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해설] 저자인 아리기(G. Arrighi)가 서두에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는 세계적인 가난과 배제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것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두고 다수의 논쟁들이 존재하였고, 그 주류를 형성했던 입장은 내적요인, 즉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무능력, 부패, 권력쟁투, 그리고 중요하게는 '불건전한 경제정책'의 실행이 곧 현재의 '아프리카의 비극'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아리기 스스로도 자신의 1968년 저작(존 사울과의 공저)에서 이러한 입장들과 상이한 관점을 취했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었다고 평가하면서, 본 논문에서 그러한 설명의 한계들을 넘어서(이른바 '낡은 정치경제학'과 '새로운 정치경제학' 양자 모두를 넘어서) 세계체계적 맥락에서 아프리카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즉,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변화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분량상 아리기의 본격적인 세계체계적 분석은 11월호로 미루고, 본 호에서는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설명과 그것의 변화, 그리고 아프리카 위기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분석까지만 번역 게재하고자 한다. 분명히 오역과 실수가 많을 것이다. 독자여러분의 지적이 있으시면 나머지 부분 번역에 반영하고, 이후에 정정할 것을 밝혀둔다. * * *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1970년대의 아프리카의 위기는 (매우 적절한 표현인) 이른바 '아프리카의 비극'{{) '아프리카의 비극'('African Tragedy')라는 표현은 Colin Leys, "Confronting the African Tragedy", NLR Ⅰ/204, March-April 1994, pp. 33-47로부터 인용하였다. }}으로 전화되었다. 1975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일인당 GNP는 '전세계' GNP의 17.6%를 차지했다; 1999년에 즈음하여 그것은 10.5%로 하락했다. 전체적인 제3세계와 비교해볼 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역주] 'Sub-Saharan Africa'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라고 한다면 통상적으로 북부 아랍 5개국(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를 제외한 남부 48개국을 가리킨다. 지형적으로 보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인 셈이다(참고로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국가는 현재 총 53개국이다). 한편, 'Tropical Africa' 즉, '열대 아프리카' 혹은 '적도 아프리카'로 주로 적도 인근에 밀집한 국가를 가리키는 지형적인 구분이 강한 용어이다. 이하에서는 별다른 영어 병기없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열대 아프리카'로 번역한다. }}의 건강, 사회적 윤리, 그리고 성인의 문자해독력은 비율상으로 상당히 악화되었다. 이 지역의 평균수명은 약 49년이며, 이 지역 인구의 34%가 영양실조 상태이다. 아프리카의 유아사망률은 1999년 현재 1000명당 107명의 비율이며, 이는 남아시아의 69명, 라틴 아메리카의 32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사하라 이남 지역에 거주하는 15세에서 49세 사이의 아프리카 사람들의 대략 9%는 HIV/AIDS 보균자들인데,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결핵환자의 비율 역시 인구 10만명당 121명 꼴로, 남아시아 98명, 라틴 아메리카 45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UN Development Programme, Human Development Report 2001, pp. 144, 165, 169 참고. 이 보고서의 각종 통계들은 국제연합(UN), 세계보건기구(WHO),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들에 기초한다. }} 이 글의 주요 목적은 세계-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들을 재고(再考)하는 것, 즉 1975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미래가 광범위하게 분기하는 과정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경험한 것을 위치지우는 것이다. 이러한 재고는, 따라서, 두가지의 목적에 부합한다. 첫째, 존 사울(John Saul)과 내가 1960년대 후반에 제기했던 특별한 종류의 정치경제학을 사용하여 예상할 수 있었던 위기와 비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사울과 나의 논문들은 이후에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1973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이 책과 그리고 본 논문에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Sub-Saharan) 지역을 의미한다. }} 둘째, 회고적으로 내가 보기에 ('낡은') 정치경제학 뿐만 아니라, 특히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1980년대 소개된 합리적 선택 이론가 및 정책입안자들의 '새로운' 정치경제학, 양자 모두의 심각한 결함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나는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울과 내가 주장했던 주요 테제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주장들과 비교한다. 그후에 나는 1980년을 전후한 여러 해 동안 세계적인 정치경제에서 사하라 이남 지역의 운명의 주요한 전환점을 시사하는 아프리카의 위기의 정형화된 사실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1979년과 1982년 사이에 벌어진 제3세계의 발전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선 그 변화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논문의 말미에서, 나는 [표면적인 설명의 배후에 대한] 심화 설명으로 이동하여, 세계적 맥락에서 상이한 제3세계 지역들에 대한 이러한 변화들의 극도로 불균등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다―특히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운명들 사이의 현저한 상이함에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 아프리카의 비극 혹은 아프리카의 극도로 파괴적인 양상들을 피하기 위해 수행한 것들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결론을 맺는다. 아프리카 정치경제학,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지난 20여년간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과장된 '불건전한 정책'과 '취약한 통치력'과 같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지배집단들의 성향을 그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규정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향들에 대한 아프리카의 집착의 이유들[에 대한 설명들]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비극이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 그 최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해석들에 공통적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생각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경제 운영의 결정요인들에 대한 몇몇 권위있는 연구들에 의해 도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여전힌 암시적인 내용으로만 남아있고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표준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문헌은 1981년에 발간된 세계 은행의 보고서―이른바 'Berg Report'라고 알려진―이다.{{) World Bank, Accelerat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n Agenda for Action, Washington, DC: 1981. }} 아프리카 위기의 원인들에 대한 이 보고서의 평가는 고도의 '내인론(內因論)'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산출과 수출을 증대함에 있어서 농업생산자들의 이니셔티브를 파괴하여 발전의 과정을 잠식시킨 아프리카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과대평가된 국내통화들, 농업에 대한 경시, 제조업에 대한 과잉보호, 그리고 지나친 국가의 개입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불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통화에 대한 대규모 평가절하, 산업보호의 폐지, 농업 생산과 수출에 대한 가격 인센티브, 그리고 공기업의 사유화―산업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서비스의 준비까지―가 사하라 이남 지역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하게 될 '건전한' 정책들로서 열거되었다. 'Berg 보고서'의 원인진단과 처방은 1981년에 출판된 매우 영향력있는 또 다른 문헌―로버트 베이츠(Robert Bates)의 {열대 아프리카에서 시장과 국가}―과 일치하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정치경제학과 저발전 국가들에서 국가개입의 위험들 양자를 설명하는 고전(古典)의 지위를 빠르게 획득하였다.{{) Robert Bates, Markets and States in Tropical Africa: The Political Basis of Agricultural Policy, Berkeley, 1981. 1980년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부상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Carol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in Sub-Saharan Africa", in Stephen Commins, ed., Africa's Development Challenges and the World Bank, Boulder, 1988을 참고. }} 베이츠의 견해에 따르면, 아프리카 신흥 산업국가들의 국가관료들은 도시 엘리트들과 무엇보다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식민체제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통제의 강력한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위한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파괴하는 정책들은 발전의 과정을 잠식하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베이츠의 해결책―국가권력의 해체와 시장 경쟁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농민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Berg 보고서' 및 그 후속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에 의해 지지된 견해와 유사했다.