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어떻게 볼 것인가
언제나 ‘동북아시아 정세’라는 말 앞에는 ‘격동하는’, ‘요동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갈등이 지금 또 다시 폭발하고 있다. 갈등의 폭과 수위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는 느낌은 누구라도 받겠지만,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기관지는 그 갈등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우리를 어떤 미래로 인도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했다. 이번 기관지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분량이 여느 때보다 많다. 그래서 편집자 칼럼은 각 글의 핵심 논지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는 데 투여하겠다.
첫 번째 글, 김진현의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미래」는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갈등을 자세히 살펴본다. 미국의 무역제재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감축, 불공정한 기술이전 중단, 자본시장과 금융시스템 개방과 같은 요구를 내걸고 전개되고 있다. 과거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로서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추구했지만, 현재 트럼프 정부는 규칙을 거부하는 국가를 힘으로 응징하는 세력 기반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 결과 미래로 향하는 세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헤게모니를 두고 싸우는 충돌, G1을 향한 경주다. 또 하나는 누구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공백, 즉 G0 상태다. 마지막은 양국이 협력하는 G2의 세계다. 중국은 헤게모니 국가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대일로와 중국제조2025를 통해 국유기업을 키워 경제적, 군사적 야심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중 간 충돌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경제위기와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저자의 결론이다.
특집은 ‘반일 민족주의를 경계한다’는 제목으로 구성했다. 이 기관지를 발간하기 전, 사회진보연대는 웹에서 발행하는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서 2018년 대법원 판결과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발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에 대한 입장을 이미 밝혔다. 우리의 입장은 사회운동 내에서 여러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번 특집은 그러한 논쟁을 고려하여 입장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임필수의 「한일갈등, 배경, 전망, 쟁점, 대응방향」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표한 의도를 과장해서 해석해서는 곤란하며(예를 들어 한국의 첨단산업 죽이기라든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고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달성하려는 속셈이라는 해석도 많다), 이러한 과장은 문재인 정부의 반일 드라이브를 추인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한일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이 친일파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노선의 귀결이라는 통념도 사회운동 내에 많이 퍼져있는데, 글에서는 실제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의 조일평양선언도 남한과 유사하게 국가·국민의 청구권을 상호포기하고 경제협력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북일 수교를 진행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동아시아 각국이 전후처리 과정에 임할 때 국가 간 세력관계라는 구조적 제약과 협상 당사국의 전략적 선택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말이다. 한편 청구권협정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한국의 사회운동이 요구를 제기할 때 국가가 체결한 협정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일견 타당한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협정에는 상대방이 존재하고 따라서 부메랑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 법원도 협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조선 내 일본 민간인 자산 몰수에 대해 당사자의 고통을 고려하여 민간인의 위자료 지급 요구를 수용하고 일본 내 한국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당장 그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덧붙여,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밀고 나가면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지급된 보상금과 위로금은 청구권협정과 직접적으로 무관하며, 나아가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해 엄밀한 의미의 보상책임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도 설명한다. 이는 사실상 한국 정부가 실시한 보상정책에 면죄부를 부여하며, 이러한 결론이 반드시 유족 단체의 의견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아울러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글은 와다 하루키 등이 주도한 「한국이 적입니까」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을 소개하는데, 이는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외교적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실천적으로 번복했던 역사가 있고,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새로 법을 제정해 사실상 보상을 재실시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국 정부가 책임있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해결책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국 측에서도 입장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사회운동은 반일 민족주의적 선동을 경계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기초로 한국 측에서부터 해결책을 찾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유미의 「대법원판결의 쟁점과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 보론으로 덧붙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2007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까지」는 처음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일종의 ‘팩트 체크’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대법원 판결의 쟁점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손해배상이 포함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 개인청구권은 존재하지만 외교보호권만 포기된 것인지 여부, 외교보호권만 아니라 개인청구권이 제약을 받게 된 것인지 여부였다. 이유미의 글은 대법원 판결 당시 나왔던 다수의견, 별개의견, 소수의견을 자세히 해설하고, 판결 후에 제기된 찬반논의도 함께 소개한다. 보론은 한일청구권 협정 이후 실제로 실시된 보상정책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면서, 한국 정부가 취한 보상의 미흡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게 된 경과를 살펴본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일본 아베 정부의 편을 드는 것이라는 주장은 실상 조국 전 민정수석의 이분법, 즉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친일파’라는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면, 국내적 해결책이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모든 노력에 친일이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특집의 마지막 글인 한지원의 「한국 경제사와 한일 갈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는 대법원이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한 판결이 분명한 모순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판본의 제국주의와 달리, 전후 세계의 지배 질서는 온전히 ‘합법’이라는 외양을 띠고 있다. 간단한 예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동반된 정책협약은 자발적 합의라는 형태를 취했다. 