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대 개혁 법안’ 관련 투쟁을 비판하며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서 보인 지배분파들 사이의 다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낡은 유물’이라는 노무현의 지적 이후 17대 국회는 이른바 ‘4대 개혁 법안’과 ‘한국형 뉴딜 3대 법안’을 둘러싸고 아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2005년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볼모로 삼아 서로 윽박지르다가, 여야 4인 대표회담을 열어 타협의 여지를 모색하였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는 타협의 정치’라고 전제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여야는 4인 대표회담에서 합의와 번복을 반복하였다. 이 진통을 겪고서야 17대 국회는 몇 가지 급하다는 법안을 처리하며 2004년 정기국회를 마감하였다.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먼저 통과시켜 놓고는 2005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공무원노조특별법, 신문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을 처리한 것이다. 파병연장동의안은 전쟁범죄행위를 연장하겠다는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안은 초국적 자본의 국내 활동을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며, 공무원노조특별법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법안이다. 언론관계법 중 하나인 신문법은 조■중■동을 견제하겠다는 애초 취지(?)조차 무색케 하는 것이다. 기금관리법은 투기자본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며, 민간투자법은 사회기반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민간투자의 길을 열어 공공재에 대한 사유화를 확실히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급한 민생법안이라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그렇게 다투다가도 민중을 수탈할 때만큼은 확실히 단결하는 17대 국회의 진면목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여의도 국회 앞 농성텐트들도 철수했다. 수많은 요구사안을 내걸었던 10여개의 농성텐트들은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이 많은 천막농성은 오늘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떤 것이 요구사안인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방식의 투쟁을 무작정 지지할 수만은 없는데, 이런 방식의 운동이 민중운동에 고착화되고 지배적이게 되었을 때, 그것은 민중운동을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 정기국회 개원을 전후하여 시작된 이 농성은 그간 민중운동이 지키려고 했던 최소한의 원칙(자주성, 연대성, 전투성, 변혁성)들을 상당부분 훼손했다. 우리는 국회 앞 천막 농성 투쟁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전선의 성격은 무엇이고, 우리가 운동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왜 운동하는 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다. 소위 ‘4대 개혁 법안’의 허구성 노무현 정권에게 (정치적) ‘개혁’은 언제나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이 설사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다 한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자유주의 분파들의 세력규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이 곧 자유주의 분파의 안정적인 세력규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세력의 여러 조치들 즉, 신자유주의 개혁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행정부 모두 공유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이것만 가지고는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프로그램들로 대중들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무현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처지에 빠지게 된다(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는 지배세력 내 여러 분파들 사이의 정체성 논쟁이 쉽게 불붙기 마련이다. 자신의 세력규합에는 이것말고는 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나라당 박근혜가 당대표로서 재신임된 이후 정치권에서 불거진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 사이의 ‘국가정체성’ - ‘유신청산’ 논쟁을 상기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의제라도 ‘개혁’(반대로 ‘색깔시비’)을 이유로 쟁점을 삼을 수 있는데, 세력규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수도이전, 호주제, 성매매, 국가정체성, 과거사진상규명, 심지어는 국가보안법, 북핵 문제까지 모두 다 의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그리고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로)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게 아니면서, 대중을 동원하고 소모해버린다는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되었건 반대편의 보수집단 시위가 되었건 간에 말이다. 이 때 내걸린 ‘개혁’과 ‘민주주의’는 빈곤-실업 대중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에는 민중에 대한 어떤 양보 조치도 전제되어 있지 않으며, 그 배경에는 어떤 정치이념도 없다. 이런 짓을 지배세력들이, 특히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이 반복해 왔던 것이다.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역시 그러한데, 정치적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그 쟁점으로 지지세력을 결속하고 심지어 운동진영도 흔들려는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 중순 경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법안’을 일괄처리 하겠다고 밝힌 후 여야 사이에서 본격적인 정국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는 그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4대 개혁 법안'은 의회주의적인 정치테크닉으로 보았을 때, 사안 사안을 분리해도 의회차원에서 처리하기에는 녹녹치 않은 것들이다. 한나라당이 당의 존폐를 걸고 막겠다고 공언한 것인데 열린우리당이 이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실제로 이를 처리하는 것보다는 정국 주도권 장악에 더 관심이 있음을 반증할 뿐이다. 열린우리당에게 ‘4대 개혁입법안’은 꽃놀이패였던 것이다.(그리고, 노무현이 이야기하는 민생법안이란 구조조정을 뜻하고, 일자리 창출은 노동유연화 확대에 불과했다는 점도 환기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같은 허구적인 정치쟁점이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를 은폐해 버렸기 때문이다. ‘4대 개혁법안'이 논란의 정점을 차지하고 2004년 하반기 내내 정치쟁점이 되면서, 노동법개악, 쌀 수입 개방 확대, 미군기지 평택 이전, 파병연장동의안 등이 별다른 저항없이 진척되거나, 확정되어버린 것이다. 민중운동의 NGO화 상당히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탄핵정국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상당부분 유실시켰다. 시민운동 진영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노무현의 복권을 자축했고, 여러 개혁 사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였다고 자부했다. 그들은 파병반대운동을 하면서도 자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에 대해 끝끝내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무지함과 반동성을 부각하는 것에만 골몰했다. 그들은 또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했고, 운동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연대사업에서 민주노동당을 상대화하려고 했으며, 수도이전 공방에서는 서울시와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며 노무현을 두둔했다. 노무현과 정치운명을 함께 할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쳐 왔던 것이다. 민중운동진영은 2003년 열사투쟁 당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민중운동진영은 이들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정치적 단결력을 고무시키려 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민중운동이 걸어왔던 길의 귀결일 것이다. 지배세력은 그동안 범세계적 변화에 조응하여 일관된 비전(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진해왔다. 