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연합전선체를 비판한다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www.ynlabor.net <연대와실천> 2006년 4월호


1. 두가지 맥락의 접근법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연합전선체 논의는 크게 두가지 방향과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2005년 1월 전국연합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통합하는 대규모 연합전선체 건설을 결의하고, 이러한 방향을 작년 9월 민중연대 간부수련회에서 재확인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또 하나는 사회진보연대 등에서 제기하는 것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연합전선체의 건설이 아니라 현재의 <민중연대>가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의 구심이자 다양한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적 흐름들을 활성화시키는 정치적 조직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자기혁신이라는 주장이다.

연대운동의 활성화, 각 계급계층의 투쟁과 특정의제에 대한 공동대응을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모아내고 이를 강화시키기 위한 활동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전선’을 이야기하는 연대조직 강화론자이다. 전국민중연대는 그래서 건설되었고 활동해왔으며, 그래서 민중진영의 ‘상설적’인 공동투쟁체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맡아왔다. 공동투쟁의 과제이자 실천강령 성격으로 민주주의의 권리 확보, 민중생존권 쟁취, 민족자주권 확보를 규정하고 주요과제를 반신자유주의 투쟁과제로 설정하였다.

지금 단일연합전선체를 주장하는 동지들이 조직 건설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 대중투쟁의 강화와 혁신, 연대활동 강화의 필요성, 효율적이고 집약된 연대조직의 필요성 등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몇년전에 <민중연대> 건설의 필요성과 절박함을 논의할 때 제기되었던 오래된 논거들이다. 96~96년의 노동법 범대위, 98년의 IMF반대 범국민운동본부, 99~2000년의 신자유주의반대 민중생존권쟁취 민중대회위원회라는 비상설적이고 과도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민중진영의 상설적인 공동투쟁체의 필요성을 논할 때 제기되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기서 짚어져야 한다. 왜 <민중연대>는 이러한 과제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가? 대중투쟁을 강화 혁신하고 조합주의와 경제주의를 넘어 사회변혁적 투쟁으로 민중진영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왜 <민중연대>는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냉철한 자기평가와 진단이 선행되고 올바른 처방이 제시될 때 우리는 한단계 전진할 수 있다. 진단이 없으면서 처방으로서 단일연합전선체를 주장하는 것은 관념적이거나 특정 정치조직의 프로그램에 불과할 뿐이다.

집행역량이 부족하고 조직규율이 미흡하고 대의원대회와 같은 의결기구가 없어서 문제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조직형식적인 접근이 새로운 연대조직이라는 편의주의적 발상의 근거이다. 문제의 핵심은 민중진영의 단결과 계급적 통일성을 담보할 수 있는 투쟁을 발굴하여 조직하거나, 규모와 관계없이 이러한 의의를 담보하는 개별투쟁들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조직가․교육가․선전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연대운동의 요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노동운동을 포함한 전체 민중진영의 가장 커다란 전략적 과제의 하나가 비정규직 투쟁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운동 내부의 문제가 아닌 전체 민중운동의 전략적 과제를 위해 민중연대는 노동조합과는 독립적으로 무엇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실천적으로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다. <민중연대>의 혁신과 강화는 조직 규율이나 새로운 조직형식을 발굴한다고 담보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실천과 정치활동에서 극복해야 할 한계와 평가지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에서 우리는 출발해야만 한다. 그러나 단일연합전선체를 주장하는 동지들은 이 지점에서 침묵하거나, ‘제대로 안되었으니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사안별 연대체 난립문제, 각 정파별 독자적 활동체제, 각 대중단체 중심적 활동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 운동의 분산성을 극복하는 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다. 시급히 단일연합전선체를 건설함으로서 전체 진보운동진영의 통일적 정치활동과 투쟁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대중운동발전의 절박한 요구이다”(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의 ‘민중의소리’ 기고글)는 주장은 왜 지금 우리가 민중연대의 강화 혁신이 아닌 새로운 연대조직을 건설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 연대운동과 당의 역할

