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투쟁 취재기 양극화에 대한 노무현의 기막힌 해법1) 지난 11월 18·19 양일에 걸쳐 아펙 21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부산 벡스코에서 두 차례의 정상회의를 갖고, '부산선언'과 'DDA 특별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자의 핵심은 지난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채택된 이른바 '보고르 목표'(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각 2010년과 2020년까지 무역·투자를 자유화)를 재확인하고, 각국의 이행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후자는 말 그대로 '2006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3주 남은 WTO 각료 회의를 겨냥한 것이다. 관련해 정부는 "APEC은 그간 DDA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각료급 DDA 성명문을 채택하여 의미 있는 기여를 해 왔는데, 올해에는 6월 제주 개최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각료급 성명문을 채택한 데 이어 금번에 정상차원의 성명문까지 채택함으로써 DDA협상 진전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며 자평했다. 11월 18일, 공연비용 포함 최소 8억에서 최대 15억 짜리 궁중요리 만찬을 벌이면서, 노무현은 시장개방 지지를 전제로 한 '양극화 해결'이라는 참으로 오묘한 말을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그 시간 수영교 건너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가로막히고 물대포에 쓰러지며 곤봉과 저 끔찍한 방패에 얻어맞고 있었다. 양극화의 아래편에 있는 민중들을 폭력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하는 것. 이보다 기막힌 양극화 해결 방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농민들의 울분: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 11월 18일 부산 곳곳에서는 여러 집회가 열렸다. 오전 10시 부산대 앞에서 열린 '대안세계화를 향한 민중의 목소리' 집회를 시작으로, 12시부터는 광안역, 망미3거리, 광안리 만남의 광장, 토곡4거리 등지에서 농민·노동자·빈민·여성·지역/사회단체 등 부문대회가 개최되었다. 12시 고(故) 오추옥 열사 추모식으로 시작된 농민대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울분'(鬱憤)이 감돌고 있었다. 쌀 비준안 국회 통과와 WTO 홍콩각료회의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데다가(결국 쌀 비준안은 아펙이라는 부담스러운 일정이 끝난 11월 23일, 한때 농민의 '우군'이었던 전대협 출신 386 의원들의 주도 하에 통과되었다), 수백 명 농민을 다치게 하고 지난 11월 24일 끝끝내 전용철 농민을 열사로 만든 11월 15일 농민대회의 폭력 탄압 직후였으며, 당일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참여하려는 농민들을 출발지에서부터 경찰차량으로 막고, 전세버스 차량키를 탈취하고, 섬에서 뭍으로 통하는 하나밖에 없는 다리를 봉쇄하고, 톨게이트에서 차단하는 등 참으로 비상식적인 탄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하디 순한 농민이라도 이 지경이 되면 격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아펙 투쟁에 나오시게 됐느냐 라는 질문에,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라고 반문한 진주의 한 여성 농민처럼, 농민들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관념적이라거나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현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반대투쟁으로 시작해서 2003년 고(故) 이경해 열사의 피값으로 얻어낸 WTO 칸쿤각료회의 저지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가장 선구적이고 가장 비타협적이고 가장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펙투쟁에 참가한 농민대중들은 11월 부산 아펙 회의가 DDA(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12월 WTO 홍콩각료회의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또 보수언론과 지배엘리트들이 모욕적으로 지껄이는 것과 전혀 달리, 대책 없고 퇴행적으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부산시민'이라고 해 달라던 한 농민은 개방이나 세계화 자체는 대세라 치더라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얘기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농민들은 개방 일반이냐 고립 일반이냐 라는 추상적이고 폭력적인 이분법을 들이미는 지배계급보다 훨씬 현실(주의)적이었다. 농민들은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 강행 기도에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이 국가가 농민들 편에 설 것이라는 헛된 기대 따위를 가져서가 결코 아니다.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상 핑계로 드는 저 '세계적 대세' 최근 WTO 협상의 난항에서 보듯 전혀 '대세'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에 맞서, 칸쿤 때 그랬던 것처럼 홍콩에서도 저 무책임하고 의지 없는 정부 대신 농민들 스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다는 주체적 계획과 의지를 국회가 정면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는 국가가 지금껏 말한 것처럼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포기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에 반대하는 농민들에 대한 잔혹한 국가폭력과 살인은 '광주민중항쟁'과 '87년 6월 항쟁'은 물론 심지어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봉기의 기억을 현재의 투쟁에 오버랩했다. 취재 과정에서 농민들로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온 쌀을 우리 대에 끊기게 할 수는 없다는 말, 남한농민들은 (세계의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식량주권과 민중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말, 유사 이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배계급들이 나라를 구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말 등을 들었는데, 그 말들은 하나같이 천근의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이처럼 대중들이, 전통과 주권과 책임 등 전통적으로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관념들에 대한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이런 보편성을 떠맡을 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상황은 결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앞으로 이 투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관련하여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혹은 그렇게 하는 데 우리를 포함한 사회운동의 의무와 역할이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대안세계화 운동의 마주침 한편 망미교차로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WTO DDA 협상에 교육개방이 현안으로 걸려 있을 뿐더러, '아펙계기수업'에 관한 공동수업안(흔히 '아펙반대교육'으로 호도되는)을 지배계급이 맹렬히 공격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아펙반대의 중심에 서게 된 전교조 조합원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잘 몰랐던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교육청이 올해 1학기에 아펙선전자료를 배포하면서 계기수업 및 그림대회 등 관련 문예행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아펙의 좋은 점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교조는 정부자료와 함께 반대측 자료도 함께 활용할 것을 조합원들에게 제안했고, 참고자료 중 하나로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에서 제작한 아펙반대 동영상을 전교조 홈페이지 자료실에 등록했다. 이렇듯 일방적 홍보를 토론수업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 지배계급들이 온갖 무시무시한 수사를 갖다 붙이며 비난했던 '반아펙수업'의 전말이다. 지배계급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중립성'이란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을 곧이곧대로 선전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이견의 목소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것은 곧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된다. 또한 단 한 번만 인터뷰를 해 보면 명백해질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또는 심지어 확인했으면서도 국가와 지배계급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한술 더 떠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서는 것이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의 작태다. 경기도 건설연맹과 인천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온 노조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펙 때문에 부산지역 건설현장이 모두 정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일용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에서 온 높으신 금융투자자들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산시는 노점상과 노숙자 등 빈민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들은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아펙의 본질을 집약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건설 현장에서 진행 중인 극단적인 불평등과 궤를 같이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 독점 세력만이 살아남는 가운데 분양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반면, 서민들은 고통받고 건설현장 비정규직은 점점 더 확대된다. 아펙 투쟁에 이은 비정규직법 개악안 반대투쟁에 관한 계획을 물었을 때, 건설현장은 이미 다 비정규직화되었고 더 비정규직으로 만들 사람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무원 노조 부산지부 조합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초래된 빈곤확대나 불평등 심화에 맞서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체적 사례를 묻는 질문에, 그는 1997년 IMF 이후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나온 공무원 구조조정안 곧 신공공관리정책을 지목했다. 이중 인사정책의 핵심은 현재 92만에 이르는 공무원 정원을 56만까지 축소함으로써 50% 가량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또한 총액인건비제 역시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그 핵심은 각 자치단체의 실적에 대한 평가제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서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정책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고, 공무원들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확대함으로써 매관매직 등 부패가 성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확인되듯,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정적 계기는 여전히 IMF로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이 구조조정의 결과에 고통받고 그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 외로 인터뷰하지 못한 많은 단위들이 다 나름의 준비와 근거에 따라 아펙 투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다만 인터뷰한 몇몇 단위들을 미루어 짐작컨대, 모든 노동자들이 IMF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겪고 있지 않을까 싶다. IMF를 전후하여 도입된 정리해고 및 파견법 등은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을 체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경제위기로 인한 거대한 실업과 빈곤에 대해 지배계급은 여러 층위의 비정규직 도입을 처방했고, 이는 '노동빈민'(working poor)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한편 이 같은 불안정한 처지에 대한 공포에 기초하여 노동규율/강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현안 이외의 문제를 사고할 여유를 도저히 주지 않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생존 조건이 확립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인터뷰에서 들었던 가장 서글픈 얘기 중 하나는 한 비정규직 청소용역노동자의 말이었다. 아펙에 왜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세계화가 공공부문 개방 역시 초래할 것이고 여기에는 청소부문 인력개방도 포함되는데 그렇게 되면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됨으로써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체계적으로 조장/심화함으로써 연대의 가능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1970년대부터 전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한편으로 완전고용 다른 편으로 고임금 또는 일부 재생산비용의 경향적 탈상품화에 기초한 노자타협체제를 붕괴시켰고, 이를 계기로 부르주아들은 금융화 또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개념을 빌자면) '강탈(dispossession)에 의한 축적'을 전면화한다. 이 같은 축적의 핵심은 지금껏 상품화를 모면했던 모든 '공유물'에 대한 폭력적인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으로, 이때 주된 강탈 대상이 되는 것은 의료(또는 복지, 곧 부분적으로 사회화된 재생산비용), 식량(또는 보다 넓게 말하자면 '생태'), 그리고 이 모두와 연관되는 지식(및 교육) 등이다. 경제위기를 등에 업은 이 같은 전면적 공세에 대해, 전통적인 계급투쟁 전략을 쇄신하지 못한 노동자운동은 후퇴를 거듭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강탈 및 이것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는 각종 전쟁과 폭력에 맞선 새로운 주체로, 다양한 반세계화/대안세계화 운동 및 반전/반폭력 운동이 부상한다. 이번 아펙투쟁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이 눈에 띠었다. 보건의료운동을 하는 한 활동가는 어떤 계기로 아펙반대투쟁에 나서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번 아펙에 TRIPs(지적재산권협정) 강화라는 의제가 올라와 있고 이는 의약품 특허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질병치료를 매개로 한 민중수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전주에서 온 한 학생은 같은 질문에 대해 자신이 고(故) 김선일씨의 죽음을 계기로 반전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전부터 아펙에서 파병 등 전쟁과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데다가, 이번 아펙에서 논의되는 '인간안보'라는 의제가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더욱 강화시키고 인종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피부로 느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교육비와 취업 부담으로 인한 대학(인)의 전반적 위축을 들었는데, 이 역시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비록 인터뷰는 하지 못했지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특히 활력을 발산했던 주체 중 하나가 평택이나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전운동세력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같은 새로운 주체들에 비하면, 87년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노동자운동은 다소 활력이 없어 보였다. 이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해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87년을 전후한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재벌은 시대착오적 과잉축적을 진행했고 노동자운동은 이 같은 고성장/완전고용에 조응하는 고임금을 자신의 목표로 하게 된다. 이 전략은 당시의 정세에서 유효했을 수 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는 이 같은 발전전망 및 이를 전제로 한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당시 도입된 구조조정 결과 전면화된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객관적 조건 하에서, 경제성장에 조응하는 임금상승 전략은 '노동귀족'의 전략으로 고립되고 만다. 87년은 끝났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강탈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대안세계화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제위기/불황기에 적합하지 않은 '87년 체제'를 해체하고 경제위기를 조건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열어 가는 것이다. 이때 핵심적인 두 가지 과제는, 세계적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리고 한국경제 위기의 내재적 연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정립된 노동자운동의 전략 혁신 및 새로운 전략의 광범위한 토론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점 모두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대안세계화 운동과의 마주침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아펙투쟁은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같은 마주침은 특정 계기에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고(故) 전용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농민투쟁과 비정규직 법안 개악 시도로 촉발된 노동자투쟁의 연대, 신자유주의적이고 경찰적인 국가폭력에 맞선 민중들의 연대다.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의 현실 (반)주변부에서 신자유주의는 발전주의 이후에 온다. 발전주의가 불균등하나마 민족국가 전반의 발전 기획을 추진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예컨대 '동북아 중심국가' 등의 허황된 수사로 민족적인 발전 전망의 상실을 은폐하며 이른바 '선택과 집중' 즉 배제에 기초한 지역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 이제 각 지역(경제)은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시장과 민간자본의 시장에 자기 지역사회(경제)를 떠넘겨야 한다. 국가지원이 완전히 철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제 금융자본에 철저히 종속되도록 지역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수단이 된다. 당장 정부의 살농정책(殺農政策)은 농업에 기초한 부안이나 평택 같은 지역(주민)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여기에 정부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폐기장이나 미군기지를 유치해 그 보상금으로 지역을 뜨거나 이들에 종속된 서비스업에 종사하라고 협박한다. 한때 광산업이 흥했던 강원 지역은 이제 초민족 엘리트나 도시의 부자가 머리 식히러 찾아오는 도박지대가 된다. 