{{) 특히 World Bank, Toward Sustain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 Joint Programme of Action, Washington, DC 1984; Financing Adjustment with Growth in Sub-Saharan Africa: 1986-1990, Washington, DC 1986를 참고할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대한 그의 해석은 세계은행의 것에 비해 보다 비관적이고 극도로 반국가적인 것이었다. 세계은행의 [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평가들은 외관상으로 이중적인 가정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리카가 기존에 추진한 정책들이] '불건전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정책들의 부정적 효과와 '건전한 정책'의 긍정적 효과―한번 효력을 발휘하면 그것을 계속함에 있어 엄청난 보조가 될 수 있는―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혹은 주요한) 방법은 아프리카의 정부들로 하여금 불건전한 정책에서 건전한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정부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권자들에게) 설득하고 재촉하는 것이다. 역사적이고도 사회-구조적인 고려지점들―아프리카 엘리트들이 식민지배로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지배도구들, 인종간 갈등, 지역간 갈등 그리고 경제적 집단들과 계급들 간의 갈등―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이하 NPE)은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불건전한' 것에서 '건전한'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에 동의할 개연성, 그리고 그 전환 이후에 '건전한' 정책을 고수할 수 있을 개연성에 대해 세계은행에 비해 보다 회의적이다.{{) Lancaster, 'Political Economy and Policy Reform', pp. 171-3을 참고할 것. }} 최소한 그 함의로만 보자면야, 당연하게도 NPE의 반국가주의는, 세계은행의 입장과 동일하게 정부의 규제와 조정으로부터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NPE는 국가를 통제하고 있는 사회적 연합―그들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불건전한 정책'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세력들―의 정당성을 잠식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NPE의 '내인론적'이고 '최소국가론적'인 처방들이 별다른 저항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격렬한 저항은 바로 아프리카의 정부들로부터 제기되었다. 1980년 [나이지리아의] 라고스(Lagos)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명되었지만 'Berg 보고서'와 같은 해[1981년]에 발간된 한 결의문에서,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아프리카통일기구) 회원국가들의 대표자들은 위기의 원인이 일련의 외부적 충격들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외부적 충격들에는 일차생산품의 교역조건의 악화, 점증하는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이자율의 급증과 외채 의무 사항(debt service commitments)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른바 '라고스 계획'(The Lagos Plan of Action)은 세계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상호간의 경제통합과 협력을 증진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OAU, The Lagos Plan of Action for the Economic Development of Africa 1980-2000, Geneva 1981. }} 대륙적 규모의 공동시장을 창설하는 것을 통한 집단적 자립에 대한 강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계획은 당시 종속이론의 영향, 게다가 대륙의 형식적인 탈식민화가 거의 종식됨에 따라 등장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강력해졌다는 판단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종속이론의 영향도, 강력해졌다는 판단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계획의 공표 직후, 그리고 급격한 경제상황의 악화일로에서, 사막지대 국가들(Sahelian)의 가뭄과 기근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는데, 1983-84년이 그 정점이었다. 이듬해 새로운 OAU 정상회담이 [에디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회담은 아프리카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UN이] 직접 해결해 달라는 제안을 UN총회의 특별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 정상회담은 {경제회복을 위한 아프리카의 긴급조치, 1986-1990}(약칭 APPER)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서도 외부적 충격들은 위기를 보다 심화시켰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자립화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APPER는 단적으로 라고스 계획과 판이하게 다른데, 즉 그것은 위기에 대한 아프리카 정부들의 책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어떠한 행위들도 그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인정의 맥락에서 보자면, APPER는 'Berg 보고서'에서 주장된 다양한 정책개혁안에 동의한다는 것, 국제사회에 아프리카가 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외채를 탕감해 줄 것, 그리고 아프리카의 수출가격의 안정·인상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위기 해결에 있어서의 공동행동을 위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국제사회' 간의 결론은 '압축/축소'(compact)[즉,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의미함-역자]였다―즉, {아프리카의 경제회복과 발전을 위한 UN의 프로그램, 1986-1990}(약칭 UNPAAERD)이 발주된 것이다.{{) Akilagpa Sawyerr, The Politics of Adjustment Policy, in Adedeji, Rasheed and Morrison, eds, The Human Dimension of Africa's Persistent Economic Crisis, London: 1990, pp. 218 23. }} 판투 쳬루(Fantu Cheru)는, 서구의 권력들은 그렇지 않은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자신을 [과도하게] 압축/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UNPAAERD는 '단순히 Berg 보고서의 환생'이라고 규정했다.{{) Fantu Cheru, The Silent Revolution in Africa: Debt, Development and Democracy, London: 1999, pp. 15-16. }} 이러한 성격규정은 상당히 정확하지만 세계은행의 입장들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에 종속된 아프리카 국가들이 늘어남에 따라, IMF와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신-공리주의적, 최소국가론적 처방들을 개정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일련의 제도들과 '건전한 통치'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Robert Bates, Beyond the Miracle of the Market: The Political Economy of Argarian Development in Kenya, Cambrdge: 1989; 더불어 World Bank, Sub-Saharian Africa: From Crisis to Sustainable Growth-A Long-term Perspective Study, Washington, DC: 1989, 그리고 World Bank, Governance and Development, Washington, DC: 1992 참고. }} 1997년에 이르러, 세계은행은 모든 실천적인 정책제안들에서 국가에 대한 최소주의적 견해를 기각했다. 그후 몇 년간 세계은행의 <세계발전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에서, 국가기구들의 크기와 경제에 대한 공적 개입의 정도에 대한 초기의 관심들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효율적인 관료기구와 적극적인 국가에 대한 것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이행의무들은 경제회복의 실패와 그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재앙들에 대한 엄청난 책임을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 정부들에게 부과하였다. 장기간 지속된 위기를 해결함에 있어서 아프리카 정부들과 엘리트들의 능력에 대한 보다 비관적인 평가들은 세계경제에 대한 아프리카의 통합에 대한 낙관주의적 견해와 함께, 정부의 통제로부터 시장의 자유와 사기업들의 폭넓은 기회들의 제공―즉, IMF와 세계은행의 처방들에 대한 아프리카적 추종―을 요구하였다.{{) Ray Bush and Moris Morris Szeftel, "Commentary: Bringing Imperialism Back In", Review of African Political Economy, no. 80, 1999, p. 168을 참고. 또한 Economist지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입장의] 변화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Economist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은 지난 세대보다 더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다]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게재하고서 정확히 3년 후, 2000년 5월 13-19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프리카는 [희망이 없는 대륙]이라고 선언하였다. 