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약칭 전성노련)
부대표 정 희 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에는 고민도 있었습니다마는 '성노동자도 노동자' 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놓고 여러분들처럼 이해하려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생기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6월 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출범 행사장에 시민사회단체 친구들이 연대 투쟁차 피켓을 갖고 나오셔서 격려발언까지 해주셨구요, 학계에서도 교수님들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노예라고 주장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노동자가 꼭 되어야 합니다.
성매매 특별법 이전까지는 전국의 집창촌 성노동자들은 약 1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성적 성매매를 총 망라하면 가임여성의 10% 정도인 최대 2백만명까지라고 여성단체도 말하고 있으니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의 여성들이 이 분야에 일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른 일자리를 두고 성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 여성들이 특별히 많은 돈이 탐난다거나 명품이 필요해서인가요? 아니면 일부에서 말하듯이 감금당했거나 성노예라서 그럴까요? 특히, 작년에 한나라당 김충환의원이 '단기간에 성매를 척결한다면 고교를 졸업한 이후인 18세부터 30세 사이의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국감장에서 발언하는 바람에 성노동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이런 생각은 성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들은 성노동자인 여성문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단순하게 폄하시킵니다. 성노동자들은 과소비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노동자들 절대다수는 가족들의 가난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벼랑에 몰린 가족들은 생계와 병마에서 헤어날 길이 없고 결국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로 추락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최소 몇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이미 손쓸 정도가 없을 정도가 되어 채권자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빚에 시달려보신 분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그런 극단적인 경제상황에서 성노동자들은 업소에 가서 선불금을 요구하는 것이죠. 이것이 선불금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면 업주들은 사채나 은행대출을 받아 성노동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매매 특별법에서 성매매와 관련한 선불금을 무효화시키면서 선불금을 주는 업주가 무슨 악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는데, 그건 잘못 이해된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돈을 미끼로 강제로 성매매 시킨다면 그런 사람은 당장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돈은 물론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일하는 집창촌에는 업주에게 어느 정도의 선불금을 받은 성노동자들 다수는 선불금 무효화 조항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떼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도의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성매매 특별법 이후 남아 있는 업주들은 영세한 분들이 많아 어쩌면 빈민들끼리 기대어 사는 게 요즘 집창촌 모습이라고 보셔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편부 편모거나 어린 동생과 병든 가족이 있는데 여러분의 학력은 중졸에서 고졸 사이입니다. 그리고 빚까지 포함해서 한달에 들어가야 할 돈이 약 4백만원입니다. 이 금액은 저희가 조사한 통계입니다. 여성 여러분들은 어떤 일자리를 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답변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성노동자 여성들에게 덧씌우는 오명과 낙인입니다. 성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일해야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미 절반을 훨씬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들이 짊어진 생의 무게에 비해 마땅한 일자리는 정말 구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매매를 줄이기 바란다면 정책의 중심이 빈부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의 자활에 대해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만 성노동자들이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과 경제부분을 감안한다면, 이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보아 자활대책을 생각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탈성매매여성을 위해 여성가족부가 지급한다는 1인당 37만원 수준의 긴급생계비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 학원에 가서 기술을 배워 자활시킨다고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기간동안 어떻게 생존할 것이며 배운 기술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비관적입니다.
성노동자들 자활을 진정 돕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너무 힘든 가정들을 세밀하게 체크해서 돌볼줄 아는 사회복지시스템이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성 성노동자들이 실제 가장으로서 지고 있는 경제적 부담감을 많이 덜어줄 수 있으며,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산재한 재활시설 또한 단지 750여명의 여성들을 수용할 따름이니 당국의 재활정책이 얼마나 부실한지 이해가 가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은 사실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알고보니 성매매 금지주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일이 이미 대만에서도 있었습니다. 8년 전 천수이벤 총통이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시민 중산층의 표를 모으기 위해 공창제를 폐지한 것이 그것입니다. 저희가 여성계 일부 및 현 정권이 개혁정권 이미지를 앞세우기 위해 성매매 특별법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두는 것도 대만 사례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만의 성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노동권 쟁취를 위해 힘든 투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만 사회 곳곳에는 공창제 폐지와 무관하게 지금 사창이 범람 중입니다. 지금 한국은 대만의 경우를 열심히 뒤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책이 GNP 3만불을 향한다면 우리가 본받을 나라가 대만이 아니라 유럽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럽은 성산업에 관해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를 채택해 성인 남녀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국가가 일일이 규제하지 않습니다.
현행 성매매 금지주의 하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인들은 누구나 예비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 신체의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성노동과 관련하여 성인남녀 모두에게 비범죄주의를 적용해야 합니다. 그럴때만이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또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는 성과 관련한 인신매매(sex trafficking)가 아닌 자발적 성노동(sex working)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반인권 악법인 성매매 특별법 폐지 운동에 앞장설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일자리를 없애려는 이른바 '집창촌 폐쇄법안' 추진에도 강력히 제동을 걸 것입니다.
저희 성노동자들은 단언합니다.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요구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공론화에 나서 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세계여성행진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않게 한국의 모든 노동자들과 더불어 주권자로서 생존권과 노동권 건강권 쟁취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7 월 3 일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