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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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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개발로 현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윤애림 | 사회진보연대 한반도 위원회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
1998년 11월 18일. 현대의 금강산 유람선 첫 금강산 관광길에 출항.

남한 최대의 재벌 ‘현대’가 연출해 낸 이 두 가지 ‘사건’은, 지금까지 통일운동진영이 노력해 온 어떤 일보다도 더욱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북한측과 접촉한 총인원이 2500명 정도이고, 북한의 1년 평균 금강산 관광객이 2천명 이하의 수준이었음에 비하여, 98년 11월 18일 첫 출항 이후 99년 2월 24일 현재까지 석 달 남짓한 기간동안 현대의 유람선을 이용한 관광객 규모가 3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현대재벌의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하도록 만든다. 김대중 정부가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남북경협 활성화 방침’을 발표한 이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규모와 속도로 진행되온 현대식 북한개발전략은, 남북한의 정치와 경제 모두에 결코 만만하지 않은 논쟁거리들을 던져 주고 있다.
여기서는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대표되는 지난 1년간의 현대의 북한개발전략을 둘러싼 논쟁지점들 중에서, “대북사업을 통해 현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대그룹의 북한개발 프로젝트
지금까지 현대가 발표한 남북경협사업은 모두 10개의 프로젝트로 되어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하여 서해안 공단조성사업, 평양에 10만kw급 화력발전소 건설, 자동차 및 자동차 라디오 조립공장 건설, 20만톤 규모의 선박 수리 조선소 건설, 광천수 개발, 통신 사업, 리비아 등 제3국 건설공사에 북한 노동자 투입, 북한 석유개발 등이 그것이다. 사실 현대그룹은 남북경협 분야에 있어서는 대우, LG 등에 비해 후발주자라 할 수 있지만, DJ정권 출범 이후 현대가 내놓은 남북경협 프로젝트는 그 규모나 내용면에 있어 남북경협 사업의 집약판이라부르기 충분한 것이다. 각각의 사업구상 중에서 몇 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강산 유람선 사업의 경우 1일 승객 정원이 1350명으로 1년 운행으로 따지면 50만 명 규모에 해당한다. 유람선 사업 외에 금강산 개발과 관련하여 현대와 북한측이 합의한 내용에는, 모든 세금·관세 및 부과금 면제, 외화직접 거래와 반출입 및 송금 보장, 유선통신 설치와 이용, 현대관련 기업설립 및 은행·보험·의료봉사와 관련한 물자와 상품 수출입에 있어서의 특혜 등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현대가 독점권을 인정받은 2005년 3월까지 금강산을 현대의 관광특구로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서해안 공단개발 사업의 내용을 살펴보자. 해주를 중심으로 서해안 지역의 땅 2천만평 정도에 조성될 공단에는 노동집약적 경공업 산업 및 남한에서의 사양산업단지를 조성,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구상이 제기되었다. 이 서해안공단에는 아파트, 학교, 병원 같은 배후도시시설도 함께 만들어져 인구 20만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공업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 현대측의 구상이다. 이 공단에는 이미 국내의 중소기업 200여 군데에서 입주신청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정유공장 진출 및 북한 서한만 지역의 유전 개발사업도 그 규모나 의의 면에서 이제까지의 남북경협에서 한단계 비약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규모 면에서 거대한 현대의 대북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갈 비용도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이미 2004년까지의 금강산 ‘독점’ 개발사업권의 대가로 북한측에 지불하기로 한 비용이 9억 4200만 달러(매년 1억 5천만 달러)이다. 여기에다 현대가 발표한 북한개발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필요하게 될 자금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현대식 북한개발사업이 남북경협에 있어서도 또다시 거대재벌의 독주로 재현되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진행된 현대식 빅딜
그런데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현대가 보여준 기동전과 물량전은 비단 북한개발 프로젝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해 온 구조조정과정에서 최대의 수혜자가 현대 재벌이라는 것은 이미 공식화된 사실이다. 현대는 이번 구조조정과 빅딜을 통해 한화에너지와 LG반도체, 기아·아시아 자동차와 4-5개의 금융기관 등을 인수하여 명실상부한 재벌 1위의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의 몸집 불리기의 이면을 살펴보면 부실규모 또한 천문학적으로 증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가 인수한 국민투신은 98년 기준으로 1조 1천억이나 손실을 보는 부실 금융기관이고 한남투신은 자본 잠식액이 7천억원에 달한다. 여기에다 마찬가지로 부실 덩어리인 강원은행과 현대종금을 합병함으로써 현대재벌은 2개의 투신사, 1개의 은행, 각각 1개의 종금사와 증권사(현대증권)를 가진 초대형 부실 금융재벌로 변모했다. 또한 현대가 인수한 기아·아시아 자동차는 주식 인수대금으로만 1조 1700억원을 납부해야 하고 이들 기업을 정상화하는데 다시 3-4조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 비용에 야심찬 북한개발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현대가 향후 5년간 벌려 놓은 사업에만 10조원이 필요하리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현재적으로도 현대의 재무구조는 5대 재벌 가운데 가장 나쁜데, 부채비율이 98년 6월말 기준으로 513%에 달한다. 이런 현대를 가리켜 외국에서는 ‘기술적 부도상태’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현대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현대재벌에게는 정말 무모할 정도로 빅 딜(big deal)이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개발로 현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난 1년간 현대재벌의 행보를 살펴보자면 ‘현대식’ 혹은 ‘정주영식’ 경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단순히 ‘왕회장의 마지막 승부수’라니 ‘노회장의 수구초심’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충분한 것인가? 