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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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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돈으로 경영권을 사수하라?

권득우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전공
지난 4월 8일, 금융감독원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을 현대전자 주식의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4월 말에 이와 관련, 수사에 착수한다는 발표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5월 초부터 5대 그룹 계열 증권회사를 중심으로 부당내부거래행위를 밝혀내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통해서 재벌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자 한다.

<b>주가조작 : 재벌들의 돈놓고 돈먹기 게임</b>
먼저 금감독에 의해 고발된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두 회사의 혐의내용은 작년 5월부터 11월 말까지 1만5천원 대에서 거래되던 현대전자의 주가를 집중 매수, 무려 2만원 가량을 끌어올려 3만2천원대가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사들인 주식은 현대중공업이 805만 7,000여 주, 현대상선이 88만 5,000여 주이다. 작년 5월부터 9월까지 현대전자의 주가그래프를 보면 이 회사가 어떻게 현대전자 주가를 올려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주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이 기간동안의 현대전자 주가 패턴이 비정상적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전자의 주가는 특이하다. 현대전자의 주가는 작년 5월말에서 7월초까지 근 한 달을 하루도 쉬지않고 단숨에 1만5천원 대에서 3만원대로 상승하였으며 그 뒤 두달여 동안 3만원대에서 2만원대까지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쏟아 부은 돈이 2,200여 억원이나 된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왜 이 두 회사가 현대전자의 주식을 집중 매수했는가이다. 이 두 회사 밝히고 있는 공식적인 이유는 ‘투자목적’이다 즉, 현대전자가 기업내용에 비해 저평가되고 주가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판단, 투자목적으로 집중 매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에 의하면 이들 두 회사는 작년 5월부터 11월까지 현대전자 주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낮은 가격의 매도주문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높은 가격으로 매수주문을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를 했다. 또한 어떤 때에는 하루에 무려 149차례나 매수주문을 내거나 하루 거래량의 93.2%를 현대중공업 혼자 한 날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기업의 정상적인 투자행위라기보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 이 주식을 파는 쪽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현대그룹의 2세 총수들이었으며 당연하게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들이 실제로 현대전자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을 때 매도한 주식 수는 대략 91만 여 주라고 금융감독원은 밝히고 있다.
이상의 몇몇 사실을 보더라도 이 사건은 명백한 내부자 거래이며 따라서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 보통 주식시장에서 내부자 거래를 입증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 현대전자의 주식을 사들인 쪽이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이득을 본 자들의 기업이며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며칠 전 이 사건으로 인해 눈총을 받던 증권사의 회장이 TV에서 ‘금리를 2,3%대로 유지해야 주식시장이 계속 호황을 누릴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서 기업들도 경쟁력이 생긴다’고 발언을 하였다. 통상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들은 주식시장을 통해 신주 발행이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금융권에서의 차입한 돈과는 달리 배당금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자금조달비용이 낮아져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또 경쟁력 강화로 인해 수익성과 성장성이 좋아지면 이 기업의 주식가치는 더 높아지며 때문에 더욱 주식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수월해지는 선순환(善循環)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은 주식시장이 효율적일 때에나 적용된다. 바로 이 대목을 그 사람은 간과한 것이다.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 함은 투자자들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 정도가 작다는 것이다. 이는 내부자 거래를 통한 부당이득이 없을수록 주식시장은 효율적이며 따라서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에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투자자들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어느 일방이 계속해서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주식시장에 투자를 하겠는가. 따라서 대주주를 포함해서 그들의 특수 관계인이 저지르는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는 더욱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다.

<b>국민의 투자로 경영권을 유지하는가?</b>
그럼 왜 이번과 같은 주가조작 사건이 생기는 것일까? 단적으로 얘기하면 과거와 같이 재벌들의 경영권의 배타적 유지와 세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앞서 현대전자의 주가조정 과정에서 최대의 이익을 본 사람들은 현대그룹의 2세 총수들이다. 그러면 이렇게 얻은 시세차익을 어디에 사용하였는지를 생각해보자. 현대그룹의 주장대로 아마 이 돈은 현대그룹의 유상증자 청약대금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왜 생겼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현대전자의 시세조종이 사실이라면 결국 이들은 유상증자로 인해 생기는 자신의 지분감소를 다른 사람의 돈으로 막아서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말이 된다. 즉 아무 내용도 모르고 현대전자 주식을 산 개인 투자자들과 현대중공업, 현대상선의 주주의 돈을 경영권 유지를 위해 썼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일은 비단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해전 모 그룹의 회장은 아들에게 계열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를 증여하였고, 그 아들은 이 계열사가 상장되고 난 후의 주가 상승에 따라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꾼 후 내다 팔아 시세차익을 얻고, 다시 그 그룹 중요 계열사의 주식을 살 수 있었다. 당연히 전환사채에 대한 증여세만 물었다. 우리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사건과 마찬가지로, 상장 과정에서 이 계열사의 주가가 상승한 것이 과연 이 회사의 성장성 혹은 수익성이 좋았기 때문이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도 현대그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가를 조작할 유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b>관건은 기업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다.</b>
경영권 세습이 중요하게 여겨져 온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일들이 비단 한 그룹 대주주만의 행위로만 끝날 수 없다. 여전히 Owner의 전횡과 독단이 가능한 지금의 기업의 지배구조 하에서는 이러한 일들은 항상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Owner의 지시를 거부할 고용사장이 있겠는가. 더욱이 이러한 기업지배구조가 온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의 투명성은 한낱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구조조정의 바람에도 5대 재벌들이 한사코 놓지 않으려는 분야 중에 증권회사나 생명보험회사 등과 같은 계열금융사가 있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수시로 이들 계열 금융회사를 Owner의 사금고처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몇몇 그룹의 계열 금융 회사들은 경쟁력과 수익성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팔거나 없애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IMF 위기 이후에 부도를 맞은 성원건설과 거평의 경우 각각 대한종금과 새한종금을 Owner의 사업확장을 위한 사금고로 이용하였으며 결국 모기업과 함꼐 폐쇄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에 현대투자증권과 현대증권 역시 개입되어 있다고 금감원은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벌 계열증권회사가 판매하고 투자신탁운용회사가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의 규모가 급속히 커지는 것은 주식시장이 활성화된다는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고객의 돈을 Owner나 계열회사에 편법 지원하는 등의 행위에 이용되는 부정적인 면 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도 이러한 점을 우려해서이다. 물론 이러한 조사는 철저히 해서 재벌들의 탈법행위를 찾아내고 근절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들이 몇몇 재벌들의 교묘한 담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내부거래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현재의 Owner의 독단과 전횡이 가능한 기업지배구조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켜서 기업의 모든 행위들이 주주와 기업의 이해당사자들 모두 공히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바꾸는 것이다. 온전한 의미에서의 재벌개혁은 바로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로부터 시작하고 결실을 맺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지금 몇몇의 진보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소액주주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반의 환경을 만들고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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