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학보사 원고요청에 따라 작성한 짧은 글입니다. 최근 이라크 파병
논란에 관해 참조하시라고 등록합니다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 미군철수, 파병철회만이 대안이다

(2004년 3월 27일 작성)

3월 11일 국방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기로 했던 키르쿠크 지역 일부에
미군이 잔류하겠다고 통보해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한
국에게 전투헬기와 탱크를 보강할 것도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의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공세작전"이 불가피하며, 한국군의 전술통제 하에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려는 미국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의사를 이미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했던 정부대표
단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귀국 직후 황의돈 파병부대 사
단장은 "책임지역에 대해 원만히 협의했다"고만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모
든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파병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모
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19일 "키르쿠크의 치안 악화 때문에 파병지역 변경
이 불가피하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다
시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지역으로는 6월말 스페인이 철군하는 남
부 나자프 지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한승주 주미대사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독자주
둔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반군활동에 미군이 대응하지 않으면 반군이 그
지역으로 몰려 우리에게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파병을 반대해온 여론은 키루쿠크 지역에 대한 말이 나올 때부터 그
곳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쿠르드, 아랍,
투르크멘 사이의 종족갈등이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으며, 이라크 전역
에서 외국 주둔군에 대한 적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명백
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8일 언
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
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아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거짓말을 다시 반복
하려는데 있다. 주둔 지역을 "안전한" 나자프 지역으로 옮긴다는 게 똑같
은 식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파즈가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고, 파
병이 아무런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라면 왜 스페인은 서둘러 나자프에서
철군을 하려하는가? 이미 스페인군 1300여명이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
한 이후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 11명의 스페인군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
가? 나자프 시내에는 "임시헌법에 서명한 이라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
인이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미군은 알라바바다"라는 시민들의 주장
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대사가 은연중에 "시인"한 것처
럼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존재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짓말은 거듭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없고 오히려 이라크의 불안과 갈등을 더
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라크를 전쟁으로 강점하고, 이라크인의 민주적 의사와는 무관하게 과도통
치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충분한 합의 없이 미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를 종족·종파간으로 배분하면서 이라크의 종족갈등을 더 악화시켰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 재건사업을 미국 기업이 독점하여 이라크의 경제적 부
를 수탈하고, (석유)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는 이라크인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경제를 운영할 권리를 원천적
으로 봉쇄하는 것이며, 광범위한 불만과 격렬한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포장을 달던 '점령군'의 성격
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그 자체가 갈등 요인이다. 한국군 파병을 전면적
으로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론과 사회
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