나, 이에 한술 더 떠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은 단지 장사 잘하고 부자 되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수백년간 중국의 변방으로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의 팔자를 바꾸는 계기”라는 노무현의 로또식 허풍이(민족의 운명 역전) 그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명시적인 경제성장의 조건과 목표, 방향을 확립한 가운데, 특정산업의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국민경제적 발전을 달성해가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과 신식민지 근대화론적인 의미에서의 '발전국가'모델의 시효가 만료되었음은 노무현 정권 자신이 더욱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97년 IMF공황은 저임금과 미국시장의 역개방에 강하게 의지하여 유지되어오던 남한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기획의 최종적 파산이 선언된 계기였다. 그후 국민의 정부 5년은 '환란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가 중장기적 비전의 부재를 대신해온 5년이었다. 이제 5년간의 강요된 희생으로 지친 국민들 앞에 새 정부가 내놓아야할 것은 새로운 비전과 전망일터인데, 노무현정권은 처음 출발부터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명확하고 눈에 띄는 거짓말은 동북아플랜의 초라한 실현가능성과 불투명한 경쟁력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에서 동북아 거점으로!!"라는 신정부의 캐츠프래이즈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한국경제의 중추를 담당해온 수출지향형 산업이 변화한 세계시장에서 미래비전을 상실했음은 명확하다. 그래서 동북아 플랜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 비전과 과제란 대략,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화, 동북아 R&D센터화, IT/BT/NT등의 첨단기술산업 유치, 회계, 법률, 경영컨설팅, 광고업 등 각종 기업서비스업 육성, 동북아 금융중심지화 등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실제로 무언가 국내 산업과 고용에 관련된 발전적 기획에 관련된 과제라고는 보기 어렵고, 동북아 부품 및 중간재 공급기지를 만든다는 것뿐인데, 이 계획 역시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그 속내란 일본에서 생산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고, 중국에서는 기술력이 아직 부족해 생산하기 어려운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 전략일 뿐, 별것이 없다. 그 외 동북아 R&D센터니, 첨단 산업 유치하는 과제들은 죄다 국외 초민족기업과 자본을 국내 특별자유지구 내에 유치한다는 것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바대로 중국 내 특구나 자유항만형 동북아 도시국가들의 거점화 전략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또 중국 내 특구들이 활성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을 잇는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라는 지리적 이점 역시 크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지못할 것이다. 요는 동북아플랜이라는 틀이 유지되는 한, 그 내에서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란 초민족자본에 대한 더욱더 많은 어거지식 특혜와 보다 철저한 자본위주의 노사환경을 제공하는 길뿐일 텐데, 그 같은 희생이 과연 플랜의 성공을 가져올지 매우 미심쩍을 뿐 아니라 동북아플랜 자체가 지향하고 있는 성장전략이란 것이 과연 국민경제적 차원의 파이를 키워 미래의 분배를 약속하는 체제인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이전시기 신식민주의적인 억압적 발전국가체제에서의 문제점은 '키워진 파이'의 분배가 철저히 국가 산업정책의 비호아래 비대해진 재벌과 특정 발전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된 채 미래의 분배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동북아플랜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래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몇몇 핵심대형기업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보장되고 이들의 생존과 성장만이 관심사일 뿐 더 이상 국민경제적 발전이란 의제 자체가 기각-포기된다는 점이다. 초민족 자본주의 경영·생활환경을 가꾸기 위한 국가의 경제적, 경찰적 개입역량은 날로 강화되지만, 국민국가의 사회적 성격과 민족적 책임성은 약화 해체되는 것이다. 설령 동북아플랜이 갖은 난점과 내외적 취약성들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하더라도, 그 결과 한국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내 위치한 특정지역의 특정집단(국적을 불문한)의 경제가 성장할 뿐이다. 동북아 중심국 플랜의 본질과 한계 2 : 글로벌 시티 네트워크로의 편입과 내부적 배제 그렇다면 결국 노무현 신정부의 동북아플랜은 한낱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한 선동문구란 말인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플랜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미빛 청사진들은 확실히 그러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동북아플랜의 성공적 실행을 가정한 미래의 한국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예상해본다면, 동북아플랜이 (그 낮은 성공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북아 플랜이 그리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공적인 미래상은 금융세계화의 중심주체이자 그들의 집약지인 글로벌시티(세계도시, Global City) 네트워크로의 안정적 편입이다. 물론 이것은 남한자본주의가 동북아의 새로운 소제국(小帝國)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바람을 뜻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한 세계경제에서 중심국과 (반)주변국간의 경계는 중심국과 (반)주변국을 가르는 국경이 아니라 중심국 내부와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반)주변국의 중심의 내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도시와 농촌, 빈국과 부국 사이에 그어졌던 불평등과 배제의 장막이 도시내부와 노동시장 내부의 계층별 인종적 성적 분할선을 타고, 세계적인 차원의 내부적 배제로 침투되어 심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플랜은 어떤 국민경제적 중심 산업을 지정하고 촉진시키는 좁은 의미의 산업정책이 아닌 한에서, 초민족자본의 동북아 지본사를 국내에 마련된 비즈니스 거점지역에 유치함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산업조정정책을 펼 뿐인데, 이때 중요시되는 산업조정의 방향과 결과는 경제의 서비스화와 금융화이다. 이는 국민경제 발전의 중추를 구성할 기간노동력을 구성함으로써 이들에게 미래의 분배를(일반적인 저임금 강요와 고용안정보장) 약속하는 이전의 억압적 발전기획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이미 분절화 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한다. 서비스화 된 경제에서 요구되는 노동시장의 일반화된 모형은 허리부분이 잘록한 '절구통모형'이다.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 초고소득을 보장받는 일부 첨단 IT/금융서비스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과 겉으로 보기에는 첨단정보화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해 보이는 저임금 불안정 직종들로 양극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IT업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작업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단순 반복적이며, 대대수의 금융관련 종사자들의 작업 역시 체계적인 교육에 의해 획득된 고도의 경제적 분석판단 능력을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업무는 지극히 특수한 상위계층의 몫일뿐이다. 