제주도에서는 영어공용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영화제만도 대여섯 개가 넘고, 각종 예술비엔날레가 전국 곳곳에 열린다. 심지어 강원 강릉시와 전남 장성읍, 전남 곡성군과 경기 옹진군, 그리고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은 각각 홍길동, 심청, 논개의 연고권을 놓고 소송을 불사하는 분쟁을 벌인다. 물론 예술과 전통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관광 '자원'을 개발해 금융자본을 유치하고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발전의 실체다.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부산시민의 대다수가 아펙 유치를 찬성한 것은 이런 사정을 직접적 배경으로 한다. 부산투쟁위원회의 한 활동가는 본래 물류산업과 서비스업에 기초를 두고 있는 부산 역시 최근 경제위기의 영향을 크게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각종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부산의 위상이 제고되고 고용이 확대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고용은 대부분 일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이지만 말이다. 이 같은 금융자본 유치경쟁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노조무력화 등 노동조건의 악화가 강제된다. 실제로 한 활동가가 증언한 몇 년 전 초민족적 유통업체 까르푸 사상점에서 벌어진 사례는 상징적이다. 당시 이곳에서 노동쟁의가 벌어졌는데, 이 자체는 다른 투쟁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본래 투자를 유치할 때 한국 쪽에서 약속했던 조건과 다르다며 외교통상부에 이를 '외교 문제'로 제기했고, 이에 놀란 외통부는 해당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을 불러 중재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들은 부랴부랴 쟁의현장에 와서, 이 문제는 외교 문제로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노동쟁의 때문에 금융자본이 철수하게 되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렇듯 노동쟁의가 외교 분쟁이 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는 풍경은, 다소 극적이기는 하지만 아주 현실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단면이다. 또한 앞서 잠시 언급한 노점상 생존권이나 지역 건설현장의 중단 등의 문제도 단지 몇몇 관료들의 '전시행정'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자본의 유치에 입각한 '지역 발전'이 절대선이 되면서, 그에 반대하는 모든 것은 '범죄'가 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행정·경찰력에 의해 제거된다. 배제와 경찰폭력의 악순환,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정치지형의 변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야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압살, 그리고 행정·경찰 논리의 확대가 내적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각각의 부문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모순은 극히 다양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놀라운 정도의 일치가 발견됐다. 인터뷰한 모든 이들은 국가가 민중들의 삶에 깊은 연관이 있는 사안들을 그/녀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채 반민주적으로 '강행처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는 민중들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만 참여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민중들은 저항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자신들이 허용한 선을 넘어서는 모든 저항은 철저히 범죄화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다. 민중의 '몫소리'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는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도 거의 다를 바 없다. 실제로 한 농민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옆에 있던 동료 농민은 "기자여? 기자면 가"라고 매섭게 말했고, 사회단체에서 일한다고 밝힌 후에야 인터뷰를 허락했다. 군산의 한 농민은 최근 벌어지는 죽음이 바로 이 같은 침묵의 강요와 관련된다고 말했다. 단지 생존의 위기가 극에 달해서가 아니라, 이 같은 생존의 위기를 그 누구도 공적으로 다루지 않을뿐더러 필사적으로 건넨 목소리마저 억압될 때, 죽음을 통해서 자신들의 고통스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니 바로 전날인 11월 17일,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 규탄 투쟁에 다녀와 늦은 저녁을 들던 식당이 떠올랐다. 경주 투쟁을 비롯한 아펙투쟁이 어떤 식으로 보도될까 궁금해 식사를 마친 다음까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부산지역 경제인들이 국제행사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걸 두고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준엄히 꾸짖은 후, 몇 명의 활동가가 '불법시위'를 하다가 잡혔다(무엇을 외쳤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은 채!)는 단 몇 초의 단신이 보도될 뿐이었다. 오직 법을 위반하는 물리력을 동원할 때에만 극히 짧은 순간 우리의 존재를 비춰준다는 점을 (재)확인했을 때 느꼈던 그 밀폐감과 숨막힘. 대중들이 이른바 '대항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은 항상 이런 폐쇄감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최근에 목격한 그런 종류의 폭력이 아마 프랑스 소요사태일 것이다. 최근 결국 고(故) 전용철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끔찍했던 경찰폭력은 단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살펴본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대중들의 대항폭력을 도발하고, 그렇게 유도된 대항폭력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는 불안에 기초하여 법질서와 '예방폭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한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 경찰행위는 국가의 유일한 정당성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불안정한 정당성인데, 왜냐하면 경찰은 모든 갈등과 차이, 결국 자신의 편협한 기준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취급함으로써 시민적 존엄과 자유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부산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한 한 케이블 노동자는 얼마 전 전봇대 위에 5분 이상 올라가 있으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테니 조심하라는 어이없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펙 기간을 전후해 부산에서 펼쳐진 준계엄상태나,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대해 과격시위가 '예상'된다며 톨게이트를 포함한 모든 길목에서 대중들을 차단하던 경찰들의 작태, 그리고 강과 콘테이너 박스라는 준자연적 경계선 및 그를 수호하는 물대포와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력에 의해 '분단'된 아펙정상회의와 항의시위대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섬뜩한 미래를 예시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던 한 노동자는 '헌법 1조'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입헌' 원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가 정확하게 통찰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및 그것이 동반하는 경찰국가는, 인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과 동료 시민들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주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이 조직된 폭력의 해체는 민주주의 정치의 재개를 위해 가장 다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펙 투쟁을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과 WTO DDA 분쇄 투쟁으로 이어가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두 운동의 결합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초민족자본과 지배계급들을 가로막는 모든 경계선들을 폐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들의 연대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계선들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생산해 낸다. 우리가 이번 아펙투쟁을 통해 생생히 목격한 것처럼, 전세계의 정치엘리트와 자본가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미래를 속삭이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찾아온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은 공항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민중들은 톨게이트에서, 아펙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수영교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로막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같은 다양한 경계선들의 강화와 (재)생산을 통해서만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대안세계화 운동에 관한 핵심 명제를 하나 얻어낼 수 있다. 즉 대안세계화 운동은 국경을 비롯한 저 모든 강압적인 경계선들을 해체하고 그것들 때문에 가로막혔던 전세계 민중들 간의 연대를 이룸으로써 초민족자본과 엘리트들에 대한 통제를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본과 국가에 의한 민중의 통제를, 민중에 의한 자본과 국가의 통제로 역전시키는 운동이다. 이는 오직 자본과 특히 국가가 민중들에게 부여해 온 동일성에 갇히지 않는 연대가 이루어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정세적으로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과 미국에 복종하는 재벌 및 그 주구 노무현 정권, 다른 편으로 그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이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 통합'을 통해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다는 따위의 미망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농민 민중들과 연대하여 WTO DD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분쇄하고 '식량주권' 등의 민중적 기획들을 세계화함으로써 초민족자본과 국가를 아래 및 위 양쪽 편에서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을 구성해 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단언컨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국내 지배계급과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더 현실(주의)적이다. WTO DDA 협상을 겨냥하여 쌀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구역질나는 축제인 아펙에 대한 반대목소리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고(故) 전용철 농민열사를 살해한 지금에도 신자유주의 지배계급과 민중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다는 미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 운동에는 미래가 없다. 민생파탄 민주압살 노무현 정권을 퇴진시키며, 국내 지배계급을 향한 비굴한 애원이 아닌 전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로 WTO DDA 협상을 분쇄하고 또다른 세계로의 길을 엶으로써 민중운동의 독립성을 마침내 쟁취하는 것, 대안세계화 운동은 듣기 좋은 관념적 수사가 아니라 바로 이 물리적이고 살 떨리는 투쟁이다. 우리는 지금 이 투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각주] 1) 이 글은 지난 11월 셋째 주에 있었던 아펙투쟁 중 특히 18일 집회현장을 취재한 것입니다. 그날, 아래 취재한 단위들보다 훨씬 더 많은 단위들이 참가했으나, 취재 역량의 한계로 그 목소리를 다 담지 못했습니다. 이 점 동지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빕니다.본문으로 [%=박스1%] [%=박스2%] [%=박스3%]
APEC 투쟁 취재기 양극화에 대한 노무현의 기막힌 해법1) 지난 11월 18·19 양일에 걸쳐 아펙 21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부산 벡스코에서 두 차례의 정상회의를 갖고, '부산선언'과 'DDA 특별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자의 핵심은 지난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채택된 이른바 '보고르 목표'(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각 2010년과 2020년까지 무역·투자를 자유화)를 재확인하고, 각국의 이행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후자는 말 그대로 '2006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3주 남은 WTO 각료 회의를 겨냥한 것이다. 관련해 정부는 "APEC은 그간 DDA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각료급 DDA 성명문을 채택하여 의미 있는 기여를 해 왔는데, 올해에는 6월 제주 개최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각료급 성명문을 채택한 데 이어 금번에 정상차원의 성명문까지 채택함으로써 DDA협상 진전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며 자평했다. 11월 18일, 공연비용 포함 최소 8억에서 최대 15억 짜리 궁중요리 만찬을 벌이면서, 노무현은 시장개방 지지를 전제로 한 '양극화 해결'이라는 참으로 오묘한 말을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그 시간 수영교 건너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가로막히고 물대포에 쓰러지며 곤봉과 저 끔찍한 방패에 얻어맞고 있었다. 양극화의 아래편에 있는 민중들을 폭력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하는 것. 이보다 기막힌 양극화 해결 방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농민들의 울분: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 11월 18일 부산 곳곳에서는 여러 집회가 열렸다. 오전 10시 부산대 앞에서 열린 '대안세계화를 향한 민중의 목소리' 집회를 시작으로, 12시부터는 광안역, 망미3거리, 광안리 만남의 광장, 토곡4거리 등지에서 농민·노동자·빈민·여성·지역/사회단체 등 부문대회가 개최되었다. 12시 고(故) 오추옥 열사 추모식으로 시작된 농민대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울분'(鬱憤)이 감돌고 있었다. 쌀 비준안 국회 통과와 WTO 홍콩각료회의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데다가(결국 쌀 비준안은 아펙이라는 부담스러운 일정이 끝난 11월 23일, 한때 농민의 '우군'이었던 전대협 출신 386 의원들의 주도 하에 통과되었다), 수백 명 농민을 다치게 하고 지난 11월 24일 끝끝내 전용철 농민을 열사로 만든 11월 15일 농민대회의 폭력 탄압 직후였으며, 당일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참여하려는 농민들을 출발지에서부터 경찰차량으로 막고, 전세버스 차량키를 탈취하고, 섬에서 뭍으로 통하는 하나밖에 없는 다리를 봉쇄하고, 톨게이트에서 차단하는 등 참으로 비상식적인 탄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하디 순한 농민이라도 이 지경이 되면 격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아펙 투쟁에 나오시게 됐느냐 라는 질문에,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라고 반문한 진주의 한 여성 농민처럼, 농민들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관념적이라거나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현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반대투쟁으로 시작해서 2003년 고(故) 이경해 열사의 피값으로 얻어낸 WTO 칸쿤각료회의 저지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가장 선구적이고 가장 비타협적이고 가장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펙투쟁에 참가한 농민대중들은 11월 부산 아펙 회의가 DDA(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12월 WTO 홍콩각료회의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또 보수언론과 지배엘리트들이 모욕적으로 지껄이는 것과 전혀 달리, 대책 없고 퇴행적으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부산시민'이라고 해 달라던 한 농민은 개방이나 세계화 자체는 대세라 치더라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얘기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농민들은 개방 일반이냐 고립 일반이냐 라는 추상적이고 폭력적인 이분법을 들이미는 지배계급보다 훨씬 현실(주의)적이었다. 농민들은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 강행 기도에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이 국가가 농민들 편에 설 것이라는 헛된 기대 따위를 가져서가 결코 아니다.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상 핑계로 드는 저 '세계적 대세' 최근 WTO 협상의 난항에서 보듯 전혀 '대세'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에 맞서, 칸쿤 때 그랬던 것처럼 홍콩에서도 저 무책임하고 의지 없는 정부 대신 농민들 스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다는 주체적 계획과 의지를 국회가 정면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는 국가가 지금껏 말한 것처럼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포기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에 반대하는 농민들에 대한 잔혹한 국가폭력과 살인은 '광주민중항쟁'과 '87년 6월 항쟁'은 물론 심지어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봉기의 기억을 현재의 투쟁에 오버랩했다. 취재 과정에서 농민들로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온 쌀을 우리 대에 끊기게 할 수는 없다는 말, 남한농민들은 (세계의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식량주권과 민중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말, 유사 이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배계급들이 나라를 구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말 등을 들었는데, 그 말들은 하나같이 천근의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이처럼 대중들이, 전통과 주권과 책임 등 전통적으로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관념들에 대한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이런 보편성을 떠맡을 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상황은 결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앞으로 이 투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관련하여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혹은 그렇게 하는 데 우리를 포함한 사회운동의 의무와 역할이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대안세계화 운동의 마주침 한편 망미교차로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WTO DDA 협상에 교육개방이 현안으로 걸려 있을 뿐더러, '아펙계기수업'에 관한 공동수업안(흔히 '아펙반대교육'으로 호도되는)을 지배계급이 맹렬히 공격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아펙반대의 중심에 서게 된 전교조 조합원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잘 몰랐던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교육청이 올해 1학기에 아펙선전자료를 배포하면서 계기수업 및 그림대회 등 관련 문예행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아펙의 좋은 점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교조는 정부자료와 함께 반대측 자료도 함께 활용할 것을 조합원들에게 제안했고, 참고자료 중 하나로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에서 제작한 아펙반대 동영상을 전교조 홈페이지 자료실에 등록했다. 