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4.05.14

권위주의와 전쟁으로 분열된 세계를 반전평화운동으로 잇기 위해

<두 개의 전쟁과 트럼프의 귀환?: 평화를 향한 좁은 길을 찾기 위하여> 지상중계

이혜인(회원)
 
5월 11일 사회진보연대는 공개강좌 <두 개의 전쟁과 트럼프의 귀환? - 평화를 향한 좁은 길을 찾기 위하여>를 개최했다. (*공개강좌 영상 보러가기) 강연자인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진행 중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과 한반도 핵전쟁이 일어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위치와 방향에 대한 토론이 절실하다고 여겼다”고 강연 취지를 소개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공존의 가능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김진영 국장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전황을 소개하며 강연을 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200일을 넘긴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인 라파까지 진격하려 한다. 미국 내부에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을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활발하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까지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을 감행한다면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는 ‘손톱으로라도 싸우겠다’며 강력한 공격 의지를 보인다. 김진영 국장은 다만 지난 4월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제한된 공격을 주고받은 데 그쳐 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고비를 넘겼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 행정부 당시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이스라엘 옹호, 팔레스타인 억압 일변도였다. 종교적 성지인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매우 첨예하여 1947년 유엔 결의안도 예루살렘을 국제공동관리구역으로 두자고 하였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규정하며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사건이 상징적이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미국,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랍 국가의 공동의 적이라는 논리로 여러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다. 이 흐름 속에서 2020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과 이스라엘이 평화 협정을 맺은 것이 아브라함 협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받아, 아랍 주요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 협상이 진행 중이었으나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이 상황을 뒤흔들었다.
 
 
김진영 국장은 “아랍 세계의 평화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팔레스타인이라는 큰 문제를 간과하고 지나갔던 것이 트럼프와 바이든의 공통적인 실책이며, 그것이 지금의 큰 위기를 낳았다”라고 평가했다.
 
전쟁 이후 가자지구를 누가 통치할지에 대한 문제도 생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전후 가자지구도 통치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한다고 나선다면 주민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두 국가 해법이냐, 한 국가 해법이냐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각각이 모두 실현되기 어려운 맥락이 있다. 1947년 유엔 결의안대로 이스라엘과 별개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두 국가 해법’은 유대인이 서안지구에 지속해서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정부가 개입을 멈추지 않는 문제,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 등을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한 국가 내에서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한 국가 해법’ 또한 갈등의 골이 깊은 현재에는 바로 실현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김진영 국장은 ‘평화 공존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급선무라고 밝혔다. 한반도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통일방안 논의보다 핵전쟁의 위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가 당면 과제이듯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서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격, 특히 주민의 절반 이상이 피난해 있는 라파에 대한 공격과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조차도 가로막는 등의 반인도적 행위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대중적 여론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내에서 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김진영 국장은 “역사를 보면 아랍인과 유대인이 2천 년 동안 적대적으로 살아왔던 것이 아니라 종교와 언어가 달라도 공존해 왔다. 예컨대, 유대인이면서도 아랍 지역에 대대로 살며 아랍어를 쓰기 때문에 스스로를 아랍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의 갈등은 20세기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며 생겨난 것이므로 공존의 가능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민주화와 맞물린 평화의 전망
 
김진영 국장은 푸틴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제2전선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며 미국의 지원과 전 세계의 관심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선 교착과 장기화로 가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15% 이상을 점령하고 강력한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는 인구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훨씬 많은 데다가 자국 군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인도적 위기를 피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무자비한 동원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는 2024년 예산 중 국방·보안비의 비중이 39%에 달할 정도로 전쟁에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잘루즈니가 ‘이대로 가면 시간은 러시아의 편이다.’라고 말한 배경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자원을 동원하는 것보다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 동원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국가 간의 연대도 간과할 수 없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하고,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으로 구입하거나 러시아에 큰 규모의 대출을 제공했다. 최근 영국 BBC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북한’이라고까지 언급할 정도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유엔 긴급총회 표결에서 반대를 찍은 5개 국가(러시아 포함) 중 하나이고, 북한의 화성-11형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공습에 사용된 정황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이고 북한은 그 유엔 안보리가 제재하는 국가다. 따라서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러시아의 역사적 위신이 추락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유엔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이제는 설령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 결의안이나 추가 제재가 나올지조차 불확실하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 각지에 “유엔 제재는 무력하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어 국제 제재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한다.
 
