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별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에 대한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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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단체 : 교수노조·교육학생연대·진보교육연구소
1. 의견서 제출 이유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는 지난 8월 19일 재경부 공고 제 2002-88호를
통해『경제특별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이하 '경제특구법안')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경제특구법안'은 제정이유로, "2002년 7월 24일 정부가 마련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에서는 향후 우리나라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육성하기 위하여 공항·항만 등 물류시설의 확충 및 관련 제도의
정비, 경제특별구역의 지정을 통한 체계적인 개발, IT 인프라의 구축 및
외국인 친화적인 경영·생활여건 조성 등의 정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으며, 이 중 경제특별구역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함" 이라며,
교육부문과 관련된 내용은 주요골자 '바'항을 통해 "경제특별구역에서는
외국교육기관이나 내국인에 의한 외국 교육기관 분교·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이 경제특별구역에 있는 외국 교육기관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없도록 함"이라 규정하고, '제13조(외국교육기관의
설립·운영)'에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 7월 15일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외국 '우수'
대학원 유치 적극 추진」계획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관련
교육부문 방안」에 나온 각종 교육개방조치들을 7월 24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으로 수렴하여, 7월 29일자 정부시안으로 확정한 뒤 이를
구체적으로 법제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지난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개발아젠다(이하 'DDA')에 따른 GATS(서비스무역일반협정) 협상 일정에
따른 교육 시장 개방에 대비해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화'를
촉진시키고자 외국대학(원)의 국내 진출을 쉽게 하는 '특례규정'을 마련하며,
동시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사업으로 △ 원어민 외국어
보조교사 초청사업 확대, △ 외국인 학교 설립 확대, △ 국제고등학교 설립,
△ 외국인 교수 초빙사업 지원 등을 추진한다는 정부방침이「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에 '외국기업 경영환경 개선', '외국인 투자지역 인근
의료·교육시설 설치 지원' 등 명의로 확정되어 이번 경제특구법안 제13조를
통해 법제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외국투자유치를 위해서는 온갖 특혜를 주면서,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권과 교육권을 심각하게 말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교육기관이나 내국인에 의해 설립될 외국대학(원)과 외국인 학교 등에
온갖 특혜를 주며, 내국인 입학자격제한을 완전 철폐하여 교육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우리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과 발전을 심하게 왜곡할 것입니다.
2. '경제특구법안'의 구체적인 문제점
첫째, 외국교육기관이나 내국인이 설립주체가 되어 교육본연의 목적은 망각한
채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함으로써 질 낮은 교육이 이뤄질 뿐만
아니라, 수익이 없을 경우 고의적으로 파산하여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이 짊어지게 됩니다. <법안 제13조제1항>
사립학교법 제2조제2항과 제3조 및 제10조는 학교 설립주체·운영의 공익성과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그러나 경제특구법안에 따른
외국교육기관은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어, 설립시 엄청난 특혜를 받고
등록금만으로 운영하며 노골적인 영리성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더구나 올해 5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교육시장 개방 관련 OECD/US 국제포럼' 참석 결과 보고서(교육부, 7월
15일자 공개)」에는 "현재로서는 외국에 분교설립 등 해외 교육시장 진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우수 대학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일부 외국의 사이버 대학·사설 온라인 프로그램 제공자·어학학원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사업자만이 관심을 보인다(밑줄강조는 인용자)"고 되어
있어, 애초 취지대로 외국 우수 대학(원) 유치란 요원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질 낮은 대학(원)이 '특혜에 따른 투기'나 '학위판매를 통한 이윤추구' 등
영리성을 목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를 뒷받침할 사례로, 2001년 5월 19일 입학식을 치른 '뉴욕시립대
버룩칼리지 경영학 석사과정'을 들 수 있습니다. 7월 30일자 인터넷 유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은 단 이틀 간 강의 진행 후 문을 닫았는데, 피해를 본
13명 입학자는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7월 25일 학위과정폐지 피해에 대한
배상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대학은 외국 유명 대학으로 알려져 있고, 세계적인
회계컨설팅 회사인 KPGM사가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신문광고까지 게재했으나
실제로는 애초 약정한 38명분의 등록금(1년 4학기 과정 1인당 총 2천5백
만원)이 되지 않고, 최종 입학일 등록자가 13명에 그쳐 학위과정이 폐지된
것으로 이후 경제특구법안이 통과되어 법제화된다면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학력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해지고, 박사·석사 및 대졸
실업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대학별로 대규모 미달사태가
예상되는 가운데, 대학부문이 개방된다면 외부충격에 의해 우리
고등교육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것입니다. 더구나 외국대학은 '학위판매'에만
열중하여 학력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키고, 교육시설·여건 및 운영투자는
특혜조치에 따라 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고등교육의 질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을 지 문제시됩니다. 그리고 외국대학과 신입생 유치 경쟁 등에 몰리게 될
우리 대학들의 경우, '재정압박'을 먼저 받게 될 지방대·전문대는 문닫는
경우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둘째, 수도권정비계획법 상의 규제를 없애고 수도권 내에도 외국교육기관의
설립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할 것입니다.<법안 제13조제2항>
수도권정비계획법 제7조 및 제8조는 과밀억제권역이나 성장권역 안에서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학교·공공청사·연수시설 기타
인구집중유발시설의 신설·증설(용도변경을 포함하며, 학교의 증설은
입학정원의 증원을 말한다)"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도시화·산업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에 따르면, "「5-6
의료·교육·주택 등 외국인 생활시설에 대한 지원」이란 항목에서 □
지자체가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설치하는 교육·의료·주택시설에 대해
소요의 50%(수도권 40%)까지 정부가 지원할 수 있으나 …(중략)… □
지자체의 외자유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상기 근린 생활시설은 외국인
투자지역 밖에 설치되는 경우에도 지원 …(중략)… □ 한편, 외국인학교에
대한 지자체 지원과 관계없이 국고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방안 검토 ㅇ
경제특구와 같이 사전적으로 외국인 투자환경 조성이 필요한 경우 지원을 보다
강화 □ 대도시권의 기존 외국인학교 시설 확대와 학교 설립도 지원하는 방안
검토 <예> 대도시내 일정 부지를 재정으로 매입한 후 무상임대 조건으로
3∼4개 외국인학교를 유치하는 방안(중략 및 밑줄 강조는 인용자)"이라 되어
있어서 서울·인천 등 수도권이나 부산 등 대도시 안에도 외국인학교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입시열과 사교육비 지출에 따른 서울 강남·북간,
도시·농촌간 교육 격차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도시에 정부·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외국인학교가 생긴다면 이는
평준화로 그나마 유지되어 왔던 공교육체계의 근간을 뒤흔들며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로 입지를 굳혀 국민적 위화감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거기다 우리의 경우는 '재외국민 특례입학'을 통한 입시비리가 빈번합니다.