지배세력 - 특히 행정 관료들과 이른바 ‘개혁’세력은 10년이 넘도록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를 선점해왔다. 그들은 농민의 권리를 말하기도 전에 농업시장을 개방해왔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며, 여성의 권리를 거론하기도 전에 삶의 기반을 해체하며 빈곤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구조조정을 부문별 산업별로 진행시켜왔다. 구조조정 대상을 국가권력과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다른 부문들로부터 고립시킨 뒤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부문을 구조조정 할 때 앞서 진행된 부문의 구조조정 사례를 들먹였다. 차례로 구조조정을 진척시킨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 구조조정의 대가가 소비자(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 여성이 소비자(시민)가 누려야 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듯이 꾸미면서 손쉽게 구조조정 했다. 이 과정은 다른 부문으로 이어졌고, 구조조정이 늦어진 부문일수록 특권계층(?)으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민중운동은 부문별, 산업별로, 사업장별로 저항해왔다. 연대를 호소했지만 해당 사안의 문제로만 멈추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자신의 생존권 투쟁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민중운동은 소비자(시민)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시민운동을 끌어들이려 했다. 소비자(시민)를 설득할 때, 민중운동 인사들은 해당 사안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이해와 같다는 것을 호소하기 바빴고, 산업의 이해가 곧 자신의 이해인 것처럼 꾸미기 바빴다. 이렇게 해서 ‘사안별’ (범국민) 대책위가 오늘날 민중운동의 연대 사업 모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중운동의 광범위한 참여와 단결보다는 시민운동의 참여여부가 사안별 대책위 구성의 중요 잣대가 되었다. 사안 해결이 중요해질수록 민중운동의 활동은 국가기구와 협상을 하거나 압력 행사에 집중했다. NGO의 활동방식이 민중운동에게까지 일반화된 것이다. NGO들이 홀에서 서류를 들고 로비를 했다면, 민중운동은 행정부처나 청와대, 국회 앞에서 수많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며 압력을 행사했다. 청와대 앞에서 관련 사안이 계류 중이면 청와대로 달려갔고, 국회에서 진행 중이면 국회로 달려갔다. NGO들도 이렇게 동일하게 좇아 다녔었다. 정치 1번지는 대중과 만나는 시위 현장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 앞이었다. NGO와 민중운동의 시위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만 갔다. 압력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민중운동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 시위와 달라진 것이었다. 이제 이 시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시민들이나 대중이 아니었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국회에 있는 의원들,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기자들이었다. 시민들을 향한 정치폭로도 국가를 상대로 하는 압박 수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민중운동의 정치활동은 국가기구를 매개로 해서만 진행되었고, 그럴수록 민중운동은 지배세력과 대중 사이에 유리된 공간(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자신이 대신 메워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NGO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리고 2004년 국회 앞 농성투쟁 4■15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원내다수가 되었지만 ‘아파트 분양가 공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는 ‘비리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대중의 실망은 늘어만 갔고, 평당원마저 대거 탈당하기까지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매우 높였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국감에서도 수세에 몰렸다. 탄핵무효운동의 자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한나라당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정치위기의 징후였다. ‘개혁’ 사안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시민운동세력은 물론이거니와 상당수 민중운동 세력도 함께 목소리를 외쳤다. ‘민주개혁전선 강화’, ‘수구냉전보수세력 해체’. 열린우리당은 11월 국회에서 '4대 개혁법안'을 일괄 처리할 것을 공언했다. 대규모 군중동원에 실패한 사안별 대책위들은 모두 11월 국회를 겨냥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사안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였다. 장애인이동권, 사립학교법개정, 국가보안법폐지, 언론관계법개정, 과거사진상규명, 노동법개악저지, 의료시장개방반대, 파병연장동의안반대,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 쌀수입개방저지, 공무원노동3권보장 ■■ 이제는 역으로 이 수많은 농성텐트들 사이에 자신의 요구가 없는 것이 조바심 날 지경이었다. 경쟁적으로 들어온 만큼 또 자신의 사안이 묻히길 원치 않았던 만큼 이들 사이의 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약했다. 여기서 연대라곤 약간의 생활물품을 나누어 갖고, 시간을 쪼개어 서로의 집회시간을 조절하자는 예의수준에 불과했다. 공동의 적(최소한 17대 국회를 향해서라도)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모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제 국회 앞 농성 텐트는 자신의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거점으로서 특정 부문의 개별적인 요구를 해결하고 압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농성과 시위도 달라졌다. 그리고 연대의 의미도 분명히 달라졌다. 2004년 늦가을과 초겨울 국회 앞 농성투쟁의 중심은 국보법 폐지 투쟁이었다. 국보법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4대 개혁법안' 중 핵심이었다. 그런 만큼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다른 어느것 보다도 수구보수 대 민주개혁 전선을 분명히 했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를 주도했던 시민운동 과 민중운동 세력은 6월 항쟁과 탄핵무효 운동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잇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기 침체로 대중들의 삶은 유린되고, 빈곤-실업-막대한 부채로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마저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쟁취’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쳐놓은 ‘민주주의’의 울타리를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국보법 폐지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이 보이지 않아서 열린우리당이 주저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한편에서는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민연대는 11월 정기국회 내내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몇 사람의 무기한 단식에서 지도부 단식으로 그리고 천여명이 참여하는 집단 단식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농성은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여의도’에서는 확실히 ‘부각’되고 있었고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투쟁에 우위를 지켰다. 연내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흘러나오면서부터 상황은 극단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의 이중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연내’에 폐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를 한사코 반대하는 수구보수세력 한나라당만을 보았을 뿐, ‘비정규직보호입법안’, ‘용산기지이전비준동의안’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날 처리될 운명이었던 ‘파병연장동의안’, ‘공무원노조특별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 등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와 이를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의 작태는 보려하지 않았다. 공동의 의제를 내걸어 공동투쟁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에 가서 국민연대는 이 모든 사안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국보법을 어떻게든 ’연내‘에 폐지하자고 ‘직권상정’할 것을 주장했다.