더구나 이들 하층 저임금 직종들 중 비서, 청소용역 관리자, 금융객장직원 등의 노동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서비스경제의 특성중의 하나인 '전문화 추세'란 바로 철저한 노동불안정화의 핵심양상중 하나인 외주용역화에 따른 파견, 임시직화이다. 더불어 이들 하층 노동자계층에게 요구되고 허용된 전혀 새롭다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는 점차 도시의 외곽에서 '세계도시'로 다시 회귀하게 되는 고소득 자본가들의 사적인 하인노동이다. 세계를 오가며 극한 경쟁의 압력 속에서 불안정하게 활동하는 금융자본이 필요로 하는 단순사무, 관리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한데, 이들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고용형태는 회전율이 높고 고도로 불안정한 자신의 활동만큼이나 신축화 된 고용형태이다. 이들 금융자본과의 한두 번의 거래로 거액의 서비스료를 받는 경영컨설턴트나 국제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무실에서 단순 사무나 여타의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임시고용직 노동자들 역시 한두 번의 거래로 고용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변화 양극화 현상은 폐쇄적인 고용부문으로의 접근에 어려움이 많은 이민노동자나 고용의 안정성에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를 두는 젊은 독신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의 급속한 증가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금융세계화의 본거지인 뉴욕이나 도쿄, 런던과 같은 대표적인 '세계도시'들에서 기존 중산층의 몰락으로 인한 표준화된 대량소비체계의 해체로 나타나 신축화 된 소량주문상품소비체계를 일반화시킴으로써, 도시의 블록을 기준으로 동일품목의 상품들이 초고가 상품소비시장과 초저가 시장으로 분리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가장 발달된 도시의 중심에 가장 가난하고 철저히 배제된 자들의 게토화 된 공동체가 존재하고, 그 담장너머엔 삶의 어떤 제약도 부과 받지 않은 한없이 자유로운 자들의 마천루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 경제발전의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었다는 설명과는 달리, 금융세계화의 진행에 따른 현실의 경제활동의 국내적 국제적 분산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강화된 지역적 집중양상과 배제의 논리를 보인다. 물론 노무현신정부의 설명은 IT기술혁명과 세계화의 성과에 입각한 동북아플랜을 통해 비로소 지역균형발전의 길이 열렸다는 식이다. 물론 정보통신산업에 관한 원론적인 설명에 따르자면 그 같은 지역적 불균형이 발생할리는 만무하다. 기업서비스 산업은 철저하게 첨단 IT기술에 기반 해 있기 때문에 주요대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고비용과 과밀를 피하여 입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각종의 기업서비스들이 반드시 소비자 즉 기업에 공간적으로 근접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초민족화 된 대규모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업서비스는 그들의 고객만큼이나 초민족적이고 거대화된 전문기업들에 의해 제공되며, 각각의 영역에 따라 전문화되어있는 만큼 여타의 유관관련 업체들과의 상호근접성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처럼 전문화 대형화된 서비스산업의 전문인력 들인 국제법률가나 회계사, 전문프로그래머들은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각종의 위락시설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저지가나 저임금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소적 제약을 뛰어넘어 분산된 경제활동들에 대한 세계적 관리·통제기능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금융세계화된 세계경제는 날로 세계경제 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도의 기업서비스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를 필요로 하며, 세계도시들은 각각의 국민경제의 중심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경제에 속한 자신들만의 (세계적이고 지역적인)네트워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 된 세계도시는 언제나 어느 한 국민국가의 주권에 의해 건설되고 그 안에 위치하면서, 그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무한한 갈라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역간 균형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태는 도시 농촌간의 지역적 격차에서 도시 간의 격차 확대로, 다시 무엇보다도 도시속의 도시들 간의 내부적 격차의 확대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세계적 지역적 도시적 규모에서 세계화에 따른 주변화과정은 과거 우리가 중심부라 여겨지던 핵심에서 이루어지며, 주변부화 과정이 심화될수록 중심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그 역의 과정 역시) '도시속의 도시'가 또 '시민 중의 시민'이 서로의 곁에서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떤 세계경제도 국가적 영토를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어떤 국민경제도 더 이상 하나의 국민경제가 아니라는 명제는 전적으로 옳고 되새길만한 말이다. 노무현정부는 이 같은 실상을 덮어둔 채 "동북아 플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면서 이를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까지 그 장단에 맞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그 같은 정치적 레토릭이 오늘의 한국경제와 민중생존을 오늘에 이르게 한 남한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와 반민중성을 치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글픔을 느끼는 여유보다는 추상같은 역사적 분노를 키워갈 뿐이다. PSSP
정부의 오래된 숙원사업 - 핵폐기장 건설 86∼89년 영덕·영월·울진, 90년 안면도, 91∼92년 청하, 93∼94년 장안·울진, 94∼95년 굴업도... 지난 십여년간 정부는 끈질기게 핵폐기장 건설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번번히 지역과 환경단체의 반핵운동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월 4일 핵폐기장 후보지 4군데(영광, 울진, 영덕, 고창)를 전격 발표하였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탄 졸속적인 후보지 발표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핵폐기장 건설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처리 한계에 직면한 핵폐기물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는 어느 때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건 지금 당장 핵폐기장 건설에 돌입해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이다. 왜냐하면 지금 착공에 들어가 완공될 때까지, 배출될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행해진 '자율유치' 과정에서도 드러나 듯 다급해진 정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을 정해놓고 사업자인 한수원(주) 직원을 파견하여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유치위원에 급여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금품을 살포하여 거짓 찬성서명을 받아서 자율유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2002년 6월말까지 290차례에 걸쳐 12,270명의 지역주민을 관광시키는데 10억 원이 넘는 돈을 사용하는 등 핵폐기장 후보지 추진을 위해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2,476억 원을 사용했다. 