아프리카의 '가련한 지도자 집단'은 '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국가의 제도들을 강화하기 보다는 잠식'했고 자신의 국가들로 하여금 근대성의 함정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중심은 텅 빈 '무늬만 국가(shell states)'이게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주간지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아프리카는 발전으로부터 도태되고 애초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어떤 유전적 특질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발간되는 경제주간지인 Financial Mail은, Economist의 두 개의 커버스토리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Economist의 편집진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유전적 특질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The Hopeless Continent", World Press Review, October 2000, pp. 24-25 참고. }} 나와 사울(J. Saul)의 {아프리카 정치경제론}(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배적이게 된 '새로운' 정치경제학(NPE)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 간에 차이들 뿐만 아니라 그 유사함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분석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특히 베이츠(R. Bates)가 30년 후에 수행했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비극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우리는 제일 먼저 당시의 지배집단들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저발전이라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그 문제의 일부분임을 지적했다. 1968년 그 책의 초판이 출판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의 가장 중심에는 정부 관료로 고용되어 있던 도시 엘리트들과 농촌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 그리고 이윤, 수익, 배당,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수수료들의 해외로의 유출을 가져온 '잉여흡수'(surplus absorption)의 방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농업 생산성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억제하면서, 이 방식은 아프리카의 경제를 1차 상품에 대한 세계 수요의 성장에 대한 의존을 영속시키켰다. 우리가 보기엔, 그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정치경제의 틀 내에서 적도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이 사라지게 되면서, 급격한 경기후퇴가 예상된다.' 동시에, 농업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잉여흡수 방식의 변화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부들이 기초하는 권력을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계급들의 특권을 공격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1960년대 열대 아프리카의 경제발전을 '왜곡된 성장; 즉, 장기간의 성장을 위해 경제의 일반적인 잠재력들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그것을 잠식하는 성장'이라고 규정하였다. 아프리카에서 경제발전의 전망,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발전적 역할에 대해 낙관론이 일반적이었던 시기에, 우리는 양자 모두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심지어 '현대 아프리카에서 엘리트간 경쟁의 성격과, 특히 주요 관직에서 군부의 등장, 이것들이 어떻게 반혁명적 방향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힘을 보여주는지' 언급했던 것이다.{{) Arrighi and Saul, Essay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Africa, pp. 16-23, 33, 34; 강조는 나의 것임. }} 그러나, 그러한 진단의 대칭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경제학은 NPE와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었던 세계적 맥락에 집중적으로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발전의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보다 중립적이었다. 우리의 견해에서 세계적 맥락은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NPE의 견해와 달리, 우리는 민족[-국가]적 수준에서 발전을 향한 노력과 그 성과들을 제약하고 규정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세계 자본주의라고 보았다. 아프리카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였던 잉여흡수의 방식―도시 엘리트들의 과시적 사치와 '노동귀족'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대량소비를 포함하는―은 적어도 가능한 경제적 잉여의 엄청난 분배량을 전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정책들만큼이나 세계적 자본순환에서 경제들의 통합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게다가,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수입대체가 용이했던 국면의 소멸은 세계경제가 아프리카의 민족적 발전에 부과한 제약들의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이 1970년대 아프리카의 위기를 예상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후에 위기를 비극으로 변화시킬 동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초기 교란에 대한 어떠한 깨달음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그것이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에 끼칠 재앙과 같은 영향―여타 제3세계 지역, 특히 동아시아에 대해 끼친 유리한 영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대해서 더욱 그랬다. 이러한 결함들을 강조하고 또한 수정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가 아프리카의 위기에 대해 예견한 것과 예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아프리카 위기의 불균등 발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발전적 재앙의 독특한 사례로 여기는 경향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 이남은 자신의 성공사들을 공유하고 있다. 베르텔레미(Jean-Claude Berthlemy)와 소덜링(Ludvig Soderling)은, 1960년부터 1996년까지의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했던 경제적 성장의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20개 이상의 사례들을, 즉 북아프리카에서 4개의 사례들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16개의 사례들을 알아냈다.{{) 지속된 강력한 성장경험은 '10년 혹은 그 이상의 중단 없는 기간으로, 연간 GDP 성장의 5년 간 평균이 3.5%를 초과한 시기'로 정의된다. 이 기준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6개 사례에 적용해 보면 평균적으로 15.4년 동안 7.1%의 연간 성장률을 보인다. Jean-Claude Berth lemy and Ludvig Soderling, "The Role of Capital Accumulation, Adjustment and Structural Change for Economic Take-Off: Empirical Evidence from African Growth Episodes", World Development, no. 2, 2001 참고; 이상의 평균은 저자들의 <표Ⅰ>로부터 계산되었음. }} 이것은 분명 예외적인 성과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동아시아 '기적적인'경제 성과들과 비견될 만하다. 그러한 아프리카의 성공사들은, Economist에게는 미안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여타 저소득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발전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어떠한 '유전적 특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본 논문의 목적상, 이러한 경험들에 대한 주요 관심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공사의] 시기별 분포에 집중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표를 결합해 보면 세계 여러 지역들의 성공 혹은 실패를 비교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개관을 제공한다. 각 수치들에서 세가지 중요한 특징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여타 제3세계 지역들 중 최악의 경제적 성과를 나타낼지라도, 이러한 열악한 수치들이 거의 대부분 1975년 이후의 양상이다. 1975년 이전으로 가보면, 아프리카의 경제의 성과는 세계 평균보다 그다지 나쁘지 않으며 남아시아보다 높고 게다가 제1세계 지역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북아메리카)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즉, 1975년 이후에야 아프리카는 진정한 몰락을 경험했다―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 추락은 계속되었고, 1960년에서 19999년에 이르는 전기간 동안의 열악한 경제적 성과가 주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시, '왜곡된 성장'이 이러한 몰락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의 기간과 범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둘째, 1975-90년의 아프리카의 몰락은 제3세계의 경제성장의 지역간 불균등에서 주요한 변화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얼마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남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사이의 분기(分岐)가 본격화된다(<표 Ⅲ>을 참고). 