현대가 내놓은 다른 경협 프로젝트는 제쳐 놓더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강산 유람선 사업만 해도 당분간은 연간 900억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인데, 이처럼 무모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단순히 한 기업인의 개인적 성향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해명해 들어가는 작업은 아직은 벅찬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난 1년간 현대재벌이 제공해 온 뉴스들을 꼼꼼히 종합해 가다 보면, 어떤 ‘잠정적 판단’에 도달할 수는 있을 것같다. 우선 첫 번째로 ‘현대와 DJ정권의 밀월관계’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처럼, 현대재벌의 몸집 불리기에 북한개발 프로젝트가 일정한 ‘알리바이’를 마련해 주고 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논란이 되었던 ‘금강산 독점 개발권’에서 드러난 것처럼 현대의 북한개발전략은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독점적’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현대재벌보다 앞서 금강산 개발을 추진해 왔던 통일그룹은 ‘김일성 주석과의 약속’이라는 강력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권 모두에게서 밀려나 버렸다. 국내에서 마찬가지 상황이 생겼더라면 최소한 ‘재벌의 독주’라는 식으로라도 여론의 비판을 받았을 텐데, 북한 진출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나 여론 모두가 ‘과열 경쟁의 방지’나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현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빅 딜 과정에서 반도체와 자동차 등 노른자위가 모두 현대에 집중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DJ정권의 햇볕정책의 행동대장으로서의 현대재벌의 활약이 일정정도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 될까?
두 번째로 북한진출 자체가 현대재벌에게 일정한 위기타개책이 되고 있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현대의 대북진출을 ‘수익성’의 잣대만으로 분석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대가 발표한 북한개발 프로젝트에서 건설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보면, 그룹 경영이 위기를 맞았을 때마다 건설붐을 통해 타개해 왔던 현대의 전력과의 연관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대의 이런 북한진출에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의 사업들도 포함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었던 ‘평양 화력발전소 건설건’을 들 수 있다. 현대의 서해안 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별도의 화력발전소 건설이 필요한데, 이것을 한전에서 건설하고 대금은 현대에서 받는다는 구상이다. 정치권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전략물자’인 전기를 경협 명목으로 북한에 제공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논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이것이 아니다. 건설비만 2000억원에 달하는 발전소 건설문제를 발표하면서 어떠한 사전협의도 없이 ‘한전의 협조’를 언급하는 현대재벌의 ‘당당함’을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 이 외에도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한 경협 활성화 조치에 의거하여(!) 최대한의 행정적·조세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나, 방북결산 기자회견에서 공공연히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현대재벌의 당당함은 또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부채비율이 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 현대재벌의 야심찬 북한진출 프로젝트의 한 축을 ‘정부의 지원(이는 다시 말하자면 국민의 비용부담을 의미한다)’이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경협에 대한 우리의 감상을 식혀 버리기에 충분치 않은 것일까?
세 번째로 현대의 행보와 관련하여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의 ‘바이 코리아 펀드(Buy Korea Fund) 열풍’으로 상징되는 경향이다. “3년 내 100조 원 펀드 달성” 또는 “온 국민을 주식부자로 만들겠다”는 현대재벌의 자신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장기적으로는 김대정 정부의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현재의 독점재벌을 지주회사를 매개로 한 금융독점재벌 구축으로 귀결시킬 뿐이라는 점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야무야 봉합되 버린 현대의 ‘주가 조작설’과 최근의 주식 투기 경향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중장기적 비판은 차라리 한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거품을 만들어 내고 이 힘을 이용해 북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후 거품이 깨졌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현대재벌이 잃을 것은 별로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는 다시 한번 요동치리라는 점도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비록 제한된 지역이지만 북녘땅을 밟고 말로만 들어오던 금강산 절경을 직접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이 얼마나 고대해 오던 민족의 숙원인가...많은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평화롭게 넘나들다 보면 남북에 가로놓인 분단의 벽도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다. 동족상잔으로 맺힌 가슴의 응어리도 조금씩 풀려 갈 것이다”(한겨레 98/11/18 사설)
‘말로만 들어오던 금강산 관광’ 이면에서 현대재벌이 얻고 있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순진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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