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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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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구조조정, 모순에 경제회복

김성구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한신대교수
IMF 구제금융협약에 따라 DJ식 구조조정이 관철된 지 이제 1년 반이 지나가고 있다. DJ 정부는 구조조정정책이 한국경제를 개혁하여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선전하였는데 최근 경기회복론의 유포와 함께 이런 전망이 힘을 얻어 가는 상황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아직 완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제회복에의 과신과 과소비의 재연을 우려하면서 우리경제는 이제 경제회복의 문턱을 넘었을 뿐이고 구조조정과 개혁의 과제는 중단되면 안 된다고 한다. 자신에 차면서도 신중함을 보일 정도이다. 언론에서는 이른바 ‘윗목, 아랫목’을 거론하면서 우리경제가 아직은 아랫목만 더워지는 상태이고 방 전체가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떠들어댄다. 요컨대 경기회복과 한국경제의 재도약은 기본추세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경기회복론이 현재 진행되는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에 현실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b>한국경제, 지금 어디에</b>
이런 주장들은 물론 현실의 경제지표를 근거로 한다. 작년 소비(-8.2%)와 투자(-21.1%) 감소 위에서 -5.8%의 경제성장률이라는 한국자본주의 역사상 기록적인 경기침체를 경험한 후 올 들어 산업생산과 내수의 증대 그리고 가동률의 회복은 어느 정도 감지되는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상향조정하였고 2001년부터는 5% 이상의 고도성장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입감소에 힘입어 98년 무역수지는 412억 달라라는 기록적인 흑자를 가져왔고 올 들어 3월까지도 70억 달라 이상의 흑자행진을 계속하였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도 작년 말 520억 달라를 넘었고 올 들어 활발해지는 외국자본 유입과 함께 이제는 과도한 달라 공급과 그에 따른 원화 강세가 문제가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대미달라 환율은 1200원 이하로 내려갔다. 살인적이었던 고금리도 이제는 외환위기 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3년 만기 회사채 이자율은 8%대에 머물러 기업의 투자조건을 회복시켜 주었고 주가지수 800까지 치솟는 주식시장의 과도한 활황도 이러한 상황의 투기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상황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경제회복의 이면에는 대규모의 정리해고에 따른 대량실업이 구조화하여 실제적인 실업자 수는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170만명, 1999. 3)와는 달리 400만명, 실업률은 2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또 취업자 중에서도 일용직, 임시직 등 불안정 취업자가 40%나 차지해 전체인구의 절반이 생계가 불안정한 계층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전망에 따르더라도 올 실업률은 7.2%, 2002년에도 4.7%를 유지해 외환위기 전인 97년 4/4분기 실업률 2.6%를 회복하는 것은 난망하다는 것이다. 즉 이제 대량실업은 우리 사회에서 구조화되는 것이다. 대량 정리해고와 함께 임금삭감도 광범위하게 진행되었고 또 100조원이 넘는 구조조정비용을 노동자와 서민대중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대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되었고 빈부격차는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기업의 이윤조건을 개선하는데는 기여했을 지 몰라도 내수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어 경기회복 과정을 왜곡시킨다. 국가의 경제개입으로 특징지워지는 오늘날의 경제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의 처리가 지체되는 모순도 경기회복을 제약하는 주요한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기회복은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극히 불균등하게 모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절반이 실업과 불안정한 생계에 허덕이는 상태에서 부유한 자산계층은 주체할 수 없는 자금을 주식시장의 투기에 쏟아 붓고 있고 그들의 불로소득이 사치소비재의 수요를 추동하고 있으며 생산의 증대도 이런 품목이나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전략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최근 중소기업으로까지 경기회복이 확산되는 조짐을 나타내는 보고가 있지만 내수의 불균등한 구조 그리고 불확실한 수출전망 등을 고려하면 이 경기회복에는 아직도 불확실성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랫목과 웃목’론은 이렇게 경기회복의 일반적인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경기회복에서의 계급간 불균등성과 국민경제의 불균형성을 은폐하는 하나의 술법이다.