아프리카의 몰락은 이러한 분기의 가장 극단적 재현이었다. 이 점에서 그렇다면, 왜 이러한 분기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아프리카에는 치명적이었지만 동아시아에게는 유리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몰락과 지역간 분기 양자 모두 제1세계 자체의 내적 경향들의 중요한 역전과 관련된다. 이상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1960년대 이후 제1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해보면 크게 3가지 경향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하나는 1990년까지 일본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것과 그후 일본의 정체(停滯)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덜한 1990년까지 서유럽의 지위상승과 역시 그 보다 덜한 정체 경향이다. 세 번째 경향은 1975년까지 북아메리카 지위의 하락과 그후의 상승이 그것이다.{{) 네 번째 분명한 특징은 <표 Ⅱ>에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의 수치가 상호적으로 역주기적 진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논의는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동[의 특징]은 이하에 나타날 경향들을 구분할 때 포함될 것이다. }} 이 점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경향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1980년대의 몰락이 어떤 점에서 북아메리카의 경제적 운명들의 동시대적인 역전과 관련되는 사건인가가 질문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위기를 비극―인민들의 삶의 질과 복지뿐만 아니라 크게 봐서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해 재앙과 같은 결과들을 가져온―으로 바꾼 것은, 분명 1980년대 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몰락이었다.{{) 아프리카의 몰락의 보다 광범한 사회적 함의들에 대해서는, Mary Chinery-Hesse, "Divergence and Convergence in the New World Order", in Adebayo AAdedeji, ed., Africa Within the World: Beyond Dispossession and Dependence, London: 1993, pp. 144-7 참고할 것. }} [하지만] 전례없는 그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그 몰락은 제1세계와 제3세계 지역들의 [경제적] 경향들의 광범한 변화와 불가분하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비극은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동인들, 즉 이러한 전화(轉化)를 가져온 동인들과 특히 그 영향이 아프리카에만 집중되게 만든 동인들로부터 설명되어져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1970년대 후반 세계의 각 지역들의 운명의 변화에서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왜 그러한 변화가 제3세계 지역들 중 어떤 곳에서는 긍정적으로 기능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부정적으로 기능하였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에 대한 영향은 왜 다른 여타 제3세계 지역들보다 가혹했는가? PSSP (다음호에 계속.) 3. 아프리카 위기의 세계체계적 맥락 4. 아프리카 위기의 지역간 비교 5. '악운(惡運)'과 '선치(善治)'
10월 22일 민주노총 사회보장 워크샵 '기업연금제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 금융 세계화와 연금제도 변화의 쟁점 (발표: 연기금대응팀) - 유럽의 기업연금 제도 조사결과 보고: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사례 (발표: 사무금융연맹, 화섬연맹) - 미국의 기업연금 제도 조사결과 보고 (민주노총) - 정부 추진 기업연금제의 문제점 (민주노총)
10.18 경제특구법안의 문제점 토론회 자료집입니다.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특구법안의문제점 토론회 - 일시: 2002. 10. 18 오후 2시 - 장소: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 순서> (사회: 장대현 전국민중연대 사무처장) 기조발제: 경제특구법안의 문제점 (박하순,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 집행위원) 분야별발제: 경제특구법안과 노동권 침해(조진원, 비정규공대위 상황실장) 경제특구법안과 교육시장 개방(한만중, WTO 교육개방저지 공투본 집행위원장) 경제특구법안과 의료시장 개방( 박주영, 민중의료연합) 경제늑구법안과 환경파괴(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기업연금제 도입의 쟁점과 대응의 방향 경제의 위기, 그리고 금융화 오늘날 세계경제는 광범위하고도 깊은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즉 사상최대의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가능성에 직면한 실정이다. 동시에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투자처라고 자임하던 남한경제도 비정상적인 성장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경제는 수출과 투자의 침체, 그리고 생산자본의 수익률 하락속에서도 저금리정책을 통한 소비거품과 부동산 거품, 금융시장의 수익률 증대를 통해 성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의 소비가 신용경제의 유지에 위험스러운 지경에 도달했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천장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에서 주식시장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600선마저 무너져내렸다. 이 때 국내외 기관투자가들과 정·재계는 호들갑스럽게 정부가 주가안정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고, 대선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이회창과 노무현은 초당적 협력을 통해 경제의 원활한 회복에 기여하겠다는 말로 금융시장에 신뢰를 보냈다. 이에 화답하듯 현정권은 마지막 국회를 앞두고 노동·자본시장 관련한 친기업적 법안들을 한바구니채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정부는 완전히 개악된 주5일제 법안, 노조 명칭도 쓰지 못하게 하고 단체행동권과 체결권도 박탈하는 [공무원조합 특별법], 노동권 말살을 포함하여 외국자본에 대한 조세권을 포기하고 교육·서비스·의료분야를 외국자본에게 개방하는 [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으며, 농산물 시장을 완전 개방하여 농민의 생존권을 압살시키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올해내에 체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금융부분에서는 국내외 보험회사의 팽창에 장애가 되던 규제들을 풀어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험업법]개정,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에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저축을 받아 간접투자를 하는 수탁회사(예:뮤추얼펀드)의 역할강화와 자산운용산업의 규제완화를 위한 [자산운용업법안], 노동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던 퇴직금제도를 대체할 [기업연금제도]가 수개월안에 국회 통과될 전망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경제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자본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법안들로서 향후 한국사회의 (나쁜 방향을 향한) 구조화에 크게 기여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시기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에 조응하며, 친기업적·반민중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정권과 부르주아의 구상 속에 사회보장체계로 불리던 의료시스템, 연금, 보험 영역의 개혁은 금융자본에게 엄청난 자본을 집중시켜주는 주가부양 장치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사회보장기금은 민영화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주식시장 의 호황에 버팀목이 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막대한 부를 집중시켜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IBRD), 미국 워싱턴과 뉴욕의 싱크탱크와 언론들이 각종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의 개혁 전망의 핵심으로 계속 지적하고 있는 연금제도의 개혁은 이들이 공을 들이는 만큼 계급적 이해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급박하게 추진중인 기업연금제도에 대한 짧은 분석 주가지수가 500선으로 무너질 즈음, 10월 11일 정부 부처는 공동으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장기 안정적인 주식수요기반 확충을 위한 기관투자자 육성을 위해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기업연금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0월까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연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하고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도출되지 않더라도 내년 2월 정부단독으로 국회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일정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는 10월 16일 경제사회소위원회를 재개하였으며, 빠른 시일내에 한국노총을 설득하여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나섰다. 여기까지가 최근 진행된 상황이다. 한편 정부와 언론에서 발표한 기업연금 도입안은 작년 12월 노동부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용역으로 준비된 [퇴직금제도 개선방안]과 거의 동일하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추진배경으로 고용보험과 역할 중복/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부담의 경감/ 국민연금재정 악화 우려/ 주식시장의 활성화(최대 20조원 유입전망)을 제시하였다. ▲ 기본방향은 현행퇴직금 제도를 존치시켜 임의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강제제도로의 점차적인 전환을 시도한다. 