만약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밀린다면 어떤 식으로 확전이 될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이후에 전선을 서쪽으로 확장하려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다양한 정황이 있다. 그러나 폴란드를 비롯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우크라이나 서쪽의 나라들은 나토 회원국이므로 만약 이들을 침공한다면 미국의 직접 개입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김진영 국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푸틴은 우선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양보하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전 영토를 점령하기 어렵고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푸틴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국내 정치는 희망이 없을까? 김진영 국장은 러시아 내에서 푸틴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러시아 내에는 온전히 자유로운 선거가 이뤄지지 않지만, 재외국민 투표에서는 푸틴 지지가 본국에서보다 현저히 낮게 나왔다. 러시아 대선일인 지난 3월 17일에는 한국에서도 푸틴 반대의 의미로 정오에 일제히 주한 러시아대사관 투표소에 방문해 줄을 길게 서는 시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진영 국장은 “한국도 긴 군사독재 시절을 겪었지만 결국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처럼 러시아의 독재도 언젠가는 종식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저항하는 러시아 시민들에게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귀환이 동아시아에 미칠 영향은?
 
미국을 비롯해 많은 수의 국가에서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24년은 선거의 해라고 불린다. 김진영 국장은 올해 선거 결과에 따라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가 더욱 확산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기에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인구수 1위 국가인 인도에서 3연임이 유력한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자로서 국내의 이슬람교도를 탄압하고 있고,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평균 15% 정도를 유지하고 있기에 6월의 유럽연합 선거에서도 그러한 흐름이 약진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도 흔들리고 있다. 2021년에 바이든 당선 확정을 막으려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고, 선거를 앞둔 지금도 트럼프는 ‘만약 선거가 정직하게 치러지면 받아들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라의 권리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며 갈등을 유도하고 있다.
 
6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대선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다.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미국 제조업 노동자 밀집 지역(러스트벨트)의 표심, PC논쟁을 비롯한 문화전쟁, 미국 경제와 물가 등으로 매우 다양하여 앞날을 쉽게 점칠 수 없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국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트럼프의 정책 구상은 헤리티지 재단이 작성한 <프로젝트 2025: 보수의 약속>이라는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동맹국 부담 강화, 임신중지 처벌, 기후위기 관련 법제도 폐지, 대통령의 행정부 통제 권한 확대가 있다. 김진영 국장은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한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동아시아 평화가 위협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영 국장은 “‘미국이 중국과 북한 등의 국가들을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동아시아는 평화로울 것’이라는 일각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중국이 실제로 대만 침공을 고려하고 북한이 스스로 핵무력 강화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여기에 악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봐야 옳다”고 주장했다.
 
 
고조되는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과 한반도 핵전쟁 위기
 
중국은 왜 대만 통일을 추구하는가? 이는 중국의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넓은 땅을 바탕으로 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많은 수의 인구가 뒷받침하는 저가 노동력이 견인한 중국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의 1인당 GDP가 한국의 1/3, 미국의 1/6에 그치는 상황에서 출산율과 총인구가 감소세에 들어선 것은 치명적이다. 또한 중국은 고등학교 졸업률이 낮아 노동력의 질이 떨어지기에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의 이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진핑의 3연임과 이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발생하여 정치적 위기까지 겹쳤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시진핑의 돌파구는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국민을 결집하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대만 통일인 것이다. 문제는 현 정세상 중국공산당이 10년 후, 20년 후가 아닌 바로 지금이 통일을 추진하는 데 적기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만의 많은 사람은 중국과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2023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85.3%의 응답자가 중국과의 ‘일국양제’식 통일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홍콩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중국과 친화적인 입장의 대만 국민당 역시 중국식 일국양제 통일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대만과의 합의를 통한 평화 통일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중국이 무력통일을 시도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김진영 국장은 “중국 공산당은 트럼프 당선을 바랄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무역전쟁과 전략적 경쟁 기조는 바이든과 트럼프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단적인 차이는 중국이 대만을 공격했을 때 바이든은 ‘미군이 방어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트럼프는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러시아의 푸틴과 더불어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모두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는 상황인 것이다.
 
 
김진영 국장은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설마 전쟁이 나겠냐’는 여론이 컸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전쟁 위기를 고조하는 방향으로 객관적인 조건이 흘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2024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헌법을 개정해서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같은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3대 대남기구를 폐지하고,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는 등 김일성·김정일 시기 통일 정책을 지우는 데 돌입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분단 이후 북한의 통일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다.
 
이는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의 행보는 일관되었다. 2020년 6월에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했고, 2021년 1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전술 핵무기 개발을 지시한다. 단거리 공격에 사용되는 전술 핵무기 개발은 미국이 아닌 남한이나 일본 역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에는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서, 북이 ICBM 발사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한미군사훈련을 대규모로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모라토리엄)를 파기했다. 뒤이어 김여정 부부장을 통해 남한 인민에게 핵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북한 고위층이 최초로 인정하는 담화가 발표되었다.
 