이렇듯 일방적 홍보를 토론수업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 지배계급들이 온갖 무시무시한 수사를 갖다 붙이며 비난했던 '반아펙수업'의 전말이다. 지배계급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중립성'이란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을 곧이곧대로 선전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이견의 목소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것은 곧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된다. 또한 단 한 번만 인터뷰를 해 보면 명백해질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또는 심지어 확인했으면서도 국가와 지배계급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한술 더 떠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서는 것이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의 작태다. 경기도 건설연맹과 인천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온 노조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펙 때문에 부산지역 건설현장이 모두 정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일용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에서 온 높으신 금융투자자들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산시는 노점상과 노숙자 등 빈민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들은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아펙의 본질을 집약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건설 현장에서 진행 중인 극단적인 불평등과 궤를 같이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 독점 세력만이 살아남는 가운데 분양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반면, 서민들은 고통받고 건설현장 비정규직은 점점 더 확대된다. 아펙 투쟁에 이은 비정규직법 개악안 반대투쟁에 관한 계획을 물었을 때, 건설현장은 이미 다 비정규직화되었고 더 비정규직으로 만들 사람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무원 노조 부산지부 조합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초래된 빈곤확대나 불평등 심화에 맞서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체적 사례를 묻는 질문에, 그는 1997년 IMF 이후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나온 공무원 구조조정안 곧 신공공관리정책을 지목했다. 이중 인사정책의 핵심은 현재 92만에 이르는 공무원 정원을 56만까지 축소함으로써 50% 가량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또한 총액인건비제 역시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그 핵심은 각 자치단체의 실적에 대한 평가제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서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정책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고, 공무원들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확대함으로써 매관매직 등 부패가 성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확인되듯,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정적 계기는 여전히 IMF로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이 구조조정의 결과에 고통받고 그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 외로 인터뷰하지 못한 많은 단위들이 다 나름의 준비와 근거에 따라 아펙 투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다만 인터뷰한 몇몇 단위들을 미루어 짐작컨대, 모든 노동자들이 IMF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겪고 있지 않을까 싶다. IMF를 전후하여 도입된 정리해고 및 파견법 등은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을 체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경제위기로 인한 거대한 실업과 빈곤에 대해 지배계급은 여러 층위의 비정규직 도입을 처방했고, 이는 '노동빈민'(working poor)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한편 이 같은 불안정한 처지에 대한 공포에 기초하여 노동규율/강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현안 이외의 문제를 사고할 여유를 도저히 주지 않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생존 조건이 확립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인터뷰에서 들었던 가장 서글픈 얘기 중 하나는 한 비정규직 청소용역노동자의 말이었다. 아펙에 왜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세계화가 공공부문 개방 역시 초래할 것이고 여기에는 청소부문 인력개방도 포함되는데 그렇게 되면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됨으로써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체계적으로 조장/심화함으로써 연대의 가능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1970년대부터 전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한편으로 완전고용 다른 편으로 고임금 또는 일부 재생산비용의 경향적 탈상품화에 기초한 노자타협체제를 붕괴시켰고, 이를 계기로 부르주아들은 금융화 또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개념을 빌자면) '강탈(dispossession)에 의한 축적'을 전면화한다. 이 같은 축적의 핵심은 지금껏 상품화를 모면했던 모든 '공유물'에 대한 폭력적인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으로, 이때 주된 강탈 대상이 되는 것은 의료(또는 복지, 곧 부분적으로 사회화된 재생산비용), 식량(또는 보다 넓게 말하자면 '생태'), 그리고 이 모두와 연관되는 지식(및 교육) 등이다. 경제위기를 등에 업은 이 같은 전면적 공세에 대해, 전통적인 계급투쟁 전략을 쇄신하지 못한 노동자운동은 후퇴를 거듭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강탈 및 이것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는 각종 전쟁과 폭력에 맞선 새로운 주체로, 다양한 반세계화/대안세계화 운동 및 반전/반폭력 운동이 부상한다. 이번 아펙투쟁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이 눈에 띠었다. 보건의료운동을 하는 한 활동가는 어떤 계기로 아펙반대투쟁에 나서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번 아펙에 TRIPs(지적재산권협정) 강화라는 의제가 올라와 있고 이는 의약품 특허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질병치료를 매개로 한 민중수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전주에서 온 한 학생은 같은 질문에 대해 자신이 고(故) 김선일씨의 죽음을 계기로 반전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전부터 아펙에서 파병 등 전쟁과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데다가, 이번 아펙에서 논의되는 '인간안보'라는 의제가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더욱 강화시키고 인종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피부로 느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교육비와 취업 부담으로 인한 대학(인)의 전반적 위축을 들었는데, 이 역시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비록 인터뷰는 하지 못했지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특히 활력을 발산했던 주체 중 하나가 평택이나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전운동세력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같은 새로운 주체들에 비하면, 87년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노동자운동은 다소 활력이 없어 보였다. 이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해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87년을 전후한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재벌은 시대착오적 과잉축적을 진행했고 노동자운동은 이 같은 고성장/완전고용에 조응하는 고임금을 자신의 목표로 하게 된다. 이 전략은 당시의 정세에서 유효했을 수 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는 이 같은 발전전망 및 이를 전제로 한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당시 도입된 구조조정 결과 전면화된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객관적 조건 하에서, 경제성장에 조응하는 임금상승 전략은 '노동귀족'의 전략으로 고립되고 만다. 87년은 끝났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강탈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대안세계화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제위기/불황기에 적합하지 않은 '87년 체제'를 해체하고 경제위기를 조건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열어 가는 것이다. 이때 핵심적인 두 가지 과제는, 세계적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리고 한국경제 위기의 내재적 연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정립된 노동자운동의 전략 혁신 및 새로운 전략의 광범위한 토론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점 모두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대안세계화 운동과의 마주침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아펙투쟁은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같은 마주침은 특정 계기에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고(故) 전용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농민투쟁과 비정규직 법안 개악 시도로 촉발된 노동자투쟁의 연대, 신자유주의적이고 경찰적인 국가폭력에 맞선 민중들의 연대다.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의 현실 (반)주변부에서 신자유주의는 발전주의 이후에 온다. 발전주의가 불균등하나마 민족국가 전반의 발전 기획을 추진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예컨대 '동북아 중심국가' 등의 허황된 수사로 민족적인 발전 전망의 상실을 은폐하며 이른바 '선택과 집중' 즉 배제에 기초한 지역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 이제 각 지역(경제)은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시장과 민간자본의 시장에 자기 지역사회(경제)를 떠넘겨야 한다. 국가지원이 완전히 철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제 금융자본에 철저히 종속되도록 지역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수단이 된다. 당장 정부의 살농정책(殺農政策)은 농업에 기초한 부안이나 평택 같은 지역(주민)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여기에 정부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폐기장이나 미군기지를 유치해 그 보상금으로 지역을 뜨거나 이들에 종속된 서비스업에 종사하라고 협박한다. 한때 광산업이 흥했던 강원 지역은 이제 초민족 엘리트나 도시의 부자가 머리 식히러 찾아오는 도박지대가 된다. 제주도에서는 영어공용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영화제만도 대여섯 개가 넘고, 각종 예술비엔날레가 전국 곳곳에 열린다. 심지어 강원 강릉시와 전남 장성읍, 전남 곡성군과 경기 옹진군, 그리고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은 각각 홍길동, 심청, 논개의 연고권을 놓고 소송을 불사하는 분쟁을 벌인다. 물론 예술과 전통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관광 '자원'을 개발해 금융자본을 유치하고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발전의 실체다.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부산시민의 대다수가 아펙 유치를 찬성한 것은 이런 사정을 직접적 배경으로 한다. 부산투쟁위원회의 한 활동가는 본래 물류산업과 서비스업에 기초를 두고 있는 부산 역시 최근 경제위기의 영향을 크게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각종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부산의 위상이 제고되고 고용이 확대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고용은 대부분 일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이지만 말이다. 이 같은 금융자본 유치경쟁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노조무력화 등 노동조건의 악화가 강제된다. 실제로 한 활동가가 증언한 몇 년 전 초민족적 유통업체 까르푸 사상점에서 벌어진 사례는 상징적이다. 당시 이곳에서 노동쟁의가 벌어졌는데, 이 자체는 다른 투쟁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본래 투자를 유치할 때 한국 쪽에서 약속했던 조건과 다르다며 외교통상부에 이를 '외교 문제'로 제기했고, 이에 놀란 외통부는 해당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을 불러 중재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들은 부랴부랴 쟁의현장에 와서, 이 문제는 외교 문제로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노동쟁의 때문에 금융자본이 철수하게 되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렇듯 노동쟁의가 외교 분쟁이 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는 풍경은, 다소 극적이기는 하지만 아주 현실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단면이다. 또한 앞서 잠시 언급한 노점상 생존권이나 지역 건설현장의 중단 등의 문제도 단지 몇몇 관료들의 '전시행정'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자본의 유치에 입각한 '지역 발전'이 절대선이 되면서, 그에 반대하는 모든 것은 '범죄'가 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행정·경찰력에 의해 제거된다. 배제와 경찰폭력의 악순환,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정치지형의 변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야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압살, 그리고 행정·경찰 논리의 확대가 내적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각각의 부문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모순은 극히 다양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놀라운 정도의 일치가 발견됐다. 인터뷰한 모든 이들은 국가가 민중들의 삶에 깊은 연관이 있는 사안들을 그/녀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채 반민주적으로 '강행처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는 민중들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만 참여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민중들은 저항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자신들이 허용한 선을 넘어서는 모든 저항은 철저히 범죄화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다. 민중의 '몫소리'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는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도 거의 다를 바 없다. 실제로 한 농민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옆에 있던 동료 농민은 "기자여? 기자면 가"라고 매섭게 말했고, 사회단체에서 일한다고 밝힌 후에야 인터뷰를 허락했다. 군산의 한 농민은 최근 벌어지는 죽음이 바로 이 같은 침묵의 강요와 관련된다고 말했다. 단지 생존의 위기가 극에 달해서가 아니라, 이 같은 생존의 위기를 그 누구도 공적으로 다루지 않을뿐더러 필사적으로 건넨 목소리마저 억압될 때, 죽음을 통해서 자신들의 고통스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니 바로 전날인 11월 17일,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 규탄 투쟁에 다녀와 늦은 저녁을 들던 식당이 떠올랐다. 경주 투쟁을 비롯한 아펙투쟁이 어떤 식으로 보도될까 궁금해 식사를 마친 다음까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부산지역 경제인들이 국제행사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걸 두고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준엄히 꾸짖은 후, 몇 명의 활동가가 '불법시위'를 하다가 잡혔다(무엇을 외쳤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은 채!)는 단 몇 초의 단신이 보도될 뿐이었다. 오직 법을 위반하는 물리력을 동원할 때에만 극히 짧은 순간 우리의 존재를 비춰준다는 점을 (재)확인했을 때 느꼈던 그 밀폐감과 숨막힘. 대중들이 이른바 '대항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은 항상 이런 폐쇄감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최근에 목격한 그런 종류의 폭력이 아마 프랑스 소요사태일 것이다. 