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가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그것도 열린우리당이 이 모든 조치가 달린 상황에서 민중운동은 들러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직권상정’을 외치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던 것이다. 민중운동이 지키려했던 원칙이 실종되는 순간이었다. 열린우리당과 협력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를 보고도 열린우리당과 그 일당들에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자기 사안만이라도 해결하자고 다른 사안들은 등한시하고 공동투쟁의 정신마저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국보법폐지투쟁은 민중운동의 자주성과 연대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민족주의 진영의 실용적 주장에 따르면) 2004년 가장 유력한 정치투쟁이라는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이 가장 최악의 조합주의적 투쟁의 면모(자기중심적 실리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을 국회에서 국회 앞 광장으로 끌어낸 성과가 있었다며 2005년을 기약하자고 자평했지만, 사실은 민중운동이 (거리에서, 대중들 앞에서) 국회 앞으로, 국회의원 앞으로 끌려간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친 노무현 개혁세력에 의해서 말이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을 높이면서 반미반전■반신자유주의 전선의 복원을! 사안별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회 앞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가 문제다. 작년 우리가 국회 앞에서 벌인 투쟁들이 운동의 원칙들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운동이 계속 이런 식- 그러니까 ‘오로지’ 국회만 바라보며 ‘오로지’ 자기사안만을 해결하겠다고 애쓰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그리고 이런 운동이 확산되고 장려된다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중단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시민운동세력들과 똑같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것이다. 대중의 불만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적절히 관리하고 조절하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노력보다 ‘오로지’ 사안 해결에만 골몰하여 대중운동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치적 열망을 소비시킨다면, 그것은 사안을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지체시킬 뿐이다. 정치적 주체 없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부분 봉합이거나 결국에는 정치적 주체의 부재로 얼마 안 있어 역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10여 년의 역사가 이를 온전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 집권 2년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개혁’을 내세우며 국민을 동원하고 국민의 정치적 열망을 소모시키고는 도리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조치를 더욱 강화하면서 민중을 우롱해온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민중운동은 자신의 독자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과 시민운동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치적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 (한국)자본주의의 위기가 지배세력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지배세력들이 민중을 어떻게 착취하려 드는지,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분명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신자유주의 정책개혁,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과 실업의 구조화, 배제의 원리와 공동체의 위기 - 민족국가/학교/가족의 위기, 그리고 폭력의 증대 - 군사적 긴장의 고조). 그리하여 오늘 지배세력과 민중의 핵심적인 대립지점이 무엇이며(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의식화와 조직화)을 높여나갈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며 대안을 스스로 수립하는 것(의식화), 전체 민중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조직하며 수평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운동의 질서를 찾아내고 개인의 자발성이 전체를 한 걸음 나가게 하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조직화). 바로 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려고 우리는 운동하는 것이 아닌가? 2004년 국회 앞 투쟁을 반성하면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국가보안법, 법전에서 이름만 지우면 되나. 지난 10월 17일 열린우리당은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형법조항을 수정, 개조하여 '내란목적단체' 규정을 두기로 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방침을 당론으로 결정, 이번 회기 내 처리 의지를 밝혔다.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거나 '찬양, 고무', '불고지죄' 등의 명목으로 56년 간이나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둘러온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형법보완안을 살펴보면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을 법전에서 삭제하는 것 이상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고자 폭동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 또는 "예비, 음모한 자"를 처단하는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사상, 결사 자유를 제한했던 기존 국보법의 역할을 고스란히 형법으로 이전하는 것이며, 오히려 형법의 확대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을 외국으로 규정해 적국 규정의 해소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적대적인 외국은 적국이라 규정한다는 형법조항을 그대로 남겨놓아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런 식으로 법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역사를 청산할 수 없다. 안보와 권력유지의 명분으로 국가권력이 사회구성원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여지를 제거하는 것, 온몸으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의 수호자임을 자청해왔던 국가권력이 개인에 행한 인권탄압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와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었으며 식민지배의 정당화, 독재수호와 반공발전주의 관철의 도구였을 뿐이었다는 사회적 선언을 의미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 역사적 선언에 대한 책임을 갖고 전 사회적 동의지반을 얻기 위한 노력과 조건 없는 전면폐지를 말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국가보안법 여당의 국보폐지 발언이 있은 후 보수수구 세력은 위기감을 드러내며 국보법 사수의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보수수구 세력의 위기감과 그에 따른 결집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시내에 인공기가 휘날리고 적기가가 울려 퍼질 것이라는 망상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점령과 식민 지배를 일삼아온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반공발전주의를 내세워 한국사회를 휘둘러온 기존의 지배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에 따른 균열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보위협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고 군사독재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반공발전주의의 이름으로 처단해왔던 대한민국에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이란 "자유민주주의의 최후의 안전장치"이며, 자신들의 기득권의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단지 이들만의 최후 안전장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면폐지에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며 국가보안법의 안보 기여도를 긍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이렇듯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수 십 년간 인권과 정치사상의 자유를 유린당해온 민중들의 끊임없는 증언과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사상, 이념을 검열,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의 확장이 있었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이 개정 내지는 폐지 입장의 근거로 작동하는 반면, 전면폐지가 선뜻 동의되기 힘든 조건은 여전히 안보위협의 최대 적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바로 이 북한을 최대 위협 존재로 간주하는 안보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국보폐지는 안보 불안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고 반공발전주의의 그늘 아래 민중들을 통제해왔던 지난 56년간 역사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것인가. 