2022년 9월에는 ‘핵은 국체’라는 김 위원장의 선언과 함께 핵무력 법제화가 발표되었다. 이 법령의 핵무기 사용 조건에는 ‘핵·비핵 공격 감행 또는 임박 판단 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남한이 직접 공격을 하지 않은 상태여도 북한의 판단에 따라 핵을 남한에 쏘겠다는 의미이다. 북한은 일관되게 평화통일의 전망 자체를 폐기하고 남한에 대한 핵무력 사용을 염두에 두는 방식으로 움직인 것이다.
 
최근 김정은은 김일성의 후광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통치와 훗날 자기 자식들의 통치가 불안정하다는 판단으로 김정은 자신을 부각하고 우상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북한 지도층은 자신들의 생존을 절대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핵무력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미국 보수세력 내에서 전통적 동맹이 아니라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탈냉전의 종말과 전후 세계질서의 위기: 평화로 가는 좁은 길은?
 
이러한 일련의 세계정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 김진영 국장은 종합적으로, 탈냉전이 끝나버렸고 전후 세계질서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았다.
 
탈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의 화해 분위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평화를 위한 합의들이 있었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이 중거리핵무력 폐기 조약에 서명하면서 상호 핵군축을 합의했고, 199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를 대가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 1991년에는 미국과 소련의 공동 주최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여 회담을 하면서 1993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맺었던 오슬로 협정의 배경을 형성했다. 한반도 역시 1990년을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여 그 결과로 1991년 주한미군의 전술 핵무기 철수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끌어냈다. 이 모든 성과가 전복되고 있는 것이 2024년의 현황인 것이다.
 
김진영 국장은 “현 상황은 30년간의 역사에 대한 역전일 뿐만 아니라 크게 봤을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라는 지난 80년에 대한 역전과 붕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후 국제 질서는 일차적으로는 더는 수천만 명이 죽은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대국의 무력을 억제하는 일, 동시에 2차 대전의 말미에 등장한 핵무기라는 절멸의 수단이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을 막는 일 두 가지를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국제 질서에는 ‘모든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보장하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공동의 이익이며, 이를 침해하면 함께 제재해야 한다’는 합의와 ‘아무리 분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경을 변경하고 영토를 되찾겠다는 의도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을 현재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어기고 있는 것이다.
 
제1회 유엔 총회의 첫 번째 결의가 핵무기 폐기였을 정도로 핵 통제 또한 중요한 사안이었다. 1970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은 강대국 중심으로 이미 핵무기가 개발된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는 한계는 있으나 세계 각지에 핵보유국이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효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감행한 나라가 북한이다.
 
평화로 가는 좁은 길은 무엇일까? 김진영 국장은 “세계대전 이후 어렵게 만든 하나의 국제질서라는 합의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붙들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를 위해 민족 자결권의 존중과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진영 국장은 또한 반핵평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당시에 미국 정부는 만주나 한반도 북부에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핵무기의 불법화와 국제적 통제를 요구하는 ‘스톡홀름 호소문’ 국제 서명운동 등 반핵평화운동이 이미 핵무기가 낳는 참상을 경험한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것이다. 1970~80년대의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가 모두 유럽에 배치된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소련과 미국의 모든 핵무기에 반대하는 반핵평화운동이 있었다. 냉전을 넘어서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전 유럽의 연대를 추구한 것이다.
 
김진영 국장은 “사회진보연대 역시 우크라이나 현지 활동가와의 화상 강연, 재한 러시아 반전평화 단체와의 연대와 공동사업, 이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과의 토크콘서트 등 국제연대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이러한 실천을 놓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이 평화로 가는 좁은 길일 것”이라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 한국은 기권하지 않고 찬성했다. 두 국가 해법을 근거로 내린 결정이라고 하는데, 한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강연자는 “두 국가 해법은 1947년 유엔 결의안을 계승한 것이므로 국제사회의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맥락으로 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을 계속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으나, 이 사안에서는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와 거센 이스라엘 비판 여론을 거스르지 못하여, 반대표를 던진 미국을 따라가는 대신 찬성이라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평화로 향하는 길이 마찬가지로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그 좁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로의 좁은 길을 찾는 과정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세계 체제는 하나의 이정표로서 기능할 수 있다. 물론 강대국의 충분한 반성과 양보가 있었는지 따져 볼 여지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의 국적을 떠나 전쟁으로 인한 죽음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합의, 이를 위한 국가 간의 평등한 정치적 지위와 공동 책임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전후 세계 체제는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분기점이자 더 큰 평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 평화를 위한 의미 있는 결정이 내려졌던 데에는 항상 자국 정부를 압박하고 세계 시민과 연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한 좁은 길을 모색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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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하마스 트럼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