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포커스


  • 새로운 각오로 2008년을 맞이하자

    이명박 정권의 등장,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나 ‘향후 10년 간 5%대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고를 굳이 환기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실용정부’가 약속한 ‘747 경제’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 이하에서 고정되는 만성적 불황 상태, 이윤이 투자로 직결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부의 해외 유출이 구조화됨으로써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는 문제가 추가로 발생했다. 무엇보다 자산소유 계층으로의 소득집중 경향이 강화되면서 부의 역진과 소득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차기 정부의 임기는 미국 발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이명박-한나라당이 공언했던 장밋빛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만큼 노동자 대중에 대한 수탈과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한․미 FTA, 한․EU FTA가 지체 없이 추진될 것이고, 공공부문(전력․가스․수도․철도 등) 사유화, 각종 연금 개악 등이 신 정부의 정책개혁 목록이 될 것이다. 이들 정책은 농촌․농업의 붕괴, 금융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것이며, 공공부문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저해할 것이고 노동권을 후퇴시킬 것이다. 또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 역시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도 시인했다시피, 오늘날 부동산 가격 폭등은 IT-벤처 거품, 신용카드 거품에 이어 투기적 호황을 동반하는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다(노무현 정부가 치적으로 자랑하는 ‘경기회복’ 역시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투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적 팽창을 가리킬 따름이다).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전국적으로 평균 40% 이상 상승한 것은 ‘행정 수도 이전’에 이어 “국토균형발전”을 이유로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 현 정부 정책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기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부동산 규제를 풀고 경기부양책을 시행한 것이 2000년 이후 저금리와 과잉유동성과 맞물리면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 붐으로 연결된 결과다. 따라서 조세 감면과 개발 확대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이명박-한나라당의 발상은 거대한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그밖에 노무현 ‘좌파’ 정부의 정책을 역전하는 상징적인 조치들과 함께 주택․교육․의료비 소득공제 확대나 유류세 인하와 같은 ‘인기 영합적’ 감세 정책이 제시되겠지만, 이는 노동자 대중에게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쌓는 격’에 불과할 것이다. 또 이명박-한나라당은 ‘양극화 해소’ 정책, 교육 평준화 정책, ‘생산적 복지’ 등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인민주의적 편가르기’로 비판하면서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의 도입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현재 주어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토대를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 이주노동자들의 단결과 저항의 권리를 옹호하자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 없이 신자유주의를 넘어 설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안정을 해치는 ‘적’으로서 이주노동자들과 만난다면, 노동자·민중운동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이 ‘적’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국가와 지배계급은 우리의 ‘보호자’가 될 것이므로, 국가에 한층 더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 민중들을 적대하거나, 이들에 대한 국가의 탄압을 묵인하는 한에서 한국의 대중운동은 동아시아 차원의 운동을 도모할 가능성과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고, 이 같은 대중운동을 ‘집단이기주의’로 비난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시혜적으로 원조하고 관리하는 NGO들이 도덕적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공동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함께 하는 동료들로 만난다면, 한국의 운동은 많은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공동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연대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 및 정주노동자들과의 분열을 활용하여 정주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지배계급의 전략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또 이 공동의 투쟁과 연대를 통해서 한국 노동자운동은 새로운 주체와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국적 차원의 접근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변혁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함께 토론하고 실행할 수 있는 동료들을 얻게 됨으로써, 한국의 운동이 더욱 확장된 시야와 토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주노동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의 신자유주의 재편의 쟁점 및 투쟁 과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대안세계화 운동을 동아시아 곳곳에서 서로 연결하고 지역적․대중적으로 함께 건설할 수 있는 현실적 주체들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초민족적 사회운동이 통일성을 갖는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할 때에만, 사회운동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을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만 확대된 이동성을 무기로 자본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한 개별 국가의 세력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대안세계화의 전망은 동아시아 노동자 민중들의 연대 없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이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동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을 매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우리보다 열악한 지위에 있는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 차원의 새로운 운동을 열어가는 가장 힘 있는 운동인 것이다. 이주노조를 함께 지켜내자. 이주노동자와 함께 공동의 노동권과 인권을 쟁취하자. 동아시아 노동자 민중의 더욱 굳건한 연대로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자본을 통제하고 다른 세계를 함께 건설하자.

