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 패륜아 핫머니에 세금을 물리자”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지의 목소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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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토빈稅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로 좌파 계열 지식인들인 이들의 주장 속에는 중도와 우파 지식인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끼여 있다. 토빈稅란 주지하다시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大의 제임스 토빈 교수가 제안한 것으로 외환거래때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주로 환차익을 노린 핫머니(투기성 단기자금)를 겨냥한 것으로 핫머니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세금을 매김으로써 핫머니의 유출입을 억제, 급작스런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금융공황을 막자는 취지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에도 외환유통 체제의 불안정성이 위기의 한 요인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토빈稅 도입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었다.
프랑스에서 ‘시민을 위한 외환거래세 추진 협회’(ATTAC)가 창립된 것도 이 무렵인 1998년이다.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인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틱의 편집인 베르나르 카상(현 회장)이 이 논의를 주도했다. ATTAC의 회원수는 현재 2만6천여 명을 헤아린다. 이는 최근 對코르시카 정책과 관련, 리오넬 조스팽 총리와의 의견 대립으로 사임한 장피에르 슈벤느망 前 내무장관이 이끄는 정당인 시민권리운동(MDC)의 당원보다 많은 수치다.
그러나 수보다 회원 대부분이 정치·경제·언론 또는 학계를 비롯한 각계의 지식인들이어서 프랑스 정부의 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ATTAC가 최근 개최한 ‘여름대학’에는 세계 20개 국가와 프랑스내 1백60개 지부에서 7백여 명의 동조자들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로랑 파비우스가 이끄는 프랑스 재무부는 “토빈稅 도입은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여름대학 전날 서둘러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교역 담당 집행위원인 파스칼 라미도 여름대학 마지막 날 대토론회에 참석했을 정도다.
그는 4시간여 동안 계속된 이날 토론회에서 자유무역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토빈稅가 ‘평화의 우체부’인 국제무역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는 외환거래를 포함한 절대적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원초적 다위니즘”이라고 몰아붙이는 ATTAC 회원들의 호된 공격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실제로 토빈稅가 부과될 경우 거래 비용의 증가로 치고 빠지기 식의 핫머니 이동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순 있겠지만 그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실시되지 않을 경우 외환거래세가 부과되지 않는 국가로 외환거래가 이전되기 때문에 당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같은 실효성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ATTAC가 토빈稅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핫머니가 절대적 자유시장 경제가 낳은 대표적 ‘패륜아’라는 판단에서다. 토빈稅가 ATTAC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궁극적 주장은 결국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다.
그런 의미에서 약자들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절대적인 자유시장 경제는 이들에게 ‘惡’과 다름 아니다. 대중적 인기가 현저히 차이 나는 주연 배우와 엑스트라가 함께 등장하는 연극 무대에서 성공을 판가름하는 것은 배우들 간의 연기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연극무대는 ‘세계 경제’이고 인기는 ‘富와 기회’며 성공은 경제 성장이다. 이같은 신념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인지 프랑스 정부의 ‘토빈稅 도입 불가’ 판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혀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ATTAC는 자신들의 주장을 토빈稅 도입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 경제의 인간화’로 확대, 투쟁을 보다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정치 세력화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산만해지고 모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수를 당분간 동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여름대학에 참석한 한 과학도는 “우리의 목표는 정당들이 다루지 못해 비어 있는 공백을 채우고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 ATTAC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저항하는 다른 국제적 비정부기구(NGO)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새 전략의 첫 시험대는 9월 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연차 총회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세계화 시위가 될 전망이다. (중앙일보 파리 특파원·for NWK)