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 원인과 해법
- 한반도 비핵화 노선을 견지하며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하자
류주형 |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
현재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은, 세계적·지역적 차원의 미국 헤게모니와 한반도 차원의 냉전적 구도의 존속이라는 구조적 요인(역사적 기원)과 함께 ▲세계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와 ▲이에 조응하는 미일동맹·한미동맹의 재편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 등의 정세적 요인(현실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 지난 두 달여간 전개된 한미연합전력 대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4월 중순에 접어들며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이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 우리는 현 정세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감축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북한 사회주의와 핵무장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어느 정도 전제하는 것임
1.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
- (아버지) 부시 정부는 레이건 정부의 ‘2차 냉전’이나 ‘두 개의 중국’ 노선과 단절하며 탈냉전 시대 동아시아 전략 수립에 착수. 이후 탈냉전 시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주축을 공식화한 것은 클린턴 정부의 <교류와 확대의 국가안보전략>(1995). 이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일명 ‘나이 보고서’)를 통해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과 ‘교류’를 시도
-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아들) 부시 정부 1기에는 신보수주의적 국방부를 중심으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미중안보 검토보고서>, 2002). 반면 부시 정부 2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주요2개국(G2) 구상에 따라 2005년 미중전략대화를 시작하고 2006년에는 전략경제대화를 시작
- 1990년대 이후 역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조응하는 것. 노태우 정부는 (아버지)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 상응하여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소련과 중국과 국교를 체결하고,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각각 클린턴 정부와 (아들) 부시 정부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관
-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한편으로는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하는 모순을 내포. 또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과 연계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경제적 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부시 정부의 ‘예방전쟁의 교리’와 수렴(한미동맹 현대화)
2.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북핵 위기’
- 탈냉전 이후 북한은 한소 국교수립, 한중 국교수립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와중에 경제위기와 함께 에너지·식량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사실상 붕괴. 그리고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선군정치’가 출현. 선군정치는 인민군이 ‘주체혁명’의 방위자에서 그것을 완성하는 주력군으로 격상된다는 의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쳐 2000년대 들어 선군정치가 본격적인 핵무장으로 발전
-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 유지 ▲탈냉전 이후 중·소 핵우산 공백 ▲주한미군과 남한의 핵·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 ▲‘수직적 확산’을 유지한 채 ‘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려는 핵비확산조약(NPT) 체계의 이중 잣대 ▲경제 봉쇄·제재 ▲첨단 재래식 무기 대비 핵무기의 비용의 상대적 우위 등이 북한의 핵무장을 유발한 요인
- 1993-94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폐연료봉 추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제재안 결의로 빚어진 1차 위기 국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대가로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 2기,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 그러나 미국의 제네바 합의 불이행, 1998년 북한의 3단계 로켓을 발사 실험, 2000년 ‘조미 공동 코뮤니케’ 체결(미국이 북한에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약속하는 대신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을 검토하기로 함) 등 사태가 전개
- 그러나 부시 정부가 출범 이후 미국은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 기의 북한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으며 기존 합의를 파기. 또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 미 국무부가 같은 해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여부를 추궁하면서 2차 위기 국면이 시작. 이에 북한은 ‘인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NCND)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할 것을 제안. 미국의 제안 거부와 그에 뒤이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 IAEA 사찰단을 추방, NPT 탈퇴 (재)선언으로 또다시 위기 국면 조성. 이 국면은 2003년 8월 6자회담 개최로 일단락
-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합의, 2007년 10·3 합의 등이 도출.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 틀은 사실 북미협상이라는 1:1 협상에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을 5개 나라로 분산하는 구조.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와 연계. 북한은 2008년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했고,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 그러나 또다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 의혹이 제기되면서 같은 해 12월 결국 6자회담은 결렬
-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2009년 2차 핵·미사일 실험, 2012-13년 3차 핵·미사일 실험으로 단계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제고.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핵 공갈과 그에 따른 갈취의 악순환만 조성했다는’ 인식이 확산. 이는 오마바 정부의 ‘은근한 무시’와 ‘전략적 인내’ 정책기조에 반영되는데, 이는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음