이유는 퇴직금 제도를 유지해온 기득권 노동자의 반발을 막기위해서 라고 지적하고있다. ▲ 전환 모형은 임의기업연금제도를 선결적으로 도입하고 나서, 신규 노동자부터 강제적 법정 기업연금을 도입하며, 국민연금과 연계를 통해 소득비례부분을 기업연금과 통합시켜나가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법정 기여율이 줄이고, 노·사가 공동으로 추가 기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도입형태는 확정급부형(DB)와 확정기여형(DC)가 공존하도록 하며, 원리금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을 포함하여 3개 이상(채권형, 주식형, 혼합형)의 투자옵션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자영자를 중심으로 개인퇴직저축 계정을 도입하고, 기업연금 계정에서 개인저축 계정으로 이전되도록 한다 ▲ 기여금과 급여수준은 투자자본 소득을 감안하여 기업주의 부담은 현행 법정퇴직금 수준(임금의 8.3%)보다 낮은 6% 정도로 낮추기로 했다. ▲ 세제 혜택은 적격 기업연금에 대해서만 부여하며, 기업이 기여할 때와 노동자가 기여할 때에는 비과세하고, 노동자가 급여를 받을 때 과세하여 기업연금제의 도입의 유인을 제공하기로 했다. 최근 언론은 위와 같은 정부의 기업연금제 도입안에 대해 전경련이나 증권계의 요구에 비해 노동자와의 타협을 고려한 (안)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의도는 일단 제도가 도입되면 모든 상황이 금융시장의 게임룰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의존이 자연스럽게(?) 축소되고, 사적연금시장이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불어넣을 것임을. 노후의 연금수령액이 자본시장의 수익률에 따라 결정되는 확정기여형이든, 미리 액수가 정해져있는 확정급여형이든 장기간에 걸쳐 지급이 지연된 임금은 축적(적립)되어 경제의 금융적 팽창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노후자금을 볼모삼아 노동시장과 노동과정, 노동자를 금융적으로 규율하여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노동자가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경쟁에 동참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할 것임을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는 한번에 '완전 적립형· 확정기여형· 강제적인 퇴직계좌'를 추진하지 않고 단계적인 도입방안을 채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외에도 강제성을 띄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와 기존 노동자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며, 도입형태를 노사자율 선택에 맡긴 이유는 기업의 인사관리 정책을 포함한 경영전략을 침해하지 않고, 금융투자로 한몫 잡아보려는 노동자와 보수적인 노동자 사이의 차이를 존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업부담률을 현행 퇴직금보다 크게 낮추겠다는 것은(8.3%->6%) 전경련의 입장을 크게 반영한 것으로서 현재의 기업연금제 도입이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기제가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연금제도 개혁 조치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연기금 개혁이 신흥시장의 육성을 위해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제시한 (공적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축 연금모델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금의 금융시장 유입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전제인 완전 적립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한의 연금개혁정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금체계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민영화, 연금의 금융자본화 최근 남한의 연금개혁은 기업연금제 도입, 개인연금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국민연금의 투자자유화 조치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퇴직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사회보장적 차원보다는 금융시장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며, 공적연금제도의 역할 축소와 사적 연금제도(기업연금, 개인연금)의 활성화로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의 경우 1999년 전국민을 가입대상으로 확대하면서부터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하여 기금운용의 방향을 금융시장 투자자금으로서 효율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후 연기금 주식투자 비율과 해외투자비율은 계속 확대되었으며, 상품에 대한 규제도 지속적으로 완화시켜 벤쳐캐피탈, 파생상품과 같은 위험성 자산으로 투자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개인연금의 경우 1994년부터 시행되어 2001년 2월부터 주식투자 등 선택이 자유로운 개인연금상품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정부의 입·출입 세제혜택 등에 힘입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기업연금은 정착과정에서부터 매년 1조∼5조원씩 주식시장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연금의 금융화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연기금 체계에서 사적 연금의 비중이 확대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 '사외적립'되어 있지 않은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전환시켜 2층체계의 출발점으로 삼고, 개인연금을 의무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편 이러한 추세는 세계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금제도 개혁안이 제기한 방향과 크게 맞닿아있다. 이들 국제기구는 공적연금제도가 급속한 노령화와 과도한 연금급여, 그리고 수익률 저하에 따른 재정 불안정등으로 인하여 변화되어야 하는데, 적립재정방식이든 부가방식이든 기존의 공적 연금체계가 노후 소득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가정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인구노령화와 재정 적자로 고생하고 있고, 개발도상국 역시 인구노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이 제도가 필연적으로 파산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사회보장에 있어서 국가역할을 축소하고 연금제도에 있어 시장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적립형 기업연금체계, 특히 확정기여형 연금체계를 도입하고 개인 퇴직계좌 도입 등을 통해 개인연금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이들은 마치 '객관적'인 차원에서 공적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구의 노령화와 같은 인구학적 문제를 푸는데 있어 공적시스템보다 주식시장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실 이들은 극심한 변동성과 작전을 동원한 부패커넥션을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별로 없는 금융시장이 바위처럼 견고한 것으로 묘사된 반면, 오랜 기간 기능중단도 없이 노령자에게 연금을 지급해 온 정부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방식에 초점을 찍어보자. 이들이 주장하는대로 '적립방식'의 사연금제도로 바꾸는 것이 과연 공적연금 재정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부르주아들이 말하는 적립재정방식을 전제로 하는 공적연금 민영화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부담감소가 아니라 노령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해소, 노후소득보장의 개별화를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노인비율이 늘어난다면 그 사회의 산출 중 노인인구를 위해 쓰이는 것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부과방식'이냐 '적립방식'이냐 하는 연금재정 방식의 변화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과방식에서 적립방식으로의 연금재정방식의 변화로 달라지는 것은 필요자원의 양이 아니라 단지 자원조달의 경로이다. 노후보장 비용이 연금제도를 통해 곧바로 노인들에게 주어지느냐, 아니면 자본시장에서의 장단기적인 투자과정을 거친 후에 주어지느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자들이 연금재정방식의 '적립'식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면 이는 재정문제를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금기금 형성ㆍ투자가 야기하는 이해관계에 의해 추동된 것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연금민영화를 통해 누가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것이며,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외 투자기관 및 보험회사, 은행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이득을 볼 것인지,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얼마나 커질 것이며, 국내외 투자가들은 과연 어느 정도 규모로 이익을 보았는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연금개혁의 실질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보험개발원과 증권연구원에서 제출한 경영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예상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연금제도 개혁,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에 맞선 대응방향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 사적연금의 확대는 한편으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방책으로 작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부문의 축소, 자본 영역의 확충을 낳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책입안자들이 선전하듯 사적 연금의 확대는 기금의 안정성과 거의 관련이 없고, 실제 비용과 위험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의 책임, 소유, 그리고 선택의 원리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따라서 연금제도의 원래 취지인 소득재분배 문제,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노후보장 달성이란 문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연금제도 민영화-사적 연금의 확대를 막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연기금의 투자를 위한 적립을 반대해야 한다. 