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실현 위해 진짜 필요한 것
[기고] 의료공급체계 바로 잡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이은주(사회진보연대) 2011.01.14 22:20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 보장률을 90%로 높이기 위해서는 1인당 건강보험료를 3배 인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90%로 높아질 경우, 의료 쇼핑 등 의료 수요가 급격하게 높아져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건강보험재정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증가율 OECD 최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올리기는커녕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2007년 현재 GDP 대비 6.8%로 OECD 국가 평균인 8.9%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의료비 증가율은 1992년에서 2003년까지 6.9%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2-3% 정도인데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에 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누적 49%가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보장률은 61.3%에서 64.6%로 3.3%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민주당의 주장대로 재원을 조달하여 일시적으로 보장률 90%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의료비는 계속 상승하여 다음 해에는 더 많은 건강보험재정이 필요할 것이다. 대한병원협회 보고서의 주장에 타당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료비 상승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의 문제를 모른 척 하자는 것은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병원협회가 할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해야 할 것은 의료비 상승의 문제이다. 의료비 상승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것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의료비 상승의 주범은 바로 대형병원
의료비가 상승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의료비가 많이,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지출되고 있는 곳은 바로 대형병원이다. 이른바 ‘빅4 병원’이 건강보험재정에서 지급받은 건강보험급여는 2001년 4천68억 원에서 2006년에는 9천685억 원으로 5년 만에 2.4배로 늘어났다.
이러한 재벌 병원들이 주도하는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는 의료비 상승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1990년 전후로 재벌 병원들이 설립되면서, 3차 의료기관 간의 병상 확대와 고가장비 구입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3차 의료기관은 자신의 역할이 아닌 경증 외래환자들에 대한 고가진료와 서비스 과잉 제공, 새로운 비급여 개발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했다.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1990년 진료권역별 병상 수 상한제 폐지와 병상 신증설 절차 완화, 1998년 진료권역 폐지 등 이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의료비는 증가하게 되었고, 의료전달체계는 와해되었으며, 의료 시설의 지역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한편, 3차 병원의 영리추구행위로 인한 의료전달체계의 와해는 우리나라에서 1차 의료가 발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3차 병원에 경증 환자가 몰리면서 1차 의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영리추구에 더욱 골몰하게 되었고, 정보를 많이 갖지 못한 환자들은 의사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찾아 전전하는 ‘의료 쇼핑’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는 곧 의료비 상승과 연결되기도 한다.
결국 의료비 상승과 그로 인한 국민의료비 증가, 의료전달체계 파괴로 인한 1차 의료의 위기를 일으킨 주범은 대형병원이다. 따라서 대형병원의 주장처럼 의료비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에 보장성 강화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병원의 과도한 영리추구행위를 근절하여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고, 건강보험 보장률도 높여야 한다.
의료공급체계를 바로잡아야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의료는 영리추구의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제공되어야 한다. OECD 국가들 평균 공공병상 비율이 73%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병상 비율은 겨우 10% 정도로, 대부분의 의료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간의료기관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공공병원을 확충해서 의료가 공공적 성격으로 제공되어야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고 의료비 상승도 억제할 수 있다. 대형 민간 병원에 대해서는 병원 신증설 규제 강화와 지역별 병상총량제를 다시 도입하여 병원의 무분별한 대형화를 억제해야 한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수가체계는 병원의 영리추구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이를 변화시켜 병원의 과도한 영리추구경향을 제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병원이 의료행위를 할 때마다 보상을 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심사에서 삭감되지 않는 선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의료행위를 늘리려고 한다. 이는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수가체계의 문제점은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부분인 ‘비급여’이다. 비급여 영역은 급여 영역과 달리 심사도 받지 않고, 의료기관이 그 가격을 임의로 정하므로 의료기관이 마음껏 영리추구를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입원의 경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전체 비급여서비스 비용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들은 그동안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면서 병원의 이윤을 위해 부당하게 늘어왔던 비용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병원 간의 과도한 고가장비 구입경쟁과 이로 인한 과잉진료, 새로운 비급여 발생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대한병원협회 보고서의 결과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료기관의 영리추구경향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영리추구를 노골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민영화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