한편 저자는 조선이 식민지배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던 역사를 우리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면, 일본에 의한 국가주권 침해가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에 앞서 봉건제에서 다른 사회구성체로 이행하지 못한 조선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규정으로 봉건제를 혁파하지 못한 내적 한계를 회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1965년 한일수교라는 선택이 남긴 후과를 분석한다. 한국은 외자도입과 수출진흥, 임금통제와 정치적 억압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진했다. 이러한 선택이 불가피했냐는 쟁점은 우리가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내걸었던 수입대체산업화는 단지 구호로만 존재했고 실행을 위한 내외적 조건을 결여했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북한-중국-소련이라는 사회주의 동맹이었겠으나, 1970년대 이후 동맹을 구성했던 각국이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상황에 빠져들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누구나 ‘65년 체제’의 청산을 주장하지만, 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하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정부가 선동하는 반일 드라이브가 대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특집 다음으로는 노동자운동의 고용, 임금 문제를 다루는 글들을 싣는다. 김동근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평가」는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이 기존 정규직의 임금수준, 임금체계 쟁취를 목표로 투쟁하는 노선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한국사회 전반의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격차를 고려할 때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4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한국사회 전체적으로는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저자는 모든 비정규직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 전환’이 실현 가능한가,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연공급이 한국의 일반적인 임금체계가 될 수 있는가 질문한다. 이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거시적 조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데, 공공부문 임금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정부재정을 매개로 정책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운동은 이러한 객관적 조건을 경시하는 편향이 있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기관별 협의라는 틀을 넘어서 초기업적 임금체계를 요구하고, 나아가 민간부문 노동자와의 연대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음으로 김태훈의 「연대임금, 혁신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는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임금총액이 불변이라는 임금기금설을 비판한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상대적 과잉인구, 즉 산업예비군의 존재, 노동자 간 경쟁이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작용을 분석함으로써 임금투쟁의 한계를 설정한다. 즉 노동자의 임금투쟁은 호황기와 불황기의 순환에 종속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시기에는 위기의 파괴적 힘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여러 판본의 ‘불평등 이론’, 예를 들어 불평등 파동이론이나 숙련편향적 기술진보 이론, 내부노동시장 이론을 소개하는데, 이러한 이론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임금격차를 다루는 여러 연구를 살펴보는데, 특히 노동조합과 임금격차의 관계라는 민감한 쟁점도 검토한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조합이 임금균등화 전략을 채택했을 때 조직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나, 조직률이 높고 노동조합 교섭구조가 중앙화되고 중앙에 의한 임금 조율 정도가 높을수록 임금불평등이 낮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한국의 기업별 교섭은 분산적이고 조율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임금불평등도 높고 조직률도 낮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가설도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불황기라는 객관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연대임금, 연대고용이라는 투쟁의제를 놓칠 수 없다는 뜻이다.
한지원의 「연대고용·연대임금 정책의 현 시기 조건과 쟁점」은 최근 만개하고 있는 각종 불평등 담론 중에서 그 해결 주체로 노동조합을 거론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한다. 유행하는 정책도 법정최저임금, 소득재분배, 기본소득, 확장재정 등 모두 정부가 그 주체로 등장한다. 왜 노동조합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홈그라운드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응원단으로 밀려났는가.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 노동조합이 불평등에 맞서는 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불평등이 나타나는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 공공과 민간, 남성과 여성 간 임금격차를 분석하고, 자영업 부문의 소득도 다루는데, 중앙 공공기관 노동자부터 자영업 하층까지 층위를 이루는 임금격차 수준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인상, 금속노조 하후상박 임금인상 정책, 민주노총의 정액임금 인상 요구 등 최근 한국에서 ‘연대임금’으로 제시된 정책을 평가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자본의 사보타주에 직면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작동했을 따름이다. 이에 반해 최근 스웨덴 노총의 ‘완전고용과 연대를 위한 임금정책’은 말 그대로 연대고용(완전고용)을 통한 연대임금 강화를 목표로 제시한다. 저자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불완전 취업자와 실업자에게 상대적으로 생산성과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하고, 이로부터 연대고용에 친화적인 임금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구조적 제약조건이 크게 작동하지만, 노동조합이 존재 의의를 잃지 않으려면 연대고용, 연대임금이라는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다음으로 싣는 글들은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조유리의 「해방 공간의 『폭풍』,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소설과 함께 보는 한국 노동자운동 역사’라는 연재 기획의 첫 번째 글이다. 이번 연재는 한국 노동운동사를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각 시대의 운동상을 더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했다. 이번에 다루는 소설집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노동현장을 다룬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앞으로 한국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작품을 해설과 함께 소개할 것이다. 이번에 번역 소개하는 수잔 왓킨스의 「어느 페미니즘인가」는 지난 호에 실린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담긴 우리의 논지를 풍부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기획했다. 이 글은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여러 페미니즘 중에서 우리는 어느 페미니즘을 추구하는가 질문하게 한다. 저자는 세계적 페미니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향들을 분별하고 그 역사적 흐름을 설명한다. 특히 제도권 정치·경제에서 두드러지는 자유주의 페미니즘(반차별 접근법과 성주류화 전략),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스트 페미니즘(교차성 이론), 법률 영역에서 공격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성별 이분법과 엄벌주의)이 분석의 대상이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마지막으로 임필수의 「노태우 정부 전반기, NL·PD 논쟁의 태동」은 사회운동사 기획인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역사와 평가’의 두 번째 글이다. 이 기획은 애초 두 차례로 끝내려고 했으나, 저자의 욕심으로 다루는 주제를 확대하고 더 자세한 설명을 담기 위해 기획은 연장하기로 했다. 세 종류의 기획에도 독자께서 관심을 주시길 요청한다.
부디 이번 기관지가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길잡이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저번 호와 마찬가지로 독자 여러분의 매서운 비판을 기대하겠다.
2019년 9월 1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