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주필이 김대중 정권의 성격과 현 정세의 문제점을 아주 정확하게 보고 있군요.
3월 24일자 [김대중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여소야대와 직접민주주의
이성을 잃은 듯한 선거양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선거결과로 여소야대 현상이 빚어지는 경우다.
선거결과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다가 여소야대를
수용하고 운영하는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여소야대는 폭발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인지 근자에 어느 집권측 핵심인사는
비록 사석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국회에서 안정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경우 김대중 대통령은 직접민주주의 또는
참여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정치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모든 정책이 시민의 대표가 아닌 시민
자체의 집합적 선택 (collective choice)에 의해 결정되는
정부제도」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참여민주주의라는 것도
「어떤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결정을 내리는데 참여
또는 간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여권 인사가 말하는 직접 또는 참여민주주의는
쉽게 말해 국회를 무시하고 시민단체들의 직접참여로 정부를
끌고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대중을 동원한 정치,
시민단체를 매체로 한 정치를 짐작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월19일 시민단체의 낙천운동과 관련, 『왜 시민운동을
얽어매나,(중략) 이제 우리도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민주주의로 가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적이 있다. 김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으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론적으로 직접민주주의야말로 시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민주의 논리를 가장 분명히 보장하는 제도다. 정당정치나
대의정치가 시민의 이해와 유리되어 독점적 메커니즘으로
공룡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병폐라고 볼 때 이 제도는 주권을
시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지방자치는
대의제도에서 직접· 참여제도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와 같은 거대한 공동체에서 시민의 이해를
단수로 추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은 자칫 포퓰리즘(populism)으로 흐를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집권자가 모든 정치적 문제들을
「민중의 의지」에 호소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포퓰리즘에서는 인민의 의지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문제의
복잡성으로 인해 인민의 의지가 곧 집권자의 자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헌법에는 그런 제도나 정부운영 방식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없고
비상대권의 발동요건도 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초법적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해도 직접·참여제도는 헌정
자체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이 여권 인사의 발언은 그런
경우를 실제로 의식했거나 이런 초법적 정부운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보다는 여소야대로 국정이 파행으로 가거나
정체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여당이
안정의석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 내지 호소 쪽에 비중이
실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또 약간의 엄포성 의미도 띠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가 어떤 경향만은 말해줄 수 있다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어느 쪽도 과반수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는 민주당이 제3당 또는
무소속을 영입하거나 한나라당 의원을 회유해서 원내안정을
도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약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
다시말해 여소야대가 불가피해질 때 집권측이 말하는
직접·참여민주주의가 어떻게 구체화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걱정하는 것은 그런 극단적 발상이
배태하게끔 된 「벼랑끝 정치」 양상이다. 지금 우리는 역대에
보기 드문 「생사의 정치싸움」을 보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이번 선거에서 실패하는 경우 3년 후의
대권도전은커녕 정계에서 물러나야 하는 「정치적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김종필씨도 이번 선거가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투신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김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지는 경우 자신의 파란만장한 정치일생의
대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마감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운운이 그것을 만회해 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