적립형 사적 연금제도의 도입 및 전환을 통한 재정부담의 축소, 자본시장의 발달, '더 빠른 경제성장', 그리고 주식 투자 수익을 통한 '노후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연금 개혁의 목표는 실제 객관성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며, 적립재정방식은 연기금의 금융자본화를 위한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 혹자들은 재정을 적립해서 사회적 투자를 할 수도 있지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화·세계화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저축으로 형성된 거대한 금융자본의 집합을 어디에 사용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금융자본의 집합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형성되어 있는 기업연금도입 논의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의 특징상 적립재정방식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확정기여형이냐 확정급여형이냐'에 한정된 논점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기금시장의 자유화를 반대해야 한다. 연금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들, 대표적으로 공적연금의 주식투자비율 확대, 투자대상 금융상품에 대한 자유화, 해외투자 액수의 증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연금을 전문펀드에 용역하청의 형태로 위탁하는 것 등 연기금의 금융자본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조치들, 이외에도 연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등 기관투자가에게 자산운용의 자유를 부여하는 보험업법과 자산운용법등의 개정 및 제정을 반대하자.SO-LA
57차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연차총회에 부쳐 9월 29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은 워싱턴에서 세계 184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세계 경제회복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고, 57차 연차 총회를 폐막했다. 이번 IMF 총회는 장기화되고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파산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를 모아내고 결의하는 자리였다. 이에 IMF는 총회 직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WEO)를 발표하였는데, 신흥시장의 금융위기 및 유럽과 일본의 지지부진한 경제개혁, 미국의 침체를 전망하는 등 "세계경제가 매우 위태롭고, 내년엔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하여 위기의식을 확산시켰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 4월에도 국제금융안정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 미국경제의 불안정에 따른 기업 이윤의 저하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기업 이윤의 저하가 금융기관의 신용능력을 약화시켜 달러화의 가치하락으로 몰고 갈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신흥시장에서 자본을 회수하도록 하여 세계 금융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폐막과 함께 발표된 공동성명서에 따르면 △내년 4월까지 채무국 파산절차 마련, △채권국 상환조건 완화와 공동 행동 조항 마련, △경제회복을 위한 국제정책 공조 강화, △기업의 투명성 강화, △유럽노동시장 개혁, △일본 금융기관 악성부채 해결, △브라질 경제개혁 가속화, △아르헨티나-IMF 지원협상 타결촉구, △IMF의 경제감독 능력 강화 등의 내용으로 대처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대처방안은 사상최대의 미국주식시장 거품의 붕괴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을지 모를 남미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도미노 금융위기 가능성에 직면하여 제출된 것이었다.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금융체제의 개혁과 관련한 논의를 더욱 활성화시킨 것이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려는 국가들을 위한 파산절차 개혁안이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파산절차 프로그램은 올해 총회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라며 "이 조치는 국제 금융체제 개혁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성과를 치켜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새로운 파산절차 개혁안은 구제금융을 받는 회원국이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을 지고 개혁 프로그램도 해당 국가가 초안을 잡아야 하며,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들도 법적으로 채무상환 일정 및 정책프로그램에 대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봉사하는 국제금융기구와 부르주아 학자 및 각국 관료들의 인식틀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위기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파산절차의 마련으로 촉발된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의 개혁 논의의 배경 및 실상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경제 위기의 확산 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세계화다. 세계적 수준에서 무역, 투자,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경제의 향방에 세계경제가 매우 깊숙히 얽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의 세계화는 90년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과 투자의 확대가 미국경제의 불황을 세계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만들어버릴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세계 각국의 증권시장의 운동은 미국 증권시장에 종속되어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경제의 최종소비자 역할을 하고 있어서 미국에서의 소비감소는 전세계 수출감소와 성장을 저하시키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전세계 경제의 동조화가 그나마 미국에게는 모순적인 경제구조를 유지시켜주었던 반면, 신흥시장과 제3세계 국가에게는 재앙과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진행된 변동환율제의 채택, 외환거래의 자유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미국으로의 자본의 집중을 초래했다. 이러한 자본에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의 저축이 많은 나라들, 프랑스와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과 같은 유럽국가들의 자본 뿐만 아니라 가난한 개도국에서의 자본도피금(예를 들어 1500억불의 외채를 지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기록되지 않은 1300억불의 자본도피가 있다)과 소위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달러 준비금)가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미국경제는 해외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오는 자금을 통해 호황국면을 유지해왔고, 국제금융질서를 극히 취약하고 불안정하게 유지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신흥시장의 자금을 흡수하는 한편, 자본 재투자-철수라는 게임을 통해 수익률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런 질서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경제가 끊임없이 재현되는 신흥시장의 금융위기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 마커스 놀랜드는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자본인출과 신흥시장의 손실이 이미 큰폭으로 이루어진 상태이며, 이에 대한 수치를 살펴보면, 소위 신흥시장에 대한 포트폴리오 자본의 유입은 실제 작년에 바닥났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미국경제는 중남미와 아시아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경제성장에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경제의 연쇄적인 붕괴는 미국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침체는 2000년 상반기 이후 주식시장의 붕괴로부터 표현되었다. 