지난 15년간 핵폐기장 유치에 실패한 찬핵론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에 대해서 결말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이러한 핵폐기장 건설은 최대 규모의 원전건설 계획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5, 6호기 (각각 1,000MW) 이외에 7, 8, 9, 10호기(각각 1,400MW)가 작년 5월 지정고시 되었으며, 2015년까지 18개를 더 짓는다는 구상이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탈핵화의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과 정말 대조적이다. 독일 의회는 2001년 12월 향후 20년 안에 독일 내 19개 원자력 발전소 전부를 폐쇄할 것을 규정한 원전폐쇄 법안을 승인했다. 또한 한전이 '원자력선진국'이라고 홍보하던 프랑스조차 최근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지난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빌미로 2010년까지 총 20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던 일본조차도 지난 10년 동안 연이은 대형사고를 겪은 후 국민여론의 반대로 더 이상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찬핵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가 왜 이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초기 건설비용은 물론이고 사후 처리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으며, 위험비용에 따른 외부손실을 따졌을 때 경제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명이 다한 원전이나 핵폐기물 처리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보관 기간과 안정성의 문제, 그리고 크고 작은 원전사고 둥은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인 탈핵의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대규모 원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에너지 부족이라는 이유가 주된 논리인데,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메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라는 것이다. 두 가지 갈등 이는 결국 앞으로 펼쳐질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는 핵산업을 지속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쟁점이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정부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을 주장할 것이고 그래서 핵폐기장 건설이 필수라고 선전할 것이다. 반핵단체들은 대체에너지를 통한 대안 모색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핵폐기장 건설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핵발전을 둘러싼 이 세 주체들 간의 갈등의 결말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관철 여부를 판가름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선명한 대립이 그대로 드러나기보다는 '지역개발'과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非산유국의 대안'이라는 왜곡된 쟁점을 가지고 드러난다. 첫 번째 갈등 : 지역개발 새만금 사업 추진과정에도 드러난 바 지역개발논리가 항상 작용하기 마련인데, 이번에 선정된 후보지의 경우를 보아도 영덕과 울진(경상북도 동해안 접경 지역), 고창과 영광(전라남북도 접경지역)을 선정하여 지역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역개발 약속과 경제적 보상은 몇 년째 지역경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는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당근이다. 현재 정부는 3000여 억 원의 지역지원금을 주겠다며 핵폐기장 유치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장이라는 것이 워낙 혐오시설이라 다른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던 지역의 현실을 보아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것은 원전건설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부대효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전건설이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했다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생산물은 그 지역의 이름으로 팔리기보다 모호한 이름을 걸거나. 다른 주변지역의 이름을 걸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현실만이 명백할 뿐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이나 여러 혐오시설물의 건립과정에서도 보여지듯, 시설물과 거주지의 거리에 따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코앞에 맞닿은 경우는 이주가능한 엄청난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약간 거리가 떨어진 경우는 보상금이 그리 높지도 않다. 그리고 아예 좀 멀리 떨어진 경우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지역주민의 이러한 의식지형을 최대한 악용하려 할 것이다. 경쟁과 차등 대우를 통해서 틀림없이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쉽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두 번째 갈등 :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에너지 정책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은 그 자체로도 위험 시설에 대한 안정성 여부를 걸고 싸우는 생존권 싸움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핵발전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이다. 핵발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처리 곤란한 핵폐기물은 계속 발생할 것이며, 핵폐기물의 처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발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종착지는 에너지 정책 일반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이다. 현재 전력 생산의 30-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하고 있으며, 50-60%를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화력발전의 경우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탈핵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전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숨은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화력발전의 매각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화력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장되어 가는 핵산업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의도도 짙게 깔려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로 2015년까지 대규모 원전사업을 진행할 경우 유럽 선진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의 1.5배나 되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결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만은 아닌 것이다. 