  • 득표율의 덫을 넘어 사회운동의 재건으로

    2007년 대선과 사회운동

    한국 경제의 장기 불황이라는 위기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속하는 것 외에는 체계적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진정한 쟁점은 가려진 채, 각 세력이 ‘경제성장을 이끌 책임 있는 세력’, ‘한반도 평화체제의 완성과 남북 경협 확대를 주도할 세력’으로 자신을 표상하며 허구적으로 대립하는 구도 안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력 또한 이들이 설치한 논점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출하기를 주문받는다. 또한 선거 전반을 지배하는 여론조사와 각 정치세력의 이념과 정책에 관한 토론과 논쟁이 아닌 후보 간 지지율 경쟁을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중계해 대는 언론은, 지배 세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무조건적 반대’로 몰아세우며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서민에게’, ‘평화통일을 넘어 코리아 연방공화국으로’와 같은 형태로 제출된 민주노동당의 정책 공약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지배 세력과는 차별성을 드러내면서도 집권 가능성이 있는 세력으로서의 표상을 획득하려는 시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확인되다시피 개혁세력의 몰락의 후과는 민주노동당을 거점으로 하는 진보세력에 대한 지지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좌파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공격하는 보수적 선동과 성장주의가 안정화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흡수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잇는 개혁세력이 97년 이래 경제위기의 고통 아래 형성된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전환하는 데에 활용해 왔던 보수-개혁 대립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만개한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로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표 과정으로서 정치가 위기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하여 개혁세력의 공백을 ‘진보주의’를 통해 장악한다는 전략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결여한 의지의 표현일 따름이다.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확보하고 이를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지양하고자 나설 때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를 넘어서는 민중의 정치적 전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지배계급이 설치해 놓은 논쟁 구도 안에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표상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틀을 깨고 지배 계급 스스로도 대안이 없는 위기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냄과 동시에, 이를 지양하기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그러한 행동에 동참하면서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내는 것이다.

  • 보수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명박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명박/한나라당의 집권은 보수정치이념의 재등장으로 인한 위험이라기보다는 대안도 없고 방향도 불분명한 정치적 불안정화의 위험이 증폭되는 계기다. 현재의 정치국면은 2002~2003년에 버금가는 정치공황의 도입부이다.

  • 신자유주의 부패 커넥션을 타격하자

    삼성 비자금 정국과 사회운동의 올바른 방향

    삼성과 BBK 문제가 대선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총체적인 비리와 반민중적 속성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의혹들이 지배세력의 이전투구의 도구로 활용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에 파열구를 내는 대중투쟁을 촉발시킬 것인가,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선 각종 불법적 로비로 연결되어 있는 삼성과 정부, 정치권의 비리 커넥션에 대한 타격에서 돈 거래의 결과가 결국 대기업과 자본소유자들의 이윤 추구만을 위한 민생파탄을 불러 왔을 뿐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지배 연합에 대한 타격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부패vs.반부패연대를 신자유주의vs.반신자유주의의 구도로 전환시켜야 한다. 황제식 경영과 재벌의 지배구조를 해체하는 이른바 ‘재벌개혁’ 주장은 결코 민중적 요구가 아니다. 금융화를 통한 자본소유자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대기업들의 행태를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소유의 비합리성이 아니라 소유의 독재가 문제인 것이다. 또한 민중운동은 특검법 도입을 위한 의회 내에서의 공방을 중심으로 지배세력을 압박하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반민중적 재벌타도를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의 노조건설 탄압과 극심한 노동착취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해온 노동자들이 주요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투쟁을 더욱 활성화 시키고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다. 또한 12월 1일로 예정되어 있는 2차 범국민 행동의 날을 비롯하여, 민중생존권을 파탄 내 온 타락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에 대한 준엄한 민중의 심판을 내리는 완강한 투쟁을 시급히 조직해야 한다.

  • 죽음을 강요하는 자본독재, 살아서 연대하자

    정해진 조합원 분신 사망 직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부장관을 만나 인천전기원 노사관계 해결을 주문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장의 노동자들도 연대의 힘으로 악덕기업주를 처벌하고 요구안을 관철하기를 바라고 실천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절망으로 떠밀려지는 상태를 바로잡고 운동 주체를 지속적으로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를 파괴해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연대할 수 있도록 운동의 기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 저지, 반전평화를 위한 11월 11일 범국민 행동의 날”이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으는 행사를 넘어서,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심판하는 민중의 단결과 투쟁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연대와 투쟁의 파고를 높여야 한다.