예컨대 2001년 3월 19일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켄트 외국인학교는
졸업생들의 대학 부정입학으로 물의를 빚었던 곳인데 스스로 인가지침을
어기고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내국인 학생을 무더기로 입학시켰다가 25명이
제적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 외국인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 120여명 중
110여명이 한국인이라는 언론보도도 있습니다. 이런 학교의 최고 등록금은
1300여만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각종 기부금 입학 등 뒷돈을 주고 입학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알려져 있어 사학비리의 또 다른 형태가 속출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상당수의 외국인학교는 운동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시설이 사설학원보다 열악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교육시설도 경제특구법안이
법제화 됨에 따라 인정되는 꼴이 됩니다.
셋째, 경제특구 내에 있는 외국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내국인에 대해 제한할 수
없다고 하여, 애초 내세웠던 외국인의 생활여건 개선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국인이 들어가는 학교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법안 제13조제3항>
원래 외국인학교란 '외국인을 대상으로 그 나라의 언어·전통·문화 등을
교육하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특구법안은 외국교육기관에서
내국인을 무제한 받아들이게 하여, GATS 협상 이전에 정부 스스로 교육개방의
폭을 엄청나게 늘려놓고 있습니다.
외국인학교는 수 십 년 동안 설립 운영되어 왔으나, 이 학교 졸업생인
외국인 자녀들의 국내 상급대학 진학 불이익이나, 처우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
회사가 증가하였다 하더라도, 그 자녀까지 데리고 국내에 이주하여 생활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입학 완전
허용이란 문제는, 외국인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의 원 뜻을 생각할 때,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기존의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 정책과 결부되어 교육의 공공성을 더욱
피폐화시키고, 공교육의 파행을 부추기게 됩니다.
예컨대,
교육시장 개방이 실질적으로 추진되는 것이므로, 개별 대학은 더욱더
생존경쟁에 따른 학과간 통폐합을 가속화시키고, 기부금 입학 등의 사회적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재정확보책을 강행할 것이며, 개별 기업의 이익에만
종사하는 실용학문에만 나서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학구성원인
교수·강사·교직원·학생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2001년 8월 25일 교육부에서 입법예고한
『외국인학교설립·운영규정(안)』은 외국인 학교 과정이수를 곧바로
'학력'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입시'에 맞춘 교육과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서, 경제특구법안 통과와 함께 입시학원화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입시에서 내신성적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일반
고등학교·특목고 등에서 내신성적이 나쁠 경우 외국인 학교로 편입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교육시장 개방 협상 과정에서 이보다 더 큰 폭의 개방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시장개방에서 문제가 될 것은 '교육의 비영리성과
공공성'인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특구법안 제13조는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담보할 거의 모든 조치들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다른
국가와 해외 교육자본이 교육시장 개방 압력을 넣을 때, 막아낼 구실이
없어집니다.
3. '경제특구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외국교육기관에는 온갖 특혜를 보장하지만, 실제 외국인의 생활여건
개선과 전혀 관련 없는 법안 제13조는 완전 삭제되거나 전면 수정되어야
합니다. 경제특구에 투자유치를 위한 여건마련을 위해 외국교육기관을
설립한다고 내세우지만, 이번 법안은 외국교육자본과 이들과 합작하는 국내
외국어학원의 이윤추구를 위한 특혜를 베풀어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사립학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공익성에서조차 면제된 이런 학교가
경제특구와 그 외 지역에 세워지게 되면, 그 결과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외국대학 분교와 외국인 없는 외국인 학교의 난립일 뿐입니다.
둘째, 노동권을 심각하게 유린하며, 교육·의료 등의 개방을 가속화시키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가져올 법안의 전면 철회를 주장합니다.
셋째, 이런 문제에 대한 공청회 등 공론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경제특구법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교육개방이 미칠 여파에
대해 전 사회적인 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육개방이 기존 교육체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분석·토론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내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합니다.
넷째, 이상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성의 있는 답변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