이는 친환경적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절약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 핵발전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여 화력보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를 간단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친환경적 대체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력확보'이라는 논리까지 첨가되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원전사업 추진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핵발전 정책 일반을 철회시키기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핵산업을 수십년 먼저 시작한 서구의 예를 보아도 핵발전의 최후가 비극적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에게 다소 때이른 경고처럼 비춰지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또한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찬핵론자들은 이미 한 수를 두었다. 비록 시대착오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연대를 아직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에 대한 대응으로 범국민대책위와 지역대책위가 구성되었다. 정당,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연구소, 지역주민단체 등이 모인 폭넓은 연대기구가 구성된 것이다. 단체간 성향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사활이 걸린 당면 핵폐기장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한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핵폐기장 건설의 가부의 문제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은 핵에너지 정책중단을 전면적으로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리할 때, 지금까지 환경단체들의 외로운 목소리나 해당 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로 닫혀 있었던 핵폐기장의 문제가 에너지 정책 일반의 문제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국민대책위는 이에 대한 투쟁과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갈 주체로 발전할 것이다. 분명 정권은 시간을 끌면서 분열을 조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의제로 이 문제가 설정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기만적인 깜짝쇼를 여러 번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지난 정권의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또한 핵에너지의 문제가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에 불과하며 진행 중에 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드리마일'과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것인가?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값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PSSP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엘리트들의 배타적인 사교모임인 '다보스 포럼'에 맞서 민중 중심의 대안적 전망을 모색하는 세계 인민들의 연대의 장으로 2001년 1월에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은 올해로 3회를 맞게 되었다.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3회 사회포럼은 놀라울 만큼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올해 세계사회포럼에는 156개국 717개 조직의 대표단 2만763명을 포함하여 10만여 명이라는 거대한 인원이 참석했다. 전체 회의, 세미나, 패널토론 등 공식 프로그램도 대폭 확대되었고, 이외에도 포럼기간동안 참가자들이 다양하게 조직한 워크샵이 1.286개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2회에 걸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사회포럼(2002.11, 이탈리아 피렌체) 아시아사회포럼(2003.1, 인도 하이데라바드), 등 '지역별 사회포럼'과 정세적으로 중요한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주제별 사회포럼'('개발도상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2002. 아르헨티나, '팬-아마존사회포럼')등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 곳곳의 더 많은 사회운동들에게 더욱 풍부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볼 것은 양적인 성장만이 아니다. 'Um outro mundo poss vel(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으로 표상되는 이 거대한 흐름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극복될 수 없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속에서 스스로 삶의 대안을 모색해가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는 장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분출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상호 적합한 연대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모색해가고 있다. 3회 사회포럼의 개요- 무엇이 논의되었나? 2001년 9.11 사태이후 '대 태러전쟁'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 각 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계획과 북한 핵의혹을 둘러싼 한반도에 대한 전쟁위협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장기적 불황과 이에 따라 민중의 삶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사회운동 세력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포럼의 시작과 끝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반대, 식량 주권을 훼손하고 의료, 전력, 수자원 등 공공 서비스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WTO 도하개발의제와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전 세계 민중의 삶의 위기를 초래하는 외채시스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이루어졌다. 특히, 그 동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반전시위의 기운은 개·폐막 행진으로 이어져, 참석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처해있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등의 기를 흔들며 각 국 민중들과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4일간 진행된 크고 작은 회의들은 짧게는 2003년 한해, 길게는 향후 몇 년간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24·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세계 사회운동 대회(World Social Movements Assembly)'에서는 오는 2월 15일 30여 개의 주요도시에 동시다발로 '반전평화 국제 행동' 개최할 것을 결의했으며, 3·8 여성의 날에는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G8 정상회의(6월, 프랑스 에비앙), WTO 5차 각료회의(9월, 멕시코 칸쿤), IMF/세계은행 연차총회(9월, 미국 워싱턴), FTAA 전미 정상회의(10월, 미국 마이애미)를 계기로 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로 했다. 