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에 대하여
금융지주회사 설립 허용과 경과
정부의 2단계 금융구조조정 방안의 핵심은 이른바 '시장주도의 금융 구조조정'과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 그리고 '금융지주회사 설립허용'이다. 은행, 보험, 증권, 종금등으로 나뉘어 있는 금융기관간 겸업규제를 철폐/완화하고,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자율적인 비우량 금융기관의 퇴출을 유도, 거대종합금융 그룹의 설립을 촉진하여 금융 국제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본래 지주회사 제도는 80년대에 공정거래법상 금지되었던 제도이지만 지난 97년 이후 재벌개혁의 대안으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다가 지난해 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개혁과제의 하나로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을 제시하고 금융지주회사법 제정이 추진되면서 비로소 2001년 이후 허용 방침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유한 시중은행 지분(주1)을 매각하면서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은행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은행 지분을 조기에 매각해야하는 이유로 정부가 설명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추세에서 공적자금을 하루라도 빨리 회수해야 한다점과 둘째, 국제통화기금(IMF)와 외국에서 은행지분을 조기에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보유한 한빛, 조흥등 금융기관의 주가는 현재 매우 낮아 시장에서 매각해봤자 별 실익이 없다. 또 자칫 정부 보유 은행주식의 막대한 물량이 한꺼번에 방출되면 증시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정부가 내세우는 유력한 방안중의 하나가 바로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이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여 해당 은행의 주가를 올리면서, 동시에 시장에 내놓을 주식 물량도 줄여 증시에 미치는 충격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적어도 올 4월내로 지주회사 설립에 관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하반기내에 실제 추진될 계획이다.
정리하자면, 정부측의 금융지주회사 제도의 직접적인 도입 이유는 안정적인 추가 공적 자금마련과 국유은행 민영화의 추진이며, 이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세계적인 금융겸업화와 대형화추세에 조응하는 금융산업재편을 통해서 금융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지주회사(Holding Company)란 지배회사, 모회사라고도 하며 타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기업을 산하의 종속회사, 즉 자회사로하여 지배/관리함을 전문으로 회사를 말한다. 그러니까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기관의 주식소유를 통해 특정 또는 다수 금융기관의 지배 및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금융부문에 이같은 지주회사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여러가지 변화가 예상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소유 및 지배구조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금융기관에 확실한 주인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은행 주인 ?아주기]이다. 정부와 자본의 금융지주 회사 도입논거의 핵심 역시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내금융산업 낙후의 원인을 오랜 관치금융을 겪으면서 실질적인 주인이 없거나 있어도 주인행세를 못하는데서 비롯된다는데에 입장을 함께 한다. 그 결과 금융기관의 공공성은 높을지 몰라도 시장기능의 제약으로 효율성은 떨어질수 밖에 없어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심각한 자산 디플레이션의 압력속에서 준금융공황으로 고민해온 일본이 결국 지주회사제를 재도입키로 한 것 역시 같은 논거의 조치였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두가지의 주장이 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상통하는 입장이다. 하나는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이 산업자본과 기존의 재벌을 견제할 것이라는 정부측의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주회사의 도입으로 인한 기업지배구조의 합리화는 바람직하지만 공적자금 회수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재벌측의 금융지배가 우려된다는 김상조 교수식의 비판(주2)이다. 얼핏보면 둘의 주장은 모순되어서 마치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은 재벌의 금융지배를 허용하지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견제할 것이라 하고, 한쪽은 오히려 이러저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재벌의 금융지배가 우려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는 재벌의 지배대상도 아니고 재벌을 견제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의 인간으로의 진화를 놓고 인간의 견제인가 원숭이의 지배인가를 다투는 꼴이다. 물론 지주회사의 등장으로 모든 재벌들이 당장 해체되거나 재벌들이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주회사 제도의 도입은 재벌 지배체제의 질적인 진화를 의미한다. 또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에 재벌의 참여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은행을 제외한 금융부문의 재벌참여는 열려있기 때문에 재벌의 금융장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새로운 의미의 '금융독점자본'인 금융지주회사의 등장이지 재벌의 금융지배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만 산업재벌을 견제하기위해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을 추진한다는 정부측의 주장이 의도하는 바를 옳게 이해할 수 있다. 비판은 재벌의 진화태인 지주회사 자체와 국가금융부문의 민영화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의 도입에 가해져야하며 그들이 의도하고 있는 새로운 기업지배 구조의 반민중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에 대해 가해져야한다.