낡은 시대의 유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기 위해서는 낡은 시대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임에도, 열린우리당에게 시대의 변화는 세대와 정권 교체만을 의미하는 듯하다. 제국주의의 식민 정책은 이념, 사상 투쟁의 가능성을 인위적인 국토 분단의 맹목적 전쟁으로 비화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국토 참절의 주범은 바로 미제국주의 세력이었다. 일제 시대 치안유지법을 본 따 만든 국가보안법은 그 태생이 바로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사회 반공발전주의의 성공적 수행을 뒷받침하는 체제의 수호신이었던 셈이다. 달라진 시대라 함은 6.15 공동선언 이래 경협 등 남북 교류가 점증하고 있고, 그러한 활동에 국가보안법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일 뿐이지, 미·일 제국주의에 대한 근본적 입장의 변화 없이 한미일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안보위협의 제일 요소로 북한을 꼽는 정부의 관점이 변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북 군사력 증강에 경제 제재 등의 수단을 통해 위협을 가하고 한편으로는 북한에 자본주의 질서로의 편입을 강요하고 포섭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미일동맹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북한의 안보 위협이란 오히려 제국주의 동맹의 외압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를 의미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세력과 한국사회의 반공발전주의 성장 과정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는 지금의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는 한계적이다. 이러한 한계적인 국가보안법의 변신은 사상, 결사의 자유를 사회불안요소 제거, 안보위협의 제거라는 차원에서 무지막지하게 억눌러온 지난날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언제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날카로운 검이 되어 민중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조건 없는 전면폐지! 한편, 수도이전 위헌판결과 국무총리 파면요구 등을 계기로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해 개혁과제를 결사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의 방해공작이라고 결론짓거나, 이 방해세력들의 위협에 정부여당이 무릎 꿇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은 과거 진보/보수 관념에 기대어 현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후 형법보완이라는 입장이 버젓이 발표되고 있으며, 이라크 파병연장동의안 처리, 비정규노동법 개악안 입법추진이 이런 개혁과제의 나열 속에 은근슬쩍 끼워 넘겨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좌/우 색깔론을 펼치며 4대 개혁입법에 대해서도 위헌소송으로 대응하겠다는 한나라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점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지금의 정치 파행은 세대교체를 위한 진통이나, 개혁에 대한 보수 세력의 발목잡기가 아니라, 한국사회 지배세력의 정쟁이자 이전투구에 불과하다. 무엇이 노동자민중을 위한 법인지, 무엇이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정책인지에 대한 하등의 쟁점이 묵살되어버린 상황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개혁을 발목 잡는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의 민주과제인 개혁에 동참하라거나, 열린우리당은 후퇴없는 개혁을 천명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여야 정당이 묵살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쟁점을 수면위로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전면폐지는 바로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56년간이나 노동자민중에 대해 부당한 탄압을 일삼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눌러온 반민중적 역사의 청산이라는 점에서 지금 민중들의 의제이다. 국가보안법의 무덤 앞에서 겉으로는 묵념을 하며 속으로는 부활을 부르는 이중성과 안보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등을 정점으로 하는 지금의 국보법 개폐 논쟁은 국보법 폐지 투쟁의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고 있다. 이 왜곡된 논쟁구도에 여전히 민중들의 정치사상은 검열당하고 있으며 '진정한 안보불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국가안보란 무엇인가'라는 전사회적인 성찰을 가로막는 조건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중의 정치적 자유의 말살이라는 반민중성에 대한 평가이자,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반공발전주의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정이다. 국가보안법은 지금 즉시 조건 없이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PSSP
신문법안 관련 논쟁 현황 9월 21일 언론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김영호 이명순)가 신문법을 포함한 3대 언론개혁법안을 국회에 입법청원함에 따라 신문법 제정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됐다. 한나라당은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 4일 오전 당내 문광위 소속 의원 9명의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언개련 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한나라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 간에도 의견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등 당내 합의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 예로 한나라당 한 의원은 신문발전기금 조성이 정권의 '신문 길들이기'라며 반대했고, 다른 한 의원은 신문발전기금을 조성해 유통구조 개선사업에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10월 15일 열린우리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체 신문법안을 발표했다. 열우당은 정간법의 이름을 '신문등의기능보장및독자의권익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신문법)'로 명칭을 바꾼 개정안을 냈고, 이와는 별도로 '언론중재및피해구제에관한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발표 때 완성된 법안은 신문법 하나에 불과했고, 나머지 두 개에 대해서는 법안 자체를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방송법 개정안의 경우 조문작업 자체가 미진하다고 밝혔고, 이날 발표한 신문법안에 대해서도 열우당 내 문광위 의원 중 일부가 "한국 신문의 역사적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의원들의 일방적 주장을 당론으로 발표했다"며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열우당 내 혼선 또한 만만치않게 심각했다. 민주노동당은 별도로 신문사주의 지분 제한을 한층 강화한 형식으로 3개 법안 모두를 독자 발의했다. 여기에 한나라당까지 제·개정안을 낼 경우 11월 국회 문광위 상임위 안에서 언론개혁입법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현재 신문법안은 앞의 표에서 표현한 대로 소유지분 분산 시장점유율 상한선 강화 편집권 독립 법제화 신문유통공사 설립 신문발전기금 조성 신문방송 겸영(교차소유) 허용 여부 등을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 언론개혁진영까지 포함해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는 핵심인 지분 분산과 유통공사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쟁점1-사주 소유지분 분산 열우당이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론이라고 밝힌 신문법안은 언개련 입법청원안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란이 예상됐던 신문사주의 소유지분 분산과 신문유통공사 설립은 법안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신문법안은 한국의 신문 산업 황폐화의 근본원인은 그대로 둔 채 결과만 치유하겠다는 발상이다. 