최근 결국 고(故) 전용철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끔찍했던 경찰폭력은 단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살펴본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대중들의 대항폭력을 도발하고, 그렇게 유도된 대항폭력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는 불안에 기초하여 법질서와 '예방폭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한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 경찰행위는 국가의 유일한 정당성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불안정한 정당성인데, 왜냐하면 경찰은 모든 갈등과 차이, 결국 자신의 편협한 기준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취급함으로써 시민적 존엄과 자유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부산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한 한 케이블 노동자는 얼마 전 전봇대 위에 5분 이상 올라가 있으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테니 조심하라는 어이없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펙 기간을 전후해 부산에서 펼쳐진 준계엄상태나,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대해 과격시위가 '예상'된다며 톨게이트를 포함한 모든 길목에서 대중들을 차단하던 경찰들의 작태, 그리고 강과 콘테이너 박스라는 준자연적 경계선 및 그를 수호하는 물대포와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력에 의해 '분단'된 아펙정상회의와 항의시위대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섬뜩한 미래를 예시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던 한 노동자는 '헌법 1조'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입헌' 원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가 정확하게 통찰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및 그것이 동반하는 경찰국가는, 인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과 동료 시민들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주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이 조직된 폭력의 해체는 민주주의 정치의 재개를 위해 가장 다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펙 투쟁을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과 WTO DDA 분쇄 투쟁으로 이어가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두 운동의 결합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초민족자본과 지배계급들을 가로막는 모든 경계선들을 폐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들의 연대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계선들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생산해 낸다. 우리가 이번 아펙투쟁을 통해 생생히 목격한 것처럼, 전세계의 정치엘리트와 자본가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미래를 속삭이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찾아온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은 공항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민중들은 톨게이트에서, 아펙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수영교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로막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같은 다양한 경계선들의 강화와 (재)생산을 통해서만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대안세계화 운동에 관한 핵심 명제를 하나 얻어낼 수 있다. 즉 대안세계화 운동은 국경을 비롯한 저 모든 강압적인 경계선들을 해체하고 그것들 때문에 가로막혔던 전세계 민중들 간의 연대를 이룸으로써 초민족자본과 엘리트들에 대한 통제를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본과 국가에 의한 민중의 통제를, 민중에 의한 자본과 국가의 통제로 역전시키는 운동이다. 이는 오직 자본과 특히 국가가 민중들에게 부여해 온 동일성에 갇히지 않는 연대가 이루어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정세적으로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과 미국에 복종하는 재벌 및 그 주구 노무현 정권, 다른 편으로 그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이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 통합'을 통해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다는 따위의 미망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농민 민중들과 연대하여 WTO DD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분쇄하고 '식량주권' 등의 민중적 기획들을 세계화함으로써 초민족자본과 국가를 아래 및 위 양쪽 편에서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을 구성해 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단언컨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국내 지배계급과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더 현실(주의)적이다. WTO DDA 협상을 겨냥하여 쌀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구역질나는 축제인 아펙에 대한 반대목소리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고(故) 전용철 농민열사를 살해한 지금에도 신자유주의 지배계급과 민중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다는 미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 운동에는 미래가 없다. 민생파탄 민주압살 노무현 정권을 퇴진시키며, 국내 지배계급을 향한 비굴한 애원이 아닌 전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로 WTO DDA 협상을 분쇄하고 또다른 세계로의 길을 엶으로써 민중운동의 독립성을 마침내 쟁취하는 것, 대안세계화 운동은 듣기 좋은 관념적 수사가 아니라 바로 이 물리적이고 살 떨리는 투쟁이다. 우리는 지금 이 투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각주] 1) 이 글은 지난 11월 셋째 주에 있었던 아펙투쟁 중 특히 18일 집회현장을 취재한 것입니다. 그날, 아래 취재한 단위들보다 훨씬 더 많은 단위들이 참가했으나, 취재 역량의 한계로 그 목소리를 다 담지 못했습니다. 이 점 동지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빕니다.본문으로 [%=박스1%] [%=박스2%] [%=박스3%]
빈곤과 폭력을 넘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마흔 한 살의 여성농민이 "쌀 개방 안 돼"라는 절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제초제를 들이키기 며칠 전 전남 담양에서는 서른 여덟의 젊은 농민이 정부의 살농(殺農) 정책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충남 보령의 한 농민은 쌀 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뿐이겠는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많은 농민이, 노동자가, 빈민이 세계 곳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첨병 WTO가 전 세계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WTO 10년, 재앙의 역사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출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파괴적인 조치들을 세계적인 규범으로 만들었다. 유연한 노동이 만연하게 되었고, 금융의 이동과 투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완화되거나 철폐되었고, 자본 활동의 장벽은 제거되었다. 자유무역의 확대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를 이식·확산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촉진하는 양대 거두라 할 수 있다. IMF, 세계은행이 (반)주변부 국가들의 외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제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를 확산한다면, WTO는 무역협상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부문을 교역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협상의제를 확대하고 자유화를 심화하는 방식으로 자본과 금융의 이동과 이윤추구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해왔다. 여기에는 국가 간, 지역 간에 진행되는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도 한 몫하고 있다. 이런 질서는 사실 전 세계 민중의 삶의 개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정반대다.
WTO는 출범 당시 자유무역의 확대가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세계 무역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각 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고 전 세계 빈곤을 감축하고 소득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종자들은 지금도 이런 자유무역의 환상을 유포하며, 더 많은 자유화와 규제 철폐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환상이 헛된 거짓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WTO 출범 10년,1) 이제 세계 거의 모든 곳이 자유무역의 틀 내로 편입되고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농업뿐만 아니라 물, 에너지, 의료, 교육 등 민중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영역도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었다. WTO 농업 협정은 전 세계를 초국적 곡물, 농산물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장으로 만들어왔다. 초국적 곡물 기업 및 농산물 기업들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확대되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소농들은 자신의 생업 자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거나 토지를 빼앗기고 농업 노동자로 전락하여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농사를 짓더라도 농민들은 자신이 온전히 농사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 개방에 따른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자신이 농사지을 품종을 선택하는 것마저 시장 가격의 눈치를 봐야하고, 초국적 곡물 기업들이 가진 종자에 대한 특허권 때문에 자신의 수확에서 씨를 거둘 수조차 없게 되었다. 농민들이 규모와 기술을 가지고 싼값에 밀고 들어오는 초국적 기업들의 농산물을 당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소득이 보전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에서도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한 농업 개방 이후 농민들은 부채에 허덕이고 있으며, 죽음을 택하는 농민들도 끊이지 않았다. 이는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고, 세계의 수많은 농민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현상이다.
WTO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협정들을 총망라한 것으로 초민족 자본이 무제한적인 독점권을 향유하도록 보장한다. 이 협정에 따라 특허권은 20년 동안 보장될 수 있으며, 미생물과 식물품종에 대한 특허도 보장되었다. 이를 매개로 초민족 자본들은 식물종, 원주민의 전통 지식까지도 자신의 특허로 개발했고,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런 지식을 이용해 만든 약의 가격을 특허를 통해 비싸게 유지하여 높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특허를 통한 무자비한 약탈의 결과는 많은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의료와 약에 접근하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리는 것이다. 일례로 죽음의 대륙 아프리카 스와질란드는 인구 50% 이상이 에이즈에 고통 받고 있지만, 특허에 의한 비싼 가격 때문에 약이 있어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가 WTO 자유무역 체제에 포괄되어 있고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건만, 이 지역에서 기아와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는 자유무역의 확산은 초민족 자본에게는 이윤을 뽑아낼 무대를 넓히는 과정이지만, 민중에게는 빈곤과 질병 같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WTO는 그 무대와 대상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서비스 협상은 교육, 의료, 물, 통신, 교통, 환경 등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다. 게다가 이 협정은 향후 다룰 영역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외채, 외환위기를 겪은 많은 나라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용하면서 수많은 공기업을 사유화, 민영화해야 했고, 이 기업들은 곧 초민족 자본의 인수, 합병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 의료, 교육과 같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민중의 접근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윤 추구에 눈먼 초국적 자본들이 이런 권리를 상품화하고 가격을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낮췄기 때문이다. 일례로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지역은 유명한 초국적 물회사 벡텔이 수도 사업을 인수하면서 수도 요금이 올라 월 소득 1백 달러가 안 되는 가구에서 25달러를 요금으로 내야하는 사태도 발생했다(2000년 민중들의 투쟁으로 벡텔은 코차밤바 수도 사업에서 손을 떼고 도망갔다). WTO 서비스 협상은 이런 상황을 세계화하고, 하나의 규범으로 만들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2005년 6차 홍콩 각료회의
WTO 10년이 심화시킨 세계적인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가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WTO에 맞선 세계적인 저항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대세라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강화되고 대안을 세계화하려는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WTO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미 시애틀과 칸쿤에서 각료회의가 무산된 바 있으며, 2005년부터 시행하려 했던 도하개발의제(DDA)는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부각되면서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WTO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지배 세력들은 전쟁과 강압, 회유와 같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협상을 진척시키려 하고 있다. 더불어 일반이사회나 통상장관 모임 등 세계 민중들의 눈을 피한 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아펙 등 WTO 외곽의 흐름을 이용하여 도하개발의제가 타결되어야만 한다는 합의를 모으기도 한다('WTO DDA 협상에 관한 APEC 정상 특별성명'을 보라).
2005년 6차 홍콩 각료회의는 WTO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도하개발의제 협상에 진전을 이뤄내야 하는 지배 세력에게는 중요한 회의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 칸쿤처럼 각료회의가 무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최소한의 합의라도 도출해야 이후 도하개발의제뿐만 아니라 WTO 자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6일 WTO 사무총장인 파스칼 라미가 회원국들에게 회람한 '홍콩선언문 초안'은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WTO 사무국과 회원국들은 이 초안에 대해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는 선언적인 의미이고, 현재의 상황을 중간 점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협상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어떻게든 각료회의 무산이라는 상황만은 막기 위해 채택된 방식이 바로 이 '홍콩 선언문'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합의는 이후 제네바에서 일반이사회를 통해 진척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WTO 협상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무마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계획이다. 지난 칸쿤 각료회의 무산 이후 미국은 칸쿤에서 WTO 협상에 불만을 표시했던 개도국들을 협박하고 회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협상 결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G21(브라질, 인도 등을 포함한 개도국 그룹)을 파괴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에게 부분적인 시장개방을 약속하면서 G21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했고, 브라질과 인도는 '이해당사자 5개국 그룹(미국, 유럽연합, 호주, 브라질, 인도)'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들여 기본골격 초안을 작성하는 데 동참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채택된 도하개발의제 기본골격은 사실 선진국들과 초민족 자본의 이해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농업협정의 기본골격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은 보조금 중 상당 부분을 유지할 수 있고, 시장접근 부분에서도 개도국들이 훨씬 더 큰 폭으로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서비스 협정에서는 선진국의 자유화 정도를 최소 기준으로 하여 모든 회원국들이 이를 의무적으로 따르게 하는 '벤치마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반영되어 있다. 비농산물시장접근(NAMA) 협상2)도 강대국의 이해를 반영하기는 마찬가지인데, NAMA 협상에 따르면 개도국들이 자국 경제를 위해 유지하고 있던 고관세 산업부문이 자유화되어야 하고, 소위 '스위스 공식'에 따라 관세가 높은 나라일수록 더 많이 감축해야 한다.
홍콩 각료회의를 통해 점검하겠다는 현재의 상황이 바로 위와 같은 기본골격에 기반을 둔 협상이다. WTO 협상이 지지부진한 표면적인 이유는 회원국들 내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이지만, 이것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남반구 민중들의 빈곤과 생존의 위협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전 세계 민중의 현실과 저항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배 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 WTO 도하개발의제를 유지하려는 기만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으며, 홍콩 각료회의를 그런 계기로 만들려한다.
WTO의 충실한 모범생, 노무현 정부
WTO 회원국들 사이의 수많은 갈등과 이견으로, 또한 세계 곳곳의 저항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임에도 노무현 정부의 의지는 굳건해 보인다. 한국은 농업 협상과 서비스 협상과 같이 협상 진척이 더딘 분야에서도 이미 2003년부터 개방제안서와 양허안을 '자발적'으로 제시하면서 WTO 협상에 촉매제가 되어왔다. 한국의 경우 금융 부분은 이미 거의 완전한 자유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자유화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교육과 의료 등 공공 서비스 분야다. 노무현 정부는 이 두 분야에 대한 개방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 두 분야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정을 시작으로 각종 특별자치구역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개방의 여지가 확대되고 있으며, WTO 서비스 협상 양허안에도 포함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는 수년 전부터 지속되어 온 농민들의 강경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농업 포기 정책을 꿋꿋하게 유지하면서 WTO의 충실한 모범생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WTO 농업협상을 예비하여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농업협정에 따르면 추곡수매제는 국내보조금의 한 형태이므로 철폐 대상이다), 농업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 인구를 줄이는 정책을 꾸준히 펴오고 있다. 이 땅 350만 농민들을 다 죽음으로 내몰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유무역 체제만큼은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임에 분명하다.