최근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극도로 팽창되었던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경제전체가 디플레이션의 위기로 번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현시기 미국경제는 금리인하정책과 소비수요의 진작(주택시장과 내구성 소비재)을 통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회성 정책의 효과는 말그대로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과잉축적된 자본구조를 바꾸고 투자를 활성화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장 붕괴와 경제위기는 아직도 채 만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2002년 2003년까지 지속된다면 추가적인 파산 및 브라질 및 남미 위기 이상의 주변-반주변 경제의 위기, 새로운 금융공황의 출현 등으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IMF 개혁(?), 위기에 대한 제도적 관리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는 국제금융운동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국제통화기금은 미국 금융업체들이 당면하는 여러 가지 위험을 떠안아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금융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국가가 국내적인 조정을 잘 이루어내어 국제금융계로부터 차입한 채무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즉 구제금융을 통해 채권자의 이익과 국제금융체제의 안정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자본시장을 개방·자유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94-95년 멕시코 페소화의 위기, 97-98년의 동아시아의 위기, 그리고 2000년대 브라질, 터키,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금융위기는 국제통화기금의 정당성을 크게 공격하였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처방에 따르는 해당 경제가 은행파산, 기업 도산,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경기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남미는 국제통화기금이 정책에 개입한지 20년 이상이 된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가 파산하더니 브라질과 우루과이 등 남미전역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나라들이 이미 시장개방을 했고, 자본시장을 자유화했으며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IMF 모범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가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도 불구하고 급속하고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미국과 신흥시장국가, 국제경제기구의 엘리트들은 금융의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국제금융체제 구축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제 금융체제 개편과 관련하여 미국 의회는 1998년 11월에 "국제금융기관 자문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이 위원회는 2000년 3월에 소위 "멜쩌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1998년 9월에는 빌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미국 외교위원회가 받아들여 "미래국제금융체제에 관한 독립 테스크포스"를 구성하여 "번영의 확보를 위한 세계금융체제, 일명 CFR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다. 2001년 11월에는 아시아,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주요 신흥시장국의 경제·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신흥시장국 저명인사 그룹"이 "국제금융체제의 재건"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2002년 9월에 열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총회에서 제기된 새로운 채무국 파산절차 프로그램 마련과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해당국가에 권고하는 경제 및 사회정책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 설정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이들의 주요 논의 축은 첫째, 유동성이 높은 단기자본의 대량 유출입에 따른 문제이다. 둘째, 금융위기의 예방과 해결과정에서 채권자그룹의 비용 분담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채권자 그룹인 G7국가들의 신용공여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아 비용을 물리고, 채무상환을 감당할 수 없는 국가들의 파산선언 과정과 채무지불 조건 완화 협상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다. 셋째, 환율안정의 문제이다. 즉 고정환율제 혹은 완전한 자유변동환율제간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고 해당 국가의 사정에 따라 중간제도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에서 제기된 개혁조치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실행된다면 투기자본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해당 국가의 경제파산절차를 완화해주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투자자본의 이동과 부채의 흐름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금융질서의 개혁조치들은 자본이동의 합리화 과정일 뿐, 실제 세계경제의 광범위하고도 급속한 위기의 확산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리될 수 없는 민중 생존의 위기, 금융세계화를 반대해야 한다! 위와 같은 방식의 국제 금융질서의 개혁논의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에게 막대한 자금을 빌려준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격랑에 휩싸여 국제금융자본이 치명적 손실을 반복해서 입는다면 예상보다 빨리 도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입장에서도 세계금융의 체제적 안정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아니다. 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의 부담은 반주변-주변부 국가들에게 집중될 것이며, 전세계 노동자, 여성,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생존권 말살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은 불안정한 금융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데 있지 않다. 역사상 가장 기생적인 자본운동방식인 금융화·세계화 만이 유일한 대안인양 목매고 있는 저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할 뿐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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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수교와 신의주 경제특구 - 한반도의 비극은 멈출 것인가 - 박 준 도 | 편집실장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의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9월 19일 신의주 특별행정구 입법.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충분히 놀랐고, 그럴만한 일들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2000년 당시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미뤄진 북·일 수교논의가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서는 확실히 가닥을 잡은 듯하다. 양국 정상은 일본 식민지 지배 청산, 일본인 납치의혹,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각각 사과와 경제적 배상으로, 유감스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국제합의를 준수하고 유관국(북·미)의 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2년 만에 재개되는 경의선·동해선 착공은 이미 지난 8월 30일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서 합의한 것으로 경의선 연내 완공말고도 개성공단 재추진과 남북경협 4개 합의서 조속 발효에도 합의한 바 있다. 상당기간 준비한 듯한 신의주 특구 기본법은 신의주 특구가 독자적인 입법. 행정. 사법권과 토지 개발. 이용. 관리권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때 북·일 정상회담이 핵·미사일 의제를 다루었다는 사실과 북이 신의주 특구 초대 장관으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는 중국계 양빈을 내세운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만큼 북·일 수교(더 나아가 북미협상까지)에 대해, 그리고 북한 경제 재건에 대해 북이 강한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북·일 수교,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조건{{) 김석진은 북한 개혁의 초기조건을 분석하면서 북은 중국처럼 과감한 경제개혁을 선택할 만한 정치·사회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왜곡에 따른 대가를 1990년대 부분적으로 치룬 덕에 소련이나 동유럽보다는 좋은 조건이나, 왜곡된 산업구조 등 과거의 유산이 잔존해 있고, 최근 경제 성장 실적이 없다는 것을 꼽아 중국, 베트남보다는 불리하다는 것이다. (김석진, '북한 경제개혁, 성공할 것인가', [LG 주간경제 8.21]) }}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로 대외 무역이 완전히 막히고, 1995 ~ 96년 자연재해 때문에 농업생산이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리면서 북의 공식경제는 거의 기능을 멈추었다. 인민들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직장을 떠나 부업 생산에 뛰어들었고, 이로 인해 공식경제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누구를 탓할 문제도 아니고, 공식경제의 정상화는 북한에게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이를 위해 북은 2002년 7월 일련의 경제개혁조치를 단행하고, 시장요소를 도입해서 비공식경제를 억제하고 공식 경제를 정상화하려 했다. 이에 더해 농업,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등에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했다. 또한 경제 개혁 조치에 따른 각종 위험(초인플레이션 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교역대상을 확보해야 하고, 지속적인 자본유입(혹은 자본축적)을 유도해야 했다. 이때 북·일 수교에 뒤따르는 거대한 경제 지원금과 지원 조치는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북·일 수교에 따라 보상금 차원으로 지원될 원조규모가 50억 달러 전후에 이를 것으로 본다. 이만해도 북한 GDP(2001년 현재 157억 달러)의 32%에 이르는 데, 아무도 여기에 그치리라고 보지 않는다. 