단일연합전선체를 주장하는 동지들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 있다. 연대운동에서 진보정당의 주동적인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전선론자들은 당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전술적인 수준으로 치부하였다. 전선조직 자체가 사회변혁에서 전략적 의미를 가지며 정치조직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독자적인 정당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민주대연합’이라는 정치노선에 근거하여 자유주의자들이나 보수야당과의 합작노선을 추구하였기에 독자적인 진보정당에 대한 의미를 부정하였던 것이 과거 전선론자들의 입장이었다. 과거를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선과 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그 자신의 힘만으로 성장하거나 집권할 수 없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대중투쟁이 고양되지 않고 격화되지 않으면서, 또는 그 결과로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이 각성하고 발전하지 않으면서 진보정당이 발전하거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당은 의회라는 공간 내에서, 그리고 의회 바깥 민중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당의 주장과 이념을 알리고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실천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당은 각 계급계층의 대중조직들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하며, 당면 시기의 공동투쟁과제와 공동투쟁조직에서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는 주요의제를 매개로 연대활동을 조직하고 연대조직을 유지 강화시키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농이라는 대중조직과의 관계가 그러하고, 민중연대를 비롯한 민중진영의 각종 연대조직과의 관계도 그러하고, 진보국감을 위한 시민단체와의 협력기구 조직화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은 의회활동, 전선조직은 대중투쟁이라는 기계적이고 관념적인 역할분담론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당이 대중투쟁에 개입하고 결합하고 또는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제노아의 G8반대투쟁에서 보여준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역할이나 집권 전 브라질 노동자당의 노동자 농민투쟁과의 결합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선조직 또한 선거투쟁이나 의회활동에 개입해야 하고 개입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 연합전선체를 주장하는 동지들은 두가지 관념에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첫째 전략적 통일전선조직은 대중조직들과 정치사회단체들의 조직적 결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지주의적 관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대중조직은 정세와 정치지형에 따라 영향력의 크고 작음이 달라질 수 있고 지도노선의 올바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조직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과정을 밟는다. 단위노조에서 지역노조협의회로, 산별노조로, 총연맹으로 그 조직적 확장과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선조직, 연대기구는 그러한 순조직적이고 단선적인 발전경로를 밟지 않는다. 87년범국본, 전민련, 국민연합, 전국연합, 민중연대는 자연스러운 성장전화의 과정이 전혀 아니었다. 전선조직은 정세적 긴박성과 정치적 목표에 의해 규정받는다. 올바름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살펴보면, 87년 직선제 범국본은 군사정권을 직선제를 쟁취하여 몰아내자는 것을 당면 정치적 실천적 목표로 하였다. 2004년 탄핵반대국민행동은 수구적 보수정치를 총선에서 심판하고 교체하여 17대국회를 민주국회로 만들자는 것을 당면 정치적 실천적 목표로 하였다. 전선조직은 이렇듯 당면한 정세의 필요성과 정치적 목표를 명확히 할수록 그 실천적 규정력과 결합력이 강화될 수 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상적이고 상설적인 공동투쟁의 과제를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민중연대는 상설적인 공동투쟁체이고, 새로운 단일연합전선체는 공동의 정치강령을 중심으로 통일적인 정치투쟁을 벌여나가는 정치투쟁의 구심이다”(정대연의 기고문)는 주장은 선언적이거나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전선조직을 각급 대중조직과 참여하는 단체들의 ‘상급단체’로 사고하는 관념적 경향이다. 이전에 비해 정당을 배제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당과 참여단체들을 지휘 통제하는 조직으로서, 다른 표현으로는 ‘전략적’ 조직으로서 전선조직을 사고한다는 점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조직규율과 의결구조라는 것이 논의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다른 다양한 연대기구들을 단일연합전선체에 귀속시키거나 통폐합시켜야 하는 것으로 사고한다. 그 이유는 한편에서는 너무 분산되어 있어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고 한편에서는 단일연합전선체는 전략조직이기에 다른 연대기구들을 관장하고 지휘해야 할 역사적 임무가 있다는 것이다. 민중연대의 역할이 엄정하게 자기비판해야 할 지점은 다양한 연대기구들을 통폐합시켜서 자신의 조직 체계로 끌어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대운동의 흐름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다종다기한 투쟁적 흐름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내고 조정하는 지휘력과 정치사업능력의 문제이다. 이것을 조직체계로 통폐합하는 것으로 사고하는 것은 조직형식적 사업작풍이고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이런 과정의 귀결은 “만약 지금 계획대로 단일전선체가 추진된다면 그것은 사실상 하나의 정치조직 성격을 띄게 될 수 있다. 제2의 전국연합처럼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조직의 이름이 어떻게 되었든, 조직의 성격으로 무엇을 표방하든 관계없이, 그 조직 밖에서 진정한 연대전선의 필요성은 다시 제기될 것이다(‘단일연합전선체 어떻게 볼 것인가’토론회에서 다함께 발제문)”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