WTO의 충실한 모범생다운 정부의 면모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정부와 지배 세력이 채택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플랜'과 같이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전망은 자본(특히 외국자본) 유치를 바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전망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 투자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각종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가속화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이후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 과정은 노동 유연화를 통해 만연한 실업과 불안정한 고용을 노동시장의 일반적 조건으로 만들어왔으며, 현재 노동자 투쟁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소위 '비정규보호입법'은 이 연장선에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양자간·다자간 자유무역협정과 WTO 협상은 필수적이고 확대되어야 하며, 교육과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 산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의 투자처를 축소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그다지 이점이 없는 농업과 같은 산업은 '과감히' 포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WTO 홍콩 각료회의를 저지하자!
지금까지 한국의 민중을 포함하여 전 세계 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수많은 투쟁을 벌여왔다. 이런 투쟁들은 더디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면서 점차 확장되고 강화되고 있다.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부과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WTO를 비롯한 다자간·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 맞서, 초국적 자본에 맞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각 국 정부에 맞서 투쟁해 온 수많은 민중들은 빈곤과 불평등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WTO 홍콩 각료회의를 저지하는 투쟁 역시 이 길 위에 있다.
한국에서도 이 길에 동참하고자 농민, 노동자, 여성, 사회운동단체, 학생을 포함한
빈곤과 폭력을 넘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마흔 한 살의 여성농민이 "쌀 개방 안 돼"라는 절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제초제를 들이키기 며칠 전 전남 담양에서는 서른 여덟의 젊은 농민이 정부의 살농(殺農) 정책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충남 보령의 한 농민은 쌀 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뿐이겠는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많은 농민이, 노동자가, 빈민이 세계 곳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첨병 WTO가 전 세계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WTO 10년, 재앙의 역사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출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파괴적인 조치들을 세계적인 규범으로 만들었다. 유연한 노동이 만연하게 되었고, 금융의 이동과 투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완화되거나 철폐되었고, 자본 활동의 장벽은 제거되었다. 자유무역의 확대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를 이식·확산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촉진하는 양대 거두라 할 수 있다. IMF, 세계은행이 (반)주변부 국가들의 외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제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를 확산한다면, WTO는 무역협상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부문을 교역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협상의제를 확대하고 자유화를 심화하는 방식으로 자본과 금융의 이동과 이윤추구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해왔다. 여기에는 국가 간, 지역 간에 진행되는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도 한 몫하고 있다. 이런 질서는 사실 전 세계 민중의 삶의 개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정반대다.
WTO는 출범 당시 자유무역의 확대가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세계 무역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각 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고 전 세계 빈곤을 감축하고 소득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종자들은 지금도 이런 자유무역의 환상을 유포하며, 더 많은 자유화와 규제 철폐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환상이 헛된 거짓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WTO 출범 10년,1) 이제 세계 거의 모든 곳이 자유무역의 틀 내로 편입되고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농업뿐만 아니라 물, 에너지, 의료, 교육 등 민중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영역도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었다. WTO 농업 협정은 전 세계를 초국적 곡물, 농산물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장으로 만들어왔다. 초국적 곡물 기업 및 농산물 기업들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확대되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소농들은 자신의 생업 자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거나 토지를 빼앗기고 농업 노동자로 전락하여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농사를 짓더라도 농민들은 자신이 온전히 농사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 개방에 따른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자신이 농사지을 품종을 선택하는 것마저 시장 가격의 눈치를 봐야하고, 초국적 곡물 기업들이 가진 종자에 대한 특허권 때문에 자신의 수확에서 씨를 거둘 수조차 없게 되었다. 농민들이 규모와 기술을 가지고 싼값에 밀고 들어오는 초국적 기업들의 농산물을 당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소득이 보전될 리가 만무하다. 한국에서도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한 농업 개방 이후 농민들은 부채에 허덕이고 있으며, 죽음을 택하는 농민들도 끊이지 않았다. 이는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고, 세계의 수많은 농민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현상이다.
WTO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협정들을 총망라한 것으로 초민족 자본이 무제한적인 독점권을 향유하도록 보장한다. 이 협정에 따라 특허권은 20년 동안 보장될 수 있으며, 미생물과 식물품종에 대한 특허도 보장되었다. 이를 매개로 초민족 자본들은 식물종, 원주민의 전통 지식까지도 자신의 특허로 개발했고,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런 지식을 이용해 만든 약의 가격을 특허를 통해 비싸게 유지하여 높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특허를 통한 무자비한 약탈의 결과는 많은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의료와 약에 접근하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리는 것이다. 일례로 죽음의 대륙 아프리카 스와질란드는 인구 50% 이상이 에이즈에 고통 받고 있지만, 특허에 의한 비싼 가격 때문에 약이 있어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가 WTO 자유무역 체제에 포괄되어 있고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건만, 이 지역에서 기아와 질병이 더욱 심각해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는 자유무역의 확산은 초민족 자본에게는 이윤을 뽑아낼 무대를 넓히는 과정이지만, 민중에게는 빈곤과 질병 같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WTO는 그 무대와 대상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서비스 협상은 교육, 의료, 물, 통신, 교통, 환경 등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다. 게다가 이 협정은 향후 다룰 영역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외채, 외환위기를 겪은 많은 나라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용하면서 수많은 공기업을 사유화, 민영화해야 했고, 이 기업들은 곧 초민족 자본의 인수, 합병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 의료, 교육과 같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민중의 접근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윤 추구에 눈먼 초국적 자본들이 이런 권리를 상품화하고 가격을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낮췄기 때문이다. 일례로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지역은 유명한 초국적 물회사 벡텔이 수도 사업을 인수하면서 수도 요금이 올라 월 소득 1백 달러가 안 되는 가구에서 25달러를 요금으로 내야하는 사태도 발생했다(2000년 민중들의 투쟁으로 벡텔은 코차밤바 수도 사업에서 손을 떼고 도망갔다). WTO 서비스 협상은 이런 상황을 세계화하고, 하나의 규범으로 만들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2005년 6차 홍콩 각료회의
WTO 10년이 심화시킨 세계적인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가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WTO에 맞선 세계적인 저항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대세라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강화되고 대안을 세계화하려는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WTO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미 시애틀과 칸쿤에서 각료회의가 무산된 바 있으며, 2005년부터 시행하려 했던 도하개발의제(DDA)는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이 점점 더 부각되면서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WTO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지배 세력들은 전쟁과 강압, 회유와 같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협상을 진척시키려 하고 있다. 더불어 일반이사회나 통상장관 모임 등 세계 민중들의 눈을 피한 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아펙 등 WTO 외곽의 흐름을 이용하여 도하개발의제가 타결되어야만 한다는 합의를 모으기도 한다('WTO DDA 협상에 관한 APEC 정상 특별성명'을 보라).
2005년 6차 홍콩 각료회의는 WTO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도하개발의제 협상에 진전을 이뤄내야 하는 지배 세력에게는 중요한 회의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 칸쿤처럼 각료회의가 무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최소한의 합의라도 도출해야 이후 도하개발의제뿐만 아니라 WTO 자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6일 WTO 사무총장인 파스칼 라미가 회원국들에게 회람한 '홍콩선언문 초안'은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WTO 사무국과 회원국들은 이 초안에 대해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는 선언적인 의미이고, 현재의 상황을 중간 점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협상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어떻게든 각료회의 무산이라는 상황만은 막기 위해 채택된 방식이 바로 이 '홍콩 선언문'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합의는 이후 제네바에서 일반이사회를 통해 진척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WTO 협상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무마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계획이다. 지난 칸쿤 각료회의 무산 이후 미국은 칸쿤에서 WTO 협상에 불만을 표시했던 개도국들을 협박하고 회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협상 결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G21(브라질, 인도 등을 포함한 개도국 그룹)을 파괴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에게 부분적인 시장개방을 약속하면서 G21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했고, 브라질과 인도는 '이해당사자 5개국 그룹(미국, 유럽연합, 호주, 브라질, 인도)'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들여 기본골격 초안을 작성하는 데 동참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채택된 도하개발의제 기본골격은 사실 선진국들과 초민족 자본의 이해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농업협정의 기본골격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은 보조금 중 상당 부분을 유지할 수 있고, 시장접근 부분에서도 개도국들이 훨씬 더 큰 폭으로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서비스 협정에서는 선진국의 자유화 정도를 최소 기준으로 하여 모든 회원국들이 이를 의무적으로 따르게 하는 '벤치마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반영되어 있다. 비농산물시장접근(NAMA) 협상2)도 강대국의 이해를 반영하기는 마찬가지인데, NAMA 협상에 따르면 개도국들이 자국 경제를 위해 유지하고 있던 고관세 산업부문이 자유화되어야 하고, 소위 '스위스 공식'에 따라 관세가 높은 나라일수록 더 많이 감축해야 한다.
홍콩 각료회의를 통해 점검하겠다는 현재의 상황이 바로 위와 같은 기본골격에 기반을 둔 협상이다. WTO 협상이 지지부진한 표면적인 이유는 회원국들 내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갈등이지만, 이것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남반구 민중들의 빈곤과 생존의 위협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전 세계 민중의 현실과 저항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배 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 WTO 도하개발의제를 유지하려는 기만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으며, 홍콩 각료회의를 그런 계기로 만들려한다.
WTO의 충실한 모범생, 노무현 정부
WTO 회원국들 사이의 수많은 갈등과 이견으로, 또한 세계 곳곳의 저항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임에도 노무현 정부의 의지는 굳건해 보인다. 한국은 농업 협상과 서비스 협상과 같이 협상 진척이 더딘 분야에서도 이미 2003년부터 개방제안서와 양허안을 '자발적'으로 제시하면서 WTO 협상에 촉매제가 되어왔다. 한국의 경우 금융 부분은 이미 거의 완전한 자유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자유화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교육과 의료 등 공공 서비스 분야다. 노무현 정부는 이 두 분야에 대한 개방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 두 분야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정을 시작으로 각종 특별자치구역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개방의 여지가 확대되고 있으며, WTO 서비스 협상 양허안에도 포함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는 수년 전부터 지속되어 온 농민들의 강경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농업 포기 정책을 꿋꿋하게 유지하면서 WTO의 충실한 모범생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WTO 농업협상을 예비하여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농업협정에 따르면 추곡수매제는 국내보조금의 한 형태이므로 철폐 대상이다), 농업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 인구를 줄이는 정책을 꾸준히 펴오고 있다. 이 땅 350만 농민들을 다 죽음으로 내몰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유무역 체제만큼은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임에 분명하다.
WTO의 충실한 모범생다운 정부의 면모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정부와 지배 세력이 채택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플랜'과 같이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전망은 자본(특히 외국자본) 유치를 바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전망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 투자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각종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가속화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이후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 과정은 노동 유연화를 통해 만연한 실업과 불안정한 고용을 노동시장의 일반적 조건으로 만들어왔으며, 현재 노동자 투쟁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소위 '비정규보호입법'은 이 연장선에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양자간·다자간 자유무역협정과 WTO 협상은 필수적이고 확대되어야 하며, 교육과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 산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의 투자처를 축소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그다지 이점이 없는 농업과 같은 산업은 '과감히' 포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WTO 홍콩 각료회의를 저지하자!
지금까지 한국의 민중을 포함하여 전 세계 민중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수많은 투쟁을 벌여왔다. 이런 투쟁들은 더디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면서 점차 확장되고 강화되고 있다.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부과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WTO를 비롯한 다자간·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 맞서, 초국적 자본에 맞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각 국 정부에 맞서 투쟁해 온 수많은 민중들은 빈곤과 불평등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WTO 홍콩 각료회의를 저지하는 투쟁 역시 이 길 위에 있다.