북이 일본에 진 빚이 1,000억 엔 상당인데 많은 채무들이 정리될 것이고, 그동안 개발도상국이 특히,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공적 개발원조'를 받아온 것을 감안하면 북은 수교협상과정에서 추가 경제원조마저 약속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수한 인적자원(높은 교육)에다 노동력 비교 우위 상품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게 일본시장은 다른 어느 곳보다 매우 유력한 곳이어서 일본은 그 자체로 북한의 안정적인 교역 대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북·일 수교에 따라 북·일간 무역과 투자가 활성화될 경우 북은 상당한 경제적 효과와 부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미 협상에 종속된 북·일 수교 그러나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올해가 제네바 협정 최종기한임에도 불구하고 관계정상화는커녕, 경수로 건설마저 고의로 지연시켜놓고는, 적반하장이라고 핵 비확산 만을 외치며 2단계 핵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의 경제난을 기회 삼아, 자신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에너지 지원 문제를 경제협력이라는 명분으로 남한에게 떠넘겼다. 게다가 의제에도 없던 미사일도 문제삼더니, 북·일 수교의 교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재래식 군사력마저 새로운 협상의제로 제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미 협상은 난항에 난항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으로 자본 유입은 아예 곤란해질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줄면서 북은 군사적 경쟁을 벌여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만큼 경제 개발의 여력은 더더욱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북의 경제 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그 자체로 비극일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긴장으로 결국 한반도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 넣고 말 것이다. 지난 서해교전사태로 북한 특사 파견이 취소된 이후 북미 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협상을 미룰 수는 없었다. 제네바 협상 준수 기한은 다가오고 있고, 북은 서해교전에 유감을 표명한 뒤, 북·러 회담, 이산가족 상봉, 아시안게임 참가 등등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대미 협상창구를 열려고 했다. 이 지점이 바로, 미국의 입장에서 유력한 중개국으로 자임할 수 있는, 미국의 우산 아래 안주하려는, 그리고 중국에 비해 홀대받는 것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남문희의 '북·일 정상회담 보이지 않는 손이 성사시켰다'(시사저널, 9.12)는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북·일 국장급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대미 담당인 강석주 부상이 나온 점과 미국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방일한 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들어, 미국의 전언과 조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 신의주 경제 특구와 북한 경제의 재건 북은 신의주 경제 특구 입법안으로 입법·사법권과 행정권의 독립을 보장해 적어도 50년 간 이곳에서 자본 활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중국의 개방도 화교자본 유치에서 시작했고, 오래 전부터 화교자본이 신의주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특구 초대 장관이 양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진·선봉 때와 달리) 북은 화교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였을 것이다. 만일 올해 안에 경의선 철도가 복원되고, 북·일 수교가 상당히 진전된다면 신의주 경제 특구는 안정궤도에 오를 수도 있다. 지난 8월 남북경협추진위에서 북은 개성공단 재개에도 합의한 바 있어, 북이 이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면 남한자본 유치에도 적지 않은 성과를 얻을 것이다. 북의 본격적인 자본유치에 화교자본과 남한자본이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개혁이 농가생산청부제(가정경영책임제)로 실질적인 소유구조를 개편하고, 국유기업(집체기업) 개혁을 단행해 개별 경영권을 보장하였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지난 8월 북한이 단행한 개혁조치는 (거꾸로 보면) 계획경제의 회복이 아니냐는 평가가 오고갈 만큼 중국의 개혁조치와 거리가 있다.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의주 특구가 북한 지역과 담장을 쌓을 것이며, 재외국인은 비자없이 출입이 가능한데 북한 거주민에 대해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자본투자는 확실히 보증하겠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거꾸로 보면) 북한 경제 전체를 변하게 할 위험에 대해서는 조심하겠다는 말일 수도 있다. 급격한 개혁이 야기할 지도 모를 인플레 압력을 감당하기에는 북의 경제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또한 급작스런 변화는 그동안 계획경제에 익숙한 인민들의 생활양식마저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살얼음을 걷고 있는 북·미 협상과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은 신의주 경제 특구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끔 한다. 북·일수교의 전망과 북한 사회주의 개혁의 미래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여론이 강경해 북·일 수교 협상이 상당한 난항을 걷게 될 지도 모르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납치 문제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교섭에 들어간다'고 공언한 바 있고, '북·일 수교 없이, 경제협력 없다'고 호언하며 여론 진화에 나서고 있는데, 이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국제정치 여건상 북·일 수교 방식은 선수교 후협상 방식이 될 것이고 이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같은 말을 놓고 강경한 뉘앙스로 바꿔 주장한 것이다. 전과 달리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납북문제가 과거처럼 북·일 수교의 중대한 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일 정삼회담 당시 일본 외무성은 북한에게서 납치 사망자의 명단을 건네 받을 때, 일본에 납치 사망자의 사망 일시를 숨겼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피납자 가족이 충격을 받을까봐 그랬다는 변명을 하며 여론진화에 나섰다. 여하튼, 납치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과 해명 문제는 북-일 회담에 대한 ASEM 정상회담의지지 이후가 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애초부터 고이즈미 정부는 납치문제와 일본여론 악화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고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피납 가족은 생사확인과 진상조사를 위한 방북을 요구하고 있고, 납치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는 일본 가을 임시 국회, 그리고 추가될 일본의 요구에 북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미국에 북·미 협상 재개를 요청했고, 부시행정부는 다음날 마지못해 협상에 응한다는 듯이 대북 특사파견을 약속했다. 북·일 수교는 북·미 협상의 진척에 따라 진행될 것이고, 지금과 같다면 북·일 수교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북·일 정상회담은 (북에게나 미국에게나) 교차승인의 마무리 즉, 북·미 협상을 향한 중대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에서 신의주 경제 특구 또한 북한 사회주의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상은 매우 큰 변화다. 즉, 이제까지 미국은 북의 안정성(stability)만을 잣대로 대북 접촉을 시도해왔다면, 지금은 개혁(reform)으로 이끌려는 몇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의미고, 북도 이에 조심스럽게 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관측하기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들이 있다. 미국의 불분명한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북도 아직 역시 사회주의 개혁의 미래를 확정한 것이 아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태도만으로 많은 이익을 얻으며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북도 실험적인 조치 차원을 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런 시도는 성공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멈출 수도 있다.(그래서, 한반도의 비극은 계속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성공하든 못하든 이런 과정이 반복될 것이고, 이럴수록 북의 세계 자본주의 편입은 더더욱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그 자체로 예측 불가능한 상태고, 중심국의 경제 위기를 주변국으로 떠넘기거나 주변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기생하고 있다. 북이 이처럼 불안정한 자본주의 세계로 편입되어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세계경제에 노출된다면, 중심국의 위기는 손쉽게 북으로 전가될 것이다. 미처 안정되기도 전에 북한 경제는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1970년대 동유럽 국가들은 외자도입에 의한 경제성장 정책을 꾀하게 되는데,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자본주의가 장기적 경제 불황에 빠지자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외채위기를 겪게 된다. 1980년대 외채상환은 가중되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내핍생활이 강요되었다. 이것이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연쇄붕괴의 원인이 된다. 한편, 당시 북한도 유사한 길을 걸었는데, 오일쇼크 이후 외채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서방(특히, 일본)과 경제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 }} 그렇다면 도대체 한반도의 비극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