더불어 국제소농조직(Via-campesina)의 '국제농민대회', 주빌리사우스(Jubilee South- 남반구 외채거부 캠페인 네트워크)의 '외채의 부당성에 관한 회의', [우리의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연합(Our World Is Not For Sale-WTO 도하개발의제 반대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전략회의, '세계 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의 워크샵'등에서는 이러한 행동 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세계 정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각 국에서 혹은 지역별로 이루어진 투쟁들을 보고하였으며, 향후 몇 년간의 계획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는 국가 붕괴와 경제파산을 경험한 남미의 참석자들은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채시스템으로 지적하며, 이는 IMF와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조정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채무국들의 지불 거부를 통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외채 지불거부가 민중들의 삶에 아무런 악영향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으며,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올해 새롭게 취임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초국적 곡물기업에 의해 토지에 대한 권리와 종자 및 비료 사용에 대한 결정권 등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각 국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미자유무역지대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음이 보고되었고, 이러한 투쟁을 오는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5차 각료회의 반대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 제기되었다. 2001년 출범한 WTO DDA 협상이 식량, 물, 교육, 의료, 에너지 등의 공공서비스를 상품화함으로써 민중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HIV/AIDS등 심각한 전염병으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민중들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과 여성들의 건강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파괴하고 있음이 증언되었으며, 특히 이를 추동하는 농업협상과 서비스협상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더불어 현재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에 항의하는 반미시위가, 미국의 군사주의적 전략을 반대하는 국제연대 투쟁으로 급진화 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부시정부의 북한 핵의혹을 빌미로 한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한국 참가단의 호소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분출과 연대의 조건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브라질의 CUT(노동조합총연맹), MST(무토지농민운동), ATTAC(금융거래과세운동)등 8개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조직으로 구성된 '브라질 조직위원회(Brazilian Organizing Committee)'와 100여개의 조직으로 구성된 '국제평의회(Internatioal Committee-자세한 목록은 http://www.forumsocialmundial.org.br 참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브라질 조직위원회의 역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2002년에 2차례 진행된 국제평의회 회의에서는 그 역할을 국제평의회로 옮겨올 것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점차 대륙별 사회포럼과 지역별 네트워크들이 활발하게 조직되고 있고 그 규모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러한 기구들의 역할은 개최 장소를 결정하고 이에 따른 각종 실무사항을 점검하는 정도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합의해 가는 과정은 이들 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운동들간의 수평적인 논의와 교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미 사회운동들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미국과 인접하여 끊임없는 군사적, 정치적 위협과 반복되는 국가 경제의 파산 상태를 경험하며 폭발적인 민중들의 투쟁이 분출하고 있는 남미는 최근 브라질, 에콰도르 등 잇단 좌파정권의 등장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극한의 생존의 위협이라는 상황을 맞이한 실업노동자, 무토지 농민,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교육훈련 하며 삶의 터전을 공동으로 형성해 가는 방식의 운동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들은 '다양한 운동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라는 논점을 제출하며 세계사회포럼의 규모와 내용이 풍부해지는데 많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좌파정당들의 제도화와, 타협을 통한 기득권의 방어로 일관하고 있는 노조운동들을 목도하면서 스스로를 '정당이나 노조에 독립적인 사회운동들'로 표상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노조운동과 사회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논점이 긴요한 논의과제로 제기되도록 하였다. 포럼의 참석자들은 작게는 몇몇 토론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할당된 2개의 마이크를 번갈아 가동하며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운동이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며 연대의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사회포럼은 수많은 사회운동들 간의 다양한 논쟁과 경험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의 긍정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각 국의 투쟁을 강화하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이행의 조건을 제시해 줄 것인지는 단언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한의 민중운동이 전 세계의 민중들과의 수평적인 연대의 장에 뛰어들기 위해 스스로 어떤 조건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PSSP
공적연금체계에 대한 공격 지속적인 팽창을 추구하는 금융의 세계화 과정은 기존의 연금 체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적 연금화를 확장하려는 흐름이 추진되어왔다. 공적연금의 비효율성, 재정적자, 세대간의 갈등 유발 등의 문제점이 끈질기게 지적되고 있으며,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 요인 중 하나로 거대한 사적 연금기금의 안정적인 투자가 꼽히고 있다. 한 마디로, 공적연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사적연금 도입이고, 사적연금은 경제성장, 특히 자본시장 발전에 톡톡한 기여를 한다는 것이 이들 공격의 주된 논리다. 1994년 세계은행이 각 국의 연금체계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했을 때,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공적연금은 급속한 노령화와 과도한 연금급여, 수익률 저하 등에 따른 재정 불안정, 그리고 노동수요와 공급 행태 변화 등으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송원근, 2001) 이에 대해 세계은행의 개혁안은 기존의 공적연금만으로는 공적연금 체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3층 보장체계(Three Pillars)"의 연금체계를 권고했다. 이 개혁안은 연금재정방식 및 내용에 있어서 기존의 공적으로 관리되던 부과방식의 확정급여형(Pay-As-You-Go Defined Benefits) 연금체계를 사적으로 운영되는 적립방식의 확정기여형(funded Defined Contribution) 연금체계로 전환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결국 이 의미는 기존 공적연금이 담당했던 역할 중 상당 부분을 사적 연금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로부터 공적연금의 축소와 연금에 있어서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는 사적 연금화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가시화되었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각 국에서 이러한 연금개혁을 추진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사적 연금화를 주도한 세력이었다. 