한국에서도 이 길에 동참하고자 농민, 노동자, 여성, 사회운동단체, 학생을 포함한
2005년 하반기 한국 사회의 장애인 운동계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으며, 현장투쟁도 이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9월 2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내놓은 법안이 입법 발의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대중 집회와 문화제, 대 시민 홍보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준)]이 동력을 형성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이하 장차법공투단)은 지난 10월 26일부터 국회 앞 천막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이다. 언뜻 보면 현재의 투쟁은 장애인의 차별을 막아낼 수 있는 법률을 만들자는 매우 선명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투쟁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와 장애인 운동계 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논란을 형성해 온 듯하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배경 및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고, 일정한 논쟁의 지점이 남아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과의 관계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의 정리해보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개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1990년 미국에서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 이하 ADA)을 하나의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에 강력히 전개되었던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1)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이러한 민권운동의 흐름은 여성과 장애인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ADA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1964년 시민권법의 구조와 틀을 장애인 영역으로 확대 적용하여 제정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에서 ADA가 제정된 이후 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호주(1992), 영국(1995), 홍콩(1995), 독일(2000) 등 세계 각 국에서 유사한 형태의 장애인차별금법을 제정하게 된다. 미국 ADA의 경우 그 내용은 크게 TitleⅠ: 고용(employment), TitleⅡ: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2) , TitleⅢ: 민간운영 공공편의시설 및 서비스(public accommodation and services operated by private entities), TitleⅣ: 통신(tele-communication)3) 그리고 기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Title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1장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지니고, 교통과 관련한 차별은 교통부(Dept. of Transportation)가 담당하는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한 업무는 별도의 기구를 두지 않고 기존의 기구나 부서들이 담당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구조와 내용,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 시정 기구에 대해서는 각 국의 법률 체계 및 행정 시스템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영국이나 홍콩 등은 독자적인 차별시정 기구를 두고 있으며, 호주나 뉴질랜드는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미국의 ADA와 외국 여러 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참조하여 그 안이 만들어지게 되지만, 나름의 독자성 역시 지니고 있다. 장추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하 장차법(안)]은 크게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여성장애인 및 장애아동, 제4장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제5장 손해배상과 입증책임, 제6장 벌칙의 총 6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장 차별금지와 관련된 영역이 총 14개 영역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세분화4)되어 있고,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과정 한국사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2003년 4월 15일 한국장애인계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애인단체가 총망라된 장추련이 공식 출범5)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장추련의 출범 이전인 2001년부터 부산 지역의 열린네트워크는 국토순례와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시작하였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역시 법안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장추련으로 모아지게 된 것이다. 장추련은 조직의 구성 이후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개최를 통한 의견 수렴과 함께,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장추련 법제정 위원회 내에 법안소위를 구성하여 2004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조문 구성 작업에 돌입하였으며, 5월 14일에는 처음으로 법안의 초안을 발표하고 공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도 5대 차별영역(학벌,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의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안 마련을 위한 추진단(가칭)'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5월 25일에는 보건복지부의 주최로 용역 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 접어들어 장추련은 실질적인 법안의 발의를 위한 정당 선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장추련의 법안을 원안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민주노동당을 통해 법안의 발의를 준비하게 된다.6) 그리고 법안 제정 운동에 있어 기본적인 실무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무국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01년도부터 4년여 간 준비되어온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5년 9월 20일 정식으로 입법발의 되었고, 본격적인 입법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입법발의 전인 9월 14일 장추련은 국회에서 입법발의 기자회견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결의대회를 열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법무부 소관법률로 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단지 장애인 관련 법률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 의안과에 의해 결국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되고 만다. 또한 정부는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청와대의 지침아래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이렇듯 국회와 정부 내에서도 법안의 제정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가운데, 장추련은 내부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만한 어떠한 활동의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해내기 위해 전장연(준)은 기존의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계 내의 주요 연대체들과 인권·사회단체, 정당까지를 포괄해내는 장차법공투단을 제안·구성하고 마지막 현장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전장연(준) 출범식이 있던 10월 26일 장차법공투단은 국회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으며, 농성 돌입 후 보름 사이에만 세 차례에 걸친 농성장 침탈7)을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다. 또한 11월 9일에는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1월 22~23일에 걸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전동(前動) 거리 대행진'을 진행하는 한편, 수요 거리 문화제, 사이버 시위 등 다양한 대중 투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 내용과 쟁점 (1)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장애인계의 장차법(안)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침해받은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하여,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 일개 부서가 아닌 국무총리산하의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법률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니 하지 말아야 함을 명시하는 법률이며, 차별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판정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정과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상시적 인력과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05년 3월말까지 3년 5개월 동안 제기된 장애인의 차별 진정 사건은 124건으로, 연평균 35건에 불과했다. 과연 480만 장애인 중 일 년에 차별을 경험하는 사례가 35건에 불과할까? 이는 같은 기간 종료 처리된 94건의 사건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에 의한 합의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으며, 9건의 권고 조치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8)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존의 기구가 장애인 차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차별을 경험해도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존의 인력과 예산의 수준에서 모든 차별시정업무를 통합하겠다고 하고 있어, 결코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차별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즉 장애인 차별시정을 위한 자문 격의 전문위원이 아닌 상시적 전문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장차법이 또 하나의 선언문으로 남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① 시정명령제도 및 이행강제금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 사안이 차별이라고 판명되더라도 이에 대해 합의나 조정, 권고까지만 할 수 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즉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진정서를 제출한 차별받은 사람은 아무런 사후보장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 쟁점이 되는 사안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9)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당성과 힘을 실어주는 효과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개인의 경우 아무런 강제성 없는 권고는 오히려 더 큰 피해만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이 기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진정을 하고 이에 대해 권고 조치가 내려진다 해도 기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며, 오히려 기업주의 눈 밖에 난 진정인은 다양한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이후에 다른 이유를 핑계로 해고를 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차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조정을 거부하거나 권고를 수락하지 않은 경우, 다른 법률에 근거한 구체적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악의의 차별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는 반사회적인 인권침해행위를 한 후 실제 손해액만을 보상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경우를 막고, 강한 제재로서 법적 실효성을 높임과 동시에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예방의 목적도 지니고 있다. 장차법(안)은 차별행위를 고의로 반복하여 행한 경우, 시정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악의에 의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고 있지 않은 제도라는 점과 현행 법체계를 고려하여 그 액수를 실제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로 한정10)하고 있으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500만 원 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③ 입증책임의 전환 입증책임의 전환은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진정인이 제기하면,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거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가해자가 입증하여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전환은 미국이나 홍콩 등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1989. 4)시 "이 법과 관련된 분쟁 해결에서의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 한다"는 입증책임의 전환 조항을 두고 있다.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의 위치에 있기 쉬운 장애인이 피해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물리적·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며, 특히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입증책임의 전환은 실질적인 권리구제수단의 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의 의미와 사회적차별금지법11) 앞서 언급되었듯이 현재 노무현 정부는 단순히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자체를 중단하고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만'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기구(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만들 경우 소요될 예산과 인력의 문제, 그리고 장차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정부와 기업의 부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일정한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근거 때문이겠지만, 국가인권위위원회로의 차별시정업무 일원화가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합적인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12) 먼저 확인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결코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도, 이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정부의 논리일 수 있지만, 이에 운동사회가 끌려갈 필요는 없다. 또한 장애인 집단에게 있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법률이 요구되고 존재했던 것은 비단 차별금지라는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스럽지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취업/고용권13) 영역에 있어서의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동권 영역에 있어서의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교육의 영역에 있어서의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존재해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법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앞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선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러한 법률의 제정이 시민권(citizenship)운동이라는 배경 하에서 제정되었음을 언급하였다. 시민권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규정할 수 있지만, 근대 자본주의적 민족국가가 자신의 정당한 구성원(member)이라고 인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여하는 실정법상의 기본권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마지막 집단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14)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이 제기되어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취업/고용권, 이동권, 교육권 등 기간에 이루어졌던 장애인 대중 투쟁 자체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 세로축을 형성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또 다른 방향에서 가로축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체들은 결코 이 법률이 장애인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그 결과 이상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장애인 대중의 집단적 역능 증대라는 운동의 기본과제를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대중투쟁이라는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차별금지법이 그 어떤 단위에서도 대중적 투쟁을 이끌어 낼만한 실질적 이슈로서 형성되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제도적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결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 시안 속에는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과 관련된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전환 등이 모두 언급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는 장애인계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적 조건 속에서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투쟁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전술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 안에 위의 3가지 내용이 포함된다면, 운동사회는 이를 근거로 사회적차별금지법 내에도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어야함을 실제로 보다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끝까지 거부한다 해도, 장차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회적차별금지법(안)과 함께 상정되어 병합 심리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권리구제수단과 같은 동일한 범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장애인 대중의 치열한 현장투쟁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의 변화에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각주] 1) 이 법은 숙박시설, 식당, 주유소,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의 공공편의시설, 주정부 등의 공공기관 소유 시설 및 공공 교육시설에 있어 인종(race), 피부색(color), 종교(religion), 출신국가(national origin)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고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4가지 외에 성별(sex)을 포함한 5가지 사유를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 집행을 위해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설치를 규정하였다.본문으로 2) 제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모든 사업, 활동, 서비스에 적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이들이 운영하는 공공교통(public transportation)에 대한 규정이다.본문으로 3) 제4장은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전화중계서비스 및 연방정부의 재정보조를 받는 공공서비스의 TV공고에 대한 자막처리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4) 제2장은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예술, 체육, 사법·행정 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性),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의 14개 절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장추련은 출범 당시 한국장총과 장총련을 비롯한 58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였으며, 상임공동대표로는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변경택(열린네트워크 대표), 이예자(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정광윤(장총련 회장), 주신기(한국장총 회장)가 선임되었다..본문으로 6) 어느 당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장추련 내부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장추련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장총련과 한국장총 쪽에서는 원안의 핵심적 요구사항이 어차피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가정 아래, 원내에 있는 장애인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을 통해 발의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본문으로 7) 공권력은 국회 부근의 천막농성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10월 27일, 11월 2일, 11월 11일 3차례에 걸쳐 농성장을 침탈하였다.본문으로 8) 특히 사건 종료 처리된 총 94건 중 각하처분을 받은 경우가 6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각이 17건을 차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각하처분은 진정의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진정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내려진다. 또한 기각은 위원회가 진정을 조사한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 조사대상 인권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 이루어지는데, 과연 이러한 80건의 차별 사례가 그냥 방치되어도 좋을 사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본문으로 9)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관계기관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본문으로 10) 미국 ADA의 경우에는 그 액수를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11) 노무현 정부가 제기했던 사회적차별금지법은 현재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고,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안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그대로 사회적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본문으로 12) 이러한 논란은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관련된 『프로메테우스』의 「사퇴는 기본, 당이 혁신되어야 한다」(10/31)에서는 "....단체와의 관계 재정립 문제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책임 없이 발의해준 법안은 처리가 묘연하고 당의 부담으로 남는 다는 설명이다....한 연구원은 "장애인 단체가 요구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경우로 모든 문제를 인권위의 차별시정기구로 단일화하기로 했던 최초의 원칙이 무시된 경우"라면서..."라고 적고 있다. 또한 사회적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실질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인권단체들 내부에서도 일정한 이견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13)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권은 자본주의적 임노동에 편입될 권리나, 그러한 임노동 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킬 수 있는 소위 노동 3권에 한정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이고 변혁적인 의미의 노동권은 자신의 노동 자체를 스스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며, 이렇게 해석한다면 장애인자립생활에서 이야기하는 하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보다 한정된 의미로 취업/고용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본문으로 14) 물론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더욱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그리고 성적소수자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