<b>위기를 심화시킬 구조조정정책</b>
경기회복의 모순과 불균등성은 다름아니라 DJ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겪는 외환경제위기는 기본적으로 재벌지배체제를 축으로 하여 대외지향적 종속적 축적을 지향하던 경제가 지구화와 개방화 시대에 그 취약성이 집중적으로 표출된 것이며 본질적으로 새로운 위기는 아니다. 1975년에도 1980년에도 우리경제는 지금 못지 않게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었는데 다만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자본의 세계화가 지금처럼 급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채위기는 지금처럼 단기자본의 운동을 동반하는 격렬한 외환위기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의 현재화 속에서 구조조정정책의 과제는 이러한 취약한 경제구조를 청산하는 것, 즉 재벌지배체제를 철폐하고 튼튼한 내수기반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은 이와는 반대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까지의 발전의 길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어서 위기는 오히려 이제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정부는 한편에서 시장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선전과는 달리 정부의 강력한 개입 하에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관철해 내고 구조조정의 비용을 노동자와 국민에게 전가시키며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5대재벌 중심의 강력한 자본집중을 이루어냄으로써, 다른 한편에서는 전면적인 대외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세계경제에 더욱 깊숙하게 편입함으로써 현재 재벌의 위기, 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동자 대중의 희생 위에서 재벌과 외국자본의 이해를 보호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빅딜은 정부가 정책기조로 내세우는 재벌해체와 시장경쟁 강화의 구호를 그야말로 무색하게 만든다.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등 7개 업종 및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 등 빅딜의 내용은 시장경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집중을 강화하는 것이고 3-5개의 주력업종에 집중시켜 재벌을 해체한다는 것도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특화하겠다는 대우그룹을 제외하면 실제로 계열사를 매각, 정리하겠다는 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 빅딜 자체만으로는 부실기업과 과잉생산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빅딜이 구체적으로 성사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특별지원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고 다른 한편 해당 기업들은 이를 정리해고 등을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 할 것이다. 나아가 빅딜 기업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다른 업종을 빅딜로 끌어들이는 양상이다. 예컨대 LG는 반도체를 포기하는 대가로 데이콤이나 대한생명 인수를 추진중이고 삼성은 자동차를 포기한 대신 원래 주력업종에서 제외한 통신산업(하나로통신 등)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나아가 공기업의 민영화는 5대재벌의 사냥터가 되고 있고 특히 현대는 기아자동차와 LG반도체, 한화에너지를 인수해 몸집을 불렸음에도 한국중공업 인수전을 공공연히 언급하는데 이처럼 재벌해체는커녕 재벌지배는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이런 확장 속에서 어떻게 재무구조를 개선시킬 것인가는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5대재벌이 제출한 구조조정안을 정부가 강제로 관철시킨다면, 매각, 정리되는 기업들을 국내재벌들이 인수할 여력이 없으므로 또 정부가 강력하게 해외매각을 요구하므로 이것들은 결국 외국자본의 수중으로 떨어져 국내산업과 자본의 대외종속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런 정책은 결국 경제위기를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없게 하며 경기회복을 위에서 본 바처럼 모순적이고 불균등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회복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단기적인 순환적인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위기가 순환상의 단기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섰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이렇게 구조적인 위기극복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이제 그 답은 보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구조적인 위기 속에서도 경제의 순환적인 변동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작년 이래의 경제침체에 이어 이윽고 바닥을 치고 경기가 회복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시점이 지금 도달했느냐 아니냐라는 부차적인 쟁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경기회복이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고성장의 인도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이 아직 완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정책이 완전하게 관철된다면 한국경제는 자립성을 완전하게 상실하여 항상적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설령 새로운 고성장이 도래하더라도 그것은 남미형 종속적 성장에서 보여지는 바의 항상적 위기메카니즘과 결합한 그러한 성장일 것이다.

<table align="right"><tr><td><img src="journal/199906/1999060110.jpg"></td></tr></table><b>세계경제의 임박한 공황 </b>
한국경제의 새로운 고도성장에 대한 어떤 전망을 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과도한 대외지향적, 대외의존적 성격 때문에 과거의 고성장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고성장도 세계경제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을 통해 한국의 재벌들이 세계경제적인 구조조정 과정과 분업구조 재편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가가 한국경제 사활의 근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물론 이와 함께 노동자착취 등 독점이윤 보장을 위한 국내적 수탈체계를 여하히 성공적으로 다시 창출해 내는가도 그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지만 그것은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인 반면 세계경제의 상황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세계경제는 80년대이래 구조공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투기자본의 세계적 운동이 미증유로 추동되면서 최근의 국제외환금융위기와 동아시아/동남아시아경제의 추락에서 보는 바처럼 위기는 세계화되고 있는데도 자본주의는 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도 90년대 초이래 미국경제의 호황만이 이제 유일하게 세계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도 1991년 공황이후 새로운 순환의 마지막 국면에 돌입했고 새로운 공황은 회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000을 넘어 행진하는 다우존스 지수는 공황이 임박했다는 가장 상징적인 지표이다. 주가지수만이 아니라 호황의 모순들, 공황의 조건들이 이미 성숙되어 왔다. 예컨대 일본의 구조적 위기와 미국의 긴 호황에도 불구하고, 또 미국경제의 생산력이 아직도 일본경제에 대한 우위를 상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일경제의 대외경제지표들을 보면 현재의 미일경제와 미국경제는 상당한 정도로 균형성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상품경쟁력을 강력하게 유지하여 1998년 대미무역흑자를 포함하여 1200억 달라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반면 미국은 2330억 달라라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나타냈는데 그렇다면 미국의 달라는 일본의 엔에 비해 약세를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상대적인 고금리와 상대적인 호황, 전망에 기초해서 대규모의 자본유입을 유도함으로써 주식시장의 거품과 함께 아직도 강력한 고달라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숙한 과도한 불균형, 주식가격의 거품과 고달라는 다름아닌 새로운 공황의 조건이 된다. 공황과 함께 주식가격의 폭락, 달라가격의 폭락속에서 호황기의 불균형이 정정될 수 있도록 일거에 관계가 역전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유럽과 일본의 침체에 비교한 미국경제의 호황을 근거로 미국 신자유주의, 미국식 시장주의만이 인류의 대안이라고 설파해 온 미국과 자유주의의 전도사들도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세계경제의 어느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공황이 표출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중국을 진원지로 할 수 도 있고 아니면 러시아 또는 미국일지 모른다. 그러나 1991/93년을 새로운 공황싸이클로 하는 이번 싸이클의 파국적 종료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21세기 세계경제의 탈출구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경제적 조건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경제의 고성장을 전망하기는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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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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