재벌개혁인가 해체인가도 마찬가지이다. 김상조 교수는 마치 재벌해체를 주장하면 그것이 자신의 신자유주의적 지향성을 혁명적인 입장으로 바꾸어주는줄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김대중의 재벌개혁(해체라고 해도 좋다)과 이에 저항하는 재벌의 입장을 굳이 비교하여 상대적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주제라면 몰라도 반독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의 차이는 속도와 주도권의 다툼일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김대중과 김상조교수의 재벌해체론이야말로 지주회사의 완전한 도입을 의미하는 미국식 법인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도입으로서 더욱 위험한 주장일 수 있다. 각 재벌그룹들의 회장실(또는 산하 기획조정실)이 폐쇄된 상황에서 지주회사는 그룹 계열사를 자회사로 재조직하여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법적 실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뿐이다. 오히려 지주회사제도에 대해 재벌은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과 내부거래 문제 해결뿐 아니라 결합재무제표 작성도 용이하게 할것으로 기대하고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의 반독점국의 반독점의 의지는 오히려 김상조교수보다 월등하고 실무적으로 철저하다. 그렇다고 누가 미국자본주의를 반독점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하겠는가. 80년대 미 반독점국의 AT&T 해체는 독점을 해체하기는커녕 미국 통신산업의 전세계적 독점적 지배력을 90년대 인터넷 시대로 이어지게 했다. 최근의 MS사 해체 소송에 관한 반독점국과 빌 게이츠간의 극한 대립 역시 미국 인터넷 산업의 세계시장 지배전략간의 대립일뿐 독점자본과 반독점 민주주의간의 대립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로 가든 서울가는 놈들이야 같은 차를 타든 말든 둘중에 누구도 부산가는 사람과 같은 차에 탈 수는 없다. 한시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살펴보자.
과연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의 배경인 동시에 결과인 은행의 겸업화와 대형화는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로서 이에 발맞춘 국제경쟁력 구비의 필수요건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발맞추기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발적 대응이 아니라 강제적인 금융부문의 아메리카화와 종속적 투기적 금융화에 대한 복종을 의미할뿐이다.(주3) 또한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을 전후로 한 금융빅뱅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지난 1차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대량의 실업과 고용불안사태를 동반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이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을 통해 이루려는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기업지배/소유구조 아메리카화의 첨병으로서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앞세우려는데 있다. 즉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은 일반지주회사 제도의 전면적이고 안정적인 도입의 전초전이다. 일찍이 온라인 전산망을 기틀로 인터넷 정보화의 토대를 닦아온 금융산업은 어느 분야의 산업보다도 지배/소유구조의 개혁이 용이할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역시 대단히 크다.