2005년 하반기 한국 사회의 장애인 운동계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으며, 현장투쟁도 이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 9월 2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내놓은 법안이 입법 발의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대중 집회와 문화제, 대 시민 홍보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이하 전장연(준)]이 동력을 형성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이하 장차법공투단)은 지난 10월 26일부터 국회 앞 천막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이다. 언뜻 보면 현재의 투쟁은 장애인의 차별을 막아낼 수 있는 법률을 만들자는 매우 선명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투쟁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와 장애인 운동계 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논란을 형성해 온 듯하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배경 및 과정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고, 일정한 논쟁의 지점이 남아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과의 관계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의 의견의 정리해보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개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1990년 미국에서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 이하 ADA)을 하나의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에 강력히 전개되었던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 Act of 1964)1)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이러한 민권운동의 흐름은 여성과 장애인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ADA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1964년 시민권법의 구조와 틀을 장애인 영역으로 확대 적용하여 제정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에서 ADA가 제정된 이후 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호주(1992), 영국(1995), 홍콩(1995), 독일(2000) 등 세계 각 국에서 유사한 형태의 장애인차별금법을 제정하게 된다. 미국 ADA의 경우 그 내용은 크게 TitleⅠ: 고용(employment), TitleⅡ: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2) , TitleⅢ: 민간운영 공공편의시설 및 서비스(public accommodation and services operated by private entities), TitleⅣ: 통신(tele-communication)3) 그리고 기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Title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제1장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지니고, 교통과 관련한 차별은 교통부(Dept. of Transportation)가 담당하는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한 업무는 별도의 기구를 두지 않고 기존의 기구나 부서들이 담당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구조와 내용,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 시정 기구에 대해서는 각 국의 법률 체계 및 행정 시스템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영국이나 홍콩 등은 독자적인 차별시정 기구를 두고 있으며, 호주나 뉴질랜드는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미국의 ADA와 외국 여러 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참조하여 그 안이 만들어지게 되지만, 나름의 독자성 역시 지니고 있다. 장추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하 장차법(안)]은 크게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여성장애인 및 장애아동, 제4장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제5장 손해배상과 입증책임, 제6장 벌칙의 총 6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장 차별금지와 관련된 영역이 총 14개 영역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세분화4)되어 있고,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별도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과정 한국사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2003년 4월 15일 한국장애인계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애인단체가 총망라된 장추련이 공식 출범5)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장추련의 출범 이전인 2001년부터 부산 지역의 열린네트워크는 국토순례와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시작하였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역시 법안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장추련으로 모아지게 된 것이다. 장추련은 조직의 구성 이후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 개최를 통한 의견 수렴과 함께,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장추련 법제정 위원회 내에 법안소위를 구성하여 2004년 상반기에는 본격적인 조문 구성 작업에 돌입하였으며, 5월 14일에는 처음으로 법안의 초안을 발표하고 공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도 5대 차별영역(학벌,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의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안 마련을 위한 추진단(가칭)'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5월 25일에는 보건복지부의 주최로 용역 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5년에 접어들어 장추련은 실질적인 법안의 발의를 위한 정당 선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장추련의 법안을 원안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민주노동당을 통해 법안의 발의를 준비하게 된다.6) 그리고 법안 제정 운동에 있어 기본적인 실무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무국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01년도부터 4년여 간 준비되어온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5년 9월 20일 정식으로 입법발의 되었고, 본격적인 입법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입법발의 전인 9월 14일 장추련은 국회에서 입법발의 기자회견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결의대회를 열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법무부 소관법률로 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단지 장애인 관련 법률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 의안과에 의해 결국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되고 만다. 또한 정부는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청와대의 지침아래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작업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이렇듯 국회와 정부 내에서도 법안의 제정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가운데, 장추련은 내부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만한 어떠한 활동의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해내기 위해 전장연(준)은 기존의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계 내의 주요 연대체들과 인권·사회단체, 정당까지를 포괄해내는 장차법공투단을 제안·구성하고 마지막 현장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전장연(준) 출범식이 있던 10월 26일 장차법공투단은 국회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으며, 농성 돌입 후 보름 사이에만 세 차례에 걸친 농성장 침탈7)을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농성장을 사수하고 있다. 또한 11월 9일에는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1월 22~23일에 걸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전동(前動) 거리 대행진'을 진행하는 한편, 수요 거리 문화제, 사이버 시위 등 다양한 대중 투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 내용과 쟁점 (1)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설치 장애인계의 장차법(안)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침해받은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하여,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 일개 부서가 아닌 국무총리산하의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법률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니 하지 말아야 함을 명시하는 법률이며, 차별이 제기되었을 때 이를 판정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정과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상시적 인력과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2005년 3월말까지 3년 5개월 동안 제기된 장애인의 차별 진정 사건은 124건으로, 연평균 35건에 불과했다. 과연 480만 장애인 중 일 년에 차별을 경험하는 사례가 35건에 불과할까? 이는 같은 기간 종료 처리된 94건의 사건 중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입에 의한 합의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으며, 9건의 권고 조치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해가 될 수 있다.8)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존의 기구가 장애인 차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차별을 경험해도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존의 인력과 예산의 수준에서 모든 차별시정업무를 통합하겠다고 하고 있어, 결코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차별 시정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즉 장애인 차별시정을 위한 자문 격의 전문위원이 아닌 상시적 전문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장차법이 또 하나의 선언문으로 남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의 마련 ① 시정명령제도 및 이행강제금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떤 사안이 차별이라고 판명되더라도 이에 대해 합의나 조정, 권고까지만 할 수 있어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즉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진정서를 제출한 차별받은 사람은 아무런 사후보장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 쟁점이 되는 사안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9)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당성과 힘을 실어주는 효과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개인의 경우 아무런 강제성 없는 권고는 오히려 더 큰 피해만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이 기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진정을 하고 이에 대해 권고 조치가 내려진다 해도 기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며, 오히려 기업주의 눈 밖에 난 진정인은 다양한 압력에 시달리게 되고 이후에 다른 이유를 핑계로 해고를 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차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조정을 거부하거나 권고를 수락하지 않은 경우, 다른 법률에 근거한 구체적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②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악의의 차별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제도는 반사회적인 인권침해행위를 한 후 실제 손해액만을 보상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경우를 막고, 강한 제재로서 법적 실효성을 높임과 동시에 차별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예방의 목적도 지니고 있다. 장차법(안)은 차별행위를 고의로 반복하여 행한 경우, 시정권고 또는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악의에 의한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고 있지 않은 제도라는 점과 현행 법체계를 고려하여 그 액수를 실제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로 한정10)하고 있으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500만 원 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③ 입증책임의 전환 입증책임의 전환은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진정인이 제기하면, 그러한 행위가 없었다거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가해자가 입증하여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전환은 미국이나 홍콩 등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1989. 4)시 "이 법과 관련된 분쟁 해결에서의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 한다"는 입증책임의 전환 조항을 두고 있다.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의 위치에 있기 쉬운 장애인이 피해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물리적·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며, 특히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에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입증책임의 전환은 실질적인 권리구제수단의 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의 의미와 사회적차별금지법11) 앞서 언급되었듯이 현재 노무현 정부는 단순히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라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자체를 중단하고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만'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기구(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만들 경우 소요될 예산과 인력의 문제, 그리고 장차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정부와 기업의 부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일정한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근거 때문이겠지만, 국가인권위위원회로의 차별시정업무 일원화가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합적인 사회적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12) 먼저 확인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결코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도, 이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정부의 논리일 수 있지만, 이에 운동사회가 끌려갈 필요는 없다. 또한 장애인 집단에게 있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법률이 요구되고 존재했던 것은 비단 차별금지라는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새삼스럽지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취업/고용권13) 영역에 있어서의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동권 영역에 있어서의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교육의 영역에 있어서의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존재해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법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앞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선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러한 법률의 제정이 시민권(citizenship)운동이라는 배경 하에서 제정되었음을 언급하였다. 시민권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규정할 수 있지만, 근대 자본주의적 민족국가가 자신의 정당한 구성원(member)이라고 인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여하는 실정법상의 기본권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마지막 집단중의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14)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이 제기되어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취업/고용권, 이동권, 교육권 등 기간에 이루어졌던 장애인 대중 투쟁 자체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 세로축을 형성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또 다른 방향에서 가로축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체들은 결코 이 법률이 장애인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은 그 결과 이상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장애인 대중의 집단적 역능 증대라는 운동의 기본과제를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며, 이는 대중투쟁이라는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차별금지법이 그 어떤 단위에서도 대중적 투쟁을 이끌어 낼만한 실질적 이슈로서 형성되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제도적 합리성이라는 잣대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결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차별금지법 시안 속에는 실질적인 권리구제 수단과 관련된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전환 등이 모두 언급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는 장애인계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적 조건 속에서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투쟁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전술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 안에 위의 3가지 내용이 포함된다면, 운동사회는 이를 근거로 사회적차별금지법 내에도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어야함을 실제로 보다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끝까지 거부한다 해도, 장차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회적차별금지법(안)과 함께 상정되어 병합 심리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권리구제수단과 같은 동일한 범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독자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장애인 대중의 치열한 현장투쟁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될 것이며, 한국 사회의 변화에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각주] 1) 이 법은 숙박시설, 식당, 주유소, 영화관, 스포츠 시설 등의 공공편의시설, 주정부 등의 공공기관 소유 시설 및 공공 교육시설에 있어 인종(race), 피부색(color), 종교(religion), 출신국가(national origin)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특히 고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4가지 외에 성별(sex)을 포함한 5가지 사유를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 집행을 위해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설치를 규정하였다.본문으로 2) 제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모든 사업, 활동, 서비스에 적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이들이 운영하는 공공교통(public transportation)에 대한 규정이다.본문으로 3) 제4장은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전화중계서비스 및 연방정부의 재정보조를 받는 공공서비스의 TV공고에 대한 자막처리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4) 제2장은 고용, 교육, 건축물 및 시실의 이용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의 이용, 의사소통 및 정보접근권,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문화·예술, 체육, 사법·행정 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性), 가족·가정·시설, 건강권, 폭력의 14개 절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장추련은 출범 당시 한국장총과 장총련을 비롯한 58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였으며, 상임공동대표로는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변경택(열린네트워크 대표), 이예자(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정광윤(장총련 회장), 주신기(한국장총 회장)가 선임되었다..본문으로 6) 어느 당을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발의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장추련 내부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장추련 내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장총련과 한국장총 쪽에서는 원안의 핵심적 요구사항이 어차피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가정 아래, 원내에 있는 장애인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을 통해 발의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본문으로 7) 공권력은 국회 부근의 천막농성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10월 27일, 11월 2일, 11월 11일 3차례에 걸쳐 농성장을 침탈하였다.본문으로 8) 특히 사건 종료 처리된 총 94건 중 각하처분을 받은 경우가 6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각이 17건을 차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각하처분은 진정의 내용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진정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내려진다. 또한 기각은 위원회가 진정을 조사한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경우, 조사대상 인권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 등에 이루어지는데, 과연 이러한 80건의 차별 사례가 그냥 방치되어도 좋을 사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본문으로 9)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관계기관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본문으로 10) 미국 ADA의 경우에는 그 액수를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본문으로 11) 노무현 정부가 제기했던 사회적차별금지법은 현재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고,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안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그대로 사회적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본문으로 12) 이러한 논란은 법안을 발의했던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총사퇴와 관련된 『프로메테우스』의 「사퇴는 기본, 당이 혁신되어야 한다」(10/31)에서는 "....단체와의 관계 재정립 문제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책임 없이 발의해준 법안은 처리가 묘연하고 당의 부담으로 남는 다는 설명이다....한 연구원은 "장애인 단체가 요구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경우로 모든 문제를 인권위의 차별시정기구로 단일화하기로 했던 최초의 원칙이 무시된 경우"라면서..."라고 적고 있다. 또한 사회적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장 실질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인권단체들 내부에서도 일정한 이견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13)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노동권은 자본주의적 임노동에 편입될 권리나, 그러한 임노동 관계 속에서 자신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킬 수 있는 소위 노동 3권에 한정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이고 변혁적인 의미의 노동권은 자신의 노동 자체를 스스로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며, 이렇게 해석한다면 장애인자립생활에서 이야기하는 하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보다 한정된 의미로 취업/고용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본문으로 14) 물론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더욱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그리고 성적소수자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본문으로