  •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을 주목하라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달성은 빈곤철폐의 길이 아니다

    유엔과 국제 원조 NGO들이 주도하여 '지원 받을 권리', '구제 받을 권리'를 호소하는 빈곤철폐의 날이 우리에게 기념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어나서 외쳐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 빈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떠한 ‘권리’를 제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빈곤철폐의 날은 빈민들 스스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고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이 “일어나서” 인간의 ‘가면’을 쓴 자본의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 서는 대안세계화를 “외치는”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따라서 “바닥 생존 불복종! 민중의 기본 생활권 쟁취!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세계빈곤철폐의 날 공동행동과 같은 흐름은 반빈곤운동의 발전에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존재하는 빈민대중들의 주체화와 직접행동을 중심에 두고 있고 개별적인 이해를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정치적 요구 속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고무적인 운동의 흐름이 빈곤심판 민중행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조직들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지 못할뿐더러 보다 대중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한계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여 빈곤심판 민중행동과 같은 흐름이 더욱 발전할 때 반빈곤운동은 NGO화와 실리주의적 경향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한ㆍ미동맹의 위선과 기만

    10.4 선언문을 바라보는 시각

    미국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대북전략은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에 대한 완전한 제거”와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북한의 체제붕괴”를 동시에 추진하고자 했던 클린턴 시절의 ‘페리프로세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노무현이 10월 4일 도라산 역에 도착하여 “북핵문제 해결의 ‘타작마당’은 따로 있는데 나더러 또 ‘타작마당’을 벌이라는 것은 부담스럽다.”라고 발언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군사, 안보적인 문제는 철저히 미국의 권한아래 종속되고, 남한은 대북지원과 경협사업을 통해 북한의 체제변화를 추동한다는 지난 클린턴의 대북포용정책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역할분담론’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북-미 평화협정 체결의 흐름’은 부시행정부 버전의 ‘페리프로세스’의 자장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페리프로세스는 협상을 하나의 경로로 상정하고는 있지만 군사력 증강을 협상의 후순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Two-Path Strategy)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결국 당시 클린턴이 북-미 협상 의제에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추가함으로서 그 이후 10년 동안 한반도의 위기는 훨씬 더 고조되어왔던 역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가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전’이었는지, 아니면 미국의 패권전략 아래에서 추진되고 있는 하나의 ‘역할 분담’을 남한정부가 성실히 수행한 것에 불과했는지, 상황을 보다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 다시 부활한 노조파괴 공작과 노동자 테러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필요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기업들의 노동자 탄압 행태가 폭로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128일간의 총파업을 전개한 현대중공업의 현대그룹해고자 협의회에 대한 사측의 식칼 각목 테러이다. “제임스 리”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던 노조파괴 전문가들이 민주노조 건설 운동이 활발한 곳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와 회유, 협박을 일삼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20년 지난 지금, 이러한 노조파괴 공작이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상대로 예전과 비슷하게 다시 나타나고 있다. GM-대우 부평 공장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에 대한 구사대의 집단 폭행과 일체의 선전 활동 금지 조치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해고, 코스콤 노동조합 투쟁 현장에서 벌어진 용역 깡패들의 조합원 감금 사건,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구사대의 집단 구타, 이랜드 뉴코아 파업 현장에 등장한 손도끼와 죽봉 등으로 무장한 천 여 명의 용역 깡패 등, 최근 두세 달 사이의 폭력 사태들은 80년대의 그것만큼이나 끔찍하다. 다만 20년 전 그것이 어용노조에 대한 민주노조 건설운동에 대한 폭거였다면,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가 일정한 합법적 권리를 획득한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에 대한 폭거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 아프간 피랍사태가 남긴 질문

    당면 정세에서 <국민행동>이 어떤 구호를 추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반전평화운동의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입장은 ‘테러와의 전쟁’도 비판해야 하지만, ‘테러’도 비판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 살해하는 탈레반의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으며, 따라서 탈레반의 잘못된 요구는 반전평화운동과 결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미 제국주의의 점령과 전쟁에 있기 때문에 점령과 파병에 대한 비판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의 입장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즉각적으로 거부되어야 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편에 서게 되면서,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동맹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의 논리와 시각에서 탈레반을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하는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서 ‘정의의 전쟁’ 역시, 폭력적 상황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방식을 나름대로 표방하고 있다.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이 유포하고 있는 기만적인 거짓 논리를 철저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탈레반의 행위에 대해, 즉각적인 비난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후자의 입장은 오늘날 새롭게 재생산되고 있는 전쟁과 점령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와 보복의 폭력들이 민중의 평화적 권리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수단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키는 ‘테러’의 폭력을 묵인할 수 없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을 사고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폭력의 악순환은 기존의 반제국주의 운동으로서 반전․반미운동이 ‘폭력’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확보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응하는 반전평화운동이 보다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벼리지 못했던 원인에는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충격과 긴급함에 비해, 운동진영의 이러한 인식의 공백이 토론과 성찰을 통해 채워지지 못했던 까닭에 있다. 이러한 반성은 단순히 운동진영 내의 단체 간의 입장차이로 정리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향후 전쟁과 파병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반전평화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보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논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미국의 군사세계화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을 보다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오늘날, 이 양자가 담고 있는 중요한 쟁점은 미완의 해답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