일례로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세계은행의 다층보장체계 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세계은행이 개발자금 지원을 명목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책 결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1990년대까지 3개국에 불과했던 사적연금으로의 개혁이 2000년대에는 20여 개국에서 진행되었으며, 세계은행 및 OECD를 필두로 한 사적연금으로의 전환을 권고하거나 강제하는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제부터 사적연금으로의 전환이라는 연금개혁을 정당화하는 논리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타당하고, 객관적인 듯한 이 논리들이 사실은 연금개혁을 통해 이익을 보는 자들의 관점에서 동원된 것이라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공적연금 체계를 공격하는 논리들 우선 기존의 공적 연금체계를 공격하는 가장 주된 논리는 사회가 급속하게 노령화되고 있기 때문에 부과방식의 확정급여형 연금체계의 재정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구구성의 비율상 퇴직한 노령층, 즉 연금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는데 비해 그들의 연금을 부담할 노동인구 층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정부가 연금 수급자들에게 약속된 급여를 제공하려면 엄청난 정부 재정 적자를 감수하거나, 이를 메우기 위해 노동인구 층에게 세금 또는 연금갹출금을 늘려서 더욱 큰 부담을 지워야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등 유럽의 선진국들의 경우 공적연금의 재정적자를 보존하기 위해 연금 지급 시기를 65세에서 67세로 상향조정하거나 연금 보험료(갹출금)를 높이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은행 등은 이런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적 연금체계로의 전환, 3축 연금체제 구축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국민연금 재정 불안정 상황에 대해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에서 연금 보험료율을 소득의 17~18%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현재는 소득의 9% 수준), 연금 수령액은 OECD 국가 평균인 소득의 40%(현재 소득의 60%) 정도로 내리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KDI의 경우에는 세계은행의 3축 연금체제를 근본적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노령화와 이에 따른 공적연금의 재정 적자 문제가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곧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사적연금을 도입할 이유가 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적인 연금 체계가 늘어나는 노인 인구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적인 연금체계는 공적연금의 재정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공적인 책임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노후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노인의 비중이 늘어나면 그에 따른 부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증가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의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추세가 되고 있는 사적 연금화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중단 없이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해 온 정부의 체제보다 자본의 필요와 입맛에 따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금융시장에 맡겨진 연금기금이 더욱 안정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적연금화가 이상적인 연금개혁의 방향성이라 주장한다면, 그 의도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적 연금화가 과연 누구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가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다음으로 연금체계가 가지는 경제적 효과에 관한 논의이다. 사적연금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기존의 공적연금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반면, 적립식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는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1997년에 제출된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은행이 제안한 3축 연금체계 중 2축이라 할 수 있는 사적 관리의 적립식 확정기여형은 기존의 체계의 단점을 다음과 같이 극복할 수 있다. 우선 확정'갹출'형은 조기퇴직을 막고 자동적으로 퇴직연령을 높여주게 된다. 그리고 적립방식은 기존 부과방식이 연금 초기에 비용이 은폐된 채 미래로 이전됨으로써 이후 막대한 재정부담을 초래하는데 반해, 처음부터 미래의 조세(사회보장세 등)증가를 막고 현실적인 연금운용을 가능케 한다. 덧붙여 장기적인 국민저축을 형성하고, 저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정부는 자본을 가장 잘 분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80년대 공적으로 관리되던 연금기금 대부분이 적자였는데, 이는 대부분의 공적 관리자들이 몰락하는 국유기업의 정부채권에 연금기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으로 관리되는 연금기금은 높은 수익률을 위해 공채, 사채, 증권, 부동산 등에 포트폴리오가 가능하다.(James, 1997a, 1997b) 그러나 사적연금이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가설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결과는 분분한 상황이며, 각 국의 자본시장 발달 정도에 따라 상황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 효과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부과방식의 연금을 적립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거대한 투자기금을 조성하여 자본시장에 든든한 버팀목을 세워준다는 것이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연금기금의 경쟁적 투자활동은 금융시장을 매우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즉, 적립식 확정기여형 연금이 실제 연금 수령자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경제성장(금융세계화 국면에서 이러한 경제성장 자체가 있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을 가져오는가는 매우 불분명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새롭고도 거대한 자금의 원천이 생길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을 발달시킬 수 있는 동력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아주 커다란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미의 연금개혁 사적연금화가 가장 많이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남미의 연금개혁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은 연금개혁을 주장하는 논리가 연금 자체의 문제를 넘어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적연금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약속했던 '더 나은 연금, 더욱 안정적인 노후 소득'이 과연 실현되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남미대륙의 연금개혁을 선도한 것은 칠레였다. 