신종전염병의 확산 베트남, 태국에서 조류독감 유사증세로 잇달아 여러 사람이 사망하고 중국, 쿠웨이트 등 10개 국가에서 조류독감(H5N1)에 걸린 조류가 계속 발생하면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인체감염 사례는 없었으나 음성, 천안, 양산, 아산 등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02년 중증급성기호흡증후군(SARS)의 위협이후 조류독감은 아시아 지역을 또 한번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SARS, 조류독감과 같은 신종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가 "전염성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과학기술의 진보를 확신했었다. 그러나 1980년 성매개질환(STD), 1981년 에이즈, 라사열, 라임병, 에볼라 등은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환으로 등장하였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오지에서 있었으나 독성은 더 강해지고, 한때 자신들을 억제했던 약물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면서 새로운 질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만들어낸 질병 실질적으로 신종전염병의 확산의 주요한 원인은 두 가지로 진단해볼 수 있다. 첫째, ‘세계화’가 질병조차 세계화시키고 있다. 질병은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발생, 18명이 감염되고 6명이 사망했으나 사람간 전파는 없었지만, 이후 홍콩, 네덜란드 등지에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새로운 아형이 속속들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한 지역의 질병유행은 다른 지역으로 재빠르게 퍼지고 있다. 1918년 스페인독감, 1957년 아시안 독감, 1968년 홍콩독감, 1977년 러시안 독감 등 독감의 대유행은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질병의 세계화는 독감이나 조류독감만이 아닌, 다른 질환에도 해당된다. 두 번째, 가금류의 대량사육이 질병의 전이를 가능케 하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한두 마리 가금류를 사육하던 방식에서 대량 사육하는 대공업적 방식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대량 서식하는 가금류의 간에서 미생물은 유전자변형을 일으키는 등 자가발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생물을 접하지 못한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엄청난 독력(毒力)을 행사케 되는 것이다. 조류독감의 위협, 그 유일한 치료제 타미플루 이러한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항바이러스 제제를 투여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미플루'(Oseltamivir Phosphate)는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를 통해 증식하고 확산되지 못하도록 효소를 억제하는 혁신적인 치료제이다. 1999년 10월 스위스에서 처음 발매되어 2000년 11월에는 미국, 2001년 11월에 우리나라에서도 발매가 시작되었다. 로슈사가 생산하는 타미플루 캅셀 75mg은 한 알에 4,109원으로, 하루 2알을 5일간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당장 환자개인에게야 한번 먹을 치료제인 만큼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백만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의 생산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한 제약회사 로슈사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타미플루 외에도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가 생산·판매하는 항바이러스제 리렌자가 있다고 하지만, 분말로 돼있어 흡입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타미플루 만큼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아만티딘(Amantidine), 리만티딘(Rimantidine) 등의 다른 항바이러스 제제 성분의 경우에도 내성 바이러스가 빈발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타미플루의 대량 구비만이, 조류독감의 재앙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타미플루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 강제실시1) 조류독감 치료제를 구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뜨거워지고 있다. 글리벡 강제실시 당시, 꿈쩍도 않던 국내 보건당국이 되려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고 해 놀라움을 사고 있다. 글리벡의 강제실시로 인해 통상압력이 들어올 경우, 손해가 더 크다는 이유로 강제실시를 허여하지 않겠다고 나선 지 3년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유관 기관에 공문을 보내, 타미플루의 복제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제약사가 있는지 조사를 요청하고 동시에 강제실시권을 발동했을 경우, 무역마찰과 특허권 다툼에 대비하기 위해 특허청과 함께 법률적 검토작업에 나서고 있다.2)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강제실시를 언급할 만큼 상황은 절박하다. 타미플루의 독점권으로 약값도 높지만, 당장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에 인구 25%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하라고 권고했지만, 현실성이 없는 공염불이다. 독점권을 가진 로슈사가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10년이 걸려야 세계인구의 20%가 먹을 수 있는 타미플루만 생산할 수 있다. 로슈는 생산량을 10배로 끌어올리겠다고 방어막을 쳤지만, 값비싼 타미플루를 비축한 국가는 30개국에 불과하다. 정작 조류독감 위험이 큰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 정부들은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다급해진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강제실시를 허용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류독감으로 63명이 사망하고, 가금류 수십만 마리를 폐사시킨 베트남에서는 11월 10일 로슈사의 강제실시 승인을 얻고, 내년부터 타미플루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인도의 시플라사는 내년부터 타미플루 복제약을 시판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약품 공급 난항의 총체적 원인은 바로 특허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6일 세계보건기구(WHO) 본부를 방문한 현장에서 조류독감의 예방과 치료에 한해선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운을 떼기도 했다. 그러나 타미플루의 공급확대 및 약가 하락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로슈사는 타미플루의 약가를 더 이상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슈사는 이미 타미플루의 약가를 상당히 할인하여 각국 당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조류독감 우려 전에는 타미플루로 적자를 봤고 에이즈와 달리 조류독감은 만성질환이 아니라면서 기존 약가를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로슈사가 각국 보건당국에 제공하는 타미플루 약가는 선진국은 10정당 18달러, 후진국은 10정당 14.4달러 가량이다. 반면 타미플루의 계절성 독감 치료비용은 24 ~ 58달러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가격을 낮추지 않고, 강제실시를 허용하지 않는 로슈사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기업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고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놓칠 수 있다. 약값을 어느 수준으로 정하고, 어느 정도로 약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제약회사의 뜻이다. 그리고 이는 특허가 20년 간 부여하는 독점권에서 기인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신약과 신치료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보상·유인책으로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제도를 도입하였고, 제약산업은 1960년대 냉전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윤율 1위를 고수해온 고수익산업으로서 평균이윤율을 자랑하고 있다. 11월 27일 보건당국은 12월부터 타미플루의 조류독감예방목적의 복용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타미플루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경우 환자 부담은 치료용(하루 2회씩 5일치)이 4만 1,090원에서 1만 2,327~2만 545원으로, 예방용(하루 1회씩 7일치)이 2만 8,763원에서 8,629~1만 4,382원으로 줄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건강보험료로 제약회사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의약품 안정적 공급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자 이미 초국적 제약자본은 일국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값비싼 약값으로 인해, 약을 먹지 못하는 민중들의 요구가 드높다. 더욱이 질병의 세계화와 이에 대응하여 의약품을 보유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11 테러 직후 탄저균 소동이 발생한 미국은 턱없이 가격이 높은 바이엘의 시프로베이에 대한 강제실시를 수행했고, 탄저균 사건이 퍼지지도 않은 인근 캐나다 정부는 자국 회사에 100만 정의 복제약을 생산토록 지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가 발생했지만, 제대로 약을 보유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그러나 초국적 제약자본이 의약품의 생산·공급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의약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환자가 죽어 가는 문제는 앞으로도 숱하게 발생할 것이다. 이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폐암 치료제 이레사,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는 우리에게 의약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지적재산권협정 체제 하에서는 강제실시만이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인 지적재산권협정으로 의약품을 더 이상 묶어서는 안 된다. 첫째, 생명에 너무나 필수적인 의약품을 지적재산권협정에서 즉각 제외시켜야 한다. 둘째 필수의약품과 급성 전염병에 대한 약물의 공적 생산 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각주] 1) 강제실시권은 국가 비상사태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정하고 있다. 국내 특허법 106조에서도, "특허발명이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실시되고 있지 아니한 경우, … (중략) …,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비상업적으로 특허발명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 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이어 일양약품, 한미약품, 종근당, 신풍제약, 대웅제약 등 여러 제약회사들도 발빠르게 자체 생산한 타미플루 샘플을 내놓고 있다. 본문으로
신종전염병의 확산 베트남, 태국에서 조류독감 유사증세로 잇달아 여러 사람이 사망하고 중국, 쿠웨이트 등 10개 국가에서 조류독감(H5N1)에 걸린 조류가 계속 발생하면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인체감염 사례는 없었으나 음성, 천안, 양산, 아산 등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02년 중증급성기호흡증후군(SARS)의 위협이후 조류독감은 아시아 지역을 또 한번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SARS, 조류독감과 같은 신종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가 "전염성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과학기술의 진보를 확신했었다. 그러나 1980년 성매개질환(STD), 1981년 에이즈, 라사열, 라임병, 에볼라 등은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환으로 등장하였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오지에서 있었으나 독성은 더 강해지고, 한때 자신들을 억제했던 약물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면서 새로운 질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만들어낸 질병 실질적으로 신종전염병의 확산의 주요한 원인은 두 가지로 진단해볼 수 있다. 첫째, ‘세계화’가 질병조차 세계화시키고 있다. 질병은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발생, 18명이 감염되고 6명이 사망했으나 사람간 전파는 없었지만, 이후 홍콩, 네덜란드 등지에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새로운 아형이 속속들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한 지역의 질병유행은 다른 지역으로 재빠르게 퍼지고 있다. 1918년 스페인독감, 1957년 아시안 독감, 1968년 홍콩독감, 1977년 러시안 독감 등 독감의 대유행은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질병의 세계화는 독감이나 조류독감만이 아닌, 다른 질환에도 해당된다. 두 번째, 가금류의 대량사육이 질병의 전이를 가능케 하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한두 마리 가금류를 사육하던 방식에서 대량 사육하는 대공업적 방식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대량 서식하는 가금류의 간에서 미생물은 유전자변형을 일으키는 등 자가발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생물을 접하지 못한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엄청난 독력(毒力)을 행사케 되는 것이다. 조류독감의 위협, 그 유일한 치료제 타미플루 이러한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항바이러스 제제를 투여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미플루'(Oseltamivir Phosphate)는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를 통해 증식하고 확산되지 못하도록 효소를 억제하는 혁신적인 치료제이다. 1999년 10월 스위스에서 처음 발매되어 2000년 11월에는 미국, 2001년 11월에 우리나라에서도 발매가 시작되었다. 로슈사가 생산하는 타미플루 캅셀 75mg은 한 알에 4,109원으로, 하루 2알을 5일간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당장 환자개인에게야 한번 먹을 치료제인 만큼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백만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의 생산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한 제약회사 로슈사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타미플루 외에도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가 생산·판매하는 항바이러스제 리렌자가 있다고 하지만, 분말로 돼있어 흡입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타미플루 만큼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아만티딘(Amantidine), 리만티딘(Rimantidine) 등의 다른 항바이러스 제제 성분의 경우에도 내성 바이러스가 빈발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타미플루의 대량 구비만이, 조류독감의 재앙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타미플루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 강제실시1) 조류독감 치료제를 구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뜨거워지고 있다. 글리벡 강제실시 당시, 꿈쩍도 않던 국내 보건당국이 되려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고 해 놀라움을 사고 있다. 글리벡의 강제실시로 인해 통상압력이 들어올 경우, 손해가 더 크다는 이유로 강제실시를 허여하지 않겠다고 나선 지 3년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유관 기관에 공문을 보내, 타미플루의 복제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제약사가 있는지 조사를 요청하고 동시에 강제실시권을 발동했을 경우, 무역마찰과 특허권 다툼에 대비하기 위해 특허청과 함께 법률적 검토작업에 나서고 있다.2)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강제실시를 언급할 만큼 상황은 절박하다. 타미플루의 독점권으로 약값도 높지만, 당장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에 인구 25%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하라고 권고했지만, 현실성이 없는 공염불이다. 독점권을 가진 로슈사가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10년이 걸려야 세계인구의 20%가 먹을 수 있는 타미플루만 생산할 수 있다. 로슈는 생산량을 10배로 끌어올리겠다고 방어막을 쳤지만, 값비싼 타미플루를 비축한 국가는 30개국에 불과하다. 정작 조류독감 위험이 큰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 정부들은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다급해진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강제실시를 허용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류독감으로 63명이 사망하고, 가금류 수십만 마리를 폐사시킨 베트남에서는 11월 10일 로슈사의 강제실시 승인을 얻고, 내년부터 타미플루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인도의 시플라사는 내년부터 타미플루 복제약을 시판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약품 공급 난항의 총체적 원인은 바로 특허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6일 세계보건기구(WHO) 본부를 방문한 현장에서 조류독감의 예방과 치료에 한해선 지적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운을 떼기도 했다. 그러나 타미플루의 공급확대 및 약가 하락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로슈사는 타미플루의 약가를 더 이상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슈사는 이미 타미플루의 약가를 상당히 할인하여 각국 당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조류독감 우려 전에는 타미플루로 적자를 봤고 에이즈와 달리 조류독감은 만성질환이 아니라면서 기존 약가를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로슈사가 각국 보건당국에 제공하는 타미플루 약가는 선진국은 10정당 18달러, 후진국은 10정당 14.4달러 가량이다. 반면 타미플루의 계절성 독감 치료비용은 24 ~ 58달러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가격을 낮추지 않고, 강제실시를 허용하지 않는 로슈사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기업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고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놓칠 수 있다. 약값을 어느 수준으로 정하고, 어느 정도로 약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제약회사의 뜻이다. 그리고 이는 특허가 20년 간 부여하는 독점권에서 기인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신약과 신치료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보상·유인책으로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제도를 도입하였고, 제약산업은 1960년대 냉전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윤율 1위를 고수해온 고수익산업으로서 평균이윤율을 자랑하고 있다. 11월 27일 보건당국은 12월부터 타미플루의 조류독감예방목적의 복용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타미플루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경우 환자 부담은 치료용(하루 2회씩 5일치)이 4만 1,090원에서 1만 2,327~2만 545원으로, 예방용(하루 1회씩 7일치)이 2만 8,763원에서 8,629~1만 4,382원으로 줄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건강보험료로 제약회사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의약품 안정적 공급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자 이미 초국적 제약자본은 일국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값비싼 약값으로 인해, 약을 먹지 못하는 민중들의 요구가 드높다. 더욱이 질병의 세계화와 이에 대응하여 의약품을 보유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9·11 테러 직후 탄저균 소동이 발생한 미국은 턱없이 가격이 높은 바이엘의 시프로베이에 대한 강제실시를 수행했고, 탄저균 사건이 퍼지지도 않은 인근 캐나다 정부는 자국 회사에 100만 정의 복제약을 생산토록 지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가 발생했지만, 제대로 약을 보유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그러나 초국적 제약자본이 의약품의 생산·공급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의약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환자가 죽어 가는 문제는 앞으로도 숱하게 발생할 것이다. 이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폐암 치료제 이레사,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는 우리에게 의약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지적재산권협정 체제 하에서는 강제실시만이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인 지적재산권협정으로 의약품을 더 이상 묶어서는 안 된다. 첫째, 생명에 너무나 필수적인 의약품을 지적재산권협정에서 즉각 제외시켜야 한다. 둘째 필수의약품과 급성 전염병에 대한 약물의 공적 생산 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각주] 1) 강제실시권은 국가 비상사태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정하고 있다. 국내 특허법 106조에서도, "특허발명이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실시되고 있지 아니한 경우, … (중략) …,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비상업적으로 특허발명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 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이어 일양약품, 한미약품, 종근당, 신풍제약, 대웅제약 등 여러 제약회사들도 발빠르게 자체 생산한 타미플루 샘플을 내놓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