한국 신문시장을 불법이 판치는 감당할 수 없는 독과점시장으로 전락시키고, 기사의 신뢰도마저 끝없이 추락시킨 장본인은 족벌신문의 사주들이다. 시장 파괴의 근본원인인 족벌사주의 지분 분산에 대해서는 입 닫고, 대신 족벌사주 전횡의 결과물인 편집권 유린과 독과점만 고치겠다는 발상은 단기 처방일 뿐이다. 이런 단기 처방은 반짝 효과는 내겠지만, 다시 족벌사주의 전횡을 정점으로 하는 시장 혼탁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며칠 전(10월14일)에 한 일간신문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새 사장을 뽑았다고 사고(社告)를 냈는데, 해당 신문의 주주총회는 고모(5%), 큰 삼촌(40%), 작은 삼촌(30%), 막내 삼촌(5%), 장조카(20%)까지 5명이 둘러앉아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끝났다. 단 한 주라도 들고 있는 주주를 다 합쳐야 이들 일가 5명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어떤 주식회사가 주총 열면 100% 가족회의가 되는가. 열우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국 신문시장의 왜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1인 사주의 전횡으로부터 비롯됐다. 열우당이 그토록 없애려고 하는 신문시장의 독과점의 근원은 다름 아닌 1인 사주의 전횡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주의 전횡을 용인한 채 그 결과물인 독과점과 불법 판촉, 편집권 유린을 막으려 한다면 대문을 열어 두고 쪽문을 지키겠다는 짓이다. 원인은 그대로 둔 채 결과만 다잡는 이상한 망치질로는 언론개혁은커녕 족벌신문들의 입지만 키워줄 뿐이다. 어느 신문사에서 지분 100%를 가진 채 국가 정책마저 제멋대로 농락하는 1인 사주를 그대로 둔 채 편집자율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74년 동아투위 이후 족벌신문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유린당한 채 거리로 쫓겨난 수 백 명의 언론인을 해고했던 장본인은 국가권력도, 광고주도, 독과점도 아닌 1인 사주였다. 족벌사주에게 쫓겨난 언론인이 70년대의 과거사가 아니다. 91년에도 그랬고, 2002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편집 자율권을 법으로 명시한다고 한들 사주와 충돌한 언론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쫓겨날 것이다. 따라서 편집 자율권 보장 조항은 사주의 지분 분산과 반드시 연동돼야만 소정의 효과라도 거둘 수 있다. 쟁점2-신문 유통공사 제외 열우당이 정부 차원의 신문 유통공사 설립 대신 유통전문법인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유통전문법인은 한두 푼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현재 언론개혁의 차원에서 추진 중인 공동배달회사 대신 과점신문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유통전문법인을 설립해서 지원해달라면 결국 1년 안에 최소 2∼3개의 유통법인이 만들어져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현재 과점신문 3사는 신문 산업에서 수직적 통합을 거의 완결한 상태다. 다만 교차소유 금지조항 등에 묶여 수평적 통합만 봉쇄된 상태다. 한 예로 중앙일보는 신문의 기획, 취재, 편집, 제작(인쇄), 판매, 독자관리, 시장개척 등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각종 자회사를 건설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인쇄는 A-프린팅, I-프린팅, J-프린팅에서 전담하고, 판매 및 유통은 중앙일보미디어유통이란 회사에서 전담한다. 유통망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판매지국의 수익을 제고시키는 신문전단광고대행회사인 '제일PR'을 두고 있으며, 자회사인 중앙일보정보사업단을 통해 유통과정의 오류를 보정하고, 중앙일보에듀라인을 통해 새 시장개척한다. 결국 정부는 과점신문들이 앞다퉈 신청하는 지원요청에 대해 이중·중복{{) 자율적으로 신문업자들이 조합을 구성해 운영해왔던 프랑스식 신문 공동배급제가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사실을 열우당 문광위 의원들이 알 턱이 없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직후 'NMPP(Nouvelles Messageries de la presse parisienne)', 새로운 빠리 신문 공동 배급회사라는 신문유통회사가 안정적인 공급을 해왔지만 최근 일부 거대신문들이 독자배급망을 기획하는 바람에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93년까지 NMPP의 지방 배급을 하청받았던 MLP(Messageries Lyonnaises de Presse)마저 1994년부터 직접 경영을 시작, 95년에는 파리에까지 진출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어 프랑스 정부로서는 중복 지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지원을 해야 할 것이고, 복수의 유통법인 간의 치열한 시장 쟁탈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결과 2∼3년 안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족벌신문들이 출자한 유통법인이 신문시장을 독식해 신문시장의 독과점은 완결적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불법 경품이나 무가지 살포를 도덕적 비난과 함께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유통의 독점은 중소신문들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어 놓을 것이다. 열우당 문광위 의원들은 언개련이 왜 정부 차원의 신문유통공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신문유통공사를 정부 돈으로 지원해달라는 것은 적어도 '신문의 유통'과 같은 고도의 공익적 사업은 공적인 정부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유통공사에 대해 '(정부)비판신문 죽이기'라는 소리도 있다. 이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논리다. 언론개혁진영은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정부차원의 유통공사 설립을 요구할 것이다. 현재의 정권이 좋아서 신문유통공사를 설립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열우당은 온전한 신문법 제정에 나서라 한겨레, 조선, 서울신문을 통해 신문사주의 소유 지분 분산을 뺀 열우당의 언론개혁 신문법안이 흘러나온 지난 12일 아침 같은 열우당 이부영 당의장은 관훈 클럽의 초청를 받고 프레스센터에서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분명히 이번 언론개혁법안에 그 내용을 담겠다고 밝혔다. 열우당 내 중앙당과 원내 의원들 간 손발이 안맞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국보법 역시 우왕좌왕하다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아, 많은 국민들에게 당정 분리의 허구성을 또 한번 드러내고 말았었다. 열우당 문광위 의원 12명의 의원들 사이에 충분한 토론도 없었다. 17일 정책위 의원총회에서 확정한다는 밝혀놓고서도 12∼15일 잇따라 4대 개혁법안의 주요 내용을 법 조문의 형태로 발표한 정황도 여전히 열우당이 민주적 정당일 수 없음을 반증한다. 17일 정책위 의총에서 반발하는 의원들의 입을 미리 막기 위해 "'높은 곳'의 뜻은 이거다"는 식으로 미리 발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4대 개혁법안 중 나머지 3개는 몰라도 언론개혁 법안만큼은 한국의 언론시장을 전혀 모르는 의원들이 오로지 정치적 타협의 대상으로만 이 법을 고려했음을 15일 발표를 주도했던 의원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불필요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뺐다"는 대목이 이를 반증한다. 그런다고 불필요한 마찰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족벌신문과 한나라당은 교차소유 허용을 주장하며 지금 있는 정간법마저 개악하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사주 소유지분을 뺐다고 한나라당이 송덕비라도 세워 줄 것으로 착각하는 순진한 열우당을 믿었던 국민들은 통탄할 뿐이다. PSSP
지난 1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초국적 자본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제한을 없애겠다는 구상으로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끊임없이 침해하고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만을 더욱 가속화할 경제자유구역법안에 대해 우리는 비판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법안에는 노동기본권 박탈, 기업 조세 감면 조치 이외에도 친환경 규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병원 설립을 허가하는 등의 사업이 포함되어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명목 하에 국내 외국인 병원을 설립하고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본격적인 의료시장 개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규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당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공공의료 30%, 의료보장성 80% 확대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를 언급한 것은 그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선거용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었나.