칠레는 1981년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연금개혁을 실시했고, 뒤이어 남미의 여러 나라가 칠레와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연금 체제의 개혁은 국가 예산뿐만 아니라 연금 개혁으로 이익을 본 사람과 손해를 본 사람들의 정치적 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연금개혁은 매우 논쟁적인 문제가 되며, 따라서 선진국들에서는 기존의 연금 체계를 심각하게 개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980년대 이전에는 남미에서도 연금개혁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1990년대에 남미 대륙에서 연금개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배후에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한다. 1980년대 남미의 연금체계가 노령화, 실질임금 하락 등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었지만, 연금개혁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로 추진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남미의 연금개혁은 외채위기의 결과로 남미 정부들이 추진했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이었으며, 국제적인 금융기관들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연금개혁에 대한 국제기관들의 압력이 남미에 비해 훨씬 덜한 선진국들은 다른 형태의 개혁들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1970년대 말에 남미 국가들의 연금체계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고, 이러한 문제점들은 1980년대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우선 남미 국가들의 연금제도가 보여주었던 특혜적 성격이 문제가 되었다.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에게 높은 연금을 지급해왔던 기존 연금제도는 높은 사회적 지출과 다른 연금수령자들의 손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정부는 종종 연금기여금의 부족분을 재정 적자를 통해 보존하려 했고, 이것은 부채를 늘리는 결과를 낳아 인플레가 높았던 시기에 연금의 재정건정성이 심각하게 위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상황은 외채위기와 그에 따른 불황의 국면에서 더욱 악화되었다. 공식부문의 고용이 감소했고, 연금기여금을 납부하는 노동자의 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게다가 실질임금의 감소와 함께 연금기여금의 실질가치 또한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은 기존 연금체계의 원칙과 급여의 실질가치를 혼란에 빠뜨렸다. 덧붙여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집중된 무역자유화 조치들은 고용주들이 사회보장에 대한 기여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고용주들은 정치적 압박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부과된 규제들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혼합되어, '연금체계의 위기'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연금체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사적연금화였다. 신자유주의적 개혁론자들과 국제적 금융기관들은 다른 어떤 처방보다 사적연금화를 선호했다. 그들은 사적연금화가 연금체계의 재정적 생존능력을 보장하고, 연금체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며, 기여와 급여 사이에 좀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본시장의 발달을 촉진하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개혁에 비해 월등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라 강제적이고, 완전히 적립되며, 사적으로 운영되는 개인계정의 연금 체계가 남미 국가들의 연금개혁의 방향성으로 제시되었다. 물론 이런 형태의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노조들과 연금가입자들, 그리고 정당들이 있었고, 이들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는 분파들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구체적인 연금형태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연금개혁을 주장했던 자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금개혁이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었던 중장기적인 효과들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적연금이 보상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는 약속, 사적연금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약속, 공적연금의 과다한 관리비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사적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만들면서 오히려 저소득층 등을 보상범위에서 제외시키는 효과를 나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을 둘러싼 평가는 분분하지만, 결국 이를 통해 노동자 민중들의 삶이 나아지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느냐는 관점에 서면, 답은 명확해진다. 그리고 사적연금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과 개인계정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광고 및 관리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공적연금의 관리비용을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덧붙여 사적연금은 집합적인 사회보장체계를 해소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를 파괴시켰고, 소득 재분배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남미는 외채위기 등의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각 국가들의 사회적 필요와 합의와는 무관하게 강제적이고 완전적립식의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미의 엘리트들과 초민족적 자본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연금개혁의 효과 우선 현 시기 금융의 팽창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의 세계화가 노동자들의 조건을 어떻게 악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금융세계화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의 기반을 붕괴시킴으로써 더 이상 고용 중심적인 정책추진을 불가능하게 한다. 더불어 금융의 팽창은 자본파괴를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통해 실업과 소득불평등을 야기하며, 불안정한 노동 층을 양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적연금을 도입하는 것은 금융자본에게는 거대한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령급여의 불안정성은 심화된다. 이것은 계속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순환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매우 분열적이고, 모순적이다. 자본의 금융화에 따라 노동계급 다수는 금융시장에 자산을 투입하게 되고(사적연금의 도입은 연금가입자 모두가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자신의 계좌를 가지는 것이다.), 그 양은 계속 증가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종종 생산부문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와 금융시장에서의 이해관계가 분열되는 경험을 겪는다. 