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말하면, 소설은 아닌 듯하고, 작가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겪은 실제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이 글은 조선의용군 당시의 옛 동지가 서울을 방문한 김학철씨를 갑자기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래는 김학철 공식홈페이지로 여겨지는 웹사이트에 올라온 김학철 연표입니다. 참조하세요. (출처: http://www.kimhakche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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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선생 연표
1916년 11월 4일 조선 함경남도 원산에서 누룩제조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여 났다.
7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
원산에서 제2공립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보성고등학교를 다녔다.
1932년 17세에 빼앗긴 조국을 찾겠다는 포부를 품고 상해림시정부를 찾아 중국으로 들어왔다.
처음 상해에서 민족혁명당 상해특구에서 활동하다가 1933년 남경에서 민족혁명당에 민족혁명당에 입당. 테러리스트들의 집단인 행동대에 편입 되여 테러활동에 참가하였다.
1937년 중앙륙군군관학교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개석)에 입학하여 1년간 학습하였다.1938년7월졸업.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전신, 대장: 김원봉)에 참가.
1940년 8월 29일 중국공산당(지부서기: 호철명)에 가입.
1940년 가을 태항산항일근거지에서 팔로군에 참가. 전투에도 참가하는 한편 부대의 수요에 따라 작은 신문도 편집하고 연극 극본도 쓰고 가사도 썼다.
1941년 12월 10일 하북성 호가장전투에서 대퇴골관통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였다. 그 후 예심에서 치안유지법위반죄란 판결을 받고 일본에 압송 되여 1943년 4월 29일 나가사끼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 미결가산 200일 언도를 받았다.
1945년 2월 감옥에서 다리절단수술을 받았다.
1945년 10월 6일 석방되고 서울에 돌아와 공산당에 속하는 조선독립동맹 서울위원회 서울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12월 ≪주간건설≫ 잡지에 소설 ≪지네≫를 발표. 그 후 1년간 륙속 ≪문학≫지에 ≪담배국≫, ≪신문학≫에 ≪균렬≫, ≪서울문학≫에 ≪어간유정≫ 등 10편을 발표하였다. ≪조선의용군≫이라는 단편집을 묶어 ≪한성도서≫에서 출판예고까지 했는데 월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
1946년 12월에 조직에서 파견한 간호사 김혜원녀사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갔다.
처음에 ≪로동신문≫기자로 있다가 외금강휴양소 소장을 지내기도 하고 ≪민족군대≫주필을 지냈다.
6.25전쟁이 폭발된 후 1950년 10월 중국으로 들어와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연구원으로 몇 년 있었다.
북경에서 중편소설 ≪범람≫, 단편집 ≪군공메달≫을 한문(漢文)으로 출판하였다.
1952년 12월 연길로 와서 연변문학예술련합회 준비위원회(주장 주덕해) 주임을 임명 되였다. 반년 후 사직하고 전업작가가 되였다.
1953년 9월 단편집 ≪새집 드는 날≫ 출판(연변교육출판사).
1954년 4, 8, 12월에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1, 2, 3부를 출판 (서울 1988년).
1956년 민족출판사에서 소설집 ≪고민≫출판.
1957년 5월 중편소설 ≪번영≫ 출판(연변교육출판사).
이밖에도 50년대초에 로신의 ≪아Q정전≫ 번역출판.
1957년 반우파투쟁확대화속에서 ≪반동분자≫로 획분되였다. (조선공민이기에 ≪우파분자)로 하지 않고 ≪반동분자≫로 모호하게 칭하고 ≪우파분자≫취급을 함.) 공직과 로임을 취소당하고 로동개조를 하면서 생활보조비 50원을 탔다. 몇 년후 작가협회 자료실에서 자료원으로 있었으니 여전히 ≪반동분자≫로 몰리웠다. 공직도 없고 로임도 없고 글도 발표할 자격이 없었다.
1964년부터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창작하기 시작하여 1965년 5월에 완성하였다.
1966년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이 폭발, 그 해 12월 반란파들에게 ≪20세기의 신화≫원고가 발견, 기소되여 감금 되였다. 이때부터 50원 생활보조비도 취소되였다.
1975년 5월 연변주법원의 10년 유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1977년 12월 만기석방, 그 후 3년간 계속 반혁명전과자 취급을 당하였다.
1980년 12월 연변주법원에서 ≪원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로 선고한다≫고 선포하였다.
1983년 국적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고 중국국적을 갖게 되고 동시에 정식으로 공직에서 리직하였다.
1983년 항일회상기 ≪항일별곡≫ 출판(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85년 ≪김학철단편소설집≫ 출판 (연변인민출판사).
1986년 3월 장편소설 ≪격정시대≫ (상, 하)출판(료녕민족출판사, 서울 1988년).
1987년 6월 ≪김학철작품집≫ 출판 (연변인민출판사).
1987년 8월 ≪발표불허≫하는 조건으로 ≪20세기의 신화≫원고를 찾았음.
1988년 산문집 ≪무명소졸≫ 출판 (서울)
1989년 12월 중국공산당 당적을 회복.
1994년 한국 KBS 해외동포상을 받았다.
1995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출판 (한국 문학과 지성사).
1996년 3월 산문집 ≪나의 길≫ 출판 (민족출판사).
1996년 12월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출판(한국 창작과 비평사).
2001년 김학철산문집 출판 ≪우렁이속 같은 세상≫ (창작과 비평사).
이밖에 수백편의 수필과 잡문을 여러 신문, 잡지에 발표.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다권집 ≪김학철문집≫ 출판중.
2001년 9월 25일 오후 3시 39분에 85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 출처 http://www.kimhakche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