지난해 5월 기업지배구조 원칙(OPCG)를 제정·공표함으로써 글로벌 스탠다드 혹은 최소 규범의 이름으로 기업지배구조의 아메리카화를 대변하고 있는 OECD는 이미 지난 95년 이후 산하 금융시장위원회 주도의 논의를 통해 금융산업구조 재편에 의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추동에 대한 상세한 안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핵심적인 논의내용은 크게 첫째,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기관투자자들의 역할 조정에 의한 폐쇄형 기업지배 시스템에서 개방적 시스템으로의 전환과 둘째, 금융산업 재편에 의한 기업(경영)책임의 재고와 공시제도 강화의 두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폐쇄적 기업지배 시스템이란 라인형 또는 일본형 자본주의가 공통되게 유지해온 특징인 공공적 성격의 은행-금융업무에서 비롯된 기업-주거래은행-정부간의 사회적이고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관치금융의 폐해와 금융부문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여 영미식 구조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지못한 결과를 낳게 되므로 이를 개방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이 OECD의 결론이였으며 우리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에따라 중앙은행의 독립과 국유은행의 민영화를 기점으로 한 금융부문 구조조정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또한 OECD의 논의는 이에 그치지않고 기업지배구조 아메리카화의 핵심적 가치인 주식소유분산과 주주이익 극대화의 양대가치 실현을 위해 그동안 기관투자자들이 대변해오던 소수주주의 권리를 소수주주권의 보강과 주주권 행사의 강화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NGO운동의 포괄하는 새로운 동원전략을 마련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참여연대, 경실련등의 소액주주의 운동이 크게 일어난다. 경영책임의 강화와 공시제도 역할의 강화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것인데, 이는 주로 기업의 자금조달원천이 은행과 국가등의 기관투자자들에서 국제주식시장으로 변경된 사정에 따른 시장과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전문경영인제도), 시장투명성의 재고(관치금융의 탈피), 소액주주권 보장을 통한 독점의 규제는 모두 '주주이익극대화'의 다른 이름일뿐임을 분명히 해야한다
이같은 기업소유/지배구조 변화의 후과는 단순한 [은행주인 ?아주기]나 합리화를 초과하는 변화를 초래하며 관치금융의 폐해를 극복하기는커녕 관치금융으로 인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일방적 수탈과는 전혀 새로운 양상의 전방위적 공격이 개시된다. 기업내 의사결정과 경제질서 전반에 걸쳐 '주주이익'은 유일하고 신성불가침한 기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경제 정책의 공적 성격을 파괴하며 기업과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체계적으로 배제되거나 이해관계자의 하나로서 재포섭됨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경제-사회적 상태와 지위는 극단적으로 불안정화된다. 또한 소유와 분리된 전문 경영자는 채권자인 (국가)금융기관이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정치-경제적으로나 법적 도덕적으로 해방되며, 노동자들과의 관계 역시 주주이익을 위한 동일(?) 고용자의 위치에서 재설정됨으로써 개별화된다. 성과급 임금제가(연봉제) 도입되어 단체협약 체결권에 기반한 단결권은 근본적 위기를 맞게되며 노동자의 일부는 주주의 이익과 책임으로 포섭된다.
주주이익의 극대화속에서 독점은 일면유지-일면강화되지만 주주 유한책임주의로 인해 아무도 책임지지않는 가운데 노동자와 주주, 경영자간의 1:1:1의 관계속에서 노동자들은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살해되는 것이다.('American Coporation Capitalism' 즉, 미국식 법인자본주의의 위험.)
주1) 현재 정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 지분을 보유한 은행은 한빛(74.65%) 조흥(80.05%) 서울(97.78%)등이다.(매일경제, 2000년 2월24일자) 이들 지분은 주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다. 예금보호공사는 98년과 99년의 금융 구조조정과정에서 총 18조원을 출자했으며 그중 시중은행에 대한 출자금액은 13조원이다. 1999년 9월말 (현재 시주은행, 지방은행, 외은 국내지점등을 포함한) 일반은행 전체의 납입자본금이 26.1조원임을 감안하면 예금보험공사는 우리나라 민간은행 전체주식의 50%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김상조, [금융지주회사의 논의배경과 새로운 과제], 민주노동과 대안 2000년 2월호 참조)
주2) 김상조, 앞의 글
주3) 국내 최대 시중은행이라는 국민은행의 자산은 지난해말 83조원이다. 이는 미국의 지방은행인 보스턴은행 다음인 세계 1백12위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50위권 안에 들려면 자산 랭킹 1~3위인 국민, 한빛, 주택은행을 다 합쳐야 한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세계 50위권의 선도은행(리딩뱅크)을 만들겠다는 정부구상이 얼마나 요원한 얘기인지 알 수 있다. 국내 16개 일반은행의 자산을 다 합치면 5백30조원이다. 이는 세계 1위(1998년 기준)인 일본 도쿄 미쓰비시은행(7백85조원)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하고 5위인 영국 홍콩 상하이은행(5백68조원)에도 훨씬 못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