금융시장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이름으로 생산과 고용의 파괴를 동반하는 구조조정 추진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과 노후보장의 더 많은 부분을 금융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을 수호하고, 나아가 금융시장의 규율에 맞춰 효율적인 기업통치, 즉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착취에 기반을 두어 수익률을 높일 것을 요구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금융시장에 투자할 자산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이는 신자유주의가 추진하는 노동의 유연화, 불안정 노동의 확대에 기인한다. 늘어가는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 층은 사적 연금체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기업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개인연금에 가입할 만큼의 여유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후는 알아서 책임져야 하는 사적연금 체계에서 노후보장의 안정성은 판돈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저소득 불안정 노동 층은 갹출금의 액수도 적을 뿐더러, 직장 및 소득이 불안정하기에 이마저 안정적으로 납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적연금체계는 연금을 운용하는 기준이 철저하게 시장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 문제 및 소득 재분배 효과는 사적연금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일례로 사적연금들은 여성의 평균수명이 길다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연금지급액수를 낮춘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적연금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민중들의 삶과 연대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는 연금개혁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인가? 우선 연금개혁론자들이 이야기하는 자본시장 발달의 측면을 짚어보자. 적립식의 사적연금은 적게는 임금의 2%에서 많게는 10%에 이르는 보험료를 강제로 금융기관에 적립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국내외 자본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금원이 된다. 연기금의 금융시장 투입은 자연스럽게 자본시장의 급작스러운 팽창을 가져온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장기호황의 기반에는 연기금의 안정적인 자금공급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적립식 확정갹출형 연금을 통해 자본시장의 발달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본시장의 인프라가 충분히 발달해있는 나라였으며, 주식시장 및 금융시장의 전 세계 핵심을 차지하는 나라라는 조건이 있다.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 연기금의 자본시장 투자가 기대했던 자본시장 발달과 경제성장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연금개혁을 통해 자본시장 확대를 꾀하며, 금융의 팽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했던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90년대 말과 2000년대에 들어서 또 다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들 국가에서 연금의 사적 전환이 자본시장의 심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시장 심화는 경제성장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개방되고 자유화된 자본시장으로의 변모 속에서 국내 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구조조정 정책의 엄격하고 실행을 강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 시기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를 금융의 팽창을 통해 지연시키려는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사적연금의 도입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선진국의 자본시장의 발달뿐만 아니라, 제3세계 및 신흥시장의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것이며, 더불어 자신들의 팽창을 지속하기 위해 사활적인 것이다. 결국 세계은행을 비롯한 많은 논자들이 안정적인 노후소득보장, 경제 성장, 세대간의 갈등 완화 등의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연금개혁이 가장 필요한 것은 초민족적 자본 분파다. 2000년대 들어서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황의 조짐은 사적연금을 주장하는 논지의 허구성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자본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조차도 지난 2년 반 동안 주식시장 하락으로 인해 미국의 은퇴자들이 준비해놓은 자금 중 6780억 달러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월스트리트 저널, 2002년 9월 9일) 적립식의 사적연금이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가정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1990년대 거대한 연기금의 형성과 자본시장에의 투자를 통해 미국이 보여주었던 호황과 높은 수익률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자본시장을 지탱해줄 원천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개혁되지 않은 수많은 국가들의 연기금이 그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연금개혁이 노동자민중의 생계와 노후소득에 가하는 공격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한도 예외일 수 없으며, 이미 연금개혁을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공적연금을 더욱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걸맞은 방향으로 재편하기 위한 우리의 논의와 투쟁도 시급히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PSSP <참고자료> 송원근, 2002, 「미국 연기금의 주식투자 현황과 함의」, 『미국자본주의 해부』, 풀빛 주은선, 2001, 「세계의 공적연금 민영화의 쟁점과 동향」, 『사회복지와 노동』 제3호 2001년 가을 Huber, Evelyne and John D. Stephens, 2000, 「The Political Economy of Pension Reform: Latin America in Comparative perspective」, Geneva, Switxerland, United Nations Research Institue for Social Development Minns, R. 2001, 『The Cold War in Welfare Stock Market versus Pensions』, Verso James E. 1997a, "New System for Old Security - Theory, Practice and Empirical Evidence",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s, No. 1766 1997b, "Pension Reform: Is There An Efficiency - Equity Trade-off?",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s, No. 1767
월간 [사회진보연대] 3월호 특집글입니다. 아래 정영섭동지가 모아서 올린 자료글들과 함께 참고하십시요 ps> 내일이 노무현 취임식인데, TV를 켜니 장택상, 유진산과 김두환의 민중학살을 무협활극으로 미화한 쓰 레기같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이 주욱 나와서 동북 아중심이 어쩌구, 국민참여가 어쩌구하는 꼴깝들을 떠는통에 잠이 확깨네 요.. 앞으로 이 나라꼴이 어떻게 될런지, 안타까운 밤입니다.
1.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 재정경제부, 2002. 7 2. 2002년 경제특구법 통과저지 투쟁시 제반 민중운동 입장 3. 최근 경제특구 추진 관련 각종 뉴스 모음 4. 부산시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계획 5. 홍콩, 싱가폴, 중국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