3. 몇가지 남은, 그러나 더 중요한 쟁점들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는 민중진영의 대표적인 연대조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민중진영의 상설공투체로 출발한 민중연대 뿐이다. 통일연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대기구들에 대해서 우리는 민중연대와 통폐합시켜야 할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연대가 중심이 되어 간담회, 연석회의 또는 조정기구를 유연하게 운영하면서 공동투쟁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도록 추동하려는 발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민중연대의 조직 규율이 아니라 정치지도력과 조정 운영능력이다. 통일연대가 615공동위의 출범과 함께 그 존립근거가 불명료하다면 민중연대로 해소할 부분은 자체적으로 해소하여 참여하고 615공동위 활동으로 집중 강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집중해야 한다. 이를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폐합으로 사고하는 것은 특정조직의 조직 관리계획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대안세계화투쟁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단위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면 민중연대 반세계화특위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세계화운동 주체들과의 간담회와 조정회의를 민중연대 특위가 주도적으로 조직하면서 공동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방도이다.

이러한 민중진영의 연대활동, 연대기구들을 통일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민중연대의 역할을 평가 점검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경로이지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중심으로 모든 연대기구들을 통폐합하려는 것은 올바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시민운동진영에서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라는 통합적 연대기구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상급단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참여단체들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활동은 보장하면서 통일적인 대응과 활동이 필요할 때는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 즉 문제는 조직형식이 아닌 것이다. 통합력과 유연한 조정능력, 그리고 공동투쟁 과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이를 실천지침화시켜내는 조직능력의 문제이다.

연대운동에서 당의 힘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하나는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당 조직망과 주요 대중조직들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정책적 선도능력이다. 전자가 당의 하드웨어라면 후자는 당의 소프트웨어이다. 그러나 현재 연대운동에서 당의 역할은 하드웨어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의회 내의 제도정치적 쟁점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운동적 쟁점을 선도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 뒷받침될 때 당의 주동성과 지도성은 확보될 수 있다. 중앙정치만이 아니라 지방권력의 문제점들을 분석 비판하고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를 지역연대운동의 주요 실천과제로 끌어올릴 수 있을 때 당의 주동성은 확인될 수 있다. 주어진 일정과 과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제와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책임지고 공동의 사업과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당에게 필요하다.

민중연대 혹은 연대기구에서의 당의 역할, 대중조직과의 연대 활동과는 독자적으로 ‘정치연합’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민주노동당과 독립적이면서 민중진영의 한 주체들인 노동자의 힘, 사회당 그리고 시민운동 성향의 정치세력과 연대연합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정치연합의 목표가 뚜렷하고 분명해야 하며, 각 세력들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연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