3.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
-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제로금리·수량완화·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과 같은 비상위급대책을 실시. 이에 힘입어 미국은 ‘더블딥’을 예방하는 데 얼마간 성공하지만, 그러나 일련의 정책은 금융위기로 인한 민간의 부채를 정부의 부채로 이전한 것. 이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와 달러위기의 가능성을 함축
- 현재 미국은 고실업의 장기지속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경기회복세가 개선되지 않고 있음. 유럽연합의 재정위기·은행위기를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추가적인 적자재정정책 실행의 곤란과 주택시장의 부진이라는 두 가지 역풍에 직면. 비상위급대책에 의해서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차선책이 동원되고 있음
- 2011년 오바마 정부가 ‘태평양으로의 선회’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플랜 B’가 본격적으로 전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미중 관계(G2)를 강조하면서도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동맹(G3)을 강화하는 이중 노선으로 구성. 이중에서도 최근 부각되는 것이 바로 한미FTA를 모형으로 삼아 환태평양파트너쉽(TPP)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로 발전시키려는 구상. 이러한 대외전략은 현재 미국의 군사전략에도 반영되어 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으로 구체화. 즉 오마바 정부는 2011년 이라크 철군과 2014년에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기존 부시 정부의 유럽·대서양 중심 정책을 아시아·태평양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
- 이에 따라 미국의 군사력 투사 범위가 본토에서 일본·한국, 인도네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 이에 동반하여 미국의 군사정책도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해상·공중전’ 개념으로 전환. 이에 조응하여 한미일 군사동맹의 재편 및 강화가 적극 추진. 단적으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사령부(KORCOM)로 재편. (참고로, 2012년 제출된 미국 아미티지·나이의 <미일동맹 보고서>는 ‘북한의 호전성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한일 양국의 진정한 전략적 도전이며, 따라서 공통의 가치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한미일 민주동맹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 여기서 ‘가치 동맹’이란 곧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의미하며, 이 보고서는 결론 중 하나로 한일정보협정 체결을 강조.) 이러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
- 한편, 오바마 정부 하 2010년 제출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수 있다는 옵션을 유지했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축소될 수 있으니 ‘3원 전략 핵전력’(전략 폭격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사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망(MD), 재래식 장거리 타격 능력을 유지해 전략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힘. 이는 오바마 정부의 선전대로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북한이나 이란 같은 비확산 체제의 이탈 세력을 관리하여 핵독점 체제를 유지하려는 명분일 따름
4. 북한의 3차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전력의 핵 위협
- 북한은 작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1주기를 명분으로 로켓 실험을 강행. 이번 로켓 실험 성공은 이미 확보한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에 도전했다는 의미로, 향후 과제는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의 소형화·개량화 실험.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올해 2월 3차 핵실험을 단행
- 이에 3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이후 국제사회가 한층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돌입하는 한편 한미연합전력은 3-4월 확장억지 성격을 지닌 대북 무력시위를 본격화. 한미연합훈련에서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폭격기 B-2, 핵잠수함 샤이앤이 동원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미국은 북에 대한 핵위협을 실제화. 또한 한미 양국은 북한의 국지도발시 도발원점과 지원세력, 지휘세력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한미국지도발대응계획’도 발효
- 동시에 북한도 3월 들어 대미 공세 수위를 한층 높임. 최고사령부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5일), 외무성의 ‘핵 선제 타격권 행사’ 발언(7일), 조평통의 ‘남북불가침합의 무효’ 선언(8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선언(27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은 강력한 핵 선제 타격이 포함된다”), ‘남북 관계 전시상황 돌입’ 선언(30일). 또한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과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 ‘우주개발법’). 그 후속조치로 2일에는 영변 핵시설 용도의 조절변경을 언급했는데, 이는 기존 핵시설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음
- 이번 국면에서 양측의 작용-반작용은 동아시아의 핵·군비 경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있음. 우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사활적 과제로 추진 중인 ‘태평양으로의 선회’ 전략은 이번 국면을 계기로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단적으로, 미국은 그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온 MD 체제의 당위성을 이번 계기를 통해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었음. 게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 무기 외에도 F-22 스텔스전폭기, SBX 레이더,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과 같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는 파격적 군사 조치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격 실행
