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탄압의 정치경제학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당원)
○ 헌법적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기본권
한국에서 헌법상의 권리 중 가장 쉽게 무시당하는 것은 노동기본권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느닷없이 지난 10월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을 통보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명분으로 했지만, 그냥 전교조가 싫었던 것이다. 전교조에 앞서 공무원노조도 정부는 온갖 트집을 잡아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했었다. 심지어 공무원노조는 노동부 요구 사항 상당수를 받아들였음에도 정부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신고를 반려시켰다. 한국은 정권의 기호에 따라 헌법상의 기본권인 노동기본권이 쉽게 무시될 수 있는 나라다.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노동기본권이 무시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이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당장 앞의 두 노조는 노조법 상의 노조가 아니라 특별법 상의 노조다. 단결권, 단체교섭권도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단체행동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정치활동 금지 조항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정부가 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고, 조합원 가입범위 역시 대통령령으로 규정되어 있어 정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제약을 국무회의 의결만 거치면 되는 시행령으로 규제할 수 있고,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는 만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노조의 아무 활동이나 트집을 잡아 노조를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과 교원에 관한 특별법보다는 낫지만 노조법 역시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노조법 2조는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해 아주 좁게 규정을 함으로서 특수고용노동자와 노조결성과 가입을 원천봉쇄하고 있으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실제 사용자(원청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하는 것도 가로막고 있다. 노동기본권은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권리임에도, 노조법은 해고자나 구직자의 노조가입을 제약하고,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강제로 기업 단위 다수 노조에게만 교섭권을 허용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건 누더기로 노동기본권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권리마저도 사용자가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3년 이하 징역에 3천만 원 벌금이 최고형이다. 그나마도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용자는 지난 10년간 없다. 예를 들면 청문회와 관련 문건의 공개로 그 실체가 정확하게 밝혀진 창조 컨설팅의 노조파괴 공작에도 처벌된 사용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사용자가 노조를 와해할 목적이면 마음대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다 걸려도 그다지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구호 중 가장 많이 외쳐지는 것은 “민주노조 사수(死守)”다. 결의와 비장함이 느껴지면서도,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구호가 아닐 수 없다. 은 헌법적 권리인데, 민주화 이후를 이야기하는 시점에서도 이 헌법적 권리들을 목숨을 내걸면서 인정받아야 하니 말이다.
○ 산업적이고, 정치적인 전략적 노조탄압
한편, 지난 몇 년간 발생한 노조탄압의 특징은 개별 기업의 판단이 아니라 산업적, 정치적 전략이 우선되어 노조탄압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예를 보자. 2009년 쌍용차지부의 점거파업에 대한 군사작전 식 탄압은 이후 금속노조는 3년 간 매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금속노조에서 발생한 노조탄압은 개별 사용자들의 의지보다도 청와대와 현대차의 전략이 핵심이었다. 청와대와 현대차는 금속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금속노조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지역지부의 골간 지회들을 타깃으로 삼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미리 진행하고, 직장폐쇄와 용역깡패를 통해 속전속결로 노조를 무너뜨렸다.
첫 번째 타깃은 파업 시 현대차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부품사들이 밀집되어 있던 경주였고, 그 경주지부의 핵심 노조였던 발레오만도지회였다. 2009년 말부터 현대차와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 시 중국을 통한 역수입 공급계획을 짰고, 검찰, 경찰, 노동청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노조를 빠르게 제압할 작전을 수립했다. 2010년 2월에 직장폐쇄가 이뤄졌고, 용역깡패가 투입되었으며, 노조 핵심 간부들에 대한 해고와 구속이 이뤄졌다. 이 패턴은 2010년 5월 구미지부의 가장 큰 노조였던 KEC지회, 2010년 8월 대구지부의 가장 활동적 노조였던 상신브레이크, 2011년 5월 충남지부와 대전·충북지부의 핵심이었던 유성기업지회, 2012년 7월 경기지부에서 가장 조직력이 쎈 노조 중 하나였던 SJM지회와 금속노조 기업지부의 상징 중 하나인 만도지부로 이어졌다. 이 사업장에서는 모두 현대차의 사전계획이 있었고, 청와대의 지원이 있었다.
현대차의 목적은 분명했다. 현대차는 2천 년대 초반 이후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로 부품 공급 관리를 설정하고, 현대모비스를 세우는가하면 동시에 국내 주요 부품사들이 적시에 현대차가 생산하는 차량 종류대로 부품을 납품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마디로 이른바 도요타 적시공급체계(JIT)를 넘어서는 비용절약을 달성해보겠다는 야심이었다. 적시적서열공급(JIS)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시스템은 실제 현대차가 기술 열위에도 불구하고 세계 탑 메이커들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을 내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금속노조였다. 현대차가 자랑하는 이 공급사슬관리(SCM)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품사에서 파업이 통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고가 최소화된 상태에서 금속노조가 파업을 하게 되면 현대차가 직접 타격을 입는다. 현대차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더라도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부품구매부에 노무팀 핵심을 두고 금속노조 사업장 전체를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이를 그대로 실행해 옮겼다. 금속노조의 핵심 골간 노조들을 골라, 집요하게 파괴공작을 벌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청와대의 목적 역시 분명했다. 더 이상 긴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다. 촛불시위 이후 반대세력에 대한 사전 조치를 분명히 한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팀을 운영했고, 노사관계 부분에서 전문가였던 이영호는 민주노총의 중심이었던 금속노조를 꽤 꼼꼼하게 무력화시킬 계획이었다. 현대차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그대로 실행이 이뤄졌다.
박근혜 시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양상은 그대로다. 자신이 사용자이기도 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탄압은 공안정국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졌고, 보수세력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두 노조가 타깃이 되었다.
◯ 이건희 회장의 무노조 철학으로 1백만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는 나라
삼성의 반노조 정책은 한국에서는 상식에 가깝다. 고용노동부도 알고 시민들도 안다. 얼마 전 폭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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