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는커녕, 초국적 의료 자본의 이득을 극대화하고 공공의료의 붕괴를 가져올 제도를 지금 노무현 정부는 추진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허용되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은 고가의 의료비를 지불할 수 있는 내국인에게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영리법인 허용과 함께 추진되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국민이면 모두 건강보험에 당연 가입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던 시스템을 무색케 한다. 능력껏 민간보험에 들고 그에 따라 의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돈 없는 사람들만 건강보험에 들게 될 것이고, 이 건강보험마저 점점 왜소해져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다. 더욱이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금융업의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의 일환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의 대상으로 팔아치우고 경제 ‘부흥(?)'의 일환으로 사고하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한다. 이렇듯 영리병원의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 공공성 파괴를 가져올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노무현 정부는 어떠한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공청회도 단 한차례 밖에 하지 않았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 및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 확충 계획 마련 후 추진 필요”라는 반대의견을 낼 정도로 행정부 내에서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자유구역 개정안은 마련, 통과되었다. 정부는 연 1조원이라는 해외원정 의료비 방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국인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어차피 외국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는 외국자본에게 돌아가고 만다. 이는 의료 상품화를 전면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려는 술수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의료 시장 개방 및 공공성 파괴 기도를 저지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자유구역법 폐기와 의료개방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선도적인 투쟁을 지지하며 의료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즉각 폐지, 철회하라 국민의 건강을 포기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국회는 우리 의료제도의 붕괴를 초래할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거부하라.
<성명>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 재추진 즉각 중단하라. 또다시 왜 테러방지법인가? 열린우리당은 국무총리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 대테러 활동 및 테러 행위에 의한 피해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테러방지법)을 추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김선일 씨 죽음 이후 테러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이 미비함을 언급하며 제정 의지를 밝힌 바 있으나, 역시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난이 일자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또 지금인가. 2001년 911 테러 직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법안 발의하였다. 인권사회단체는 물론 정부치권 내에서도 존재하는 국정원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판에 스스로 꼬리를 내린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재추진 시도되었다가 김선일씨의 죽음이후, 그리고 지금 다시 제정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추진 의지는 미 대선으로 세계인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핑계로 다시금 부활하였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세계화 질서에서 보다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3위 규모의 이라크파병을 지속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에 동참하는 행위는 배제와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된 전세계 인민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동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민중들의 의사를 배반하고 강행한 파병이 불러오는 위험을 테러행위와 테러동조 탓으로 돌리려는 발상이다. 미국이 세계적 금융질서 재편에 따르는 위험을 전세계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자기검열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부여당의 발상에서 테러방지법은 끊임없이 태동하려는 것이다. 민중통제를 정당화하는 정부여당의 기만성을 규탄한다. 정부여당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가 아니라 총리실 산하로 두고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두기로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라며 쟁점 하나는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테러위원회에 국정원장이 각계부처 장관과 함께 참석할 뿐만 아니라, 대테러관련 업무에 있어 국정원이 핵심적 기능을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미 지난달 대북/테러 관련 정보수집체제를 국정원 중심의 정보공동체 추진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테러방지법의 문제는, 국내 외국인, 외국인과 접촉한 사람에 대한 금융거래, 통신 내용 확인 등을 해당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등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민중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제한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반한외국인으로 규정되어 구속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법안으로 명시될 경우 111신고전화 한통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당한 수사와 탄압을 자행하는 인권유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56년간 민중의 사상과 이념을 검열해 숱한 인권유린을 자행해왔던 국가보안법보다도 전면적인 민중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의 추수에 따른 위험을 전인민에 대한 통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여당의 반민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재 국회를 파행으로 이끄는 한나라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 국회를 정상화하고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이 조금 더 개혁적일 수 있도록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방지법과 비정규노동법개악안, 파병연장동의안, 각종 FTA 비준 등 민중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 각종 반민중적 법안들의 수임자가 바로 정부여당인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과연 오늘날의 민중의 적이란 개혁을 발목잡는 한나라당 뿐인가? 돌출적인 개혁과제의 나열로 쟁점을 호도하고 민중들의 정치변화의 열망을 팔아먹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점점 노골화하는 노무현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요구된다. 이러한 투쟁만이 테러예방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통제와 억압, 또다른 악법의 굴레를 내팽개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 즉각 중단하라! 이라크파병군을 즉각 철수하라! 2004. 11. 8. 사회진보연대
