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적인 정책이나 여성들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다. APEC과 같은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들의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이 일환이다. 하지만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인 의제나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한 전반적인 틀을 변화시키는 것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적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한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가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에 대한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는 않다.
따라서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속에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의 노동시장이 획득한 다양성을 통해 미국의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포함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이 팽창되는 과정을 수반했다. 이런 과정은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한 대처, 적극적 조치,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의 결과는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가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식의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담보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되고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국가의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개방 정책 하에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고,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이었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지만, 이들의 노동은 은폐된 채 ‘주부’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들어났다. 맞벌이부부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직장을 가졌던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해고 일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의 재생산노동을 더욱 착취하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을 수반한다. 이 속에서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여성 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더욱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하게 논의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중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이로 인해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바로 이런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에서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지원을 통해 시장화하는 방식으로 사회화하면서 이런 보육이나 돌봄 노동을 다시 여성들이 취업할 수 있는 저임금의 유연한 일자리로 둔갑시키면서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정책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전제 하에 좀 더 여성친화적일 부분을 지적하며 이 정책을 환영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 하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이 재벌 중심의 자본과 지배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해와는 날카롭게 대치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다. 하기에 대다수 여성들이 한미 FTA 체결 이후 겪게 되는 현실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장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미 이중 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을 통한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는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 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나서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이런 기대를 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세력의 적극적인 의지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 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이 벌여내고자 하는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여성을 위한 것이라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도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서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 건강권, 교육권과 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