- 이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축을 이루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음. 비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재처리 시설을 공인받고 있으며 핵물질과 핵기술 두 측면에서 언제든 핵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일본도 북한의 핵·미사일을 빌미로 핵무장화와 ‘보통국가화’를 계속 시도(2011년 무기수출금지 3원칙 수정, 2012년 우주관련법 개정, 2013년 2월 ‘긴밀한 미일동맹이 완전히 부활했다’ 선언, 3월 TPP 협상 참가 결정, 4월 주일미군 재편 협정을 마무리)
- 남한에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핵억지력 제고 주장이 힘을 얻고 있음(‘핵으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재래전 중심의 군비경쟁논리나 억제 방어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을 강화하여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핵우산 등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자적 대북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전략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술 더 떠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속속 제기되고 있음*
* 물론 정부는, 전자의 경우 ‘국제법상 불법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세계평화 차원에서 부도덕하며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동북아에서 미중 간 새로운 갈등요소로 등장할 것이므로 미국이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부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해서라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 측의 공약과 양해를 얻어내는 기제로 활용하기 위함. 가령,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남한이 동맹국과의 조정·합의를 거쳐 핵연료 생산 및 재처리 공정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면 향후 유연하고 다양한 핵 억제 전략을 구사할 토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
5. 평화운동의 과제: 한반도 비핵화와 적극적 평화주의
- 최근 두 달간 전개된 한미연합전력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적 충돌은 물론 핵전쟁의 가능성이 엄연히 실존함을 보여줌. 현재 상황은 ‘한반도 비핵화’를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고 절실한 현실적 요구로 제기. 안타깝게도 남한의 사회운동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기 엇갈린 해답을 갖고 있음
- 현재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이하 반전평화국민행동)으로 결집한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등 범 민족해방 계열은 ‘관련국의 군사적 행동 중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시작’을 요지로 하는 입장을 발표. 북미 군사대결 과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북에 대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 그러나 이 주장의 밑바탕에 깔린 오류와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협상수단 또는 자위수단으로서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해야 한다는 관념, 또는 최소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을 내포
- 우선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 ‘사실상의’ 핵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핵비확산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실 가능성이 크지 않음.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 부수적으로는 주변국의 보수적·호전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여 진보적 평화운동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도 낳을 수 있음
- 다음으로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2006년 1차 핵·미사일 실험 이후 최근까지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한 협상용이라거나 자위용으로 간주할 수는 없음. 2012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 미국과의 일괄타결이냐 전면전이냐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대결 논리는 처음부터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었고 그 판돈은 점점 커지고 있음. 그에 따라 남한에서는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실정
-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확장은 고사하고 대중적 토대마저 유실할 위험이 큼. 강조하건대, 핵전쟁에서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 사이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핵무기 그 자체가 전쟁의 억지 요인이 아니라 유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함. 핵 전략가들은 상대방의 핵 선제공격에 대해 핵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핵전쟁을 합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며 ‘공포의 균형’을 정당화함. 그러나 전쟁의 가능성 또는 현실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음. 또한 우리는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함. 전쟁을 예방한다는 것은 예상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위험, 하지만 그 대가가 인류전체의 절멸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에 대응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임
- 남한의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함. 아울러, 설령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고 그 결과 일정한 타협이 도출되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력, 한미일 삼각동맹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는 근본적으로 침식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음. 동아시아 핵경쟁 또는 전쟁위기의 근본적 유발요인인 주둔미군의 철수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해체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북미 간의 대화나 협상이 갖는 제한적 의의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음
- 남한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자신의 일관된 요구로 채택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폐기,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의 군비 증강 반대와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함. 끝.
(2013.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