-신자유주의 정치의 한계와 위기 지배권력 간의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다. 탄핵 사태와 총선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상생의 정치'가 거론되면서 정국이 비교적 안정될 것처럼 예상했던 주류적 견해는 완전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과거사 청산에 관한 여야간의 공방부터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갈등, 국가 정체성 논란, 성장우선론 vs 분배론 등으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양당의 대결 구도는 한반도 남녘이 한국전쟁이후 가장 치열한 이념논쟁에 접어든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지배권력 간의 이념대결은 행정수도 '위헌' 판결로 인하여 입법부와 사법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까지 비화되더니 이제는 총리와 한나라당의 일개 말싸움으로 국회 일정 파행까지 치달아 정국은 가히 파국이 되었다. 진정 이념의 투사들이요 신념의 강자들이다. 정책/이념/색깔 논쟁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처럼 노무현 정권 등장이후 -입법부의 장악에도 불구하고-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러한 논란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가? 애초에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승인하는데 있어서는 양 당 체제로 나눠져 있는 지배세력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지배권력 간의 헤게모니 다툼은 오늘날의 구조적 위기를 지연시키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신자유주의를 누가 유능하고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남한 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종속된 상황에서 90년대 이전과 같은 (민족)국민국가 단위의 발전전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정책도 대중의 삶,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이제 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낼 수 없는 지배계급에게 대중의 견고하고 안정적인 지지는 요원한 일이 되었으며 다만 누가 일시적으로 대중을 좀 더 동원하는데 성공하는가라는 문제로 지배 정치가 전화한다. 2002년 겨울 이 게임에서 승리자였던 노무현은 집권 이후에도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중단 없는 개혁과 그를 지탱할 실질적인(관리 가능한) '동원력'을 필요로 했다. 집권 초 노무현이 꾸준히 추진했던 정치개혁이나 '재신임', '탄핵'과 같은 도박도 모두 '동원과 지속'에 무게 중심이 실렸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박은 일시적인 효과를 창출하였고 입법부의 교체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도박은 도박일 뿐이며 환각제는 환각제일 뿐이다.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도 창출할 수 없는 노무현의 카드들은 유통기한이 대단히 짧을 수밖에 없으며 바로 여기서 보수주의의 역공이 가능한 공간이 창출된다. 그러나 보수주의 세력이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역시 신자유주의적 경제전망을 공유하는 터에 뾰쪽한 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정치는 점점 답이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경제 위기의 진실을 두고 이전과 같은 형태로 통치할 수 없는 지배세력이 상호간의 난타전을 통해서 위기를 호도하는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질서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하여서 서로간의 아무런 차이도 없는 이들 간의 외형적으로는 대단히 격렬한 정쟁이 치루어 지는 것이다. 즉 종래의 정치는 간데없는 정치의 위기인 것이다. 이제 모든 정책은 동원을 위해서 제시되거나 역설적으로 모든 정책이 개혁으로 포장되기에 이르는 쇼쇼쇼다. 쇼에는 사회 경제적인 영역들의 이슈는 당연히도 철저히 배제되며 외형적으로 안정적인 양당체제간의 허구적이지만 선명한 듯한 차이가 드러나는 의제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이 의제들에는 명쾌한 우선순위조차 없이 정쟁의 도구로서 얼마나 실용성을 띄는가, 얼마나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가로 서열이 정해진다. 소위 4대 개혁 입법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기에 개혁의 성격은 당연히 공허할 뿐이다. 개혁의 내용은 비록 그간 민중의 요구를 불충분하게나마 대변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정치적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활용된다. 그렇기에 설사 달성된다 하더라도 반공발전주의 국가 노선의 잔재로 인해 지체된 정치-행정-사법구조의 혁신 정도를 목적하는 것일 따름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생결단을 할 태세지만 각각의 이슈들은 놀랍게도 1-2달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의제로 교체된다. 이는 이념논쟁이 실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덧붙여 이 정치 쇼에서 필수적으로 출현하는 또 하나의 집단은 NGO와 미디어집단이다. 결국 이 정치 쇼의 유일한 임무는 대중의 분노를 왜곡하여 폭발시키거나 질식시킴으로서 대중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정책개혁/의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무정형적이며 이는 정치 자체를 불확실성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행정수도 이전 역시 태생적으로 동원을 위한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애시 당초 지역균형-분권발전이라는 것은 현재의 구조에서 진정 레토릭일 뿐이다. 우선 오늘날의 지역 경제 파탄의 원인을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남한의 지역간 격차는 60년대 군사독재개발 시대 이후 경부선을 축으로 추진된 수출지향의 산업구조(수도권과 영남)와 저곡가 정책이(호남) 맞물려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역 차는 IMF이후 수도권/비수도권 구도로 재구조화되고 있다. 금융, 법률을 중심으로 한 각종 서비스와 통신, 교통이 확보된 초-민족화된 '글로벌 시티'만을 요구하고 있는 금융적 세계질서는 민족국가 내부의 분할을 가져온다. 글로벌 시티가 될 수 없는 모든 (비-수도권) 지역은 특정한 기능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형적 경제구조를 강요당하게 된다. 정권은 지역 분권화, 자치 등을 외치지만 실상으로는 통치를 포기한 것에 진배 없으며 지자체들에게 남은 선택은 지역경제의 사활을 걸고 자 지역에 투자개발을 유치하는 것이다. 투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은 더욱 참혹한데 각종 특구 열풍이나 기업도시 계획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법적, 정책적 규제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미명아래 철폐된다. 게다가 선택된 쇼케이스 지역도 정작 개발 이익이 지역민에게 돌아가기보다는 '서울 사람이 내려와서 서울 사람이 일하고 살며 이익을 챙겨갈 뿐'이기에 지역균형발전과 하등 무관하다. 지역 경제에 돌아가는 것은 강화된 노동조건 하에서 소규모의 고용효과와 식음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부수적인 수익, 그리고 지자체의 일정한 세수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몇 몇 지역이 선택받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쇼 케이스에 불과하며 지역 불균형은 되레 심화될 뿐이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空約은 금융세계화에 종속된 경제체제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구호를 통해 대중의 박탈감, 소외감을 자극하여 충청권에서의 지지로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지 지역균형발전은 애초에 관심사항도 국가의 명운을 건 사업계획도 아니었다. 헌재 판결의 의미: 국가기구의 응집력 부재와 정치의 사법화 금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국가기구간의 응집력 부재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안이며, 지배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근대 이후 형식적인 삼권의 분립과는 별개로 삼부의 역할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재조정되어왔다. (물론 애초에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상이 아니며 오히려 왕과 귀족 인민의 갈등 속에서 귀족을 보호하려던 사고의 산물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조정의 핵심은 대부분 내각제와 대통령제 등으로 드러난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 질서가 일반화된 이후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우위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제 금융세계화에 편입한 개별 국가들의 입법부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일정한 제약 하에서만 그 권리가 인정된다. 입법부는 행정부와 각종 국제기구에 의하여 정해진 입법방향을 선전하고 의결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조작 봉합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뿐이다. 올 봄 정치개혁 논의에서 불거져 나왔던 정책정당, 원내정당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아이콘이다. 한데 이번 행정수도 위헌 판결의 경우 의회 내부의 갈등과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에 사법부의 적극주의가 더해져 충돌을 야기했다. 행정부의 입법부에 대한 정책적 논리의 우위가 확보되고 행정부가 스스로 대중을 동원하는 구조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법적 논리가 불안정한 행정부의 논리와 충돌한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적 응집력이 부재한 상황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그러나 단순히 국가기구 내부의 응집력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지배분파간의 갈등/대립에서 누구도 헤게모니를 얻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현상이 상시화 되고 그 종국적인 해결을 법을 통해서 얻는 경향이다. 일상적인 정치세력간의 갈등이나 의견대립 일반이 헌법재판소를 통해서야만 해결되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력 일반이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실패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안정적이었다면 탄핵과 행정수도 문제가 헌법재판소까지 갈 이유는 하등 없었다. 이러한 법치주의의 소환을 후진적인 한국사회의 정상화로 파악해서는 결코 안 된다. 대중의 정치적 대표의 원리로 운영되는 의회의 지위가 하락하고 기술적 관리적 지식으로 무장한 행정부의 우위가 확실한 상황에서 물리적 권위적 힘을 갖는 사법부로 권력의 중심이 최종적으로 이동된다는 것은 민중의 정치적 해결능력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남한의 사법부는 철저한 관료재판으로서 아직까지도 인민의 최소한의 참여(배심제)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철저히 '임명'된 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억압적 국가기구에 불과하거늘 그 위상 강화는 결국 민중에 의한 해법이 봉쇄되고 사법에 의한 위로부터의 심판이 강화되는 것은 폭력적 장면이다. 정치의 위기에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력은 구조적 위기를 구원할 수 없고 동시에 기존의 형태로서 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의 불안정한 반민중적 개혁은 지속될 것이며 외적으로 격렬한 상태의 의회 내부의 갈등은 반복될 것이다. 실상 양당의 태생이 근본적으로 모두 보수-반공주의이자 (한민당, 공화당) 친미파일 뿐인데다가 그 차이는 미디어와 NGO 및 지식인 집단을 활용한 스타일의 정치에 의존할 정도로 빈약하다. 의회 내부의 갈등은 결과적으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피지배계급의 의제를 압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정치의 위기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상시적인 위기에 대응하여 (안정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것은 포기한 채) 우선 이를 지배세력간의 무능/교체를 통하여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정책의제들의 끊임없는 생산 동원함으로서 대중의 열망을 사안별로 쟁점들을 분할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간의 갈등을 기존의 보수/자유-진보의 낡은 관념으로 인식한다면 대중운동이 사태를 적합하게 해결하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공간은 봉쇄된다. 그렇다면 운동진영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의 위기, 정치의 실종현상이 노무현 정권 이후 반복되어 출현해왔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운동 진영의 대응이 한계적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정세에서 기존 '지배정치의 위기'가 드러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노동자 민중운동의 활성화, 급진화라는 '기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한다면 민중운동 진영은 국가기구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신의 의제를 설정하기보다는 선점(합의)당해오며 지배 정치의 위기에 편입되어왔다. 4대 입법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에서 보여지듯이 운동진영이 자신의 과제를 위로부터 부여받거나 혹은 정당을 통한 입법, 직접적인 교섭 등의 형태로 해결하는 경향은 결과적으로 민중운동 역시 현재의 정치의 위기를 폭로하고 드러내기보다는 공명하는 역할, 관리된 변화에 포섭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로는 대중에게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가진 세력으로 각인될 수 없다. 오히려 민중의 심판. 정치 역시 곤란에 빠진 셈인데 이는 기존의 국가내부의 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이 지점을 넘어서지 못했기에 그동안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외적으로는 격렬한 형태로 벌어지고 시기시기 구조적 위기가 폭로된 '열린 정세'를 형성하고도 종국에는 국가기구에 의하여 분할-포섭되어 핵심적인 쟁점들이 부차화 되거나 소멸되는 혹은 기존의 정치에 위탁하여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며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노무현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만약 민중운동 진영이 응집력을 상실한 채 계속 국가기구들과의 갈등/교섭을 통해서 민중의 요구가 가지는 고유의 '보편성'을 포기하고 일부의 '특수성'에 그치는 투쟁에 머무르거나 불확실하게 나열(당)한 요구들만 표출한다면 이는 지배정치의 위기를 심화하는데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배정치 그 자체와 정치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지 지배정치의 틈새를 메워 줄 수 있는 또 다른 (진보)정치가 아니며, 대중운동을 통한 봉기이지 사법/입법을 통한 문제해결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의 운동은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서 지배세력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형태로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관건은 누구도 대답을 갖지 못한 구조적 위기를 그 자체로 발본적으로 드러내어 대중 스스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형성하는 봉기적 관점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노무현 정권은 정녕 노동자민중을 모두 버리겠단 말인가? 1. 2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파견제와 기간제 근로에 관한 입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미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민, 사회단체에서 개악안이라고 반대해온 법안이 원안에 대한 아무런 수정도 없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말았다. 정부는 이 법안에 대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안이라 하고 있으나 이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만큼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2.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파견제, 기간제 근로 관련법안은 명백한 개악안이다. 파견업종을 전업종으로 확대하고 파견 기간도 3년으로 늘렸다. 기간제 근로의 경우 애매한 제한규정으로 인해 대부분 업종에서 무제한, 무기한으로 기간제 근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법안대로라면 이 나라는 조만간에 비정규직의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조치라고 내놓은 것도 이름만 보호조치일뿐 전혀 실효성이 없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내일의 희망이 없는 비정규직의 양산은 곧 전 사회의 빈곤화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정부는 1400만 노동자를 모조리 빈민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것인가? 또한 이런 법안을 내놓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주장할 자격이나 있는가? 3.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11월 중 국회 상임위를 통해 12월 초에 이번 개악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다. 만약 국회에서도 이번 개악안에 대해 별 고민없이 통과시키려 한다면 국회는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미 제 민중진영은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번 법안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해왔다. 또한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광범위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후 노동법에 대한 개악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이땅의 노동자민중은 거대한 파도로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노동법 개악을 중단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